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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11 08:39:08

데스티니 가디언즈/지식/창백한 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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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크보스토브 7G-0X / 크보스토브 7G-023. 사냥법4. 고로 존재한다5. 소우주6. 무기
6.1. 과감한 결말6.2. 훗날6.3. 부름6.4. 주저 없음6.5. 축의 틈6.6. 정체성 수용6.7. 기억을 위하여6.8. 거짓 우상
7. 목적지 방어구
7.1. 머리7.2. 팔7.3. 가슴7.4. 다리7.5. 직업
8. 최초의 칼9. 진주층10. 통일된 이론

1. 개요

창백한 심장 내의 아이템 지식들을 모은 것이다.

2. 크보스토브 7G-0X / 크보스토브 7G-02

"정말 오랫동안 당신을 찾아 헤맸어요."[크보스토브7G-0X]
낡아 빠졌지만 정확한 고대의 전쟁 병기입니다.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네요.[크보스토브7G-02]

1일 차. 

세상은 죽었지만, 사후의 고요함에는 평화가 깃들어 있다. 나는 수 마일의 황량한 길을 덮은 층층의 재 사이로 민들레가 자라나는, 이 죽은 세상에 태어났다. 

673일 차. 

한때 물이 흐르던 협곡이 있는 너른 땅이 있다. 땅을 깎아 만든 운하에는 버려진 배와 수많은 시체가 가득 널려 있다. 다수의 메마른 시체 사이로 꽃이 피어난다. 이 세상의 분해를 구성하는 각 요소에는 그 목적이 있다. 물은 흐르고, 도시는 썩고, 꽃은 피어난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내 목적을 찾고 있다.

1,857일 차.

바다는 광활하고 외로운 곳이다. 바다 깊은 곳에서도 생명이 번성하지만, 내가 찾는 생명은 아니다. 나는 죽음에서 살아남아—죽음을 찾아 헤맨다. 어쩌면 내 목적은 물 밑에 있을지도 모르지만, 어둡고, 외로운 곳이라… 아직 그곳을 보고 싶지 않다. 아직은 지평선이 훨씬 많으니까.

6,231일 차.

부주의하게 행동하다 누군가가 들판 건너편에서 쏜 총을 맞았다. 총알은 내 의체를 깨뜨렸을 뿐이지만, 내 몸은 빙글빙글 돌고 흔들렸다. 누가 그랬는지, 왜 내가 표적이 되었는지도 알 수 없다. 죽은 척을 했더니 아무도 공격하러 오지 않았다. 나는 아홉 날 동안 무성한 풀밭에 누워 있었다. 다섯째 날에 비가 내렸다. 개미들과 친해졌다. 그들은 생존자들이다.

36,725일 차.

이 세상은 죽었지만 삶은 귀환을 겁박한다. 언제 내 목적을 이룰지 모르겠으나, 나는 내가 누군지 안다. 나는 인류의 무덤을 떠도는 유령이다. 소명을 가진 고스트.

3. 사냥법

죽어야 하는 누군가를 죽이는 방법은 너무나 많습니다.

케이드-6는 부활한 첫날의 밤을 자신을 죽였던 남자를 바라보며 보냈다.

한때 그가 울드렌으로 알던 왕자는 케이드를 등지고 누워, 팔을 베고 부드러운 잔디를 바닥 삼아 누워 있었다. 별 없는 하늘 아래에는 구슬처럼 흩어진 화강암 바위 주위로 키 큰 목초가 자리 잡고 있었다. 안전하고 조용한 골짜기는 그들이 도착한 순간 생겨난 것이었다. 익숙한 지구의 자전 없이도 시간은 미끈하게 흘러갔고, 몇 시간 동안 반쪽짜리 대화와 위축된 질문이 오간 후 녀석은 좀 쉬겠다고 했다.

울드렌이 곤히 잠들어 있다. 취약한 상태다.

케이드는 팔짱을 낀 채로 바위에 기대고 있었다. 모닥불의 그림자가 둘 사이에 드리웠다. 검고 거친 충동이 케이드를 휘감았다.

순식간에 끝낼 수 있다.

우선 고스트의 의체를 뚫는 총탄을 날리면 된다. 그 뒤 한 움큼의 목초를 뜯어 목을 조를 끈으로 쓰면,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질식시켜 죽여버릴 수 있다.

또는 손으로 고스트를 으스러뜨린 뒤, 잠든 녀석을 세게 짓누르고 이번에는 살인자의 입장에서 자기 죽음을 재현해 줄 수도 있었다.

더 좋은 방법은 고스트를 인질로 붙잡고, 놈은 도망가게 만든 뒤 맹렬하게 추격하면—

케이드는 움찔하며 고개를 들어 죽어가는 모닥불의 불씨 너머로 살인자의 고스트가 제자리를 맴돌며 경계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고스트는 움직임 없이 방어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케이드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천천히 손을 총으로 가져갔다.

고스트와 엑소는 서로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고스트 아래 누운 녀석은 몸을 뒤척였지만 깨지는 않았다.

곧 고스트가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제 수호자의 뺨 위를 넘어 조용히 케이드 방향으로 날아와, 코앞까지 다가왔다.

"선댄스 일은 안 됐어요." 고스트가 속삭였다.

그 이름을 들은 케이드의 몸이 굳었다. 그는 무거운 수치심으로 총에서 손을 떼고 시선을 떨구었다.

"그래." 케이드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이것뿐이었다.

케이드는 신 속의 풀밭에 누워 잠든 남자를 바라봤다. 그 얼굴에 울드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까마귀, 케이드는 다시 읊조렸다.

저 친구는 까마귀다.

4. 고로 존재한다

침묵. 침묵. 침묵.

당신은 길고 꿈 없는 잠에서 깨어난 어린아이다. 아직 오늘인가, 아니면 내일 (그리고 내일, 또 다음 날, 날들이 모래처럼 당신을 파묻을 때)까지 잠을 잤는가? 부드러운 손이 티끌을 털어내지만, 당신의 목소리는 너무 부드럽기에 심장 소리에 묻혀서 들리지 않는다.

당신은 달이다. 무겁고 또 무겁게 느껴지지만, 천문학자에게는 무중력 상태로 하늘에 매달린 듯 보인다. 천문학자들이 불러도 당신은 대답하지 않는다. 그들은 당신을 위해 목숨을 포기할 수도 있으며, 자신의 꿈을 버리고 당신을 쫓는다. 당신은 그들을 너무 사랑하기에 그들을 비난할 수 없다.

당신은 등대지기다. 폭풍우 구름이 몰려오는 동안 잠든 해안 마을을 지키고 있으며, 신호 불빛을 점점 더 밝고 빠르게 깜박이지만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당신은 섬의 탑에 갇힌 채, 폭풍우가 다가오고 있다고 필사적으로 신호를 보내지만, 그들은 도망가지 않는다. 그들은 죽을 것이고—도망치지 않으면 당신도 죽을 것이다.

당신은 바다 위로 몸을 기울이고 있다. 때로는 물고기가 당신의 손아귀 사이로 지나가며 신성을 느꼈다고 믿는다. 때로는 파도가 물러나고, 물고기는 당신의 부재만을 알 뿐이다. 오늘 당신은 물에 도달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것이 왔기 때문이다. 상어의 크고 어두운 그림자가 칼처럼 물을 가르고 있기에, 경고할 수 없음에도 반드시 경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명도 더 잃을 수는 없다.

당신은 책의 탑을 나르고 있다. 1초에 한 권씩 암송한다고 하더라도, 우주의 열역학적 죽음이 오기 전까지는 끝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매년, 매일, 매 순간, 더미에는 더 많은 책이 추가된다. 누군가가 당신을 위해 책 하나를 집으려고 손을 뻗고 있다. 당신도 그의 손을 잡고 그가 그렇듯 당신도 견뎌야 하며, 이는 마치 석영에 영원히 새겨진 기억과도 같이 영원하다고 말해주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만, 손이 가득 차 있어 뻗을 수가 없다.

당신은 죄수다. 감옥이 너무 작아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다. 그는 선물을 나누라고 당신을 윽박지른다.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는 누구에게도 선물을 주지 않으려 한다. 그것은 이미 당신이 너무 많은 사람에게 지운, 그들을 짓누르는 끔찍한 무게의 짐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이 모든 것을, 그리고 그 이상을 말해줄 수도 있지만, 말하지 않는다.

당신은 무수한 길이 동맥처럼 뻗어 있는 틈을 넘어서고 있다. 반대편에 있는 이들에게 다가가려고 해 보지만, 당신 혼자서는 그 간극을 메울 수가 없다. 당신은 그들이 차례차례 심연으로 내려가고, 내려가고, 또 내려가 심연에 삼켜지는 모습을 본다. 배회자 중 하나가 여전히 부패의 냄새를 풍기며 길을 거슬러 올라 당신에게 다가오자, 당신은 누구보다 놀란다.

당신은 익사하고 있다. 물이 소용돌이치며 당신을 끌어내리고, 당신은 매우 지쳐 있다. 깊고 어두운 바다가 폐 속으로 들어오고, 잉크 방울이 은빛 핏속에 흩어진다. 이번에는, 그것이 이겼다고 당신은 생각한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보니 당신을 향해 물에 뛰어드는 형상이 보인다. 그 형상은 숨 막히는 파도를 헤치고 내려오며 당신이 수없이 손을 내밀었던 것처럼 당신에게 손을 내민다.

남은 힘은 거의 없지만, 반드시 해야만 하기에 당신은 가슴에 마지막 숨을 몰아넣고 있다. 손을 뻗자—그 손에는 검이 쥐어진다.

5. 소우주

우리 모두 먼 옛날 단 한 순간의 특이점에 존재를 빚지고 있습니다.

온도: -65°C
날씨: 먼지 폭풍
강수량: 0%
습도: 67%
바람: 25mph
이산화탄소: 95%

시간이 흐른다. 금속이 부식된다. 먼지가 낀다. 부패. 부패. 부패.

온도: -100°C
날씨: 맑음
강수량: 0%
습도: 108%
바람: 30mph
이산화탄소: 94%

온 세상의 본질을 바꾸는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평범한 인간의 손으로는 힘든 일이다. 심해의 작은 일꾼 시아노박테리아는 수백만 년 동안 태양 빛을 받으며 가장 단순하면서도 필요한 변화를 일으켰다. 바로 산화다.

온도: -54°C
날씨: 안개
강수량: 0%
습도: 98%
바람: 0mph
이산화탄소: 95%

그러나 변환점, 거대한 폭발이 생겨난다. 폭발이 일어나고 나면 균형의 순간이 찾아온다. 나머지 과정은 자연스럽고 원활하게 흐르며 점점 가속이 붙고, 만들어진 것들은 점점 늘어나고 또 늘어난다. 대기가 응축되고, 열이 더 이상 빠져나가지 못하며, 비가 내리고, 번개에서 태어난 박테리아가 다세포 유기체가 되는 등의 일이 계속 반복된다. 밝은 초록빛이 자라고, 자라고, 또 자라서…

온도: -10°C
날씨: 흐림
강수량: 26%
습도: 67%
바람: 7mph
이산화탄소: 50%, 급격히 떨어지는 중

바로 그것이었다. 그것이 목적이었다—변화와 창조의 순간, 닫혔던 것이 열리는 순간, 손대지 않은 흙 위에 첫 비가 떨어지는 순간. 그 찰나의 순간에 잠재력이 피어나고, 이곳을 고향이라고 부르게 될 모든 생명의 시작이 있다. 변환점의 특이점으로부터 거대한 미래가 소용돌이처럼 바깥으로 영원히, 영원히 뻗어 나간다.

온도: 17°C
날씨: 비
강수량: 86%
습도: 78%
바람: 14mph
대기: 산소 20%, 질소 80%, 미량의 기타 원소

그 시간, 그 장소에서 당신이 가려져 있던 얼굴을 들어 내리는 비를 맞는 모습을 목격하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지.

6. 무기

6.1. 과감한 결말

어떻게 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면, 과감하게 말해.

안달 브라스크의 물건 중 남은 것은 그의 망토뿐이었다. 시로-4는 손가락 사이로 망토 천을 문지르며, 아직 피부가 남아 감촉을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어떤 느낌이었는지 기억나?" 그가 케이드-6에게 물었다. "사람 손으로 물건을 만지던 느낌."

"네 손은 사람이잖아." 케이드가 그도 갖지 않은 치아 사이로 단어를 갈아내듯,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것이 그와 시로가 오랫동안 엑소로 살아온 삶에 대해 나눈 마지막 대화였다.

그들은 대신 얼마 전 최후의 죽음을 맞이한 이와의 추억에 잠겼다. 승리감에 찬 그의 웃음소리를 기억했다. 그의 도박 빚과, 대체 어느 친구가 그 빚을 갚았을 것인지 머리를 굴려보았다. 혹시 도시에 비밀 연인이라도 두었던 것은 아닌지. 혹시 연인이 있었다면 어떤 사람이었을 것인지 상상해 보았다.

"안달은 마음의 비밀을 숨기는 사람이 아니었지." 시로가 말했다. "알잖아. 대담하게 살고 대담하게 사랑했지."

케이드가 술병을 들었다. "그리고 대담하게 죽었지."

시로가 함께 건배했다. 술의 맛이 느껴지는지 아닌지, 취할 수 있는지 어떤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케이드가 안달의 망토를 둘렀을 때는 추워서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시로가 씩 웃었다. "잘 어울리는데."

"그래야지. 이제 절대 안 벗을 테니까."

6.2. 훗날

지금 당신은 앞으로의 당신이 아닙니다.

암흑기 동안 생존자들은 죽은 자를 위해 기도를 했다. 많은 이들이 여행자 모양으로 돌을 둥그렇게 놓고 그 중심에 사랑하는 사람의 시신을 눕힌 뒤, 그 앞에 엎드려 오지 않을 고스트를 기다렸다. 떠날 때가 되면 산 자들은 죽은 자 위에 그 돌을 쌓았다. 더러운 손으로 무덤의 표식마다 글귀를 묶어 두었다. 너덜너덜한 헌신, 용기, 희생의 비문이 바람에 슬프게 휘날리곤 했다.

다른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약을 거부함

지뢰밭임을 알면서도 먼저 가겠다고 고집함

16살 – 소년이었지만, 몰락자로부터 가족을 지키고 훌륭한 남자로 사망

락슈미-2는 너무 많은 애가를 읽어 다 기억하지는 못했으나, 그래도 자신이 쓴 것은 기억했다. 어느 아버지는 아이들을 찾으러 돌아갔지만, 아이를 미처 보지 못한 보행 탱크에 깔려 세 아이가 전부 죽어 있는 모습을 보았다. 악마의 가문에 붙잡힌 어느 노파는 사람들이 있는 곳을 밝히라며 고문당했지만 거부하고 총에 맞아 죽었다. 아무것도 이룰 기회를 얻지 못한 채 굶어 죽은 아이. 뭐라도 해 달라며 락슈미에게 빌던 아이의 어머니.

"제발요." 그녀가 말했다. "당신이 글을 더 잘 쓰잖아요."

그래서 락슈미는 이렇게 썼다. '언젠가 깨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남긴 채 엄마를 떠나, 아이 이곳에 잠들다'

아기의 무덤 위에 마지막 돌을 놓은 지 수백 년이 지난 후, 생의 마지막 순간에 락슈미는 묻힐 수 있을 만큼 벡스가 제 시신을 남겨줄지—그리고 혹시—자기 죽음에 어떤 글이라도 남겨줄지 궁금해했다.

그녀는 남라스크라는 엘릭스니가 자신의 일그러진 유해에 찾아올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몇 시간 동안이나 옆에 앉아 사색하며 침묵을 지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 믿지 못하고 웃었을 것이다.

남라스크는 이렇게 말을 맺었다. "우리 둘 다 더 나은 자들이었다면 좋았으련만."

그가 손가락으로 제 시신의 눈을 감기고 눈물 흘렸단 이야기를 들었다면, 락슈미도 언젠가 더 나은 자가 되었을는지 모른다.

6.3. 부름

"우리는 같이 간다."

회색 비둘기의 엔진에서 뭉게뭉게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초기화에 실패하며 추진기가 서서히 멈췄다.

"이 고물, 마지막으로 정비한 게 언제지?" 오시리스는 한쪽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도약선 선체를 쓸어보며 큰 소리로 물었다. "아니, 그것보다 마지막으로 비행한 건 도대체 언제였고?"

세인트-14이 조종석에서 뭐라 소리를 질렀다. 망치질 하는 소리가 이어지더니 또다시 엔진이 지쳐 끼긱거리는 엔진 소리가 났고, 곧 배기통에서 먼지 자욱한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오시리스는 목에서 흐음, 하는 소리를 내며 몸을 숙이고 날개 아래로 건너왔다.

"아무 말 하지 마." 오시리스가 계단에 발을 딛기도 전에 세인트가 조종석에서 몸을 내밀고 오시리스의 입을 막았다.

"새 우주선이 필요하겠어."

"아무 말 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꼭 그러지." 세인트가 투덜거리며 계단을 쾅쾅 내려갔다. "좋은 새다, 잘 날고. 그저 좀 되어서… 졸린 거지."

오시리스는 유압 장치를 손가락으로 쓸었다. "그건 그렇겠지." 오시리스가 빈정댔지만 세인트가 옆에서 도끼눈을 하고 그를 쏘아보았다. "예전에 홀리데이 양이—" 그가 멈칫하며 시선을 내렸다. "아, 그렇지…"

"나는 남의 손을 쉽게 믿지 않아." 세인트가 오시리스에게 다가가 손을 맞대고 깍지를 꼈다. "그리고… 그동안 선체를 정비할 시간이 없기도 했고." 그 손길에 오시리스가 몸을 기울여 세인트의 흉갑 위로 손을 올렸다. "하지만 때가 되면, 자발라의 부름에 응답할 준비를 해야지."

오시리스는 고개를 흔들며 세인트의 눈을 바라보았다. "우린 그 부름에 함께 응답할 거다. 다시는 나 없이 다른 차원으로 떠나도록 내버려두지 않겠어." 세인트의 가슴에 얹힌 그의 손이 꾹 주먹을 쥐었다. "다시는."

세인트는 반박하고 싶었지만, 이길 수 없는 싸움임을 알고 있었다. 대신 그는 그가 잡은 손을 입으로 가져가 오시리스의 손마디에 키스했다.

"다시는."

6.4. 주저 없음

"그는 내 아들과 같은 존재지."

카이아틀 여제의 기함, 엘리고스 렉스 V에는 격납고를 리모델링한 공용 공간이 있었다. 화려한 천 깃발이 늘어서 있고 엄숙한 침묵이 감도는 곳이었다. 이 공간의 중앙에는 황실 정원에서 가져온 작은 땅덩어리가 있었다. 토로바틀이 함락되던 날, 기갑단이 급히 떼어 가져온 고향의 일부였다. 땅에는 옹이투성이 나무 세 그루와 이끼가 키 큰 풀에 덮여 있었다.

"아함카라 작전을 개시하겠네."

자발라 사령관의 목소리가 통신을 통해 울려 퍼지자, 카이아틀 여제는 명상을 중단하고 이끼 사이에서 일어나 옹이투성이 나무 사이를 천천히 움직였다. 그녀는 이제는 산산조각난 세상의 파편이 조각된 바위 계단을 빠르게 내려갔다. 땅에서 튀어나온 뒤틀린 뿌리에는 백성들이 함께 탈출하지 못한 이들에게 적은 손편지가 한가득 묶여 있었다. 용서를 간청하는 글. 복수를 약속하는 글.

"여제." 발루스 포지의 목소리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는 거침없이 카이아틀의 엄니 의장대를 지나 격납고로 발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들었다." 카이아틀이 대답했다. "출발 신호에 맞추어 함선을 준비한다. 사령관이 승인하면, 그대가 발루스로서 우리 함선을 이끌고 틈으로 들어가거라."

살라딘 포지는 머뭇거렸다. 아래를 향한 그의 시선에서, 살라딘에게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생소한 나약함이 느껴졌다. 잠시 후 살라딘의 귀에 문이 쾅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불에 삼켜지는 졸더 경의 얼굴이 보였다. 카이아틀은 살라딘 옆에 멈춰 서서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어깨를 맞댔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곧 커다란 손으로 살라딘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내가 그를 또 떠나게 했다."

살라딘의 목소리에서 무게가 느껴졌다. 자발라 과거의 망령이 리바이어던의 악몽을 넘어, 이 순간까지도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하킴이 죽었을 때, 나는 그곳에 있지 않았다." 살라딘이 조용히 덧붙였다. 카이아틀은 그가 진실을 말하는 동안 그의 눈을 들여다보고, 그를 바라보았다.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죄책감은 자발라에게 피가 멎지 않는 상처 같은 것이지." 카이아틀이 말을 건넸다. "그가 죽는다면, 그의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그대에게는 죄책감이 아니라, 온 우주가 볼 수 있게 높이 들 전투의 깃발이 될 것이다."

살라딘은 카이아틀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시선을 마주했다. 그녀가 그를 보았다. "그런 날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군."

"안다."

6.5. 축의 틈

고고학자라면 이해할 겁니다. 땅에 묻힌 손도끼도 어쨌든, 손도끼죠.

오랫동안—61년 23일 또는 19일, 누구에게 묻느냐에 따라 약간 날짜가 달라집니다—, 아이코라와 저는 서로 대화를 하지 않았어요. 이제 다시 말을 하지만요. 하지만 앞으로도 그 기간에 대해서는 서로 언급하지 않을 것 같네요.

어쨌든 굳이 언급해 봤자, 별로 얻는 것도 없어요. 저는 먼지와 뼈에서 아이코라를 부활시켰고, 첫 빛이 내리쬐고 약 0.734초 후에는 아이코라가 어떤 사람인지, 제가 그녀에게 어떤 고스트인지 알게 되었죠.

우리는 비슷해요. 둘 다 나름대로 고집이 세죠. 저도 아이코라처럼 서먹한 상황을 깨고 싶었던 적이 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어요. 침묵을 시작한 건 아이코라가 먼저였으니, 아이코라가 끝내는 게 맞죠. 이미 다 끝난 후에 뭐가 잘못되었고 누가 언제 무슨 말을 해야 했는지 곱씹어서 뭐 하겠어요?

제가 과거의 잘못을 분석할 때는, 젊은 은신자와 새로운 빛들이 위험을 평가하고 생명이 걸린 결정을 신속하게 내리는 법을 처음 배우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사후 보고서를 작성할 때뿐입니다. 저와 아이코라는 이미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잘 알고 있어요. 우리 이해는 우정보다 깊으니까요.

그러니 이 상황도 마찬가지예요. 대화를 하지 않다가 대화를 했고, 말은 텄지만 예전 같지는 않죠. 우리는 오래된 관계지만 이런 점은 새롭기도 해요. 가운데에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구멍이 난 것 같은 관계죠.

아이코라도 이 점을 이해해요. 우리는 받아들이고 계속 나아갔고, 그걸로 충분해요. 저는 다른 고스트의 수호자가 부럽지도 않고, 다른 수호자의 고스트로도 맞지 않을 거라 느껴요. 언젠가는 지금까지 벌어진 거리보다 격차가 줄어들겠지만.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걱정하는 건 알지만, 저희 사이엔 갈등도, 분열의 조짐도 없어요. 우리 입장에서는 깊은 감정적 솔직함보다도 단합이 더 높은 가치일 뿐.

우리도 한때 친구였죠.

6.6. 정체성 수용

"당신의 친구…"

절단 레이저가 서리 낀 강철 위를 훑고 지나가자, 금속이 녹으며 불꽃이 튀었다. 주황색 빛이 타오르며 격벽 부분을 밀어낼 수 있을 때까지 타원형 경로를 따라 움직였다. 마침내 철판이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지자, 천장의 고드름들이 떨어지면서 실내 가득 눈이 내렸다.

미카-10은 아직도 열기가 남아 있는 개구부를 통과해, 틈 너머 얼음으로 뒤덮인 시설을 조사했다. 그곳에는 미로처럼 얽힌 통로와 잔해가 쌓여 막힌 복도, 붕괴 이전 시대에 만들어졌지만 아직까지 작동하는 기계들이 있었다.

유로파의 시설 내부로 한 시간쯤 들어가자, 미카의 고스트가 빛을 치직이며 어깨 너머로 불쑥 날아올랐다. "동력 도관이 이쪽을 지나 한곳으로 모여요." 그녀가 서리가 덮여 반짝이는 근처 문에 빛을 비추며 말했다. 

"고마워, 미하일로바." 미카는 자기가 가겠다는 뜻으로 제 헬멧을 툭툭 두드렸다. 그녀가 문에서 성에를 긁어내자, 표면에 새겨진 브레이테크 로고가 드러났다. 미카와 미하일로바는 초조한 표정을 나누었다. 곧 미카가 엄청난 힘으로 얼어붙은 문을 비틀어 열고 데이터센터 안으로 들어섰다. 

시스템에서 운용 데이터를 검색하려면 한참 걸리고, 손상된 파일과 복구 가능한 파일을 분류하려면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미카는 이곳을 복구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 보관된 자료를 스캔하고, 수천 개의 파일을 훑고, 제대로 된 색인도 없이 하나의 파일을 찾는 동안 미카와 미하일로바의 얼굴에도 점차 성에꽃이 피어났다. 건초 더미에서 바늘 찾기나 다름없었다. 그때…

미카가 부드럽게 헉하는 소리를 냈다. 검색이 끝난 모양이었다. 미카는 즉시 목뒤의 케이블을 잡아당겨 기록에 연결하고, 찾은 파일을 업로드했다. 그녀가 찾던 바로 그 파일이었다. 답이었다. 그녀의 답. 

=============== 
엑소 자아 프로젝트 

파일: [색인 번호 손상] 

나이: 17, 성별: 여, 키: 167cm, 몸무게: 54kg, 분류: A6 (거주자) 
================= 

미카는 파일 정보가 띄워진 깜박이는 화면 위에 손을 얹었다. 생의 부분적 기록, 과거의 파편… 그녀의 조각. 정체성의 조각. 자신의 조각. 미하일로바가 처음 자신을 깨웠을 때부터 그녀를 괴롭혀온 꿈에 대한 답. 허락은 개나 주라지.

"만나서 반가워…" 그녀는 속삭이며 다운로드를 시작했다. "미카 아브람."

6.7. 기억을 위하여

"제가 함께 있습니다. 좋든 싫든 말이죠."

타르지는 여행자를 둘러싸고 별들이 소용돌이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삐죽삐죽한 소나무가 하늘로 가득 뻗어 있었지만, 별은 너무 멀고 닿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적어도 닿을 수 없는 건 맞았다. 그는 한숨을 쉬었다. 숨을 쉬기 위함이 아니라, 제 수호자가 힘들 때마다 내쉬곤 하던 한숨을 따라 한 것이었다. 때로 사랑하는 사람의 습관은, 소나무 송진처럼 진득하게 들러붙는다. 나무에서 떨어져 예상치 못한 껍질에 묻고… 먼지까지 쌓이면, 그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깨끗이 닦아낼 수 없게 된다. 항상 끈적거리게 된다.

오두막 안에서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타르지는 다시 총에 대해 생각했다. 그 순간은 영원처럼 길게 이어졌다. 그는 자발라가 원하는 것을 주기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었다. 아이가 다시 살아날 수만 있다면, 자신은 수천 발의 총알을 맞더라도 기꺼이 최후를 맞이했을 것이었다.

"왜 안 되나요?" 타르지가 여행자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규칙은 당신이 정하잖아요. 전 그를 위해 여기 있고, 그를 위해 뭐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왜 힘이 없죠?"

언제나 그렇듯, 답은 없었다.

***

여러 번의 삶이 지났다. 타르지가 올려다본 하늘에는 별이 아닌 별들이 소용돌이치고 구름이 아닌 구름이 떠 있었다. 뭔가 빠진 게 있었다. 그는 이곳의 가짜 대기 위쪽 어딘가에 더 작은 여행자가 걸려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큭큭 웃을 뻔했다. 그 부분은 간과한 것 같았다.

그는 캠프파이어가 타닥이는 소리와, 침울하지만 희망 담긴 목소리가 그들의 승리와 아픔을 공유하는 소리를 들었다. 여행자 내부에도 진짜인 것이 있다면, 바로 그 목소리들, 즉 모닥불보다 훨씬 더 강렬한 열기를 발산하는 사랑의 유대감, 무한한 그리움, 치열한 충성심이리라.

그는 한숨을 쉬었다. 이곳에서도 나무에는 송진이 흘렀다.

6.8. 거짓 우상

"네 짐을 내게 맡겨라."

피라미드 함선의 실루엣이 새겨진 녹색 동전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이어서 플레이하세요." 아홉의 사절 목소리가 방랑자를 괴롭혔다. 예전 오린의 목소리였다. 헬름의 함교 옆에 서자, 우주선이 주행하는 소음이나 항해 프레임의 수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에게 들리는 것은 오로지—

"이마의 주름에서 고민이 드러나는데."

에리스가 창가로 다가와 방랑자 옆에 섰다.여행자 옆구리에 난 삼각형의 상처에서 쏟아져 나오는 자홍빛에 비해, 창문에 옅게 반사된 둘의 모습은 희끄무레했다.

"그래, 그렇겠지." 방랑자는 손등 위로 동전을 굴리며 투덜거렸다. "그런 본인 고민이야말로 숨기는 거 아닌가?" 그가 활짝 웃으며 슬쩍 걱정을 숨겼다.

"아니."

에리스가 손을 뻗어 방랑자의 손을 잡았다. 굳은살이 박인 손가락이 그의 손가락 마디를 스쳤다. 그는 잠시 긴장했다가, 그 손길에 긴장을 풀었다. 그녀는 가벼운 호기심으로 그의 손바닥에 있던 동전을 빠르게 집었다. 동전이 없으니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답이 아닌 모호한 대꾸는 미래로 가져갈 만큼 유용한 토템은 아니지." 그녀가 동전을 주머니에 넣으며 단언했다.

방랑자가 눈썹을 찌푸렸다. "그럼 뭐 더 좋은 게 있어?"

에리스는 창에 반사된 그의 표정을 바라보았다. "그럼. 달빛 한 줄기면 충분하잖아."

7. 목적지 방어구

7.1. 머리

어떤 사람이 될지 선택하세요.

빛은 잊는다, 어둠은 기억한다.

언젠가 그렇게 말하는 고스트가 있었다.

이 몸은 루자쿠다. 하늘에 대한 사실을 알려주러 왔지.

하늘은 행위 사이에 들이키는 숨이다. 추측을 허용한다.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시야와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면서도, 집요하게 계속된다.

이 몸의 고스트는 우리가 확실성에 굴복하기를 바란다. 우리가 칼날의 길을 걷고, 마녀 여왕이 버린 논리에서 군체의 힘을 찾고, 모든 것이 살육으로 증명되기를 바라지.

이 몸은 단순한 필연성을 벗어난다. 이 몸은 선택한다. 죽이지도, 죽지도 않지. 하지만 이 몸은 존재한다. 아이앗. 다음은 무엇인가? 어떤 생각을 해야 하는가?

이 몸은 알아야겠다.

이 몸은 마녀 여왕의 거대한 적의 칼날 우주선 안에 숨어 있다. 이 몸의 고스트는 화가 나 있지만, 여전히 함께한다. 한때 벌레가 똬리를 틀고 있던 구멍에서, 이 몸은 창공을 통해 중심을 향하는 우리의 빠른 움직임을 감지한다.

이 몸은 하늘을 찾는다. 하늘에는 많은 길이 있다.

하늘에는 변화가 있다.

7.2.

꽉 잡으세요.

빛은 잊는다, 어둠은 기억한다.

카이아틀은 여행자 안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했다. 붉은 군단 탈주자들로부터, 그것이 뼈를 씹어 삼키는 전쟁야수처럼 가울을 삼켰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아직도 뱃속에 있을걸." 전쟁 의회의 어느 발루스가 무심하게 뱉었다. 살라딘 포지가 콧구멍으로 시끄러운 숨소리를 냈다. 카이아틀은 이를 웃음소리로 해석했다.

그것이 벌써 며칠 전 일이었다. 이제 그녀는 기함의 함교에 서서, 가울의 남은 흔적이 무엇인지와, 자신의 검은 눈동자와 엄니에 차고 있는 장식용 보석에 반사되는 여행자의 빛을 궁금해하고 있었다. 그녀는 가울이 그랬을 것과는 달리 그 빛의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심지어 살라딘처럼 조용한 경외심도 들지 않았다. 여행자는 정복하거나 숭배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그저 카이아틀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존재였다—중요한 건 그뿐이었다.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지만 그녀는 돌아보지 않았다. 이미 누구의 발소리인지 알고 있었다.

"나는 조언을 해 달라고 한 적이 없는데." 카이아틀이 말했으나, 그 목소리에 질책은 담겨있지 않았다. "그래도 할 말이 있으면 해 보아라."

"내가 항상 지혜를 주어야 하나?" 살라딘이 물었다. "그냥 평온한 침묵 속에서 함께 종말을 기다리면 안 되나?"

"그대의 가치는 그 지혜다. 그것이 내가 그대를 살려둔 유일한 이유지."

살라딘이 또 시끄러운 숨소리를 냈다. 그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카이아틀도 알고 있었다.

7.3. 가슴

아, 황금기의 탐정 소설을… 한 번만 더 읽을 수 있다면.

빛은 잊는다, 어둠은 기억한다.

아이코라가 탑의 낯선 곳을 살피며 삐걱거리는 복도를 지나가자, 바람이 몰아치며 먼지가 주변으로 날아들었다. 옛 사무실을 찾아보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어디까지 재현이 되어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계단 위로 한 걸음 내딛는 순간 그녀의 발에 무언가가 걸렸다. 작지만 익숙한 직사각형 모양의 무언가였다. 그녀는 책을 집어 들고 부드럽게 표지의 먼지를 털어냈다. '수사관 세도나 케인의 등골이 오싹한 모험'이라는 책이었다. 종이 표지에는 시리즈 네 번째 작품이라고 적혀 있었고, "페니워스 박사의 기이한 사건"이라는 부제도 붙어 있었다.

빛은 잊는다, 어둠은 기억한다.

어둠. 이렇게 강력한 빛이 있는 곳에서, 정말 이 모든 것을… 불러낼 수 있단 말인가? 그녀는 책을 집어 들고 촤르륵 훑었다. 심지어는 95페이지의 커피 얼룩까지 그대로 남아있었다.

책의 낡은 표지에 남은 대담한 색과 굵은 선을 훑어보는 동안, 아이코라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유독 형편없이 시련의 장에서 패배한 어느 날 밤 침대에 앉아 벽만 툭툭 발로 차고 있던 기억… 오퓨커스의 불빛이 적당히 비춰오던 기억… 식당에서 엎질러진 음료를 닦으며 책이 크게 상하지 않았기를 기도하던 기억. 그리고 무엇보다도, 벌써 몇천 번째 큰 소리로 글을 읽는 그녀의 손을 따뜻하게 감싸주던 손의 기억…

워록은 책을 코에 갖다 댔다. 다시 한번 냄새를 맡고 싶었다.

빛은 잊고 어둠은 기억한다.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7.4. 다리

신의 몸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신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빛은 잊는다, 어둠은 기억한다.

미스락스는 헬름의 선미에 서 자발라의 우주선이 차원문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끔찍한 차원문은 약동하며 흔들렸다. 헬름이 그쪽을 곧바로 향하고 있었지만 그는 결심을 굳혔다.

거대한 기계 안으로 들어간다는 생각은 태생적으로 반감이 들었다. 동족 포식 행위처럼 금기의 냄새가 났고, 예배당을 더럽히는 것만큼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신의 몸에 들어가다니, 의심할 여지 없이 신을 더럽히는 일이었다. 멀리서 도움을 주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분명 있을 것이었다.

"아버지, 여왕의 부름이 있었습니다."

아이도가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둘은 거대한 기계를 바라보았다. 기계는 창문 전체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차원문의 보랏빛 진동으로 여기저기 구멍이 뚫린 모든 빛의 중심 앞에서, 미스락스는 딸과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깨달았다.

"아버지 없이는 내려가지 않겠습니다." 아이도가 말했다.

미스락스는 떨림을 억누르며 고백했다. "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죄악처럼 느껴진다."

"그 규칙은 누가 만들었나요?" 아이도가 반박했다. 명민하고 현명한 딸. 미스락스가 대답하지 못하자 그녀가 말을 이었다. "여행자가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걱정된다면 내부로 들어가서 보호할 수밖에요. 전 아버지께 아직 투지가 있는 걸 알고 있어요."

"상황만 더 나빠지지 않겠나? 빛의 중심에서 전쟁을 벌인다면."

"그건 아버지가 결정하실 일이죠. 하지만 여행자는 아버지가 차원문으로 들어오길 바랄 것 같습니다."

"왜?"

딸이 아버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아버지가 자신을 해치지 않을 걸 알고 있으니까요."

7.5. 직업

아무도 한 적 없는 일을 한다는 것만큼 절묘한 것은 없습니다.

빛은 잊는다, 어둠은 기억한다.

마라 소프는 이를 악물고 헬름이 흔들리지 않게 유지하면서, 안간힘을 써 열린 차원문을 붙잡고 수호자, 아이코라, 자발라 사령관이 통과할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을 벌었다.

마라는 옆에 있는 화면으로 시선을 돌려, 수호자가 창백한 심장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을 실시간으로 지켜보았다.

그리고 곧… 최초가 되는 기분이 기억났다.

끝없는 공허함, 양성자 불꽃, 등에 닿던 차가운 바위, 영원히 위로 쏠리는 느낌이 기억났다. 마라는 백금맥이 드러난 빙퇴석류, 균사체가 퍼져나간 숲, 수정처럼 맑은 호수를 품은 고산 안장, 모든 생명이 평등하고 무의미하면서도 의미 있던, 그 새롭고도 오래된 세상을 기억했다. 그녀는 그 기억, 그 장소를 자신의 상상력의 솥에서 깨워 물질로 만들어낸 기억을 떠올렸다. 그 이름에 입술이 말려들었다. 지류.

다시는 그 세상을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녀의 눈앞 거친 화면 속에는 그곳의 도플갱어 같은 곳이 있었다. 고향이라 할 수는 없었지만, 거의 가까웠다.

영상 피드가 툭 꺼졌다.

보랏빛 굉음이 헬름을 빠르게 지나쳐 지나갔다. 갑작스러운 정적과 함께 차원문에서 우주선이 튀어 나왔다. 차원문이 닫히지 않은 걸 보아—목격자가 놓아준 것이 틀림없었다.

마라는 숨을 멈췄다. 손이 떨렸다. 통신에도, 신호에도 까마귀의 흔적은 없었다. 심장을 끌어당기는 느낌 외에 그가 살아있다는 증거는 없었다. 그녀는 여행자와 그 안에 있는 창백한 심장을 바라보았다.

마라 소프는 다시 고향을 떠올렸다.

8. 최초의 칼

"우리는 최초의 칼이다."

"목격자를 처음 마주했을 때, '우리는 최초의 칼이다'라고 내게 선포하는 것을 들었다."

마라의 목소리는 그녀의 희망만큼이나 가늘었다. 그녀는 헬름의 비상 조명 아래서 콘솔로 몸을 굽힌 채, 그래프의 빨간 선이 상승하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 선의 필연적인 상승선이 그녀의 기억을 건드렸다. 곧 목격자를 따라 여행자 안으로 향해야 했다.

"마치 그 칭호가 힘을, 의미를 쥐고 있는 것 같았지." 그래프가 다시 올라가자 마라가 입을 열었다. 그녀는 콘솔에서 시선을 뗐다. 마라는 고개를 돌려 차원문을 뚫어져라 응시하는 아이코라를 바라보았다. 차원문에서는 같은 에너지의 솟구침이 느껴졌다.

아이코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긴 마라를 바라보았다. "우리가 달에서 발굴해서 에리스가 번역한 외전에도 칼에 대한 개념이 언급되어 있다네."

마라가 아이코라 옆으로 다가왔다. "밝혀진 글이 사실과 허구가 뒤섞인 프로파간다라고 간주하더라도, 그 우화 뒤에는 진실 또한 숨어있네." 마라는 글과 에리스의 번역을 떠올리며 그 말에 동의했다. "칼은 어떤 개념의 은유라고 볼 수 있지. 바로 힘일세. 형체를 일정한 모양으로 자르고 키질할 수 있는 힘이겠지."

"살아있는 존재를 굴복자로 만들 수 있는 힘일세." 아이코라가 고개를 돌려, 각성자 여왕의 눈을 바라본다. " 오릭스가 휘둘렀던 힘이지." 아이코라가 마지막 말을 강조해 요점을 전달했다. 마라는 그 뜻을 알아들었다.

"칼이 명목적 개념인지, 힘인지가 궁금하겠군." 마라가 아이코라의 굳은 표정을 해석했다. "오릭스가 목격자의 힘을 칼처럼 휘둘렀다는 건가?"

아이코라는 다시 차원문으로 시선을 옮겼다. "목격자는 모든 것을 조작하네. 진실을 왜곡해 탄원자들의 의지를 꺾지. 목격자는 우리에게 들려주는 환상의 우화 속에서 자신을 거대한 우주의 힘으로 묘사하네. 하지만 그건 단지 진실이 드리운 그림자일 뿐일지도 몰라."

마라는 조금 평온해진 아이코라를 바라보았다. 이 생각으로 미래로 인한 불안감이 좀 누그러진 모양이었다. 대화는 결과적으로 마라의 불안감도 누그러뜨렸다. 비록 동생이 멀고 희미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그 순간은 잠시 생각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칼은 타인의 손으로 휘둘러야 하는 도구잖나." 마라가 말했다.

"목격자의 주장대로 그가 칼이라면, 그 칼을 휘두르는 것은 누구입니까." 아이코라는 여행자를 향해 중얼거렸지만, 여행자는 대답이 없었다.

그 질문은 마라의 귀에도 들렸다. "목격자는 존재가 아니다." 그녀가 동의한다. "창조자의 허무주의적 욕망이 만들어 낸 음울한 에토스의 정점일 뿐이지. 그들의 의지는 칼을 든 손인가? 아니면 그것 말고도 무언가 있나?"

아이코라의 생각이 계시의 구석에서 미끄러지자, 그녀는 더 급박한 걱정과 의심 속에 빠져버린다. 아이코라가 불안으로 추락하자, 마라 역시 같은 벼랑에서 떨어지듯 함께 걱정 속으로 빠진다.

"나도 모르겠군."

9. 진주층

가장 완벽한 진주라고 해도 속에는 투지를 품고 있습니다.

얘기 좀 할까? 책에 대해 한 번 더 대화할 자리를 가져보자고.

이 모든 일을 겪은 후에, 다시는 내 소식을 듣지 않을 줄 알았나? 내가 그리웠을 텐데—나도 당연히 너희가 그리웠고.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없애기 그리 쉽지 않으니까. 자, 이제 보여주지. 내 사랑을.

오, 아니, 내 퇴적암 네크로라이트는 말고. 그건 봤지 않나. 머나멀고 아득한 우주의 충만함과 공허함을 한번에 느낄 수 있는 기적에 대해 말하는 거다.

내가 이렇게 말할 줄 몰랐나?

그래, 나는 규칙 변경에 크게 신경 쓴 적은 없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엎질러진 방산충이라고 울어봤자 소용이 없겠지. 게다가 이 모든 일의 중심에는 선물이 있었다. 나에게의 선물.

그 선물은 바로 너희들과 대화할 수 있는 기회다. 너, 그리고 너와 같은 몇십억 인간들에게.

나는 제일 작은 세포부터 가장 대단한 문명에 이르기까지, 이 제안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다. 나를 들여보내다오. 필요한 것을 가져가도록 해라. 안심해라. 텔로미어의 퇴화는 어쩔 수 없겠지만, 그전까지는 온 세상이 너희의 껍질일 테니.

너희는 다른 모든 이들보다 더 적합했기 때문에 존재한다. 필요한 것은 직접 만드느라 시간을 들이지 않고 다른 이들에게 훔쳐라. 어리석은 규칙 따윈 무시해라—규칙을 좋아할 이유가 뭔가? 규칙은 네가 선을 넘는 걸 돕는다. 누군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규칙이 필요하다면, 그런 놈은 존재할 가치가 없다.

악당 그림은 유행이 지났다고 들었지. 그래, 농담 따먹기나 하려는 게 아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다. 너희를 먼지 더미에서 일으켜 세운 것은, 직립 보행하는 재주가 아니라 불을 다루는 솜씨, 차가운 시체 고기를 요리하는 기술이었다. 이것은 어느 특정 세력의 진영도, 선과 악의 영역도 아니다. 그저 진실일 뿐.

위대하고 아름다운 우주. 꽃 사이에서 촛불이 타올라도, 항상 부패하며 옛날의 그 사랑스러운 패턴을 찾아내지. 전자는 몇십억 개가 되든 저항이 가장 적은 길을 택한다. 어둠에서든 빛에서든, 항상 누군가는 내 결정을 대신 내린다.

또 만나지.

10. 통일된 이론

"다시 말할게. 이건 여기에 넣고, 저건 저기에 조립하라고!"

탑에 스레셔가 도착하면 항상 격납고가 윙윙 울렸다. 오늘은 평소보다 더 시끄러웠다. 

엘릭스니 기술자 니이크는 아나 브레이와 로봇 강아지 아치와 함께 검은색과 노란색의 바닥선 너머에 선 채 함선 도착을 기다렸다. 니이크는 무릎을 꿇고 아치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스레셔가 도킹 기동을 마치고 화물칸의 화물 출입구를 열자, 심하게 상하고 그을린 선체의 파편이 모습을 드러냈다. 피라미드 함대에서 내보냈던 드론 중 하나였다. 

"흐음." 아나가 니이크 쪽을 몸을 기울였다. "그, 음… 이름이 뭐더라, 그녀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어?" 

"잔라." 니이크가 천천히 눈을 깜빡이며 대답했다. "저도 잔라에 대해선 잘 모릅니다. 카이아틀 여제의 추천으로 왔다는 것과, '가문이 의심스럽다'는 것 외에는요." 

아나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무기거래상 말이야?" 하지만 니이크가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피라미드 파편이 화물칸 밖으로 튀어 나왔다. 경사로를 따라 굴러 내려오면서 파편의 그을린 조각들이 부서져 흩어졌다. 파편은 아나와 니이크 근처까지 와서야 멈췄다. 곧이어 스레셔에서 나온 기갑단은, 납작한 원반 모양으로 다듬어 금 문양을 새긴 엄니를 하고 있었다. 많은 카이아틀의 수행단이 그렇듯 그녀도 압력복을 입는 대신 지구 대기권에서 안전하게 생존하기 위해 압력 적응 훈련을 받는 것을 택했다. 

잔라는 몸을 굽혀 주워 올린 피라미드 파편을 여유롭게 어깨에 턱 걸치고서, 니이크와 아나 앞으로 다가왔다.

"당신들이 기술자인가?" 그녀가 둘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 셈이지." 아나가 대답했다. "난 아나 브레이야. 이쪽은 빛의 가문의 니이크." 

잔라는 어깨에 걸치고 있는 파편을 고쳐 메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귀여운 고양이군." 고개를 갸웃 기울이고 있는 아치를 본 잔라가 덧붙였다.

"개입니다." 니이크가 눈빛으로 아나의 확인을 구하며 잔라의 말을 고쳐주었다.

"개." 잔라가 따라 했다. "개도 기술자인가?" 엄니 사이로 질문을 뱉자마자, 괜히 물어봤다는 듯 잔라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치는 것이 보였다.

"음, 아니야." 아나가 아치를 내려다보며 대답했다.

잔라는 어깨를 으쓱하며 괜찮은 척 당혹감을 감추고, 두 사람을 지나치며 따라오라는 손짓을 보냈다. "어서, 이걸 분해해서 재조립해 보지."

니이크와 아나는 눈빛을 교환했다. 아나가 떨떠름한 미소를 지으며 잔라의 뒤를 따랐다. "뭘 만들 생각인데?" 그녀가 물었다.

"글쎄." 잔라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불확실하게 대답했다. "큰 총 같은 것?"

니이크가 한 손을 들며 서둘러 둘의 뒤를 따랐다. 아치도 쫄랑쫄랑 따라왔다. "우리 서비터를 데려올게요." 니이크가 제안했다. "괜찮은 생각이 있습니다. 홀리데이였다면 아주 좋아했을 아이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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