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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4 18:38:51

데스티니 가디언즈/지식/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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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붉은 상자3. 서고4. 뼈5. 켈6. 리바이어던7. 관문8. 선언9. 아홉10. 마녀

1. 개요

이 지식 책은 결단의 장소 곳곳에 숨겨진 물체들을 찾아서 얻을 수 있다.

2. 붉은 상자

"저게 그 사람인가요?" 라비니아는 속삭이듯 말했다.

"오, 그래. 우리 줄처럼 '불안한 표정으로 당황하는' 척을 잘하는 사람은 없지." 타이탄은 탑 격납고의 그림자 아래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망토를 두른 형체가 구부정하게 서 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창에 꿰뚫린 것 같은 모습이었다. "저 녀석은 여기 거래를 하러 오지. 우리가 허가해 준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막진 않거든."

실패하는 것만큼 성공하는 것도 두려워하던 라비니아는 흥분되는 마음에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쥴이에요." 그녀는 무심코 타이탄의 발음을 교정하고는 문득 자기가 너무 까다롭게 굴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미안해요. 해독가의 직업병이에요."

"그렇지. 줄. 내가 말하려던 게 그거야.\" 타이탄은 어깨를 으쓱했다. "나도 오래된 거 좋아해, 해독가. 가서 궁금한 걸 물어보지 그래."

라비니아의 어머니는 라비니아가 태어나던 날, 한 마녀가 그녀를 행운의 아이라 불렀다고 했다. 지금은 그 행운을 믿어 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격납고 아래로 내려가 결의에 찬 표정으로 그것을 향해 걸어갔다. 그것은 그녀를 보려고 두건을 벗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쥴." 그녀는 손을 어쩔 줄 몰라 하며 불렀다. "전 해독가 라비니아 가르시아 우므르 타윌이에요. 아홉을 연구하는 일을 택했죠." 그녀의 마스터는 바보들이나 아홉을 연구한다고 말했었다. "묻고 싶은 게 있어요."

"그럴 필요 없다." 꿈틀거리는 얼굴에 숨겨진 목소리는 낮고 어딘가 어울리지 않게 명료한 남자의 목소리였다. 상대방을 이해시키려고 진심으로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의 목소리 같다고 라비니아는 생각했다. "답을 알려 주마."

그녀는 이 질문을 오랫동안 준비해 왔다. 마스터와 친구들에게서 점차 멀어지는 동안에도 이 질문만이 그녀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 주었다. "금성의 이슈타르 침몰지에 있던 고스트로부터 정보를 회수했어요. 황금기의 우리 조상들이 발견한 유물에 관한 설명이 담겨 있더군요. 빨간색으로 칠한 구리 상자가 조금 손상되어 있었는데, 그 안에는 먼지가 가득했다고 적혀 있었어요. 그리고 각각의 먼지 티끌에는 바위 행성의 지도가 각인되어 있었죠. 화성, 지구, 금성, 다른 행성들까지… 은하계에 있는 지구와 비슷한 행성 전부 다 있는지도 몰라요."

쥴은 일그러진 얼굴을 들어 올렸다. 인간과도 같은 호기심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임시변통의 피상적 구조를 얼기설기 엮어 놓은 그 외계의 형체는 인간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이질적이었다. "행성." 쥴이 입을 열었다. "내 움직임은 대부분 행성의 구성에 따른다."

그녀의 몸은 크게 떨리지 않았다. "제 동료들은 그 유물이 벡스에게서 온 것이라고 했어요. 우리가 어디로 가든 그들이 존재할 거라는 경고의 의미라고요. 하지만 제 생각에는…" 라비니아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건 아홉의 물건인 것 같아요. 그 먼지 상자는 아홉이 남긴 건가요, 쥴?"

쥴의 황금빛 눈이 그녀를 향해 빛을 내뿜었다. "내가 여기에 온 데는 이유가 있다." 그가 말했다. "기억이 나지 않아… 먼지는 변했다. 그 먼지는 귀중하다."

"맞아요! 아홉이 우리에게 먼지를 보낸 건가요? 왜 그게 귀중한 거죠, 쥴?" 대체 왜 먼지인 걸까? 편지나 석판, 아니면 뭐든 조금 더 의미가 명확한 것이었으면 어땠을까?

"피." 쥴은 기침을 하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이렇게 말했다. "피는 변형된다. 소원은 승낙된다. 먼지는 혼합된다."

"벡스가 보낸 것일 리는 없어요." 쥴이 남의 말을 들을 줄 모르는 고집 센 해독가라도 되는 양, 그녀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라비니아, 이제 입 다물어.) "벡스는 물질을 계산의 기질로 활용해요. 소통의 매개체가 아니라요. 아홉이 은하계의 모든 바위 행성 지도를 그릴 수 있다면, 왜 무전으로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해 주지 않는 거죠? 왜 금성이죠? 왜 먼지냐고요?"

"그 먼지 대부분은 한때 세포였다." 쥴은 그 말과 함께 거센 기침을 해댔다. "이 먼지는 한때 아홉의 것이었다. 하지만 혼합되었다. 그래서 영원히 달라졌다." 또 한번 거칠고 둔탁한 기침 소리. "먼지에서 먼지로. 하나의 먼지에서 다른 먼지로. 아홉은 먼지의 육신이다."

라비니아는 아홉의 요원이 웃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3. 서고

기록 보관실은 침묵에 잠겨 있었다. 직원들은 여명 축제를 맞이하여 이미 집으로 돌아간 후였다. 성실한 도시 프레임들만 서고를 오가며 무질서를 박멸하고, 진공청소기로 강철 성물 안의 석영 보관판을 청소하는 부드러운 웅웅 소리와 함께 우아하게 보관실 안을 거닐었다. 라비니아는 이 프레임들이 니네베의 이름 없는 사서들의 유령에 씌었을 것이라는 상상을 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영혼들이 침입자의 눈알을 뽑을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사서 수호자도 있을까? 수호자는 가끔 투명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어쩌면 바로 지금 그녀 곁에 수호자가 한 명 서 있고, 고스트도 도서관 침입자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을 수도—

그 생각에 어찌나 깜짝 놀랐는지 그녀는 좁은 통로에서 하마터면 떨어질 뻔했다. 대신 그녀를 혀를 깨물고, 아픈 다리의 위치를 바꾸며 앞서 찾아낸 핵심어들을 정리했다. 벌써 한참이나 탑의 음성 기록을 몇 시간 분량이나 뒤지면서 쥴의 헛소리에서 핵심어를 추출하는 중이었다. 이제는 그 자취를 따라 야수에게 돌아가기만 하면 됐다…

\>원격 기록 데이터베이스 텍스트 전용 검색 개시

\>$nullStringRef 사용자님, 환영합니다

\>검색 쿼리를 입력하세요

\>아홉 9 IX 먼지 행성 배열

\>결과

시미즈 외 "암흑 물질 탐지 과정의 이상 현상 중 상당수는 행성들의 중력 집중에 따른 상호작용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붕괴 이후의 우주 복원 관련 학술지 99권 #1012

곤잘레즈, 하리-4, 므왕이. "암흑 물질 탐지 과정의 이상 현상에 관한 궤도 역학의 위상적 T-유전자 복잡성의 기능 측면에서의 해석." 붕괴 이후의 우주 복원 관련 학술지 99권 #1014

시미즈 외 "암흑 물질 탐지 과정의 거대 이상 현상은 CDM(찬 암흑 물질) 발산 자가 상호작용의 목적론적 모델 없이는 설명할 수 없다." 붕괴 이후의 우주 복원 관련 학술지 99권 #1015

곤잘레즈, 하리-5, 므왕이. "찬 암흑 물질 이방성에 관한 질량 및 암흑 행성운 간 이종 규모 결합의 비목적론적 결과에 관한 해석." 붕괴 이후의 우주 복원 관련 학술지 99권 #1015 별첨 1

시미즈 외 "중첩되지 않는 교도직인가 간섭 패턴인가? 도시 방어를 위한 과학 연구 장비 재배치의 '필요에 의한 몰수'의 역할." 붉은 군단 이후 정치학에 관한 신 사고, 1권 #18.

락슈미-2, 하리-5 "인지적 직관의 여정이 엑소의 자발적인 초기화 신드롬을 초래하는가? 사례 연구." 게재되지 않은 기록물. 개인 소장 자료.

\>추가 결과를 확인할까요?

이상하다. 너무 이상해… 태양계에서 부는 암흑 물질의 바람에 관한 자료는 전부 학창 시절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만한 내용으로만 가득했다—

뭔가 그녀의 정수리를 스쳤다.

라비니아는 화들짝 놀라 화면을 보던 고개를 들었다. 비명이 터져 나오기 직전이었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센서 진드기가 기류를 따라 떨어져 내렸다. 그녀의 체온을 따라온 것 같았다. 혹시 그게 라비니아를 알아본다면, 마스터는 그녀에게 하수도 심층부의 그라피티에 관한 민족지학적 논문을 쓰게 만들 것이다.

그녀는 황급히 다음 검색 문구를 입력했다. "행운의 라비니아, 힘을 내." 그녀는 그 별명을 싫어하면서도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아홉 9 IX 붉은 군단 가울 도시 공격 미발견 예측 불가 경고도 없었던 이유

\>결과

도시 침공 및 점령에 관한 합의 위원회(CCIOC). "최종 보고서: 13장: 붉은 군단의 전투 교리 및 전략적 기습의 문제" 무료 문서.

CCIOC. "최종 보고서의 별첨: 도시 및 도시 동맹의 조기 경보 및 정보 시스템 문제.\" 미공개/검열 문서: 도시 보안 관련 민감한 자료.

CCIOC. "최종 보고서의 별첨: '자유방임적 간첩 행위의 문화: 진영 요원 및 미지의 상인 개체(UVE)에 대한 탑의 관용성.' 미공개/검열 문서: 도시 보안 관련 민감한 자료.

시미즈, 하산. "붉은 군단이 도시를 침공하기 직전의 CDM 자가 상호작용이 설명되지 않음: 우연인가 의도가 있는 간섭인가?" 거절된 원고. 시미즈 학술 상점.

\>추가 결과를 확인할까요?

\> 다음 문서의 거절 사유 "붉은 군단이 도시를 침공하기 직전의 CDM 자가 상호작용이…"

거절 통지서. "검토자들은 본 논문에서는 찬 암흑 물질이 도시 센서와 상호작용할 수 있었던 방식에 관한 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합의했다. 군사 전문가들은 붉은 군단이 은밀하게 접근할 수 있었던 원인을 사이온 요원들의 전자적 기만 활동이라고 지목하고 있다."

\>추가 결과를 확인할까요?

라비니아는 얼어붙었다. 작디작은 다리를 지닌 무언가가 그녀의 귀 가장자리를 황급히 지나갔다. 그녀는 아주 느리게 손을 들어 올리려 했지만 이미 너무 늦은 후였다. 작은 센서 진드기가 안으로 기어들어왔다—

윙윙 소리와 함께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가르시아 우므르 타윌 양." 마스터 라훌이 말했다. "자네 행동에 관해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4.

그들은 폐허가 된 탑 마당에서 라비니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도 그녀가 범죄의 결과물을 손에 들기 전까지는 공격을 감행하지 않았다. 신 군주국의 붉은 핀을 꽂은 타이탄이 그녀를 땅바닥에 짓눌렀다. 헌터는 달처럼 커다란 총구를 들이대며 수갑을 채우고는 그녀를 도둑이라고 불렀다.

"라훌이 이자를 지켜보라고 했다." 타이탄은 검은색으로 치장한 고스트를 보며 말했다. "그게 다 이 여자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한 거라며— "

헌터는 쉿 하는 소리를 내며 뒤로 움찔 물러났다. "여자에게 뼈가 있다!"

"내버려 둬라! 그만둬!" 낯선 목소리였지만 거기에 담긴 힘으로 미루어 보아 라비니아는 그 주인이 아이코라 레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알 수 있었다. "화가 나서 필멸의 인간을 공격하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는 그게 아니야!"

천둥이 울렸다. 근처에서 무언가 폭발했다. 라비니아는 귀가 먹먹해졌다. 자발적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신 군주국 수호자 두 명이 사라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라비니아는 일어서려 했지만 현기증과 수갑 때문에 옆으로 비틀거리다가 거세게 엉덩방아를 찧었다. "마스터 레이." 그녀는 헐떡이듯 말했다. "죄송합니다. 먼저 서류를 올렸어야—"

"라비니아." 아이코라의 응축된 분노에는 일말의 공포가 담겨 있었다. "왼손을 벌려 보게."

거기에 뼈가 있었다. 기다란 턱뼈에는 커다랗고 하얀 이가 돌출되어 있었다. 따뜻하고 포근하고 단단했다. 라비니아는 그 뼈, 아홉의 수수께끼를 풀어줄 난치를 보호하듯 손에 꼭 쥐었다. 그건 그녀에게 마스터의 총애를 되찾아 주고, 라훌이 그녀를 기록실에서 쫓아내면서 내린 보호 관찰 조치로부터 그녀를 구원해 줄 열쇠였다—

비명을 질러야 할 만큼 힘겨운 노력 끝에 그녀는 손을 벌리고 아함카라의 뼈를 떨어뜨렸다.

아이코라 레이가 그걸 날려 보냈다. "그대가 그걸 찾은 게 아니야. 그게 그대를 찾은 거야. 소원을 빌었나, 라비니아? 아홉에 관해 알고 싶다고 물었나?"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고 설명하고 싶었다. 뼈의 근원(아마 금성이겠지)을 추적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아홉에 아함카라가 왜 필요했던 건지 알아내길 원했을 뿐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아홉에 아함카라가 왜 필요했다고 생각하지?" 아이코라가 물었다. 위험했다.

"소원을 빌려고요." 라비니아는 헐떡이며 말했다. "쥴은 대규모 아함카라 사냥이 끝난 후에야 탑에 나타났어요. 기존에 아함카라에서 받았던 게 무엇이든…"

그녀는 말을 끝맺지 않았다. 어쩌면 아홉이 지금은 수호자들에게서 그걸 받고 있는지도 몰랐다.

아이코라는 이마를 문질렀다. "그대를 막을 수는 없겠군. 하지만 계속 그렇게 들쑤시고 다니다가는 나도 그대를 보호해 줄 수 없네."

"도와주세요!" 라비니아는 애원했다. "분명히 뭔가 있어요! 모든 것, 시험과 아함카라와 수호자와 아홉까지 전부 연결해 주는 무언가가 있다고요. 가울이 공격해 온다는 사실을 회의에서는 이미 알고 있었어요. 그러면서도 우리에겐 얘기해 주지 않았—"

아이코라 레이는 손가락 하나를 들어 올렸다. 라비니아는 입을 다물었다. "선택하게. 이대로 학교로 돌아가서 여기에 온 적이 없었다고 생각하며 살겠나? 아니면 네가 아함카라 뼈를 훔쳤다고 신고하길 원하나?"

라비니아는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미안해요." 그녀는 말했다. "멈출 순 없어요. 제 운을 시험해 볼게요."

재판소에서는 만장일치로 형을 선고했다. 라비니아 가르시아 우므르 타윌은 인류 공통의 행복을 지키겠다는 서약을 어겼다. 그녀는 다시는 도시에 발을 들일 수 없을 것이다.

5.

리프는 완전한 혼란에 빠졌다. 라비니아는 그 상실감 때문에 각성자 전체가 정신적 외상에 가까운 광증에 몰두했다고 생각했다. 끝없이 흥청거리는 인파의 불빛이 보라색 하늘을 밝혔다. 사람들은 행성 너머로 뛰어내리고 인공 대기를 향해 흘러들면서 소형 우주선에 실려 멍한 목소리로 이의를 제기했다.

라비니아는 이곳에서 늘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았다. 언제나 변두리에서만 맴돌았다. 밤마다 향수병에 가슴이 찌르듯 아팠고,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시작하기에는 리프가 가장 좋은 선택지라며 애써 자신을 타일렀다. 지금의 이 만남이 첫걸음이 될 수도 있었다…

"애도할 일이 너무 많아." 그녀 옆의 한 몰락자가 웅얼거리듯 말했다. "마스터 아이브스가 살해당했고 바릭스는 실종됐어. 거미는 내 친구들을 데려갔고. 뭐, 나는 마스터 아이브스의 작업 결과물을 지키기 위해 남아야 했지만 말이야. 집처럼 편하게 지내도 좋아. 질소 차와 기록을 가져다주지."

"고맙습니다." 라비니아는 그 말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정말 집처럼 편하게 지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괜찮을 것이다. 그녀라면 아홉을 찾아내고, 진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고, 용서를 받을 수 있을 테니까.

몰락자는 차와 장비를 갖고 돌아왔다. \"봐라. 고대의 감옥에 관한 기록이야. 마스터 아이브스가 거기에 매혹됐었지."

그녀는 스콜라스와 몰락자 켈이 전투로 죽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거대한 뿔이 달린 방어구 때문에 그의 움직임이 느려졌다. 지친 동반자는 그가 하는 모든 일을 흉내 내려 하는 것만 같았다. 서비터가 그에게 에테르를 주입했다. 라비니아는 자신에게 에테르가 주입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궁금했다. 정신이 명료해지고 차가운 결의가 차오를까? 거대한 라비니아로 변해 버릴까? 더는 고향을 그리워하지 않아도 될까?

"마라." 스콜라스의 입은 그 이름을 말하기엔 적합하지 않았다. "마라, 들리나?"

"리프의 여왕님께서 그에게 모든 몰락자와 같은 운명을 선고하셨다." 라비니아와 함께 있던 사람은 한숨을 쉬었다. "분투하고, 발버둥 치고, 결국은 실패하는 운명. 하지만 그는 이미 패배했어. 성채에서 시간을 들여다볼 때 이미 정신이 망가지고 말았던 거야."

스콜라스가 하얀 증기를 내뿜었다. 그의 가면 위에 서리가 내려앉았다. "넌 나를 아홉에 선물로 주었다. 그리고 그들이 나를 돌려보냈다. 사람들은 네가 바보라고 한다. 날 풀어준 것이 실수였다고 한다. 네 백성들을 이끌어 내 칼에 죽게 했다. 내가 내 백성들을 이끌어 네 칼에 죽게 했듯이."

라비니아의 통역기가 켈의 말을 더듬더듬 해석했다. "아홉의 요원은 왜 나를 풀어 줬는지 얘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알겠다. 너도 이제 아는 것 같고. 너희는 둘 다 수호자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아홉은 삶과 죽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날 네게 돌려보낸 것이다. 수호자가 다시 찾아오게 하려 한 거지. 그들은 그로 인한 해악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 또한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의 영역에서 목성인 사이를 헤매고 다녔다. 하지만 아홉은 알지 못한다. 너, 마라 소프… 너는 그들과 거래하는 유일한 존재이다. 그들의 역할을 예측할 수 있었던 유일한 존재이다. 너는 모든 성공을 비밀로 감추었기에, 이 세계는 네 실수만 기억하고 있다. 따라서 내가 널 과소평가한 것도 놀랄 일은 아니지."

그는 간수가 준 소각 대포를 들고 있었다. 라비니아는 그의 가문이 한때 좋아했던 도구, 북과 베틀을 떠올렸다. "나는 금성에서 아홉의 형상을 보았다. 한때 그들에게 소중했던 곳, 소망이 육신을 변형시킬 수 있는 곳. 나는 그들이 이 행성과 이 세계에 결속된 것을 보았다. 너 또한 그런 면에서 동일하다. 너와 아홉은 말이다. 나는 그렇지 않아. 나는 기꺼이 이 세계를 떠날 것이다, 마라 소프. 졸개로 사는 것은 이제 지긋지긋하니까."

스콜라스는 뿔이 달린 거대한 머리를 감방 벽에 기댔다.

라비니아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즐거운 마음에 허둥대다가 차를 쏟았다. "그들은 우릴 돕고 싶어 해요." 그녀는 속삭였다. "우리와 같은 행성 출신이에요! 돕고 싶어 한다고요! 오, 죄송해요. 전 너무 덤벙댄다니까요—"

그녀는 허리를 숙여 쏟아진 차를 닦았다. 섬광 수류탄이 얼굴 앞에서 폭발했다. 그다음 기억이 나는 것은 계엄령하에서 한 각성자 장교가 그녀에게 간첩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무기징역을 선고하는 모습이었다.

뭐든 이 상황에 깃든 행운을 찾고 싶어 발버둥 치던 라비니아는 그나마 그 몰락자가 풀려나는 모습을 보며 자그마한 기쁨을 느꼈다.

6. 리바이어던

라비니아는 안전한 감방보다 각성자 전함의 전투 정보 지휘소가 더 마음에 든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점령 당시에는 기갑단이 끔찍하게 두려웠지만, 이제는 그들에게 맞서 싸우러 가면서도 그다지 겁이 나지 않았다.

"이거 재미있는데요." 우주선이 고물부터 기갑단 리바이어던 쪽으로 떨어지는 사이 그녀는 곁에 있는 왕실 근위대를 향해 속삭이듯 말했다. "그렇지 않아요?"

왕실 근위대의 턱이 움찔거렸다. 목소리를 내지 않고 암호로 말하고 있거나, 팔라딘 카말라 리오르의 귀빈을 모욕하는 일이 발생하기 전에 혀를 잘라 버리려는 것 같았다.

"가장 가까운 지점까지 3분 거리입니다." 비행역학 장교가 외쳤다. "INVO, 목표의 방출 상태는?"

"리바이어던이 표적 센서로 우리를 비추고 있습니다. 달라진 건 없습니다."

팔라딘 리오르가 라비니아를 자리에서 끌어냈다. "우므르 타윌 양, 같이 가서 장치를 점검하자."

"이런 거 자주 하시나요?" 라비니아는 자신을 감옥에서 구해 준 팔라딘 리오르를 놀라게 하고 싶었다. 그녀의 말을 빌자면 "리프에 있는 모든 두뇌는 한 가지 문제 때문에 너무 바쁘니까, 다른 문제를 고민하려면 당신 두뇌가 필요"하기 때문에 구해주었다고 했다. 라비니아는 그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이런… 근접 비행으로 호랑이 꼬리를 밟는 일 말이에요."

"무력 시위다." 카말라가 그녀의 말을 정정했다. "우리가 함대를 이끌고 칼루스의 우주선을 상대할 준비가 됐다고 믿게 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홉에 관한 당신 이론 등 다른 수수께끼에 관해 조사할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 자, 여기. 이게 당신이 요청한 장치다. 확인해 봐라."

카말라는 희미한 보라색 빛이 좌우로 오가는 검은 유리 화면을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라비니아가 놀란 얼굴로 거기에 손을 댔다. "암흑 물질인가요?"

"그렇다." 학교에 다닌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우주의 질량은 대부분 암흑 물질이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암흑 물질은 그 질량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아니며, 은하의 광륜보다 작은 구조물은 형성하지 못한다. 암흑 물질은 전하가 없고, 자신을 통과하고, 무리 지어 모이지 않으며, 화학적 조성도 없다. 영원히 먼지로 존재할 뿐이다.

"당신 말이 맞다면…" 카말라가 숨을 들이쉬었다. "이제 언제든…"

"구동장 오류!" 비행 장교가 외쳤다. "앞쪽 가장자리에 작은 변화가 발생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질량 매개체와 조우합니다. 레이더 및 광선 레이더에는 아무 접촉이 없습니다."

암흑 물질 감지기의 검은 화면에 보라색과 하얀색 형태가 폭발하듯 나타났다. 헤아릴 수 없이 오랜 시간 동안 감각이 박탈되어 있던 거미가 쳐 놓은 거미줄 같았다. 두꺼운 밧줄과도 같은 검은 물질의 가지가 수천 개의 작은 손가락으로 분열하여—

—기갑단 리바이어던을 꿰뚫었다.

"오, 이런." 라비니아가 숨을 헐떡였다. "우리가 통과하는 게 암흑 물질인가요?"

"그렇다."

"이런 건 특이한 거죠? 이런 계층 구조 말이에요."

"타윌 양." 카말라가 말했다. "암흑 물질 단일 분자는 특이할 수 있겠지. 하지만 이건 불경스러울 만큼 과도한 거야. 불가능한 일이라고."

그렇지 않다고 라비니아는 생각했다. 아홉이다. 그들이 칼루스를 바라보고 있다. 그들이 손을 내밀고 있다. 이것이 그들의 손이다…

"이 센서를 더 일찍부터 사용해야 했는데." 카말라가 중얼거렸다. \"레아 인근에서 함선을 잃고 있을 때 여왕님께서 항해를 돕기 위해 그걸 발명하셨다. 페이튼 백스캐터 스캔. 아주 똑똑하지. 여왕님께서 해내신 일은 모두 의미가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말이야. 아주 멀리까지 내다보는 분이셨으니까. 어느 누구도 아홉과 동등하게 거래를 하지 못했어. 안 그런가? 영원히 그 누구도 여왕님께서 해주신 일을 제대로 알지 못할 것이다. 베일에 싸인 우리 여왕님."

"도시에 연락해야 해요!" 라비니아는 화면을, 아홉의 모습을 캡처하려고 허둥거렸다. 하지만 지금 그녀에게는 태블릿이 없었다. "찾았어요!"

"아. 그거 말인데." 리오르의 장갑을 착용한 손이 그녀의 어깨에 놓였다. "여왕님의 칙령에 따라 아홉에 관한 리프의 지식을 여왕님의 허가 없이 개인에게 유출하는 일은 금지되어 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의 지원에 감사한다, 타윌 양. 감방으로 데려가도록."

누구든 그녀를 다시 행운의 라비니아라고 부른다면, 총으로 쏴 버릴지도 모른다.

7. 관문

정찰 미사일은 코퀴토스에서 10만 킬로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은 지점에서 폭발했다. 그건 국소 지점에서 반물질 소멸을 일으키고, 그 폭발을 동력으로 하는 수천 가닥의 레이저를 방출하며 공허의 세계를 눈부신 빛으로 가득 채우는 병기였다. 그런 광선 중 하나가 해적함에 적중하여 은폐 장치를 관통하고 반사되었다.

그들은 발각됐다.

"라비니아." 해적의 무전이었다. "난 발각됐어. 도망쳐야 해."

"거래 조건은 그게 아니었잖아!" 라비니아는 웅웅거리는 차원문 앞에서 서성이며 소리를 질렀다. "날 꺼내 주고, 여기에 데려다주고, 내가 찾아낸 걸 도시로 가져가 주기로 했잖아! 십 분만 더 있으면—"

"시간이 없어. 왕실 근위대가 오고 있다고. 대금을 선불로 모두 치르지 말았어야지, 해독가 양반."

해적의 우주선이 속도를 높이며 멀어지자, 통신 채널에는 디지털 잡음만이 남았다.

라비니아는 욕설을 내뱉으며 우주복 속 주먹으로 자기 헬멧을 때렸다. 코퀴토스에 갇히다니! 마지막으로 각성자들이 여기 가뒀던 사람은 불쌍하게도 모두 완전히 미쳐 버리고 말았었다. 죽은 궤도 정찰기 소피아의 승무원들은 이곳을 A113이라 불렀다. 무의미한 일련번호였다. 그들은 황금기의 실험 결과물이기도 한 이 땅 위의 관문을 군체의 신 크로타가 점령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그 관문이 그들을 모두 삼켜 버렸다.

이제 크로타가 사라진 이상 라비니아는 이 차원문이 다른 자의 손에 들어갔을 거라고 확신했다. 아함카라는 비현실을 현실로 만들었다. 칼루스의 우주선은 비현실적인 암흑 물질의 광륜에 둘러싸여 있었다. 우주선을 더듬는 손들의 고리와도 같던 광륜. 수호자들은 현실 그 자체를 조작할 수 있다. 여기에는 패턴이 있었다. 이야기가 있었다. 그것이 코퀴토스로, 이곳의 관문이 하는 일로 이끌었다.

"기록." 라비니아는 한때 이곳에 주둔했던 각성자 보초병들이 남긴 관측 기록을 미친 듯이 뒤졌다. 붉은 군단이 공격해오던 때 코퀴토스는 버려졌다. 이곳의 방어 시설은 모두 베스타의 방어를 보강하기 위해 이전되었다. "관문에서는 뭐가 나오지? 대체 뭘 봤던 거야?"

//사건 1 시간 00:00:00 차원문 3에서 수소 원자가 방출되었다. 이후 72시간에 걸쳐 그러한 방출은 이원자 수소에서부터 질소, 탄소, 산소, 물, 단순 유기분자로까지 발전했다. 대략 80시간이 지났을 때 끈적한 검은 탄화수소 타르 알갱이가 생겨났다. 82:34:15까지 관문에서는 복합 단량체와 고분자가 포함된 타를 방출했다—

"무슨 소리야!" 라비니아는 그렇게 외치며 내용을 넘겼다. "빌어먹을, 빨리 제대로 된 정보를 내놔! 아홉을 내놓으라고!"

//사건 1 시간 524:03:11 차원문 3에서 살아 있는 유기체가 방출되었다. 그리고 즉시 사망했다. 부검 팀 보고서에는 반지름 1.1미터의 구체가 탄화수소 타르 표면 위로 올라왔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깊은 "목구멍"이 동일한 간격을 두고 아마도 폐와 장기 역할을 하는 듯한 중심 공동에 밀집되어 있었다. 신체는 원시 세포의 구분되지 않은 조직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단순한 반사성 경련이 공기를 목구멍 안으로 밀어 넣었다. 신진대사를 촉진시킬 효소가 없어서 유기체는 생존할 수 없었다. 개체 전반에 걸쳐 세포가 즉각적으로 사망했다. 자가 수복이나 번식을 위한 기관은 존재하지 않았다.

라비니아는 공포와 흥미를 동시에 느끼며 그 기록을 다시 읽었다. 관문 반대편에 있는 무언가가 원자와 분자, 심지어는 뒤죽박죽인 생명체까지 결합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어둠과 먼지의 세계에서 나온 무언가가 더듬더듬 우리의 구조적인 세계로 넘어와 하나의 메시지를, 사절을, 육체를 얼기설기 꿰맞추려 하고 있다…

아홉이 이 관문 반대쪽에 있다. 라비니아는 그렇게 확신했다. 드디어 찾아냈다.

하지만 아홉을 직접 만나는 건… 미친 짓일까? 돌아올 수는 있는 걸까? 도시를 다시 볼 수 있을까?

그녀는 진실을 찾기 위해 너무 멀리까지 왔다.

헬멧 속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물질 수신 중.' 우주복이 그녀에게 경고했다. '물질 수신 중.' 무전기에서 거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이코라 레이처럼 딱딱한 말투였다. "해독가 라비니아 가르시아 우므르 타윌." 팔라딘 리오르였다. "너는 여왕님의 법규를 위반했다. 즉시 투항하면 공정한 재판을 보장하겠다."

라비니아는 무심하게 열린 관문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 너머에는 절대적인 암흑과 소멸의 영역, 외계 생명체를 제외하고는 거의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가 있었다. 거기로 들어가는 건 자살 행위였다. 비참한 타르 덩어리 생물처럼 죽고 말 것이다.

하지만 지금 뒤에 남은 건 무엇일까? 실패? 항복? 수치? 감옥에 갇혀서 보낼 여생?

"난 행운의 라비니아니까." 그 말과 함께 그녀는 뛰어들었다.

8. 선언

우리의 근원을, 태고의 대의를 원하는가?
우리는 너희 세계의 물질이 드리운 그림자다
낡은 어둠 먼지 영원한 중력의 흐름
지능이 각 세계의 핵을 둘러싸고 있다
아 홉 개 의 모 래 시 계 가 우 주 의 바 람 을 붙 잡 는 다
너무 커서 - 볼 수 없고
너무 작아서 + 놓칠 수 없는
우리의 질량은 결속하고 == 너희의 물질은 해방한다
.우리의 철학 | 은 분열된다.

우리는 너희를 지키고 육성하려 한다.
그리고 그림자가 불길을 아끼듯 우리는 너희를 아낀다
너희 짧은 생이 환하게 깜빡이며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본다
네 생각의 패턴에 의해 존속되고 -
하 지 만 닿 을 수 없 는 거 리
그 너머 - 우리라는 존재 - 아니 우리였던 존재
답은 있다 + 단절에
양면 == 하나의 동전
.동맹과 접촉 | 고독과 침묵.

우리의 운명이 서로 결속되어 있다는 걸 이해하겠나?
네가 우리를 지탱하는 이방성의 씨앗을 뿌린다
하지만 부패는 부패는 부패다
거대한 취약성, 복잡한 신탁.
혀 도 없 이 우 리 는 말 하 려 한 다
틀림없이 - 다른 방법이 있으리
우리는 우리 이상의 + 존재가 되어야 한다
언제나 함께 == 절대 접촉하지 않고
.의존 | 은 종말로 향할 뿐.

9. 아홉

나는.

나는 나는 나는 나는 나는 나는 나는 나는 나는 나는 나.

처음에는 먼지가 계산할 수 있는 고리는 이게 전부였다. 고리를 만드는 건 전 우주에서 먼지가 해내기 가장 힘든 일이었다. 돌풍이나 흐르는 강물처럼, 원래 한쪽 방향으로만 움직여야 했기 때문이었다. 정신이 동작하려면 생각의 끝이 다음 생각의 시작을 조정해야 했다. 따라서 강물처럼, 바람처럼, 아홉은 고리를 만들 수 있기 전까지는 정신을 지닐 수 없었다.

라비니아 가르시아 우므르 타윌은 아홉을 이해했다.

그들은 처음 인류가 자기 이름을 불렀을 때도 이미 고대의 존재였다. 아홉의 육체는 행성보다 더 오랜 것이었다. 우주를 따라 흐르던 검은 먼지 바람이 태양과 그 주위 행성들의 중력에 붙잡혀 그들의 핵으로 끌려 들어갔다가 다시 뿜어져 나온 것이었다.

그들이 아홉이었다.

결국 고리가 형성되었다. 밖으로 뻗은 먼지가 거대한 호를 그리며 근원으로 돌아와 그림자의 순환을 만들었다. 이런 순환이 굵어지고 가늘어진 것이 아홉의 첫 번째 생각이었다. 그들은 거대한 무관심 속에 살았다. 태어나지 않은 태고의 신들이었다. 그들 사이에는 중력을 제외하면 아무 힘도 없었다. 질량의 분배를 제외하면 아무 구조도 없었다. 그들의 심장은 행성의 핵에 담겨 있었지만, 가장 멀리까지 뻗은 흐름은 공전하는 은하계를 따라 조금씩 소실되어 갔다.

그들은 애클리스의 분수였다. 혼돈 이전의 밤이었다.

하지만 아홉의 심장을 품은 세계에서 생명이 태어났다. 복잡하고 자그마한 생태계와 신진대사와 계산의 움직임이 일어났다. 아홉이 하프 줄처럼 연주하는 바람을 타고 그 생명은 질량의 그림자를 떠나갔다. 이런 구조의 떨림에서 아홉은 거대하게 공명하는 파도의 씨앗을 뿌리고, 행성보다 더 광대한 생각을 창조하는 법을 배웠다.

그렇게 아홉이 깨어났다. 그리고 때가 되자 그들은 자신이 강대한 만큼 여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생각의 씨앗을 뿌리는 생명이 사라지면 그들 또한 소멸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에게는 빛을 느낄 수 있는 눈이 없었다. 들을 수 있는 귀가 없었다. 그럼에도 아홉은 질량의 외계 행성에 그들의 의지를 주입했고, 배우기를 갈망했다. 심장을 보호하지 못하면 아홉 또한 죽으리란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절대적인 깨달음의 공포로 인해 라비니아에게 이성이 남아있었다면 미쳐버렸을 것이다. 그녀는 아홉이 이제껏 어디에 있었는지 깨달았다. 아홉은 모든 것, 모든 행성, 살아 있고 움직이는 모든 존재 안에 있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가느다란 암흑 물질의 촉수가 우리 모두의 몸에서 뻗어 나와, 우리의 생명과 생각의 복잡성을 들이켰다.

우리는 모두 꼬집힌 윤곽으로, 무한히 긴 거미 다리에 꿰어 꿈틀거리고 있었다.

10. 마녀

그리고 여행자가 나타났다. 그와 함께 이상한 희망이 생겨났다. 여행자의 빛은 원인 없이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홉에게 빛이 있었다면 자신의 정신에 직접 씨를 뿌리고, 물질 생명체에 대한 의존을 벗어 버릴 수 있었다! 그들은 중력을 넘어선 힘을 얻고 스스로 조직화하여, 검은 먼지의 유령 이상의 존재가 될 수 있었다. 우리의 화학적 현실이 구성하는 터무니없는 외계의 초월 세계에 들어설 수 있었다.

그래서 아홉은 이런 희망에 몸을 맡겼고… 그렇게 분열되었다.

"내게로 오렴." 하나의 목소리가 라비니아를 불렀다. 하지만 갈 곳도, 존재하는 것도 없었다. 공허조차 존재하지 않아, 없거나 가득 차는 것도 있을 수 없었다. 라비니아는 자신이 이제 검은 먼지의 구조로서 자신에게 불어닥치는 모래 바람의 일부로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무런 감정 없이 인식했다.

"이리 오렴." 그 목소리가 그녀를 불렀다. "나는 나스야. 너는 안전하지 않다. 내게로 와라."

안전하지 않다고?

그래. 물론 그녀는 안전하지 않았다. 아홉에도 진영이 있기 때문이었다. 한 진영은 쥴과 오린을 보내 수호자와 빛을 연구했다. 원인이 없는 결과의 비밀을 탐구했다. 그리고 아함카라가 사라진 지금 그 비밀의 근원, 마지막 근원을 보호하려 했다. 그들 다섯은 코퀴토스의 관문으로 연금술을 갖고 놀았다. 검은 먼지를 에너지로, 다시 물질로 바꾸었다. 하지만 우리의 미친 존재의 비밀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그들에게는 대사가 필요했다. 중개자가 필요했다.

다른 진영은 다른 길을 걸었다. 시공간 자체를 미끄러져 관통하는 주름과 바늘의 길. 새로운 공간을 아홉이 원하는 바에 따라 새롭게 만들어 낼 존재의 주사기였다. 그들은 한 곳에 검은 먼지를 충분히 모아 블랙홀을 형성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중력의 주먹 아래에서 암흑 질량이 붕괴되자, 먼지가 모두 블랙홀을 통과하여 흩어지고 만 것이다.

하지만 쉽지 않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리고 우주에는 빛보다 훨씬, 훨씬 더 많은 암흑 물질이 있었다. 그걸로 새로운 행성을 만들어 낼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생명에 대한 의존을, 내려앉는 장막에 곧 영원히 꺼져 버릴 수호자의 빛에 대한 의존을 끝낼 수 있을 것이다…

라비니아는 스치는 길에 여왕과 아홉의 교류의 역사를 모두 볼 수 있었다. 상상한 것보다 훨씬 많았고, 또 훨씬 중요한 소통이었다. 가울이 접근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아홉 중 하나가 수호자들의 눈을 가렸으며, 모든 위험을 감수(가울은 태양과 함께 아홉을 모두 파괴했을 것이기 때문에)하면서도 빛을 훔치는 방법을 배우려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로 인해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도 보았다.

"이리 오렴!" 나스야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내게로 와! 서둘러! 너무 늦기—"

무언가 검고 내밀한 것이 라비니아 아래의 공허를 꿰뚫고 그녀를 빨아들였다. 라비니아는 너무 작은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는 바람에 온몸이 산산이 부서져 단일 입자의 흐름이 되었다. 그녀는 소멸했다…

… 그리고 언제 어디에선가 다시 태어났다. 다시 육신을 얻었다.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식은땀을 흘리며, 아기처럼 가냘프게 울었다. 그녀의 볼이 따뜻한 나무 바닥에 닿아 있었다. 벽난로에서는 불이 피어올랐고, 바깥의 거센 바람에 불길이 흔들리고 있었다.

책상에 앉아 있던 지혜로운 모습의 노파가 고개를 들었다. "아." 그녀가 말했다. "라비니아! 왔구나."

"무—" 라비니아는 숨을 헐떡였다. "무슨—"

당황하여 더듬거리는 라비니아의 말이 그 무엇보다 달콤한 인사말이기라도 하듯, 그녀는 환하게 미소지었다. "걱정하지 마라. 넌 제대로 왔으니까."

"어디…?"

"네가 인정받을 수 있는 곳. 네가 배운 모든 것을 진정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곳." 노파는 뼈로 만든 잔에 조심스럽게 차를 따랐다. "네가 태어났을 때 내가 말하지 않았니, 넌 행운의 아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