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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0 23:06:51

엘 파실 혁명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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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및 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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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전력4. 소속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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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파실 혁명군 마크

1. 개요

은하영웅전설의 국가 엘 파실 독립정부의 실전 군사조직. 정식 명칭은 엘 파실 독립정부 혁명예비군이지만 편의성과 매력이 떨어져 명명한지 하루만에 다들 까먹어 버렸다. 더스티 아텐보로가 남긴 기록에 따르면 양 웬리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그냥 양 함대라고 불렀고, 제국군도 공식기록에 '통칭 양 웬리 군'이라고 썼다. 올리비에 포플랭은 대놓고 양 함대가 명찰만 바꾼 거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

8개월에 불과한 짧은 역사 탓에 회랑 전투 제10차 이제르론 공방전 빼고 별다른 행적을 남기지 않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제국군의 올스타팀과 맞붙어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버밀리온 성역 회전으로 공식적으로 해산된 양 함대의 재결합한 모습인데다가 그 유명한 뒈져라 카이저! 라는 구호가 이 때 생겼다. 특히 제10차 이제르론 공방전으로 이제르론 요새를 탈환해 양 웬리 사후 잔존세력들이 이제르론 공화정부를 수립하게 되는 바탕도 깔려지게 되었다. 물론 양이 안 죽었다면 이제르론 공화정부 같은건 없었겠지만... 그리고 양이 함대 사령관으로 있었던 마지막 시기이다.

또한 규모상 양 함대의 최전성기이며[1] 회랑의 전투라는 양 웬리의 마지막 불꽃을 태운 시기이기도 하다.

2. 역사

카이저 라인하르트의 재침공에 의해 자유행성동맹이 멸망의 위기에 처하자, 엘 파실 자치정부 주석 프란체스크 롬스키를 비롯한 정치적 이상가들이 엘 파실 성계의 독립과 엘 파실 독립정부의 탄생을 선언하긴 했지만 그들에겐 어떠한 힘도 없었다. 막말로 붕괴 직전의 동맹정부라 해도 지방 경비부대를 보내 진압할 수 있었을 정도였다.

그러던 중 그들은 양 웬리 원수 모살미수사건으로 도망자 신세가 된 양 웬리의 소식을 듣고, 그를 군사 지도자로서 극진히 모시겠다는 공식 발표로 양 일행을 초빙하는 데 성공했다. 사실 양은 동맹정부가 자신을 다시 부를 가능성을 열어두었고 일단 독립부터 내지르고 본 엘 파실 자치정부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어서 한동안 관망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유부단한 조안 레벨로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으며 라인하르트가 스스로 제국의 오점과 사태의 진상을 밝혀 양 웬리가 돌아갈 길을 차단하고, 자금이 바닥나서 더 이상 활동하기가 어렵자 동료들의 의견에 따라 우주력 799년 12월 9일 엘 파실에 합류하였다.

엘 파실에 합류한 양은 롬스키와 의논하여 '양 비정규함대'를 '혁명예비군'으로 재조직했다. 군사위원장에는 정부주석 프란체스크 롬스키가 겸임하고, 양 본인은 사령관에 취임했으며 빌리바르트 요아힘 폰 메르카츠 제독이 참모장, 알렉스 카젤느 중장이 후방근무부장을 맡았다. 그리고 양 웬리의 부인 프레데리카 G. 양은 사령관 직속부관이 되어 양 웬리를 보좌했고, 보리스 코네프, 올리비에 포플랭과 함께 지구에서 돌아온 율리안 민츠 중위는 사령부 무임소 참모가 되었다.

비록 양 웬리와 그가 숨겨둔 함대가 합류하긴 했지만 여전히 제국과의 격차는 압도적이었다. 제10차 이제르론 공방전 당시 엘 파실 혁명군이 동원한 전력은 겨우 우주함정 1,500척, 당시 은하제국군의 일부에 불과한 이제르론 요새 주둔함대가 15,000척을 보유한 것을 보면 하늘과 땅 차이였다.

그러나 엘 파실 혁명군은 과거 제9차 이제르론 공방전 당시 이제르론 요새에서 퇴거할 때 양 웬리가 미리 깔아둔 함정을 이용하여 간단히 제국군을 쫓아내고 요새를 탈환했으며, 이로서 전력이 크게 증강됨은 물론 전 우주에 엘 파실 독립정부의 이름을 널리 떨쳤다. 이후 루지아나에서 탈출한 병력, 마르 아데타 성역 회전 직전 자유행성동맹군이 양도한 5,560척의 함선, 동맹 멸망 이후 망명한 병력들이 모여 엘 파실 혁명군의 전력은 증강된다. 우주력 800년 4월 20일 기준 엘 파실 혁명군의 전력은 함정 28,840척, 장병 2,547,400명이었다. 이는 구 자유행성동맹군 2개 정규함대에 필적하는 전력이었으며, 양 웬리가 이제까지 지휘한 병력 중 가장 많은 병력이었다.

그러나 28,000척이 넘는 우주함정 중 30%는 수리 내지 정비가 필요한 함정이었으며,[2] 모여든 병사들 중 20%는 동맹 말기에 징집된 신참 병사들이라 훈련을 받아야 했다. 무엇보다 이들이 상대해야 할 은하제국군은 무려 회랑 전투 당시 거의 20만 척에 달하는 넘는 전력을 동원하여, 전력비가 10대 1에 달했다.

하지만 양은 이런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불패의 마술사'라는 별명답게, 제국군의 칼 로베르트 슈타인메츠, 아달베르트 폰 파렌하이트 제독을 전사시키고, 몇 번이나 싸워 이겨 제국군의 침공을 저지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병력과 물자를 대량으로 소모했을 뿐만 아니라 함대 운용을 담당하는 에드윈 피셔 중장이 전사하여 큰 타격을 입었는데, 마침 카이저 라인하르트가 군을 물리고 회담을 제의하여, 양이 바라는 대로 민주공화주의 자치령이 탄생하는 듯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아니꼽게 보던 지구교의 공작으로 사령관 양 웬리 원수, 로젠리터 연대장 라이너 블룸하르트 중령, 부참모장 표도르 파트리체프 준장이 암살당하고 순 수울 소령이 중상을 입었다. 이때 독립정부 의장 프란체스크 롬스키도 사망하였으므로, 엘 파실 독립정부는 구심점을 잃고 5일 뒤 해체되었다.

그러나 엘 파실 혁명군의 간부들은 이대로 민주공화주의를 포기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양 웬리 원수의 부관이자 아내 프레데리카 G. 양을 정부 주석에, 양아들 율리안 민츠를 군 사령관에 옹립하여 이제르론 공화정부 이제르론 혁명군을 창설한다. 이 과정에서 참모장 무라이 중장이 불평분자들을 데리고 자진해서 이제르론 요새를 나갔고, 그의 뒤를 따라 100만 명의 이탈자가 발생하였다.

3. 전력

4. 소속 인물



[1] 단일 함대의 숫자인데도 3만척 가까이 된다. [2] 동맹 말기 급히 건조된 뒤 시험 운항도 못해보고 끌어온 신조함 정도는 그렇다고 쳐도 건조된 지 너무 오래되어 진작에 폐기했어야 할 노후함에 전투에서 크게 손상되어 수리가 불가능한 함선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이런 도저히 전투에 못 내보낼 함선을 제외하면 대략 20,000척 정도가 남았다. [3] 버밀리온 전투가 끝나고 절반이 움직이는 셔우드 숲으로 이동한 뒤 양 웬리 모살미수사건당시 양 웬리를 구출하고 시내에서 전투를 벌인 로젠리터 잔존병력이 1,000명을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