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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9 03:36:52

마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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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영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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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현대 유니콘스 우승 엠블럼 V2.svg 파일:현대 유니콘스 우승 엠블럼 V3.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2000 2003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29번
김억만
(1999)
마일영
(2000~2004)
이현승
(2006)
이현승
(2006)
마일영
(2007)
팀 해체
우리 / 서울 히어로즈 등번호 21번
팀 창단 <colcolor=#fff> 마일영
(2008~2009)
마정길
(2010~2017)
한화 이글스 등번호 49번
마정길
(2007~2009)
<colbgcolor=#000> 마일영
(2010)
양승진
(2011~2011. 7. 10.)
한화 이글스 등번호 29번
데폴라
(2010)
마일영
(2011~2015)
김경태
(2016~2020)
한화 이글스 등번호 79번
이정호
(2015)
마일영
(2016~2024.7.8.)
양상문
(2024.7.9.~)
한화 이글스 등번호 92번
최원호
(2020~2024.5.26.)
마일영
(2024.7.9.~2024)
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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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2024 마일영 프로필.png
마일영
馬一英 | Ma Ilyoung
출생 1981년 5월 28일 ([age(1981-05-28)]세)
대전광역시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학력 대전신흥초 - 충남중 - 대전고 - ( 경기대)[1] (스포츠레저학 / 학사)
신체 178cm, 95kg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 입단 2000년 2차 1라운드 (전체 1번, 쌍방울)[2]
소속팀 현대 유니콘스 (2000~2007)
우리- 서울 히어로즈 (2008~2009)
한화 이글스 (2010~2015)
지도자 한화 이글스 육성군 투수코치 (2016)
한화 이글스 2군 투수보조코치 (2017)
한화 이글스 2군 불펜코치 (2018~2019)
한화 이글스 1군 불펜코치 (2019)
한화 이글스 2군 불펜코치 (2020)[3]
한화 이글스 1군 불펜코치 (2020)[4]
한화 이글스 2군 불펜코치 (2020)[5]
한화 이글스 잔류·재활군 투수코치 (2021)
한화 이글스 2군 불펜코치 (2022~2024)
병역 공익근무요원 (2005~2007)
1. 개요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2.2. 현대 유니콘스2.3. 우리-서울 히어로즈2.4. 한화 이글스
2.4.1. 2010 시즌2.4.2. 2011 시즌2.4.3. 2012 시즌2.4.4. 2013 시즌2.4.5. 2014 시즌2.4.6. 2015 시즌
3. 지도자 경력4. 연도별 성적5. 여담6.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대전신흥초등학교, 충남중학교를 거친 후 대전 팜의 명문인 대전고등학교의 좌완 에이스로 활약했다. 2000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쌍방울 레이더스의 2차 1순위 지명을 받았으나, 당시 해체 및 인수 논의가 진행 중이던 쌍방울 구단은 5억 원의 조건으로 현대 유니콘스에 마일영의 지명권을 양도했고,[6] 이에 따라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하여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2.2. 현대 유니콘스

파일:유니콘스 마일영.jpg

입단 첫해부터 1군 생활을 시작하여 5승 5패 2세이브, ERA 3.38로 1년차 치고는 상당히 괜찮은 성적을 올렸고, 그해 한국시리즈 엔트리에도 진입하면서 데뷔 첫 해 우승반지를 끼는 기쁨도 누렸다.

2년차인 2001년부터는 선발투수로 자리잡으면서 152⅓이닝 10승 5패 ERA 3.96을 기록하면서 전년도에 비해 부진했던 팀 선발진을 책임졌다.[7] 그러나 이듬해인 2002년에는 7승 4패에 그치는 등 2001년 이후 성적이 점차 내려가더니 2003~2004년은 부상과 부진이 겹치며 거하게 말아먹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4년 프로야구 병역비리 사건에 연루되었으나, 돈만 내고 병역면제를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결국 공익근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마친 뒤 2007년 소집 해제되어 팀에 복귀했는데, 그 2년 동안 현대 유니콘스는 모기업 사정으로 완전히 절단나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적응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몇 경기 등판하지 못했다.[8]

2.3. 우리-서울 히어로즈

파일:히어로즈 마일영.jpg
파일:external/lh6.googleusercontent.com/%25EB%25A7%2588%25EC%259D%25BC%25EC%2598%2581%25EB%2584%2588%25ED%2581%25B4%25EB%25B3%25BC.gif
이후 현대가 해체된 뒤 히어로즈로 재창단한 시즌인 2008년에 화려하게 부활,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 총 173이닝을 던져 11승 11패 ERA 3.49, 탈삼진 83개. 꿈도 희망도 없던 히어로즈의 2008 시즌 승수가 총 50승이니 22%를 혼자 책임진 셈인데, 함께 원투펀치를 구성했던 장원삼이 12승을 건졌으니 두 명이서 히어로즈 승수의 거의 절반을 책임진 셈이다. 특히나 이 해 마일영은 간간이 구사한 너클볼로도 화제를 모아 더욱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이듬해인 2009 시즌에는 혹사의 후유증으로 부진하여 5승 7패, ERA 6.72을 찍었다. 이 해 히어로즈는 장타력을 앞세운 타선이 준수하게 활약해줬고, 불펜진도 이보근, 황두성 등이 분투하며 나름대로 역할을 해줬지만, 선발진이 무너지면서 시즌을 망치고 말았다. 이현승의 포텐이 드디어 터졌지만 트레이드 무산의 여파로 장원삼이 무너지고 마일영마저 부진하면서 선발진이 와장창 깨져버린 것.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시적인 부진이라고 생각하는 팬이나 전문가들도 꽤 있었으며, 드디어 이현승의 포텐도 터졌으니 장원삼- 마일영- 이현승으로 구성되는 젊은 좌완 트로이카는 어둠 속 히어로즈에게 한줄기 빛이었다.

하지만 재정 문제에 시달리던 히어로즈는 이미 2008시즌 종료 후 장원삼의 현금 트레이드를 시도하다가 무산된 전적이 있었고, 아니나 다를까 좌완 트로이카는 오래가지 못하고 2009년을 끝으로 세 명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장원삼이 삼성, 이현승이 두산으로 팔려나간 가운데, 마일영은 2010년 시범경기 도중 마정길[9]을 상대로 한화 이글스로 트레이드되었다.[10][11]

이 트레이드로 고향 팀에서 뛰게 되었으나, 정작 본인은 현대 유니콘스 시절부터 10년 넘게 뛰어 온 팀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에 적잖아 착잡해했다. '한화행' 마일영, "그저 멍할 뿐이다"

2.4. 한화 이글스

파일:이글스 마일영.jpg

2.4.1. 2010 시즌

그러나 한화로 이적하자마자 아주 제대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주로 중간계투로 뛰었음에도 1승 3패 2세이브 10홀드 ERA 7.01이라는 커리어 로우를 기록.

반면 트레이드되어 이적한 마정길 분식회계율 42% 라는 문제점이 있으나 방어율 3점대로, 훌륭하다곤 못해도 연봉에 비하면 나름대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무엇보다 마일영보다 이닝도 많이 먹었다.

2.4.2. 2011 시즌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어 2군에도 갔다오는 등 전반적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한화의 열악한 불펜진 사정으로 인해 불펜투수로 계속 나왔지만 1아웃잡기도 힘든 그런 투수가 되었다. 볼만 남발하며 1아웃 잡는 모습은 거의 볼수 없을 정도. 결국 5월 29일 아예 경기를 내주는 경우도 나오고 말았다. 자책점도 11점대로 거하게 망가져 반쯤 퇴물이 된 상황.

5월 29일 이후로는 계속 등판하여 6월 28일까지 무실점으로 막았다. 특히 6월 17일 경기에서는 심판의 편파적인 스트라이크 존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순간 1⅔이닝을 잘 막았다. 6월28일 경기에는 선발 류현진이 담으로 5이닝만 채우고 내려간 상황에서 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으며 류현진과 팀의 승리를 챙겼다. 6월 30일 경기에는 1사 1, 3루의 터프한 상황에 등판하여 병살타로 이닝을 끝내고 다음 이닝도 병살타를 잡아 1⅓이닝을 무실점으로 막는 대활약을 펼쳤다.

중요한 순간, 혹은 갑작스런 투수 난조로 교체할 투수가 준비가 안된 상황 등에 나서서 잘 막았으며 평균자책점도 6점대까지 내렸다. 참고로 6월에 8⅓이닝 동안 평균자책점이 0.00이었다.

7월 2일의 경기에서는 선발 장민제 신주영이 초반에 무너진 상황에 등판하여 KIA 타이거즈의 강타선을 3⅓이닝동안 1실점으로 막으며 승리를 챙겼다. 팀 승리에 크게 기여함은 물론 방어율도 5점대까지 내렸다.

4, 5월의 모습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박정진과 더불어 한화이글스의 필승불펜진의 위용을 보였다.
파일:external/lh4.googleusercontent.com/%25EB%25A7%2588%25EC%259D%25BC%25EC%2598%2581%25EC%2588%25A8%25EC%259D%2580mvp.jpg
8월부터는 재활군으로 내려간 류현진과 선발 로테이션에서 탈락한 장민재를 대신해 유창식과 함께 선발진에 합류, 등판한 두 경기에 의외의 호투를 보이며 승리의 발판을 마련했다. 하지만 중간계투로 뛰다가 갑자기 선발로 전환한 터라 체력에 문제를 보이며 5회를 넘기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2.4.3. 2012 시즌

불펜과 선발을 오가며 55경기 61⅔이닝 2승 3패 1세이브 6홀드 1블론세이브 31탈삼진 평균자책점 5.55를 기록했는데, 피안타율이 무려 .337에 달했다.

시즌 종료 후 FA를 선언했고, 원 소속구단 우선협상 마감일인 11월 16일에 3년간 총액 8억 원에 재계약했다. 옵션 등 세부 액수는 구단과의 합의 하에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2.4.4. 2013 시즌

2012 시즌 후 류현진의 LA 다저스 이적, 박찬호의 은퇴, 양훈의 경찰청 입대 등 한화 투수들의 뎁스가 얇아지는 결과가 나타났기에 베테랑 좌투계투로 활약을 바라고 FA를 했지만, 별 활약은 커녕 패전처리로도 나오지 못하며, 먹튀라고 욕먹었다.

시즌 초반 1군에서 출전 기회를 부여받았으나, 6경기 6⅓이닝 3실점 평균자책점 4.26을 기록하고 4월 15일 자로 2군행.

이후 6월달에 콜업되었으나 별 기회를 부여받지 못하다가, 7월 13일 첫 선발등판을 나섰지만, 1⅔동안 안타를 쳐맞고 볼넷을 내주며 3실점을 해 무너졌고 결국 패전행.

투구에서 좌투인것을 제외하고 볼의 위력이 강력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교한 제구를 가진것도 아니라 WHIP이 투수의 것이라하기에는 너무 높은 1.86을 기록. 피안타율도 .333인데, 이것은 거의 등판시마다 주자를 내보내는 것과 같다.

2.4.5. 2014 시즌

KBO 퓨처스리그에서 12경기 무실점을 기록중이다. (5/18 기준) 한화 팬들은 마일영이 올라와서 불펜에 힘이 되어줬으면 하는 모양.

이후 1군에 승격되었지만 평범한 성적을 찍고 있다. 7월 11일 기준으로 19⅓이닝 ERA 6.98. 작년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모습이다. 2군과 1군의 격차를 느낄수 있다.

2.4.6. 2015 시즌

김성근 감독이 투구폼을 바꿔보겠다고 밝혔는데, 바꾼 투구폼이 사이드암. 즉 좌완 사이드암 투수가 되었다. 이혜천 이후로는 보기 어려웠던 희귀한 투구폼이 다시 나타난 셈.[12]

5월 19일 SK 와이번스전에서 바뀐 투구폼으로 등판했다. 이명기 박재상 2명의 좌타자를 상대하기 위해 올라왔고, 실제로 두 명 모두 유격수 땅볼로 유도했지만 유격수 권용관이 두 번 모두 실책을 범해 한 타자도 잡지 못하고 물러나야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제이크 폭스가 콜업되며 1군에서 말소되었다.

7월 23일, 임경완과 함께 웨이버 공시로 방출당했다. 방출 이후 처음에는 선수 생활 연장의 뜻을 밝히며 개인 훈련을 이어나갔지만 찾는 팀이 없어 여의치 않았고, 이후 11월 5일 한화의 코치 제안을 받아들이며 은퇴했다.

3. 지도자 경력

2016 시즌에는 육성군 투수코치로 있다가 2017 시즌이 되면서 2군 투수보조코치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2019년 6월 24일에 1군에 올라와 1군 불펜코치를 맡게 되었다.

2024 시즌 후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고 선수 시절부터 몸 담아왔던 한화를 14년만에 떠나게 됐다.

4.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rowcolor=#fab93d>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0 현대 46 93⅓ 5 5 2 4 0.500 3.38 84 7 57 62 39 35 1.511
2001 42 152⅓ 10 5 0 5 0.667
(5위)
3.96 149 8 96 110 80 67 1.556
2002 30 130⅓ 7 4 0 0 0.636 4.56 132 16 79 98 76 66 1.542
2003 20 69⅓ 3 6 0 0 0.333 5.97 81 4 48 32 50 46 1.760
2004 26 80⅓ 4 4 0 0 0.500 4.71 99 6 43 46 46 42 1.693
2005 군복무(공익근무요원)
2006
2007 21 13⅓ 0 0 0 2 0.000 4.73 13 2 8 6 8 7 1.425
<rowcolor=#ffffff>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8 우리-서울 28 173 11 11 0 0 0.500 3.49 155 11 69 83 77 67 1.225
2009 27 97⅓ 5 8 0 1 0.385 6.93 127 17 51 51 76 75 1.798
<rowcolor=#ffffff>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10 한화 47 43⅔ 1 3 2 10 0.250 7.01 51 9 21 26 37 34 1.626
2011 51 69⅔ 2 5 0 8 0.286 5.81 75 4 52 32 46 45 1.780
2012 55 61⅔ 2 3 1 6 0.400 5.55 86 6 20 31 46 38 1.686
2013 13 12⅓ 0 1 0 0 0.000 6.57 17 1 8 6 9 9 1.865
2014 19 20 0 0 0 1 0.000 8.55 32 1 13 8 20 19 2.050
2015 2 0 0 0 0 0.000 0.00 0 0 2 0 1 0 3.000
KBO 통산
(14시즌)
427 1017 50 55 5 37 0.476 4.87 1101 92 567 591 611 550 1.580

5. 여담

6. 관련 문서



[1] 경기대학교 스포츠레저학과 학사학위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고졸로 표기되어 불쾌했던 에피소드를 털어놓았다. 자세한 내용은 링크로 참조 [2] 지명권 양도계약으로 현대 유니콘스 입단 [3] ~6월 5일 [4] 6월 6일~ 6월 7일 [5] 6월 8일~ [6] 이를 계기로 규약이 개정되어 지명권 트레이드는 금지되었고, 신인 선수 현금 트레이드 역시 금지되었다. 이후 20년의 시간이 흘러 2020년부터 지명권 양도가 부활했다. [7] 2001년 당시 현대 선발진은 정민태가 요미우리로 이적하고 김수경은 전년도에 비해 성적이 추락하면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등 구멍이 뚫린 상황이었고, 그나마 임선동과 마일영만 제대로 활약했을 정도로 다승왕 트리오를 보유했던 2000년에 비해 선발진이 빈약해진 상태였다. [8] 그러나 적응과는 별도로 공익 생활하면서 몸을 꾸준히 만들었다. 2007년 소집해제 당시 김시진 감독이 '즉시 전력으로 쓸 정도로 몸 상태 좋다.'고 평할 정도. 공익 근무 중에 틈틈히 너클볼을 연습했다고 한다. [9] +12억 5천만원 [10] 트레이드 당시 3억원으로 발표되었으나, 2018년 KBO 트레이드 이면 계약 파문을 통해 12억 5천만원을 건넸음이 밝혀졌다. [11] 한편, 2010년 시범경기 실시 전인 2월에 넥센타이어와 히어로즈가 스폰서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넥센 로고가 박힌 유니폼을 입은 마일영의 사진이 남아있기도 하다. # [12] 랜디 존슨의 그 투구폼이다. [13] 2011년 당시 제구력도 구속도 영 좋지 않아서 붙은 별명으로, 마일영=Mile 0인 것을 이용한 말장난이다. [14] 2011년 한때(5월) 평균자책점 11점대로, 10점대를 넘겨 평균자책점이 10점대마10 아니냐는 소리도 들어먹었었다. 그러나 이후 6월달 후반기에 조금은 안정감을 찾으며 6점대로 평균자책을 내려서 다행히도 그 의미의 마텐에서는 벗어났다. [15] 4회가 지나면 급격하게 무너지는 폼으로 인해 선수단에서 그렇게 불리웠다. [16]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2009년에 혀갤에서 카라의 My love란 노래+잇몸미소 짤방과 함께 유행했던 별명이다. [17] 프로야구매니저에서 '씨덜년'이라는 아이디를 가진 유저가 마일영 선수 카드를 계속 올리면서 꾸준하게 글을 올렸는데 이 때문에 다른 유저들이 마일영만 보더라도 "아 씨덜년이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미지가 굳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