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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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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iMac 24(2024년) 블루.jpg
Personal Computer[1]

1. 개요2. 정의
2.1. 넓은 의미의 정의2.2. 좁은 의미의 정의2.3. 마이크로컴퓨터 VS 퍼스널 컴퓨터
3. 역사4. 용도5. 위기?6. 관련 회사
6.1. 부품 분야6.2. 컴퓨터 브랜드
6.2.1. 메인프레임6.2.2. 슈퍼컴퓨터6.2.3. PC6.2.4. PDA/스마트폰/태블릿 컴퓨터
6.3. 사라진 브랜드

[clearfix]

1. 개요

개인용 컴퓨터(Personal Computer). 주로 'PC'라는 약칭으로 부른다.

개인용 컴퓨터는 기업, 기관 및 소수의 전문가들이 독점하던 컴퓨터라는 도구를 일반 대중의 손에 전해줌으로써 정보화 사회의 기틀을 마련해준 극히 중요한 발명이다.

1970년대 중반의 초창기 개인용 컴퓨터는 사용자가 부품을 직접 조립해 쓰는 키트 방식이었으나,[2] 1970년대 후반에 Apple II, 코모도어 PET 2001, TRS-80을 필두로 완성품 개인용 컴퓨터가 출시되며 사용자 기반도 급속히 확산, '한 가정에 컴퓨터 한 대'라 지칭되는 퍼스널 컴퓨팅의 시대가 도래하기에 이른다. 이처럼 컴퓨터 사용 저변 인구가 확대됨에 따라 1990년대에 인터넷이 개발·보급되었으며, 이는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21세기 모바일 컴퓨팅의 전성기로 이어진다. 정보화 사회는 개인용 컴퓨터 덕분에 현실화된 것이다.

2. 정의

2.1. 넓은 의미의 정의

넓은 의미로는 개인용 컴퓨터 전반을 지칭하는 일반 명사다. 21세기 기준으로 "개인용 컴퓨터"라는 말을 들으면 "개인용이 아닌 컴퓨터가 뭐지? 회사나 학교에서 쓰는 사무용 컴퓨터를 말하나?" 싶겠지만, 사실 컴퓨터 한 대를 사용자 한 명이 독점해 이용하는 방식이 등장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1960년대까지 컴퓨터는 메인프레임 아니면 그 하위 등급인 미니컴퓨터( 미니 PC 아님)가 일반적이었는데, 이는 21세기의 일반인이 상상하는 슈퍼컴퓨터와 비슷하다. 조직 전체가 공유하는 거대한 중앙 컴퓨터가 있고, 개개인은 네트워크 끝단에 있는 입출력 전용장치인 단말기들을 사용해 컴퓨터에 접속해 사용했다. 그렇다고 하나의 컴퓨터에 키보드 모니터 여럿 달아놓고 쓰는 아비규환이 벌어진 것은 아니고, 메인프레임 안에서 각 단말기마다의 고유한 환경이 돌아가면서 0.1초~0.01초마다 전환되는 식이었다. 전환 주기가 매우 빠르기 때문에 사용자 입장에서는 자신이 온전히 메인프레임을 사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시기 메인프레임 미니컴퓨터는 구조적인 차이가 있기보다는 규모와 부피의 차이를 일컫는 말에 가까웠고, 이는 미니컴퓨터보다 더 작은 컴퓨터를 일컫는 마이크로컴퓨터도 마찬가지였다. 방 하나의 크기를 가득 채우는 괴물같은 크기의 컴퓨터는 메인프레임이고, 관물대 한 칸 정도로 줄어들면 미니컴퓨터고, 그거보다 더 작으면 마이크로컴퓨터인 셈. 그런데 1970년대부터 마이크로프로세서가 대중화되면서 이를 탑재하여 개인이 온전한 컴퓨터 한 대를 소유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마침 이름도 비슷하니 이러한 컴퓨터를 일컫는 말로 마이크로컴퓨터가 정착되었다. 한편 이런 컴퓨터는 기존의 컴퓨터와 달리 개인이 혼자서 온전히 소유하고 사용하므로 개인용 컴퓨터라 하여 Personal Computer라고도 불렀던 것이고. 물론 이 당시의 PC는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는 결코 아니었다. 1970년대 초창기에는 아직은 표준화가 거의 되지 않아 사용자가 직접 납땜하고 조립해야 하는 키트 형태로 판매되기도 했고,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이른바 8비트 PC 전성시대에는 지금과 비슷한 완성품 PC들이 많이 등장했으나, 당연 그런 PC들 사이에 호환성이라는 것은 거의 없었고 제각각 중구난방인 시대에, 일반 대중들에게 폭넓게 보급도 되지 않은, IT 매니아들 만의 전유물이였다.

즉, 요약하면 개인용 컴퓨터는 기존의 시분할 방식 메인프레임과 달리 아래의 구조를 특징으로 한다.
메인프레임과 개인컴퓨터의 차이가 위와 같은 탓에, 프로세서의 소형화가 이루어진 현대에는 딱히 크기에 따라 메인프레임과 개인컴퓨터를 구분하지는 않는다. UNIX 같은 멀티유저/멀티태스팅 OS를 쓰며 콘솔 자체는 계산을 하지 않는 것은 중대형 컴퓨터이고, 그것을 모두 독립한 장치, Windows나 macOS 같은 싱글 유저 OS로 하면 개인용 컴퓨터이다. 데스크탑 몇 대를 병렬로 연결하거나 서버용 랙에 설치해서 소형 슈퍼컴퓨터 비슷하게 만들어도 개인이 사용하면 개인용 컴퓨터이고, 데스크탑 컴퓨터 케이스에 어떻게든 부품을 쑤셔넣어서 여러 명이 콘솔로 접속해서 사용하게 만들면 중대형 컴퓨터인 것이다. 이런 탓에 UNIX 기기들의 전유물이었던 서버용 컴퓨터 시장에 좁은 의미의 PC가 처음 진입하던 과도기에는 절대 개인용이 아닌 서버를 PC서버라고 부르는 흥미로운 표현법도 있었다.[3]

그 정 반대로, UNIX 기기를 개인용으로 쓰는 경우도 있었는데, 서버급 장비와 동일한 아키텍처와 CPU를 장착하고 특정 과학기술 계산을 하는 소프트웨어를 탑재한 UNIX 기기들의 경우다. 당연 소프트웨어가 돌아가고 외부에서 다수가 터미널로 연결하지 않으며 콘솔을 조작하는 것은 단 한 명 이기 때문. 주로 SUN의 ultra 시리즈들이 그러했다. 하지만 이들을 PC라고 부르지 않는데, 이런 기기들이 전성기였을 시절에는 PC의 성능이 보잘 것 없었고, 이후에는 아래 좁은 의미의 PC가 PC라는 명칭을 사실상 독점함에 따라 나름 차별성을 두기 위해서다. 당시 이런 기기들의 명칭은 마이크로 컴퓨터도, 퍼스널 컴퓨터도 아닌 그냥 워크스테이션[4]이라고 불렀다.[5]

흥미로운 사실은, 개인용 컴퓨터의 시대에 의미가 없어진 단말기와 엔드유저라는 용어가 아직까지 널리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용자가 조작하며 입출력을 받는 기기는 그 자체로 컴퓨터가 내장되어 있더라도 단말기로 불리는 경우가 많고, 프로그램 등을 설치할 때 흔히 등장하는 EULA라는 약관은 End-User License Agreement, 즉 최종사용자 라이선스 협약이라는 뜻이다. 개인용 컴퓨터의 시대가 열린지 수십년이 지났는데도. 한 번 관습으로 정착된 단어를 바꾸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예이다.

2.2. 좁은 의미의 정의

좁은 의미의 PC는 1981년에 출시된 ' IBM PC'라는 상표명을 지닌 상품은 물론이고, 그것과 호환되는 " IBM PC 호환기종"(특히 Windows가 탑재된)들을 뜻한다. 상술했다시피 마이크로프로세서의 발달로 개인용 컴퓨터라는 개념이 처음 태동하던 시기에는 이런 컴퓨터를 지칭할 용어 자체가 뚜렷하게 확립되어 있지 않았다. 미니컴퓨터보다 작은데다가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쓰니 마이크로컴퓨터라고 부르자는 사람도 있었고,[6] 개인용이니 개인용 컴퓨터라고 부르자는 사람도 있었던 시절에 IBM이 이를 자사 상표로 등록한 것이다.
파일:IMB_PC-IMG_7271.jpg
'퍼스널 컴퓨터'라는 용어를 널리 퍼뜨린 IBM PC 5150

이 당시는 아직 개인용 컴퓨터가 필수 가전 제품이 아니던 시절이라 사실상 표준을 가질 만큼 시장이 성숙하지 않았고, 제조사마다 별도의 규격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상술했다시피 개인용 컴퓨터라고 팔리는 것이 기판에 납땜해서 직접 만드는 키트였던 시대다. 따라서 IBM이 PC라는 제품명으로 출시한 컴퓨터에도 당연히 전용 규격이 사용되었다. 하지만 이 규격은 완전히 독자적인 하드웨어가 아닌 소매시장에서 구입할 수 있는 하드웨어를 사용했고, 따라서 당시 기준으로는 호환성이 높은 편이었다. 높은 호환성을 바탕으로 IBM PC는 불티나게 팔렸고, 심지어 다른 기업들에서도 해당 규격과 호환되는 컴퓨터를 역설계해서 제작 및 판매할 정도였다. 엉겁결에 IBM PC는 사실상 표준에 가까운 지위가 되었고, IBM 제품이 아니지만 PC 규격과 호환되는 기종들은 "PC Clone" 또는 "PC Compatible"이라고 불렸으며 자체적인 생태계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제품군이 나무위키에는 IBM PC 호환기종이라는 문서명으로 작성되어 있지만, 사실 IBM은 이러한 상황을 의도한 것도 아니고, 호환 규격이라는 것을 제정한 것도 아니었다. 워낙 가성비가 좋고 호환성이 좋다보니 짝퉁이 넘쳐났는데 그게 시장의 거대한 흐름이 되어버린 것에 가깝다. 게다가 다른 메이커가 IBM PC 아키텍처에 따라 제품을 만들어 팔아도 IBM에게 로열티를 내는 방식이 아니었기에(즉 오픈 아키텍처 방식이었기에), IBM PC 표준의 대흥행에 이득을 본 것은 IBM이 아니라 IBM PC에 사용된 운영체제인 MS-DOS를 개발한 Microsoft x86 CPU를 개발한 인텔이었고 이 두 회사는 엄청나게 성장했다. 이윽고 이 둘은 윈텔이라 불리며 해당 생태계를 주도하게 되었고, IBM은 시장에서 주도권을 되찾지 못하고[7] 결국 2005년에 개인용 컴퓨터 사업부를 Lenovo에게 매각하기에 이른다. 이런 과정을 거친 만큼,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PC 호환"이라는 생태계에 속한 제품인가였지, "IBM"인가 아닌가는 큰 문제가 아니었고, 이를 생략하게 된 것이다.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서 1980년대에의 주요한 관심사는 "이거 PC 호환되나요?"였고,[8] 1990년대에는 " PC랑 호환 안 되는 것도 컴퓨터임?"이 되었다가, 2000년대에는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서 PC 호환 규격을 제외한 제품들( Mac, PC-98 등)이 한국에서 사실상 멸종되면서 "PC가 컴퓨터지 무슨 소리임?"에 이르게 되었다. 이 흐름이 이어져 Mac조차도 2006년부터 인텔 CPU를 쓰게 되었고 Windows 설치가 가능해지는 등 IBM PC 호환기종이 될 지경이나 마찬가지였는데, 그럼에도 PC와 구별해서 불린 것은 내부 규격과 별개로 매킨토시의 역사에 비추어 윈텔 진영과 뚜렷이 분류되는 제품군이었기 때문이다. 2010년대에는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컴퓨터=PC"라는 고정관념이 깨지기 시작했는데, 이런 역사를 모르는 21세기 이후 태어난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 스마트폰도, 태블릿 컴퓨터도, 노트북도, 데스크톱 컴퓨터도 다 개인이 사용하는 컴퓨터인데(≒인터넷이 되는데) 왜 특정 아키텍처를 쓰는 데스크탑 컴퓨터만 PC라고 부르냐?"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2.3. 마이크로컴퓨터 VS 퍼스널 컴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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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역사

PC 이전의 컴퓨터 역사는 항목 참고, 노트북의 초기 역사는 항목 참고, 보다 덜 알려지고 세세한 역사는 각 부품의 역사 (e.g. 케이스 역사) 참고.

4. 용도

오늘날 PC의 용도는 무궁무진하지만, 특히 다음 용도로 널리 이용된다.
반면 슈퍼컴퓨터처럼 각종 고차원 시뮬레이션을 수행하거나(예를 들어 일기예보) 네트워크 서버 임베디드 시스템처럼 딱 한 가지 업무만을 맡아 계속 수행하는 특화된 컴퓨터도 많다. PC의 특징은 이들과 달리 사용자가 원하는 다양한 작업을 유연하게 수행할 수 있다는 범용성이다. 오늘날에는 모바일 기기의 성능이 크게 발전헤 그 중 상당 부분의 셰어를 가져갔지만(예: 모바일 인터넷, 모바일 게임), 업무 수행용으로는 여전히 키보드 모니터, 마우스가 달린 PC가 표준 장비로 애용된다. 심지어 게임조차도 모바일 기기의 스크린의 버튼을 눌러가며 플레이하는 것이 싫어 전용 게임기나 컴퓨터를 쓰는 이들도 많다.

“최초의 PC는 무슨 용도로 쓰였나?”라는 질문이 종종 온라인에서 보이는데, 애플 1, 알테어 8800같은 초창기 PC(당시 명칭은 마이크로컴퓨터)가 나왔을 때는 인터넷은 커녕 상용 프로그램이란 게 아예 없었던 시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컴퓨터를 갖고 뭘 했느냐는 것.

이는 “최초의 승용차는 무슨 용도로 쓰였나? 포장 도로도 주유소도 없던 시절인데”라는 질문과 마찬가지다. 최초로 자동차를 만들어 탄 이들이 자동차란 물건을 운전하는 것 자체를 즐겼듯, 최초의 PC 사용자들은 컴퓨터란 물건을 조작하는 것 자체를 즐겼다. 제대로 된 프로그래밍 언어조차 없어 어셈블러나 내장 BASIC으로 프로그램을 만들고, 하드 디스크는 커녕 플로피 디스크도 없어 카세트 테이프에 프로그램을 저장하며 밤을 지새던 이들이다. 즉, 최초의 PC들의 용도는 “컴퓨터를 사용한다는 행위 그 자체”였으며 그 외에 실용적인 용도는 별로 없었다.[53]

허나 머지 않아 저런 PC 사용자들이 이런저런 프로그램을 짜보다가 ”이거 돈 받고 팔아도 되겠다“ 싶은 수준의 물건들을 만들고, 동네 컴퓨터 가게나 우편 판매를 통해 자기가 만든 프로그램을 판매하며 상용 소프트웨어 시장이 생겨나고 급속히 확대된다. 빌 게이츠가 트래포데이터(교통량 측정 프로그램)를 만들어 판 돈으로 세운 마이크로소프트, 댄 브래클린이 비지캘크(원조 스프레드시트)를 팔기 위해 세운 비지코어, 리처드 개리엇이 아칼라베스( 울티마 시리즈의 전신인 컴퓨터 RPG)를 판 돈으로 세운 오리진 시스템즈 등이 유명한 예지만, 그 외에도 무수히 많은 IT 기업들이 PC 사용자들의 손으로 설립되고 키워졌다. 자동차 사용자가 많아지면서 도로가 닦이고 자동차 메이커들이 늘어난 것과 마찬가지로, PC 사용자들이 늘어나며 오늘날의 정보화 사회가 서서히 만들어진 것이다.

5. 위기?

스마트폰 태블릿 등 고성능 휴대용 기기들의 등장으로 크고 무거운 기존의 PC[54]는 점점 사장될 것이란 위기론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PC 시장은 계속 축소되고 있으며, 이는 PC를 사용해야만 가능했던 작업들 중 상당수가 모바일 디바이스에서도 가능해졌기에 '컴퓨터를 사용한 작업'이라는 시장을 이전처럼 독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위기론은 신흥 산업인 모바일 디바이스 시장의 급격한 성장에 으레 따라오는 마케팅적 수사인 측면도 크다. 팬택이 2010년 베가 X를 출시하면서 PC가 5년 내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을 P의 법칙이라 명명하며 마케팅에 크게 활용한 것이 그 예시이다.

그리고 주의해야 할 점은, 그동안 PC가 누려왔던 대체불가능한 독보적인 지위가 약해지는 것이지 PC가 비교열위나 절대열위에 처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55] 모바일 디바이스는 PC가 할 수 있는 많은 일들을 대체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PC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수는 없다. 모바일 디바이스는 휴대성을 위해 특정한 형태의 입출력장치와 일체형의 소형화된 폼팩터를 가져야 하는데, 이러한 본질적인 요소들이 PC의 일부 기능과 상충되어 가능한 작업의 범위를 한정시키는 탓이다.

컴퓨터의 발전은 곧 소형화와 고성능화의 역사이므로, 휴대용 컴퓨터가 충분히 고성능화되었음에도 휴대하지 못할 크기와 조작방법을 고수하는 컴퓨터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휴대를 포기할 만큼의 이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고전적인 키보드, 마우스 등의 입력기기와 대형 출력장치를 사용하는 컴퓨터는 장시간 작업에서의 생산성이 압도적이며, 휴대용 기기보다 물리적 크기의 제약에서 자유로워 성능의 한계폭이 높기 때문에 그래픽 작업이나 고성능 게임에서는 아예 대체 불가능할 정도의 우위를 보여준다.

이러한 상충관계는 PC와 모바일 디바이스라는 제품군의 본질적인 요소에서 오기에 기술이 계속 발전해도 한 제품군이 다른 제품군을 완전지배하기란 요원하다. 모바일 디바이스의 성능이 PC만큼 높아진다면, 해당 기술을 모바일 다바이스의 폼팩터에 우겨넣는 대신 데스크탑 PC의 부피에 배치하고 전원에 직접 연결하여 압도적인 열관리와 전력량을 제공할 경우 PC의 성능은 더더욱 높아질 것이다. 모바일 디바이스에 키보드와 마우스 이상의 편의성과 효율성을 갖춘 입력장치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그 입력장치를 PC에서 사용하는 것은 어떠한가? 이는 마치 PC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여 소형화되고 일체화되더라도 휴대성이라는 면에서는 모바일 디바이스를 압도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둘은 다른 분야에서 서로를 압도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강점을 발휘하는 분야가 다른 만큼, 모바일 디바이스 시장이 어느 정도 성숙기에 접어든 지금은 각자의 영역에서 각자의 시장을 구축한 형태를 보인다. 두 시장이 하나로 합쳐져 PC가 모바일 디바이스를 잡아먹는 것도, 모바일 디바이스가 PC를 도태시키는 것도 일어날 법하지 않은 일이다. 태블릿 컴퓨터가 시장에 등장할 당시 스마트폰의 휴대성 및 편의성과 노트북 컴퓨터의 생산성 모두를 잡는 강력한 폼팩터로 시장을 흔들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지만, 아직은 휴대성과 생산성을 양립시키기 어렵다는 것을 재확인했을 뿐이다.

오히려 고전적인 의미의 데스크탑 컴퓨터, 즉 표준화된 크기의 케이스 안에 표준화된 폼팩터의 하드웨어를 임의로 조립해서 사용하는 컴퓨터의 시장을 침범하는 것은 모바일 디바이스보다는 노트북 컴퓨터에 가깝다. 흔히 말하는 시즈모드용 겜트북이 그것인데, USB Type-C를 통해 USB 3.0 썬더볼트 등의 초고속 전송이 가능해지고 USB PD를 통해 충전까지 가능해져 고정된 작업장소에서는 USB 허브 또는 썬더볼트 독에 연결된 케이블 하나만 연결해서 간편하게 데스크탑 수준의 입출력장치와 전원을 연결할 수 있고, 이동해야 할 경우는 케이블 하나만 분리하면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데스크탑 수준의 성능을 쑤셔넣었기 때문에 이동이 가능하다뿐이지 휴대성이 좋다고 말하기는 힘들고, 고정된 자리에서만 사용할 것이라면 같은 성능의 데스크탑을 사용하는 것이 비교도 안 되게 저렴하기 때문에, 데스크탑에 준하는 성능을 여러 장소를 오가며 사용해야 하는 특수한 상황에서만 유용하므로 위협적인 경쟁자가 되기는 힘들다. 하지만 적어도 모바일 디바이스보다는 경쟁관계가 더욱 직접적이라는 것이다.

위에서 다룬 주제 외에도 PC 위기론에는 여러 관점의 주장이 존재한다. 누군가는 윈텔로 대표되는 데스크탑 환경에서 성장한 거대기업들이 구글 등 모바일 환경에서 급성장하는 거대기업에게 패권을 넘겨줄 것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누군가는 인텔로 상징되는 고성능 데스크탑 프로세서가 Arm 등의 새로운 아키텍처로 대체될 것이라는 예측을 펼친다. 각각의 주장을 진지하게 검토해보면, 만약 기존의 PC가 퇴출되는 상황이 온다면 그건 효용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논리에 의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예측을 해볼 수 있다.

6. 관련 회사

대부분의 업체들은 문어발식으로 부품도 만들고, 완제품도 만들고 하는 경향이 일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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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부품 분야

6.1.1. CPU


스마트폰에 사용되는 CPU의 99% ARM 계열이다.[56]

6.1.2. RAM

6.1.3. 메인보드

6.1.4. 그래픽 카드

6.1.5. 컴퓨터 쿨러

6.1.6. HDD

6.1.7. SSD

6.1.8. 파워 서플라이

퍼스널 컴퓨터에 전력을 공급하는 중요한 모듈이다.

6.1.9. 수입 유통사이자 제조 업체

6.1.10. 완제품 회사

6.2. 컴퓨터 브랜드

6.2.1. 메인프레임

6.2.2. 슈퍼컴퓨터

6.2.3. PC

6.2.4. PDA/스마트폰/태블릿 컴퓨터

6.3. 사라진 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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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상단 사진은 HP Pavilion 24-CA1014NS, 하단 사진은 Apple iMac 24(2024년)이다. [2] 오늘날의 조립컴같은 게 아니라, 납땜 인두를 들고 회로 기판과 각종 마이크로칩을 조립하는 물건이다. 당시에는 회로 조립이 청소년들의 흔한 취미 중 하나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Apple I 같은 제품이 이에 해당된다. [3] 아래 좁은 의미의 PC에서 유래된, 즉 x86 아키텍처에 Windows NT를 돌릴 수 있는 기계를 그렇게 불렀다. 간혹 NT 대신 Linux나 x86 버전 UNIX(솔라리스 등)를 돌려서 서버 역할을 하기도 했다. [4] ‘작업대‘라는 의미. 즉 업무용 컴퓨터란 뜻으로, 취미용으로 주로 사용하는 퍼스널 컴퓨터(PC)와는 차별화되는 성능을 가졌다는 자부심을 내비치는 명칭이다. 오늘날엔 워크스테이션이란 용어는 잘 쓰이지 않는데, 당대에 워크스테이션을 빗대 “놀이대“, 즉 놀이용 컴퓨터란 뜻으로 지어진 이름인 플레이스테이션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5] 지금은 PC의 발달로 인해 이 분야는 수퍼컴퓨터를 필요로 하는 고도의 연산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PC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SUN은 오라클에 팔렸다. [6] 본격적인 퍼스널 컴퓨팅 시대를 촉발했다고 평가받는 애플 2조차도 당시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이크로컴퓨터라고 불렀을 정도다. [7] IBM이 윈텔에게서 주도권을 되찾아보려고 만든 것이 IBM PS/2인데, 성공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 운영체제인 OS2나 연결단자인 PS/2 포트가 더 유명했다. [8] 컴퓨터를 구매할 때 이런 질문을 해야 했다는 것은 당시 시장이 PC 호환기종+맥킨토시로 양분되어 있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오늘날에야 맥을 제외하고 어느 회사 컴퓨터 제품을 사더라도 윈도가 깔려있는 PC 호환기종인 것이 당연하지만, 1980년대는 수많은 회사들이 PC 표준의 아성에 도전하던 전국시대였다. 미국에서만도 아타리, 코모도어, 왕, 싱클레어, 애플(맥이 아니라) 등등 다양한 컴퓨터들이 개인용 및 업무용으로 출시되어 경쟁하였으며, 일본에선 교육용으로는 MSX, 업무용으로는 PC가 주류였지만 이는 IBM PC가 아니라 NEC PC라는 전혀 다른 컴퓨터였다( PC-8801 등). 한국도 삼성전자의 SPC-1000, 금성 패미컴, 삼보 트라이젬(애플 II 클론), MSX 등 다양한 개인용 컴퓨터들이 서로 경쟁했고 IBM PC는 그중 하나였을 뿐이다. 이 제품들은 모두 독자적인 OS를 탑재하고 있어 서로 응용 프로그램 호환성이 없을 뿐더러, OS 명령어(GUI 방식이 아니었다)도 전부 달라 사용법을 별도로 배워야 했다. [9] 대한민국에서의 애플II 항목 참고 [10] 공개 자체는 1977년 1월 CES에서 가장 먼저 공개된 코모도어 PET 2001, 그 다음이 4월 West Coast Computer Faire에서 공개된 Apple II, 마지막으로 8월에 TRS-80이 공개되었다. [11] 당시 관공서나 기업에서 쓰던 DOS를 탑재한 IBM 호환 PC는 100% 독립적으로 쓰는 것이 아니고, 데이터베이스나 수식 계산을 할 때엔 서버에 연결해서 프로그램을 돌리고 사용하는 일이 많았다. 이 때는 PC가 아닌 3270 호환 기종 단말기로 쓰인다. [12] 당시의 16비트 IBM 컴퓨터로는 한자를 표현할 길이 없었다. IBM 호환 PC와는 지향점이 다른 방향으로 역사가 시작된다. [13] 소매상들이 상용 소프트웨어를 무단 복제해, 이를 소비자에게 유료로 판매하는 행위. 물론 정가와는 비교도 안 되는 헐값으로 판매했다(당시 화폐가치로 타이틀당 1000~2000원 정도, 플로피 디스크 가격은 별도). [14] 1987년 7월 1일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 제정. [15] Warez, 웨어즈의 오독. [16]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레포트 작성용, 사무용이라면 컴퓨터가 좋은 소리를 낼 필요가 없다. PC 스피커 참고. 농담이 아니라 (16비트) IBM 호환 PC의 사무용이란 컨셉은 기존의 8비트 컴퓨터와 16비트 컴퓨터의 지향하는 방향성에서 비롯된 차이점이었고, 사운드 뿐만이 아니라 그래픽에서도 당시 전환기에 XT는 320×200 해상도( CGA) 그래픽을 출력하여, MSX( 스프라이트)보다 나은 해상도를 얻고 색상을 잃었다(MSX 256색 vs IBM 흑백~16색). 게임용 그래픽( 도트 노가다참고)으로 쓰기에는 무리였지만, IBM은 사무에만 관심이 있지 게임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십여년이 지난 이제서야 IBM 호환 PC가 멀티미디어 기능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라 볼 수 있다. [17] 4~5년 전만 하더라도 UNIX 터미널을 통해 컴퓨터를 다뤘다. 대학 선후배 간 세대차가 컸다(...) [18] Mdir 이전에는 PC는 공부하지 않으면 쓸 수 없었던 그저 까만바탕의 화면이었으나, Mdir을 실행할 줄만 알면 이후로는 화살표와 엔터키 만으로 컴맹도 원하는 게임을 실행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좀 더 원활히 게임을 실행하기 위해서 PC를 조금 더 공부하여 autoexec.bat, himem.sys mouse.com등을 다뤄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19] 그 당시에도 조금이나마 더 저렴했다. [20] 1998년 3월에 발매된 스타크래프트 민속놀이가 되었으며, 1998년 9월에 정식 서비스된 리니지와 함께 PC방의 전국적인 확산에 크게 기여했다. [21] 정확히는 쿨러는 486부터 달리기 시작했다. 다만 폼팩터를 바꾸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기존 공간 구조상 쿨러가 내부 부품과 간섭을 일으키기 때문이므로 ATX와 쿨러는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22] 2004년에 삼성 소니의 S-LCD 설립된 후, 2005년부터 LCD가 명백한 대세가 된다. [23] 여담으로, 집에 PC가 여러 대 있으면 인터넷 연결에 추가금을 받았다. 인터넷 공유기를 설치해도 다를 바 없었다. 가정용 컴퓨터에서 개인용 컴퓨터의 길은 요원해 보였으나, 아이폰을 위시한 스마트폰의 보급(2010년대) 이후로 통신사의 회선당 추가금을 받는 기조는 멈추게 되었다. [24] 2003년에 출시된 1kg 초반의 P5010 제품은 보다 널리 팔렸다. [25] 역사적인게 어느정도냐면, 20년 후 2022년 ThinkPad, VAIO, 후지쯔, NEC 다 스러져간 와중에 옛모습 그대로 출시, 이유(...). 레거시 포트를 모두 갖춘 초경량 노트북이라서 유일무이한 포지션을 갖고 있다 보면 된다. [26] 한국에서는 DVD 판매/대여점도 성공하지 못할 판이었다. 소리바다와 불법클론 프루나(...)로 대표되는 불법복제 때문에 망했다만 TV로 다운로드한 영화를 보는 용도로 쓰이기는 했다. 너무 마이너해서 문제였지.. [27] DVD 개발과 공급의 시간차가 있으며, PlayStation 2와 함께 DVD가 보편화된다. [28] 하지만 무선랜이 진짜 실질적으로 가정마다 보급되는 것은 2009년에 표준화된 Wi-Fi 4가 지원되는 스마트폰부터이다. [29] 이후 멀티코어 프로세서(2005 펜티엄D, 2006 코어, 코어2)로 개발방향이 전환되게 된다. 특히 2007 코어2 쿼드는 켄츠할배라 불리며 장수만세를 외쳤다. [30] LG의 X같은 브랜딩이 한창일 시기였다. [31] 더 나아가 이듬해 가격과 타협하지 않는 최고급 프리미엄 브랜드 노트북 VAIO SZ/Z 시리즈를 출시하였다. 소니 VAIO는 2023년 기준 노트북계의 애플에 준하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32] Mac mini 등에도 인텔 CPU가 탑재되었다. [33] 다만, 관습상 Mac을 PC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34] 참고로 과거(2000년)에도 3D는 엔비디아, 2D는 매트록스, 인텔은 그래픽 감속기라는 밈이 있었다. [35] 아울러 웹 표준 HTML5의 가능성이 열리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2010년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웹 표준 준수 분위기가 일어나게 된다. [36] 이후 SSD는 TLC, 3D V-NAND 기술 덕분에 확실한 대세가 되었다. [37] 다시 한번 그래픽 감속기 소리를 들었지만, 훗날 관점에서 QSV 역사를 보면 상전벽해. [38] 유리창에 스카치테이프로 노트북을 붙이는 TV광고를 하였다. [39] 이듬해 Surface Book 출시로 매니아들의 호응을 얻었다. [40] 인텔 QSV와 라데온 Graphics Core Next 이후의 2012년 짤, 오버워치 광고 즈음부터 2015년 짤 # [41] 암레발 짤방 중 마동석 짤방이 꽤 유명하다. # [42] PPC 시절부터 비 인텔CPU에서 구동되는 윈도우 제품을 만들어 왔었고, 많은 실패를 해 왔었다. 인텔 CPU 성능 향상의 정체기 및 x86특허 만료로 인해서 다시 시도할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43] 이런 모양(...) EUV를 도입하고 안정화 되기까지 한번씩 절뚝거리는 앞날을 묘사한다 카더라(...) 단 나쁘게 볼 것만은 아닌게, 현재 인텔은 공정미세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인텔을 따라잡을 기회이므로 발빠른 노력이 필요한 시기였다. PC CPU와 스마트폰 AP는 다른 물건이지만, 시장이 겹치고, AMD는 파운드리에서 제조되고 있으며 TSMC의 공정향상에 힘입어 인텔을 위협하고 있었다. [44] 갤럭시 북 시리즈는 2017년 태블릿 PC 브랜드로 당시 프론티어 내지는 비주력 브랜드였다. [45] 이름이 단순해졌다. [46] 2020.11, 성능비교 [47] 시작은 2017년 AMD Epyc AMD RYZEN Threadripper가 있고, 훨씬 앞선 2005년에 출시된 인텔 펜티엄D 시리즈(첫 듀얼코어)에서 사용되었던 기술이다. [48] 스레드 스케줄링을 잘못하면 고성능 고전력용인 P-코어가 일하지 못 하고, 저성능 고효율용인 E-코어만 일하는 성능 나쁜 CPU가 되어버린다. 게이머들 사이에 E-코어 끄는 법이 공유되었다. [49] 한 번 데이터를 캐시메 모리에 올려두고 이를 계속 반복해서 사용하는 작업에 최적화 되었고, 게임 맵 로딩 후 이 안을 돌아다니는데 최적의 성능을 보여주었다. 반면 인코딩의 경우 계속 새 데이터를 얹고 연산한 후 내려놓는 과정이 반복되니, 이 CPU로 인코딩 성능 향상은 미미했다. [50] 애플 M1이 CPU와 GPU의 메모리를 공유함으로써 데이터를 CPU에서 GPU로 옮기는 과정을 생략해 극적인 성능향상을 이룬 것과 유사한 패러다임의 전환이었다. [51] 때마침 내장GPU는 핫스웰(2012)부터 이어져 온 뜨거운 CPU의 근본 원인이기도 했으니 이를 어찌 해결해봐야 할 상황이기도 했다. 초미세공정이 가능한 외주업체에 GPU를 주문생산하여 포베로스라는 MCM 방식으로 CPU에 조립하는 방식(메테오레이크)을 도입하는 중이다. [52] 앞서 2016년 알파고 시점부터 예상되어졌던 일이며, 2017년 Face ID, 2020년 딥페이크, 2021년 달고리즘 등의 이슈들이 있어왔다. [53] 기업이나 대학, 정부기관 등이 메인프레임이나. 미니컴퓨터로 수행하는 작업들(시뮬레이션, 통계분석 등)은 당시 PC로는 수행하기 어려웠다. CPU 성능도 낮았지만 애당초 그런 대량의 데이터를 입력할 방법이 없었다. 주기억장치가 수십 킬로바이트 수준이었으며 보조기억장치는 잘 해야 카세트 테이프 드라이브 정도밖에 없었다. 때문에 당시 PC를 사서 조립하는 사용자들은 그냥 컴퓨터를 가지고 놀고 싶은 취미가들이 대부분이었다. 실용적인 게인용 컴퓨터는 그로부터 몇 년 후, 애플 2가 나오고 나서 시작되었다. [54] 여기서 말하는 PC는 개인용 데스크탑 컴퓨터로 정의한다. [55] 애초에 대체재보다 비교열위를 갖는 상품이라고 해도 시장에서 완전히 퇴출되는 것은 쉽지 않다. 샤프가 발명되었다고 연필이 퇴출되던가? 시장에서 완전히 퇴출되는 제품들은 대체제에 의한 완전지배를 당하는 제품들이다. 즉, 다른 제품이 이 제품의 효용을 완전히 포함할 때 퇴출되는 것이다. [56] 칩 형태로 판매하기 보다는, 코어를 디자인한 다음 그 디자인 자체를 온갖 업체에게 라이센싱해서 팔아 치운다. 해당 업체는 그 코어에 기능을 추가하거나 변경하여 자신들만의 커스텀 칩을 만들어 사용한다. 엑시노스, 테그라 등 스마트폰 AP의 이름은 모두 다르더라도 CPU 코어는 죄다 ARM이다. [57] 1996년 설립돼서 CPU 쿨러로 시작해서 그래픽카드, 컴퓨터 팬, 파워서플라이 등의 여러 분야에도 진출했지만 모회사때문에 고난을 겪고 이후 2017년 6월에 겨우 회생절차를 졸업했다. [58] 다른 사업으로는 계열사인 오코스프렌즈라는 회사가 했던 오존이라는 이름의 멀티방이 있었는데 오코스프렌즈 자체가 폐업해서 없어졌다. 오코스모스 홈페이지 회사 연혁에는 없고 오존 홈페이지가 있었지만 현재는 등록되어 있지 않은 도메인이라 나오고, 트위터에 있던 계정도 없어졌다. 오모스 블랙홀, 오존 UCC라는 곳도 있었는데 없어졌다. 오코스모스 홈페이지의 계열사 소개 남아있는 카페와 직원이었던 듯한 사람의 블로그 서현점 블로그에 흔적만 남아있다. 머니투데이 2012년 7월 11일 기사에선 프랜차이즈 정보공개서 자진취소 명단에 올랐었다. 자진 취소를 신청했었다고 하니 이미 폐업하려고 했던 거 같다. 온게임넷의 켠김에 왕까지 41, 42회에 나온 적이 있다. 지금은 없는 1호점의 흔적, 역시 지금은 없는 서현점의 흔적, 목표로 했다는 100호점은 저 멀리 날아갔다. 멀티방이 네 군데(대전 은행점, 둔산점, 성남 서현점, 서울 강남점)만 있었던 거로 추정된다. 오코스모스 홈페이지는 주주들에게 알리는 글만 가끔 올라오고 별다른 게 없으며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쇼핑몰이 있었지만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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