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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29 13:15:36

발레

파일:발레.jpg
한국어 발레
영어, 프랑스어 ballet
러시아어 балет
중국어 芭蕾舞 (Bālěiwǔ)
일본어 バレエ[1]

1. 개요2. 초기 역사
2.1. 시초2.2. 발레리나의 등장과 위상의 향상 과정2.3. 푸앵트 기술의 탄생과 마리 탈리오니2.4. 프랑스 혁명 러시아 발레의 성장
3. 19세기
3.1. 현대무용의 등장3.2. 디아길레프와 발레 뤼스3.3. 냉전과 발레3.4. 현대3.5. 클래식 발레3.6. 로맨틱 발레3.7. 코믹 발레3.8. 드라마틱 발레
4. 발레 용어
4.1. 기본적 용어4.2. 동작과 관련된 용어
4.2.1. 포지션(발 자세)
5. 유명 무용수들6. 주요 발레 음악가, 안무가7. 주요 발레단8. 취미로서의 발레9. 창작물에서
9.1. 발레를 소재로 한 창작물9.2. 발레를 하는 캐릭터
10. 기타

1. 개요


유럽의 전통 춤 중 하나로 기원은 이탈리아. 나중에 프랑스 이탈리아에서 들여와서 프랑스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으며, 유명세 때문에 러시아 춤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도 있다

어원은 라틴어의 '춤추다(ballare)'. 여기서 이탈리아어 '춤(ballo, 발로)'에서 또 변형되어 오늘날의 발레가 되었다. 15세기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는데, 기존의 전통 춤을 발전시킨 춤이며, 현대의 우아한 발레와 달리 남자의 전유물이었다고 한다.[2] 여성은 발레리나, 남성은 발레리노라고 한다.

로마자 표기가 Ballet라서 발렛 내지는 발레트라고 발음하는 사람도 소수 있는데, 이 단어가 끝의 자음 일부가 발음하지 않는 프랑스어에서 비롯된 것이라 발레라고 발음하는 것이 맞다. 영어권에서도 프랑스어 발음을 존중하는 차원으로 발레라고 읽으며, 정확히는 '발레이'에 가깝게 발음한다.

2. 초기 역사

2.1. 시초

15세기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발레는 원래 귀족사회에서 추던 춤이었는데, 16세기 프랑스로 시집간 카트린 드 메디시스 왕비에 의해 프랑스에 전래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발레의 발전이 시작된다. 루이 14세는 여러 문화에 대해 관심이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발레에 열광했다고 한다. 직접 춤을 배우고 공연의 주역까지 맡을 만큼 열정이 대단했다고 하며, 1661년 왕립 발레 아카데미도 설립하기도 했다.[3] 그리고 같은 해에 쟝 바티스트 륄리의 음악과 결합된 코미디 발레가 나왔다.

루이 14세의 발레에 대한 관심은 당연히 귀족사회에 영향을 미쳤고, 왕이 출연하는 발레 공연에 참여하기 위해 귀족사회에 발레강습이 시작되었다. 물론 당시의 발레는 기본적인 발레 수준이었지만, 이 결과 발레가 귀족사회에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루이 14세가 나이를 먹고, 왕립아카데미에서 전문적인 테크닉을 사용하는 발레리노들이 등장하면서 귀족들과 왕이 직접 공연을 하는 것은 사라져 갔지만 그럼에도 발레는 귀족사회의 필수교양으로 유지되었다.

2.2. 발레리나의 등장과 위상의 향상 과정

위에 서술하다시피 발레는 원래, 남자들의 춤이었다. 여성의 참여는 일체 금지되었다. 그 당시 발레 공연에는 남자가 여성으로 분장해서 상대 역을 맡았다. 발레리나는 17세기, 사랑의 승리라는 공연에서 최초로 등장한다. 당시의 여성 인권을 생각하면 파격적이었다고.

그 때까지만 해도 발레리나의 역할은 매우 한정되어 있었는데, 그것은 바지를 입는 남자 무용수와 달리 여자 무용수들은 긴 치마를 입고 있었기에 테크닉을 보여줄 기회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여성의 노출이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 이러한 이유로 발레 공연에서 발레리나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화려한 복장을 한 채 이리저리 우아한 포즈를 취하는 것뿐이었다. 이러한 불문율을 깬 최초의 인물이 마리 카마르고. 그녀는 남성 못지 않은 화려한 테크닉을 가지고 있었고, 앙투르샤 캬틀(공중에서 발 2회 부딪히기)까지 할 수 있었으나 그것을 무대에서 보여주지 못하는 것을 매우 불만스러워했다. 결국 1726년에 발목 위로 치마를 자르고 무대에 나서는 모험을 감행, 결국 염원을 풀었다. 어느 정도의 논란은 각오하고 벌인 일이었으나 관객은 화려한 테크닉에 호평을 보냈고, 이 때부터 발레리나의 치마는 걷잡을 수 없이 짧아지게 되었다. 그에 따라 발레리나의 위상 또한 올라가게 되었다. 이 시대에 유명한 또 한 명의 발레리나 '마리 살레'와 함께 여성 솔리스트의 위상을 세웠다.

1760년 장 조르주 노베르가 <무용과 발레에 관한 편지>를 쓰는 등 여러 활동을 통해 발레를 크게 발전시킨다. 저 책은 아직까지도 사용될 정도.

2.3. 푸앵트 기술의 탄생과 마리 탈리오니

'발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모습인 발끝으로 서는 기술은 '푸앵트'라고 한다. 이것은 19세기 초 전설적인 무용수 마리 탈리오니에 의해 처음 선보여졌다. 탈리오니의 아버지는 뛰어난 공연 기획자였는데, 그녀에게 포인트 슈즈를 신긴 뒤 "라 실피드"라고 하는 작품의 요정 역으로 출연시켰다. 결과는 초대박. 탈리오니는 마치 정말 날개가 달린 요정처럼 깃털처럼 가벼운 춤을 추었다고 하는데, 당시 한 평론가는 "꿈에도 상상할 수 없는 탈리오니"라며 그녀를 극찬하였다고 한다. 이 "라 실피드"는 낭만주의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작품이자 발레에 로맨틱 발레라는 새로운 장르를 연 기념비적인 작품이기도 한데, 포인트 슈즈를 신고 체중 없이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는 탈리오니의 모습 또한 작품을 전설로 만드는 데 일조한 것은 분명하다.

2.4. 프랑스 혁명 러시아 발레의 성장

발레는 전형적인 귀족의, 귀족을 위한, 귀족에 의한 예술이었다. 발레는 과거 참여예술에서 고티에와 마리 탈리오니의 등장으로 '보는 예술'로 변화했지만, 대중적인 예술이기보다는 귀족들에 의한 예술이었다. 물론 모든 예술이 그렇듯 발레도 막대한 후원금에 기반하여 운영되었고, 발레 후원의 가장 중추는 왕실이었다. 그러나 1789년 프랑스 대혁명으로 왕실이 붕괴되면서 상당수의 무용수들이 갈 곳을 잃어버렸다. 가장 큰 타격은 왕립 발레 아카데미의 운영이 중단된 것이었다. 이 혼란 속에서 무용수들에게 '기회의 땅'이 된 곳이 바로 러시아였다. 러시아 황실은 갈 곳 잃은 프랑스의 무용수들을 본국으로 초청하여 공연을 맡기기 시작했다.

러시아 발레는 이를 기점으로 급격히 성장하게 되지만, 그 이전에 러시아에 발레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러시아에 발레가 처음 도입된 것은 군사학교였다. 러시아 장교학교에서는 발레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하여 훈련의 한 방식으로 도입하였다. 물론 이는 후일에 변화되지만, 당시 러시아 장교들의 상당수가 귀족이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서구화를 꿈꾼 표트르의 성격상 러시아 귀족사회에 발레를 도입하기 위한 방안으로 구상했다고 볼 수 있다.

프랑스 혁명을 계기로 뛰어난 무용수들이 러시아에 대거 유입되면서 러시아 발레의 수준이 급격히 상승하게 된다. 이 당시 발레를 고전주의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발레의 가장 큰 후원자가 바로 러시아 황실이었기 때문이었다.

3. 19세기

19세기는 여러모로 발레의 황금기였다. 현재로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발레는 당시 문화예술의 주축을 담당하고 있었다. 발레를 보고 2차 창작을 하는 예술가들도 많았고[4], 반대로 기존 창작물을 보고 발레로 2차 창작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5]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돈키호테, 지젤 등 오늘날 대중들에게도 인지도가 높은 작품들 대부분이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 때는 위험한 소품 때문에 공연 도중 안전사고가 많았다. 칼싸움 장면에서 소품인 줄 알고 상대역을 찔렀는데 알고 보니 진짜 칼이라서 찔린 사람이 사망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3.1. 현대무용의 등장

발레의 엄격함에 반감을 가진 이사도라 덩컨에 의해 현대무용이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그리스식 튜닉을 입고 공연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3.2. 디아길레프와 발레 뤼스

세르게이 디아길레프

러시아 고전주의의 철저한 규율주의에 신물이 난 귀족이 창립한 것이 발레뤼스라고 이야기된다. 하지만 발레뤼스, 즉 러시아 발레단이 유럽으로 순회공연을 하게 된 이유는 당시 러시아의 정치적 혼란에 기인한다. 20세기 초 러시아는 그야말로 거대한 소용돌이에 빠지게 된다. 1907년 피의 일요일 사건,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등 러시아는 20세기 초반을 전쟁과 정치적 혼란 속에서 살아왔다. 특히 1917년 러시아 혁명은 이 현상을 극심화했다. 결국 러시아에서 생존의 위기를 느낀 발레리노들이 유럽으로 다시 유입되었고, 그 중 하나가 발레뤼스라고 이야기된다.

3.3. 냉전과 발레

1917년 10월 혁명 이후 발레는 소련에서 옛 시대의 산물로 여겨져 어려운 고비를 맞았으니 볼셰비키 정권의 문화성 장관이었던 아나톨리 루나차르스키가 발레를 존속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 무렵 아그피나 바가노바가 등장하여 '바가노바 교수법'을 완성하여 오늘날까지 고전 무용의 기초로 교육받고 있는 바가노바 스타일을 제공하였다. 바가노바는 또한 마리나 세메노바, 갈리나 울랴노바 등 재능 있는 제자들을 양성하여 러시아 발레 스타일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데 앞장섰다.

혁명 후 수도가 모스크바로 옮겨지자 확연히 다른 발레 스타일을 고집하던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무용수들이 교류하기 시작하여 다양한 스타일이 공존하게 되었다.

3.4. 현대

3.5. 클래식 발레

3.6. 로맨틱 발레

3.7. 코믹 발레[6]

3.8. 드라마틱 발레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 로미오와 줄리엣
발코니 신 파드두 (안무: 케네스 맥밀란)

20세기 초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장르로, 클래식 발레와 로맨틱 발레에 비해 보다 현실적인 남녀의 애정사를 다룬 이야기가 많다. 드라마틱 발레들의 특징은 파드두에 페어 스케이팅이나 아이스 댄스의 리프팅에서 인용한 동작이 많다는 것이다. 특히 안무가 케네스 맥밀란 같은 경우는 피겨 스케이팅에 관심이 많았고, 존 커리와 개인적인 친분도 있었다. 아이스쇼 안무도 한 적이 있다. 마농 마지막 장 파드두나 로미오와 줄리엣의 발코니 신을 보면 피겨 스케이팅 팬이라면 봤을 동작들이 여러 번 나온다.[8]

4. 발레 용어

4.1. 기본적 용어

4.2. 동작과 관련된 용어

발레 동작은 모두 프랑스어인데, 최근에는 이것을 영어식 발음으로 읽는 경우도 많다. 대체로 많이 쓰이는 단어로 표기하였으며, 경우에 따라 혼란을 줄 수 있는 경우 프랑스식 음가 뒤 괄호 안에 영어식 발음을 추가하였다.

4.2.1. 포지션(발 자세)

5. 유명 무용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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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주요 발레 음악가, 안무가

7. 주요 발레단

8. 취미로서의 발레

발레의 인지도에 비해 취미로 발레를 즐기는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발레 피트니스나 다이어트 발레의 보급으로 최근에는 점차 늘어나는 추세이다. 발레는 정확한 자세를 매우 중요시하기 때문에 취미로 배워두면 일상에서의 자세 교정에도 도움이 되며, 생각외로 힘들고 근력이 많이 필요해 다이어트에도 제격이다.

취미 발레를 시작하려 한다면 체형에 대한 걱정은 버리자. 유독 발레는 늘씬한 사람만 해야 한다는 고정 관념이 강하다. 무용수의 길로 나아간다면 체형에 따른 핸디캡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지만 취미는 취미일 뿐이다. 사내 축구 동호회를 하면서 체격조건이 축구 선수들보다 딸린다고 걱정하거나 다이어트를 위해 수영 강습에 등록하면서 팔이 짧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발레도 마찬가지이다. 타고난 신체조건이나 타고난 재능 따위를 걱정해야 하는 것은 해당 경지의 극한에 다다르면서 더 이상 새로운 훈련이나 교육을 통해 짜낼 것이 별로 없을 때의 이야기이다.
유연성에 대해서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발레 강사들은 이미 나이가 든 취미반 회원들의 유연성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시 태어나서 발레 무용수로서의 인생을 살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동작을 요구하지 않는다. 되면 되는 데까지, 안 되면 안 되는 데까지 노력해서 하면 그만이다.

9. 창작물에서

9.1. 발레를 소재로 한 창작물

※ 뮤지컬인 경우 ♬표시.

9.2. 발레를 하는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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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기타


[1] 특이하게도 장음 부호 ー을 붙이지 않았다. 북한에서 이를 그대로 따왔다. '바레에'라고 읽음. 배구를 뜻하는 バレー와 헷갈리지 않도록 주의. [2] 그렇다고 근육질의 남자가 추는 백조의 춤을 연상하면 안 된다. 당시의 복장은 현대의 발레복에 비해 복잡하고 거추장스러웠으며 테크닉도 현대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기초적이었다. [3] 당시의 배경을 바탕으로 한 <왕의 춤>이라는 영화가 있다. [4] 드가가 특히 유명하다. [5] 세계적인 동화 신데렐라, 안데르센의 작품들이 이러한 경우에 해당된다. [6] 굳이 분류하자면 클래식 발레에 가깝다. [7] 네이버 지식백과에서는 오역을 했는지 말괄량이 딸이라고 되어있다. [8] 피겨 스케이팅의 태동기에는 반대로 피겨 스케이팅이 발레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발레를 배우던 학생들이 피겨 스케이팅으로 전직을 하곤 했다. [9] <춘희>로 잘 알려진 이야기로, 주인공을 명칭하는 '동백꽃 여인'이란 뜻. [10] 발레리나와 발레리노 모두 주역 무용수를 지칭하는 단어였으나 점차 범위가 넓어져 지금은 모든 발레 무용수를 지칭하는데 쓰이고 있다. [11] 간단하게 턴(turn)이라고 할 때도 많다 [12] 유일하게 턴아웃하지 않는 발 포지션. [13] 둘 다 링컨센터 안에 위치해 있어서 말그대로 걸어서 20초 이내의 거리. 두 발레단의 무용수들도 서로 친한 편이다 [14] 영혼 결혼했다는 문훈숙이 단장이다. [15] 발레리노 세르게이 폴루닌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16] 사실 뮤지컬이 아니다. 억지로 분류하자면 발레공연이나 현대무용에 가깝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토니 어워드에서 뮤지컬 부문으로 수상을 받았다. 매튜 본 자신도 지금까지 영문을 모르겠다고. [17] 영화를 뮤지컬화해서 무비컬이라고도 부른다. [18] 여주인공 크리스틴 다에와 그녀의 단짝 멕 지리가 오페라 하우스 발레단 소속의 발레리나로 첫 등장하며 극중에서 짧은 발레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다만 이 설정은 뮤지컬 한정으로, 원작 소설에서 멕 지리는 발레리나가 맞지만 크리스틴은 본래 조역 가수였고 둘이 친하다는 묘사도 없다. [19] 마법사 고양이 미스토펠리스가 여러 발레 기교를 보여주며, 춤이 중요한 작품 특성상 미스토펠리스 외에도 여러 배역에 발레 무용수들이 거쳐간 적이 있다. [20]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발레 콩쿨 YAGP(유스 아메리카 그랑 프리)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신하균이 국내판 내레이션을 맡아 살짝 화제가 됐었다. 제목의 퍼스트 포지션은 위에서 설명한 발 자세 '1번'에서 따왔다. [21] 초반에 주인공 소라가 트레이닝을 하면서 고생한다. [22] 중성 마녀들의 복장을 비롯한 컨셉이 발레다. 하는 동작이나 복장으로 구분하자면 조마가 발레리나 쪽으로 보인다. 발레 무용수들의 신체 고증도 잘된(?) 편인지 처음부터 용사를 맨몸으로 가볍게 관광을 보낸다. 가볍게 보이는 극중 분위기와 달리 발레 관련 전문 용어를 제대로 쓴다. 참고로 작중 쓰는 용어들은 파드되, 피루엣, 아라베스크, 그랑 푸에테 앙트루네, 그랑 주테. [23] 2013년 개봉한 한국 영화. 걸스데이 민아가 출연했다. [24] 어깨가 넓으면 옆으로 커져서 괜히 굵어보이기 때문에 가는 몸매를 선호하는 발레와는 안티테제급 몸매가 된다. [25] 극진공수도 교본에도 사진과 함께 같은 요지의 칼럼을 싣기도 했다. [26] 기계체조 하는 사람들과 비교해도 비슷하면 비슷하지 절대 달리지 않는다. [27] 제일 위의 사진에서의 발레리노만 봐도 하체가 엄청나게 발달해 있다. [28] '무용/패션 분야에서 일하는 남자 = 게이'라는 인식은 외국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 [29] 다들 식스팩은 기본으로 달고 다닌다. 라 바야데르의 니키야만 봐도 알 수 있듯. [30] 예를 들면 리프트할 때 여자 쪽의 점프 타이밍이 조금만 어긋나도 남자에게 가해지는 무게는 몇 배로 늘어난다. 반대로 점프하는 순간과 리프트하는 순간이 일치하면 여자 댄서가 좀 무거워도 훨씬 수월해진다. 키 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 남녀 댄서가 능숙하게 출 수 있는 건 둘의 호흡이 아주 잘 맞아서, 그리고 남자 댄서가 경험이 많아서이다. 아무리 몸이 좋고 키가 커도 파트너링이 안 되는 남자 댄서는 관객과 여자댄서들에게 인기가 없다. 특히 인기 많은 프린시펄들은 남자 파트너가 마음에 안 들면 교체를 요구하는 일이 흔하다. [31] 치열한 경쟁에서 오는 스트레스 등 [32] 혹은 기계 체조. 어느 쪽이든 점프와 근력을 강조하기에 발레만 한 사람들에 비해 유리하긴 하다. [33] 여기에서 말하는 유연함은 다리를 잘 찢는 게 아니라 포드브라나 어깨, 상체 움직임, 즉 epaulment 등을 의미한다. [34] 합격자 중 결원이 생겨서 어떻게 입학을 하긴 하지만, 내용이 진행되는 내내 몸이 체조선수같이 뻣뻣하다고 선생님한테 혼난다. [35] 그 증거로 리듬체조 학원에 가면 발레 전공자들이 많다. [36] 리듬체조의 "사이드 스플릿 발란스"와 비슷한(똑같은 동작이 아니다!) 동작. 완성 모양은 같지만, "사이드 스플릿 발란스"는 발레에서 발전한 서로 다른 동작으로 보아야 한다. 발레에서 사이드 스플릿 발란스와 비슷한 완성자세를 취하는 과정이 두 가지 정도가 있는데, 하나는 데벨로페 형식(천천히 다리를 쿠페-파쎄 자세를 취하면서 완전히 종아리를 허벅지에서 펼치는 것)으로 하는 방법, 다른 하나는 그랑 바뜨망 형식(킥을 하듯이 쭉 편 다리를 올려차는 것)으로 하는 방법이다. [37] 알 라 스공드 데벨로페 자세로 섰을 때, 마치 6시를 가리키는 시계 바늘처럼 다리를 귀 옆까지 찢어 올려 유지했다고 하여 6시 포즈라고 부른다. [38] 출연한 발레리나 과반이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아청법 위반물이 될 수도 있다. [39] 그 때문에 현대무용의 경우 속옷이나 타이츠만 입고 무대를 펼치는 남자 무용수를 종종 볼 수 있다. [40] 원래 이름이 박훈숙인데 영혼결혼을 통해 성을 문씨로 바꿨다. [41] 발레와 평범하고 편안한 룩을 뜻하는 '놈코어'의 합성어로, 발레복과 일상복의 경계가 없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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