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0-13 12:41:20

송건호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width=320><tablebordercolor=#fff><tablebgcolor=#fff> 파일:한겨레 제호.svg 한겨레
역대 사장
}}} ||
{{{#!wiki style="margin: 0px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초대

송건호
제2대

김명걸
제3대

김중배
제4대

김두식
제5대

권근술
제6대

최학래
제7대

고희범
제8대

정태기
제9대

서형수
제10대

고광헌
제11대

양상우
제12대

정영무
제13대

양상우
제14대

김현대
제15대

최우성
}}}}}}}}} ||
<colbgcolor=#00B6AB><colcolor=#fff> 초대 한겨레신문 사장
송건호
宋建鎬 | Song Geonho
파일:송건호 사장.jpg
출생 1927년 9월 27일
충청북도 옥천군 군북면 증약리
사망 2001년 12월 21일 (향년 74세)
학력 한성사립상업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행정학 / 학사)
경력 대한통신 외신부 기자
한국일보 논설위원
조선일보 논설위원
경향신문 편집국장
동아일보 편집국장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의장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
한겨레신문 사장
한겨레신문 회장

1. 개요2. 생애3. 송건호언론상
3.1. 역대 수상자
4.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 언론인, 민주화운동가, 역사학자. 본관은 은진(恩津)[1], 호는 청암(靑巖).

'한국 언론의 사표', '해직기자의 대부', '민족지성' 등의 별칭이 따라다닐 정도로 한국 언론사에 뚜렷한 자취를 남긴 언론인이다.

2. 생애

1927년 9월 27일 충청북도 옥천군 군북면 증약리 비야마을 331-6번지에서 아버지 송재찬(宋在瓚)과 어머니 박재호(朴在鎬) 사이의 3남 5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선대는 대대로 충청도 회덕군 동면(현 대전광역시 동구)에 살았으나, 증조부 대에 이르러 경술국치로 나라가 망하자 증조부께서 가솔을 이끌고 옥천 비야곡으로 이주해왔다고 한다. # 대전욱정공립심상소학교(현 대전신흥초등학교)[2], 한성사립상업학교를 졸업하고 곧 광복을 맞았다. # 광복 직후인 1946년 경성법학전문학교에 입학,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전문부를 거쳐 1956년 법과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1953년 『대한통신』외신부 기자로 언론인으로서의 첫발을 떼었고, 이어 조선일보, 한국일보, 경향신문 등 주요 신문사를 거쳤다. 여담으로 한국전쟁 당시 말기에는 철도청으로 근무한 것으로 보인다. 밑의 손석희의 모친이 같은 사무실에서 짧게나마 근무했다고 증언했기 때문이다.

1974년 동아일보 편집국장에 취임했으나 동아일보 광고탄압사건사태의 올바른 해결을 촉구하며 사임했다. 그 후 역사학 집필에 전념하여 '민족지성의 탐구', '한국민족주의의 탐구', '한국현대사론', '한국현대인물사론' 등 역작을 연이어 출간하며 저술가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1979년에는 해방전후사의 인식 공동저자로 참여했고 1980년 신군부에 의해 전두환의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의 주모자로 몰려 옥살이를 하며 고문을 당했다.

같은 사학자이자 언론인이었던 천관우와도 천관우가 5공에 가담하기 전에는 각별한 사이였다. 아닌 게 아니라 동아일보 기자직을 사임하고 고서점을 찾아다니며 역사 연구에 매진했던 송건호에게 1977년부터 민주화 운동에 함께 하자고 권유한 인물이 천관우였다. 이후 송건호가 1979년에 <한국현대사론>을 펴냈을 때도 천관우는 <창작과비평> 제52호에 서평을 싣고 "송건호 형[3]의 이 새 저술은 정통사학에서 미처 이루지 못한 '현대사 개설'이라는 중요한 부분에 훌륭하게 선편(先鞭)을 지은 것이다. 그것은 어느 의미에서 정통 사학계에도 큰 각성의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이라고 하고 싶다.", "1979년의 현재로, 우리 현대사를 전반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한국현대사론'에 필적할 것이 얼른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이 저술은 성공적이었고 또 그만큼 축적된 근고(勤苦)의 산물이었다."라며 송건호를 극찬했다.[4] 하지만 천관우가 제5공화국에서 민족통일중앙협의회 의장을 맡게 되자 송건호는 이를 변절이라 비판하면서 천관우와의 교류를 끊었다. 나중에 천관우에 대해 회고하기를,
"지성이라 부를 만한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마음을 알 수 없다고,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나중에는 현실과 타협해버린 경우가 있어서 결국 사이가 서먹서먹해지고 그러는데 죽은 사람이지만 천관우가 그런 사람입니다." 정론직필을 찾아서 - 옥천 출신 언론인 송건호(충북일보)

1984년 해직언론인들과 함께 ' 민주언론운동협의회'(민언련)를 결성, 초대 의장을 지냈다. 특히 월간지 을 창간해 제도권 언론이 외면하는 노동자·농민의 실상과 민주화운동 등을 소개하는 한편, 1986년에는 군사정권 보도지침을 폭로해 이듬해 6월 항쟁의 불씨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어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을 이끌었고 초대 사장 및 회장을 지냈다. 그는 이 시기에 편집권의 독립, 냉전보도의 자제 등을 위해 힘썼다.

그러나 신군부에게 받았던 고문 후유증으로 1990년부터 파킨슨병을 앓기 시작했고, 투병 생활을 하던 끝에 2001년 12월 21일 타계하였다. 제1회 심산학술상(1986), 한국언론학회 언론상(1991), 호암언론상(1994), 금관문화훈장(1999), 정일형자유민주상(2000) 등을 받았으며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되었다.

평전인 '나는 역사의 길을 걷고 싶다'가 발간되어 있다. 송건호 본인의 삶 자체도 훌륭하지만 전기문학으로서의 가치도 높은 작품이다.

3. 송건호언론상

송건호의 타계 이후 고인의 바람인 민주적 언론문화 창달을 위해 청암언론문화재단이 설립되었다. 2002년부터 언론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여 언론민주화에 기여했거나 사회에 공헌한 개인이나 단체에게 '송건호언론상'을 제정하여 시상하고 있다.

2014년 송건호언론상 수상자인 JTBC 손석희 사장의 어머니와 송건호 선생이 6.25 전쟁 말미에 철도청에서 한 사무실에 잠시 근무한 적이 있다고 수상소감에서 송건호 선생과의 인연을 밝혔다.

3.1. 역대 수상자

회차 년도 수상자 주요이력, 수상이유
1회 2002 정경희 한국일보 논설위원
2회 2003 위르겐 힌츠페터[5] 5.18 민주화운동 보도
3회 2004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보도지침 폭로
4회 2005 강준만 월간 인물과 사상 창간
5회 2006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동아일보 해직 언론인들이 결성
6회 2007 조용수 민족일보 창간
7회 2008 MBC PD수첩 제작진 시사고발
전국언론노동조합 YTN 지부 YTN 낙하산 사장 임명에 항거
8회 2009 최문순[6] MBC 노조위원장, 대표이사
최상재 민주언론노조 위원장
9회 2010 최승호 MBC PD수첩 제작 PD
옥천신문사 지역언론
10회 2011 서중석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교수
11회 2012 한홍구 성공회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뉴스타파 대안언론
12회 2013 경남도민일보 지역언론
프레시안 협동조합 인터넷언론
13회 2014 손석희 JTBC 보도 담당 사장
14회 2015 변상욱 CBS 대기자
15회 2016 김동춘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16회 2017 JTBC 뉴스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다수 특종(태블릿 PC 입수 등) 보도
17회 2018 김주언 보도지침 폭로
18회 2019 임은정 울산지방검찰청 부장검사
19회 2020 정용욱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교수
20회 2021 자유언론실천재단
21회 2022 탐사기획 스트레이트
22회 2023 뉴스타파 재수상

4. 둘러보기

파일:금관문화훈장 약장.png
금관문화훈장 수훈자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5px -13px"
1974
조택원
무용가
1975
안수길
소설가
1976
홍종인
언론인
1977
최석채
언론인
1978
방정환
독립운동가, 아동문학가
1979
고유섭
미술사학자
1980
전봉초
음악가
1981
김소월
시인
1982
이효석
소설가
1982
조지훈
시인
1983
홍승연
언론인
1983
천관우
언론인
1983
이육사
독립운동가, 시인
1984
이원수
아동문학가
1984
장발
미술가
1985
강소천
아동문학가
1986
홍진기
언론인
1987
김남중
언론인
1990
모윤숙
시인
1990
주시경
독립운동가, 국어학자
1994
김상만
언론인
1994
나운영
음악가
1994
이숭녕
국어학자
1995
공병우
한글연구가
1995
김소희
국악인
1995
문신
미술가
1995
정명훈
음악가
1995
이대원
미술가
1995
류경채
미술가
1996
송석하
민속학자
1996
신용호
기업인
1996
조병화
시인
1997
신순남
미술가
1997
홍두표
언론인
1997
최창봉
언론인
1997
정진숙
출판인
1997
고병익
역사학자
1998
방우영
언론인
1998
김연준
작곡가
1999
방일영
언론인
1999
방종현
국어학자
1999
김세형
음악가
1999
이유태
미술가
1999
김흥수
미술가
1999
장준하
독립운동가, 언론인
1999
송건호
언론인
2000
황순원
소설가
2000
백남준
미술가
2000
서정주
시인
2001
김기창
미술가
2001
김천흥
국악인
2001
장우성
미술가
2001
김수영
시인
2001
최영희
역사학자
2002
임권택
영화감독
2002
오지호
미술가
2003
박동진
국악인
2003
윤석중
아동문학가
2004
구상
시인
2004
이혜구
음악사학자
2005
박성용
기업인
2005
정세영
기업인
2006
신상옥
영화감독
2006
김동원
연극인
2006
차범석
극작가
2006
조남철
바둑기사
2007
송도균
언론인
2007
노성대
언론인
2007
송범
무용가
2008
박경리
소설가
2008
이청준
소설가
2008
김영랑
시인
2009
유현목
영화감독
2010
전숙희
수필가
2010
앙드레 김
패션 디자이너
2010
김영환
군인, 6.25전쟁기 해인사 폭격명령 거부
2011
박완서
소설가
2012
지관
해인사 주지
2012
이건희
기업인
2012
허동수
기업인
2012
김형규
국어학자
2013
이우환
미술가
2014
호머 헐버트
선교사, 한글 체계화 공헌 및 한글 보급·한글 홍보 공로
2014
전형필
문화재수집가
2014
이은관
국악인
2016
백성희
연극인
2016
임영웅
연극인
2017
박맹호
출판인
2018
최인훈
소설가
2018
이영희
한복 디자이너
2018
정지용
시인
2018
황병기
국악인
2020
서세옥
미술가
2019
김성환
시사만화가, 대표작《 고바우 영감
2020
손창근
미술품소장가
2021
윤여정
영화배우
2021
이어령
문화부장관, 작가, 정치인 겸 문학평론가
2021
박서보
화가
2022
송기숙
작가
2022
송해
희극인
2022
김우창
문학평론가
2022
김지하
시인
2022
이정재
배우
2022
황동혁
감독
2023
이미자
대중음악인
2023
조수미
성악가
2023
이미경
기업인
2024
이문열
소설가
}}}}}}}}} ||



[1] # [2] 1934년 증약사립보통학교에 입학했다가 1935년 진학을 위해 대덕군 동명공립보통학교(현 대전동명초등학교) 2학년에 전학, 이후 6학년 때 대전욱정공립심상소학교에 전학하였다. [3] 천관우는 1925년생으로 송건호보다 두 살 연상이다. 이 시절의 '형'이라는 말은 지금처럼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부를 때 쓰는 말'이 아니라 친분 있는 성인끼리 붙여주는 일종의 예의를 지킨 호칭에 가까웠다. [4] 천관우 또한 고대사와 관련해 일본서기의 주요 기사를 그 주체를 왜가 아닌 백제로 바꿔 해석하는 이론을 제시하면서 식민사학이 만들어 놓은 고대사 구도의 틀을 깰 결정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해 주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5] 유일한 외국인 수상자이다. [6] 제36~38대 강원도지사를 역임했다. 역임기간은 2011년 4월 28일 ~ 2022년 6월 30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