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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20f17><colcolor=#fff> 2024 시즌 한화 이글스/2024년 | 스토브리그 | 스프링캠프 | 시범경기 | 3 ~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월
2024 시즌 주요인물 김경문 감독 · 2024년 | 손혁 단장 · 2024년 | 채은성 주장 · 2024년
구단 정보 한화그룹 | 한화 이글스 · 한화 이글스/2군 | 빙그레 이글스
구단 기본 정보 팀 컬러 | 선수단 | 스타 플레이어 | 등번호 | 유니폼
{{{#!wikistyle="margin: -16px -11px" 역사 우승
파일:KBO 한국시리즈 트로피.svg
영구 결번
일반 정보 }}} 1999
35 장종훈 | 21 송진우 | 23 정민철 | 52 김태균
구단 역사 | 암흑기( 5886899678) | 역대 트레이드 | 사건사고
경기장 1군 대전 베이스볼 드림파크(가칭) · 청주종합경기장 야구장 | 2군 서산전용연습구장
이전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
지역 연고 학교 북일고등학교 | 대전제일고등학교 | 공주고등학교 | 한국K-POP고등학교 | 대전고등학교 | 세광고등학교 | 천안상업고등학교 | 청주고등학교 | 강원고등학교 | 원주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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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행복수비 | 한나쌩 · 한상바 클럽 | 김고추정이 | 변노유 | 살려조
응원·팬 응원단장 | 치어리더 | 팀 응원가 | 선수 응원가 | 육성응원 | 나는 행복합니다 | 한화 이글스 갤러리 | 구단 공식 SNS | 이글스티비 | 온리원한화 | 찐팬구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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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드라마[1]

1. 개요2. 상세3. 고난의 역사4. 문제점
4.1. 팀 wRC+ 46873898974.2. 팀 평균자책점 68888999984.3. 항상 일어나는 특유의 호구딜4.4. 선발 투수 육성 실패 + 드래프트 실패
5. 유사 사례6. 관련 문서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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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화 이글스 2008년부터 2017년까지 정규시즌 하위권을 전전하던 당시의 순위이자 암흑기를 뜻한다.

2. 상세

LG 트윈스 6668587667과 동급인 10년 연속 가을야구 탈락의 기록은 물론 롯데 자이언츠 8888577에 버금가는 3연속 최하위, 유일한 6년 중 5년 꼴찌, 최후의 8위 꼴찌, 최초이자 최후의 9위 꼴찌 독식 등의 안 좋은 순위 관련 기록들을 상당히 많이 포함한 전설의 비밀번호다. 그런데 저 정도로 꼴찌를 하고도 그 사이에 NC 다이노스 kt wiz의 창단도 껴 있었기 때문에 신인드래프트 혜택도 받지 못했다.

물론 그걸 감안해도 이 정도로 처참한 성적에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있던 전력도 어이없이 내보냈기 때문. KIA 타이거즈 LCK포 완성을 위한 이범호 영입 비화를 보면 당시 KIA 김조호 단장이 직접 한화 프런트에 전화를 해서 이범호를 우리가 데려가도 되냐고 질문을 했을 정도였다.

2013년 9월 21일, 한화 이글스는 SK 와이번스에 패하면서 신생팀 NC 다이노스에게도 순위에서 밀리게 되었고, 이제 남은 경기에서 전부 이기고 KIA가 잔여 경기 전패를 해야만 겨우 8위를 노려볼 수 있었으나 9월 22일 SK전에서 패하면서 트래직 넘버가 소멸되어 꼴찌가 확정[2]되었다. 이로서 6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2년 연속 최하위 기록을 쓰며 해당 문서가 생성되었다.

이 비밀번호를 뒤에서부터의 순위로 반영하면 4112111543이라는 결과가 나온다. 특히 김성근 오기 전의 112111은 정말로 왕조라 봐도 무방한 수준.[3] 이것도 2011년 한대화 감독 체제에서 넥센을 꼴지로 밀어내고 6을 LG와 같이 찍어서 망정이지 2011 시즌마저 꼴찌였더라면 롯데 자이언츠 8888577을 뛰어넘는 6년 연속 꼴찌라는 대기록이 쓰일 뻔했다. 이 비밀번호 이전 한화가 꼴찌를 한 시즌은 빙그레 시절 창단 시즌인 1986년, 단 한 번밖에 없었다. 게다가 빙그레는 1986년 이후 8년 동안 4번이나 KBO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강팀이었다.

그나마 제일 위에 언급된 LG 트윈스인 경우는 뼈를 깎는 노력으로 비밀번호를 끊은 이후 가을야구에 단골로 참가했고 마침내 29년만에 우승까지 하면서 완전히 어두운 과거로 밀어내는데 성공했지만, 한화는 비밀번호를 끊고 가을야구에 진출한 2018년마저 플루크 시즌이었기에, 피타고리안 승률대로 흘러갔다면 숫자가 아닌 알파벳이 새겨질 정도로 비밀번호를 끊을 가능성마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비밀번호 기간동안 창단한 KT가 3연속 꼴찌 이후 점차 본궤도에 올라 우승까지 하고 가을야구에 단골로 출정하는 강팀이 되었지만, 한화는 단 두 번(2008, 2015)을 제외하곤 아깝게 포스트시즌에 승선하지 못한 순간도 없었다. 이렇게나 비밀번호가 길게 이어지면 구단 차원에서 비밀번호를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이라도 칠텐데 그 기미조차 보이지 않아 한화의 포스트시즌은 커녕 시리즈 스윕조차 화제가 될 정도로 팀 전력이 매우 망가지고 말았다.

3. 고난의 역사

3.1.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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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보면 2007 시즌부터 조짐이 보였다. 2007 시즌에도 한화는 잦은 장맛비 덕분에 생긴 우천 순연을 최대한 이용해서 붕괴된 선발진을 소수 정예로 끌고 가는 게 가능했기에[4] 중상위권을 사수하고 가을야구도 진출했지만 이미 팀 구성의 약점을 보이고 있었다. 이 해의 한화는 유난히 우천취소 경기가 잦았다. 심지어는 9월에도 잔여 경기가 우천으로 계속 연기되어 KIA와의 잔여 1경기는 플레이오프 탈락 후에야 치를 수 있었다. 류현진 - 정민철 - - 비 - 비 - 류현진 - 정민철 - 세드릭 - 비 - 비... 대신 불펜은 최영필, 안영명, 구대성을 혹사시키는 식으로 때웠다. 그리고 류현진에겐 이 시즌이 한화 시절에 맞이해 본 마지막 가을야구 시즌이었다.[5]

하지만 그래도 2008 시즌에는 꾸역꾸역 승수를 쌓으면서 올림픽 브레이크 이전까지 56승 46패를 기록하며 두산에 승차 없이 3위를 기록하고 있었으며, 잔여 경기가 많이 남아 있긴 했지만 쉬는 동안 전력 재충전이 될 거라 기대했기에 한화의 포스트시즌 진출 가능성은 충분해 보였다. 그러나...
파일:external/file2.instiz.net/66de5ada720c68a99374f8a2a5a5fe64.jpg
올림픽 브레이크 이후 3주 동안 류현진이 등판한 경기를 제외하고 모두 패배하며 무너졌고, 결국 후반기에 겨우 8승 16패, 그 막장이라던 2013시즌의 승률을 기록하며 최종 성적은 64승 62패. 4위 삼성 피타고리안 승률로는 앞서고도 결국 1경기 차이[6] KBO 포스트시즌 탈락의 고배를 마신다.

3.2.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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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불운이 있었지만 2회 WBC에서 김인식 감독이 좋은 성적을 냈고, 김태균, 이범호, 류현진이 좋은 활약을 해 주어 올해도 좋은 성적을 낼 것이라고 팬들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또한 전해에 한화는 엄연히 5할을 넘긴 팀이었으며, 강력한 선발 에이스와 훌륭한 중심 타선, 그리고 믿을 만한 마무리를 보유했기에 시즌 전에는 우승을 예상하는 사람도 많았다. 더군다나 개막전에서 SK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등 모든 것이 잘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김태균이 주루 중 홈에서 포수와 부딪치며 뇌진탕 증세를 보이며 전력에서 이탈했고, 이범호 김태완 또한 잔부상으로 이탈하면서 급속도로 추락했다. 또한 유원상, 김혁민 등 유망주의 더딘 성장세와, 정민철, 송진우 등 노장들의 연이은 은퇴로 인해 끝없는 추락을 이어가며 팀 역사상 2번째 꼴찌와 팀 역사상 최초의 8위를 기록하게 된다.[7]

김인식 감독이 계약기간 만료로 물러나면서 한화가 고른 새 감독은 한대화 당시 삼성 라이온즈 수석코치. 그러나 한대화 부임 이후 팀은 큰 위기를 맞는데, 바로 FA가 된 중심타자인 김태균 이범호가 각각 치바 롯데 마린즈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로 이적한 것. 일본으로 진출한 만큼 당연히 보상금과 보상 선수도 못 받게 되면서 한화 입장에선 큰 손해가 되었다. 거기에 유격수를 맡던 김민재 까지 은퇴하며 한화는 순식간에 국가대표 1루수, 유격수, 3루수를 잃어버리게 된다.[8]

3.3.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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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ttachment/2010hanwha.jpg
시즌 시작 전 한화는 시즌 티켓 구매 혜택이랍시고 KBO 포스트시즌 입장권을 증정하는 것도 아니고 구매 우선권을 부여한다고 해 팬들의 속을 제대로 긁어놨다. 그래놓고 정작 포스트시즌은 가지도 못했다.

2010년을 맞아 새롭게 들어온 전력은 별로 없었다. 히어로즈에서 방출된 전근표와 두산에서 방출된 정원석과, 넥센 히어로즈 마정길과 현금 12.5억원[9]을 주고 데려온 마일영, 두산 베어스에 사정사정해서 트레이드한 이대수[10], 그리고 외국인 선수 두 명밖에 없었다.

개막전에서 지난 해와 달리 SK에 2연패하면서 출발했다. 이후에도 매번 찬스마다 터지는 병살, 단순한 플라이볼도 잡지 못하는 OME급 수비를 보이면서 추락을 반복한다. 그리고 김태완, 이도형의 부상으로 인해 타 팀 방출선수 출신인 정원석, 전근표가 4번 타자를 맡는 웃지 못할 해프닝까지 벌어질 정도였다.[11] 그나마 투수들 중에서 류현진이 홀로 고군분투하고 2군에서 돌아온 노장 강동우의 활약으로 5월 7일 넥센 전에서 11연패를 끊으면서 타선의 무게감이 다시 생기기 시작하나 했었다. 이 때 중심타자가 부재하자 기아에게 안영명을 주고 장성호를 받아오는 트레이드까지 했다.[12]

그러나 7월초 송광민시즌 중 입대라는 황당한 사건이 벌어지는데, 한 술 더 떠서 신검에서 현역 부적격 판정을 받고 퇴소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시즌 중 입대라는 해프닝도 문제지만, 구단이 선수의 몸 상태 하나 챙겨주지 못해서 훈련소 입소 후 퇴소하는 상황이 더욱 말이 안 된다. 결국 송광민은 이후 사회복무요원으로 가서 2년 간 얼굴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외국인 선수 호세 카페얀0승 11패를 찍으며 방출, 대신 데리고 온 부에노 또한 기대에 못 미쳤고, 훌리오 데폴라는 선발로 돌아선 뒤 잘 던지긴 했지만 초반에 마무리 보직에서 헤메다가 너무 늦은 시기에 선발로 전업했다.

결국 최종 성적은 49승 2무 82패 0.368로 2년 연속 꼴찌. 그나마 류현진의 1점대 평균자책점, 29경기 연속 퀄리티 스타트 기록이 위안이 되는 와중에도 구대성, 이영우 등 노장들은 하나둘씩 은퇴하며 사라져 갔고, 젊은 선수들은 죄다 미필에 주전 선수들의 연령층도 너무 높았다. 절망적일 정도로 선수가 없는 상황임에도 구단 프런트는 일본에서 복귀한 이범호 KIA 타이거즈에 빼앗기고 보상선수로 데려 온 선수가 군 복무를 앞둔 안영명[13]에, 스토브리그에서 최영필, 이도형과의 FA계약을 거부하고 반강제로 은퇴시키는 등 도저히 리빌딩을 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3.4.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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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을 앞두고 김태완, 황재규가 공익근무요원으로, 정현석 경찰청에 입대했다. 대신 한상훈 고동진이 공익근무요원 복무를 마치고 소집 해제되어 돌아왔지만 둘 다 30을 넘긴 선수들로 크게 기대할 수 없는 전력이었다.

4월부터 류현진, 훌리오 데폴라가 털리면서 8위로 추락, 그렇게 3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하나 싶었다. 그러나 5월부터 장성호, 강동우의 복귀와 한상훈, 오선진, 이여상, 김혁민의 각성으로 서서히 성적이 나아지기 시작하더니 넥센을 제치고 7위로 올라섰다. 여기에 부진을 책임지고 팀 대표 이사와 단장이 바뀌고 그룹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이 때를 기점으로 대타 등 한대화 감독의 작전이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지기 시작하며 한대화 감독의 야왕 신드롬이 폭발한다. 이후 부진하던 오넬리 페레즈, 훌리오 데폴라를 퇴출하고 데니 바티스타, 카림 가르시아를 데려왔고, 이대수가 6월쯤부터 맹활약하면서 후반기 약진 속에 최종 성적은 LG와 함께 공동 6위. 시즌 막판에 연패만 하지 않았으면 5위도 가능했고 실제로 구단 고위층에서도 5위 달성시 보너스를 걸었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상대 전적으로 따지면 7위가 되기 때문에 2013년도 신인 드래프트에서 NC 다이노스에 이어 2번째 순위로 지명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더불어 3할을 때린 이대수가 유격수 부문 KBO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는 경사도 맞았다.

하지만 바로 다음 해 이것이 뽀록이였음이 드러났다. 세이버메트리션 사이에서는 이 해 한화의 6위 달성이 대한민국 야구 역사상 최고 미스테리라고 주장한다. 사실 2007년 한국프로야구 미스터리 양준혁, 김동주의 도루를 제외하면 세이버메트리션들은 엄청난 플루크가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난 일이라고 설명한다. 이에 반해 한화의 6위는 정말로 설명하기 힘들다. 실제로 팀 득실점으로만 승률을 예측하는 피타고리안 승률은 압도적으로 최하위였다. 이 해 한화의 피타고리안 승률은 .387인데, 실제 승률은 무려 .452. 질 때는 아주 개박살이 나고 이길 땐 간신히 이겼다는 소리다. 이런 플루크의 원인 중 하나로 거론된 것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대타 성공률이었다. 한대화 감독이 대타만 쓰면 무조건 적시타였다. 그것도 이양기, 한상훈, 오선진, 김경언 등등 전혀 타격이 기대가 안 되던 선수들이 나오면 무조건 치니까 한화팬들은 열광했고, 야왕 신드롬이 폭발했다. 하지만 다음 해가 되자 대타 성공율도 팀 타율에 수렴해버렸고, 위의 선수들도 본래의 타격식물 모드로 회귀했다. 그런데 이거라도 안 했으면 하마터면 롯데를 넘어서는 6년 연속 최하위라는 대기록을 달성할 뻔 했다.

3.5.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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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시작 전 FA로 LG에서 송신영을 영입하고[14], 일본으로 진출했던 김태균의 복귀, 특별법을 통해 박찬호를 데려오는 등[15] 나름의 전력 보강을 이루었다. 무엇보다 작년에 6위로 탈꼴찌에 성공한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리빌딩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듯했다. 시범경기 성적은 3위로 서서히 포스트시즌에 도전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해 주었다.

그런데 대전구장의 리모델링 공사가 늦어져 청주야구장을 홈으로 쓰면서 컨디션이 꼬이기 시작했다. 김태균, 박찬호, 류현진이 분전했지만, 작년 탈꼴찌에 힘을 보탰던 이대수, 신경현, 강동우, 한상훈은 부진에 시달렸으며, 송신영 분식회계를 일삼았고, 박정진은 2년 간의 혹사로 인해 일찌감치 시즌 아웃, 가르시아 대신 데려온 브라이언 배스, 션 헨은 먹튀 행각을 보이며 퇴출됐다. 5월 말에는 팀의 성적을 비관한 팬의 한대화 사칭 게시글 사건까지 벌어졌다. 결국 8월 말 한대화 감독이 전격 경질되고[16], 한용덕 코치가 감독 대행을 맡는 등 우여곡절 끝에 최종 성적은 원점으로 돌아온 8위. 개막전부터 시즌 종료일까지 한 번도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일명 환승 없는 8호선.[17] 류현진의 7년 연속 10승 좌절과 함께 시즌 초의 꿈들은 전부 산산조각났다.

그래도 김태균이 타격왕을 차지했고, 오선진이 주전 3루수로 자리잡는데 성공하였으며, 송창식 안승민의 후반기 호투, 한용덕 감독대행의 후반기 팀 운영이 그나마 볼만한 것이었다. 근데 시즌 내내 꼴찌 하고도 승률은 .408이었다. 심지어 다음 시즌의 기아와의 승률이 거의 차이가 없었다. 정확하게는 2012년 한화의 승률은 0.4076923…이었으며 2013년 기아의 승률은 정확하게 0.408. 물론 그렇다고 잘한 건 절대 아니다. 리그 최고의 투타 선수를 보유하고 4할 턱걸이밖에 못했었다.

2012 시즌 직전 자체 전력 평가에서 한대화 감독 이하 코칭스탭들은 불안한 센터라인 수비, 특히 포수와 불확실한 선발 로테이션을 고려해서 대략 6~7위를 예상했다고 한다. 그러나 야구 모르는 프런트 한화그룹 고위층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 발끈하면서, 작년에 공동 6위였고 올해 박찬호 김태균이 가세했으니 4강은 기본이고 가급적 우승을 목표로 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실제 한화 이글스 2012년 신년회에선 사장의 선창에 따라서 우승을 외치면서 건배를 했다. 그야말로 선수단 전체가 부담에 시달릴 수 밖에 없는 환경이였다. 프런트는 5월이 되어서야 자신들의 실수를 깨달았다고 하나 이미 팀은 망가진 상태였다. 선수들과 프런트는 시즌 초부터 성적을 내야 한다는 중압감을 이기지 못했고, 결국 시즌 초부터 이해할 수 없는 플레이를 보여주며 최하위 자리로 떨어졌다.

시즌 종료 후 류현진이 공개 포스팅을 통해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로 진출했고, 양훈의 입대와 박찬호의 은퇴로 선발 로테이션에 구멍이 뚫리게 되었다. 게다가 송신영이 NC로 이적했고[18], 스토브리그에서도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등[19] 별다른 전력 보강에도 성공하지 못했다.

3.6.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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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한화는 김응용 감독을 선임하는 초강수를 둔다. 비록 전력 누수는 심했지만 이번에 1군 리그에 새롭게 참가하는 NC 다이노스가 신생팀이라는 특성상 하위권을 마크할 것이고, 김응용 감독이 해태와 삼성 시절 성적이 굉장히 좋았으며 해태 말년에 팀이 추락했어도 최소한 꼴찌는 하지 않았던 만큼[20] 최소한 탈꼴찌는 가능할 것 같았다.

시범 경기 때부터 8위를 찍으며 불안감이 커져갔다.[21] 개막전부터 롯데에 2연속으로 역전패하면서 2연패로 시작, 이후 연패를 끊어야 한다는 조급함에 사로잡힌 김응용의 이해할 수 없는 선수 운용에 힘입어서 KIA - 넥센 - 삼성 - LG에 연속 스윕패하고 개막 13연패 신기록을 쓰고 말았다. 이 때 해탈한 한화 팬을 대상으로 붙은 별명은 보살팬이다. 그나마 NC 다이노스를 상대로 3연승을 거두며 연패를 끊었고, 4월 21일 두산을 0:1로 이기면서 탈꼴찌에 성공했다.

그렇게 2013년 9월 1일, 넥센전에서 패배하면서 4강 트래직넘버가 소멸했다. 8위 NC와의 경기 차이가 10경기 이상이었기 때문에 탈꼴찌조차도 가능성이 없었던 상황이다. 그나마 삼성, LG에 뿌린 고춧가루 세례만이 한화 팬들의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휴식일이었던 2013년 9월 11일, 롯데가 NC를 꺾으면서 5~6위 트래직넘버도 소멸했으며, 2013년 9월 21일, SK전에서 패배하면서 7위 트래직 넘버가 소멸했고,[22] 9월 22일 SK전에서도 패하면서 8위 트래직넘버조차 완전히 소멸, 프로야구 최초 9위, 프로야구 최초로 9위 꼴찌와 함께 588689가 확정되었다.

공교롭게도 2012년에도 SK전에서 패배하며 최하위가 확정되었는데, 비밀번호를 찍기 시작한 2008년 이후는 둘째치고 1986년 7위 이후 최악의 성적인 42승 1무 85패 승률 0.331이라는 성적을 받아들게 되었다. 참고로 장효조통산 타율이 .331이다. 심지어 85패는 구단 역사상 한 시즌 역대 최다패 기록. 승률 또한 역대 프로야구 사상 최저승률 10위에 해당한다. 그 뿐만 아니라 팀 성적, 개인 성적도 망해버렸는데, 팀 홈런, 팀 타율, 팀 도루, 팀 평균자책점 등 모든 면에서 8~9위를 벗어나지 못했고, 투수진은 이적생 송창현과 용병 데니 바티스타 대나 이브랜드, 마무리 송창식을 빼면 거진 전멸해버렸으며, 작년에 이어 올해도 10승 투수조차 배출하지 못하고 말았다. 타자들도 구장을 넓힌 부작용 탓에 팀 홈런은 고작 47개에 그쳤고 김태균을 제외하면 10홈런 이상을 기록한 타자조차 없을 정도로 위력적인 타선을 상실하고 말았다. 한화는 빙그레 창단 시절부터 매 시즌 10홈런 이상을 기록한 타자가 꼭 있었다. 이것도 김태균이 1002 대첩에서 홈런을 쳐서 망정이지 자칫하다가는 이 전통마저 끊어질 뻔했다. 참고로 이 해 박병호 혼자서 기록한 홈런이 37개이다.

참고로 이 시즌에 다시 LG 트윈스한테 통산승률이 역전당했다.[23] 이 이후에도 2018시즌엔 3위 비밀번호 탈출에 가려졌다 뿐이지 4시즌을 더 치른 두산 베어스의 통산 패배 수를 넘어섰으며 2020 시즌에는 KIA 타이거즈의 통산 패배 수 또한 넘어섰다.

3.7.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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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로 정근우 이용규를 영입하고, 외국인 선수로 펠릭스 피에, 앤드류 앨버스, 케일럽 클레이를 데려와서 기대를 모았으나 개막 경기 승리 이후 4월 4일부터 6일까지 SK전을 스윕당한 걸 시작으로 해서 하위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LG가 급격히 추락해서 9위로 떨어지긴 했지만 한화도 8위를 유지했을 뿐 7위로 치고 올라가지는 못했다. 급기야 6월 10일 이후 LG 트윈스와 같이 공동 8위가 되더니 6월 15일 NC전 패배와 LG의 SK 상대 승리가 겹치면서 한화는 9위로 떨어졌다. 6월 21~23일과 7월 1일~3일까지의 LG 3연전을 각각 루징 시리즈와 스윕패로 장식하면서 LG를 7위로 올려줌과 동시에 한화의 9위는 굳어져 갔다. 8월에 12승 7패로 약진하면서 그래도 탈꼴지와 4강 희망을 조금은 품을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여전히 탈꼴찌는 요원하였고, 9월달에 KIA를 제칠 수도 있었으나 9월 9일부터 12일까지 넥센전과 두산전 연속 스윕패로 인해 희망은 계속 사라져 갔다.

아시안게임 직전까지 8위와의 승차는 1게임 반. 인천 아시안게임 휴식기가 끝나고 기아와 탈꼴찌 경쟁을 하는 상황에서 3경기를 연패, 10월 3일 롯데전에서도 패하면서 4위 트래직넘버가 완전히 소멸됐다. 더불어서 LG 트윈스는 2014시즌 꼴찌를 완전히 면하게 되었다. 10월 5일 5위인 SK에 패하면서 5위 트래직 넘버도 완전히 소멸되었다.

10월 11일 오전 시점에서 KIA가 4경기, 한화가 3경기를 남겨둔 상황[24]이어서 잔여경기 수로만 보면 한화가 불리했으나, KIA의 상대가 1위 삼성(3경기). 2위 넥센(1경기)이었던터라 이미 4강 탈락을 확정지은 롯데와의 2연전이 있던 한화가 KIA에 비해서 남은 일정상 더 유리하다는 예측도 있었다. 그러나, 한화가 11일과 12일의 롯데와의 2연전에서 모두 패배한 반면, KIA가 삼성에 1승(11일)1패(12일)를 거두면서 8위 트래직 넘버마저 완전히 소멸, 3년 연속 꼴찌, 2년 연속 9위가 확정되며 이 항목도 5886899로 갱신되었다. 더불어 2015시즌부터는 kt wiz가 참가하기에 최하위 팀의 순위가 9위가 아니며 당연히 9위로 최하위를 기록할 수 없다. 따라서 한화 이글스는 KBO 역사상 유일하게 9위로 최하위를 기록한 팀이 되었다.

13일엔 시즌 마지막 홈 경기를 치렀는데, 최근 수년간 마지막 홈 경기에서 보여준 좋은 모습을 기대했지만 올해는 그마저도 없이 삼성에게 22:1이라는 핸드볼 스코어로 무너졌다. 그 와중에 올해 나름 괜찮은 모습을 보여준 신인급 외야수인 장운호 선수가 헤드샷을 맞고 쓰러져 구급차에 실려가는 일까지 벌어지며 최악의 시즌 마지막 홈 경기가 되고야 말았[25] 관련 기사의 덧글에는 "내년에 10위 하면 16진수 써서 5886899A 하면 되겠다"는 등의 드립이 이어졌다.

사실 2년 연속 꼴찌보다 답이 없어 보이는 건 세부적인 성적들. 류현진 판 돈을 팀에 투자했다는데 팀 순위 9위, 팀 실책 1위, 팀 방어율 신기록, [26]22점을 내주면서 팀 방어율 6.35를 기록하며 그것을 경신했다.] 득점 9위, 팀 피홈런 1위, 팀 홈런 8위[27]게다가 2014년 LG는 정규시즌을 4위로 마감, 준플레이오프에서 NC를 이기고 플레이오프까지 진출했다.], 팀 실점 1위, 팀 병살 1위, 팀 탈삼진 9위, 팀 장타율 9위, 팀 피안타율 1위의 참 주옥 같은 기록들은 한화 팬들이 도저히 내년을 기대하기 힘들게 만들고 있다. 여기에 프런트는 정신을 못 차렸는지 다음 감독은 철밥통 코치들 중에서 내부 승격이 대세라고 한다. 그나마 물망에 오른 한용덕이나 이정훈에 대한 팬들의 평가 자체는 그리 박하지 않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코치로서의 기량에 대한 것으로 1군 감독으로서의 기량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많은데다, 내부 승격했다가는 프런트와 코치진의 일명 "칰무원"들이 갈아치워질 리가 없다. 더 기나긴 암흑기가 초래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해당 기사가 나오자 타 팀 팬들은 비웃고 있고 한화 팬들은 우릴 호구로 보는 거냐면서 분노하고 있다. 그리고 한화는 타 구단이 해체되어 다시 사라져 7,8,9구단 체제가 되지 않는 이상 KBO 역사상 최초 7위, 최후 8위 꼴찌, 최초 9위, 최후 9위 꼴찌를 달성한 팀이 된다.[28]

3.7.1. 보이지 않는 희망

2012년부터 건설한 새로운 2군 경기장인 서산 야구장이 완공되면서 체계적인 2군 육성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 2군 구장은 KBO 내에서도 수준급인 시설로 알려져 있다. 또한 2012년부터 드래프트 이외에도 가장 많은 신고 선수를 영입하고, 2012년 천안북일고를 우승시켰으며 육성에 있어서는 뛰어난 모습을 보여준 이정훈 감독을 2군 감독으로 선임하며 뒤늦게나마 육성 체계를 완성시켰다.

류현진 LA 다저스로 가면서 남겨준 2500만 달러의 포스팅 금액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는데, 2013년 FA 시장에서 그걸로 화끈하게 질러 버렸다. 먼저 이대수 4년 20억원, 한상훈 4년 13억원, 박정진 2년 8억원으로 내부 FA 후보자를 잔류시켰다.[29] 그뿐만 아니라, 센터라인 강화를 위해 정근우를 4년 70억원, 이용규는 4년 67억원으로 영입하며 FA 빅4 중에서 2명을 데려오는데 성공했다.

2014년 시범경기에서는 3월 15일까지 한화 이글스는 팀 평균자책점 1위라는 괜찮은 성적을 냈다. 관련기사 다만, 이 기사가 나오자마자 3월 16일 경기에서 LG 에게 12:2 로 대패했다. 시범 경기라는 것이 최선을 다하는 경기가 아니라, 팀의 수준을 확인하기 위해 이 선수 저 선수 투입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하여튼 투수진 문제는 2014년 한화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이다. 외국인 선수를 통해 선발진 문제는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겠지만 빈약한 계투진이 해결되지 못한다면 한화의 리빌딩 기간이 생각보다 오래 갈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2015 시즌부터는 kt wiz도 1군에 합류한다. [30] [31]

하지만 부실한 투수진을 결국 극복하지 못한 채 2014년 10월 12일 롯데와의 경기에서 패하면서 3년 연속 최하위(8위, 9위, 9위)가 확정되었고, 희망고문은 그저 희망고문이었을 뿐이다. 최다 연속 최하위 부문에서도 8888577의 롯데와 타이 기록을 세우기까지 1년 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

그나마 투수진에 비해 양호한 야수진의 경우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닌데, 구장을 넓힌 부작용으로 인해 20홈런 타자가 배출되지 않고 있으며, 프로 11년차인 이용규 최진행, 김회성과 함께 1군 야수진 중 막내 역할을 맡고 있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주력 선수들이 대부분 30대 이상으로 팀의 평균 연령층이 여전히 높기 때문에 운 좋게 비밀번호를 끊어낸다 하더라도[32] 한화의 전통인 들쭉날쭉한 성적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 무엇보다 FA나 트레이드로 전력 보강을 시도한다 해도 이런 고참/주력 선수들이 부진에 빠지거나 타 팀으로 이적/은퇴했는데 유망주/신인 선수들이 충분히 성장하지 못한다면 지속 가능한 강팀으로의 성장이 불가능할 뿐더러 실질적인 암흑기는 더 오래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3.8.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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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에 FA의 대어를 낚으며 팬들에게 희망고문을 선사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3년째 꼴찌를 이어 갔다. 만약 그대로 이어졌다면 2015년도 그냥 포기하는게 나을 분위기였으나, 한화 수뇌부는 2014년 10월 25일에 김성근을 감독으로 선임했다. 김성근씩이나 되는 감독을 데려온 것 자체가 구단이나 팬 입장에서는 더 이상 하위권 전전하는 꼴을 보고 싶지 않고 당장의 성적을 내주길 바라는 의도라는 평이 많다.

김성근 감독은 프런트에 FA 영입, 그것도 투수의 영입을 직접 강력하게 요청하였는데, 한화 프런트는 이 요청에 한화는 권혁, 송은범, 배영수 3명의 투수 FA를 성사시켰으나 팬들이 원하는 장원준이 아니었고 FA의 큰손이였으나 투자 대비 효율은 의문이었다. 2년 연속 7점대 방어율 송은범과 삼성타선을 감안하면 어느정도 한화의 행복수비에 좋은모습을 보여줄수있을지 의문인 배영수[33]에 대해선 팬들에게도 호불호가 갈렸다. 적어도 투자하는 모습은 좋지만 송은범, 배영수는 보상선수까지 주면서 데려올 선수인가?라는 것이였다.

일단 4월까지의 성적을 보면 지난 5년과는 달라진 모습을 보이며 13승 11패 승률 .541로 선전했다. 그리고 5월에도 탈보트의 2군행 및 김경언의 부상 등이 겹치면서 좀 삐걱거렸지만 팀 성적은 귀신같이 5할을 지켰고, 6월도 중위권을 꾸준히 사수했지만, 후반들어 갈아댄 투수들의 힘이 급속도로 빠지며 동력을 잃어 DTD, 결국 8월 중반부터 6위로 떨어졌다.

9월 들어서도 치열한 5위 싸움은 계속되었지만...결국 얇은 전력의 한계와 투수들의 방전으로 못 버티고 떨어졌다. 감독 한명 으로 인해 DTD를 시전하지, 감독 특유의 어그로 유도 때문에 작년 LG 지분 다 가져가 9개 구단 연합의 타도대상이 되었지, 리빌딩 하다가 더 부서져버렸다.

그래도 시즌 최종전까지 포스트시즌 탈락 확정은 되지 않았을 정도로 선전했으나, 사실 가능성은 그 전부터 절망적인 수준이었고, 결국 시즌 최종전 kt wiz에게 패배하면서 포스트 시즌 탈락이 확정되었다. 같은 날 SK가 NC를 꺾으면서 kt wiz에게 이겼다고 한들 PS 진출은 실패했으며 마지막 잔여경기에서 KIA가 4연패를 기록하면서, 한화는 최종 6위로 결정되었고, 비밀번호의 8번째 자리는 6으로 확정되었다. 58868996.

3.9.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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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아깝게 6위를 한 것에 더해, 또 다시 SK에서 정우람이라는 대어급 FA를 영입하며 드디어 팬들은 올해는 가을야구 갈 수 있냐는 희망 속에 시즌을 맞이했으나, 현실은 4월 25일까지 3승 16패 승률 0.158을 기록하며 아예 독보적인 꼴찌. 그 심각한 2013년 초반에 버금갈 정도의 승률이다. 무엇보다 작년에 팔을 그렇게 갈아댄 투수들이 기계가 아닌 이상 올해도 작년만큼 할 수 있을 거라 가정하고 시즌을 시작한 게 그나큰 오산이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2군마저 박살났다고 한다. 4월 25일 기준 2군도 2승 1무 12패 승률 0.143으로 남부리그 최하위인 상황. 아래에서 받쳐주지를 못하니 1군의 붕괴는 이미 예정된 수순이다.

이후 6월에 분전하여 탈꼴찌를 넘어 본격적으로 5강싸움에 합류...하는 듯 했으나 결국 작년과 같은 이유+시즌 초에 막장으로 까먹어놓은 승패마진을 끝내 복구시키지 못하며 9월 들어 서서히 희망이 사라지더니, 결국 10월 2일, KIA가 KT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면서 9년 연속 포스트시즌 탈락이 확정. 그나마 KIA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면서 7위로 시즌을 마쳤다. 시즌 초의 참담한 승률에 비하면 사실 선방한 것이지만 팀의 미래를 갈아가면서까지 가을야구에 도전했는데 진출에 실패했으니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그렇게 비밀번호의 9번째 자리는 7로 확정되었다.

3.10.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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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재작년도 시즌은 감독 혹사로 용두사미로 끝났고 작년은 그저 웃음후보였다. 그리고 시즌 후 연말에 김성근 감독이 유례없는 전권 행사와 투자에도 가을야구에 실패하였고 그간의 투수 혹사 및 2군 선수들에 대한 과도한 통제, 특히나 권혁에 대한 홀대로 구설수에 오르는 중에 유임에 대한 확언이 나오지 않아 경질 소식을 기대하는 팬들이 많아졌으나, 엠스플뉴스의 폭로는 어느 순간 중단되었고 유언비어 유포를 구실로 단장이 좌천되고 새로 김성근의 제자였던 전 LG 감독 박종훈이 새 단장으로 부임하였다. 이어 김성근 감독의 유임을 구단이 확정적으로 발표하면서 김성근 감독의 3년차 시즌이 시작되었다. 이거 뭔가 관계가 영 수상하다.[34]

일단 구단은 유망주 육성 및 유출 방지로 중장기적인 팀 구상에 집중할 것을 밝혀 사실상 외부 FA 영입과 2017년 시즌에 큰 기대가 없음을 밝혔고 프런트의 권한을 조금이나마 강화할 의도를 단장 선임을 통해 드러냈다. 11월 초에는 단장 감독도 서로를 인정해 주는 분위기지만 김성근 감독이 본인의 제자이자 SK 시절 본인이 감독으로 부임하자 두산으로 런한 인물의 지시를 순순히 따라줄 리는 없다. 여담으로 김성근은 SK 시절[35]을 제외하면 전 시즌보다 더 높은 성적을 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팬들이 김성근을 비판하는 요소 중 하나가,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김성근의 근시안적 운용 때문인데, 사실상 시즌 같은 장기전에서의 성적 개선은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다.[36]

부상당한 투수진의 복귀 및 내야 유망주들의 실책 감소가 절실하다. 팀 평균 자책점을 낮추는 핵심 요소인 이것만 이뤄져도 좋겠지만 그게 그리 쉽게 됐으면 암흑기가 왔을리가 없다. 중도 경질을 기다리는 팬들은 한화 이글스 홈페이지 팬 게시판에서 노리타들과 몇 달째 치열한 혈투를 벌이고 있다.

2월 15일 기준 삼성과 함께 외국인 용병 한 명을 여전히 확정짓지 못하고 있다. 삼성은 타자, 한화는 투수를 못 구했는데, 잘 하면 마에스트리 같은 용병 알바를 하나 더 봐야 할 수도 있다. 다행히 프런트가 2월 말에 인성과 실력을 모두 갖췄다고 판단한 우완 카를로스 비야누에바를 영입하였고 노리타와 성골칰으로 갈라져 싸우던 한화 팬들은 또 다시 '한 번만 더 속아보자'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5월 23일, 김성근 감독이 사임했다. # 하지만 그가 망가뜨린 유망주 육성 시스템과 1군 라인업의 고령화, 고비용 저효율의 선수단 구조를 개편하고 팀을 재건하려면 후임 감독이 누가 되든지 당분간 고생이 불가피하다. 과거 롯데 백인천 경질 이후 8888577을 끊고 포스트시즌 진출까지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고, LG가 김성근을 경질한 이후 6668587667을 끊기까지 10년의 시간이 걸렸다는 점에서 암흑기가 언제까지 이어질 지는 섣불리 예측하기 어려우며 어찌 보면 한화의 진정한 암흑기는 이제부터가 시작인 셈이다.

그리고 8월 18일 기준, 9위 삼성과 반게임차로 8위다. 문제는 7위 SK와의 게임차는 무려 9게임차이기 때문에, 비밀번호 타이기록을 쓸 거 같다. 9월 11일 현재 9위 삼성과는 4게임차지만 7위와는 10게임차까지 벌어지고 말았다.덕분에 선수의 부상 소식에 오히려 즐거워하는 전직 한화 팬들은 김성근이 없어서 선수들이 퍼졌다며 정신승리 중이다. 9월 13일 삼성전에서 믿었던 비야누에바가 무너지며 패배하였고, 이날 패배로 10년 연속 가을야구 탈락이 확정되었다.

9월 23일 삼성과의 경기에서 8:7로 승리함에 따라 삼성은 남은 경기와 상관없이 9위가 확정되고, 한화도 동시에 남은 경기와 상관없이 이번 시즌 8위를 확정지었다. 따라서 한화의 10번째 자리 숫자는 8로 확정됐다.

결과적으로 이번 시즌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하여 LG의 10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기록과 타이를 세우게 되었다.

3.11. 2018년: 11년 만의 가을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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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한화포스트시즌진출.jpg

3.11.1. 시즌 전 예상

수많은 한화팬들의 바람과 달리 전력 유출 적고 전력 보강은 새로운 외인 제이슨 휠러, 제라드 호잉, 키버스 샘슨과 2차 드래프트로 당장 쓸 수 있는 LG 출신 외야수 백창수와 롯데에서 방출된 뒤 입단 테스트를 거쳐 들어온 외야수 김민하 외에는 없다시피 한 수준이다. 거기다 2차 드래프트에서 함께 지명되었던 문동욱 김지수는 아직 1군에서 검증되지 않은 것들이 많으며, 김민하도 육성선수 신분이라 4월 말까지는 1군에서 뛰는 모습을 볼 수 없다. kt 황재균을 잡고, 삼성 강민호를 잡았으며, LG 김현수를 잡았으나 한화는 레전드 출신들을 다시 데려오는데 그쳤다. 오히려 보강의 탈을 쓴 현상 유지라고 해도 할 말이 없는 지경이 된 것. 한용덕 감독이 어설프게 전력 보강을 하려다 이전의 좋지 않은 한화로 되돌아갈까봐 외부 영입을 모두 거절했다고 한다.

3.11.2. 정규시즌

아직 4월 초반이지만 현재 3위까지 오르면서 확실히 달라진 경기력을 보여주고있다. 그러나 이후 4월 22일까지 5연패를 하며 그럼 그렇지 하는 식의 반응이 돌아왔다.

5월 4일, 다시 3등에 오르고 3등을 굳건히 하고 있는 상황이라 일단은 중간에서 연승과 연패를 반복하고 있다. 아직은 좀 더 지켜봐야 한다.

5월 19일, LG전 승리와 2위이던 SK의 패배로 SK와 공동 2위로 올라섰다. 현재까지 5월 성적은 12승 3패로 전체 승률 0.591, 5월 승률 0.8.

다만, LG전 이후로 2위인 SK와 1위인 두산과 경기한다. 이 두 고비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인가. 5월 22일에 두산을 잡고, SK가 넥센에게 잡히면서 단독 2위를 손에 넣었다. 23일에 SK는 넥센을 잡았지만 한화는 또 두산을 잡으면서 단독 2위를 유지한데다 1위와의 승차도 2게임차로 좁혔다. 이후에 주말 SK와의 3연전에서 1승 2패로 주춤했지만 주간 3승 3패로 여전히 3위자리를 유지중이다. NC와의 3연전으로 5월을 마감하고, 주말은 일요일 연패를 끊긴 했지만 6연패로 9위까지 추락한 롯데와의 3연전이기 때문에 다시 2위 자리를 노려볼 만 하다.

5월 29일, NC를 무난히 7-2로 꺾고 두산과 SK 경기가 우천으로 노게임선언된 틈을 타 2위 SK에 0.5게임차로 다시 접근했다. 그리고 6월 1일 현재 SK가 두산에게 스윕당하면서 NC전을 위닝 시리즈로 장식한 한화는 SK를 밀어내고 단독 2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6월 최종성적이 기대를 훨씬 웃돈 6할대를 기록하면서 가을야구에 대한 전망도 훨씬 밝아지게 되었다.

뉴스 기사에 덕장 한용덕과 호잉 등 선수들을 칭찬하는 기사가 연일 올라오고 있다. 하지만 타선이 득점 찬스에서 종종 아예 점수를 못 내는등 경기를 어렵게 끌고 가는 사례가 급증했을 정도로 침제에 빠졌고, 투수진 역시 구위형 투수들보다 투심 등 변형 패스트볼을 즐겨쓰는 땅볼 투수들이 많아 흔들리는 경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37] 투수력만으로 버티는 데에는 분명 한계가 있으므로 무더운 여름을 어떻게 견뎌내느냐에 따라 가을야구가 결정될 것이다.

7월 2일 현재 48승 32패로 승률 정확히 6할을 찍었다. 92년 빙그레 이글스 이후 26년만의 80경기 이후 승률 6할. 그 다음주는 약간 부진했으나 7월 8일 승리로 참 오랜만에 전반기 50승 선점에 성공하고 말았다. 이 기세가 이어진다면 비밀번호는 종료될 듯 하다.

7월 12일 넥센전의 승리로 2연속 루징시리즈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전반기를 2위로 마감하였으며, 7월 21일 삼성전 끝내기 패배로 다시 SK에게 2위를 내주고, 3위로 떨어졌다. 그리고 22일 정우람마저 끝내기로 무너져 3위 유지. 문제는 주간 2승 4패 중 끝내기 패배가 무려 3번, 정우람이 끝내기로 무너진게 2번이라는 것. 아무리 불펜이 버텨준다한들 타선이 대부분의 지표에서 8~10위인 상황이라서 난관에 봉착했으며, 이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상승세를 유지하기가 어려워진다.

7월 28일부터 2주간 기아와 두산 상대로 3승 3패로 5할을 찍었고 kt에 끝내기 포함 2승 1패로 위닝을 거두었으나 2연전이 시작되는 NC에 스윕패당했다.[38] 이 기간동안 타격은 올라왔으나 득점을 못하고 있고 투수진이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도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8월 5일 기준 6위와의 승차는 여전히 8경기(상대전적도 모두 우세)이고 같이 2위경쟁을 하던 LG는 어느새 승패마진 +10을 14경기만에 까먹을 정도로 역대급 DTD[39]를 선보이고 있어서 포스트시즌 진출 가능성이 본의아니게 점점 커지고 있다.

8월 7일 이제 두산, 넥센, kt라는 만만치 않은 상대를 만났지만, 두산에게 1승 1패, 넥센에게 루징 시리즈, kt에게 위닝 시리즈를 거두며 총 3승 3패로 무난하게 마무리 지으며 SK와의 거리를 다시 1게임 차로 좁히는 데 성공했다.

아시안 게임 브레이크 전에 5위권과 대략 8게임 차이가 난다. 30경기가 남았다고 가정하면, 한화가 11승 19패하고, 5위권 팀이 19승 11패 정도를 해야 따라잡힌다. 승률 변동이 타 스포츠에 비해 크지 않은 야구의 특성상, 이변이라 불릴만한 사건[40]이 벌어지지 않는 한 포스트 시즌 진출은 매우 희망적이다.

9월에 들어서 선발 투수진의 부진으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5할 승률은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SK를 제치고 2위를 탈환할 가능성은 낮아졌다.

9월 28일 두산전에서 승리하면서 매직넘버가 소멸되고[41] 11년 만에 한화 이글스의 가을야구 진출이 확정되었다. 10월 13일 NC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역전승을 거두며 정규시즌 3위를 확정해 준플레이오프에 직행하게 되었다.

3.11.3. 준플레이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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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PO에서 넥센 히어로즈에게 1승 3패를 거두면서 탈락했다.[42] 그래도 매 경기가 2~3점 내의 점수차로 이기거나 진 팽팽한 경기였고, 무엇보다도 11년 만의 포스트시즌 경기 승리가 의미가 있었다. 또한 넥센이 플레이오프 5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결국 패배하며 한화의 최종 성적이 4위로 떨어지는 대참사는 면하게 되었다.

3.12. 이후

한화 이글스/역사 혹은 한화 이글스/암흑기 문서 참조.

4. 문제점

가장 큰 문제점은 한화 이글스가 근 5~10년 동안 신인 육성, 인프라 개선 등 기본적인 투자가 너무 미비했다는 것이었다. 2004년~2009년 동안 다른 구단이 신인 드래프트에서 행사할 수 있는 모든 권리를 행사했던 것과 달리 한화 이글스의 경우에는 1년에 겨우 4~6명의 선수만 뽑고 패스했을 정도로 근시안적으로 팀을 운용했고, 그러다 보니 그 때 뽑은 선수들이 성장해 전력을 형성하고 있어야 할 현재 기본적인 전력조차도 없는 게 당연하다. 2005년~2007년 423 시절이 오히려 독(5886899678)이 된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얼마나 선수가 없는지 SK 와이번스 정근우의 보상선수를 지명하지 않고 그냥 보상금만 받았을 지경이었다.[43][44][45]

정병희, 윤규진, 신주영, 안영명 등 싹수가 보였던 쓸만한 신인들은 김인식 시절 혹사로 빠르게 전력에서 사라졌다. 특히 김인식 감독 초기에 혹사당한 정병희는 이제는 제대로 기억하는 팬들조차 없는 게 현실이며, 결국 FA로 풀린 김민재를 영입하면서 SK 와이번스에 보상선수로 지명되어 이적한 뒤 군 복무를 마치자마자 2010년 말 SK에서 방출당했다. 혹사 - 재활의 반복을 거친 윤규진은 팬들에게 새가슴 의혹을 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김인식 시절부터 이어지던 문제점인 방출생이나 타 팀의 잉여자원을 트레이드로 영입하는 일은 여전해서[46] 정원석, 강동우, 장성호, 이대수, 박찬호를 데려와[47] 1~2년 정도 잘 써먹기도 했지만, 오히려 이게 신인 선수 육성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말았다. 무엇보다 이런 선수들은 나이가 있었던 탓[48]에 언제 부진해서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신인 지명이나 관리도 엉망이었는데 기껏 뽑은 선수들은 박상규 최우석, 김원석 같이 멘탈이 문제가 되는 선수들이 여럿 있었고[49], 신민기처럼 병역비리 사건에 연루되거나 최진호처럼 뺑소니 사고를 저질러 흑역사가 된 케이스도 있었다. 또한 김용주 윤기호같이 자질이 모자라고 몸 상태에 문제가 있는 걸 뻔히 알면서도 북일고등학교 출신이라는 이유로 지명한 경우도 있었는데, 윤기호는 부상이 있는 걸 알면서도 북일고 출신이란 이유 하나로 전준우를 지명할 기회를 버리고 뽑았다. 김용주는 북일고 시절의 혹사도 있었고, 고교 야구에서도 한계가 빤히 보이는 선수였는데도 1지명으로 뽑았다.[50]

특히 투수진 육성은 그야말로 처참하게 실패했는데, 김인식 시절에 신인 드래프트에서 야수 지명을 줄이고 투수만을 집중적으로 모았음에도 선발 투수의 경우 2007년 세드릭 바워스가 11승, 정민철이 12승과 2.90의 평균자책을 기록한 이후로 2008 시즌부터 류현진을 제외하고 풀타임으로 평균자책 3점대 이하를 기록한 선발 투수가 단 한 명도 없다. 그나마 류현진을 제외하고 2008년 이후 유일하게 시즌 10승에 성공한 안영명이나[51] 양훈, 김혁민 등이 한 시즌이나마 희망을 보여주나 했지만 혹사 등으로 인해 다음 시즌으로 넘어가면서 바로 원상 복구되기를 반복.

그렇다고 불펜진 육성은 성공했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닌 것이 같은 기간 동안 한화에서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불펜 투수는 2010 - 2011 시즌의 '노망주' 박정진과 2012 시즌 이후의 송창식 정도밖에 없다. 그나마 저 둘 모두 기존의 자원[52]을 어찌어찌 키운 수준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박정진은 나이 때문에 언제 부진해도 이상하지 않고, 송창식은 2013 시즌의 혹사 후유증으로 2014 시즌을 완전히 말아먹었다. 2016~2017년이 되고 기존의 송창식, 박정진, 삼성에서 사 온 권혁, 이동걸, 정대훈이나 심수창, 윤규진, 안영명등이 불펜으로서 뛰고 있지만 이 들의 나이는 30대~40대의 베테랑으로 언제 퍼져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이다. 그나마 서산구장이 생긴 지금은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

야수 지명을 줄여 부족해진 야수진을 타 팀 방출선수나 신고선수로 때웠지만 그것도 2009년을 끝으로 한계에 이르렀고, 이 와중에 투수진조차도 붕괴되면서 결국 현재의 빈약한 팀 전력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나마 매 년 한 명씩을 지명한 포수진에서도 주전 포수 육성에 실패하면서 노장 신경현이 계속해서 포수 마스크를 써야 했을 정도였다.[53]멀리 보면 이 신인 육성의 문제점이 1990년대부터 보였는데, 실제로 한화가 1996년 홍원기, 이영우, 송지만, 임수민으로 대표되는 신인 4인방 이후부터 제대로 육성에 성공한 선수는 끽해야 김태균, 이범호, 류현진, 최진행 정도에 불과하며, 특히 상위 순위로 지명해서 키워낸 선수는 손에 꼽을 정도이다. 이 중에서 류현진, 김태균은 까놓고 말해 육성이고 뭐고 할 것도 없이 고졸 1년차부터 1군 리그를 폭격한 천재였고, 1년 반짝을 제외하면 약빨인 것으로 판명난 최진행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남는 건 이범호 단 1명 뿐이다. [54]

군 입대 선수 관리조차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는데, 타 구단의 경우 2004년 프로야구 병역비리 사건 이후부터 신인 선수들의 병역 문제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며 선수 육성에 힘쓰고 있었다. 보통 신인이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면 일찌감치 병역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며 미래를 내다보기 마련인데, 한화의 경우에는 2년 연속으로 드래프트에서 4~6명의 선수만 뽑은 걸로도 모자라 김인식 시절부터 쓰지도 않을 유망주를 군대도 보내지 않고 2군에다가 썩혀놓으면서 기본적인 선수 군 복무 관리조차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55] 그 결과가 2010년 송광민시즌 도중 현역 입대 해프닝.[56] 그나마 구단이 뒤늦게나마 정신을 차린 것인지 감독이 한대화 - 김응용인 시기에는 이런 점을 어느 정도 의식하고는 있다.

또한 팀 특성 상 9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이상군, 강석천, 이정훈, 이강돈, 한용덕, 장종훈, 송진우, 정민철, 구대성, 이영우, 신경현, 제이 데이비스[57]와 같은 프랜차이즈 스타들이 굉장히 많았고 이들에 대한 의존도가 굉장히 높았는데 이런 상황에서 이 선수들이 1990년대 후반~2013년에 모두 은퇴를 선언하면서[58][59] 전력에 균열이 생겼고, 가뜩이나 신인 육성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던 상황과 프랜차이즈 스타의 은퇴가 겹쳐져 기나긴 암흑기가 시작된 것이다.

감독 선임에 있어서도 부정적인 모습들이 드러났는데, 일단 김인식 시절 3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과 1번의 준우승을 달성했지만, 믿음의 야구, 재활 공장장 이미지에 가려진 무차별 투수 혹사와 노장 선호[60]로 인하여 이미 주축 선수들의 고령화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던 한화에 엄청난 후유증을 남겼다. 한대화 경질 이후 선임된 김응용 또한 2004년 이후 10년 가까운 현장 공백으로 인해 어제 등판한 투수를 다음날 선발투수로 등판시키는 등 1980~1990년대 야구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을 보이며 2년 연속 꼴찌를 기록했고, 팬들의 성원 속에 취임한 김성근 역시 불펜 투수에게 100이닝 이상을 소화시키는 등의 혹사와 무리한 작전/팀 운용 등으로 최신 야구관을 따라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여전히 팀의 평균 연령층이 높고 뒤늦은 리빌딩에 나서고 있는 한화와는 처음부터 전혀 맞지 않는 인물임을 증명했다.

사실 한화의 암흑기가 시작되는 조짐은 이미 2000년대 초부터 드러나기 시작했다.[61] 2년 연속 우승을 노렸던 2000년에는 정민철 일본 진출로 인한 투수진의 붕괴로 인해 전체 7위에 그쳤고, 2001년에 잠깐 4강에 들기도 했지만 승률은 겨우 4할 후반에 불과했고 당시 최하위였던 롯데 자이언츠와는 단 2경기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던 상황[62]이었다. 보통 같으면 이 무렵에 리빌딩에 착수했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었지만, 프런트에서는 당장의 성적만을 바라보며 내일이 없는 팀 운용을 감행했다.[63] 그래도 2002~2004년에는 비록 가을야구 진출은 실패했지만 깔아주는 팀들( 두엘롯)이 있어서 그럭저럭 꼴찌만은 하지 않으며 적당히 중하위권에서 놀았다. 이후 2005년부터 3년 동안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하고 2006년 류현진의 포텐이 제대로 터지며 1번의 준우승을 거두기도 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들의 고령화가 심각했고, 결국 이 선수들이 모두 은퇴하면서 급속도로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무엇보다 한화 이글스는 2012년까지 8개 구단 중 유일하게 2군 전용 훈련장이 없었다. 친환경 구장이라고 까였던 KIA 타이거즈도 어쨌든 함평군에 2군 훈련장이 있었고[64], 심지어 당시 매년 선수 팔아서 운영하던 넥센 히어로즈조차도 연고지에서 머나먼 강진군이라 해도 자기네 2군 훈련장을 가지고 있었다.[65] 이 때문에 한화 2군은 계룡대 연병장이나 인근의 대전고등학교 운동장을 전전하면서 연습을 했다. 다른 팀들은 전용 구장에 웨이트 시설에 기숙사에 식당에 재활 센터까지 갖춰놓고 1년 내내 연습시킬 때 한화는 그때그때 남의 운동장 빌려서 눈치보면서 연습하고, 심지어 구장을 못 구해서 KBO 퓨처스리그 경기가 연기되는 경우도 있었다. 설령 2000년대 중반 패스했던 신인지명을 모두 행사했더라도 이런 상황에서 선수 육성이 된다면 그건 기적이다. 비슷하게 암흑기를 헤메던 롯데 자이언츠가 2007년 상동야구장이 완공된 이후 유망주들이 많이 배출되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구단이 얼마나 투자에 미비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단, 한화도 조금은 할 말이 있었던 것이 2군 훈련장 건설이 늦어진 것은 대전광역시 대덕구의 탓이 크다. 2007년 대덕구 덕암동에 2군 훈련장을 짓기로 양해 각서까지 체결해 놓고 행정 절차 핑계대며 무려 4년 넘게 질질 끌어 삽마저 못 뜬 것. 결국 팀 성적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참다 못해 서산시에 짓겠다고 발표해 버리니 그제서야 대덕구는 양해각서까지 체결해놓고 일방적으로 약속을 파기했다며 반박 보도 자료까지 돌렸다.[66] 다행히 2012년 초 서산시 성연면 서산테크노밸리에 2군 훈련장 착공 계획이 수립되었고, 2012년 12월에 드디어 서산 야구장이 문을 열었다. 여담으로 대덕구 덕암동의 그 부지에는 2015년에 대전 시티즌의 클럽하우스와 연습장이 들어섰다.

거기에다 앞에서 얘기한 몸 상태, 기량 미달 선수임에도 북일고등학교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지명하는 것과 같이 선수 시절 이름을 날렸거나 프랜차이즈 출신 선수들을 대우해 준다는 이유만으로 별다른 연수도 없이 코치진에 무혈 입성한 이상군, 송진우, 조경택, 정민철 등 능력 없는 코치들인 속칭 칰무원 때문에 제대로 된 선수 육성이 이뤄지지 않은 부분도 문제를 키웠다.[67][68] 대표적으로 정민철은 투수 기용, 교체 타이밍 등에서 문제점을 드러냈으며, 이상군은 투수 코치로 있으면서 선수들의 구위, 제구, 투구폼 등을 망가뜨리고, 용병 스카우터로도 배스 션 헨 같은 수준 미달 용병을 데려와 무능력함을 증명했다. 송신영의 FA영입은 덤. 조경택 또한 배터리 코치로는 무능력해서 명포수라는 반어법[69]이 등장할 정도였으며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외에도 타이거즈 출신 등 팀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외부에서 수혈한 코치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는 않다. 대체적으로 한화 프랜차이즈 출신 코치들은 줄곧 자리를 지키고 감독이 바뀔 때마다 감독과 같이 부임한 코치들도 함께 바뀌는 구조였다.[70]

신인 드래프트의 실패와 무능력한 코치진의 시너지가 결정적으로 드러나는 게 바로 답이 없는 한화의 수비.매년 마무리 훈련과 스프링캠프에서 지옥 훈련을 한다고 하는데 시즌 초에 보면 오히려 퇴보해 있고, 시즌 말 즈음 가면 어느 정도 안정되었다 싶다가 다음 해에 보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희망고문이 몇 년째 계속되고 있다.[71]

여기에 2011년부터 신생팀 NC 다이노스, kt wiz가 창단하는 변수가 발생하면서 꼴찌하고도 전체 1순위로 신인을 지명하지 못하는 불운을 겪고 있는데, 그렇게 북일 팜의 윤형배(윤호솔로 개명), 류희운, 청주고의 주권을 NC, KT가 지명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72][73] 또한 LG 트윈스가 2008 드래프트에서 대학진학이 예정된 나성범을 쓸데없이 지명하는 바람에 2012 드래프트에서 대졸 최대어 나성범을 1라운더 1픽에서 뽑을 수 없었고 결국 2라운드 1픽으로 NC에 빼앗겼다. 강승호 심재윤 등 북일팜 야수들을 LG 트윈스에 뺏기고 나서 지명한 야수들 중 조정원이나 한승택 등을 빼면 1군 경험이 없으며 그나마 한승택은 경찰청 입대를 앞두고 KIA 타이거즈에 FA 보상선수로 빼앗기고 말았다. 그리고 조정원 역시 김성근이 제대하는 하주석, 오선진을 써먹겠다고 고집을 부린 탓에 경찰청이나 상무는 못가고, 현역으로 가야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74]

뿐만 아니라 ㄹ자 드래프트의 피해를 보았다는 평이 많다. 보통 드래프트는 상위픽의 가치가 하위픽의 가치보다 훨씬 높은데, 대부분 아마야구 풀은 강백호급의 특급 인재가 나오지 않는 한 상위 20번의 픽 중 1번, 20번을 받는 최하위팀이 10번, 11번을 받는 우승팀에 비해 큰 메리트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75]

또한 2013년 드래프트에서도 제주도 + 대졸 선수들을 영입하면서 신인 지명에서도 문제를 드러냈다. 이것은 한일 월드컵 특수로 인해 당시 체육계 유망주들이 전부 축구로 몰려가 버린 탓에 특급 신인이 씨가 마른 상황에서 현재의 하위권 팀들은 치고 올라가는 데 몇 년의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리고 용병 선정(특히 투수용병)에도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외국인 선수 제도가 도입 된 이후로 한화는 타자용병에선 재미를 많이 봤지만 투수쪽에선 영 꽝이였다. 한화 역사상 10승 이상 혹은 30세이브 이상을 거둔 투수용병이 키버스 샘슨(13승), 세드릭 바워스(11승)와 미치 탈보트(10승), 알렉시 오간도(10승), 브래드 토마스(31세이브), 워윅 서폴드(12승,10승), 채드벨(11승)정도밖에 없을 정도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화는 2군 구장 부재, 군 입대 선수 관리 부실 등 팀의 가장 기본적인 시스템조차도 제대로 짜여 있지 않았던 팀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현재진행중인 암흑기 탈출을 위해서도 하루 빨리 부족한 시스템을 보강하는 등의 노력이 시급한 상황이다.

팬과 회장도 문제인데 리빌딩을 하려고만 하면 성적이 안나온다고 온갖 비난을 해대고 야구계 사정에 잘 모르는 기업인인 김승연 회장이 여론만 듣고 마음대로 해대니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다. 레전드 트레이드 하지말라고 전화로 훼방 놓고 결국 돈먹는 잉여가 된 사건은 유명하다. 가장 최근 사건이 김성근 감독 영입건인데 프런트의 의견은 무시하고 김성근사단을 어마어마한 거액을 주고 앉혀왔는데 당연히 김성근은 30년간 해왔던 본인스타일대로 하고 한화는 그걸 버틸 팀이 아니었다. 리빌딩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팀에 단기적으로는 강한 듯 보이나 장기적으로는 팀 뎁스를 아예 때려부수는 자칭 야신을 명장이랍시고 앉히고 절대 권한을 쥐어주었다.[76][77]

2016년 9월 기준 한화 선수진의 평균 나이는 31세다.[78] 그나마 올해 주목받은 젊은 선수는 양성우, 하주석, 이태양, 김민우, 김재영 정도로 아예 없지는 않지만, 양성우와 하주석은 최진행의 부상과 권용관 등 내야진의 부진이 아니었다면 올라와보지도 못했을 선수들이고, 둘 다 군대에서 몸을 만들어 온 것이지 김성근이 딱히 뭘 해준 것은 없다. 이태양은 김응용이 밥 지어 먹이며 키운 걸 2015년 김성근의 과도한 훈련으로 토미 존 수술을 받아 시즌 아웃된 뒤 바로 다음 해에 재활 등판의 명목으로 올렸음에도 겨우겨우 잘 던져주는 것이고, 불펜 알바를 간혹 할 때마다 불안한 모습을 보인다. 한화의 10년을 책임질 수 있었을 김민우는 안 그래도 두 번의 수술과 부상 위험이 큰 투구 폼과 구종을 가진 선수임에도 작년부터 보직없이 굴려지고 특투와 투구 폼 교정을 받다가 '우완 류현진'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어깨 관절와순 손상으로 고인이 되어버렸다. 5년간 어깨 재활로 신음하다 끝내 돌아오지 못한 전병두가 그 예다.[79] 시범경기에서 4경기 15이닝 ERA 0.60의 무시무시한 피칭을 보여준 대졸신인 사이드암 투수 김재영은 잦은 퀵후크와 보직 변동으로 본래의 구위와 제구력을 잃고 2군에 주로 머물렀으며, 여러 차례 병살타를 유도하는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음에도 점수 차가 7~10점 정도로 크게 벌어지지 않으면 나오지조차 못하고 있다.

17시즌 김성근 감독이 자진사퇴 형식으로 경질되고[80], 이상군 대행에 의해 김재영이 선발로 제대로 된 기회를 받기 시작했고, 노장 선수들을 연달아 웨이버 공시 형태로 방출시키며 그 빈자리를 신인급 투수, 야수들을 정식 선수로 등록하거나 1군 무대에 올리는 등 리빌딩이라고 할만한 작업이 시작되었다.[81] 이 중 그나마 가능성을 보여준 건 후반기 5연속 QS를 기록한 김재영 정도가 있었다.

2018 시즌 이정훈 스카우터의 주도 하에 신인 드래프트에선 즉전감 대졸 선수를 아예 뽑지 않고 10명을 모두 고졸 선수로만 채우는 등 연령대 감소에 힘쓰고 있다.

그 노력은 2018 시즌 드래프트에서 뽑은 정은원이 2018년 조상우에게 뽑아낸 홈런으로 이름을 알린 이후, 2021년 뛰어난 출루 능력으로 최고의 2루수가 되고, 19시즌 드래프트에서 뽑은 노시환이 2021년 장종훈- 김태균의 계보를 이을 가능성이 높은 거포로 떠올랐고, 20시즌 드래프트에서 뽑은 강재민은 비록 대졸 출신이지만 20시즌 좋은 활약을 보여졌고, 2021년 전반기 직전까지 0점대의 평균자책점으로 리그 최강 불펜으로 자리잡는 등, 한화도 유망주 육성이 조금씩 희망으로 차기 시작했다.

4.1. 팀 wRC+ 4687389897

2008년을 빼면 타선은 항상 리그 평균 아래였다. 이는 '다이너마이트 타선'으로 불릴 정도로 늘 강타선을 자랑하던 한화 이글스의 역사에 있어서 치욕이라고 할 수 있다. 2012년 의외로 WRC+ 99를 기록하기는 했지만, 그것조차도 압도적인 리그 최고의 타자 김태균이 있었기에 가능했었다. 심지어 팀 wRC+가 90을 넘지 못한 시즌도 네 번이나 있었다. [82]

과거에는 교타력은 부족했지만, 다이너마이트 타선에 걸맞은 장타력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홈 구장이 좁다는 점도 한 몫 했지만 성적이 매년 롤러코스터를 타던 2000년대에도 교타자 부족에 시달렸지만 한화의 홈런 순위는 꾸준히 높은 편이었고, 심지어 21세기 최강의 투고타저 시즌이었던 2006년의 경우, 팀 홈런이 100개를 넘었던 유일한 팀이였다. 그 후로도 2007년 2위, 2008년 1위, 2009년 2위로 쭉 상위권을 지켰다.

하지만 김태균, 이범호가 빠져나간 2010년부터 팀은 장타력 기근에 시달리게 된다. 2013년에는 김응용의 요구에 따라 현재의 크기로 구장을 넓혔다가 팀 홈런 47개라는 기록을 쓰게 된다. 참고로 이 해 홈런왕인 박병호의 홈런 개수가 37개였다. 김태균도 시즌 막판에 겨우 10홈런을 채웠다.[83]

그렇다고 팀 타율이 좋았냐고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교타력 부재 때문에 구단에서는 지속적으로 교타자를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했으나 별로 재미를 보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철강왕에 S급 타자였던[84] 이범호마저도 구단의 미비한 투자로 KIA에 보내 버리니 백업으로 쓰면 좋은 선수인 고동진이나 김경언이 1군에서 주전을 맡고 욕을 먹는 일이 벌어지게 되었다.

오랜만에 가을야구를 맛보았던 2018년도 팀 wRC+는 9위였다.

4.2. 팀 평균자책점 6888899998

2002년부터 8685로 안 좋았었다. 그러다, 2006, 2007년 잠시 3위를 찍었으나 2008년부터 6위로 떨어지더니 2009년부터 6년간 계속 꼴찌를 찍다가 2015년부터 겨우겨우 끝에서 2위를 기록하고 있다. 게다가 2014년에는 역대 최악의 팀 평균자책점 신기록인 6.35[85]를 달성하는 굴욕을 당했다. 이건 정말로 큰 문제로 애초에 이닝이터 투수조차 전무한 게 한화의 막장 평균자책점이 직면한 현실이다. 그리고 애초에 수비력이 부실하니 그나마 준수한 투수들도 평균자책점에 크게 손해를 보는 현실이다.

게다가 이 문제점이 가장 심각하면서도 가장 개선의 여지가 없어 보이는데, 2015년의 데이터가 단적으로 이를 뒷받침한다. 100이닝 이상 던진 투수가 5명이나 되지만, 탈보트 4.72에 안영명 5.10 찍고 배영수 7.04. 불펜으로도 나오던 송창식은 6.44이고, 마무리 투수였던 권혁은 4.98이었다. 그나마 윤규진과 박정진이 각각 2.66과 3.09를 기록하고 있는 정도였으나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면서 의미가 없어졌다.

2016년에도 한화 이글스의 확실한 선발투수가 로저스와 안영명 정도고, 김민우나 김범수 등 신인 선수들이 연습경기에서 5이닝 가까이 던져주며 호투하는가 했지만, 역시나 정규시즌에서 잠수를 타니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리하여 2016시즌을 마무리해 보니 팀 평균자책점 5.76을 찍고 4년 연속 9위를 달성하는 대망신을 당했다. 84억이나 들여 정우람을 산 보람이 전혀 없다. 뭐 너무 처참히 작살나서 나올 일이 거의 없던 4월을 제외하면 교통사고 후에도 별 생각없이 등판시키고 무작정 2-3이닝을 맡기고 허리통증에도 내보낸 코칭스태프들 탓이 적지는 않지만.

2017년에도 김성근의 투수 혹사는 약간 줄어드는 듯 보였으나, 선발 조기 강판 후 2번째 투수로 거의 송창식을 내는 등 여전히 조급한 투수교체를 버리지 못했고, 경기 내외적으로 논란을 일으키며 프론트와 마찰을 빚은 끝에 자진 사퇴의 형식으로 사실상 경질되었고, 이후 그와 비슷한 듯 하나 투수 혹사만은 최대한 자제했던 감독대행이 부진한 선수에 대한 과감한 2군행, 퀵후크 자제, 상황에 맞는 투수 운용 등을 시행해 어느 정도는 평균자책점을 낮추는 데 성공했다. 한 때 외인 용병 둘이 모두 부상으로 이탈하여 이닝 소화력이 현저히 낮은 토종 독수리 5형제로 선발을 꾸렸음에도 불펜 평균자책점 1위를 찍기도 할 정도였다.[86] 다만 송창식, 권혁에 대한 혹사는 여전하여 비판의 대상이 되기는 했다. 이 역시 8위를 마크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결국 5.28을 기록하며 8위로 시즌을 마감하였다. 금지어가 나간 뒤 평균자책점이 높아진 사례가 몇차례 있던 걸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의외.

2018년은 불펜 핵심이었던 권혁, 송창식, 박정진이 혹사여파등으로 제대로 나오지도 못하는 와중에 서균, 박상원등 새얼굴의 등장과 안영명의 부활했으며, 송은범까지 1군레벨의 역할을 해주면서 비교적 떨어지는 선발 방어율에도 불구하고 5월말까지 불펜, 전체방어율 1위를 질주하고 활약했다.

그리고 10월 13일, NC와의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가 10-8 한화의 승리로 끝나면서 팀 평균자책점은 4.93, SK에이은 10개 구단 중 2위로 확정되었다. 그래도 팀 순위는 금지어 시절에는 꼴찌는 아니었지만, ERA 순위는 매년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한 해만에 팀 평균자책점이 최상위권으로 오른 것은 어찌보면 11년만에 암흑기를 청산한 것보다도 더한 기적이다.

4.3. 항상 일어나는 특유의 호구딜

한화 이글스는, 1999년 홍원기 김경원 트레이드 이래로 말 그대로 호구딜을 일삼았다. 이외에도 한화에서 일어난 굵직굵직한 트레이드를 살펴보자면,
연도 한화에서 방출 한화로 영입 상대구단
1999년 홍원기, 전상렬 김경원 두산 베어스
2000년 최익성 송유석[87], 신국환 LG 트윈스
2003년 고지행, 지승민 김승권, 임재철 삼성 라이온즈
2004년 송지만 권준헌 현대 유니콘스
임재철 차명주 두산 베어스
채상병 문동환
2005년 조영민 조원우 SK 와이번스
2006년 정병희(보상선수) 김민재(FA)
2009년 조규수, 김창훈 이대수 두산 베어스
2010년 마정길 마일영 넥센 히어로즈
안영명, 박성호, 김다원 장성호, 김경언, 이동현(1979) KIA 타이거즈
이범호(FA) 안영명(보상선수)
2011년 유원상, 양승진 김광수 LG 트윈스
2013년 장성호 송창현 롯데 자이언츠
이상훈(1987) 길태곤 삼성 라이온즈
한승택(보상선수) 이용규(FA) KIA 타이거즈
2014년 이대수, 김강석 조인성 SK 와이번스
김민수(보상선수) 권혁 삼성 라이온즈
임기영(보상선수) 송은범(FA) KIA 타이거즈
2015년 양훈 허도환, 이성열 넥센 히어로즈
김광수, 유창식, 노수광, 오준혁 임준섭, 이종환, 박성호 KIA 타이거즈
박한길(보상선수) 심수창(FA) 롯데 자이언츠


일단 1999년의 트레이드를 살펴보자면, 홍원기는 두산 가서 내야유틸로 포텐이 터졌다. 그리고 전상렬도 두산에서 백업으로 쏠쏠한 활약을 보였다. 반면에 김경원은 부진 끝에 31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조기은퇴했다. 그리고 2000년 트레이드 역시 암울한데, 최익성은 LG로 가서 백업으로 밥값을 했다. 반면에 신국환은 소리없이 묻혔으며, 송유석은 해태 시절의 혹사 여파 + 노쇠화가 겹쳐서 1년 반만에 유니폼을 벗었다.

2003년 트레이드는 문동환이 2006년에 부활했으며 채상병이 홍성흔이 지명타자가 되자 짧게나마 주전 포수로서의 구실을 했기에 윈윈이라고 볼 수는 있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권준헌 ↔ 송지만 트레이드는 한화의 역대급 호구딜이었는데, 권준헌은 일단 송지만보다 연상이며, 부상으로 인해 2년밖에 못 써먹었었다. 반면 현대로 간 송지만은 모든 타선을 오가면서 팀의 4번째 우승을 이끌었으며, 42살까지 현역에서 활약했다. 게다가 고지행과 지승민을 퍼준 트레이드도 문제인게 이 당시 데려온 임재철을 퇴물이 된[88] 차명주로 트레이드하면서 귀한 우타 외야수를 버린 격이 된데다가 만일 삼성이 고지행을 더 믿어주고[89] 지승민 군 문제를 잘 해결해서[90] 부동의 리드오프와 좌완 필승조로 성장, 롱런해 송지만 트레이드 이상의 호구딜이 될 뻔했다.

조영민과 조원우의 트레이드는 그나마 조영민이 딱히 보여준 것이 없는데다가 조원우가 주전으로서 평타 이상은 해 주었으니 한화의 승리라고 볼 수 있겠고, 김민재 FA도 사실 정병희가 보여준 것이 없는데다가 김민재가 4년간 내야 센터라인을 꾸준히 지켜주었으니[91] 한화가 득을 본 경우이다. 또한 김창훈, 조규수를 이대수와 바꿔온 트레이드 역시 두 투수의 재능이 만개하지 못 한데다가 이대수가 김민재의 뒤를 이어 센터라인에서 활약을 했으니 한화가 큰 이득을 봤다.

장성호, 김경언, 이동현을 기아에서 받아온 트레이드도 결과적으로 보면, 김경언의 대폭발로 한화가 큰 이득을 봤다. 물론 트레이드의 메인인 장성호는 퇴물이 됐지만, 결과적으로 나중에 롯데에서 송창현과 바꿔올 수 있는 트레이드 카드로 썼다.[92] 반면 기아로 간 안영명은 불을 지르다가 반년만에 돌아왔으며, 김다원은 0툴 플레이어라고 까이고 있다. 박성호도 후술할 트레이드로 다시 돌아왔다.

2011년에 김광수와 유원상+양승진을 바꾼 트레이드를 보면, 김광수는 LG에서 그럭저럭 던지던 투수가 말 그대로 한화에서는 김광숯으로 전락했다. 결국 KIA로 축출되었고, 거기에서 부활하였다. 반면 유원상은 LG 불펜에서 밥값을 하였고, 이후 NC, kt에서도 쏠쏠한 활약을 하다 은퇴했다. 그 와중에 아예 잊혀진 양승진

그리고 장성호와 송창현을 바꾼 트레이드는 한화가 이득 본 트레이드이다. 첨에는 2천안타의 장성호를 웬 듣보잡 신인 투수와 바꿨나 싶었지만, 어차피 장성호는 돌글러브여서 1루와 지타밖에 볼 수 없었고 김태균, 김태완 등의 1루, 지타 자원은 많았기 때문에 교통정리의 필요성이 있었다. 혹자는 1+1을 생각하는데, 트레이드라는 게 말처럼 딱딱 맞아 떨어지는 건 아니다.

2013년에 이상훈 길태곤을 바꾼 트레이드는 둘 다 이득이 없는 트레이드 였지만, 그나마 삼성이 약간은 이득인게 길태곤은 2군 신고선수로 강등되었지만, 이상훈은 삼성에서 신고선수로는 강등 안되었다는 정도다. 2014년에 조인성 이대수를 바꾼 것은 한화가 이익을 봤지만, 조인성의 경우는 고령인지라 언제 은퇴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게 문제이다. 그러나 하주석, 강경학 등이 돌아올 시 포지션 중복 등의 문제로 인해 교통정리가 필요한 시점에서 잉여 자원과 베테랑 포수의 교환은 한화의 무조건적인 이득이다.

문제는 암흑군주 김성근이 온 후 트레이드나 FA 보상선수를 통해 유망주를 희생해서 즉전감을 받아왔는데, 데려온 즉전감 선수들 중 제대로 활약한 선수는 이성열, 정우람밖에 없고 나머지는 페이롤만 잡아먹었다.

시즌 초에 넥센과의 트레이드부터 시작해보면, 양훈은 이지풍과 손혁이 다시 살려낸 후 넥센의 토종 선발로 2015년 포스트시즌에서 대활약하했다. 그러나 같은 해 이성열과 허도환은 대타와 백업포수의 위치를 부여받아 1할 후반~2할 중반대에 머무르고 있다. 하지만 이 트레이드의 결과가 뒤집어지는 데에는 1년도 걸리지 않았다. 양훈은 2016, 2017시즌에 크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인 이후 17시즌 종료 후 방출되었고, 이성열이 2018년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공헌해서 현재는 김성근이 유일하게 한화에서 잘 한 일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애초에 양훈은 이성열, 허도환보다 1살 어리기에 유망주-즉전감의 트레이드는 아니다. 그런데 그와 별개로 2015년 김성근 감독이 혹독한 다이어트로 양훈의 구위를 잃게 했던 훈련 방식은 확실히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어찌 보면 기아와의 트레이드가 더 심각한 결과를 가져왔다. 일단 한화에서 불만 지르던 김광수는 기아 불펜의 수호신이 되었고 2015와 2016시즌에 한화전에서 구원승이나 세이브 등을 가져갔다. 특히 이 트레이드가 한화 팬들에게 어마어마하게 까인 계기가 2015년 7월 31일부터 8월 2일까지의 3연전이었는데 이 기간 동안 김광수와 최영필이 기아 불펜을 캐리했기 때문. 둘 다 공교롭게도 한화에서 잉여전력으로 판단되어 매물로 나온 투수들이다. 여기에다가 오준혁과 노수광은 김기태 감독 아래에서 1군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며 기아 외야의 미래가 되었고 특히 노수광은 김주찬이 부상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 외야 한 자리를 당당히 차지했다. 물론 메인 카드였던 유창식이 망테크를 타긴 했지만 엄청난 이득을 얻었다.[93] 2017년에는 군에서 제대한 임기영이 기아 선발로 당당히 자리잡고 엄청난 활약을 이어가면서[94] 그런데 2018년 들어 임기영은 망하고 송은범은 4년치 밥값을 단 1년만에 해내며 불펜 에이스가 된지라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딜이 되었다. 물론 나이나 잠재력을 생각하면 그나마 임기영이 더 낫다.

반면 임준섭은 부상으로 인해 몇 번 모습만 드러내다 군입대했고, 박성호도 부상으로 육성선수 전환되었으며 그나마 박종훈 단장이 취임한 2017년부터는 이런 호구딜은 확실히 줄어들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신성현- 최재훈 트레이드였으며 이 트레이드로 한화는 고질적인 포수 부족에 탈출하게 되었다.

4.4. 선발 투수 육성 실패 + 드래프트 실패

가장 큰 문제는 투수 육성. 암흑기 초기 한화의 투수 육성은 문자 그대로 류현진 빼고 전멸으로, 역사상 가장 투수 육성에 실패한 팀으로 99688378 시기 삼성과 함께 꼽힌다.[95] 한대화 시절부터 시작해서 말로는 리빌딩을 한다느니 어떻게든 키워보겠다느니 실컷 떠들어댔지만, 지금도 제대로 된 선발 투수나 리드오프를 찾지 못해서 계속 방황하고 있다. 카를로스 수베로가 오기전까지는 구단의 육성 시스템조차도 타 팀에 비해 엉터리 수준이었다. 그나마 암흑기 시절 김민우같은 쓸만한 투수들을 키워냈고[96] 주현상까지 나오는 등 투수진에서 서서히 뉴페이스들이 나오고 있으나, 정작 가장 큰 기대를 받는 1픽들은 모두 헤매고 있고 선술했듯 야수진 육성 역시 전면적이지 않고 노시환 말고 성과가 다소 애매하다보니[97] 아직은 육성에 조금 더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 중론이다. 새로 들여온 감독 역시 선발 투수 육성을 거부하는 성향의 김경문으로, 김경문 감독 성향상 NC에서의 마지막 시즌에 와서도 퀵후크와 불펜 위주의 투수 운영을 하는 편이었기에 야수 유망주들이 대거 박키되는 상황은 몰라도 토종 선발 투수진을 키워내는 것은 시간이 좀 더 걸릴 전망이다.

한화의 지역팜인 대전/충청팜은 북일고를 제외하면 체계적인 인프라가 갖춰진 고교 야구부가 없는 국내에서 NC와 함께 가장 안 좋은 팜이다. 공주고 대전고는 북일고만큼의 인프라가 갖춰져 있지 않으며, 청주고는 감독이 중간에 여러 차례 교체되고,[98] 그 과정에서 선수들이 전학을 갔으며 그나마 세광고가 2020년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장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준우승을 기점으로 실력이 올라오고 있지만 갈 길이 멀다.[99]

기껏 선발 투수를 뽑아봐야 흉작만 나오고, 심지어는 1차 지명자를 1년 만에 방출하는 촌극이 발생하기도 했었다. 결국 야구 인재풀이 부족한 대전/충청에서 재능있는 선발 투수가 나올 확률은 다른 지역 팜보다 더 희박하다. 비밀번호를 끊은 2018년에도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게다가 신생팀인 kt가 2년 연속으로 충청팜의 최대어를 지명하면서 여기서도 또 손해를 봤다.

그 뿐만 아니라 한화가 꼴찌를 계속할 때 하필이면 유망주들의 골짜기 세대가 시작되었다.[100] 2010년, 2011년, 2013년은 역대급으로 팜의 암흑기인데 하필이면 이 시점에서 한화가 바닥이라 꼴찌를 하고도 전국구 선수들을 얻을 수 없었다. 그나마 얻은 유창식은 승부조작으로 나가리되었고, 하주석은 10년을 기다린 2021년에서야 드디어 주전급 성적을 냈었으나 2022년 처참하게 몰락해버렸다.

이런 점들을 감안한다고 해도 한화의 육성 성과는 너무나도 처참했다. 똑같이 최악의 연고지 팜를 가진 NC가 몇몇 시즌을 제외하면 나쁘지 않은 성과를 내는 것과 대비되고 있다.[101] LG와 롯데와는 달리 한화는 팀을 떠난 선수들 중에서도 빛을 본 선수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고 팀에서 오랜 기간동안 솔리드하게 활약한 선수가 거의 없어서 타 팀에서도 탐낼만한 자원이 FA로 풀린 적도 거의 없었다.[102] 즉 LG가 좋은 선수를 뽑아놓고도 그들을 잘 지도하지 못했다면, 한화는 골짜기 세대+무능한 스카우터진의 복합적인 여파로 아예 좋은 선수를 드래프트하지도 못한 것이다.

스포츠에 만약은 없으나 1차지명제가 아니라 전국 지명이였다면, 신생팀이 창단하지 않았다면 기회조차 없던 한화에게도 서울팜을 선택할 기회는 있었긴 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차피 의미없는 가정이고, 지나간 과거일 뿐이다. 그나마 한화 입장에서는 다행인 것이 KIA 팜인 광주에서 문동주 김도영이 동시에 나온 덕에 얻은 행운인 문동주, 드디어 1차지명이 폐지된 2023 드래프트에서 얻은 김서현을 시작으로, 한화에게 약 10년만에 전국 최대어들을 지명할 기회가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1차지명 선수들처럼 성장하지 못하고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면 이제는 정말로 코칭스태프와 스카우터의 역량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다.

5. 유사 사례

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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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BO 로고(세로형/화이트).svg KBO 리그 역대 비밀번호 목록
구단 비밀번호 기간
태평양 돌핀스 6366677 1982~1988년
롯데 자이언츠 8888577 2001~2007년
LG 트윈스 6668587667 2003~2012년
한화 이글스 5886899678 2008~2017년
롯데 자이언츠 7A78877 2018년~진행 중



[1] 참고로 오른쪽 상단을 참고하면 2017년과 다른 리그 스폰서로 2018시즌 중에 만들어진 통계자료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한화는 그 해에 결국 5강 매직넘버가 소멸되며 감격의 가을야구 진출을 확정지었다. [2] 한편 LG 트윈스가 승리하여 매직넘버가 소멸되어 6668587667이 끊어진 것도 이 날 확정되었다. [3] 실제로 근 10년간 전성기 하면 최고봉에 꼽히는 삼성의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성적인 211112보다 더 우수하다. 2015년부터 2022년까지의 두산의 1122122를 능가하는 것은 물론. [4] 특히 순위경쟁팀이었던 LG를 LG 킬러 류현진을 표적등판 시킨 것이 매우 잘 통했다. [5] 다만 이 비는 한화뿐만이 아니라 두산에도 영향을 줬다. 리오스 - 랜들 - 비 - 비 - 비... [6] 당시 삼성과의 상대전적에서 뒤졌기에 어차피 동률이었어도 4강 진출은 불가능했다. [7] 빙그레 창단 당시에는 7개 구단 밖에 없었으므로 8위는 이번이 처음. 꼴찌 경험은 빙그레 원년에 한 번 있었다. [8] 셋 모두 2006 WBC 국가 대표였다. 김민재는 2루수 등 내야 유틸리티이긴 했어도 애초에 수비 때문에 뽑힌 만큼 수비 능력은 탁월했다. [9] 당초에 3억원으로 발표했으나 이후 밝혀진 바에 따르면 12.5억이나 주었다고 한다. [10] 이 때 만년 유망주였던 조규수 김창훈을 두산으로 넘겼다. [11] 그나마도 정원석은 애초에 센터 내야수였기 때문에 중심타자로 부적절했고, 전근표가 그나마 신인 시절에는 대타요원으로서 무난한 성과를 냈지만 오랜 2군 생활로 인해 기량이 떨어진 상황. [12] 이 트레이드는 3:3 트레이드로 한화에서 기아로 간 선수는 투수 박성호, 외야수 김다원이 있으며 반대로 기아에서 한화로 간 선수는 투수 이동현과 외야수 김경언이 있다. 골 때리는 것은 트레이드의 메인이었던 장성호는 부진에서 헤어나오지 못 하는데 정작 같이 넘어간 김경언이 눈야구를 하면서 3할대 이상의 출루율을 보여주었다는 것. [13] 물론 한화의 투수진을 생각하면 나쁘지는 않은 선택이었지만 문제는 안영명이 군대를 다녀온 것도 아닌데다가 김인식 시절에 혹사를 당해서 앞으로의 미래를 알 수 없었다는 것. [14] 이 때 LG 팬들이 뒤집어졌는데 송신영을 사오겠다고 박병호를 심수창, 15억원과 묶어서 히어로즈로 보냈는데 정작 공들여서 데려온 송신영은 3달만에 떠났고 박병호는 MVP를 수상했기 때문. 게다가 송신영과 같이 온 투수인 김성현은 승부조작으로 제명되었다. [15] 2007년 해외파 특별 드래프트에서 맨 후순위로 밀려서 지명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구단들이 순순히 동의해주었다. [16] 사실 그 전부터 구단에서는 한대화 감독의 힘을 빼고 있었다. 5월달에 삼성에서 같이 넘어온 이종두 수석코치, 강성우 배터리코치, 후쿠하라 수비코치를 전부 2군으로 전보시키고 구단 측과 연관있는 코치들이 전부 1군으로 올라왔다. 물론 구단에서도 김용달을 영입했다지만..... [17] KBO 역사상 개막전부터 시즌 종료일까지 단 하루도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한 팀은 2012년 한화와 창단 첫 해의 kt밖에 없다. 여담이지만 반대로 개막전부터 시즌 종료일까지 한 번도 1위를 뺏기지 않은 경우 환승 없는 1호선이라 부르지 않는다. [18] NC는 신생팀이기 때문에 현금트레이드로 보낼 수 밖에 없었다. [19] 이 때 나온 드립이 시장 질서 드립. 수 많은 한화팬들이 코웃음을 쳤다. [20] 의외로 해태는 김응용 감독 시절 단 한 번도 꼴찌는 안 했다. 98년에 5위, 99~00년엔 드림리그 4위였지만 전체성적에선 각각 7, 6위를 기록했다. [21] 시범 경기 9위는 삼성 라이온즈였다. 근데 삼성은 원래 시범 때나 못하지 다른 때는 무난한 강팀이라 평가받았고 3년 연속 정규리그/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을 하면서 뒤에서 1등을 앞에서 1등으로 바꿨다. [22] 참고로 이 때 8위 매직 넘버가 소멸된 팀은 KIA 타이거즈가 아니라 NC 다이노스였다. 기아가 당시 7위이기는 했지만 잔여경기가 많이 남은 탓에 탈꼴찌 확정을 NC보다 늦게 했는데, 결국 최종 순위에서 마저 NC에게 밀렸다. [23] LG는 원래는 신바람 야구로 대표되는 강팀이었다. 암흑기 이전에는 삼성, KIA에 이은 통산승률 3위였다. 그러나 암흑기로 통산 5할승률이 깨지게 되었다가 한화가 암흑기로 접어들자 두 구단의 통산 승률 순위가 역전된 것이다. [24] 17일 KIA와의 맞대결은 제외. [25] 헤드샷을 날린 투수는 서동환으로, 공 한 개 던지고 퇴장당했다. [26] 삼미 슈퍼스타즈가 6.23의 팀 방어율 기록을 갖고 있었는데, 10월 13일 삼성과의 경기에서 무려 [27] 팀 홈런 9위는 LG 트윈스지만 LG는 KBO 리그에서 가장 넓은 구장인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을 홈으로 쓰는 데다가 같은 구장을 쓰고 있는 두산 베어스나 한화와 달리 단타 위주의 공격을 추구하는 소총부대를 팀 컬러로 삼기 때문에 양팀을 동일 선상에 놓기에는 무리가 있다. [28] 한화를 제외하고 9위 꼴찌를 해본 팀은 없다. 9위가 꼴찌였던 시즌은 2013, 2014년 두 번인데 둘 다 한화가 꼴찌였기 때문이다. [29] 투수, 타자 모두 빈약한 상황에서 이도형과 최영필을 모두 갖다버린 과거를 생각하면 대조적인 부분이다. [30] 16진수로 바꾼다면 가능해진다. 한 자릿수밖에 표시할 수 없는 전광판에서 두자릿수를 표시하는 방법과 동일하다. [31] 공항철도의 역번호는 A로 시작하며 1호선 서울역이 133이듯이, 공항선 서울역은 A01이다. [32] 애초에 이것 자체도 거의 불가능한게 기록상으로도 장명부의 한해 30승같이 비정상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전년도 최하위에서 바로 순위권에 들어간 팀 자체가 없는데다가, 팀 자체가 유래없을 만큼의 심각한 내분 상태라(1992년의 경우는 잘나가기라도 했다.) 내년에 4강간다는 말을 농담으로도 하는 사람 자체가 김성근 감독 취임 이전까지는 아예 없었다. [33] 게다가 배영수의 성적을 보면 알겠지만 혹사 후유증과 노쇠화로 인해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34] 노 리타이어를 외치는 구시대적 야구팬들은 조금이라도 연관만 있으면 무조건 '야신님의 수제자'로 부르며 어떻게든 김성근의 능력을 지나치게 찬양하기 바빴다. 하지만 이승엽, 양준혁, 배영수 등의 베테랑처럼 사이가 좋았던 야구인들도 있는가 하면 김경문, 한대화, 류중일, 이만수 등 대놓고 사이가 틀어졌던 야구인들도 적지 않았다. 박종훈은 후술되었듯이 김성근이 SK 1군 감독으로 부임한다는 소식에 두산에 2군 감독으로 가버리는 등 대놓고 후자에 가까운 사례다. [35] 1-1-2-1-3(경질 당시) [36] 이후 5월 말 삼미 라이온즈 소리듣던 삼성에 스윕패를 내준 끝에 경질될 당시 9위를 찍으며 이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37] 이들은 수비를 믿지 않고 스스로 위기를 탈출하는 능력이 떨어지는지라 순자책점인 FIP가 ERA에 비해 높게 측정된다. 즉, 야수진이 흔들릴 경우 언제든 대량실점으로 무너지는 일이 터질 수 있다는 뜻이다. [38] 다만 후반기 들어 NC는 상승세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어느새 승률 4할을 찍었다. [39] 참고로 8월 성적만 보면 더 기가막힌 게 8월 14일까지의 성적이 1승 10패다. 결국 LG는 9월에도 DTD의 기세를 이어가서 PS 탈락이 확정되었다. [40] 한화 암흑기 시초라고 불리는 2008년 올림픽 브레이크 이후에 소위 류패패패패라는 이변이 일어나긴 했다. [41] 9월 28일 소멸. 9월 28일 기준으로 롯데가 전승, 한화가 전패할 경우 한화에 게임 차 없이 승률로 앞서지만, 롯데가 KIA와 네 번의 잔여경기가 남아있기 때문에 롯데가 전승할 경우에는 한화가 전패를 하더라도 KIA를 앞서게 된다. [42] 5년 이상 연속으로 가을야구에 나가지 못했던 팀들의 2000년대 이후 가을야구 도전 역사를 보면 모두 상위 스테이지로 올라가지 못하고 광탈했다. 7년간의 실패를 딛고 2008년 준플레이오프에 나간 롯데 자이언츠는 0승 3패로 광탈했고 10자리의 비밀번호를 끊고 2013년 플레이오프에 올라간 LG 트윈스도 1승 3패로 탈락했다. 결국 가을야구의 경험 차이가 승패의 기준이 되고 말았다. 이 공식은 6년만에 플레이오프에 직행한 삼성 라이온즈 역시 와일드카드전까지 치르고 올라온 두산 베어스에게 0승 2패로 광탈하면서 2021년에도 이어지게 되었다. [43] 본래 SK는 한승택을 지명하려고 했지만 KIA 타이거즈에서 이용규의 보상선수로 먼저 선택하는 바람에 별 수 없이 보상금으로 받았다고 한다. 기사 [44] 배영수를 보낸 삼성 라이온즈 역시 결과적으로는 보상금 300%를 받아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보상선수 정현석의 건강 문제로 인해 지명 취소를 시도했다가 곤란해지자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정현석을 돌려보내는 대신 배영수 연봉만큼의 돈을 더 받아간 것이라 경우가 약간 다르다. [45] 그리고 시간이 지난 2023년 시즌 종료 후에도 롯데 소속이던 안치홍이 FA를 통해 한화로 이적했을 때 롯데 역시 보상선수 대신 보상금을 받았다. [46] 기아에서 김인철 자유계약 영입, SK에서 조원우 트레이드 영입, 윤재국, 최상덕 자유계약 영입 등. [47] 사실 엄밀히 보면 강동우 이대수는 방출생 출신은 아니다. 그러나 강동우의 트레이드 상대인 신종길의 경우는 한화 시절에는 잉여자원에 불과했으며, 이대수의 트레이드 상대인 조규수, 김창훈 역시 먹튀 신인 1,2 정도의 선수였다. [48] 이대수는 예외이다. 약간 노안이기에 이대수의 나이가 많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았으나, 트레이드로 한화에 입단할 당시 갓 30줄에 접어들었으니 젊은 축에 속했다. [49] 결국 셋 다 2015~2017년에 정리된다. 그나마 김원석은 실력이 그나마 받춰졌지만 인성 논란이 너무 강렬해서 야구계 복귀가 불가능해졌다. [50] 결국 저 선수 중에서 김용주를 빼면 모두 한화에서 방출당했다. 그리고 2017년 2차 드래프트에서 kt wiz가 김용주를 지명함으로써 전멸. [51] 말이 10승이지, 5.18에 달하는 평균자책점 등 세부 기록은 처참했다. 물론 2009년은 타고투저시즌이였다는걸 감안해야 하며 당시 한화의 불펜진이 불이나 질러대던 탓에 분식회계를 당하기도 했다. [52] 박정진은 1999년 1차 지명으로 입단해 큰 기대를 받고 처음에는 기회를 받았으나 부상과 성장 미진 등으로 인해 포텐이 터지지 않다가 35세가 되어서야 포텐이 터지기 시작, 송창식 2004년 입단해서 첫 해부터 전천후로 굴려지다가 팔꿈치 부상과 혈행장애를 연달아 겪으며 잠시 야구를 그만두었다가 복귀한 사례이다. [53] 당장 이 시기에 박노민, 최연오, 이희근, 정범모 같은 젊은 포수 자원은 많았지만 모두 신경현에 비해서 '못해서' 신경현이 계속해서 나와야 했다. 2017년 시점에서 보면 정범모 빼고 모두 은퇴했으며, 그나마 정범모도 2군에 처박혀서 사실상 자리가 없다가 NC로 팔려갔다. [54] 안영명이나 윤규진 정도도 성공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안영명의 경우는 나름 이닝은 먹어주지만 방어율이 높고, 윤규진은 혹사 후유증으로 인해 잔부상이 잦아지며 시즌 중간에 어디론가 사라진다. [55] 병역비리 사건 연루 선수 중 한상훈은 2008년이 되어서야 병역문제를 해결했다. 다른 팀의 연루선수들이 일찌감치 병역 문제를 해결한 것을 생각하면 대조적인 부분. [56] 결국 이것도 SK에서 방출된 손지환을 급하게 데려다가 쓰는 선에서 대충 마무리를 지었다만 그 손지환도 몇 개월 써 먹고서 부상으로 인해 방출시켰다. [57] 말이 용병이지 2003년을 제외하고는 1999년부터 2006년까지 한화에서만 무려 7년을 뛰었다. 그리고 데이비스가 있을 때 그만 믿고 외야수, 특히 중견수 육성엔 손 놓고 있었고 이는 이용규가 오기 전까 외야수비에 문제가 생기는 결과로 귀결되었다. [58] 그나마 이강돈과 이정훈의 자리는 1996년에 입단한 송지만과 이영우가 대체했다. 그러나 그 이영우도 은퇴한 시점에서 그의 대체자원은 없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장종훈 역시 2001년에 입단한 김태균이 공백을 메꾸었지만, 그 김태균도 벌써 30대 중반의 노장선수인지라, 거포 육성이 필요한 현실이다. 그나마 이 야수진의 상황은 나은편이다. [59] 이상군, 한용덕, 송진우, 정민철, 구대성이 은퇴한 투수진의 경우는 신인투수들이 대체해 주어야겠지만, 문제는 조규수, 김창훈, 유원상, 양승진, 김혁민 같은 투수자원들의 성장이 영 좋지 못했다는 것이다. 윤규진과 안영명이 두각을 드러내나 싶었으나, 혹사로 인해서 전성기의 기량에 비하면 아쉬운 상황이다. [60] 사실 이건 그래도 한화가 어느정도 잘 나가던 2005년~2007년 당시에는 가장 효과적인 작전이었다. 그게 도를 지나쳐서 문제가 된 것이다. [61] 사실 한화는 빙그레 이후 1994년부터 2007년까지 1번의 우승과 함께 포스트시즌 진출을 7번 정도에 성공했지만 그것도 정규리그 3~4위 턱걸이에 불과했고, 그 외의 시즌은 대개 하위권에 그치고 있었다. [62] 이 해는 하위권 싸움이 박터졌기로 유명했었다. 1위와 3위의 승차가 3위와 8위의 승차보다 많았을 정도였다. 결과적으로 10승 투수도 없던 3위 두산이 우승하는 상황이 벌어졌지만. [63] 얼마나 근시안적으로 운용했으면 2001년 시즌 중 외국인 투수를 무려 5번씩이나 바꿔댔다. 결국 이듬해부터 한 시즌 팀당 외국인 선수 교체 횟수를 2번으로 제한하는 규정이 생겼다. [64] 심지어 2012년 기아 2군은 박철우 총괄코치 체제에서 퓨처스 남부리그 1위를 차지하기도 했었다. [65] 물론 재활시설이 부실하긴 했어도, 전유수나 임창민 같은 사례를 보면 육성 자체는 정명원 코치가 잘 해내기라도 했다. [66] 이 당시 구청장은 한나라당 정용기로 구청장 재선을 한 후 국회의원도 내리 재선을 했다. 지역구 기반이 탄탄한 그의 숨겨진 과오라고 봐도 될 정도. [67] 쉽게 말해서 으리축구로 까였던 홍명보호를 생각하면 딱 좋다. 김응용이 능력있는 일본인 투수 코치를 쓰자고 부탁하는 걸 능력도 없는 주제에 씹은 건 덤이다. [68] 결국 투수코치는 한화 출신 정민철, 김응용이 영입한 원로야구인 신용균이 맡았지만 마운드 상황은 기아보다 조금 나은 정도였다. [69] 조경택 항목 참고. 유래는 본인 스스로 명포수라고 자칭했던 인터뷰에서 시작된 것. [70] 단, 김응용에서 김성근으로 바뀔 때는 프랜차이즈 코치진들도 싹 잘려나갔다. 그리고 빈 자리는 김성근 사단이 채웠다. [71] 2014 시즌에도 8월 들어서 회복되는 모습을 보이다가도 9월~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휴식기 이후 또 다시 시즌 초의 모습으로 돌아가버렸다. [72] 단, 윤형배의 경우 당시 신인 지명은 전면 드래프트였으며, 넥센이 맨 먼저 우선지명을 행사할 수 있었기에 애매한 감이 있다. 하지만 NC의 창단이 없었다면 북일고 윤형배나 대전고 조상우(동산고에서 전학왔기 때문에 순수 충청팜 출신은 아니지만) 중 한 명을 지명할 수도 있었던 상황. [73] 그나마 한화로서는 다행인게 윤형배가 사이버 투수로 남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윤형배는 NC에서 제대로된 등판을 하지 못하고 정범모와 트레이드되어 돌아왔고 뒤늦게나마 재능이 만개했다. 그리고 류희운은 이시원을 트레이드로 주면서 데려왔다만 조금이나마 더 지켜봐야 할 수준. [74] 한승택이 KIA에서 안정적인 백업포수로 자리잡은 점, 조정원이 일찍 방출된 점을 생각하면 한화의 입장에서는 크게 아쉬운 부분이다. [75] 결국 ㄹ자 드래프트 제도는 다시 Z자 형태의 드래프트로 바뀌었다. [76] 다만 이건 결과론적인 평가이다. 2014 시즌이 종료되고 김응용 감독이 물러났던 시점 프런트는 분명히 내부 승진을 우선으로 했었고, 그 후보군 중에 한용덕이 있었다! 이 문서의 2014년 단락 막바지에도 분명히 써 있다. 그러나 이 당시 이에 대한 팬덤의 분위기는 너무나 험악해서 도저히 이들을 무시하고 내부 승진을 할 상황이 아니었다. 절대다수의 한화 팬들이 김성근을 외쳤고, 시위까지 해가며 영입을 주장했었다. 물론 김승연이 난데없이 김성근을 꽂아버린 게 잘 한 일은 아니지만, 이미지와 그룹 홍보효과로 먹고사는 크보에서 이걸 무시하고 내부 승진을 강행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김성근 데려온게 삽질이었음도 모든 것이 지난 지금이니까 할 수 있는 말이다. 까놓고 말해서 2014년까지 김성근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은 소수에 불과했다. 김성근 항목으로 가서 2015년 이전 버전을 보면 그야말로 오그라드는 찬사들과 야신, 명장이라는 말만 가득하다. 노리타들만 빨아대던 것이라고 할 수도 없는게 그 당시 감독이 뻘짓하던 팀들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던 말이 ‘짜르고 김성근 데려와라’였다. 그만큼 당시 김성근의 이미지는 절대적이었고, 어쨌든 SK 감독 시절 성적이 나왔으니 한화 윗선에서도 그를 데려왔던 것이다. [77] 또한 야인시절 김성근은 한화 감독을 맡으면서 보인 행보와는 전혀 다른 개념 발언을 쏟아내고 있기도 했다. 육성보다는 승부에만 급급한 모습이라며 한화를 지적하거나, 투수가 없으면 키워써야지 변명이 될수 없다거나, 넓어진 한화 외야를 비판하며 지옥에서 던지는 한화 투수라는 등 나름대로 한화의 현실을 날카롭게 꼬집는 분석이었다. 다만 본인이 부임하자마자 귀신같이 본인이 지적하던 모습을 보여줬다. [78] 리빌딩을 외치고 각종 무리수를 일삼던 김응용이 물러날 시기의 한화 선수들의 평균 나이는 28,7세였다. 젊은 선수들로 채워도 시원치 않을 판에 선수들 나이를 무려 2살이나 불려버린 것이다. [79] 물론 한화팬들은 재활에 성공해 다시 돌아오길 바라고 있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는 거지 최악이 되길 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감독 팬들이 자신들의 신이 실패한 감독이 되자 혹사 논란마다 '선수가 진짜로 아프길 바라는 거냐, 예의없는 것들아?' 투로 시비를 걸고 있는데 혹사 논란 후 선수들은 거의 다 부상에 시달리거나 구위를 잃어버렸고 설사 심수창처럼 포크볼을 주 무기로 5이닝을 먹어 전날 불펜 등판 후 선발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고 148km대의 속구를 뿌려준다 해도 무사히 경기를 하는 것이 다행인 것이지 절대로 걱정이 헛된 것이 아니다. 야구는 감독이 아니라 선수들이 하는 것이다. [80] 자진사퇴라면 구단이 잔여 연봉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데도 위로금 형식으로 김성근에게 잔여 연봉을 주려고 하였다. 김성근도 일단 받지는 않았다. 뭐 이미 20억 중 2년차까지의 돈도 받았고, 원더스 시절 강연 세금으로 수천만원~억대의 돈을 내는 사람이라 크게 돈이 궁할 입장은 아니긴 하다. 게다가 야구계에서 은퇴한 지금, 김성근은 100억대 자산가이다. [81] 다만 신인포수 박상언을 데뷔시키고는 얼마 안 되어 2군에 보내고는 다시 주전으로 써먹지 않았고, 번트용 대타, 의미없는 히트 앤 런 등 제대로 먹히지도 않는 스몰볼식 작전을 남발하고, 송창식을 또 혹사시키는 등 리빌딩을 추구한다기엔 의문이 드는 행보도 적지 않았다. [82] 2010, 2013, 2014, 2015년 [83] 그러나, 2013년도의 김태균의 wRC+는 무려 156.4다! 홈런 10개임에도 불구하고 출루율 신공으로 엄청난 타격 생산성을 보여주었다. 참고로 홈런 29개 치던 최형우의 wRC+는 142.6, 21개 치던 나지완은 139.6이다. 김태균의 생산성이 좋음에도 뒷받침하는 타자가 전멸하다시피하니 뭐 답이 없는것이다. [84] KIA 시절에는 유리몸화 되었지만, 한화 시절 이범호는 철강왕이었다. [85] 종전 기록은 1982년 삼미 슈퍼스타즈가 기록한 6.23. 물론 2014년이 1982년보다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타고투저라는 것을 감안해야 하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처참한 기록이다. [86] 특히 박정진이 힘에 부치는 모습을 보이자 과감하게 휴식을 충분히 부여했고, 후반기 들어 언터처블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우람도 휴식을 주자 146을 찍기도 했다. [87] 2000년에 LG와 1년짜리 FA를 맺고 사인 앤 트레이드로 이적. 다만 금액이 워낙에 낮아서 FA인줄 모르는 사람도 많다. [88] 김인식이 두산에서 차명주를 어떻게 등판시켰는지를 생각하면 하락세가 명백한 선수였다. 사실 이 문제는 그 시기 두산 계투요원들이 고질적으로 가진 문제점이었으며, 같은 문제를 진필중도 가지고 있었는데, 호구 KIA가 손혁 + 김창희 + 7억을 가지고 트레이드를 했다가 1년도 못 가서 FA를 선언하면서 떠나는 바람에 큰 손해를 봤다. 물론 그런 진필중을 FA로 데려간 LG는. .... [89] 2003년 주전 2루수가 된 당시 칰나쌩 기질을 보였다. 시즌 후 현대에서 박종호를 영입하면서 자리가 좁아진데다가 노장진과 술 먹은게 걸려서 찍혔기에 조기 은퇴했다. [90] 병역비리 사건에 연루되었었다. [91] 이 때 한화는 김민재에게 코치 보장까지 해서 데려왔다. [92] 송창현은 신인 시절에 그나마 반짝하기라도 했다. [93] 근데 유창식은 14년도부터 승부조작을 했고 김성근이 온 뒤로도 제구난조를 해결할 노력조차 않고 자동차에나 관심을 보이는 등 진짜로 태업을 한 거라 누가 왔어도 버렸을 카드다. 2016년 트레이드된 고원준과 비슷한 케이스라고 보면 될 듯. 김성근이 한화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며 물러나 거의 금지어 취급받지만, 한화 팬 대부분 유창식을 처리한 것 하나는 칭찬해준다. [94] 다만 이대진 투수코치가 키웠다기보단 김기태가 2년을 기다린 끝에 준 기회를 스스로 잡았다고 보는 게 맞다. [95] 굳이 비교하자면 류현진 빼고 전멸인 한화가 원태인 빼고 전멸인 삼성보다 객관적 사정이 낫기도 하고, 삼성의 육성이 망한 시기는 2016년 이후로 이 시기는 투수 육성의 르네상스기로 평가되기에 보통 KBO 리그 역사상 최악의 투수 육성 실패 사례를 꼽으면 99688378 시대의 삼성이 가장 먼저 거론된다. 그러나, 이 시절 한화도 99688378 삼성만 빼면 KBO 역대 최악의 투수 육성으로 악명높았다. [96] 이쪽도 혹사와 어깨 부상 전력이 있어서 상수는 아니다. 실제로 2024시즌 시작하자마자 다쳐서 시즌아웃을 당하는 바람에 선발진에 큰 구멍이 났다. [97] 특히 정은원의 한동희화가 매우 치명적이다. [98] 지금이야 김인철이 감독을 하면서 잘 이끌고 있지만 장OO - 심OO으로 이어지는 두 막장 감독의 행보를 생각하면 제대로 굴러갈 리가 없었다. [99] 충청팜은 물론이거니와 국내 유소년 야구의 미래는 밝지 않다. 이제 저출산의 여파로 유소년 인구가 격감하고 야구선수를 지망하는 유소년 선수들도 그만큼 줄어든다는 것이다. [100] 삼성, 두산, SK가 엄청나게 오랫동안 해먹은 데에는 구단의 유능함도 있지만 2010년대 초반 신인급 선수들이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것도 한몫했다. [101] 물론 이쪽은 창단 당시 좋은 신인을 싹쓸이해가며 팀의 기반이 잘 다져진 팀이였다. [102] 타팀 이적을 하고 잘 풀린 선수가 그나마 임기영 정도고, 최근에 한화 출신 FA 최대어는 2015시즌 당시 김태균이 유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