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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36:31

민찬기/프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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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2. 경력3. 전적4. 공군 ACE 입대, 신병버프5. 공군 ACE 전역 이후6. 프로리그에서의 민찬기7. 개인리그에서의 민찬기
7.1. 2009년 성적7.2. 2010년 성적7.3. 2011년 성적
8. 은퇴
8.1. 전역 당시 상황8.2. 반전8.3. 결과적으로 누구의 잘못이 더 큰가?8.4. 민찬기 은퇴의 여파

1. 소개

2006년 데뷔하였고, 프로리그에서는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전기리그 개막일인 2007년 4월 14일, 구성훈을 상대로 데뷔전을 치렀고[1], 개인리그에서는 온게임넷 스타리그 MBC GAME HERO을 통틀어 11번이나 양대리그 본선에 진출하였으나, 한 번도 32강(스타리그에서는 36강 및 듀얼 토너먼트)을 넘어보지 못한 비운의 게이머.

허나, 민찬기 특유의 발 빠르고 입체적인 저그전은 입대 전에도 널리 알려져 있었고, 실제로 승률 또한 굉장히 좋은 편에 속한다[2].

반면 외모와 달리 패배 후에 분을 못 이기는 모습이 방송 중 자주 나왔고, 팀 내에서도 연습 게임에 패할 경우 말이 없어진다는 증언이 이어지는 둥 승부욕이 강하다는 인상이 더 널리 알려진다. 결정적으로 빡찬기라는 별명이 붙여지게 된 경기[3]. 뭐 그렇다고 팀원들과 서먹하다거나 인간성 쓰레기였다거나 대인관계가 엉망이었다거나 그렇진 않고 사이는 꽤 좋았던 모양[4].

또 엠겜 시절에 그런 과한 승부욕과 실질적인 성적과의 괴리로 인해 게이머의 길을 접고 잠시 은퇴를 생각하고 집으로 귀가했던 경험이 있다. 그러나 공부를 하고자 책상에 앉자 그 의욕으로 게이머를 하는 게 더 좋겠다고 생각하여 다시 돌아왔다고...[5]

염보성이 개인 방송에 푼 썰에 따르면 "이중인격자"란다. 질 때마다 다시 붙자고 하고 빡치면 망치질을 했단다.

2015년 10월 아프리카 BJ 멸망전에서 나이스게임TV 사장 홀스형 등과 한 팀을 이루어 출전중이었으나, 조지명식에서부터 막장 운영으로 최약팀으로 확정되었고,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꼴찌를 한 후 멸망자 벌칙으로 번지점프를 했다.

염보성이 합동 방송에서 프로 시절 민찬기를 언급했는데, 연습할 때 맞춤 빌드로 연습을 해 주면 게임이 끝나고 연습 상대한테 상당히 잔소리를 많이 했다고 한다. 이 빌드 썼으면 어떡할래 등을 언급하며 자기 분을 잘 참지 못하는 스타일이어서 연습 때 트러블 메이커라고 불렸다고 한다.

으로,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8 도중에는 승리하고 치명적인 실수를 한 적이 있다. 바로 왼손(!)으로 거수경례 세레머니를 한 것이다. 민찬기는 훗날 이 일을 사과했지만, 이로 인해 공군 ACE 군생활 초반은 암울했다고 한다.[6][7][8]

활동 당시 프로리그는 팀플레이가 공존했던 시기였지만, 무슨 일인지 팀플레이에는 출전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9] 방송에서 처음으로 팀플레이를 해 본 것이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 종료 이후 올스타전과 BJ 전향 후 2019 스타멸망전 89e팀의 빨무 경기였지만, 알다시피 이 경기들은 전부 비공식전이다.

귀여운 외모로 89년 생 이제동[10] - 신상문에 이은 귀염둥이 라인을 맡았었다. 상문이는 귀염둥이다.

2. 경력

3. 전적

민찬기의 스타1 양대 개인리그 A매치 통산 전적
방송사 온게임넷 A매치 총 전적 MBC게임 A매치 총 전적 양대 개인리그 합산 전적
vs 테란 3전 1승 2패 (33.3%) 11전 2승 9패 (18.2%) 14전 3승 11패 (21.4%)
vs 저그 9전 3승 6패 (33.3%) 17전 12승 5패 (70.6%) 26전 15승 11패 (57.7%)
vs 프로토스 2전 2승 0패 (100.0%) 15전 6승 9패 (40.0%) 17전 8승 9패 (47.1%)
총 전적 14전 6승 8패 (42.9%) 43전 20승 23패 (46.5%) 57전 26승 31패 (45.6%)

4. 공군 ACE 입대, 신병버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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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은행 프로리그 2008까지는 잘 나가고 있었으나, 신한은행 프로리그 08-09에는 프로리그고 개인리그고 제대로 된 활약을 하지 못했다. 특히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에서는 0승 클럽의 멤버들 중의 하나이기도 하였다. 본인도 어디서고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하는 것을 의식하고 있었는지, 2009년 상반기, 누구와 함께 공군 ACE에 입대. 21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일찍 입대하면서 퇴물 집합소(…)라는 불명예스런 별명을 가지고 있던 공군의 이미지를 개선했다.[11] 참고로, 민찬기는 89년 생으로, 보다시피, 엄청 일찍 입대한 편. 이후 후배이자 후임병인 손석희도 이로부터 1년 뒤에 민찬기 본인이 입대한 나이와 같은 나이에 일찍 입대하게 된다.

동시에 양대리그 본선에 진출하며 예선탈락한 선수들의 희망의 빛이 되었다. 특히나 MSL은 민찬기배 5차 와일드카드전이 펼쳐졌다. 그 와일드카드전을 뚫고 본선에 간 선수는 김벌레. 정작 그 놈은 본선에서는 2연패로 광탈했다.

스타리그에서는 군입대 3일 전 버프를 받으며 명경기를 펼쳤지만 아쉽게 탈락했다. 하지만 경기만큼은 그 주 최고 시청률을 뽑았다고 한다.

그리고 입대. 근데 이게 입대가 뭔가 버프를 줬는지 공군 에이스 소속 중 유일하게 본선을 통과한 상태였다. 그것도 양대리그 모두... 비록 MSL은 특혜로 올라갔지만, 실력으로 올라간 온게임넷 스타리그를 보면 뭔가 할 기세다. 인터뷰도 참으로 훈훈하게 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입대 후 정말 사람이 유해지기는 유해진 듯.

그러나 입대 후에도 아주 가끔 빡찬기로 돌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GG 대신 gggggggggg를 치고 나간 거라든가, 헤드셋 안대 짤방이라든지의 모습을 보인 적이 있다. 이런 행동이 문제되지 않을 리가 없는데, 이에 대해 홍진호가 말하길 찬기가 막내답지 않은 모습을 보여줄 땐 당연히 부대 내에서 뭔 일이 일어난다고 은유적으로 말했다.

이재호마저 웅진으로 떠난 MBC GAME 히어로는 민찬기의 복귀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카더라. 제대해도 2011년 기준으론 23살이기 때문에 충분히 더 해 볼 만한 나이이고, 기본적인 기량이 죽지 않았기 때문에 팀에 복귀해 연습에 매진한다면 얼마든지 기량이 올라갈 수도 있다. 복귀한다면 나이 어린 선수들이 대부분인 MBC GAME에서 리더 역할도 기대해 볼 수 있겠다.

그 와중에 엠겜 히어로의 저그 김동현이 인터뷰에서 민찬기를 반장난 반농담으로 디스하기도 했다.

5. 공군 ACE 전역 이후

2011년 6월 21일 전역, 친정팀인 MBC GAME HERO로 복귀했다.

일단 프로리그 출전은 없었는데, 복귀 이후 출전할 기회가 한 번 있기는 했으나, 그 한 경기 때문에 로스터 재등록을 하는 게 너무 번거롭다고 출전하지 못했다.

인터뷰에 따르면 군에서 마인드컨트롤 방법을 많이 배운 듯. 더 이상 빡찬기는 없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아무래도 젊은데다가 군대까지 일찌감치 갔다왔기 때문에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게이머이다.

전역 후 성춘쇼, 배넷어택 등에 출연해 밝힌 멘트에 의하면 연예계 쪽 진출을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다만 아직 정한 것은 아니고 할까말까 고민하고 있는 중인 듯.

포모스에서 프로게이머에게 30문 30답을 진행하는 '운영자가 간다'라는 코너가 있는데 공군 전역자인 오영종, 박태민이 차례대로 나왔다. 여기서 '가장 말 안 듣는 후임이 누구였나'를 묻자 하나같이 민찬기를 지목하였다.

박태민의 말을 인용하면 '군대라는 특성상 후임이 아무리 말을 안듣는다해도 한계가 있는데 이런 상식을 깨버리는 후임이 있었지만 실명을 거론하긴 그렇다'라고 하면서 갑자기 핑클의 노래 ruby[12]가 생각난다고...

하지만 팀원들의 말을 들어보면 평상시엔 착했다고 한다. 실제로 다른 동갑내기 프로게이머들과도 여기저기 잘 어울려 노는 모양이었던 듯.

그러나 평상시엔 착하다고 말해주는 팀원들도 '쟤 빡도는 건 못고쳐'라며 아예 포기를 해 버린 것으로 봐서 '말 안듣는 후임'으로 낙인 찍힌 원인은 역시 빡인 듯하다[13].

배넷어택에서 민찬기가 스스로 밝히길 "누굴 닮아서 그런지 우리집 말티즈도 성깔이 더럽다"면서 한탄을 했다.

하지만 군대를 거쳐 전역하면서 화를 많이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는 평이다.

빡빡 밀어도 여전히 빛나는 잘난 외모에 180을 상회하는 큰 키, 작은 얼굴에다가 쩔어주는 비율까지 고루 갖추어 이미 부러울 것 없는 승리자였지만 여기에 대물이라는 사실까지 추가로 폭로되어 진정한 위너의 마침표를 찍었다. 이런 짤도 있다.

구글에서 '민찬기' 연관 검색어 1순위가 무려 '대물 민찬기'.

6. 프로리그에서의 민찬기

6.1. 2009년 성적

10월 12일, 드디어 공군 ACE 소속으로서의 첫 프로리그 데뷔전을 가졌다.

상대는 친정팀인 MBC GAME HERO였다. 1경기 서경종을 상대로 약간 OME삘 나는 테저전 끝에 자원의 힘으로 서경종을 제압하고 1승을 안겼다. 이 승리는 2008년 6월 28일,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8에서 kt의 이영호를 상대로 이긴 이후 1년 4개월 만의 프로리그 승리다.

그러나 이후 공군의 2, 3세트가 무너지고 4세트를 박태민이 간신히 살린 상황에서 5세트 에이스로 출전했다.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 신규 맵 문글레이브에서 염보성을 상대로 50분 가까이 치고받고 밀고 당기는 테테전을 펼쳤으나 최후의 배틀싸움에서 밀리며 석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경기력은 이제껏 보여주었던 그 어떤 공군 선수들보다 인상적이어서 많은 팬들의 가슴에 새로운 민찬기를 새기고 있었다.

10월 18일, 프로리그에 출전하여 하이트 스파키즈의 에이스 신상문과의 테테전을 치렀다. 초반 신상문의 전매특허인 기습적인 드랍십 공격을 깔끔하게 막아내고 자원에서 우위를 보이며 경기를 잡아가는 듯했으나, 경기가 흘러갈수록 공군 선수들의 고질적인 문제인 피지컬에서 아쉬움을 보이며 역전패하고 말았다. 게다가 팀도 패배.

그러나 경기 내용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어서, 이어지는 경기들이 기대된다.

10월 21일, STX SouL와의 2세트에서 wlsdudtn을 격침시켰다. 하지만 에이스 결정전에 다시 출전해서는 whdlfwkd 가필패에게 져버렸다.

10월 26일, 삼성전자 칸과의 경기에서 1세트에서 선임 오영종 차명환을 이긴 상태에서 예정된 2세트에 출전해 유준희를 상대로 본진에 몰래 배럭후 벙커러쉬를 하면서 이겼는데, 벙커가 삼연벙이었다.

2번의 에이스 결정전에서 모두 패한 것을 보면 2회 출전이 영 맞지 않는 듯 하다. 이렇게 민찬기까지 이기면서 팀은 매치포인트 상태가 되었고, 이제 한 세트만 더 이기면 오랜만에 3대0 승리를 함과 동시에 시즌 첫 승을 거두는 기염을 토할 수도 있었는데, 애석하게도 뒷심 부족이 문제가 되어서 3세트 이후로 내리 패하면서 리버스 스윕으로 대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그래도 닷새 뒤에 본인도 구성훈을 상대로 승리하고, 팀도 에결까지 간 끝에 화승을 꺾고 시즌 첫 승을 거뒀으니 뭐... 여담으로, 구성훈과는 절친한 사이이며, 선술했듯이 2007년 4월 14일 있었던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전기리그에서의 서로의 프로리그 데뷔전 상대이기도 하다. 즉, 그 날 양 선수 모두 프로리그 데뷔전들을 치렀다는 얘기.

이후 11월 3일 있었던 프로리그에서 조병세 선수를 상대로 레이스 에어쇼를 보여주었다. 풀업 레이스로 골리앗을 물량으로 눌러버렸다.

"공군이니까! 레이스 쇼를 보여주는거죠!"라는 김철민 캐스터의 중계가 압권.

이때의 민찬기는 스타포트 18개를 건설했다.[14] 역시 테테전은 따고 배짱. 많이 먹으면 이긴다.

이 날의 승리로 민찬기는 시즌 초반이긴 했지만 프로리그 다승 공동 2위를 차지하며 그야말로 환골탈태가 무엇인지 입증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게 팀의 승리까지는 이어지지는 못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그야말로 완전 원맨팀 수준이었다. 그 이후에 박상우에게 센터 BBS를 맞고 패배한 이후로 테란전에서 연패를 하고 있었다가 11월 29일, 웅진 스타즈와의 경기에서 한상봉을 잡아내며 공군이 2승을 거두는데 일조했다. 그리고 다음날 삼성전자가 MBC 게임에 패하면서 공군은 삼성전자를 최하위인 12위로 몰아내고 1라운드를 11위로 마치는 기염까지 토했다. 군인팀보다도 낮은 성적으로 1라운드를 마친 삼성전자로써는 굴욕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한창 분위기가 좋던 중에 2라운드 개막 이후로는 본인도 팀도 모두 연패를 당하며 분위기가 반전된 상태. 12월 28일 있었던 프로리그에서 박세정을 맞아 분패하고 팀도 패하면서 다시 예전의 제 분을 못 이기는 모습을 잠시 보여주었다. 특히 12월에는 팀이 아예 전패를 찍어 버렸다.

6.2. 2010년, 2011년 성적

2라운드가 다 끝나가는 1월 18일, 프로리그 7연패와 공식전 8연패를 끊고 오랜만에 승리를 챙겼다. 상대는 이동준으로, 13스타 레이스 에어쇼로 승리하였다. 물론 상대가 비록 잉여라인 중 하나로 악명높은 웅테였다지만, 그래도 이긴 것만 해도 어디인가? 대신 팀은 본인만 이기고 나머지들은 다 패해서 웅진에 1대3으로 패하면서 2라운드를 전패로 마치고 말았다.

이 연패는 신한은행 위너스 리그 09-10이 진행 중이던 2월 24일, 위메이드 폭스와의 경기에까지 3개월 내내 계속해서 이어지다가[15] 3월 1일 삼일절 화승 OZ를 상대로 대장으로 출전해서 포풍 2킬을 달성. 이렇게 공군 ACE 팀의 연패는 18연패로 끝났다.

3월 6일, 신한은행 위너스 리그 09-10 SK텔레콤 T1과의 경기에서 박영민이 손수 차려놓은 3킬 밥상에 본인은 이제 숟가락만 하나 얹어 공군이 4대1로 이길 절호의 기회였지만, 패하는 바람에 오영종에게 패스했다. 다만 상대가 정명훈이니만큼 넘어가줬다. 그래도 팀은 중견으로 출전한 오영종이 정명훈을 이기면서 2연승을 기록했고, 또한 팀은 창단 이후로 처음으로 T1을 잡는 기염까지 토했다. 이로써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에만 공군은 그 동안 한 번도 못 이겼었던 화승과 티원을 처음으로 이겨 보았고, 더불어서 T1의 위너스 리그 포스트시즌 진출까지 좌절시켰다.

그러나 3월 9일에는 삼성전자를 상대로 유준희를 맞아 2세트에 출전했지만 패하며 금방 물러나고 말았다. 또한 팀도 이후에 출전한 차재욱과 박영민도 다 패하면서 이번 시즌 4번째 올킬패를 당하고 말았다.

3월 14일, CJ 엔투스와의 단두대 매치에서 선봉 진영화에게 선임병들이 모두 패하면서 시즌 5번째 올킬패를 당하기 일보 직전에 놓인 상황에 대장으로 출전, 올킬을 막아내고 차봉 김정우까지 쩔어주는 디펜시브 마린 컨트롤[16]을 보여주며 2킬을 하지만,[17] 중견으로 출전한 토스 유저 장윤철에게 패하고 만다. 이쯤 되면 공군의 소년가장이라고 해도 됐을 듯.

4라운드로 바뀐 이후인 4월 14일, 삼성전자 칸과의 경기에서 공군이 2:1로 앞서가던 상황에서 4세트 차맹환과의 경기와 에결 송뱅구과의 경기를 연달아 대차게 말아먹음으로써 하루 2패를 기록해버렸다. 후임병 박영민은 승리를 차곡차곡 쌓아가는데... 혹시 벌써 신병 버프가 다 사라졌나?!

그런데 4월 19일, 이제동, 박준오를 잡으며 하루 2승으로 공군 ACE의 3:2 승리에 기여했다. 일명 큰북, 작은북을 잡았다고 해서 드러머. 한편, 민찬기가 에결에서 박준오를 잡으며 화승전 2번째 2킬을 달성한 시각이 오후 8시 22분이었고, GG 직전 확인된 사이언스 베슬의 킬수는 22킬이었다. 그러나 이후로는 한상봉, 김도우, 김윤중, 전태양, 이영호 2번, 박수범, 신상문에게 연달아 패하며 8연패까지 기록하게 되었으며,[18] 4라운드는 2승 10패로 다소 불만족스럽게 마쳤다.

그러나 5라운드로 바뀐 2010년 6월 2일에 5라운드에 첫 출전해서 팀이 0대2로 셧아웃 패배 일보 직전에 놓인 상황에서 이 날 공식전+프로리그 데뷔전을 치른 eSTRO의 신예 토스 유저 유병준[19]을 꺾고 연패를 끊었다. 이후 박정석에게 바통을 넘겨줬으나, 박정석은 박상우에게 패하면서 팀의 패배를 막지 못했다.

2010년 6월 7일 4경기에서 이영호에게 패하면서 09-10 시즌 vs 이영호 상대 4전 전패였으나, 에결에서 4전 5기 끝에 이영호를 이겼다! 또한 팀도 10연패에서 탈출. 홍진호의 말에 따르면 5경기 실력이 평소 연습 실력이라고 한다.

이후 2010년 6월 19일, MBC GAME HERO와의 경기에서 팀이 1대1 동점이 된 상황에 3세트에 나서서 종전 팀 동료 박수범을 꺾고 매치포인트를 만들었고,[20] 이어진 4세트에서 박영민이 이재호를 꺾고 팀의 3대1 역전승에 일조했다.

이어 2010년 6월 22일 하이트 스파키즈와의 경기에서는 선봉으로 출전하여 김상욱을 꺾었고, 2세트에서 박태민 이호준한테 패했지만, 3세트에서 서지훈 김봉준을, 4세트에서 홍진호 이경민을 꺾으면서 팀도 본인도 2연승을 기록했다.

그리고 2010년 7월 4일 STX SouL과의 경기에서 조일장에게 디펜시브 마인으로 승리하면서 팀의 첫 4연승과 첫 단일 시즌 두자리수 승리 기록에 일조한다.

그러나 2010년 7월 7일 위메이드 폭스와의 경기에서 신노열에게 패하면서 기세를 이어나가지 못했고, 또한 팀도 이 경기는 패하면서 5연승은 하지 못했다. 이 경기를 끝으로 민찬기는 09-10 시즌을 마쳤다.

신한은행 프로리그 10-11 미디어데이에 출연, 해병대 캠프로 워크샵 다녀온 송병구에게 "해병대 캠프가 커피면 우리는 T.O.P"입니다"라고 디스를 걸며 그를 데꿀멍시켰다.

10-11 시즌 1라운드 첫경기였던 웅진 스타즈와의 경기에서 임정현 선수와 2세트에서 경기를 하였다. 그의 바이오닉은 여전히 강력하다는 것을 보여주며 임정현 선수를 드랍십으로 농락하였다.[21] 다만, 팀은 패배.

10월 26일, 이영호와의 경기에서 경기 시작과 동시에 나갔다. 꼼딩색의 패기. 민찬기 선수는 개인 실수라고 심판진에게 어필했고, 심판진은 경기 시작은 옵저버가 스타트를 누르는 순간[22]이라는 규정을 바탕으로 몰수패를 선언했다. 이에 팬덤은 "개인 실수로 나간 것이니 몰수패는 합당."이라는 긍정 의견과 "옵저버 스타트가 규정이라면 카운트 동안 채팅하는 것도 몰수패 아니냐?" "경고라는 제도도 있는데 무조건 몰수패냐?"라는 부정 의견으로 갈렸다. 그래도 뭐가 어찌되었든 케스파는 까인다. 사실 이 부분은 겜알못인 공군 장교 감독이 이 부분을 제대로 어필하지 못한 게 판정이 뒤집히지 못한 원인이라 보는 의견도 많았다. 어쨌든 이 경기는 케스파 스타1 부분 최단시간 패로 기록되었다. 15년 이윤열 복면스타왕 3화에서 (01:19:41초부터) 말하길 옵저버가 누르면 적용되는 규정을 모르고 있었고 공군측에서도 공문을 보내 규정도 바뀌었고, 얼차려를 받았다고

잘 나갔던 09-10 시즌과는 다르게 10-11 시즌에서는 몹시 부진하면서 패만 자꾸 쌓고 있다. 테란전은 그저 그랬지만, 토스전과 자신의 최대 특기 저그전이 크게 무너진 것이 요인. 또한 공군 선수들은 상등병만 달면 성적이 부진해진다는 징크스가 있는데, 민찬기 본인도 이 징크스에 걸려든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특히 2011년 1월 25일, 대장 카드로 나와 박수범에게 패하며 올킬을 허용했을 때는 예전의 친 모습을 다시 보여주어서 까였다. 3월 5일에는 김명운에게 패하며 팀의 연패 탈출에 실패.

7. 개인리그에서의 민찬기

7.1. 2009년 성적

2009년 10월 17일 있었던 MSL 서바이버 토너먼트 S2에서 첫 세트에서 올인 공격을 퍼부은 박치킨을 엄청난 수비력으로 막아낸 뒤, 기습 캐리어로 위협한 박세정을 맞아 안정된 후반 운영으로 승리를 따내며 공군 ACE 첫 양대리거가 되었다.

11월 6일 온게임넷 스타리그 36강전에서 신노열을 훌륭한 판단과 운영으로 2:0으로 승리, rlackdgml과 맞붙었다. 1경기는 승리하였으나 다음 두 경기에서는 결국 패배하면서 그의 행진도 여기서 막혀버렸다. 특히 마지막 경기에서는 김벌레가 그 유명한 핵관광을 시전한다. 무려 두 방이나...

12월 10일 MSL에서 오드아이에서 사장되다시피 한 메카닉 테란을 구사하면서 김정우를 잡았다. 예전에 병력을 그저 쏟아붓다가 병력이 다 떨어지면 GG치는 모습과 달리 중요한 요지를 선점하면서 상대방의 공격을 효율적으로 방어하면서 차츰차츰 세력을 넓혀가는 운영을 보여주면서 김정우에게 승리했다. 3단계단 시즈탱크 배치가 일품. 군대가더니 확실히 멘탈 부분에서 안정을 찾은 듯. 군대가 좋은 점도 있긴 있다.

공군 최초로 MSL 16강 진출자가 나오는 듯했으나 이후 gjdudan에게 패하고 최종전 얼티메이텀에서 김재춘에게 4드론을 당하면서 이번에도 조별리그에서 물 먹었다.

7.2. 2010년 성적

대한항공 스타리그 2010 시즌 1 PSL에서는 8강은 부전승으로 통과했지만, 4강에서는 김태균한테 0대2로 패하고 탈락했다.

이후 하나대투증권 MSL 서바이버 토너먼트에서는 박성균한테 패한 뒤 패자전에서 이정현을 꺾고 최종전에 진출했지만, 최종전에서 박성균한테 또 패하면서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빅파일 MSL 서바이버 예선에서는 탈락하였다. 민찬기가 벌써 스막화가 되었다는 의견도 있지만, rlatjdrl 前 공군 ACE 선수가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된 것 때문에[23] 군검찰에 조사를 자주 받아서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대한항공 스타리그 2010 시즌 2 예선에서는 박정석과 함께 온게임넷 스타리그 36강에 진출!! 하지만 주장께서 탈락하셔서 그 의미는 덜해졌다. orz.

2010년 6월 16일, 어제 패하여서 빡찬기 상태로 대한항공 스타리그 2010 시즌 2 36강 C조 경기에서 고스트를 활용한 플레이로 허영무를 2:0으로 격파하였다. 1세트에서 아비터를 고스트 락다운으로 막고 2세트에서는 캐리어를 고스트로 대비하면서 물량으로 밀면서 승리. 캐리어 다수가 고스트의 락다운에 걸리지 않았으나 고스트의 존재로 캐리어가 제대로 활약하지 못했다.

토막이라 불리며 허영무와의 당시 상대전적이 3:0으로 완벽하게 밀리고 있던 상황이었으니만큼 대중들이 허영무의 승리를 점치고 있는 가운데 거둔 승리라 더 의미가 컸다. 그리고 완벽한 경기력으로 포모스 평점이 각각 10점, 9.5점을 받았으며, 2차전의 상대도 마침 저그 선수 박재혁. 민찬기의 최고 주특기 저그전인 만큼 공군 최초 스타리그 16강 진출을 기대해봄직 했다. 그러나 박재혁의 뮤탈리스크에 2번 연속 털려서 탈락하게 되었다.

이후 피디팝 MSL 예선은 8강은 부전승으로 뚫은 뒤 4강은 삼성전자의 한지원을 2대0으로 꺾었고, 결승에서는 위메이드의 이예훈을 꺾고 서바이버 토너먼트 진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다음날 열린 박카스 스타리그 2010 예선은 8강은 역시 부전승으로 뚫은 뒤 4강은 화승 오즈 이병렬을 2대0으로 이겼지만, 결승에서 STX 소울 김동건에게 0대2로 패하며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이후 MSL 서바이버 토너먼트도 김상욱과 김기현한테 연달아 패하면서 탈락하고 말았다.

7.3. 2011년 성적

2011년 3월 3일에 열린 MSL 서바이버 예선에서 팔 부상으로 인한 붕대투혼을 발휘하여 이호성을 2:1, 방태수를 2:1로 이기고 서바이버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3월 29일에 열린 MSL 서바이버 토너먼트 10조 1경기에서 김성대를 이기고 승자전에서 박성균에게 진 후 최종전에서 허영무를 이기고 김경모와 함께 사상 처음으로 공군 선수 2명이 동시에 MSL 본선에 올라갔다.

김경모가 진출했을 때 팬카페 운영자가 울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한 팬이 울음을 터뜨렸는데... 문제는 남자팬이었다는 거다.

4월 7일 MSL 조지명식에서 좌경모 우성은을 앉혀놓고 말년병장의 입담을 보여줬다. 엠겜 해설진이 김경모와 이성은이 너무 굳어있으니 풀어달라고 하니까 "공군에서는 일병에게 풀어주지 않습니다!"라고 응수하든가, 박수범의 도발에 맞받아친다든가...

4월 19일에 열린 ABC마트 MSL 32강 C조 2경기에서 이경민을 이기고 승자전에서 김명운에게 핵까지 사용하는 분전 끝에 진 후 최종전에서 이경민에게 복수를 당하여 탈락하였다. 이로써 민찬기는 마지막 MSL이었던 해당 대회까지 포함해서 은퇴할 때까지 단 한 번도 MSL 토너먼트에 올라가지 못했다.

7월 30일에 열린 2011 MSL 시즌 2 서바이버 토너먼트 9조 경기를 통하여 공군 제대 후 친정팀 소속으로 첫 공식전을 치렀으나, 진영화 정윤종에게 연속으로 패하여 2연패 광탈하였다. 그나마 그 대회조차도 MBC GAME이 MBC M으로 바뀌어 버리면서 의미도 없어져 버렸다.

8. 은퇴

전역 후 어떻게든 프로게이머로서의 길을 가고자 하였으나, 다시금 찬란히 빛나는 개스파가 빛을 발하면서 또 한 명의 선수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만다.

헌데 그 은퇴조차도 순탄하지가 않았는데...

8.1. 전역 당시 상황

민찬기가 전역을 했을 당시 전 소속팀이었던 MBC GAME HERO는 사실상 망한 상태였다.[24] 결국 신한은행 프로리그 10-11 종료 이후 MBC GAME HERO, 그리고 같이 망해버린 화승 오즈 위메이드 폭스 이렇게 3팀의 선수들을 하나의 게임단으로 통합하려는 방향으로 진행이 되었는데,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주도하는 주체가 협회였던 것이다.[25] 파국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셈.

팀의 해체 이후 민찬기는 제8게임단 합류 실패는 물론 공군을 제외한 다른 팀들로도 포스팅을 못 받았고, 그 대신 협회는 민찬기에게 SK텔레콤 T1으로 들어갈 것을 제의했으나, 민찬기의 말에 의하면 터무니없는 연봉을 제시받았기 때문에 민찬기는 이 제의를 거절하였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당장 급한 처지에 무슨 연봉을 따지고 있느냐?"라면서 이 제의를 거절한 민찬기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는 지극히 잘못된 것이다. 민찬기는 그래도 프로게이머 중에서는 제법 중견 층에 속하는 선수다. 이런 선수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을 만한 금액을 제시 받았다면 민찬기로서는 아무리 자신의 처지가 급하다고는 해도 "예예 불러주신 것만 해도 감지덕지죠 헤헤!" 이러면서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인 것이다.

더군다나 이 대목에서 협회가 까이는 이유는 따로 있는데, 민찬기의 연봉이 민찬기 본인이 생각했던 것보다 터무니없이 낮았던 이유가 바로 공군 ACE에서의 경력을 인정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찬기는 정작 공군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케이스인데, 그 공군에서의 경력을 인정해주지 않았으니 연봉이 터무니없이 낮을 수밖에...

무튼 이런한 까닭으로 민찬기는 협회의 첫번째 제의를 거절했다. 원래대로라면 이 시점에서 민찬기의 은퇴는 결정된 것이었으나, 민찬기의 스타성을 아까워 한 협회 측이 다른 팀의 양해를 받아 T1의 박용운 감독에게 정회를 요청했다고 한다. 이때 상황은 박용운 감독을 포함해서 각 팀들이 한데 모여 한창 선수 포스팅을 진행하고 있었던 듯하다.

결국 박용운 감독은 직접 민찬기에게 전화를 걸어 연봉도 올려주고 인센티브도 줄 테니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고 설득했다. 다만, 지금 한창 선수 포스팅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10분 안에 결정하라는 단서를 남긴다. 박용운 감독으로서도 지금 한창 다른 팀들과 한데 모여 선수 포스팅을 진행하고 있는 와중에 민찬기에게 추가 제의를 한 것이므로 민찬기에게 충분한 시간을 줄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한편 박용운 감독에게 추가 제의를 받고 이를 10분 안에 결정해야 했던 민찬기는 고민에 빠졌다.

혼자 결정하기 힘든 일이기 때문에 부모님이나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조언을 구하려고 했으나, 당시 부모님은 수업 중이라 전화를 받을 수 없었고[26] 지인들과도 통화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혼자 고민하다가 박용운 감독에게 하겠다는 메시지를 피력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이미 늦었다. 어쩔 수 없다."였다.

여기까지가 포모스와의 인터뷰에서 민찬기가 밝힌 내용이다.

민찬기 포모스 인터뷰.

이 기사를 읽은 팬들은 다시 한 번 개스파에 대한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힐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런데...

8.2. 반전

헌데 며칠 뒤 데일리에서 이 사건에 대한 추가적인 기사를 내보내면서 상황은 반전된다.

데일리 기사에 의하면 민찬기가 인터뷰한 위 내용에서 실제로는 누락된 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데일리 추가 기사.

무슨 말이냐면, 위 내용만 보면
  1. 박용운이 민찬기에게 전화해서 10분 안에 결정하라고 했다
  2. 이에 민찬기는 고민하다가 결국 하겠다고 했다
  3. 헌데 박용운은 이미 늦었다면서 민찬기를 내쳤다

...이런 전개인 것처럼 보인다.

헌데 실제로는 1번과 2번 사이에 민찬기가 포모스와의 인터뷰에서 누락시킨 사건이 하나 더 있었다는 것.

즉, 민찬기는 박용운에게 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 전에 이미 박용운에게 이 제의도 거절하는 문자를 보냈던 것으로 밝혀졌다.

즉, 아래 볼드 내용이 민찬기가 포모스와의 인터뷰에서 누락시킨 사건이 되겠다.
  1. 박용운이 민찬기에게 전화해서 10분 안에 결정하라고 했다.
    • 고민하던 민찬기는 박용운에게 문자[27]로 거절의 뜻을 밝혔다.
    • 이에 박용운은 민찬기 살 돈으로 방태수 이예훈을 대신 포스팅한다.
    • 헌데 이후 갑자기 맘이 바뀐 민찬기가 박용운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서
  2. 그냥 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며 기존 입장을 번복한다.
  3. 허나 이미 방태수 이예훈을 포스팅해버린 박용운은 이제와서 저 두 선수를 다시 반품(?)하고 민찬기를 데려올 수는 없는 노릇이으므로 민찬기에게 '이미 늦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대략 이런 전개였다.

하지만 이런 숨겨진 에피소드가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포풍같이 까이는 건 협회 쪽이었다.

다만, 냉정을 찾고 생각해보면 이 사건에는 일단 양측 모두에게 잘못이 있음을 알 수 있다.

8.3. 결과적으로 누구의 잘못이 더 큰가?

민찬기는 무엇보다 자신이 박용운 감독의 제의를 문자로 한번 거절했었다는 사실을 포모스와의 첫번째 인터뷰에서 고의적으로 누락시켰다. 그리고 나서 곧바로 "난 한다고 했는데 이미 늦었다고 하더라"라는 인터뷰를 함으로서 사실상 거짓말을 한 셈이 되었다.

게다가 과거 MBC GAME 코치였다는 인연 때문인지 추가적으로 전화까지 해가며 나름 민찬기 본인을 아껴준 박용운 감독에게 제대로 뒷통수를 날린 꼴이 되었다. 박용운의 이 추가적인 전화 뿐 아니라, 애초에 민찬기가 거절했던 첫번째 제의도 사실 선수 포스팅에 참여한 6개 게임단 중 유일하게 T1에서만 민찬기 영입의사를 표시했던 것인데 이는 즉 박용운 감독이 그래도 한때 같은 팀이었던 민찬기를 제법 챙겨준 결과라고 보여지므로 박용운 감독 입장에서는 더더욱 괘씸할 수밖에...

은퇴를 피할 수 없는 마당이었다면, 홍진호처럼 박수받으며 떠날 수 있는 건 아니더라도 최소한 뒷탈없고 깨끗하게 물러나는 것이 그래도 모양새가 좋고 여러모로 좋은 일인데, 결국 이 일로 민찬기는 e스포츠 관계자들에게 좋지 못한 이미지만 남긴 채 은퇴를 하고 만 것이다.

하지만 T1 쪽에서도 한 선수의 인생이 걸린 문제를 겨우 10분 안에 결정하게 했던건 잘했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였다. 민찬기가 받은 시간은 한시간도 되지 못했다. 허나 T1 입장에서도, 이미 선수 포스팅을 몇 분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10분이라는 시간적 여유 밖에 줄 수 없었으며, 이 기회조차 사실은 없었던, 순전히 협회의 요청과 호의에 의해 주어진 기회였다. 또 T1측의 잘못으로 언급되는 입단 거부시 리그 출전 금지 조항은 협회에서 계약을 악용하는 사례를 막기 위해(다른 구단과 사전 협의 후, 포스팅 낙찰 구단과의 계약을 거부하고 사전 협의 구단과 계약을 진행, 이러면 계약이 깨진 팀은 눈뜨고 선수를 뺏길 수밖에 없다.) 만들어진 조항이였을 뿐이였다.

결국 양측의 실책을 종합해 봤을 때 민찬기의 잘못이 더 크다. 물론 협회의 잘못도 크지만 민찬기의 경우 마지막 기회를 걷어찬 것도 모자라 언플을 하여 박용운 감독 등 자신을 도와주려했던 당사자들의 호의를 짓밟고 욕받이로 만들어버린[28] 민찬기를 피해자인양 감싸는 것은 어렵다.

민찬기 본인도 데일리의 추가기사가 나간 뒤 포모스와 2차 인터뷰를 하면서 '내 책임도 있다, 내가 우유부단해서 생긴 일이다'라면서 이 이상의 사태확산을 경계했다.

민찬기 포모스 2차 인터뷰.

8.4. 민찬기 은퇴의 여파

사실 민찬기의 은퇴가 특히나 안타까운 것은, 기존 입대하기 전에 최대한 실적을 내려는 여타 선수들과는 달리 민찬기는 특이하게도 전역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비상할 계획을 세웠다는 것인데, 막상 전역을 하고 보니 본격적으로 게이머 생활에 매진할 틈도 없이 등 떠밀려 은퇴한 꼴이 되고 말았다.

무엇보다 "프로게이머는 군에 갔다오면 사실상 선수생활 끝."이라는 공식을 깰 수 있는 좋은 선례를 만들 수 있었거늘, 하필이면 민찬기가 전역하는 딱 그 시기에 MBC GAME이 해체되는 바람에 결과적으로는 민찬기 역시 다른 프로게이머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입대로 인해 선수생활이 끝나버린 꼴이 되었다.

결국 일찍 입대한 것이 선수 생활도 일찍 끝내게 만든 것. 허나 입대해서 은퇴하는 보통의 선수들과는 그 이유가 전혀 달랐으므로 말 그대로 운이 없었다라고 밖에는 할 말이 없다.

민찬기로서도 아쉬운 일이지만 "입대하면 선수생활 끝."이라는 공식을 깰 수 있는 가장 유력한 후보인 민찬기마저 무너졌으니 결국 이 불문율 아닌 불문율은 앞으로도 건재할 것으로 보이므로 e스포츠 차원에서도 안타까운 일이다. 민찬기가 전역해서도 양호한 성적을 내는 첫번째 선례가 되었다면 이후 프로게이머의 커리어 축적 패러다임이 바뀔 수도 있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민찬기는 e스포츠 최고의 얼굴마담으로서 성적과는 별개로 스타성이 높은 선수였기에, 민찬기의 은퇴는 안 그래도 망해가는 e스포츠판에 더더욱 뼈아픈 타격이 되었다. 진읍읍 영구제명 이래 그나마 남아있던, 오프팬을 주도하는 빠순이들이 썰물 빠지듯 사라지는 소리가 들린다.

MBC GAME HERO 팬들은 마찬가지로 포스팅이 불발된 히어로 선수 고석현 스타크래프트 2로 전향한 것처럼 민찬기 역시 스타2로 전향하길 희망하고 있으나 민찬기 본인은 향후 활동에 대한 특별한 언급이 없는 것으로 봐서 스1이든 스2든 게이머 생활은 완전히 마무리 지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대단한 성적을 낸 것은 아니었지만 걸출한 외모로 e스포츠의 얼굴마담 자리를 꿰차고, 또한 전무후무한 '빡'으로 e스포츠 역사에 잊을 수 없는 족적을 남겼으며, 늘 동네북 취급 당하던 공군의 첫 부흥을 이끌었다는 점 등 여러가지 이유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며 화제의 중심지에 서 있던 민찬기 선수의 은퇴가 현재 갈수록 암울해지는 e스포츠판의 명운과 겹쳐 더욱 씁쓸한 감이 있다.

실제로 민찬기 정도의 짬과 민찬기 정도의 성적을 내는 다른 선수들의 나무위키 항목과 본 민찬기의 나무위키 항목 규모는 서로 비교가 안 될 정도이다. 이 정도로 스타성이 있는 선수였고, 이 스타성에 실력만 추가된다면... 지나가는 말로 민찬기가 탑 먹으면 스타판 다시 부흥한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

e스포츠가 가장 뜨겁고 활기차던 그 시대에, 많은 스타 선수를 낳았지만 그만큼 동시에 많은 선수들이 이름없이 스러져 간 그 시대에 한 페이지 당당히 차지하며 나름대로 풍운의 세월을 보내 온 선수이기에 은퇴 과정이 아쉬울 수밖에 없다.


[1] 으로, 상대 구성훈도 이 경기가 프로리그 데뷔전이다. [2] 진조작, 이재호, 한동욱, 임요환 등처럼 대표 테저전 강자로 손꼽히는 테란 선수 중 한 명이다. [3] 해당 경기는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8 중이던 2008년 5월 27일의 프로리그 경기로, 그 당시 가장 잘 나가는 저그 플레이어인 이제동과 결전을 치렀었는데, 본인의 실수로 인해 허무하게 경기를 그르치자 분을 이기지 못하는 모습이 경기 후에 나왔다. 참고로, 당시 민찬기는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8 개막 이후 (프로리그) 6전 전승 중이었는데, 이 경기의 패배로 인하여 전승이 끊겨 버렸다. [4] 그렇지만 이러한 단점 때문에 한편으로는 싫어하는 사람들도 꽤 많은 등 안티도 제법 있는 선수이며, 또한 개인리그에서의 성적이 저조했던 것 때문에 X나 못하는 2류 선수네 3류 선수네 프로 맞냐느니 등의 안 좋은 소리들을 들으면서 은근히 저평가를 받는 비운의 선수이기도 하며, 아예 일부는 김봉준이나 철구 수준의 설거지로 취급하면서 깎아내리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찬기를 저들과 동일시하는 건 민찬기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실례되는 소리이자 욕먹이는 소리이다. 민찬기는 개인리그 성적이 저조해서 그렇지 프로리그에서는 나름대로 활약하고 실력도 있다고 평가받으며, 민찬기가 POS 시절 가장 잘 했던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8 때의 성적은 10승 3패로, 어지간한 에이스 수준의 성적이다. 물론 이후 급락하며 이른 나이에 공군 ACE로 입대하기는 했지만, 이런 시절도 없이 일찍이 은퇴 수순을 밟았던 김봉준 및 철구 따위와는 절대 비교 불가 수준이다. 거기에 김봉준과 철구는 개인리그 경험은 아예 제로에 프로리그에서조차도 활약을 전혀 못 했고, 또한 민찬기와 달리 정말로 실력도 아주아주 형편없는 선수들이다. 그나마 철구는 은퇴 후 IEF 2009 준우승 경력이라도 있지만, 이때는 사실 대진운도 작용을 했으며, 같이 참가했던 코인용 김정우가 중국 선수에게 어이없이 탈락하는 운도 작용했다. 그리고 저 둘과 챔피언 송병구를 제외한 나머지 참가자 한 명은 리즈 시절이 한참 지난 임요환이었다. 송병구에게 1세트는 그래도 따냈지 않았냐는 반문도 있을 수 있지만, 경기 내용을 보면 철구가 잘 한 것보다는 송병구의 실수가 더 컸다. 물론 실수를 잡는 것도 엄연히 실력이지만, 그래도 같은 프로 사이에서 실수조차도 못 받아먹으면 프로를 달기도 힘들다. 또한 IEF도 엄연히 개인리그이기는 하지만 공식전도 아닌데다 스덕후들 사이에서도 인지도와 위상이 심히 낮은 대회라서 팬들은 이 대회는 높게 쳐주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이따위 선수들과 민찬기를 동일시한다는 건 민찬기의 입장에서는 기분 나쁠 일이다. [5] 은퇴 후 아프리카 방송을 하는 염보성은 방송 중 이 때 썰을 풀면서 '민찬기 없애버리고 싶었다'라고 언급했다. 숙소를 떠나기 전 날 먹을거 사주고 이야기도 진지하게 많이 나눴는데, 바로 돌아와서 어이가 없었다고... [6] 박대만이 이것 때문에 민찬기 들어오길 기다리며 벼르고 있었다가 갈굼을 선사했다는 카더라도 있었다. 한편 이 날 민찬기에게 패한 상대가 박대만이기도 했다. [7] 왼손을 쓰면 우뇌발달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의식적으로 왼손을 사용해오던 차에 세리머니 때 실수를 범했다는 본인의 해명이 있었다. 그런데 배넷어택에 출현해서는 좌측에서 들어오던 빛을 가리려고 무의식적으로 왼손으로 했다고 밝혔다. [8] 게다가 하필이면 이 날이 다른 날도 아니고 6월 25일이라 몇 배로 더 까였다. [9] 이 점은 SouL 김윤중도 마찬가지다. [10] 실제로는 빠른 1990년 생이다. [11] 또한 드래프트 세대로는 처음으로 공군 ACE에 입대했다. 후임 중 올드 게이머 안기효, 변형태, 고인규 이렇게 3명이다. [12] ruby는 민찬기의 배틀넷 아이디. [13] 스타로드에서도 관련 증언이 나온다. [14] 김철민 캐스터 : "스타포트 숫자도 18개에요! 뭔가 의미가 있는데요?" [15] 게다가 본인도 대장으로 출전해서 패배. [16] 선임병 한동욱이 우승했을 시절에나 했었을 정도의 고난도의 컨트롤이다. 물론 김정우의 방심도 있었지만, 아무튼 입대 후 확실한 기량 상승을 보이고 있는 듯. [17] 더불어서 김정우는 이 패배로 인하여 테저전 8연패를 기록하게 되었다. [18] 참고로 이 8연패 중에 동족인 테란한테만 5번이나 패하면서 민찬기는 테막 인증을 제대로 했다. 이중 김도우는 스1 한정으로만 테란이었고, 스2에서는 프로토스로 주종을 바꿨다. [19] 이 시즌 한정으로 이스트로였고,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을 끝으로 이스트로가 해체되면서 10-11 시즌에는 삼성전자로 포스팅을 받아 이적하게 되었다. [20] 여담으로, 민찬기는 4라운드에서 박수범한테 패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 승리하면서 설욕에 성공했다. [21] 안타깝게도 이 경기는 민찬기의 이번 시즌 처음이자 마지막 저그전 승리로 기록되게 되었다. [22] 그런데 채팅방에 있는 버튼은 START 버튼이 아니라 OK 버튼이다. START 버튼은 옵저버 모드에서 유즈맵처럼 게임화면 로드 이후에 나온다. 이 사실대로라면 케스파가 오판한 것. [23] 민찬기가 그와 동기이다. [24] 팀의 성적은 포스트시즌과도 점점 멀어지는 상황이었고, 재정 상황도 좋지 않아 당시 주전이던 이재호 웅진 스타즈로 현금 트레이드하는 바람에 안 그래도 얇았던 선수층이 더 얇아져 온갖 2군 및 신예 선수들을 마구잡이로 기용했던 상황이었다. 게다가 MBC GAME HERO를 운영했던 MBC GAME 음악방송으로 전환을 추진하고 있던 상태였다. [25] 이렇게 통합한 게임단이 진에어 그린윙스의 전신인 제8게임단이다. MBC GAME HERO 쪽에서는 염보성, 김재훈, 박수범, 하재상이 합류하였다. [26] 민찬기의 부모님은 교사. [27] 다만 이 문자의 내용이 좀 애매하긴 하다. "기회 주셔서 감사합니다. 혼란을 드려서 죄송합니다"라는 메시지였다는데, 단순히 그냥 고맙다는 뜻인지, 아니면 거절의 표현인지 이렇게 보면 이거같고 저렇게 보면 저거같다. [28] 당시 스타판의 업보긴하지만 지금으로치면 사이버불링으로 고소받아도 할말이 없을 정도로 민찬기로 인해 박용운이 먹은 욕설과 커뮤니티 분위기 악화는 심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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