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호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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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호의 역대 등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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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한화 이글스]] 등번호 59번 | |||||||||||||||||||||||||||||||||||||||||||||||||||||||||||||||||||||||||||||||||||||||||||||||||||||
양승진 (2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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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호 (2007~20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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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덕 (2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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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우 (2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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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호 (2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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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준 (2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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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호 崔鎭浩|Choi Jin-H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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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84년 8월 26일 ([age(1984-08-26)]세) |
충청북도 청주시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서원초 - 세광중 - 세광고 - 인하대 |
신체 | 183cm|90kg |
포지션 | 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 입단 | 2007년 1차 지명 ( 한화) |
소속팀 | 한화 이글스 (2007~2011) |
병역 |
상무 피닉스 야구단 (2008.12.22.~2010.10.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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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2. 선수 경력
2.1. 한화 이글스 시절
2007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한화에 장필준(천안북일고)과 함께 1차 지명[1]됐다. 당시 죽어라 투수 상위픽을 하던 한화에겐 우완 정통파 투수로 제구력이 괜찮고 구속도 중간 이상에 하드웨어도 상당한 최진호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원래 다른 선수를 뽑으려던 한화 구단이 김인식 당시 감독의 요청으로 최진호로 방향을 바꿀정도로 감독도 그의 가능성을 인정했으나, 정작 프로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해 1군 기회가 없다가 2008 시즌이 끝나자 상무에 입대한다.그가 대졸선수긴 해도 군입대는 상당히 빠른 편인데, 군입대를 말리는 프런트 때문에 군대 갈 시기를 놓친 팀 내 다른 선수들에 비하면 현명한 편. 그가 군생활을 하는 동안 한화의 고참 투수들이 대부분 은퇴하거나 다른 이유로 팀을 떠나, 그가 복귀한 2011 시즌에는 바뀐 감독 아래서 오직 능력과 경쟁으로 1군 엔트리에 들 수 있었다. 개막 직후 화려하게 불만 질러서 2군으로 쫓겨났으나, 2군 투수코치 송진우의 지도하에 제구력을 가다듬고 5월에 1군으로 복귀, 2경기에서 단 3타자를 상대로 하긴 했지만 완벽하게 막아내는 모습을 보였다. 신주영과 함께 2군에서 올라와 한화 불펜을 책임지는 한화 화수분 야구의 열매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6월 6일 그가 1군에서 말소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ERA가 높았지만, 그 전까지 보여준 구위도 괜찮아서 개인신변에 사정이 있거나 혹은 2군에서 픽업할 다른 선수가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의 이름이 2군 엔트리에도 없었다는 것이다.
3.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승률 | ERA | 피안타 | 피홈런 | 4사구 | 탈삼진 | 실점 | 자책점 | WHIP | |
2007 | 한화 | 1군 기록 없음 | |||||||||||||||
2008 | |||||||||||||||||
2009 | 군 복무 ( 상무 피닉스 야구단) | ||||||||||||||||
2010 | |||||||||||||||||
2011 | 4 | 2⅔ | 0 | 0 | 0 | 0 | 0.000 | 10.15 | 4 | 0 | 4 | 3 | 3 | 3 | 2.63 | ||
KBO 통산 (1시즌) |
4 | 2⅔ | 0 | 0 | 0 | 0 | 0.000 | 10.15 | 4 | 0 | 4 | 3 | 3 | 3 | 2.63 |
4. 논란 및 사건 사고
4.1. 뺑소니 사망 사고
2011년 6월 4일 새벽에 사망 사고를 낸 후, 겁먹고 현장을 이탈해 뺑소니범 확정. 이후 구단 독신자 숙소로 도망쳤다가 거기서도 다시 도망쳐 청주의 부모님 집에서 숨어 있다가 체포됐다. 그를 믿던 한대화 감독과 송진우 코치, 그리고 팀에게 제대로 찬물을 끼얹었다.개인 입장에서도 인생 최고의 순간에서 나락으로 떨어졌다고 볼 수 있는데, 그는 6월 3일 넥센전에서 패전처리이긴 하지만 두 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프로 데뷔 이후 가장 인상적인 경기를 치렀다. 그리고 몇 시간만에 사고를 냈으니...
당연히 그는 구속됐고, 한화는 사건 처리를 끝낸 후 그를 임의탈퇴 공시하면서 선수 생명이 끝났다.
2011년 10월 14일, 대전지방법원에서 열린 선고 공판에서 징역 7년, 항소심에서 5년이 선고됐으며, 2016년 6월 형기를 다 채워 출소했겠지만 죄질이 지나치게 흉악하거나 반성의 기미가 전혀 없는 게 아니면 보통 형량의 80~90% 정도 채운 시점에 가석방을 시키는 것이 보통이기에 그 전에 이미 사회로 복귀했을 가능성도 있다.
재판부의 판결문에 따르면, 정상적 신호에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를 보고도 제동하지 않은 채 경적을 울리며 충격을 가한 후 그대로 달아났고, 사고 이후 차량을 수리하기 위해 공업사에 맡기는 등 증거를 은폐하려 했기에 죄질이 불량해 중형의 선고는 불가피하지만, 피고인이 별다른 범죄전력이 없고 잘못을 후회하고 있으며 유족에 3,000만 원을 공탁한 점을 감안해서 나온 형량이라고 한다. 당시 유족들은 최진호의 음주 여부에 대해 강한 의혹을 제기했지만 최진호가 사망사고 발생 이후 만 이틀이 넘어 체포되는 바람에 확인할 길이 없었다고 한다.
여담으로 뺑소니 피해자는 당시 그와 또래뻘이었던 27세의 남자 대학생으로 2달 뒤 졸업 예정자였으며, 살아 있었으면 며칠 뒤 서울 유수의 외국계 IT 회사에 출근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출소 이후 청주의 한 야구연습장에서 코치로 일하고 있다.
5. 관련 문서
[1]
한화 입단과
연세대 진학을 놓고 고민하다
상무 입대라는 의외의 선택을 한 장필준 외에
이웅한,
김태식(이상 공주고 투수),
장효훈, 김경택(이상 천안북일고 투수), 정헌세(대전고 투수) 등 유례없는 충청 팜의 풍년인 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