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2-07 14:19:25

송병준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동명이인에 대한 내용은 송병준(동명이인)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wiki style="margin:-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7054c, #29176e 20%, #29176e 80%, #07054c)"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color: #ffde09"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초대

박영효
제2대

이헌영
제3대

박정양
제4대

유길준
제5대

박정양
제6대

남정철
제7대

박정양
제8대

이근명
제9대

심상훈
제10대

민영환
제11대

이근명
제12대

이건하
제13대

민병석
제14대

이건하
제15대

김주현
제16대

이헌영
제17대

조병호
제18대

이재극
제19대

민영환
제20대

이도재
제21대

이용태
제22대

조병필
제23대

이용태
제24대

조병식
제25대

이도재
제26대

이지용
제27대

윤용구
제28대

이지용
제29대

민병석
제30대

이종건
제31대

박용화
제32대

이지용
제33대

이도재
제34대

이지용
제35대

임선준
제36대

이근상
제37대

이도재
}}}
{{{#!wiki style="margin: -31px -1px -11px"
제38대

임선준
제39대

송병준
제40대

박제순
}}}}}}}}}}}}
송병준 관련 틀
[ 펼치기 · 접기 ]
----
{{{#!wiki style="margin:-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7054c, #29176e 20%, #29176e 80%, #07054c)"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color: #ffde09"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초대

김가진
제2대

이범진
제3대

정병하
제4대

조병직
제5대

이윤용
제6대

정낙용
제7대

이도재
제8대

민병석
제9대

김명규
제10대

박제순
제11대

김명규
제12대

권재형
제13대

박정양
제14대

권재형
제15대

민병석
제16대

민영기
제17대

이종건
제18대

민병석
제19대

권재형
제20대

김규홍
제21대

민종묵
제22대

민영소
제23대

김가진
제24대

이도재
제25대

이지용
제26대

박제순
제27대

이근택
제28대

박제순
제29대

조동희
제30대

권중현
제31대

성기운
제32대

송병준
}}}
{{{#!wiki style="margin: -31px -1px -11px"
제33대

조중응
}}}}}}}}}}}}

<colbgcolor=#c0c0c0><colcolor=#000,#ddd> 대한제국 매국노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을사오적
이지용 박제순 이근택 이완용 권중현
||<-7><tablewidth=100%><#c0c0c0><tablebgcolor=#fff,#1f2023> 정미칠적 ||

||<-8><tablewidth=100%><#c0c0c0><tablebgcolor=#fff,#1f2023> 경술국적 ||
}}}}}}}}} ||
급진개화파
急進開化派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개화당
고종
( ~ 1897)
권동진 김옥균 박영교 박영효 서광범
서재창 서재필 신응희 유길준* 유혁로
이규완 이도재 정난교 정병하 홍영식
대한제국
(1897 ~ 1910)
고영희 권동진 권중현 민영달 박영효
박중양 송병준 서재필 신응희 안경수*
양한묵 오세창 유길준* 유혁로 윤치호
이규완 이도재 이준 이재극 정난교
* 온건개화파로 보는 시각도 있음.
조선의 붕당
( 관학파 · 훈구파 · 사림파 · 동인 · 서인 · 남인 · 북인 · 소론 · 노론 · 개화당 · 친청파 · 정동파 · 위정척사파 · 급진개화파 · 온건개화파)
}}}}}}}}} ||
경술국치
{{{#!wiki style="color:#FFF; 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word-break:keep-all"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color:#555; margin:-6px -1px -11px"
<colbgcolor=#000><colcolor=#FFF> 배경 대한제국의 국권피탈과정
전개 운요호 사건 · 강화도 조약 · 청일전쟁 · 시모노세키 조약 · 을미사변 · 영일동맹 · 러일전쟁 · 한일의정서 · 가쓰라-태프트 밀약 · 포츠머스 조약 · 을사조약 · 정미 7조약 · 대한제국군 해산 · 기유각서 · 한일약정각서 · 경술국치
관​련 인​물
<colbgcolor=#000><colcolor=#FFF> 을사조약
관련자
이지용 · 박제순 · 이근택 · 이완용 · 권중현 · 민영기 · 이하영 · 이재극 · 이토 히로부미 · 하야시 곤스케
정미​7조약
관련자
이완용 · 임선준 · 고영희 · 이병무 · 조중응 · 이재곤 · 송병준 · 이토 히로부미
경술국치
관련자
이완용 · 박제순 · 고영희 · 조중응 · 민병석 · 이병무 · 윤덕영 · 조민희 · 데라우치 마사타케
기타 인물 조선 총독 · 왕공족 · 이왕 · 조선귀족
영​향
순국 지사 민영환 · 박승환 · 이범진 · 조병세 · 황현 · 홍범식
저항 을미의병 · 을사의병 · 정미의병 ( 최익현 · 신돌석 · 임병찬 · 이인영 · 허위 · 이강년 · 홍범도) · 13도 창의군 · 헤이그 특사 ( 이상설 · 이준· 이위종) ·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 ( 안중근) · 오적 암살단 ( 나철) · 황제 대리 의식 집행 거부 & 관료 암살 시도 ( 남정철 · 박영효 · 이도재)* · 시일야방성대곡 ( 장지연)
기타 한일병합 ( 일제강점기 · 한국통감부 · 조선총독부 · 무단 통치 · 친일반민족행위자 · 토지 조사 사업) · 일본어 잔재설 · 식민사관 · 식민지 근대화론 · 한일 무역 분쟁
관련 문서 식민지 · 강점기 · 병합
* 박영효 등이 고종의 퇴위에 협조한 대신들을 암살하려다 처벌된 사건은 이완용이 고종 퇴위를 반대하던 대신들을 제거하기 위해 조작된 사건이라는 주장도 있음 }}}}}}}}}

조선귀족
朝鮮貴族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8px -3px -11px"
수작 공작
-
후작
박영효 · 윤택영 · 이재각 · 이재완 · 이해승 · 이해창
백작
민영린 · 이완용 · 이지용[1]
자작
고영희 · 권중현 · 김성근 · 김윤식 · 민병석 · 민영규 · 민영소 · 민영휘 · 박제순 · 송병준 · 윤덕영 · 이근명 · 이근택 · 이기용 · 이병무 · 이완용[2] · 이용직 · 이재곤 · 이하영 · 임선준 · 조민희[3] · 조중응
남작
김가진[4] · 김병익 · 김사철 · 김사준 · 김영철 · 김종한 · 김춘희 · 김학진 · 남정철 · 민상호 · 민영기 · 민종묵 · 민형식 · 박기양 · 박용대 · 박제빈 · 성기운 · 윤웅렬 · 이건하 · 이근상 · 이근호 · 이봉의 · 이용원 · 이용태 · 이윤용 · 이재극 · 이정로 · 이종건 · 이주영 · 이항구[5] · 장석주 · 정낙용 · 정한조 · 조동윤 · 조동희[6] · 조희연 · 최석민 · 한창수
습작 공작
-
후작
박찬범 · 윤의섭 · 이달용 · 이덕용 · 이덕주 · 이병길
백작
고중덕 · 고흥겸 · 송종헌 · 이영주
자작
고희경 · 권태환 · 김호규 · 민병삼 · 민충식 · 민형식 · 민홍기 · 박부양 · 윤강로 · 이규원 · 이종승 · 이창훈 · 이충세 · 이택주 · 이해국 · 이홍묵 · 임낙호 · 임선재ㆍ조대호 · 조용호 · 조원흥 · 조중수
남작
김교신 · 김덕한 · 김세현 · 김석기 · 김영수 · 김용국 · 김정록 · 남장희 · 민건식 · 민규현 · 민병억 · 민영욱 · 민철훈 · 민태곤 · 민태윤 · 박경원 · 박서양 · 박승원 · 박정서 · 성일용 · 성주경 · 윤치호 · 이강식 · 이경우 · 이규환 · 이기원 · 이능세 · 이동훈 · 이범팔 · 이병옥 · 이병주 · 이완종 · 이원호 · 이인용 · 이장훈 · 이중환 · 이창수 · 이풍한 · 이홍재 · 장인원 · 정두화 · 정주영 · 정천모 · 조원세 · 조중구 · 조중헌 · 최정원 · 한상기 · 한상억
승작 백작 → 후작
이완용
자작 → 백작
고희경 · 송병준
[1] 1912년 도박죄로 구속되어 일시적으로 예우 정지.
}}}}}}}}}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61041, #062861 20%, #062861 80%, #061041)"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1d1d1d,#e2e2e2
의장(조선총독부 정무총감)
초대

야마가타
이사부로
제2대

미즈노
렌타로
제3대

아리요시
주이치
제4대

시모오카
주지
제5대

유아사
구라헤이
제6대

이케가미
시로
제7대

코다마
히데오
제8대

이마이다
기요노리
제9대

오노
로쿠이치로
제10대

다나카
다케오
제11대

엔도
류사쿠
부의장
초대

김윤식
제2대

이완용
제3대

박영효
제4대

민병석
제5대

윤덕영
제6대

이진호
제7대

박중양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 20%;"
{{{#!folding [ 1910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고문
<colbgcolor=#fff,#1f2023> 고영희 권중현 민상호 박제순 송병준
이근상 이근택 이완용 이재곤 이지용
이하영 임선준 장석주 조중응 조희연
조민희 한창수
찬의
강경희 권봉수 김만수 김사묵 김영한
남규희 민상호 박경양 박승봉 박제빈
박중양 염중모 유맹 유정수 윤치오
이건춘 이겸제 이재정 이준상 정인흥
조영희 조희문 한창수 홍승목 홍종억
부찬의
고원식 구희서 권태환 김교성 김낙헌
김명규 김명수 김준용 김필희 김한규
김한목 나수연 민건식 민원식 박제환
박희양 서상훈 서회보 성하국 송지헌
송헌빈 신우선 신태유 어윤적 엄태영
오재풍 오제영 윤치오 이도익 이만규
이봉로 이원용 이항직 정동식 정병조
정진홍 조병건 조재영 조제환 조원성
최상돈 한동이 허진 홍우철 홍운표
홍재하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 20%;"
{{{#!folding [ 1920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고문
고희경 권중현 민병석 민영기 박영효
송병준 이하영 윤덕영 이윤용
부찬의
김현수
칙임 참의
김영진 김영한 김한목 남규희 민상호
민영찬 민형식 박승봉 박이양 박기양
박상준 박승봉 박의병 박제빈 박중양
백인기 상호 서상훈 신석린 신응희
어윤적 엄준원 염중모 유맹 유성준
유정수 유혁로 이건춘 이겸제 정진홍
조민희 조진태 조영희 조희문 한상룡
한진창
주임 참의
강병옥 고원훈 권태환 김갑순 김교성
김기태 김명규 김명준 김상설 김상섭
김연상 김영무 김정태 김준용 김창한
김필희 김현수 나수연 노창안 박경석
민건식 민영은 박기동 박기순 박봉주
박이양 박제환 박종렬 박흥규 박희양
방인혁 서병조 선우순 송종헌 송지헌
신석우 신태유 신창휴 심준택 심환진
안병길 양재홍 오재풍 오태환 원덕상
유기호 유빈겸 유익환 유흥세 윤치소
이강원 이근우 이기승 이도익 이동우
이만규 이병렬 이병학 이택규 이택현
이항직 이흥재 이희덕 장대익 장도
장상철 장응상 장직상 장인원 전석영
정동식 정란교 정병조 정순현 정재학
정태균 정호봉 조병건 천장욱 최석하
피성호 한영원 한상봉 한창동 허명훈
홍성연 현은
참의
구연수 김윤정 김춘희 김한목 김희작
남규희 민병석 박기순 원응상 윤갑병
윤정현 장헌식 정건유 현기봉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 20%;"
{{{#!folding [ 1930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고문
민병석 윤덕영 이윤용
칙임 참의
고원훈 김관현 김명준 김서규 김영진
김윤정 남궁영 민상호 박두영 박상준
박영철 박용구 박중양 서상훈 신석린
어담 엄준원 염중모 유정수 유진순
유혁로 윤갑병 이겸제 이범익 이진호
장헌식 정교원 조경하 조성근 조희문
주영환 최린 한규복 한상룡 한진창
홍종국
주임 참의
강동희 강번 고일청 김경진 김기수
김기홍 김도현 김두찬 김병규 김사연
김상설 김상형 김상회 김신석 김영택
김정석 김정호 김종흡 김진수 김창수
김한규 김한목 김한승 남백우 노영환
문종구 민병덕 박기석 박종렬 박보양
박봉진 박철희 박희옥 방의석 방태영
서병조 서병주 석명선 선우순 성원경
손재하 손조봉 송지헌 신희련 안종철
오세호 오태환 원덕상 유승흠 유태설
이경식 이교식 이근수 이근우 이기찬
이기승 이동우 이명구 이방협 이승우
이병렬 이선호 이은우 이종섭 이충건
이진호 이택규 이희덕 이희적 인창환
장대익 장석원 장직상 장헌근 정관조
정란교 정대현 정석모 정석용 정해붕
조병상 주영환 지희열 최남선 최양호
최연국 최윤 최윤주 최준집 최지환
최창조 하준석 한영원 현준호 현헌
홍치업 황종국
참의
강필성 김병원 김성규 김제하 박상준
어윤적 유만겸 유성준 진희규 홍정철
}}}}}}}}}
[ 1940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1f2023><width=1000><bgcolor=#062861><-5> 고문 ||
김윤정 박중양 윤치호 이범익 이진호
한상룡
칙임 참의
고원훈 김관현 김명준 김사연 김연수
김영배 김영진 김우영 김윤정 김태석
김화준 박두영 박상준 서상훈 신석린
안종철 원덕상 유만겸 유진순 이겸제
이경식 이계한 이병길 이원보 장직상
장헌식 정교원 정란교 정연기 진학문
최린 한규복
주임 참의
강이황 권중식 김경진 김동준 김병욱
김부원 김사연 김신석 김원근 김재환
김태집 노준영 민재기 박지근 박창하
박필병 방의석 서병조 손창식 송문화
신현구 양재창 원병희 위정학 이경식
이기찬 이승우 이신용 이영찬 이익화
이종덕 임창수 장용관 장윤식 장준영
장직상 전덕룡 조병상 조상옥 차남진
최윤 최승렬 최정묵 최준집 한익교
한정석 현준호 황종국
참의
김하섭 문명기 이승구
||
†- 재직 중 사망.
}}}}}}}}}}}}}}}}}} ||
조선귀족 백작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
<colbgcolor=#29176e><colcolor=#ffde09>
대한제국 제39대 내부대신
송병준
宋秉畯 | Song Byeong-jun
파일:송병준.jpg
창씨명 노다 헤이지로 (野田平治郞)
노다 헤이슌 (野田 秉畯)
별명 노다 대감
출생 1857년 10월 7일
함경도 장진도호부
(現 함경남도 장진군 또는 자강도 랑림군 또는 량강도 부전군)[1]
사망 1925년 2월 1일 (항년 67세)
경성부
사망 원인 뇌일혈로 인한 급사
직업 관료, 정치가
종교 유교 (성리학)
본관 은진 송씨 (恩津 宋氏)
제암 (濟庵)
작위 조선귀족 자작
→ 조선귀족 백작
배우자 조씨
자녀 슬하 1남 3녀[2]
아들 송종헌
주요 경력 농상공부대신, 내부대신
조선귀족 자작, 조선귀족 백작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
비고 정미칠적
친일파 708인 명단 등재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 등재
친일인명사전 등재
파일:20190419_56_10157.png
1907년 영친왕과 대한제국 내각의 모습[3][4]

1. 개요2. 생애3. 대중매체에서4. 여담

[clearfix]

1. 개요

조선 대한제국의 관료이자 친일반민족행위자. 정미칠적의 일원이기도 한 매국노이다.

2. 생애

파일:宋秉畯.jpg

본관은 은진(恩津)이며 함경남도 장진군에서 출생했다. 법을 가르치는 관리인 율학훈도 송문수와 기생 홍씨 사이의 얼자라고 하는데, 당시에는 성씨 도용이 워낙 흔한 일이었던데다가 친차검사 기술도 없던 당시에 어떻게 기생이 아이의 아버지가 누군지 확신했는지가 의문이기에, 성씨 도용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족보에는 송병준이 기재되어 있지 않고, 나중에는 민태호의 양자로 들어가는 등 고아나 다름없었다. 한양에 와 기생집에서 일하다가 민씨 척족의 거물 민태호의 눈에 띄어 민태호의 애첩인 홍씨 집에서 일하게 되었고 1871년 무과에 합격하여 수문장청에 배속되었다. 1873년에는 도총문 도사, 사헌부 감찰 등을 지내고 1876년 강화도 조약 때 수행원으로 일하며 일본측 인사와 만나며 친일매국의 싹을 피워왔다. 그러다가 1884년 갑신정변 후 밀명을 받고 김옥균 암살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지만 도리어 설득되어 김옥균의 동지가 되었다. 귀국하여 그 혐의로 투옥되었으나 민태호의 양아들인 민영환[5]의 주선으로 출옥하였고 영월군수, 흥해군수, 은진군수, 양지현감 등을 역임하다가 체포령이 내려져 다시 일본으로 피신했다.

노다 헤이지로(野田平治郞)라는 이름으로 창씨개명[6] 야마구치현 하기(萩)에서 양잠업에 종사하다가 1904년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일본군의 통역으로 귀국하였다. 이 때부터 친일파로 돌아서기 시작했는데 귀국 즉시 윤시병(尹始炳)과 함께 유신회(維新會)를 조직하고 다시 이용구(李容九)와 함께 일진회를 만들어 나라를 일본에 팔아먹기 위한 전초 작업을 시작하였다. 1907년 헤이그 특사 사건 후에는 황제 양위 운동을 벌여 친일 활동에 앞장섰고[7] 순종 즉위 후 이완용 내각이 들어서자 농상공부대신과 내부대신을 역임해 일제의 사주를 받고 국권 피탈을 위한 상주문과 청원서를 제출하는 매국 행위를 했다. 그 후 다시 일본에 건너가 국권 피탈을 위한 매국 외교를 하여 나라를 팔아먹었다.

1910년 국권 피탈 후 일본으로부터 훈1등 자작 작위를 수여받았고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이 되었으며 자작에 이어서 1920년 다시 백작에 올랐다가 1925년 2월 1일 뇌일혈로 죽었다. 사망 전날인 1월 31일 다이쇼 덴노의 특별 교지에 따라 정3위로 승서되었고 사망 후에는 욱일동화대수장이 추서되었다. 다이쇼 덴노는 포도주 12병을 내려 조의를 표했고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는 " 세인이 공지하는 동양 평화의 공헌자"라고 조문했다. 송병준의 작위는 장남 송종헌이 이어받았다.

송병준의 상세한 일생은 이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3. 대중매체에서

4. 여담

파일:external/file.newdaily.co.kr/1259040128.jpg
사진 좌측의 인물
우측의 인물은 이용구.


[1] 이북5도 함경남도 장진군 또는 신흥군 동상면 [2] 여기서 딸 중 1명은 을미사변의 가담자이자 아버지와 같은 친일반민족행위자 구연수와 결혼했다. [3] 중앙의 소년이 영친왕, 첫째 줄 오른쪽에서 첫번째 인물이 송병준이다. 영친왕 바로 왼쪽 뒤에 왼손이 허리춤에 있는 인물은 이완용. [4] 사진 속 송병준의 모습을 확대한 사진 # [5] 을사조약 자결한 민영환이다. [6] '창씨개명 1호'라고 알려져 있기도 한데, 실제 1호는 1879년 10월에 일본으로 건너가서 '아사노 도진'으로 개명한 이동인이다. 송병준은 일제강점기 때의 창씨개명 1호다. 갑신정변 이후 일본으로 망명한 개화파들도 줄줄이 창씨개명을 했는데 송병준의 경우도 이 영향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7] 당시 어전 회의에서 고종의 어전에 "헤이그 특사를 파견한 것에 대해 메이지 덴노에게 무릎꿇고 사죄해야 한다"면서 "자결을 하라!" 개드립을 쳤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신하가 주군에게 대놓고 자결을 명한 것이다. 고종이 계속 묵묵부답으로 있자 제3차 어전 회의에서 이병무가 칼을 들이대며 위협을 가했고 결국 고종은 강제 폐위당한다. 흔히 이완용이 칼을 빼들고 협박했다는 얘기가 있지만 나름 교양과 학식은 있던 엘리트였던 이완용 성격상 그런 일은 없다 보는게 중론이다. [8] 우연히도 이 셋은 경술국적에도 들어간다. [9] 송병준이 구용서의 외할아버지라고 언급하는 기사가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10] 기가 차는 건 나중에 이 어담도 친일파가 되어 '니시카와 단이치(西川潭一)'로 창씨개명을 하고 중추원 참의까지 하는 등 잘 먹고 잘 살았다는 것이다. [11] 물론 송병준의 묘가 파헤쳐지도록 놔둔 것을 봐서는 정말로 송병준을 애국자로 생각했다기보다는 재산을 지키기 위해 친 개드립일 가능성이 높다. 상식적으로 자기 입으로 "증조부는 매국노"라고 말했다가는 패소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 [12] 이와 비슷하게 이완용의 고손자(이완용 재산 찾기 소송을 벌인 이윤형의 아들)도 말년을 단칸방에서 보냈다고 한다. # [13] 무연고 분묘와 무연고 사망자, 신원미상 변사자의 경우 보통 관할 지방자치단체에서 토지의 소유주나 경찰, 검찰 등 관련자로부터 이전받아 일괄적으로 화장 또는 무연고 묘지에 매장 처리하며 일정 기간을 보존한 후 다시 일괄적으로 산골 처리한다. 경기도 내 무연고 사망자 유골 보존 기한은 보통 10년이니 지금쯤 산골 처리되었을 듯하다. [14] 당위성 차원에서 일제에 협력했던 사람들을 섭외 했던 것이다. [15] 무려 고종보다 연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