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삼국지에서 오나라 인물들은 유독 젊은 나이에 아깝게 사망하는 요절이 많은데, 이 현상을 서술한 문서. 특히 손씨 가문과 대도독급 책사들에게 많이 나타난다. 상대적으로 문관들은 좀 오래 산 편. 실제로 이름밖에 안 남은 사람들을 제외하면 손씨 중에 지천명을 넘긴 사람은 확실하게는 손권, 손소 밖에 없고, 손정이 그나마 가능성이 있으며, 불혹이라도 넘긴 사람은 손분과 손린, 손호, 손환 뿐이다.과학적인 해석으로는 장강 남쪽의 습기와 더운 풍토에 당시 북방에서 이주해온 한족들이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기생충이나 면역이 없는 질병 등에 시달려서 사망률이 높아지게 되었다고 여겨진다.[1] 이는 당시 사람들도 염려하던 부분으로, 중국 고대 사료를 보면 '그 지방의 물과 땅, 공기가 맞지 않아 오래 정착하여 살 수 없으니~' 따위의 구절이 흔히 보이는데 이것이 바로 그 부분.
장강 이남은 남북조 시대에 본격적으로 개발이 시작되며 수당 시대에 온 뒤에야 이 지역의 개발이 대충 완료되었다. 전근대의 극심한 영아사망률을 고려한다 해도 변변한 의술 및 약품, 항생제가 없었기 때문에 평민층은 말할 필요도 없고 지배층조차 장성해도 오래 살기 힘들었다. 오나라의 실질 통치력이 장강 중하류 일대에 국한되며 이 지역 인구가 후한 말기에 400만명에 달한 점 등을 들며 이의를 제기하는 이도 있지만 장강 중하류 지역만 따져도 한반도보다 훨씬 넓으며 산지라고는 없는 평야지대임을 감안할 때 인구밀도가 희박한 지역이었다. 장강 이남 지역은 현대에까지도 아열대 지역으로서 가축과 야생동물, 그리고 인간이 함께 거주하면서 새로운 변종 바이러스가 계속 만들어지는 곳이다. 조류 독감이나 사스, 그리고 코로나 19가 바로 이 곳에서 만들어졌다.[2]
실제로 위나라 인물들 중 오나라와 대치하며 남방에서 근무하던 이들은 병사한 경우가 많다.
물론 그 외의 이유도 있다. 손견이나 손책 같이 비명횡사한 사람도 있으며, 손권의 아들들은 제위 다툼 끝에 어린 나이에 자살했거나 귀양 중 숨졌다.
여하간 역으로 별로 중요하지 않게 취급되거나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약한 인물 가운데는 장수한 인물도 많기에[3], 왠지 오나라는 아주 늙은이와 아주 젊은이만 득시글대는 동네로 착각할 수 있게 하는 주된 원인이기도 하다. 아예 연의도 작정하고 주유 - 감녕 - 여몽 - 육손(젊고 대체로 단명한 장수) 대 정보 - 황개 - 장소 - 한당(장수한 장수)으로 밀어붙이고 있다.[4][5]
이 요절 징크스는 삼국지 후반부에도 여전했다. 명군으로 평가받는 손휴가 29세에 요절하고 폭군+ 암군으로 평가받는 손호가 즉위하고 잠혼과 함께 국가 막장 테크를 타다가 오나라가 멸망했으니, 결국 이 요절 징크스가 오나라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비슷한 사례로 동진, 북위, 북제, 북주의 황제들과[6], 일본 전국시대의 미요시 일족이 있다(여긴 아예 일가가 요절했다). 한국사에서 비슷한 예를 들자면 신라 중대왕실( 태종 무열왕 ~ 혜공왕)을 들 수 있다. 무열왕과 문무왕을 제외하고는 50을 넘기고 생존한 왕이 없다.[7]
2. 요절한 오나라 인물
- 고소 - 30세.[8] 손책의 사위이자 고옹의 장남인데도 명이 짧은 데다 활약상이 적어서 그런지 연의 등 창작물에서는 철저히 묻혀서 존재감이 없다.
- 손씨 가문
- 손견 - 36세. 유표군과의 싸움에서 황조의 궁병에게 전사.[9]
- 손책 - 25세. 정사에서는 허공의 식객들에게 암살당했다.[10] 연의에서는 허공의 식객 3총사의 습격을 받은 후 신선 우길을 처형[11]했는데, 그의 혼령에 시달리면서 상처가 악화되어 사망.
- 손익 - 20세. 손견의 삼남. 부하 장수 변홍 등이 배신하여 암살당함. 생몰년은 184년 ~ 204년. 연의와 정사에서는 존재감이 없지만, 고우영 삼국지에 그나마 그 일화를 다룬 것이 길다.
- 손송 - 많아야 30대 정도. 손익의 아들. 재능이 뛰어났으나 231년 요절. 제갈량이 양자 제갈교에게 들은 바가 있어 그의 요절을 슬퍼할 정도였다고 한다.
- 손광 - 20여 세에 사망.[12] 손견의 사남. 아들 손태 역시 30대에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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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부인 - 30대 가량. 손책, 손권, 손익, 손광의 동생. 연의 설정을 반영하면 최소 31세, 최대 40세에 사망.[13][14] - 손유 - 38세. 손견의 아우인 손정의 차남.
- 손교 - 30대 중후반. 손견의 아우인 손정의 삼남으로, 위의 손유의 동생. 형이 죽고 4년 뒤 사망.
- 손권의 아들들 전원 - 참고로 손권의 자식들은 명군감이였던 유능한 인물들이 많았다. 촉한이나 조위가 창업주의 자식들 때에서 함량 미달의 군주들이 나와[15] 나라가 휘청거리거나 멸망의 단초가 되었던 것을 감안하면 동오는 분명히 후계자 쪽으로는 축복받았다. 하지만 자식들이 유능했어도 이궁지쟁으로 인한 분란은 막지 못했다.
- 손등 - 32세에 병사. 손권의 장자. 아버지보다 11년 먼저 죽었으며 막내동생 손량이 태어나기도 전에 죽었다. 이 사람이 요절한 게 오나라를 멸망으로 이끈 비극의 서막이어서 더 비극적이다. 안 그랬으면 정통성도 능력도 출중한 손등은 완벽한 후계자였을 터인데 말이다. 거기다가 그의 죽음이 그의 동생들 중 최소 3명[16]의 생명 역시 단축시켰다.
- 손려 - 19세에 병사. 손권의 차남. 손등보다도 9년 먼저, 6남 손휴가 태어나기도 전에 죽었다.
- 손화 - 29세. 손권의 삼남. 능력도 있었으나 억울하게 손권의 미움을 받고 이후 내내 권력다툼에 시달리다가 밑에 나오는 손준의 명령으로 자결했다.
- 손패 - 최소 15세, 최대 26세에 사망, 사인은 (명령받은) 자살. 손권의 사남. 본래 손권의 총애를 받았지만 이궁지쟁 당시 자기 패거리와 함께 날뛰다가 결국 눈 밖에 나서 손권에게 자결을 명 받았다.
- 손분 - 손권의 오남. 270년에 조카 손호에 의해 살해되었다. 정확한 출생년도는 불명이지만, 일단 손패의 동생이고 손휴의 형이니 최소 35세, 최대 46세이다. 그런데 웃긴 건 이 인간이 손권의 아들 7명 중에서 가장 장수한 인물이라는 것. 다만 사실 그리 좋은 인물은 아니었다.
- 손휴 - 29세에 병사. 손권의 육남. 3대 황제로 자신을 꼭두각시로 부리려뎐 손침을 제대로 몰아내는 데 성공하고 나름대로 오를 잘 이끌어보려했지만 병으로 안타깝게 요절. 거기다 4대 황제 손호에 의해 손완을 포함한 아들 모두가 살해당했다.
- 손량 - 17세. 손권의 7남이자 막내 아들. 2대 황제. 손준에 의해 16살에 폐출됐고 이후 손휴의 견제 과정에서 사망했다.
- 손준 - 37세. 군부대 시찰 도중 갑자기 가슴이 아프다고 돌아가더니, 과거 자기가 죽인 제갈각이 나오는 악몽을 꾸고는 갑자기 덜컥 죽었다. 그 제갈각도 죽을 때 뭔가 요상한 현상들이 있었다고 하고 하여튼 참 요상한 죽음. 뭐 오나라를 개판으로 다스렸기에 일찍 죽어 다행이지만...
- 손침 - 27세. 사촌형 손준을 따라 오나라를 개판으로 다스리다가 꼭두각시로 세워놓았던 황제 손휴의 반격으로 사망. 이후 손휴는 손준도 부관참시한 다음 둘의 이름을 황실 족보에서 지워 고준, 고침으로 개명시켰다.
- 손호 - 42세. 봤다시피 이 양반도 장수한 편은 못 된다. 참고로 손호가 죽은 후 먼 훗날, 백제의 의자왕이 손호의 바로 옆에 매장되었다.
- 대도독 대부분: [17]
- 주유 - 35세에 병사.
- 노숙 - 45세.
- 여몽 - 41세. 과로+병사. 관우토벌전에 나설 때 이미 병상에 누워있는 상태라 작전을 단독으로 못하고 육손과 같이 했다.
- 육항 - 47세. 병사. 손호 때문에 막장으로 흘러가는 오나라를 마지막으로 지탱한 인물로 서진 쪽에서도 육항이 생존해 있을때의 오나라 정벌은 불가하다고 판단했을 정도이다.
- 태사자 - 40세. 병사. 정사에서는 남방의 반란을 진압하러 갔다가 병으로 사망했다. 연의에서는 장료가 있는 합비를 기습하는 작전을 꾀하다가 화살에 맞고 그 상처가 악화되어 사망했다.[18]
- 육적 - 31세. '한대의 지사인 오군의 육적은 어려서는《시경》,《상서》를 사랑했고, 성장한 후에는《예》,《주역》을 익혔지만, 명을 받아 남쪽으로 가서 정벌하다가 불행히 질병에 걸려 생명이 위독해졌다. "내가 만난 운명은 영원하지 못하다. 아! 세상과 영원하지 못함이 슬프구나!" "지금부터 60년 후, 천하에는 수레가 궤를 같이하고 문자를 똑같이 사용하게 될 텐데[19], 유감스러게도 보지 못하는구나."라고 자신의 죽음을 예언했다고 한다. 자신도 죽으면서 나에게 주어진 수명이 너무 짧다는 투의 유언을 남겼다.
- 능조 - 확실히 알 수는 없어도 오래 살지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삼국지집해에서는 능조가 사망한 해를 203년이라 기록하며 이때 능통의 나이는 15살이었다고 한다. 물론 종요처럼 아버지와 아들의 나이차가 지나치게 심한 경우도 있겠지만, 당시에는 일반적으로 아버지와 아들의 나이차는 20년 안팎인 게 보통인 데다가 전장에 선봉으로 나섰다가 전사한 것으로 미뤄보면 능조의 사망 나이는 34 ~ 44살 정도밖에 안 됐을 것으로 보인다.
- 능통 - 28세 혹은 48세[20]. 몰년이 20년이나 차이가 나는 이유는 능통이 48세에 죽었다고 적혀 있는 능통전과 능통이 28세에 죽었고 그의 부대를 낙통이 이어받았다는 낙통전의 기록이 충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합비 공방전 이후 형주 공방전이나 이릉대전, 조비의 남정, 석정 전투와 같은 국가의 존망을 건 중요한 전투에 참전한 이력이 없고 능통 사후에 손권이 몇 살 밖에 안된 능통의 자식들을 궁 안에 거둬 양육했다고 하는 기록이 있는 등 28세에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
- 대교 - 손책 사후 몇 달 안돼 죽었다고 전해진다. 최대 16세.
- 사부인 - 생몰년 미상이나 요절로 기록됨.
- 소교 - 전승에 따르면 주유가 죽자 영전에서 자살했다. 주유와의 나이 차이를 고려하면 많아 봤자 25세.
- 제갈교 - 24세. 정확히는 촉나라에서 일하다 죽었으니 촉의 인물이라 할 수 있지만, 제갈근의 차남이다.
- 제갈반 - 생몰년 미상. 제갈각이 죽으면서 제갈근의 후손이 끊어질 위기에 처하자 촉나라에서 오나라로 돌아왔는데 그 또한 요절했다고 기록되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아들은 남기고 갔다.
- 진무 - 38세로 추정. 합비공방전에서 전사했다.
- 진표 - 33세. 진무의 서자로 대인군자적인 행보를 보여주는 기대주였지만, 결국 33살의 젊은 나이로 사망한다.
- 낙통 - 35세. 위의 능통의 요절 설을 지지하는 기록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지만 그 또한 요절했다.
- 육경 - 30세. 육손의 손자이자 육항의 차남. 오 멸망기에서는 서진과 싸우다가 전사했다.
- 장휴 - 40세. 장소의 3남이자, 장승의 동생.[21]
- 장온 - 37세. 오나라 4성(육, 주, 고, 장) 장씨. 손권에게 숙청당해 주환, 고옹, 육손보다 빨리 죽었다. 참고로 손권이 장온을 숙청한 이유는 장온이 촉에 가서 진밀과 교분을 맺고 돌아와 촉한의 정치를 찬미했기 때문이다.
- 장흠 - 생년은 알 수 없으나, 첫 임관이 손책이 원술의 휘하였을 무렵(194~195)이고 몰년이 219년이다. 지천명을 못 넘겼을 가능성이 높다.
- 유기 - 49살. 손책과 싸운 그 유요의 장남이다. 유요가 죽은 후 손권에게 초빙되어 광록훈에 올랐으나, 233년에 요절하였다. 그나마 요절한 인물들 중에서는 가장 장수했다.
그런데 이렇게 쭉 나열하고 보면 막상 자연사 비율이 낮다. 당장에 손씨 일가만 봐도 자연사한 사람이라곤 손송, 손광, 손유, 손교, 손등, 손려, 손준, 손호 정도로 손에 꼽는다. 이는 손권 말기 벌어진 이궁지쟁과 그 이후 손준, 손침의 폭정에 잠깐 안정기를 찾은 손휴 시기를 지나 손호 시절에서 정치적으로 너무 죽어나갔기 때문이다[22]. 즉, 단순 요절 징크스만은 아니고 손권 말기부터 이어진 정치적 혼란과 맞닿는 면이 있는 것. 다만 그렇다고 해도 너무 일찍 죽어나간 감은 있다.
3. 장수한 오나라 인물들
- 손권 - 70세. 부친과 친형의 생전 연령을 합친 것보다 더 오래 살았다. 단, 너무 오래 살아서인지(?) 손권의 알코올 중독 증세의 이유가 이사람 저사람 일찍 죽어 그걸 술로 달래려던 거 아니냐는 얘기까지 있다.
- 육손 - 62세. 육손은 연의에서도 그렇고 미디어 매체 대부분에서 애송이나 젊은이로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 이릉대전 무렵에 이미 40대 초반이었다. 다만 오래 살아서 좋은 꼴은 못 봤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홧병으로 사망했으니, 결국 장수했다고는 해도 제 명에는 못 살았다.
- 장소 - 80세. 장남 장승도 66세로 당시 기준으로는 장수했다. 참고로 장소는 손견과 동갑이다.
- 여대 - 95세. 오나라의 최장수 인물이다.[23] 게다가 여대는 유비와 동갑이다. 그런데 유비의 아들뻘인 손권의 아들들 7명 중 4명보다 늦게까지 살았다. 유비도 62세로 꽤 장수한데다가 손권의 아들들 중 5명이 유비 사후에 태어났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 사섭 - 89세. 장소와 동갑인 손견보다도 18세가 많았다.
- 우번 - 70세 정도에 사망. 이미 190년간에 성인인 것, 손권의 재위 이전에 귀양갔으나 10년만에 죽었으므로 160년대부터 230년대까지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 고옹 - 75세. 손권이 즉위한 225년부터 19년간 승상에 재임했다. #
- 주연 - 67세 그것도 육손 사후에 도독 자리에 올라갔고, 그 후에 사망. 그런데 연의에서는 27년이나 먼저 죽여버린다.
- 보즐 - 정확한 나이는 알 수가 없지만 200년부터 주기로 일했고 210년에 파양태수에 임명됐는데, 태수가 될 수 있는 나이를 30대로 추정하고 출생년을 180년으로 추측하고 몰년이 247년이므로 정황상 60대 후반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 제갈근 - 67세. 동생보다 7년 먼저 나서 7년 뒤에 죽었다. 아들 제갈각도 50세까지 살았으니 요절은 아니지만, 평소 인격이 개막장이었는데다 군사활동을 거하게 말아먹은 대가로 죽임을 당했으니 제 명에 못 살았다.
- 주치 - 68세. 정보, 황개, 한당과 함께 손견 시절부터 섬겨온 원로.
- 정보[24] - 손견 시절부터 섬겨온 4명의 공신중 한 사람. 연배가 장수 가운데 가장 많아 '정공'이라고 불렸다. 아쉽게도 정확한 생몰년도를 알 수가 없어서[25] 얼마나 오랫동안 살았는진 알 수가 없다.
- 황개 - 손견 시절부터 섬겨온 4명의 공신 중 한 사람. 아쉽게도 이 쪽도 제대로 된 생몰년도를 알 수가 없어 얼마나 오랫동안 살았는진 알 수가 없다. 215년에 숨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 한당 - 손견 시절부터 섬겨온 4명의 공신 중 한 사람. 적벽대전 이후 리타이어하는 정보, 황개와 달리 이릉대전에서까지 활약했다. 아쉽게도 정확한 생몰년도를 알 수가 없어 얼마나 오랫동안 살았는진 알 수 없고 227년에 숨졌다고 추정만 된다. 다만 손견과 비슷한 나이라고 가정할 시, 최소한 칠순은 넘겼을 듯 하다.
- 감녕 - 의외로 나이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대략 215년이나 219년에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26] 활약기간이 짧아 요절로 오해받기도 하는데, 젊을 때는 인정받질 못하고 좀 늦은 나이에 겨우 빛을 봐서 그렇다.
- 유찬(留贊) - 72세. 그것도 전사. 관구검, 문흠의 난이 일어나자 출병 도중 병에 걸려 퇴각하다가 적군을 만나 전사했다.
- 육개 - 71세
- 육윤 - 미상. 단 198년생인 육개의 동생인 점이나 최소 258년까지 살아있던 점을 감안하면 오래살았다고 볼 수 있다.
- 시의 - 80세. 단, 생몰년도는 불명.[27]
- 주환 - 61세. 연의에서는 소년장수로 나오지만, 정사에서는 장수했다.
- 범신 - 68세.
- 정봉 - '어려서 용맹하여 소장(小將)이 돼, 감녕(甘寧), 육손(陸遜), 반장(潘璋) 등에게 속했다.'라는 정사의 기록이 있는데, 감녕의 사망 추정연도가 215년이나 219년이므로 정봉이 10대에 감녕의 부대에 임관했다고 가정하면 최소 60대 후반이던 271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28]
- 엄준 - 78세. 다만 생몰년도가 미상이라서 이것도 추정치에 불과하다. 다만 노숙 사후의 조치에 대한 기록을 보면 손권이 "군 지휘"를 맡기고자 했던 점에 착안해 대강 유추해볼 수는 있다. 217년에 20대 중반이었다고 가정하면 270년 또는 그 이후에 죽은 셈이다. 그러나 만일 217년에 30대 이상이었다고 가정하면 손휴 - 손호 교체기에 사망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 장굉 - 59세
- 주처 - 61세. 서진의 인물이지만, 삼국통일 전에 동오에서 태어났다.
- 손씨? - 손책의 딸이자 육손의 아내이자 육항의 어머니, 육경의 할머니. 육경이 태어날때(253년) 제갈씨의 친족이라 쫒겨난 육경의 어머니 대신에 육경을 키우고 육경이 심상을 치렀는데, 손책의 딸치고 생각보다 오래 살았다. 그러나 육경을 키웠다는 사람이 단순히 그의 할머니라 기록되어 있어 지칭하는 사람이 다를 가능성(육손의 측실이나 후처)도 있다.
4. 위나라의 요절한 인물들
반대로 조위에는 수명이 매우 길었던 주요 인사들이 꽤 많다. 허저, 서황, 장합, 만총, 문빙, 전예, 곽회, 견초, 장패, 하후패[29] 등의 무장들은 물론 고유, 유소, 사마의, 동소, 유엽, 종요, 진군, 왕랑, 화흠, 진교, 위진, 장제, 신비, 유방, 손자, 최림, 노육, 왕릉 등 조위 건국 전 군벌 시절 조조 때 출사했던 중신들이 조조의 손자 조예 때도, 심지어 아예 조방, 조모 때까지 조정의 요직을 해먹은 사례가 수두룩하다. 이 중 최강자는 사마의의 동생인 사마부로 영제 때 태어나 삼국정립과 삼국 중 촉과 위가 망하는 것까지 보고 오가 망하기 8년 전 92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만약 독발수기능의 반란 등으로 진의 오나라 침공이 늦어지지 않았더라면 오까지 멸망하는 것을 볼 수도 있었으리라. 즉 당대 기준이 아니라 오늘날 기준으로 봐도 충분히 장수한 인물들이 즐비하다. 이것만 보면 조위가 촉한과 손오의 양면공략을 이겨내고 당대 절대 강국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이렇게 나라를 보위하는 핵심 인재들의 수명이 매우매우 길었던 것도 중요한 요인일 수 있다.그러나 몇몇 핵심 인물들이 요절했는데, 핵심 참모들 중에서는 곽가가 단명하였고(170~207), 특히 황제 조씨 집안 인물들 상당수가 요절했다. 위나라의 초대 황제 조비가 불혹을 넘기지 못했고, 아들 조예도 30대에 요절했으며, 조비의 형제들은 조창과 조식 역시 각각 30대 초중반, 40세로 유명을 달리했다.[30] 조조가 특히 아꼈다는 아들 조충은 고작 만 12세에 요절한다. 조앙은 아버지를 구하다 20대에 전사하여 요절하고, 조조의 조카 조안민도 사촌형 조앙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생년이 정확하지 않아 요절인지의 여부는 불확실하지만 군부의 2세대 근왕 세력 주요 인물들인 하후상, 조휴, 조진이 모두 군부에서 중점적으로 활약한 기간이 길어야 10년 남짓에 불과하여 50세 이전에 사망했을 가능성이 꽤 높다.[31]
훗날 조위가 호족 대표격인 사마씨에게 제대로 된 저항 한 번 못해보고 허무하게 왕권을 빼앗긴 건 조조의 뒤를 이어 왕권을 강화하고 나라의 기틀을 다지는 초석의 역할을 해야만 했던 조비와 조예가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고 요절하는 바람에 조예의 양자인 조방이 고작 만 7세에 즉위했고, 조방을 붙잡아 줄 친족들도 하나같이 오래 살지 못하면서 중심이 계속 흔들린 반면, 신권을 대표하는 주요 신하들의 수명은 매우매우 길어서 자연스럽게 신권은 강화되고 황권이 악화됐던 측면이 크다.[32] 결과적으로 조위의 장수 징크스는 양날의 칼이었던 셈.[33]
참고로 위 인물들이 일찍 죽은 이유는 당시 의학의 한계라기보단 자기관리 부족으로 21세기에도 일찍 죽기 참 좋은 불규칙적인 생활습관을 유지했거나 심리적 요인이 크다. 조비와 조예, 곽가는 평소 주색과 매우 가까웠고, 조식은 오랜 주벽과 정계에서 완전히 배제된 뒤 발생한 스트레스, 조진은 비만, 조휴는 석정전투 패배 후 화병, 하후상은 조비에게 애첩이 살해당한 심적 고통으로 죽었다. 조창은 조비에게 독살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위나라 출신이라도 남방에서 근무한 이전[34]은 요절하였고, 악진과 장료[35]도 합비 방어를 맡은 뒤 오래 살지는 못했다. 단, 만총과 왕릉은 장수하였다. 또한 반대로 남방 출신이거나 꽤 오래 근무한 화흠과 유엽은 조조 밑으로 온 뒤에 꽤 오래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번외로 조조 휘하 참모들 중에서는 순욱(163~212)과 순유(157~214)는 49세, 57세에 사망해 요절은 아니지만 장수하지는 못한 반면, 조조에게 등용될 당시 고령이었던 정욱(141~220), 가후(147~223), 종요(151~230)가 모두 대단히 장수하여, 젊은 참모들부터 먼저 죽어 나가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나이는 (정욱>가후>종요)>순유>순욱>곽가인데 몰년은 반대 순서로 곽가>순욱>순유>(정욱>가후>종요).
5. 촉나라의 요절한 인물들
촉한은 그나마 손오보다 낫지만 이 나라도 사인들을 보면 대부분 곱게 죽지는 못했다. 과로사, 전사, 암살이 대부분인데, 유비가 60대, 관우, 장비, 제갈량이 50대까지 살아서 그렇지[36] 이릉대전에서 전사한 수많은 장수들을 제외하더라도 곽준이 40세, 방통이 겨우 35세, 그나마 오래 산 마초와 법정도 각각 46세, 44세로 지천명에 도달하지 못했다. 내정 및 외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던 마량도 35세에 전사했고, 2세대, 3세대들인 제갈교, 장포, 관흥, 관통, 관이도 전원 단명. 특히 장포와 제갈교는 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물론 위연, 강유, 요화, 장익, 초주, 종예, 등지, 허정, 내민, 유은 등 장수한 사람도 있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후주 유선이 64세로 장수했다는 웃픈 점도 있다.촉한은 요절도 요절이지만 유비가 한중왕에 오른 후부터 관우, 법정과 황충, 장비, 마초가 1년 간격으로 사망하여 군부의 핵심들이 4년만에 증발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 유비마저 이릉에서 망하고 마초가 죽은지 1년 후 사망하는 사태가 터져버렸다. 특히 단명한 인재들 중에는 방통, 법정, 마초, 관평, 유봉, 마속, 제갈첨 등 촉한의 핵심 인물 내지는 코어 유망주들이 즐비하다. 유봉은 본인의 막장 처신과 위험한 위치, 마속은 제갈량이 직접 밀어주려던 기대주였음에도 등산을 고집해 말아먹어 그러려니 해도 방통과 법정은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자마자 죽어버렸고, 마초는 엄청난 능력에도 본인의 PTSD로 추정되는 증상 때문에 죽었다는 게... 관평도 친부 관우 밑에서 차근차근 커리어를 쌓아 올리는 도중에 전사했고, 제갈첨은 젊은 나이에 강유와 동궐 다음인 위장군과 상서복야에 오를 정도로 명성도 자자하고 능력 면에서도 촉망받던 미래가 기대되던 인재임에도 유선, 마막, 황호의 삽질과 본인의 전투 경험 부족으로 인해 전사하고 말았다. 역시 뭐니뭐니해도 오호대장군 중 1인인 마초와 명참모로 전장을 그려냈던 방통, 법정이 요절했다는 게 뼈아팠다.
6. 기타 세력의 요절한 인물들
기타 세력에서도 요절한 인물들이 상당하다. 영제 유굉과 하태후 역시 35세를 넘기지 못했고, 여포, 하진도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에 사망했을 것으로 보여진다.[37] 소제 역시 10대의 나이에 사망했으며, 공손찬 역시도 조조나 친구인 유비의 또래로 가정하면 50대를 못 넘겼다. 원소는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에 사망한 것으로 보이며, 원술은 44세에 사망하면서 역시나 요절. 그 외에도 낙준의 경우에도 첩이 화흠에게 재가한 것으로 보아 화흠과 비슷한 연배로 보면 30대 후반 ~ 40대 초반에 살해당한 셈이다.사실 위촉오를 제외한 세력들에서 단명한 이들이 많이 나온건 당연하다. 후한 중엽~말엽부터 정치가 개판이 되어 황제조차 요절하는 상황이고 태후도 권력다툼에 휘말리다 보니 천수를 누리기 힘든건 당연했으며 군웅할거 시대가 열리고는 군웅들끼리 서로 죽고 죽이며 도저히 장수하고 싶어도 못하는 상황이다. 당장에 오나라도 손권은 장수했지만 손권 위의 손견과 손책은 각각 전사와 암살로 단명했다는걸 잊지 말자.
그나마 유표와 도겸은 60대에 사망하였고, 동탁도 살해당한 것을 감안하더라도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 남짓에 죽었으며, 한수와 마등은 70대까지 살아 그럭저럭 선방한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7. 비슷한 경우
문제는 요절 징크스가 군주만 놓고 보면 삼국시대로 끝나지 않고 위진남북조 시대 전반에 걸쳐 벌어진다는 것이다[38]. 자세히 보면 이렇다.- 서진: 사후 추존된 사마의는 72세로 장수한 편이지만 사마사가 47세로 50을 넘기지 못했고, 사마소와 초대 황제인 사마염이 54세로 50을 겨우 넘겼으며, 자세한 출생 연도가 알려져 있지 않은 최소 50세에서 많게는 70세 가까이 산 것으로 추정되는 비정통 황제인 사마륜을 제외한 전원이 요절했다. 그나마도 사마륜은 재위 후 2달만에 피살되었다.
- 동진: 초대 황제인 사마예와 폐제 사마혁, 사마욱을 제외하면 전부 요절했는데, 심지어 그래도 재위 기간이 15년이라도 되었던 사마염과는 달리 각각 5년, 7년, 8개월에 불과했다.
- 오호십육국: 대부분 창업군주 외에는 단명하였다. 그나마 부견 정도가 창업군주가 아닌데도 그럭저럭 살았지만 이 사람도 47세의 나이에 시해당했다.
- 북위: 태무제만 빼고 전원 단명하였다. 그나마 태무제도 44세에 피살되었다. 서위, 동위까지 합치면 그래도 서위의 문제가 43세가지 살았으나 그는 우문씨의 꼭두각시였다.
- 북제, 북주: 북위보다도 막장으로, 40세까지 산 황제가 한 명도 없다.
- 유송, 남제, 양나라: 마찬가지로 창업군주 외엔 대부분 단명하였고[39], 그 창업군주들도 양무제 빼고는 늦게 즉위했다. 그나마 유의륭은 46세까지 살았지만, 이 사람도 자연사가 아니라 피살당했다. 진나라의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진백종만 제외하고 전부 50대까지는 살았다. 다만 진숙보는 중도에 나라가 망해서 황제로서 50대를 넘긴 게 아니다.
- 수나라도 수문제를 제외하면 50대에 도달한 황제가 한 명도 없다. 그나마 수양제가 49세까지 살긴 했지만, 이쪽은 자신이 폭정을 저질러 스스로 나라를 망쳤기에 의미가 없으며, 나머진 그런 난세 속에 억울하게 살해당했다.
물론 위진남북조 시대는 혼란스럽기 짝이 없던 시대라는 점도 감안해야 하지만, 각 왕조별 전성기를 이끈 군주들조차도 제명에 못 살거나 단명하였다. 그리고 이는 오대십국시대의 오대의 군주들에서도 서로 비슷하게[40] 재현된다.
- 후량: 창업군주 주전충 외 요절
- 후당: 이사원이 그나마 66세까지 살아 나름 장수했지만, 반대로 늦은 나이에 즉위해 7년밖에 재위하지 못했다.
- 후진: 석중귀는 오래 살았지만 재위기간이 짧았다.
- 후한: 후량과 동일
- 후주: 역시 후량과 동일
8. 기타 창작물에서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에선 통솔력을 제일 많이 올려주는 손자병법[41][42]과 고정도가 손가 대대로 전해져서 이들이 사로잡히면 얄짤없이 처형당하고 빼앗기는 수모를 겪는다. 물론 손가는 대대로 강력해서 사로잡기가 힘들다. 그러나 절영, 조황비전이나 적로 등 도주가 확실한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 조조나 유비에 비하면 쉬운 편이다.[43] 몇 몇 시리즈에서는 수명연장 아이템이나 이벤트가 나오는데, 오나라 세력으로 플레이를 할 경우 수명연장 아이템과 이벤트 챙기기는 필수다.진삼국무쌍 시리즈에서 오나라 진영이 아이돌 군단이 되게 한 원인이기도 하다. 일단 손견과 손책이 일찍 죽은 데다가 오의 첫 군권 1인자인 주유도 일찍 죽었기 때문인데, 삼국지 시리즈처럼 시간상의 구현보다는 서열과 포지션이 중요한 게임이다보니 위 세 인물보다 서열이 낮거나 후대인물일수록 젊게 묘사할 수 밖에 없는 것. 그래도 처음에는 근엄한 군주상이었던 손권은 결국 5편부터 수염을 민 청년이 되었고 사마의보다는 4살, 제갈량보다 겨우 2살 어린 육손이 미소년이 되었으며[44] 육손보다 1살 많은 주연도 자연스럽게 미소년화. 노장 감녕은 요절한 능통과 친교를 넘어 친구먹게 만드는 바람에 청년이 되었다.[45] 이 범주에 벗어나는 인물은 황개와 한당, 정보, 그리고 정봉, 서성뿐이다. 후반기 무장 일부는 이거 때문에 등장할 길이 막혀 버렸다. 육항과 시적은 아버지가 미청년이 되는 바람에 쇼타가 되지 않는 이상 나올수가 없다.[46]
다만 손견, 손책, 여몽은 요절한 당사자임에도 이런 특혜(?)를 누리지 못했다. 그나마 40대에 죽은 여몽은 그렇다 쳐도, 20대 중반이라는 젊은 나이에 죽은 손책은 2편부터 턱수염 아저씨의 얼굴로 나오며, 손견은 한술 더 떠서 36세에 죽었는데도 5편부터 폭삭 늙어서 백발 노인이 되고 말았다.
오나라의 요절 인물 관련해서는 진삼국무쌍 2에서 특이하게 반영되었는데, 특수 엔딩 조건과 연관된 "저하늘의 별이 되는 무장" 이 3명으로 끝나는 위랑 촉과 달리 이 세력 혼자 4명이나 된다. 정확히는 주유, 손견, 손책, 태사자의 4명.[47] 오나라로 무쌍모드 엔딩후 스탭롤 직전에 달을 배경으로 저하늘의 별이 되어 사라져가는 4명을 보고 울컥한 분들이 적지 않았으리라. 참고로 여몽도 엄밀히 말하면 요절 당사자인데, 타인들의 임팩트가 너무 강해서 묻혔다.
[1]
사기 '굴원가생열전'에는, 가의가 장사왕의 태부로, 즉 오늘날
후난성의 성도
창사시로 좌천되어 갈 때에 이를 염려하는 장면이 있다.
[2]
코로나 19의 발원지는 삼국지의 지명으로 따지면 다름 아닌 형주 강하군이다.
[3]
이쯤 되면
제갈각(50세) 같이 어중간한 축이 오히려 묻히는 느낌이다. 하지만 제갈각은 병에 걸렸거나 자연사가 아니라 중요한 원정을 말아먹고서도 남탓만 하거나 평소에도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등 성격이 상당히
개차반이었고, 결국 손준과의 권력 싸움 끝에 살해당했다.
[4]
그런데 사실 육손은 당시로는 장수한 편에 속하는 62세까지 살았고, 감녕도 단명한 건 아니다. 아마도 육손이 아직 정정할 때 홧병으로 사망해버렸고(게다가 육손은 연의의 영향 때문인지 젊은 장수로 인식하기 쉽지만, 이릉대전 시점에서 불혹을 코앞에 둔 중년이었다.) 감녕은 다소 늦은 나이에 겨우 데뷔해서 좀 활약하다 죽었기에 그런 듯 하다. 참고로 태어난 년도가 확실한 육손과 달리 감녕은 태어난 년도가 불명이다.
[5]
이 인물들은 정사나 연의에서 비자연사 설정 유무로 나눌 수 있기는 하다. 주유 - 특유의 성격으로 인해 상처가 악화되어 사망(연의), 감녕 - 사마가의 화살에 맞아서 전사(연의), 여몽 -
관우의 혼령에 씌여 의문사(연의), 육손 - 이궁지쟁 도중 손권의 서신을 받고 분사(정사)로, 이러한 묘사가 없는 정보, 황개, 장소, 한당과는 정확히 구분이 된다.
[6]
보면 알겠지만 위 - 서진 시절에는 보통은 평균, 많으면 오래 살았음에도 강남으로 오니까 수명이 줄었다. 또한
북위,
북제,
북주 역대 황제들도 20대에 요절하는 경우가 많았고, 오래 살아봐야 40대 정도였다.
[7]
단,
성덕왕의 경우 어린 나이에 즉위했기에 35년을 재위했고,
경덕왕도 23년을 재위했다. 전근대에는 50살 이상의 장수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예외적으로 재위가 길었던
내물 마립간 ~
지증왕,
진평왕 및
선덕여왕,
진덕여왕을 제외하면,
법흥왕과
진흥왕 이후 신라 왕가 전반이 그렇고 하대 왕실을 포함해도
선덕왕,
원성왕,
경순왕을 제외하면 장수 및 만 60세를 넘긴 임금이 드물었다. 신라 왕실은 초기부터
근친혼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대가 내려오면서 당시 의학으론 집어낼수 없는 유전병이 발생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8]
생몰년이 미상이라서 이것조차도 정확한 나이는 아니다.
[9]
화살에 맞아 죽었다고도 하고 돌에 맞아 죽었다고도 하는데, 어쨌든 요절했다. 삼국지 초반에
관우와
장비에 버금가는 무용을 보였던 무골 손견으로서는 심히 어이없는 죽음이 아닐 수 없다. 이는 그에 버금가는 무용을 가졌던 아들도 마찬가지.
[10]
사실 중상을 입긴 했지만 안정을 취하면 살 수 있었다. 그러나 본인의 얼굴에 상처가 난 것을 보고 분노하다 상처가 터져 죽어버렸다.
[11]
신하들과 연회를 벌이고 있다가, 백성들의 '우길이 온다!'라는 말을 듣고 신하들까지 우루루 일어나 맞이한 일로 격분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손책의 분노가 마냥 이해 못할 것만은 아닌 것이
황건적들의 수장인
장각이 혹세무민을 하여 온 나라를 개판으로 만들었으니
분기탱천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12]
정리하자면, 이렇게 손권은 19세 때 손책이 죽은 이래로 5여년 만에 어머니와 동생 둘까지 몽땅 잃었다. 가뜩이나 후계자로서의 입지를 확립하는데 정신 없었을 텐데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
[13]
부친 손견이 192년에 죽고 오빠 손권이 182년에 태어났으므로, 손부인의 생년은 183년 ~ 192년 사이이다.
삼국지집해에서는 '이릉대전 이후 손권이 유비와 다시 화친을 맺으면서 손부인을 도로 촉으로 보냈는데, 도착하기 전에 유비가 죽었고 그의 부고를 들은 손부인은 장강에 투신자살했다'고 하며, 연의에서도 비슷한 언급을 한다. 유비가 죽은 것이 223년이니 당시 손부인의 나이가 31~40세로 계산이 나온다. 어쨌든 얼추 30대 정도. 정사에는 동오로 귀환한 뒤 손부인의 행적에 대해 기록이 없으며, 재혼했다는 언급도 없고 해서 형제들처럼 요절했을 가능성이 있다. 만약 삼국지집해의 서술이 사실이라면, 손부인이 유비와의 정 때문에 그를 위해
순사했을 가능성은 없고(연의에서나 잉꼬부부였지 실제로는 사이가 매우 나빴다. 특히 손부인 도주 사건 이후로는 그냥 원수사이라고 보는게 맞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자살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손부인 입장에서 보면 '친정에서는 재화친을 명목으로 자기를 무슨 공물 보내듯 보내 버렸고, 고향으로 돌아올 기약도 없고, 안 그래도 양국 간 악감정이 남아 있는데다 본인은 유선 납치를 주도한 전력이 있어 더욱 미움받을 게 뻔하고, 이미
유비가 새장가를 든 뒤라 유비의 정실부인 대접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걸어 볼 만한 건 유비가 혹시나 호의를 조금 베풀지도 모른다는, 그렇게 높지도 않은 가능성뿐이었는데, 그마저도 손부인이 도착하기 전에 유비가 죽으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새로운 황제는 자신에게 납치당할 뻔했기에 자신을 미워할 게 뻔하니 이에 절망하여 삶의 의지를 버렸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14]
자살이 아니더라도 유선 납치 실패 이후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병사했을 가능성도 있다.
[15]
단,
조비는
조조의 머리를 물려받아 능력은 좋았다. 허나 인성이 바닥이었고, 당연하게도 조조만큼의 그릇이 안되었으며 그에 더하여 요절 크리. 이는 그의 아들인
조예도 딱 마찬가지였다. 인성으로는 조비의 이복형
조앙이 탑인데, 아버지 조조를 구하다 사망하였다.
조창은 무예와 병법에 뛰어난 유능한 장수였고,
조식은 예술가의 기질을 가졌었다. 요절한
조충 또한 조조 왈 어린 시절의 형들보다 훨씬 더 뛰어났다고 평가했다.
손등을 필두로 손권의 아들들도 대체로 유능했으나, 조조의 자식들만큼은 확실히 아니었다.
[16]
이궁지쟁으로 죽은 손패, 이궁지쟁으로 밀려나 손침에게 죽은 손화, 너무 어린 나이에 황위에 올라 죽은 손량은 확실히 손등의 요절이 단명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할만 하다.
[17]
적벽대전 ~
이릉대전에 이르는 부분이 삼국지연의에서 오나라가 가장 주목받는 부분인데, 여기서 오나라 측의 주인공에 해당하는 4명의 총사령관 중 앞의 3명이 병으로 줄줄이 요절한다.
[18]
그 멋있는 첫인상에 비해 정사에서는 이후 활약이 너무 적다.
[19]
수송 체계와 문자의 통일, 곧 중국 통일을 의미한다.
[20]
사실 48세면 당시 기준으로는
요절이 아니다.
[21]
장휴의 자가 숙사이고, 형인 장승의 자는 중사이다. 즉, 자가 백사인 형이 하나 더 있었다는 뜻이다(사마의의 형제들처럼 자를 백중숙계 돌림자로 정했다). 실제로 장소전에 의하면 장소의 아들은 여럿이라고 한다.
[22]
앞서 언급하지 않았지만 손패의 자손들도 손호가 죽였다.
[23]
촉에는 향년 96세의 집진장군
내민(생몰년도 미상)이, 위에는 향년 104세의 은사
장천이 있다.
[24]
주유가 요절한 후 그의 일을 대신 맡았다. 헌데, 그 이후의 여러 일들에서 정보의 기록이 전무하며, 정보전 주석에는 주유를 대신한 직후에 반란자들을 화형시키고, 머지않아 문둥병으로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25]
212년에 숨진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것도 정확한 기록은 아니다.
[26]
다만 이 경우 감녕의 나이를 최대한 많게 보았을 때(150년대 초반 ~ 중반 정도에 출생했을 것으로 가정했을 시) 얘기고 최대한 적게 보았을 경우(160년대 초반~중반 정도에 출생했을 것으로 가정했을 시)에는 50대에 사망한 것이라서 딱히 장수했다고는 보기 힘들게 된다.
[27]
유요에게 의지했다는 기록으로 대강 유추할 수는 있다. 군웅할거 시기에 유요에게 의탁했다면 적어도 175년 이전에 태어났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유요에게 의탁하기 몇년 전인 190년대 초에 공융 밑에서도 일했던 것으로 보아 몇년은 더 일찍 땡겨야 한다. 만일 시의의 생년이 170년이라면 몰년은 250년. 오나라의 못 볼 꼴은 다 보고 죽은 셈이다.
[28]
부대에 임관이 가능한 최소 나이로 가정한 것이므로 70대 이상까지 살았을 확률이 더 높다.
[29]
고평릉 사변 이후 촉한으로 귀순했을 때 이미 60세가 넘어가는 노인이었다.
[30]
다만 조창은 형 조비가 죽였다는 설이 있다. 그냥 낭설로 치부하기에는 설득력이 있는 편.
[31]
대충 이 3명과 연배가 비슷하다고 여겨지는 조비가 187년생인데 저 3명이 죽은 해가 각각 225년, 231년, 228년이다.
[32]
조예는 239년에 사망했는데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조예가 10년만 더 살았어도 몰년도가 249년으로 실제 역사에서
고평릉 사변이 벌어진 해이다.
[33]
그래서 조위를 멸하고 삼국통일한 서진은 역으로 황족의 권위를 강화시켰지만
그 댓가는...
[34]
제 2차 합비 공방전 직후 35세로 병사. 유수구 전투 도중 위의 인물들이 꽤 많이 병으로 죽은 217년에 죽었을 가능성이 높은데, 이것이 맞다고 가정하면 이전의 정확한 생존 기간은 182년 ~ 217년이 된다.
[35]
다만 장료의 경우, 병주자사
정원이
여포에 의해 죽은 후 그를 따라
동탁에게로 갔던 것을 보면 169년 ~ 171년 사이 출생으로 보인다. 장료의 정확한 몰년이 222년이니 50대 초반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악진은 기록상 장료와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데, 218년 사망이니 요절이 확실하다.
[36]
유비 62세,
관우,
장비 50대 중후반 남짓,
제갈량 53세. 심지어 관우와 장비는 자연사도 아니고 각각 전사/암살이며, 제갈량은 지나친 과로로 죽었음에도 이 정도다. 관우와 장비 둘 다 당시 기준으론 노년일 나이이긴 했지만
관우는 한창 전쟁 중에 전사한 것이며, 장비는 전쟁을 준비하다가 암살당했으니 둘 다 팔팔하던 한창 때 때이른 죽음을 맞이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연의에서 칠순을 넘긴
황충과
조운은 정확한 생년이 밝혀져 있지 않으며, 역시 연의에서 노장으로 묘사되는
엄안은 정사에서는 남은 기록이 적고 나이도 분명하지 않다. 그나마 유비 주변 인물을 따지자면
유표가 66세,
도겸이 62세로 그나마 장수한 편.
[37]
하진의 동생인
하태후가 조조와 동갑이다.
[38]
사실 군주들의 요절 징크스는 후한 시대부터 시작되었다.
[39]
그러나 유송의
유자업과 작은
유욱은 차라리 단명한 게 나았다. 둘 다 개막장 폭군이기 때문.
[40]
창업군주 외 다 요절.
[41]
손견이
손무의 자손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게임에선 대부분 손자병법을 지니고 있는 걸로 나온다.
[42]
삼국지 8에서는 손자병법서가 지력+5(여담으로 삼국지 8은 통솔력이 없다.) 아이템으로 등장하는데, 총 4개(물론 그 중 1개는 손가(家)가 가지고 있다. 나머지 3개는 성도, 말릉(=건업), 오에서 구입 가능.)가 등장해서 희소성이 약간 떨어진다.
삼국지 9와
삼국지 10에서는 통솔+10 아이템이지만, 삼국지 10에서는 손가(家)가 가지고 있지 않으며, 장사의 상회(장사의 규모가 특도시일 때 상회가 생긴다.)에서 구입할 수 있다.
[43]
특히 삼국지 11에서는 유비가 특기마저 도주인지라 가장 생포하기 힘든 게 유비이다. 반면 일기토로 잡기는 조조나 유비쪽이 쉽다. 손견과 손책의 무력이 유비나 조조의 무력보다 최소 10 이상 높기 때문이다.
[44]
그나마 사마의는 아들들하고도 별 차이 없어보이는 동안이니 그러려니 하는데, 문제는 제갈량은 상당히 노안이라 어딜 봐서 2살 차이인지 싶을 정도이다.
[45]
여기는 아예 생년 자체가 바뀌어 버린 듯하다. 감녕의 나이는 아무리 적어봤자 160년대 중반으로, 능통에겐 아버지뻘이다.
[46]
육항은 진삼국무쌍 BLAST에서 결국 쇼타 미소년으로 나온다.
[47]
다만 동영상의 시간 배분상 이중 3명만 나온다. 한 명이 빠지면 다른 한 명이 채우는 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