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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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사망자별 항공사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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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9.11 테러는 사고/테러의 중심 대상이 항공기가 아니었으며 항공기의 탑승자 수보다 건물과 지상의 사망자 수가 더 많았으므로 틀에서 제외함. | ||||||
<rowcolor=#ffffff> 순위 | 이름 | 사고 기종 | 사망자 수 | 사고 분류/원인 | 발생일 및 위치 | 비고 | |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1 | 테네리페 참사 |
보잉 747-121팬암 보잉 747-206BKLM |
583명 | 지상 충돌 / 조종사 과실 |
1977년
3월 27일 [[스페인| |
항공기 사고 사망자 수 1위 | |
2 |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 | 보잉 747SR-46 | 520명 | 벌크헤드 폭발 / 정비 불량 |
1985년
8월 12일 [[일본| |
단일 항공기 사고 사망자 수 1위 | |
3 | 차르키다드리 상공 공중 충돌 사고 |
보잉 747-168B사우디아 일류신 Il-76TD카자흐스탄 |
349명 | 공중 충돌 / 조종사 과실 |
1996년
11월 12일 [[인도| |
공중충돌 사고 사망자수 1위 | |
4 | 터키항공 981편 추락 사고 | 맥도넬 더글라스 DC-10-10 | 346명 | 화물칸 도어 폭발 / 기체 결함 |
1974년
3월 3일 [[프랑스| |
||
5 | 에어 인디아 182편 폭파 사건 | 보잉 747-237B | 329명 | 폭탄 테러 |
1985년
6월 23일 [[아일랜드| |
||
6 | 사우디아 항공 163편 화재 사고 | 록히드 L-1011-200 | 301명 | 기내 화재 |
1980년
8월 19일 [[사우디아라비아| |
불시착 후 항공기 전소 | |
7 | 말레이시아 항공 17편 격추 사건 | 보잉 777-2H6/ER | 298명 | 민항기 오인 격추 |
2014년
7월 17일 [[우크라이나| |
||
8 | 이란항공 655편 격추 사건 | 에어버스 A300B2-203 | 290명 | 민항기 오인 격추 |
1988년
7월 3일 [[이란| |
||
9 | 이란 일류신 Il-76 추락 사고 | 일류신 Il-76MD | 275명 | 불명 |
2003년
2월 19일 [[이란| |
사고 원인이 규명되지 않음 | |
10 | 아메리칸 항공 191편 추락 사고 | 맥도넬 더글라스 DC-10-10 |
271명탑승객 2명지상 |
엔진 이탈 / 정비 불량 |
1979년
5월 25일 [[미국| |
||
11 | 팬 아메리칸 항공 103편 폭파 사건 | 보잉 747-121 |
259명탑승객 11명지상 |
폭탄 테러 |
1988년
12월 21일 [[영국| |
||
12 |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 | 보잉 747-230B | 269명 | 격추 / 조종사 과실 |
1983년
9월 1일 [[소련| |
대한민국 항공사고 사망자 수 1위 | |
13 | 아메리칸 항공 587편 추락 사고 | 에어버스 A300-605R |
260명탑승객 5명지상 |
수직꼬리날개 이탈 / 비행규정 미비, 조종사 과실, 기체 결함 |
2001년
11월 12일 [[미국| |
||
14 | 중화항공 140편 추락 사고 | 에어버스 A300B4-622R | 264명 | 실속 / 조종사 과실 |
1994년
4월 26일 [[일본| |
||
15 | 나이지리아 항공 2120편 추락 사고 | 맥도넬 더글라스 DC-8-61 | 261명 | 공중 폭발 / 정비 불량 |
1991년
7월 11일 [[사우디아라비아| |
||
16 | 에어 뉴질랜드 901편 추락 사고 | 맥도넬 더글라스 DC-10-30 | 257명 | CFIT / 조종사 과실 |
1979년
11월 28일 [[남극| |
화이트아웃으로 인한 추락 | |
17 | 애로우 항공 1285편 추락 사고 | 맥도넬 더글라스 DC-8-63 | 256명 | 실속 / 날개 결빙, 과적, 조종사 과실 |
1985년
12월 12일 [[캐나다| |
||
18 | 말레이시아 항공 370편 실종 사건 | 보잉 777-2H6/ER | 239명 | 불명 |
2014년
3월 8일 인도양 해상(추정) |
항공기 실종으로 사고 원인이 규명되지 않음 | |
19 | 가루다 인도네시아 항공 152편 추락 사고 | 에어버스 A300B4-220 | 234명 | CFIT / 조종사 과실 |
1997년
9월 26일 [[인도네시아| |
||
20 | 트랜스 월드 항공 800편 추락 사고 | 보잉 747-131 | 230명 | 공중 폭발 / 기체 결함 |
1996년
7월 17일 [[미국| |
||
21 | 스위스에어 111편 추락 사고 | 맥도넬 더글라스 MD-11 | 229명 | 기내 화재 / 기체 결함 |
1998년
9월 2일 [[캐나다| |
||
22(공동) | 대한항공 801편 추락 사고 | 보잉 747-3B5 | 228명 | CFIT / 악천후, 조종사 과실, 공항 시설 낙후 |
1997년
8월 6일 [[괌| |
||
22(공동) | 에어 프랑스 447편 추락 사고 | 에어버스 A330-203 | 228명 | 실속 / 조종사 과실, 기체 결함 |
2009년
6월 1일 [[브라질| |
||
23 | 중화항공 611편 공중분해 사고 | 보잉 747-209B | 225명 | 공중분해 / 정비 불량 |
2002년
5월 25일 [[대만| |
||
24 | 코갈림아비아 항공 9268편 테러 사건 | 에어버스 A321-231 | 224명 | 폭탄 테러 |
2015년
10월 31일 [[이집트| |
||
25 | 라우다 항공 004편 추락 사고 | 보잉 767-3Z9(ER) | 223명 | 실속 / 기체 결함 |
1991년
5월 26일 [[태국| |
||
26 | 이집트 항공 990편 추락 사고 | 보잉 767-366/ER | 217명 | 자살 비행 |
1999년
10월 31일 [[미국| |
부기장의 고의 추락 | |
27 | 에어 인디아 855편 추락 사고 | 보잉 747-237B | 213명 | 실속 / 기체 결함, 조종사 과실 |
1978년
1월 1일 [[인도| |
||
28 | 중화항공 676편 추락 사고 | 에어버스 A300B4-622R |
196명탑승객 7명지상 |
CFIT / 조종사 과실 |
1998년
2월 16일 [[대만| |
||
29 | 아에로플로트 7425편 추락 사고 | 투폴레프 Tu-154B-2 | 200명 | 실속 / 조종사 과실 |
1985년
7월 10일 [[소련| |
||
30 | TAM 3054편 활주로 이탈 사고 | 에어버스 A320-233 |
187명탑승객 12명지상 |
활주로 이탈 / 조종사 과실, 활주로 배수 문제 |
2007년
7월 17일 [[브라질| |
활주로 오버런으로 인해 건물과 충돌 | }}}}}}}}} |
|
사고 전 1972년 2월에 맥도넬 더글라스 공장에서 공정 당시 찍힌 사진. |
|
사고 일주일 전, 프랑크푸르트 암마인 국제공항에서 찍힌 사진. |
|
사고 당시 사진. |
항공 사건 사고 요약표 | |
발생일 | 1974년 3월 3일 |
유형 | 설계 결함 |
발생 위치 |
[[프랑스| ]][[틀:국기| ]][[틀:국기| ]] 에르메농빌 숲 |
탑승인원 | 승객: 335명 |
승무원: 11명 | |
사망자 | 탑승객 346명 전원 사망 |
기종 | 맥도넬 더글라스 DC-10-10 |
항공사 | 터키항공 |
기체 등록번호 | TC-JAV[1] |
출발지 |
[[튀르키예| ]][[틀:국기| ]][[틀:국기| ]]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국제공항 |
경유지 |
[[프랑스| ]][[틀:국기| ]][[틀:국기| ]] 파리 오를리 공항 |
도착지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런던 히스로 공항 |
[clearfix]
1. 개요
|
신비한TV 서프라이즈의 영상.[2] |
Le vol Turkish Airlines 981, Vol 981 Turkish Airlines
1974년 3월 3일 파리 오를리 공항을 이륙해 런던 히스로 공항으로 향하던 터키항공 981편이 화물칸 도어 결함으로 추락해 탑승자 346명 전원이 사망한 사고이며 DC-10이 연루된 항공 사고 중 최악의 사고다. 또한 한국인 2명도 이 사고로 희생당했다.
이 사고는 사상 최악의 항공사고 4위이자 단일기 사고 2위[3]이며 인류 역사상 최초로 2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한 항공사고[4] 등의 여러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을 가지고 있고 맥도넬 더글라스의 파산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받는다.
2. 전조
1960년대 중반부터 미국의 대표적인 항공기 제작사인 보잉, 더글러스(1967년에 맥도넬과 합병), 그리고 록히드 간(현 마틴과 합병하며 록히드 마틴으로 변경)의 신형 광동체(廣胴體) 여객기 개발 경쟁이 시작되었다.[5]신형 광동체기 개발은 완전히 광란의 레이스 수준이었고 항공 시장은 유럽의 전후 복구로 인한 유럽인들의 여행수요 증가와 미국의 경제 대호황으로 인해 서민들까지 비행기 타고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기 때문에 가능해졌는데 수요가 종전의 3배 가량까지 늘어날 정도였다. 하지만 보잉 707 같은 협동체 비행기로는 한 번에 태울 수 있는 승객 수는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항공사들은 새롭고 더 많은 승객을 태울 수 있는 비행기를 항공기 제작사들에게 요구했다.
이 경쟁의 성패는 누가 더 먼저 차세대 대형 비행기를 먼저 내놓느냐에 달려 있었다. 출시만 한다면 바로 전세계 항공사들이 엄청나게 사갈 것은 뻔했고 이 시장을 선점하는 자가 돈방석에 앉게 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으며 이 광란의 개발 레이스의 산물로 나온 게 바로 DC-10이었다.
DC-10이 1등으로 나오고 그 유명한 보잉 747 점보기가 2등, 영국 롤스로이스 엔진 장착 문제로 꽤 진통을 겪던 록히드의 L-1011 트라이스타가 3등으로 시장에 나왔다. 최초로 나온 대형기, DC-10에 대한 항공사들의 관심은 엄청났으며 여러 회사에서 문의가 들어오고 아메리칸 항공, 유나이티드 항공 같은 곳에서는 수십 대를 바로 질러 버렸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 광속 개발과 양산 뒤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하나의 문제가 있었는데 바로 화물칸 문의 설계 오류였다.
원래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 뻔했다. (조종사의 실수를 제외한) 꽤 많은 수의 "기계 자체의 결함"에서 비롯된 항공사고들은 온갖 기상천외한, 즉 제작사가 상상도 못한 이유로 인해 사고가 터지지만 이 사고는 아니었다. 더글러스 사에게 하청을 받아서 비행기 후부동체를 제작하던 컨베어[6] 사의 공학자들은 설계도를 검토하면서 이 설계의 치명적인 문제점을 알아차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비행기는 화물칸이 안으로 열리는 구조였다. 안으로 열리는 구조는 문과 문틀 사이의 결합에 문제가 생겨도 어느 정도 보완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문의 크기가 문 틀보다 훨씬 크고, 비행기 내부의 높은 기압이 문을 계속 바깥쪽으로 밀어내기 때문에 잠금 장치가 고장 나더라도 문틈이 기압의 힘을 대신 버틸 수 있었다. 욕조 마개가 배수구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배수구가 좀 망가져도 배수구로 좀처럼 빨려나가지 않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잠금 장치가 고장 나더라도 웬만큼 심각해지지 않는 이상은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단점도 있었는데 문을 열고 닫기 위해서 문이 안쪽에서 움직일 만큼의 공간을 남겨둬야 하므로 그만큼 '화물 적재량이 줄어든다'는 것이었다. 당연한 것이, 문을 닫고 화물을 실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항공 수요가 늘어나면서 승객들도 늘어나고, 그들의 짐도 늘어나고, 화물도 늘어났으니 항공사 입장에서는 이 공간도 아까웠다. 따라서 맥도넬 더글러스 사는 항공사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DC-10의 화물칸 문이 '바깥쪽'으로 열리도록 설계하여 제작, 출시했다. 이 설계 덕에 항공사들은 문을 열고 닫는 데 낭비되던 공간에 화물 한 상자, 승객 가방 하나라도 더 실을 수 있었다.
이 때문에 DC-10과 경쟁기체인 B747, L-1011, A300등 모든 광동체 여객기는 화물칸 문이 밖으로 열리도록 설계하기 시작했고 (보잉 737 같은 몇몇 예외를 빼면) 이 방식은 상용 항공기 화물칸 문 설계의 표준이 되었다.
그러나 이 방식은 전술한 기존 문의 장점과 반대로 화물칸 문의 잠금 장치만으로 기압 차이를 감당해야 하는데 화물칸 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으면 높은 고도에서 비행기 내 외부의 기압 차이를 견디지 못하고 밖으로 밀려서 뜯겨 나간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2.1. 아메리칸 항공 96편 도어 탈락 사고
자세한 내용은 아메리칸 항공 96편 도어 탈락 사고 문서 참고하십시오.3. 참사 발생
1974년 3월 3일 승객 346명이 탄 터키항공 981편[7]이 프랑스의 파리 오를리 공항을 떠났다.[8] 이스탄불에서 출발한 981편에는 총 167명의 승객이 탑승했는데 파리에서 50명이 내려서 총 117명의 승객이 남아 있었다.원래 이 노선은 이 사고 사망자 수와는 달리 평소에는 거의 텅텅 비다시피 할 정도로 적은 승객이 탔는데, 이 무렵 영국유럽항공(BEA)[9]이 파업 중이었기 때문에 이 항공사가 터키항공의 표를 구해서 미래 BEA의 표를 예약했던 사람들이 이 비행기에 탈 수 있도록 했으며, 다른 항공사에 타려던 승객 일부도 거기에 합류해 무려 216명의 승객들이 파리에서 이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이 때문에 당시 333석이나 달하던 이코노미석은 만석이었으며, 일등석에는 단 2명만 타고 있었다고 한다.
이륙한 지 10분이 지난 후 약 10,000피트(3,048m)에 도달할 무렵 화물칸 문이 뜯겨나가고 객실과 화물칸 사이 압력 차이에 의해 객실 후부 바닥이 뚫리면서 6명이 좌석에 앉은 상태 그대로 밖으로 빨려나갔으며 동체에 거대한 구멍이 뚫리게 되었다.
|
당시 상황을 재현한 CG. |
폭발과 동시에 감압으로 인해 수많은 물건들과 일본인 승객 6명이 비행기에서 빨려 나가버렸다. 공기가 빠져나가고 승객들의 비명이 들리는 혼란 속에서 조종사들은 왼쪽으로 기울어 급하강하기 시작하는 DC-10을 살리려고 갖은 노력을 다 했으나[10] 실패했다.
물론 화물칸 폭발로부터 겨우 16초 후에 두 조종사[11]가 정신을 차리고 비행기를 조종하기 시작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공기가 빠져나가면서 앞은 잘 보이지도 않고, 귀를 찢는 소음이 들리고 온갖 물건들이 조종실 문을 넘어 밖으로 빨려나가는 등 눈도 제대로 뜨기 어려운 상황에서 공황에 빠지지 않고 정신을 제대로 차린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981편은 96편보다 승객들이 훨씬 많아서 객실 바닥이 무너질 때 생긴 충격도 훨씬 컸기 때문에 기체 뒤편의 유압 케이블 등이 모두 박살나면서 비행기를 조종하는 데 필요한 유압을 모두 상실해 버려 조종사들은 비행기를 조종할 수 없었다.
결국 이 기체는 프랑스의 국유림 에메노빌에 시속 800km에 가까운 엄청난 속도로 그대로 추락했다. 워낙 빠른 속도로 추락한 탓에 생존자는 고사하고 온전한 시신들은 거의 없었다. 육안으로 확인이 되는 시신 40구에 불과했고 그나마도 9구는 신원 확인이 불가했다. 현재도 시신이 심하게 손상되면 감식에 상당한 시일이 걸리는 마당에 DNA 감식 기술이 없었던 1970년대였으니 신원확인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12]
이 사고로 사망한 사람들 중에는 1964 도쿄 올림픽의 400m 허들 및 400m 릴레이로 은메달을 딴 영국인 육상선수 존 쿠퍼(John Cooper, 1940~1974)도 있었다.[13]
[14]
위 사진 외에도 검색해 보면 여러 사진이 나온다. 그 중에는 사고로 사망한 시신이 적나라하게 나오는 사진도 있으니 그런 것에 약하면 보지 않는 게 좋다.[15]
4. 조사
|
당시 DC-10의 문 설계도. |
아메리칸 96편 사고의 수사관이었던 척 밀러는 조사에 참여하자마자 AA96편과 비슷한 사고라는 사실을 깨달았으며 크게 분노해 현장을 취재하러 온 폴 에드 기자가 왜 문이 떨어졌는지 알겠냐고 묻자 온타리오 윈저(아메리칸 96편 사고가 일어난 곳)를 살펴보라는 말을 하고 프랑스 조사팀에 합류했다.
프랑스 조사관들도 밀러의 의견에 동의했고 이제 조사팀의 초점은 981편의 화물칸 문에 맞춰졌다. 비행기의 화물칸 문은 제대로 닫히지 않았고 AA96편과 똑같은 사고였다. 밖에서 보기에는 잘 닫힌 것처럼 보였지만 화물칸 문은 제대로 닫히지 않았고 실제로는 아예 반쯤 열린 상태였다. 조금만 압력이 가해져도 그냥 툭 열리고 날아갈 정도로 약하게 닫혔다. 오히려 그간 DC-10으로 했던 여러 비행에서 단 한 번밖에 문제가 안 생겼다는 것이 더더욱 기적으로 보이는 셈이었다.
그렇다면 왜 맥도넬 더글라스 사는 문제점을 개선하지 않았던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당시 미 연방항공국(FAA)과 맥도넬 더글라스 사의 상층부 간에 맺어진 신사협정 때문이었다. NTSB는 조사 및 개선점을 권고할 권한만 있었고 후속 조치를 실시하는 건 FAA의 일이었으나 이 신사협정 때문에 FAA가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고 맥도넬 더글라스도 도덕적 해이를 저지른 것이다.
사실 그들이 "개량"하기는 했지만 그게 밖에서 문이 잠겼나 확인할 수 있는 조그만 아크릴 창 단 하나뿐이란 게 문제였다. 하지만 이 창은 별 쓸모가 없었다. 지상근무 직원들 중에 이 창을 보라고 교육받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거니와 심지어 수사관들이 화물칸 문에 난 창이 무엇에 쓰는지 혹시 아냐고 묻자 "이 창이 뭐 하는데 쓰는 겁니까?"라고 되물은 사람도 있었다. 지상 직원들 중 화물칸 문의 잠금 상태를 확인하는 법을 배운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이 창 옆에 쓰여 있던 안내문은 오직 "영어로만" 쓰여 있었기 때문에 공항 직원 중에서도 승객이나 승무원, 조종사를 직접 대하여 영어를 알아들을 가능성이 높은 직원들에 비해 짐을 싣고 옮기는 일을 하는, 즉 화물칸 문을 직접 열고 닫는 직원들은 상대적으로 영어를 잘 못 하기 때문에 안내문을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도 높았다. 비유하자면 한국 길거리에 튀르키예어로 주의 표지판을 붙여 놓은 셈이다.
설계 과정에서 컨베어 사가 압력 실험을 한 결과 화물칸 문이 일정한 기압차에서 버티지 못하고 떨어져 나가는 것을 확인했다. 이에 맥도넬 더글라스에게 화물칸 설계가 잘못됐다는 보고를 보냈지만 ' 더글라스 사는 이를 알면서도 무시했다'는 사실이 조사 과정에서 드러났고 여기에 에드 기자가 애플게이트의 메모를 공개하면서 모든 정황이 드러나면서 맥도넬 더글라스는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당시 희생자 중 한 명인 웬디 홀의 남편인 로버트 홀은 NGC와의 인터뷰에서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거대 기업인 맥도널 더글러스가 돈 때문에 사람들의 목숨을 팽개치다니요. 그걸 듣자 전 이 사고가 사고라고 부를 수도 없다는 걸 알게 됐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그 일이 단순한 사고라고만 생각하고 있지만요."라고 말했다.
5. 사고 이후
사고 희생자들의 유해는 훼손이 너무 심했기 때문에 유족에게는 유품만을 건네줄 수밖에 없었고 유해는 모아서 화장한 후 그 재와 소독한 현장의 흙을 유족들에게 나눠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미 상원이 NTSB를 소환한 청문회에서 모든 문제의 원인이 맥도넬 더글라스 사의 도덕적 해이라는 것이 밝혀진 후 맥도넬 더글라스 사는 최악의 시기를 겪었다. 미 연방 법원에서는 당시 돈으로 6천 5백만 달러(2023년 환율로는 약 3억 9300만 달러)가 넘는 금액을 벌금으로 부과했으며 설상가상으로 수많은 유족들이 건 엄청난 소송에서 연달아 패소해서 수많은 유족들에게 거액을 배상해야 했고 터키항공에게도 막대한 보상금을 지불해야 했다.
터키항공은 이 사건에선 그저 설계 불량이 있는 줄 모르고 비행기를 임대했다가 승객과 직원들 그리고 회사의 자산을 잃은 피해자였을 뿐이고 이들의 잘못은 전무했으며 심지어 이 비행기의 전 소유주는 일본의 기업인 미쓰이 그룹으로 원래대로라면 전일본공수의 국내선 용으로 쓰였을[16], 즉 원래 터키항공에 갈 비행기도 아니었는데 록히드의 뇌물 공세로 인해 전일본공수가 DC-10 대신에 록히드 사의 L-1011로 발주를 변경하면서 졸지에 거의 다 만들어진 상태에서 재고가 된 사고기가 1972년 12월 10일에 터키항공으로 리스(임차)되었다.[17]
맥도넬 더글라스 사는 이 사건으로 인해 주식이 반토막났고 자사를 향한 항공사들의 불신으로 꽤 오랫동안 재정 위기를 겪었다. 비록 철저한 개량을 마치고 완벽해진 DC-10이 여전히 경제성 있고 조종하기 편한 항공기로 평가받으면서 나름대로 선전했지만[18][19] 결국 보잉 747의 아성을 꺾지 못하고 마지막 회심의 역작으로 출시한 후계기 MD-11은 시대착오적이라는 혹평을 받으면서 보잉 777과 신흥 강자로 떠오르던 에어버스의 A330에 완전히 밀리면서 1997년에 비실거리던 맥도넬 더글러스[20]는 보잉에 합병되어 그 긴 역사를 끝냈다.[21]
|
|
사고 현장에 세워진 추모비. 프랑스어로 "1974년 3월 3일에 있었던 대참사의 희생자들을 기리며."라고 적혀 있다. |
같은 유형의 사고로는 위의 AA96편 사고 말고도 유나이티드 항공 811편 사고가 있는데 이 사고도 화물칸 도어 결함으로 인해 비행 중 전방 동체가 찢겨나갔고 981편 사고와는 달리 비상착륙에 성공했지만 9명이 밖으로 빨려나가 사망했다. 981편 사고의 더글라스와 달리 보잉은 811편 사고 발생 전부터 화물칸 잠금장치 설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해 화물칸 부품 교체를 할 것을 요청했으나, FAA는 미국 항공사들에게 18-24개월의 교체 유예기간을 주었고 유나이티드 항공은 유예기간을 꽉 채워 교체하려다 사고를 내고 말았다.
사고 이후 TK981편은 북키프로스 → 안탈리아행으로 운항하고 있으며 이스탄불 → 파리 노선은 TK1821, TK1823, TK1825, TK1827으로, 이스탄불 → 런던 노선은 TK1971, TK1979, TK1983, TK1985, TK6193으로 변경되었고 A320 패밀리, A330, A350, 보잉 777이 투입된다.
6. 관련 문서
7. 둘러보기
역대 프랑스의 대형 사고 및 참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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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일 | <colcolor=#000> 사망 | 사건명 |
2021년 11월 25일
|
31 | 프랑스 난민선 침몰 사고 |
- [ 201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 사망 사건명 2016년 7월 14일86 2016년 니스 테러 2015년 11월 13일130 2015년 11월 파리 테러 2015년 10월 23일43 퓌스갱 버스 정면 충돌 사고 2015년 3월 24일150 저먼윙스 9525편 추락 사고 2014년 7월 24일116 49 에어 알제리 5017편 추락 사고
- [ 200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 사망 사건명 2009년 6월 1일228 에어 프랑스 447편 추락 사고 2007년 8월 9일20 에어 무레아 1121편 추락 사고 2007년 7월 22일26 2007년 라쁘리 램프 버스 추락 사고 2004년 1월 3일148 132 플래시 항공 604편 추락 사고 2003년 5월 17일28 2003년 리옹 독일 관광객 버스 사고 2001년 9월 21일31 툴루즈 AZF 공장 폭발 사고 2001년 3월 24일20 에어 카리브 1501편 추락 사고 2000년 7월 25일113 에어 프랑스 4590편 추락 사고
- [ 199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 사망 사건명 1998년 10월 8일21 로카호 침몰 사고 1998년 9월 2일229 41 스위스에어 111편 추락 사고 1999년 7월 31일20 생 테티엔 앙 드볼뤼 케이블카 추락사고 1999년 3월 24일39 몽블랑 터널 화재 1996년 7월 17일230 40 트랜스 월드 항공 800편 추락 사고 1995년 7월 10일23 호끄모흐 버스 전복 사고 1992년 1월 20일92 에어 인터 148편 추락사고 1991년 6월 27일21 바르보탄 온천 화재
- [ 198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 사망 사건명 1989년 9월 19일170 UTA 772편 폭파 사건 1989년 4월 10일22 EAS 602편 추락 사고 1988년 6월 27일56 파리 리옹역 열차 충돌사고 1988년 3월 4일23 TAT 230편 추락 사고 1985년 8월 31일43 아르젠 통 쉬르 크뢰즈 열차 충돌 사고 1985년 8월 3일35 플로작 열차 충돌 사고 1985년 2월 25일22 사이먼 샤프트 붕괴 사고 1983년 10월 23일307 58 베이루트 미군 숙소 테러 1982년 9월 11일46 23 만하임 미 육군 CH-47c 추락 사고 1982년 7월 31일53 본 버스 충돌사고 1981년 12월 1일180 이넥스 아드리아 1308편 추락 사고
- [ 197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 사망 사건명 1979년 10월 19일21 프랑스 세메악 스페인 관광객 버스 사고 1979년 1월 8일51 위디 아일랜드 참사 1978년 7월 11일217 80 로스 알파케스 참사 1977년 11월 25일32 베지에 노르 2501 노라트라 추락 사고 1975년 8월 2일145 1975년 프랑스 A10 도로 교통 체증 1975년 4월 2일29 1975년 라쁘리 램프 버스 추락 사고 1974년 12월 27일42 리에방 광산 폭발 사고 1974년 3월 3일346 터키항공 981편 추락 사고 1973년 7월 22일78 팬 아메리칸 항공 816편 추락 사고 1973년 7월 18일43 1973년 라쁘리 램프 버스 추락 사고 1973년 7월 11일123 바리그 820편 화재 사고 1973년 3월 5일68 낭트 상공 공중충돌 사고 1973년 2월 6일20 에두와르 파예롱 대학교 방화 사건 1972년 10월 27일60 에어 인터 696편 추락 사고 1972년 6월 15일108 비에르지 터널 붕괴 사고 1971년 7월 30일37 포 노르 2501 노라트라 추락 사고 1971년 1월 21일21 프랑스 공군 노르-262 추락 사고 1970년 12월 31일30 루소 항공 노르 262E 추락 사고 1970년 11월 1일146 클럽 5-7 화재
- [ 196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 사망 사건명 1969년 12월 3일62 1969년 에어 프랑스 212편 추락 사고 1968년 9월 11일95 에어 프랑스 1611편 추락 사고 1968년 3월 5일63 1968년 에어 프랑스 212편 추락 사고 1968년 1월 17일52 라 미네르브호 침몰 사고 1967년 6월 3일88 에어 페리 DC-4 추락 사고 1966년 1월 24일117 에어 인디아 101편 추락 사고 1965년 2월 1일21 1965년 리에방 광산 폭발 사고 1964년 10월 2일80 UTA DC-6 추락 사고 1963년 9월 11일36 페르피냥 항공기 참사 1962년 12월 29일25 에어 노틱 보잉 SA.307 추락 사고 1962년 6월 22일113 에어 프랑스 117편 추락 사고 1962년 6월 3일132 에어 프랑스 007편 추락사고 1961년 10월 7일34 더비 에어웨이즈 C-47 추락 사고 1961년 6월 1일21 클라마트 채석장 붕괴 사고 1961년 9월 12일77 에어 프랑스 9005편 추락 사고 1961년 6월 18일24 비트르르프랑수아 열차 탈선 사고 1961년 5월 10일78 에어 프랑스 406편 추락 사고 1960년 8월 29일63 에어 프랑스 343편 추락 사고
- [ 195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 사망 사건명 1959년 12월 2일421 말파셋 댐 붕괴사고 1957년 11월 10일27 생폴 버스 전복 사고 1957년 7월 19일30 볼렝느 크로아지에르 역 열차 충돌 사고 1959년 9월 24일54 TAI 항공 307편 추락 사고 1957년 4월 8일32 에어 프랑스 DC-3 추락 사고 1956년 11월 24일34 LAI 항공 451편 추락 사고 1956년 2월 20일52 TAI 230편 추락 사고 1955년 6월 11일84 1955년 르망 24시 참사 1954년 3월 4일20 미 공군 C-47 추락 사고 1953년 9월 1일42 에어 프랑스 L742-A 추락 사고 1953년 6월 16일34 라오스 에글 아쥐르 DC-3 추락 사고 1953년 4월 16일30 베트남 에글 아쥐르 DC-3 추락 사고 1952년 3월 3일38 에어 프랑스 SNCASE 추락 사고 1951년 11월 13일36 미 공군 페어차일드 C-82A 추락 사고 1951년 11월 3일48 에어 인디아 245편 추락 사고 1951년 9월 12일39 STAAP DC-3 추락 사고 1951년 8월 24일23 산뤼시르니에드역 열차 충돌 사고 1950년 12월 8일46 TAI DC-4 추락 사고 1950년 11월 13일58 커티스 리드 플라잉 서비스 DC-4 추락 사고 1950년 7월 29일26 CAT 브리스톨 170 추락 사고 1950년 7월 9일22 모로코 에글 아쥐르 DC-3 추락 사고 1950년 6월 12일46 에어 프랑스 DC-4 추락 사고 1950년 2월 10일20 릴흐 슈흐 탄 열차 충돌 사고
- [ 194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 사망 사건명 1949년 10월 28일48 에어 프랑스 AF009편 추락 사고 1949년 8월 25일82 랜디스 산불 1949년 2월 18일43 Port-d'Atelier열차 충돌 사고 1948년 8월 1일52 에어 프랑스 Latécoère 631 추락 사고 1974년 12월 27일42 리에방 광산 폭발 사고 1947년 12월 3일20 파리-투르코잉 열차 탈선 사고 1947년 7월 28일33 오션 리버티호 폭발 사고 1947년 5월 27일48 이오플렛 열차 충돌 사고 1947년 3월 14일23 에어 프랑스 DC-3 추락 사고 1946년 11월 12일32 레비니역 열차 충돌 사고 1946년 11월 1일23 Ju-52 추락 사고 1945년 9월 21일30 로망 쉬르 이제르 열차 충돌 사고 1946년 9월 4일20 에어 프랑스 DC-3 추락 사고 1946년 9월 3일22 에어 프랑스 DC-3A 추락 사고 1945년 1월 17일100+ 생 발레히 열차 충돌 사고 1944년 11월 1일24 캉브레 니에즈니 미 공군 DC-3 추락 사고 1944년 11월 1일20 셍샤몽 미 공군 DC-3 추락 사고 1944년 9월 9일871+ 사디 카르노 대피소 폭발 사고 1944년 6월 6일22 영국 공군 DC-3 추락 사고 1943년 11월 23일24 누벨칼레도니 미 공군 C-47 추락 사고 1943년 10월 6일32 샬롱 쉬흐손 열차 탈선 사고 1943년 6월 8일24 누벨칼레도니 미 해군 DC-3 추락 사고 1942년 9월 27일25 에어 프랑스 D.342 추락 사고 1942년 1월 9일301 라모히시에호 침몰 사고 1942년 1월 6일20 주미에르호 침몰 사고 1941년 12월 28일47 라 고흐그 열차 충돌 사고 1941년 11월 2일20 파리-아우스터리츠역 열차 충돌 사고 1940년 9월 28일34 하이리쿠르 광산 폭발 사고 1940년 5월 18일53 모르그니 역 열차 충돌 사고 1940년 5월 4일33 오리야크-파리 열차 탈선 사고 1940년 1월 20일108 오라지오호 화재
- [ 193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 사망 사건명 1939년 9월 2일35 오브레 역 열차 충돌 사고 1938년 10월 28일73 누벨 갤러리 화재 1937년 7월 30일29 빌뇌브 생 조르주 열차 충돌 사고 1936년 11월 16일53 생 샤마스 분말 공장 폭발 사고 1933년 12월 23일204 뽕뽄느 열차 추돌사고 1933년 10월 24일37 생 테리에 열차 충돌 사고 1932년 5월 15일54 조르지 필리파호 화재 1931년 7월 14일400+ 생 필리에르호 침몰 사고 1930년 10월 5일48 R101호 추락사고
- [ 192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 사망 사건명 1927년 8월 25일22 몽탕베르 열차 충돌 사고 1922년 8월 1일33 빌콤탈 열차 충돌 사고 1921년 10월 5일28 바티뇰 터널 열차 충돌 사고 1921년 9월 10일39 에셰츠 열차 충돌 사고 1921년 6월 25일29 보쿠르 하멜 열차 탈선 사고 1920년 10월 9일44 우이예 열차 충돌 사고 1920년 1월 12일575 아프리카호 침몰 사고
- [ 191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 사망 사건명 1919년 9월 4일20 조리역 열차 충돌 사고 1919년 11월 3일20 퐁쉬르욘역 열차 충돌 사고 1919년 4월 17일20 크리세역 열차 충돌 사고 1918년 12월 6일74 로티에르역 열차 충돌 사고 1918년 12월 5일20 무릉 쉬르 루아르역 열차 충돌 사고 1918년 9월 19일28 파시 터널 열차 충돌 사고 1918년 8월 10일24 솔레스 열차 충돌 사고 1918년 3월 11일60 ~ 70 볼리바르역 압사 사고 1917년 12월 12일675 생 미셸 드 모린 열차 참사 1917년 4월 16일42 헤르신-쿠피니 광산 폭발 사고 1917년 2월 13일26+ 영국군 보급 열차 충돌 사고 1916년 1월 12일104 디슈 퐁 탄약고 폭발 사고 1914년 9월 15일40 마른강 열차 탈선 사고 1914년 8월 23일79 생로랄 열차 충돌 사고 1913년 11월 4일41 멜룬 열차 충돌 사고 1912년 9월 3일79 디비옹 광산 폭발 사고 1912년 4월 14일 ~ 4월 15일1514 29 타이타닉호 침몰 사고 1911년 9월 25일286 리베르테호 폭발 사고 1910년 8월 14일38 소종 열차 사고 1910년 6월 18일23 빌프뢰 열차 충돌 사고
- [ 1900년대 이전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 사망 사건명 1907년 8월 4일27 퐁드쉐 교량 붕괴 사고 1907년 3월 4일120 예나호 폭발 사고 1906년 3월 10일1099+ 코리에르 탄광 참사 1905년 11월 17일125 힐다호 침몰 사고 1903년 8월 10일84 파리 지하철 화재 1902년 9월 27일26 알뢰 열차 탈선 사고 1897년 5월 4일126 파리 자선 바자회 화재 1895년 2월 3일28 생 외제니 광산 화재 1887년 5월 25일84 오페라 코미크 화재 1886년 6월 24일23 생 찰스 광산 폭발 사고 1885년 1월 14일28 리에벵 광산 폭발 사고 1881년 9월 5일22 샤랑통역 열차 충돌 사고 1872년 11월 8일41 생 외제니 광산 사고 1871년 3월 8일20 뿌뛰역 열차 충돌 사고 1871년 2월 5일80+ 방돌역 열차 폭발 사고 1867년 12월 12일89 Cinq Sous 광산 화재 1866년 1월 11일220 런던호 침몰 사고 1859년 8월 10일29 생 조셉 광산 폭발 사고 1855년 12월 22일29 Cinq Sous 광산 화재 1850년 4월 16일226 앙제 다리 붕괴사고 1842년 5월 8일55 뫼동 열차 참사 1830년 5월 31일30 1830년 생 루이 광산 폭발 사고 1827년 2월 7일46 1827년 아니체 참사 1824년 6월 26일20 1824년 슈프르 광산 화재 1823년 4월 9일22 1823년 슈프르 광산 화재 1794년 8월 31일530 ~ 650 그루넬 공장 폭발 사고
[1]
원래는
전일본공수에 인도될 예정이었으나 후술할 이유로 터키항공이 임차하게 되었다.
[2]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영상이다.
[3]
1위는 탑승자 524명 중 520명이 사망한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다.
[4]
참고로 터키항공 981편 이전까지 최다 사망자를 낸 항공 사고는 1973년 1월 22일에 발생한
카노 에어 참사로, 이 사고에서는 총 176명이 사망했다. 터키항공 981편 사망자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5]
1960년대 후반부터 해외여행이 대중화 했기 때문이다.
[6]
Convair,
CV-880/990의 제작사로 유명하다.
[7]
이스탄불발
런던행으로 파리를 중간에 경유했다.
[8]
파리 샤를 드골 국제공항이 개항하기 닷새 전이다.
[9]
사고로부터 28일 후에 당시 영국의
플래그 캐리어이던
영국해외항공(BOAC)과 합병되어 오늘날의
영국항공이 되었다.
[10]
하강하면서 속도를 얻어 기수가 올라가자 그걸 이용해 고도를 올리려고 시도했다.
[11]
기장은 네자트 베르코즈로 비행시간만 7,000시간이 넘었던 베테랑 조종사였다.
[12]
188구는 지문, 치열, 옷과 소지품 등으로 신원을 알아냈으나 나머지 시신들은 수습조차 못했을 정도로 심하게 훼손되었다.
[13]
참고로 이 사고에서 영국인들이 가장 많이 희생당했다.
[14]
뜯겨져 나간 문 안에 보이는 형상은 조사 및 현장 수습을 진행하고 있는 인원 중 한 명으로 시신이 아니다.
[15]
당시 사진기술 상 화질이 구리고 대부분 흑백이라 생각보다 거부감은 덜하지만 사고 당시 흩뿌려지고 널브러진 잔해와 시신의 모습이 보기에 따라 섬뜩할 수 있다.
[16]
그래서 기체 등록번호도 TC-JAV이다.
[17]
참고로 이 과정에서 미쓰이가 소유하던 총 5대의 DC-10 중 총 3대(사고기 포함)가 터키항공에게 갔고 나머지 2대는 레이커 항공(Laker Airways, 1966년부터 1982년까지 존속한 영국의 저비용 항공사)에게 갔다.
[18]
이 중엔
대한항공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다섯 대 중에서
앵커리지 국제공항 지상충돌 사고,
대한항공 803편 추락 사고로 인해 두 대의 DC-10을 잃었다. 다만 저 사고들은 기체 결함이 아닌 조종사 과실로 인해 일어났다.
[19]
다만
1979년에는 25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초대형 사고를 2번이나, 그것도 반년 간격으로 내면서(
아메리칸 항공 191편 추락 사고,
에어 뉴질랜드 901편 추락 사고) 겨우 회복한 이미지를 또다시 깎아먹기는 했다. 물론 이 두 사고도 기체 결함이 아닌 각각 정비불량과 화이트아웃으로 인한 사고다.
[20]
맥도넬사와 합병했다.
[21]
아이러니하게도 보잉도 2020년대 중반 들어 사건사고들이 연달아 터지는 등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