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획차량 및 개조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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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퍼 플랜 | 3/4호 전차, VK 16.02 레오파르트, 7호 전차 뢰베, 9 / 10호 전차, E 시리즈, 1인용 경전차 시안 "마우스", 슈투름판처 Bär, 슈투름판터, P.1000 라테, P.1500 몬스터, 마레샬 구축전차 | |
차량 | 독일 국방군/차량, 퀴벨바겐, 슈빔바겐, 슈타이어 1500A, Büssing-NAG T500, Büssing-NAG G31, Büssing-NAG L4500, 오펠 블리츠, 포드 B3000S, V3000S, V3000A, 보르크바르트 B3000, 메르세데스-벤츠 G5, 메르세데스-벤츠 L1500, 메르세데스-벤츠 L3000, 메르세데스-벤츠 LG3000, 메르세데스-벤츠 L4500, 메르세데스-벤츠 L6500, 크루프 프로체, 타트라 T111 | |
모터사이클 | DB / DBK, KS 750, 케텐크라프트라트, R-75 | |
그 외 | 동부용 궤도형 트랙터, 동부용 차륜형 트랙터, 수륙양용 트랙터, 골리아트 지뢰, 보르크바르트 4호, 스프링거 무인자폭차량, VsKfz 617, 쿠겔판처 | |
기타 | 독일 기갑 병기의 역사와 루머 | |
※ 당시 독일은 고질적인 무기부족, 점령국가의 치안을 이유로 기존의 노획 전차 및 차량(Beutepanzer)에 새로운 제식명을 붙여 사용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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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기 기갑차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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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gdpanzer
독일 국방군 구축전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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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g.Pz. 38(t) | Jg.Pz.IV | Jg.Pz.V | Jg.Pz.V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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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gdpanzer VI Jagdtig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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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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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빙턴 전차 박물관 소장 포르쉐 현가장치 장착형 야크트티거 내부 탐방 영상 |
1943년 말, 티거 2가 개발됨과 동시에 그 차대를 이용한 파생차량 기획이 이루어졌고 곧 크루프제 12,8cm KwK 44 L/55를 얹은 거대한 구축전차가 탄생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독일군은 야크트티거에 별 관심을 갖지 않았기에 양산의 시기도 기획에 비해 늦었고 애초부터 많은 수를 주문하지 않았고, 실전에서 활약한 야크트티거의 숫자는 더욱 적었다. 활약했다고 하더라도 당시 나치독일의 상황 상 연합군의 진격을 크게 저지시키는 등의 전과는 올리지 못했다.
2. 제원
Jagdpanzer VI Jagdtiger 6호 구축전차 야크트티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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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 현가장치 장착형과 헨셸 현가장치 장착형의 비교도안[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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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 대수 | 88 대[2] |
무게 | 71.7톤 |
전장 | 10.65 m(포신 길이 포함) |
7.52m(포신 미포함) | |
폭 | 3.6 m |
높이 | 2.8 m |
승무원 | 6명(전차장, 포수, 조종수, 무전수, 탄약수 2명) |
장갑 | 전투실 전면 250 mm 15도 경사장갑 [258mm] |
전투실 측면 80 mm 25도 경사장갑[88mm] | |
전투실 후면 80 mm 5도 경사장갑[80mm] | |
차체 상단 150 mm 50도 경사장갑[233mm] | |
차체 하단 100 mm 50도 경사장갑[155mm] | |
차체 후면 80 mm 30도 경사장갑[92mm] | |
차체 바닥 80 mm | |
차체 상면 40 mm | |
주포 | 12,8 cm PaK 44 L/55 / 8,8cm KwK 43 L/71[9]/비무장[10] |
부무장 | 7.92mm MG 34 |
7.92 mm MG 42 | |
엔진 | 12기통 마이바흐 HL230 P30 (700 마력) |
중량 대비 출력 | 9.76 마력/톤 |
서스펜션 | 토션 바 |
항속거리 | 도로 120 km |
야지 80 km | |
최대속도 | 34 km/h (21 mph) |
차량 번호 | 포르쉐 현가장치: 305001, 305003~305012 |
헨셸 현가장치: 305002, 305013~3050 |
3. 성능
3.1. 화력
포 | 탄종 | 포구초속 | 100m |
12,8cm KwK 44 L/55 | PzGr.39 ( APC-HE-T) | 880m/s | 201mm~ |
PzGr.43 ( APCBC-HE-T) | 935m/s | 223-187mm | |
" | " | 500m | 1000m |
" | " | 176mm~ | 150mm~ |
" | 212-178mm | 200-167mm | |
" | " | 1500m | 2000m |
" | " | 132mm~ | 120mm~ |
" | 189-157mm | 178-148mm | |
위의 표에 표기된 관통력은 30도 각도 기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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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K 44용 12,8cm 장약과 고폭탄, 철갑탄 |
지근거리에서의 관통력이 8.8cm KwK 43보다 비교적 떨어진다고는 하더라도, 결코 낮은 관통력은 아니었고 외려 매우 높은 편이였기에 연합군의 주력인 M4 셔먼, T-34 전차를 비롯한 중형전차들은 고폭탄 사격으로도 간단히 격파할 수 있었으며, 또한 강력한 방어력과 대구경에서 오는 초장거리 교전의 우위는 IS-2같은 전쟁 후기에 등장한 소련군의 신형 중전차들도 쉽사리 상대할 수 없었을 것으로 추정된다.[14]
이들 중 4대(1945년 4월 생산형)에는 12.8cm PaK 44 포가 아닌 8.8cm 71구경장 KwK 43 포를 장착한 모델도 있었다. 2차대전 말기의 독일 전차가 다 그렇듯 탑재할 주포가 모자라서 임시로 8.8cm를 장착한 것. 허나, 연합군 전차 상대로는 88mm 71구경장 KwK 43 만으로도 충분히 교전이 가능하며, 또한 야크트티거는 같은 포를 탑재한 티거 2보다 탄약수가 1명 많기 때문에 더 빠른 장전과 더 빠른 사격이 가능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오히려 88mm 71구경장 KwK 43를 장착하는 모델을 생산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었다. 차량형식번호는 Sd.Kfz. 185이다.
사실 2차 세계대전이 종전될 때까지 8.8cm 71구경장 포로 격파 못하는 전차는 없다시피 했으니[15] 오히려 더 나은 케이스였다고 볼 수도 있다. 12.8cm 포는 큰 구경때문에 포탄과 화약이 분리된 분리식 장약을 사용했고, 이 분리식 장약 덕분에 장전속도가 매우 느렸다. 반면 8.8cm 포는 일체형 탄약을 사용하기 때문에 장전 과정이 간단했으며 포탄의 무게 역시 (상대적으로) 가벼워 더 빠른 장전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포의 무게 역시 8.8cm 포가 1톤가량 가벼웠는데, 야크트티거의 중량대비 출력이 거의 한계에 가까웠다는 점을 미루어봤을때 고작 1톤의 차이지만 상대적으로 기동계통의 부담을 덜어줬을 것이라 짐작 가능하기 때문.
다만, 확실히 야크트티거의 12,8cm PaK 44의 화력은 맞춘 전차를 너도나도 고철덩이로 만들 정도로 강력했으나, 장전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분리식 장약, 포각 조절이 제한된 고정식 전투실, 후술할 형편없는 구동계는 전투 효율을 심각하게 저해시켰으며, 그 잘난 화력을 활용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당장 포각이 고정된 구축전차의 특성상 포를 조준하려면 잦은 방향전환이 필요했는데, 흉악한 중량에서 오는 기동계통의 문제 덕분에 포각 조절하다 전차가 퍼지는 경우도 있었으며, 언덕이라 하기도 민망한 구릉을 넘다가 돈좌되는 경우도 잦은 등, 도무지 그 강력한 포를 유연하게 활용할 환경을 만들지 못했다.
게다가 같은 포를 장착한다면 전차가 구축전차보단 효율적인건 여타 구축전차들의 사례에서도 알수 있다. 임시방편이긴 했어도 8.8cm 포를 달아주는 것 보단 차라리 티거 2를 더 생산하는것이 효율적이긴 하다. 물론 이미 생산한 차체에 포가 모자라 써먹었던 만큼 별 의미는 없었다.
3.2. 장갑
그 거대한 차체 에 전면 전투실의 장갑은 250mm, 차체 정면은 티거 2와 동등한 150mm 경사장갑, 장갑이 가장 얇은 상면도 40mm라는 무식한 장갑을 둘렀다.
시대를 감안하면 살인적으로 두터운 250mm 장갑에[16] 12.8cm 대구경 장포신 주포를 탑재한 이 녀석은 2차 대전 최강의 기갑차량이라는 명예로운 수식어를 달고 있으며, 첫 실전투입인 '레마겐 철교 방어전'에서 연합군 상대로 '넘사벽'이 무엇인가를 뼛속 깊이 느끼게도 해주었다.
그래서 중량은 티거 전차의 56톤, 티거 2의 68톤에 이어 71톤. 2차 세계대전에 양산되어 실전에 투입된 전차 중에서는 마우스[17] 다음으로 최고 중량을 자랑한다.[18]
중량을 두고 공방력을 비교해보면 야크트티거는 1년 앞서 나온 페르디난트/엘레판트(65-70톤)와 거의 동일한 중량(72톤)이면서도 더 큰 대구경 전차포를 장착했으며, 방어력은 상대적으로 훨씬 뛰어났다. 야크트티거의 150mm 전면 경사장갑은 엘레판트의 수직 200mm 장갑보다 유효 방어력이 뛰어났으며, 전투실 장갑 역시 50mm가량 더 두꺼웠다.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의 중장갑형 구축전차(Jagdpanzer) 계보의 최종에 있는 전차 다운 성능이라 할 수 있다. 이 훌륭한 공방력을 얻기 위한 대가로써 치명적인 기동계통 문제를 내재하게 된 걸 제외하면 말이다.
다만 떡장갑이라고는 하나 이는 어디까지나 전면에만 해당되는 사항이었을 뿐, 측면 장갑은 티거와 티거 2와 동일한 80mm대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는 중전차의 평균적인 수치이기는 하나, 야크트티거는 12.8cm 중포 탑재를 위해 차체 길이를 연장했기에, 측면의 노출 범위 역시 티거 2보다 더 넓었으며, 야크트티거가 등장할 시기에는 소련군에선 T-34-85가 주력이 된데다 IS-2같은 중전차까지 등장하였으며 미군에는 76mm 장착형 셔먼이 대거 배치되는 등 연합군 전차의 화력이 대폭적으로 높아졌기 때문에 측면을 노출한다면 운이 나쁠 경우 허무하게 격파당할 수 있었다.
같은 측면장갑 수치를 지닌 티거와 티거 2는 차체의 각을 틀어 인위적으로 경사장갑 효과를 주는 티타임 전술을 사용하여 상대적으로 방어력을 더 높일 수 있었으나, 야크트티거는 포각이 전방으로 제한된 구축전차이기 때문에 포탑을 탑재한 포탑형 전차인 티거와 티거 2와 달리 이러한 전술을 사용하는 데 제약이 있었고[19], 상대적으로 약한 측면 방어력은 더 문제가 되었다. 이는 실전 사례에서도 격파당한 원인이 되기도 한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3.3. 기동력
야크트티거의 구동계통은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화력과 방어력의 강점을 다 깎아먹을 정도로 신뢰성이 낮았던 것. 야크트티거는 티거보다 19톤이나 무거웠지만 티거 후기형, 티거 2와 같은 700마력짜리 마이바흐 HL230 엔진으로 움직였는데, 티거 2도 이 엔진으로는 간신히 굴러가는 수준이었던 판국에, 티거 2보다 더 무거운 야크트티거의 중량을 도저히 버티지 못했다. 당연히 이 쇳덩이를 움직이게 만들려면 안 그래도 헐떡이는 엔진을 최대출력으로, 기동시간 내내 유지해야 했으니 한계에 달한 엔진의 수명은 거의 소모품에 가까운 수준이었으며, 그나마 굴러가는 와중에도 사소한 잔고장이 속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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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 현가장치 장착형 야크트티거 |
예외로 정작 미군이 노획한 초기형 야크트티거는 서스펜션이 안 그래도 문제 많은 포르쉐식 외장 토션바 서스펜션이었는데[21], 그중 좌측 1조가 파괴되어 바퀴 2개가 누락된 상태에서도 야지에서 기동하는 시연을 보인 바 있지만, 이것은 야크트티거의 생산량 자체가 적은데다가 초기 생산형에는 군에서 자신의 모델을 채택하도록 기술자가 책임지고 엄선된 재료로 정성들여 만든 현가장치가 달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포르쉐식 현가장치는 전술된 문제 때문에 결국 초기 일부 차량에만 장착되었고, 수명과 성능 등 여러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이후 실제로 생산된 야크트티거 대부분은 티거 2의 싱글토션바 현가장치를 그대로 사용했다. 그래봤자 나머지 생산분은 50여 대지만.
엔진의 한계 출력보다 훨씬 무거운 차량을 끌고가려다 보니 변속기도 이래저래 탈이 잦을 수 밖에 없었는데, 덤으로 구축전차인지라 포를 조준할 시 포각 범위를 벗어나는 적을 조준하기 위해서는 차체를 좌우로 미세히 조작해야 했다. 이러한 잦은 선회는 안 그래도 간당간당한 변속기에 미칠듯한 부하를 주어 엔진이 멀쩡하더라도 변속기가 퍼지는 일이 잦았다. 이 점은 야크트티거를 실제 운용해 본 오토 카리우스도 지적하고 있는 단점이다.
티거 2보다도 무게가 덜 나가는 현대 주력 전차[22]들이 1500마력 엔진을 쓰는 데도 이런데, 그 덕분에 중량 때문에 한번 퍼지기라도 하면 말 그대로 끝장이었다. 안 그래도 그 거체에다가, 덤으로 당시 막장을 달리던 독일군의 형편으로서는 도저히 견인해다 수리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던 것.[23]
그래서 티거2와 야크트티거에 걸맞은 출력(800마력)을 가진 HL234 엔진을 만들려고 했지만 개발에 실패를 했고. 거기에 대전말 상황에 고출력 엔진을 만들 환경이 안됐다.
따라서 만약 동력계통에 문제가 생긴다면 대부분의 경우 사소한 고장이라도 차량 전체를 파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원래 티거 2와 판터 계열차량은 트랜스미션에 문제가 생길 경우 이를 교체하기 위해서는 차체 상면의 특정 부분[24]을 크레인으로 들어올리고 안의 무전기며 기관총이며 배선이며 다 일일이 들어내고 크레인을 사용해서 트랜스미션을 통째로 꺼내야 했는데, 이 작업 자체가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리며, 절대 쉽지 않았다. 그나마 티거 2와 판터는 포탑을 돌린 뒤에는 비교적 간단한 장비인 2톤급 크레인만으로 작업을 할 수 있었지만, 야크트판터와 야크트티거는 아예 전투실 상부 장갑[25]또는 차체 상부장갑[26] 전체를 들어내는걸로 모자라 그 자체로 수 톤에 달하는 주포마저 탈거하는 등 온갖 수고를 해야 겨우 변속기를 뺄 수 있었다. 변속기를 교체한 이후에는 똑같은 짓을 꼼짝없이 반복해야 했기에 정비성은 모체가 되는 판터와 티거 2와 비교해도 훨씬 끔찍하다.
비슷한 중량대의 대전차 자주포인 엘레판트와 비교해보면 야크트티거가 그나마 사정이 조금은 나은 편이었는데, 엘레판트는 하이브리드 엔진을 채택한 기동계통의 말썽 때문에 툭하면 불이 나고 작살나기 일쑤인 고장투성이 애물단지였기 때문이다. 이쪽 역시도 불은 안나지만 중량 문제때문에 툭하면 퍼지는 것은 마찬가지였던지라 사실 도긴개긴급 수준이라 할 수 있다. 둘 다 기동계통에 있어서는 최악이라 불려도 할 말이 없는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타국에서의 비슷한 급수의 차량으로는 영국군의 프로토타입 A39 토터스를 꼽을 수 있는데, 야크트티거보다 8톤이나 더 무겁고 출력이 더 낮은 600마력 엔진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신뢰성과 주행성능이 상당히 좋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제자리 선회도 손쉽게 해냈다. 다만 야크트티거보다도 느려터진 최고속도와 연비 등의 문제, 그리고 그 전에 독일이 항복하면서 실전 투입은 되지 않았다. 일단 신뢰성이 부족하더라도 스펙 위주로 보고 만들어서 실전에 투입하는 2차 대전 독일군의 특성을 잘 보여 준다. 토터스가 현재도 거뜬히 기동 시범을 보이는 것과 비교하면 처절한 수준. 크롬웰 전차를 보면 알겠지만 영국의 변속기와 현가 장치 제작 기술은 독일보다 뛰어났다.
3.4. 생산량
문서상으로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총 생산댓수가 88대이다. 언제나 생산댓수가 모자라다고 소련군이 닥달하던 ISU-152가 IS-2와 차체를 공유하고도 1885대가 뽑혀나왔다는 걸 생각해보면 상당히 적은 양이다.4. 파생형
4.1. KwK 43 장착형
PaK 44 주포의 생산 문제로 대신에 일반 티거 2에 장착되었던 8,8cm KwK 43( PaK 43) 전차포로 무장한 차량들.4.2. GT 101 엔진 시험형
BMW 003 터보제트 엔진을 기반으로 개발한 GT 101 가스터빈 엔진을 장착한 시험용 차량.4.3. 페르디난트/엘레판트 궤도 장착형
차량번호305003. 포르쉐에서 제작한 두번째 야크트티거이며 비무장형인 첫번째와는 다르게 무장형이다. 추가로 궤도 재활용을 위해 VK 45.01(P) 및 엘레판트 전용 궤도를 사용하였다. 그래서 스프로켓이 일반 티거 2 계열과는 달리 매우 폭이 짧다. 사진이 많이 남아 있는것으로 유명하다.5. 실전
5.1. 제2차 세계 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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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전에서의 야크트티거 |
5.1.1. 653 중 대전차 자주포 대대
전투에서 소모된 엘레판트를 대체하여 야크트티거를 배치받았으며 실전에서 대단한 전과를 올린다. 차량번호 305006번부터 305012번까지의 포르쉐 현가장치 장착 야크트티거를 받았다.3km 밖의 미군의 M4 중형전차를 격파했고, 이에 미군은 패닉상태에 빠져 쓸려나갔다.[28]
약 1000m 거리에서 잭슨과 울버린이 측면을 공격했지만 피해를 주지 못했고, 뒤이어 반격하여 대전차 자주포 4대를 격파했다.
1945년 1월, 1대의 야크트티거가
패튼 휘하의 제 7기갑연대의 전진을 방해하고 적 전차 14대를 격파했다. 후에 이 야크트티거는 본대로 복귀하였다.
전과는 중 대전차 자주포 대대답게 거두었으나. 연합군의 공중지원에 따른 손실 그리고 비전투 손실[29]이 많았다. 손실되면 그만큼 보충해야 했지만 그마저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30] 대대에서도 이런 애물단지를 인수하는 것을 거부했다.
5.1.2. 512 중 대전차 자주포 대대
그 유명한 전차 에이스인 오토 카리우스가 중대장으로 있었던 부대임에도 불구하고 전과가 없다. 대대가 보유한 전차를 모두 손실했는데, 그들이 격파했다고 주장하는 적 전차의 수가 27대로 대대가 보유했던 전차 수와 비슷했다. 셔먼 2대를 격파하려고 야크트티거 3대를 손실한 적도 있다. 문제는 이 손실이 전투 중 연합군들한테 격파당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토 카리우스가 전선 시찰을 나가고 있던 동안 전차장 자리가 공백이 된 카리우스의 차량을 부중대장이 임시로 탑승하여 경계를 서고 있었다. 부중대장이 탑승한 야크트티거는 다른 야크트티거 1량과 같이 수풀에 잘 위장된 상태로 매복하고 있었는데, 그러던 와중 약 1.5km 거리 앞에 미군 전차 대열이 나타났다. 적 전차들은 잘 위장된 야크트티거를 알아보지 못한 상황이었고, 이 상황에서 먼저 공격했다면 선제공격을 맞고 혼란에 빠진 적을 야크트티거의 뛰어난 원거리 공격력으로 일방적으로 관통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부중대장은 사격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그 이유는 적 전차에 사격을 가하면 위치를 알아낸 적들이 공군에게 근접항공지원을 요청해서 전차를 공격할 것 이라는 논리였다.
사격을 하냐 마냐의 문제로 부중대장과 나머지 승무원들이 언쟁을 벌였지만 이 부중대장은 끝끝내 사격을 허가하지 않았고 미군이 점점 다가오자 되려 전차를 후진시켜 위장된 은신처에서 제 발로 빠져나오는 삽질을 자행한다. 심지어는 옆의 아군 차량에 통신도 하지 않고 자기 혼자만 멋대로 후퇴한 것이었다. 옆에서 대기 중인 차량의 전차장도 부중대장 차량이 갑자기 후퇴하는 모습을 보자 덩달아서 같이 후퇴하였고, 이 두 차량은 쫓아오는 적군이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레 겁먹고 혼비백산으로 전력으로 내빼던 와중, 한 차량은 미숙한 운전병이 무리한 기동을 시도하다 구동계통이 망가져 길 위에 그대로 멈춰버리고 말았고, 앞서 가던 부중대장의 차량 역시 같은 꼴이 났다. 전차가 멈춰버리자 이들은 전차를 버리고 탈출하였으며, 부중대장 차량을 뒤쫒아오던 다른 차량의 차장은 심지어 전차를 자폭시켜버렸다.
전과를 세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걷어차버리고, 삽질만 한 끝에 야크트티거 두대를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날려먹은 셈이다. 이 소식을 해당 차량의 조종수에게 전해들은 카리우스는 뒷목을 부여잡았다. 소식을 전한 조종수도 "부중대장을 때릴 뻔했다" 라고 했다고 한다.[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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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 카리우스가 야크트티거 4량을 가지고 작전을 수행하는 중이었다. 적 전차 1대가 집 뒤로 급하게 숨어들어가는 것을 목격한 카리우스는 야크트티거의 12.8cm 포의 화력을 믿어보는 셈 치고 전차가 숨은 집을 조준하여 사격하는데, 지연신관으로 세팅된 탄환은 그의 기대에 부응하듯이
집을 통째로 관통하고 적 전차에 착탄한 뒤에 폭발하여 그대로 불살라 버리는 화력을 선보인다. 공격을 당한 미군은 그제서야 대응에 나서서 야크트티거 부대에 포격을 가하는 한편 폭격기들까지 동원하여 공격을 퍼부었다. 카리우스의 부대는 어찌저찌 사상자 없이 후퇴하는 데 성공했으나 후퇴하던 도중 1량이 포탄 폭발로 생긴 구덩이에 굴러떨어져 기동불능이 되고 만다.
1량을 손실한 다음날, 카리우스는 상부로부터 남은 야크트티거들을 북쪽에 배치하여 도로를 감시하라 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카리우스는 습격을 대비해서 야간에 차량들을 출발시키고, 자신은 지휘관 차량을 타고 따라가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앞서가던 야크트티거 1량이 기습공격을 받고 화재가 발생하여 승무원들이 전부 탈출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미군이 야간에 보병만 가지고 대전차전을 수행한 전례가 없었기에 카리우스는 적잖이 당황하지만, 이내 진정하고 전투준비를 갖춘다. 그런데 그들 앞에 나타난 보병들은 독일군 철모를 쓰고 있었다. 어이없게도 야크트티거 1량이 격파된 원인은 아군의 오인사격이었던 것이었다. 카리우스의 부대 앞에 나타난 독일군 보병들은 바로 국민돌격대 였는데, 그들은 지금껏 야크트티거를 본 적도 없었고 교육받지도 않았었기에 야크트티거를 미군 전차로 오해하고 판처파우스트를 사격했던 것.[32]
- 카리우스가 휘하의 야크트티거 전차장에게 적과 교전할 것을 명령했다. 해당 차장은 전선 경험이 없는 초짜 전차장이었는데, 매복 도중 엔진을 켜두는 실수를 저지른 덕분에 엔진음을 들은 미군 전차들에게 위치를 들키고 말았다. 하지만 해당 전차장에겐 다행스럽게도 미군 전차들의 포격은 야크트티거의 두터운 전면 장갑 에 전부 튕겨나가 유효타를 입힐 수 없었지만, 이 초짜 전차장은 자신의 전차가 피격당하는 상황에 패닉에 빠져서 단 한발도 응사하지 않았다. 결국 이 전차장은 적을 앞에 두고 침착히 후진해 이탈하기는 커녕 차체를 반대로 돌려서 빠져나가려다가 야크트티거의 측면 장갑을 적에게 노출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다. 미군은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야크트티거의 널찍한 측면에 포격을 퍼부었고 , 해당 야크트티거는 측면에 피격당한 탄을 맞고 포탄이 유폭되어 격파 당했으며 승무원들은 단 한 명도 탈출하지 못했다 .
이런 총체적 난국의 상황이 계속 된 이유는 당시에 서부 전선에 신규 편성-혹은 재편-되면서 배치되었던 부대들이 그러했듯이 512중전차엽병대대에 배치된 병사들이 숙련병이 거의 없는 신병들로만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대전 초부터 실전을 겪으며 단련된 동부전선의 부대와 달리, 대전 말 서부전선에 신설된 부대들은 훈련도와 사기도 크게 떨어졌다. 아무리 카리우스가 고수라도 경험 없는 신병들을 이끌고 싸우는데 제대로 된 전과가 나오기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첫번째 일화의 전투가 벌어진 후 카리우스는 티거를 탈 당시 동부 전선에서 같이 전투했던 고참 전차장이 2-3명만 있었어도 적 전차 40대는 격파했을 거다"라고 기록했다. 반면에 653 중전차엽병대대는 원래 동부전선에서 엘레판트를 몰고 싸우던 부대가 보충 및 재편성을 위해 서부로 왔다가 서부전선으로 재배치된 격이라서 경험 없던 신병들을 이끌어 줄 숙련된 전투원을 보유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고참병들이 몰던 전차가 야크트티거 못지 않게 구동계통이 지랄맞고, 정면 장갑이 단단하고 주포 화력도 강하다는 유사한 공통점들을 지닌 엘레판트였다.[33] 이러니 653중대전차자주포대대는 512중대전차자주포대대와 달리 비교적 적은 진통을 겪으면서 재편에 성공하게 되고 이후, 프랑스에서부터 베를린까지 끌려다니면서 계속 활약하게 된다. 반면에 512중대전차자주포대대는 501중전차대대를 해체 후 재편해서 만든 부대였다. 신병 보충이나 장비충원 및 훈련도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는 당시 존재하던 모든 독일군 부대가 겪던 문제기는 하지만, 그나마 원래 중구축전차를 몰던 사람들이 있던 부대와 티거를 몰던 사람들이 있던 부대를 비교해보면 그나마 어느쪽이 부대를 더 잘 돌아가게 만들지는 명확하다.
오토 카리우스가 자서전 <진흙 속의 호랑이>에서 야크트티거 중대장으로 있었던 대전 후반기의 상황을 그가 티거를 몰던 때와 비교하면서 극렬하게 비판했기 때문에[34] 당시 그가 있었던 512중전차엽병대대의 전과 역시 상당히 저평가되는 감이 없지는 않으나, 실제 전과는 그렇게까지 나쁘진 않았다는 평가도 있다. 일부 자료[35]에 따르면 512중전차엽병대대의 전차 격파수는 최대 150대까지 올라가는데, 이 기록이라면 전차 수 대비 격파 수 비율이 오히려 653중전차엽병대대보다 더 좋다.
5.1.3. 뮌헤베르크 기갑사단
1945년 3월말에 급조된 기갑사단인 뮌헤베르크 사단에도 배치되어 동부전선에서 싸웠다. 밑의 쿠머스도르프 시험장을 방어하기 위해 편성된 중대와는 다른 별개의 "쿠머스도르프 전차 대대"가 3월 14일 뮌헤베르크 사단에 흡수 되면서 소량의 티거 1과 티거 2, 판터,[36] 야크트티거가 배치 되었다. 사단은 젤로 고지 전투나 베를린 전투에 투입이 되었다.5.1.4. 쿠머스도르프 전차 중대
차량번호 305004번. 쿠머스도르프에서 고장난 305001호차를 대신하여 시험을 받던중 쿠머스도르프 전차 시험장을 방어하기 위해 편성된 쿠머스도르프 전차 중대에서 전투에 참가하였다. 이후 영국군에게 노획되어 보빙턴 전차 박물관에 전시되었다6. 평가
기술력과 군수 지원 그리고 전장 상황을 무시하고 중장갑과 대구경포를 장착한 전차를 억지로 만들고 투입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무기인데. 중장갑으로 인해 낮은 연비와 기계적 신뢰성을 낳았고, 대구경포를 얹은 댓가로 무게증가로 인해 앞에 위치했던 변속기와 최종구동장치에 부하가 엄청났으며, 당시 대구경포의 단점[37]인 분리형 장약으로 인한 장전속도의 저하도 컸다. 그리고 낮은 연비 때문에 독일 중전차들의 필수적인 이동수단인 열차에 의지 해야했다. 하지만 이미 독일과 그 주변의 철도망과 도로망들은 폭격기와 공격기들에게 의해 갈아 엎어진지 오래라서 자력으로 이동을 할 수 밖에 없었고, 그렇다 보니 변속기와 최종구동장치, 엔진, 포르쉐식 서스펜션 등등 부하가 많이 가서 정비소요와 크레인과 회수차량 같은 정비 장비들이 악명높은 티거 시리즈보다 더 필요했었다. 그러나 전말의 군수 지원 상황에선 제대로된 유지보수가 불가능했고, 지급을 받은 중전차 대대들도 차량에 문제가 발생하면 견인이나 수리 대신에 자폭이나 유기를 선택했다.그래서 결론적으로는 만들지 말았어야 하는 무기였고. 야크트티거에 들어갔던 자원들을 당장 만들고 있는 기존 전차들에 투입을 더 했으면 야크트티거보다 전선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낼수는 있을것이다.
7. 관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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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크트티거 구동장면
우측 5번째 보기륜이 유실된 것으로 보아 보빙턴 전차 박물관에 전시중인 야크트티거로 보이고 이때 당시까지는 주행이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
Jagdtiger at Iserlohn 1945
1945년 중반 독일의 서부 이절론에서 512 중전차엽병대대가 미군에게 항복하는 장면을 영상으로 남긴 것이다.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잘 정돈된 도로에서의 기동성은 야지 기동성에 비해 그나마 형편이 나았다.
8. 미디어
자세한 내용은 야크트티거/미디어 문서 참고하십시오.9. 모형
나름의 인지도가 있는 기갑차량이라 상당히 많은 수가 모형화되었다. 티거나 티거 2, 슈투름티거와 마찬가지로 모형의 수가 실제 차량의 수를 압도한다. 오래 전 발매된 제품의 경우 야크트티거를 번역한 헌팅 타이거라는 이름을 달고 팔렸던 경우가 많다. 원판이 대전기 기갑차량답지 않게 크기가 큰 편이라 모형 역시 크기가 크다. 현용 주력 전차 모형들과 비교해 봐도 전혀 밀리지 않는다.9.1. 프라모델
주의할 점은 타미야, 니치모, 오타키 등의 구금형 또는 오래된 야크트티거 키트의 경우, 기존 티거 2의 차체를 그대로 사용하여 실차보다 전투실이 짧다는 문제가 있다.-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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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페터
2016년 제품으로, 트럼페터의 다른 대전기 1/16 기갑차량들과 마찬가지로 풀 내부재현 모델이다. 대전기 기갑차량답지 않게 무지막지한 크기를 자랑한다. 다만 디테일은 크기에 비해 다소 심심한 편이다.
-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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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키
1975년 제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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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모델
1995년 금형을 기반으로 계속 개수와 수정을 거쳐 출시중이다. 매직트랙과 메탈 포신이 들어간 제품은 결정판 취급을 받는다.[38] 때문에 프로포션만큼은 야크트티거 모형 중 가장 정확하다고 한다. 헨셸 현가장치형과 포르쉐 현가장치형이 모두 나와 있다. 치메리트 코팅이 적용된 버젼과 305003번 형식을 재현할수 있는 유일한 버젼(궤도가 페르디난트/엘레판트용 궤도이다.), 128mm/66L 장착 버젼(고증 미스로 엔진룸 상부 포신 보관 상자가 없다.)등 다양한 버젼을 출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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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드래곤 제품의 재포장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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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츠
드래곤 제품을 재포장하여 걸즈 앤 판처 버전으로 발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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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미야 모형
60년대 출시한 구금형이 있으나 절판된 지 오래고, 2008년 신금형으로 발매하였다. 초기형을 재현하였으며 국내 기준으로는 무난하나 직구가 가능하다면 훨씬 싼 타콤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 낫다. 조립성은 1/35 야크트티거 중 가장 좋다. 해당 키트를 기반으로 신금형과 피규어, 모터사이클을 추가한 한정판으로 오토 카리우스가 탑승했던 중기형 야크트티거를 내놓은 적이 있다.
-
타콤
2019년 출시된 제품으로, 간편한 조립을 지향하는 블리츠 시리즈로 출시되었으나 제품 간 정합성이 그리 좋지는 않다. 그래도 작은 부품들은 잘 맞는 편이다. 헨셸 현가장치형은 158위안으로 가성비가 좋다고 평가받으며, 포르쉐 현가장치형은 178위안에 가동식 현가장치와 동사의 티거 2 극초기형에 들어갔던 가동식 궤도가 들어있다. 그러나 포르쉐 현가장치형은 현가 장치의 위치 오류와 자잘한 오류들 때문에 디테일만 좋지 정확성은 90년대 드래곤 보다 떨어진다. 추가적으로 2022년에 88mm,128mm/66L 버젼을 재현할수 있는 2 in 1 제품이 출시 하였다. 128mm 버전은 차체 후면 엔진룸 상부에 고대한 장갑판 공간이 존재한다.
-
하비보스
2022년 야크트 티거 포르쉐 현가장치 버전을 출시하였다. 상대적으로 싼 가격과 2가지 형식의 방호패를 재현하였다. 2가지 형식의 방호패가 들어간 최초의 제품이다. 하지만 차체가 고증보다 길고 전체적으로 35스케일보다는 33~34스케일 사이에서 놀고 있는 제품이다.
- 니치모
- 1/48
- 아카데미과학 반다이제 킷의 카피로 단종되었다.
- 1/72
-
트럼페터
2008년 제품으로 트럼페터 1/72 스케일 AFV답게 작은 크기 대비 디테일이 괜찮고 바리에이션이 다양하다.
-
플라츠
1/35 스케일과 마찬가지로 드래곤 제품 재포장판이며 걸즈 앤 판처 버전이다.
- 1/76
- 1/144
- F-Toys
10. 둘러보기
기갑차량 둘러보기 | ||
대전기(1914~1945) | 냉전기(1945~1991) | 현대전(1991~) |
[1]
구분이 어렵다면 보기륜의 갯수와 크기, 겹쳐진 모양 이 3가지를 비교하면 구분하기 쉽다. 헨셸형 현가장치는 포르쉐형에 비해
보기륜의 지름이 크고, 보기륜의 제작에 리벳을 사용했다. 보기륜 갯수는 9개에 겹쳐진 모양이 포르쉐 현가장치형에 비해 훨씬 조밀하다. 이와 반대인 포르쉐 현가장치는
VK 45.02(P)의 현가장치 구조와 크게 유사한 형태기 때문에 보기륜의 크기도 작으며, 보기륜의 갯수는 8개이며 2개씩 세트로 묶여있다.
[2]
공정률 50% 이상인 차량 5~10대가 종전과 폭격으로 자폭 또는 폭파 처리되었다.
[258mm]
[88mm]
[80mm]
[233mm]
[155mm]
[92mm]
[9]
원래 장착하려던 주포의 수가 부족하여 장착하였으며 전차포로는 최고수준의 포인지라 관통력이 우수했다. 1945년 4월에 생산된 차량 중 4대가 8,8cm KwK 43 전차포를 주포로 장착하였다.
[10]
차량 번호 305001. 야크트티거의
프로토타입으로 기관총과 주포가 장착되지 않았다. 대신에 같은 무게의 추를 전투실에 배치했으며, 측면에
뢰베와 같은 사이드 발판을 단 형식이다. 이후 헨셸사의 야크트티거가 완성될때 경합을 위해 주포와 기관총 마운트가 신설되었으며 사이드 스커트도 티거 2의 그것으로 변경되었다.
[11]
물론 낮다는 게
IS-2마냥 구경값을 못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PaK 43의 관통력이 너무 높은 것이지
PaK 44도 미쳐돌아가는 위력을 자랑했다.
[12]
양 포 모두 철갑탄을 썼다고 가정했을 시, 1~2km부터 12,8cm PaK 44 L/55가 관통력에서 우위를 드러낸다. 또한 당시 독일의 희귀 금속 부족 사태를 감안하면 아무리 중전차라도 APCR이 넉넉하게 보급되긴 어려웠으므로, 일반적인 철갑탄을 기준으로 두 포를 비교하면 12.8cm 쪽의 관통력이 더 강하다.
[13]
대구경 고폭탄의 경우는 장갑 관통을 하지 못하더라도 충격을 받은 장갑이 저절로 분해되는 장갑붕괴현상을 일으키기도 했으며, 당장 그런 문제가 아니더라도, 대구경 고폭탄을 얻어맞으면 포신이나 궤도, 현가장치등, 어디 하나는 확실하게 아작이 나서 관통은 되지 않았더라도 전투불능 상태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소련은
KV-2나
SU-152,
ISU-152 같은 152mm급 대구경 야포를 탑재한 자주포나 전차를 다수 운용하여 독일 중전차들을 무력화한 경우가 많았다.
[14]
추정이라고 써놓는 이유는 야크트티거의 생산분량 대다수가 서부전선에서 소진되었으며, 야크트티거가 유일하게 소련군을 만날 수 있었던 순간은
베를린 공방전과 그 직전인데, 그 부분에 관해서는 전해지는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15]
KwK 43에 대한 방호력을 가진 전차로 꼽을 수 있는 것들로는
IS-3,
T-44,
T-54정도가 있는데 이들 전차들은 독소전 당시에는 프로토타입이 테스트만 되고 있었거나 실증 전차만이 나와있던 시점이다. 독소전이 조금 더 길어졌었다면 실전에 배치되었을 수도 있지만. IS-2 1944년 형의 경우에는 전면 장갑 중 특정 부위에 한해서 KwK 43을 방호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지만 완벽한 전면방호능력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16]
전투실 전면에 한해서이기는 하지만,
마우스를 제외하면 비교할만한 대상이 없을 정도의 장갑이다. 마우스의 포탑 전면장갑은 240mm이다. 거기에 포방패 장갑까지 더하면 460mm.
[17]
간신히 생산한 두대의 시제차 중 2호차가(1호차는 더미 포탑만 달려있었기에 전투능력이 없었으므로 병기 시험장에 그대로 남아있다가 소련군에게 노획되었다. 지금 남아있는 마우스는 소련군이 1호차 차체와 2호차의 포탑을 짜맞추어 놓은 것이다.)
베를린 전투 당시 전선으로 이동하다가 길거리에서 퍼지는 바람에 자폭처리되고 소련군에게 노획당한게 유일한 실전기록이다.
[18]
영국의
TOG,
A39 토터스, 미국의
T28,
T34 등 대전 중 개발된 시제 차량 중에서는 야크트티거보다 무거운 전차도 여럿 있으나, 이들 초중전차와 실험용 중전차들은 실전에 투입되지 않았다.
[19]
티타임 전술은 전면장갑의 방어력을 높여 완전격파를 방지하는 대신, 자신 역시도 궤도를 파괴당한다는 점을 감수하는 전술이었다. 일반적인 포탑형 전차의 경우는 궤도가 파괴되더라도 포탑을 돌려 적을 조준할 수 있지만, 구축전차는 궤도가 끊기는 순간 포각 조절이 불가능해지기에 적을 공격할 수 없다.
[20]
고작 200km 주행하고 폐기해야 할 정도였다. 이는 타국 전차의 부품 수명의 1/10도 안되는 짧은 수명이었다. 포르쉐 박사가 무책임한 것이 아니라 애초 당시에는 이 정신나간 중량을 버틸 기술력이 없었다.
[21]
VK 45.01(P) 시절부터 포르쉐가 쓰던 서스펜션이었는데 VK 45.01(P)를 개조한 엘레판트 에서도 문제가 생기던 물건이 더 무거운 야크트 티거에서는 도저히 버티지 못한것.
[22]
이들 중 무거운 편인
M1 에이브람스나
챌린저 2,
레오파르트 2 정도가 야크트티거의 원본인 티거 2와 비슷한 60톤에서 70톤급이다. 그리고 이 세 전차중 어느 전차도 야크트티거의 전비중량을 뛰어넘지 못하는데다 엔진 출력 역시 상회하고도 남는다. 참고로
르클레르 전차,
C1 아리에테,
K-2 흑표등의 일반적인 서방권 주력 전차들은 대부분 티거 2보다 가벼운 50톤급이다. 교리와 운용환경상 전차 크기가 제한되는
10식 전차나 소련-러시아제 주력전차들의 경우는 한술 더 떠서 중형전차인
판터 수준인 40톤급이다.
[23]
이미 티거 1이 등장할 때부터 이 문제가 발생했다.
[24]
조종수와 무전수 해치가 있는 상부 장갑이다. 도면이나 실차를 확인해보면 그 부분이 분리가 가능한 설계로 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5]
야크트판터.
[26]
야크트티거.
[27]
해당 부대명이 중구축전차대대로 번역되곤 하는데, 독일어로 된 부대명을 보면 Schwere 'Panzerjäger'-Abteilung. 즉
jagdpanzer가 아니고
Panzerjäger이기 때문에 전차엽병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28]
그래서 육군은 공중지원을 요청했고, 마침 주위에 있던
P-47 썬더볼트 편대가 5대중 4대의 상부를 관통해 박살냈다.
[29]
자력주행 중 연료 부족으로 멀쩡한 전차를 자폭시키거나 포르쉐형 서스펜션이 장착된 형식의 경우 주행 중 미군 보병의
바주카 공격에 서스펜션이 완전히 파괴되어 자폭시켜야 했던 경우가 있었다. 나중에는 정비를 받지 못해 그냥 유기한 경우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오토 카리우스는 이 차량의 주포 화력과 장갑은 칭찬했지만 주포를 고정하지 않으면 영점이 어긋나고, 고정형 전투실이라 전투 중 차체를 돌릴 일이 많아 현가장치가 쉽게, 자주 망가지고, 주행 중 그냥 퍼지는 일이 많아 썩 좋아하지는 않았다.
[30]
니벨룽베르케에 있던 8대의 보충 전차도 128mm 포와 조준장치가 없어서 출고도 못하고 공장에서 놀리고 있었다.
[31]
아이러니한 것은, 카리우스 본인도
38(t)를 타던 탄약수 시절에 비슷한 일을 저질렀었다는 것이다.
[32]
비슷하게 미군의 경우도 신형 경전차인
M24 채피의 외형이
5호 전차 판터와 유사한데다 신형 전차라는 점 때문에 부대간 정보 공유가 늦어진 점 덕분에 비전투손실을 상당히 입었다.
[33]
참고로 653중대전차자주포대대는 엘레판트뿐만 아니라
5/4호 전차,
티거(P) 지휘전차 등의 특이한 전차를 많이 운용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34]
카리우스는 자서전에서 야크트티거를 시종일관 '
돌격포'라고 부른다.
[35]
Andy Devey의 '야크트티거'.
[36]
대부분은 신품이 아닌 파손된 차체들에서 쓸만한 부품들을 조합해서 만든 재생차량(일명 '좀비 차량'들이였다.
[37]
활강포의 등장 이전에는 120mm급의 포들은 서방권과 공산권을 가릴거 없이 전부 일체형 장약이 아닌 분리형 장약을 썼는데. 일체형 장약을 썼다간 탄의 길이와 무게 엄청나게 증가해서 오히려 운용에 큰 방해가 된다.
[38]
1995년 제품과 현재 판매되는 제품이 완전히 동일한 곳은 아니고 개수와 신규 부품 추가를 거쳤다. 이는 오랫동안 판매된 다른 드래곤 제품들도 동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