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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1 08:29:28

볼로디미르 젤렌스키/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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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평가
관련 전쟁 돈바스 전쟁,(2014~), · 우크라이나 침공,(2022~),
여담 여담 · 우리는 모두 여기 있습니다
관련 틀 우크라이나 대통령 · 국민의 일꾼 · 인민의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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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긍정적 평가
2.1. 전문가들의 평가2.2. 우크라이나군 통수권자이자 최고 사령관으로서2.3. 성공적인 국제 여론전 전개2.4. 우크라이나 국제항공 752편 격추 사건 대응2.5. 해외 지원 확보
3. 부정적 평가
3.1. 부패 의혹3.2. 전쟁 와중에 내분 야기3.3. 전쟁 중 화보 촬영 논란3.4. 서방의 지원에 대한 결례3.5. 미국의 경고 무시3.6. 전쟁 중 우방국들과 벌이는 외교 마찰
4. 논란이 있는 평가
4.1. 측근 위주의 정부
4.1.1. 그렇다4.1.2. 그렇지 않다
4.2. 러시아의 침공 예방 실패
4.2.1. 실패했다4.2.2. 최선을 다했다
4.3. 정당의 자유 및 노동운동 탄압 의혹
4.3.1. 탄압했다4.3.2. 정당한 조치이다
4.4. 무리한 대반격 감행
4.4.1. 젤렌스키의 책임이 크다4.4.2. 여러 요인 중 하나였을 뿐이다
4.5. 전쟁 중 선거 연기
4.5.1. 비판4.5.2. 옹호

1. 개요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의 평가를 서술한 문서이다.

2. 긍정적 평가

사실 젤렌스키의 취임 직후 상황은 우크라이나 내부에서는 기대를 하였지만, 국제적으로는 전혀 관심 밖인 사안이었다. 젤렌스키 이전까지 우크라이나는 빅토르 야누코비치로 대표되는 친러 기득권 세력과, 페트로 포로셴코로 대표되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세력 간 분쟁으로 국민들은 지쳐 있었으며, 양극단 모두 썩어 있다라는 분노가 들끓고 있었다. 이 때 인민의 종이라는 시트콤의 대성공을 통해 대중적인 지지도 및 기존 정치세력과 엮이지 않은 신선하고 깨끗한 피라는 점으로 주목받아 젤렌스키가 당선된 것이지, 국민들의 정치개혁에 대한 의지를 주문받은 젤렌스키와 인민의 종에게 수권능력이 있을지, 얼마나 제대로 발휘될지도 미지수였고 젤렌스키 본인도 연예인이 아닌 대통령으로서 얼마나 잘할 수 있을지 그 기대는 국제적으로 없었다. 오히려 국제적인 분쟁에 휘말린 우크라이나에서 미지의 정치인이 정권을 잡았기에 강대국들의 간섭이 얼마나 먹힐지 모르는 상황이라 불안요소를 키울수도 있었다.

여기에 더해서 젤렌스키가 제대로 정부를 구성하고 우크라이나의 국정 운영에 본격적으로 나서야할 시점인 집권 1년차 후반기 전세계를 덮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범유행병 사태로 인해서 우크라이나도 많은 피해를 입었고, 외교 따위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이 때문에 코로나 대란이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 동안 푸틴이 차근차근 진행시켰던 돈바스 전쟁 확전과 전면전 준비에 대비할 시간 여유를 빼앗겼으므로 젤렌스키는 이 때까지만 해도 서방에게 그리 신뢰가 가는 지도자가 아니었다.

위와 같은 일련의 이유, 즉 코로나-19 대응, 지지부진한 NATO 가입 지연, 대봉쇄 가운데 유지하기 어려운 우크라이나의 경제 성장률 문제로 인해 젤렌스키의 지지율은 자연스럽게 평균으로 수렴하여, 여전히 집권 대통령으로서 지지율은 가장 높았지만 재선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는 어려웠었다.( 2019~2022년까지 젤렌스키의 지지율 조사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문서). 그렇게 불명확한 젤렌스키에 대한 평가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벌어지고 젤렌스키가 전시 지도자로 전환하게 되면서 전환점을 맞는다.

2.1. 전문가들의 평가

개전 초기에는 독재 정권인 적국에게 항전한 국가 지도자라는 면에서 윈스턴 처칠과 비교됐고 젤렌스키 본인 역시 영국 하원을 상대로 한 온라인 연설에서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는 투로 발언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그를 처칠보다는 조지 워싱턴에 가까운 지도자라 평가했다. 특히 이 평가가 다른 국가도 아닌 미국에서 나왔다는 것은 젤렌스키에 대한 평가가 단순히 립서비스 수준이 아닌 극찬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CNN이 미국인 역사가 더글러스 브링클리(Douglas Brinkley)와 인터뷰한 기사이다.

2022년 3월 9일 기사

기사

그는 사무실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는 명백하게 러시아 침략군의 목표다. 그럼에도 월요일 밤 키이우의 집무실에서 그는 모습을 드러냈다. 비디오에서 그는 셀프영상을 찍으면서, 운명의날 대통령 연설을 했다.

이 전직 코미디언은 주중에 대해 블랙유머처럼 보이는 이야기를 하면서 시작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우리는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월요일은 힘든 날이야.' 이 나라에 전쟁이 있으며, 그러니 매일이 월요일입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모든 낮과 밤이 그렇다는 사실에 익숙해졌죠."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젤렌스키를 엑스트라로만 기억했을 것이다. 더 작은 나라의, 도널드 트럼프의 악명높은 전화에도 조 바이든에게 더러움을 묻히지 않았던 대통령으로 말이다.

그가 트럼프는 아니다. 하지만 트럼프가 소셜 미디어로 상대방을 놀리고 미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자신감으로 무시해버리는데 익숙한 반면, 젤렌스키는 짧은 인터넷 비디오와 소셜 미디어의 포스트로 위기에 처해있는 그의 민주주의에 대한 지원을 만들어나가는데 쓰고있다.

처칠과 그를 비교하는 경우도 있다. 젤렌스키는 경외와 칭찬을 받을 자격이 있고, 윈스턴 처칠과의 비교가 여기저기에서, 그리고 언론에서 쏟아진다. 그 생각은 젤렌스키가 처칠의 무선 라디오와 중절모를 그의 스마트폰과 초록색 티셔츠로 대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젤렌스키는 화요일에 처칠의 유명한 연설을 따라하면서 그 비교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바로 영국의 가장 어두웠던 시기에, 국가를 고취시키려고 방송된 것이다.

그가 비디오에서 영국하원에 연설하면서,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의 고난을 그때의 영국의 것과 비교했다.

처칠 밑에 있었던 잉글랜드는 파시스트에게 숙이지 않았다.

젤렌스키 밑에 있는 우크라이나는 블라디미르 푸틴에게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는 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최후까지 바다에서, 하늘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우리의 땅에서 싸울 것입니다." 그는 처칠의 말들을 떠올리게 하며 그렇게 말했다.

하원은 젤렌스키에게 환호했고, 그에게 기립박수를 보냈다.

서방은 러시아에게 강력한 제재를 부과했지만, 아직도 서방 국가들에게 공급되는 러시아의 원유를 끊지 않았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인들을 러시아의 공군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비행금지구역을 선포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무언가 애매한 방식이 있다. 폴란드는 만약 미국이 폴란드에게 미군기를 준다면 그들이 보유한 소련시절 미그기를 미국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주겠다고 제안했다.

이것이 핵심적인 차이점이다. 처칠은 미국이 곧 2차대전에 참전할 것이라는 희망을 붙잡고 있었고, 결국 그렇게 되었다.

젤렌스키는 미국은 3차세계대전을 유발할 수 있기에 핵을 보유한 러시아에게 무기를 겨누지 않겠다고 확실한 대답을 받았다.

좀 더 나은 비교를 위해서, 나는 미국인 역사가 더글러스 브린클리에게 윈스턴 처칠에 대한 비교를 물었다. 그는 그러한 의견을 부인했다.

처칠은 1940년에 수상이 되었을 때 이미 전쟁지도자의 자리에 있었던 적이 있었고, 전쟁영웅이었으며, 스캔들을 겪었고, 재능있는 작가였다. 그는 순수한 민주주의의 신봉자라기보다는 제국주의자였다.

브린클리에 따르면 젤렌스키는 처칠보다 바츨라프 하벨[1]에 가깝다. 하벨은 이상한 극작가였으며, 서방의 록밴드를 이름을 딴 벨벳혁명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주도했다.

"하벨은 민주주의를 열었고, 전체주의를 가까이에서 보았습니다. 누구도 하벨, 이 극작가가 위대한 세계의 리더가 되리라고 생각치 않았고, 그렇게 되었죠."

그리고 그는 레흐 바웬사[2]를 말했다. 폴란드의 노동운동가로, 혁명적이고 영감을 주는 리더가 된 사람이다.

이 둘 모두 1989년 동부 유럽에서 혁명의 물결을 이끌었다.

그는 또한 "침팬지들과 함께 영화를 만들던(베드타임 포 본조)" 로널드 레이건을 이야기했고, "그는 대통령이 되어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주재했다."

"연예인들은 장점이 있는데, 그들은 위기의 시기에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가장 필요로 한 것입니다." 브링클리는 또한 그들중 그 누구도 러시아의 침략을 겪지 않았다는 것을 말했다.

젤렌스키는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맞서기 불가능한 상대를 마주하고서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보여준 용기로 말이다. 물론 지금까지 푸틴의 침공은 꼴사나웠지만, 러시아는 엄청난 군대와 자원을 가지고 있고, 다윗과 골리앗과 같은 상황이었다.

이건 마치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홀로 시위하던 이와 같으며, 포지 협곡에서의 조지 워싱턴이나 알라모에서의 데이비드 크로켓과 같다. 브링클리는 이렇게 말한다.

"불굴의 의지와 용기였으며, 제가 생각하기로 젤렌스키는 역사에 민주주의의 의사(義士) 중 한 명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알다시피 민주주의의 의사 말입니다."

"그는 적군에 포위되어 틀어박혀서, 세계와 함께 똑똑하고, 카리스마있고, 열정적이고, 감정적인 방식으로 소통합니다."

젤렌스키를 더욱 인상깊게 만드는 것은 몇몇 지지자들에 따르면 그의 용기이며, 이제 이끌기 위해서 조금은 내려놓아야 한다.

공화당 하원의원(플로리다)이자 참전군인인 마이크 월츠(Mike Waltz)는 일요일 CNN에서 젤렌스키가 "21세기의 처칠이 되어가고 있다"고 말했지만, 그는 이 우크라이나인 리더가 조금 더 조심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역사를 보자면, 조지 워싱턴은 살아남았기에 우리의 혁명을 이루어낼 수 있었습니다. 이 순간, 저는 그가 지하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기를 원합니다. 임무는 살아남아서, 저항의 상징으로서 계속 해나가는 일입니다."
다음은 Alexander H. Motyl, 우크라이나, 러시아, 소련 전문가로, Rutgers 대학의 정치학 교수의 칼럼을 군사 마이너 갤러리 이용자가 번역한 게시글이다.
군사 마이너 갤러리의 번역
2월 26일, LA타임즈의 기사

기사

지난 30년간 많은 우크라이나인들은 그들의 국가가 언제 마침내 사람들을 단합시키고,

승리로 이끌게할 그들의 조지 워싱턴과 같은 리더를 가질 수 있는지 물어왔다.

나는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워싱턴은 위대한 남자로 태어난 사람이 아니었으며,

그는 독립전쟁의 시행착오 속에서 그렇게 되었다고 보통 대답하곤 했다.

그가 사람들을 이끌 그의 능력을 전쟁에서 보여주고, 또 미국의 고군분투를 상징하게 되면서 말이다.

우크라이나의 워싱턴은 아마 비슷한 방식으로 나타날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아마 그가 나타난 것일지 모른다.

우크라이나인들의 질문은 그러한 영웅적인 역할을 할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던 이에게 대답을 받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코미디언에서 대통령이 되었고, 나를 포함한 많은 평론가들이 그가 이 나라의 재앙이 될 것이라고 여겼던 인물이다.

그는 2019년에 선거에서 대승을 거두면서 당선되었고, 많은 우크라이나 대통령들이 그랬던 것처럼 중요한 개혁들을 해나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이후 관료주의에 얽매이고, 통합능력이 부재했고, 많은 이들이 무능력하다고 불렀던 경험부재로 인해, 그리고 코로나 사태를 겪었다.

그리고 더욱 최악으로 달려가며, 2021년 중반에 젤렌스키는 엄청난 러시아의 군대가 우크라이나의 국경에 모이는 것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는 러시아의 독재자,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겠다는 것을 확실하게 드러낸 몇주전까지

이를 몇달간 경시했고,그러므로 그의 행정부에 대해 더 많은 비판을 얻게 되었다.

그때부터, 그리고 특히 푸틴이 공식적으로 그의 공격적인 의도를 밝히고 침공이 시작된 이후

젤렌스키는 그의 결단력을 발견하게 되었고, 감탄할만한 행동을, 심지어 영웅적으로 보여주었다.

국기 아래 국가를 결집시키고, 방위력을 조직하고, 외국 나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잘 정제된 애국적인 연설로 사람들을 진정시켰고,

러시아에게 이런 미친 짓을 끝내라고 호소했으며, 그가 도망칠 의도는 전혀 없음을 밝혔다.

키이우의 거리에서 찍힌 젤렌스키의 단호한 연설과 셀프영상은 빠르게 퍼졌다.

"우리는 이곳에 있습니다."

그의 조언자들과 함께 서서 그는 휴대폰 카메라에 금요일에 침착하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키이우에 있습니다. 우리는 우크라이나를 지키고 있습니다."

메시지는 명료했다. 그는 최후까지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국가를 지킬 것이다.

심지어 그의 가장 심한 비평가들도 젤렌스키의 용기와 헌신에 감명을 받아 입을 다물었다.

푸틴이 침략한지 며칠이 지나서, 바르샤바에 기반한 얀 카르스키 소사이어티

(폴란드의 저항영웅으로, 서구에 바르샤바 게토에서 벌어지는 유대인들에 대한 잔학행위를 알린 인물.)는

젤렌스키에게 "우크라이나와 서구 문명의 도덕적 가치를 영웅적으로 수호한 것"에 대해 카르스키 독수리 상을 수여했다.

이 수상 위원회의 일원으로서, 랍비 Abraham Skorka는 이렇게 말했다.

"Let us take heed that the sin of omission toward Ukraine and the brave nation does not come to persecute us,

like the sin of omission in the face of the Holocaust."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홀로코스트에 비유함에 따라, Skorka는 러시아의 독재자가 히틀러의 전철을 밟고 있음을 암시했으며,

그의 공격이 제노사이드와 동등한 것이고, 그 스스로 유대인의 배경이 있는 젤렌스키가

나치에 저항했던 영웅들과 같은 방식으로 행동하고 있음을 암시했다.

젤렌스키가 러시아말을 하는 유대계 우크라이나인이라는 사실은 엄청난 상징성이 있고, 정치적인 중요성이 있다.

그의 과거의 삶에서 그는 딱히 정치적이지 않았다. 그의 코미디는 애국적인 우크라이나인들을 웃게했고,

그는 그러한 3가지 정체성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며칠, 몇주간 상황은 모두 바뀌었다.

젤렌스키의 정체성은 완전히 우크라이나인이다,

그러나 이 우크라이나인은 확장하고, 퍼지고, 견디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하게 되었다.

이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 푸틴이 탈나치화해야 한다고 역겹게도 주장한 대상인 이 우크라이나인은,

또한 우크라이나 주민 대다수로부터 지지를 받는다. 그들의 언어, 종교, 인종적 배경과 상관없이 말이다.

사실, 전쟁이 진행되면서 가징 격렬하게 싸우며, 그들의 자유를 수호하고

푸틴을 저주하는 이들 중 일부는 러시아 말을 하는 우크라이나인들이다.

우크라이나를 위한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젤렌스키가 넘어져서 그의 아우라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

어떠한 경우에던지, 그는 고항의 자유를 위해 싸운 새로운 유형의 우크라이나 애국자로서 역사에 적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는 우크라이나의 조지 워싱턴으로 여겨질 자격이 있게 될 것이다.

Alexander H. Motyl, 우크라이나, 러시아, 소련 전문가로, Rutgers 대학의 정치학 교수.
내가 만난 젤렌스키 대통령은 뛰어난 리더였다. 2019년 5월 대통령 취임 후 필자는 신임장을 전달한 첫 번째 외국대사였다. >신임장 전달식 후 면담할 때 놀랍게도 대통령 앞에는 필기도구만 있고 면담용 자료가 없었다. 대통령은 앉자마자 영어로 부임을 환영한 후, “대사님과 협의하고 싶은 네 가지 사항이 있습니다”라고 하면서 영어나 우크라이나어로 그 네 가지 사안을 아무것도 보지 않고 또렷하게 설명했다. 30분이 걸린 그 면담은 이례적으로 길어 기다리던 독일, 남아공 등 4명의 대사들이 자신들의 시간이 줄었다고 불평했다. 그 후 식사나 면담 등에서 만난 젤렌스키 대통령은 명석한 두뇌에 성실하며, 뛰어난 친화력을 가진 매력적인 정치인이었다.

권기창 전 우크라이나 대사 #
(질문)러시아가 2014년 크림 반도를 무력으로 병합했을 때 우크라이나는 총 한 번 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무엇이 8년만에 우크라이나를 이렇게 달라지게 했나.
“지도자들의 리더십을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 신임장 제정하느라 젤렌스키 대통령과 면담할 때 그가 한 첫마디가 ‘우리는 8년째 전쟁 중’이란 말이었다. 지금처럼 전투가 벌어지거나 일촉즉발의 상황이 아니었는데도 대통령은 전시 지도자로 스스로를 규정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니 이번 침공 직후 미국으로부터 탈출 제의를 받았을 때에도 ‘내게 필요한 것은 탈 것이 아니라 탄환’이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도자가 앞장서니 국민들이 믿고 따르는 것이다.”

김형태 주 우크라이나 대사 #

2.2. 우크라이나군 통수권자이자 최고 사령관으로서


2020년 1월에는 우크라이나 국제항공 752편 격추 사건이 격추 사고임을 알고도 구체적인 정황과 증거 확보를 위해 발표를 늦추었는데 유연한 대처를 했다며 지지를 받았던 바 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에 위기감이 고조되는 상황에서도 러시아의 침공 위기를 인식해 해외로 도피하던 자국의 재벌과 정치 관료들에게 "24시간 내에 우크라이나로 복귀해서 단결력을 보이라"고 비판한 점, 침공 예고일에도 도피하지 않고 자국에 남아 항전 의지를 고취하는 점 역시 긍정적으로 평가받아 마땅하다. '단결의 날' 선포
파일:무장한 젤렌스키.jpg
전쟁 발발 직전인 2022년 2월 17일 도네츠크 주를 방문해 전선을 시찰하는 젤렌스키의 모습
바이든 미국 정부가 러시아의 전쟁 시행일로 예고한 2월 16일, 젤렌스키는 오히려 최전선 마리우폴의 군부대를 방문해 장병들을 격려했다. "여러분의 대통령이라 영광"
키이우 전투가 한창인 2022년 2월 26일 새벽, 자신과 주요 내각[3]이 아직 수도 키이우에 남아있다고 인증하면서 올린 셀카 비디오 #
결국 러시아가 침략하자 러시아가 노리는 최우선 목표가 자신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수도 키이우를 끝까지 사수하겠다고 밝히며 결사항전을 외치는 행적 덕에 아주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는 개전하자마자 우크라이나군과 러시아군 간 최전선이 되었으므로[4] 사실상 대통령이 최전선을 사수하면서 버티는 것과 다름없다. 탈레반에게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을 내주고 해외로 도주한 아슈라프 가니에 비하면 다른 나라도 아니고 한때 공산진영 제1의 초강대국[5]이었던 러시아를 상대로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분전하는 것은 분명 용기 있는 행동이다.

당장 역사를 통틀어도 정복 군주가 아닌 이상 국가의 최고 지도자가 전쟁 최전선 내지 자국 후방이 아닌 수도에서 적을 상대로 항전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다. 한국만 해도 고려 현종[6] 공민왕, 조선 선조 인조, 그리고 대한민국 이승만 대통령이 전쟁 당시 수도를 두고 대피한 적이 있다.[7] 비단 한국의 사례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충분히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미국에선 제임스 매디슨 대통령, 합스부르크 제국에선 페르디난트 1세, 러시아 제국에선 알렉산드르 1세가 전쟁 도중 수도를 두고 대피한 적이 있다.

러시아군이 수도 함락과 정부 장악을 최우선 목표로 삼아 키이우로 진격해오는데, 대통령 젤렌스키가 수도에 남아 항전하기로 선택한 것은 이해할 수는 있지만 이성적으로 납득하긴 어려운 방법이었다. 만약 실패한다면 현직 대통령이 적군에게 잡히거나 또는 죽을 것이고, 다른 정부 수반이 대통령의 통치권을 승계한다고 해도 선거로 뽑힌 대통령만한 정통성은 없기 때문이다. 미국조차도 러시아군이 곧 키이우를 함락시키리라 생각하여 피신을 권고하는 상황에서 젤렌스키는 수도에 남는 길을 택하였다. 그런데 키이우로 예상보다 진격이 지체되었고 이에 어느 정도 대비를 마친 우크라이나 수도방위군은 키이우를 잘 방어하였다. 젤렌스키가 다른 곳으로 대피하지 않고 수도에서 항전하기로 결정한 것은 우크라이나에게 최선의 결과를, 러시아에게는 개전하면서 그려둔 모든 청사진을 망치는 매우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다.

비판하는 측에서도 전쟁 발발 이후의 행적만큼은 호평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우크라이나 출신 모델이자 방송인 올레나 시도르추크 대한민국 MBC에서 젤렌스키를 희화화하는 방송을 보냈을 때 불쾌하다면서 사과하라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

젤렌스키가 자국의 수도 키이우를 사수하기로 한 결정은 이번 전쟁에 큰 영향을 끼쳤다. 개전 직후 전 세계는 키이우가 사흘 안에 함락되리라 여겼지만, 우크라이나와 키이우는 국가의 최고 통수권자를 구심점으로 삼아 사흘을 넘어 한 달이 넘도록 방어하였고 결국 러시아군을 물러가게 하였다.

게다가 이 사태는 미국이 발을 빼자마자 바로 돈을 들고 튄 가니와 매우 대조되며 극초반 여론과 달리 아주 고평가를 받았다. 우크라이나가 나토 회원국도 아니고 미국과 동맹도 아닌 악조건 속에서 전쟁을 시작했으니, 젤렌스키의 용기와 외교술이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끌어냈음을 알 수 있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대통령이 수도에 남기로 하면서 생긴 사기진작과 병력 집결 효과가 우크라이나가 전쟁에서 선방하는 가장 큰 원인이라 봐도 크게 무리가 아니다. 실제로 대통령이 도피할 것을 전제한[8] 미국 국방부에서는 전쟁 시나리오상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상대로 버티는 시간을 대충 최대 사흘 정도로 예측했다. 젤렌스키가 최전방에서 버티지 않고 우크라이나의 역량이 지금처럼 모이지 못한 상태를 전제하고, 전문가들이 예측하기로는 서방의 지원이고 경제제재고 뭐고 들어가기도 전에 우크라이나가 먼저 무너지고 말았으리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이에 따라 젤렌스키의 정국 관리 역량을 두고서 비판적이었던 영미권 외신과 관련 학계도 러시아 침공 개시 이후의 젤렌스키를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우크라이나 관련 전문가인 럿거스 대학의 알렉산더 모틸(Alexander H. Motyl) 정치학 교수는 LA 타임즈에 기고한 칼럼에서 그의 행동은 그의 비판자들조차 침묵하게 했다며,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의 조지 워싱턴으로 기억될 것 #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특히 비슷하게 나치에게 항전했던 윈스턴 처칠과 많이 비견되는데, 타임지에서도 특집으로 내보내며 젤렌스키는 채플린에서 처칠로 바뀌었고, 불굴의 용기가 역사를 바꾸었다며 찬사를 보냈다. # 육군 대장 출신이자 전 CIA 국장인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는 그를 두고 " 처칠의 리더십(Churchillian Leadership)을 발휘하고 있다"고 평했다. 영상 CNN에서는 처칠은 미국이 참전할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으나, 젤렌스키는 미국이 전쟁에 참전하지 않았다는 것을 큰 차이점으로 꼽으며, 젤렌스키는 처칠이 아니라 그보다 더 비현실적인 영웅이라는 극찬을 했다. 역사가 Brinkley는 바츨라프 하벨이나 레흐 바웬사와 유사하다고 말했고 그러면서 젤렌스키와 비견되는 인물들로 천안문 광장의 탱크맨이나 알라모의 데이비드 크로켓, 포지 협곡의 조지 워싱턴을 언급했다.

이리하여 영미권을 필두로 전 세계 주류 언론의 젤렌스키 재평가 기류가 커졌다. # 러시아가 조지아 때처럼 우크라이나를 속전속결로 제압하고 서방에서 이를 방관했다면 중국 역시 이 기세를 몰아 대만 침공을 시도하는 등[9] 제3차 세계 대전에 치닫을 정도로 군사적 긴장도가 높아졌을 것이라는 예측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가 예상을 뒤엎고 선전을 하면서 이런 비관적인 전망은 사그라진 상태다.[10] 덕분에 사실상 우크라이나와 젤렌스키는 유럽에서 민주주의 진영의 수호자로 대접받는 모양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그 동안 민주주의에 대한 우려가 점점 깊어지고 있던 차였다. 박근혜 정부 퇴진 운동 문서에도 나오듯이 서방에서 해당 탄핵과 이를 위한 운동을 호평하던 이유도 중국 러시아를 비롯한 독재 국가들이 약진하고, 터키의 독재와 미국 도널드 트럼프 당선으로 세계 민주주의가 쇠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생기던 차에, 법을 준수하며 평화적으로 민주주의를 지켜낸 한국의 사례가 뜻 깊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시점에서도 한국만 민주주의가 회복되었을 뿐, 세계 기준으로는 여전히 민주주의가 쇠퇴하고 있었다. 중국과 러시아는 계속해서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상황에서 2021년 미얀마와 아프가니스탄의 민주 정권들이 각각 미얀마 군부 탈레반에게 무너졌다. 그리고 독재 국가인 러시아가 민주 국가인 우크라이나를 전면적으로 침공하면서 이런 우려는 정점을 찍었다.

젤렌스키도 이 점을 잘 알기에 유럽의 방파제를 자처하면서 지원을 요청하였다. 이러한 젤렌스키에 대한 재평가 기류는 우크라이나의 향후 군사 회담, 외교전, 항전 등의 행보에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전쟁이 장기화되고 우크라이나의 부족한 공세 능력 때문에 쉽게 영토를 탈환하지 못하자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 여론이 조금씩 약화되고는 있지만 그럴 때마다 국제 사회의 분위기를 다시 환기시키기 위해 잘 싸우고 있다는 연설을 한다. 젤렌스키는 전쟁 이후 끊임없이 우크라이나 국민들과 군인들의 사기를 북돋고 있으며 계속해서 서방에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젤렌스키의 지속적인 무기 지원 요청은 러시아를 완전히 몰아내고 국토회복을 이루어낼 때까지 끝까지 싸운다는 뜻이며 이에 서방은 응답하여 계속해서 무기를 지원하고 있다. 서방 측에서도 러시아를 몰아내기 위해서 지속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참고로 양극단으로 갈라진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은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해서는 한 뜻으로 적극적인 지원을 할 의사를 보인다.

결국 이러한 젤렌스키의 노력은 미국과 서방 국가들에게서 공여해준 FGM-148 재블린, M142 HIMARS, M270 MLRS, AHS 크라프, PzH2000을 비롯한 개인화기/중장비들의 대활약과 우크라이나 민주주의 방위 대여법안에 힘입어 2022년 9월 7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하르키우 방면 영토 탈환, 11월의 헤르손 탈환 등을 통해서 결실을 맺고 있다.

2.3. 성공적인 국제 여론전 전개

코미디언과 연기자 경력 덕분에 미디어와 SNS 활용 능력이 뛰어난 것 또한 진가를 발휘했다는 의견도 있다. 전시 상황에서 이것이 특장점이 되어 군의 사기를 올리고 홍보 효과를 극대화하며 세계 각국의 지원을 끌어들이는데 성공하고 있다는 평이다. #[11] 전쟁 발발 이후 인스타그램에 정장 입은 사진 대신에 갈녹색 티셔츠나 전투복을 연상시키는 캐주얼한 복장으로 상황을 지휘하거나 연설하는 모습의 사진을 계속 올리고 있는데, 이는 일선 병사나 국민들에게 동질감을 주며 그들의 사기를 크게 진작하고 있다. 3월 2일 키이우 모처의 벙커에서 이뤄진 CNN 기자와 독점 인터뷰를 할 때도 예의 그 녹색 티셔츠를 입고 테이블 하나 없이 기자와 편한 분위기로 소탈하게 인터뷰를 진행했다. 오죽하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또한 젤렌스키처럼 수염을 깎지 않고 캐주얼 복장을 따라하여 입을 정도이다.

특히 법학 석사라는 학력과 성공적인 방송인[12] 경력 덕분인지 언변 능력이 상당히 뛰어난 것도 일조했다. 특히 전쟁 발발 이후로는 한 마디 한 마디가 명언으로 꼽힐 정도다. 물론 대통령이니 연설문 작성자가 당연히 따로 있음직 하지만[13], 짧은 즉흥 연설이나 기자와의 인터뷰에서도 그야말로 달변인 것을 보면 본인의 기여분도 상당할 가능성이 높다.[14] 수도에서 도망치지 않았다는 점 외에도 이런 호소력 있는 언변 또한 자신 및 우크라이나에 대한 세계 여론을 우호적으로 이끄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우크라이나 대국민 연설 유럽 의회 화상 연설에서는 심지어 통역사까지 흐느끼게 하였고, 연설이 끝나자 유럽 의회 의원들의 기립 박수를 이끌어냈다.[15] 레딧에서도 그의 뛰어난 연설 실력에 감탄하는 의견이 많다. 영국 의회에 연설할 때는 윈스턴 처칠의 "We shall fight on the beaches" 연설을 인용하여 본인들의 저항 의지를 나타내고, 미 의회에 비행금지구역과 대공 체계 지원의 필요성을 역설할 때 미국이 공격당한 사례인 진주만 공습 9.11 테러를 예시로 들고 관련 역사 지식이 있는 상원 의원들을 위해 오버로드 작전 연설을 인용했으며, 미국이 세계 지도자로서 그 역할을 해주길 호소하는 등 연설 내용을 상대방의 입장에 효과적으로 맞추고 있다.

급진좌파세력과[16] 일본의 일부 극우파 등 반대파도 많긴 하지만,[17] 많은 사람들이 지지를 보내는 상황이다. 특히 미국은 지금까지 미국이 이 정도로 외부 요인에 의해 여야가 하나로 단결된 적이 없었다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이전보다 더 빠르게 나서고 있다. 체코 프라하에서는 아예 그가 연설하는 장면을 바츨라프 광장에서 생중계했으며 이 자리에 대규모 인파가 모여 타국 대통령에게 응원을 보내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18]

이런 한편 러시아군이 암살단을 보냈다는 보도가 전쟁 이래 계속 나오고 있는데, 이후 더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에 대한 암살시도가 최소 3번 있었다고 한다. # 때문에 미국 정부는 그가 사망할 경우 우크라이나 정부의 연속성 계획에 대해 언급했다. # 일단 현재 이런 상황에서도 젤렌스키는 끝까지 수도를 사수하겠다고 천명하며 피난을 거부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지지율이 25%라는 사실을 들어 우크라이나 내에서도 부정적 여론이 우세하다는 주장을 펴기도 하는데, 다음 대선인 2024년까지 2년이 남은 가운데 포로셴코의 정적 티모셴코가 10%를 차지하는 등 여러 후보군 중에서는 젤렌스키가 여전히 1위다. 젤렌스키는 러시아어 사용자에 유대인 혈통이라는 배경을 가지며 동시에 스테판 반데라와 거리를 둔, 우크라이나내 정치구도에서는 온건중도파에 속한다. 젤렌스키 이전까지 유셴코, 포로셴코로 대표되는 친서방파와 야누코비치로 대표되는 친러파로 동서양분된 우크라이나 정치구도에서 젤렌스키는 러시아계 유대인이라는 혈통문제까지 겹치며 동서 양쪽에 포위당한 입장이다. 그럼에도 25%의 지지율을 받는 것은 중도 국민들의 확실한 지지를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이는 대한민국이 결선투표제가 없고 사실상 양당제 형태로 대선을 실시하는 나라여서 여당과 제1야당이 아닌 군소 후보의 득표율은 없다시피 하고, 양당의 후보는 못해도 40% 이상의 득표율을 가지기 때문에 오인이 심해진 것도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결선투표 방식으로 대통령을 선출하는 국가로, 1차 투표를 먼저 시행한 후 50%이상 득표한 후보가 없으면 결선투표를 진행한다. 이 때문에 1차투표 때는 한 후보에 지지율이 몰리기보다는 지지하는 후보가 많이 갈린다. 현 대통령인 젤렌스키는 1차투표때는 30%를 득표하였으나, 결선투표때는 73%를 득표하였다. 즉 한국의 대선과 비교하면 25%대 지지율은 낮아보이지만, 현 지지율 25%는 1차투표 때 득표한 30%에 비하면 별로 낮아진 게 아니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언론인 올렉시 소로킨은 이에 대해서 우크라이나에서 20%대 지지율은 어마어마하게 인기가 좋은 것이라며, 국민이 그가 때묻지 않은 인물로 여기고, 높은 기대를 품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쟁에서 보여준 단호한 모습 덕분에 지지도가 폭등하기도 했다. 여론 조사 결과 전 국민의 90% 이상이 젤렌스키를 지지한다고 한다. #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지속적으로 항전 의지를 다지며 행정부 수반으로서 필요한 의무를 다한 모습이 지지율 상승에 지대한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또한 체코에서 최고 훈장인 백사자 훈장을 수여할 정도로 서방에서는 이미 젤렌스키를 공공연히 민주주의의 수호자로 인정하고 있다.[19] 게다가 유대계인 만큼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평가가 매우 높게 올라갔다. #[20]

2022년 3월 16일, 미국 하원에서 진행한 화상 연설 또한 미국과 우크라이나 간 역사적 공감대를 이끌어내고 미국인 조 바이든이 소중하게 여기는 미국의 가치에 호소하는 명문이어서 의원들의 기립 박수를 받았다.

하르키우 방면에서 대대적인 탈환 작전을 벌여 우크라이나가 해방시킨 이지움을 방문해 다시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지움은 탈환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최전선으로, 언제든지 러시아가 다시 공격해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다. 그럼에도 이지움에서 국기 게양식에 참석하고 군인들을 독려하며 지휘관인 올렉산드르 시르스키 상장의 전공을 치하하는 등, 군 통수권자가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21] 연설중 폭음이 들려도[22] 아랑곳하지 않고 ( #, 1분 33초) 군인들과 스스럼 없이 어울리며 사진을 찍는 젤렌스키와 6m 테이블에서 멀찍이 떨어져 보고를 받는 푸틴의 모습이 또 다시 대조되며, 이번에도 누가 진정한 리더인지 제대로 보여줬단 반응이다. #

11월 14일에는 탈환된 헤르손 시 방문하고, 12월 7일에는 슬로뱐스크 방문함에 이어 20일에는 당시 최전선 바흐무트까지 방문하는 행보 # #를 통해 전선 방문이 일회성이 아니며 일선 장병과 함께할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2.4. 우크라이나 국제항공 752편 격추 사건 대응

2020년 1월에는 우크라이나 국제항공 752편 격추 사건이 격추 사고임을 알고도 구체적인 정황과 증거 확보를 위해서 발표를 늦추었는데 이후에 유연한 대처로 호평받은 바 있다.

2.5. 해외 지원 확보

미국과 유럽 등지로부터 막대한 군사적, 경제적 지원을 받고 있다. 윤석열 정부로부터는 80억 달러 차관 지원을 약속 받으면서 40년 만기, 연이자 0.15%라는 조건의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다.[23] # # 그리고 살상무기 지원은 하지 않는다는 한국의 원칙과 달리 50만발에 달하는 포탄 간접 지원도 가시화 되는 중이다. # 젤렌스키는 이런 한국의 지원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에게 감사를 표했다. # 2023년 7월에는 대한민국 정부가 현금 100만 달러도 지급한다고 한다. # 7월 13일, 윤석열 정부는 520억 달러 규모의 지원을 신속하게 추진하기로 발표했다. # 9월 10일, 윤석열 대통령은 2025년까지 3조751억원(23억달러)을 지원하기로 공식 발표했다. #

3. 부정적 평가

3.1. 부패 의혹

2021년 10월 폭로된 판도라 페이퍼스에서, 다른 34명의 전현직 정상들과 함께 탈세 의혹 목록에 있는 것이 밝혀졌다. 젤렌스키의 기존 정권들의 부정부패 비판이 당선에 큰 역할을 한 만큼, 액수를 막론하고 이런 의혹에 올라갔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큰 타격이 되었다. # #

반부패 공약을 내세웠건만, 정작 그 자신과 측근들은 조세 도피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키프로스, 벨리즈에 역외 회사를 여럿 소유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젤렌스키가 취임 후 처음했던 일들 중 하나는 안드리 보흐단을 비서실장에 임명한 것이다. 그는 우크라이나 올리가르히들의 변호사였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부패 관련 법에 따르면 2024년까지 공직을 맡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다.

젤렌스키는 이전 대통령들의 비밀 해외 순방을 비판했지만, 본인도 2020년 1월 오만 방문을 둘러싼 투명성 문제로 논란의 대상이 됐다.

그 외에도 대통령 선거 때부터 잡음이 많았던 우크라이나의 금융 재벌인 이고르 콜로모이스키와 유착 관계라는 의혹도 존재한다. #

3.2. 전쟁 와중에 내분 야기

(연합)전쟁 중 내분?…키이우 시장, 정전대응 놓고 젤렌스키와 설전
(조선)“정전 대응 부족”…젤렌스키 대통령, 전쟁 중 키이우 시장과 설전
(국민일보)키이우 시장·젤렌스키, 정전 대응 놓고 설전
(머니투데이)전쟁 중 여야가 말다툼을? 설전 벌인 젤렌스키와 키이우 시장

젤렌스키 대통령과 젤렌스키 측근들이 러시아의 공습으로 키이우 시에 대규모 정전 사태가 터지자 키이우시 정부의 정전 사태 대응이 불충분하다고 주장하며 키이우 시장에 대해 정치적 싸움을 벌였다.

원인은 전쟁 이전부터 이어져온 우크라이나의 고질적인 정치적 싸움으로 이번에 젤렌스키에게 비난 대상이 된 키이우 시장 비탈리 클리츠코는 차기 대권 주자이며 러시아 침공 이전부터 젤렌스키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로부터 시정 운영을 비난당해왔었다.

이번 내분도 젤렌스키측에서 "먼저" 비탈리 클리츠코에게 키이우 시정에 문제가 운운하며 싸움을 건 정치적 싸움으로 젤렌스키가 키이우시가 대규모 정전에 대해 충분히 대응하지 못했다고 주장하면서 키이우 시장을 헐뜯으면서 시작된 것이다.

문제는 현재 우크라이나가 전쟁중인 상황에서 여야가 말싸움 따위나 할 상황이 아님을 생각하면 매우 부적절한 행보가 아닐 수 없다. 젤렌스키는 위급상황에서도 국내정치에 집착하는 면모가 간간히 드러났었는데 전쟁전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이 심각해지는 와중에 키이우에 입성한 정치적 라이벌인 포르센코에 대해서도 신경전을 벌이며 이걸 대처하기 위해 참모와 측근을 소집하는 면모를 보였는데 이번에는 그 대상이 비난해오던 키이우 시장으로 옮겨져서 터진 것이다.

젤렌스키 측의 정치적 공격에 대해 비탈리 클리츠코 키이우 시장은 직접 반박했는데“젤렌스키 대통령 진영이 이해할 수 없는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며 시 당국의 노력을 깎아내리려는 조작 행위를 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특히 현재 상황에서 정치적 싸움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며 "이는 무의미하다. 나는 이 도시에서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말하며 "쉽게 말하자면 이(정치적 싸움)는 우크라이나와 우리의 외국 파트너들에게 좋지 않다. 우리 모두는 전에 없었던 단결과 협력해야 한다"며 "그리고 여기 일종의 정치적 게임이 있다"고 덧붙였다. 한마디로 "지금 국운을 건 전쟁 중인데 우리끼리 정치 싸움을 할 때냐? 이러한 면모가 우크라이나와 외국 파트너에게 좋아 보일 것 같냐? 우린 지금 단결과 협력을 해야지 정치 싸움질이나 할 때가 아니다"라고 직격한 것.

또한 발레리 잘루즈니 총사령관이 2023 우크라이나 대반격의 실패를 인정하며, 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졌다"라며 우회적으로 젤렌스키 통치력에 대한 비난을 하자, 잘루즈니의 언론 인터뷰를 불허하며 견제하는 모습을 보여주기까지 했다. #

심지어 전쟁 중에 선거는 러시아에 이로운 결과낼 것이라며 2024년 대선을 거부하였다고 한다 #

결국 지속적으로 본인과 갈등을 겪은 발레리 잘루즈니 총사령관을 해임시켰다고 한다. #

잘루즈니 총사령관이 해임될 경우 군의 사기가 떨어지고 서방 진영의 신뢰도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우크라이나 군사 역사가 미하일로 지로호프는 "군대의 사기에 매우 매우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으며. 그 말대로 총사령관 해임에 따른 혼란으로 인해 보급이 끊겨버린 아우디이우카는 굳건히 버티던 명성이 무색하게 혼란에 빠져 순식간에 함락당하고 말았다.

3.3. 전쟁 중 화보 촬영 논란

전쟁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젤렌스키 부부가 폐허가 된 전쟁터를 배경으로 화보촬영을 하여 비난을 받았다. #

3.4. 서방의 지원에 대한 결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6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거칠게 화를 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미국의 ‘물심양면’ 지원에도 젤렌스키 대통령이 감사 인사를 하기는커녕 더 많은 요구만 쏟아내자 노골적으로 불편한 감정을 드러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왜 고마운 줄 몰라?"… 젤렌스키에 '버럭'한 바이든
당시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10억 달러(약 1조 4200억 원)어치 군사 지원을 승인했다는 말을 하고 있었는데, 젤렌스키 대통령이 말을 끊고 추가적으로 필요한 무기를 나열했다. 우크라이나 측의 태도에 화가 난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국민들이 (우크라이나 지원에) 상당히 관대했고, 우리의 행정부와 미군 역시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해 열심히 임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바이든, 무기 달라는 젤렌스키에 '버럭'…"미국이 얼마나 열심인데"

2022년 6월, 젤렌스키는 조 바이든과의 통화에서 조 바이든의 통지가 끝나기도 전에 중간에 끊어버리며 무기를 요구하는 등 불쾌한 짓을 했다. 그야말로 결례를 저지른 것이며 "그런 거 모르겠고 빨리 무기나 갖다 바쳐라" 식의 태도를 보인 것이다. 이에 화가 난 조 바이든이 젤렌스키에게 직접 화를 내며 미국의 지원에 고마워해야하는 것이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NBC는 "바이든 대통령의 반응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통화 발언에 대한 것이었지만, 불만은 그동안 누적돼왔다"며 "젤렌스키 대통령은 대외적으로 미국이 지원해주지 않은 것에 대해서만 말하고 감사 표시에는 인색했다"고 짚었다. (출처)

결국 한 나라의 대통령 다른 나라의 대통령에게 직접 화를 내는 외교 참사가 터지고 나서야 우크라이나에서 부랴부랴 미국에게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것에 대해 고마움을 표하는 동영상을 공개하였고, 조 바이든도 이후 "우크라이나 국민에 대한 우리의 약속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성명을 내며 갈등은 일단 종식되었다.

2023년 7월 나토 정상회의에서도 벤 월러스 영국 국방장관이 "우리는 인터넷 쇼핑몰 아마존이 아니다", "사람들은 감사받기를 원한다"며, 우크라이나의 인색한 감사 표현에 대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

폴란드는 아예 2023년 9월 21일에 우크라이나 지원을 중단하기까지 했다. 물론 이후 '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말은 K-2 흑표 같은 최신형 물자를 지원해주지 않겠다는 말이었다'며 지원을 재개했지만, 이 사건으로 폴란드 내부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여론이 전쟁 초기만 못하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이후 2024년 11월 7일, 폴란드는 더 줄 무기가 없다는 이유로 우크라이나의 전투기 지원 요청을 거절했다. #

3.5. 미국의 경고 무시

2022년 1월 29일 러시아 침공우려를 염려하며 지원을 시사하는 미국 정부를 전쟁 분위기를 조성한다며 맹비난하기도 했다. # 러시아를 안심시켜 전쟁을 막기위한 것이라고도 볼 수 없는 게, 젤렌스키는 전쟁 직전인 2월 16일에 부총리를 통해 나토 가입 국민 투표 의사를 밝혔다.[24] #

전쟁 임박 신호가 잇따르는 가운데 최고 군 통수권자가 자리를 비운 데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았다. 미국 언론 CNN은 바이든 행정부가 우크라이나측에 러시아 침공 가능성을 감안해 젤렌스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떠나지 말라는 뜻을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측은 긴박하게 돌아가는 러시아군의 움직임 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도주했다는 여론의 역풍을 맞을 가능성, 군사적 긴장 고조로 우크라이나로 돌아오는 항공편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 등을 우려했다고 전했다. #
"러시아 100% 침공에 대한 정보가 (없다) 있다면 알려달라"[25][26] # #

2022년 1월 우크라이나 여론조사에서 우크라이나인 절반이 러시아 침공의 위협이 현실적이라고 느꼈으며, 전쟁을 막기 위한 젤렌스키 대통령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의견과 전쟁 발발시 젤렌스키 대통령의 국가 방위 능력이 충분해 보이지 않는단 의견은 과반을 넘겼다. #

결국 2022년 6월 10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이 국경으로 들어가려 했고,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면서 " 젤렌스키는 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고 다른 많은 이도 마찬가지였다"라고 밝히며 젤렌스키는 미국의 경고를 무시했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했다. 이에 젤렌스키 본인은 침묵하고 젤렌스키 정권의 인사들은 대신 반발했지만 미국은 이들의 반발에 재반박조차 하지 않는다.
“만약 알렸다면 경제적 손실이 컸을 것”
“만약 (침공) 징후를 미리 알렸다면 지난해 10월부터 매달 70억달러(약 9조3000억원)를 잃었을 것”
젤렌스키의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 中 #
시간이 지나자 젤렌스키 본인은 전부터 미국의 경고를 들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자신이 미국의 경고를 듣고도 무시한 이유는 "경제 손실" 때문이였다고 변명한다. # 때문에 우크라이나는 뒤집어졌다. # 젤렌스키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우크라이나인들은 미국의 경고에 대한 언론 보도를 충분히 접할 수 있었다', '(전쟁 위험성을 경고하는 것은)대통령이 국민들에게 도망을 독려하는 꼴'이라며 언론을 보고도 대처하지 않은 시민들 탓이라는 적반하장식 주장을 늘여놓았다.

사실 후에 전쟁 발발 전후와 키이우 전투 관련한 월스트리트 연속보도에서 보다 자세한 내막이 설명되었는데, 미국의 경고를 우크라이나 뿐만 아니라 영국, 동구권 유럽연합 국가들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귀담아듣지 않았다고 한다. 이유는 미국이 정보를 공유할 의지는 있었지만, 구체적인 정보의 출처를 공유할만큼 우크라이나에 대한 신뢰도가 높지 않았고 유럽연합 국가들에게도 정보 출처 노출을 이유로 역시 출처를 제공하지 않았다고.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서유럽 국가들도 반신반의하는 입장이었으며, 우크라이나 정부측에서도 마찬가지 이유로 확신을 갖지 못했다는 것.

3.6. 전쟁 중 우방국들과 벌이는 외교 마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 초기에 폴란드를 비롯한 우크라이나 주변 동유럽 국가들은[27] 미국이나 프랑스, 독일 같은 국가들 보다 발빠르게 무기를 지원하고 우크라이나에게 전폭적인 외교적 지지를 보내주었다.

그러나 러시아 해군의 흑해 봉쇄로 해상 수출이 막힌 우크라이나 산 농산물들이 육로를 통해 대량으로, 그것도 현지 시장가보다 싼 가격으로 동유럽 농업 시장에 쏟아지면서 동유럽 각국의 농업계에서 엄청난 불만이 발생하게 되고, 급기야 동유럽 국가들이 우크라이나산 농산물들을 수입금지 하기에 이르게 되면서, 동유럽과 우크라이나 사이에 갈등이 발생하였다. 게다가 경제적 마찰을 계기로 양국 국민들 사이에서 과거 폴란드에 우크라이나 미사일이 착탄해 인명사고가 발생했던 사건 등 과거에 유야무야 넘어갔던 일들 까지 재소환 되면서 양국간 국민감정이 이전에 비해 상당히 냉랭해졌다.

미국, 서유럽과 마찬가지로 폴란드 등 우크라이나를 전폭적으로 지지해준 동유럽 국가들에서도 우크라이나가 본인들의 지원에 제대로 감사하지 않고 당연히 여긴다는 불만 여론이 불기 시작하면서 급기야 23년 9월 20일엔 미국, 독일, 영국, 노르웨이, 덴마크 다음으로 우크라이나에 많은 군사적 지원을 제공해주고 있는 폴란드가 우크라이나산 농산물 수입 금지 조치를 둘러싼 갈등이 고조되자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이날 농산물 분쟁에도 우크라이나를 계속 지원할지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우리는 폴란드를 더 현대적인 무기로 무장하고 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에 더 이상 무기를 이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모라비에츠키 총리는 또한 우크라이나가 농산물 분쟁을 확대할 경우 수입 금지 대상 우크라이나산 품목을 늘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

게다가 같은 날(20일) 젤렌스키 대통령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장관급 회의에 참석하여 한 발언 가운데 아프리카연합(AU), 독일, 일본 등을 예로 들며 아프리카와 아시아 국가들이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추가돼야 한다는 구상을 내놨는데, 이에 대해 침략국인 러시아의 안보리 퇴출을 주장하면서 2차 세계대전 전범국인 독일과 일본을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추가하자는 것은 모순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특히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인도적 지원을 적극적으로 하는 폴란드, 이탈리아, 대한민국 등의 서방국들이 안보리 상임이사국 확대에 굉장히 비판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것을 감안하면 독일, 일본 등의 지원을 더 받기 위해 립서비스로 한 발언이 오히려 기존에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던 국가들이 등을 돌리게 만들 수 있다. #

이 발언 이후 폴란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은 나치 시절 폴란드 침략을 시작으로 유럽 전체를 장악하려했던 나라였다면서 폴란드 정부여당 내부에서 지원을 안하겠다는 기류가 나오고 한국에서도 일본을 상임이사국 추가 지원에 대해 한국 국민들 사이에서 우려가 나오고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지원을 한다고 했지만 정부도 당황하게 되었다. 폴란드와 대한민국은 사실상 통수를 맞은 셈이다.

또한 우크라이나에는 15만 6000여명의 헝가리인들이 거주하고 있는데 2017년부터 우크라이나어 사용 강제법을 통과시키면서 100여 개 헝가리 학교들은 문을 닫아야 했다. 이로 인해 유럽연합과 인권단체들로부터 반인권적이라는 혹독한 비난을 받은 바 있다. 이후에는 헝가리 국가를 부르거나 국기를 게양하는 것도 금지했다. #[28]

주일본 대사 세르히 코르순스키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하고 일본 극우사관에 동조하는 언행을 보이고 있음에도 그저 방관하여 지원국인 한국 네티즌들의 반감을 사고 있다. 이러한 우크라이나의 행보는 북한의 참전까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러시아와 북한의 군사적 밀착을 경계하면서도 살상 무기 지원으로 러시아와의 갈등관계를 고조시키는 것을 원하지 않는 여론 조사의 결과로 돌아왔다. #

4. 논란이 있는 평가

4.1. 측근 위주의 정부

아래는 2022년 2월 기준 우크라이나 정부의 구성이다.

[ 내각 (총리 및 장관) ]
출처: #
직책 이름 출생 경력 출처
총리 데니스 시미할 Денис Анатолійович Шмигаль 1975년 민간기업인, 행정관료 #
제1부총리/경제장관 율리아 스비리덴코 Юлія Анатоліївна Свириденко 1985년 반독점 학자, 싱크탱크 #
부총리/임시점령지역재통합장관 이리나 베레쉬추크 Ірина Андріївна Верещук 1979년 장교, 변호사 #
부총리/유럽대서양통합장관 올하 스테파니시나 Ольга Віталіївна Стефанішина 1985년 변호사, 외교 #
부총리/디지털혁신장관 미카일로 페도로프 Федоров Михайло Альбертович 1991년 광고인, 기업인[29] #
내각장관 올레흐 넴치노프 Олег Миколайович Немчінов 1977년 교사, 정치인 #
에너지장관 헤르만 갈루쉬첸코 Герман Галущенко 1973년 검찰, 관료 #
청소년체육장관 바딤 후트사이트 Вади́м Ма́ркович Гутца́йт 1971년 펜싱선수, 행정가 #
외교장관 드미트로 쿨레바 Дмитро́ Іва́нович Куле́ба 1981년 외교관 #
인프라장관 올렉산드르 쿠브라코프 Кубраков Олександр Миколайович 1982년 기업인 #
사회정책장관 마리나 라제브나 Лазебна Марина Володимирівна 1975년 관료 #
보훈장관 율리아 라푸티나 Юлія Анатоліївна Лапутіна 1967년 군인[30] #
농업정책식품장관 로만 레쉬첸코 Роман Миколайович Лещенко 1988년 변호사 #
보건장관 빅토르 리아쉬코 Ляшко Віктор Кирилович 1980년 의사 #
법무장관 데니스 말류스카 Малюська Денис Леонтійович 1981년 변호사 #
재무장관 세르히 마르첸코 Сергій Михайлович Марченко 1981년 경제학자 #
문화정보정책장관 올렉산드르 트카첸코 Олекса́ндр Владисла́вович Ткаче́нко 1966년 언론인, TV 프로듀서 #
내무장관 데니스 모나스티르스키 Денис Анатолійович Монастирський 1980년 변호사 #
국방장관 올렉시 레즈니코프 Олексій Юрійович Резніков 1966년 변호사, 정치인 #
지방장관 올렉시 체르니쇼프 Олексі́й Миха́йлович Чернишо́в 1977년 기업인, 투자자 #
전략산업장관 파블로 랴비킨 Павло́ Бори́сович Рябі́кін 1965년 변호사, 관료 #
교육과학장관 세르히 쉬카르렛 Сергі́й Микола́йович Шкáрлет 1972년 계량경제학자 #
환경천연자원장관 루슬란 스트릴레츠 Руслан Стрілець 1984년 관료 #

[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
출처: #
직책 이름 출생 경력 출처
비서실장 안드리 예마크 Андрі́й Бори́сович Єрма́к 1971년 영화제작 #
수석비서관 율리아 소콜로프스카 Соколовська Юлія Сергіївна 1985년 관료 #
수석비서관 안드리 스미르노프 Андрій Олександрович Смирнов 1981년 변호사 #
수석비서관 키릴로 티모셴코 Кири́ло Владле́нович Тимоше́нко 1989년 프로듀서 #
수석비서관 이고르 조브크바 Ігор Іванович Жовква 1979년 외교관 #
수석비서관 로만 마쇼베츠 Машовець Роман Васильович 1976년 특수전 군인 #
수석비서관 올레 타타로프 Олег Юрійович Татаров 1982년 경찰 #
수석비서관 이고르 브루실로 Ігор Миколайович Брусило 1980년 관료 #
수석비서관 안드리 시비가 Андрій Іванович Сибіга 1975년 관료 #
수석비서관 올렉시 드니로프 Олексій Сергійович Дніпров 1982년 공공부문 #
수석비서관 로스티슬라프 슈르마 Ростислав Ігорович Шурма 1983년 기업인 #
운영실장 비투쇼크 아나톨리예브나 Вітушок Марія Анатоліївна 1978년 ? #
총무실장 세르히 셰피르 Шефір Сергій Нахманович 1964년 시나리오작가 #
보좌관 디지털혁신장관 겸임
보좌관 루슬란 스테판추크 Русл́ан Олекс́ійович Стефанч́ук 1975년 교육 #
보좌관 올레 우첸코 Оле́г Леоні́дович Усте́нко 1969년 싱크탱크 #
대변인 세르히 니키포로프 Сергій Сергійович Никифоров 1986년 방송기자 #
보안국 통제 전권위원 세멘첸코 유리요비치 Семенченко Роман Юрійович ? 정보기관 #
전투원 재활 전권위원 바딤 스비리덴코 Вади́м Васи́льович Свириденко ? 상이군인 #
아동권리 전권위원 미콜라 쿨레바 Микола Миколайович Кулеба 1972년 공공부문, 관료 #
장애인권리 전권위원 발레리 수쉬케비치 Вале́рій Миха́йлович Сушке́вич 1954년 노동, 공공부문 #
토지문제 전권위원 농업장관 겸임
자원봉사 전권위원 푸쉬카레바 안토노브나 Пушкарьова Наталія Антонівна 1976년 약사
국회 대통령 대리 루슬란 수석비서관 겸임
내각 대통령 대리 클라디에브 미콜라이요비치 Кладієв Володимир Миколайович
헌법재판소 대통령 대리 페디르 베니슬라프스키 Федір Володимирович Веніславський 1969년 법학교수 #

4.1.1. 그렇다

핵심적인 안보 부서 등 젤렌스키의 내각이나 보좌관 등에 방송 시절의 인물이나 가족, 친구 등이 34명에 달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NY타임스의 보도로 Bihus라고 우크라이나의 독립 언론인이 보도한 내용에 따른 것이다.

2020년 5월, Bihus.info의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실의 보좌관 1명, 수석비서관 2명, 공보실 1명, 국가정보국 국장 1명과 국회의원 5명에 젤렌스키와 같이 일했던 방송계 사람이 들어갔다. # 비슷한 시기에 우크라이나 공정 유권자 위원회의 자료에선 12명이 직접 일한 사람들이고, 그들의 지인, 친척, 친구를 합치면 30명이 넘는다고 보도하였다. #

안드리 예르막(Андрій Борисович Єрмак) 대통령 비서실장은 젤렌스키가 방송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프로듀서 출신이다.

우크라이나 정보국인 SBU의 수장인 이반 바카노프(Іван Геннадійович Баканов)의 경우, 젤렌스키의 어린 시절 친구이기는 하다. 젤렌스키가 속했던 코미디 스튜디오인 Kvartal 95 studio의 디렉터였다. 대통령 최고 보좌관인 세르히 셰피르(Serhiy Shefir)는 코미디 작가 출신이다. 대규모 국책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키릴 티모셴코(Kirill Tymoshenko)도 젤렌스키와 같은 방송계 출신이다. #

내각에는 전문적인 인원을 채워놨기에 그렇지 않단 견해를 밑에서 피력하지만, 대통령의 의제 설정이나 국정 수행이 장관보다 비서나 몇몇 직책자에 의해 진행될 가능성이 높은 점을 감안하면 측근 위주의 정부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성향불문 대다수의 언론들에서는 예전부터 줄곧 젤렌스키 정권의 문제점으로 측근정치를 꼽았다. 이후 검찰 및 정보기관 공무원들의 반역 및 공모 혐의 651건이 제기됐으며, SBU와 검찰에 속한 60명 이상이 우크라이나에 맞서 러시아를 위하고 있는 것이 드러나면서 측근인 검찰총장과 우크라이나 보안국 국장을 해임하면서 젤렌스키의 측근 기용에 문제가 많았음이 드러났다. 특히 우크라이나 보안국 국장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소꿉친구'로, 과거 TV·영화 제작사 '크바르탈 95'를 함께 설립·운영하기도 했었는데 이미 문제가 많다는 것이 드러났었다. 우크라이나의 관료는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그의 업무수행에 매우 불만족하고 있으며 그를 해임하기 위해 작업 중"이라며 "그는 지금 필요한 위기 관리 기술이 없다"고 평했었다. ##

4.1.2. 그렇지 않다

측근들을 내각에 앉혀 비판을 받지만 이걸 두고 부엌 내각이나 인사비리라 하기에는 어폐가 있다. 기존 우크라이나 정치권 인사들은 친러 성향이 짙어 우크라이나 국민들도 이미 등돌린 상태였으며, 실제로 저들은 단순 친러 수준이 아니라 푸틴과의 직접적 연관이 있다는 증거나 의혹들이 강하다. 전쟁이 터지자 가장 먼저 피난길에 오른 정치인 또한 그들이었다. 그렇다고 친 서방 정치인들은 괜찮은 사람이냐면 그렇지 않다. 당장 대선에서 맞붙은 전 대통령 페트로 포로셴코는 부정부패를 저지른 정치인이고 예전부터 '러시아랑 한판 붙어서 러시아인들을 다 때려잡자'던 엄청난 강경파 율리야 티모셴코가 친서방이라 거기서 거기다. 기존 정치인들에 대한 실망이 젤렌스키를 당선시킨 원동력임을 생각해보면 젤렌스키가 이들과 거리를 두는 것이 당연하다.

흔히 도는 말로 우크라이나에 유명 개그맨이 대통령에 당선되더니 자기랑 친한 개그맨과 피디, 작가 등을 낙하산으로 앉혔다고 알려지면서 까이고 있는데, 애초에 젤렌스키의 소속 정당인 인민의 종창당 멤버 및 구성원이 저 사람들이다. 정권교체가 되고 대통령과 뜻이 맞는 인사로 물갈이가 되는 것은 전세계 어느 정부에서도 당연한 일이다.

사실 젤렌스키의 이러한 인사 기조는 그가 제작하고 주연을 맡은 드라마 인민의 종에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 주인공 바실이 대통령이 되고 가장 먼저 한 일들 중 하나가 내각 갈아치우기였는데, 공개 채용 형태로 거르고 걸러도 뇌물 받으면 엄벌한다는 이야기에 후보자들이 도망가거나 겨우겨우 뽑은 후보자들이 전부 총리 쪽 라인이어서 결국 관계 분야에 종사하는 자신의 지인들을 내각에 앉힌다. 그마저도 사람이 부족해서 외무장관은 외교관 가문이라는 점을 빼면 외교와는 전혀 무관한 배우 출신의 친구를 앉히고 보안국장은 학창시절 별명이 베리야였던 자신의 담임선생님을 앉힌다. 즉, 젤렌스키의 인사철학은 부패가 심각한 우크라이나에서는 유능하지만 부패하고 신뢰하기 힘든 인간을 앉히는 것보다는 해당 분야에 다소 무지하더라도 청렴하고 믿음직한 사람을 앉히는 것이 낫다가 요지임이 이미 드러나 있었다.

2월 26일부터 블라디미르 푸틴이 노골적으로 젤렌스키 대통령의 측근들과 우크라이나군 지휘관들에게 쿠데타를 종용하기 시작한 적이 있었다. 만약 당시 친러계 인사들 중 하나라도 우크라이나 내각에 그대로 남아있었더라면 젤렌스키의 안전이 보장받기 어려웠을 것이나, 젤렌스키가 자신이 가장 믿을만한 주변인들만 측근으로 기용해놓은 탓에 푸틴이 원하는대로 젤렌스키의 주변에서 쿠데타가 일어날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가 되어버렸다.[31] 평상시라면 문제가 되었을 주변인 위주의 내각 임명 문제가 전시라는 특수 환경 때문에 긍정적인 효과를 본 특이한 케이스로 볼 수 있다.[32] 그리고 측근인사라며 폄하당한 고위관료들은 수도 키이우가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대통령과 함께 끝까지 키이우에 남아 국민들을 독려하며 위기에 빠진 국가를 구원하려 애썼고 결국 이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국가를 위해 싸울 명분이 되었다.

실제로 친러 정당 소속 네스토르 슈프리치 의원이 우크라이나 군을 무단 촬영하는 군 기밀 유출 행위와 비콘 설치 등 간첩 혐의로 체포되거나 우크라이나 정보 당국의 전 부국장 드미트리 데먀넨코가 간첩 혐의로 체포 도중 사살되는 등 믿을만한 지인으로 내각을 구성한 젤렌스키의 판단이 옳았음이 증명되었다.

4.2. 러시아의 침공 예방 실패

4.2.1. 실패했다

(문화일보)‘무능력 지도자’가 부른 우크라 위기
(동아일보)러 침공 예측 못하고 위기 키운 ‘아마추어 대통령’
(채널A)코미디언 출신 우크라 대통령의 몰락…SNS로 총동원령
(조선비즈)실패로 끝난 코미디언 출신 대통령의 對러 ‘읍소 전략

러시아와 전쟁 직전인 2022년 2월 1일 2024년 1월 1일까지 징병제를 폐지하라고 장관들에게 지시하였다. # # # 다만 해당 조치는 징병 기피 차원에서 해외 인구 유출이 극심해서 나온 고육지책이라지만 휴전중인 상황도 아닐뿐더러 자국영토에서 친러반군 세력이 활동하고 있고 러시아와 전쟁직전인 상황에서 징병제를 폐지하라는 지시와 발언은 비판받아 마땅하다.[33]

러시아군 침공 위기 속 정적에 집중하는 면모 또한 보였다. 그 대상은 페트로 포로셴코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 포로셴코의 키이우 입성과 수천명의 지지자의 가두행진등이 일어났고 이 소식을 듣자마자 젤렌스키는 다자 협상을 제쳐둔 채 대통령궁으로 복귀했다. 포로셴코와의 정쟁에서 승리할 묘책을 찾겠다며 측근과 참모들을 소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 # 지난 17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우크라이나와 서방 간의 회담에서 소외된 젤렌스키 대통령이 국내 문제에 치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22년 02월 17일 러시아 언론에서 돈바스 지역에 우크라이나 정부군의 박격포 공격이 있었다는 보도로 인해 #, 러시아의 침공 위기가 최고조인 가운데 19일 독일 뮌헨안보회의 연설에서 핵 재무장을 시사하여 러시아를 자극하였다. #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하지 않는다고 약속하거나 동쪽 돈바스에 고도의 자치권을 보장했으면 전쟁을 피할 수 있었을 것”
아베 신조 일본 전 총리
일본의 전 총리, 아베 신조는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인터뷰를 하면서 우크라이나 사안에 대해 러시아를 상대로 한 강경 대응을 지지하면서도 “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하지 않는다고 약속하거나 동쪽 돈바스에 고도의 자치권을 보장했으면 전쟁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본인의 견해를 밝혔다.

문재인 정부 외교 보좌역을 맡았던 문정인도 이 입장에 서서, 러시아의 침공을 '젤렌스키가 막지 못한 탓'이라고까지 비판하였다. 칼럼, 대담 영상

이 외에 더불어민주당 측 몇몇 인사들은 젤렌스키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유발한 책임이 있다고 본다.
6개월 초보 정치인이 대통령이 돼서 나토가 가입을 해주지 않으려고 하는데 가입을 공언하고 러시아를 자극하는 바람에 결국은 충돌했죠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우크라이나는 대통령을 잘못 뽑아 전쟁이 났다
-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및 전직 법무부장관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텔레비전에 나와 연설하고 갈채를 받고 의원들한테서 기립박수를 받는다
"이자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만큼이나 전쟁에 책임이 있다"
"훌륭한 코미디언이긴 하다만 TV에 나오려고 전쟁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진지한 대화를 해야 한다"
-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브라질 대통령이자 39대 브라질 대통령 당선인.

브라질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는 미국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추진에 반대하는 러시아에 양보하고, 푸틴 대통령과 협상을 해 분쟁을 피했어야 했다며 젤렌스키에 대해 TV에 나오려고 전쟁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진지한 대화를 해야 한다"고 비아냥거렸다. ##

4.2.2.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애초에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으로 인해 시점이 미루어진 것일 뿐 러시아의 원 침공 시기는 1월 초였다는 정황이 나오면서 예방 실패라는 건 의미가 없어졌다. 전쟁 직후 러시아가 내거는 조건이 반러 성향의 젤렌스키 정권 소멸과 우크라이나 장악을 위한 무장 해제다. 즉 러시아는 애초에 젤렌스키의 의도와 노력과는 무관하게 존재 자체를 없애기 위해 침공을 감행할 예정이었다.

실제로 러시아가 전쟁 개전까지 협상한 상대는 나토였으며, 우크라이나하고는 협상 시도조차 안했다. 우크라이나는 2월 17일 나토 가입여부를 국민투표에 회부하겠다는 타협안도 냈지만 러시아는 그냥 무시했다.[34] 프랑스가 계속 중재노력을 했기에, 우크라이나가 적극적으로 나서면 막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으나, 러시아는 겉으로만 응하는 척 했다. 마크롱은 러시아에게 우크라이나에서 군사행동을 확대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발표하기도 했으나 러시아는 바로 부정하며, 프랑스는 유럽연합 지도자가 아니며 리더십은 다른 국가에 있기에 그 어떤 합의도 성사시킬 수 없다고까지 말했다.[35]

14일 로이터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드미트리 코작 러시아 대통령 행정실 부실장이 전쟁전에 우크라이나와 협상을 했으며, 나토 비가입 및 주요 요구사항을 우크라가 받아들였다. 그러나 푸틴은 해당 합의안이 충분하지 않다며 거부했고, 영토를 합병하고자 침공을 개시했다고 한다. 만약 이 보도가 맞다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협상을 시도했으며, 나토 비가입 등 주요 요구사항을 받아들였는데도 러시아가 합병하기 위해 침공한 것이기에 젤렌스키 책임론 자체가 부정된다.[36]

권기창 전 우크라이나 대사는 나토가입을 성급히 추진했다가 전쟁이 일어났다는 주장에 대해 사실을 정확히 알지 못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4.3. 정당의 자유 및 노동운동 탄압 의혹

4.3.1. 탄압했다

젤렌스키는 러시아의 침공 이전부터 야권성향 TV뉴스 송출을 강제 중단하고, '탈공산화법' [37]을 유지하며 우크라이나 공산당 등을 탄압했다.

전쟁 개전 후 이는 더 심해졌는데, 우크라이나 사회당 등 상대적으로 온건한 친러 정당들까지 금지당했고,[38] 비밀경찰을 동원해 우크라이나 공산당원을 체포해 고문을 가했다. 주 포르투갈 우크라이나 대사와 외무부 장관, 난민협회 회장이 "민주주의 국가에는 공산당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발언해 큰 논란이 되기도 했다. 포르투갈 공산당의 성명

2022년 8월 17일에 250명 미만의 노동자가 고용된 기업의 노동자들에게서 단체교섭권을 박탈하는 법안에 서명했다.[39]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 경선 토론회에서 비벡 라마스와미는 우크라이나와 젤렌스키 정권을 맹비판하였다. 우크라이나 현 정부가 "비민주적"이라면서 "우크라이나는 민주주의의 모범이 되는 국가가 아니다. 11개의 반대 정당을 금지한 나라"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모든 언론을 하나의 국영 TV로 통합했고 미국이 더 많은 지원을 하지 않으면 선거를 치르지 않겠다고 위협하고 있다"며 "이는 민주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한 "카고 바지를 입은 코미디언인 젤렌스키가 나치를 찬양했다"며 "이것은 민주적이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는 지난 9월 25일 젤렌스키 대통령이 캐나다 하원의회에 방문했을 때, 의회에서 나치 부역자를 우크라이나인 영웅으로 소개하고 이에 대해 젤렌스키 대통령이 박수를 쳤던 사건을 언급한 것이다. 현재 러시아 영향권에 있는 우크라이나 영토는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지역이라면서, 우크라이나가 부패했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

4.3.2. 정당한 조치이다

개전 이후 일부 정당들의 해산의 경우 탄압이 아닌 국가 안보와 주권 수호를 위한 정당한 조치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해산당한 모든 정당들은 전전 시기에서라도 친러적 성향을 보였거나, 최소한 러시아와 조금이라도 커넥션이 있던 정당들이었기 때문에 해산당해야 할 이유가 분명하다. 가령 우크라이나 사회당이 온건 좌익정당이라 할지라도 친러정당이라는 점은 확실하기 때문에, 평시도 아닌 전시 상황에서 적국인, 심지어 침략해 들어오는 국가(=러시아)에 개전 전에 부역했으며 개전 후에도 부역 할 수 있는 정당들의 자유까지 보장해야 한다는 것을 침략당한 피해 국가에게 요구하는 것은 억지에 가깝거나 지나친 이상주의적 발상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방어적 민주주의의 가장 모범적인 예시 중 하나인 것.[40]

게다가 전시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대한민국도 비슷한 이유로 통합진보당을 위헌정당으로 해산한 바 있으며 심지어 많은 국민들이 이 조치를 타당하다고 여겼다. 또한 통합진보당 해산의 사례는 국제엠네스티같은 외부 인권단체들이나 BBC, 뉴욕 타임스 같은 서구 언론들 상당수에게 부당한 정치적 탄압이라고 우려나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정작 해당 단체들이나 언론들도 젤렌스키가 친러정당들을 해산한 것은 비난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크라이나 정치지형의 특성상 포로셴코나 티모셴코 등 서부 지지기반의 우파 정치인과 대립하는 포지션인 동부를 지지기반으로 가진 인민의 종이었고, 젤렌스키는 초반에 상대적 친러 정치인으로 여겨졌다. 심지어는 전쟁 전에는 포로셴코를 부패 혐의로 감옥에 넣으려고도 했었다. 현재도 중도우파 성향 정당들은 야당이고 오히려 인생과 평화를 위한 연단이라는 러시아계 우크라이나인이 중심이 된 (개전 이후 친러를 버린) 사회민주주의 성향의 중도좌파 교섭단체가 범여권이다.

4.4. 무리한 대반격 감행

4.4.1. 젤렌스키의 책임이 크다

국토수복을 위해 사실상 도박에 가까운 대반격을 감행했으나 지지부진한 성과로 피해만 늘어가고 있다. # BBC에 따르면 매일 수십명이 사망하고 있다고 한다. # 우크라이나 보건부의 한 의사에 따르면 전투에서 2022년 10월부터 전투에서 발생한 사망자의 숫자가 60만에 달할 수도 있다고 한다. 지원이 미흡해서 출산율이 급격하게 감소한 것도 문제다. # 이에 인구통계학상 위기 수준이라는 분석도 나올 정도다. # 이러한 피해를 감수하면서 전쟁을 이어가는데도 불구하고 진격상황은 교착상태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대반격 초기에 호언장담했던 것과는 달리 2023년 9월 14일, 젤렌스키는 전투 항공기가 부족함을 호소했다. # #

전쟁의 피로감으로 인해서 서방 국가들의 지지를 받을 명분도 잃어가고 있다. 미국에서 공화당 강경파가 지원을 반대하는 입장이고, 유럽연합에서도 일부 국가들이 이탈하고 있다. 급기야는 젤렌스키가 러시아 본토까지 공격을 확대하기로 한 결정에 대해 미국이 "젤렌스키의 결정이지 우리의 결정이 아니다"라고 부인하기까지 이르렀다. # # # #

전쟁이 길어지고 사상자가 속출하자 군병력을 충원하기 위한 과도한 징집도 논란이 되고 있다. 2023년 8월에 개정된 징집요건에 따르면 에이즈 환자나 정신질환자도 대상에 추가됐다고 한다. # 징집을 피하기 위해 해외로 밀입국하거나 뇌물로 면제받는 사람도 속출하고 있다. 징병대상자가 거주지역을 이탈하는 것을 금지하는 '이동 허가제'를 군이 발표하자 반대하긴 했으나 애초에 원인이 군병력 부족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대반격을 강행한 젤렌스키도 책임을 면하기 힘들다. # # #

발레리 잘루즈니 총사령관도 인터뷰를 통해 2023 우크라이나 대반격의 실패를 인정하며, 전쟁이 교착 상태에 빠졌다"라며 우회적으로 젤렌스키 통치력에 대한 비난을 하였다.

더군다나 대반격 작전도 미국의 작전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똥고집으로 무리수에 가까운 작전을 감행하여 처참히 실패한거라 변명의 여지는 더더욱 없다. 미국 국방부에선 자신들의 권고에도 젤렌스키는 끝내 거부해 병력을 분산했고 대반격으로 실패했다고 보고 있다. (연합뉴스)

심지어 젤렌스키의 독단으로 이루어진 만큼, 실패요인이 다양할지라도 그 책임은 오롯이 군 통수권자인 젤렌스키에게 있다. 오히려 다양한 실패 요인이 있을 수록 그 책임은 무거워지는데, 자신의 군대가 가진 문제도 모른채 내린 결정이라는 결론만이 나오게 된다.

전쟁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도 협상 대신 무력 대결을 펼쳐 국민이 죽고 나라가 폐허로 뒤덮였다며 우회적으로 젤렌스키를 비판하였다. #

4.4.2. 여러 요인 중 하나였을 뿐이다

사실 모든 전쟁들이 으레 그렇듯 단 하나의 요인만으로 그 승패가 갈리지는 않는다. 역시 워싱턴포스트 취재시리즈에 의하면 표면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잡음들이 대반격의 실패를 가져왔다고 분석하고 있다. # 우선 러시아측의 대대적인 인력동원과 지뢰를 통한 방어막 형성이 생각보다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는데다 여러가지 보급의 문제로 인하여 지원을 요청했지만 문제는 서방측이 기대만큼 지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측도 여러 문제가 있었다. 오랜 전쟁으로 인해 엄청난 인명, 재산피해를 입다보니 우크라이나의 지휘관들도 과감한 공격을 시도하는 데에 상당한 심리적 저항을 느꼈고 이는 미국측에서 봤을 때 러시아의 방어선이 더 견고해지기 전에 선제적으로 치고 나가지 못하고 계속 시간을 끄는 것으로 느껴져서 많은 답답함을 느끼게 되었다. 위의 문단에서는 젤렌스키가 똥고집을 부렸다고 서술했지만 이도 다소 사실관계에 어긋나는 게 젤렌스키와 참모진들이 공격을 분산한 제일 큰 원인은 러시아가 남부방어선뿐만 아니라 동부전선에도 끊임없이 인력과 장비를 끌어오고 있었고 이에 공세를 위해 부대를 동부에서 돌린다면 동부쪽에서 크게 밀릴 것을 우려하여 공세축을 세갈래로 나눌 것을 강하게 주장한 것이다. 물론 서방에 대대적인 승리를 안겨줘야 한다는 압박감도 작용했겠지만 젤렌스키와 그의 참모진들도 절대 바보는 아니기에 단지 정치적 이유만으로 군대를 분산시켰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다만 이 역시 미국의 참모진들이 봤을 때는 젤렌스키가 비합리적이게 행동하고 있다는 인식을 준 것은 어느정도 사실로 보인다.

그리고 보급문제도 실패에 큰 영향을 주었다. 미국과 나토측은 최신장비를 빠르게 전달할 수 있다고 보았지만 문제는 우크라이나의 보급망은 당연히 서방의 것에 비하면 다소 쳐지는 측면이 많았고 유지 보수를 끊임없이 요구하는 군사장비들의 특성상 우크라이나에 도착했을 때에는 상당수의 장비들이 크고작은 고장들로 인하여 전장에 당장 내보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서방측에서 이러한 점을 선제적으로 계산하지 못했기에 추가적인 지원과 보급을 보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시간이 더더욱 지체되어 러시아의 방어선이 더더욱 견고해지는 동안 미리 파고 들 타이밍을 놓치게 되는 큰 요인이 되었다. 미국 정보부 인사들의 우려가 적중한 셈.

결국 전쟁의 실제 d-day는 본계획보다 크게 미뤄졌고 서방측 참모들이 보기에도 기갑병력이 최소 손실로 파고들 타이밍을 한참 넘긴 후에야 전투가 실시되었다. 사실 젤렌스키의 반격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면 이쪽에서 묻는 게 더 정확할 수도 있는데, 바로 작전 수개월 전부터 어느 측으로 공세를 펼칠 것인지를 대놓고 광고한 것이 큰 패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싸우던 우크라이나군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이미 수개월 전부터 떠들어댄 탓에 러시아측에서 철저하게 요새화를 실시하여 방어 준비를 철저히 함에 따라 진격이 극심하게 정체될 수밖에 없었고 젤렌스키를 비롯한 우크라이나 정치인들이 반격정보를 대놓고 흘린 점에 대해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실제 전투에서도 역시 정보부의 우려대로 기갑을 요새화된 지역에 밀어넣어봤자 성과는 매우 지지부진했으며 엄청난 피해를 면치 못했다.

결론적으로 반격의 요인중 하나는 정치적 목적으로 작전을 미리 광고한 젤렌스키의 실책도 물론 있지만 그것은 여러 요인중 하나일 뿐이다.

4.5. 전쟁 중 선거 연기

2024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를 계엄령 도중에는 선거를 실시할 수 없단 헌법상의 이유로 실시하지 않고 연기하고 있다.

4.5.1. 비판

우크라이나의 민주주의와 젤렌스키의 집권 정당성, 푸틴을 상대로 한 도덕적 우위가 훼손되었다.[41]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의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서방 국가들의 지원 명분 또한 훼손되었으며 실제로 푸틴은 젤렌스키의 집권 정당성을 문제 삼으며 국제적 여론전을 시작했다.

4.5.2. 옹호

현실적으로 선거를 실시할 수 없는 전시 상황임을 감안하고 점령지와 난민의 선거권 보장 문제가 걸려있다. 또한 어디까지나 기존에 존재하던 헌법 조항에 따른 조치이므로 법률을 위반한 불법, 탈법행위는 아니다. 전헌법재판소장 스티나슬라우 셰우추크는 헌법에서 계엄령 하에서는 모든 선거를 금지한다며 이러한 행동을 옹호했다.이러한 상황에서 대통령 선거를 실시하려면 헌법을 무시하거나, 아니면 계엄령을 해제한다라는 양자택일의 상황에 처하게 된다. 헌법을 무시한다는 것은 당연히 법리적으로 말이 안되는 것이며, 그렇다고 선거를 치르기 위해 모든 전시행동들의 근거가 되는 계엄령을 해제한다는 것은 큰 혼란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여기에 만약에 선거를 실시한다고 해도, 러시아의 간접(부정투표, 투표용지 사보타지 등)/직접적인 요소(투표소에 대한 공습)등을 감안해야한다. 특히나 대형마트에 대한 러시아의 공습 사건을 감안하면 선거는 특히나 그럴 수밖에 없다.[42]

이에 러시아쪽은 어쨌든 계엄령 하에서 대통령 임기가 연장된다는 조항은 없으므로 젤렌스키의 임기가 만료되었고, 선거를 치를 수 없으니 법리적으로는 현재 우크라이나 국회인 라다 의장에게 권력을 이양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제인 우크라이나 정부에서 최고 사령관을 의장으로 바꾸는 것 역시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말 그대로 억지 주장이다.

사실 민주성 논란에 있어 제일 중요한 것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인데, 러시아나 일부 서방 쪽 국가에서 논란이 되었을 뿐 우크라이나인들의 여론조사에서 85%가 선거를 치를때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심지어 러시아에서 젤렌스키가 권력을 이양해야 한다고 한 대상인 루슬란 스테판추크 우크라이나 의회 의장 본인도 계엄령이 종료될 때까지 젤렌스키가 합법적인 대통령이라며 논쟁의 종지부를 찍었다.


[1] 체코의 민주화 및 자유화를 이뤄낸 체코의 국부. [2] 폴란드의 민주화를 이뤄낸 폴란드의 국부. [3] 해당 영상에서 같이 등장하는 인물은 여당 대표, 대통령비서실장, 총리, 대통령 자문위원이다. [4] 키이우와 러시아 간 국경은 서울과 북한 국경 간 거리와 비슷하거나 약간 길다. 6.25 전쟁 때 갑작스런 침략이라지만 서울이 사흘 만에 함락당한 전례를 감안하면 오랫동안 수도를 사수하였다. [5] 구 소련의 권리와 의무를 승계받은 러시아는 상임이사국이자 핵무기 보유국이고, 세계 군사력 순위에서는 지금도 구 공산진영 1위이고 전 세계를 통틀어서도 위로는 미국뿐이다. [6] 단 현종은 3차 전쟁 때 수도에서 결사항전하여 거란군을 몰아냈다. [7] 물론 이들이 대피한 덕분에 전쟁에서 더 오래 버틸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8] 이 또한 비합리적인 선택은 아니다. 전쟁 초기부터 우크라이나에 협력한 미국 군부는 젤렌스키가 용감하지만 위험한 선택지를 골랐다고 비평했고, 실제로 키이우는 VDV가 침투하여 시가전이 벌어졌고 대통령 관저에서 불과 2 km 떨어진 곳에서 대통령궁 경호병력과 러시아 공수군 스페츠나츠 사이에서 총격전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젤렌스키 본인도 죽음을 각오하였던 것이다. [9] 실제 FSB 문건에 2022년 가을에 중국의 대만 침공을 시사하는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10] 그러나 군사적인 긴장감은 여전히 높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대만에 대해서 여전히 경고하고 있다. [11] 더구나 푸틴은 코로나가 무서워서 주변과 가까이 있는 것도 피한다는 게 알려지자 더욱 고평가 되고 있다. [12] 코미디 연기만 한 게 아니라 직접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제작한 PD이자 방송작가이기도 하다. [13] 연설문 작성과 교정을 담당하는 주변인들도 상당히 유능한 것은 분명하며, 이런 유능한 인물을 적재적소에 기용하는 것 또한 지도자의 뛰어난 안목을 보여주는 것이다. [14] 매년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기 직전에 하는 신년사도 호소력 있게 잘 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2020년 신년사 2021년 신년사 2022년 신년사 특히 본인도 방송물을 많이 먹은 사람이고, 주변 측근들도 방송계에 있던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딱딱하고 권위주의적이기까지 한 기존 소련권 신년사의 틀을 완전히 깨부쉈다. 단순히 대통령 혹은 총리 혼자 등장해 서서, 혹은 앉아서 프롬프터를 읽기만 하던 의례적이고 정적인 신년사에서 일반 국민을 출연시키고, 아이들과 초대받은 대중 앞에서 이야기하듯 연설하고 감성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바꾸면서 미디어 활용을 극대화하였다. 이러한 젤렌스키의 미디어 활용 능력은 전쟁 중에 제대로 발휘되어 우크라이나인뿐만 아니라 세계인의 마음까지 단번에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15] 한편 제네바의 유엔 인권위에서 러시아 외무장관 세르게이 라브로프는 화상 연설을 시작하자마자 대다수의 의원들이 항의의 표시로 퇴장하는 굴욕을 겪었다. 영상 [16] 친미성향과 반공주의 성향, 노동운동 탄압 때문에 급진좌파들 사이에서 젤렌스키의 이미지는 좋지 않다. 포르투갈 공산당 그리스 공산당 등 유럽의 주요 공산주의 정당들도 현 우크라이나 정권을 비판하면서 젤렌스키의 화상 연설을 보이콧했다. [17] 일본정부차원에서는 우크라이나측을 지지하고 있는지 젤렌스키는 23일에 일본 국회를 상대로 화상 연설을 진행했다. # [18] 체코도 러시아의 전신인 소련에게 민중의 자유에 대한 열망을 짓밟혔던 역사가 있다. 이 때문에 반러감정이 굉장히 강하며 이번 전쟁에서 폴란드와 더불어 우크라이나를 가장 많이 지원하는 나라 중 하나다. [19] 백사자 훈장은 윈스턴 처칠이 사후 받은 훈장이라서 처칠과 동급이라 판단한 것으로 보고 있다. [20] 반면 같은 유대계인 예브게니 프리고진 바그너 그룹의 수장인 데다,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에 협조한 전범이기에 평가가 확 떨어졌다. [21] 군 통수권자가 최전선에 방문해 군인들과 직접 만나는 것은 일선 장병들과 위험을 분담한다는 강력한 동질감의 표현이기 때문에 전쟁에 참여하는 군인들에게도 큰 사기 진작이 된다는 점에서 그의 방문이 호평받고 있다. 이해가 안 간다면 이승만이나 선조가 왜 지금까지 욕을 먹는지 생각해보면 된다. [22] 정신이 똑바로 박힌 군인이라면 포성이 들리면 엎드려야 정상이다. 다르게 말하면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 라는 의미다. [23] 우크라이나 정부 홈페이지에 공개된 내용이다. [24] 정황상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없이는 행동하기 힘든 행동들로 보고 있다. [25] 전쟁 발발 약 12일 전에 한 발언이다. 사회 혼란 방지 차원에서 한 발언이라고 하여도, 러시아의 침공 가능성에 대해 다소 낙관적으로 보고 있지 않았는지 의구심이 드는 발언이다. 개전 당일 수많은 사람들이 피난길에 나서며 혼비백산했던 상황과 거의 무방비 상태에서 러시아군을 맞이한 것을 고려하면 분명 어느 정도 비판받아야 할 부분으로 보고있다. [26] 러시아의 정보교란이 있었다고는 하나, 수십만의 러시아군이 국경 코앞에 배치된 상태에서 미국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수뇌부가 개전 가능성에 대한 확신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27] 단, 헝가리의 경우 러시아의 눈치를 보며 중립적 태도를 견지했다. [28] 당연하지만 유로마이단 이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어를 공용어에서 빼고 러시아어 사용금지하면서 러시아계가 반발하여 분리독립을 추진하였고 이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개입할 수 있는 명분이 되었다는 점에서 실책이며 헝가리 극우들도 이를 명분삼아 우크라 지원을 반대하고 있다. [29] 대통령의 선거 캠페인에서 홍보/광고 등을 주도한 인물이라 다소 말이 많긴 하다. [30] 우크라이나의 2번째 여성 장성이다. [31] 푸틴에게는 안타깝게도 젤렌스키에게 반기를 들고 있던 친러계 정경계 거물들은 전쟁이 터지자마자 바로 내빼버렸다. 푸틴 입장에서는 오히려 그들 친러계 인사들이 자기 자리를 지켜줘야 친러계 인사들은 비겁하지 않다는 인상을 남겨서 우크라이나 내에서의 러시아의 이미지를 덜 실추시킬 수 있을 뿐더러 전쟁 수행 능력을 내부에서 사보타주하여 젤렌스키에게 실질적인 위협을 가할 수 있는 도구가 되어줄 수 있었을텐데,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이들 친러계 인사들부터 제일 먼저 도망쳐버린 탓에 친러계는 비겁하다는 인상만 남기고 말았고 내부 정보 획득 및 사보타주 기회 또한 상실했으며 젤렌스키를 협박할 방도도 사라져버린 것이다. [32] 반대로 우크라이나는 이미 이전부터 러시아의 위협을 받는 상황이었으니 이를 타개하고자 처음 취임할 때부터 믿을 수 있는 사람들로만 내각을 구성했다고 볼 수도 있다. [33] 전쟁 직후 징병제가 부활했고 징병 대상인 남성들은 출국금지령이 떨어졌다. [34] 나토 가입은 헌법에 박혀있는 사안이기에, 우크라이나를 독재정권으로 만들 생각이 아니면 이를 물릴 유일한 방법은 국민투표 뿐이다. 참고로 헌법에 나토 가입을 넣었던 이유가, 2014년 러시아가 돈바스 전쟁을 일으켰기 때문. 3월 22일에도 젤렌스키는 러시아의 지속적인 요구에도, 안전보장에 관한 요구는 개헌이 필요하기에, 가능한 유일한 방법은 국민투표뿐이라며 절차적 민주주의를 따를 것을 천명했다. [35] 당연히 마크롱이 아무런 근거없이 이런 말을 한 것이 아니었을 테니, 이건 의도적으로 러시아가 프랑스를 엿먹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프랑스가 시도한 중재 자체에 러시아가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는 증거다. [36] 이 보도에 대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완전히 부정확한 정보라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반면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보좌관은 러시아가 침공전에 협상을 통해 연막작전을 펼쳤다고 말해, 합의했는지는 몰라도 협상이 있었음을 확인해주었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요구사항을 받아들였는데도 침공을 당했으니, 연막작전이라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 [37] 우크라이나 내에서 공산주의 상징 사용을 금지하는 법이다. [38] 우크라이나 사회당이 공산당의 후신이긴 하나, 공산당에 비해서 훨씬 중도적인 편이며, 실제로 급진좌파 조직들 사이에서는 미국 민주당과 같은 부르주아 정당으로 취급받는다. [39] 향후 우크라이나가 유럽연합에 가입할 때 이 법안은 다시 논의대상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왜냐면 EU-우크라이나 연합 협정 제296조, 제419조 및 제420조, 특히 제296조에 '협정 당사자가 법률에 의해 제공되는 노동 보호를 약화시키거나 감소시켜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 [40] 하나회 숙청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41] 비슷한 사례인 이승만 6.25 전쟁 도중인 1952년에도 남한 지역 한정으로라도 제2대 대통령 선거를 치르고 재신임을 받았다. 다만 해당 대통령 선거는 당시 간선제에서 국회내 이승만의 지지율이 떨어졌기 때문에 발췌 개헌이라는 위법적인 행동을 하면서 강제로 직선제로 바꿔 치뤄진 부정선거라는 점을 염두에 둬야한다. [42] 링컨의 일화에서도 나오는 것인데, 남북전쟁 당시에 대통령 선거와 그리고 전선의 장군 교체에 대한 여론에 '강을 건널때에 말을 바꾸지 않는다' 라는 것으로 답을 한 적이 있다. 2차대전의 유럽전선과 아시아/태평양전선의 양면전쟁을 겪은 미국도 민주당 내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FDR의 4선까지 허용할 정도로 민심은 FDR을 지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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