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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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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이병철
(1938~1987)
제2대
이건희
(1987~2018)
제3대
이재용
(2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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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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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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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2010~2014)
직무 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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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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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2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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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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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 경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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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대의 각 해마다 시사저널이 각 분야의 전문가 1000명에 칸타퍼블릭과 함께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을 선정했으며, 최대 3명까지 중복응답이 가능하였다. 해당 틀에는 1위만 기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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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rowcolor=white> 2015 2016 2017 2018 2019
이건희 이재용
같이 보기: 한국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종합) / 여권 정치인 / 야권 정치인 / 법조인 / 경제인 / 언론인 / 문화예술인 / 연예인 / 스포츠 스타 / 종교인 / 국제 인물 / NGO 지도자 / 잠재력 있는 정치인 / 대통령에 영향력 있는 인물 / 언론매체
연도별 보기: 1990년대 / 2000년대 / 2010년대 / 202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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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대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 경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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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대 각 해마다 시사저널이 각 분야의 전문가 1000명에 칸타퍼블릭과 함께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인'을 선정했으며, 최대 3명까지 중복응답이 가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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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같이 보기: 한국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종합) / 정치인(종합) / 여권 정치인 / 야권 정치인 / 법조인 / 경제인 / 언론인 / 문화예술인 / 연예인 / 스포츠 스타 / 대통령에 영향력 있는 인물 / 언론매체
연도별 보기: 1990년대 / 2000년대 / 2010년대 / 202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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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428A0><colcolor=#fff> 삼성그룹 제3대 총수
이재용
李在鎔|Lee Jae-yong
파일:이재용_삼성.jpg
출생 1968년 6월 23일 ([age(1968-06-23)]세)
미국 워싱턴 D.C.[1]
거주지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동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본관 경주 이씨 (慶州 李氏)[2][3]
직업 기업인
현직 삼성 총수
삼성전자 회장
학력 경기국민학교 (졸업)
청운중학교 (졸업)
경복고등학교 (졸업 / 62회)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 동양사학[4] / 학사)
게이오기주쿠대학 대학원 ( 경영학 / MBA[5])
하버드 대학교 ( 경영학 / 박사과정 수료)
부모 아버지 이건희, 어머니 홍라희
친인척 조부 이병철, 외조부 홍진기
형제자매 여동생 이부진, 이서현, 이윤형
자녀 아들 이지호
이원주
신체 182cm|84kg| B형
병역 전시근로역 ( 추간판 탈출증)[6][7]
종교 무종교[8]
재산 85억 달러 (한화 약 11조 9,600억원)[9]
약칭 JY
서명
파일:Lee_Jaeyong Signature.svg

1. 개요2. 생애
2.1. 성장기2.2. 삼성그룹 입사 ~ 부회장2.3. 회장 취임 이후
3. 경영 능력
3.1. 긍정적
3.1.1. 부회장 재임 시절
3.2. 경영권 세습 포기 선언3.3. 부정적
3.3.1. e삼성3.3.2. 회장 취임 이후
4. 경력 및 약력5. 가족관계6. 스포츠 관련
6.1. 야구 직관 성적6.2. 축구 직관 성적
7. 어록8. 논란 및 사건 사고9. 여담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 기업인. 삼성그룹 총수 겸 삼성전자 회장.

2. 생애

2.1. 성장기

파일:삼성_이건희_일가.jpg
삼성 이재용 일가
파일:IMG_20210629_203745_985.png
삼성 이재용 어린 시절
파일:이재용 학창시절.jpg
삼성 이재용 학창 시절

1968년 6월 23일, 삼성 창업주 이병철의 손자이자, 홍진기의 외손자, 이건희 홍라희의 장남이자 맏이로 태어났다. 경기초등학교, 청운중학교, 경복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87학번)를 졸업했다. 이후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출신 대학인 와세다대학 소케이 라이벌인 일본 게이오기주쿠대학 MBA를 취득했고 이로 인해 일본에서 게이오 출신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10],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11]

대학 진학 당시 일화로, 조부 이병철이 " 경영학은 나중에도 금방 배울 수 있기 때문에[12] 인간을 이해하는 폭을 넓힐 수 있는 인문학을 전공하라"라고 권유해 동양사학과에 입학했다고 한다.[13][14] 사족으로 흔히 인문학이나 역사를 배우라는 말을 그냥 취미 생활한다는 듯 듣는 경우도 있지만, 한편으론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인간' 자체에 대해 알 수 있다기보단 인류가 현재까지 구축해 온 여러 '사회'의 변화상과 그 메커니즘을 알 수 있기에, 그를 바탕으로 현대 사회를 바라보는 본인 나름대로의 관점과 통찰력이 좀 더 빨리 확립되고 심화 발전할 가능성이 높아지긴 한다. 이병철이 이런 걸 노리고 손자의 인문학 공부를 추천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학부를 다니면서 중국이나 일본 등 다양한 나라의 역사를 공부했을 것으로 보인다.[15]

입학 이후 이재용의 대학 생활은 이건희- 홍라희 부부의 자녀 교육 방식이 그러했는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재벌집 도련님하곤 상당히 거리를 두고 학교에서는 또래 동급생들과 함께 생활하게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단 학적부처럼 아버지 직업란을 적는 곳이 있으면 회사원으로 기입했다고 한다.[16] 물론 금방 주변인들에게 그의 집안이 알려졌지만, 그래도 처음에는 회사원이라고 알려진 덕에 인간관계의 첫단추를 잘 꿰었다는 평이 있다. 또 1980년대 당시 서울대 인문계열 학과 대다수의 분위기가 그랬지만 동양사학과는 특히 운동권으로 유명한 학과였다고 한다. 사회주의 국가 중국을 공부하려 오는 학생들도 상당히 많았다고 한다. 이러다 보니 당연히 학과 자체가 급진적인 운동권적 성향이 강했다.

대학에 입학한 1987년 6월 항쟁 당시 같은 과 1년 선배 최영인과 연인인 척 손을 잡고 시위에 참가해 최루탄 맛을 경험했고, 전방 입소 거부 투쟁에 동참하기도 했다. 학생운동이 활발하던 당시 대학생이라면 크게 낯설진 않은 풍경이기도 하지만[17], 재벌가 3세가 그런 행동을 한다는 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것이기도 했다. 과 MT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해 당시 동기들과 각종 논쟁과 토론도 즐겼다고 한다. 당시 동기생들에게 이재용은 '남에게 폐 안 끼치고 누구한테도 싫은 소리 듣지 않으려고 노력하던 모범생' 이미지였다고. [그사람] 이재용, 이 사람이 아버지를 이기는 길

그 외 그 역시 평범한 당시 20대 청년답게 흠모하던 여학생과 몇개월 연애도 해보고, 청년 시절 승마 선수로 활동했던 경력을 살려 상무에 입대할지 아님 학사장교로 입대할지 등 병역 문제 고민도 했다고 한다. 허나 결국은 1991년 11월 허리 디스크로 면제됐다.

2.2. 삼성그룹 입사 ~ 부회장

1991년 12월 삼성전자에 입사하면서 본격적으로 경영을 배우기 시작했고, 이후 삼성전자 내에서 경영기획팀 상무보, 경영기획팀 상무, 전무, 부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 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 등을 역임하며 승진했다.

1998년 조미료 미원으로 유명한 대상그룹 명예회장 임창욱의 장녀이자 9살 연하의 임세령과 결혼했지만 2009년 합의 이혼했다. 현재 임세령 대상그룹의 부회장으로 재직 중이다. 그리고 2005년에는 막내 여동생 이윤형이 유학 중 자살하는 가정사도 겪게 된다. #

2014년 부친 이건희가 병으로 입원한 이후 삼성의 실질적인 총수가 되었다. 2015년 5월 15일 삼성생명공익재단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에 선임되었다. 그리고 2016년 갤럭시 노트7 폭발 사고 이후 책임을 지고 등기이사의 자리에 올라 본격적으로 경영일선에 뛰어들었다.

2018년 5월 삼성 공정거래위원회에 대기업집단 지정 자료를 제출할 때 총수를 종전대로 이건희 회장으로 유지하는 게 맞다는 의견을 공정위에 제시하였지만 공정거래위원회가 공정거래법에 따라 지정하는 삼성의 '동일인'(총수)을 이건희 삼성 회장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 바꿨다.

2020년 10월 25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별세하면서 ‘이재용 시대’가 본격 개막했다. 국정농단 의혹으로 감옥에 수감되는 등 여론이 좋진 않아 삼성전자 부회장에 머물렀다.

2.3. 회장 취임 이후

세간의 예상대로, 2022년 10월 27일 삼성전자 이사회를 통해 회장 승진안이 의결되었고 삼성전자 창립기념일인 11월 1일에 취임식을 진행하여 회장 직위로 재임하였다. # 이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으로 취임한 지 35년, 사망한 지 2년 만이다.

이재용은 별다른 취임식이나 행사를 진행하지 않고 당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삼성물산- 제일모직 합병 관련 공판에 출석한 자리에서 “제 어깨가 많이 무거워졌다. 국민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신뢰받고, 더 사랑받는 기업을 만들겠다. 많은 국민들의 응원 부탁드린다"는 소감을 밝혔다.

2022년 광복절 사면으로 등기이사 등재도 가능해졌지만, 등기이사로 선임되지는 않았는데 아직 삼성물산 삼성바이오로직스 관련 재판이 남아 있다는 점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3. 경영 능력

3.1. 긍정적

3.1.1. 부회장 재임 시절

이건희가 갑작스레 쓰러지고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그룹 경영 총괄에 나서며 일각의 우려를 받았으나, 부회장 시절 당시에는 삼성을 대체로 잘 이끈다는 평을 받았다.

부회장 취임 직후에 한 것이 삼성테크윈 등 비주력부문 사업체를 매각한 일이다. 또한 SmartThings, 루프페이, 비브랩스, 하만을 인수하는 등 사업 포트폴리오 자체를 구조조정했다. 하만 인수는 총수인 이재용의 결단이 없이 수 조원이 들어가는 대규모 투자 결정은 힘든 사항이고 실제로 하만 인수 과정에서 이재용이 구속당하자 인수가 무산될 뻔했다. 간신히 인수 과정은 성사시켰으나 이재용 석방 전까지 모회사 삼성전자와 피인수 직후 자회사 하만 사이의 갈등이 세계 언론을 통해 표면으로 드러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는데, 이재용이 석방 이후 한국 미국을 오가며 삼성전자 하만 간 조율을 통해 사업 부문을 조정해 분쟁을 해결했다.

자신의 측근 외에도 많은 경영진을 뽑았고, 실제로 삼성은 이재용이 실질적으로 그룹을 이끌기 시작한 2014년 이후 전무, 상무급 임원진이 크게 늘었다.[18] 임원 진급 승진 인사 인선 과정에서 딱히 잡음이 나온 적도 없으며, 이후 이재용식 인사를 통해 뽑힌 경영진과 그 경영진들이 뽑은 사원들이 이끄는 삼성 이건희 시대보다 더 커진 초 대기업임에도 여전히 성장세를 유지하며 매우 우수한 실적을 올렸다.
파일:삼성그룹 실적.jpg
삼성 실적

2018년에는 메모리반도체 업사이클을 통해 기록적인 호황을 기록하며 무려 영업이익 58조원을 달성했다. 이는 부친 이건희 시절에도 못 이룬 업적이다. 반도체 호황이 끝나가면서 잠시 주춤했지만 2020년 기준으로도 삼성전자의 2019년 4분기 실적은 영업이익 7조원을 넘어가며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그리고 2020년 3분기 발표에서 무려 영업이익 12조 3,000억의 서프라이즈를 경신하며 초호황이 끝나고도 우수한 경영 실적을 거두었다.

경쟁사 Apple과 비교하자면, 혁신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가 죽었지만 후계자 팀 쿡이 안정적인 경영과 탄탄한 재무운용을 바탕으로 잡스 시절과 비교가 안될 만큼 애플의 성장을 이끌고 있듯, 삼성 이병철이 창업하여 국내 대기업으로 키워낸 것을 이건희가 공격적인 경영으로 글로벌 대기업으로 거듭나게 했다면, 이재용은 이를 지키고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을 추구하는 수성형에 가까운 타입으로 평가할 수 있다. 삼성은 이미 초거대 기업이므로 리스크를 짊어지는 도박성 공격 위주의 경영보다는 까먹지 않는게 더 중요할 수 있기 마련인데, 이런 상황에서 이재용은 마이너스의 손이라던 세간의 평가를 뒤집고 준수한 실적을 올리며 삼성을 이끌었다.

3.2. 경영권 세습 포기 선언

그동안 삼성 경영진이 비판받던 무노조 경영이나 삼성 반도체 공장 백혈병 문제, 편법/불법 승계 문제 등에서도 이와 결별하려는 의지를 보여주는데, " 삼성이 완성형 기업에 위치한 만큼 사회적인 요구에 발 맞춰서 제대로 기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2020년 5월 이재용 본인이 준법감시위의 권고를 받아들여 삼성의 무노조 경영 방침을 폐지할 것임을 밝혔고, 여기에 더불어서 시민사회와 소통을 추진, 특히 삼성의 성역이었던 경영권 승계 문제에 본인이 직접 '자식 승계는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19] 삼성준법감시위원회가 권고한 사과문을 발표하면서 함께 나온 선언이었다. #

3.3. 부정적

3.3.1. e삼성

부친 이건희가 회장으로 일선에서 활동하던 황태자 시절에도 경영 능력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 사람들이 상당했다.[20] 오죽하면 당시 안티들이 그를 부르는 별명도 ' 마이너스의 손'이었을 정도. 당시 이재용의 경영 능력이 부족하다고 의심받은 결정적 이유는 바로 그의 최대 흑역사 중 하나인 e삼성 실패였다.

2000년 당시 33세의 이재용은 인터넷 벤처 지주회사 e삼성과 e삼성인터내셔널을 창업한다.[21] 이재용이 직접 지분 60%의 대주주로 출자했고, 나머지 지분은 삼성 계열사와 특히 당시 삼성 2인자인 이학수와 김인주[22]까지 참여한 사실상 삼성 수뇌부가 단단히 베팅한 사업이었다.

이렇게 설립한 e삼성은 IT 벤처사업 투자를 목표로 국내 투자는 e삼성, 해외 투자는 e삼성인터내셔널로 나누어 진행했다. e삼성의 설립 배경은 다음과 같이 추론할 수 있다. 이재용의 경영 능력을 입증하는 성과지표이자 이건희 못지 않은 능력자 이미지 구축, 미국의 거대 IT 기업 아마존닷컴, Microsoft, 구글처럼 상장 대박나면 비싼 상속세 낼 필요없이 삼성 지분을 사들여 경영권 승계 등 삼성그룹의 IT 사업 확장 등 성공만 했으면 이재용의 미래가 크게 바뀌는 사업이었다.

e삼성의 경영이 어땠는지에 대해선 여러 말이 많은데, 김용철의 ' 삼성을 생각한다'에도 구체적인 정황이 많이 언급된다. 하여튼 2001년 8월 공정거래위원회에선 e삼성을 위한 삼성그룹의 일감 몰아주기와 내부거래, 부당지원을 조사하고 경고까지 주는 등 초반부터 경영이 좋진 않았다. 그리고 이런 공정위의 철퇴에 결정적으로 당시 닷컴 버블이 꺼지면서 e삼성은 폐급으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2001년 e삼성인터내셔널은 설립 첫해부터 투자회사들의 적자로 76억 원의 손실을 냈고, e삼성과 나머지 해외법인, 투자한 모든 회사의 적자를 합치면 도합 173억의 적자를 냈다.[23] 더 큰 문제는 이렇게 e삼성이 말아먹은 손실을 삼성 계열사로 전가했다는 것인데, 이재용의 보유 지분을 제일기획이 208억에 사들였으며, 다른 사업의 지분도 삼성SDS, 삼성SDI, 에버랜드 등 계열사가 사들이게 된다. 즉 이재용은 173억의 적자를 낸 회사를 208억에 팔고 손을 뗀 셈이다. 다만, 당시 사업체들을 전부 말아먹은 것은 아니어서 일부가 2020년대에도 계열사의 자회사 형태로 존속하는데, 멀티캠퍼스(구 크레듀), 시큐아이, 미라콤아이앤씨가 그런 회사들이다. 멀티캠퍼스, 시큐아이의 2020년 기준 시가총액에서 e삼성의 지분가치로 환산하면 지금은 어느 정도 수익권이긴 하다. 20년 동안 삼성그룹 계열사들이 손해를 보다 겨우 2019년부터 흑자로 반전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삼성이란 뒷백을 두고도 e삼성이 실패했기 때문에 당시 이재용은 경영 능력에 큰 의심을 받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2007년 김용철의 폭로로 촉발된 삼성 비자금 특검에서도 배임 혐의로 수사 대상에 올랐는데, 무혐의로 불기소처분을 받았다. 게다가 e삼성의 실패로 이재용의 승진길도 전무, 부사장에 머무르는 동안, 물론 개인적인 사이는 좋다고 알려져 있지만 여동생 이부진이 당시 기준 일반 사원과의 결혼, 신라호텔 사업의 성과 등으로 부각되었기에 사뭇 비교되면서 세간의 의구심을 부채질하기도 했다.

3.3.2. 회장 취임 이후

2020년대 초반 기준으로는 사법 리스크와 경영 실책 등으로 인해 전반적인 측면에서 이건희가 일궈놓은 삼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되려 영향력을 까먹으며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사법 리스크야 본인이 감내할 일이지만, 경영 측면에서 삼성전자 캐시카우 사업인 메모리 사업부의 현금흐름 상당수를 파운드리에 투자하는 결정을 했는데, 선두 업체와의 격차는 역으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인데다 칩스법의 수혜를 받으며 미국에서 대놓고 밀어주는 인텔 파운드리의 복귀로 인해 점유율 추가 하락이 우려되는 상황이다.[24]

또한 삼성전자 HBM 연구개발팀을 해체한 시기에 SK하이닉스는 오히려 HBM에 적극적으로 투자한 결과, 2023년부터 시작된 인공지능 칩 시대에서 삼성전자를 한 수 앞서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정작 본사업인 DRAM 시장을 비교적 소홀히 둔 탓에 2023년 3분기 기준 하이닉스와의 점유율 격차는 역대 최저치로 좁혀졌다. 이 외에도 고질적인 LSI의 부진과 5G 통신장비 실패 등이 실책으로 지적되는 편이다.

4. 경력 및 약력

5. 가족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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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스포츠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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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이재용 승마 선수 시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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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이재용 승마 선수 시절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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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이재용 승마 선수 시절3
청년 시절에는 승마 선수로도 활동했다. 체육계와 삼성에 따르면 이 상무보는 1990년 40여개국이 출전한 가운데 대한민국에서 열린 국제승마협회(FEI) 삼성 국제 마장마술대회에 국가대표로 참가해 선웨이라는 말을 타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에 앞서 1989년에는 역시 한국에서 열린 제2회 아시아 승마 선수권대회에서는 장애물 단체 종목에서 은메달을 땄다. 4년마다 열리는 이 경기는 아시아 최대 승마 대회다. 재벌가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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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K리그 우승 당시 수원 감독 차범근과 만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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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여동생들, 둘째 매제와 함께 올림픽 경기 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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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삼성 라이온즈 전기 우승 축승회에 어머니 홍라희와 함께 참석한 모습[26]
엄청난 야구 팬이라고 한다. 소문에 의하면 어린 시절에 김시진 캐치볼도 하고 야구장에 자주 와서 같이 시구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장난삼아 이재용을 김시진의 제자라고도 한다. 이 때문인지 삼성 라이온즈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고 한다.

10개 구단 모기업의 오너 중에서는 야구장 방문이 가장 잦은 편이었다. 서울 잠실 야구장에서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가 있으면 일 년에 두세 번은 잠실을 찾고, 한국시리즈 때는 시간이 나는 대로 잠실구장을 찾았다. SK 와이번스와의 한국시리즈에서는 서울과 가까운 인천 SK행복드림구장[27]을 찾기도 했다. 자식들도 종종 데리고 와서 가족과 관람을 했다. 허나 2010년대 후반 이후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골프도 잘 친다고 한다. 삼성의 비자금을 폭로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김용철의 저서 <삼성을 생각한다>에 따르면, 김용철은 삼성의 컨트롤타워인 '구조조정본부'(미래전략실)의 핵심 인사로 일했던 시절 당시 상무인 이재용과도 가까이 지냈는데 그와 함께 골프를 친 적도 있다고 한다. 김용철은 허리디스크가 있다는 이유로 군 복무를 면제받았다는 사람이 어찌나 골프채를 잘 휘두르는지 의아했다고 한다. 다만 허리디스크가 있는 사람도 얼마든지 골프를 즐길 수 있고 그런 사례도 많다.

2011년에는 삼성 라이온즈 경기를 관람한 뒤 삼성 덕아웃에 방문, 선수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격려했다. 또한 이때 선수 전원에게 갤럭시 탭 최신 기종을 돌렸다고 한다.

2011년 7월, LG 트윈스전에서 LG가 외야에 펼친 삼성 디스 현수막을 보고[28] 이에 집에서 나와 5회부터 잠실구장에서 관람, 삼성이 역전승하는 데 일조한 날이기도 하다.[29] 이날 경기 종료 후 선수단과 악수를 나누며 선수들에게 직접 금일봉을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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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을 내려다보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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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목동 야구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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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진에게 장난치는 이재용
이날 턱돌이가 이재용, 이부진 가족과 악수를 했는데, 특히 이재용과 악수하고 난 뒤 꽤나 좋아했다.

2012년 8월 18일에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 FC 서울 슈퍼매치 관람했다. 다만 경기를 다 보지는 않고 나갔다고 한다.

2013년 3년 내내 정규시즌에서 단 한 번도 못 이기던 더스틴 니퍼트를 삼성 선수들이 이날만큼은 박한이 채태인의 활약으로 2013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이겼는데[30], 이 경기에 이재용이 직접 홈구장인 대구까지 방문하여 관람해서 이재용 효과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결국 1승 3패로 밀리던 팀이 결국 7차전까지 끌고 가서 우승을 했다.

2014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 등장하여 삼성 라이온즈의 우승을 지켜봤다.

2015년 5월 21일 어머니 홍라희 여사와 함께 경기를 관전하러 왔는데, 이날 삼성은 상대로 등판한 對 삼성전 13승 1패를 자랑하던 니퍼트를 털어버렸다. 이날 이전까지는 2012년 8월 18일 잠실에서 니퍼트를 상대로 2:0으로 승리한 것이 유일한 승리였다.

인터넷 기사로만 나온, 시즌 초에 류중일 감독이 감기에 시달린 사실도 아는 것으로 보아 야구 기사도 많이 챙겨보는 듯하다. 덤으로 팀 4,000홈런도 직접 봤다.

아들과 같이 경기를 관람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이 있는데 그 짤이 그 유명한 "아빠 나 류현진 사줘"다. 참고로 아들 이지호 오승환 팬으로 이에 삼성팬들 사이에선 " 오승환은 종신계약 확정이요 ㅋㅋ" 드립이 난무했다.

2015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은 이재용이 직관을 온 2, 3, 4차전을 내리 패했다.

하지만 아버지 이건희가 쓰러지면서 삼성의 전권을 잡은 뒤로는 스포츠에 친화적이던 부친의 모습과 정반대의 스탠스를 취하면서 2014년부터 삼성 산하의 프로스포츠팀인 수원 삼성 블루윙즈, 서울 삼성 썬더스,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를 삼성 계열사인 제일기획으로 이관시켰으며, 2년 뒤인 2016년에는 삼성 라이온즈도 이관되면서 4대 종목의 구단이 제일기획 산하로 들어갔다. 이러한 행보로 인해 부회장 시절 보여준 열성팬 같은 모습과 다르게 180도로 야구단을 팽개쳤다는 평가가 늘어나며 안현호 및 삼성 라이온즈 프런트와 함께 많이 비난의 대상이 되었으며, 제일기획으로 이관한 후에는 한동안 야구 직관도 가지 않았다. 게다가 "명색이 프로 구단인데 모기업에서 매년 수백억 원씩 지원을 받는 건 말이 안 된다"는 말까지 하며 스포츠팀 운영에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내기까지 하였다.

헌데 삼성 라이온즈가 2022년 7월에 구단 역사상 최다 연패라는 13연패의 부진에 빠지자 삼성 고위 임원한테 "우승까지 바라진 않지만 이건 너무 심한 거 아닙니까?"라고 말했다고 한다. # 그러나 이런 푸념도 소용이 없었는지 2023년 삼성 라이온즈는 작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하위권에 머물렀다.

2023 시즌 4대 종목 삼성스포츠 구단은 그야말로 몰락의 한 해라고 볼 수 있었는데, 수원 삼성 블루윙즈는 시즌 내내 부진한 성적을 기록하다가 끝내 창단 최초로 K리그2로 강등되었고, 삼성 라이온즈는 유일하게 리그 꼴찌를 하지는 않았으나 팀 창단 이래 최악의 운영으로 최하위권의 성적 낮은 성적을 기록했다. 서울 삼성 썬더스는 이미 꼴찌 단골 손님이 된 지 오래였고, V-리그 남자부를 휩쓸었던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도 최하위권에 머무는 등 삼성스포츠의 몰락을 제대로 보여주고 말았다.

이에 몇 년간 구단 내 프런트만 비판했던 팬들 중 일부는 이재용 회장까지 거론하며 비판을 이어갔으나, 10년 가까이 제일기획 출신 인사 내지 구단 프런트 내부 승진을 통한 위주의 팀 운영이 지속되어온 것을 보아 아마 앞으로도 삼성스포츠가 변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나마 코칭스태프진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되던 삼무원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었고[31] 만악의 근원인 암흑군주 홍준학이 제 발로 나간 뒤 유정근 구단주 주도로 리빌딩 성향의 이종열을 데려온 삼성 라이온즈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나 그 삼성 라이온즈도 10개 구단 중 가장 팜과 성적 양면에서 낮은 평가를 받는다.

결국 그동안 삼성의 난조로 인해 삼성스포츠에 신경을 쓰지 못했던 이재용 회장은 어느 정도 삼성스포츠에 개혁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32], 투자 금액이 가장 많은 축구단과 야구단에 한해 개혁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축구단은 2023 시즌 충격의 2부 리그 강등 이후 몇 개월에 거친 고강도 감사로 단장 라인이 물갈이되고 팀장급 인원이 좌천되는 등의 인사이동 조치가 진행되었다.

6.1. 야구 직관 성적

연도 관람 상대팀 승패 비고
2004년 10월 17일 두산 베어스 8:5 플레이오프 4차전
2006년 4월 16일 두산 베어스 3:5
10월 29일 한화 이글스 3:2 한국시리즈 6차전(우승)
2011년 7월 29일 LG 트윈스 4:2
10월 29일 SK 와이번스 1:2 한국시리즈 3차전
2012년 5월 11일 LG 트윈스 8:4
5월 20일 넥센 히어로즈 3:5
10월 31일 SK 와이번스 2:1 한국시리즈 5차전
2013년 10월 27일 두산 베어스 3:2 한국시리즈 3차전
10월 29일 두산 베어스 7:5 한국시리즈 5차전
2014년 11월 11일 넥센 히어로즈 11:1 한국시리즈 6차전(우승)
2015년 5월 21일 두산 베어스 6:1 자타공인 삼성 킬러 니퍼트가 두산 선발이었는데 통산 삼성전 2패째를 기록했다.
10월 27일 두산 베어스 1:6 한국시리즈 2차전, 이날도 니퍼트가 두산 선발이었다.
그런데 5월 21일 경기에서 진 것에 복수였는지 6:1로 삼성이 진다.
10월 29일 두산 베어스 1:5 한국시리즈 3차전.

이재용이 직관한 날에는 삼성 라이온즈의 승률이 상당히 높아 팬들 사이에서는 재용불패, 재용필승, 승리요정이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여담으로 재용불패에 비할 수 있는 것으로 두산그룹 박용만의 용만불패가 있다. 한편, 반대 사례로 생전 부친인 이건희는 직관 필패로 유명했다. 이건희도 스포츠를 좋아했지만 오늘날에도 종종 회자되는 1984년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유두열의 역전 홈런을 본 충격 이후론 사망 전까지 직관을 안 갔다고 한다. 카더라에 의하면 1984년 한국시리즈 때 7차전에서 4:3으로 앞선 상황에서 구단의 연락을 받고 이제는 이기는 것을 보겠구나 싶어 구장에 도착했는데, 도착한 순간 본 게 장효조의 만세 사건이었고 바로 다음 이닝인 8회에 유두열의 역전 쓰리런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6.2. 축구 직관 성적

연도 관람 상대팀 승패 비고
2008년 12월 7일 FC 서울 2:1 챔피언 결정전 2차전(우승)
2012년 8월 18일 FC 서울 2:0

7. 어록

저는 자녀들에게 회사를 물려주지 않을 생각입니다. 오래 전부터 마음속에는 두고 있었지만 외부에 밝히는 것은 주저해왔습니다.
2020년 5월 기자회견 전문
파일:이재용 인천공항3개.gif
이거 들어가는 돈이면 인천공항 3개 짓습니다.[33]
2021년 8월 가석방 후
과거의 실적이 미래의 성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지금은 어느 기업도 10년 뒤를 장담할 수 없다. 그동안의 성과를 수성하는 차원을 넘어 창업한다는 각오로 도전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국격에 어울리는 새로운 삼성을 만들겠다. #

8. 논란 및 사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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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여담



[1] # [2] 판전공파(判典公派)-사정공파(司正公派) 중시조 41세 재○(在○) 항렬. [3] 파조(派祖) 이강(李파일:한자 강(康+羽).png )이 전객시(典客寺)의 판사(判事), 즉 판전객시사(判典客寺事)를 역임하였기에 줄여서 판전공(判典公)이라고 한 것이다. 다만 의미상 판사공(判事公)으로 해야 옳다는 의견도 있다. 전객시는 예빈성(禮賓省)이라고도 하며 고려시대 외국의 빈객을 맞이하고 접대하는 일을 하던 관청이다. 전객시의 장(長)은 정3품 판사로 하였다. 사정(司正)은 조선시대 5위(五衛)의 정7품 관직이다. 판전공(判典公)은 현대의 1급 공무원 정도의 관직이고 사정공(司正公)은 현대의 중위 정도의 관직이다. [4] 現 역사학부 동양사학 전공 [5] 학위논문: '일본의 산업 공동화의 분석과 그 대책 - 시스템 다이내믹스 모델을 이용하여' (1994, 지도교수: 야나기하라 카즈오(柳原一夫)) # 게이오기주쿠대학 학술정보 저장소에도 초록만 있고 현재 인터넷 상에서 볼 방법은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 [6] 흔히 말하는 허리디스크로, 이재용이 병역 판정을 받을 시기에는 추간판이 신경을 압박하는 것이 식별되면 압박 정도와 무관하게 무조건 제2국민역(현 전시근로역) 판정이었다. 현재는 병역법이 상당히 강화돼 척추에 직접 철심을 박는 디스크 절제술을 받아야 5급 전시근로역이 나오며, 치환술을 받지 않고 신경성형술만 받거나 신경 압박도가 35% 이상을 넘지 않으면 현역(3급) 판정을 받는다. [7] 추간판 탈출증은 승마선수 시절, 말에서 낙마하며 생겼다, 이 사고로 후 승마선수에서 은퇴했다. [8] 부모가 원불교도라 이재용도 부모의 영향을 받아 원불교 교도일 것이라는 추측이 있었으나 이후에 종교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9] 2024년 11월 기준 대한민국 부자 순위 1위. 재산 대부분이 삼성 계열사 주식이다. 삼성물산 약 33,800,000주, 삼성생명 약 20,900,000주, 삼성SDS 약 7,100,000주, 삼성전자 약 97,400,000주, 삼성전자우 약 130,000주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비록 급여는 받지 않으나 2023년에만 배당금 3,244억원을 수령했으며 당연히 배당금 수입 국내 1위다. # [10] 사실 당시엔 삼성뿐 아니라 대다수 국내 수출 대기업의 목표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어 세계 일류 수준이던 일본 기업들과 경쟁하는 것이었기에, 일본을 알기 위해 일본 명문대학을 가보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그의 학사 논문도 근대일본사를 주제로 하였다. ' 이와쿠라 사절단의 구성과 그 정치적 의미', 1992. [11] 대학원 재학 당시 갑작스레 이건희가 폐병으로 쓰러져 수술을 받고 와병하게 돼서 대학원 논문을 완성하지 못 하고 귀국했다. 즉 졸업을 못하고 수료만 한 것. 당시 공부를 꽤 잘했는지 하버드 박사과정에서 동양인 최초로 최고 점수를 받았다고 한다. # 물론 비서진들도 동행했다는거 보면. 해당 기사에 따르면 게이오 MBA 입학 시험에 한 번 낙방했다고 하고, 하버드 박사 과정에 들어가기 전에 케네디 스쿨에 1년 다녔다고 한다. MBA 과정에 재학했는지는 불명. 이미 일본에서 MBA를 수료하고 왔는데 재차 MBA에 입학하였다기보단 DBA(박사과정)의 오기로 보인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박사 수료 이후 삼성 경영 일선에 투입된다. [12] 미국 대학은 학부 과정에 경영학과가 없는 대학이 많다. 의학전문대학원, 법학전문대학원과 비슷하게 대학원 과정에서 배우는 학문으로 취급하여 경영전문대학원 MBA 과정이 보편적이다. 그래서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NYU, 조지타운 대학교 등 경영학과 학부 과정이 있는 학교의 인기가 어마무시하게 쎄다. 그 예시로 노태우 대통령과 김옥숙 영부인의 아들 노재헌 이사장도 조지타운 대학교 법학 박사 출신이다. [13] 이재용과 외사촌지간인 정용진이 처음에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에 진학한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보인다. 다만 정용진은 1년 만에 그만두고 미국 브라운 대학교로 유학가 경제학을 전공했다. [14] 2014년 당시 한겨레에 " 삼성의 계열사인 중앙일보 사회부장의 지휘 아래 서울대 출입기자를 현장에 투입하여 원서접수 마감 시간인 6시 직전에 경쟁률이 가장 유리한 동양사학과에 원서를 냈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그러나 1987학년도 서울대 학과별 경쟁률을 보면 동양사학과는 문과에서 5번째, 예체능을 제외하고 문이과 합쳐 7번째로 경쟁률이 높았고 배치표 상 같은 급간에서도 2번째로 높았으므로 단순히 경쟁률에 근거해 지원했다고 보기 어렵다. 서울대 평균 경쟁률은 1.6:1, 동양사학과는 2:1이었으며 학과별 배치표와 경쟁률은 다음과 같다. 출처-경쟁률, 출처-배치표 파일:1987학년도 서울대 배치표 및 경쟁률.png
또 직접 취재한 내용이 아니라 다른 기자한테 전해 들은 내용이라고 밝혔기 때문에 기사 자체를 신뢰하기 어렵다. 특히 이 기사를 쓴 김의겸 기자는 이후 정치권에 투신해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제기하였고 모두 허위 사실로 판명된 바 있다. 여담으로 이 기사의 사실여부와는 별개로 재벌집 막내아들 원작에서 대현그룹 회장의 손자가 이런 방식으로 동양사학과를 들어갔다고 묘사된다.
[15] 여담으로 당시는 물론이고 현재까지도 서울대 동양사학과는 중국사 전공으로 유명하다. 민두기 스쿨로 대표되는 사단이 있었고, 학문적 경쟁력이 얼마나 강했냐면 유학 없이 서울대 동양사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를 졸업하고 미국 대학 교수로 정식 임용된 사례가 있을 정도다. 그만큼 서울대가 중국사 등의 분야에서 세계(동양) 학계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아주 높다. 그 이유는 중국 내 역사 연구가 문화 대혁명으로 상당량 소실되어 반대급부로 서울대가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16] 여동생들도 비슷한 일화가 있다. [17] 1987년은 민주화 운동의 열기가 온 사회로 뿜어져 나오던 시기였다. [18] 양향자도 이 당시 메모리사업부 플래시개발팀 상무로 진급했다. [19] 실제 이재용의 아들 이지호 컬럼비아 대학교 정치학과 졸업 후 아버지 이재용에게 재산만 받고 그냥 여행이나 하고 살면서 유유자적 살고 싶어 한다고 한다. 딸 이원주도 마찬가지. [20] 다만 그 이건희도 황태자 시절에는 본인이 손댄 사업이 실패를 겪어 부친 이병철이 도와준 적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반도체 사업이었던 것을 보면 실패해도 다시 기회를 줄 여력이 되는 재벌가만 할 수 있는 경영 수업의 일환으로 볼 수도 있다. [21] 그 시기 한국은 IT, 벤처 창업이 붐이던 시절이라 삼성 내에서도 사내 벤처 설립이 매우 활발했다. 삼성 사내 벤처를 벗어나 국내 포털 사이트 1위를 달성하고 지금은 대기업이 된 네이버가 대표적이다. 이재용의 IT 벤처 창립도 시대 흐름의 일환이었고, 닷컴 버블이던 이 시기 IT 대박을 노린 것이다. [22] 전 삼성선물 사장. 45세에 삼성 사장에 오른 초엘리트로 삼성SDS 상장 당시 거액을 번 이너서클이다. [23] 지금 기준으로는 173억이 별 거 아닐지 몰라도 2001년에 173억은 지금의 몇 배라고 생각해야 된다. [24] 인텔은 IFS Connect 2024 행사에서 회사 조직을 프로덕트와 파운드리로 나누며, 고객 정보를 철저하게 분리하여 관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 파운드리 사업에 있어서 고질적인 문제점 중 하나로 뽑히는 분야를 인텔이 공략한 셈이다. [25] 이후 게이오대 MBA, 하버드 유학 기간 동안 휴직. [26] 이재용 왼편에 앉은 사람이 김시진이다. [27] 현 인천 SSG 랜더스필드 [28] 당시 LG전자가 내놓은 3D TV의 품질 차이를 홍보하는 현수막이었는데, "보라, 누가 하늘이고 누가 인지"라는 멘트가 적혔다. 문제는 색깔인데 '하늘' 부분은 LG의 상징색인 붉은색 글씨로, '땅' 부분은 삼성의 상징색인 푸른색으로 표기했다. 파일:이재용VS서울아재.jpg 한 마디로 삼성은 바닥이라는 뜻이다. [29] 정확히 말하면 경기장으로 출발한 후에 삼성이 경기를 뒤집은 상황이라 경기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삼성이 리드를 지키고 있었다. [30] 참고로 니퍼트는 경상권 팀들을 상대로 강하다. [31] 단 여전히 삼무원으로 보이는 인물들이 코칭스태프진에 상당하다. [32] 특히 전술한 대로 삼성 라이온즈의 13연패로 인하여 크게 분노하며 개혁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2023년 꼴찌 그랜드슬램 위기에 삼성 라이온즈조차 꼴찌를 할 위기에 처하자 스포츠에 대한 투자를 늘리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야구단과 축구단은 절대 스몰마켓이 아니었으며, 빅마켓에 가까운 클럽들이었지만 프런트의 무능함과 부패 운영, 육성 부재로 인해 팀이 망했다. [33] 2019년 4월 30일 대통령 문재인 삼성전자 화성캠퍼스를 방문하여 '시스템반도체 비전 선포식'을 열고 EUV동 건설 현장을 시찰했는데, 이때 이재용이 "이거 짓는 돈이 인천공항 3개 짓는 비용입니다."라고 말하며 설명하는데 보기드문 이재용의 표정과 손짓에 인터넷에서 화 되어 각종 커뮤니티에서 지금도 심심찮게 쓰인다. 주로 웃기거나 황당한 짤 같은게 있으면 이재용이 "저 XX가 XX랍니다ㅋㅋ"하면 문재인이 돌아보며 "오, 그래요?"하는게 포인트. [34] 바리에이션으로 만수르가 이재용과 이건희 폰팔이라고 하는 개그도 있다. [35] 당시 서울대 동양사학과는 운동권 기질이 강해서, 서민친화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고 한다. 현재도 서울대 인문대, 특히 사학과 쪽은 전체적으로 과 느낌이 이념적으로 따지자면 왼쪽인 편이다. 그런 동기들과 무난히 잘 어울려 지냈다는거니 이재용이 딱히 까탈스러운 성격은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36] 여담으로 이 친구는 평범한 중산층 출신으로 5급 공무원을 도전했으나 실패하고, 종국엔 7급 공무원에 합격했는데, 합격 축하한다고 이재용이 직접 그 친구를 자신의 집에 초청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어쩌다보니 친구도 이건희와 함께 식사 자리를 갖게 됐다고 하는데, 그때 그는 5급 공무원에 합격하지 못한 게 죄송하다며 울먹였고, 이에 이건희는 "자네 부모님께 죄송해야지 왜 나한테 죄송한가? 그리고 자네가 남자라면 이렇게 함부로 울지 마라. 비록 5급 공무원은 되지 못했지만 7급 공무원으로서 최선을 다하게. 무릇 공공기관 및 공기업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들은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직원들보다도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담당하게 되니 마음을 강하고 담대하게 가져야 한다네."라고 덕담을 했다고 한다. [37] 특별히 비싼 게 아니므로 10만원 안쪽으로 일반인도 좀 마음 먹으면 충분히 낼 수 있는 돈이다. [38] 한 끼가 1,400원에 설거지도 본인이 해야 한다. 특히, 조윤선 전 장관은 서민 음식이 맞지 않는지 귤만 먹다 지쳤다고 한다. [39] 원래는 이건희가 화학, 공업 분야가 비주력화 되어 매각을 준비하며 이 분야를 주력으로 삼는 한화가 해당 회사들을 가져갈 수 있게 기반을 설계 해두었으나,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경영 일선에서 사실상 물러난 이후 이재용이 이를 넘겨 받아 성사시켰다. 몇 억짜리 소규모 거래도 피인수 기업에서 실사를 명목상이든 아니든 필수적으로 진행 시키곤 하는데, 두 일가간 이어져온 친분 관계가 두텁기에 몇조원에 다다르는 거래 규모임에도 한화는 실사 없이 인수를 진행했다. [40] 그런데 이 기사를 보면 계속 차를 바꾸긴 했는데, 에쿠스로만 바꿨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기업인들은 원래 리스로 타고 다니므로 자주 바뀌는 것이 일상이기는 하다. 2020년 4월 17일에 이재용이 타던 차로 추정되는 체어맨이 중고 매물로 나왔다는 소식이 언론에 나왔다. # 그리고 아버지의 영향인지 국내 유일의 부가티 베이론 슈퍼 스포트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41] 인스타그램 계정은 ballet0210인데, 현재는 게시물이 없다. 이원주와 팔로우 관계이다. [42] 검찰의 스탠스는 자발이든 협박이든 결론은 경영권 승계 문제 등으로 정경유착이 벌어졌다는 것. [43] 삼성에서 중앙일보가 분가된 건 맞지만, 이재용에겐 외삼촌, 외사촌격 되는 홍씨 일가가 중앙일보 JTBC를 경영하는지라 이재용 입장에선 조금 억울할 법도 하다. [44] JTBC의 전신격인 TBC가 독재 정권에 비판적인 방송을 자주 하긴 했다. 이병철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삼성그룹 회장직에서 퇴진했고, 언론통폐합으로 TBC가 강제 폐국을 당했을 때도 TBC는 독재 정권에 비판하는 스탠스를 자주 보였다. [45] 아버지는 세 자녀들보다 입술이 더 얇다. 할아버지 또한 입술이 얇다. [46] 정확히는 30개x10세트. [47] 아이폰은 자체 API와 OS를 사용하는 특성상 사석에서도 아이폰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불편함을 느낄 수 있고, 블랙베리는 회사 자체가 사정이 좋지 않아 후속 스마트폰이 나오니 마니 하는 상황이라 그러다 보니 빠르게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 [48] 삼성물산의 패션 브랜드에 해당하는 '빈폴골프'의 패딩 조끼이다. [49] 이 별명으로 입력해도 문서로 들어와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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