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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3 20:26:08

마르셀로 비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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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ección de fútbol de Urugu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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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7fb5ff><colcolor=#212329> 이름 마르셀로 비엘사
Marcelo Bielsa
본명 마르셀로 알베르토 비엘사 칼데라
Marcelo Alberto Bielsa Caldera
출생 1955년 7월 21일 ([age(1955-07-21)]세)
산타페주 로사리오
국적
[[아르헨티나|]][[틀:국기|]][[틀:국기|]]
신체 184cm
직업 축구 선수 ( 센터백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colbgcolor=#7fb5ff><colcolor=#212329> 선수 CA 뉴웰스 올드 보이스 (1975~1977)
인스티투토 ACC (1978~1979)
아르헨티노 데 로사리오 (1979~1980)
감독 CA 뉴웰스 올드 보이스 (1990~1992)
아틀라스 FC (1992~1994)
클루브 아메리카 (1995~1996)
CA 벨레스 사르스필드 (1997~1998)
RCD 에스파뇰 (1998)
아르헨티나 대표팀 (1998~2004)
아르헨티나 U-23 대표팀 (2004)
칠레 대표팀 (2007~2011)
아틀레틱 클루브 (2011~2013)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2014~2015)
SS 라치오 (2016)[1]
LOSC 릴 (2017)
리즈 유나이티드 FC (2018~2022)[2]
우루과이 대표팀 (2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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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르헨티나 축구 선수 출신 감독.

아르헨티나 축구 감독들의 두 계보 중 '메노티즘'의 적장자로 꼽히며, 남미 최고의 전술가로 불린다. 별명은 '광인'이란 뜻의 'El Loco'다.[3]

2. 지도자 경력

파일:external/media.tumblr.com/tumblr_m8clh4mfTD1rud4xa.jpg

1990년부터 1992년까지 아르헨티나 리그의 뉴웰스 올드 보이스의 감독을 맡아 보카 주니어스와 리베르 플라테가 독주하던 당시의 아르헨티나 리그판에서 90-91 시즌 전기 리그 우승, 91-92 시즌 후기 리그 우승, 1992년 남미의 챔스 격인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명장으로 주목을 받았다.

2.1.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뉴웰스 올드 보이스에서의 감독 일을 마친 비엘사는 이후 6년간 여러 클럽들을 거쳐 다니다가 1998년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는다. 월드컵 직전 대표팀의 분위기는 상당히 좋았는데, 2001년 비엘사가 올해의 국가대표 감독상을 받으면서 기분 좋게 2002 한일 월드컵에 참가하였고, 남미 예선에서도 유례없는 승점으로 압도적 1위를 달성했다. 그러나 이 당시 아르헨티나는 모라토리엄 중이라 나라에 돈이 없어서 월드컵 출전을 위한 선수단 이동 비용도 지불하지 못해, 선수들이 자비로 돈을 모아 참여하는 막장 상태였다. 거기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잉글랜드, 스웨덴, 나이지리아라는 죽음의 조에 편성되었으며, 잉글랜드 전에서는 마이클 오언 헐리우드 액션에 걸려 데이비드 베컴에게 페널티킥으로 1골을 먹고 그대로 0:1로 지고 말핬다. 그 결과 아르헨티나는 1승 1무 1패로 탈락[4]이라는 최악의 성적을 내고 만다. 이때 답답한 경기에 벤치에 앉아있지 못하고 왔다갔다 하는 장면으로 상당히 많은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그는 여전히 대표팀 감독을 이어나가며 2004 코파 아메리카에서 준우승을 하였고, 이어 같은 해에 있었던 아테네 올림픽에선 아르헨티나 U-23 대표팀을 이끌고 무실점 전승 우승[5]으로 금메달을 따낸다. 올림픽 이후 그는 대표팀에서 물러나며 6년간의 장기 집권을 끝낸다.

2.2. 칠레 축구 국가대표팀

이후 3년간 휴식기를 가지던 그는 2007년 칠레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한다. 그는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칠레를 12년 만에 월드컵 본선으로 이끌었고, 나아가 그는 칠레를 16강에 진출시키며 칠레 국민들의 영웅이 되었다.

칠레 대표팀과 2015년까지 재계약을 맺었지만 이후 축구 협회의 내부 사정과 얽혀 갈등을 맺은 끝에 2011년 2월에 대표팀을 떠난다. 이후 2011년 여름, 그는 인테르 첼시 등 유럽 강호들의 구애를 뿌리치고 스페인의 아틀레틱 빌바오 감독직을 맡으며 비교적 뒤늦게 본격적인 유럽 무대 커리어의 시작을 알렸다.[6]

2.3. 아틀레틱 클루브

그는 유럽의 여러 빅클럽, 특히 인테르 밀란에게 많은 구애를 받았는데 결과적으로 그는 아틀레틱 빌바오로 향한다. 전임 감독이었던 호아킨 카파로스 감독이 좋은 성과를 거뒀음에도 구단 내 권력 싸움으로 경질 당했고, 이후 비엘사가 부임하면서 사태가 빠르게 수습되었으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능력을 반신반의하였다. 다름이 아니라 그의 유럽 무대 경험은 고작 98년도에 잠시 에스파뇰을 지휘했을 때뿐이었다. 거기다 그의 확고하고 독특한 사상, 특이한 훈련법과 전술 등을 봤을 때 의심의 눈초리를 사는 건 당연한 듯 보였다. 시즌은 시작되었고 첫 경기[7] 에서 홈경기임에도 승격팀인 라요 바예카노와 비겼고 이후 리가 5경기 동안 2무 3패를 기록하며 아틀레틱 역사상 최악의 스타트를 기록한다.

최악의 부진을 보였던 아틀레틱은 서서히 비엘사의 방식에 적응해나가면서 무패 행진을 달리게 된다. 9월 말까지 리그에서 승리가 없었던 그들은 10월 들어서 바스크 라이벌 레알 소시에다드 원정에서 2:1 승리를 거두며 리그 첫 승을 신고하였고 이후 11월 말 그라나다에게 0:1로 패하기 전까지 7경기 4승 3무 무패를 기록하는데, 그 중에는 바르셀로나와의 2:2 무승부도 포함되는 등 돌풍을 일으킨다. 그라나다에게 패한 이후 그들은 다시 한번 7경기 무패행진을 기록한다. 하지만 2012년 3월에 들어서 그들은 다시 부진에 빠지고 1승 1무 4패를 기록하며 10위권 밖으로 쳐졌으나, 4월에 들어 3승 1무로 무패를 거두며 4위인 말라가와 4점 차인 6위를 기록하며 선전한다.

특히 이 시즌에 아틀레틱은 유로파 리그 코파 델 레이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다. 유로파 리그와 코파 델 레이 모두 결승에 올랐는데 상대는 각각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유로파 리그 결승전에서 그들은 좋은 경기력을 펼쳤지만 아쉽게도 결정력 부재로 인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게 3:0으로 패하고 만다. 코파 델 레이에서도 바르셀로나에게 3:0 패배. 하지만 이번 시즌 유로파 리그와 코파 델 레이에서 보여준 그들의 경기력은 찬사를 받을 만했다.[8]

유로파 리그에서 그들은 여러 강호를 물리쳤는데, 특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16강전은 비엘사와 아틀레틱이 스페인을 넘어 전 세계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세계적인 구단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덕분에 전 세계의 많은 이가 이 경기를 시청했는데, 아틀레틱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1, 2차전 모두 승리를 거두며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준다. 그들은 경기 결과뿐만 아니라 내용면에서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압도하였으며, 그들이 올드 트래포드에서 3:2 승리를 거둔 경기는 단연 하이라이트였다. 비엘사의 축구는 영국의 거인마저 때려잡으면서 대회 우승을 노리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절망을 안긴다.[9]

하지만 2012-13 시즌에는 유로파 리그와 코파 델 레이 모두 32강에서 탈락했고 리그에서도 4위 말라가에 9점 뒤진 승점 49점으로 10위를 기록, 전 시즌 승점 58점 6위보다 부진한 성적을 거두며 실패한 시즌이 된다.

결국 2013년 6월, 비엘사는 아틀레틱의 감독직에서 사임했다. 팀의 공격수인 페르난도 요렌테의 불화설로 두번째 시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한 것이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2.4. 사임 이후

여러 구단이 관심을 보인다는 소문이 돈 가운데 브라질의 클럽 산투스행이 유력해 보였으나 산투스와의 계약 조건 이견으로 결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비엘사는 장기 계약을 원했으나 산투스는 1년 6개월을 제시한 탓이라고 한다.

이리 되자 비엘사의 다음 행선지가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이 되는 게 아니냐는 소문도 나왔다. 브라질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지만 최강희가 사의를 표함에 따라 후임 감독 후보로 거론되는 중. 비엘사는 2006년 독일 월드컵 때도 한국 대표팀 감독 물망에 올랐지만 딕 아드보카트에게 밀린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장기 계약을 선호하는 비엘사의 성향상 대한축구협회가 그에게 최소 3~4년 이상을 맡길 수 있을 지는 미지수.[10] 게다가 빌바오 감독 시절에서도 나타난 것과 같이 최소한 비엘사가 자신의 팀 컬러대로 선수들이 움직이는 데 걸리는 시간이 좀 있기 때문에 냄비 근성의 한국 팬들의 아우성과 등쌀을 견딜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특히나 신임 감독은 데뷔하는 시점에 만나는 팀이 브라질과 이탈리아와 경기하면서 비록 졌지만 엄청난 경기력을 보여 주었다고 찬사를 받은 일본 국대와 경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분위기가 최악인 한국과 분위기가 최상인 일본과의 경기에서 지게 되면 받을 엄청난 원성도 문제다.

일단 홍명보가 내정되었다는 소식에 비엘사는 물건너 가는 걸로 여겨졌지만, 그가 대표팀 감독을 고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일부에서는 실낱 같은 희망을 품고 있다. 비엘사를 선임하고 아예 러시아 월드컵까지 맡겨야 한다는 주장도 나올 정도다. 하지만 현실은 그런거 없고, 2014년 5월 3일 올림피크 드 마르세유와 2년 계약을 체결하며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2.5.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마르세유에서 리그를 시작하고 두 경기에서 1무 1패를 기록하며 안 좋은 출발을 했으나 8월 24일부터 연승행진을 기록했다. 10월 5일 7연승을 구가하며 리그앙 선두를 달렸다.

특히 툴루즈에서 반짝했다가 망했다는 비아냥이나 듣던 앙드레 지냑을 살려냈다. 지냑은 10월 5일 기준 리그 9골을 기록했다. 13라운드까지 1위를 지키고 있다. 지난 시즌 6위로 마무리한 클럽을 우승 경쟁을 하는 팀으로 올려놓으며 무시무시한 행진을 이어갔다. 탁월한 전술가의 면모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는 중. 14-15 시즌을 4위로 마쳤다.

2015년 8월 8일 자진 사퇴하였다.

2.6. SS 라치오: 삼일천하

2016년 7월 SS 라치오의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복귀했다.

그런데 부임 후 이틀 만에 사임했다! 7월 6일에 선임돼서, 7월 8일에 사임했다.

디 마르지오의 보도에 따르면, 비엘사는 라치오와 계약을 체결해 놓고 로마로 입국하지 않다가 계약 체결 직후 하루가 지날 무렵의 밤에 갑자기 라치오 감독을 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고 한다. 그가 갑자기 라치오 감독직을 거절한 이유는 알 수 없으며 라치오는 고소를 준비한다고 한다.

라치오에겐 참 어처구니 없는 게, 풋볼 이탈리아의 보도에 따르면, 비엘사는 자르델, 아예티, 임모빌레, 지아케리니 같은 라치오의 영입 리스트들을 "자신의 전술에 안 맞는다"는 이유로 사임했다고 한다. 치로 임모빌레는 2015-16 시즌 공격진이 극도로 부진했던 라치오가 특히 관심을 보이는 자원이었지만 비엘사는 이를 거절하고 알렉산드르 파투로 선회했다고 한다.

우선은 타타 마르티노의 뒤를 이어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감독에 오를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성사된다면 2004년 이후 12년만에 대표팀 감독에 복귀하는 것이다.

비엘사 측은 7월 5일까지 4명의 선수를 영입을 해 달라고 계약 전에 요청했으나 4명은 커녕 1명도 영입되지 않아서 일을 못 하겠다는 생각에 계약을 파기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라치오 측은 선수 영입이 그렇게 쉽게 되는 것도 아니고 영입 요청을 받은 선수들과 협상 중이었는데 비엘사가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감독직 제의를 받고 일방적으로 파기했다고 주장하며 비엘사를 고소했다.

이러고 나서 아르헨티나 감독이라도 됐으면 모르겠으나 아르헨티나 축구협회는 에드가르도 바우사를 감독으로 임명했다.[11] 아르헨티나 축구 협회의 논지에 의하면 알레한드로 사베야가 기껏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의 수비를 안정화 시켜서 철벽수비로 다 만들어 놓았는데 그런 사베야와는 정반 대의 감독인 비엘사를 앉혀서 또 극단적 공격축구로 회귀해 팀의 수비력을 엉망으로 만들 것을 우려해서 비엘사에게 아르헨티나 국대 감독 자리를 주지 않기로 결정했다. 게다가 비엘사,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이래 장장 32년 동안 아르헨티나가 8강에 못간 두 개의 월드컵 중 하나인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12] 당시의 감독이었다는 점도 비엘사를 불선임한 것의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리고 에드가르도 바우사 감독이 경질되고 후임 감독으로 호르헤 삼파올리가 선임되었다. 삼파올리는 칠레 축구 국가대표팀을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승시키는 등 신흥 강호로 만들어준 것으로 실력 인증을 제대로 했다.

결국 라치오는 감독 대행이던 시모네 인자기를 정식 감독으로 임명하는 것으로 해결했다. 이후 인자기가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승승장구하고 있으니 결국 비엘사만 손해본 꼴이다.

2.7. LOSC 릴

2017년 5월 23일(한국 시간) LOSC 릴에 부임하며 백수 신세는 면했다.

하지만 2017년 12월 16일 기준 릴은 18위로 강등권에서 허덕였고 결국 경질되었다.

릴은 이 시즌에 승점 1점 차로 가까스로 17위를 기록하며 리그에 잔류했다. 그런데, 릴은 다음 시즌인 2018~19 시즌은 갑자기 리그 준우승, 2019~20 시즌은 리그 4위를 차지했고, 2020~21 시즌은 무려 우승을 달성했다.

경질 당하는 과정에서, 비엘사는 자신의 경질이 부당하다며 19M 상당의 위약금 소송을 진행했지만 결국 패소했다.

2.8. 리즈 유나이티드 FC

파일:마르셀로 비엘사1234.jpg
언제나처럼 1부 리그 승격에 희망 고문만 하다가 2017-18 시즌도 폭망한 리즈 유나이티드가 2월에 임시 감독으로 앉힌 폴 헤킹버텀 감독을 해임한 이후 차기 감독 후보 중 한 명(비엘사, 스티브 브루스,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마티아스 알메이다)으로 링크되었다. 루머가 한 달 정도 이어지다가 6월 15일에 2년 계약을 맺으면서 리즈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18-19 시즌 리즈 유나이티드의 약진에 큰 공을 세우고 있다. 팀 내 다양한 자원들을 폭넓게 사용하고 있으며 90분 내내 강한 움직임과 선수들의 멘탈 관리를 중시하면서 경기력 자체가 작년보다 매우 올라왔다. 2019년 1월 14일 리즈 유나이티드를 1위로 이끌어서 리즈 팬들로부터는 그야말로 팀을 프리미어 리그로 올려줄 구세주로 떠올랐다.

2019년 1월에는 더비와의 경기에 앞서서 더비의 비공개 훈련을 몰래 염탐하다가 들켜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램파드 감독의 항의에 비엘사 감독 측은 구단과는 상관없이 자신이 경기를 염탐하고 오도록 시켰음을 인정했고, 다른 경기에서도 비공개 훈련을 염탐했음을 인정하였다. 그리하여 리그 사무국에게서 20만 파운드의 벌금을 물게 되었다.

그러나 후반기에 경기력이 떨어지면서 연패를 했고, 결국 리그 3위로 마감,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얻는데 그쳤다. 그리고 플레이오프에서 스파이 게이트로 논란이 된 더비 카운티를 만나게 되었는데, 첫 경기 원정을 1:0으로 이겼으나 2차전 홈경기를 2:4로 패해 골 득실 차로 밀려 승격은 실패했다.

2019-20 시즌 이번에는 다시 2위를 유지하며 승격 가능성이 높아졌다. 37라운드 1위로 올라섰으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한 리그 중단으로 한때 프리미어 리그가 취소되며 승격이 무산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컸다. #

하지만 영국 정부와 FA의 강력한 의지로 6월, 프리미어 리그와 EFL 챔피언십이 재개되었고 38라운드에 1위 WBA와 승점 동률, 3위 풀럼과는 승점 7점 차를 유지하였다.

그리고 현지 날짜 2020년 7월 17일 44라운드를 기점으로 리그 최소 2위를 확정 지으며 리즈 유나이티드16년 만에 프리미어 리그로 승격시켰다! 이로써 비엘사 감독의 프리미어 리그 무대 데뷔도 확정되었다. 거기에 7월 18일, 우승 경쟁 중이었던 브렌트포드 스토크 시티에게 0:1로 패하면서 EFL 챔피언십 우승까지 거머쥐는 겹경사를 누렸다.

2.8.1. 2020-21 시즌

이후 1년 계약 연장을 하여 2020-21 시즌에도 리즈를 지휘하게 되었다. 재밌게도 비엘사 감독의 커리어에서 한 클럽에서 3년 차를 맞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구단주와 보드진이 비엘사를 신뢰하고, 비엘사도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2020-21 시즌 리그 첫 경기에서는 리버풀에게 4:3으로 패했지만 강력한 화력을 선보였고 이후 2연승을 질주했다. 심지어 4R 맨시티를 홈으로 불러들여 1-1로 승점을 얻어냈다. 하지만 이후 5R 울버햄튼 전에서 주도하던 경기를 1:0으로 내주게 되어 매우 안타깝게 되었다. 이후 6라운드에서 돌풍을 이어가던 아스톤 빌라를 무려 3:0으로 무너뜨려 분위기 반전에 성공하였으나, 7R 레스터 시티에게 4:1 대패하여 리그 12위에 머무르게 되었다.

전술적으로는 훌륭하나 현재 리즈의 치명적인 단점은 바로 골 결정력과 실점을 상당히 많이 하는 수비. 공격을 좋아하는 축구팬에게 비엘사의 전술은 그 어떤 프리미어 리그 감독들보다도 매력적이지만 선수들의 골 결정력 때문에 항상 발목을 잡는다. 또한 필립스의 유무가 팀 경기력에 엄청 큰 영향을 끼치는 것도 불안요소다. 당장 필립스가 2주 동안 부상으로 결장하자 레스터와 크리스탈 팰리스한테 4:1로 대패했다. 또한 첼시 원정에서도 치명적인 단점이 드러났는데, 초반 강한 전방 압박으로 좋은 경기력을 선보이다가도 후반 체력이 방전되자 시종일관 밀리는 것이 불안 요소라고 볼 수 있다.[13]

리그 14R 맨유 전에서는 6:2로 대패했지만 경기력이 참담한 수준까지는 아니었고 오히려 연속으로 실점하면서도 계속해서 공격을 가하는 등의 괜찮은 경기력을 보였다.

그리고 리그 15R 번리 전에서 패트릭 뱀포드의 페널티킥 선제골을 끝까지 지켜 클린시트를 기록하였다.

이후 리그 16R 빅 샘 감독의 WBA에게 5:0 대승을 거두었다.

리그 17R 토트넘전에서는 손흥민의 토트넘 커리어 통산 100호골 제물이 되었다.

그리고 FA컵 64강에서 4부 리그 크롤리 타운에게 3:0으로 완패했다.

리그 31라운드에서 무려 맨시티를 잡아냈다. 심지어 후반전을 퇴장으로 10명이서 뛰고도 추가골을 넣어 승리했다. 물론 맨시티가 챔스를 병행해 로테이션을 돌린 상태였지만 엄청난 성과임은 분명하다.[14]

최근 31전 14승 3무 14패로 그야말로 모 아니면 도를 보여주고 있다. 심지어 순위도 9위로 승격 팀치고는 잔류권에 잘 안착하고 있는 편. 득점력은 리그 6위에 오를 정도로 막강해 굉장히 선전하고 있다. 다만, 49득점을 넣는 동안 49실점을 하면서 먹히는 만큼 도로 넣는다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넣은 만큼 도로 까먹을 때도 많다는 점이다.[15]

그리고 최근 계속해서 조용히 승점을 쌓으며 어느새 아스날과 승점이 동률이 되었다. 토트넘전에 3-1 승리하고 강등팀이 일찌감치 확정되어 동기가 사라진 중하위권 팀들을 무난히 연파하고 4연승을 올려 승격 첫 시즌을 리그 9위라는 호성적으로 마무리 했다. 승격팀이 1~2년도 버티지 못 하고 금방 2부로 돌아가는 사례가 비일비재한 것을 생각하면 이는 엄청난 성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16] 그에 따라 1년 재계약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리즈 시절'의 복귀를 꿈꾸는 팬들이 다음 시즌을 더 기대하게 만드는 중이다.

2.8.2. 2021-22 시즌

그러나 2021-22 시즌에는 10라운드 기준 현재 2승 4무 4패로 승점 10점에, 강등권과 매우 근접한 17위까지 쳐지며 고전하고 있다. 첫 시즌에 좋은 모습을 보였다가 다음 시즌에 전술이 간파되어 강등당한 레딩, 셰필드 유나이티드처럼 승격팀이 겪는 어려움을 리즈도 피하지 못하고 있는 중인데, 사실 패트릭 뱀포드, 칼빈 필립스, 로드리고 모레노, 로빈 코흐, 루크 아일링 등 주축 선수들 상당수가 한 번씩은 부상으로 빠지는 답이 없는 상황에서는 리즈의 얇은 스쿼드로는 감독이 뭘 어떻게 해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현재는 지난 시즌까지 제일 많이 사용하던 4-1-4-1 전술과 함께 3-3-3-1, 4-2-3-1 등 부진을 벗어나기 위해 다양한 전술을 선보이고 있으며, 리그 5경기에서 2승 2무 1패를 기록하고 첼시를 상대로도 선전하는 등 약간은 반등에 성공했다.

사실 리즈 팬들은 물론 축구 팬들은 다 알겠지만, 현재 리즈의 스쿼드를 보면 강등권에 있어도 할 말이 없는 스쿼드이다. 그럼에도 강등권에서는 어찌저찌 벗어나고 있는 걸 보면 비엘사가 크리스 와일더, 로이 호지슨, 샘 알라다이스 등 하위권 팀 전문 감독과는 차별화된 감독이라는 게 증명되고 있다.

12월 24일 현재는 등록된 1군 명단에서 수비수 8명 중 5명이 부상을 당했고, 미드필더에서는 주축인 필립스와 로드리고, 공격수에선 뱀포드와 대니얼 제임스, 잭 해리슨 등의 부상으로 처참한 스쿼드 속에서 아카데미 선수들의 콜업과 서브 자원 기용, 전술 변화와 일란 멜리에의 선방[17]을 통해 상황을 타개해 나가는 중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맨시티전 7:0 대패, 첼시전 3:2 패, 아스날전 1:4 패배를 막을 수는 없었다. 이번 시즌 이후에 재계약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계속 드리워지고 있는데, 일부 언론에서는 이미 후임으로 제시 마치가 유력하다는 소스를 보낸 데다가 최근의 부진으로 계속 비엘사의 입지가 약해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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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토트넘전 4:0 패배 이후, 데이비드 온스테인과 파브리지오 로마노 등의 복수 언론 및 기자는 비엘사가 리즈를 떠날 것이라는 보도를 쏟아내고 있고 사실상 경질이 유력해졌다. 후임은 지속적으로 거론되고 있는 제시 마치가 가장 유력한 상황이다. 이후 2022년 2월 27일 오전, 리즈와 계약을 해지하고 팀을 떠나게 되었다. 이후 아틀레틱 클루브의 후임 감독 후보에 올랐으나 새로운 회장의 공약 때문에 에르네스토 발베르데가 클루브의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아쉬운 성적으로 떠나긴 했으나 리즈 팬들은 여전히 비엘사를 리스펙하고, 후임 마치 감독도 팬들이 비엘사를 리스펙하는 건 당연하다며 괘념치 않았다. 2부에서 빌빌거리던 리즈를 PL로 돌려보내고, 낡아빠진 킥 앤 러쉬로 일관하던 리즈에 눈이 즐거운 공격 축구를 이식해 주었기 때문이다. 비엘사 이전과 이후의 리즈는 전혀 다른 구단으로 적어도 리즈에서는 역대 최상위권의 감독 중 한 명이다.

2.9. 경질 이후

22년 11월 기준으로 본머스의 새 감독 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는 중이지만 게리 오닐이 정식 감독 선임되면서 없던 일이 되어 버렸다.

경질 이후 여러 팀으로부터 감독직 제의를 받고 있는데, 2022년 12월, 우루과이가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직후 디에고 알론소 감독과 재계약을 하지 않는 것을 고려 중이고, 후임에 비엘사를 앉히는 것을 고려 중이라는 링크가 나고 있다. 또한 16강이라는 호성적에도 가정사 문제로 재계약을 못 한 그렉 버홀터의 후임으로 미국 축구 국가대표팀과도 접촉 중이라는 언론 보도도 있다.[18]

또한 2023년 1월에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차기 감독 후보 리스트에 포함되었다는 언론 소식이 나왔다.[19] 대한축구협회의 공식적인 기자 회견에서 윤곽이 나올 것으로 보이며, 항상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후보 리스트에 늘 이야기가 나왔던 인물인 데다 이번에는 본인이 직접 대리인을 통해 이력서를 제출했다고 알려지면서 공식적인 접촉을 할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1월 19일 ESPN에 따르면 멕시코 축구 국가대표팀도 비엘사의 부임을 원한다고 한다.

프리미어리그에서 강등권으로 추락한 에버튼이 프랭크 램파드 감독의 공식 경질을 발표하면서 후임 감독으로 웨인 루니, 데이비드 모예스와 함께 유력한 인물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1월 25일 비엘사가 에버튼에게 직접 스쿼드가 너무 느리다고 하면서 남은 이적 시장 기간 빠른 선수들을 원한다고 요구했다고 한다. 1월 27일 에버튼과 협상을 위해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하지만 계약 기간과 협상 조건 간의 차이로 에버튼과 협상이 지지부진하게 되었고 후임자는 번리를 10년간 이끌었던 션 다이치로 정해졌다. 유럽 축구계에서 관심이 뜨거웠지만 협상 결렬로 영국 복귀가 무산되면서 미세하게나마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차기 감독 부임 시나리오도 당분간 이어지게 되었지만, 클린스만의 정식 선임으로 비엘사의 부임은 무산되었다.

2023년 3월 31일,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과 계약 논의가 진행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으며 # 이후 파브리지오 로마노의 보도로 4월 6일자로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 부임이 유력한다고 한다.

2.10.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

2023년 5월 15일, 우루과이 대표팀의 감독으로 임명되었으며, 3년 계약을 맺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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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번 선임으로 우루과이는 다니엘 파사레야 감독 이후 대략 22년 만에 외국인 감독 체제를 이루게 되었다.

2023년 6월 15일 열린 니카라과와의 친선전에서는 신예들을 대거 기용하였고 4-1로 승리를 거두며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쿠바와의 경기도 2-0 으로 승리하며 우루과이 홈에서 치른 2연전 데뷔전을 모두 승리로 마쳤다.

2023년 9월 9일 2026 북중미 월드컵 남미 예선 1차전에서 칠레를 상대로 3-1로 승리하며 부임 이후 3연승을 달렸다. 특히 루이스 수아레스와 에딘손 카바니 등 굵직한 레전드 없이 신예로 거둔 3연승이라 남다르다.

2023년 9월 13일 에콰도르 원정에서 아쉽게 2-1로 패배했으나[20] 10월 13일에 패배 위기에서 동점골을 넣어 콜롬비아를 상대로 무승부를 거두었다.

2023년 10월 18일 남미 최강인 브라질을 홈으로 불러들인 경기에서는 다르윈 누녜스, 니콜라스 데라크루스의 골로 승리했으며, 이 승리는 무려 22년 만에[21] 우루과이가 브라질을 2-0의 클린시트로 꺾는 대이변이었다. 이어서 2023년 11월 17일에는 카타르 월드컵 경기 포함 14경기 연속 무패, 월드컵 남미 예선 4연승을 달리던 아르헨티나를 원정에서 로날드 아라우호, 다르윈 누녜스의 골로 2:0 승리했다.[22]

이후 2024년 6월 6일 친선 경기에서는 2년뒤 하는 월드컵의 개최국 멕시코까지 다르윈 누녜스의 해트트릭으로 4:0으로 완승하며 개최국 킬러의 모습을 보였고 2026 월드컵 남미 예선(2023)에서 2위를 달리고 있는 것이 우연이 아님을 증명했다. 동시에 세대교체에도 완전히 성공한 분위기.

이후 2024 코파 아메리카 에서 우루과이를 3위로 이끌면서 지난 월드컵에서의 광탈[23]로 몰락했던 우루과이의 세대교체가 완벽한 성공을 알렸다.

그러나 이후 9월 월드컵 예선에서 파라과이와 베네수엘라를 상대로 모두 무승부를 헌납하고, 비엘사의 방식으로 인해 대표팀이 내부적으로 완전히 분열되었다는 루이스 수아레스의 내부 폭로가 나오며 계약 해지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이후 10월 월드컵 예선에서 유일하게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던 페루에게 패배하기까지 했다.

3. 전술 스타일

비엘사는 고집이 대단한 사람입니다. 절대로 자신이 추구하는 방법을 바꾸지 않을 거예요. 먼저 선수를 섞어가며 자신의 축구에 적합한 선수를 선택하는 방식을 취할 것입니다.
오카다 다케시
공격 축구의 신봉자로서 웅크려있기 보다는 강한 전방 압박으로 볼을 따내는 것을 선호한다. 최선의 공격이 최선의 수비라는 개념이 전술의 핵심으로, 비엘사가 맡은 팀은 모두 극도로 공격지향적인 움직임을 보인다. 또한 3-3-3-1을 즐겨 사용하는 감독으로 유명했는데, 이 전술로 아르헨티나에게 금메달을 안겼고 칠레를 월드컵 16강으로 이끌었다. 장기간 함께 호흡을 맞추는 클럽 시스템과 달리 상대적으로 선수들이 단발성으로 모이는 국가 대항전에서 특히나 운용하기 어려운 전술을 채택하여 여러 유의미한 성과를 낸 점에서 특색 있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감독 초기에는 특정 전술을 쓰면 그 전술만 고집하는 경향이 매우 강했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 일본 당시 나이지리아전을 이겼지만 문제는 해당 전술을 잉글랜드와 스웨덴이 철저하게 연구했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비엘사는 같은 전술을 3경기 모두 고집했고 아르헨티나는 결국 1974 FIFA 월드컵 서독 이래 처음으로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한 채 탈락하고 말았다. 이후 아르헨티나는 후임 감독으로 호세 페케르만을 선임했는데, 비엘사와는 정반대의 전술로 세르비아를 6-0으로 완파하고 죽음의 조를 1위로 뚫어내 버렸다.

다만, 2002 아르헨티나는 스태프와 선수단 이전에 본국 경제 붕괴로 비행기표 값조차 지급받지 못해 선수들이 자비로 항공권을 구매해야 했을 정도로 협회 사정이나 지원이 최악이었던 점을 고려해야 한다. 바티스투타가 우리에겐 축구가 있다는 말로 독려하긴 했으나 비행기표조차 구해주지 못하는 협회가 훈련, 의료 등 후속 지원을 제대로 해줬을 리가 만무하고 선수단 멘탈에도 분명 영향을 미쳤을 것인데 가장 큰 원인인 이 점을 간과하고 비엘사의 전술에 제1 책임을 묻는 건 다소 엇나간 지적이다.

한 때 비엘사 연구에 심취해 있었던 바르셀로나 감독 시절 펩 과르디올라는, 당시 그토록 바라던 선수였던 세스크 파브레가스의 영입 이후 스리백을 가동하면서 궁극의 공격 축구를 구사했지만 오히려 여러 불안점을 야기한 바 있다. 당시 과르디올라는 비엘사의 축구 방식으로 극단적인 포제션 축구를 하고자 했으나, 정작 비엘사의 스리백은 점유율보단 빠르고 정확한 패스 연결로 최대한 빠르게 상대 박스까지 도달하는 것을 중점으로 했다. 또한 종적인 패스를 자주 주문하며, 점유에 유리한 횡패스와 2:1 패스 후 반대 전환을 기본으로 하는 3인의 볼 운반보단 4인의 움직임을 기본으로 했다.

흔히 스리백을 공격적으로 활용하는 가장 대표적인 감독으로 여겨지지만, 유럽 클럽 지휘봉을 잡은 이후로 유럽 축구의 판도를 몸소 체감하며 그에 맞춰 유동적으로 여러 포메이션을 가동해왔으며, 사실상 고정적으로 가동하는 포메이션은 없다고 할 수 있다.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24], 잉글랜드 등 자신을 원하는 클럽이라면 국가와 리그를 따지지 않고 커리어를 이어나갔으며, 선수 영입 문제로 트러블을 겪고 중도 하차했던 라치오 건을 포함하더라도 전체적으로 선수단의 수준에 크게 집착하고 의존하는 성향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이는 비엘사가 선수가 아닌 전술에 승부를 거는 타입임을 알 수 있다. 선수들이 누가 되었건 기어코 자신의 입맛에 맞게 개조하여 전술을 운용하는 감독이고, 따라서 개인 플레이 성향이 강한 선수나 전술 이해도가 떨어지는 선수는 중용 받지 못 하는 편이며, 반대로 그간 평가가 낮거나 존재감이 없었던 선수라도 비엘사식 훈련에 잘 적응하기만 한다면, 비엘사가 만들어 놓은 역동적인 축구의 한 축이 되어 커리어가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올라오는 케이스들이 많다.[25]

전술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조직력과 체력 그리고 고차원적인 공간 플레이라고 할 수 있는데, 비엘사의 축구는 기본적으로 매 순간 패스 하나의 낭비 없이 11명 모두가 타이트하게 짜여진 프레임 속에서 알맞은 위치로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을 모토로 한다. 서로가 서로의 움직임에 치밀하게 간섭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하며, 고차원적인 사고 방식을 선수들에게 주입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다소 애로 사항이 존재한다.

이러한 적응의 시간을 거치면 비엘사의 축구는 어느 클럽에서든 자신들의 액면가를 넘어서는 큰 임팩트를 보여주곤 했다. 다만 그간의 누적된 지표상으로, 그의 고차원적이고 피지컬적인 강도 높은 훈련이 지속되다보면, 선수단 전체의 수명이 짧아지고 피로감을 호소하며 사이클이 끝나버리는 악순환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다소 이상적이면서 고압적인 단면도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그의 지도를 받아 온 대다수의 선수들은 그러한 훈련을 통해서 축구 선수로서 새로운 도약을 한다는 점에선 성취감을 가진다고 하나,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문제점인 선수단의 체력 고갈 문제가 개선 가능한 지점인지 아닌지는 여전히 미지수라고 할 수 있다.

4. 기록

4.1. 대회 기록

4.2. 개인 수상

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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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6년 7월 6일부터 2016년 7월 8일까지 맡았다. 무려 3일 만에 감독직을 사퇴했다. [2] 시즌 도중 경질. [3] 우루과이의 전 축구 선수인 세바스티안 아브레우의 별명과 똑같다. [4] 조 3위 대회 18등으로, 1962 칠레 월드컵 이후 40년 만의 1라운드 탈락이었다. 심지어 그때는 본선 진출팀이 16개에 불과했고, 1970 멕시코 월드컵 16개국 본선에 진출 실패한 이후로 월드컵 16위안에 들지 못하였고 32개팀이 진출한 2002월드컵에서 탈락(18위)한 비엘사 쪽이 더 나쁜 성적을 기록한 셈이다. [5] 6전 전승 17득점 0실점. [6] 과거 98년도에 스페인 라리가의 에스파뇰 감독을 잠시 지낸 적은 있다. [7] 스페인 선수협의 파업 문제로 라리가 개막이 1주 연기되었다. [8] 아틀레틱 빌바오의 유로파 리그 결승 진출은 1976-77 시즌 이후 무려 35년 만이었다. [9] 이때 아틀레틱에서 맹활약하던 안데르 에레라는 3년 뒤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선수가 되었다. 사실 에레라는 2년 뒤에도 갈 수 있었지만 당시 맨유의 단장이 에드 우드워드로 타겟을 선회하면서 딜을 제대로 하지 못해 이적을 못 했다. 에레라 본인도 맨유행에 관심이 있었는데도 가지 못했지만 한 시즌을 아틀레틱에서 다시 맹활약하고 결국 맨유로 이적했다. [10] 실제로는 보드진이나 선수단과의 마찰 때문에 중도에 계약을 해지하고 나와 버릴 때가 많지만, 기억해 둘 것은 2016년 현재 기준으로 아르헨티나 대표팀 감독 중 한 사이클(4년) 이상 재임한 마지막 감독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그 뒤에 맡은 감독 중 가장 긴 게 거의 딱 3년 재임한 알레한드로 사베야다. [11] 2002년 월드컵 때 조별 리그 탈락 + 절대 패하면 안 되는 상대에게 패했으니 불선임은 당연하다. 당장 바르보자 골키퍼도 준우승을 거두고도 영구 제명 당하고 조국 국민들 전체의 조롱과 모욕의 대상이 되었다. 바르보자는 브라질이 패할 가능성이 희박했던 우루과이에게 패해서, 비엘사는 아르헨티나가 절대 패하면 안 되는 잉글랜드에게 패해서 국가대표에서는 사실상 봉인 상태가 되었다. [12] 나머지는 1994 미국 월드컵. 그래도 그건 16강이라도 갔지만 비엘사는 그런 것도 아니다. [13] 또한 이러한 강한 전방 압박을 시전하면서 은근히 반대편에 공간을 상당히 많이 내주는 편이다. 이 공간이 털리면서 그대로 말려버린 경기가 바로 전반기 첼시전과 손흥민의 100호 골이 나온 그 경기. [14] 참고로 맨시티는 후반기에 엄청난 상승세를 보여주고 있는데 후반기에 맨시티를 상대로 승리한 팀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리즈 유나이티드 둘뿐이다. [15] 사실 이는 커리어 내내 지적되었던 비엘사 특유의 단점이기도 한데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시절부터 협회로부터 지적을 당했지만, 역설적으로 이러한 수비 문제가 고질병이라는 점 때문에 일정 규모 이상의 클럽에서는 오래 버티지 못한 쪽에 가까운 편이다. 그 밖에 선제 실점을 하면 준비해 온 플랜 전체가 말려서 경기 내내 아무 것도 하지 못 할 때가 많은데, 이는 2002 FIFA 월드컵 당시 잉글랜드, 스웨덴과의 경기에서도 잘 드러났다. 쉽게 말해 준비해 온 플랜이 조금이라도 먹히면 일정 경기력 이상을 보장하지만 선제 실점 등으로 준비해온 플랜이 어그러지면 무색무취의 축구가 나온다는 것이다. 전반기 맨유와의 로즈 더비에서도 이 문제점이 나오며 6-2로 깨졌다. [16] 물론 승격 첫 시즌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셰필드가 다음 해 주축 선수의 부상 및 이적과 전술 파훼로 졸전 끝에 강등된 것을 생각하면 리즈가 생존 이상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선 이를 반면교사 삼아 더욱 철저히 준비할 필요가 있다. [17] 리그 18경기 65선방으로 경기당 선방율 3.6을 기록했는데, 이는 지난 시즌에 주목받았던 아론 램스데일과 새로이 주목받는 주제 사보다 높은 수치이다. [18] 다만 비엘사 본인은 영어가 전혀 안 되기 때문에 리즈 시절처럼 영어 통역이 함께 대동할 것으로 보인다. [19] 본인만 후보에 오른 게 아니라 독일 축구의 레전드 위르겐 클린스만도 후보군에 있다. [20] 전력만으로 봤을때 우루과이가 에콰도르에게 패한 건 꽤나 이변인건 확실하지만, 문제는 에콰도르 원정은 볼리비아와 비슷한 수준의 고산 지대이기 때문에 이기기 정말로 쉽지 않다. 국가 대부분이 낮고 평탄한 평지로 구성된 우루과이는 특히나 고지대 원정에 취약해서 볼리비아, 페루, 에콰도르 같은 고지대 원정에서는 항상 애먹는 편이다. [21] 2001년 1월 1일 2002 한일 월드컵 남미 예선에서 1:0으로 승리한 이후로 우루과이는 브라질에게 3무 9패로 약한 모습을 보였다. [22] 한편 파울루 벤투 이후 비엘사와 링크가 있었지만 최종적으로는 정몽규의 독단으로 위르겐 클린스만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한 대한민국이 2023 AFC 아시안컵 카타르에서 최악의 졸전 끝에 4강에서 무기력하게 탈락하자 다시 비엘사의 이름이 언급되기 시작했다. 나무위키 실검 1위에도 오르면서 대한민국 축구팬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비록 선임 전에도 일부 우려가 있긴 했고 무엇보다 한국이 비엘사만을 적극적으로 노렸다고 해도 이전부터 남미와 유럽 외 지역으로는 가지 않겠다는 의사를 여러번 피력한 적이 있었기에 그를 선임할 수 있었을 가능성은 낮지만, 불과 14개월 전 발베르데와 벤탄쿠르가 포진한 우루과이를 상대로 우세한 경기력을 펼쳤던 대한민국은 위르겐 클린스만의 무전술 축구 아래에서 처참하게 망가진 반면 비엘사를 선임한 우루과이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를 차례로 꺾으며 세계적인 전술가를 감독으로 선임한 그 효과를 보고 있으니 비교가 되지 않을 수가 없다. [23] 32강 조별리그 탈락(20등) [24] 라치오 계약건. 사실상 계약 불발이긴 하였음에도 엄연히 이탈리아 진출에 대한 의지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25] 유럽 리그 진출 이후로 한정하면, 그의 전술에서 중요한 포지션 중 하나인 수비형 미드필더 선수들이 특히 수혜를 많이 입었는데, 대표적으로 빌바오의 안데르 이투라스페는 비엘사 체제를 거치면서 잠시 스페인 국가 대표팀에도 발을 담갔다. 리즈에선 칼빈 필립스가 그의 지도로 기량이 만개하여 맨체스터 시티 이적과 월드컵 본선 무대까지 밟을 수 있었다. [26] 1월부터 6월까지 진행된 후기 리그. [27] 특히 시메오네와 포체티노는 비엘사가 아르헨티나 대표팀을 맡던 시절에 선수 시절을 보낸 경력이 있다. [28] 아르헨티나의 국토 면적은 남한의 27배 정도 된다. [29] 종목은 다르지만, 선수단 관리 측면에서 야구계의 김성근 감독이 비슷한 스타일로 꼽힌다. [30] 가령 마르세유 감독 재임 시절에는 플로리앙 토뱅이 “내 자리를 만들어 이 돼지새끼(gros porc)야”라는 욕설을 하는 일까지 있었다. [31] 사실 2005년도에 조 본프레레 감독이 경질당한 이후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맡을 수도 있었는데, 축구협회의 언론플레이에 어이없어 하면서 당시 협회의 행정에 문제가 있다고 인터뷰에서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월드컵이 9년이든 9개월이 남았든간에 이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서 먼저 한국을 방문해서 몇 주간 한국 축구 현실을 파악하는 게 우선이라고 하였다. 아마 프로 리그와 그외 축구 관련 여러가지를 알아보고자 했던 것일 것으로 추측된다. 이에 기자들이 한국 대표팀 감독직에 관심 없는 거 아니냐는 말에 모든 일은 순서가 있다면서 대한축구협회에서 정식으로 제안을 보내면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이 시기의 비엘사 감독이 한 인터뷰를 찾아보면 자세한 내막을 알 수가 있다. 당시 비엘사는 소속팀이 없는 무직 상태였다 보니 위약금 문제도 없었고 데리고 올 수도 있을 거라는 의견이 꽤 많았음에도 결국 협회의 최종 선택은 딕 아드보카트였는데 이렇게 된 것은 핌 베어벡 압신 고트비가 코칭스태프로 다시 합류한다는 것이 당시 협회에게는 너무나도 큰 메리트로 작용했던 것. 이 과정에서 UAE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하고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부임하면서 말이 좀 나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