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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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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新聞 株式會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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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b6ab><colcolor=#fff> 국가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설립 1987년 12월 15일 ,([age(1987-12-15)]주년),
창간 1988년 5월 15일 ,([age(1988-05-15)]주년),
본사 소재지 서울특별시 마포구 효창목길 6 ( 공덕동)
대표자 최우성
임원진 대표이사 사장, 발행·인쇄인 최우성
편집인 · 전무 김영희
광고사업 · 전무 안재승
경영관리 · 상무 정연욱
전략마케팅 · 상무 송호진
광고사업 · 상무 김영배
업종명 신문 발행업
상장 여부 비상장 기업
기업 규모 중견 기업
임직원 556명 (2021년 12월)
매출액 946억 1,330만 3,084원 (2022년 연간)
영업 이익 14억 6,334만 9,507원 (2022년 연간)
순이익 9억 9,165만 517원 (2022년 연간)
최대 주주 한겨레 우리사주조합 (지분 20.73%)
링크 <colbgcolor=#00b6ab><colcolor=#fff> 웹사이트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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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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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2007년 6월 18일

1. 개요2. 사옥3. 역사
3.1. 설립 배경3.2. 설립 이후3.3. 타블로이드 시대3.4. TBS 인수 추진
4. 성향과 논조5. 한자·로마자 혼용 배제6. 비판7. 사건 사고8. 자매지 및 자회사9. 여담10. 관련 문서11. 역대 임원
11.1. 회장11.2. 사장11.3. 부사장11.4. 전무
12. 역대 주요 간부
12.1. 논설고문12.2. 논설주간12.3. 논설위원실장12.4. 편집국장
13. 역대 법정등록인
13.1. 발행인13.2. 편집인13.3. 인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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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2015년 이후 한겨레미디어의 사시(社是)

한겨레신문(주)에서 발행하는 조간 일간 신문이다. 기본 사시는 민주, 민족, 통일.

발행 부수는 일일 20만 부 이상으로, 중앙 일간지 순위로만 놓고 보면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에 이어 4위 신문이다. 다만 3위인 중앙일보와의 격차가 3배 정도 난다. 진보 성향 일간지 중에서는 가장 규모가 크다. 창간 초기에는 60만 부 이상을 발행한 적도 있다. 2012년 당시 한겨레미디어 전략사업본부장의 말에 따르면 일일 40만 부를 발행한다고 했다.

2. 사옥

파일:/image/028/2015/05/14/00531210901_20150514_99_20150514164504.jpg
본사는 서울특별시 마포구 효창목길 6 ( 공덕동)에 있다. 보다 정확히는 공덕역에서 만리재로를 따라 조금 올라오면 보이는 아파트 바로 옆에 있다.

1991년 건립된 사옥으로, 건축가 조건영이 디자인했다고 한다. 바스티유 요새에서 영감을 얻어 건설된 것으로 유명하다. 준공 당시 여러 건축상을 받기도 했다고. 사진에서 보이는 초록색 기둥은 종종 도색이 바뀌기도 한다. 현재는 붉은 계열 색상으로 도색되어 있다. 사옥 건설 이후부터 서울신탁은행을 거쳐, 하나은행이 한겨레 출장소가 상주해 있으며, 건물 일부는 공공 쉼터로 개방해 놓았다. 사옥 옥상에는 공원이 조성되어 있으며, 이곳에서 간혹 디너파티 같은 행사가 열리기도 한다.

3. 역사

3.1. 설립 배경

EBS지식채널에서 정리한 동아일보 해직기자 사태부터 한겨레 창간까지의 역사
1980년대 대학 운동권과 시민단체들에 우호적인 해직 기자들이 모여 창간을 주도하였다. 1974년 유신 반대 시위가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있음에도 정권이 통제함에 반발해, 당시 동아일보의 기자들[4] 중 일부가 자유언론 실천선언을 한다. 이 선언 이후 기업들이 정치적 압력으로 인해 동아일보에 광고를 취소, 그래서 백지로 신문을 찍었다. 이를 본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조그맣게 동아일보에 응원광고를 내었고, 동아일보 내의 일부 기자들은 이에 큰 감격을 받아 적극적으로 자유 언론 투쟁을 벌이다가 해고되었다.

해고당한 기자 130여명은 블랙리스트에 올라 대부분 다른 언론사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시장에서 물건을 팔거나 육체노동을 하고, 일부는 사회과학 출판사를 차리기도 했다. 이들은 주기적으로 신문사 앞에서 침묵시위를 하는 식으로 시간을 보내고 이 때 생활고가 아주 심했다고 한다. 결국 긴급조치 위반으로 상당수가 투옥되었으며, 1980년 여름 언론계 정화조치 때도 또 한번의 대규모 강제해직 사태가 일어나 또다시 해직 언론인들이 늘어났다. 이들이 훗날 한겨레의 창간 멤버가 되었다는 점에서, 한겨레가 운동권과 노조에 우호적 성향을 띄는 한 이유로 해석되기도 한다.

세월이 지나 1987년 6월 항쟁 6.29 선언을 거쳐 본격적인 민주주의의 시대가 열려 독재정권 당시 해직된 언론인들이 서서히 복직되었으나, 이미 독재정권에 길들여진 기성 언론인들의 정신적 타락이 심각했다. 이 현상은 민주화 시기 일부 해직 기자들의 복직 때 나타났는데, 1980년 당시 언론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언론인들이 어느새 기득권자가 되어 기득권 사수에 골몰하며 왕따를 시키는 추태를 보이기도 하였다. 이로써 해직기자 출신들은 민주화 뒤에도 '소수파'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해직 기자였던 김종배는 아래와 같이 말하였다.
언론사로 되돌아 왔을 때 우리는 여러모로 덧칠돼 있었다. 부패 언론인으로, 무능 언론인으로, 또는 특정 정치인에 줄선 정치 언론인으로 포장돼 있었다. 80년의 살육은 어느새 신군부의 강변대로 언론계 정화로 분장되어 있었다.
원 출처: 미디어오늘 1997년 5월 26일자 기사 <언론인 해직 안과 밖> #

그러나 모든 언론인들이 썩은 건 아니었다. 1988년 6~7월 부산일보 노조의 '편집국장 3인 추천제 관철 투쟁'과 같은 언론사 내부 민주화 투쟁이 있었지만 높은 임금으로 돈독이 오른 유력 언론사 기자들에게는 그야말로 ' 찻잔 속의 태풍'이었을 뿐이었다. 그 증거로 강명구 교수는 유력 언론사 기자들이 고임금으로 인해 지배집단의 구성원으로 흡수되었다면서 아래와 같이 말하였다.
1988년 6월 중앙 6대 일간지의 기자 초임이 월 급여 50만 원에 70만 원 선이고 연봉은 9백만 원에서 1천 2백만 원에 이른다. 이는 우리나라 대졸 이상 사무직, 전문 기술직 종사자들의 평균 임금의 2배에 이르는 수준이며 대학교수와도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그런데 대학교수가 대학 졸업 후 대개 10년 내외가 걸려야만 그러한 임금 수준에 도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오히려 기자들의 임금 수준이 높은 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원 출처: <한국 언론전문직의 사회학> - 강명구 저. 나남. 1993. p190.

3.2. 설립 이후

파일:external/ojsfile.ohmynews.com/IE001532328_STD.jpg
1987년 동아일보에 실린 한겨레 창간 광고
파일:02938196_20060101.jpg
한겨레 로고의 변천사[5][6]
대선 전 한 달 동안 10억 정도를 모았었죠? 그러던 것이 오히려 대선이 끝난 이후 두 달 만에 40억 가까이 쏟아져 들어왔으니까. 참 그때의 감격이란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심지어 어떤 날은 하루에 2억씩 들어왔다니까요? 이건 뭐 농담이지만 그때 우리까지 그런 얘기도 했었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한 2백억 모으겠다고 할 걸... (웃음) 실제로 그 때의 열기로 봐서 50억에서 마감하지 않았더라면 정말 2백억까지도 단숨에 달려갔을 거예요! 그때 우리 국민들, 참 대단했습니다.
당시 창간기금 모금 총 책임자였던 이병주의 증언. 원 출처: <세상을 바꾸고 싶은 사람들: 한겨레신문 10년의 이야기> - 이민우, 심산 저. 한겨레신문사. 1998. p65~66
멀쩡한 직장을 때려치우고 '어리석은 꿈'에 합류한 사람들이 있었다. 월급은 반으로 줄고 일은 두 배로 늘어나리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제 발로 찾아온 정신 나간 사람들이었다. 촌지와 맞바꾼 자존심을 안주 삼아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현실을 개탄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언론과 세상이 본래 그럴 수밖에 없다는 현실론에 대하여 결코 동의할 수 없었다. 그들은 제대로 된 신문만 만들 수 있다면 세상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굳게 믿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원 출처: 위의 책 p8~9 프롤로그 중에서.
위와 같은 정치/사회적 변화 속에서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신문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에 리영희 교수와 임채경 창작과비평사 편집고문, 이병주 동아투위 위원장, 정태기 조선투위 위원장 등 네 분이 1987년 여름부터 구상을 하여 과거 동아일보 해직기자들을 중심으로 기자들이 다시 뭉치고, 모자란 자본은 6만 7300여 국민들의 자발적 후원 형식인 국민주주제로 채워졌다. 창간의 움직임은 그해 10월부터 낸 창간준비 소식 및 모금운동 광고의 형태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당시 광고에 실린 카피 "민주화는 한판의 승부가 아닙니다"는 1987년 대선에 야권이 패배한 뒤 실의에 젖어 있던 국민들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이렇게 모인 50억원의 자본금으로 1987년 12월 15일에 신문사를 차렸고, 1988년 5월 15일 1호가 나왔으며, 기존의 활판인쇄 대신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신문편집 시스템이었던 '2세대 CTS'를 도입하였으며 한 사람의 주식을 1% 이상 소유하지 못하게 하여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신문을 지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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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는 1988년 가로쓰기와 순한글표기를 시작함으로써 1947년 호남신문, 1985년 스포츠서울에 이어 대한민국 일간지로는 3번째, 종합일간지로는 두 번째로 가로쓰기 지면을 선보였다. 호남신문이 지방지인 관계로, 중앙 종합일간지로 한정하면 첫번째가 된다. 종합일간지가 대대적으로 가로쓰기를 시작한 것은 한참 후인 1995년 중앙일보의 가로쓰기 도입 이후로 평가된다. 경향신문도 중앙일보보다 더 늦게서야 가로쓰기로 전환했고, 한겨레와 비슷한 시기에 가로쓰기 전용을 선보인 국민일보도 얼마 후 별로 좋은 방식이 아니라 판단하여 회귀한 바 있다. 한겨레가 큰 영향력을 끼친건 아니더라도 가로쓰기 전용을 시도한 초창기 신문임은 사실이다.

원래 우리 문화에서는 예부터 전통적으로 세로쓰기를 사용했었고, 가로쓰기는 서양의 영향이 적지 않으므로 가로쓰기가 우월하냐 세로쓰기가 우월하냐 하는 병림픽은 벌이지 말자는 주장이 있으나, 이는 핵심과 다소 동떨어진 견해이다. 현대 한국에서 서구화된 교육이 자리를 잡은 상황에서 이미 1950년대 말~1960년대부터 초중등학교의 교과서는 가로쓰기를 사용하였고, 1970년대부터는 대부분의 대학 교재들 역시 가로쓰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즉, 우수성과 관계 없이 신문을 읽을만한 지식 계층의 상당수가 가로쓰기에 익숙해져 있는 상황에서는 가로쓰기의 가독 효율이 훨씬 높을 수밖에 없다.

한겨레 창간 제호 표기도 한글로 했는데 한글 제호는 한국일보가 1954년 창간때부터 이미 해왔다.

또 납활자가 주류였던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신문편집 시스템이었던 '2세대 CTS'를 도입하기도 하였다. # 이 시스템은 원고를 컴퓨터로 입력한 뒤 손으로 기사를 이어 붙이는 원시적인 1세대와는 달리 교정, 면 배치, 출력까지 컴퓨터로 처리하는 형태였다. 그러나 사진, 광고, 기사 컷(큰 제목) 등은 사람 손을 거쳐야 했다.

세계 언론 역사상 처음으로 국민주를 통해 자본을 마련한 언론이기도 하다. 2만 7천여명 주주가 모아준 50억원의 성금으로 설립되었으며 모금에 참여한 국민들에게 한겨레신문사의 주식을 배정해 주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게 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때문에 회장이나 이사회가 없고 늘 1인 1주로 처리된다.

다른 신문들이 한자 병기를 하는 것과는 달리 한겨레신문은 순 100% 한글로만 사용하며 한자로 표기하는 일이 없다. 심지어 영어도 쓰지 않는다. 예를 들어 KBS를 부를 때 다른 모든 신문은 그냥 KBS라고 쓰지만 한겨레신문에서는 '한국방송'이라고 쓰고, MBC는 '엠비시', 또는 '문화방송'이라고 쓴다.

초대 사장은 동아일보에서 퇴사한 당시 편집장이었던 청암 송건호. 이후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친일 행각을 공개하면서 인기가 상승한다. 이미 1980년대에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상호 간에 친일신문이라고 비방한 전력이 있다. 나중에 한겨레가 이를 토대로 두 신문 모두 친일신문으로 규정하면서 자승자박이라고 평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한겨레의 출발은 순탄치 못하였는데, 창간 이후부터 노태우 정권에게 눈총을 받아 청와대 기자실이 비좁다는 이유 아닌 이유로 청와대 출입을 거부당했는데, 이는 1991년 춘추관 완공 때까지 이어졌다. 심지어 1989년 9월 초 안기부가 본지 독자들의 성향을 파악한다며 구독에 간접적 압력을 주기도 했다. #

한겨레 역사상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맞은 것은 1989년 4월 14일 리영희 논설고문이 방북취재 혐의로 안기부에 구속된 사건부터였다. 당시 노태우 정권은 공안정국 하에서 방북취재 계획을 빌미로 한겨레를 권력에 굴복시키려 했으나, 이는 전화위복이 되었다. 또 7월 12일에는 서경원 방북 사건 당시 윤재걸 기자가 이를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안기부 요원들과 전투경찰에 의해 한겨레 편집국이 압수수색되었다는 사실이 신문에 보도되자 국민 성금이 1백억 원 이상이나 몰려들어 한겨레는 그 모금을 바탕으로 일약 중앙지로서의 지위로 올라섰다.

다만 창간 이후로도 사세를 크게 넓히지는 못해서 당시 4대 중앙일간지였던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한국일보에게 발행부수에서 크게 밀렸다. 이는 1990년대 당시에는 동아일보가 2010년대 경향신문의 역할을 대신해 주었고, 지면수도 많은 데다가 쌓아올린 노하우를 무시할수없다보니까 당대 진보 독자들은 동아일보를 구독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1990년대 전반기까지만 해도 신문에 한자를 섞어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한자를 많이 아는것이 교양의 척도였던 시절인지라 상대적으로 없어보이기까지 했다는 점도 강했다.

2001년 '심층해부 언론권력' 시리즈로 조선, 동아일보 등 족벌언론의 '무한권력'과 '추악한 과거'를 고발했다. # 이때문에 조선, 동아일보에게 각각 70억원, 10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당했으나 2008년 2월 14일 대법원에서 조선, 동아일보의 청구를 기각한 2심 판결을 확정했다. 특히 2심 재판부는 "한겨레의 보도·만평은 국내 중요 언론사의 과거를 재조명함으로써 비대화되는 언론권력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잘 알려지지 않았던 권-언 유착과 친일 행적을 다루고 있어 보도의 공익성이 인정된다"고 할 정도였다.

언론사로는 처음으로 신문에 쓰는 글꼴인 한겨레 결체를 공동으로 개발하여 2005년 5월 16일 신문부터 이 글꼴을 적용하고, 사람들에게 무료로 배포하기도 했다. 참고로 한겨레 결체는 일간지 최초의 '탈네모글꼴'이다. 탈네모글꼴은 문자 그대로 '네모'(정사각형)에서 벗어난 형태라는 뜻의 한글 타이포그라피 용어다. 사실 기존의 명조체는 한문 해서체의 특징을 그대로 가져온 형태로 한글의 초성+중성+종성으로 구성된 조형원리와는 동떨어진 글꼴이다. 이 '초성+중성+종성'의 조합을 극단적으로 표현한 것이 안상수의 '안상수체'인데, 한글 타이포그라피에서 '탈네모'란 대단히 중요한 발전이다. 안상수는 '안상수체'의 개발로 '구텐베르크상'을 수상했을 정도다. 한겨레 읽다 조선일보 읽으면 조선일보 글꼴이 굉장히 넓적해보인다.

2016년 9월경 미르와 K스포츠재단의 최순실에 관한 첫 기사를 낸 적이 있다. # 이후 엄청난 후폭풍을 가져오게 되는데.. 보통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말하면 JTBC를 먼저 떠올리지만 최순실을 가장 먼저 언급한건 한겨레였다. 다만 취재는 TV CHOSUN이 가장 먼저 했다. #[7] 한겨레의 김의겸[8] 선임기자가 쓴 칼럼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님께'를 읽어보면 한겨레의 역량 한계에 대한 해당 기자의 안타까움과 조선일보의 능력에 대한 기대감을 느낄 수 있다. # 이후 별다른 특종들과 세밀한 분석들을 내놓지 못하고, JTBC가 태블릿 PC를 터뜨리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주도권을 가져가 버렸다.

2019년 11월 n번방 사건을 단독으로 취재하여 보도했는데, 차츰차츰 알려지다가 3월에 가서 뒤늦게 터졌다.

3.3. 타블로이드 시대

2021년 7월 24일부터 토요일판을 타블로이드 크기로 전환한다. 이번 실험을 통해 장기적으로 기존의 절반 크기인 타블로이드지로 변화하여 비용을 절감할 목적인데, 영국 유력지 가디언이 2019년 20년 만에 흑자를 기록한 이유 중 하나가 2018년 타블로이드로 판형을 변경해 비용을 절감한 덕분이라는 분석이 깔려있다. 한국기자협회

2022년 1월, 여성가족부가 주최하는 사회적경제조직 모델 개발사업 수행기관에 선정되어 여가부에서 예산을 지원받기로 결정되었다. #

3.4. TBS 인수 추진

2024년 초 기준 TBS는 서울특별시 지원이 끊기고 타 기업 및 기관 인수 수순을 밟고 있고, 한겨레신문, MBN, TBN 한국교통방송 등 많은 곳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TBS는 법적으로 상업 광고 금지라 민간 기업이 인수할 가능성이 없고, 또한 방송법상 신문사는 지상파 방송사 지분을 10% 이상 소유할 수 없기 때문에[9] TBN이 가장 유력하다고 보도되고 있다. 다만 종편을 보유하고 있는 신문사들을 비롯해 YTN 민영화 과정에서 관심을 보였던 기업들이 95.1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말도 있어 안심할 수는 없다. # 상업 광고 문제도 '5인 협의체 기구'로서의 기능이 형해화된 여권 우위 2인 체제의 방통위에서 반대와 역풍을 무릅쓰고 95.1의 광고 기능을 인가해 준다는 방안이 있다.

만약 한겨레의 TBS 인수가 실현되면 역대 신문사들 중 최초로 지상파(라디오) 방송을 소유한 신문사 타이틀을 얻게 된다.

4. 성향과 논조

외교적으로는 일본에 비판적인 반면 대북 유화적 스탠스가 강하며, 사회경제적으로는 노동계와 페미니즘에 관대하고 의사, 판검사나 보수진영 정치인에겐 비판적인 미디어이다. 진보적인 논조를 대변하는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세부적으로 보면 친노동, 친여성, 친환경 성향을 띄고 있다. BBC, 가디언 등 주요 구미권 외신이나 서적에서는 자유주의, 좌파 언론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 #, #, # 비슷하게 자국 내에서는 좌익 진보언론으로 인식되는 아사히 신문도 구미권에서는 보통 자유주의, 중도좌파라고 보도한다. 언론 성향에서 '자유주의'은 언론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화적 자유주의, 사회자유주의, 진보주의 같은 좌익적인 의미에서 자유주의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B]

전체적으로 정치· 사회 관련에서 다른 신문들보다 많은 비중을 할애하고 있다. 기사의 양으로 보면 조중동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신문 전체 발행면수는 1.5배 정도 차이가 나다보니 상대적 비중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보수진영 등에서는 한겨레가 지나치게 극단적이고 현실과 유리된 관점에서 비타협적인 논조로 접근한다고 싫어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노동자 파업 이슈를 예로 들면 조중동이 사회적 손실을 중심으로 이야기할 때, 한겨레는 그 노동자들이 왜 파업에 참여하게 되었는지를 중심으로 사건을 바라볼 수 있도록 조명하는 측면도 있다.

외교적으로는 한국 자유주의 내지 진보진영 전반에서 흔한 내셔널리즘적 성격이 있기 때문에 반일· 친북 성향의 논조를 가지고 있다. 초기에는 반미적 성향도 있었으나 현재는 중립적인 입장에 가깝고 기자 성향에 따라 친미적 성향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11] 한겨레는 특히 한경오 중 오마이뉴스 다음으로 가장 진보적인 논조를 많이 보이는 언론사이다.

자유주의 언론 답게 인터넷 실명제, 액티브X[12]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며, 웹표준 준수와 관련된 기사들이 많이 실렸다. 인터넷 실명제로 인해 한국인의 유튜브 업로드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는 우회방법을 사용하여 유튜브에 동영상을 업로드한 것과 관련하여 신랄한 비판 기사를 썼다. # 그러나 수년 후 문재인 정부에서 일어난 https 검열, 인터넷 검열감시법 시행 사태 등의 각종 인터넷 검열에 대해서는 페미니즘의 '포르노 불법화 운동'이 강화되는 것을 이유로 매우 우호적인 반응을 보이는 등 엄밀한 철학적 의미에서 (고전적)자유주의, 문화적 자유주의보다 정파적인 의미에서 자유주의(좌익)[B]에 더 가까운 행태도 보이기도 했다. # #[14]

삼성그룹 비리 보도 이후 삼성이 광고를 1년간 중단하자 한겨레 측이 삼성 광고 게재를 완전히 거부했으나 # 밴쿠버 동계올림픽 때부터는 삼성 광고도 실리기 시작했다. 삼성과의 관계는 논란이 많은데 르몽드 한국판 삼성 보도 참고. 앞에서는 삼성의 노조 탄압에 대해서는 맹렬히 비판하면서 뒤에서는 삼성에게 진보 언론이라고 하기에 부끄러운 문자를 주고 받는 것이 알려져 구독자들에게는 물론, 세간의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다. 삼성 장충기 문자 청탁 사건 참고

또한 광우병 논란이 전국을 휩쓸었을 때 미국육류수출협회로부터 10억 광고료로 미국산 쇠고기 광고를 제안받았으나, "독자들과의 신의"를 들어 거절하려고 광고주 예우차원에서 직접 거부하지 않고 광고주가 감당하기 힘든 조건으로 거절하려 했으나, 미국육류수출협회측에선 무조건으로 승인해 버리자 결국 임시 임원회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광고를 싣지 않기로 결정했었다. #.

광우병과 관련하여 촉발된 2008년 대규모 시위 당시 한겨레는 시위대를 대변하고 # # MBC PD수첩을 옹호하며 광우병 논란 확산에 앞장섰다. # 그 외에도 시위대가 저지르는 경찰에 대한 폭력은 외면한채 경찰의 과잉 진압에만 초점을 맞춰 보도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광고는 정반대 광고를 같은 면에 동시에 실어서 비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

친페미니즘 언론사로 유명하다. 특히 젊은 여성기자들이 쓴 기사에서는 만물여혐설을 보이는 경우가 많고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에 대해서 2016년에 강남역에서 일어났던 메갈, 워마드의 정당한 여성인권 시위를 옹호했다. 메갈, 워마드는 문재인 대통령을 욕하기도 하는 집단이라 한겨레의 진보 성향과는 다소 거리가 먼 편인데, 이러한 쉴드는 여성이기 때문 옹호한다고 볼 수 있다. 고 장자연씨와 관련한 수많은 거짓말들로 논란이 되고 결국 캐나다로 도망간 윤지오에 대해서도 우호적이다. 2020년 말에는 윤지오를 '용기있는 의인'으로 칭송하고 그녀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군중혐오', '다중지성의 범죄화'라고 주장하는 책을 올해의 책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2019년 이후에는 중역급 기자들과 젊은 기자들간의 갈등이 가시화 되는 분위기이다. '조국 사태'가 한창이던 2019년 9월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비판하며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비슷하다고 주장한 칼럼이 “한겨레 논조와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 출고 4분만에 삭제되었을 때 젊은 기자들은 성명을 내고 중역급 기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 당시 김어준의 파파이스 등을 제작한 김보협 기자가 한겨레에서 퇴사했다. 퇴사 후에도 한겨레에 기자가 아닌 언론인 직함으로 간간히 기사를 쓰고 있다. 1년 후, 2020년에 일어난 '추-윤 갈등'을 다룬 한겨레 보도에 관해서도 젊은 기자들은 다시 한번 성명을 내며 “한겨레는 2019년 9월 ‘조국 보도 참사’ 성명을 발표할 때와 견주어 달라진 게 없다. 조국 사태 이후 ‘권력’을 검증하고 비판하는 데 점점 무뎌지고 있다. 한겨레는 문재인 정권의 법무부에 유독 관대했다”고 주장했다.

[ 젊은 기자들 성명 전문 펼치기 · 접기 ]
><데스크의 성찰을 바랍니다>

〈한겨레〉는 지난 2019년 9월 ‘조국 보도 참사’ 성명을 발표할 때와 견주어 달라진 게 없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성역’ 없이 비판의 칼날을 세웠던 〈한겨레〉는 조국 사태 이후 ‘권력’을 검증하고 비판하는 데 점점 무뎌지고 있습니다. 청와대나 법무부 관련 의혹 취재는 가장 늦게 시작했으며, 결국 빈손으로 빠져나오기 일쑤였습니다. 최근에는 한발 늦은 취재를 넘어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운전 중 폭행을 감싸는 기사를 썼다가 오보 사태를 맞이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일들이 결국 현장에서 무기력을 넘어서 열패감을 느끼게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소통이 잘 된다”, “균형 잡힌 보도”라며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 하는 국장단을 향해 절박한 심정으로 현장 기자들의 뜻을 모아 이 성명을 씁니다.

〈한겨레〉는 문재인 정권의 법무부에 유독 관대했습니다. ‘윤석열 새 혐의…’양승태 문건‘으로 조국 재판부 성향 뒷조사’라는 지난해 11월 25일 자 기사에서는 추 장관의 틀린 주장을 그대로 담기도 했습니다. 이 기사는 “윤석열 검찰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건 재판부의 물의 야기 법관 해당 여부 등을 조사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공개된 문건에 ‘조국 재판부의 물의 야기 법관 여부’와 관련한 내용은 없었습니다.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는데도 〈한겨레〉는 침묵했습니다.

현장 분위기와 전혀 다른 무리한 기사 계획이 편집회의 과정에서 만들어져 일방적으로 찍어 내려진 경우도 많았습니다. 법원이 검찰총장 직무 배제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한 다음 날인 12월 2일 ‘“법원 초토화시킨 장본인인데…” 윤석열 살린 법원 결정에 착잡한 판사들’이라는 기사가 오전 지면계획에 잡혔습니다. 애초 현장 기자들은 ‘법원이 추 장관의 행정권 남용을 제한했다’, ‘재판부의 법리와 양심에 따른 판단이었다’는 판사들의 반응을 묶어 발제했지만, 편집회의를 거치더니 법원 판결로 ‘착잡한 판사’를 앞세우는, 취지가 정반대인 기사안으로 정리된 것입니다. 취재 과정에서 ‘법원이 초토화됐다’거나 ‘법원 결정이 착잡하다’는 판사들의 반응은 극소수였습니다. ‘착잡한 판사들’ 기사는 결국 오후 지면계획에서 빠졌지만, 이 기사가 어떤 이유로 누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지 현장 기자들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같은 날 편집부에서도 ‘오늘 자 1면을 보며’라는 제목의 비판 글을 집배신에 올렸습니다. 윤 총장의 직무배제 집행정지를 인용한 법원 판결을 비롯해 추 장관의 무리한 징계 절차 등을 균형 있게 다루지 못한 지면을 비판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감탄고토.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갈수록 염치도 없는 것인지. 정파성 미명하에 저널리즘이 죽어가고 있다”는 의견도 덧붙였습니다. 이는 현장에서 ‘친정부 매체’라고 조롱받는 기자들의 열패감과 비슷했습니다. 그런데도 집배신에까지 올라온 추-윤 사태 관련 항의 글에 대해 국장단은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았습니다.

무리한 편 들기는 오보로 이어졌습니다. ‘이용구 차관 관련 검찰 수사 지침 “목적지 도달 뒤엔 운행 중 아니다”’는 기사는 법조계뿐만 아니라 진보진영에서도 ‘사실과 맥락에 맞지 않는 보도’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경찰이 법무부 차관의 폭행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는 비판 여론이 거센 상황에서 이 사건이 검찰에 송치되었어도 어차피 특가법 적용을 하지 못했다는 여론을 만들기 위해 추미애 라인 검사에게 받은 자료를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받아써 준 결과였습니다. 서초동에선 “추미애 라인 검사가 전날 밤 텔레그램으로 〈한겨레〉에 기사를 써줄 것을 요구했다”는 찌라시까지 돌았습니다. 현장 기자들은 기사가 나간 뒤 공보관에게 사실관계에 대해 지적을 받고 해당 의견을 법조팀장에게 전달했지만 자료를 준 취재원과 의견이 엇갈린다는 이유로 틀린 사실은 제대로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사실관계가 틀린 자료라는 현장 보고가 수차례 있었음에도 일부 내용만 수정해 이를 지면에까지 실은 이유가 무엇인지 국장단에 묻고 싶습니다.

최근 불거진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 의혹’ 또한 공정한 잣대로 보도되고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심지어 지난 15일 자 지면에 실린 ‘김학의 출국금지, 절차 흠결과 실체적 정의 함께 봐야’라는 제목의 사설은 ‘실체적 정의’를 위해 적법한 절차를 지키지 않았던 상황을 옹호하는 논리로 쓰였습니다. 절차적 정의는 결코 훼손될 수 없는 법치주의의 핵심 가치입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라는 인물을 떠나 기본권 침해는 최소한의 적법 절차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는 건 〈한겨레〉가 지난 30년간 지켜온 가치입니다.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 수사로 김 전 차관이 저지른 죗값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점에 대한 분노와 제대로 된 절차에 따라 김 전 차관을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전혀 상충하는 것이 아닙니다. 조국 사태 때부터 지적된 편 들기 식 보도가 이런 사설과 보도를 낳은 본질입니다.

현재 법조 기사들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쓰이고 있습니다. 그에 따른 부끄러움과 책임은 온전히 현장 기자의 몫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한겨레〉가 어쩌다가 “파시즘적”이라는 비판을 받는 기사를 쓰게 된 걸까요. 〈한겨레〉가 쓰고 있는 비판 기사 가운데 상대가 아프다고 받아들일 만한 기사는 몇 개나 될까요. 그런데도 데스크들은 “현장 발제가 없다”, “현장 기자들은 식견이 없다”며 논점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사회부장이 지난 11월 열린편집위원회에서 “전통적인 검찰 기사가 아니다 보니 식견 있는 기자들이 볼 수 있다. 일선 취재기자들은 깊이 있게 볼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고 한 말은 데스크가 현장의 목소리를 어떤 논리로 배제하고 있는지 보여줍니다. 일방적인 찍어 누르기식 발제와 기사 작성 지시 환경에는 현장의 적극적인 발제도 불가능합니다.

“특정 정당이나 정치세력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한겨레〉 창간사를 다시 되새깁니다. 이해관계를 떠나 틀린 건 틀렸다고 비판하고, 의혹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취재해야 합니다. 국장단의 정확한 판단과 현장 기자들과의 원활한 소통이 좋은 보도를 만듭니다. 데스크에서 구체적인 정황이나 물증 없이 ‘한쪽 편을 드는 기사’를 현장에 요구하며 설명하는 게 소통이 아닙니다. 현장에선 더는 “법무부 기관지”, “추미애 나팔수”라는 비아냥을 듣고 싶지 않습니다.

국장단의 어설픈 정권 감싸기와 모호한 판단으로 ‘좋은 저널리즘’의 가치가 훼손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법조팀도 비슷한 문제 제기를 수차례 해왔지만 전혀 개선된 게 없었습니다. 이는 법조팀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한겨레〉 취재기자들이 겪고 있는 문제라는 데에 젊은 기자들의 뜻이 모였습니다. 데스크와 현장 기자들의 생각 격차는 커져만 가는데 국장이 공약으로 내세운 ‘토론단위 확대’ ‘보도 점검 자리’ ‘현장 기자 비상구’ 등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에 〈한겨레〉현장 기자들은 국장단과 사회부장, 법조팀장이 해당 기사와 사설에 대한 경위를 밝힌 뒤 그에 따른 합당한 책임을 지고 공식 사과와 재발방지책 마련에 나설 것을 요구합니다. 탁상공론을 넘어, 현장 기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특정 정파·좌우 진영 가릴 것 없이 공정한 잣대로 보도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것인지 구체적인 대책 마련도 함께 요구합니다.

이에 한 중역급 기자는 한겨레 노조 게시판을 통해 “거시적이고 신중한 고려가 없는 ‘성역 없는 비판의 칼날’은 어떤 경우엔 망나니의 미친 칼날이 될 수 있다”며 “여러분이 말한 것처럼 ‘특정 정파·좌우 진영 가릴 것 없이 공정한 잣대로 보도하는 것’은 절반만 좋은 저널리즘”이라고 주장했다. 또 이 게시글은 “한겨레는 특정 정당이나 정치세력을 지지하지 않지만, 특정한 가치와 방향을 추구한다. 여러분이 가치와 방향에 대해서도 공정한 잣대를 들이대고 싶다면 한겨레에서 일하기보다 한국일보처럼 중도적인 성향의 매체로 옮기기를 권한다”고 쏘아붙였다. 이어 “젊은 기자들은 법조 보도 위험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않으면 자칫 검사나 판사의 정교하지만 편협한 논리에 휩쓸려 ‘친검’, ‘친법조’ 기자가 되기 쉽다”고 주장했다. “여러분의 성명이 나오자마자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 매체들은 신이 나서 기사를 쓰고 있다”고도 했다.

[ 중역급 기자 반박글 전문 펼치기 · 접기 ]
><젊은 기자들의 성찰을 바랍니다>

먼저 젊은 기자들이 성명에서 말한 ‘성역 없는 비판의 칼날’이란 표현이 마음에 걸립니다. 검찰이 문재인 정부를 상대로 선택적인 수사를 벌이면서 ‘살아있는 권력 수사’라고 말하는 것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성역 없는 비판의 칼날’이라도 아무한테나 마구 휘둘러서는 안 됩니다. 상대와 상황을 봐가면서 공정하고 균형있게 휘둘러야 합니다. 그런 거시적이고 신중한 고려가 없는 ‘성역 없는 비판의 칼날’은 어떤 경우엔 망나니의 미친 칼날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기사의 내용이나 방향이 데스크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되거나 지시된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기사의 방향은 현장의 보고와 데스크(부장과 팀장)의 판단을 토대로 해서 편집위원회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현장에서의 판단이 옳을 수도 있고, 데스크나 편집위원회의 판단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정은 데스크와 편집위원회가 하는 것입니다. 그 결정에 대한 책임도 데스크와 편집위원회가 지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여러분은 그 결정에 따라줘야 합니다. 그게 우리의 시스템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기사가 여러분의 이름으로 나간다면 그냥 이름을 빼달라고 하십시오. 그러면 그 데스크는 그 기사를 자기 이름으로 내보내든가 여러분의 뜻에 맞게 고치든가 할 것입니다.

물론 여러분이 말한 것처럼 현장 기자들이 추 장관의 무리한 징계 절차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비판하는 기사를 쓸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런 기사를 쓸 때 추 장관의 무리한 징계 절차가 더 큰 문제였는지, 아니면 윤석열 총장의 선택적인 수사나 선택적인 수사 기피가 더 큰 문제였는지는 따져봐야 합니다. 과연 윤 총장이 조국 전 장관과 가족에 대해 공정하고 균형있는 수사를 했습니까? 자기 자신이나 장모, 측근이 연루된 사건에 대해 공정하고 균형있는 수사를 했습니까? 문재인 정부와 야당 사이에서 공정하고 균형있는 수사를 했습니까?

이용구 차관도 잘못이 있다면 당연히 보도해야 합니다. 다만 그 취재 과정에서 이 차관의 이런 잘못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공개됐는지도 잘 살펴봐야 합니다. 조국 전 장관부터 추미애 전 장관, 이용구 차관, 이성윤 중앙지검장 등으로 이어지는 지속적인 고발이 자연스런 일일까요? 그 고발의 소스는 누구일까요? 그동안 검찰이 수사를 유리하게 이끌어가기 위해 피의자에 대한 수사 정보를 고의로 언론이나 정당 등에 흘리는 일은 적지 않았습니다. 국가기관인 검찰의 이런 행위는 명백히 불법적이고 반인권적이고 불공정한 행위입니다. 개인의 범죄나 일탈과는 비교할 수 없이 위험한 범죄입니다.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 사건에 대해서도 비슷한 우려를 갖게 됩니다. 모든 사람과 모든 범죄에 대해 정당한 절차를 밟아서 수사해야 한다는 ‘절차적 정의’는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는 ‘실체적 정의’도 중요한 것입니다. 왜 2013년 이후 제기된 숱한 고소와 고발 속에서도 2019년까지 김학의 전 차관이 제대로 수사, 기소되지 않았을까요? 누가 김 전 차관에 대한 수사, 기소를 방해해서 술접대와 성폭력 혐의에 대한 공소시효가 만료되게 만들었을까요? 현장 기자들은 이런 점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취재하고 보고해줘야 합니다.

한겨레가 ‘파시즘적’이라는 비판을 받는 기사를 쓴다는 말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파시즘적인 기사를 보고 싶다면 다른 신문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에서 ‘친정부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민주당 정부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를 추진하고, 국힘당이 이것을 반대할 때 <한겨레>가 이를 찬성할 수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에너지 전환 정책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윤석열 검찰이 수사하는 것을 무리하다고 비판할 수 있습니다. 윤 총장이 자신과 주변에 대한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을 공정하지 않다고 비판할 수 있습니다. 근데, 과연 이게 ‘친정부’적인 태도인가요?

<한겨레>는 특정 정당이나 정치세력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한겨레>는 민주주의나 인권, 소수자 보호, 남북 관계 개선, 평화, 복지와 같은 진보적 가치를 추구해왔습니다. 또 <한겨레>는 언제나 개별적인 작은 사실들보다는 더 큰 진실을 추구해왔습니다. 개별적으로는 사실이지만, 진실에 부합하지 않는 사실도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한겨레> 기자로 일한다면 언제나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고 큰 진실을 고려하면서 취재하고 보도해야 합니다.

좋은 저널리즘에 대해 팀장과 부장, 국장과 대화하는 것은 매우 좋고 필요한 일입니다. 데스크들이 이런 대화를 게을리했다면 비판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좋은 저널리즘에 대한 판단은 사람마다 매체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조선>의 기자들은 스스로 나쁜 저널리즘을 추구하고 있다고 생각할까요? 아닐 겁니다. <한겨레>와 <조선>은 각각 좋은 저널리즘을 추구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다만, 그 가치와 내용이 크게 다를 뿐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한겨레>의 저널리즘의 원칙에 따라줘야 합니다.

여러분이 말한 것처럼 ‘특정 정파·좌우 진영 가릴 것 없이 공정한 잣대로 보도하는 것’은 절반만 좋은 저널리즘입니다. <한겨레>는 특정 정당이나 정치세력을 지지하지 않지만, 특정한 가치와 방향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한겨레>는 보수보다 진보의 가치를 더 중시하는 진보 성향의 매체입니다. 여러분이 가치와 방향에 대해서도 공정한 잣대를 들이대고 싶다면 <한겨레>에서 일하기보다 <한국일보>처럼 중도적인 성향의 매체로 옮기기를 권합니다.

법조 출입처, 특히 검찰과 관련해서는 깊은 성찰이 필요합니다. 검찰과 법원은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정의를 바로세우기 위한 국가 기관들입니다. 그러나 아주 오랫동안 검찰과 법원은 지배 세력의 도구로 일하며, 오히려 국민의 인권과 정의를 파괴해왔습니다. 최근 들어서는 스스로가 지배 세력이 돼서 노골적으로 자신들의 권력과 이익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젊은 기자들은 법조의 이런 역사와 위험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취재, 보도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자칫 검사나 판사의 정교하지만 편협한 논리에 휩쓸려 ‘친검’, ‘친법조’ 기자가 되기 쉽습니다.

마지막으로 회사 안의 문제점을 다룰 때 신중하게 말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2019년 가을 붙인 성명으로 인해 <한겨레>는 안팎으로 커다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아직도 그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당시 제기된 논점들의 잘잘못에 대해 충분히 토론해서 결론을 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무책임한 편집국 지도부는 상당한 의견 차이를 그냥 덮어버리고 넘어갔습니다. 그 뒤에 새로 들어선 편집국 지도부도 젊은 기자들의 눈치를 보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이번 성명이 나오자마자 <조선>을 비롯한 보수 매체들은 신이 나서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이번 성명이 또 <한겨레>의 평판과 독자에 어떤 영향을 줄지 깊이 우려됩니다. 여러분은 사전에 이 성명이 ‘외부로 유출돼 확대 재생산될 우려’를 고려했다고 말했으나, 현실에선 너무나 쉽게 ‘외부로 유출돼 확대 재생산’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선의가 좋은 결과로 이어지도록 신중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선의가 나쁜 결과로 이어진다면 과연 그것을 선의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편집국 지도부를 포함한 선배들도 이번 성명을 다시 한번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합니다. 젊은 기자들이 제기한 문제들이 타당한지, 타당하다면 <한겨레>를 어떻게 고쳐나가야 하는지 말입니다. 동시에 젊은 기자들도 깊이 생각해보길 바랍니다. 과연 여러분의 성명이 <한겨레>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지, 여러분이 주장하는 가치와 방향이 <한겨레>와 어울리는지 말입니다.

이번 성명을 계기로 편집국에서 진지하고 치열한 논쟁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그 결과에 따라 <한겨레>의 다수가 동의할 수 있는 공동의 가치와 방향이 새로 세워지길 기대해봅니다.

이 사태에 대해 언론비평지인 미디어오늘 문재인 정부와 그 집권 여당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4050세대의 중역 기자들과, 그렇지 않은 밀레니엄 세대의 젊은 기자들간의 갈등이라고 분석했다. #

반면 정미정 언론인권센터 정책위원은 “논쟁적 이슈를 두고 격렬하게 싸우는 건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기자들이 주장하는 사례로 든 기사가 잘못됐다는 것은 동의한다. 하지만 밖에서 볼 때 한겨레가 친정부적이었다? 그런 기사는 발견하기 어려웠다. 오히려 한겨레가 중심 못 잡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기사를 많이 썼다고 생각한다. 편향의 문제가 아니라 원칙을 가지고 한겨레 정체성을 지키는 기사를 얼마나 잘 썼는가에 대한 반성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준희 한양대 정보사회미디어학과 교수는 “착한 권력이 있고 나쁜 권력이 있는 게 아니라, 권력을 나쁘게 쓰는 경우가 있고 잘 쓰는 경우가 있는 것일 뿐이다. 문재인 정부가 나쁜 정부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 정부가 쓴 권력이 제대로 쓴 것이냐 그렇지않느냐의 문제다”라고 전제한 뒤 “한겨레 기자들이 2019년에도 반발이 있었고 그때 정리가 잘 안 됐다. (청취자들은) 남의 집 불난 것을 이용하는 보도로 이 사안을 판단하지 말라. (성명 낸) 젊은 기자들도 이해당사자다. 데스크 목소리도 찾아 균형있게 봐야 한다. 이왕이면 이들이 쓴 기사도 찾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사 및 사회주의 독립운동가에 관련된 기사를 많이 내며, 임경석 등이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를 자주 다루고 있다. 허호준은 4.3 사건을 다뤄 박사 학위를 받았다.

5. 한자·로마자 혼용 배제

초창기부터 한자를 쓰지 않아 당시 한자 혼용이 대세였던 분위기에서 상당히 눈길을 끌었다. 현재는 대다수의 신문들이 순한글을 쓰면서도, 동음이의어 때문에 혼동을 줄 수 있는 단어나 중국 및 일본의 인명 같은 것에는 한자를 괄호 병기하는 경우가 많으나[15] 한겨레신문은 이러한 경우에도 한자를 쓰지 않는다. 광고 빼고 1년에 한두 번이면 많다.

이런 지극히 독자적이고 외고집스러운 내적 편집 규정 때문에 사설이나 종합 정치면 등 기사 논조를 제외한 신문 제작 자체 사항에 관한 부분에서 한겨레만 타사와 풀(공유)하지 않고 따로 논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편집(레이아웃)도 기자협회가 따로 있고 교열도 여기서 하기 때문에 있어 대체적인 사항들은 전파 및 공유가 되지만, 한겨레만 그를 벗어나 독자 노선을 걷는 것. 고로 업계 내부를 돌고돌며 일하게 될 때 타회사 간 이동 시 큰 적응 시간이 필요하지 않지만 한겨레는 '한겨레식'을 배우는 데 꽤나 시간이 걸린다. 반대로 한겨레에서 나와서 타사를 가도 마찬가지. 독특한 점이다.

로마자를 꼭 써야 하는 경우에는 그 로마자를 한글로 먼저 표기하고 로마자를 괄호병기하고 기사에 계속 그 로마자 단어는 한글로 표기한다. 대한민국 내에서도 KTX, LG, SK 같은 것은 공식 표기가 로마자로 되어 있으나, 한겨레는 '케이티엑스(KTX), 엘지(LG), 에스케이(SK)' 와 같은 식으로 표기하고 기사에 계속 이를 언급해야 할 경우에는 한글로 풀어서 쓴다. 기아(KIA), 다음(Daum)처럼 한글에서 유래되었으나 공식 표기가 로마자인 경우는 '케이아이에이'나 '디에이유엠' 식으로 쓰지 않고 기아, 다음 등 원래 한글명을 쓴다.

이는 스포츠에서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가령 프로야구 기사를 쓸 때, SSG 랜더스, NC 다이노스, LG 트윈스, KIA 타이거즈, kt wiz 등 로마자로 시작되는 팀 같은 경우 다른 언론에서는 로마자 그대로 SSG, NC, LG, KIA, KT로 쓰지만 한겨레는 에스에스지, 엔씨, 엘지, 기아, 케이티라고 쓴다.

그리고 외국의 로마자를 표기할 경우 그 언어에 맞게 표기하려는 경향이 있다. 영어권의 경우 비비시(BBC), 엠에스엔비시(MSNBC), 시엔엔(CNN)과 같이 표기하고, 프랑스어권의 경우 테제베(TGV), 아에프페(AFP), 독일어권의 경우 베엠베(BMW), 체트데에프(ZDF)와 같이 표기한다. 종종 대한민국에서 생소한 언어권의 로마자 표기도 해당 언어의 발음 표기에 맞게 표기하려는 시도를 하는데, 핀란드의 위엘에(YLE) #, 노르웨이의 엔에르코(NRK) #와 같은 표기도 볼 수 있다. 일본의 것은 영어식으로 표기하여, 엔에이치케이(NHK), 제이아르(JR)와 같이 한다.

그런데 현재 한국인의 식자층은 대부분 로마자를 영어식으로 읽는 것에 익숙해져 있고, 더군다나 한겨레신문을 읽는 독자라면 더욱 그러한 성향이 강할 텐데 이마저도 모두 한글화하여 오히려 가독성을 해친다는 비판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표기가 그 회사의 한국 지사의 표기와 어긋나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BMW의 경우 한국 지사는 공식적으로 '비엠더블유'라고 읽고 씀에도 불구하고 한겨레는 '베엠베'라고 쓰는 것을 고집하고 있다.

그나마 영어를 한글로 제대로나 옮기면 또 모르겠는데, 무라카미 하루키의 베스트셀러 1Q84아이큐84로 소개하면서 '정작 기사를 쓴 사람이 IQ 84 아니냐?'라는 비아냥을 받으면서 소양 부족을 드러냈다 당시기사. 해당 항목을 참조.

일부 독자들은 '브이티아르(VTR)', '디엠제트(DMZ)' 등 영어 알파벳의 한글 표기를 보고 충공깽스러운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물론 이는 한겨레의 표기 오류는 아니며, 한국의 외래어 표기법상 R은 '아르', Z는 '제트'로 쓰는 것이 맞기에 이를 따른 것뿐이다. 하지만 다수의 한국인이 R과 Z를 각각 '알', '지'로 읽기 때문에 어색한 느낌이 드는 것. 그나마 Z는 G와 구분하려 '제트'로 읽는 경우가 있으나, R을 '아르'라고 읽고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실 한국어 표기를 우선시하지 않고 그냥 VTR, DMZ 그대로 표기하면 될 일이지만, 한겨레는 꿋꿋이 한글로 먼저 표기하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대중이 사실상 전부가 '알엠'으로 읽고 부르는 방탄소년단의 리더 RM도 한겨레 기사에서는 아르엠(RM)으로 표기된다(...).

또 특정인을 익명으로 표기해야 할 경우 영어 알파벳(A씨, B씨, C씨...) 대신 한글 초성(ㄱ씨, ㄴ씨, ㄷ씨...)을 사용하고, 한자가 포함되는 '김모 씨, 이모 씨, 박모 씨...' 대신 '김아무개씨, 이아무개씨, 박아무개씨...'로 표기한다.

부고()란 이름은 '궂긴소식'이다. ‘궂긴’이란 ‘궂기다’, 다시 말해 ‘죽다, 돌아가시다’의 순수 우리말이다. 한겨레는 일부 독자들이 어려운 한자어보다 좀더 쉬운 말로 풀어쓰자고 요청해옴에 따라 고민 끝에 교열부의 도움을 받아 이같은 단어를 찾아냈다고. 이쯤 되면 세대공감 OLD & NEW 못지 않은 열정이다. 특기할 사항은 '궂긴소식'으로 바꾸면서 망자() 중심으로 부고란을 개편했다는 것. 기존의 부고란은 '아무개 별세'가 아니라 '아무개 박사 모친상, 아무개 이사장 부친상'처럼 망자가 아닌 사회적 지위가 있는 상주가 부각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

또 여성을 칭할 때 사용하는 3인칭 대명사는 ‘ 그녀’ 대신 ‘그’를 사용한다.

이외에 ‘홈페이지’, ‘사이트’ 대신 ‘누리집’이라고 표현하는 등 순화어를 많이 사용한다. 다만 '누리집'은 공문서에서나 쓰는 억지 순화어라는 여론이 많다.

또 그런 것 치고는 온라인 한정이지만 영자신문도 운영하는 거의 유일한 진보 계열 언론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내의 주요 영자신문들이 중도~보수우파 계열 언론[16]임을 생각하면 흔치 않은 경우이다.

6.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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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사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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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사가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 실소유주 김만배씨와 9억원의 금전거래를 한 것으로 파악된 전 편집국 간부 기자 A씨를 해고한다고 밝혔다.
전날에는 류이근 한겨레 편집국장이 지휘·관리 책임을 지고 보직에서 사퇴했다. 김현대 한겨레 사장 등 경영진도 다음달 초 대표이사 선거로 차기 사장이 결정되면 사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3/0011634441?sid=102

8. 자매지 및 자회사

간행중인 잡지는 한겨레21이 있다. 씨네21도 한겨레에서 펴내다가 현재는 분사했다. 하지만 여전히 한겨레 산하에 있는 자회사다. 사실 한겨레 신문사는 본점인 신문사보다는 분점격인 자매지들이 더 잘나가는 기이한 형태를 띄고 있다. 과거 운영했던 씨네21은 영화지 시장의 조선일보라는 수식어까지 붙을 정도로 상당한 위치 겸 점유율을 차지했다. 사실 영화지 시장이란 것 자체가 좀 마이너하다. 한국 신문 시장이 과도한 판촉 경쟁으로 팔릴때마다 적자나는 점을 감안하면 # 그나마 선전한다고 할 수 있는 편. 만화지 팝툰은 2009년부터 만화 판권을 웹하드에 배급하는 등 온갖 시도를 했으나, 적자경영 끝에 결국 망해서 접었다.

9.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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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관련 문서

11. 역대 임원

11.1. 회장

11.2. 사장

11.3. 부사장

11.4. 전무

12. 역대 주요 간부

12.1. 논설고문

12.2. 논설주간

12.3. 논설위원실장

12.4. 편집국장

2013년까지는 '편집위원장'이었다.

13. 역대 법정등록인

13.1. 발행인

13.2. 편집인

13.3. 인쇄인


[1] 간혹 한겨 [A] 2024년 3월 2일 기준 [A] [4] 이미 40년이나 지났으므로 당시 기자들은 2018년 현재 이미 은퇴한 80~90대 호호백발 노년들이다. [5] 참고로 위의 내용에는 오류가 있는데, 두 번째 로고는 1995년이 아닌 1994년이다. 1994년 5월 15일자 신문 [6] 2006년 로고 변경 당시 기사에 나온 자료로, 2011년부터 '레'의 ㅔ가 약간 달라졌다. [7] TV조선이 가장 먼저 접근한 게 맞다. 청와대가 조선일보 주필을 날려버리며 응징하자 조선이 입을 다문 것. [8] 2017년 퇴사했으며, 이후 대통령비서실 대변인을 지냈다. 2021년 현재는 열린민주당 소속 비례대표 국회의원. [9] 여기서 한겨레신문은 현행 방송법을 우회하겠다고 밝혔다. [B] 미국, 캐나다 등 북미 지역이나 일본 등에서 '자유주의', '리버럴'은 좌파 정치의 우회적 표현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해당 국가와 정치 지형이 다른 영국에서도 정당이 아닌 언론 성향에 있어서는 자유주의(liberal, liberalism)가 보수주의(conservative, conservatism)에 대조되는 좌익적 의미를 지닌다. 왜냐하면 언론은 문화적인 영향력이 강하기 때문에 언론 성향에 있어서 자유주의는 문화적 자유주의 진보주의의 의미를 지닌다. [11] 이재명 친일 국방 발언 논란에서 한겨레 소속 길윤형 기자는 "한-미 동맹에 안보를 의존하는 한, 한-미-일 삼각 안보협력은 피할 수 없는 선택지"라고 발언하기도 하였다. 물론 한겨레 성향상 친일이여서 이런 주장을 했을 가능성은 대단히 낮고 안보적 측면에서 한미관계를 염두에 둔 발언이다. [12] 다만 한겨레 PDF페이지는 액티브X를 사용했다가 버렸다. # [B] [14] 이는 한국에서 고전적 자유주의의 기반이 매우 약하다는 반증이다. [15] 후진타오(), 시진핑(), 아베 신조()같이 지도자급 인물의 경우 무조건 한자 병기를 한다고 보면 된다. 특히 조선일보의 경우 그 경향이 매우 심한 편이다. 사실 한자 병용에 제일 적극적인 신문이 조선이기도 하고. 지금도 조선일보 사설란()에서 한자 찾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16] 그 중에서도 특히 중앙일보가 영자신문에 적극적이다. 코리아중앙데일리 뉴욕 타임스와 제휴 관계에 있다.. [17] 앞서 말했다시피 당시 부산지역 인권 변호사로서 한겨레 부산지국 창간 발기인으로 활동하며 창간을 위한 자본금 50억 중 2억원을 기탁한 인연이 크기 때문이다. [18] 이는 한겨레에서 자체적으로 조사했기 때문에 타블로이드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19] 이는 한겨레에서 자체적으로 조사했기 때문에 타블로이드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20] 한겨레 출신 기자들이 많는 협회 특성상 한겨레측에서 돈받고 쓴 기사일 확률이 높다. [21] 신세기통신, GT웹코리아, 교보정보통신 대표이사. [22]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대 총선전에 영입해 20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23] 현 서울신문 사장. [24] 1988.5(창간일) 인사발령에 편집인과 논설주간을 같이 맡았다. [25] 녹야 조광현의 매제다. 출처 기사. [26] 퇴사 후 김대중 대통령이 연합뉴스 사장으로 임명, 연합뉴스 퇴사 후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으로 임명. [27] 퇴사 후 노무현 대통령이 KBS사장으로 임명. [28] 이후 경영담당상무이사가 됨 [29] 사회에디터, 논설위원, 선임기자 순을 거쳐 임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