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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나기타 유키/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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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문서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모기업 관련 정보 파일:소프트뱅크 그룹 로고.svg 소프트뱅크 그룹
일본시리즈 우승
★★★★★★★★★★
1959 · 1964 · 1999 · 2003 · 2011 · 2014 · 2015 · 2017 · 2018 · 2019 · 2020
리그 우승
(22회)
1946 · 1948 · 1951 · 1952 · 1953 · 1955 · 1959 · 1961 · 1964 · 1965 · 1966 · 1973 · 1999 · 2000 · 2003
2010 · 2011 · 2014 · 2015 · 2017 · 2020 · 2024
퍼시픽리그 전·후기 우승
(1회)
1973전기
클라이맥스 시리즈 2007 · 2009 · 2010 · 2011 · 2012 · 2014 · 2015 · 2016 · 2017 · 2018 · 2019 · 2020 · 2022 · 2023 ·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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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중계 채널 파일:스포츠라이브 로고.png 스포츠 라이브+
주요 인물 구단주 손 마사요시 · 단장 미카사 스기히코 · 감독 고쿠보 히로키 · 선수회장 슈토 우쿄 · 주장 쿠리하라 료야
구단 상세 정보 역사 · 선수단 및 등번호 · 역대 선수 · 응원가 · 유니폼 · 산하 e스포츠 구단 · 10.2 결전
틀 문서
코칭스태프 투수 포수 내야수 외야수 육성선수 역대 감독 역대 1라운드 지명 선수 역대 개막전 선발 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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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아마추어 시절3.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3.1. 2011 시즌3.2. 2012 시즌3.3. 2013 시즌3.4. 2014 시즌3.5. 2015 시즌3.6. 2016 시즌3.7. 2017 시즌3.8. 2018 시즌3.9. 2019 시즌3.10. 2020 시즌3.11. 2021 시즌3.12. 2022 시즌3.13. 2023 시즌3.14. 2024 시즌
4. 연도별 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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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소속 우투좌타 외야수 야나기타 유키의 선수 경력에 대해 서술한 문서.

2. 아마추어 시절

히로시마 출신으로 유년기엔 히로시마 시민구장을 들락날락하는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열혈팬으로 자랐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했으며 원래는 우타자였지만 6학년때 좌타자로 전향했다. 히로시마 상고 시절에는 다나카 마사히로, 사이토 유키 등 유명 선수와 같은 세대로서 여름 현 대회 4강까지 진출하기도 했다. 고교 통산 11홈런. 이후 주오대학(中央大学)에 지원하였으나 탈락했고 히로시마경제대학에 진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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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시절 말랐던 야나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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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고등학교 시절에는 체중이 68kg밖에 나가지 않던 야나기타였지만 히로시마경제대학에 진학하고 카네모토 토모아키 나카타 쇼 등이 다녔다는 체육관에서 체중을 늘린 결과 원거리 던지기나 50m 달리기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대학 통산 82시합에서 타율 .428 8홈런 60타점이라는 성적을 남겼다. 2학년 때부터는 3년 연속으로 대학선수권대회에 출장했고, 3학년 춘계대회에서는 타율 .528의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대학시절에 이미 장타력 포텐으로 아는 사람은 다 알 정도로 암암리에 소문이 났었으나 통산 홈런 수는 그에 미치지 못하는데 그 이유가 워낙 팀 내에서 군계일학이라서 상대팀 투수가 도망다니기에 급급한 결과, 장타보다는 배트에 정확하게 맞추는 타격을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그리하여, 2010년 드래프트에 참가해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 2순위 지명을 받게 되었다. 지명 당시 일화가 있었는데 당시 야나기타는 요코하마를 제외한 11구단의 스카우트 리스트에 들어있었고 그 중 소프트뱅크의 2위지명 후보들 중 한 명이었다[1]. 그 중에서 누구를 2순위로 찍을 것인가 왈가왈부하다가 2015년 시즌에 치열한 타격왕 경쟁을 벌이고 있는 아키야마 쇼고( 세이부)를 지명하기로 정리가 되던 와중에, 회의를 주재하던 오 사다하루 구단 회장이 갑자기 제동을 걸었다. 오 회장은 스카우트진에게 "얘들 중에서 제일 날리는 애가 누군가?"[2]라고 질문을 던졌고, 스카우트진이 이구동성으로 "야나기타입니다."라고 대답하자 바로 "그럼 얘 찍어."라고 한 마디로 정리하면서 호크스에 입단하게 되었다는 후문이 있다.[3][4][5][6]

여담으로 소프트뱅크의 이 해 드래프트는 야나기타를 제외하면 전원 폭망했다. 트레이드된 야마시타 아야츠구를 제외하면 아예 다 은퇴해버렸으니. 그런데 육성선수 드래프트는 나름 잘 뽑아서 6명 중 3명이나 주전이 되었다. 근데 더 웃긴 건 그 3명은 육성선수 4, 5, 6라운드 하위픽. 육성선수도 상위픽은 다 은퇴했다.[7]

파일:external/www.47news.jp/242525_photo.jpg

3.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3.1. 2011 시즌

2011년 스프링캠프에서 신인으로 유일하게 A조에 들며 좋은 출발을 보였지만 데뷔는 5월 8일 닛폰햄 원정 9회 2사 1,3루 동점 상황에서 1루 대주자로 들어가며 이뤘다. 당시 타자 고쿠보 히로키가 우중간 3루타를 치며 첫 득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프로 첫 타석은 6월 16일 주니치전에서 요시미 카즈키를 상대로 맞이했으나 1루 땅볼 아웃, 그해 7월 21일 도야마에서 열린 2군 올스타전에 4번타자 중견수로 선발출전하며 13홈런으로 2군 홈런왕(웨스턴리그)을 차지하기도 했으나 1군에서는 6경기 5타수 무안타에 그쳤고, 수비도 다듬을 점이 많았다. 여담으로 주니치 드래곤즈의 내야수 이바타 히로카즈가 2011년 모 방송 기획으로 선수들에게 최고의 파워히터를 물어보는 인터뷰에서 '내가 2군에서 봤는데 개쩔더라' 라면서 이례적으로 2군 선수인 야나기타를 꼽기도 하였는데, 이는 나중에 야나기타가 포텐을 대폭발시키며 성지가 된다.

3.2. 2012 시즌

2012년 6월 22일 닛폰햄전에서 7번 우익수로 선발출장해 사이토 유키로부터 볼넷을 얻어내며 프로 첫 출루를 달성했고, 6월 23일에는 8번 우익수로 선발출장해 요시카와 미츠오로부터 안타를 치며 프로 첫 안타[8]를 때려냈다. 6월 28일 오릭스전에서는 니시 유키로부터 적시타를 터트리며 프로 첫 타점을 기록했고 바로 도루를 시도해 프로 첫 도루 역시 달성하였다. 8월 5일 세이부전에서는 7회 마츠나가 히로노리를 상대로 우측 최상단에 추정 비거리 135M의 타구를 날리며 프로 첫 홈런을 쳤다. 8월 16일 지바 롯데전에서는 10회 2경기 연속 홈런이자 생애 첫 끝내기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컨택의 문제로 2군에 있는 시간이 길어 별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다.

3.3. 2013 시즌

2013년에는 시범경기부터 12개 구단 최다인 6홈런을 때려내며 눈도장을 찍는가 싶더니, 시즌 중간에 잔부상으로 빠지는 일이 있긴 했지만 처음에는 대타에서 지명타자로, 점차 외야수로 차근차근 활동범위를 늘려가며 시즌 막판 4번 자리까지 수행했다.[9] 시즌 최종성적 104경기 출장 .295 .377 .483 11홈런 41타점 10도루라는 호성적을 냈다.

3.4. 2014 시즌

2014년부터는 전경기 출장을 달성하며 드디어 팀내 부동의 중견수가 되었다.

4월 8일 10경기까지 타율 .161의 부진을 겪었지만 4월 27일 세이부전에서 백스크린을 맞추는 만루홈런을 터트리는 등 반등하며 .276까지 타율을 끌어올렸고 5월 타율 .395, 34안타로 리그 1위를 기록하며 월간 MVP를 수상했다. 올스타전에는 감독 추천 선수로 선출되어 1차전 대타로 볼넷 출루, 2차전 선발출전해 6회 야마이 다이스케로부터 투런 홈런을 치는 등 4안타를 때리며 우수선수상을 받기도 했다. 8월 26일부터 9월 13일까지는 16경기 안타를 치기도 했으며 9월 24일에는 본인 최다인 한 경기 5안타를 기록하기도 했다.

시즌 최종 성적은 타율 .317(팀내 최고, 리그 3위), 출루율 .413(리그 2위), 15홈런, 70타점, 91득점(리그 1위), 33도루(리그 2위)를 기록했다. 팀의 어엿한 중심타자로 성장했으며 결승타는 10회로 이대호에 이어 팀내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2014년 일본시리즈에서는 리드오프맨으로 활약하며 우수선수상을 얻었다.

시즌 종료 후, 골든글러브(NPB)와 베스트나인을 수상하였다. 10월 9일부터 열린 미일 올스타전에도 참가했는데, 이와쿠마 히사시 와다 츠요시로부터 장타를 뽑아내는 등 시리즈 타율 3할 6안타 4타점이라는 대활약을 하였고, 그 해 타격왕 저스틴 모노는 "미국으로 데려가고 싶다"라며 칭찬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는 다음 해 대활약의 복선이 되었다.

3.5. 2015 시즌

확고한 주전으로 맞이한 2015 시즌, 야나기타는 트리플 쓰리[10]를 달성하며 일본야구계에 거대한 충격을 주었다.


6월 3일 DeNA와의 교류전에서 미우라 다이스케에게 스코어보드를 직격하는 초대형 홈런을 날리기도 했다. [11]

9월 8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전에서 30호 좌월 홈런을 쳤고, 9월 15일 교세라 돔 오사카에서의 오릭스 버팔로즈 전에서 시즌 30번째 도루를 성공시키며 NPB사상 10번째, 2015시즌 야마다 테츠토에 이어 두번째로 트리플 쓰리 기록에 성공했다.

9월 27일, 치바 롯데 마린즈전에서 이대은에게 왼쪽 무릎 뒤쪽에 사구를 맞으며 교체되었다. 혼자 나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며 시즌 아웃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등 부정적인 전망이 난무했다. 다행히도 타격에는 별 문제가 없지만 전력질주를 못하는 정도라고 한다. 다만 시즌이 끝날 때까지 스타팅 라인업에서는 제외되었다. 시즌 최종 성적은 0.363 182안타 34홈런 99타점 32도루 OPS 1.101. 실로 어마무시한 성적이라 시즌이 끝난 시점에서 리그 MVP는 이미 확정된 분위기다.

팀 내 청백전에 지명타자로 출전해 2타수 무안타를 기록했다. 쿠도 키미야스 감독이 타격은 문제 없고 전력 질주도 할 수 있다고 하며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에 지명타자로 출장했다. 이후 팀이 2015년 일본시리즈에 진출,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와 맞붙게 되면서 야나기타와 마찬가지로 트리플 쓰리를 기록한 야마다 테츠토와의 맞대결이 성사되었다.[12] 하지만 정작 일본시리즈에서는 부진했는데, 이대호 등 동료들의 맹활약으로 팀이 우승하면서 마음의 짐은 덜었다. 다만 시즌 막판 사구 후유증으로(왼쪽 대퇴골 타박상) 결국 프리미어 12 대표팀 명단에서는 제외되었다.[13]

11월 25일, 2년 연속으로 퍼시픽리그 베스트나인을 거머쥐었고, 동시에 퍼시픽리그 MVP에 선정되었다. 오프시즌에는 연봉이 9천만엔에서 2억 7천만엔으로 3배 상승하기도 하였다.

3.6. 2016 시즌

4월 14일 경기에서 볼넷으로 출루하면서 16경기 연속 볼넷 출루. 퍼시픽리그 기록을 갱신했다.[14] 본인의 선구안이 발전한 것도 있고, 작년의 어마어마한 성적에 힘입어 투수들의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고 보면 될듯. 4월 13일 현재 시점으로 타율은 .280인데 출루율.447. 타율과 출루율의 갭이 1할 5푼을 넘고 있다.

하지만 트레이드마크였던 장타는 봄에는 그다지 터지지 않았다가, 날씨가 더워지면서 타격감이 상승하고 있다. 6월 20일 현재 타격성적은 .293/.452/.526 OPS .978 10홈런 10도루. 눈에 보이는 홈런이나 타율에 비해 쩔어주는 비율스탯, 특히 출루율을 찍고 있다. 가히 퍼시픽리그 배리 본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시즌을 .306/.446/.523 18홈런 73타점 82득점 23도루로 마감했다. 야마다 테츠토처럼 2년 연속 트리플 쓰리에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훌륭한 비율스탯을 찍었다. 양대리그 최다인 100볼넷을 얻어냈다. 다만 OPS는 전년도에 이어 준수했지만 이게 홈런이 줄고 사사구가 늘면서 균형을 맞춘 수치라서 전년도만큼의 포스는 보여주지 못한 것이 흠이다. 그래도 도망다니는 상대팀 투수들을 상대로 장타를 너무 의식한 나머지 인내심을 잃고 타율까지 까먹지는 않았다는 점은 높이 살만 하다.

오프시즌에 1천만엔이 삭감된 2억 6천만엔에 연봉계약을 완료했다.

3.7. 2017 시즌

17시즌 시작 전에는 이토이 요시오와 함께 탄수화물을 거의 섭취하지 않는 식사제한 트레이닝을 하면서 다르빗슈 유에게 쓴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에 대해 야나기타는 '그런 말을 해줬다는 것 자체가 나를 알아주는 것이기 때문에 기뻤습니다'라고 반응했다. 2017 WBC 출전 후보에도 당연히 들어갔지만 오른쪽 팔꿈치 부상으로 보류되었다.

4월 28일 오릭스전에서 니시 유키로부터 왼무릎 뒤쪽에 사구를 맞아 며칠 결장하기도 했지만 5월 2일 복귀했다. 6월 6일 야쿠르트전에서는 연장 10회말 데굴데굴 구르다 라인선상에서 멈추는 끝내기 내야 안타를 치기도 했으며 다음날에는 추정 비거리 145M의 홈런을 날리기도 했다. 그리고 6월 9일 한신전까지 21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하며 교류전 MVP를 수상하였다.

6월 23일 세이부전에서는 3연타석 홈런과 1경기 6타점을 기록하였는데 그 중 2번째 투런홈런은 본인의 100호 홈런이었고, 3연타석 홈런은 1966년 노무라 카츠야이후 호크스 프랜차이즈에서 51년만에 나온 기록이었다. 결국 6월 본인의 4번째 월간 MVP를 수상했다.

올스타전에서는 2년 연속으로 팬투표에서 최다 득표를 획득하며 선출되었으며 홈런더비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9월 16일 리그 우승 결정전이었던 세이부전에서 4회 역전 2점 홈런을 치며 30호 홈런을 달성하였으나, 9월 20일 닛폰햄전에서 오른쪽 옆구리를 다치며 교체되었고, 이후 우복사근·늑간근 손상 판정을 받으며 1군 말소되었고, 시즌을 그대로 마감했다. 이때까지 아키야마 쇼고와 타격왕 경쟁을, 알프레도 데스파이네와 홈런·타점왕 경쟁을 벌이고 있었지만 결국 모두 상대에게 넘겨주어야 했다.

시즌 최종성적은 타율 0.310 31홈런 99타점으로 아쉬운 것은 100타점에 1타점이 모자라 실패했다는 것이다. 더 아쉬운 것은 2015년에도 1타점이 모자라 3할 30홈런 100타점을 실패했다. 그렇지만 출루율 0.426을 기록하며 3년 연속 최고 출루율 타이틀을 수상하는데 성공했다.

위 부상으로 시즌 아웃 가능성도 제기되었지만 CS 파이널 스테이지 5차전부터 1번 타자로 복귀해 언제 다쳤나는 듯 맹활약을 보였다. 팀이 1위를 했고, 세리그 히로시마도 1위를 차지해 히로시마와 일본시리즈에서 맞붙어 히로시마에서의 경기에서 부모님을 초대하겠다는 소원이 직전까지 왔으나 히로시마가 3위 요코하마에게 망신살을 당하면서 결국 일본시리즈 히로시마 도요 카프가 아닌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와 붙게 되었다. 일본시리즈에서도 1번 중견수로 출장하며 뒷타자들에게 밥상을 충실히 차렸고 팀도 2년만에 일본시리즈 우승에 성공하였다.

3.8. 2018 시즌

2017년 12월 23일 계약변경 교섭 때, '17년 시즌 2억 6천만엔에서 1억 4천만엔이 증가한 연봉 4억엔에 3년 계약을 체결했다. 원래 2018 시즌 중 국내 FA를 취득 할 예정이어서 3년 총액 12억엔 및 옵션의 다년 & 고액 계약에 사인했다. 88년생인 야나기타는 이번 3년 계약이 끝날 시점에는 30대 중반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사실상 메이저리그 진출을 포기한 셈.

일본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시즌부터 보다 플라이볼을 치는 것을 의식하며 타구를 띄우고자 한다고 밝혔다. 야후오크 돔의 인조잔디가 보다 기다란 잔디로 교체된 뒤 야나기타의 장기였던 빠른 라인드라이브 타구[15]의 속도가 잔디에 의해 죽어버리는 경우가 많아지자, 메이저에서 호크스로 돌아온 카와사키 무네노리[16]가 플라이볼을 쳐보라는 조언을 해 주었다고. 그 때문인지 스윙을 교정하는 과정에서 5월까지는 상당히 부진했지만, 그 이후로는 대폭발하여 OPS 1을 가볍게 찍으며 우리에게 익숙한 파리그 최고의 강타자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다만 그 대가인지는 모르지만 이전 시즌까지의 압도적인 선구안은 다소 무뎌진 듯 BB/K 비율이 다소 하락했다는 점은 살짝 우려. 하지만 3할 5푼에 30홈런을 치고 있는 타자에게는 사소한 문제이다.

2018년 4월 21일 닛폰햄 원정 경기에서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했다. NPB 통산 65번째이자 한신의 후쿠도메 고스케 이후 1년 9개월만의 사이클링 히트 달성이다.[17]

정규시즌 최종 성적은 130경기 출전하여 타격왕(0.352)에 올랐고 개인 최초로 100타점도 기록하고 36개의 아치를 그리는 등 최고의 활약을 했다. 타율 3할 5푼 이상을 2번 이상 기록하는 것은 사상 11번째 기록이며 5년 연속 타율 5위 안에 진입하는 것도 사상 11번째였다.

포스트시즌에서는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에서 타율 0.450 2홈런 8타점으로 타선을 이끌며 본인 첫 클라이맥스 시리즈 MVP에 선정됐다. 팀도 클라이맥스 시리즈를 우승하고 센트럴 리그에서도 히로시마가 가볍게 상대를 짓밟고 올라가며 드디어 부모님 눈앞에서 일본시리즈에 나설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2018년 일본시리즈 5차전에서는 연장 10회말에 나카자키 쇼타를 상대로 끝내기 홈런을 기록하며 팀의 시리즈 스코어 3-1을 만들어냈다. 고향 히로시마에서 열린 6차전에서도 팀이 승리하며 2년 연속 일본제일 제패에 성공하였다.

시즌 종료 후 본인의 4번째 골든글러브와 베스트 나인을 수상하였고, 4년만에 열린 미일 올스타전에도 다시 참가하여 1차전 커비 예이츠를 상대로 끝내기 역전 투런 홈런을 날리고[18] 2차전 4안타를 때리는 등 활약하며 미국에 가지 못한 한을 풀었다.

오프시즌에는 다시 연봉계약 갱신 협상을 호크스와 진행하여 최종적으로 구단과 3년 계약, 추정 연봉 5억 7000만엔(약 65억 4200만원)으로 재계약하면서 소프트뱅크 호크스 역사상 최고 연봉자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19]

3.9. 2019 시즌

예년처럼 좋은 페이스로 출발했지만 4월 7일 지바 롯데전에서 도루 중 입은 왼쪽 허벅지 근육 파열 부상으로 시즌 대부분을 날렸다.[20] 8월 말에 돌아와 몇 경기 뛰기는 했지만 9월에 오른쪽 팔꿈치 통증으로 다시 1군 말소되었고 결국 38경기 .289 .420 .516 OPS .936 7홈런 4도루의 정규시즌 성적을 남겼다. 그렇지만 포스트시즌에는 전 경기 선발 출장해 호크스의 CS 제패와 일본시리즈 우승에 공헌했다.

시즌 후 소프트뱅크와의 계약을 4+3년 계약으로 수정했다. 2020년부터 실행되며, 계약 첫 해 연봉은 기존과 같은 5억 7000만엔+옵션. 야나기타는 최장 7년의 계약이 끝나고 나서 은퇴할 것 또한 밝혔다. 사실상 호크스 종신선언. #

3.10. 2020 시즌

시즌 초반부터 .383 / .507 / .748 의 깡패급 스탯을 찍으며 대부분 타격지표 파리그 1위를 차지, 문자 그대로 다 때려부수는 중이다. 7월 28일 홈경기 세이부전에서 이마이 타츠야를 상대로 우전안타를 치며 통산 1000안타를 달성했다. 그리고 7월 한 달간 32득점을 기록하며 NPB 월간 최다 득점 타이기록을 기록하기도 했다. 본인의 타격과 함께 팀 전체의 타격이 얼마나 매서웠는지 알 수 있는 기록.

시즌 성적 .342 / .449 / .623, 29홈런 86타점을 기록하여 퍼시픽리그에서 유일하게 OPS 1을 넘기며 호크스의 우승을 이끌었고, 퍼시픽리그 MVP를 수상하며 본인의 두번째 MVP 시즌을 만들었다. 안타왕을 차지했고 콘도 겐스케를 2리 차이로 제쳤으나 요시다 마사타카에게 8리차로 밀리며 타율 2위로 마무리. 안타왕 외에도 장타율 1위와 OPS 1위를 차지했다. 요미우리와의 2020년 일본시리즈에서는 4차전 결승 투런 홈런을 포함해 타율 0.429 1홈런 3타점을 기록하며 우수선수상을 수상하였다.

시즌 종료 후, 다시 연봉계약 갱신 협상을 진행해 연봉이 5억 7천만엔에서 6억 1천만엔으로 인상되며 마쓰이 히데키와 일본인 야수 최고 연봉 타이 기록을 세웠다.

3.11. 2021 시즌

시즌 초반에는 3번으로 나왔으나 유리스벨 그라시알이 부상으로 빠지며 주로 4번으로 나왔다. 그리고 6월 12일 야쿠르트전에서 사상 110번째가 되는 통산 200홈런을 달성했다. 9월에는 타율 0.358 4홈런 14타점의 성적으로 8번째 월간 MVP를 수상하기도 했다.

2020 도쿄 올림픽에서도 차출되었고 중견수로 활약했으나 대한민국전에서 잘칠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4타수 1안타로 그리 좋지않는 성적을 기록했다. 그러나 일본 대표팀의 5경기에 전부 출장해 일본의 금메달에 기여했다.

시즌 최종성적 타율 0.300(리그 4위), 28홈런(리그 3위), 80타점(리그 4위)의 성적으로 6번째 베스트나인과 골든글러브를 수상했으나 팀은 아주 오랜만에 가을야구에 실패하면서 평소보다 더 일찍 히로시마로 가게 되었다.

3.12. 2022 시즌

그리 좋지 못하다. 전반기 종료 시점에서 OPS 7할대라는 야나기타답지 않은 성적을 내는 중.

5월 3일 오릭스 버팔로즈와의 경기에서 NPB 최고의 투수인 야마모토 요시노부를 상대로 만루홈런을 때려내면서[21] 야마모토에게 시즌 최악의 피칭을 선사하였다. 5월 31일 요미우리전에서는 1경기 5삼진을 당하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는데 이는 사상 20번째이며 5타석 모두 헛스윙 삼진인 경우는 2011년 9월 5일 다테야마 쇼헤이(투수) 이후 사상 4번째, 야수로서는 2006년 사토자키 토모야 이후 사상 2번째였다.

7월 27일에 열린 올스타전 홈런더비 결승전에서 제한시간 2분동안 3개의 홈런을 쳤는데 치바 롯데 마린즈 브랜든 레어드가 2분 동안 4개의 홈런을 치면서 아쉽게도 1개 차이로 밀리면서 준우승에 만족해야만 했다.

야나기타는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도 솔로 홈런과 1타점 2루타를 날리며 분발했으나 결국 야마구치 코키에게 쓰리런 홈런을 맞으며 리그 우승을 눈앞에서 놓쳐야 했다. 이후 세이부와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에서는 1차전 쓰리런 홈런, 2차전 만루홈런을 날리며 그 분노를 어느 정도 풀어냈지만 오릭스와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에서는 침묵하며 소프트뱅크 왕조의 완전한 종말을 보게 되었다.

시즌 종료후 성적은 ops 8할대에 2할 7푼의 타율, 24홈런을 기록하며 준수한 타격을 보여주었으나, 이 성적에 war가 1점대다. 수비와 주루가 얼마나 맛이 갔는지 알 수 있는 모습. 보통 선수들이 늙기 시작하면 주루와 수비부터 무너지기 시작하는데, 야나기타도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어 23시즌이 우려되는 모습이다.

3.13. 2023 시즌

몸 상태가 좋지 못해서 몸도 마음도 100%가 아니란 이유로 WBC 대표팀 제의를 정중하게 거절했다.

중견수 자리는 내주고 우익수로 주로 출장. 전년도의 부진이 무색하게 다시 야나기타 다운 타격 성적을 내고 있다. 하지만 역시 나이가 나이인지라 정규시즌에 올인하며 시즌을 준비했음에도 체력적인 문제로 인해 시즌 초중반 무렵 페이스가 떨어져 고전을 면치 못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약화된 팀 타선을 콘도 켄스케와 함께 이끌어 가며 팀을 시즌 내내 지탱하였고 2014년 이후 10년 만에 전 경기에 출전해 시즌 최종 성적 타율 0.299(리그 3위) 출루율 0.378(리그 3위) 장타율 0.484(리그 3위) 22홈런(리그 5위) 85타점(리그 2위) WAR 4.2 wrc+ 167로 투고타저 경향이 심한 퍼시픽리그에서 상당히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다. 또한 167안타로 안타왕을 수상했으며 타율과 타점 등 대부분의 타격 분야에서 3위 안에 랭크되는 매우 좋은 시즌을 보냈다. 시즌 종료 후 당연하게도 4년 연속이자 8번째인 외야수 베스트나인을 수상하였다.

3.14. 2024 시즌

시즌 초반부터 매우 좋은 성적을 기록하며 호크스의 시즌 초반 순항에 앞장서고 있다.

4월 29일 세이부전에서는 4-2로 지고 있던 9회말 2아웃 1,2루에서 세이부의 마무리 알베르트 아브레우를 상대로 끝내기 쓰리런 홈런을 날리며 팀의 연승 행진을 이끌었다. 홈런 등 장타보다 출루에 집중하면서도 3,4월 성적 타율 0.323 3홈런 22타점을 기록하며 안타, 출루율 등의 기록에서 리그 1위를 기록하며 오랜만에 월간 MVP를 수상했다.

그렇게 5월에도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었으나 5월 31일 히로시마전에서 2루 땅볼을 치고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한 뒤 오른쪽 다리를 다쳐 교체되었고 다음날 병원 진단에서 우측 햄스트링 손상으로 전치 4개월 진단을 받아 사실상 시즌 아웃되어버렸다. 이렇게 또다시 1년의 커리어가 날아가버리게 되었다. 소프트뱅크 타선에 있어서도 큰 타격이지만 워낙 팀 전력이 강해서 그럼에도 1위를 질주하고 있는 중이다.

9월, 실전 복귀를 위한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20일 2군 경기 출전으로 복귀가 확정됐다.

9월 30일 오릭스 버팔로즈와 홈경기에 2번 지명타자로 선발 복귀를 했다. 1회말 1사 1루에서 야마시타 슌페이타 상대로 안타를 기록했다.
복귀전 3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4. 연도별 성적

파일:NPB 로고.svg 야나기타 유키의 역대 NPB 기록
<rowcolor=#ffffff>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WAR
2011 소프트뱅크 6 5 0 0 0 0 1 0 0 0 3 .000 .000 .000 .000 -0.2
2012 68 212 48 10 1 5 17 18 6 10 56 .246 .300 .385 .685 1.2
2013 104 337 88 19 2 11 48 41 10 32 96 .295 .377 .483 .860 3.6
2014 144 615 166 18 4 15 91 70 33 72 131 .317 .413 .452 .865 5.4
2015 138 605 182 31 1 34 110 99 32 88 101 .363 .469 .631 1.101 10.2
2016 120 536 131 31 4 18 82 73 23 100 97 .306 .446 .523 .969 7.6
2017 130 551 139 30 1 31 95 99 14 89 123 .310 .426 .589 1.016 6.6
2018 130 550 167 29 5 36 95 102 21 62 105 .352 .431 .661 1.092 9
2019 38 157 37 6 1 7 17 23 4 28 28 .289 .420 .516 .936 1.7
2020 119 515 146 23 5 29 90 86 7 84 103 .342 .449 .623 1.071 8.7
2021 141 593 155 36 2 28 95 80 6 69 122 .300 .388 .541 .929 6.7
2022 119 491 120 18 1 24 63 79 2 43 106 .275 .344 .485 .829 1.8
2023 143 625 163 29 3 22 57 85 1 64 97 .299 .378 .484 .862 4.2
2024 52 225 53 7 1 4 31 35 3 35 36 .286 .404 .400 .804 2.3
NPB 통산
(14시즌)
1450 6017 1595 287 31 264 892 890 162 776 1204 .312 .409 .535 .944 68.8
파일:NPB 로고.svg 야나기타 유키의 역대 NPB 포스트시즌 기록
<rowcolor=#ffffff> 연도 소속팀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결과
2012 소프트뱅크 2 2 1 0 0 0 0 0 0 0 0 .500 .500 .500 1.000 CS2 탈락
2014 11 49 15 3 0 1 8 4 1 3 13 .333 .368 .467 .854 JS 우승
2015 8 36 5 1 0 1 4 4 1 5 4 .161 .278 .290 .568 JS 우승
2016 7 30 4 0 0 0 1 2 1 2 9 .143 .200 .143 .343 CS2 탈락
2017 7 32 10 0 0 0 7 5 2 2 6 .345 .406 .345 .751 JS 우승
2018 14 64 15 2 0 3 12 13 0 13 12 .300 .453 .520 .973 JS 우승
2019 11 51 13 2 0 2 10 5 0 11 10 .325 .471 .525 .996 JS 우승
2020 6 24 9 1 0 2 7 4 0 2 4 .429 .500 .762 1.262 JS 우승
2022 6 25 6 1 0 2 4 8 0 5 7 .300 .440 .650 1.090 CS2 탈락
2023 3 14 4 2 0 1 2 4 0 0 2 .286 .286 .643 .929 CS1 탈락
NPB 통산
(10시즌)
75 328 82 12 0 12 55 49 5 43 67 .293 .394 .464 .859 JS 6승
3CS2
1CS1



[1] 1위는 야마시타 아야츠구(山下斐紹)라는 고졸 거포형 포수였다. 주로 1군과 2군을 오가다가 결국 육성선수로 입단한 동기 카이 타쿠야에게 밀려서 2017 시즌 종료 후 라쿠텐으로 트레이드되었다. 이후 라쿠텐에서도 방출당했고 주니치에 입단하여 백업, 대타로 활동하다 2022 시즌 종료 후 은퇴하였다. [2] 누가 제일 타구 비거리가 긴가?라는 뜻. [3] 오 회장이 야나기타 입단 이후에 그의 풀스윙을 코치들이 건드리지 못하도록 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입단 초기 컨택이 제대로 되지 않았음에도 폼을 교정하기보다는 야나기타 본인의 폼을 유지하도록 지시하였고, 결과적으로 일본 최고의 강타자로 대폭발. 오 사다하루 회장의 혜안이 빛난 부분이다. [4] 엄밀하게 말하면 다른 구단, 특히 히로시마가 야나기타의 존재를 몰랐던 것은 아니라, 굳이 높은 순위에서 지명을 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차례가 올 것이라고 안이하게 판단한 탓이 컸다. 설마 호크스 같은 풍부한 자금력을 소유한 팀이 중앙 무대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타자를 2순위라는 높은 순위로 지명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듯 하다. [5] 그러고 2022년 야나기타가 아닌 아키야마 쇼고가 2022년 FA로 히로시마로 갔다. [6] 여담으로 이 해의 중견수 최대어는 야나기타는 당연히 아니었고, 원래 지명하기로 했던 아키야마 쇼고도 아니었다. 이 해의 중견수 최대어는 바로 이시미네 쇼타(…). 실제로 프로 데뷔 첫 해에는 야나기타, 아키야마 모두 1군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지만 이시미네는 데뷔하자마자 바로 주전으로 자리잡고 2할대 중후반 타율에 30도루로 나름 1번타자감 성적을 내줬으니. 다만 이시미네는 똑딱이라 최대어긴 했는데 거르는 구단도 많았고, 이시미네를 뽑은 롯데도 사이토 유키 경합에서 떨어지고 나서 지명한 거다. 결국 이시미네는 2년차 때 소포모어 징크스를 겪었고 수비면에서도 입스가 오면서 공수주의 밸런스가 완전히 무너져버려 첫 해를 제외하면 대주자로 추락해버렸다. [7] 이 3명은 바로 센가 코다이, 카이 타쿠야, 마키하라 타이세이. [8] 이날 프로 첫 득점 또한 달성했다. 참고로 이 경기는 소프트뱅크의 역전승으로 끝났으며 이 경기 승리 투수는 김무영. 김무영 역시 경기 중간에 투입되어 1이닝 3K 무실점으로 이닝을 마치고 내려가 프로 첫 승을 달성했다. [9] 6월 1일 히로시마전에서는 마에다 겐타를 강판시키는 쓰리런 홈런을 날리기도 했다. [10] 3할 30홈런 30도루를 한 시즌에 달성하는 것을 말한다. [11] 전광판에 구멍이 선명하게 남았는데, 이후 공에 맞은 패널은 후쿠오카돔에 전시되기도 했다. [12] 정작 그 기대와 달리 야마다와 야나기타 둘 다 시리즈 내내 중심타선에서 삽질했다. 그나마 야마다는 3차전에서 3연타석 홈런으로 어찌저찌 한 경기 캐리해서 감투상(일본시리즈 패배팀 선수들 중 가장 잘한 선수에게 주는 상)이라도 받았다. [13] 야나기타의 대체 선수로는 팀 동료인 유격수 이마미야 켄타가 선발되었다. [14] 이전 파리그 기록은 1951년 니시테츠 라이온즈의 타베 테루오라는 선수가 달성한 15경기 연속 볼넷 출루이다. 일본프로야구 전체 기록은 1970년 오 사다하루가 달성한 18경기 연속 볼넷 출루. [15] 해당 방송에서의 데이터에 따르면, 의외로 2016년까지 야나기타의 FB/GB 비율은 꾸준히 NPB 평균을 밑돌았다. [16] 가와사키가 토론토 블루제이스 시카고 컵스 시절 본 팀메이트들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빠를 것. [17] 네 번째 타석에서 또 단타에 그치면서 달성하지 못할 뻔 했으나 마지막 타석 3루타를 치면서 달성했다. 퍼시픽 리그에서는 2007년 훌리오 줄레타 이후 약 11년만. [18] 여담으로 다음 시즌 커비 예이츠는 41세이브 ERA 1.19를 기록하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마무리투수가 된다. [19] 종전 최고 대우는 5억엔으로 야나기타를 비롯해 데니스 사파테, 조지마 겐지, 마쓰나카 노부히코 등이 받았다. [20] 부상 당시 성적은 타율 .355 4홈런 14타점 [21] 야나기타는 지난해 야마모토에게 20타수 1안타로 틀어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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