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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4 18:43:44

데스티니 가디언즈/지식/강철 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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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기
1.1. 낡은 첨탑1.2. 멀티마하 CCX1.3. 리이스유랑자1.4. 선행 보증1.5. 대장간의 맹세1.6. 면도날
2. 방어구
2.1. 추억의 망토2.2. 추억의 표식2.3. 추억의 완장
3. 15 시즌 방어구
3.1. 머리3.2. 팔3.3. 가슴3.4. 다리3.5. 직업

1. 무기

1.1. 낡은 첨탑

실리마와 어떤 역경이 닥쳐도 굴하지 않는 끈기를 기리기 위해 제작되었습니다.

차가운 바람이 살라딘 경의 망토를 휘날렸다. 그는 계단 아래로 내려와 장벽의 옆쪽에 마련된 작은 마당으로 들어섰다. 아치형 창문으로 최후의 도시의 주황색 불빛이 쏟아져 들어와, 잎이 무성한 양치식물과 장식 기둥, 말라 버린 분수를 뒤덮었다. 자발라 사령관은 벽에 붙여 놓은 작은 금속 탁자에 앉아 있었다. 살라딘은 한때 제자였던 사령관에게 다가갔다.

"자네 사무실이 더 편하지 않았을까?" 강철 군주가 물었다.

자발라는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전투의 종류에 따라 전장 또한 달라져야지."

살라딘은 탁자 앞 의자에 앉았다. "고즈넉하군."

자발라는 품에 있던 직물 담요를 옛 스승에게 건넸다.

"늑대는 자기 털가죽만으로 사는 법." 살라딘이 말했다.

자발라는 웃으며 담요를 자기 의자 밑에 넣고는 앞쪽에 놓인 옷칠한 나무판으로 주의를 돌렸다. 그 표면에 아로새긴 선들이 격자무늬를 형성하고, 판 옆에는 검은색과 흰색의 동글납작한 돌들이 쌓여 있었다. "한 판 하겠나?"

살라딘은 돌을 들어 판에 놓았다. 자발라도 자기 수를 놓았고, 게임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아무 말 없이 계속해서 돌을 놓고 거뒀다. 판이 돌에 뒤덮이고, 살라딘은 잠시 다음 수를 고민하며 다양한 선택지를 체계적으로 살폈다. 하지만 한참이 지난 후, 그는 마지못해 끙 소리와 함께 패배를 선언했다.

"이런 상황에 날 부르다니, 솔직히 놀랐어." 살라딘이 입을 열어 침묵을 깨뜨렸다.

자발라는 대답하기 전에 잠시 주저하며 돌을 만지작거렸다. "카이아틀에 대한 그대의 비난은 솔직히 부담스러웠네."

"강철 군주가 입 닥치고 있을 거라 기대했나?" 살라딘이 물었다.

자발라는 한숨을 쉬었다. "옛 친구가 내 지위를 존중해 주기를 바랐지."

"지위는 도구일 뿐," 살라딘은 말했다. "그걸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따라 존중할지 말지가 결정되지."

자발라는 웃었다. "그러면 내 지위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겠나?"

"카이아틀과 정면 승부를 벌이고 베어 버려야지." 살라딘이 말했다. "결정적인 행동을 해야만, 결정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다."

"기갑단과 또 한번 전면전을 벌이자는 건가? 검은 만으로 그들을 쫓아가라고?" 자발라가 물었다. "그대의 이 성전에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을 것 같나? 그리고 그대는 무엇을 남길 것 같아?"

살라딘은 냉소적으로 키들키들 웃었다. "지금도 어려운 선택을 피할 핑계만 찾고 있군. 모든 승리에는 희생이 필요하다."

"그대라면 그런 희생을 작위처럼 받아들이겠지. 하지만 난 그게 무엇인지 알고 있네." 자발라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건 내 실패의 결과물이야."

"안락한 사령부에 앉아 멋대로 재단하기는 쉽겠지." 거친 목소리와 함께 살라딘의 태도도 거칠어졌다. "하지만 조만간 자네도 쉬운 퇴로가 없는 지점에 떨어질 거야. 승리의 희망은 보이지 않고, 재치 있게 탈출할 길도 보이지 않는 곳. 오직 재앙만 남은 그곳에서 누가 대가를 치를지 결정해야 하겠지."

"전쟁에서 계산해야 하는 건 사체의 개수만이 아니야." 자발라는 근엄하게 말했다.

살라딘은 최후의 도시의 희미한 빛을 바라봤다. "그럴지도 몰라. 하지만 늘 선택지가 있는 건 아니야. 때로는 교환 조건이 다른 누군가에 의해 결정되기도 하지. 때로는 친구들이 불타는 동안 문 반대편에서 발만 동동 굴러야 할 때도 있다고."

자발라는 강철 군주의 얼굴에 깊게 팬 주름에서 고통을 보았다. "나도 사람들을 잃었네."

"생각만큼 많이 잃은 건 아니지." 살라딘이 대답했다.

자발라는 한숨을 쉬고 팔을 등 뒤로 내렸다. "실망시켜서 미안하군."

살라딘은 고개를 가로젓고는 의자에서 일어섰다. "자네는 내 모든 기대를 뛰어넘었네, 자발라. 하지만 아직 우리에게 필요한 잠재력을 모두 발휘하지 않고 있어."

자발라도 일어섰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난 여전히 그대 사령관이네. 그러니 그대가 복종해 주길 바라네."

살라딘은 능글맞게 웃었다. "옛 친구여, 자네는 늑대를 길들이려 할 만큼 바보는 아니잖나."

자발라는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서 강철 군주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살라딘은 한숨을 쉬었다. "우리 둘 다 카이아틀의 요구에 저항하고 있잖아. 그거면 충분하겠지." 그는 돌아서 떠나려 했지만, 사령관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의무에 얽매이지 않은 곳에서 만나니 역시 기분이 좋군." 자발라가 말했다. 살라딘은 고개를 끄덕인 후 그대로 멀어져 갔다.

자발라는 다시 탁자 앞에 앉아서, 강철 군주의 발소리가 사라져 가는 것을 느끼며 게임 결과를 되짚었다.

1.2. 멀티마하 CCX

친구란 함께 여행하며 생존율을 높여주는 동료입니다.

살라딘 경은 작은 탁자에 앉아 행성계 전역에서 기갑단의 병력 이동을 보여주는 홀로그램 화면을 주시했다. 그는 숙소 구석에 쭈그려 앉아 있었다. 한때 널찍했던 그곳은 오랫동안 고대 무기와 트로피, 낡은 전술 보고서, 먼지 쌓인 장비 개조 부품이 선반에 쌓이면서 어느새 잔뜩 쪼그라들어 있었다. 노인들이 보통 그렇듯, 그는 그런 낡은 물품도 언젠가는 쓸모가 있을 거라고 자신에게 타일렀지만, 그런 잡동사니의 진짜 의미가 어느새 흐려져 가는 향수라는 사실을 마음 깊은 곳에서 느끼고 있었다.

누군가 문을 똑똑 두드려 그를 깨웠다. 그는 보조 무기에 손을 얹으며 문의 구멍으로 밖을 내다봤다. 아이코라가 갈색 종이 가방을 들고 있었다. 강철 군주는 콧방귀를 뀌고는 문을 열었다.

"배고프실 것 같아서요." 아이코라가 가방을 내밀었다. "태국 음식 괜찮으신가요?"

살라딘 경은 그녀를 안으로 들였다. "나한텐 다 똑같아."

워록은 방으로 냉큼 들어와 음식을 놓을 자리를 치우기 시작했다. 아이코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살라딘은 그녀가 자기 거주지의 현재 상태를 보고 걱정스러워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눈은 흰곰팡이가 핀 방구석에 한참을 머물렀다. 코는 방어구에 덧댄 털가죽에서 풍기는 시큼한 냄새 때문에 벌름거렸다. 손가락이 두껍게 쌓인 먼지에 긴 줄을 남겼다.

그녀는 먹음직스러운 국수가 들어 있는 대나무 그릇을 그에게 건넸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살라딘 경?" 그녀가 솔직하게 걱정스러운 마음을 내비치며 고개를 갸웃했다.

"카이아틀을 이 행성계에서 쫓아버리고 나면 좋아질 것 같다." 어떤 무기라도 1분 안에 분해할 수 있는 강철 군주가 일회용 젓가락을 손에 들자 갑자기 모든 게 서툴러졌다. 그의 거칠고 거대한 손에 들린 섬세한 식기가 파르르 떨렸다.

"자발라에게 들었는데, 카이아틀을 퇴각시킬 수 있다고 확신하신다면서요." 앉을 자리가 없어서, 아이코라는 그릇을 손에 들고 우아하게 탁자에 기대섰다.

"자발라의 낙천주의는 카이아틀의 군대만큼이나 위험해." 그는 도끼눈을 뜨고 말했다. "하지만 평화 협상이 실패한 다음에, 힘으로 몰아내면 돼. 우린 언제나 그러니까." 살라딘은 눈살을 찌푸리며 젓가락을 던져 버리고는 그릇을 입에 대고 요란하게 국수를 들이켰다.

"물론 그렇겠죠. 그다음에는요? 어떻게 하실 건가요?" 아이코라가 상냥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휴가라도 가실 건가요?"

살라딘은 전술 홀로그램을 향해 손짓했다. "기갑단을 처리하고 나면 다음 적을 공격해야지. 벡스, 군체, 굴복자, 몰락자, 그런 녀석들. 적은 얼마든지 있다." 그는 비난하듯 아이코라를 바라봤다. "자네는 마지막으로 휴가를 갔던 게 언제인데?"

아이코라는 한쪽 눈썹을 추켜세웠다. "할 말 없군요. 하지만 당신은 저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싸워 왔으니까요."

"그건 그렇지." 살라딘의 대꾸는 의도한 것보다 거칠게 튀어나왔다. 그는 다시 입을 열기 전에 잠시 기다렸다. "난 전장에서 더 행복하다. 싸워야 기운이 나고 제대로 소통할 수 있어. 여기 탑에 갇혀 망할 보고서나 들여다보고, 정치 놀음에 시달리는 게 제일 피곤한 일이야."

"우리가 승리하면 어떻게 하실 건데요?" 아이코라가 다시 물었다. "우리가 내일 검은 함대를 무찌르고, 더 싸울 일도 없다면, 그때는 뭘 하실 거예요?"

살라딘은 워록의 말이 말도 안 된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뭐, 정히 그렇다면… 휴가라도 가야겠지."

두 명의 전사는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다가, 이윽고 키들키들 안도의 웃음을 터뜨렸다.

잠깐이나마 분위기가 풀어지자 강철 군주의 태도도 누그러졌다. "걱정 마라, 아이코라. 난 괜찮으니까."

워록은 눈썹을 잔뜩 추켜세우고 엉망진창인 방을 둘러봤다.

살라딘은 아이코라의 뚫어질 듯한 시선에 잠시 저항했지만, 곧 과장된 한숨을 내쉬며 항복했다. "꼭 그래야만 자네가 마음을 놓을 거라면 어쩔 수 없겠지." 그는 투덜거리며 말했다. "내일 열성적인 새로운 빛을 몇 명 불러서 청소라도 하마."

"그래 주시면 감사하겠어요." 아이코라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이마를 찌푸렸다. "아시다시피 지금은 자발라도 너무 지쳤고, 헌터 선봉대도 공석인 상황이라, 우리가 정말 싸울 준비가 된 건지 모르겠어요.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시잖아요.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강철 군주들이 필요해요."

살라딘의 눈이 전술 화면으로 돌아갔다. "알고 있다, 새끼 여우야. 자네들에게 필요하다면, 난 언제까지라도 여기 있을 거야."

1.3. 리이스유랑자

"아니, 몰락자가 깃발에서 싸우게 허용하지는 않을 거다. 그건 수호자들만의 몫이니까. 하지만 네 결심이 그렇게 굳건하다면, 몰락자가 벼려낸 무기를 수호자가 들고 들어갈 수 있게는 해주지. 너도 무기제작자 아닌가?" —살라딘 경이 미지의 엘릭스니에게

날아온 병에 머리를 맞은 엘릭스니가 비틀거리며 붐비는 거리 바깥쪽으로 물러났다. 깨진 유리 조각이 지면에서 반짝였다. 반원을 그리며 그의 주위에 몰려든 사람들이 욕설과 비난을 퍼붓고, 이마의 깊게 베인 상처에서 짙은 파란색 피를 흘렸다. 리드미컬한 베이스 비트가 쿵쿵 울려 퍼지는 네온 불빛의 클럽과 붉은 전쟁이 남긴 잔해 사이에 끼어, 그가 달아날 곳은 없었다.

"제발, 해치지 마십시오. 브리이크시스는 친구입니다!" 그는 그렇게 울부짖으며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나머지 손은 성난 군중을 막으려는 듯 앞으로 내밀었다. "실종된 형제를 찾고 있습니다. 제발!"

사람들은 신경도 쓰지 않고 점점 더 거칠게 윽박질렀다. 그들 중 대부분은 젊고 경험이 일천하여 뜻을 이해하지도 못한 채 락슈미-2의 말을 그대로 외쳐댔다. 브리이크시스는 한꺼번에 쏟아지는 낯선 언어를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했지만, 거기 담긴 폭력의 어조는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 그는 공포심을 온몸으로 표출했다. 하지만 두 눈에 담긴 두려움에는 또 다른 의미가 담겨 있었다. 형제에게 어떤 일이 있었을지 상상하기도 싫었다. 가슴속에 증오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군중들 사이에서 주조소 직원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위협적으로 산탄총에 탄약을 채우고는 떨리는 손으로 엘릭스니를 조준했다. "그 주둥이로 가족 얘기를 하겠다는 거냐?!" 그 인간이 외쳤다. 브리이크시스는 그가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네놈들이 내 누이를 납치했다! 그 아이는 지구에서 타이탄으로 보급품을 이송하고 있었을 뿐인데. 너희가 습격했다고!"

"브리크시스는 그런 일을—" 산탄총의 폭발음이 그의 말을 자르고, 옆쪽 지면에서 가루가 튀어 올랐다. 브리이크시스는 다리에 힘이 풀려 무릎을 꿇고 부들부들 떨었다. "제발." 그는 말했다. 그리고 자기 몸을 지키려고 앞서 머리에 맞아 깨진 유리병을 집어 들었다.

군중은 분노 가득한 고함을 내질렀다.

주조소 직원이 브리이크시스를 향해 다가서며 탄약을 한 발 더 산탄총에 장전했다. 갑자기 찬 바람이 불며 안개가 주위를 채웠다. 산탄총의 불꽃이 얼어붙고, 유리처럼 산산이 깨져, 검푸른 시공의 조각으로 흩어졌다. 직원은 흠칫 놀라며 반쯤 얼어붙은 팔을 붙들고 비명을 질렀다.

브리이크시스는 공격자 뒤쪽에서 사람들이 양쪽으로 갈라서는 모습을 보았다. 검은색과 황금색 방어구에 환하게 빛나는 기호가 새겨진 헌터가 둘을 향해 다가왔다. 그녀의 손에 어둠이 응집하고 있었다. 시공 수정이 작은 달들처럼 그녀 주위를 맴돌았다.

"그만둬!" 아이샤가 외쳤다. "다들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이게 무슨 짓이야!"

아이샤는 빈손으로 부상당한 주조소 직원의 멱살을 잡아 일으켜 세우고는 군중을 향해 떠밀었다. "당장 여기서 떠나지 않으면 내가 떠나게 만들어 주겠어! 어서 꺼져!" 아이샤의 발치에서 바람이 소용돌이치고, 수정의 파편이 어둠의 실처럼 휘돌았다. 군중은 거친 파도처럼 물러났다. 다급히 달아나느라 서로의 발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군중이 사라지자, 아이샤는 시공의 낫을 없앴다. 발치에 소용돌이치던 바람도 잦아들었다. 그녀는 돌아서서 브리이크시스를 바라보며 손을 내밀었다. "미안해." 그녀는 조금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헬멧의 면갑에 가려진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브리이크시스는 그 손을 잡지 않았다. 그의 눈에 담긴 두려움은 그대로였다. 증오 또한 그대로였다.

"괜찮아." 아이샤는 천천히 말하며 다시 손을 내밀었다. "이젠 안전해. 그 사람들은—"

"안전하지 않습니다." 브리이크시스가 아이샤를 향해 말을 뱉었다. 그의 시선은 그녀의 손으로 떨어졌다가 다시 헬멧으로 향했다. "당신은 에라미스와 똑같습니다. 정신이 중독됐습니다."

아이샤의 숨결이 목구멍 뒤에서 걸렸다. 그녀는 천천히 내밀었던 손을 거두고, 장갑 낀 손으로 잠시 주먹을 쥐었다. "다쳤잖아. 내가 병원에라도 데려다 줄게…" 그녀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브리이크시스는 푸른 눈을 그녀에게 고정한 채, 어느새 길 반대쪽으로 가고 있었다.

그녀는 묵직한 무게가 어깨와 가슴을 짓누르는 걸 느꼈다.

엘릭스니는 그림자 속으로 사라지고, 끝없는 밤의 하늘 아래에 아이샤 홀로 남았다.

1.4. 선행 보증

"나도 이 휴전 협정의 조항을 존중할 수 있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다. 강철 군주가 이 협정을 집행해야 한다." —살라딘 경

벽에 걸린 아날로그 타이머가 재깍거리면서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알렸다.

압력 게이지가 100퍼센트에 도달하고, 타이머에서 마지막으로 딸깍 소리가 울린 후, 격납고에서 육중한 소음과 함께 에어로크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살라딘 경은 헬멧을 팔 아래에 끼고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섰다. 줄지어 벽을 뒤덮은 파란색과 하얀색 기치가 그를 환영했다. 모두 카이아틀의 제국, 기갑단 지배국의 문장이 수놓아져 있었다.

입구에서는 파란색 방어구를 착용한 방패병 한 쌍이 소총을 들어 올리며 살라딘을 맞이했지만, 강철 군주는 그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그대로 지나쳐 갔다. 방패병은 천천히 소총을 내리며 고개를 돌려 격납고 반대편에서 다가오는 중장갑의 발루스를 바라봤다.

"혼자 온 건가?" 발루스 오르오크가 손을 들어 헬멧을 뽑아내며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환경 봉인이 해제되면서 쉬잇 소리와 함께 압축 공기가 새어 나왔다. "꽤나 대담하군, 사령관."

"군주." 살라딘은 상대에게 다가가며 그의 말을 정정해 주었다. "내 정식 칭호는 강철 군주다."

발루스 오르오크는 멈춰 서서는 가늘게 뜬 눈으로 살라딘을 내려다봤다. "강철 군주 살라딘." 그는 이를 악물고 낯선 어휘를 뱉어 보았다. "참으로 대담하구나."

"너희와 형식적인 인사치레나 하러 온 건 아니다." 살라딘이 쏘아붙였다. 발루스의 손이 닿는 범위에 들어선 살라딘은 두렵거나 흔들리는 기색 없이 상대를 똑바로 올려다봤다. "어떻게 처리하고 싶나?"

발루스는 살라딘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천둥이 우르릉거리는 듯한 웃음을 터뜨렸다. "내 전쟁 상황실이 있다." 어느새 그는 조금 편안한 말투가 되어 있었다. 괜히 거들먹거리지도, 가슴을 두드리지도 않았다. "우리는 화성 이상 현상의 인근에서 군체 함선의 이동을 추적하고 있다."

"꿈의 도시에는 시부 아라스와 관련된 상황이 발생했다." 살라딘이 대답했다. "앞장서라."

1.5. 대장간의 맹세

"마음대로 말해도 좋아. 하지만 그의 면전에 대고 말하려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할 거다." —여제 에프리디트

강철 군주 살라딘 포지는 만만하게 볼 사람이 아니다.

혹시라도 그를 두고 농담이라도 한다면, 그 얘기를 전해 들은 살라딘이 그냥 웃어 넘겨 주기만을 바라는 게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결코 웃는 법이 없다.

강철 군주 살라딘 포지는 모욕할 상대가 아니다.

혹시라도 그에게 상처를 입힌다면, 그가 당신 얼굴을 잊어 주기만을 바라는 게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결코 잊는 법이 없다.

강철 군주 살라딘 포지는 거짓말을 할 상대가 아니다.

혹시라도 그를 속인다면, 그가 진실을 알아내지 않기만을 바라는 게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진실을 찾아낸다.

그리고 혹시라도, 어떤 알 수 없는 이유로 그의 친구이자 조언자로 가장한 채 그의 동료들 사이에서 거짓 소문을 퍼뜨리고, 그의 귀에 거짓을 속삭이고, 전력을 다해 그에게 더러운 기만을 쏟아낸다면…

당신의 벌레 신과 검의 논리,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십일조와 공물과 영원한 거래가 당신을 지켜 줄 수 있기만을 바라는 게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 무엇도 강철 군주 살라딘 포지를 막아낼 수는 없다.

1.6. 면도날

아무도 그 추악한 칼날이 표적에 적중한 후 남아 있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글린트."

"네, 친구." 고스트의 목소리는 활기가 넘쳤다. 까마귀는 벌써 몇 시간 째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너 자신에게 싫은 점이 있어?" 까마귀는 트로스트랜드 수로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듬성듬성 숲이 이어진 계곡을 내려다보는 나무 위 자리에서 몸을 돌렸다.

"우와, 그거 어려운 질문인데요. 음… 그러니까—"

"사방에서 내 내장을 끄집어내고 있는 것 같아. 난 그냥… 멍하니 서서 그걸 주워 담으려고 발버둥 치는데, 아무리 쑤셔 넣어도 원래 위치로 돌아가지 않는 거야."

그는 신의 꽁무니를 따라 걸었고, 그녀는 그의 내장으로 만든 목줄을 붙잡고 그를 이끌었다. 그리고 그는 신의 인도를 열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때의 일은 끔찍하리만큼 세밀하게 펼쳐지는 생생한 자각몽처럼, 초현실적인 또 다른 삶의 풍경으로 머릿속에 펼쳐졌다. 강렬한 만큼 더 끔찍한 그 고통에서 그는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건 너무 잔인하잖아요." 글린트는 재잘거리며 그의 말을 음미했다.

"그걸 꼭 다시… 넣어야 해요? 그냥 나와 있어도 괜찮은 거 아닐까요?"

"잊어버려." 까마귀의 기세가 누그러졌다. "다른 질문을 할게."

"좋아요!" 글린트는 키들키들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혹시 그 창이…" 까마귀는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을 정리했다. "…아니, 사바툰이 울드렌을 어디에서 끄집어낸 건진 모르겠지만… 그는 언제나 내 안에 있었어. 그렇지? 혹시 그 창을 사용해서 내가 거기로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내 과거로 들어가서… 남아 있는 그에게 안식을 주려는 거야." 까마귀가 한숨을 내쉬고는 멍하니 지평선을 바라봤다. "난 그가 사라졌으면 좋겠어. 그 창으로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어떨까."

"오… 까마귀, 아마 그렇게는 안 될 거예요." 그 뒤로 글린트는 한참 동안 입을 다물었고, 까마귀가 불편한 듯 자리에서 몸을 비틀었다. "저기, 까마귀, 우리 함께 나쁜 일들을 참 많이도 겪었죠. 하지만 그러는 동안 당신이 나쁜 쪽에 섰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전 당신의 그 무엇도 달라지는 걸 원치 않아요."

글린트가 까마귀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게다가 옛날 그 사람한테는 제가 없었잖아요."

2. 방어구

2.1. 추억의 망토

숙련된 기술로 수호물을 강화할 수 있는 아이템입니다.
암흑기 이야기(1/3부)
먼지투성이 벼랑 위

벼랑에 서 있는 살라딘과 에프리디트의 방어복에 바람이 스친다. 드렉의 시체들이 두 빛의 운반자를 둘러싸고 있다. 부서진 무기와 탄피가 흩어져 있다. 에프리디트는 소총에서 마지막 발을 쏘았다. "탄약 떨어졌어."

"그럼 이건 내가 맡지."

"날 못 믿는 거야? 다시 물어보게 만들 거야?"

"사실 넌 갔으면 좋겠어. 나머지는 내가 처리할 수 있으니까."

"좋아. 그럼 처리해. 난 그냥 얘기만 하러 온 거니까."

살라딘은 그녀를 쳐다본다. 그는 주먹 크기의 돌을 손 안에서 계속 굴린다.

에프리디트가 말을 이어간다. "싸움을 끝내려 한다던데. 선물을 주면서 사람들을 모은다고."

"무기 쓰는 거 말고 다른 능력도 있는 사람을 찾고 있거든."

"나보다 사격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 있나?"

살라딘은 아무 대답도 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는 돌아서서 먼 곳을 가리켰다. 아래 먼 곳의 서쪽에는 허물어져 가는 마을이, 동쪽에는 몰락자의 인장으로 뒤덮인 임시 벙커가 있었다. 그 사이에는 새까맣게 불에 타고 시체로 가득한 황무지가 있었다. "패치 런 마을이야." 그가 말했다. "지난 주 인구는 43명. 그 중 절반이 전투 가능 인원이지."

"저건 그냥 오두막집 몇 채지. 마을이 아니잖아." 에프리디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살라딘은 굳은 어투로 대답했다.

"귀족들이 사는 곳이라구." 그는 말을 멈추었다. "이곳을 정찰하는 게 내 임무야. 매주 몰락자 가문을 공격하면 놈들도 포기할 줄 알았어. 하지만 계속 돌아오더군."

그때 몰락자의 소형선이 붕붕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하늘을 가르며 소형선이 날아왔다. 그리고 소형선에서 투하한 보행 탱크가 운석처럼 황무지에 떨어져 벙커 앞의 자갈에 푹 처박혔다. 소형선이 이륙하자 보행 탱크의 다리가 펴지기 시작하더니 멀리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곳으로 향해 이동했다.

에프리디트는 초조해졌다. "서둘러! 탄약 있어?"

"내겐 빛이 있지." 살라딘은 쥐고 있던 돌을 던지고 두 손바닥을 펼쳐 전기 번개를 발생시켰다. "거리가 너무 멀어. 아무리 나라 해도 말이야. 아래로 많이 내려가야 돼."

"시간이 없다구." 아래쪽에서 보행 탱크가 황무지를 가로질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가 널 던질게."

살라딘은 짧게 코웃음을 쳤다. 그녀에게서 아무 대답이 없자 그는 그녀 쪽으로 돌아섰다. 그리고는 그 말이 농담이 아님을 알았다. "그건 너무 위엄이 없잖아."

"사람들이 죽게 놔두는 건 위엄이 있는 짓인가?"

살라딘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산비탈을 내려다보았다…

2.2. 추억의 표식

군중들에게 그들이 잊히지 않았음을 알려 주는 아이템입니다.
암흑기 이야기(2/3부)
먼지투성이 벼랑 위

살라딘이 산비탈의 탱크와 마을을 번갈아 내려다본다. 그가 양 주먹을 쥐자 주위 공기가 타오르기 시작한다.

"빗맞히면…"

에프리디트가 금속 칼라를 쥐고 그녀의 머리 위로 그를 치켜올리자 그는 말을 멈췄다. 두 빛의 운반자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전기 에너지가 주위에서 우르릉거리는 폭풍과 겹쳐진다. 억제할 수 없는 살라딘의 불타는 에너지, 그리고 유유히 흐르는 듯한 에프리디트의 절제된 에너지가. 그녀가 앞으로 걸어가자 발 아래 산이 우르릉거린다. 에프리디트가 방어구를 착용한 살라딘을 투창처럼 벼랑 아래로 던지자 그녀 뒤에서 자갈과 먼지가 물결처럼 피어오른다. 두 사람의 전기 에너지가 합쳐져 칼집에서 뽑은 칼처럼 우르릉 소리를 낸다. 금도금 방어구를 입은 살라딘의 형체는 대포를 쏜 것처럼 세 겹의 구름에 구멍을 뚫고 몰락자 탱크를 향해 날아갔다.

2.3. 추억의 완장

복귀할 때 감각을 강화할 수 있는 아이템입니다.
암흑기 이야기(3/3부)
패치 런 마을 변두리

에프리디트가 불타는 분화구에 서 있다. 살라딘의 시신 위로 에프리티드의 고스트가 발산하는 빛이 깔깔대며 웃는 듯이 빠르게 깜박인다. 살라딘은 갑자기 무릎에 손을 올리고 구부린 자세로 상반신을 일으켰다. 그들 주위에서 파괴된 거미 탱크에서 피어오른 먼지가 그의 방어구에서 떨어져 바람에 흩어진다. 에프리디트는 무릎을 꿇고 살라딘의 고스트를 그의 손에 놓은 후 손 관절로 그의 헬멧을 친다.

"'빗맞히면 어쩌려고?'라고 내가 빗맞히는 거 본 적 있어?"

"없었던 거 같군."

"그걸 또 굳이 대답을 하는 건 뭐야."

"왜 그렇게 오래 걸린 거야?"

"낙오자 몇 명이 살아 있더라구."

그는 놀라 몸을 일으켰다. "지금 어디 있는데?"

그녀는 그의 두려움에 반응하는 아무런 몸짓도 하지 않았다. "마을까지 가지는 못했어."

살라딘은 그 말을 듣고 다시 몸을 뒤로 기댔다. 그는 큰 돌을 쥐고 정신을 집중했다. "네 폭주를 막을 사람이 필요해. 너의 윤리 기준을 일깨워 줄 사람 말이야. 네 마음 속의 용은 너무 포악해."

"내 마음이 바뀌었다면 어쩔 건데? 내가 널 다시 던진다면?"

"싫거든."

"그렇다면 나도 싫어."

그의 주먹에 경련이 일어나자 손에 쥐고 있던 돌은 먼지가 되었다. "또 탄약이 떨어질지도 모르겠군." 그는 치아를 드러내고 웃으며 인정했다. "드윈들러 계곡에서 만나자구."

"몇 명이나 있는데?"

살라딘은 히죽 웃었다. "좀 있지."

3. 15 시즌 방어구

3.1. 머리

"그 전설을 아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독재자의 검에 몸을 던져 다른 사람들의 자유를 되찾았다." —살라딘 경

I.

살라딘은 어린 시절을 기억했다. 지금 손에 쥔 무한한 힘을 발견했던 때의 희열을 기억했다. 첫 번째 죽음의 공포와 폐가 파열되는 고통도 기억했다. 그때는 입에 피가 가득 들어차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기에, 그는 눈으로 고스트에게 애원했었다.

살라딘은 첫 번째보다는 짧았던 두 번째 죽음, 누르술탄이라 불렸던 도시 외곽의 지뢰밭에서 발을 잘못 디뎠던 순간을 기억했다. 고스트가 그를 재결합해 주었을 때, 그는 웃었다. 그러고는 울었다.

살라딘은 세 번째부터 예순다섯 번째 죽음까지 모두 기억하고는 있었지만, 굳이 돌이켜 생각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악몽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한 수천 시간의 밤과 강철 군주로서 보낸 수백 년의 고귀한 시절에 비해 너무나도 무미건조했던 그때의 나날을 후회했다.

살라딘은 죽음을 세지 않기로 했던 날을 기억했다. "당신, 어딘가 달라졌는데." 졸더는 그렇게 말하며 그의 손에 자기 손을 포갰었다.

살라딘은 까마귀를 보고 그 모든 것과 그 이상을 기억해 냈다. 뱃속 깊은 구덩이로부터 뜨거운 분노가 끓어오르는 것이 느껴지는 순간, 오시리스가 그 어린 빛의 운반자가 동료 수호자들의 손에 겪어야 했던 고통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오시리스는 비밀을 지켜 달라고 부탁했다.

"난 비밀을 좋아하지 않아." 살라딘은 말했다. 그게 끝이었다.

3.2.

"그 전설을 아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타오르는 세계의 불길 안에서 벼려졌다." —살라딘 경

II.

살라딘은 사체 수십 구를 매장하던 때를 기억했다. 그해에는 땅이 일찍 녹았고, 그 덕분에 사체를 화장하지 않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기억했다. 불은 빛과 연기를 불러왔고, 빛과 연기는 몰락자 침입자를 불러왔다. 그리고 몰락자 침입자는 사체를 더 많이 만들어 낼 것이었다.

"악순환이지." 에프리디트는 조심스럽게 수의를 여미며 말했다. 살라딘은 그 묶음이 얼마나 작았는지 기억했다. "내가 언젠가 깨뜨려 주겠어."

살라딘은 사체가 그의 품 안에 파묻힐 만큼 왜소했던 것을 기억했다. 무덤에 내려놓을 때도 어찌나 가벼웠는지 기억했다. 수치스럽게도, 에프리디트에게 대답할 말이 없어서 그녀의 말을 못 들은 척하던 것을 기억했다.

위로의 말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던 것을 기억했다.

까마귀가 그에게 말대꾸를 했을 때, 살라딘은 그 모든 것과 그 이상을 기억해 냈다. 가끔 그는 볼 안쪽을 씹었다. 또 가끔 그는 고개를 들어 뭔가 알고 있다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는 고스트의 의체를 마주했다.

그는 고스트에게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3.3. 가슴

"그 전설을 아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인류를 구하려고 죽어가는 세계의 재에서 일어났다." —살라딘 경

III.

살라딘은 빛과의 연결이 끊어졌던 때를 기억했다. 여행자가 그의 가장 비밀스러운 의혹을, 고스트를 비롯한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은 가장 어두운 생각을 알아챘을 거라고 짐작했던 때를 기억했다. 그는 온몸을 뒤덮었던 묘한 안도감을, 잠시 후 무전기가 지직거리며 깨어나자 사라져 버린 그 감각을 기억했다.

그는 최후의 도시가 기갑단에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전 세계에 전하던 목소리를 기억했지만, 그 목소리가 누구의 것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자발라의 목소리가 아니었다는 것만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살라딘," 그의 고스트가 말했다. 어딘가 아주 넓고 긴 터널의 끝에서 들려오는 소리 같았다. "움직여야 해요."

살라딘은 어느새 멈춰 있었다. 그는 아주 오랜 시간처럼 느껴지지만 몇 분에 불과했을 시간 동안 눈이 흩날리는 창밖을 내다보던 때를 기억했다. 창문에 비치는 유리 너머의 봉우리 윤곽을 주먹으로 따라 그리던 때를 기억했다. 그는 기억이라는 행위를 기억했다. 오래전 어느 날, 그들의 이름을 가르침 받았던 때처럼 자발라에게 가르쳐 주었던 때를 기억했다.

"살라딘," 그의 고스트가 다시 말했고, 살라딘은 그때 움직였던 것을 기억했다. 무전기를 붙잡고 그 여정에서 살아남을 만큼 강한 생존자들을 강철 사원으로 집결시켰던 것을 기억했다.

까마귀가 살라딘이 붉은 전쟁에서 겁쟁이처럼 굴었다는 도발적인 말을 했을 때, 살라딘은 그 모든 것과 그 이상을 기억해 냈다. 그는 어린 수호자의 등뼈를 부러뜨려 무력감이 어떤 것인지 가르쳐 주고 싶었지만, 무언가 그의 손을 막았다.

그는 까마귀가 탑에 도착하기 전에 해안에서 생활하던 때의 이야기를 기억했고, 그래서 그를 향해서는 주먹을 들지는 않았다.

3.4. 다리

"그 전설을 아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검을 들고 타오르는 세계를 가로질러 정의와 피를 인도했다." —살라딘 경

IV.

살라딘은 친구들과 함께 식사를 하던 소박한 기쁨을 기억했다. 라데가스트가 사슴의 뒷다리를 잡아 거꾸로 들어 올리고, 페룬이 칼로 빠르게 껍질을 벗기던 때를 기억했다.

졸더가 가장 아끼는 도끼로 장작을 자르고, 그걸로 불을 지피던 것을 기억했다. 강철로 만든 그 도끼는 웃는 늑대의 모습을 새긴 강대한 병기였다. 몇 해 전 겨울, 졸더가 얼어붙은 강에서 꺼내 준 아이의 아버지 대장장이가 보내 준 선물이었다.

"화살로 심장을 관통하는 건 쉽지." 그녀는 그를 놀렸다. "이제 편하게 앉아서 우리가 진짜 어려운 일을 하는 걸 구경이나 해."

살라딘은 그 말에 개의치 않고 동료들을 돕던 것을 기억했다. 그는 졸더의 도끼를 들고 고기를 굽는 데 사용할 향나무를 잘랐었다. 지방이 지글거리는 소리와 냄새를 기억했고, 그 육즙을 듬뿍 적신 빵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기억했다.

그는 라데가스트가 그에게 대장장이의 마을 사람들이 가르쳐 준 노래를 불러 보라고 얘기한 것을 기억했다. 그때 그는 졸더와 페룬도 같이 불러 준다면 노래를 부르겠다고 말했었다. 그들은 밤의 늑대가 울부짖듯 거칠게 노래했고, 아침이 되자 다들 목이 아파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할 지경이 되어 있었다.

아만다가 까마귀를 데리고 도시 거리로 술을 마시러 갔다고 자발라가 이야기했을 때, 살라딘은 그 모든 것과 그 이상을 기억해 냈다. 그는 그들이 어떤 노래를 부를까 생각했다. 요즘 도시의 모든 사람이 흥얼거리는 그 노래가 아닐까 궁금했다. 물론 그는 아직 그 노래를 불러 본 적이 없었다.

3.5. 직업

"그 전설을 아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전쟁군주를 짓밟아 그들이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했다." —살라딘 경

V.

살라딘은 자발라를 처음 만났던 때를 기억했다. 그 각성자에게서 예전 평원에서 사냥했던 수사슴과 같은 위풍당당한 태도가 엿보인다고 생각했던 걸 기억했다. 그때 자발라는 어깨를 넓게 펴고 턱을 당당히 치켜들고 있었다. 그의 움직임에는 이 세계에서 자기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직접 결정할 수 있는 자의 힘과 결의가 느껴졌다.

"당신에게 아들이 생길 일은 없겠지만," 그의 고스트는 말했다. "제자를 들이기에는 아직 늦지 않은 것 같네요."

살라딘은 둘의 스파링 경기를 기억했다. 살라딘이 아무리 여러 번 쓰러뜨려도, 자발라가 언제나 다시 일어났던 모습을 기억했다. 그때의 그가 손아래 빛의 운반자에게 결코 손을 내밀어 주지 않았던 걸 기억했다. 자발라가 마침내 전투에서 그를 꺾었던 때까지, 그 고집은 변하지 않았다.

그는 왼쪽 어깨가 탈골되고 갈비뼈가 부러진 채 땅바닥에 널브러져 누워 있던 때를 기억했다. 가슴에 알 수 없는 압박이 가해져 숨을 쉬기가 쉽지 않았다.

"끝내라." 살라딘은 명령했다. 원래 그래야 했다. 그의 고스트가 되살려 주면 그만이니까.

자발라는 아무 말 없이 그를 일으켜 세웠다.

예전의 제자가 그를 사무실로 불러 까마귀의 가면 뒤 정체에 관해 이야기했을 때, 살라딘은 그 모든 것과 그 이상을 기억해 냈다. 자발라는 살라딘이 비밀을 싫어한다는 걸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토록 중차대한 비밀을 지켜 달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불쾌한지도 다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발라에게 살라딘이 필요했던 것처럼, 까마귀에게도 누군가가 필요할 때가 있을 거라고 덧붙였다.

"자네에게는 아무도 필요 없었던 것 같은데." 살라딘은 불쑥 말했다.

자발라는 그저 미소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