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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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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 ~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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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건개화파로 보는 시각도 있음.
조선의 붕당
( 관학파 · 훈구파 · 사림파 · 동인 · 서인 · 남인 · 북인 · 소론 · 노론 · 개화당 · 수구파 · 정동파 · 위정척사파 · 급진개화파 · 온건개화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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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문서 식민지 · 강점기 · 병합
* 박영효 등이 고종의 퇴위에 협조한 대신들을 암살하려다 처벌된 사건은 이완용이 고종 퇴위를 반대하던 대신들을 제거하기 위해 조작된 사건이라는 주장도 있음 }}}}}}}}}

조선귀족
朝鮮貴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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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용
자작 → 백작
고희경 · 송병준
[1] 1912년 도박죄로 구속되어 일시적으로 예우 정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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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규희 민상호 박경양 박승봉 박제빈
박중양 염중모 유맹 유정수 윤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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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희 조희문 한창수 홍승목 홍종억
부찬의
고원식 구희서 권태환 김교성 김낙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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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목 나수연 민건식 민원식 박제환
박희양 서상훈 서회보 성하국 송지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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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풍 오제영 윤치오 이도익 이만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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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재하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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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
고희경 권중현 민병석 민영기 박영효
송병준 이하영 윤덕영 이윤용
부찬의
김현수
칙임 참의
김영진 김영한 김한목 남규희 민상호
민영찬 민형식 박승봉 박이양 박기양
박상준 박승봉 박의병 박제빈 박중양
백인기 상호 서상훈 신석린 신응희
어윤적 엄준원 염중모 유맹 유성준
유정수 유혁로 이건춘 이겸제 정진홍
조민희 조진태 조영희 조희문 한상룡
한진창
주임 참의
강병옥 고원훈 권태환 김갑순 김교성
김기태 김명규 김명준 김상설 김상섭
김연상 김영무 김정태 김준용 김창한
김필희 김현수 나수연 노창안 박경석
민건식 민영은 박기동 박기순 박봉주
박이양 박제환 박종렬 박흥규 박희양
방인혁 서병조 선우순 송종헌 송지헌
신석우 신태유 신창휴 심준택 심환진
안병길 양재홍 오재풍 오태환 원덕상
유기호 유빈겸 유익환 유흥세 윤치소
이강원 이근우 이기승 이도익 이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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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철 장응상 장직상 장인원 전석영
정동식 정란교 정병조 정순현 정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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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연 현은
참의
구연수 김윤정 김춘희 김한목 김희작
남규희 민병석 박기순 원응상 윤갑병
윤정현 장헌식 정건유 현기봉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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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
민병석 윤덕영 이윤용
칙임 참의
고원훈 김관현 김명준 김서규 김영진
김윤정 남궁영 민상호 박두영 박상준
박영철 박용구 박중양 서상훈 신석린
어담 엄준원 염중모 유정수 유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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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헌식 정교원 조경하 조성근 조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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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희 강번 고일청 김경진 김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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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석 김정호 김종흡 김진수 김창수
김한규 김한목 김한승 남백우 노영환
문종구 민병덕 박기석 박종렬 박보양
박봉진 박철희 박희옥 방의석 방태영
서병조 서병주 석명선 선우순 성원경
손재하 손조봉 송지헌 신희련 안종철
오세호 오태환 원덕상 유승흠 유태설
이경식 이교식 이근수 이근우 이기찬
이기승 이동우 이명구 이방협 이승우
이병렬 이선호 이은우 이종섭 이충건
이진호 이택규 이희덕 이희적 인창환
장대익 장석원 장직상 장헌근 정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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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상 주영환 지희열 최남선 최양호
최연국 최윤 최윤주 최준집 최지환
최창조 하준석 한영원 현준호 현헌
홍치업 황종국
참의
강필성 김병원 김성규 김제하 박상준
어윤적 유만겸 유성준 진희규 홍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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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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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정 박중양 윤치호 이범익 이진호
한상룡
칙임 참의
고원훈 김관현 김명준 김사연 김연수
김영배 김영진 김우영 김윤정 김태석
김화준 박두영 박상준 서상훈 신석린
안종철 원덕상 유만겸 유진순 이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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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헌식 정교원 정란교 정연기 진학문
최린 한규복
주임 참의
강이황 권중식 김경진 김동준 김병욱
김부원 김사연 김신석 김원근 김재환
김태집 노준영 민재기 박지근 박창하
박필병 방의석 서병조 손창식 송문화
신현구 양재창 원병희 위정학 이경식
이기찬 이승우 이신용 이영찬 이익화
이종덕 임창수 장용관 장윤식 장준영
장직상 전덕룡 조병상 조상옥 차남진
최윤 최승렬 최정묵 최준집 한익교
한정석 현준호 황종국
참의
김하섭 문명기 이승구
||
†- 재직 중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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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귀족 백작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
<colbgcolor=#29176e><colcolor=#ffde09>
대한제국 제39대 내부대신
송병준
宋秉畯 | Song Byeong-jun
파일:송병준.jpg
창씨명 노다 헤이지로 (野田平治郞)
노다 헤이슌 (野田 秉畯)
별명 노다 대감
출생 1857년 10월 7일
함경도 장진도호부
(現 함경남도 장진군 또는 자강도 랑림군 또는 량강도 부전군)[1]
사망 1925년 2월 1일 (항년 67세)
경성부
사망 원인 뇌일혈로 인한 급사
직업 관료, 정치가
종교 유교 (성리학)
본관 은진 송씨 (恩津 宋氏)
제암 (濟庵)
작위 조선귀족 자작
→ 조선귀족 백작
배우자 조씨
자녀 슬하 1남 3녀[2]
아들 송종헌
주요 경력 농상공부대신, 내부대신
조선귀족 자작, 조선귀족 백작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
비고 정미칠적
친일파 708인 명단 등재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 등재
친일인명사전 등재
파일:20190419_56_10157.png
1907년 영친왕과 대한제국 내각의 모습[3][4]

1. 개요2. 생애3. 대중매체에서4. 여담

[clearfix]

1. 개요

조선 대한제국의 관료이자 친일반민족행위자. 정미칠적의 일원이기도 한 매국노이다.

2. 생애

파일:宋秉畯.jpg

본관은 은진(恩津)이며 함경남도 장진군에서 출생했다. 법을 가르치는 관리인 율학훈도 송문수와 기생 홍씨 사이의 얼자라고 하는데, 당시에는 성씨 도용이 워낙 흔한 일이었던데다가 친차검사 기술도 없던 당시에 어떻게 기생이 아이의 아버지가 누군지 확신했는지가 의문이기에, 성씨 도용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족보에는 송병준이 기재되어 있지 않고, 나중에는 민태호의 양자로 들어가는 등 고아나 다름없었다. 한양에 와 기생집에서 일하다가 민씨 척족의 거물 민태호의 눈에 띄어 민태호의 애첩인 홍씨 집에서 일하게 되었고 1871년 무과에 합격하여 수문장청에 배속되었다. 1873년에는 도총문 도사, 사헌부 감찰 등을 지내고 1876년 강화도 조약 때 수행원으로 일하며 일본측 인사와 만나며 친일매국의 싹을 피워왔다. 그러다가 1884년 갑신정변 후 밀명을 받고 김옥균 암살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지만 도리어 설득되어 김옥균의 동지가 되었다. 귀국하여 그 혐의로 투옥되었으나 민태호의 양아들인 민영환[5]의 주선으로 출옥하였고 영월군수, 흥해군수, 은진군수, 양지현감 등을 역임하다가 체포령이 내려져 다시 일본으로 피신했다.

노다 헤이지로(野田平治郞)라는 이름으로 창씨개명[6] 야마구치현 하기(萩)에서 양잠업에 종사하다가 1904년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일본군의 통역으로 귀국하였다. 이 때부터 친일파로 돌아서기 시작했는데 귀국 즉시 윤시병(尹始炳)과 함께 유신회(維新會)를 조직하고 다시 이용구(李容九)와 함께 일진회를 만들어 나라를 일본에 팔아먹기 위한 전초 작업을 시작하였다. 1907년 헤이그 특사 사건 후에는 황제 양위 운동을 벌여 친일 활동에 앞장섰고[7] 순종 즉위 후 이완용 내각이 들어서자 농상공부대신과 내부대신을 역임해 일제의 사주를 받고 국권 피탈을 위한 상주문과 청원서를 제출하는 매국 행위를 했다. 그 후 다시 일본에 건너가 국권 피탈을 위한 매국 외교를 하여 나라를 팔아먹었다.

1910년 국권 피탈 후 일본으로부터 훈1등 자작 작위를 수여받았고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이 되었으며 자작에 이어서 1920년 다시 백작에 올랐다가 1925년 2월 1일 뇌일혈로 죽었다. 사망 전날인 1월 31일 다이쇼 덴노의 특별 교지에 따라 정3위로 승서되었고 사망 후에는 욱일동화대수장이 추서되었다. 다이쇼 덴노는 포도주 12병을 내려 조의를 표했고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는 " 세인이 공지하는 동양 평화의 공헌자"라고 조문했다. 송병준의 작위는 장남 송종헌이 이어받았다.

송병준의 상세한 일생은 이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3. 대중매체에서

4. 여담

파일:external/file.newdaily.co.kr/1259040128.jpg
사진 좌측의 인물
우측의 인물은 이용구.


[1] 이북5도 함경남도 장진군 또는 신흥군 동상면 [2] 여기서 딸 중 1명은 을미사변의 가담자이자 아버지와 같은 친일반민족행위자 구연수와 결혼했다. [3] 중앙의 소년이 영친왕, 첫째 줄 오른쪽에서 첫번째 인물이 송병준이다. 영친왕 바로 왼쪽 뒤에 왼손이 허리춤에 있는 인물은 이완용. [4] 사진 속 송병준의 모습을 확대한 사진 # [5] 을사조약 자결한 민영환이다. [6] '창씨개명 1호'라고 알려져 있기도 한데, 실제 1호는 1879년 10월에 일본으로 건너가서 '아사노 도진'으로 개명한 이동인이다. 송병준은 일제강점기 때의 창씨개명 1호다. 갑신정변 이후 일본으로 망명한 개화파들도 줄줄이 창씨개명을 했는데 송병준의 경우도 이 영향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7] 당시 어전 회의에서 고종의 어전에 "헤이그 특사를 파견한 것에 대해 메이지 덴노에게 무릎꿇고 사죄해야 한다"면서 "자결을 하라!" 개드립을 쳤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신하가 주군에게 대놓고 자결을 명한 것이다. 고종이 계속 묵묵부답으로 있자 제3차 어전 회의에서 이병무가 칼을 들이대며 위협을 가했고 결국 고종은 강제 폐위당한다. 흔히 이완용이 칼을 빼들고 협박했다는 얘기가 있지만 나름 교양과 학식은 있던 엘리트였던 이완용 성격상 그런 일은 없다 보는게 중론이다. [8] 우연히도 이 셋은 경술국적에도 들어간다. [9] 송병준이 구용서의 외할아버지라고 언급하는 기사가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10] 기가 차는 건 나중에 이 어담도 친일파가 되어 '니시카와 단이치(西川潭一)'로 창씨개명을 하고 중추원 참의까지 하는 등 잘 먹고 잘 살았다는 것이다. [11] 물론 송병준의 묘가 파헤쳐지도록 놔둔 것을 봐서는 정말로 송병준을 애국자로 생각했다기보다는 재산을 지키기 위해 친 개드립일 가능성이 높다. 상식적으로 자기 입으로 "증조부는 매국노"라고 말했다가는 패소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 [12] 이와 비슷하게 이완용의 고손자(이완용 재산 찾기 소송을 벌인 이윤형의 아들)도 말년을 단칸방에서 보냈다고 한다. # [13] 무연고 분묘와 무연고 사망자, 신원미상 변사자의 경우 보통 관할 지방자치단체에서 토지의 소유주나 경찰, 검찰 등 관련자로부터 이전받아 일괄적으로 화장 또는 무연고 묘지에 매장 처리하며 일정 기간을 보존한 후 다시 일괄적으로 산골 처리한다. 경기도 내 무연고 사망자 유골 보존 기한은 보통 10년이니 지금쯤 산골 처리되었을 듯하다. [14] 당위성 차원에서 일제에 협력했던 사람들을 섭외 했던 것이다. [15] 무려 고종보다 연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