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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6 16:29:05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코르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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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ine collega: 동료 없이 단독 선출
  • ignotus: 불명
  • incertus: 불확실, 가이우스 세키우스 캄파누스가 계속 집권하였거나 아니면 불명의 다른 인물이 선출되었는지 불명확함
황제 겸 집정관 }}}
1년 1년 보결 2년 2년 보결 3년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비니키우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스키피오 루키우스 아일리우스 라미아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 마르쿠스 헤렌니우스 피켄스 푸블리우스 알페누스 바루스 티투스 퀸크티우스 크리스피누스 발레리아누스 마르쿠스 세르빌리우스
3년 보결 4년 4년 보결 5년 5년 보결
푸블리우스 실리우스 섹스투스 아일리우스 카투스 그나이우스 센티우스 사투르니누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볼레수스 가이우스 비비우스 포스투무스
루키우스 볼루시우스 사투르니누스 가이우스 센티우스 사투르니누스 가이우스 클로디우스 리키누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마그누스 가이우스 아테이우스 카피토
6년 6년 보결 7년 7년 보결 8년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크레티쿠스 실라누스 마르쿠스 푸리우스 카밀루스
루키우스 아룬티우스 루키우스 노니우스 아스프레나스 아울루스 리키니우스 네르바 실리아누스 루킬리우스 롱구스 섹스투스 노니우스 퀸크틸리아누스
8년 보결 9년 9년 보결 10년 10년 보결
루키우스 아프로니우스 가이우스 포파이우스 사비누스 마르쿠스 파피우스 무틸루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 세르비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말루기넨시스
아울루스 비비우스 하비투스 퀸투스 술피키우스 카메리누스 퀸투스 포파이우스 세쿤두스 가이우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퀸투스 유니우스 블라이수스
11년 11년 보결 12년 12년 보결 13년
마니우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루키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게르마니쿠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가이우스 실리우스
티투스 스타틸리우스 타우루스 가이우스 폰테이우스 카피토 가이우스 비셀리우스 바로 루키우스 무나티우스 플란쿠스
13년 보결 14년 15년 15년 보결 16년
아울루스 카이키나 라르구스 섹스투스 폼페이우스 드루수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시센나 스타틸리우스 타우루스
섹스투스 아풀레이우스 가이우스 노르바누스 플라쿠스 마르쿠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루키우스 스크리보니우스 리보
16년 보결 17년 17년 보결 18년 18년 보결
가이우스 비비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폼포니우스 플라쿠스 가이우스 비비우스 마르수스 티베리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세이우스 투베로
푸블리우스 폼포니우스 그라이키누스 가이우스 카일리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볼루세이우스 프로쿨루스 게르마니쿠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리비네이우스 레굴루스
18년 보결 19년 19년 보결 20년 21년
가이우스 루벨리우스 블란두스 마르쿠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토르콰투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바르바투스 티베리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마르쿠스 빕스타누스 갈루스 루키우스 노르바누스 발부스 푸블리우스 페트로니우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막시무스 메살리누스 드루수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21년 보결 22년 22년 보결 23년 23년 보결
마메르쿠스 아이밀리우스 스카우루스 데키무스 하테리우스 아그리파 마르쿠스 코케이우스 네르바 가이우스 아시니우스 폴리오
그나이우스 트레멜리우스 가이우스 술피키우스 갈바 가이우스 비비우스 루피누스 가이우스 안티스티우스 베투스 가이우스 스테르티니우스 막시무스
24년 24년 보결 25년 25년 보결 26년
세르비우스 코르넬리우스 케테구스 가이우스 칼푸르니우스 아비올라 코수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가이우스 페트로니우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가이툴리쿠스
루키우스 비셀리우스 바로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스키피오 마르쿠스 아시니우스 아그리파 가이우스 칼비시우스 사비누스
26년 보결 27년 27년 보결 28년 28년 보결
퀸투스 유니우스 블라이수스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아피우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루키우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루키우스 안티스티우스 베투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프루기 가이우스 살루스티우스 파시에누스 크리스푸스 푸블리우스 실리우스 네르바 가이우스 벨라이우스 투토르
29년 29년 보결 30년 30년 보결 31년
가이우스 푸피우스 게미누스 아울루스 플라우티우스 루키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루키우스 나이비우스 수르디누스 티베리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루벨리우스 게미누스 루키우스 노니우스 아스프레나스 마르쿠스 비니키우스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루키우스 아일리우스 세야누스
31년 보결 31년 보결 31년 보결 32년 32년 보결
파우스투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푸블리우스 멤미우스 레굴루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섹스투스 테디우스 발레리우스 카툴루스 루키우스 풀키니우스 트리오 루키우스 아룬티우스 카밀루스 스크리보니아누스 아울루스 비텔리우스
33년 33년 보결 34년 34년 보결 35년
루키우스 리비우스 오켈라 세르비우스 술피키우스 갈바 루키우스 살비우스 오토 파울루스 파비우스 페르시쿠스 퀸투스 마르키우스 바레아 소라누스 가이우스 케스티우스 갈루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펠릭스 가이우스 옥타비우스 라이나스 루키우스 비텔리우스 티투스 루스티우스 눔미우스 갈루스 마르쿠스 세르빌리우스 노니아누스
35년 보결 36년 36년 보결 37년 37년 보결
데키무스 발레리우스 아시아티쿠스 섹스투스 파피니우스 알레니우스 가이우스 베티우스 루푸스 그나이우스 아케로니우스 프로쿨루스 가이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아울루스 가비니우스 세쿤두스 퀸투스 플라우티우스 마르쿠스 포르키우스 카토 가이우스 페트로니우스 폰티우스 니그리누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 게르마니쿠스
37년 보결 38년 38년 보결 39년 39년 보결
아울루스 카이키나 파이투스 마르쿠스 아퀼라 율리아누스 세르비우스 아시니우스 켈레르 가이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퀸투스 산퀴니우스 막시무스
가이우스 카니니우스 레빌루스 푸블리우스 노니우스 아스프레나스 칼푸르니우스 세라누스 섹스투스 노니우스 퀸크틸리아누스 루키우스 아프로니우스 카이시아누스
39년 보결 39년 보결 40년 40년 보결 41년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코르불로 아울루스 디디우스 갈루스 가이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가이우스 라이카니우스 바수스 가이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ignotus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페르 sine collega 퀸투스 테렌티우스 쿨레오 그나이우스 센티우스 사투르니누스
41년 보결 41년 보결 41년 보결 42년 42년 보결
퀸투스 폼포니우스 세쿤두스 퀸투스 푸티우스 루시우스 사투르니누스 퀸투스 오스토리우스 스카풀라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가이우스 케스티우스 갈루스
마르쿠스 세이우스 바라누스 푸블리우스 수일리우스 루푸스 가이우스 카이키나 라르구스
42년 보결 43년 43년 보결 43년 보결 43년 보결
코르넬리우스 루푸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섹스투스 팔펠리우스 히스테르 아울루스 가비니우스 세쿤두스 퀸투스 쿠르티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비텔리우스 루키우스 페다니우스 세쿤두스 ignotus 스푸리우스 오피우스
44년 44년 보결 45년 45년 보결 45년 보결
가이우스 살루스티우스 파시에누스 크리스푸스 푸블리우스 칼비시우스 사비누스 폼포니우스 세쿤두스 마르쿠스 비니키우스 티베리우스 플라우티우스 실바누스 아일리아누스 아울루스 안토니우스 루푸스
티투스 스타틸리우스 타우루스 티투스 스타틸리우스 타우루스 코르비누스 마르쿠스 폼페이우스 실바누스 스타베리우스 플라비아누스
46년 46년 보결 46년 보결 46년 보결 46년 보결
데키무스 발레리우스 아시아티쿠스 카메리누스 안티스티우스 베투스 퀸투스 술피키우스 카메리누스 데키무스 라일리우스 발부스 가이우스 테렌티우스 툴리우스 게미누스
마르쿠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47년 47년 보결 47년 보결 47년 보결 47년 보결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가이우스 칼페타누스 란티우스 세다투스 그나이우스 호시디우스 게타
루키우스 비텔리우스 마르쿠스 호르데오니우스 플라쿠스 티투스 플라비우스 사비누스 루키우스 바겔리우스 가이우스 볼라센나 세베루스
48년 48년 보결 49년 49년 보결 50년
아울루스 비텔리우스 루키우스 비텔리우스 퀸투스 베라니우스 루키우스 맘미우스 폴리오 가이우스 안티스티우스 베투스
루키우스 빕스타누스 포플리콜라 메살라 빕스타누스 갈루스 가이우스 폼페이우스 롱구스 갈루스 퀸투스 알리우스 막시무스 마르쿠스 수일리우스 네룰리누스
51년 51년 보결 51년 보결 52년 52년 보결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파우스투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펠릭스
세르비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살비디에누스 오르피투스 루키우스 칼벤티우스 베투스 카르미니우스 티투스 플라비우스 베스파시아누스 루키우스 살비우스 오토 티티아누스 퀸투스 마르키우스 바레아 소라누스
52년 보결 53년 53년 보결 53년 보결 54년
데키무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토르콰투스 푸블리우스 트레보니우스 푸블리우스 칼비시우스 루소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아비올라
루키우스 살비디에누스 루푸스 살비아누스 퀸투스 하테리우스 안토니누스 퀸투스 카이키나 프리무스 마르쿠스 아시니우스 마르켈루스
54년 보결 55년 55년 보결 55년 보결 55년 보결
마르쿠스 아이풀라누스 네로 클라우디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누메리우스 케스티우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 마르쿠스 트레벨리우스 막시무스
ignotus 루키우스 안티스티우스 베투스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55년 보결 55년 보결 56년 56년 보결 56년 보결
푸블리우스 팔푸리우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가이툴리쿠스 퀸투스 볼루시우스 사투르니누스 루키우스 유니우스 갈리오 안나이아누스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스크리보니우스 루푸스
티투스 쿠르틸리우스 만키아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스키피오 티투스 쿠티우스 킬투스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스크리보니우스 프로쿨루스
56년 보결 57년 57년 보결 58년 58년 보결
루키우스 두비우스 아비투스 네로 클라우디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네로 클라우디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가이우스 폰테이우스 아그리파
푸블리우스 클로디우스 트라세아 파이투스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루키우스 카이시우스 마르티알리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코르비누스
58년 보결 59년 59년 보결 60년 60년 보결
아울루스 페트로니우스 루르코 가이우스 빕스타누스 아프로니아누스 티투스 섹스티우스 아프리카누스 네로 클라우디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가이우스 벨레이우스 파테르쿨루스
아울루스 파코니우스 사비누스 가이우스 폰테이우스 카피토 마르쿠스 오스토리우스 스카풀라 코수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마르쿠스 마닐리우스 보피스쿠스
61년 61년 보결 62년 62년 보결 62년 보결
푸블리우스 페트로니우스 투르필리아누스 그나이우스 페다니우스 푸스쿠스 살리나토르 푸블리우스 마리우스 퀸투스 만리우스 타르퀴티우스 사투르니누스 퀸투스 유니우스 마룰루스
루키우스 유니우스 카이센니우스 파이투스 루키우스 벨레이우스 파테르쿨루스 루키우스 아피니우스 갈루스 푸블리우스 페트로니우스 니게르 티투스 클로디우스 에프리우스 마르켈루스
63년 64년 64년 보결 65년 65년 보결
가이우스 멤미우스 레굴루스 가이우스 라이카니우스 바수스 가이우스 리키니우스 무키아누스 아울루스 리키니우스 네르바 실리아누스
루키우스 베르기니우스 루푸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프루기 퀸투스 파비우스 바르바루스 안토니우스 마케르 마르쿠스 율리우스 베스티누스 아티쿠스 푸블리우스 파시디에누스 피르무스
65년 보결 66년 66년 보결 66년 보결 67년
가이우스 폼포니우스 피우스 가이우스 루키우스 텔레시누스 마르쿠스 안니우스 아프리누스 마르쿠스 아룬티우스 아퀼라 루키우스 율리우스 루푸스
가이우스 아니키우스 케리알리스 가이우스 수에토니우스 파울리누스 가이우스 파키우스 아프리카누스 마르쿠스 베티우스 볼라누스 폰테이우스 카피토
67년 보결 67년 보결 68년 68년 보결 68년 보결
아피우스 안니우스 갈루스 티베리우스 카티우스 아스코니우스 실리우스 이탈리쿠스 네로 클라우디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가이우스 벨리키우스 나탈리스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프리스쿠스 루키우스 베룰라누스 세베루스 푸블리우스 갈레리우스 트라칼루스 가이우스 루키우스 텔레시누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시아티쿠스
69년 69년 보결 69년 보결 69년 보결 69년 보결
세르비우스 갈바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마르쿠스 오토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베르기니우스 루푸스 그나이우스 아룰레누스 카일루스 사비누스 그나이우스 아리우스 안토니누스
티투스 비니우스 (루피누스) 루키우스 살비우스 오토 티티아누스 루키우스 폼페이우스 보피스쿠스 티투스 플라비우스 사비누스 아울루스 마리우스 켈수스
69년 보결 69년 보결 69년 보결 70년 70년 보결
파비우스 발렌스 그나이우스 카이킬리우스 심플렉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리키니우스 무키아누스
아울루스 카이키나 알리에누스 로시우스 레굴루스 가이우스 퀸크티우스 아티쿠스 티투스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퀸투스 페틸리우스 케리알리스 카이시우스 루푸스
70년 보결 70년 보결 71년 71년 보결 71년 보결
퀸투스 율리우스 코르디누스 가이우스 루틸리우스 갈리쿠스 루키우스 안니우스 바수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ignotus 가이우스 라이카니우스 바수스 카이키나 파이투스 마르쿠스 코케이우스 네르바 그나이우스 페디우스 카스쿠스 가이우스 칼페타누스 란티우스 퀴리날리스 발레리우스 페스투스
71년 보결 71년 보결 72년 72년 보결 72년 보결
루키우스 플라비우스 핌브리아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콜레가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리키니우스 무키아누스 마르쿠스 울피우스 트라야누스
가이우스 아틸리우스 바르바루스 퀸투스 율리우스 코르두스 티투스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티투스 플라비우스 사비누스
72년 보결 73년 73년 보결 73년 보결 73년 보결
섹스투스 마르키우스 프리스쿠스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루키우스 아일리우스 오쿨라투스 마르쿠스 아레키누스 클레멘스 섹스투스 율리우스 프론티누스
그나이우스 피나리우스 아이밀리우스 키카트리쿨라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카툴루스 메살리누스 퀸투스 가비우스 아티쿠스 […]m[…] ignotus
74년 74년 보결 74년 보결 74년 보결 74년 보결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아우구스투스 티베리우스 플라우티우스 실바누스 아일리아누스 루키우스 유니우스 퀸투스 비비우스 크리스푸스 퀸투스 페틸리우스 케리알리스 카이시우스 루푸스 ignotus
티투스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티투스 클로디우스 에프리우스 마르켈루스 […]on[…] ( 섹스투스 율리우스 프론티누스)
74년 보결 74년 보결 75년 75년 보결 75년 보결
가이우스 폼포니우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툴루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루키우스 만리우스 파트루이누스 티투스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루키우스 파시디에누스 피르무스
76년 76년 보결 76년 보결 76년 보결 77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루키우스 탐피우스 플라비아누스 갈레오 테티에누스 페트로니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아우구스투스
티투스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마르쿠스 폼페이우스 실바누스 스타베리우스 플라비아누스 마르쿠스 풀비우스 길로 티투스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77년 보결 77년 보결 77년 보결 78년 78년 보결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루키우스 폼페이우스 보피스쿠스 가이우스 아룬티우스 카텔리우스 켈레르 그나이우스 율리우스 아그리콜라 데키무스 유니우스 노비우스 프리스쿠스 (루푸스) 퀸투스 코렐리우스 루푸스
마르쿠스 아룬티우스 아퀼라 ignotus 루키우스 케이오니우스 콤모두스 루키우스 푸니술라누스 베토니아누스
78년 보결 78년 보결 79년 79년 보결 79년 보결
섹스투스 비툴라시우스 네포스 퀸투스 아르티쿨레이우스 파이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루키우스 유니우스 카이센니우스 파이투스
ignotus ignotus 티투스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푸블리우스 칼비시우스 루소
79년 보결 80년 80년 보결 80년 보결 80년 보결
티투스 루브리우스 아일리우스 네포스 임페라토르 티투스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아울루스 디디우스 갈루스 파브리키우스 베이엔토 퀸투스 아우렐리우스 팍투메이우스 프론토 가이우스 마리우스 마르켈루스 옥타비우스 푸블리우스 클루비우스 루푸스
마르쿠스 아리우스 플라쿠스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루키우스 아일리우스 라미아 플라우티우스 아일리아누스
80년 보결 80년 보결 80년 보결 81년 81년 보결
마르쿠스 아틸리우스 포스투무스 브라두아 섹스투스 네라니우스 카피토 마르쿠스 티티우스 프루기 루키우스 플라비우스 실바 노니우스 바수스 마르쿠스 로스키우스 코엘리우스
퀸투스 폼페이우스 트리오 루키우스 아킬리우스 스트라보 티투스 비니키우스 율리아누스 루키우스 아시니우스 폴리오 베루코수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유베날리스
81년 보결 81년 보결 81년 보결 82년 82년 보결
루키우스 베티우스 파울루스 가이우스 스코에디우스 나타 피나리우스 루키우스 카르미니우스 루시타니쿠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세르바이우스 In]noc(ens)
티투스 유니우스 몬타누스 티투스 테티에누스 세레누스 마르쿠스 페트로니우스 움브리누스 티투스 플라비우스 사비누스 루키우스 살비우스 오토 코케이아누스
82년 보결 82년 보결 82년 보결 82년 보결 83년
[…]an(us) [가이우스 아리니우스 Mo]dest(us) 푸블리우스 발레리우스 파트루니우스 마르쿠스 라르키우스 마그누스 폼페이우스 실로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아비올라 ignotus 루키우스 안토니우스 사투르니누스 티투스 아우렐리우스 퀴에투스 퀸투스 페틸리우스 루푸스
83년 보결 83년 보결 83년 보결 84년 84년 보결
마르쿠스 안니우스 메살라 루키우스 테티우스 율리아누스 루키우스 칼벤티우스 섹스투스 카르미니우스 베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율리우스 우르수스
가이우스 피시우스 사비누스 테렌티우스 스트라보 에루키우스 호물루스 마르쿠스 코르넬리우스 니그리누스 쿠리아티우스 마테르누스 가이우스 오피우스 사비누스 ignotus
84년 보결 84년 보결 85년 85년 보결 85년 보결
가이우스 툴리우스 카피토 폼포니아누스 플로티우스 피르무스 ignotus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퀸투스 율리우스 코르디누스 가이우스 루틸리우스 갈리쿠스 마르쿠스 아레키누스 클레멘스
가이우스 코르넬리우스 갈리카누스 ( 마르쿠스 라이키우스 또는 푸블리우스 글리티우스) 갈루스 티투스 아우렐리우스 풀비우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카툴루스 메살리누스 루키우스 바이비우스 호노라투스
85년 보결 85년 보결 85년 보결 86년 86년 보결
푸블리우스 헤렌니우스 폴리오 데키무스 아부리우스 바수스 가이우스 살비우스 리베랄리스 노니우스 바수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세키우스 캄파누스
마르쿠스 안니우스 헤렌니우스 폴리오 퀸투스 율리우스 발부스 [코르넬리우스] 오레스테스 세르비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 페트로니아누스
86년 보결 86년 보결 86년 보결 87년 87년 보결
incertus 섹스투스 옥타비우스 프론토 아울루스 부키우스 라피우스 막시무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ⅩⅢ 가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크라수스 프루기 리키니아누스
퀸투스 비비우스 세쿤두스 티베리우스 율리우스 칸디두스 마리우스 켈수스 가이우스 옥타비우스 티디우스 토시아누스 루키우스 야볼레누스 프리스쿠스 루키우스 볼루시우스 사투르니누스
87년 보결 87년 보결 88년 88년 보결 88년 보결
가이우스 벨리키우스 나탈리스 가비디우스 테바니아누스 가이우스 킬니우스 프로쿨루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ⅩⅣ 데키무스 플로티우스 그리푸스 퀸투스 닌니우스 하스타
가이우스 두케니우스 프로쿨루스 루키우스 네라티우스 프리스쿠스 루키우스 미니키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스크리보니우스 리보 루필리우스 프루기 보누스
88년 보결 89년 89년 보결 89년 보결 90년
마르쿠스 오타킬리우스 카툴루스 티투스 아우렐리우스 풀부스 푸블리우스 살루스티우스 블라이수스 아울루스 비키리우스 프로쿨루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ⅩⅤ
섹스투스 율리우스 스파르수스 마르쿠스 아시니우스 아트라티누스 마르쿠스 페두카이우스 사이니아누스 마니우스 라베리우스 막시무스 마르쿠스 코케이우스 네르바
90년 보결 90년 보결 90년 보결 90년 보결 90년 보결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푸시오 안니우스 메살라 루키우스 안티스티우스 루스티쿠스 퀸투스 아카이우스 루푸스 푸블리우스 바이비우스 이탈리쿠스 루키우스 알비우스 풀라이에누스 폴리오
세르비우스 율리우스 세르비아누스 가이우스 카리스타니우스 프론토 가이우스 아퀼리우스 프로쿨루스 그나이우스 피나리우스 아이밀리우스 키카트리쿨라 폼페이우스 롱기누스
90년 보결 91년 91년 보결 91년 보결 92년
마르쿠스 툴리우스 케리알리스 (또는 마르쿠스 투키우스 케리알리스)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 데키무스 미니키우스 파우스티누스 퀸투스 발레리우스 베게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ⅩⅥ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카툴리누스 마르쿠스 울피우스 트라야누스 푸블리우스 발레리우스 마리누스 푸블리우스 메틸리우스 사비누스 네포스 퀸투스 볼루시우스 사투르니누스
92년 보결 92년 보결 92년 보결 93년 93년 보결
루키우스 베눌레이우스 몬타누스 아프로니아누스 루키우스 스테르티니우스 아비투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실라누스 섹스투스 폼페이우스 콜레가 티투스 아비디우스 퀴에투스
티베리우스 율리우스 켈수스 폴레마이아누스 퀸투스 유니우스 아룰레누스 루스티쿠스 퀸투스 페두카이우스 프리스키누스 섹스투스 루시아누스 프로쿨루스
93년 보결 94년 94년 보결 94년 보결 95년
가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라루스 섹스티우스 Na(so) 루키우스 노니우스 칼푸르니우스 토르콰투스 아스프레나스 마르쿠스 롤리우스 파울리누스 데키무스 발레리우스 아시아티쿠스 사투르니누스 루키우스 실리우스 데키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ⅩⅦ
[투키우스 Ceria]lis 티투스 섹스티우스 마기우스 라테라누스 가이우스 안티우스 아울루스 율리우스 콰드라투스 티투스 폼포니우스 바수스 티투스 플라비우스 클레멘스
95년 보결 95년 보결 95년 보결 96년 96년 보결
루키우스 네라티우스 마르켈루스 아울루스 부키우스 라피우스 막시무스 퀸투스 폼포니우스 루푸스 가이우스 만리우스 발렌스 퀸투스 파비우스 포스투미누스
푸블리우스 두케니우스 베루스 루키우스 바이비우스 툴루스 가이우스 안티스티우스 베투스 티투스 프리페르니우스 [파이투스]
96년 보결 97년 97년 보결 97년 보결 97년 보결
티베리우스 카티우스 카이시우스 프론토 임페라토르 네르바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그나이우스 아리우스 안토니누스 마르쿠스 안니우스 베루스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폴리나리스
마르쿠스 칼푸르니우스 […]icus 루키우스 베르기니우스 루푸스 (가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루키우스 네라티우스 프리스쿠스 섹스투스 헤르멘티디우스 캄파누스
97년 보결 97년 보결 98년 98년 보결 98년 보결
퀸투스 글리티우스 아틸리우스 아그리콜라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타키투스 임페라토르 네르바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페르 쿠르비우스 툴루스 섹스투스 율리우스 프론티누스
루키우스 폼포니우스 마테르누스 마르쿠스 오스토리우스 스카풀라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네르바 트라야누스
98년 보결 98년 보결 98년 보결 98년 보결 98년 보결
루키우스 율리우스 우르수스 티투스 베스트리키우스 스푸린나 가이우스 폼포니우스 피우스 아울루스 비키리우스 마르티알리스 가이우스 폼포니우스 루푸스 아킬리우스 [Pri]scus 코엘리우스 스파르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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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년 보결 99년 99년 보결 99년 보결 99년 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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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 집정관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코르불로
Gnaeus Domitius Corbulo
파일:attachment/e0066657_50272b3233280.jpg
출생 미상, 로마제국 이탈리아 펠투이눔
사망 67년
재임기간 고대 로마 집정관
39년 ~ 40년
부모 父: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코르불로
母: 비스틸리아
형제 여동생 밀로니아 카이소니아
1. 개요2. 생애
2.1. 초기 생애와 가족관계2.2. 출세와 성공가도2.3. 동방 파견2.4. 베네벤툼의 음모와 억울한 죽음
3. 사후의 영향력4.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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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곡괭이로 적을 물리친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코르불로

고대 로마 제국 군인, 정치가, 행정가. 로마 황제 칼리굴라의 아내 밀로니아 카이소니아의 오빠로, 네로에게 자살을 강요당한 제정 시대 명장이자 도미티아누스의 장인으로 유명하다.

2. 생애

2.1. 초기 생애와 가족관계

서기 7년 이탈리아 태생[1]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이부 여동생 밀로니아 카이소니아가 서기 6년생이고 그가 당시 집정관 추천이 허락된 32세보다 많았던 30대 중반에 집정관으로 재임한 것이 확인된 까닭에, 학계 다수설은 대체로 기원전 4년 ~ 서기 1년 사이에 태어났다고 본다.

밝혀진 바에 따르면, 고향은 클라우디아 가도에 위치한 도시 펠투이눔이다. 이 도시는 이탈리아 아펜니노산맥 근처에 있는데, 이탈리아 남동부의 아브루초에 위치했다. 그는 이 도시에서 아버지와 외삼촌 모두 법무관까지 지낸 상당한 고위 원로원 가문 출신으로 태어나 성장했다. 이름에서 드러나듯, 도미티우스 씨족 가문 태생으로 도미티우스 가문출신답게 프라이노멘으로 '그나이우스'를 사용했다. 젊은 시절의 기록은 풍부하지 않으나, 부모 양가와 외삼촌이 모두 티베리우스, 대 드루수스 형제의 측근인 만큼 평탄한 삶을 보냈다.

공화정 말부터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 시대 분야에 있어 권위자로 손꼽히는 로널드 사임에 따르면, 코르불로의 부모와 외삼촌은 일찍부터 리비아 드루실라의 두 아들 티베리우스, 드루수스 형제의 오랜 친구이자 최측근이었다고 한다. 동명이인의 아버지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코르불로는 티베리우스 황제 시대때 집안의 원로원 의석을 이어 받았고, 법무관까지 추천받은, 상당히 능력있는 원로원 의원이었다. 어머니 비스틸리아는 전직 법무관 섹스투스 비스틸리우스의 여동생으로, 원로원 가문 출신이다. 그녀의 오빠인 코르불로의 외삼촌 비스틸리우스는 게르마니쿠스, 클라우디우스 1세 형제의 아버지 네로 클라우디우스 드루수스 게르마니쿠스와 가장 가까운 오랜 친구이자 오랜 참모였다. 그는 대 드루수스가 생전 친구라고 부른 이로, 드루수스의 양부 아우구스투스 황제에게 능력을 인정받았다. 따라서 티베리우스와도 일찍이 친분이 두터웠다. 그러나 비스틸리우스는 티베리우스 말년, 티베리우스 황제와 대 드루수스의 손자 가이우스(칼리굴라)가 카프레이아 섬에 머무는 것이 음탕한 행동을 위해서 벌인 것이 아니냐는 풍자시를 지은 죄로, 티베리우스 황제의 진노를 샀다. 그는 티베리우스 황제에게 절교를 선언받고, 대 드루수스 유가족들에게 신임을 잃어, 귀족 사회에서 사회적으로 매장됐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자살했다. 하지만 코르불로의 어머니 비스틸리아는 오빠와 무관해 그 화를 면했고, 코르불로 일가 역시 비스틸리우스와 교류가 많지 않아 피해를 입지 않았다.

어머니 비스틸리아는 상술했듯, 티베리우스와 대 드루수스 형제의 코호스 아미코룸(친구 집단) 멤버, '황제의 식탁 친구들'의 핵심인사 섹스투스 비스틸리우스의 여동생인 만큼 야심많고 고위직 진출에 욕심있던 원로원 의원들에게 매력적인 신붓감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그녀는 총 6번 결혼했고 6명의 남편과의 사이에서 7명의 자녀를 뒀는데, 코르불로는 그녀의 다섯번째 남편과의 사이에서 얻은 6번째 아이였다. 바로 아래에는 여동생 밀로니아 카이소니아가 있었는데, 이부여동생 밀로니아 카이소니아는 비스틸리아의 마지막 남편 카이소니우스 막시무스와의 사이에서 얻었다.

2.2. 출세와 성공가도

코르불로가 본격적으로 신임을 받고, 잘 나가게 된 시기는, 이부여동생 카이소니아의 남편인 3대 황제 가이우스(칼리굴라) 시대부터였다. 칼리굴라 재위 시절인 서기 39년 9월 두 집정관이 황제를 암살하려고 시도한 엄청난 사건이 벌어지면서 황제가 두 집정관을 모두 면직 처리한 일이 벌어졌다. 이때 코르불로는 보결집정관에 취임했는데, 연구자들은 이를 통해 그가 칼리굴라의 최측근이자 친황실 세력임을 단번에 알려준다고 말한다. 따라서 코르불로는 황제에게 신임을 받아 서기 39년 집정관을 지냈는데, 이때 그의 나이는 30대 중반 정도의 젊은 나이였다. 그리고 이 시기 즈음인 39년 말, 코르불로의 여동생 밀로니아 카이소니아가 칼리굴라와 연인 관계가 됐고, 곧 임신 후 정식 결혼을 올렸다. 아울러 코르불로의 여동생은 이 시기부터 아우구스타 직위를 황제에게 선사받았다.

그러나 코르불로의 여동생은 이혼 후 황제와 연애 중 임신한 다음, 결혼식을 올렸고 결혼식 한 달 후 딸 율리아 드루실라를 출산한 일로 로마인들에게 인기가 없었다. 그래서 세간에 "불륜으로 맺어진 사이"라는 안 좋은 소문이 돌았고 여론은 좋지 않았다고 디오 카시우스는 말하고 있으며, 수에토니우스의 경우에는 그녀에 대해 평가절하하며 깎아내리고 음탕하고 사치스러운 부도덕한 여인으로 서술했다.

서기 41년 1월 24일, 카시우스 카이레아와 루푸스 등이 20명 남짓의 프라이토리아니 일부 대원들과 공모해 비무장 상태의 칼리굴라를 암살했다. 이때 코르불로의 여동생 카이소니아 역시 딸 율리아 드루실라와 함께 황궁에서 살해됐는데, 당대 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그녀는 코르불로의 여동생답게 남편을 죽인 그들에게 목숨을 구걸하지 않고 자신의 목을 내밀면서 용감하게 칼을 맞고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칼리굴라와 카이소니아가 암살된 이후, 코르불로의 경력은 다음 황제 클라우디우스가 서기 47년 그를 게르마니아 인페리오르 속주의 군대 사령관에 임명할 때까지 끊겼다. 하지만 이는 그가 카이소니아의 오빠인 이유로 숙청된 탓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그 이유는, 클라우디우스가 코르불로를 게르마니아 인페리오르 사령관에 임명할 당시, 그에게 부과된 역할과 황제, 원로원의 요구는 상당한 난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코르불로는 클라우디우스에게도 상당한 신임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2]

그는 이곳에 부임하자마자 이 일대에서 벌어진 게르만족들의 반란을 모두 진압하고 게르만족을 상대로 국경을 훌륭히 지켰다. 특히 게르마니아에서는 방어에만 치중하지 않고 적극적인 공세를 펼쳐 라인 강 너머로 깊숙히 진격하기도 했는데, 이 외에도 쾰른을 재건하고 게르마니아 인페리오르 내의 운하, 도로 등을 건설, 보수했으며 군율을 엄격히 다루고 이를 어긴 군단병 두명을 처형해 군기를 다잡았다.[3] 그러나 황제가 브리타니아 이외 지역에서의[4] 영토확장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쟁에 있어서는 그 이상의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게르마니아 인페리오르 사령관 이후, 로마로 돌아와 개선 훈장을 받고 서기 52년까지 로마에서 머물렀다가, 그를 신임한 클라우디우스 아래에서 아시아 속주 총독으로 파견됐다. 그런데 54년, 그를 신임했던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저녁 식사 후 갑자기 사망했다.

2.3. 동방 파견

코르불로가 가장 뛰어난 업적을 이룩한 곳은 동방이었다. 네로가 54년 10월 젊은 나이로 황제에 오르자 파르티아 볼로가세스 1세가 로마의 우방국이었던 아르메니아를 침공하여 자신의 이복동생인 티리다테스를 아르메니아의 새로운 왕으로 삼았다. 동방으로 파견된 코르불로는 아르메니아의 수도 아르탁사타와 대도시인 티그라노케르타를 함락시키며 티리다테스를 몰아내고 친로마파 왕을 옹립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로마가 내세운 티그라네스 왕이 금세 지지를 잃고, 또 다른 장수인 루키우스 유니우스 카이센니우스 파이투스가 파르티아와의 전투에서 패하면서 상황이 악화된다. 파이투스의 패배로 아르메니아 내에서의 로마의 입지가 크게 줄어들었고, 이에 네로는 코르불로에게 전권을 위임하여 파르티아와의 전면전에 돌입할 것을 명했다.[5] 다시 대군을 이끌고 아르메니아로 진격한 코르불로는 유프라테스 강 너머에서 깽판 무력시위를 벌인 끝에 티리다테스를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는 데 성공한다.

코르불로는 티리다테스와 평화협정을 맺었고, 여기에는 티리다테스가 직접 로마로 와서 네로로부터 왕관을 받는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협정은 티리다테스와 볼로가세스, 네로 삼자를 모두 만족시켰는데, 우선 티리다테스는 왕이 될 수 있었고 볼로가세스 역시 파르티아 왕족이 아르메니아를 지배하는 결과에 만족했다. 특히, 동방의 이민족을 경계하며 내부의 토호들을 다스려야 했던 파르티아 왕은 큰 실리를 얻었다. 로마는 파르티아에게 승리를 거둔다는 본래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으나 명분상 로마가 파르티아 왕족에 대해 우위를 점하게 되었기 때문에 이를 받아들였다. 로마에서 대관식을 치른 티리다테스는 친로마로 돌아서 이후 50년 간 평화가 지속되었다.[6]

이는 큰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물론 새로운 영토를 정복하고 화려한 전공을 남겨서 역사에 기록된 군인들도 많다. 그러나 이후 트라야누스 대에 드러난 것처럼 로마는 메소포타미아를 정복하고 유지할 능력이 없었고, 이후 세베루스 왕조에서 가해진 공세로 파르티아가 약화되면서 오히려 아케네메스 조 시절의 고토회복에 목숨을 건 사산 왕조가 출현했던 것을 생각하면 국지전에서의 승리를 통해 힘을 과시해 파르티아와 로마 양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외교적 타협점을 찾고 장기간 평화를 유지한 코르불로의 해결책을 높이 평가할 수밖에 없다. 이러나 저러나 군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평화를 유지하고 번영을 지켜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2.4. 베네벤툼의 음모와 억울한 죽음

아내 카시아 롱기나는 모계로 아우구스투스의 피를 이어받았다. 슬하에 두 딸이 있었는데 장녀인 도미티아는 비니키아누스에게 시집갔고, 차녀 도미티아 롱기나는 훗날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아들인 도미티아누스와 결혼하여 황후가 된다.[7]

코르불로의 맏사위 소(小) 루키우스 안니우스 비니키아누스는 가이우스 안니우스 폴리오의 손자로, 훌륭한 가문에서 태어난 세습 원로원 의원이었다. 코르불로가 장녀를 비니키아누스와 결혼시킨 이유는 두 가문의 관계 증진이 컸는데, 그럼에도 꺼림직한 부분이 있었고 이는 종국적으로 코르불로가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이유가 됐다.

맏사위 비키니아누스의 아버지는 전직집정관 루키우스 안니우스 비니키아누스이다. 그는 티베리우스 시대때인 서기 31년 벌어진 세야누스 잔당 숙청 당시, 부친 폴리오와 함께 세야누스 부자와 친구라는 이유로 원로원에게 고발돼 죽을 뻔 했다. 다행히 티베리우스 황제가 사실관계를 파악해 원로원이 보낸 고발장을 손수 파기해주면서 별 일 없이 넘어가게 됐는데, 이 사건으로 루키우스 안니우스 비니키아누스는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를 증오했고 자신을 집정관에 추천해주고 친구 대우를 해준 칼리굴라, 클라우디우스 황제 모두를 제거하려고 음모를 꾸몄다. 그래서 코르불로와 사돈관계가 된 루키우스 안니우스 비니키아누스는 스크리보니아누스의 반란 당시 반역죄로 기소되자 스스로 자살했다.

이런 가족 배경을 둔, 코르불로의 맏사위 비니키아누스는 대략 36년생으로 일찍부터 아들이 없던 장인의 사위이자 후계자로 경력을 쌓았다. 그래서 그는 63년 말부터 장인 코르불로 아래에서 아르메니아에 주둔하는 5군단에 복무했고, 장인과 함께 58~63년 파르티아-로마 전쟁을 지휘해 이를 토대로 명성을 얻었다.

그런데 65년, 비니키아누스의 동생 안니우스 폴리오가 피소 음모 사건이라고 불린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만으로 네로에게 반역 혐의로 억울하게 처형됐다. 따라서 66년 코르불로의 사위 비니키아누스는 자신을 따르는 몇몇 청년 장교들, 원로원 귀족들과 함께 네로 암살을 기도한, 훗날 베네벤툼의 음모로 명명되는 사건을 주동자가 되어 반란을 모의했다. 일설에 의하면 이들은 네로를 암살한 뒤 코르불로를 황제로 추대할 계획이었다고 하는데, 이는 낭설로 보인다. 어쨌든 비니키아누스가 군장교들을 모아 벌인 네로 암살 계획은 실행에 옮기기도 전에 실패했다. 그래서 67년 비니키아누스는 발각되자마자 자살해버린다.

이때 네로는 두 번째 그리스 순회공연을 하면서, 그리스 일대를 여행 중이었는데 마케도니아 총독 아래에 놓인 아테네와 그리스 일대에 자치권을 부여하는 등의 선심성 명령 등으로 로마민중과 원로원에게 인기가 떨어지고 있었다. 아울러 그는 피소 음모 사건에 이어, 베네벤툼의 음모까지 터지자 자신을 노린 또 다른 음모가 있을 거라고 의심했다. 네로는 로마민중들과 병사들에게 존경받고 있던 코르불로를 강하게 의심했고, 비니키아누스가 코르불로의 사위였고 사실상 아들과 같았던 점, 코르불로 일가가 칼리굴라와 클라우디우스 아래에서 신임받고 황실과 인척관계였던 점 등을 이유로 이를 확신했다.

이 당시, 코르불로는 시리아 속주 총독으로 있었는데, 예루살렘에서 67년 반 로마 운동이 벌어지면서 군사적 움직임을 가져가야 할 상황에 직면한 급박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럼에도 네로는 코르불로를 자신이 있던 그리스로 소환한 다음, 즉각 자결을 명령했으며 유대전쟁을 지휘할 장군으로 베스파시아누스를 임명해 코르불로에게 맡겨진 임무를 처리케했다. 게르마니아 사령관 2명 역시 같은 혐의로 자결을 명했다.

고대 작가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소환된 코르불로는 소환 후 코린트 항에 도착하자마자, 자결을 명령받았는데 칼을 받아든 순간 자신이 결백하다며 "악시오스!"[8]라고 소리치며 자신의 억울함과 충성심을 밝힌 뒤 자결했다고 한다.

3. 사후의 영향력

코르불로는 로마군 내에서 강한 입지를 가지고 있던 인물이었고,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를 지지한 이들에게 충성스러운 행정가, 군인으로 찬사받았던 사람이었다. 따라서 67년 그가 반역 혐의를 의심받아 숙청된 사건은 피소 음모 사건으로 시작된 네로의 몰락에 큰 분기점이 되었다고 평가받는다. 또 네로가 군부의 지지를 잃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는 해석이 있는데, 이를 증명하듯 1년 후 가이우스 율리우스 빈덱스가 이 사건을 언급하면서 반기를 들었다. 그리고 빈덱스의 반란 후 네로는 몰락 후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이처럼 이후 황제가 되는 오토, 비텔리우스, 베스파시아누스와 비교했을 때 업적, 인망, 위상 면에서 압도적이었던 만큼 그가 살아있었으면 네로의 실각 이후에 그가 황제로 등극하거나, 그를 중심으로 정국이 빠르게 안정되어 내전을 피할 수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의 위명은 죽은 뒤에도 사그라들지 않아 도미티아누스가 영향력 강화를 위해 코르불로의 딸을 아내로 맞았을 정도였으니...

4. 미디어

HALO에서 등장하는 사관학교의 이름이 코르불로이다. 얼핏 사관학교라 볼수 있지만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군사고등학교에 가깝다. UNSC군의 장교들이 여기를 거쳐왔고 대체적으로 엘리트 코스를 밟는 교육기관으로 보인다. 게임속에서는 설정상에서만 등장해왔지만 영화 여명호를 통해서 토마스 라스키가 이곳을 나왔다는걸 알수 있다.

사관학교의 이름이 왜 코르불로인지는 영화 초반에 나오게 된다. 그리고 영화속에서도 그러하며 게임에서도 그러하듯이 서너 기수에 인력이 거의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코버넌트덕에 받는 관계로 사관학교는 한국전쟁 때 육사처럼 이동되어서 인재를 육성했을 것으로 보인다.
[1] 남프랑스 속주 출신이라는 말도 있지만, 이탈리아 반도에서 출생했다. [2] 세간에 막장 황제라고 알려지기는 했지만, 칼리굴라는 그간 장애를 이유로 정계에서 배제돼왔던 클라우디우스를 집정관에 임명하고 황족 여성과의 결혼을 주선하는 등 황숙 대접을 훌륭히 해준 편이다. 코르불로가 칼리굴라의 인척이자 측근이라고 해서 악감정을 가질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3] 이 두 군단병은 참호 공사 중 글라디우스를 차지 않고 맨몸으로 나왔다가 적 앞에서 무기를 버린 죄로 처형당했다. [4] 당시 로마는 브리타니아 원정 중이었다. [5] 그것도 그냥 전권을 준 것이 아니라 동방 총사령관으로 임명했다. 황제의 결재가 필요한 일도 그가 대리로 처리할 수 있는 사실상 후대의 부제와 동급. [6] 아르메니아는 로마와 파르티아가 충돌하는 고대 지중해의 대표적인 화약고였다. [7] 그녀의 이후 행적은 도미티아누스 항목을 참조. 도미티아 롱기나는 유부녀였으나 베스파시아누스가 군의 지지를 얻기 위해 아들과 결혼시켰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8] ἄξιος, 그리스어로 '합당하다', '적합하다'라는 뜻, 당시에는 경기 우승자가 상을 받을 때 관중들이 외치는 함성이었고, 동방정교회 사제 서품식에서도 서품을 선포할 때 주교가 외치는 선언문으로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