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크레티쿠스 실라누스 라틴어: Quintus Caecilius Metellus Creticus Silanu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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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도 | 미상 ~ 16년 이후 |
출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사망지 | 로마 제국 로마 |
지위 | 노빌레스 |
국가 | 로마 공화국 → 로마 제국 |
가족 |
가이우스 유니우스 실라누스(친아버지?)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양아버지) 유니아(딸) 크레티쿠스 유니우스 실라누스(아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드루수스 리보(아들?) |
직업 | 로마 제국 집정관 |
로마 제국 집정관 | |
임기 | 7년 |
전임 |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루키우스 노니우스 아스프레나스 |
동기 | 아울루스 리키니우스 네르바 실리아누스→ 루킬리우스 롱구스 |
후임 |
마르쿠스 푸리우스 카밀루스 섹스투스 노니우스 퀸크틸리아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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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제국 집정관.2. 생애
20세기의 저명한 고대 로마 역사가 로널드 사임은 기원전 17년 집정관 가이우스 유니우스 실라누스가 그의 친아버지라고 주장했지만, 진위는 불분명하다. 그는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라는 인물의 양자가 되었는데, '크레티쿠스'라는 아그노멘이 붙은 걸 볼 때 그의 양아버지는 기원전 69년 집정관으로서 크레타를 정복하고 크레티쿠스라는 아그노멘이 붙은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크레티쿠스의 후손인 것으로 추정한다.서기 7년 아울루스 리키니우스 네르바 실리아누스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되었고, 아울루스 리키니우스 네르바 실리아누스가 사임한 후에는 루킬리우스 롱구스와 함께 집정관을 맡았다. 서기 16년 시리아 총독으로 선임되었다. 이 시기에 아르메니아 국왕 보노네스 1세가 파르티아 샤한샤 아르타바노스 2세의 위협을 받고 로마에 지원을 요청했다. 이에 티베리우스 황제는 의붓아들 게르마니쿠스에게 파트리아와 협상하는 임무를 부여하면서, 자기 친구인 그나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를 시리아 총독으로 세워서 게르마니쿠스를 보좌하게 했다. 이에 대해 타키투스는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크레티쿠스 실라누스가 시리아 총독에서 밀려난 건 그의 딸 유니아가 게르마니쿠스의 아들과 약혼했기 때문에, 티베리우스는 그가 게르마니쿠스를 일방적으로 비호할 거라고 여겼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는 딸 유니아 외에도 어린 나이에 사망한 크레티쿠스 유니우스 실라누스를 두었다고 전해진다. 로마 비문에서 언급된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드루수스 리보도 그의 아들이라는 설이 있으나 불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