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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4 18:43:32

데스티니 가디언즈/지식/갬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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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기
1.1. 불법 무기1.2. 위험천만1.3. 21%의 망상1.4. 비단뱀1.5. 빌린 시간
2. 2년차 갬빗 방어구
2.1. 타이탄
2.1.1. 고대 대재앙 투구2.1.2. 고대 대재앙 판금2.1.3. 고대 대재앙 건틀릿2.1.4. 고대 대재앙 각반2.1.5. 고대 대재앙 표식
2.2. 헌터
2.2.1. 고대 대재앙 가면2.2.2. 고대 대재앙 조끼2.2.3. 고대 대재앙 손아귀2.2.4. 고대 대재앙 발걸음2.2.5. 고대 대재앙 망토
2.3. 워록
2.3.1. 고대 대재앙 두건2.3.2. 고대 대재앙 로브2.3.3. 고대 대재앙 장갑2.3.4. 고대 대재앙 장화2.3.5. 고대 대재앙 완장
3. 4년차 갬빗 방어구
3.1. 머리3.2. 팔3.3. 가슴3.4. 다리3.5. 직업

1. 무기

1.1. 불법 무기

"수호자를 가장 빨리 처치할 수 있는 사람도 수호자뿐이지." - 방랑자
그래, 내가 메모를 남겼어. 기억 속에서 태워 버리길 바래. 이 총을 쏘고 있다면 내가 말해 준 것들을 이미 알고 있겠지. 하지만 마음 속에서 계속 되새기길 바래.

이걸 간직해 줘. 필요할 거야. 우린 항성계에서 많을 일들을 함께했어. 앞으로도 더 많은 일들을 함께할 수 있길 바래.

이걸 가지고 있으면 훨씬 더 안전할 거야. 많은 것들이 결합되어 있는 최고의 물건이거든. 난 오래전에 가시라는 무기의 대체품을 찾으러 나섰지. 이게 가시를 대신할 순 없겠지만 내겐 훨씬 더 좋은 물건이야. 우리가 같이 만든 거니까.

그리고 우리가 모두 이걸 가지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황금 총을 가진 자에게도 쉬는 시간은 필요해.

우리 총실력이 그보다 나을 순 없을 거야. 총으로 그를 처치할 순 없다는 거지. 하지만 우리가 모두 함께 쏘면 어떻게 될까? 우리가 선수를 치지 않아도 돼.

그도 언젠가는 죽을 테니까.

이것만 기억하라고. 언젠가 그 날은 올 테니.

- 방랑자

1.2. 위험천만

"주점은 말다툼을 해결하기에 좋은 곳이지. 거기에 가는 사람은 누구나 가면을 벗으려고 하니까." —방랑자
그러니까, 이마에 핏줄이 툭 불거지고 목이 굵은 승천자 센릭이 말했다. "난 항상 당신이 좀도둑 같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당신 돈으로 술을 다섯 잔 정도 마시고 나니, 당신이 꽤 좋아지는 것 같은데, 방랑자."

모두가 웃었다. 양발을 느긋하게 카운터 위에 올려놓은 방랑자도 웃었다. 등의 총집에 넣어 둔 소총이 스산한 징조처럼 묵직하게 느껴졌다.

"번지르르한 말만 하는군." 그가 말했다. "혹시... 그렇게 달달한 헛소리를 당신 친구 리엔스 경에게도 늘어놓는 거야?'

주점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센릭의 이마를 가로지른 핏줄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이봐, 여기서 소란을 피우지는 말자고." 자악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냥 리엔스를 막은 거야. 당신이 그러자고 했잖아."

"재미있군. 너도 그 계곡에서 봤는데. 오토도, 에이린도, 탈리아도..." 그는 그들을 차례대로 바라봤다. "내가 헛것을 본 거겠지."

센릭이 의자를 뒤로 밀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거든 그냥 해."

"음, 센, 내 눈이 좀 시원찮긴 하지만, 이건..." 그는 코 옆을 톡톡 두드렸다. "썩 괜찮거든. 지금 쥐새끼 냄새가 나." 그는 코를 킁킁거렸다. "아니, 쥐새끼 떼 냄새지."

센릭이 일어섰다. 핏줄이 터질 것만 같았다. 방랑자는 다리를 내리고 소총을 꺼냈다. 몸놀림이 놀랍도록 빨랐다. "그리고 우리가 쥐새끼는 어떻게 처리하는지 다들 알 거야, 형제."

1.3. 21%의 망상

"좋아." —암흑기의 한 방랑자
암흑기의 한 방랑자가 진군하는 군체 무리를 막아섰다. 악몽 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놈들은 팔이 네 개에다 이빨은 날카롭게 반짝이고, 낡았지만 잘 작동하는 무기와 방어구로 무장하고 있었다. 그들은 떼를 지어 흙먼지 바람을 일으키며 진군했고, 그들의 칼날은 태양 아래 번뜩였다.

"좋았어." 방랑자는 그림자 같은 코트를 휘날리며 지직거리는 전기 줄기 사이를 누비면서, 춤 상대에게 나지막이 인사를 건넸다. 그는 이 싸움에서 살아남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은 절대로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그의 작은 목소리와 달리, 그의 기관총은 끊임없이 우레와 같은 소리를 내뿜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차마 인간에게는 총을 쏘지 못했다. 인간을 닮은 생명체에게도 말이다. 승천자도 그에 포함됐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상대는 승천자도 아니고, 인간도 아니었다.

적들은 방랑자의 중화기 포화 앞에서 맥을 못 추고 하나둘씩 쓰러져 나갔다. 그가 사격을 그쳤을 무렵에는, 본래 흙먼지와 바위로 덮여 있던 대지가 어느새 끈적거리는 푸른색 액체로 뒤덮여 있었다.

"좋았어." 그는 연기를 내뿜는 무기를 만족스럽게 쳐다보며 다시 말했다. 그가 적의 전열 사이로 지나간 자리에는 무수한 탄피가 남아 있었다.

이곳에서 먹을 것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언제나 그랬다.

그는 군체는 무슨 맛일까 상상해 보았다.

1.4. 비단뱀

"네가 가까이 갈 때까지 그냥 두는 녀석은 당해도 싸지." —방랑자
"신뢰는 몹쓸 것이야.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 하지만 신뢰라는 건 이래. 진짜가 아니야. 손에 잡을 수도, 쥐어짤 수도, 주머니에 넣을 수도 없지. 형체가 없어.

"그러니까 그냥 믿는 수밖에 없어. 너는 어떨지 몰라도, 난 동화엔 관심 없어. 난 내 감각으로 느껴지는, 진짜 존재하는 것이 좋다고.

"그렇다고 내가 신뢰를 이용한 적이 없는 건 아냐. 가까이 가기 위해 이용했지. 진짜 존재하는 것, 내가 손에 들고 쥐어짜고,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크기로 잘라 버릴 수 있는 것을 이용할 만큼 가까이 가기 위해서.

"네가 신뢰로 무엇을 하느냐는 네게 달렸어. 우리는 모두 선택을 해야 하지."

—방랑자

1.5. 빌린 시간

"조금 주고 더 많이 가져와." —방랑자

방랑자는 바에 들어서는 순간 문제가 있음을 직감했다. 본능적으로 뒤로 돌아 나가려 했지만, 옆에서 두건을 쓴 사람 하나가 잔뜩 긴장한 채 눈에 띄지 않으려고 눈에 띄게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다.

뒤집어쓴 두건을 눈앞까지 끌어내려 얼굴을 가린 그들은 한쪽 구석에 기대서서 바에 모여든 사람들의 성난 외침을 한 마디라도 놓칠세라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거기 어쩌구 친구에게 진정하라고 얘기해." 방랑자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며 그들을 지나쳐 갔다. "여긴 내가 처리할 테니까."

"진정해요." 망토 아래 어딘가에서 누군가 정중한 목소리로 그의 말을 반복했다.

"나도 들었어." 그 사람은 한숨을 내쉬었지만 목소리에는 안도감이 담겨 있었다.

방랑자는 사람들을 밀치고 안쪽으로 들어가면서 누가 무장을 했는지, 누가 고함을 치는지, 또 누가 둘 다 하고 있는지 파악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지막 범주에 해당됐다. 그는 미소를 지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대, 조용한 자들이 가장 위험했다.

밀집해 있는 사람들의 한가운데로 들어서자 탁자에 앉은 세 명의 엘릭스니가 주위의 군중을 무시하려 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의연하게 가장 덩치가 큰 엘릭스니에게 다가가 야생 고양이처럼 의자 팔걸이에 앉았다. 엘릭스니는 으르렁거렸지만 방랑자는 신뢰를 묵직한 쿵, 소리와 함께 탁자 중앙에 던졌다.

방랑자는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우리 착한 양반들이 오늘 밤에는 또 왜들 이렇게 흥분하셨나?"

"당신, 라디오 방송을 많이 안 듣는 모양이지." 누군가 말하자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내 거처에는 전파 수신이 잘 안 돼서 말이야." 방랑자가 대꾸했다. "내가 뭘 놓쳤는지 얘기해 줘."

모든 사람이 동시에 입을 벌리고 비난의 불협화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으악!" 방랑자가 외쳤다. "아무래도 다들 저 가짜 밤을 너무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는 엘릭스니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소란이 일어난 와중에 무슨 장비가 사라졌다고 외치는 걸 들은 것 같은데. 뭐, 물어는 봐야겠어." 그는 말했다. "혹시 당신들 것이 아닌 걸 가져갔어?"

덩치 큰 엘릭스니가 말했다. 깊고 차분한 목소리였다. "당신의 동족과 조금 혼선이 있었다. 각자의 것과 모두의 것이 어떻게 다른지 몰랐다."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여기서 배웠고, 그에 따라 우리는 보상했다."

방랑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장소에 정착하다 보면 그럴 때도 있지. 여기 있는 사람들도 다들 이웃의 도구함에서 예비 기관단총 부품을 꺼내 간 적은 있을 거야."

누군가 말했다. "이봐, 내 기관단총이 없—" 하지만 방랑자가 한 손을 들어 막았다.

"저 끔찍한 밤 때문에 괜히 이 친구들이 비난을 받는 건 원치 않아. 분명히 말하지만, 당신들 중 몇몇은 저 어둠 때문에 백치가 돼 버린 것 같아. 미스락스가 선봉대와 함께 이 벡스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잖아." 그는 말했다.

엘릭스니는 조금 마음을 놓는 것 같았지만, 방랑자가 손가락을 하나 들어 올렸다. "나도 묻고 싶은 게 하나 있어." 그는 말했다.

"당신네와 우린 아주 오랫동안 싸워 왔잖아. 그건 비밀도 뭣도 아니라고. 몇 년 동안 양쪽에 피가 흐를 대로 흘렀지. 그런데 예전에 당신 친구들 중 몇몇이 굶주림에 굴복해서 끔찍한 짓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어."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오고, 덩치 큰 엘릭스니는 의자에서 긴장한 듯 몸을 비틀었다.

방랑자도 몸을 기울여 더 가까이 다가가며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네들이 가끔은 갓난아이까지 썰어 버렸다는 끔찍한 소문이 있던데."

엘릭스니가 의자를 뒤로 밀며 벌떡 일어서 모여든 군중이 깜짝 놀란 숨을 들이쉬었다. 방랑자는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지만, 왠지 자기보다 1미터는 더 큰 엘릭스니를 내려다보고 있는 듯했다.

"너희 어린 것들에게 그런 적은 없다!" 엘릭스니가 외쳤다. "절대로 없어."

방랑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머지는?"

엘릭스니는 사람들을 바라본 후 거대한 머리를 방랑자에게 가까이 가져갔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우리 늙은이들, 처음부터 싸워 왔던 자들은… 그래, 살아남기 위해 가끔은 너희 죽은 투사들을 섭취하기도 했다."

"전쟁이었으니까." 그는 그렇게 말하며 발톱이 튀어나온 손가락으로 방랑자의 가슴을 찔렀다. "너희에겐 고기가 있었고."

방랑자는 웃었다. "알아, 형제." 그는 그렇게 말하며 엘릭스니의 발톱을 바라봤다. "이런, 그걸로 삿대질을 하니까 갈릭 버터를 발라 구우면 얼마나 맛있을까 하는 생각밖에 안 들잖아. 으음!" 그는 거대한 생물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갈라진 입술을 혀로 핥았다.

엘릭스니는 자그마한 남자를 곰곰이 살피고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아주 오래전 일이다." 그는 말했다. "우리는 이제 빛의 가문이고, 영원히 그럴 것이다. 너희 동족과도 평화의 약속을 맺었다."

방랑자는 손을 위로 뻗어 엘릭스니의 가슴을 토닥였다. "맞아." 그가 말하자 엘릭스니는 자리에 앉았다. "그런다고 끔찍했던 옛날이 지워지진 않지만," 그는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때 일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건 아니지."

불만이 가득하여 투덜거리는 소리가 사람들에게서 피어올랐다. 그들에게서 호전성이 빠져나가는 듯했다.

엘릭스니는 어깨를 으쓱했다. "미스라악스는 절대로 사람을 먹지 말라고 했다." 그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방랑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망할 자발라도 똑같은 얘기를 하더라고."

엘릭스니는 콜록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방랑자도 함께 웃고는 탁자에서 총을 집어 들었다. 그는 손을 내저어 사람들을 물리며 빈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이제 좀 비켜 봐." 그가 말했다. "이 친구들 돈을 잃을 때가 됐거든."

2. 2년차 갬빗 방어구

2.1. 타이탄

2.1.1. 고대 대재앙 투구

"첫 번째 대재앙에서는 빠져나온 것 같군. 하지만 두 번째는 널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방랑자
방랑자는 두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뒤로 기대 앉았다. 그가 앉아 있는 아르카디아급 도약선은 도시로 향하는 수송 열차 위에 떠 있었다. 도약선의 주인인 타이탄은 방랑자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달리는 열차와 속도를 나란히 맞추며 욕설을 중얼거렸다.

"이랬는데 헛수고이기만 해 봐." 그녀가 으르렁거렸다.

"말했잖아. 다음 갬빗에서 자네한텐 티끌을 두 배로 주겠다니까. 내가 신용 빼면 시체인 사람이야." 방랑자가 몸을 똑바로 펴고 앉으며 말했다. "가까이 접근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하지. 내가 다시 탈 수 있게만 해 주라고."

측면 해치를 열자 세찬 바람이 선실 내부로 들이닥쳤다. 방랑자가 소음 속에서 소리 쳤다. "자네들이 전부 군인은 아니라서 다행이야. 이쪽이 뇌물로 달래기 쉽거든."

"가서 승천 영역에서 놀기나 하시지." 타이탄이 받아쳤다.

우주선에서 뛰어내린 방랑자는 열차 객실 바로 아래에 솜씨 좋게 안착했다. 그는 거대한 손대포를 꺼낸 다음 외투를 펄럭이는 바람을 맞으며 앞으로 기어갔다.

2.1.2. 고대 대재앙 판금

"때로는 전 우주적인 사건이다. 때로는 지옥에서 온 야수다. 때로는 한 명의 사람이다." —방랑자
열차 지붕의 유리한 고지에 선 방랑자는 레드잭스를 발견했다. 샤크스 경의 얼간이 프레임 두 마리는 객실 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방랑자는 손대포를 홀스터에 차고 대신 긴 칼을 꺼냈다. 갑판으로 뛰어내린 그는 칼로 빠르게 호를 그어 프레임의 머리를 딴 다음, 칼을 집에 도로 차고 몸체가 떨어지기 전에 붙잡았다. 정적이 감돌았다.

레드잭스가 두 마리 있다면 더 있을 수도 있다. 그는 총격전을 벌이고 싶지는 않았다. 객실에 들어가 몸을 낮게 숙이며 방랑자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참 애도 쓴단 말이야, 레드잭스는. 하지만 레드잭스 한 대는 평균적으로 임무 3개를 넘기지 못한다.

갬빗은 시련의 장 수호자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그들이 전설적인 아카이트와 달리아에 대해 얘기하는 걸 자주 들을 수 있었다. 최후의 도시 초기부터 활약했다는 정예 레드잭스다. 그는 눈으로 직접 보기 전까지 그들의 존재를 믿을 생각이 없었다. 방랑자는 계속 나아갔다.

2.1.3. 고대 대재앙 건틀릿

"때로는 생존과 멸종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 건 순수하고 단순한 고집스러움뿐이다." —방랑자
방랑자에게 문제가 생겼다.

그는 열차를 지키는 자들이 레드잭스라는 것을 알아냈다. 이 칸의 뒤편에서 두 명은 벌써 죽였다.

찾고 있던 보급품 상자도 거대한 타이탄 두 명의 어깨 너머로 발견했다. 타이탄들의 방어구에는 시련의 장 휘장이 걸려 있었다. 즉 거래할 때 조심해야 한다는 의미다. 두 사람이 소총을 들어 올려 그를 겨누었다. 강시 AR4. 좋은 물건이다.

"아이고. 잠깐." 방랑자가 천장을 향해 두 팔을 들어 올리며 말하기 시작했다. "말썽부릴 생각 없어."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다.

"여기서 대체 무슨 짓거리를 하는 거죠, 방랑자?" 왼쪽의 타이탄이 말했다.

방랑자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족서. 잘 지냈어?"

"사탕발림에 속지 말아요." 오른쪽의 타이탄이 귓속말을 건넸다.

"레드릭스?" 방랑자는 두 명의 갬빗 단골과 마주친 것이었다. "이봐. 형제들. 내가 저 물자 상자들이 좀 필요해서 그래. 몇몇 부품은 정말 구하기 힘든 거 힘든 거 알잖아. 난 수집가야. 힘든 삶을 살지. 그러니 사정 좀 봐줘."

"그랬다간 자발라 님이 싫어할 겁니다." 족서가 말했다.

방랑자가 눈썹을 들썩였다. "아니, 너희 선봉대 밑으로 들어갔어?"

그들은 답하지 않았다.

방랑자는 몸을 들이밀며 말했다. "어이. 이번 한 번만 봐주면 아쉽지 않게 챙겨줄게. 그냥 다음 주 갬빗에 참가하기만 해. 티끌을 두 배로 쳐줄 테니까."

타이탄들은 다시 서로를 쳐다보았다.

2.1.4. 고대 대재앙 각반

"나는 아마겟돈의 횟수를 세는 것을 그만두었다." —방랑자
방랑자는 찾던 물건을 발견했다. '텍스 메카니카'라고 표시된 기다란 컨테이너 세 상자였다.

그는 뚜껑 밑에 칼날을 그어 세 상자를 모두 열었다. 소총, 보조 무기, 그리고… 손대포가 있었다. 기다란 상자에서 대포를 꺼낸 그는 어스름한 빛에 비추어 보았다.

암흑기 총은 더는 어디서도 제조하지 않는다. 방랑자는 총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이 항성계의 암흑기 무기 공급원 중 하나는 그 자신, 갬빗이다.

암흑기 무기가 만들어지던 것은 빛과 빛이 겨루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모든 것이 지금보다 좀 더 효율적이고 치명적이었다. 물론 그의 생각에 그렇다는 말이다.

하지만 텍스 메카니카라면 그때와 근접한 수준이다. 매우 믿을 만한 대포를 제조하는 곳이었다. 방랑자는 손에 쥔 물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전설 속 물건이라니.

그때 열차가 덜컹거리며 상념을 깨웠다.

그는 챙길 수 있는 만큼 모조리 챙겼다.

2.1.5. 고대 대재앙 표식

"세계의 최후와 같은 얼굴과 사막에서 만나는 만나와 같은 눈을 하고 있다. 그를 한 번 보는 순간, 구원 받지 못할 것임을 깨달았다." —방랑자
방랑자는 출발 지점이었던 열차 뒤편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 사이 족서와 레드릭스를 지나쳤다. 그 녀석들이 방랑자가 참수한 레드잭스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두 마리는 열차가 도시에 도착하기 전에 프레임을 제대로 돌려놓기 위해 재빨리 움직였다.

"둘 다 좀 쉬지 그래?" 방랑자가 말했다.

"저리 꺼져요, 방랑자." 레드릭스가 짜증난 목소리로 말했다.

레드릭스와 족서는 방랑자가 장비한 텍스 메카니카 물건들을 뚫어지게 보았다. 마치 후회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방랑자는 로켓 발사기를 풀고 프레임들과 나란히 앉았다.

"자. 형제들. 내가 이러는 건 다 이유가 있어서야. 갬빗도 다 이유가 있어서 하는 거고. 나라고 좋아서 날마다 너희들이랑 같이 거기에 가는 것 같아? 이상한 놈들일세. 아니야. 나도 싫다고. 하지만 다 중요한 이유가 있어서 이러는 거란 말이지."

방랑자는 주머니에서 어둠의 티끌을 꺼냈다. 티끌은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너네가 살면서 얼마나 많은 빛의 티끌을 모을지 생각해 봐. 꽤 많이 모으겠지? 응?""

"신화배격자가 그립네요." 족서가 말했다. 방랑자는 족서의 목소리에서 찌푸림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래, 신화배격자가 있었지! 그래도 기갑단에게 탑을 뺏겼단 말이에요. 빛이 너희를 실망시켰어. 나도 실망했고 말이야."

방랑자는 어둠의 티끌을 그들에게 보여 주었다. "그런데 이건 말이지. 특별한 거거든. 내가 만들었어. 이게 한 줌만 있어도 뭘 할 수 있는지 너네도 잘 봤지? 찬찬히 잘 생각해 보라고." 로켓 발사기를 다시 어깨에 얹은 방랑자는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그들을 등졌다.

"나랑 오래오래 같이 다니면 어둠으로 뭘 할 수 있는지 보여 주지."

2.2. 헌터

2.2.1. 고대 대재앙 가면

"첫 번째 대재앙에서는 빠져나온 것 같군. 하지만 두 번째는 널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방랑자
에메랄드 해안. 유럽 데드존.

수호자 도약선이 굉음을 내며 머리 위로 날아올랐다. 방랑자는 기갑단 방패와 갑옷 잔해를 지나 해안을 따라 걸었다. 탑의 빛들이 그의 약소한 게임을 훌륭하게 수행해 주었다.

방랑자는 커다란 핸드 캐논을 손에 쥐었다. 고스트가 마치 송장 먹는 파리처럼 머리 주변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벡스의 눈처럼 붉은 광채를 띤 빛이었다. 걸으면서 그는 전장을 살펴보며 부랑자의 AI 물질 전송으로 격납고로 보낼 무기며 폐품들을 유념해 두었다. 해변에는 기갑단 물건들이 불에 탄 채 나뒹굴고 있었다. 전부 나름대로 쓸모 있는 것들이었다. 부랑자의 정기 점검에 쓰든, 은행을 추가로 지을 때 쓰든 말이다.

기갑단 방패 두 개만 주워서 조립해도 낮잠 자기 좋게 햇빛을 가려주는 사랑스러운 오두막이 될 것이다.

버려진 납탄 소총을 향해 기어가는 군단병을 한가롭게 지나쳐 머리에 총알을 날렸다. 총성이 해안에 길게 울려 퍼졌다.

갬빗이 잘 굴러가는 덕분에 머잖아 전장을 추가할 자원이 충분히 모일 것 같았다.

그는 쭈그려 앉아 거상의 방어구에 달린 라디오를 이리저리 만져 보는 사이온을 지나쳤다.

방랑자의 핸드 캐논에서 발사된 탄알은 기갑단 변형체를 뒤로 쓰러뜨렸다. 머리가 증발하며 보라색 연기가 피어올랐다.

방랑자는 부랑자가 상륙할 수 있도록 전장을 정리하며 산책을 계속했다. 이따금 핸드 캐논에서 울리는 굉음만이 수 킬로미터 내에서 들리는 유일한 소리였다.

2.2.2. 고대 대재앙 조끼

"때로는 전 우주적인 사건이다. 때로는 지옥에서 온 야수다. 때로는 한 명의 사람이다." —방랑자
에메랄드 해안. 유럽 데드존.

방랑자는 비틀거리며 은행으로 올라갔다. 사이온 시체를 끌고 온 그는

시체를 땅에 내던지고 깔고 앉았다.

방랑자는 손가락에 침을 묻혀 은행 외피에 숨겨진 패널 뒤로 미끄러뜨린 다음 외피를 열었다. 그러자 압축된 티끌 하나가 방출되었다.

그가 어둠의 티끌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머리 위에 해가 떠 있었지만 티끌이 빛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감촉은 시원했다. 은행에 보관된 덕분이다. 이번 소득은 어둠의 티끌 백 하고도 두 개였다. 일방적인 살육이었는데 말이다.

앉아 있던 사이온 안락 의자가 움찔하자, 방랑자는 거대한 핸드 캐논으로 두 발을 먹였다.

머리 위에서 부랑자가 내려오고 있었다. 엔진이 일으키는 바람에 먼지가 날리자 고스트가 조금 움찔했다. 방랑자는 친구에게 다정하게 속삭였다. "난 이 일이 참 좋아."

2.2.3. 고대 대재앙 손아귀

"때로는 생존과 멸종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 건 순수하고 단순한 고집스러움뿐이다." —방랑자
에메랄드 해안. 유럽 데드존.

부랑자가 기갑단 잔해로 뒤덮인 해안에 내려서는 동안 방랑자는 손차양을 만든 채 기다렸다.

원격 장치 버튼을 누르자 물질 전송 광선이 전장 중앙에 있는 은행을 해체했다. 방랑자가 웃음을 참지 못하자 고스트가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가끔은 이렇게 쉬울 때도 있다니까." 방랑자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수호자들은 돈을 받고, 우리는 물건을 모으고. 기습 작전도 필요 없고, 외계인이 거드름 피우는 꼴도 안 보고."

부랑자 엔진이 포효하는 소리 너머로 둔탁한 폭발음이 들렸다. 하늘에 어둠이 드리웠다. 고개를 돌리자 상공의 거대한 주력선에서 기갑단 지원군이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무장한 병사들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모래밭에 상륙했다. 손에는 은빛으로 번쩍이는 무기를 쥐고 있었다.

방랑자의 고스트는 몸을 부풀리며 눈을 활짝 떴다. 웃음 대신 나온 반응이었다. 실제로 웃을 수는 없는 몸이었으니까.

"닥쳐봐 좀. 시끄럽다고, 멍청하긴." 방랑자는 고스트를 밀어냈다.

그의 눈에는 방어구와 무기를 덕지덕지 두른 채 다가오는 병사들이 비치고 있었다. 손에 만져지는 어둠의 티끌 역시 차가운 냉기만 느껴질 뿐이었다.

2.2.4. 고대 대재앙 발걸음

"나는 아마겟돈의 횟수를 세는 것을 그만두었다." —방랑자
돌연 몰아친 바람에 코트가 벗겨졌다. 방랑자는 모래 너머로 길을 가로막은 기갑단 병사들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머리 하나가 큰 백부장이 사나운 카발 어로 무리에게 말하고 있었다.

[무기와 함선을 바치지 않으면 죽이겠다.]

방랑자는 놈들을 향해 손가락 하나를 공중에 세워 보였다. 헬멧 안에서 기갑단이 눈을 가늘게 뜨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어째서 너희 종족은 절망적으로 열세이면서도 아득바득 싸우려 하는 거지?]

방랑자는 고개를 저었다. "난 싸우는 것보단, 구경하는 쪽을 좋아하거든." 그렇게 말한 방랑자는 어둠의 티끌을 손 안에 쥔다.

섬뜩한 비명이 귀청 가득 울리자 그는 욕설을 내뱉었다. 도대체 익숙해질 수 없는 소리다. 하늘이 타오르는 듯한 녹색으로 덮이면서 반으로 갈라졌다.

수호자들에게 원시 괴수라고 알려진 생물 아홉 마리가 에메랄드 해안의 모래 위에 느닷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있을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어마어마한 존재.

기갑단은 고함을 으르렁거렸다. 공포에 찬 음성이었다.

기갑단이 갑자기 나타난 몰락자를 향해 무기란 무기는 전부 퍼붓자, 추적기가 공기를 가르며 바쁘게 날아다녔다. 기갑단 함선이 합류하자 폭발이 해안선을 뒤흔들고 불기둥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원시 괴수는 알아차리지도 못한 듯, 총알과 폭발을 뚫고 주인의 지시대로 적을 향해 전진했다. 주인은 제자리에서 한 발짝도 안 움직인 채였다.

방랑자는 이를 훤히 드러내며 웃었다.

2.2.5. 고대 대재앙 망토

"세계의 최후와 같은 얼굴과 사막에서 만나는 만나와 같은 눈을 하고 있다. 그를 한 번 보는 순간, 구원 받지 못할 것임을 깨달았다." —방랑자
방랑자는 기갑단 방패와 갑옷 잔해를 지나 해안을 따라 걸었다. 원시 괴수들이 제대로 일을 해 주었다.

방랑자는 커다란 핸드 캐논을 손에 쥐었다. 고스트가 마치 송장 먹는 파리처럼 머리 주변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걸으면서 그는 전장을 살펴보며 부랑자의 AI 물질 전송으로 격납고로 보낼 무기며 폐품들을 유념해 두었다.

느긋하게 걷다 보니 반으로 쪼개진 에테르 수확기의 잔해 가운데 한 죽어 가는 사이온이 있었다. 방랑자는 사이온이 피를 흘리는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머리의 앞부분이 반짝이고 있었는데, 이는 곧 방랑자의 정신을 침투하려 한다는 의미였다.

방랑자는 다가가 사이온의 머리를 발로 후려 찼다.

그리고는 무릎을 꿇고 앉았다.

"세간 사람들은 우리가 새 황금기의 끝자락에 서 있다고 말하지. 내 머리로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아직도 이해가 안 돼. 근데 이거 하나는 확실해. 마지막으로 인류가 황금기를 누렸을 때는 이 행성계가 우리 차지였어. 단 한 줌의 먼지까지도 말이지."

방랑자는 사이온에게 귀가 있었더라면 붙어있었을 법한 부위로 고개를 숙이곤 귓속말을 했다.

"그리고 우린 탑의 누구처럼 마냥 예의 바르지만은 않아. 그의 핸드 캐논에서 들리는 굉음만이 유일하게 수 킬로미터 내로 울려 퍼졌다.

2.3. 워록

2.3.1. 고대 대재앙 두건

"첫 번째 대재앙에서는 빠져나온 것 같군. 하지만 두 번째는 널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방랑자
나도 한때는 같이 움직이는 일당이 있었어. 절친한 친구들이었지. 그렇다고 별로 대단한 건 아니야.

지금은 다들 죽었거든. 거의 한 사람한테 모두. 지금 내 절친한 친구들인 자네들 꼬마 수호자들한테 그게 뭘 의미할까?

너무 깊이 생각하지는 마.

여하튼, 난 내 일당이라 할 만한 녀석들과 함께 행성계를 떠났어. 도시 시대가 태동하던 때였지. 우리는 빛보다 더 위대한 것을 찾아다니고 있었어. 그 이유는 빛이… 수많은 다툼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봤기 때문이야.

그래서 찾고 또 찾아다녔어. 아마… 수백 년은 더 되었을 테지. 그러다 행성계 너머 빛을 몰아내는 에너지를 뿜어대던 행성을 하나 찾게 되었어. 당연한 거겠지만, 호기심이 발동하더군.

그래서 착륙을 감행했어. 그 에너지를 가지고 다닐 수 있도록 필요한 연구를 하고, 또 안정시키기 위해서. 전설로 전해지는 무기, 가시 역시도 그와 비슷하게 빛을 억제하는 능력이 있었거든.

이거 왠지 조짐이 좋다 싶은 느낌이 들더라. 하지만 손끝에서 심장까지 냉기가 치밀더라고. 인간이 있을 장소가 아니었다는 얘기야. 일당 녀석들이 하나하나 쓰러지기 시작했어. 선 채로 앉은 채로 그냥 죽었다니까. 고스트 친구들이 있어서 천만다행이지.

너무 의욕이 넘쳤던 거야. 베테랑이기도 했고. 백발도 셀 정도였어. 우주에서 수백 년을 구르다 보면 다 그리되더군.

—후대를 위해 방랑자가 자신의 고스트에게 읊조려 둔 생각. 5부 중 1부.

2.3.2. 고대 대재앙 로브

"때로는 전 우주적인 사건이다. 때로는 지옥에서 온 야수다. 때로는 한 명의 사람이다." —방랑자
아무튼 그땐 그랬어. 이름 없는 커다란 얼음 덩어리 위에 나랑 동지들만 있었지. 모든 게 아주 훌륭했어.

거기서 어떤 외계 거석 덩어리를 발견했는데 말이야. 그 행성 주민이 남긴 시설 같더군. 그땐 주민들은 사라진 지 오래였지만.

그런데 그 안에 웬 생물체가 갇혀 있는 거야. 무슨 얼음으로 된 우리 같은 것에. 전시물일까? 동물원 같은 곳이었을까? 지금도 잘 모르겠군. 과학자를 데려갔어야 했는데. 거기 있던 놈들은… 뭐, 허세로 까만 옷을 입은 녀석들이니 어련하겠나.

그 행성에서 오래 머물게 되면서 곳곳에서 그런 거석을 발견했는데, 전부 생물체가 갇혀 있더라고.

그런데 이놈, 이 생물체 말이야. 군체와 생물 에너지가 비슷하게 보이는데, 인류 역사상 그런 녀석들과 접촉했다는 기록이 전혀 없거든. 군체한테선 못 보던 건물도 있었고. 마치 무슨 어둠 영역처럼 빛이 억제되는 필드를 생산했는데, 머리 없이 끈적거리는 진공 형태에 들어 있었단 말이지.

그 행성에 걸쳐진 궤도에서 탐지했다던 빛 억제 필드 있지? 그게 이거였던 거야. 함선 스캐너에는 이 행성에 그게 수천 개나 있다고 표시됐었거든.

우리는 미친 듯이 기뻤지.

그게 조금만 있어도 얼마나 많은 일이 가능했는지.

—후대를 위해 방랑자가 자신의 고스트에게 읊조려 둔 생각. 5부 중 2부.

2.3.3. 고대 대재앙 장갑

"때로는 생존과 멸종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 건 순수하고 단순한 고집스러움뿐이다." —방랑자
우리들은 거석 시설에 갇혀 있던 그 생물체들이 그 안에만 있지는 않다는 걸 금방 알게 됐어. 밖에서 야생으로 돌아다니는 녀석들도 많았지. 춥기는 했지만 거석에 있던 생물체들을 가둔 얼어붙은 우리 안만큼은 아니었어.

어떻게 알았냐고? 자다가 죽은 친구가 있었거든. 사실 그다지 특이하거나 비극적인 죽음도 아니었어. 비일비재했으니까. 워낙 추워야지.

다만 이번에는 고스트가 부활시키지 못했다는 점이 달랐어. 그 생물체 중 하나가 마침 우리 대피소 근처에서 기어다니다가 안으로 들어와서는, 그냥… 그 불쌍한 친구의 빛을 꺼트려 버리지 뭐겠어.

불운한 사건이었지만, 덕분에 우리는 깨달음을 얻었지. 다음날 일어난 우리는 빛 대 빛 전투의 국면을 뒤집어 엎어버릴 무기 재료를 손에 넣었다는 걸 알았어.

이 생물들을 얼음투성이 행성에서 데려갈 방법을 찾아야 했지.

급히 말이야. 진전은 있었지만 공기가 좀… 팽팽해졌어. 어떤 친구들은 그 생물체가 우연히 근처를 지나다가 하필 한 명만 노렸다는 걸 수상쩍게 여겼던 거야. 우리가 그 생물체의 쓰임새를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지.

—후대를 위해 방랑자가 자신의 고스트에게 읊조려 둔 생각. 5부 중 3부.

2.3.4. 고대 대재앙 장화

"나는 아마겟돈의 횟수를 세는 것을 그만두었다." —방랑자
저번에 우리들 사이에서 긴장이 팽팽해졌더란 얘기 했었지? 그럴 줄 알았지.

자, 여기서부턴 더 나빠지기 시작해. 또 한 친구가 죽은 거야. 일부러 시설물 안에 들어가서 잤는데도, 먼젓번과 똑같은 방법으로. 그 얼간이는 추워서 얼어 죽었고, 빛이 억제된 고스트도 꼴까닥 해버려서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고. 자다가 죽었던 거지.

다른 녀석들이 기분 좋을 리 없었어. 나도 기분 좋지 않았고.

우린 생물체를 담아 갈 방법을 찾고 있었는데 말이야. 거석에는 냉동 기술이 있는 것 같았거든(그걸 기술이라고 부를 수 있을 때 얘기지만). 우리가 모방할 수만 있다면 쓸 만했을 텐데. 내가 좀 한다고 하는 정비공이라. 도대체 그 방법을 알아낼 수가 없더란 말씀이지.

결국 우린 서로를 비난해대기 시작했어. 누군가가 숙소 근처로 생물체를 꾀어낸 게 틀림없다고. 지금까지도 잘 모르겠군. 왜 하필 한 명씩만 죽였을까? 뭘 위해서? 그 생물체들이 고의로 그랬을 거라는 쪽이 더 그럴 듯하게 들렸어. 침입자들에 대한 형벌이랄까. 하지만 악의는 감지할 수 없었어. 그저 생물일 뿐이었지.

그때만 해도 우린 별 신경을 안 썼어.

결국 한 놈이 총을 꺼내 들더라. 다 예상 범위에 있던 일이라, 만일을 위해서 상황을 부드럽게 넘길 감미로운 연설도 좀 생각해놨었지.

그래서 당장 그거 집어처넣으라고 말했어. 그리고 다음에 누가 또 똑같은 개수작을 부리면 그냥 바로 쏴버리겠다고 했어.

나 원래 그렇게 꾸밈없이 말하는 사람 아니거든. 근데 일단 한번 툭 터놓고 말하면, 부하들도 고분고분해져.

—후대를 위해 방랑자가 자신의 고스트에게 읊조려 둔 생각. 5부 중 4부.

2.3.5. 고대 대재앙 완장

"세계의 최후와 같은 얼굴과 사막에서 만나는 만나와 같은 눈을 하고 있다. 그를 한 번 보는 순간, 구원 받지 못할 것임을 깨달았다." —방랑자
우린 속수무책이었어. 그 행성에서 1년을 지냈는데, 우리의 유일한 목표가 된 생물체는 포획하든 길들이든 손도 못 쓰고 있었으니까.

골칫거리가 따로 없었지.

함선도 쓸 수 없게 된 지 오래였어. 혹한 때문에. 우리 자신도 추워서 수만 번은 죽었다 깼지. 여러분 모두 시련의 창 참가 해 봤지? 갬빗도 해 보고.

비교도 안 돼. 훨씬 심했어.

어쨌든. 남은 사람은 넷뿐이었어. 이즘엔 다들 미쳐 날뛰고 있었어. 얼음 비탈길에 미친 듯이 바람만 부는 곳에서 우리 넷만 있었으니. 거기다 이따금 허둥지둥 도망치는 멍청한 생물을 놓고 말싸움이나 하고 말이야.

하루는 다른 거석에서 밤을 보내려고 자리를 잡았는데, 뭔가가 행성을 휩쓸고 지나갔어. 나중에 알고 보니 항성계 전역을 휩쓸었다더군. 이 얘길 듣는 자네들도 다 느꼈을걸. 자네들이 바로 원천지에 있었거든.

우리 넷 다 빛을 잃었던 거야. 그리고 알아차렸지. 우리는 얼어붙은 우리에 갇혀 있는 생물을 건너다봤어. 마치 우릴 빤히 응시하는 듯하더군.

이즘 다들 미쳐 날뛰고 있었다는 말은 했지? 우리는 침착하게 미쳐 날뛰는 놈들이 할 만한 짓을 했지. 다들 자기가 배신당했다고 믿은 거야. 무기를 꺼내 서로한테 겨눴지.

그 녀석들 중 몇이나 진짜로 죽일 생각이 있었는지는 지금까지도 모르겠군.

다만 이건 말해 줄 수 있어. 거기서 살아 나온 사람은 나 혼자라는 거지.

그 생물체는 전부 지켜보고 있었어. 다 끝난 다음 나는 그 녀석을 향해 손가락을 치켜세워 줬지.

이제 나 하나뿐이었어.

거기에서 어떻게 빠져나와서 여기로 왔냐고? 그 이야기는 다음에 언젠가 할 기회가 될지 모르겠군. 갬빗이 거기까지 갈지 두고 보자고.

—후대를 위해 방랑자가 자신의 고스트에게 일러둔 생각. 5부 중 5부.

3. 4년차 갬빗 방어구

3.1. 머리

"항상 대재앙 쪽에 판돈을 걸라고. 일이 잘 풀리면 그냥 네 생각이 틀리는 것뿐이고, 최악의 경우라도 준비는 되어 있을 거 아니야." —방랑자

이봐, 자매. 아니, 형제인가. 젠장, 누가 이걸 듣게 될지는 모르겠네. 첩자일 수도 있고, 바보일 수도 있고, 아니면 어느 쪽을 택할지 아직 선택하지 않은 사람일 수도 있겠지.

괜찮아. 어느 한 쪽을 택한다는 거? 그건 그냥 잡음일 뿐이야. 이 모든 게 끝났을 때, 네 등 뒤를 지켜줄 사람은 오직 너뿐이거든. 그것도 가능성은 반반이지만 말이야.

머리를 써. 똑똑히 생각하라고. 알았어? 여기저기 사람들이 수군거리고 있잖아. 귀를 막아야 할 때도 있는 법이야. 슬론의 소식이 깜깜해진 뒤로 많은 게 달라졌어… 아, 표현을 잘못 골랐나? 왜? 너무 성급한 판단 아니냐고? 우린 신 아르카디아에서 같이 시간을 좀 보냈었거든. 배운 것도 있고, 잘못된 속삭임에도 귀를 기울였고.

이제부터는 누굴 믿어야 할지 신중하게 생각해. 알았지? 그래, 거기엔 나도 포함돼. 하지만 난 처음부터 이렇게 얘기했잖아.

3.2.

"징후는 늘 있었지. 찾는 법을 아는 사람에게만 보였지만. 사실 대부분의 사람은 잘 몰라." —방랑자

내가 여행을 떠나야 한다는 얘기는 아마 들었을 거야. 아니, 벌써 여행을 한 뒤려나. 이걸 언제 듣게 될지 모르겠네.

내가 다시 진정한 추위를 경험해야 했다면, 모든 것을 바꿔 놓을 만큼 중요한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야. 고개를 숙였을 때 그게 이미 네 손에 들어와 있다면, 물러나기가 쉽지 않잖아. 애초에 거의 네 것이 된 상황이니까.

그래, 내가 손가락이 근질거려서 그러는 건지도 모르지만, 나는 원래 다른 사람에게 주기 싫은 건 전부 독차지하는 사람이거든. 제로섬 게임이지. 가져갈 수 있는 건 모두 가져가야 해. 중요한 건 나 혼자 가져가는 게 아니라는 거고.

너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잖아. 난 좋아하는 사람은 가까이에 두지. 아주 가까이 말이야. 누군가의 손이 내 목을 붙잡고 있으면, 날 죽이려 하든가 입을 맞추려 하든가 둘 중 하나 아니겠어.

난 선택지를 열어 두는 것을 좋아해.

3.3. 가슴

"침몰하는 배를 구할 방법은 없어. 선택해야지. 가라앉든가, 헤엄치든가." —방랑자

기분이 어때, 영웅 나으리?

지금 죽은 심장이 네 가슴 속에서 뛰고 있잖아. 네가 아직까지 움직이고 있는 건 누군가 네게 시킬 일이 있고, 네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최근에 네 관점에 대해 물어 본 사람 있어? 요즘은 달라지는 것도 많지. 여기로 가라. 저걸 사냥해라. 저자를 죽여라. 너라면 이렇게 얘기하겠지. "그래요, 방랑자! 난 그런 일이 너무 좋아요!"

그래, 분명히 얘기하지만, 넌 그래. 알겠어?

너한테 티끌을 좀 반납하라고 했다고 해서 내가 죄책감을 느껴야 할까? 내가 너한테 직접 결정하라는 말을 하길 바라겠지? 넌 딱 그만큼 멍청한 거야.

내가 네게 기분이 어떠냐고 묻는 건, 아무도 그런 걸 물어볼 사람이 없기 때문이야. 신뢰의 문제라고.

3.4. 다리

"운명으로부터 달아날 수는 없다고들 하지. 다들 이 방랑자님이 움직이는 걸 본 적이 없는 모양이야." —방랑자

네가 누구인지는 몰라. 어떤 파벌을 따르려고 하는지도, 어느 쪽에 있는지도 몰라. 앞면일 수도, 뒷면일 수도 있겠지. 그냥 모서리일 수도 있고. 동전이 떨어지기 전에 쏘는 쪽일 수도 있고.

내가 그 동전을 주울 사람이라는 것만 잊지 마.

자기 총알구멍 주위에 과녁을 그려 넣은 친구 얘기 들어 봤어? 이 방랑자님의 계획이 구체화되고 있어. 내 생각만큼 말끔한 건 아니지만, 괜찮은 친구들이 곁에 있으면 실현될 수 있겠지.

그래서 네게 이 메시지를 남기는 거야. 아무것도 개의치 않는 사람이라면 뒤져 볼 만한 곳에 말이야. 분위기가 변하고 있어. 젠장, 이미 다 변해 버린 건지도 모르지. 하지만 방랑자에게 걸면 손해는 보지 않을 거라고.

아직 시간은 많아. 그냥 예전 같지 않을 뿐.

3.5. 직업

"파멸의 예언자들의 말에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 거 정말 웃기지 않아? 가장 정직한 사람들인데 말이야." —방랑자

빛이 선택한 축복받은 마법의 아이가 된다는 건 길을 잃어도 언제든 되돌아올 수 있다는 뜻이지. 그러니 동상 걱정에 머리가 무겁다거나 하면, 잠깐 잊어버려도 돼. 아프지 않다는 건 아니야. 당연히 아프지. 하지만 설사 발가락을 잃는다고 해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야. 물론 많이 떨어지면 그걸로 스튜라도 끓일 수 있다는 생각은 하겠지만.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그러면 안 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발이 튼튼하지 않으면 위태로운 절벽 위를 걸어갈 수 없다는 거야. 충분히 높은 곳에서라면 양쪽 중 어느 쪽으로 떨어져야 할지 미리 엿볼 수 있겠지.

무슨 말인지 알겠어? 방랑자를 따라오려면 좋은 신발을 신으면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