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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72D5C><colcolor=#ffff00> 제3대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 올렉산드르 스타니슬라보비치 시르스키 Олександр Станіславович Сирськи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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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65년 7월 26일 ([age(1965-07-26)]세) | |
소련 러시아 SFSR 블라디미르 주 | ||
국적 |
[[우크라이나|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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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
모스크바 고등제병지휘학교 (
졸업) 우크라이나군 아카데미 (작전-전략 / 우등졸업) 우크라이나 국방 아카데미 대학원 (작전-전략 / 금메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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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 군인 | |
계급 | 대장 | |
현직 |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 | |
2024년 2월 8일 ~ 현재 | ||
경력 | 우크라이나 육군 총사령관 | |
2019년 8월 5일 ~ 2024년 2월 8일 | ||
참전 |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돈바스 전쟁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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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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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우크라이나의 군인. 현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으로서 우크라이나군의 최선임 장교이자 최고 지휘관이다.세 번의 사관 학교를 거치며 작전, 전술, 전략 분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작전전략통이다.
2013년부터 우크라이나 국방부 대표로 NATO와 협력하며 우크라이나군의 서방화 개혁 작업을 주도하였다. 2014년 돈바스 전쟁 발발 후 제1부사령관 및 참모장을 거쳐 2015년부터 2019년까지 대테러작전사령관 역할을 수행하며 데발체베 전투 등에서 공을 세우는 등 탁월한 활약을 하였다고 평가된다.
2. 생애
1965년 7월 26일 소련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의 블라디미르주 노빈키에서 아버지 스타니슬라프 시르스키 대령과 어머니 류드밀라의 아들로 태어났다.1980년 15살 때, 소련군에서 복무하던 아버지가 우크라이나 지방의 하르키우(당시 하르코프)로 발령받으며 가족들이 우크라이나로 이주하였다. 올렉산드르는 하르키우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당시 소련 최고의 군사학교였던 모스크바 고등군사지휘학교에 진학했다.
1986년 모스크바 고등군사지휘학교를 졸업하였고, 소련군 포병 장교가 되었다.
1986년 포병 장교 임관 이후 1991년 소련이 해체될 때까지 아프가니스탄, 타지키스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근무했다.
소련 해체 이후 1993년 우크라이나 추후이우(Чугуїв, Chuhuiv)에 주둔하고 있던 그의 부대가 우크라이나군으로 이관되면서 우크라이군 소속이 되었다. 우크라이나 내무군 제6사단에 배치되었다. 그는 28세라는 이른 나이에 서방의 중령에 해당하는 계급을 부여받고 전투 사령관으로 승진하였다. 이후 우크라이나에 정착하여 우크라이나 여성과 결혼하여 가정을 꾸렸다.
1996년 우크라이나군 아카데미(현 우크라이나 국립 국방대학교 National Defence University of Ukraine, NDUU)에서 작전-전술 분야를 우등으로 졸업했다.
2000년 제72기계화사단 부사단장에 부임했다. 이후 사단장에 부임했다. 하지만 당시 우크라이나군의 지속적인 감군 추세에 따라 제72기계화사단은 2002년에 제72기계화여단으로 개편, 규모가 축소되었다.
2005년 우크라이나 국립 국방 아카데미(현 우크라이나 국립 국방대학교 National Defence University of Ukraine, NDUU) 대학원에서 작전-전략 분야를 금메달[1]을 수상하며 졸업했다. 당시 오렌지 혁명이 발생했는데, 친구 나탈리야의 증언에 의하면 시르스키가 혁명이후 들어선 빅토르 유셴코 정부를 비난하고 러시아군에 입대할 생각을 해 아버지와 함께 모스크바로 갔지만 러시아군 측에서 입대하는 대신 체첸에 배치되는 조건을 걸었다고 한다. 이때는 체첸이 매우 위험한지역이어서 그런지 결국 체첸 배치를 거부하고 우크라이나군에 남았다고 한다.[2]
2007년 합동작전사령부 제1부사령관에 임명되었다. 이후 2014년까지 우크라이나군 총참모부 내에서 요직을 맡으며 승진을 거듭했다.
2013년 11월 우크라이나군 총사령부 제1부참모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곧 우크라이나 국방부 대표로 브뤼셀로 파견되어 NATO 본부와 조율, 협력하는 일을 담당했다. 때마침 유로마이단 혁명이 일어나 친러 정권이 붕괴되고 친서방 정권이 들어섰고, 포로셴코 정부가 추진하는 군서방화 개혁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이 일을 하면서 NATO 각 군 수뇌부들과 깊은 친분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돈바스 전쟁이 발발한 후 2014년 대테러작전 제1부사령관및 참모장에 임명되었다. 이 전쟁에서는 그는 탁월한 활약을 하였다고 평가된다. 특히 2015년 겨울 데발체베 전투 당시 우크라이나군 총참모장 빅토르 무젠코를 보좌하며 데발체베 현장에서 우크라이나군을 지휘했다. 데발체베 전투에서의 공훈 등으로 2015년 3월 보흐단 흐멜니츠키 3급 훈장을 수여받았고 얼마 후 중장으로 진급하였다.
2015년 합동작전사령부 사령관에 임명되었고, 돈바스 전쟁을 총지휘하게 되었다.
2017년 기존 합동작전본부가 대테러 작전본부로 개편되었고, 동시에 대테러 작전 사령관에 임명되었다. 실질적으로 이전까지 합동작전사령관으로서 돈바스 전쟁을 총괄 지휘하던 임무를 그대로 이어받았다.
2019년 5월 6일 기존 대테러작전본부가 다시 우크라이나군 합동 작전본부로 재개편되었고, 개편에 따라 합동 작전 사령관에 임명되었다. 해당 직위는 명칭이 여러 번 바뀌었고, 이전부터 시르스키 장군이 맡은 자리였다.[3] #
2019년 초 출범한 젤렌스키 정권은 정보부와 군부 고위층에 대거 잔존해 있는 친러 세력 및 스파이를 제거하기 위해 소련 시절부터 일해온 고위급 간부들을 대거 물갈이하기 시작했다. 군에서도 소련 시절 임관한 고위 간부들이 대거 물갈이되었지만, 돈바스 전쟁에서 충성심과 뛰어난 작전 수행 능력을 보여온 시르스키 장군은 물갈이 대상에서 비켜가고 오히려 육군 총사령관 및 상장으로 진급하며 군수뇌부의 핵심이 되었다.
2019년 8월 5일, 우크라이나 육군(지상군) 총사령관에 임명되었다. 육군 총사령관 취임 직후부터 대대적인 육군 개편 작업에 착수했다.
2020년 8월 23일, 상장으로 진급했는데, 상장(Colonel General)이라는 계급이 대한민국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대충 번역기나 돌리는 한국 언론에선 가끔 대령(Colonel)이 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군내 최고 계급자가 되었다. 이후 우크라이나는 2020년 10월 1일 계급 체계를 나토식으로 개편하였는데, 소련/러시아식 계급인 상장을 폐지하고 NATO 계급 코드 OF-9에 해당하는 4성 대장 계급을 신설했다. 다만 기존 계급 보유자의 계급은 유지하도록 하였다. 공산권 국가의 상장 계급은 서방권에서 국가마다 다른 취급을 받는데, 우크라이나는 2020년 10월 계급을 개편하면서 상장 계급장의 별 개수를 소련군의 세 개[4]에서 네개로 변경되었다. 현재 우크라이나군의 대장 계급장과 상장 계급장은 모두 별이 네 개이지만 나열된 모양에 차이가 있다.
사실 그는 러시아가 침공할 것이라는 주장에 회의적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군인의 본분에 따라 키이우 일대에 2개의 방어선을 만들었다. 그 밑의 지휘관들에게 전권을 나눠서 현장에서의 재량권을 준 것인데 훗날 전쟁 때 생각하면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2022년 2월 27일을 전후로 한 러시아군의 키이우 공세를 방어하였다. 전쟁이 발발했을 때 처음으로 내린 명령은 키이우 주변 기지에 배치된 2S7 피온 자주포를 소개하고 재배치하는 것이었고[5], 피온 자주포를 활용하여 고속도로를 통해 진격하는 러시아군을 포격으로 격퇴했다. 2월 28일 시르스키 키이우 방어군 사령관은 우크라이나군 총참모부 페이스북에 성명을 내고 “적들은 계속 키이우 방어를 뚫으려고 했지만, 목적 달성을 위한 모든 시도가 실패했다”고 밝혔다. 또 “키이우의 모든 상황은 통제되고 있다. 러시아군은 지쳤다”고 기재했다.
이후 재정비한 러시아군이 2022년 3월 9일부터 키이우에 다시 대대적인 총공세를 가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키이우가 함락될 수도 있다는 외신의 관측까지 나왔다. 공세가 임박한 3월 9일 시르스키 사령관은 우크라이나 육군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키이우 수송 인프라를 점검한 후, 러시아의 키이우 침공에 맞설 준비가 되었다고 밝혔으며. # 키이우를 방어하는데 성공하였다. 결국 2022년 4월 러시아군은 키이우 점령을 포기하고 돈바스와 남부를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비탈리 클리츠코 키이우 시장은 “시르스키 사령관은 긴박한 상황에 매번 결정적인 판단을 내렸고, 그가 내린 조치로 인해 키이우를 사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전쟁 초기의 분수령이 된 키이우 공세를 성공적으로 방어한 업적으로 2022년 3월 18일 보흐단 흐멜니츠키 훈장 2등급을 수여받았고, 4월 6일 우크라이나 영웅 칭호를 수여받았다. 7월 17일에는 전투십자상을 수여받았다.
2022년 9월 우크라이나군이 하르키우 전선에서 발라클리야를 시작으로 오스킬 강 서안을 휩쓰는 진격전에서 큰 성과를 거두고 있는데, 이 작전의 입안자이자, 총지휘관이다. 해외 언론 보도에 따르면, 3월 키이우 방어전이 성공적으로 끝난 직후부터 젤렌스키 대통령 등 정부 수뇌부와 함께 대반격 작전을 구상해왔다고 한다. 사실 그는 돈바스 전쟁 초기부터 수석 부사령관을 거쳐 2015년부터 돈바스 전쟁의 총사령관 역할을 수행해왔고 이 전역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상황이다. 또 그는 사관학교 시절 작전 분야를 우수한 성적으로 전공했다. 그는 동부 전선을 면밀히 살펴보다가 러시아군의 약점을 파악해 내고 작전을 제안했다. 그리고 9월 초 감행된 성동격서식 대반격을 직접 진두 지휘하며 큰 성과를 거두었다.
9월 대공세 작전의 실제 총지휘를 맡고 있다. 9월 10일 탈환한 발라클리야 국기게양식에 참석하여 "오늘 발라클리야를 완전히 해방시켰습니다. 우리의 반격 중 수복한 첫번째 대도시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절반쯤 되찾은 쿠퍈스크와 이지움, 그리고 다른 곳들을 수복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지움 수복 이후에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지움을 방문했을 때 곁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다시 한번 주목받았다.
2022년 전쟁에서 우크라이나군의 가장 중요한 두 전투인 키이우 방어전과 9월 역공세 모두 그의 지휘하에서 성공적으로 진행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발레리 잘루즈니 총사령관과 함께 우크라이나 전쟁 최고의 명장으로 불리고 있다. 2022년 12월 11일 보흐단 흐멜니츠키 훈장 1등급을 수여받았다.
바흐무트 전투 당시 종종 바흐무트에 방문하며 사기를 진작시키고 바흐무트를 포기하지 않겠다며 수십개의 전투여단을 퍼부었음에도 화력의 우세를 업은 러시아에게 전세가 기울다 2023년 5월 20일 바그너 그룹을 앞세운 러시아가 바흐무트를 장악하는데 성공하면서 8개월에 가까운 전투에서 패배하였다.
2.1. 신임 총사령관의 임명과 향후 전망
키이우 방어전, 2022년 9월 대반격 작전, 북부전선의 공적을 인정받아 2024년 2월 9일 발레리 잘루즈니 대장의 후임으로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에 임명되었다.아버지 스타니슬라프는 아들의 총사령관 부임 소식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6]
우크라이나군 내부의 장교들과 사병들은 시르스키의 부임에 대해 굉장히 엇갈리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서방에서도 전쟁의 국면에 따라 그에 대한 평가는 왔다갔다 하고 있다. 이를테면 키이우 방어전과 9월 대공세 때는 찬사를 받았지만 바흐무트 전투의 패배로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후 쿠르스크 공세로 초기에 찬사를 받기도 했지만, 전황이 진행됨에 따라 성패를 예단할 수 없다는 시각이 커지고 있다. 잘루즈니가 병사들의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공세에 소극적인 반면, 시르스키는 잘루즈니에 비하면 목표 달성을 위해서 부하들을 혹독하게 몰아붙이는 지휘관이기 때문에, 우크라이나군 사병들이 시르스키를 부르는 별명이 "도살자", "200장군(General200)"이다. 적군이 아니라 아군 도살자라는 뜻이다. 전사자를 가리키는 아프가니스탄 전쟁 시기 소련군의 은어 그루즈 200에서 파생된다.[7][8] #
총사령관 부임 이후 대반격 실패의 여파로 서방의 물자 지원이 일시적으로 감소한 것과 대량의 항공유도폭탄을 확보한 러시아군의 동계공세로 인해 아우디이우카를 더이상 사수하기가 힘들어지자 총사령관에 부임한 직후 아우디이우카를 포기하고 군을 철수시켰다.
끊임없이 소모되는 최전선 장병들의 사기를 감안하여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전선에 투입된 인원에게 주어지는 전투수당을 기존의 10만 흐리우냐의 2배로 늘릴 것을 건의했다. 그의 제안을 지지한 국회의원의 말을 빌리자면 "싸우기 싫어하면서 수당만 받아먹는 식충이들을 모조리 쫓아내고 그 돈을 동기부여를 위해 쓰자". 그러나 서구의 지원금이 말라붙어 전 총사령관 잘루즈니의 50만 동원 건의도 거절해야 했던 만큼 이 제안이 받아들여지기는 힘들어 보인다. "싸우기 싫어"한다고 정말 집으로 보내버리면 병력 유지도 안 될 테니까.
2024년 8월 우크라이나 군이 서방 장갑차로 무장한 기계화 여단을 포함한 여단급 4개 규모로 러시아 쿠르스크주를 공격해 러시아 본토를 일부 장악하는 작전을 입안하고 실행하였다.
2024년 8월 24일 대장으로 진급했다. #
기습적인 쿠르스크 공세 초기는 매우 성공적인데 마을 82개와 에너지 공급 인프라를 가진 수드자를 포함한 1,150 제곱킬로미터의 영토를 점령하며 방심했던 러시아의 허를 제대로 찌르는 데 성공했다. 이에 역시 우크라이나군의 명장이라며 시르스키 사령관의 전술적 능력을 칭찬하고 고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려운 동부전선을 놔두고 정예 병력을 러시아 본토를 치느라 낭비한다며 시르스키 사령관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는 등 이번 공세는 평가가 양분화되어 있다.
결국 9월 3일, 우크라이나 언론 키이우 인디펜던트마저 러시아가 쿠르스크 공세를 무시하고 동부전선에 공격을 가하며 포크로우스크 쪽에 더 가까이 진격하고 있다고 보도했고, 여기서 계획이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
포보스를 포함한 여러 서방언론들에서도 2024년 쿠르스크 전투가 우크라이나의 자충수라는 평가를 내릴 정도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중이다. #
3. 기타
- 사실 우크라이나인보다는 러시아인에 더 가까운 인물이다. 러시아에서 태어나 러시아에서 유년기를 보낸 걸로도 모자라 모스크바 고등군사지휘학교를 나온 사람이다 보니 우크라이나에서 이런저런 보이지 않는 불이익도 많이 당했다. 연공서열은 물론이고 그간 군에서의 업적과 성과 등을 볼 때 당연히 그가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에 임명되었어야 했다는 시각이 많지만 결국 러시아 출신이라는 배경 때문에 부하였던 잘루즈니가 총사령관에 임명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심지어 가족이 아직 러시아의 모스크바에 남아있다고 하니 우크라이나의 다사다난한 현대사를 상징하는 인물 중 하나인 것이다.[9]
- 1993년 우크라이나군으로 소속이 변경된 이후 우크라이나에 정착하여 현재까지 거주 중이다. 우크라이나 여성과 결혼하였으며 슬하에 아들 2명을 두고 있다.
- 우크라이나군 고위 장성 가운데 가장 영어에 능통하다고 한다. 애초에 2013년부터 우크라이나군 대표 자격으로 NATO본부와 교섭해 왔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에서 우크라이나군이 미군 및 미 정보기관과 긴밀하게 연계하여 작전을 펼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22년 하반기 동부 대공세 작전 입안 과정에서도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고 미군 측의 시뮬레이션 결과를 과감히 수용했고, 결과적으로 작전은 매우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미국 측에서도 이러한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은 모양. 이러한 배경으로 현재 우크라이나군 수뇌부 중에서 소련/러시아군과 NATO/서방군 교리에 모두 정통한 인물로 꼽히고 있다.
- 잘루즈니에 비해 군내의 인기는 떨어진다고 한다. 일단 잘루즈니가 우크라이나 순혈 출신임에 비해 시르스키가 러시아 출신이기에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까지만 해도 그의 충성심을 의심하는 경우가 존재했다. 결정적으로 40대 신세대 장성인 잘루즈니가 병사들의 편의, 휴식, 복지를 많이 보장해주는 것에 반해, 소련군 출신으로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에 참전했던 경력이 있는 시르스키는 강한 군율을 강조해 왔고, 전쟁에서 다소 아군의 희생과 피해가 있더라도 큰 목표를 위한 작은 희생은 어쩔 수 없다고 여기기에 병사들에게는 잘루즈니에 비해 인기가 없다고 한다.
- 돈바스 전쟁뿐만 아니라 특히 2022년 러시아 침공 전쟁에서 탁월한 작전 및 지휘 능력을 보이며 현재 젤렌스키 대통령 및 우크라이나 정부 고위 관계자들의 신뢰가 매우 두텁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성품도 뛰어나 정부 고위층이 개인적으로 그를 선호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외신에 따르면 잘루즈니 총사령관이 젤렌스키 대통령 및 정부 요인들과 때때로 의견 충돌을 하는 것과 달리 시르스키 상장은 한번도 젤렌스키 대통령 및 정부 당국과 트러블이 없었다고 한다. 거기다가 잘루즈니가 군사적 능력은 좋지만 스테판 반데라의 초상화 앞에서 사진을 찍는 등 외교적 물의를 일으킨 것도 있어서 더더욱 그런 감이 있다. 또 서방 언론에 따르면 잘루즈니는 아군의 피해를 극도로 줄이길 원하는 편이지만, 시르스키는 전쟁에서 어느정도의 희생은 어쩔 수 없기 때문에 큰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아군의 피해도 감수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일 때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잘루즈니는 방어에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반면 공세 작전에 매우 소극적이기 때문에 젤렌스키 정권이 답답해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 잘루즈니와 시르스키의 얽힌 인연은 서방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현재 우크라이나 정부 수뇌부는 자기주장이 강한 잘루즈니보다 시르스키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고, 애초에 시르스키가 잘루즈니보다 훨씬 선배이기 때문에 총사령관을 잘루즈니에서 시르스키로 교체한다는 설이 종종 서방 언론에 흘러나오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정부 역시 이러한 문제를 잘 인식하고 있다. 내부적 의견이 어떻든 간에 젤렌스키 대통령은 대외적으로 잘루즈니 총사령관을 교체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고, 잘루즈니와 시르스키의 다소 꼬여버린 서열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대해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현재 잘루즈니 총사령관과 시르스키 육군 총사령관은 서로 분리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말하여 우려를 불식시키려 하면서 우리는 원팀이라고 강조했다. 또 시르스키 장군 역시 서방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군은 정치와 분리되어 있으며, 자신과 잘루즈니 총사령관은 신뢰하는 관계 속에 있다고 강조하였다. 그리고 시르스키와 잘루즈니는 함께 다정한 모습의 사진을 찍는 등 두 사람의 관계는 문제가 없으며 신뢰하는 사이임을 언론에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2024년 2월 8일(현지시간)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발레리 잘루즈니 군 총사령관을 전격 경질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내고 잘루즈니 총사령관을 만나 2년간 우크라이나를 지켜준 그에게 감사를 표하고 그에게 해임을 통보했다고 밝혔다.
- 부모와 형제는 여전히 러시아에 살고 있다. # 시르스키의 두 아들 중 한 명인 이반 시르스키는 입양아이며, 호주에 거주 중이다. # 이반 시르스키는 러시아계임에도 우크라이나에 충성하는 아버지와 달리 반우크라이며 푸틴에게 충성을 하고 있다. #[10] 심지어 이반은 아버지에게 항복하고 젤렌스키를 러시아에 넘기라는 내용의 선전 영상을 찍기까지 했다.
- 우익 정치집단들의 각종 의용부대에 관대했던 잘루즈니와는 다르게 군에 편입되었으니 군의 규율을 따르고, 국가근위대 소속들 역시 웬만해선 따로 놀지 말고 육군으로 편입하라는 당연한 요구를 지속적으로 해왔으나 병력난이 가중되자 이들을 엄벌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2024년 4월에 알려진 바에 의하면 프라비 섹토르의 우크라이나 의용군단을 기반으로 창설된 제67기계화여단의 전투 연패행진과 무단 적전도주, 기존 프라비 섹토르 당원 출신들과 육군에 편입되면서 배치된 보충병 출신들과의 차별 대우 등을 문제삼아 여단 수뇌를 마구 찢어 전출시키고 1대대 '다빈치의 늑대들' 은 제59기계화여단의 재편성 명목으로 해체-전출시켜 시범 케이스로 보내버리는 등 2022년 가을 이후 뚜렷한 성과 없이 계속되는 패배와 후퇴로 서서히 흔들리며 무너지는 우크라이나군의 기강, 특히나 아조우 여단, 제3돌격여단, 러시아 의용군단 등을 필두로 한 정치군인 부대들 탓에 여전히 지키지 않고 있는 군의 '정치적 중립' 을 바로잡으려 노력하고 있다. #[11]
- 서방 국가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키이우 방어전, 9월 역공세, 쿠르스크 전투 같은 전장에서 굵직한 전공들을 많이 세운 장군이다보니 물주인 서방 국가들의 신뢰를 받고 있는데 전임 총사령관이었던 잘루즈니 장군의 경우 여러번 서방 국가들과 마찰을 빚고 결론적으로 2023년 대반격을 말아먹으면서 서방 국가들에게 단단히 찍혀 해임 된 반면 시르스키 장군의 경우 소련군 출신이지만 서방 국가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또한 9월 대반격에서는 미군의 시뮬레이션을 적극적으로 사용해 전황을 뒤집는 전공을 세우는 등 현재 미국, 유럽 국가들의 신뢰를 받고 있다.
[1]
러시아 등 동구권에서 전과목에서 올 A학점을 받은 경우 수여되는 명예로운 우등 졸업 상이며, 금메달 수상 졸업자는 군 요직에 보직되며 최고위직까지 오르는 경우가 많다.
[2]
출처
[3]
우크라이나 국방부에 따르면 정기 인사 순회라고 한다.
[4]
소련 및 러시아에서는 장성계급이 소장부터 존재하기에 중장의 경우 서방에서는 별이 세 개이지만 소련 및 러시아에서는 별이 두 개이다.
[5]
이들 자주포가 기지를 떠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순항미사일 공격으로 여러 기지가 쑥대밭이 되었으나, 자주포는 멀쩡했다.
[6]
AIF RU기사
[7]
당연하게도
젤렌스키가 지시했던
바흐무트 전투와
2023년 우크라이나 대반격을 그대로 실행해서 수 많은 사상자를 낸 전적이 있는만큼
우크라이나군 장병들한테 이미지가 곱게 보일리가 없다. 게다가 최전선에서
우크라이나군 장병들의 목소리를 대신해서 내주던
발레리 잘루즈니 총사령관을 해임시키고 젤렌스키의 무리한 명령에도 복종하는 시르스키를 총사령관이라는 자리에 앉힌거니 더더욱 불만이 나올 수 밖에 없다.
[8]
참고로 이 부분은 소련의 명장이었던
게오르기 주코프가 인명피해를 신경쓰지 않고 무리한 공세를 벌인다고 받은 비판과 동일하며, 시르스키가 소련의 군사교리에 정통한 것으로 알려진 영향이 있을 수 있다. 실지로 시르스키를 가장 비판하던 우크라이나의 마리아나 베주흘라 의원은 그를 '우크라이나의 주코프'라고 비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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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진영에서는 이런 뒷배경을 두고 총사령관이 되기는 정치적으로 뒷맛이 말끔하지 않은 인선이라는 평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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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치하에서 각지에 살던 혈육들이 국가, 가치관으로 나뉘어 서로 싸우기에 가능한 상황으로, 러시아군
미하일 주스코 중장의 동생 미콜라 주스코는 우크라이나군 대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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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시르스키 총사령관으로서 우크라이나 육군 67여단을 포함한 우크라이나 육군, 국가근위대 소속으로서 거대한 정치적 지지기반과 팬덤을 가지고 여전히 정치군인들을 양성하는 육상병력의 에이스 및 마스코트급 부대들을 상대로 강력한 경고장 겸 최후통첩을 날려버린 셈인데, 이걸 쉽게 말하면 "전임자들은 황급한 전시라 많이 봐줬겠지만 군인본분 안 지키는 귀관들은 군에 필요없다." + "아무리 전투에 능해도 그 사람들이 만약 정치질에도 동시에 능한
정치형 야전군인들의 모임이라면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결코 더러운 동거를 하지 않겠다." 라는 초강경 발언인 것. 만약, 전후에도 시르스키가 연임하거나 시르스키와도 비슷한 장군이 총사령관을 맡는다면 아조우 여단, 제3돌격여단을 필두로 한 메이저 ~ 마이너 극우 민병대 출신 부대 전체가 해체될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