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독립기계화여단 "초르니흐 자포리치우" 72-га окрема механізована бригада «Чорних Запорожців» 72-я отдельная механизированная бригад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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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설일 | 1941년 12월 5일 | |||||
소속 | 우크라이나 육군 | |||||
상급부대 | 북부작전사령부 | |||||
규모 | ||||||
역할 | ||||||
모토 |
우크라이나 아니면 죽음을! «Україна або смерт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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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단기 | ||||||
사령관 | ||||||
위치 | 우크라이나 키이우주 빌라 체르크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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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우크라이나의 기계화보병 부대이다.2. 역사
창설일자인 1941년 12월 5일, 붉은 군대 소속 제29소총사단이 카자흐스탄에서 창설됐다. 이들은 이듬해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제64군 예하로 참전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제72근위소총사단으로 개명되었다. 이후 벨고로드 전투와 부다페스트 공방전에 참가했고, 적기훈장을 수훈받았다.전후 현재 주둔지인 빌라 체르크바에서 제1근위군 휘하에 있었고, 우크라이나가 독립하자 우크라이나군으로 옮겨졌다. 2002년 여단이 되었다.
돈바스 전쟁에 참여해 마리우폴 전투에 참전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키이우에 주둔하고 있다가 호스토멜 공항 전투가 일어나자 제4신속대응여단과 함께 반격을 주도했다. 뒤이어 발생한 키이우 전투에서도 수도 방위에 공헌했다.
4월, 키이우 전투가 우크라이나의 승리로 끝난 후 여단은 바흐무트 주변으로 배치되어 여름 동안 바흐무트 전투에 참전했다. 스비틀로다르스크와 부흘레히르스카 화력발전소 전투 등을 거치며 사상자가 커졌고, 가을에는 부흘레다르 인근으로 재배치되었다. 그러나 10월 말부터 러시아군 해군 보병대(해병대) 등이 남쪽에 있는 파울리우카에 맹렬한 공세를 개시해 11월까지 격렬한 전투를 이어갔다. 다음 해 1월에는 러시아군 제155해군보병여단이 부흘레다르에 공세를 시작해 교전했고, 이를 격퇴했다. 그러나 부대는 지원 없이 돈바스에서 인력과 장비의 소모를 겪어야 했고, 다음해 10월 끝내 부흘레다르를 내주며 철수하게 된다. 한 보도에 의하면 대대 총원 350명 중 소대 정도의 30명 정도밖에 남지 않았을 정도로 인력난이 심각하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