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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7 01:26:13

아베 신조 피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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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5f5f5,#2d2f34><colcolor=#D7003A,#D7003A> 생애 및 활동 생애 · 평가
2016년 · 2017년 · 2018년 · 2019년 · 2020년 ( 총리 전격 사의 표명) · 사망
가족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 · 종조부 사토 에이사쿠 · 조부 아베 간 · 아버지 아베 신타로 · 아내 아베 아키에 · 형 아베 히로노부 · 남동생 기시 노부오 · 친조카 기시 노부치요
역대 선거 제40회 중의원 · 제41회 중의원 · 제42회 중의원 · 제43회 중의원 · 제44회 중의원 · 제45회 중의원 · 제46회 중의원 · 제47회 중의원 · 제48회 중의원 · 제49회 중의원
역대 내각 아베 신조 내각 ( 제1차 내각 () · 제2차 내각 () · 제3차 내각 ( 1개, 2개, 3개) · 제4차 내각 ( 1개, 2개))
비판 및 논란 비판 및 논란
아베 신조 한국 비하 발언 논란 · 모리토모 학교 비리 사건 · 2019년 벚꽃을 보는 모임 논란 · 아베노마스크
경제 정책 아베노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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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피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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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피해자 아베 신조
피의자 야마가미 데쓰야
관련 문서 영향 및 전망 · 반응 · 반응/아시아
관련 단체 자유민주당(일본) ·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일본 정계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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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c002d><colcolor=#fff> 아베 신조 피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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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sassination of Shinzo Abe
파일:아베 신조 피격 상황.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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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피격 당시 사건 분석도.jpg
▲ 피살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분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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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 일시 2022년 7월 8일 오전 11시 32분경[JST]
혐의 살인[3], 테러
발생 위치
나라현 나라시 야마토사이다이지역 인근[4]
피의자 야마가미 데쓰야
범행 동기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속칭 통일교)에 대한 원한
피해자 아베 신조 (일본국 제90·96-98대 내각총리대신)

1. 개요2. 사건 전개
2.1. 피격 전 상황2.2. 피격
2.2.1. 피탄 및 부상 정보
2.3. 이송 및 치료2.4. 사망
3. 사건 이후4. 경호 문제5. 피의자
5.1. 범행 동기5.2. 사용 총기
5.2.1. 자위대가 끼친 영향
6. 영향 및 전망7. 음모론8. 반응9. 유언비어10. 기타11. 유사 사건

[clearfix]

1. 개요

사건 발생 10분 후 긴급 속보로 송출된 NHK 종합 텔레비전의 당시 보도
2022년 7월 8일 11시 32분경에, 제26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를 이틀 앞두고 후보 지원 유세를 하던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야마가미 데쓰야에게 급조 총기로 암살당한 사건이다.

2. 사건 전개

파일:아베 신조 피살 사건 경과.jpg
아베 신조 피살 사건 피격서

2.1. 피격 전 상황

본래 아베 신조는 이날 나가노현 선거구 자유민주당 후보 마츠야마 산시로(松山三四六)의 가두연설에 참여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7월 6일 모 전자 주간지에 마츠야마 후보의 여자, 금전 문제가 폭로되자[5] 그는 7일 저녁 나가노 쪽 후보 지지 일정을 취소하고 급하게 간사이 나라현, 교토부의 지원 유세 일정을 잡았다. 특히 나라시의 유세는 나라현 참의원 의원 후보이자 자파벌 세이와 정책연구회 소속의 사토 게이 의원이 지원을 요청했다고 한다.
파일:tetsuya-yamagami2.png
인파 속의 야마가미
사제 총기를 제조하여 사전에 아베 신조 암살을 치밀하게 계획하던 총격범 야마가미 데쓰야는 유세 전부터 인파 속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사실 그는 이미 7일에 오카야마현에서 열린 아베가 참석한 행사까지 갔지만 행사장에는 들어가지 못해 저격에 실패하고 돌아 온 상태라고 한다. 오카야마에서 돌아가는 도중 전 총리가 나라현에 오는 것을 알고 다시 시도하기로 했다고 한다.

한편, 야마가미는 암살 하루 전 나라현 나라시의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나라교회 건물에 사제 총기를 시험 발사해 보았다고 한다. 직접 제작한 총에는 6개의 탄환이 들어 있다고 했는데 총탄 흔적도 정확히 6개로 일치했다.[6] 야마가미는 경찰 조사에서 건물을 향해 총을 쐈는데 큰 소리에 당황한 나머지 도망쳤다고 진술했다. #

2.2. 피격

파일:abe_shot_moment0.jpg
유세 단상에 오르는 아베와 그 뒤로 접근하는 야마가미[7]
첫 번째 총격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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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마가미(사진 좌측)가 아베(사진 우측)에게 총을 발사하고 있다. 출처 }}}}}}}}}
피격당하는 아베 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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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Former Japanese Prime Minister Shinzo Abe assassinated.gif
▲ 피격당해 쓰러지는 아베 신조 출처[8] }}}}}}}}}
피격 직후의 아베 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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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격 직후 노상에 쓰러져 응급조치를 받는 아베 신조 }}}}}}}}}
파일:yamagamitetsuya.png
총격 직후 체포 직전의 야마가미 데쓰야
파일:abe_shot_moment2.png
파일:abe_shot_moment3.png
쓰러진 아베와 붙잡힌 야마가미 데쓰야[9]
파일:EVYORMHDYVFBNOHOI6ZDW33RNQ.gif
체포되어 연행되는 야마가미 데쓰야
はできない理由を考えたことは…―
는 불가능한 이유를 생각한 적이...―
아베 신조 마지막 대외 발언.[10]
2022년 7월 8일 11시 32분경, 나라현 나라시 야마토사이다이지역 앞 교차로 도로. 제26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후보 사토 게이를 지원 유세하는 아베 신조의 연설이 시작된 직후, 그가 바라보던 방향 뒤편에서 총성과 함께 흰 연기가 퍼졌고 그는 굉음에 놀랐는지 왼 주먹을 들고 있던 자세 그대로 몇 초간 경직되었다. 첫 번째 사격은 빗나갔지만, 어수선한 분위기에 그가 소리가 났던 뒤쪽으로 고개를 돌리던 찰나 이어진 두 번째 사격에 결국 피격당했다. 그는 쓰러지듯 단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었고, 경호원들에게 눕혀져 응급조치를 받았다. 그 후 아베 신조는 헬기를 통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두 번째 발포 직후 경호원[11]과 경찰들이 즉각 총격범 야마가미 데쓰야를 현장에서 검거하여 연행했다. 총격범은 현장에서 도주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나라현 경찰본부가 살인미수 혐의를 적용했고 경찰서에 구금한 후 범행 동기 등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2.2.1. 피탄 및 부상 정보

아베 전 총리의 치료를 맡은 동대학 부속병원의 후쿠시마 히데타다 교수에 의하면, 아베 전 총리의 사인은 심장과 흉부의 대혈관손상에 의한 실혈사라고 한다. 전경부(前頸部)에 2개의 총상이 있으며, 그 상처의 깊이는 심장에 도달해 심실에 구멍이 뚫린 상태였다고 한다. 또한, 후쿠시마 교수는 '왼쪽 어깨에 사출구로 보이는 것이 있어, 그 곳으로부터 한 발의 총탄이 체외로 빠져나간 것이 아닌가' 하고 말했다. 한편, 또 한 발의 총탄에 대해서는 '수술 중 체내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베 전 총리 총격, 목에 2개의 총상" 주간아사히(週刊朝日) 2022-07-08 21:51 보도 #
총탄은 2발 피격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총상은 '흉부와 경부에 각각 1개'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후쿠시마 교수의 소견에서 '경부에만 2개'로 정정되었으며, 흉부는 '직접 피격되지 않았지만 관통상에 의한 피하출혈이 심한 상황'이라고 알려졌다. 그러나 사후 부검에서는 '치명상을 입힌 총탄이 경부가 아닌 상완부를 통해 체내로 유입된 것'으로 재확인되었다.
나라현 경찰본부는 9일, 아베 씨의 사법해부(부검)의 결과를 발표했다. 좌상완부에서 체내로 들어간 총탄이 좌우의 쇄골하에 있는 동맥을 손상시킨 것이 치명상이 되었다. 사인은 실혈사였다. 사건 당시의 총성은 2회 확인되고 있다. 현장에서 촬영된 복수의 영상에 의하면, 아베 씨는 1발 째의 총성 이후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2발 째의 총성에 쓰러졌다. 이 때, 좌상완부에 총탄이 명중한 것으로 보인다. 현경에 의하면, 아베 씨의 목에도 2개의 상처가 있으나 1개는 원인을 특정하지 못했고 다른 1개는 총탄에 의한 상처였다. 현경은 2발 째의 발사 때 아베 씨가 좌상완부와 동시에 목도 피격당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1발 째 총성에 돌아본 아베 씨, 좌상완부로부터의 총탄이 치명상에… 부검결과를 발표", 요미우리신문 2022-07-09 19:48 보도 #

2.3. 이송 및 치료

파일:아베긴급후송.png
파일:아베후송.jpg 파일:병원에도착한아베신조.jpg
헬기를 통해 나라현립 의과대학 병원으로 긴급 이송 중인 아베 신조
피격 직후인 11시 33분에 소방당국에 총격 신고가 접수되고, 11시 36분에 닥터-헬리 에어 앰뷸런스를 요청하였다. 당시 무전 발언. 구급대는 11시 37분 사건 현장에 도착하였다. 야마가미 데쓰야가 11시 41분에 체포되는 한편, 11시 54분경 아베 전 총리가 구급차로 이송됐다. 피격 직후 그는 의식이 있는 상태였으나, 이송 중에 구급차에서 심폐정지 및 의식불명 상태로 악화되었다고 알려졌다. 그는 AED와 심장 마사지를 받으며[13] 에어 앰뷸런스를 타고 현장에서 7분 만인 12시 20분, 나라현립의과대학 부속병원으로 긴급 이송되었다. 이때가 이미 총격 이후 50분이 경과한 시점이었다. 응급실에서는 나라현립의과대학 후쿠시마 히데타다(福島英賢) 응급의학 교수의 지휘 하에 치료가 시작되었다. #, #, # 그러나 병원 이송 직후에 이미 바이탈 사인(활력 징후)이 없었다고 한다.[14] # 당시 진료했던 의사는 아베의 안색이 하얗고 의식이 전혀 없는 모습이었다고 밝혔다.[15] #

일본에선 의사가 사망 판정을 내리기 전에 언론이 보통 심폐정지라는 표현을 쓰는 경우가 많다. 이에 일본의 한 지역 언론은 '아베가 사실상 사망했다고 보인다'는 기사를 냈다. # 물론 공식적인 사망의 진단과 선고는 의사가 하는 것이며, 이는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아무리 명백히 사망한 게 확실하더라도 의사가 사망 진단을 내리고 나서야 법적으로 사망한 것으로 간주하는 이유다.[16]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이 "아베 신조의 구체적인 상태는 알 수 없다"며 계속해서 "확인 중"이라고만 답하였고, 아베의 상태가 확인되는 대로 빠르게 브리핑할 것이라고 하였다.
아베 신조의 부인인 아베 아키에가 12시 25분경 도쿄 시부야구에 있는 자택에서 출발하여 신칸센을 타고 나라현으로 향했으며, 15시 17분 경 교토역에 도착하였다. 이후 특급편으로 환승하여 16시 30분경 병원 인근 킨테츠 야마토야기역에 도착했다. # 16시 57분경 병원에 도착했다. # 2022년 기준으로 94세인 아베의 모친 아베 요코[17]는 소식을 접하고 정신 착란 증세를 보였다고 전해졌다.[18] # 남편이자 아베의 아버지인 아베 신타로 또한 67세의 나이로 사망했던 바 있다.

한편 일본 언론들은 속보로 "아베 전 총리는 매우 위독한 상태며, 중환자실에서 집중 치료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 아베의 친동생인 기시 노부오 방위상은 "병원에서 열심히 치료를 하고 있다. 수혈을 포함한 구명 치료에 전력을 다하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 경찰 관계자는 "수혈이 계속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며 그 이상은 자세히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

2.4. 사망

20명의 의료진이 400mL짜리 B형 혈액팩 100개, 즉 10명 분[19]에 가까운 피를 수혈하고 응급수술을 시행했지만, 결국 17시 03분에 심장 손상 및 과다출혈로 인한 공식 사망 판정을 내렸다. #1, #2, #3, #4 아베 아키에 여사가 도착하고 나서 거의 직후에 나온 발표인데, 정황상 아베는 이미 사망했고 이후 도착한 보호자인 아키에 여사의 입회 하에 사망선고를 내린 것이라고 추측된다.
파일:아베 사망 보도 신문 배포 .jpg
'요미우리 신문'의 아베 사망 호외 배포
자민당 43분 뒤인 17시 46분경, 아베 신조가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사망했음을 공식 발표했다. #

수술을 담당한 나라현립의과대학 부속병원의 의료진은 아베 신조가 병원에 후송되었을 당시 이미 심폐정지 상태였으며, "목에 약 5cm 떨어져 2곳의 총상이 있었고 상흔은 심장에까지 이르렀다"고 밝혔다.[20] # 이에 따라 지혈 조치 및 무려 20,000 단위의 대량 수혈을 통해 응급 수술을 진행했으나 어떠한 차도도 없었으며, 부인 아베 아키에 여사가 16시 57분 병원에 도착한 직후 사망선고를 받았다. 보호자인 부인 입회 하에 법적 사망 선고를 내렸을 뿐, 의학적으론 그 전에 이미 사망 상태였을 가능성이 크다.

아베의 시신은 부검 후 병원 내에 임시 안치되었다가 다음날인 7월 9일 6시경에 영구차에 실려 도쿄 시부야 자택으로 운구되었다. 공식 장례식은 사흘 뒤인 7월 12일 도쿄도 미나토구 시바코엔 조죠지(增上寺)[21]에서 거행되었다.
파일:아베 자택 운구차.jpg
아베 신조의 시신을 실은 운구차. 링컨 MKT 벤츠 E클래스가 사용되었다.[22]
장례 방식은 가족장으로 진행하며, 구체적인 장례 논의는 7월 10일 참의원 선거 개표 이후에 이뤄졌다. # 본래는 국장으로 진행한다는 논의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 경우 선거 일정을 연기해야 하는 탓에 무산되었고, 먼저 지인과 가족만 참석하는 가족장으로 진행한 후 추후 국장으로 치르기로 결정했다.[23] # 일본에서는 비용과 국장 관련 법이 없다 보니 신중론도 있었으나 기시다 수상의 강한 뜻으로 성사되었다.

나라현의 사건 장소와 더불어 생전 자신의 지역구였던 야마구치 4구에 있는 사무소에 지지자들과 추모객들이 몰렸다. #

장례는 일본에서 흔하게 이루어지는 화장으로 치러졌다. # 장지는 후지산 인근에 위치한 '후지 레이엔'(冨士霊園) 공동묘지로,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와 선친 아베 신타로 전 외무대신의 묘지도 이곳에 있다.

8월 5일에 중, 참의원 본회의에서 조사가 낭독되었다. # 아시아 순방 중이었던 낸시 펠로시도 참석했다.

국장은 9월 27일에 도쿄 무도관에서 가진다. # 비용은 2억 5,000만엔으로 결정되었다. # 여기에 경비비에 8억엔과 외국 인사 접대비에 6억엔이 추가되었다. # 그러나 반대 여론을 의식한 듯, 관청에 조기 게양과 묵념을 요구할지에 관한 결정을 보류했다.

국장 연출은 벚꽃을 보는 모임을 연출했던 회사가 맡는다는 것에서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

최종적으로는 경비로 12억 4천만엔(약 120억원)이 투입됐다. #

1주기 추도 행사가 도쿄 조죠지에서 열렸다. 이런 와중에도 수상한 물건으로 인해 체포된 사건이 발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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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건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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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경호 문제

이 사건 이후 경호에 대한 수많은 비판이 쏟아졌다. 일본 측에서도 경호에 큰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참고

초탄을 허용한 것부터 경호 실패거니와 상식적으로 초탄을 맞았으면 모를까 초탄이 빗나갔는데 차탄에 맞아 죽었다는 것부터가 명백한 경호 실패를 증명한다. 경호 매뉴얼에 입각해 더 엄격하게 접근하자면, 애초에 초탄을 발사할 수 있는 거리까지 접근 허용한 것이 일차적 문제이며, 초탄의 발사음이 들린 뒤엔 가능한 한 신속하게 대상을 보호하거나 용의자를 제압했어야 했음에도[24] 특별한 대처를 하지 못한 것이 이차적 문제이다. 이러한 연달은 경호 실패로 인해 1~2초의 간격을 두고 아베는 야마가미의 차탄을 맞으며 피살당한 것이다.

전 총리대신이자 현 정계에서 매우 입지가 돈독한 중요 인물의 연설임에도 후방의 거동 수상자를 수색은커녕 일련의 감시나 제지조차 하지 않은 점이 가장 큰 비판 요소이다. 경호원들의 스케줄, 그리고 아베 신조와 같은 고위 정치인들의 스케줄상 피로를 느끼거나 몇몇 경호에선 태도를 소홀히 하는 경우어디까지나 인간적으로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업무적으로는 최고최대의 경계를 취해야 할 경호원의 본분을 망각하는 근무태만에 해당하는 사항이므로 비판을 피할 수는 없다. 만약 후방이 아니라 전면에서 총격을 했다면 정확하게 조준하기도 쉽지 않고, 전면부에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초탄 이후에 추가적인 총탄을 쏘기 전에 빠르게 제압되었을 수도 있으며, 경호 대상이 신속하게 피신했을 수도 있다.[25] 하지만 암살(暗殺), 즉 대상이 모르게 접근해 기습적으로 공격하는 수법의 특성상 후방에 대한 주시 태만은 명백한 과실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일본 이외에 VIP의 후방 경계를 게을리한 암살 사건의 대표적인 예시로는 주 터키 러시아대사 암살 사건이 있다. 반대급의 사례로는 2002년 발생한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의 암살미수 사건이 있는데, 이 때도 범인이 쏜 초탄이 불발됐지만 직후 경호원들이 신속하게 범인을 제압하면서 시라크는 암살을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불과 며칠 후 아베 총리의 부인인 아베 아키에 여사가 탄 차량을 경호팀이 들이받으면서 또 한 번 경호 문제가 구설수에 올랐다. # # 다만 특정 인물의 위협 시도가 아닌 경호팀의 실수, 체계에 대한 문란이 낳은 사건이었기 때문에 큰 논란으로 번지는 일은 막을 수 있었다.

한국 역시 전직 대통령은 국가에서 정한 법령에 따라 경호인력이 파견되며, 전두환, 노태우, 박근혜 등과 같이 탄핵이나 형사처분 등으로 다른 예우가 다 박탈되더라도 경비, 경호만큼은 유지된다. 이러한 조치는 국가 최중요 기밀을 다룬 국가원수가 최악의 경우 적국에 납치될 가능성이 있기에 국익을 위해 응당 필요한 조치다. 동시에 은퇴 후 자연인의 삶을 사는 그들에게 정치 테러가 가해질 가능성 역시 적지 않고, 실제로 박근혜가 자택 앞에서 소주병이 날아오는 등의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26]

설령 지지가 높은 인물이라도 모두를 만족시키는 정치란 있을 수 없는 법이며, 전직 국가원수/정부수반(일본 등 입헌군주제 국가)은 좋든 나쁘든 상징성이란 측면에서 누군가에겐 결집의 구심점이 되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겐 원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상황에 따라 그 원망이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기에, 전직 국가원수/내각수반에겐 행보와 무관하게 서거 시까지 경호 인력을 파견해 지켜주는 것이다. 즉 일본 경호원은 본인이 경호하는 대상이 언제 어디서든 정치 테러를 당할 가능성이 있는 전직 정부수반이란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 책임을 받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것이 일본 국내에서도 다양한 논란을 낳으며 화두에 올랐던 인물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5. 피의자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야마가미 데쓰야 문서
번 문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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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파일:아베 피살범 야마가미 테츠야.jpg
파일:야마가미 테츠야.jpg
파일:야마가미 테츠야 운전 면허증.jpg
▲ 사건 직후 제압되는 피의자(좌),[27] 피의자의 운전 면허증을 확인하는 경찰관(우)

5.1. 범행 동기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야마가미 데쓰야 문서
3.3번 문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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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사용 총기

파일:아베 신조 피살에 사용된 총기.jpg
파일:아베 신조 피살에 사용된 총기2.png
▲ 피의자가 사용한 사제 총기 사진
파일:아베신조 피살 총기.jpg
사제 총기 구조도
초기에는 나라현 경찰본부[28]에서의 ' 산탄총에 의한 범행'이라는 자료를 근거로 "범인이 산탄총으로 아베를 저격했다"라는 보도가 많았지만, 후에 나라 경찰 측에서 '자동식 권총'으로 발표 내용을 정정함에 따라 후속 보도에서는 권총이라고 묘사되었다. 보도에 혼선이 생긴 이유는 해당 총기가 종류를 구분하기 어려운 사제 총기였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총기의 크기와 생김새가 일반적인 총기라기보다 카메라와 유사하여 경호원들이 사전에 인지하지 못한 것이 제지에 실패한 이유로 추측된다.

이후 총기의 상세 정보가 공개되면서 명칭이 다시 바뀌었는데, 경찰이 발표한 것과 같은 ' 자동식 권총'은 아닌 것으로 밝혀졌으며, 실제로 다수의 산탄을 발사하는 산탄총에 가까운 것으로 확인되었다.

피의자 진술에 따르면 "총 1정에 3개의 관이 붙어 있고, 관 하나에 6발의 탄환이 들어 있다[29]"고 하나, 실제 총열은 2개로 확인된다. # 총신 상단의 2개 총열 외에 총신 하단에도 파이프형 구조물이 보이는데, 이는 총열이 아닌 건전지 케이스로 추정된다.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총기의 형상은 데린저 더블 배럴 샷건처럼 탄창과 급탄 시스템이 없는 단발 총기로, 일본의 엽총의 법적 분류상으로는 라이플드 그립이 달려야 엽총으로 분류하는데, 중절식 산탄총류처럼 총열이 여러 개 달렸으며 파이프의 직경이 9mm 가량인 일반 권총보다 더 커 보여[30] 오보가 잦았던 것으로 보인다. 피격 당시 범인은 총을 2번 쐈는데, 총기 구조상 명중 실패 시 재장전하여 차탄을 발사하기 어렵기 때문에 총열을 2개로 만들어 초탄이 명중에 실패하더라도 재장전 없이 차탄을 발사해 암살 성공률을 높이려 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런 테러용 데린저형 급조 총기는 아예 재장전을 고려하지 않고 일회용으로 설계하기도 한다. 이런 범인의 용의주도함은 실제로 효과를 보아 첫 사격은 빗나갔지만 2번째 사격 중 일부 쇠구슬이 명중했다.
▲ 피의자의 자택에서 압수된 다연장 사제 총기들
해당 사제 총은 길이 40cm, 높이 20cm이며, 탄환은 볼베어링용 쇠구슬로 각 파이프 당 6개가 들어가는 구조였다고 한다. # 격발용 화약은 문구점에서 파는 작은 불꽃놀이용 폭죽을 사서 그 안의 흑색화약을 모았으며, 이를 AA 건전지로 격발하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영상을 봐도 일반적인 탄환에 비해 연기가 몹시 많이 발생하는 걸 볼 수 있는데, 이것만 봐도 무연화약을 쓰는 일반적인 현대 탄약이 아니라 폭죽에 쓰는 흑색화약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후 나라현 경찰이 야마가미의 집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다연장 사제 총을 몇 정 더 압수했는데, 그 중에는 스마트폰이 달린 9연장의 총도 발견되었다. # 다만 이러한 시제품들을 사용하지 않고 2연장 총기를 챙겨간 것은 신뢰성이나 은닉성이 떨어지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제 총기의 특성상 명중률은 낮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총열이 강선도 없는 통짜 파이프인 데다 은닉을 위해 짧게 잘라냈기 때문에 다수의 산탄이 흩어져 발사되는 산탄총임에도 불구하고 3m 거리에서의 첫 사격은 전탄 빗나갔고, 2번째 사격에서 6발의 쇠구슬 중 2발이 목과 심장이라는 급소에 맞는 바람에 사망했다. 이렇게 정확도가 낮은 것을 감안하면, 만약 경호원들이 최소한의 방해를 했더라면 치명상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범인 역시 이러한 총기의 단점을 잘 인식하고 있었는지 재장전 없이 2발까지 발사 가능하도록 이중 총열 구조로 만들었고, 성급하게 원거리에서 발사하지 않고 3m 거리까지 접근한 후 방아쇠를 당겼으며, 초탄이 빗나갔음에도 패닉샷을 쏘지 않고 침착하게 더 접근한 후 차탄을 발사한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을 통해 총기의 외형, 격발 구조, 사용된 탄과 화약 종류가 공개되었는데 총기의 작동 원리에 대한 지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복제품을 만들 수 있는 수준이다. 투박한 급조 총기이긴 하지만 오히려 단순한 구조라서 화약을 점화시키는 점화 장치만 제대로 작동하면 발사가 가능하므로 기능 고장이 발생할 확률은 낮으며, 명중률을 보장할 수 없지만 제작자인 야마가미 데쓰야 본인이 그 단점 역시 잘 알고 있어 이중 총열로 만들고 한 총열당 6발의 총알을 넣었으며 지근거리까지 접근해 사격하는 것으로 단점을 극복해 결국 제작 목적을 이루었다.

사용된 총기 및 탄환의 제작 방식 및 범행에 필요한 화약 확보 방법이 한국 오패산터널 총격 사건과 유사하다. 심지어 용접조차 하지 않고 절연 테이프를 둘둘 감아 총열을 총신에 붙인 제작 방식이 오패산터널 사건의 총기와 같다. 하지만 오패산 사건의 총기는 화승총 같이 심지에 불을 붙여서 쏘는 방식이지만 아베 사건의 총기는 전기 격발식이라는 것이고, 오패산터널 사건의 범인은 작은 총열을 여러 개 붙임으로서 연사를 하는 것에 치중했다면, 아베 살해범은 총열은 2개이지만 총열 하나에 탄환을 여러 개 넣음으로서 성공률을 높이려 하였다. 범인이 오패산 사건의 총기를 참고했다는 주장보다는 유튜브나 해외 커뮤니티를 참고했다는 주장이 더 신빙성 있다.[31]

세간에서는 범인 데쓰야의 '전직 자위대원' 경력이 화제가 된 바 있는데, 전직 군인이었기에 사격술에 능숙하고 사제 총기도 만들 수 있었다는 투의 오해가 굳어졌다. 하지만 데쓰야의 자위대 복무 경력은 3년에 불과하며, 그조차도 사건을 일으키기 17년 전에 전역했기 때문에 흔히들 '전직 군인'으로 인식하는 이미지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굳이 십수 년 전에 과거에 짧게 복무했던 자위대원 출신임을 강조한 것은 이 사건이 일본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총기 사건'이라 그런 것으로 추정된다.

한 해상자위대 장교가 인터뷰로 밝힌 바에 따르면, "해상자위대원의 실탄 사격 훈련은 연 1회 10발 정도이며, 소총의 선상 사격을 전제하기에 군 복무가 데쓰야의 사격 실력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총기 제작의 경우에도 "해자대 복무 과정에서는 총기 제작 관련 기술을 가르치지 않기에 해자대 복무로 사제총기 제작 기술을 획득할 수는 없다"고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실제로 데쓰야 본인도 "사제 총기는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 독학해서 제작한 것"이라고 밝혔으며, 어린 시절부터 취미가 도면 만들기였다고 한다. 군인은 총기를 운용하는 직업이지 만드는 직업이 아니며, 군 복무 경험자라고 해서 모두 자기 손으로 총기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한국 남성들은 대다수 스스로 총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해상자위대 입장에선 전 총리 암살에 전 해상자위대 자위관이 연루된 것이기 때문에 야마가미의 사격 실력이 어찌 되었건 자위대와의 연관성을 강하게 부정할 수밖에 없다. 야마가미에게 부여된 보직 특성상 사격 훈련을 적게 했을 가능성도 있고, 어찌되었든 총을 한 번 이상이라도 정기적으로 쏴본 적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무경험자보다는 나을 수도 있고, 급조된 사제 총기는 명중률이 매우 낮고 초근거리에서 사격을 해야 하기 때문에(+이렇다 할 조준용 스코프나 가늠쇠도 없기 때문에) 사격 실력이 큰 영향을 주지 못했을 수도 있다. 3m 이하의 초근거리의 사격은 사격 실력보다는 운과 침착함이 더 크게 작용할 것이다. 실제로 야마가미의 첫번째 사격은 근거리 였음에도 불구하고 전탄 빗나갔고, 침착하게 거리를 좁혀 시행한 2번째 사격에서도 여러 개의 탄환 중 2발의 탄환만이 명중했다. 하필이면 그것이 절묘하게 쇄골 동맥을 관통하는 바람에 의료진이 손 쓸 새도 없이 사망에 이르렀다.

현대 총기는 익숙하기만 하면 꽤 명중률이 좋다. 대한민국 국군에서는 이전에 총은 구경도 못 해 봤을 훈련소훈련병조차 사격 만발로 특급을 따내는 사람이 종종 나오고, 1년 6개월 복무하고 사회로 돌아가는 대한민국 육군 병 중에서도 특등사수를 흔히 볼 수 있다. 그래서 사실 총기를 쥐어본 적이 있다면 보통 사람보다는 좀 더 총에 익숙하긴 할 것이다. 한국 남성의 거의 모두가 군사 훈련을 최소한이라도 받는 것과는 달리 일본은 민간에선 총기를 구경하기조차 힘들어 총기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한국에 관광 와서 사격장에서 총을 쏴 보는 관광객들도 있고,[32] 총기에 대한 로망으로 자위대를 지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야마가미도 그런 경우라면 자위대에서 간단하게나마 조립과 분해를 해보며 총기의 구조와 원리를 이해하고 총을 쏴본 경험이 도움은 되긴 했을 것이다. 물론 미국에서 13세 소년이 반자동 총기를 스스로 불법 제작해서 온라인 판매하다가 적발된 사례가 있는 것처럼 도면이나 설계, 조립 등 손재주가 있고 총기에 흥미가 있다면 군대와 상관 없이 인터넷에서 정보를 검색하여 독학으로 총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므로, 어느 정도 익숙해지는 게 편했을 수는 있더라도 결국 큰 차이는 없었다고 볼 수도 있다.

5.2.1. 자위대가 끼친 영향

따지자면 자위대원 경력이 아베 저격에 도움이 된 게 아니라, 애당초 저격을 성공시킬 만한 사람이 자위대에서 복무를 했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인터넷 검색으로 얻은 사제 총기 제작 관련 지식을 이해하여 성공적으로 제작하고 시험 발사까지 해낸 공학기술적 재능, 오히려 딱히 위험해 보이지 않는 외양의 조잡함을 이용해 사제 총기를 숨기지도 않고 태연하게 들쳐매고 대상에게 접근하는 대담함, 충분히 접근하기까지 실행을 미룬 신중함, 초탄이 완전히 빗나갔는데도 경호원들의 반격 위험 속에서 신중하게 차탄을 쏴서 명중시킨 침착함, 복수가 목적임에도 복수심이라는 감정에 휘둘려 일을 그르치지 않은 평정심은 오히려 특수부대급 전문가의 영역에 가까운데, 자위대 복무만으로 이러한 능력을 습득했다고 보기에는 분명히 무리가 있다.

한편 모병제인 일본에서 봉급도 낮은 편인[33] 자위대 병에, 그것도 섬나라 특성상 바다가 주력이라서 비교적 편하고 많이 가는 육자대가 아니라 굳이 지원율이 떨어지는 해상자위대를 지원했다는 점에서 원래부터 군대와 총기 등에 어느 정도 흥미가 있는 사람, 소위 밀리터리 매니아(밀덕)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사건 이후 밝혀진 야마가미의 가정사를 고려하면 야마가미에게 밀리터리 매니아적 성향이 있어서 자위대를 선택했다기보단 집이 파산한 영향으로 기본적인 숙식과 일정 수준의 교육이 제공되고, 어머니를 비롯한 사실상 절연 관계에 가까운 친인척들과 단절될 수 있는 자위대 입대를 선택했는데 그 중에서 탈락할 확률이 현저히 낮을 해상 자위대로 지원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군인이라는 직업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상당히 힘든 편이며 특유의 상명하복 문화, 사회와 단절된다는 여러 단점이 있기에 아무리 사정이 좋지 않다고 해도 쉽사리 군 입대라는 선택지를 고르지는 않는다는 반론이 있지만 당장 일본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여러 가지 사유로 군 입대, 혹은 직업군인 복무를 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미국만 하더라도 병 입대자 상당수는 가정 환경이 안 좋은 저소득층이며, 이러한 인력의 입대로 인한 모병자원의 질적 저하가 문제가 되기도 할 정도다. 이러한 소위 '사회에서 사고 쳐서/치고 입대했다'는 표현은 한국에서도 드문 일은 아니다. 병영에서 숙식하며 사회와 기존 인연과 단절된다는 점이 통상적인 상황에서는 단점이겠으나, 경제적 사정이 정말로 월세도 내기 정도로 힘든 경우라거나, 사회와 단절되고 싶은 입장에서는 이러한 군대의 특성이 오히려 장점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오히려 성향에 따라 이러한 특성이 적성에 맞는 사례도 있다.

또한 군인이라는 직업 자체가 보직에 따라 근무 난이도가 널뛰기하는 직종이기도 하다. 특성상 근무 강도가 높은 일부 보직이 아니라면 막노동 같은 직업이 단순한 피로도 자체는 훨씬 힘든 경우가 많아 자위대원을 택했다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최전방에 배치된 소총수와 후방 행정병의 근무 난이도는 같은 직종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다르다. 특히 실전 투입이 되는 경우가 있는 미군 등의 사례와 달리 자위대는 그 특성상 훈련은 몰라도 실전을 겪을 일이 거의 전무한 군대이다. 게다가 한국에서 군대가 힘들다고 평가 받는 이유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것도 힘든 것이지만 징병이라는 환경 때문에 제약 받는 사항이 큰데, 모병제의 직업군인은 이러한 면이 상대적으로 덜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학창 시절 그는 군대나 총기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다고 한다. 사건 이후 조사에서 야마가미의 고교 동창들은 과거 야마가미가 입대했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놀랐지만 중학교 동창들은 "운동신경이 좋아 그럴 만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모병제 도입 찬반 논쟁에서 반대 근거로 드는 것이 프랑스, 영국, 일본 등 선진국 청년층의 군 지원율은 고작 2.1~2.4%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특히 일본 자위대는 2016년에 목표의 59%밖에 충원하지 못했다. 만약 모병이 쉬웠다면 모병제 찬성 근거가 됐을텐데 현실은 반대였다. 언뜻 막노동보다 편하고 교육도 제공하고 국가공무원으로서 안정적이고 복지제공 등 여러 조건만 보면 하류층들은 누구나 자위대를 택할 것 같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일본은 프리터 문화가 많이 발달하여 알바로만 먹고 사는 층도 많고, 한국에서도 막노동꾼 서울대 수석 합격자 장승수는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란 저서에서 온갖 잡다한 일을 다 했고 그 중에 공부가 가장 쉽더라는 명언을 남겼는데, 장승수 보고 가난한데 왜 군대 안 갔냐는 질문은 없을 정도로 군대란 직업 자체는 특성을 많이 타는 직업이며 군대 문화가 익숙한 한국도 이러한데, 하물며 일본에서는 더욱 그렇다.

애초 군대에서도 사회에서 직업을 못 구할 정도의 막장 전과자는 면접에서 거른다. 특히 군대란 곳은 명령과 복종,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조직이고 총기를 다루는 곳인지라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릴 수 있기 때문에 못 배운 건 괜찮아도, 사회생활 못 할 정도로 사고 친 전과자는 아무리 똑똑해도 거를 수밖에 없다. 실제 한국에서는 과거에 사고 안 쳤어도 몸에 문신이 크게 있으면 군대 물 흐릴까봐 아예 현역 거부하고 공익으로 보냈기에 이걸 악용한 병역비리가 많았다. 미군 신병훈련소에서도 마초들이 군대에 환상을 품고 왔다가 빡센 훈련에 울면서 짐싸고 중도퇴소하는 사람들도 많을 정도니 일단 그것을 통과하고 정식 계약을 맺었다는 것 자체가 군대에 어느 정도 적성이 맞음을 의미한다. 학창 시절 군대 얘기를 꺼낸 적이 없다고 하나, 주변 지인들이 아베에게 증오를 품고 복수극을 준비한다는 사실도 몰랐을 정도로 원래 내향적인 인간이고, 학교 졸업 후 무슨 일을 할까 하다가 모병광고를 보고 흥미가 생겼을 수도 있다. 실제 야후 재팬에서도 종종 자위대 모병광고가 나올 정도로 흔하게 접할 수 있다.

그래서 군대를 사고쳐서 간다는 것도 다소 걸러들어야 할 게, 애초 정말 사회에 있어선 안될 중범죄자라면 사회에서 격리되며, 국가에서 풀어줄 사람이라면 사회에서 일을 못할 이유가 전혀 없다. 어차피 개인정보 보호로 인해 일부 직종을 제외하고는 지원자가 스스로 말하지 않는 이상 전과 여부도 알기 힘들어서, 전과자들도 지금 사회생활 다 하고 있다. 심지어 한국에서는 전자발찌 찬 편의점주가 포켓몬 빵으로 유인하여 초등학생을 성추행한 사건이 보도되기도 했을 정도다. 심지어 결혼도 문제가 없는데, 실제 한국에서 우편물을 부인이 뜯어봤는데 무슨 충격적인 전과가 있었는지 아내가 이혼하자고 하여 남편이 정부에 개인정보를 보호하지 못했다며 소송한 사건도 있었을 정도이다. 한국에서도 활약했던 일본 배우 쿠사나기 츠요시가 주연으로 활약한 일본 드라마 ' 임협 헬퍼'에서 쿠사나기 츠요시는 전직 야쿠자로 나오는데, 사회로 복귀한 전직 야쿠자 아재 쿠사나기 츠요시가 택한 직업은 편돌이(...)다. 물론 편의점 강도를 상대하다 다시 사고쳐서 편돌이도 오래 못하지만, 사고치고 군대갈 정도로 군대는 만만한 곳이 아니다. 다만 한국에서도 직원들 실적이 안 좋다며 해병대 캠프에 보낼 정도로 군대가 정신 차리게 하는 곳이라는 환상은 미국에도 있을 정도니 밈으로서 그런 말은 있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괜히 자위대가 미달로 고민하는 것이 아니다.

먹고 살려고 군대에 지원하는 것은 일자리가 없는 후진국에게나 해당되며, 중소기업과 알바직종은 구인난을 겪는 선진국에서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 군대를 지원하지 않는다. 특히 군대란 곳은 '사회와 단절'이라는 큰 특성이 있으며 총기를 다루는 곳이기에 적성이 정말 중요한 곳이다. 한국의 '대체복무'는 3D업종 수준의 고된 근무에 근무기간이 2배 길었음에도 굳이 '합숙근무'를 시켰던 이유가, 출퇴근 근무를 시킨다면 단지 사회에서 근무한다는 것 하나만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군대가 아무리 편한 땡보직이고 1년 6개월 근무라고 해도, 출퇴근 하며 사회에서 근무할 수 있단 메리트 하나만으로 빡세고 고된 노동을 3년이나 택할 사람도 있을 것이기에 아예 합숙근무를 택했다. 전원책 변호사 말대로 군대는 아무리 편해도 군대이기 때문에 춥고 배고프고 고달픈 곳이기 때문이다.

자위대는 다른 공무원과 마찬가지로 월급은 적은 편이나 장기적인 안정성이 장점인 직종이므로, 당장 돈이 급한 취약계층은 노가다나 건물 외벽 유리창 닦기, 원양어선, 불법적으로는 야쿠자 한구레 등 페이가 센 직종 널려 있는데 굳이 군대를 택할 일도 없다. 혹시 오직 군대만 적성에 맞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군대에서 무사히 근무를 마친 전역자들이 단골로 하는 얘기가 '사회생활 할때 힘들면 군대를 떠올린다'라고 할 정도다. 물론 단체생활과 합숙근무를 너무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게 군대만 있는 것도 아니고 당장 페이가 적다는 단점이 있기 때문에, 원양어선 한번 타면 페이가 짭짤하니 차라리 이런걸 택하지, 군대는 쉽사리 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아니다.

일본에서 사고 치거나 가난하고 가정환경 안좋은 하류층이 없어서 자위대가 절반 가까이 미달이 난 것이 아니라면, 굳이 자위대를 택한 야마가미는 특이하긴 했다. 물론 금수저보다는 흙수저가 더 많이 지원을 하는 것도 사실이니 가정환경도 영향을 끼친 요소는 분명하지만, 모든 흙수저들이 자위대를 지원하는 것도 아니므로 '스스로 선택'하여 군대에 자원입대했다는 것은 어느 정도 밀리터리에도 흥미가 있었음을 반증한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대개 야마가미가 자위대원으로 복무했을 나이에 군복무를 하는 청년들이 많다. 한국에서도 간혹 아재들이 총기 관련 사고를 치기도 하나 굳이 군복무 경험을 언급하는 언론은 없다. 수십년 전 군복무와 연결시키기엔, 안 그런 사람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만약 야마가미 사건이 한국에서 일어났다면, 굳이 20년 전 그가 특수부대도 아닌 평범한 해군으로 복무한 이력을 집중 조명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징병제인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 자위대란 곳은 아무나 가는 곳이 아닌 모병제 집단인 데다가 '사제 총기'라는 특이한 범행 형태로 인해 자위대원 복무를 매우 부각시켰다. 다만 야마가미는 정작 자위대도 오래 하지 못했으며, 이후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무수히 많은 일을 거쳐왔으니 오히려 그간 해왔던 일들과 언론 매체, 인터넷 등이 훨씬 더 영향을 줬을 수도 있다. 본인도 인터넷에서 배웠다고 말하긴 했다.

6. 영향 및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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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음모론

일본에서는 경호원이 첫번째 총성 이후 꿈쩍도 안 했다는 점, 선거유세 일정이 불과 며칠 전에 바뀌었다는 점, 탄환이 12발이나 산탄 형식으로 발사되었는데 아베만 명중해서 사망하고 곁에 서있던 사람들은 아무도 다치지 않았던 점 등 때문에 사실 아베의 죽음이 계획된 것이 아니냐, 야마가미는 가짜 범인이고 진짜 저격수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음모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 병원과 경찰의 설명의 차이
아베의 사망을 확인한 나라현립의과대학의 후쿠시마 교수는 8일 저녁 기자회견에서 "수술하고 있을 때 탄환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확인했다. 두 발을 맞은 것 같기는 하지만 총탄은 몸 안에 없었다는 얘기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총탄 흔적(총창) 두 개는 ^목 앞뼈 뿌리 정면 ^목 앞뼈 뿌리 우측에서 발견됐고, 그중 하나는 목에서 심장 쪽으로 향해 대혈관 및 심장 심실을 크게 손상하며 과다출혈로 인한 사망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병원 측은 또 왼쪽 어깨에 상처가 하나 있는데, 이는 총탄 1발의 사출구(射出口·탄환이 몸을 뚫고 빠져나온 흔적)로 보인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병원 발표가 난 직후 두 가지 의혹이 제기됐다. 첫째, 야마가미가 총을 발사한 장면을 보면 총이 수평 내지 단상에 있는 아베를 향해 다소 위를 향하고 있는데, 어떻게 의사의 설명대로 목에 맞은 총탄이 심장까지 밑으로 탄도가 향할 수 있느냐는 점. 둘째는 관통을 했건 몸 안에 있건 총탄이 왜 발견이 되지 않았느냐는 점이다

다음날 경찰에 이상한 주장을 한다. "해부를 해 보니 목과 왼쪽 어깨에 총탄이 명중한 흔적이 있으며 왼쪽 어깨로 들어간 총탄이 좌우 쇄골하동맥을 손상시켜 과다출혈을 일으켰다"는 설명이었다. 경찰과 병원의 말이 맞지가 않는 것이다.

- 총알의 행방
아베가 맞은 총알 1발은 (관통해) 발견했으며, 나머지 1발은 관통하지 않고 몸 안에 머무는 '맹관총창(盲管銃創)'이었다고 한다"고 밝혔다. 발견한 1발의 모양은 직경 1㎝의 원형이라 설명하고 있지만 '발견되지 않은' 몸 안의 1발은 어떻게 된 것인지 경찰도 "머리가 아프다"는 설명이었다.

또 하나는 야마가미가 진술하고 있는 대로 '원통 1개당 6발 x 2개= 총 12발'이 맞는다면 나머지 총알 10발(아베에 명중한 2발 중 미발견 총알까지 합하면 11발)은 어디로 갔는가 하는 점이다.

- 용의자의 초기 진술
야마가미가 조사 초반에 진술내용이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것은 초범 범죄자가 많이 나타내는 특징이긴 하다.

대표적으로 사건이 있었던 야마토사이다이지역 근처 건물의 옥상에 저격수용 은신처(텐트)가 있었다는 주장이다. 일본의 인터넷 언론 '쉐어 뉴스 재팬'은 "당시 일 방송사들이 헬기에서 촬영한 영상을 보면 피격 직후 건물 옥상 위에 흰색 물체가 있었는데, 3시간 뒤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텐트에 '진범'인 전문 저격수가 숨어 있었다는 게 음모론의 내용이다.

8.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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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유언비어

10.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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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유사 사건



[1] 일본에서는 '아베 신조 총격 사건'이라고 칭한다. [JST] 일본 표준시 [3] 피해자인 아베 신조가 병원에서 사망하면서 살인 미수에서 살인으로 변경되었다. [4] 사이다이지사카에마치 2-1, 산와시티사이다이지빌딩 앞 [5] 결국 마츠야마 산시로 후보는 낙선의 고배를 마셨고 나가노 선거구는 입헌민주당이 승리한 단 2곳뿐인 1인 선거구가 되었다. [6] 해당 가정연합 교회 건물은 총격의 피해로 출입구 왼쪽으로 콘크리트가 떨어져 나가고 철제 문이 휘어졌다. [7] 자세히 보면 주위 사람들과 같이 박수를 치며 의심을 받지 않고 접근하고 있다. [8] 첫 번째 총성이 울리고 아베가 뒤를 돌아보며, 이어 두 번째 총성이 울리고 아베의 옷깃이 들썩이며 곧 아베가 쓰러진다. [9] 총이 떨어진 곳이 2번째 총격 위치이다. [10] 여기서 '그'는 지원 연설 대상인 사토 게이 후보이다. 정황상 뒤에 이어질 말은 '없고(なく)'로 추정되지만 이 시점에서 총성이 들려서 연설을 중지했고, 결국 두 번째 총격에 맞아 연설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피격 후 쓰러진 뒤 잠깐 동안 의식이 있을 때 주변 의료진에게 몇 마디 말을 했다고 하나 어떤 내용인지 밝혀지진 않았다. [11] 당시 시큐리티 폴리스 소속 경호원은 1명이었으며, 나머지는 나라현 경찰본부의 사복 경찰관들이었다고 밝혔다. 다만 SP는 아베 총리의 뒷편에서 스태프들과 함께 용의자와 아베 총리 사이에 위치해 있었던 탓에, 피의자가 첫 번째 총격을 가했을 때 바로 가로막을 만한 위치였음에도 반응하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피하기 어려워졌다. [12] 쇄골하동맥 경동맥은 한 번 출혈이 발생할 경우, 대략 수초안에 의식을 잃게 되며 의료진이 거의 손 쓸 수 없는 수준의 속도로 상황이 악화된다. 수술에 들어가기 전까지 지혈, 수혈을 해주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출혈 속도가 너무 빠르기 때문에, 즉각적인 응급조치와 수술에 들어가도 생존을 장담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심장과 대동맥, 중추신경계와 같은 즉사 수준의 급소들을 제외하면, 상체 부위 중에 가장 치명적인 급소라고 봐도 무방하다. [13] 산케이신문의 후속보도에 따르면 이미 이 상황에서 AED가 작동하지 않았다고 한다. AED는 환자의 상태를 자동으로 분석하고 심장 충격 여부를 결정하는데, 고장이 난 것도 아닌데 작동하지 않았다면 이미 심정지 상태라는 말이므로 이때 이미 심정지가 온 것으로 보인다. # [14] 응급구조요원들의 말에 따르면, " 심장 또는 대혈관 손상에 따른 심정지로 추정되는 상황으로, 에 혈류가 없어지는 상태가 되어, 장시간 뇌에 손상이 가해지게 되면 산다고 해도 의식을 회복하기 어려워지는 흔히 말하는 식물인간 또는 뇌사 상태가 될 수 있는 우려가 있다"고 했다. # [15] 안색이 하얗다는 것은 이미 완전히 심정지가 되어 혈액순환이 되지 않는 상황이라는 의미다. 쇄골하동맥을 끊어놨고 그 여파가 심장에까지 미쳤으니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심장과 중추신경계, 대동맥 다음의 상체 급소가 바로 경동맥과 쇄골하동맥으로, 여기에 관통상을 입을 경우 제 아무리 빠르게 조치를 취해도 젊은 사람들조차도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이 사망하는데, 고령의 나이인 아베 신조가 이를 버텼을 리가 없다. [16] 실제로 한국 역시 머리가 절단되었다던지 완전히 불에 타서 잿더미가 된 시신처럼 정황상 사망한 것이 명백한 상태라고 해도, 의사가 사망 진단을 내리기 전까지는 법적으로 살아 있는 사람으로 간주한다. 법적으로 사망 처리를 하려면 사망신고를 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의사가 해당인의 사망을 확인한 뒤 사망진단서를 작성해야 하므로 그 전까지는 살아 있는 것으로 본다. 의사가 사망선고를 내리기 전까지는 소생 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이므로, 아무리 상태가 심각하다 한들 언론이 의사의 결정 없이 성급히 사망 보도를 내어 살아 있는 사람을 멋대로 죽은 사람 취급을 하면 안 된다는 언론 윤리 문제와도 연관된다. HBO의 드라마 뉴스룸에서는 애리조나 총기난사 사건에서 피격당한 개브리엘 기퍼즈 의원에 대해 소신 있게 사망 보도를 내지 않는 양심 있는 언론사의 모습을 조명했다. # 한편 개브리엘 기퍼즈 의원은 머리에 총상을 입었으나 기적적으로 회생하여 의회에 복귀했다. 다만 한국 등 다른 국가는 불어터진 익사체라거나 완전히 백골이 되었거나 하는 등 누가 봐도 명백한 사망 상태인 경우에는 의사의 사망 선고가 없어도 사망으로 보도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일본은 의사의 공식 사망 선고 전까지는 백골 사체라도 심폐정지라고 보도하는 경향이 있다. [17] 제2차 세계 대전 A급 전범 용의자로 체포되었지만, 전쟁범죄에 관여했다는 증거가 불충분하여 석방된 전직 만주국 관료이자 제56·57대 일본 내각총리대신 기시 노부스케의 딸이다. 아베 신조는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인 것으로 유명했다. [18] 이후 아베 요코는 아들의 사망으로부터 1년도 더 지난 2024년 2월 4일 향년 95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19] 총 약 40L다. [20] 아베 신조가 쓰러진 직후 현장에서 심폐소생술 및 자동심장충격기(AED)가 사용되었는데, 대량 출혈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심장을 쥐어짜는 이러한 응급 조치는 환자의 상태를 도리어 악화시킬 수 있다는 일부 의견도 있으나, 심정지 상태에서는 무조건 심폐소생술을 실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빠른 시간 내에 뇌와 주요장기 뿐 아니라 전신에 저산소증에 의한 비가역적 손상이 일어나 소생 가능성이 전무하게 된다. 의료진은 "이것이 옳은 판단이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서는 "당시 현장 상황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한다"며 언급을 피했다. [21] 1590년부터 도쿠가와 가문의 보리사(菩提寺)로 지정된 사찰이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장례가 이곳에서 치러졌다. 에도 막부의 15명의 쇼군 중 6명이 이곳에 묻혀있다. [22] 자료 화면을 찾아보면 나라현립병원에서 자택으로의 운구는 링컨 MKT와 E클래스 차량으로 진행했고, 자택에서 장례식장이나 생전에 활동했던 곳과 화장장에 갈 때는 토요타 센추리 차량으로 시신을 운구했다. [23] 일본에서 전직 수상의 장례를 국장으로 거행한 것은 1967년 사망한 요시다 시게루가 첫 사례다. [24] 일반적으로 경호에서는 공격자의 제압보다 경호대상의 보호를 더 우선순위로 둔다. 방탄 가방을 펼치는 등 일련의 행위로 추가적인 위협을 방어하는 것이 무조건적이며, 제압은 그 차순위에 책정된다. 어쨌든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 했다. [25] 비슷하게 문세광에 의한 박정희 저격 미수 사건에서 박정희는 몸을 재빠르게 피했다. [26] 당시 한국 경호원들은 비록 소주병 투척까지는 예방하지 못했으나, 발빠르고 효율적인 vip(경호대상) 보호 대응에 나서면서 대중들에게 큰 호평을 받았다. 특히, 한 경호원 여성이 날아오는 물체를 인지하자마자 반사적으로 해당 물체를 향해 달려가 몸으로 막아서는 행위가 화제가 되었다. 이는 한국 경호원들이 민간 시연 에서도 자주 보여주는 모습으로, 암살/테러범의 폭발물 공격이 발생할 경우 인간 방호물을 구성해 경호대상의 피해를 막는 것이 목적이다. 소주병이 바닥에 떨어진 직후, 현장에 있던 경호원들은 추가 공격에 대비해 즉각적으로 방탄 가방을 중심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에워싸며 인간 방패를 구성했다. 아베 신조 테러 사건 이후 발생한 사건인 만큼 당시 제법 화제가 되었다. [27] 우측 하단에 보이는 검은 테이프를 조잡하게 감은 물체가 범행에 사용되었던 사제 총기이다. [28] 흔히 경시청이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자치경찰제가 발달한 일본에서의 경시청은 도쿄 지역을 관할하는 수도경찰 조직이기에 나라현의 경찰은 나라현 경찰청, 일본에서 쓰는 표현으로는 나라현 경찰본부(奈良県警察本部)라고 표기하는 게 올바르다. 실제로 한국 언론들도 경찰본부라고 표기하고 있다. 물론 경호를 위해 파견된 SP 요원은 경시청 소속이다. [29] 銃1丁に3本の筒が付いていて、1本の筒に6発の弾丸が入っている. [30] 보편적인 규격의 산탄인 12게이지 기준 18.5mm 정도로 일반 권총의 2배 크기이다. [31] 오패산터널 사건의 범인인 성병대도 해외 커뮤니티에서 제작법을 보고 만들어서 실험까지 한 걸로 알려져 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다 총기가 엄격히 규제되고 전반적인 치안이 좋은 편인 국가란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사제 총기를 만들어서 범죄를 저지르려고 했다면 그 과정이나 최종 형태가 비슷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할 것이며, 데쓰야가 자료를 찾아보는 과정에서 오패산터널 사건에 대한 내용도 접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32] 이러한 이유로 일반인들은 물론 일본 밀덕들 중에 구하기 쉽고 몇 안 되는 휴전 국가라는 독특한 특성의 한국군 관련 물품에 관심을 가지거나 대부분이 군대를 나오는 한국인들에게 군대 관련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는 경우가 있다. [33] 자위대의 홍보 영상에서는 초봉은 적어 보이지만 연차가 늘어날수록 각종 수당도 늘어난다고 선전한다. 공무원이 늘 그렇듯 자위대 또한 당장의 초봉 자체는 타 직군과 비교해 적은 편이지만 장기적인 안정성이 장점인 직업인데, 야마가미는 고작 3년 단기로 지원했다. 자위대원의 초봉이 200~300만원 수준이고 막노동판은 2배 이상인 600만원이 넘기도 하니 단기간에 목돈을 쌓는다는 목적에서 적합한 직업은 아니다. [34] 물론 헛소리인 게 이 돈이면 고작 10만 달러밖에 안 된다. 누가 고작 이 돈을 받겠다고 일국의 총리를 암살하려 들까. 당장 1960년대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소설 <자칼의 날>에서 살인청부업자인 자칼이 샤를 드골 대통령 암살 의뢰로 받은 돈이 50만 달러다. 현재 가치로는 약 42억 원인데 사실 이것도 꽤나 싸게 받은 편이라고 한다. [35] 한국의 부교수에 해당하는 지위. [36] 다만 전술한 두 사건은 현직 국가원수를 암살한 것이고, 아베 피격 사건은 전직 국가원수를 암살한 사건이라는 차이가 있다. [37] 아키히토가 즉위할 당시의 총리는 다케시타 노보루고 다케시타와 가이후 사이에 우노 소스케까지 있었는데도 즉위식 당시의 현직 총리는 가이후였다. 다케시타는 헤이세이가 개원하고 얼마 안 되어 곧 리크루트 사건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고, 후임인 우노도 스캔들 때문에 취임 2달만에 사퇴해 몇 달 사이에 총리가 2번이나 교체되었기 때문이다. [38] 구체적인 맥락을 말하자면, 쓰지모토 의원은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 유카와 하루나· 고토 겐지 인질 사건이 진행 중이던 당시에도 아베 총리가 콘서트나 영화 관람 등의 사적 취미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테러 사건인데 태평하게 놀러 다니지 말고 제발 관저에 있어라."라는 의미에서 비꼰 것이다. [39] 넷 우익이 득세하고 있는 니코니코의 특성상 일반적으로 자민당 관련 인물을 찬양하고 야당 관련 인물은 폄하하는 게 일상이지만, 이 영상은 평소와 반대로 쓰지모토를 칭찬하고 아베를 비웃는 댓글들로 도배되었다. [40] 심지어 사진 중 한 장은 잘 찍었다고 일본에서 오랫동한 일한 것으로 보이는 한국인이 트위터에 일본어로 트윗을 올렸는데 RT가 많이 되고 있다. [41] 참고로 아베 신조와는 달리 기시다는 살해당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