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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11 14:22:19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32년 집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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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 <tablewidth=100%><tablealign=center> 라틴어 문구 색상 범례
  • sine collega: 동료 없이 단독 선출
  • ignotus: 불명
  • incertus: 불확실, 가이우스 세키우스 캄파누스가 계속 집권하였거나 아니면 불명의 다른 인물이 선출되었는지 불명확함
황제 겸 집정관 }}}
1년 1년 보결 2년 2년 보결 3년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비니키우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스키피오 루키우스 아일리우스 라미아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 마르쿠스 헤렌니우스 피켄스 푸블리우스 알페누스 바루스 티투스 퀸크티우스 크리스피누스 발레리아누스 마르쿠스 세르빌리우스
3년 보결 4년 4년 보결 5년 5년 보결
푸블리우스 실리우스 섹스투스 아일리우스 카투스 그나이우스 센티우스 사투르니누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볼레수스 가이우스 비비우스 포스투무스
루키우스 볼루시우스 사투르니누스 가이우스 센티우스 사투르니누스 가이우스 클로디우스 리키누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마그누스 가이우스 아테이우스 카피토
6년 6년 보결 7년 7년 보결 8년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크레티쿠스 실라누스 마르쿠스 푸리우스 카밀루스
루키우스 아룬티우스 루키우스 노니우스 아스프레나스 아울루스 리키니우스 네르바 실리아누스 루킬리우스 롱구스 섹스투스 노니우스 퀸크틸리아누스
8년 보결 9년 9년 보결 10년 10년 보결
루키우스 아프로니우스 가이우스 포파이우스 사비누스 마르쿠스 파피우스 무틸루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 세르비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말루기넨시스
아울루스 비비우스 하비투스 퀸투스 술피키우스 카메리누스 퀸투스 포파이우스 세쿤두스 가이우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퀸투스 유니우스 블라이수스
11년 11년 보결 12년 12년 보결 13년
마니우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루키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게르마니쿠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가이우스 실리우스
티투스 스타틸리우스 타우루스 가이우스 폰테이우스 카피토 가이우스 비셀리우스 바로 루키우스 무나티우스 플란쿠스
13년 보결 14년 15년 15년 보결 16년
아울루스 카이키나 라르구스 섹스투스 폼페이우스 드루수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시센나 스타틸리우스 타우루스
섹스투스 아풀레이우스 가이우스 노르바누스 플라쿠스 마르쿠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루키우스 스크리보니우스 리보
16년 보결 17년 17년 보결 18년 18년 보결
가이우스 비비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폼포니우스 플라쿠스 가이우스 비비우스 마르수스 티베리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세이우스 투베로
푸블리우스 폼포니우스 그라이키누스 가이우스 카일리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볼루세이우스 프로쿨루스 게르마니쿠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리비네이우스 레굴루스
18년 보결 19년 19년 보결 20년 21년
가이우스 루벨리우스 블란두스 마르쿠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토르콰투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바르바투스 티베리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마르쿠스 빕스타누스 갈루스 루키우스 노르바누스 발부스 푸블리우스 페트로니우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막시무스 메살리누스 드루수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21년 보결 22년 22년 보결 23년 23년 보결
마메르쿠스 아이밀리우스 스카우루스 데키무스 하테리우스 아그리파 마르쿠스 코케이우스 네르바 가이우스 아시니우스 폴리오
그나이우스 트레멜리우스 가이우스 술피키우스 갈바 가이우스 비비우스 루피누스 가이우스 안티스티우스 베투스 가이우스 스테르티니우스 막시무스
24년 24년 보결 25년 25년 보결 26년
세르비우스 코르넬리우스 케테구스 가이우스 칼푸르니우스 아비올라 코수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가이우스 페트로니우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가이툴리쿠스
루키우스 비셀리우스 바로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스키피오 마르쿠스 아시니우스 아그리파 가이우스 칼비시우스 사비누스
26년 보결 27년 27년 보결 28년 28년 보결
퀸투스 유니우스 블라이수스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아피우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루키우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루키우스 안티스티우스 베투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프루기 가이우스 살루스티우스 파시에누스 크리스푸스 푸블리우스 실리우스 네르바 가이우스 벨라이우스 투토르
29년 29년 보결 30년 30년 보결 31년
가이우스 푸피우스 게미누스 아울루스 플라우티우스 루키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루키우스 나이비우스 수르디누스 티베리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루벨리우스 게미누스 루키우스 노니우스 아스프레나스 마르쿠스 비니키우스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루키우스 아일리우스 세야누스
31년 보결 31년 보결 31년 보결 32년 32년 보결
파우스투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푸블리우스 멤미우스 레굴루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섹스투스 테디우스 발레리우스 카툴루스 루키우스 풀키니우스 트리오 루키우스 아룬티우스 카밀루스 스크리보니아누스 아울루스 비텔리우스
33년 33년 보결 34년 34년 보결 35년
루키우스 리비우스 오켈라 세르비우스 술피키우스 갈바 루키우스 살비우스 오토 파울루스 파비우스 페르시쿠스 퀸투스 마르키우스 바레아 소라누스 가이우스 케스티우스 갈루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펠릭스 가이우스 옥타비우스 라이나스 루키우스 비텔리우스 티투스 루스티우스 눔미우스 갈루스 마르쿠스 세르빌리우스 노니아누스
35년 보결 36년 36년 보결 37년 37년 보결
데키무스 발레리우스 아시아티쿠스 섹스투스 파피니우스 알레니우스 가이우스 베티우스 루푸스 그나이우스 아케로니우스 프로쿨루스 가이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아울루스 가비니우스 세쿤두스 퀸투스 플라우티우스 마르쿠스 포르키우스 카토 가이우스 페트로니우스 폰티우스 니그리누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 게르마니쿠스
37년 보결 38년 38년 보결 39년 39년 보결
아울루스 카이키나 파이투스 마르쿠스 아퀼라 율리아누스 세르비우스 아시니우스 켈레르 가이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퀸투스 산퀴니우스 막시무스
가이우스 카니니우스 레빌루스 푸블리우스 노니우스 아스프레나스 칼푸르니우스 세라누스 섹스투스 노니우스 퀸크틸리아누스 루키우스 아프로니우스 카이시아누스
39년 보결 39년 보결 40년 40년 보결 41년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코르불로 아울루스 디디우스 갈루스 가이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가이우스 라이카니우스 바수스 가이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ignotus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페르 sine collega 퀸투스 테렌티우스 쿨레오 그나이우스 센티우스 사투르니누스
41년 보결 41년 보결 41년 보결 42년 42년 보결
퀸투스 폼포니우스 세쿤두스 퀸투스 푸티우스 루시우스 사투르니누스 퀸투스 오스토리우스 스카풀라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가이우스 케스티우스 갈루스
마르쿠스 세이우스 바라누스 푸블리우스 수일리우스 루푸스 가이우스 카이키나 라르구스
42년 보결 43년 43년 보결 43년 보결 43년 보결
코르넬리우스 루푸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섹스투스 팔펠리우스 히스테르 아울루스 가비니우스 세쿤두스 퀸투스 쿠르티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비텔리우스 루키우스 페다니우스 세쿤두스 ignotus 스푸리우스 오피우스
44년 44년 보결 45년 45년 보결 45년 보결
가이우스 살루스티우스 파시에누스 크리스푸스 푸블리우스 칼비시우스 사비누스 폼포니우스 세쿤두스 마르쿠스 비니키우스 티베리우스 플라우티우스 실바누스 아일리아누스 아울루스 안토니우스 루푸스
티투스 스타틸리우스 타우루스 티투스 스타틸리우스 타우루스 코르비누스 마르쿠스 폼페이우스 실바누스 스타베리우스 플라비아누스
46년 46년 보결 46년 보결 46년 보결 46년 보결
데키무스 발레리우스 아시아티쿠스 카메리누스 안티스티우스 베투스 퀸투스 술피키우스 카메리누스 데키무스 라일리우스 발부스 가이우스 테렌티우스 툴리우스 게미누스
마르쿠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47년 47년 보결 47년 보결 47년 보결 47년 보결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가이우스 칼페타누스 란티우스 세다투스 그나이우스 호시디우스 게타
루키우스 비텔리우스 마르쿠스 호르데오니우스 플라쿠스 티투스 플라비우스 사비누스 루키우스 바겔리우스 가이우스 볼라센나 세베루스
48년 48년 보결 49년 49년 보결 50년
아울루스 비텔리우스 루키우스 비텔리우스 퀸투스 베라니우스 루키우스 맘미우스 폴리오 가이우스 안티스티우스 베투스
루키우스 빕스타누스 포플리콜라 메살라 빕스타누스 갈루스 가이우스 폼페이우스 롱구스 갈루스 퀸투스 알리우스 막시무스 마르쿠스 수일리우스 네룰리누스
51년 51년 보결 51년 보결 52년 52년 보결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파우스투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펠릭스
세르비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살비디에누스 오르피투스 루키우스 칼벤티우스 베투스 카르미니우스 티투스 플라비우스 베스파시아누스 루키우스 살비우스 오토 티티아누스 퀸투스 마르키우스 바레아 소라누스
52년 보결 53년 53년 보결 53년 보결 54년
데키무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토르콰투스 푸블리우스 트레보니우스 푸블리우스 칼비시우스 루소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아비올라
루키우스 살비디에누스 루푸스 살비아누스 퀸투스 하테리우스 안토니누스 퀸투스 카이키나 프리무스 마르쿠스 아시니우스 마르켈루스
54년 보결 55년 55년 보결 55년 보결 55년 보결
마르쿠스 아이풀라누스 네로 클라우디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누메리우스 케스티우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 마르쿠스 트레벨리우스 막시무스
ignotus 루키우스 안티스티우스 베투스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55년 보결 55년 보결 56년 56년 보결 56년 보결
푸블리우스 팔푸리우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가이툴리쿠스 퀸투스 볼루시우스 사투르니누스 루키우스 유니우스 갈리오 안나이아누스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스크리보니우스 루푸스
티투스 쿠르틸리우스 만키아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스키피오 티투스 쿠티우스 킬투스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스크리보니우스 프로쿨루스
56년 보결 57년 57년 보결 58년 58년 보결
루키우스 두비우스 아비투스 네로 클라우디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네로 클라우디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가이우스 폰테이우스 아그리파
푸블리우스 클로디우스 트라세아 파이투스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루키우스 카이시우스 마르티알리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코르비누스
58년 보결 59년 59년 보결 60년 60년 보결
아울루스 페트로니우스 루르코 가이우스 빕스타누스 아프로니아누스 티투스 섹스티우스 아프리카누스 네로 클라우디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가이우스 벨레이우스 파테르쿨루스
아울루스 파코니우스 사비누스 가이우스 폰테이우스 카피토 마르쿠스 오스토리우스 스카풀라 코수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마르쿠스 마닐리우스 보피스쿠스
61년 61년 보결 62년 62년 보결 62년 보결
푸블리우스 페트로니우스 투르필리아누스 그나이우스 페다니우스 푸스쿠스 살리나토르 푸블리우스 마리우스 퀸투스 만리우스 타르퀴티우스 사투르니누스 퀸투스 유니우스 마룰루스
루키우스 유니우스 카이센니우스 파이투스 루키우스 벨레이우스 파테르쿨루스 루키우스 아피니우스 갈루스 푸블리우스 페트로니우스 니게르 티투스 클로디우스 에프리우스 마르켈루스
63년 64년 64년 보결 65년 65년 보결
가이우스 멤미우스 레굴루스 가이우스 라이카니우스 바수스 가이우스 리키니우스 무키아누스 아울루스 리키니우스 네르바 실리아누스
루키우스 베르기니우스 루푸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프루기 퀸투스 파비우스 바르바루스 안토니우스 마케르 마르쿠스 율리우스 베스티누스 아티쿠스 푸블리우스 파시디에누스 피르무스
65년 보결 66년 66년 보결 66년 보결 67년
가이우스 폼포니우스 피우스 가이우스 루키우스 텔레시누스 마르쿠스 안니우스 아프리누스 마르쿠스 아룬티우스 아퀼라 루키우스 율리우스 루푸스
가이우스 아니키우스 케리알리스 가이우스 수에토니우스 파울리누스 가이우스 파키우스 아프리카누스 마르쿠스 베티우스 볼라누스 폰테이우스 카피토
67년 보결 67년 보결 68년 68년 보결 68년 보결
아피우스 안니우스 갈루스 티베리우스 카티우스 아스코니우스 실리우스 이탈리쿠스 네로 클라우디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가이우스 벨리키우스 나탈리스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프리스쿠스 루키우스 베룰라누스 세베루스 푸블리우스 갈레리우스 트라칼루스 가이우스 루키우스 텔레시누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시아티쿠스
69년 69년 보결 69년 보결 69년 보결 69년 보결
세르비우스 갈바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마르쿠스 오토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베르기니우스 루푸스 그나이우스 아룰레누스 카일루스 사비누스 그나이우스 아리우스 안토니누스
티투스 비니우스 (루피누스) 루키우스 살비우스 오토 티티아누스 루키우스 폼페이우스 보피스쿠스 티투스 플라비우스 사비누스 아울루스 마리우스 켈수스
69년 보결 69년 보결 69년 보결 70년 70년 보결
파비우스 발렌스 그나이우스 카이킬리우스 심플렉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리키니우스 무키아누스
아울루스 카이키나 알리에누스 로시우스 레굴루스 가이우스 퀸크티우스 아티쿠스 티투스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퀸투스 페틸리우스 케리알리스 카이시우스 루푸스
70년 보결 70년 보결 71년 71년 보결 71년 보결
퀸투스 율리우스 코르디누스 가이우스 루틸리우스 갈리쿠스 루키우스 안니우스 바수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ignotus 가이우스 라이카니우스 바수스 카이키나 파이투스 마르쿠스 코케이우스 네르바 그나이우스 페디우스 카스쿠스 가이우스 칼페타누스 란티우스 퀴리날리스 발레리우스 페스투스
71년 보결 71년 보결 72년 72년 보결 72년 보결
루키우스 플라비우스 핌브리아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콜레가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리키니우스 무키아누스 마르쿠스 울피우스 트라야누스
가이우스 아틸리우스 바르바루스 퀸투스 율리우스 코르두스 티투스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티투스 플라비우스 사비누스
72년 보결 73년 73년 보결 73년 보결 73년 보결
섹스투스 마르키우스 프리스쿠스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루키우스 아일리우스 오쿨라투스 마르쿠스 아레키누스 클레멘스 섹스투스 율리우스 프론티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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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년 74년 보결 74년 보결 74년 보결 74년 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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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투스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티투스 클로디우스 에프리우스 마르켈루스 […]on[…] ( 섹스투스 율리우스 프론티누스)
74년 보결 74년 보결 75년 75년 보결 75년 보결
가이우스 폼포니우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툴루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루키우스 만리우스 파트루이누스 티투스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루키우스 파시디에누스 피르무스
76년 76년 보결 76년 보결 76년 보결 77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루키우스 탐피우스 플라비아누스 갈레오 테티에누스 페트로니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아우구스투스
티투스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마르쿠스 폼페이우스 실바누스 스타베리우스 플라비아누스 마르쿠스 풀비우스 길로 티투스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77년 보결 77년 보결 77년 보결 78년 78년 보결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루키우스 폼페이우스 보피스쿠스 가이우스 아룬티우스 카텔리우스 켈레르 그나이우스 율리우스 아그리콜라 데키무스 유니우스 노비우스 프리스쿠스 (루푸스) 퀸투스 코렐리우스 루푸스
마르쿠스 아룬티우스 아퀼라 ignotus 루키우스 케이오니우스 콤모두스 루키우스 푸니술라누스 베토니아누스
78년 보결 78년 보결 79년 79년 보결 79년 보결
섹스투스 비툴라시우스 네포스 퀸투스 아르티쿨레이우스 파이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루키우스 유니우스 카이센니우스 파이투스
ignotus ignotus 티투스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푸블리우스 칼비시우스 루소
79년 보결 80년 80년 보결 80년 보결 80년 보결
티투스 루브리우스 아일리우스 네포스 임페라토르 티투스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아울루스 디디우스 갈루스 파브리키우스 베이엔토 퀸투스 아우렐리우스 팍투메이우스 프론토 가이우스 마리우스 마르켈루스 옥타비우스 푸블리우스 클루비우스 루푸스
마르쿠스 아리우스 플라쿠스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루키우스 아일리우스 라미아 플라우티우스 아일리아누스
80년 보결 80년 보결 80년 보결 81년 81년 보결
마르쿠스 아틸리우스 포스투무스 브라두아 섹스투스 네라니우스 카피토 마르쿠스 티티우스 프루기 루키우스 플라비우스 실바 노니우스 바수스 마르쿠스 로스키우스 코엘리우스
퀸투스 폼페이우스 트리오 루키우스 아킬리우스 스트라보 티투스 비니키우스 율리아누스 루키우스 아시니우스 폴리오 베루코수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유베날리스
81년 보결 81년 보결 81년 보결 82년 82년 보결
루키우스 베티우스 파울루스 가이우스 스코에디우스 나타 피나리우스 루키우스 카르미니우스 루시타니쿠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세르바이우스 In]noc(ens)
티투스 유니우스 몬타누스 티투스 테티에누스 세레누스 마르쿠스 페트로니우스 움브리누스 티투스 플라비우스 사비누스 루키우스 살비우스 오토 코케이아누스
82년 보결 82년 보결 82년 보결 82년 보결 83년
[…]an(us) [가이우스 아리니우스 Mo]dest(us) 푸블리우스 발레리우스 파트루니우스 마르쿠스 라르키우스 마그누스 폼페이우스 실로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아비올라 ignotus 루키우스 안토니우스 사투르니누스 티투스 아우렐리우스 퀴에투스 퀸투스 페틸리우스 루푸스
83년 보결 83년 보결 83년 보결 84년 84년 보결
마르쿠스 안니우스 메살라 루키우스 테티우스 율리아누스 루키우스 칼벤티우스 섹스투스 카르미니우스 베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율리우스 우르수스
가이우스 피시우스 사비누스 테렌티우스 스트라보 에루키우스 호물루스 마르쿠스 코르넬리우스 니그리누스 쿠리아티우스 마테르누스 가이우스 오피우스 사비누스 ignotus
84년 보결 84년 보결 85년 85년 보결 85년 보결
가이우스 툴리우스 카피토 폼포니아누스 플로티우스 피르무스 ignotus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퀸투스 율리우스 코르디누스 가이우스 루틸리우스 갈리쿠스 마르쿠스 아레키누스 클레멘스
가이우스 코르넬리우스 갈리카누스 ( 마르쿠스 라이키우스 또는 푸블리우스 글리티우스) 갈루스 티투스 아우렐리우스 풀비우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카툴루스 메살리누스 루키우스 바이비우스 호노라투스
85년 보결 85년 보결 85년 보결 86년 86년 보결
푸블리우스 헤렌니우스 폴리오 데키무스 아부리우스 바수스 가이우스 살비우스 리베랄리스 노니우스 바수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세키우스 캄파누스
마르쿠스 안니우스 헤렌니우스 폴리오 퀸투스 율리우스 발부스 [코르넬리우스] 오레스테스 세르비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 페트로니아누스
86년 보결 86년 보결 86년 보결 87년 87년 보결
incertus 섹스투스 옥타비우스 프론토 아울루스 부키우스 라피우스 막시무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ⅩⅢ 가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크라수스 프루기 리키니아누스
퀸투스 비비우스 세쿤두스 티베리우스 율리우스 칸디두스 마리우스 켈수스 가이우스 옥타비우스 티디우스 토시아누스 루키우스 야볼레누스 프리스쿠스 루키우스 볼루시우스 사투르니누스
87년 보결 87년 보결 88년 88년 보결 88년 보결
가이우스 벨리키우스 나탈리스 가비디우스 테바니아누스 가이우스 킬니우스 프로쿨루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ⅩⅣ 데키무스 플로티우스 그리푸스 퀸투스 닌니우스 하스타
가이우스 두케니우스 프로쿨루스 루키우스 네라티우스 프리스쿠스 루키우스 미니키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스크리보니우스 리보 루필리우스 프루기 보누스
88년 보결 89년 89년 보결 89년 보결 90년
마르쿠스 오타킬리우스 카툴루스 티투스 아우렐리우스 풀부스 푸블리우스 살루스티우스 블라이수스 아울루스 비키리우스 프로쿨루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ⅩⅤ
섹스투스 율리우스 스파르수스 마르쿠스 아시니우스 아트라티누스 마르쿠스 페두카이우스 사이니아누스 마니우스 라베리우스 막시무스 마르쿠스 코케이우스 네르바
90년 보결 90년 보결 90년 보결 90년 보결 90년 보결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푸시오 안니우스 메살라 루키우스 안티스티우스 루스티쿠스 퀸투스 아카이우스 루푸스 푸블리우스 바이비우스 이탈리쿠스 루키우스 알비우스 풀라이에누스 폴리오
세르비우스 율리우스 세르비아누스 가이우스 카리스타니우스 프론토 가이우스 아퀼리우스 프로쿨루스 그나이우스 피나리우스 아이밀리우스 키카트리쿨라 폼페이우스 롱기누스
90년 보결 91년 91년 보결 91년 보결 92년
마르쿠스 툴리우스 케리알리스 (또는 마르쿠스 투키우스 케리알리스)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 데키무스 미니키우스 파우스티누스 퀸투스 발레리우스 베게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ⅩⅥ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카툴리누스 마르쿠스 울피우스 트라야누스 푸블리우스 발레리우스 마리누스 푸블리우스 메틸리우스 사비누스 네포스 퀸투스 볼루시우스 사투르니누스
92년 보결 92년 보결 92년 보결 93년 93년 보결
루키우스 베눌레이우스 몬타누스 아프로니아누스 루키우스 스테르티니우스 아비투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실라누스 섹스투스 폼페이우스 콜레가 티투스 아비디우스 퀴에투스
티베리우스 율리우스 켈수스 폴레마이아누스 퀸투스 유니우스 아룰레누스 루스티쿠스 퀸투스 페두카이우스 프리스키누스 섹스투스 루시아누스 프로쿨루스
93년 보결 94년 94년 보결 94년 보결 95년
가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라루스 섹스티우스 Na(so) 루키우스 노니우스 칼푸르니우스 토르콰투스 아스프레나스 마르쿠스 롤리우스 파울리누스 데키무스 발레리우스 아시아티쿠스 사투르니누스 루키우스 실리우스 데키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ⅩⅦ
[투키우스 Ceria]lis 티투스 섹스티우스 마기우스 라테라누스 가이우스 안티우스 아울루스 율리우스 콰드라투스 티투스 폼포니우스 바수스 티투스 플라비우스 클레멘스
95년 보결 95년 보결 95년 보결 96년 96년 보결
루키우스 네라티우스 마르켈루스 아울루스 부키우스 라피우스 막시무스 퀸투스 폼포니우스 루푸스 가이우스 만리우스 발렌스 퀸투스 파비우스 포스투미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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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 보결 97년 97년 보결 97년 보결 97년 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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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쿠스 칼푸르니우스 […]icus 루키우스 베르기니우스 루푸스 (가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루키우스 네라티우스 프리스쿠스 섹스투스 헤르멘티디우스 캄파누스
97년 보결 97년 보결 98년 98년 보결 98년 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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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라틴어: Gnaeus Domitius Ahenobarbus
생몰년도 기원전 2년 12월 11일 ~ 서기 40년 1월
지위 노빌레스, 로마 황족
국가 로마 제국
왕조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
부모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아버지)
대 안토니아(어머니)
배우자 소 아그리피나
자녀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1. 개요2. 생애
2.1. 출신 가문과 가계2.2. 막장 황족2.3. 결혼과 아들 네로2.4. 죽음
3. 사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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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제국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의 원로원 의원, 황족이자 범죄자.

아우구스투스의 조카인 대 안토니아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의 차남이다. 따라서 모계를 통해 로마 황족이며 황족 특권을 통해 남들보다 5년 일찍 집정관에 취임했다.

아버지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티베리우스, 네로 클라우디우스 드루수스 게르마니쿠스 형제와 함께 게르마니아 전쟁에서 게르마니아 땅을 거의 정복한 장군으로 아우구스투스 시대 동안 제국 동부에 대한 행정, 외교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선보인 인물이다. 아헤노바르부스 가문은 로마에서도 손꼽히는 명문가였지만 악명이 대단해서 세간의 평이 바닥을 쳤는데, 루키우스 자신은 출신 가문과 정반대로 행실이 나쁘긴 커녕 유능한 황족이었고 개인적인 평도 매우 좋았다. 하지만 그의 아들 그나이우스는 아버지랑 정반대로 어머니 대 안토니아가 황족이라는 배경을 믿고 온갖 부도덕한 행동과 범죄를 벌었다. 그 결과 당대부터 호부견자의 대명사로 유명했다.

현직 집정관으로 있던 중 벌인 범죄가 추악하고, 질이 너무 나빠 티베리우스 치세 말 황제에게 직접 지목돼 기소됐다. 이때 그는 사형선고를 언도받고 사형 집행 전까지의 공포를 경험했다.

외사촌형 게르마니쿠스의 장녀 소 아그리피나와 결혼해, 아들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를 얻었는데 그가 바로 로마 제국 역사상 최초로 탄핵, 국가의 적 선고를 받고 몰락한 폭군 네로 황제다.

2. 생애

2.1. 출신 가문과 가계

이름에서 드러나듯, 옛 공화정 시절, 평민씨족 도미티우스 일족 중 가장 강력하고 위세가 대단한 아헤노바르부스 가문 출신이다. 개인이름(프라이노멘) 그나이우스는 출신 씨족 가문인 도미티우스 일족 남성들이 모두 사용하고 애용한 것이며, 가문에서 대대로 물려받은 유서 깊은 두 프라이노멘 중 하나다.

증조부는 옵티마테스파의 일원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증조모는 소 카토의 누이 포르키아이다. 조부는 해군제독으로 "오만하고 잔인하고 사치스러움 속에서 나온, 비루한 인간의 표본"으로 악평을 받은, 집정관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조모 아이밀리아 레피다는 알바롱가에서 기원했으나 2대 왕 누마 폼필리우스의 후예로 알려진 명문 파트리키 일족 아이밀리우스 가문 출신이다.

아버지는 능력이 뛰어나고, 인간성이 괜찮은 편인 로마 장군, 외교관, 정치가, 행정가인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어머니는 로마 제국의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의 누나 소 옥타비아가 2차 삼두정치의 한축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결혼해 낳은 첫째 딸 대 안토니아다. 따라서 모계를 아우구스투스 일가의 피를 이었는데, 부모가 기원전 36년 아주 일찍 약혼 후 기원전 22년 혹은 기원전 23년 결혼해 아버지 역시 제정이 사실상 수립된 이후 로마 황족에 준하는 특권과 영예를 선사받았다. 이런 배경 때문에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는 어릴 적 로마 황족의 예우와 권한을 자연스레 부여받았다.

2.2. 막장 황족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는 마리우스와 술라의 시대부터 로마인들에게 악명을 얻은 도미티우스 가문 내 아헤노바르부스 가 출신의 악명 그대로 막장 황족으로 유명했다. 이는 가문이 마리우스와 술라의 시대부터 얻은 악평, 조부인 아헤노바르부스 제독의 정치적 행보로 얻게 된 불명예로 인해 어릴 적부터 이유 없이 각종 비방성 소문에 시달려, 저평가 받은 아버지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와 다른 점이었다.

일설에 따르면, 기원전 16년생이라는 이야기도 있으나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는 기원전 2년 12월 11일생이다. 위로는 큰누나 도미티아, 형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기원전 16년생), 둘째누나 대 도미티아 레피다와 여동생 소 도미티아 레피다가 있다.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 황제들과 그 일가를 극도로 혐오해, 온갖 뜬소문도 사실로 적은 수에토니우스에 따르면, 그나이우스는 일평생 내내 "비열하고 부도덕하며 정직하지 않은 인간"의 표본이었다고 한다. 이는 수에토니우스가 아닌, 그나이우스와 동시대 사람들의 기록도 비슷해 아들 네로의 막장행보로 얻게 된 불명예가 아니었다.

그나이우스는 형 루키우스와 함께 아버지, 어머니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 과거부터 이미지가 최악인 아헤노바르부스 가문의 악명을 최악으로 만든 막장황족의 대명사였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평민귀족( 노빌레스)인 출신 가문의 권세와 재력, 어머니 대 안토니아가 황족이고 아버지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가 훌륭한 장군이자 인기 전차기수였던 경력, 외할머니가 소 옥타비아라는 점만 믿고 온갖 사고를 치고 각종 범죄를 수없이 저질러 또래 귀족들 사이에서도 질 나쁘기로 유명했다.

그는 성년식 전, 아피아 가도에서 일부러 본인 소유의 명마를 몰고 질주해 놀고 있는 아이들을 괴롭히고 한 아이의 인형을 고의로 밞았고 제 기분에 따라 또래를 때리고 욕설을 퍼부었다. 이는 그나이우스의 형 루키우스도 비슷했는데, 형 루키우스의 경우에는 동생과 이 짓을 함께 벌이면서 포룸에서 시비를 걸고 "자신을 능욕했다"며 기사계급 남성을 폭행해 눈을 뽑아버릴 정도로 때려 멍들게 했다.[1] 그나이우스의 형 루키우스는 아버지 루키우스를 따라 가이우스 카이사르 수행원으로 시리아로 건너갔는데, 술을 잔뜩 마시고 자유민에게 시비를 걸고 그를 죽을 때까지 때려 죽였다. 따라서 아버지 그나이우스 제독 생전부터 온갖 욕을 이유없이 먹던 아버지 루키우스는 그나이우스의 형 루키우스가 이 사고를 치고 난 직후부터, 잘못된 오해와 뜬소문 등으로 "국가의 중대사를 논의하러 가서 제 기분에 따라, 사람을 때려 죽인 살인마"라는 누명을 썼고, 두 아들의 폭력성과 온갖 시비로 아들 관리도 못하는 못난 아버지로 손가락질 받았다.

그나이우스의 막장 행보는 형 루키우스가 요절한 이후에도 계속됐는데, 그는 매우 폭력적이고 잔인한 형과 판박이이면서도 일찍부터 온갖 범죄를 당연하게 벌이고 이를 은폐했다. 따라서 그는 10대 후반부터 국고 횡령, 폭행, 협박, 여러 여성들과의 불륜, 도박, 검투사 경기와 전차 경기 중독, 고리대금업 등을 저지르고, 여동생 소 도미티아 레피다와 불륜을 맺었다는 소문까지 돌 정도로 품행이 대단히 나빴다. 하여 아버지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는 차남 그나이우스가 가문의 후계자가 된 이후, 벌인 온갖 탈선행동으로 인해 아우구스투스 장례식 직후부터 "아내 외삼촌인 아우구스투스의 유언장을 조작했다"는 소문에 시달렸다.

이런 까닭에,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는 죽을 때까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고 이를 벼른 이는 수없이 많았다. 결국,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는 그나마 보호막 역할을 해준 아버지, 어머니 모두 사망한 뒤부터 위기에 몰렸고, 세야누스 사건 이후, 대대적인 국가 기강잡기에 나선 2대 황제 티베리우스에게 정식 기소돼 법정에 서게 된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의 아버지 루키우스는 티베리우스 황제와 게르마니아 전쟁, 일리리아 반란, 파르티아 외교전 등 모든 일을 함께 경험한 전우였고, 친구 중의 친구였다. 어머니 대 안토니아는 여동생 소 안토니아가 티베리우스 황제에게 유일하게 인정받는 황녀인 상황에서 처신을 훌륭히 하고, 매우 정숙했다. 따라서 이 점에서 그나이우스는 온갖 사고를 치더라도, 티베리우스 황제와 그나이우스 부모와의 관계를 생각해, 숙청 전의 세야누스를 비롯한 프라이토리아니 실세들은 이를 눈 감아주고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 대 안토니아는 서기 32년 사망했고, 아버지 루키우스는 훨씬 전인 서기 25년 사망한 상황이었다. 심지어 아버지의 사인은 단단히 속을 썩인 그나이우스의 비행으로 인한 병세 악화였을 정도. 그러니 집안 어른인 이모 소 안토니아를 필두로 한 황족들에게 그가 어떤 평을 들었는지는 말하지 않더라도 설명이 가능했고, 세야누스 숙청 이후 정국이 급격히 경색된 상황 속에서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 친인척에게 불만이 큰 정적이나 세야누스 숙청 후 야심 속에서 거물급 인사의 범죄를 밝혀 한몫 쥐려는 마크로 같은 신진급 인사들에게 약점 많고 온갖 범죄를 벌인 그나이우스는 기소된 순간부터 집중포화를 맞아야 했다.

그나이우스가 정식 기소된 이유는 그가 벌인 사기, 국고 횡령 그리고 유부녀들과 불륜을 벌이고 이를 알게 된 동료 원로원 의원들을 협박한 것이 근위대장 마크로에게 제대로 걸려 티베리우스 귀에 들어갔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기소된 문제의 사건은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가 서기 32년, 당해 집정관을 맡았던 시절에 벌어졌다.

이 당시 그는 현직집정관 자리를 이용해, 로마와 이탈리아 내 은행가, 사업가들에게 허위정보, 조작된 사업계획 등을 내밀어 사기를 쳤다. 그는 투자자금으로 받은 거액을 꿀꺽 집어 삼켰고, 전차경주 승부조작에 나서 대회 상금까지 모조리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이는 그가 법무관 시절일 무렵부터 해 온 주특기였는데, 법무관 시절에는 주최 측 돈을 강탈했다. 이 사기행각과 거액 편취 범죄에는 여동생 소 도미티아 레피다도 관여됐는데, 이에 누이 대 도미티아 레피다는 이런 그의 행동을 질타했다. 그나이우스의 누나 대 도미티아는 집안에서 부모의 인품을 유일하게 물려받았다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정숙했고, 황제 주변에게도 제대로 된 황족이라고 평가받은 만큼, 이것은 단순한 질타가 아니었다.[2] 하지만 그나이우스는 이런 누나의 지적에도 반성의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이 사건은 얼마 후, 피해자들이 항의하면서 드러난다. 현직 집정관에게 속아 거액을 날린 은행가와 사업가들은 항의했고, 피해를 입고 상금을 한푼도 못 받은 전치기수들은 앞장서 따졌다. 이렇게 일이 커지자, 그나이우스는 정의의 사도가 된 양 뻔뻔하게 "미래에 받을 상금을 그 자리에서 지불하겠습니다"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사태가 진정되지 않았다. 이에 그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면서, 제 지위를 동원해, 이들을 협박했다. 여기에 더해 그는 여러 유부녀들과 불륜을 벌이고, 사취한 거액을 이용해 고리대금사업까지 벌였다.

이런 배경 때문에 이 사건은 수면 위로 떠오르는데, 첩보를 접하고 면밀히 증거를 모은 마크로는 이를 카프레아이 별궁에 보고한다.

보고를 들은 티베리우스 황제는 사실을 알자마자, 법무관과 프라이토리아니를 통해 사건조사를 명한다. 이후 모든 증거가 취합되자, 격분한 티베리우스 황제는 그를 손수 반역죄, 간통죄, 여동생과의 근친상간, 강간죄, 간음죄, 국고횡령죄, 사기죄, 협박죄, 율리우스 법에 따른 고리대금업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해, 재판에 넘겼다. 허나 그나이우스는 자신이 황족이라는 점을 믿고, 당대 최고의 변호사를 여럿 고용해 자기변호로 일관하며 반성의 기미를 일절 보이지 않았다. 그는 함께 기소된 동료,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할 사람들을 거액으로 포섭하고, 재판이 끝나면 보복을 하겠다는 식의 협박 등을 했다. 이는 함께 간통죄로 기소된 귀부인, 동료의원들과 상반된 모습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스스로 뛰어내려 자살을 시도하거나, 목숨을 끊거나, 피해자에게 피해액 이상을 지급하는 등 반성의 기미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나이우스가 일관하자, 티베리우스 황제는 머리 끝까지 화가 난 나머지 이를 공개질타한다. 황제는 마크로가 아닌 개인서신비서와 측근들에게 자신의 서신을 손수 법정에서 읽게 했고, 그를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온갖 무서운 말로 꾸짖었다. 이렇게 되자 그나이우스는 겁에 질렸다. 그를 보호해줄 부모는 이미 돌아가셨고, 남동생의 뻔뻔함에 누이 대 도미티아는 그를 위한 변명을 해주지 않았다. 이모 소 안토니아와 외사촌형 클라우디우스 역시 그나이우스를 모른 척 했다.

결국 재판 선고일, 티베리우스는 용서하지 않았다. 황제는 그가 유죄판결을 받자마자 직접 사형을 언도하고, 지하감옥에 가뒀다가 전통적인 처형 방법으로 그를 죽여버리라고 지시했다. 즉, 스스로 양 손목 정맥을 자르고 과다출혈로 죽은 다음, 시신이 테베레 강에 던져지고, 기록말살형에 처해짐과 동시에 재산이 전부 압류된다는 운명이 그에게 남게 됐다. 뒤늦게 그나이우스는 꼼짝없이 반역자로 처형될 상황이 됨에 후회하면서 싹싹 빌었다. 하지만 티베리우스 황제는 이를 선고하게 하면서, 그나마 호의를 베푸는 식으로 선고 당일 처형만은 없게 하고, 그를 지하감옥에 수감하게 했다. 그런데 사형 집행을 며칠 앞두고 티베리우스가 노환으로 서거하고 후임으로 아내의 오빠 가이우스( 칼리굴라)가 즉위했다. 티베리우스 황제의 서거로 사형이 연기됐고, 원로원과의 관계 모색을 위해 때마침 칼리굴라가 즉위하고 난 뒤, 새 황제와 원로원에서 모든 사형수들을 사면한다는 포고가 발표됐다. 그나이우스는 겨우 석방됐다.

2.3. 결혼과 아들 네로

그나이우스는 외사촌형 게르마니쿠스 대 아그리피나와의 사이에서 낳은 장녀 소 아그리피나와 결혼했다. 이 결혼은 그나이우스의 아버지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어머니 대 안토니아가 힘쓴 결과 때문인데, 기록에 따르면 티베리우스 황제가 결혼을 승낙해 티베리우스 주선 형태로 소 아그리피나가 13번째 생일이 지난 뒤 14살이 됐을 때 결혼식을 올렸다고 한다. 이 결혼은 로마에서 열렸고, 두 사람은 로마와 안티움을 오가며 신혼생활을 했다.

아들 네로는 그가 석방된 이후, 안티움 고급 별장에서 태어났는데, 수에토니우스에 따르면 그나이우스는 주변 사람들과 친구들이 첫 아이 탄생을 축하하자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나와 아그리피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라면, 가증스럽고 혐오스러운 놈이 될 수밖에 없을걸?! 얘는 국가적 위험이 될거야."

이후, 그는 아들을 쿨하게 인지해주고 평소대로 행동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내 아그리피나는 오빠 칼리굴라에게 자기 아들에게 마땅한 이름을 지어 달라고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이는 그녀가 오빠에게 아들의 황족 지위를 내려 달라는 의미도 담겨 있었다.

이에 칼리굴라는 자신의 삼촌 클라우디우스 1세와 황궁 안에서 국가 사무를 논의하다가 이를 듣고 힐끗 숙부를 쳐다보며 웃곤, "클라우디우스라고 짓는 게 어떠냐?"라고 농담하곤 알아서 하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는 자신의 숙부 클라우디우스가 아그리피나와 그 남편 그나이우스에게도 웃음거리 내지 조롱거리로 인식된 것을 , 칼리굴라가 정곡을 찌른 뼈있는 농담이었다. 따라서 이 말을 듣고 화가 난 소 아그리피나는 그 말이 전혀 달갑지 않아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황제였던 칼리굴라는 사과의 말 없이 첫 외조카 탄생만 축하하면서 축전을 보냈다. 이때 그는 후일 네로가 될 아이의 미래와 아헤노바르부스 가의 번영을 축원해줬는데, 이후에도 칼리굴라는 그나이우스와 아그리피나의 아들에게 카이사르 가의 상속권을 내주지 않았다.[3]

2.4. 죽음

그나이우스는 서기 40년 1월, 고대 에트루리아 지방의 도시 피르기에서 부종으로 죽었다. 그는 운 좋게 사형을 면한 뒤, 과거처럼 범죄행위를 하거나 막장 행동을 하지 않는 등 개과천선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병으로 온 몸이 붓고, 고통스럽게 되자, 그나이우스는 다혈질적이고 폭력적인 성격을 다시금 드러냈다. 그는 병석에서 숨이 끊어지기 전까지 기분이 좋지 않다며 간호 중인 노예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고통이 심해지면 주변 간병인들을 분이 풀릴 때까지 마구 폭행했다.

죽기 전, 유언을 통해 아들 네로에게 유산의 3분의 1을 내주고 그 일부는 본의 아니게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칼리굴라와 옛 동료들에게 상속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 유언장은 그나이우스의 아내 아그리피나가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율리아 리빌라와 함께 칼리굴라를 암살하려고 한 계획이 들통이 나면서 집행되지 못했다. 아그리피나가 사형을 면하고 섬으로 유배된 뒤, 머리 끝까지 열받은 칼리굴라는 이 유언장을 모두 무시하고, 어린 네로 몫까지 모조리 국고에 귀속시켰다.[4] 이 재산은 후일 클라우디우스가 제위에 오른 뒤, 아그리피나가 사면되면서, 유언장 집행 재개 후 네로에게 돌아간다.

3. 사후 이야기

일생 동안 그나이우스는 좋은 평판을 얻지 못했고, 사후에도 존경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가 난잡한 귀부인 알부킬라와 오랜 기간 불륜 속에서 그녀에게 여러 남자애인을 소개해주고, 함께 부도덕한 일을 벌인 일은 그나이우스의 범죄경력보다 더 큰 질타를 받았다. 왜냐하면 그는 알부킬라 스캔들로 불린 티베리우스 치세 말 사건 속에서 다른 관련자들과 달리, 끝까지 뻔뻔했고, 일말의 반성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들 네로는 서기 54년 즉위하자마자 아버지를 기리고자 원로원 회의장 안에 서기 55년 동상을 직접 건설하도록 준비시켰다. 이후 네로는 아우구스투스 직계를 모조리 제거한 뒤, 아버지와 본가를 대대적으로 우상화하는데 이는 네로가 몰락하면서 흐지부지된다.


[1] 수에토니우스는 가시로 한쪽 눈을 팠다고 주장했다. [2]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가 외사촌형 게르마니쿠스의 장녀 율리아 아그리피나와 결혼할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는 그가 소 옥타비아의 외손자라는 것 외에도, 누이 대 도미티아의 인품과 평판이 큰 몫이 될 정도였다. [3] 클라우디우스 황제 시절의 일화처럼, 칼리굴라와 클라우디우스는 네로를 죽을 때까지 아헤노바르부스로 불렀다. [4] 로마의 반역법에 따르면, 황제 암살 계획이 유죄로 판결이 날 경우에는 사형, 추방의 경우, 그 재산이 전부 국고 귀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