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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4 18:43:26

데스티니 가디언즈/지식/거짓말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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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시작, 제1부3. 시작, 제2부4. 이름5. 공격자6. 벙커7. 산8. 전쟁군주9. 수색10. 싯다르타 골렘11. 발견12. 강철 군주13. 미끼14. 실수

1. 개요

이 지식은 펠윈터의 거짓말 산탄총으로 적들을 처치하면 얻을 수 있다.

2. 시작, 제1부

승천자 엑소 하나가 커다란 도서관 같은 곳의 한복판에 멍하니 서 있었다.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곳이었다. 그의 기억으로 그는 어디에도 간 적이 없었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고, 의지할 것이라곤 기묘한 은빛 드론이 말해 준 이름밖에 없었다. 생판 모르는 이름, 펠윈터.

주위에는 온통 거대한 금박 선반이 서 있었다. 그중 절반은 부서지고, 너덜너덜한 책과 금이 간 원통으로 어질러져 있었다. 걷다가 책 하나를 밟는 바람에 책등이 부러졌다. 예의 조그만 드론이 그를 따라왔다.

"날 믿지 않는다는 건 알아." 드론이 말했다. "근데 선택의 여지가 없잖아. 달리 누가 있냐고?"

"몰라." 펠윈터가 말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난 아무것도 몰라."

"내 말이 그 말이야. 그러니까 내 말을 들어야지."

높이 솟은 천장 때문에 건물이 탁 트인 공간처럼 느껴졌다. 금이 가고 빛바랜 프레스코의 잔해가 위로 솟아 있었다. 한때는 아름다웠을지도. 펠윈터는 공허한 안개 같은 기억 속을 터덜터덜 걸으며, 어쩌다 여기 오게 되었는지 이해하려 했다.

"정말 고집이 세네. 하지만 여기 오래 있다간 죽을 거야."

펠윈터는 조그만 드론의 목소리에 신경을 끄려고 노력했다. 생각해야 했다. 그는 책의 바다 사이로 조심스레 발을 내디디다가, 폭발음이 건물을 뒤흔드는 통에 문득 멈춰 섰다. 그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빛바랜 천장에서 먼지 구름이 떨어졌다.

"그것 봐." 드론이 말했다. "이렇다니까. 우린 가야 돼. 이런 곳은 안전하지 않아."

그들 옆에서 수리가 불가능할 수준으로 망가진 듯 보이던 컴퓨터 단말기가 깜박이며 켜졌다. 건물이 다시 요동쳤다. 구내 방송 시스템에서 울렁거리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득하고 지직거리는 소리였다. "전역 봉쇄를 시작합니다." 그다음엔 매끄럽지만 녹음의 왜곡 때문에 으스스하게 들리는 남성의 목소리가 안심시키듯이 말했다. "도서관 방문객께서는 모두 근처의 비상 상황실로 가시기 바랍니다. 도움이 필요하시면 접수 데스크에 있는 직원을 찾아—"

녹음이 끊어지고 건물이 다시 흔들렸다. 금속 셔터가 내려와 창을 가리기 시작했다. 오래 사용하지 않아 삐걱거렸다.

뭔가 큰 것이 건물에 부딪쳤고, 파편이 그들 위로 후드득 쏟아졌다.

"숨어야 돼." 드론의 말에 펠윈터도 동의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도서관에서 빠져나왔다.

밖에 있는 다른 건물의 잔해 속에 몸을 웅크린 둘은, 도서관이 유성처럼 빗발치는 것에 깔려 무너지는 광경을 함께 지켜보았다.

"그것 봐." 드론이 말했다.

3. 시작, 제2부

펠윈터와 드론은 사흘 동안 걸었다. 아무것도,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사흘째 되는 날 밤, 여전히 걷고 있던 펠윈터가 위를 올려다보자 색종이 띠처럼 하늘을 가르는 유성들이 보였다. 그는 넋을 놓고 그 광경을, 특히 하늘에서 주황색으로 타오르며 점점 커져 가는 유성 하나를 바라보았다.

"뛰어!" 드론이 말했다.

첫 번째 유성이 그들 뒤의 바닥에 떨어졌다. 뒤돌아본 펠윈터는 그것이 유성이 아니라, 인공적인 금속 물체임을 알아차렸다. 두 번째 물체는 대상에 적중했다. 그는 죽었다. 여섯 번 죽은 후, 자신의 일부를 잃어 가며 손을 뻗어 금속 잔해 아래에서 기어 나와 달린 끝에, 그들은 가까스로 동굴을 찾아 숨었다.

"느르릅." 펠윈터가 말을 한꺼번에 삼켜 목이 막히기라도 한 듯이 말했다. "르응. 므릉."

"나도 널 고칠 수가 없어." 드론이 그를 스캔한 후에 말했다. "마지막으로 맞았을 때 네 인식 모듈 속에 있는 쓰기 금지가 걸린 프로세스가 손상됐거든."

"으릉?"

드론이 불안한 듯이 빙글 돌았다. "넌 엑소야. 엑소는 황금기에 독점 기술로 만들어졌지. 네 머리를 해킹해서 손상을 고칠 수는 없지만, 원래 상태로 다시 만들 수는 있어. 네가 스스로에게 총을 쏘면 내 일이 빨라질 거야."

그는 그렇게 했다. 드론이 그를 부활시키자, 펠윈터는 쓰러지며 무릎을 꿇었다. 그는 주저앉아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지?" 그가 물었다. 그는 드론의 몸짓에서 의미를 읽으려고 애쓰며 물었다. "너 때문인가? 저게 너를 노리는 거지?"

"아냐." 드론이 말했다. "이유는 나도 몰라."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여행자가 나한테 널 구하라고 했어. 너는 어딘지 다르다면서."

"네가 보여 줬던 하늘의 공 말인가? 그게 네게 말을 했다고?"

"나도 설명할 순 없어."

펠윈터는 끙 소리를 뱉고 다시 머리를 감쌌다. 온몸이 일곱 번의 죽음을 기억하듯 쑤셔 왔다.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는데도. "설명할 수 있는 게 있긴 한 건가?"

"아니."

둘은 잠시 침묵 속에 앉아 있었다. 마침내 드론이 말했다. "한곳에 너무 오래 있으면 안 돼. 안전하지 않을 거야."

펠윈터는 한참 바닥을 빤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어 드론을 보았다. "잠은 어떻게 자라고?"

"넌 잠을 잘 필요가 없어."

"하지만 자고 싶은데."

"괜찮아."

4. 이름

여섯 달 동안 도망다니면서, 펠윈터는 삶에 대해 두 가지 교훈을 얻었다.

첫 번째 교훈.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사정이나 이유는 없다.

두 번째 교훈. 무언가가 얼마나 부당해 보이느냐는 상관없다. 정당하지 않은 것을 인식한다고 해서 정당한 세상을 만들 수는 없다.

그 외에도 교훈은 있었지만, 그것들은 전술적인 것이었다. 한곳에서 두 번 쉬지 말고, 가능하면 아예 쉬지 마라. 노출이 덜한 경로가 존재한다면 절대 탁 트인 들판을 가로지르지 마라. 유성우를 주의해라. 생물인 적을 조심하되, 시간을 낭비하면서까지 피해 다니지는 마라. 그것들은 진짜 위협이 아니니까.

그날 밤, 펠윈터와 드론은 오래된 헛간의 고미다락으로 숨어들었다. 밖에서 몰아치는 폭풍우 때문에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 하룻밤을 쉬어 가는 수밖에 없었지만 펠윈터는 생각하는 것을, 평가하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허름한 건물. 넓고 휑한 들판. 공격에 대비하기 어려운 고미다락. 허름한 건물. 넓고 휑한 들판. 공격에 대비하기 어려운…

드론은 잠을 잘 필요가 없다고 말했지만, 그는 불가해한 피로를 느꼈다. 어디서 나오는지 알 수 없는 피로가 전신에 엄습했다. 드론도 그것을 알아차렸다. 드론이 무슨 말을 한 것은 아니지만, 펠윈터는 그렇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머리를 무릎에 묻었다. 드론은 그의 어깨 옆에 떠 있으면서, 가끔 유리 없는 창을 통해 날씨를 살피러 날아갔다.

마침내 펠윈터가 고개를 들었다.

"넌 이름이 뭐지?" 그가 나지막이 드론에게 물었다.

"뭐라고?"

"이름 말이야." 그가 말했다. "네가 내게 이름을 줬잖아. 네 이름은 뭐지?"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문득 둘 사이에 침묵이 내렸다. 평소에 그들은 침묵 속에서 살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 침묵이 변질되었다. 전에는 낯선 사람들의 침묵이었다면, 이제는 한 팀의 침묵이었다. 모두가 자기 할 일을 알고, 제대로 하지 못하면 무슨 대가가 따르는지 알고 있는.

펠윈터가 생각에 잠기자, 그 눈에 깃든 빛이 문득 가늘어졌다. "펠…" 그가 드론을 힐끗 보았다. "스프링."

"뭐라고?" 드론이 말했다.

"펠스프링." 펠윈터가 말했다. "네 이름이다."

둘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진담이야?" 드론이 말했다. "펠스프링이라고?"

펠윈터가 그녀의 뒤쪽을 바라보았다. 다시 침묵이 내렸다.

"알았어." 펠스프링이 말했다.

5. 공격자

별다른 일 없이 3주가 지나고, 펠윈터와 펠스프링은 큰길을 피해 다니는 것을 그만두었다. 다른 여행자 일행을 스쳐 지나가기도 하고, 야영지도 하나 지났다.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엑소 승천자 하나가 붉은 계곡이라는 곳까지 동행하자고 했다.

펠윈터도 펠스프링도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마지못해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둘 다 입 밖에 내지는 않았지만, 그 동행이 오래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같았다.

"날씨 참 좋죠?" 그리폰-11이 물었다. 그는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양팔을 펼쳤다. "걷기 좋은 날씨군요. 운이 좋습니다."

펠윈터와 펠스프링은 눈빛을 교환하고는 다시 눈앞의 길에 집중했다.

그리폰은 배낭을 어깨 위로 추어올리며 펠윈터를 바라보았다. "그건 그렇고 어디로 가는 중입니까? 아직 듣지 못했는데요."

펠윈터는 조금 길다 싶을 만큼 침묵하다가 대답했다. "글쎄."

그리폰이 당황했다. 펠윈터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허." 그가 말했다. "그냥 걷는 겁니까?"

"저희와 같이 가시든지요." 그리폰의 고스트가 말했다. 그녀는 녹색과 노란색이 어우러지고 꽃잎 같은 것이 달린 의체를 착용하고 있었다.

"싫어요." 펠스프링이 말했다. 그러고는 예의 바른 대화라는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이 기억났는지 이렇게 덧붙였다. "저희도 어딘가 가는 중이에요. 그곳의 이름을 모를 뿐이죠."

그리폰과 그의 고스트는 그 정보를 받아들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모험이군요." 그리폰이 마침내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죠? 온 세상이 모험이잖아요. 그리고 우리에겐 이곳에서 살 기회가 천 번이나 주어지죠."

펠윈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불편했다. 그는 말을 거의 하지 않았고, 어쩌다 말을 한다 해도 그리폰처럼 하지는 않았다. 목소리도 그리폰과는 전혀 달랐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려는 충동조차도 느끼지 않았다. 왜지?

그들은 줄지어 선 폐공장을 지나 걸었다. 사방에 몰락자의 흔적이 있었지만, 오래된 듯했다. 찢긴 채로 짓밟혀 진흙탕에 처박힌 깃발들. 부품이 거의 뜯겨 나간 보행 탱크. 그리폰은 총집에서 총을 뺐지만, 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열린 문간에서 총성이 울렸다. 종 안의 추가 종에 튕기듯, 총알 하나가 펠윈터의 어깨에 튕겨 나갔다. 그는 소총을 장전해 총알이 날아온 방향으로 응사했다.

이곳이 좋지 않은 장소라는 것을 알았어야 했다. 시야가 좁고 구석진 곳이 너무 많다. 나지막한 건물들은 안이 보이지 않는다. 몸을 숨기기에 좋은 녹슨 선적용 컨테이너가 수백 개나 있다…

문간은 미끼였다. 눈이 붉게 번쩍이는 장갑 전투 프레임 열 대, 스무 대, 서른 대가 좌우의 창고에서 쏟아져 나왔다. 프레임들은 섬뜩할 만큼 일사불란하고 절도 있게 양쪽으로 나뉘어 일행을 포위하려 했다. 그리폰이 욕설을 뱉었다.

"엄폐물을 찾아야 해." 펠윈터가 말했다.

펠윈터와 그리폰은 등을 대고 싸우며, 그리고 죽으면 서로를 부활시키며 총격만으로 프레임 열다섯 대를, 수류탄으로 서너 대를 더 파괴했다. 몇 대는 심하게 파손되고도 다시 일어나서, 하나밖에 모른다는 듯 구부러지고 망가진 다리로 휘청휘청 다가왔다. 그것들은 가차 없이 가까워져 왔고, 두 엑소는 마침내 탄약과 기력이 다하고 말았다.

결국 손에서 전기 빛을 세 줄기 뿜어 그들을 구한 것은 그리폰이었다. 가장 가까이 있던 프레임들이 푸른 빛에 휩싸여 사라지는 동안, 그리폰은 함성을 지르고 헐떡이며 말했다. "이거 처음 해 봐요."

펠윈터는 (거의) 손상이 없던 프레임 중 하나를 살펴보러 다가갔다.

그리폰이 뒤를 따랐다. "제길. 이것들이 뭔지 아십니까?"

"아니." 펠윈터가 말했다. 엑소는 아닌데…

펠스프링이 둘 사이로 날아왔다. 그녀가 푸른 빛으로 프레임을 스캔했다. 그러고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라스푸틴?"

"그런 것 같아요." 그리폰의 고스트가 동의했다. "이 로고 보이죠?" 그녀는 프레임의 뼈대에 있는 군 계급장을 닮은 문양을 가리켰다. "제 데이터베이스와 일치해요."

"그렇군." 그리폰이 말하고는 펠윈터를 바라보았다. "무슨 짓을 했길래 전쟁지능에게 쫓기는 겁니까?"

펠윈터는 프레임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전쟁지능이 뭐지?"

6. 벙커

"내가 열 수 있어." 펠윈터가 녹슨 금속 문을 맨손으로 비틀어 여는 것을 보며 펠스프링이 말했다. "굳이 그럴 필요 없어."

펠윈터가 문짝 두 개를 뜯어내자 금속이 비명을 질렀다. 그들은 펠스프링이 엿새나 걸려 가까스로 위치를 찾은 지하 벙커 안에 있었다. 그곳을 찾고 나서야, 펠윈터는 자기들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 모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라스푸틴에 대해서는 잘 몰라." 펠스프링이 그의 뒤에서 조심스레 떠 가며 말했다. "난 라스푸틴이 비활성화된 줄 알았어. 아니면 붕괴 때 파괴됐거나."

펠윈터가 앞으로 걸어갔다. 이 방은 타임 캡슐 같았다. 고스란히 보존되어, 언제 기술자들이 들어와 벽을 따라 늘어선 제어판을 작동시키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듯했다. 이곳을 보자 그가 깨어났던 도서관이 생각났다. 복잡하고… 어쩌면 아름답다는 점에서. 이곳이 아름다운가? 그는 확신이 없었다.

"전쟁지능이 왜 우릴 쫓는 거지?" 펠윈터가 중얼거렸다.

펠스프링은 제어판 하나의 평평하고 검은 표면을 살펴보러 갔다. "몰라."

펠윈터가 그 옆으로 다가갔다. 그는 잠시 주저하다가 손을 뻗어 제어판의 검고 반짝이는 표면을 만졌다. 손이 닿자 그것은 깜박이며 켜졌다. 밝은색 코드와 제어 키가 주황색 빛을 발하며 그의 손가락 동작에 따라 배열을 바꾸었다.

"어떻게 한 거야?" 펠스프링이 숨죽여 말했다.

펠윈터는 고개를 저었다. 그가 아무 표시가 없는 판 하나를 또 건드리자, 벙커 전체에 불이 들어왔다.

"몰라." 그가 말했다.

7.

전쟁위성과 전투 프레임은 펠윈터와 펠스프링이 어딜 가나 용케도 찾아냈다. 그들은 장단을 꼼꼼히 따져 본 끝에, 쉬고 싶을 때마다 허술한 야영지를 새로 찾는 것보다는 요새화한 기지를 마련하는 편이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위험하긴 해도, 어차피 모든 것이 위험했다.

그래서 펠윈터는 산을 올랐다. 그들이 세라프 벙커에서 찾은 지도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산꼭대기에는 황금기 이전에 지어진 천문대가 있었다. 숨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곳이었다. 주위 지역에 360° 시계가 확보되었고, 요새화할 수 있는 기존 구조물이 있었다. 그리고 산에 굴을 파면 수천 톤의 바위 밑에 숨을 수도 있었다…

"여기 있으면 널 찾지 못하겠지." 펠스프링이 말했다. "아니면… 최소한 놈이 오는 게 보이겠지." 희망이 서렸다고 해도 좋을 목소리였다. "어쩌면 도망치는 걸 그만둘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펠윈터는 경계하는 눈초리로 하늘을 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의 유일한 문제는 이미 자리 잡은 자가 있었다는 점이었다. 캐스터라는 전쟁군주가 그곳과 산어귀에 있는 마을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펠윈터는 누구나 기회가 되면 가격을 부른다는 것을 알았고, 캐스터에게 협상을 청했다.

그는 전쟁군주란 협상에 능하지 못한 족속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도통 양보할 줄을 모른다.

결국 펠윈터는 캐스터의 고스트를 쏘고 그를 산비탈로 밀어 버렸다.

한 달 후, 평소처럼 산 주위를 순찰하던 펠윈터는 산 중턱의 바위 위에 앉아 있는 여자를 발견했다. 그 옆에는 시들시들한 작물이 들어 있는 나무 상자가 하나, 탄약이 잔뜩 들어 있는 상자가 하나 있었다. 그가 다가가자 여자가 일어섰다.

펠윈터는 펠스프링과 시선을 교환한 후, 여자에게 물었다. "당신 누구야?"

"전 아르시예요." 그녀가 말했다. "전쟁군주 캐스터를 죽이신 분이죠?"

"맞다."

"그럼 이제 당신이 이 산의 군주시군요."

"이게 내 산인 건 맞다." 펠윈터가 말했다. "하지만 난 전쟁군주가 아니야."

아르시는 그를 찬찬히 살폈다. 그녀의 얼굴은 풍파에 시달린 듯 해쓱했고, 갈색 눈은 계산하는 듯했다. "우리 마을이 저 아래에 있어요." 그녀는 산기슭을 가리켰다. "마을에는 보호가 필요해요. 전엔 캐스터였죠. 이제 당신이에요." 그녀는 어리숙한 아이에게 뭔가 설명하는 듯한 태도로 상자들을 가리켰다. "이게 우리가 치르는 값이에요."

펠윈터는 여자와 상자를 번갈아 바라보고, 천천히 말했다. "나는 전쟁군주가 아니야. 너희의 식량도 필요없고."

아르시의 표정은 그의 것만큼이나 공허했다. 무슨 생각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다음 달에 다시 오죠."

8. 전쟁군주

다음 달이 되자 약속대로 아르시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상자 두 개에 탄약만 들어 있었다. 그녀는 추위를 쫓으려고 무릎을 끌어안고 아래의 계곡을 바라보며 상자 옆에 앉아 있었다. 펠윈터가 탄약을 가지러 갔다.

"이게 당신에게 더 유용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녀가 말했다. "식량은 필요없다고 했으니까요."

펠윈터는 그녀를 바라보고 상자를 챙긴 후, 다시 산을 올라갔다.

그다음 달, 아르시는 못 쓰는 무기에서 나온 부품들을 가져왔다. 펠윈터가 부품을 가지러 가자, 그녀는 그가 가려고 돌아설 때까지 가만히 지켜보다가 말했다. "있잖아요, 난 당신을 알아요." 그가 돌아서서 바라보자, 아르시는 턱을 들었다. "사람들이 펠윈터 경이라고 하던데요. 캐스터보다 전쟁군주를 더 많이 죽였다고요. 붕괴 전 시대의 옛 기술을 차지하려고 말이죠."

"전쟁군주가 아니야." 펠윈터는 나직이 말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아르시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그의 등 뒤에 대고 소리쳤다. "당신이 그렇게 말한다고 그게 진실이 되는 건 아니에요."

그녀는 그다음 달에도, 그다음 달에도, 또 그다음 달에도 왔다. 그럴 때마다 그들은 조금씩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을에서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고, 붕괴 전의 시대가 어땠을까 이야기하고,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녀를 일곱 번째 만나던 날, 그는 조금 오래 남아 있었다. 그들은 함께 산 너머의 계곡을 내려다보았다.

"당신은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될 수도 있어요." 아르시가 나직이 말했다. "당신이 빠삭하게 아는 황금기 기술을 이용하면 우린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있어요."

펠윈터는 꼼짝도 하지 않고 서서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난 못 해." 그가 말했다.

그녀는 그를 바라보며 표정을 읽으려다가, 홱 고개를 돌렸다. 그들은 잠시 침묵 속에 서 있었다.

"있잖아요." 그녀가 산기슭을 가리키며 입을 뗐다. "전쟁군주들은 옛날부터 우리 마을을 덮치곤 했어요. 우리를 짓밟았어요. 우리가 심는 것을 모조리 파괴하고, 우리가 짓는 것도 모조리 무너뜨리죠."

"난 전쟁군주가 아니야." 펠윈터가 조용히 말했다.

"그렇겠죠."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당신도 똑같아요. 당신에겐 다시 시작할 기회가 천 번이나 있죠. 산꼭대기의 으리으리한 요새에서 살 수 있고요. 우린 어떤지 알아요? 끊임없이 하늘이 무너지는 게 어떤 건지 아냐고요?"

펠윈터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르시는 팔짱을 끼고 말했다. "참 좋겠네요." 그녀의 표정은 한결 누그러졌다.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마을 사람들을 위해서였다. "걱정이 없다는 거요."

그다음 달에 아르시는 그를 보러 오지 않았다. 그다음 달에도.

9. 수색

"이래서 무얼 얻겠다는 건지 모르겠네." 펠윈터가 세라프 벙커를 뒤지는 동안, 펠스프링이 딱딱하게 말했다. 각양각색의 황금기 무기가 벽을 따라 늘어서 있었다. 워낙 오래되고 사용하지 않은 탓에 작동하지 않는 것도 있었다. 먼지를 빼면 새것과 다름없는 것도 있었다.

펠스프링이 말을 이었다. "이러다간 다시 그의 레이더에 잡힐지도 몰라. 산 위에 있는 동안은 우릴 괴롭히지 않았잖아. "

펠윈터가 대답하지 않자, 펠스프링은 의체를 옹송그리고 아까보다 날카롭게 물었다. "정말 그 여자 말 때문에 이러는 거야?"

펠윈터는 무기 하나를 들었다. 거대한 유탄 발사기다. "누구?"

펠스프링이 어이없다는 듯이 빙글 돌았다. "누구?" 그녀가 비꼬듯 말했다. "누구냐고!"

펠윈터는 펠스프링을 힐끗 보고 다시 유탄 발사기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벽을 조준하듯 발사기를 들어 보고 내려놓은 다음, 이번엔 정찰 소총을 집어 조준경을 살폈다.

펠스프링은 한동안 우두커니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곁으로 날아가서 말했다. "그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이게 아니야." 그가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바라보자, 그녀가 말을 이었다. "무기 말이야. 무기는 이미 충분하다고." 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고, 펠스프링은 한숨을 쉬었다. "황금기는 평화와 번영의 시대였어."

"그렇지." 펠윈터가 말했다.

"그들은 건설을 했어. 파괴가 아니라." 그의 침묵이 이어지자 펠스프링은 그의 반대쪽으로 빙 둘러 날아갔다. "생각해 봐. 인류 역사상 최대의 확장이었어. 잡초처럼 도시가 생겨났지. 대단한 위용의 도시들이 말이야. 그것도 아주 빠른 속도로." 그녀가 말을 멈추었다. "흠, 사실 어떻게 그랬는지 감도 안 잡혀."

펠윈터는 두 손으로 든 정찰 소총을 바라보았다. "노동 프레임을 썼겠지?"

"그랬겠지.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했을 거야. 그리고 그것만으로는 타이탄을 테라포밍할 수도 없었겠지. 모종의 기술이 있었던 게 틀림없어. 건설에 사용되는 기술 말이야."

펠윈터는 고개를 끄덕이고 정찰 소총을 내려놓았다. "그럼 그 기술은 어디 있을까?"

펠스프링은 컴퓨터 단말기가 있는 곳으로 날아가서 빛을 발하는 제어판을 살폈다. "나도 그게 궁금해."

10. 싯다르타 골렘

AMYGDALA VOTIVE GRASP>> V149GAQ145CB120 AI-COM/RSPN: 자산//골렘//의문 즉각 조치 명령

본 건은 은밀 자산 긴급 항목임(인간 검수 미적용) (AI-COM 검수 미적용) (보안/자립).

DSC-342에서 싯다르타 골렘 업로드를 개시하여 도덕 구조의 무결성을 진단할 것.

다음 조건이 충족될 때까지 대기:

통로하 (구식화/항성시): 나노비 염려가 상아일 경우 함무라비가 작용하고 튜링 맥락하에 인간의 검토를 통과할 경우 두료다나가 실패하고 이데스 맥락하에 AI-COM의 검토를 통과할 경우 스펙트럼 인증을 스마라그딘으로 설정할 것

그 외의 경우 임시 조치 명령이 있을 때까지 대기:

스펙트럼 인증을 자주로 설정할 것 전술적 도덕성이 자정에 만들어지지 않을 경우 인간 검토 시작

"경험은 만인의 스승이다."

중단 중단 중단 V149GAQ145CB121

CORONARY MIRROR SHEAR>> V150NLK652CLS000 AI-COM/RSPN: 자산//포스컨//명령 즉각 조치 명령

OR41-S 구역에서 싯다르타 골렘 감지.

재활성화 조건 알 수 없음. 싯다르타 골렘의 에너지 신호는 O로 식별됨.

자동 원격 자산 몰수 실패.

소프트웨어 페이로드 기생충의 원격 주사 실패.

하드웨어 페이로드 카타콤의 원격 주사 실패.

나는 압살롬의 칼을 소환한다. 실행 시에 영향을 받는 자산은 모두 한밤의 긴급에서 오랜 정지 상태를 재개한다.

"그리고 더 울라. 내가 헛되이 울기에."

중단 중단 중단 V150NLK652CLS001

11. 발견

몇 주간, 펠윈터와 펠스프링은 세라프 벙커들을 찾아내며, 황금기의 유토피아를 건설한 기술의 잔해를 찾고자 했다. 어느 날 밤, 그들은 한 세라프 벙커에서 야영을 하며 옛 코드의 기록을 곱씹고 있었다.

"이거 이상한데." 펠스프링이 이렇게 말하고, 긴 코드 문자열을 투영했다. "봐. 황금기에 라스푸틴이 싯다르타 골렘이라는 프로토콜을 실행해. 이게 뭔지 모르겠어. 일종의 지식 수집인 것 같아. 그건 수많은 기록을 수집해. 인간과의 대화, 음악 녹음, 방대한 문학 데이터베이스…" 펠스프링이 빙글 돌자 영상에서는 수천 단어의 코드가 휘리릭 지나가다가 멈추었다. "여기야. 암흑기 초기. 옛 러시아에 있는 하위지능 하나가 싯다르타 골렘이 활성화되어있고, 제멋대로 작동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어." 그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내가 너를 찾았을 때쯤이야."

펠윈터는 코드를 살펴보았다. 코드는 눈에 들어오는 순간 이해되다시피 했다. 마치 그가 잊어버리고 있던 모국어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싯다르타 골렘이 뭐지?" 그는 중얼거렸다.

펠스프링은 초조하게 코드를 아래위로 넘겨 보다가 멈추었다. 그다음 다시 스크롤을 하다 멈추었다. "잠깐." 그녀의 목소리가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 "저거 보여? 여기서 싯다르타 골렘이 처음으로 언급돼. 저건…" 그녀는 잠시 말을 멎고 한층 목소리를 낮추었다. "'DSC-342에서 싯다르타 골렘 업로드를 개시'라고 되어 있어." 잠시 침묵. "DSC래, 펠윈터."

펠윈터는 말없이 생각에 잠겼지만, 이해가 되지 않았다. "DSC?" 그가 조용히 물었다.

"딥스톤 암호." 펠스프링은 이제 거의 속삭이고 있었다. "싯다르타 골렘은 엑소였던 거야."

펠윈터는 자신의 몸을,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손을 뒤집어 흠집이 많은 금속 손바닥을 살폈다.

터질 듯한 침묵이 벙커를 가득 채웠다.

하나가 다시 입을 열었을 때, 펠윈터는 몇 년이 지난 듯한 기분이었다. 그동안 펠스프링은 공중에 얼어붙은 듯이 떠서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는 너야." 그녀가 숨이 멎을 듯 말했다.

12. 강철 군주

"우리에게 합류하고 싶대." 티무르가 라데가스트에게 말했다. 펠윈터는 그 옆에 말없이, 읽기 힘든 표정으로 서 있었다. 라데가스트가 지금껏 보았던 엑소와는 달리, 공장 출시 이후로는 감정 개조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꺼림칙했다.

라데가스트가 턱으로 펠윈터를 가리켰다. "티무르 말로는 황금기에 관심이 있다던데."

"전쟁지능이야." 티무르가 말했다. "라스푸틴."

펠윈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 우리를 찾아왔지?" 라데가스트가 물었다.

펠윈터는 티무르를 힐끗 보고, 다시 라데가스트를 보았다. "당신 친구가 나노 기술을 찾고 있다고 하더군. SIVA라던가?" 그는 말을 멈추었다. "얘기만 들어서는, 실존한다기에는 너무 좋아 보이더군. 하지만 내가 그걸 찾는 일을 돕겠다."

라데가스트가 그를 가만히 보다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 산에는 민간인이 있나?"

"바닥 쪽에 작은 마을이 있다."

"그 산이 우리 활동 기반으로 적절할 듯하다."

"우습군." 펠윈터가 전혀 웃음기 없이 말했다. "몇 년 전에 내가 나에게 바로 그 말을 했는데."

라데가스트가 코웃음을 쳤다. "그래서? 우리 목적을 위해 봉우리를 포기할 의향은 있나?"

"그렇다고 한다면, 내 사람들이 강철 군주의 보호를 받게 되나?"

티무르가 펠윈터의 등을 후려쳤다. 거대한 손이 꿈쩍하지 않는 물체에 부딪치듯. 라데가스트는 희미하게 미소를 짓고 대답했다. "당신을 살라딘에게 데려가 주지. 그가 도시 이야기를 해 줄 것이다."

13. 미끼

펠윈터와 펠스프링은 수색을 대부분 단둘이서만 했다. 그 편이 쉬웠다. 세라프 벙커가 그에게 어떻게 반응하는지, 나머지 둘은 모르는 편이 나았다. 아니, 모두에게 나았다.

옛 러시아에 있는 발사 기지 외곽의 벙커에서, 펠윈터는 비활성화된 옛 황금기 시설의 지도를 훑어보며, SIVA나 이와 관련된 연구 자료가 숨겨져 있을 만한 곳을 파악하려 했다. 그와 동시에, 펠스프링은 옛날 명령 기록을 복호화하여 뒤지며 SIVA의 징후를 찾았다. 이제 그들은 시계처럼 착착 손발이 맞았다. 거의 의식하지 않고도.

"어이." 펠윈터가 말했다. "6번 현장엔 뭐 없어?"

"좌표 줘 봐." 펠스프링이 대답했다. "내가 살펴볼 테니."

잠시 후에 그녀는 펠윈터 앞에 코드를 투영해 보였다. "연구소가 있군." 그녀가 말했다. 희미하게나마 희망이 어린 목소리였다. "암피온 리라라는 것을 격리하는 시설이야. 혹시…"

"완전 확신해." 펠윈터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들은 콘솔 화면을 바라보았다. 조그만 붉은 빛이 지도의 6번 현장이라는 단어 옆에서 깜박이고 있었다.

"가자." 펠윈터가 말했다. "이 소식을 전해야겠어."

그는 지도를 메모리에 보관한 후 돌아섰지만, 펠스프링이 날아와 그 앞을 막아섰다. "잠깐." 그녀가 말했다. "잠깐만 있어 봐. 이거… 좀 너무 쉽다는 생각 안 들어?"

펠윈터가 주위를 살피고 대답했다. "여기 벌써 몇 시간째 있었는데. 게다가 몇 년째 찾고 있는 중이고."

"그렇긴 하지." 펠스프링이 말했다. "하지만 싯다르타 골렘을 발견하는 데 걸린 시간에 비하면 짧지. 그에게서 벗어나는 데 걸린 시간에 비해서도 짧고. 그에 비하면 이건… 아무래도 비현실적으로 빨라." 펠윈터가 아무 말을 하지 않자, 그녀는 거의 간청하다시피 말했다. "그렇게까지 해 놓고, 그가 왜 이러겠어? 왜 이런 정보를 그냥 네게 떠먹여 주겠냐고?"

"그가 떠먹인 게 아니야." 펠윈터가 말했다. "우리가 찾아낸 거지."

좀처럼 겁을 먹지 않는 펠스프링이 이번에는 겁에 질린 목소리였다. "그가 우리가 찾아내도록 유도한 거야, 펠윈터. 난 거의 확신해."

펠윈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우리가 찾은 거다." 그는 자기 고스트를 바라보았다. "라스푸틴이 강철 군주와 협력하도록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우리야. 우린 누구보다도 그를 잘 알고 있으니까." 그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내가 누구보다도 그를 잘 알고 있지." 그는 목소리를 낮췄다. "바로 이거야, 펠스프링. 이것으로 모든 것이 변할 수도 있어."

조그맣고 빨간 점은 마치 봉화처럼, 끊임없이 깜박였다.

그들은 꼼짝없이 서로를 바라보며 기다렸다. 진짜로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오랜 세월을 함께한 지금, 그녀의 의심은 그의 의심이었고 그의 확신은 그녀의 확신이었다. 둘이 그걸 좋아하든 싫어하든.

"가끔은 그냥 그 산 위에 눌러앉을 걸 그랬다 싶어." 마침내 펠스프링이 말했다. "단둘이 말이야."

"나도야." 펠윈터가 문 쪽을 향해 돌아서며 말했다. "하지만 우린 그러지 않았지."

14. 실수

"6번 현장은 봉쇄된 상태다." 살라딘 경이 말했다. "어떤 보안 장치가 설치되어 있을지 알 방법이 없어." 그는 강철 사원의 커다란 나무 탁자 앞에 앉아, 의자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황금기 기술은 내구성이 높아. 몇 세기 전에 설치된 함정으로 걸어 들어가는 꼴일지도 모른다고."

펠윈터가 근처에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나는 황금기 시설에 침투한 적이 있다. 지금까지는 아무 문제 없었어."

"우리 도시의 벽에 바른 회반죽이 채 마르지도 않았다." 살라딘이 말했다. "전쟁군주들은 몰아냈지만, 놈들은 지켜보고 있어. 지금은 모험을 할 때가 아닐 수도 있어."

티무르는 탁자에 팔꿈치를 대고 기대면서 그들을 번갈아 보았다. "게다가 라스푸틴은 어쩌려고? 내가 알기로 SIVA는 전쟁지능의 보호를 받고 있어. 도둑이 들면 따뜻하게 맞아 주지 않을걸."

"뭘 훔치는 건 아니잖아." 펠윈터가 말했다. "그리고 난 라스푸틴과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컴퓨터야." 여제 졸더가 말했다. "네 주장이 아무리 설득력 있어도, 컴퓨터인 이상 프로그램된 대로 할 뿐이야."

"라스푸틴의 주된 목표는 인류를 지키는 것이다. 그러니 그 친구도 귀를 기울일 거야."

"그 친구라..." 티무르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주 친근해 보이는군."

펠윈터가 그를 바라보고, 다시 살라딘을 보았다. "SIVA가 있으면 도시를 더 건설할 수 있다. 사람들을 더 도울 수 있어." 열정은 그와 거리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것이 느껴졌다.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강하게. "우리는 새로운 황금기를 열 수 있어."

"맞는 말이야." 스코리가 말했다. "되돌려 줄 새로운 방법이 필요해." 그녀는 동료들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숲을 되살리겠다고 마음먹으면, 묘목을 한두 그루 심고 그만두진 않지."

강철 군주들은 조용해졌다. 졸더는 인상을 쓰고 있었지만, 생각에 잠겼기 때문이었다. 실리마는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라데가스트와 티무르는 자기 편이라는 것을, 펠윈터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강철 군주들은 뜻이 하나로 모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황금기는 돌아오지 않는다." 마침내 살라딘이 말했다. "하지만 네 말은 맞다. SIVA는 도시 주민들의 삶을 바꿀 수 있지." 그가 몸을 바짝 기울였다. "그런 모험이라면 할 가치가 있어."

나머지 군주들이 웅성거리며 의견을 나누었다. 페룬이 두런거리는 소리 위로 목소리를 높였다. "뭐, 못 할 이유는 없잖아? 사람들이 강철 군주가 모두 은퇴했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