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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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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5f5f5,#2d2f34><colcolor=#0044C9> 일생 생애 · 대통령 집권기
가족 배우자 미셸 오바마
평가 평가
역대 선거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 · 2012년 미국 대통령 선거
관련 정치인 조 바이든 · 힐러리 클린턴 · 존 케리 · 데니스 맥도너 · 수전 라이스 · 톰 빌색 · 로버트 게이츠 · 벤 버냉키
기타 PRISM · 오바마 빈 라덴 · 오붕가 · 추천작
오바마 행정부
정책 오바마케어
사건사고 넵튠 스피어 작전 · 오디세이 새벽 작전 · 월가 점령 시위 · NSA 기밀자료 폭로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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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가계3. 성명4. 인종5. 오바마 징크스6. 노벨평화상 수상7. 추천작8. 인터넷 밈9. 기타

1. 개요

버락 오바마에 관한 여담을 정리한 문서.

2. 가계

파일:Barack_Hussein_Obama,_Sr..jp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Stanley_Ann_Dunham_1960_Mercer_Island_High_School_yearbook.jpg
아버지 버락 오바마 시니어 어머니 스탠리 앤 던햄
파일:StanleyDunham.jpg
외할아버지 스탠리 A. 던햄(Stanley A. Dunham)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오바마하고 아주 판박이다. 오바마의 작은외할아버지에 따르면 오바마가 자주 사용하는 표현인 "Now look, ..."과 같은 언어적 표현과 손동작들은 오바마 외할아버지로부터 배운 것 같다고 한다. 성장기에 친아버지가 없었고 의붓아버지와 함께 산 시간도 그렇게 길지는 않았던 만큼 외할아버지가 대부분 남자로서의 거울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참고로 본인 특유의 긴 얼굴, 긴 코는 후손들에게 쭉 이어지게 된다. 딸인 앤 던햄, 외손자인 버락 오바마, 증손녀인 말리아 오바마의 두상과 코 형태가 스탠리 던햄의 판박이인 것을 알 수 있다. 유전자의 신비랄까.
미셸은 시카고에서 태어나 프린스턴 대학교를 졸업하고 역시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했는데 시민단체와 지역사회개발활동에서 5년간 시간을 보낸 오바마보다 3년 선배다. 로펌에서 버락과 만나 1992년 결혼했다.
파일:Obama_Family.jpg
맨 왼쪽: 장녀 말리아 오바마, 맨 오른쪽: 차녀 사샤 오바마
버락 오바마가 37세와 40세, 미셸이 34세와 37세에 본 늦둥이 딸들.

장녀 말리아는 오바마 대통령의 재임 마지막해인 2016년 8년동안 다녔던 시드웰 프렌즈를 졸업하고 하버드 대학교에 진학해 시각환경학을 전공했다. 2023년에 도널드 글로버의 제작사에서 일했다고 한다.

차녀 사샤는 오바마 대통령 퇴임 후에도 계속 워싱턴 D.C.의 시드웰 프렌즈에 다녀 당분간 오바마 부부도 사샤가 졸업할 때까지 워싱턴 D.C.에서 머물렀다. 이후 시드웰 프렌즈를 졸업하고 나서는 2019년에 미시간 대학교로 진학했다가, 2022년 USC로 편입하여 사회학사로 졸업했다.

공교롭게도 장녀 말리아와 차녀 사샤 모두 그의 아버지가 아직 대통령에 취임하기 이전에 학교에 진학했으며 그의 자녀 모두 오바마의 전임 대통령인 조지 W. 부시가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시절에 학교에 진학했다.[1]

여담으로 말리아는 아버지인 오바마를, 사샤는 외삼촌인 크레이그를 닮았다.

3. 성명

풀네임은 버락 후세인 오바마 2세이며, 이 이름 자체가 다양한 배경을 암시하고 있다. 버락은 스와힐리어로 "신의 축복을 받은 자"라는 의미이며, 후세인은 무슬림인 그의 조부 이름을 딴 것이다. 오바마라는 이름은 케냐 루오족 남자 이름이다. 사족으로 그의 조부는 케냐에서 독립운동 혐의로 영국에서 체포되어 고문을 받아 불구가 되었고 아버지도 미국으로 유학을 왔을 때 외국에 유학간 케냐 인재라고 따로 명단이 만들어져 있었다. 즉 오바마는 케냐 무슬림 집안 출신이고 케냐 경제학자 출신의 아버지를 두었으나[2] 미국 한부모 가족에서 자라 본인은 무슬림이 아닌, 꽤나 복잡한 성장 환경의 소유자인 셈이다. 미들네임인 후세인 때문에 사담 후세인과 겹쳐서 무슬림으로 오해받고 이를 노린 악성 동영상이 돌아다녔다. 심지어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공화당에서도 이를 이용한 유세를 펼쳤었는데, 그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의 "그는 물론 기독교인입니다. 하지만 무슬림이면 어떻습니까?" 발언으로 전화위복되었다.[3] 이후로 공화당은 저 유세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도 미국인의 12% 정도는 오바마가 무슬림이라고 믿고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있다.[4][5] 그의 재임 중 이루어진 이란과의 핵협상 타결에 불만을 가진 수니파 아랍 국가에서는 후세인이라는 미들네임이 후세인 이븐 알리를 연상시킨다는 점과 맞물려 '오바마가 이란과 핵협상을 한 이유는 오바마가 사실 시아파 무슬림이기 때문'이라는 음모론이 돌기도 했다.[6]

4. 인종

아버지가 케냐 출신 흑인이고, 어머니는 백인인 1세대 혼혈이다. 절반은 백인인지라 첫 흑인 대통령이라기보다는 첫 유색인종 대통령이라고 해야 맞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지만, 오바마가 흑인이라는 데에 이견을 제시하는 것은 지극히 일부의 의견이고, 일단 본인 스스로가 미국 흑인이라고 하고 있으므로 사실상 논외. 미국의 경우 혼혈이더라도 외견상 흑인이고, 본인의 인종 정체성이 흑인이라면 흑인으로 인정한다.[7]

이런 식의 흑인 분류는 원래 악명 높은 한방울 원칙에서 시작되었다. 흑인의 피가 한 방울이라도 섞여 있다면 흑인이라는 것으로 '순수하고 고귀한' 백인의 피에 유색인종의 피가 섞일 경우 피가 잡종화되어 '더럽혀지는' 것으로 보는 인종차별적인 법칙이다. 오바마의 경우에는 부모님이 이혼한 다음에 백인 어머니와 백인 외조부모[8]에 의해 길러졌다는 것도 '반쪽 흑인'의 이미지에 한몫하는 듯.

사실 오바마 정도라면 흑인이냐 아니냐를 두고 논란이 있을 정도의 외모나 혈통은 아니다. 왜냐하면 오바마는 그냥 딱 봐도 흑인이기 때문.[9] NBA 선수들을 분류할 때도 흑인이냐 백인이냐를 논하지, 하프 흑인이라고 하진 않는다. 백인처럼 보일 정도의 외모인 제이슨 키드, 블레이크 그리핀, 잭 라빈이나, 흑인 피가 1/4이라서 사실상 백인처럼 보이는 머라이어 캐리라면 이런 논란이 생길 수 있지만, 오바마 같은 사람은 누가 봐도 그냥 흑인이라고 받아들인다. 당연하지만 미국 내에서는 오바마가 흑인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을 오히려 더 이상하게 본다. 미국부터가 일단 여러 인종이 섞인 혼혈들이 흔한 나라이기도 하고.

그럼에도 오바마의 '반쪽 흑인' 논란이 나온 것은 피부색 때문이 아니라 오바마가 백인 집안에서 백인들의 손에 자랐다는 사실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실제로 오바마는 평소 말투에 흑인 영어의 흔적이 전혀 없고 고학력자 백인 말투를 쓴다. 오히려 마틴 루터 킹의 이미지를 불러 일으키기 위해서 흑인들 앞에서는 일부러 인위적으로 '남부 흑인이 교육을 받아서 교정한 말투'를 만들어 쓰기도 했다. 오바마의 부모는 어렸을 때 이혼했을 뿐 아니라 그의 아버지는 케냐로 돌아가 살다가 오바마를 딱 한번, 10살 때 방문했을 뿐이었다.[10] 즉 오바마의 아버지는 그에게 흑인 유전자만 물려줬을 뿐, 어머니와의 이혼으로 인해 오바마에게 문화적, 정서적 영향을 주지는 못했기에 자연스럽게 오바마도 흑인 문화와 거리가 생길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어머니가 재혼한 남자는 인도네시아인이었으니.[11] 비유하자면 한국계 인물이 미국인 부모에게 입양되어 평생 자랐다면 당연히 미국인의 마인드를 갖게 되는 것처럼, 같은 미국이라도 흑인과 백인의 문화가 판이하게 다른데 흑인들과 문화적 공통분모가 거의 없는 오바마를 흑인이라고 하는 것에 대한 이견이 있는 것.

사실 오바마의 흑인쪽 배경만 하더라도 여타 미국 흑인과 몹시 다르다. 대부분의 미국 흑인들은 그 조상이 서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미국에 끌려온 것에 비해, 오바마 시니어는 동아프리카(케냐)에서 유학생으로 자발적으로 미국에 왔다. 오바마 시니어가 버락 오바마를 가진 것도 자유로운 결혼 생활에서 비롯되었고, 본인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케냐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런 차이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성씨인데, 버락 오바마가 "오바마"라는 흑인쪽 조상의 성씨를 그대로 사용하여 (조상의 성씨를 잃고) 서양식 성씨를 사용하는 대부분의 미국 흑인들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미국 흑인들은 조상들의 아프리카 문화에서 단절된 반면에, 오바마는 (짧게나마) 아버지와 교류하면서 조상들의 정체성을 공유하고 케냐에 있는 친가에 방문하는 등 이런 단절을 경험한 적이 없다.

정리하자면 인종적으로는 당연히 흑인이지만, 오바마가 과연 일반적인 미국 흑인들의 정서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냐는 부분에서는 논란이 있다고 보면 된다. 즉, 금수저 출신 정치인이 서민들의 고충을 진정으로 알겠느냐는 의심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물론 이런 주장은 '흑백혼혈 흑인'으로서 오바마 본인이 겪은 정체성 혼란에 대한 고충을 쌍그리 무시하는 소리다. 오바마는 인종갈등 극복을 위해 흑인들에게 흑인스러움을 요구하는 낡은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5. 오바마 징크스

스포츠광이기도 해서 그 중에서도 자신의 연고지인 시카고 관련 팀들의 팬이다. 이제까지의 대통령들이 주로 야구 팬이었던 것처럼 야구도 좋아하는데 시카고 화이트삭스 팬이기도 하여 워싱턴 내셔널스의 시즌 개막 경기에 화이트삭스 모자를 쓰고 시구를 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2009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부시 스타디움에서 열린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전에 화이트삭스 저지와 모자를 쓰고 시구를 하고 마크 벌리 퍼펙트 게임을 했을때 격려 전화를 하는 등 시카고 화이트삭스 광팬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 이후 개런티드 레이트 필드에서 시구를 한 적은 없다(2005년 상원의원일 때 시구를 했다).[12] 또 2012년에 케빈 유킬리스가 화이트삭스로 트레이드 되자 표 텃밭인 보스턴에서 '"유킬리스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농담을 했다가 야유받은 적도 있다. 축구도 좋아해서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당시 미국이 치르는 경기들을 모두 직관했다. 또한 콜로라도 래피즈 구단으로부터 유니폼을 선물받는데 등번호가 10번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아싸! 리오넬 메시랑 등번호가 같다!며 환호하기도 했다.

아이스하키도 역시 시카고를 연고로 하는 시카고 블랙호크스의 팬인데, 재임 중 3번이나 우승했다.

농구광이기도 하다. 농구로는 시카고 불스, 미식축구로는 시카고 베어스 팬이다. 2010년 추수감사절 연휴에는 농구 경기를 하다가 입술 부위를 12군데나 꿰메는 부상을 입었을 정도다. 물론 보는 것도 좋아해서 NCAA 경기를 관람하거나 항공모함에서 연 적도 있다! NCAA는 3월의 광란( 플레이오프 혹은 포스트시즌) 때 항상 대진표를 채우는걸로 유명한데, 이걸 ESPN에서 Baracketlogy라는 이름으로 세그먼트를 해서 매년 틀어준다. 정확도는 그리 높지도 않고, 우승팀을 맞춘것도 1번, 2009년 첫 임기 첫해때였다. 심지어 1969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 재임중에 건설한 백악관 지하의 1개 레인짜리 볼링장을, 2009년 취임하고 얼마 되지 않아 바로 밀어버리고 # 거기에 농구장을 건설했다가 볼링협회로부터 항의를 받기도 했다.

선거에 출마했을 경우, 개표 직전에 농구 시합을 벌이면 당선된다는 징크스를 갖고 있다. 존 매케인과의 대통령 선거에서도 오바마는 지인들을 불러모아 농구 시합을 실시했는데 당선되었고 밋 롬니와의 최후반 선거 경합을 벌일 때 역시 그랬다.

특히 2012년 대선 때는 롬니가 마지막 며칠을 내내 죽을 힘을 다해 오하이오에서 유세전을 펼친 반면, 오바마는 그 마지막 며칠동안 일체의 정치활동을 하지 않고 역시 친구들을 불러모아 놓고는 농구 시합을 했다. 그 이후 오바마가 당선되었다.[13] 한마디로 농구시합을 하면 무조건 당선된다는 것이 오바마 징크스이다.

2016년에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가 백악관을 방문했을때에도 (장난삼아) 자기는 스테판 커리보다는 클레이 탐슨의 점프슛폼이 더 맘에 든다고했고, 전 시카고 불스의 멤버이자 2016년 워리어스의 감독이었던 스티브 커를 보고 "NBA 최강팀의 일원이 온다는거는 아주 드문일이죠.. 운좋게도… 1995/1996 시즌 시카고 불스의 멤버, 스티브 커가 여기있습니다!"라고 했다.

NCAA Division I Football Bowl Subdivision 칼리지 풋볼 플레이오프(College Football Playoffs) 제도의 도입에 적극적으로 찬성하기도 했다.

6. 노벨평화상 수상

2009년 4월, 프라하에서 오바마는 "핵무기 없는 사회"라는 주제로 연설을 하여 전략무기감축협정 갱신, 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 (CTBT)의 비준, 핵물질 방호와 안전을 국제적으로 논의하고 공조하기 위한 핵안보정상회의의 구상을 밝혀 핵무기 확산에 강력한 제재를 천명하였고, 그 해 노벨상(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그것도 재임 10개월만에 받았다.

이 때문에 수많은 논란이 되었다. 아직 취임 10개월밖에 되지 않았던 시점인 만큼 정책상으로도 평가받기가 모호하고 유화정책의 취지는 좋지만 아직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폴란드 자유 노조 지도자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고, 이후 초대 대통령을 역임했던 레흐 바웬사도 '축하할 일이고 기쁘지만 너무 이른데'라는 발언을 하였고 뉴스위크 CNN을 비롯한 미국 언론사도 반응이 엇갈리며 미국의 극우파들도 입에 거품 물며 노벨 심사위원들을 비난했다. 오바마 대통령 지지자들마저도 아직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은 만큼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아메리카 원주민 출신의 인권운동가 러셀 민즈[14]는 이를 사기라며 비판했고, 심지어 오바마 본인도 수상 소식을 듣고는 '뭐 내가?! 벌써?!' 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당해 수상할 만한 인물이 없었다는 시각도 있으나 같이 후보로 선출된 후보들을 보게 된다면 세계평화를 위해서 오바마보다 나은 성과를 올린 사람이 과연 없는가 하는 의문점이 들 수밖에 없다.

2009년 노벨평화상 후보로 총 205건의 인물 혹은 단체가 추천되어 역대 최다 후보수였던 2005년의 199건을 약간 상회했다. 게다가 후보들 중에는 오랜 기간 에이즈퇴치운동과 인권운동에 종사해왔던 중국의 반체제 인사 후자아나 히말라야 오지에 여학교 78개를 세운 그레그 모텐슨[15] 등 쟁쟁한 인사들이 대거 포진했다. 게다가 노벨 평화상은 노벨상 중 유일하게 단체에게도 수여가 가능한 상이다. 정 인물이 없었다면 차라리 단체를 선정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예를 들어 비정부기구인 집속탄연합(CMC)는 국제 집속탄 사용금지 협약 체결을 위해 100여개국에 파견되어 설득 작업을 벌여 큰 역할을 하였으며 이는 노벨 평화상 수여 원칙인 국가간의 우애를 돈독히 하거나 상비군을 폐지·축소하거나 평화회담을 개최하고 주장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이나 단체에 가장 적합하다고도 볼 수 있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반론도 있는데, 신 전략무기감축협정 또한 '상비군을 폐지·축소'라는 조건에 충분히 해당 가능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제2세계의 대표적 군사강국인 러시아 중국은 참여하지 않았고, 심지어 같은 제1세계에서도 대놓고 반기를 드는 국가가 이나 있으며 맹주인 미국조차 별 관심 없어서 실질적인 영향력이 사실상 제로에 가까운 국제 집속탄 사용금지 협약과 달리, 신 전략무기감축협정은 세계 핵전력 1위 국가 2위 국가의 핵전력을 감축하는 직접적인 효력을 가진 협정이다. 세계 평화에 대한 실질적인 기여도로 따지자면 국제 집속탄 사용금지 협약보다 몇 배는 위로 쳐줘야 할 것이다.

심사위원들이 오바마를 좋아해서 줬다기보다는 조지고 부시는 대통령의 임기를 끝낸 것 그 자체가 세계평화를 가져다주었다(…) 보고 준 게 아닐까 하는 이야기도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노벨상 수상은 대통령이 된 후의 정책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대통령이 되기 전 유색인종의 인권을 위해 노력한 일, 아니 흑인 대통령 당선 그 자체만으로 미국 내 화합에 기여한 점을 고려한 것 아닌가 하는 이야기도 있다. 노벨평화상이 원래 주는 이유가 좀 모호한 상이기도 하다.

여기에도 황당한 에피소드가 있는데 오바마가 수상식에서 전쟁을 합리화 하는 발언을 하는 바람에 심사위원들이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다. 오바마는 "때론 국가가 정의의 전쟁에 나서야만 할 때도 있고 국민에 대한 위협에 빈둥거리며 낭비할 시간은 없다"라며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미군 증파한 결정도 정당화하는 모순되는 말을 했다. 이 때문에 평화상을 준 심사위원들 입장에서는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말을 듣고 굉장히 난처했다는 이야기가 뉴스를 통해 전해졌다.

오바마가 퇴임한 이후에는 2009년에 러시아와 미국 간의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이 갱신되었기 때문에 받은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16] 사실 신 전략무기감축협정이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바는 의외로 작지 않은데, 핵전력 감축에 대한 신규 협정이 없는 상태에서 START I이 만료될 경우 미국과 러시아가 다시금 핵무기 전력을 증강하더라도 그걸 막을 방법이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17] 게다가 오바마는 학생 시절은 물론이고 상원의원 시절 대표적인 핵전력 감축론자로 유명했다. 2010년에는 공약대로 워싱턴에서 제1차 핵안보정상회의를 개최하였고, 2012년 서울, 2014년 헤이그를 거쳐 2016년까지 4번의 회의로 이어지게 되었다

2기 임기 막바지에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와 이란과의 핵 협상 타결이라는 빅 이벤트가 성사된 뒤에는 오바마가 충분히 상 받아간 값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 편이다

이후 스티븐 콜베어의 레이트 쇼에 나와서 노벨평화상 수상과 관련한 셀프디스를 하였다. 솔직히 본인도 왜 받은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물론 쇼를 위한 농담이니 진지하게 받아들이진 말자.[18]

7. 추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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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인터넷 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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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기타

"…사실 이 발표를 제일 기뻐하고 있는 건 그일 거라 생각합니다. 이제 그는 좀 더 중요한 문제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달 착륙은 조작됐는가? 로스웰에서 실제로는 무슨 일이 있었나? 비기 2Pac은 어디에 있나? 같은 것들 말입니다."[28][29]
파일:attachment/800px-Obama_and_Biden_await_updates_on_bin_Laden.jpg
(등장인물에 대한 정보는 마셜 웹 문서 참고)
아니요, 하지 마세요. 그냥 저 청년은 이 자리에 있게 해 줍시다. 가족을 걱정하는 저 청년의 열정을 존중합니다. 하지만 민주주의 국가에는 절차라는 게 있고, 그 절차라는 건 여기서 소리지르는 것과는 달리 그리 쉬운 게 아닙니다.
파일:external/2.bp.blogspot.com/B43EwVSCUAAX4gn.jpg
2014년 크리스마스 사진* 오바마의 가족들은 전부 장신이다. 오바마 자신의 키부터 187cm인데 그의 아내인 미셸 오바마의 키가 5피트 11인치(180cm)이다. 오바마는 루오족 계통인데 루오족이 포함된 나일로트계 민족들이 키가 큰 편이라고 한다. 2011년에 큰딸 말리아 오바마(1998년생)[30]은 6 피트에 육박했고 2020년 현재 구글 프로필에는 185cm로 기록되어 있는 엄청난 장신이다. 작은딸 사샤 오바마(2001년생) 역시 2015년을 이후로 175cm가 다 되어간다. 심지어는 미셸 오바마의 오빠인 크레이그 로빈슨의 키가 198cm로, 말리아와 사샤 자매는 부계, 모계 양쪽 다 키가 크다.
파일:attachment/NISI20120325_0006092374_web.jpg
파일:attachment/2012032517325432031_1.jpg
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방문 기간 동안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을 방문한 모습[32]
* 국내 가격비교 사이트인 에누리닷컴에서 오바마 닮은꼴 모델인 레지 브라운이 김정은 닮은꼴 UIUC 한인 학생인 김민용과 함께 광고모델로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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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녀는 전임 대통령인 부시 1기 행정부 시절인 2004년에, 차녀는 부시 2기 행정부 시절인 2007년에 각각 학교에 진학했다. [2] 아버지는 원래 무슬림이었으나, 자라면서 무종교인이 되었다. [3] 정확히는 이라크 전쟁에서 죽은 아랍계 미군의 예를 들면서 기독교인도 무슬림도 훌륭한 미국인이라는 발언을 했다. [4] 공화당 지지세가 매우 강한 남부의 앨라배마에서는 45%, 미시시피에서는 무려 52%가 버락 오바마를 무슬림이라고 믿고 있다. [5] 참고로 미국은 헌법상으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청교도들의 이주에서 시작한 것도 있고 대체로 청교도가 많아 가끔 착각하는 듯 하지만 신정국가가 아니다. 그러나 배경은 무시할 수 없으므로 사회적으로는 기독교, 특히 개신교를 매우 숭상하는 편이다. 이는 미국 헌법 자체가 개신교(적 유신론) 사상에 바탕하여 쓰여졌다고 미국민들이 생각하고( 미국인의 대부분이 기독교(및 그에서 파생된 종파)를 믿거나, 기타 일신론적 종교(이슬람교 등)를 믿기 때문에 그렇다.) 그로 인해 전통적으로 선서나 맹세 등 중요한 건 웬만하면 다 성경에 대고 하기 때문이다.(다만 최초의 무슬림 하원 의원이 탄생하면서 쿠란 선서가 이루어졌다.) [6] 관련 기사, 기사에도 언급되어 있지만 물론 후세인이라는 이름은 본래 아랍어 형용사에서 유래한 이름이기 때문에 이슬람권에서 수니파, 시아파를 가리지 않고 흔히 사용되는 이름이다. [7] 같은 이유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경우도 흑인+인도계(아시아계) 혼혈이지만 피부색이 어둡고 본인 스스로 흑인으로서의 정체성 또한 가지고 있어 흑인으로도 친다. 카말라는 정확하게 따지면 아시아계 흑인이다. 사실 미국 백인 같은 경우에도 평균 1.8% 정도는 원주민의 피가 흐르고 있음에도 이들을 미국 원주민이라고 하지 않고 유럽계 미국인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8] 아버지 없이 자란 탓에 외조부를 통해 아버지의 역할을 배웠다. 오바마가 연설에 자주 넣는 추임새 중 하나인 'Look'이 외조부의 영향을 받아서 생긴 습관이라고. [9] 잘 보면 백인의 특징과 흑인의 특징이 절묘하게 섞여 있는 이목구비이긴 한데, 이건 대부분의 흑백혼혈이 그렇기 때문에 딱히 오바마가 특이한 건 아니다. [10] 오바마는 "아버지가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나는 인지하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11] 이런 이유로 오바마는 아시아계에게도 인기가 많으며 그 역시 타 미국 대통령에 비하면 아시아계를 이해하는 편이기도 하다. [12] 이 경기가 ALCS 2차전. 피어진스키의 낫아웃 사기극이 일어난 경기이다. 여담으로 이해 화이트삭스는 AL 전체1위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달성. [13] 심지어는 롬니가 그렇게 죽자고 유세했던 오하이오에서도 오바마 승. [14] 이 사람은 오바마 집권기를 조지 부시의 3선이라고 표현했다. [15] 자신의 경험과 약속을 다룬 <세 잔의 차>라는 책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이 책은 조작 논란이 끊이지 않아 공동저자가 자살했으며, 그레그 모텐슨과 그의 자선단체 또한 부패와 거짓 논란에 휩싸여 있다. [16] 엄밀히 따지면 New START가 2010년 4월 8일에 체결되었고 START I은 2009년 12월 5일에 만료되었으므로 그 해(2009년)에 갱신된 것은 아니긴 하다. 다만 협상을 개시한 시점으로 따진다면 2009년 5월이므로 아주 틀린 표현은 아닌 셈. [17] 전략공격능력삭감조약(SORT)이 있긴 했지만 전략무기감축협정 문서에서도 언급되었다시피 검증 관련 규정이 전무하여 실질적인 효력에 꾸준히 의문이 제기되고 있었다. [18] 대통령직이 끝난 뒤 새로운 직업을 찾을때 있을 수 있는 면접을 연습하는 꽁트 영상이다. 영상 4분 13초~20초경에 노벨상 관련 언급이 나온다 [19] 이는 모든 역대 미국 대통령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무능의 아이콘으로 이미지된 조지 W. 부시도 동일하게 임기 전과 후 폭삭 늙고 흰머리가 많이 생긴 비교사진이 있다. 도널드 트럼프도 4년만 했지만, 임기 전과 후의 외모가 많이 달라졌다. 임기 전에는 상당히 동안이었지만, 현재는 딱 74살 할아버지로 보인다는 반응. 게다가 트럼프가 정치인 이전에 고생없이 살았다하면 그런것도 아닌데 트럼프는 부동산 시행사업을 했던 사람이라 별의별 인간을 상대하며 협상하고 계약까지 따내는 과정 모두를 총괄했던 사람이다. 이 과정에서 파산도 당해보고 재기까지 하는 등 금수저임에도 인생풍파가 만만치않은데 이런 사람조차 대통령 자리가 만만치않았던것. 비슷하게 한국의 문재인 참여정부의 비서실장 시절 때의 격무로 인한 스트레스와 과로로 인해 치아를 9개나 발치하고 임플란트를 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문재인 특유의 쩝쩝거리는 듯한 발음이 생겼다. 게다가 문재인은 퇴임 후에 수염까지 길러 더욱 그 나이대로 보인다. [20] 특히 디트로이트 같은 곳은 겨우 25% 정도로 한 반에 중퇴자가 4분의 3이나 된다. [21] 참고로 바로 전임의 전임 또한 동갑인데다 또 한번 재밌게도 아들 부시 & 트럼프 한쌍과 함께 그 생일조차 각각 1달씩이나 차이난다. 오바마 본인은 바로 존 F. 케네디의 집권 시기 출생자이다. [22] 참고로, 더 락 오바마를 연기한 사람은 이름에서 알다시피, 프로레슬러 더 락으로 유명한 배우 드웨인 존슨. 그리고 그 드웨인 존슨도 2017년 현재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비판이 만만치 않자 트럼프가 탄핵당할 것 또는 재선에 실패할 것을 대비해서 대통령으로 밀어주자는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다. [23] 대통령 후보 시절 흡연하는 사진이 여러차례 찍힌 적이 있다. [24] 원래 금연한 흡연자들도 일시적으로 담배에 손을 대는 경우가 종종 있다. [25] 물론 오바마는 일본에 딱히 적대적인 모습을 보인 적은 없는데다가 일본이 막 국가적 재난 상황을 겪은 만큼 공식적인 석상에서 일본을 조롱하는 무리수를 둘 이유가 전혀 없다. 영어에서 일본인은 재패니스 피플로 재에 강세가 오지만, 일본은 저팬하고 뒤에 강세가 오는 차이 때문에 "잽" 부분에서 끊은게 공교롭게 멸칭인 Jap과 똑같은 발음이 되어버린 것. [26] 참고로 오바마의 정치적 기반인 일리노이 주에서는 원자력으로 전력의 절반 이상을 생산하며, 이웃 주에 수출도 약간 한다. [27] 백악관 출입기자들을 위한 행사로 게스트들과 대통령이 유머섞인 연설을 펼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28] 오바마는 웃으면서 이 개그를 하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아래의 넵튠 스피어 작전을 실행하러 갔다. 더욱 무서운 사실은 오사마 빈 라덴의 위치를 가지고도 사이코패스마냥 농담을 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오바마가 트럼프를 비웃는 짤방이 양산되고 당시 공화당 경선주자였던 트럼프의 지지율은 급감했다. 그리고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오바마는 유쾌한 분위기에서 재치있는 단어 선택으로 트럼프를 조롱하였다. 모든 사람이 다들 빵 터진 가운데 트럼프 혼자 표정이 일그러지는 모습이 카메라에 찍혔다. [29] 게다가 이때를 기점으로 트럼프는 민주당의 완벽한 정적이 되어버렸다. [30] 다코타 패닝(1994~)의 여동생인 엘 패닝(1998~)과 동갑내기에 엘 패닝 역시 말리아 오바마만큼 무지막지한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엄청난 장신(175cm)이다. [31] 우리나라와 미국 모두 2012년에 대선을 치렀고 그 선거에서 각각 오바마(재선 성공), 박근혜가 당선되었기 때문에, 오바마 첫번째 임기는 이명박이, 2번째 임기는 박근혜가 파트너였다. [32] 사진 왼쪽에 있는 중령 계급의 대대장은 현재 국방부 정책기획관이 된 육사 50기 출신 윤봉희 장군이다. [33] 미국 대통령이 방한해서 한국 기자들이 질문할 수 있는 기회가,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것도 아니다. [34] 북한은 백두혈통주의가 강력하게 자리잡은 집단으로 인종차별을 밥먹듯이 한다. [35] 당시 한 말은 "제가 캠프 데이비드에서 사격하고 있는 사진을 가지고 포샵 한 거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여기서 고백하는데, 그들의 말이 맞았습니다. 사실 실제 사진은 이거였죠.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36] 6호 전차 티거의 방호력이 강철 수직장갑 10cm였다. 꾸준히 향상된 복합장갑의 성능을 예상하면 아무리 못해도 M60 패튼의 전면장갑 수준이다. [37] https://www.yna.co.kr/view/AKR20160903052400009 [38] 만약 트럼프가 임기를 다 마치지 못한다면, 이 기록이 J. D. 밴스(1984년생)에게 넘어가는 것이다. 참고로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바이든이 2024년 11월 기준 2달 남짓한 임기를 못마치면 카멀라 해리스(1964년생)에게 넘어간다. [39] 사실상 하와이로 쫓겨난 것이다. 이후 1965년 죽을 때까지 하와이에서 지내다가 죽어서야 고국 땅으로 돌아간 셈이다. [40] 물론 카터가 생존하더라도 빌 클린턴이나 조지 W. 부시 등 다른 전직 대통령이 그 전에 서거하면 여전히 유효하게 된다. [41] 다만 김대중의 경우 본인이 재선에 나선 게 아니라 여당 후보 노무현이 당선된 것이었다. [42] 당시 오바마는 25살, 그녀는 23살이었다. [43] 흑인 최초 대통령과 퍼스트 레이디라는 로맨스의 완성을 위해 정치적인 목적이 있었다는 얘기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오바마 부부는 금슬이 좋은 건 사실이다. 심지어 오바마와 크레이그(미셸의 오빠)는 평생 친구이기까지 하다. [44] 오바마를 사면(amnesty)라는 단어와 섞어서 말한 것으로 보인다. [45] 연설 내용은 당시 텍사스 상원의원 중간선거에서 테드 크루즈의 지지를 호소하며 민주당 후보 베토 오로크를 까는 내용이었다. 오로크가 오바마의 범죄자 사면안에 찬성표를 던졌다며 비판하는 논조였다. [46] 대선 후보 경선에서 승리한 주를 나열하는 내용이었고, ' 미네소타'의 앞부분을 잘라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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