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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0 13:31:11

민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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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와 현재
2.1. 미국의 민병대
2.1.1. 조직화된 민병대2.1.2. 비 조직화된 민병대
2.2. 한국의 민병대
3. 문제점
3.1. 미국에서
4. 정치적, 외교적 포장5. 국제법상 민병대의 지위6. 목록
6.1. 아시아6.2. 유럽6.3. 아메리카6.4. 한국사 속의 민병대
7. 각종 매체8. 같이보기

1. 개요

파일:attachment/reconone.jpg 파일:floridasmilitia.jpg
미주리주 민병대 플로리다주 민병대
파일:attachment/23lasker-600.jpg 파일:NewRussiaMilitia.jpg
파키스탄 지방 부족 민병대.
탈레반과 싸우며 파키스탄 정부군에게서 지원을 받고 있다.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국방장관 직할 제1슬라뱐스크여단[1]
/ Militia

민간인 병사, 즉 민병(민군)들로 이루어진 군대이다.

2. 역사와 현재

민병대의 역사는 굉장히 오래되었다. 민병대라는 개념 자체가 전문적인 무장력의 존재를 상정하는 개념이므로, 전사귀족이나 전업 군인이 탄생하기 이전까지는 모든 전투원이 곧 민병이고 군대 자체가 민병대와 같았다. 또한, 군사적 사회계급이 출현한 이후로도 유사시 민간인이 바로 징집 혹은 자원 형식으로 싸움에 가담하기도 하였으므로 군인과 민간인의 구분이 모호하던 시절이 이어졌다.

이러한 상황은 관료제 상비군 제도가 발달하고 교전권이 확립되면서 군민 간 분리가 확립되었고, 국방의 중핵은 점점 민병대에서 상비 정규군으로 대체되어 갔다. 하지만 민병대 자체는 꾸준히 존속해왔으며 그 중 체계가 갖춰진 몇몇은 정부조직화 되기도 했다. 몇몇 사례는 아예 국가 차원에서 조직하여 운영하기도 했는데, 대표적으로 국민위병 주방위군, 대영제국 민병대가 국립 민병대로서 탄생한 조직이며, 조선의 의병 또한 관군과 구분되기보다는 예비군 성격을 겸하였다.

민병대는 일반적으로 조직력과 지휘력, 무장 수준 등이 떨어져서 전투력에 한계가 있으나, 상황에 따라서는 민병대라도 정규군에 대등하게 맞서거나 오히려 격파하기도 하였다. 미국 독립 전쟁 당시 렉싱턴 전투부터 벙커힐 전투까지 영국군 정규군을 무찌르고, 이후 전투에서 영국군을 보스턴으로 몰아내며 거의 궤멸시켰던 미니트맨, 프랑스 혁명전쟁 당시 나폴레옹이 원정에 나가 있을 때 8만의 민병대 병력이 네덜란드에 상륙한 영국군을 박살낸 사건은 유명하다.

게릴라 단체 목록 빨치산 문서도 참고하면 좋다.

2.1. 미국의 민병대

A well regulated Militia, being necessary to the security of a free State, the right of the people to keep and bear Arms, shall not be infringed.

"잘 규율된 민병대(militia)는 자유로운 주(State)의 안보에 필수적이므로,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인민의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
미합중국 수정헌법 2조

1903년 제정된 민병대 법에 의하면 미국의 민병대는 다음과 같이 분류된다.

2.1.1. 조직화된 민병대

1903년 민병대 법에 의하면 미국의 조직화된 민병대는 다음과 같다.[2]

여기에 더해 1916년 국방법에 의해 각 주가 주방위군 이외의 민병대를 보유하는 것이 허가되며 주방위대가 조직화된 민병대에 포함된다.

이러한 법령에 따라 조직화된 민병대는 아직 주방위대가 설치되지 않은 주에서 새로 주방위대를 조직하지 않는한 민병대가 신설되는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예를 들어 그린란드가 미국의 영토로 편입될 경우, ‘그린란드 주 방위군’을 조직하는 것이 가능하다. 여기에 더해 그린란드가 미국의 51번째 주로 승격될 경우, 주방위대를 설치할 수 있으며, 연방 예산안이 통과될 경우 산하에 해군 민병대를 보유할 수 있다.[4] 하와이 또한 하와이 해군 민병대를 조직하고 있다. 그러나 그린란드 민병대가 정부의 허가를 받아 이미 조직되었음에도 특별한 사유 없이 무단으로 민병대를 추가 설립하는 것은 불법이다.

이러한 조직화된 민병대는 연방 혹은 주정부의 통제 하에 있는 준군사조직이며 동시에 예비군 자원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민병대와 미니트맨의 전통을 계승했을 뿐, 근무도 치안유지와 국경감시(국경지대 민병대 한정) 유사시 투입을 위한 훈련, 재난구조 말고는 특별한게 없다.

이마저도 평상시엔 주와 연방 소속의 경찰, 대테러부대, 해안경비대, 소방대가 도맡아 하고 있어 테러, 재난, 대규모 폭동 상황이 닥치거나, 해당조직이 연방화되지 않는 이상 이들이 실전에 투입될 일은 거의 없다.[5]

2.1.2. 비 조직화된 민병대

미국은 치안이 나쁜 서부를 중심으로 전투조직을 구성하는 경우가 많았고, 민병대 소집법 등의 법안도 있다. 남북 전쟁에 이르기까지 지역에 기반을 둔 민병대가 자주 나타났다. 남북전쟁 이후에는 이 민병대 조직이 그대로 조직화되어 상술된 조직화된 민병대의 모태가 되었다.

헌데 조직화된 민병대와 그 지역에 원래 있던 민병대[6]를 놔두고 멋대로 새로운 민병대를 조직하는 정신나간 놈들이 간간히 있다. 이들은 연방 정부 및 주 정부와도 대립하려 드는 집단이라 미국에서는 공식적인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있다. 남북 전쟁 이후로 이어지는 미국 연방정부 에 대한 반감과 증오가 가장 크게 터진 사건이 오클라호마 폭탄 테러다. 그런 놈들이 모여서 군사조직을 만든다고 하면 당연히 감시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미국은 역사적으로 강한 중앙정부( 영국)의 압제에서 벗어나려는 목적으로 세워진 나라였고 주의 자주성과 연방 정부간의 크고 작은 갈등이 여러 상황으로 지속되었다.( 미국 독립 전쟁) 또한 남북 전쟁도 미국 남부의 시각에서는 사우스 캐롤라이나 등 남부 주들이 자신들의 노예제를 지키려다 갑자기 연방에서 의용병 징집하고 전쟁으로 몰고 간 사건이다. 그런데 이런 주장은 미국 헌법에 완벽하게 합치된다. 수정헌법 2조에 "규율 있는 민병들은 자유로운 주의 안보에 필요하므로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국민의 권리를 침해할 수 없다"라고 되어있으니.[7] 그래서 미국은 민병대 그 자체를 제재하지 않는 대신 민병대를 조직할 사유를 불법으로 만들어, 아메리카 연합국처럼 연방 탈퇴를 하거나 존 브라운처럼 연방 정부의 무기고를 털려고 하는 등 국가체계에 무력적인 반항을 하면 잡혀간다.

미국 민주당 성향 리버럴들의 눈에는 "범죄기록이나 인종차별 사상 때문에 군대에서 거절당한 놈들이 존경은 받고 싶어서 총 들고 군대놀이하는 것"쯤으로 보인다고 한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한 이후 흑인 대통령에 대한 반감, 경제난, 종교 원리주의의 득세 때문에 이런 민병대들이 더욱 난립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 시기 민병대 조직은 100개 정도 있던 게 500개로 폭증했다고 한다. 무장 수준이 높은데다가, 군 복무, 경찰 복무 경력이 있는 사람들도 많고 자기들끼리 모여 꽤나 수준 높은 훈련[8]도 하기 때문에 우습게 볼 문제는 아니다. 폭발물과 중화기를 불법적으로 제작-입수해 숨겨두기도 한다.

남북 전쟁 같은 경우엔 민병대에 대한 제대로된 통제와 조직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여러 주가 연합하여 헌법적 민병대 라는 명목 하에 지역 주민들을 동원하여 대규모 군벌을 조직하고 반란을 일으킨 사례 이기 때문에 이후 미국에서는 비조직화된 민병대 관련해서 굉장히 엄격하고 민감하게 다룬다.[9]

2000년대 중반 허리케인 카트리나 때문에 시각이 달라졌다. 카트리나가 창궐했을 때 연방정부의 대처는 무력했고, 민병대, 자경단 등 주민들의 자구적인 조치가 더 효과적이었다. 또한 이후 2020년대 조지 플로이드 사망 항의 시위에서 일부 지역에서는 폭동이 일어나자, 미국 소셜 미디어에서도 LA 폭동에서 정부 대신 귄리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루프탑 코리안들이 유명해지며, 지역 민병대의 조직이 더더욱 활성화되고 있다.

2.2. 한국의 민병대

현대 이전에 그 예를 찾아보자면 임진왜란을 비롯해 외적들이 침공할 때마다 그에 대항하여 향촌 유림들과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했던 의병, 동학농민혁명 당시의 농민군, 일제강점기 당시 국내와 만주에서 활동했던 많은 독립군 조직들이 민병대라고 할 수 있다.

광복 직후 미군정이 시작되자, 국내에는 차후 정규군이 되려고 창설된 여러 무장 단체가 있었는데, 이들은 미군정에게 인정되지 않아 전부 해체되었다. 유일한 예외라면 현 해군의 전신인 해방병단 정도였다. 당시엔 한반도가 미군정 통제 하에 있었기 때문에 해방병단도 미군정 산하에서 일종의 해상 민병대처럼 활동했다.

1948년부터는 국내 곳곳에 여러 개의 청년단이 설립되었고, 이들은 자체적으로 무장해 6.25 전쟁 전까지 민병대로 활동했다. 이들은 전쟁이 발발하자 국군에 흡수되며 자연스레 없어졌다.

6.25 전쟁 당시 북한군의 남하로 인해 한국은 급히 병력을 모아야 했고, 그렇게 학도의용군(학도병)을 조직했다. 이들은 육군의 지휘를 받았지만, 독립적으로 편성되어 민병대로 기능하는 부대도 있었다. 그 외에 북한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활동하는 유격대도 있었다. 북한은 점령한 한국 영토의 민간인들을 징병해 인민의용군을 조직했다. 휴전 이후 이들은 모두 해산하였고, 휴전 이후 총기에 대한 엄격한 규제로 인해 한국에선 민병대의 조직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나마 최근의 예로 5.18 민주화운동 당시의 시민군을 들 수도 있겠다.

현재 대한민국은 20 ~ 30대 남성 80% 이상이 현역이거나 예비군[10]이기 때문에 전쟁이 발발하면 상비사단을 가든 동원사단을 가든 지방사단을 가든 상관없이 전부 정규군으로 소속된다. 예비역 포함 200만 이상의 병력을 보유했으므로 민병대를 보유할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예비군 전체에게 지급할 군복[11]과 장비, 장구류들이 부족한 실정이다.[12] 그리고 정부가 가뜩이나 좁은 전장에 서로 다른 체계를 가지는 민병대를 난립하게 놔두는 것 역시 허용할 리가 없으므로, 민병대가 전시에 허용된다면 그것은 한국이 기습적으로 붕괴하거나 패망 직전에 몰렸을 때일 것이다. 오히려 병력이 부족하면 민병대를 허용하는것보다 모병을 하고 정규군 소속으로 배치하는게 효율적이다.

반면 북한은 당군인 조선인민군 외에도 사회의 모든 조직을 언제든지 전쟁이 가능한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즉, 이들은 민병대라고 할 수 있다.

3. 문제점

I could never have believed that so great a difference existed between regular troops and a militia force, if I had not witnessed the scenes of this day.
내가 이날 이 광경의 목격자가 아니었다면 정규군과 민병대 간에 이렇게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걸 절대 믿지 못했을 것이다.
미국 4대 대통령 제임스 매디슨. 미영전쟁 당시 블래든스버그 전투의 패배를 보고 나서 한 말.[13]

민병대는 대체로 정규군을 보조하며 나름대로의 병력공급처가 되었으나 그 본질상 단점이 매우 많다. 비공인된 민병대가 표면적으로 나서는 경우는 현대에도 흔하며, 그나마 명령체계가 잡혀있고 책임소재가 분명한 군대와 달리, 체계도 없고 책임소재도 불분명한 민병대는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흔하다.

후투족과 투치족 민병대가 서로서로 상대방 민족을 청소하느라 열을 올린 르완다 내전이 대표적. 중국 문화대혁명 동안 홍위병들의 발호로 수많은 피해를 보았다. 6.25 전쟁 당시 남북에서 활동한 수많은 자경단들도 남북한 시민들을 상대로 수많은 학살극을 자행했다.(대표적인 예로 신천군 사건) 유고슬라비아 내전 당시 세르비아 민병대는 세르비아 마피아 출신들도 많았고 기강도 좋지 않아 무슬림 보슈냐크인 알바니아인, 심지어는 온건파 세르비아인까지 마구 학살한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브라질의 경우에는 더욱 더 가관으로써 이쪽은 아예 처음부터 돈을 벌려고 전현직 소방관, 경찰관 등의 공무원들(현직 공무원들의 경우 비번일 때 경찰 민병대로 투잡을 뛴다.)이 민병대를 겸업하는 경찰 민병대( Brazilian police militias)라는 조직이 있다. 유고슬라비아 내전에서도 민병대가 입에 담기 힘든 끔찍한 전쟁범죄를 저질렀지만 소속이 분명하지 않은 민병대원들이 많아 제대로 조사도 못하고 끝났다.

특히 군사적인 단점도 알고보면 꽤 많다. 일단 지역 방위에는 유용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을 벗어난 대범위 전략에는 효율성이 급감한다는 것이 제일 크다. 정보자산은커녕 기갑-포병-항공지원도 없고 일개 보병에 불과한 민병대가 군사적 효용성이 있을 때는 소집단에 의한 각개격파 상황이 전제될 때뿐이다. 취미 수준의 사격술은 연습했을지 모르지만 고차원적인 사격 전술은 구사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서 전략보다는 전술 영역에서의 운용에 더 적합하고 상황적 제약을 많이 받는다는 것이 특징. 애초에 징병이나 모병이 아닌 이상, 생계수단과 가족을 내팽개친 채 자기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이동할 사람이 없으므로 전략적인 운용이 불가능하다.

게다가 정규군과 달리 체계와 책임자가 없어 제대로 된 훈련과 지휘가 어려우므로 실제 전투력은 더 떨어진다. 개인의 전투력이야 어쨌든 군대는 집단이다. 하다못해 게임을 해도 5명을 급히 모아놓은 것과 5명을 팀으로 꾸린 것의 차이는 크다. 팀은 감독, 코치, 합숙훈련까지 따라붙고 의사소통과 역할분담도 수월하지만 개인은 서로를 잘 알지도 못한다. 연대감이 없고 숙련도가 낮으면 모랄빵도 상당히 빠르다. 민병대와 정규군의 차이 또한 마찬가지다. 연대감 문제도 연대감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훈련도가 제각각이라는 것이다. 군경출신이 많은 민병대는 금방 규율이 잡히고 훈련도 웬만큼은 됐을 공산이 크지만 취미로 사격이나 즐기고 군사 경험이 없는 진짜 일반인들로 구성된 민병대는 군대로서의 조직력과 훈련도를 기대할 수 없다. 지휘관을 정하는 것부터 온갖잡음이 터지고, 지휘관이 사망할 경우 지휘권 승계도 제대로 안 되며, 개인적인 친분이나 연 따위로 모인 부대는 바로 구심점을 잃고 와해된다. 국민국가 이전, 국가와 국민군이 아닌 신분과 가문에 묶인 구시대 전사들과 다를 게 없다. 설령 진짜 군경출신들이 있더라도 동료들이 이 꼴이면 전투력 저하까지 발생하게 된다. 옆에 선 사람이 생 초짜라면 믿고 위치를 사수하고 버티기는 어려우니까.

보급도 큰 문제다. 물주와 전달책(보급부대)이 없으므로, 민병대원의 재산과 보유물자가 곧 보급의 전부가 된다. 즉, 총알 하나하나가 전부 민병대원의 개인 재산이다. 이는 민병대가 빠르게 와해되는 원인 중 하나기도 한데, 누구든 자기 재산이 날아가는 건 달갑지 않기 때문에 전황이 조금만 불리해도 전장을 이탈해버린다. 이런 이유와 법적 규제 등으로 고화력(고비용) 무기를 가진 경우가 드물다. 여기저기서 폭탄이 터지는 분쟁지역의 민병대라 해도 박격포나 중기관총 정도가 고작이며 이것도 없어 쩔쩔맨다. 아프간의 친미파 마을 민병대가 탈레반이 버리고 간 DShK 중기관총을 주워다 수리하려고 낑낑거리고, 미군에게 자기들한테도 고화력 무기를 달라고 요구하는 사진이 월간 플래툰에 실리기도 했다. 물론 지역과 민병대에 따라서는 대전차미사일이나 전차 등을 어찌 입수해 굴리는 경우도 있지만 그 수량과 위력은 볼품없는 것이 보통이다. 이런 중장비를 문제 없이 갖추고, 그것을 다룰 숙련된 병력까지 보유했으며, 그들에게 보급할 물자를 준비할 수 있고, 또 이 모든 것이 제대로 굴러갈 수 있도록 통제할 수 있는 조직과 규율이 있다면 그건 이미 민병대가 아니라 군벌이다.[14][15]

마지막으로 생업에 종사하거나 학업에 힘 써야 할 계층까지 총을 들고 전선으로 나가는 건 극단적인 상황이 아닌 이상 국가적 손실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결정타.[16]

단지 현대 미국의 민병대 조직에서 보듯이 사실 자연재해 상황에서의 구호활동 및 치안유지 역할을 생각해 보면 아주 쓸모가 없지는 않다. 허나 이 경우 대다수의 국제적 상황의 민병대가 가지는 이미지와는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서 적당한 예시가 되진 않는 셈이다. 사실은 여러 민병대의 성향중에서도 일종의 의용군개념에 더 가까운 조직이 바로 미국 민병대이기도 하고, 결정적으로 그러한 상황에서 투입되는 미국의 민병대는 조직화 된 민병대인 주방위군이나 주방위대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17]

3.1. 미국에서

2010년대 이후의 현재의 민병대의 목적은 크게 두가지인데, 첫번째는 어차피 정부가 책임 못 질 거면 우리가 알아서 우리 자신을 지키겠다는 개념의 발로이다. 즉 일종의 프레퍼와 비슷한 자경 조직인데, 특히나 태풍 시즌 등을 대비해서 훈련을 진행하는 등 지역치안 유지를 자체적으로 하겠다는 움직임으로 볼수 있고, 멕시코 국경지역을 순찰하는 민병대 조직등의 경우는 나름 타당성이 있다. 마약 카르텔에서 넘어와서 마약을 밀수한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다른 민병대 중에 이런 경우는 또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에 벌어진 상황을 보고 원전 근처의 재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활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자경조직을 근간으로 하는 경우도 꽤 있어서 뭐라고 하고 손을 대지 못한다.

따라서 리버테리안들과 보수주의자들은 민병대 활동에 대체로 긍정적이다. 이들은 민병대라고 해 봐야 그것이 무장을 통해 자신을 보호할 권리를 얻은 개인들이 소속 커뮤니티를 보호하기 위해 자경활동을 하는 것이고 그것이 압도적으로 부족한 경찰의 치안인력을 충당해 준다면 유사시 사회안전에 효율적이라고 주장하는데, 애리조나 주의 멕시코 국경 지역 순찰을 시행하는 그룹을 제외하자면 대부분이 유사시 상황대비 훈련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이다. 오바마 정부 이후에 늘어난 민병대들은 프레퍼(생존주의) 집단의 생격을 띄고 있다. 한국에서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문제에 대한 대정부 신뢰도가 급락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아마 이해가 쉬울 것이다.

단지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이 있어서 언급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인종주의
    민병대 활동의 가장 골치아픈 영역이기도 하고 미국의 사회문제이기도 하다. 더욱이 현대 미국의 인종문제는 인종차별과 역인종차별, 실제 인종집단간의 문제가 심화되어 있어서 더더욱 문제가 복잡하다.
    2014년 퍼거슨 폭동에서는 Oath Keepers라는 총기권리 옹호 단체가 일종의 무장 경비 활동을 무상으로 제공한 적이 있었는데, 이 활동을 두고 불거진 논란이 민병대의 인종주의 논쟁에 대해 과거와 다른 시각을 마련했다는 점이 주목할만 하다. 과거의 민병대는 흑인차별적 관점을 가진 백인들의 전유물이었지만, 일단 그 그룹에서 방어한 곳이 백인 상권만이 아니었을 뿐더러 이번에도 여지없이 흑인들이 상점을 습격했기 때문에 생긴 부정적 정서의 대비가 문제였다. 게다가 민병대 성격이 점점 프레퍼 집단과 유사한 공통점을 가지면서 인종 장벽이 얇아진 것도 문제의 한 이유로 지적되고 있으며, Black Lives Matter 운동이 시작되면서 과격주의 흑인단체들도 활동을 같이 했기 때문에 인종주의 문제로 이들 활동을 비판할 근거가 없어졌다. 흑인단체도 똑같이 총차고 흑인들을 보호하겠다고 나서는데 백인이라는 이유로 총들고 상점을 보호해 주면 인종주의자가 될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2020년 위스콘신의 자경단원에 의한 총격 사건을 봐도 흑인 피해는 없이 BLM 운동중에 주유소를 방화하려고한 백인 극좌 폭도들과 이를 지키려는 민병대의 충돌로 인해 일어난 만큼 초점이 인종주의라기 보다는 점차 극우/극좌간의 대립으로 옮겨가는 듯해보인다.
  2. 무장시민(Armed Citizen) 운동의 대두
    샌디 훅 초등학교 총기난사 사건 이후, 미국에서는 총기 규제 반대로 보수/리버테리안이 결집하고 있다. 오바마 정부 등이 주장하고 있는 총기안전 대책, 특히나 Gun Free Zone의 실효성 논쟁이 대비되면서 격발된 오픈캐리 시위 등에 맞물려서 리버테리안 운동이 민병대화 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의 핵심이기도 하다. 이들은 LA 폭동 당시 한국인들의 대응을 모범사례로 꼽고 있다. LA 폭동 당시 현지의 한국인 사회는 전부터 있던 흑인과의 해묵은 갈등 및 여러 문제로 많은 피해를 입었는데, 이 때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가게를 지키기 위해 역효과를 각오하고[18] 직접 산탄총 등의 총기를 가지고 나와 흑인들의 폭력에 대응했고 그 결과 추가적인 피해를 막을 수 있었으며, 또 한편으로는 여러 이유로 한인들의 대응이 늦어 이미 폭동으로 큰 피해를 당했으니 이런 식으로 소잃고 외양간 고쳐서는 안된다는 비판이다.
    이 비판이 다시 고개를 든 이유는 퍼거슨 사태 때문인데, 경찰들이 중무장을 하고도 외곽에서 진치고 가게들이 불타고 털릴 동안 아무 것도 안 했기 때문에 생기는 일종의 빈축이다. 그러려면 뭐하러 방탄복 싸입고 전쟁 나가는 것처럼 하고 다녔느냐는 것이다. 따라서 민병대 활동은 이 무장시민 운동과 상당한 연계성이 있기도 하다. 단지 무장시민 운동은 개인의 무기소지 권리에 대한 선을 명확하게 긋자는 것이고, 민병대는 조직적으로 활동하는 것에 대한 문제를 의미하기 때문에 연계성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3. 프레퍼 운동의 현실성
    2000년대 이후에 유난히 프레퍼 운동이 활성화되면서 민병대를 자처하는 조직들도 이 성향을 토대로 새로 조직되기도 했다. 미국은 날씨가 험하다. 토네이도나 허리케인 등의 대형 자연재해가 많으며 화학 플랜트나 원전 근처에 살면 불안한 건 누구나 마찬가지이다. 특히나 카트리나와 각종 토네이도,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이어지는 사태는 이들의 불안감을 자극하기 딱 좋았고, 때문에 일종의 프레퍼 그룹들이 민병대로도 활동하기 시작했다. 프레퍼와 다른 점이라면 민병대는 사실 이런 상황에서 혼란방지를 하고 인명 구조를 하겠다고 주장하고 있고 프레퍼들은 자기들이 생존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을 그냥 무시하고 통제할 수 없는 이유는, 화산 폭발이나 지진에 대비하는 프레퍼, 그리고 그 개념에서 존재하는 지역 민병대를 자처하는 조직은 재난 대비에 대해 긍정적인 순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4. 연방 정부의 재난통제에 대한 불신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남긴 후폭풍이 상당히 컸다. 카트리나 사태 당시에 일부 지역에서 경찰들이 시민들의 총기를 압수한 전적이 있었고 때문에 자기 방어력이 없어진 시민들이 무력하게 약탈자들에게 털렸음이 밝혀져 경찰 불신 문제가 커졌다.
    또한 카트리나 당시에 뉴올리언즈에서 치안활동을 했던 회사가 바로 그 유명한 민간군사기업 블랙워터였다. 이 회사의 활동에는 논란이 많은데 바로 그 연장선에 이 민병대 구성의 주장이 있기도 하다. 당시에 아직 경찰이 압수하지 않은 화기를 보유한 타운에서 자경활동을 벌여서 약탈자들을 격퇴했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는 재난 상황에서의 자력 구제를 위한 민병대에 비교적 긍정적이다. 그만큼 연방정부의 재난통제력이 신뢰성을 얻지 못하고 있다.
    민병대들도 사실 바보는 아니기 때문에 반연방주의 성향이 심하지만 않다면 일종의 즉각대응 태세를 갖춰서 주방위군과 경찰이 치안을 회복할때까지 민병대의 관리에 동의한 사람들을 보호한다는 개념에 입각해 있고, 실제로 활동 범위도 넓은데다가 구호물자도 갖춰 놓은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일방적으로 까기도 어렵다. 특히나 된통 당해본 지역들의 주민들은 이들을 상당히 긍정적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커뮤니티의 연대 없이 혼자서 생존준비를 하는 건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재난 통제는 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국토안보부가 총괄 기관이다 보니 오바마 정부에 들어서도 신뢰도가 거의 없는 편이다. 애국법 문제 때문에 생긴 원한이 아직도 있다.
    반대로 트럼프 정부의 경우, 총기 규제를 지양하는 태도를 보이는 등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만큼 민병대의 활동을 오히려 장려하는 성향이 있어서 오히려 트럼프 정부를 적극 지지하는 민병대가 많아졌다.
  5. 질의 상승
    미국의 2010년대 이후 신설 민병대는 과거보다도 훨씬 양질의 조직력과 활동성을 보이는데, 과거와는 다른 군경 출신들의 합류 때문이다. 특히나 이라크 아프간전 당시에 부상 등으로 인해 명예제대한 베테랑[19]들이 참가한 민병대들은 수준이 상당하다. 이들은 전직 군경이라서 군대와 경찰의 조직과 활동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기 때문에, 주방위군이나 경찰이 관여하기 어려운 영역을 충분히 고려해서 활동 영역을 설정해 성과를 거두어 긍정적인 인식이 커지고 있다. 대부분의 은퇴군경들은 미국 각지에 널려 있는 사설 훈련기관이나 민간군사 회사등에서 일을 할수도 있는데도 민병대 활동을 한다는 건 수준이 떨어져서 그런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는데, 이런 동네에는 나름 명망있는 SEAL이라든지 SOCOM예하 부대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1순위이고, 민병대는 자원봉사나 매한가지이기 때문에 단순비교를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볼수 있을 듯.

따라서 해당 주정부와 보안관서의 인식과 관계에 따라서 민병대와의 협력관계도 각각 다르다고 한다. 은퇴한 군인이나 경찰 출신들이 꽤 있다 보니까 생각보다 지역 연대성이 좋은 경우도 있다고 하며, 합동연습까지는 안 하더라도 민병대의 자체연습 자체를 막거나 제한하지는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해당지역 보안관서가 리버럴 성향이거나 혹은 주지사나 시장 등이 리버럴일 경우 민병대와의 관계는 틀어진다. 2020년 특히 이런 문제가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는데 연초에는 버지니아주의 총기 규제 법안 추진에 반발해 2만명이 넘는 많은 민병대들과 총기 옹호론자들이 중무장을 하고 시위를 하기도 했고, #10월에는 미시간주의 한 민병대 집단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대유행으로 인한 주정부의 봉쇄령에 반감을 품고 민주당 소속의 주지사 납치와 주정부를 전복시킬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는게 밝혀져 논란이 되었다. #

4. 정치적, 외교적 포장

한 국가가 공식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피하고 싶지만 전쟁의 한 쪽을 지원하기 위해 자국군을 민병대 비스무리한 조직으로 위장해 참전시키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한국 전쟁 당시 중국 인민지원군은 민병대라는 이름으로 한반도에 진군하여 조선인민군을 도왔다. 당시 중국의 공식적인 입장은 "중공 인민들이 '형제 사회주의 세력' 북한을 돕고자 하는 마음에 자발적으로 조직한 지원군"이였다. 하지만 1953년 7월 27일에 체결된 정전협정에는 조선인민군과 함께 중국인민지원군이 체결당사자의 지위를 가졌다.

의용군이라고도 하는데, 보통은 소수의 전력으로 전황에 영향을 끼쳐야 하니 강력한 정예병인 것이 일반적이었다. 대외적으로는 '민간인들[20]이 자발적으로 정의를 위해 전쟁에 참여한 거라 어쩔 수 없네...' 라면서, 이기면 슬그머니 끼어들어 지분을 주장하고 져도 손털고 말겠다는 의미. 상대편 쪽에서도 이런 짓을 할만한 강대국에게 '척 봐도 너네 군대인데 뭔소리냐' 했다가 그 강대국이 전면적으로 끼어드는 것보다는 의용군 부대만 어떻게 처리하는 편이 나으므로 '아 그렇군요 전부 쏴죽여도 되는 거지요?' 하고 그냥 싸웠다. 반대로 다른 강대국에서도 질까보냐 하고 의용군을 보내고...

21세기에 와서도 러시아나 이란 같은 나라들이 자국 정규군의 병력을 이름만 의용군으로 내걸고 주변국 분쟁에 파병하는 경우가 점점 늘면서 내전 당사국의 정규군보다 더 질좋게 무장된 민병대들이 활개치는 경우가 늘어버렸다. 이때문에 시리아 내전은 수니파 국가와 시아파 국가들 간의 대리전처럼 되어버리고 말았다.

자국이나 점령지에서 징집한 민간인들을 의용병이라는 미명 하에 전쟁터로 내모는 경우도 있다. 6.25 전쟁 당시 인민군이 운용했던 인민의용군이 대표적이다. 인민의용군은 남한 청년들로 구성되었는데, 낙동강 전선 당시에 이르렀을 때는 공세에 참가한 인민군의 대다수가 이들이었다. 인민의용군은 이후 흩어져 집으로 돌아가거나 붙잡혀 반공포로가 되었는데,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등장인물 '용석'이 이 사례에 해당한다. 공산포로들은 반공포로들까지 일괄적으로 북송시키려고 발악했지만 그저 끌려왔던 반공포로들은 이에 강렬히 저항했고, 포로수용소 내에서 극한의 대립을 빚었다.

5. 국제법상 민병대의 지위

군사적인 지위와 대우를 규정하는 국제법 규정인 제네바 협약에서는 민병대가 정규군과 같은 교전자격 요건을 갖춘다면 ' 교전권'을 보장하고 포로 대우 등 정규군과 같은 지위를 보장받는다. 여기서 말하는 교전자격 요건이란 다음과 같다. 자세한 내용은 교전권 문서에 있다.
1. 그 부하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자에 의하여 지휘될 것.
2. 멀리서 식별할 수 있는 고착된 표지를 할 것.
3. 공공연하게 무기를 휴대할 것.
4. 전쟁에 관한 법규 및 관행에 따라 그들의 작전을 행할 것.

이런 요건을 갖추지 않을 경우 국제법상 합법적 교전자가 아닌 무장 테러리스트로 간주되어, 전쟁 포로로서 국제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민간 범죄자로서 처벌된다.

6. 목록

6.1. 아시아

6.2. 유럽

6.3. 아메리카

6.4. 한국사 속의 민병대

7. 각종 매체

하츠 오브 아이언 시리즈, 토탈 워 시리즈와 같은 여러 대전략 게임에서는 민병대를 생산할 수도 있다. 보통 가격이 저렴하고 쪽수가 많지만 전투력과 사기가 바닥을 기어서 전투에 동원하기는 어렵게 나오는 경우가 많다. 하츠 오브 아이언의 중화민국처럼 인구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팩션이 아니라면 후방 치안 유지용으로 값싸게 뽑는 것이 보통.[24]

8. 같이보기



[1] 당시 국방장관은 이고르 스트렐코프. 아직 도네츠크 인민공화국이 제대로 나라 꼴을 갖추기 이전의 시기이다. [2] 공군은 존재하지 않는다. [3] 차후 주방위대 조직 산하의 미 예비군 소속 인원으로 구성된 이중적 조직이 된다. [4] 해군 민병대의 인적구성은 미 예비군이기에 연방정부 예산이 편성되어야 한다. [5] 다만, 자연재해가 발생한 경우 대비 훈련이 잘 되어있는 조직은 초동조치와 치안유지 면에서 효율적이다. 특히 주 행정구역 전체가 영향을 입을정도로 대형재난이 발생할 경우에는 경찰과 소방서의 지원이 원활하지 않아 주지사가 긴급투입할 수 있는 공권력인 이들의 존재가 큰 도움이 된다. [6] 삽질과 협상과 조직화의 역사를 거쳐 체계가 갖춰진 친정부(Pro-government) 민병대. 이런 민병대 조직은 자기네 홈페이지에 인종차별을 저지르거나 연방정부를 적대하는 행동(Anti-government)을 거부한다고 명시한다. 물론, 법규를 회피하기 위해 홈페이지와 간판만 그렇게 만들고 실제 행동은 딴판인 또라이들도 많다. [7] 이 조항은 미국에서 총기 규제 반대 측에서 반대에 대한 근거로 사용하고 있다. [8] 민병대들의 훈련이 정규군보다 더 실전적이고 세련된 경우도 있다. [9] 당시 동원된 남부 아메리카 연합국의 남부 육군 수만 해도 내전 발발 초기에 10만으로 시작하여 1년 뒤에는 40만, 전쟁 말기에는 120만~200만으로 추산될 규모를 거느렸다. 이는 현대 미군의 상비군 135만 과 비슷한 규모이며, 내전초기에는 수도 워싱턴을 위협할 정도의 공세를 벌이기도 했다. [10] 민방위는 민간인들의 조직이기 때문에 민방위라는 조직 자체를 무장시키는 것은 불법이며, 여기서 차출한 남성들을 군인 신분으로 전환시켜 군 부대에 다시 배치하는 식으로 인력을 활용한다. [11] 예비군들 역시 전부 군 부대로 배속되기 때문에 현역들이 입는 디지털 전투복이 필요하다. 물론 상황이 급박하면 어쩔 수 없이 개인이 소지하고 있는 구형 통합복까지 허용할 수도 있다. [12] 부족한 것들은 전시 체제로 전환하면 금방 생산해낼 수는 있다지만 한국이 말려든 전쟁이 장기전이 된다는 보장 같은 건 아무데도 없다. [13] 이 전투에서 미군 7000명과 영국군 4500명이 맞붙었다. 미군은 1000여명의 정규군과 6000여명의 민병대로 구성된 반면, 영국군은 거의 전부 영국 본토에서 온 정규군(추가로 제2 서인도연대 소속 캐나다 식민지 해병 1개 중대가 있었다)으로 구성되었는데, 사상자 자체는 영국군이 약간 더 많았으나 민병대 위주로 구성된 미군은 철저하게 와해되어 도망쳤고 이 전투의 패배로 워싱턴 D.C. 백악관이 불타고 만다. [14] 대표적으로 조선의용대가 있다. 시작은 의용군(민병대)이었지만 장제스에게 사실상 정규군으로 인정되었다. 초기에는 후방 에서 선전 및 심문 등의 같은 소극적인 임무를 주로 맡았으나, 이후 화북 지역으로 이동해 대대급 병력을 이끌고 일본군을 상대로 수차례 교전한 전적이 있다. 제대로된 조직과 규율을 갖추어 군벌적 성향을 띄던 조선의용대의 구성원들은 제2차 세계 대전 국공내전이 끝나자 대부분이 조선인민군에 흡수되어 6.25 전쟁에서 남침의 주력을 맡게 된다. 민병대가 정규군으로 격상된 케이스. [15] 가장 최근의 예시로는 알 누스라 전선 이 있다. 비록 한때 알카에다라는 테러 조직에 충성을 맹세했다는 흑역사가 있지만 족보 자체는 보수주의 시민군 조직으로 출발했다. ( 이슬람 근본주의를 따르지만 일단은 정부군을 타도하던 집단이다. 알카에다에 협력한 이유도 정부군의 강경한 진압과 서방의 소극적인 지원이 그 원인이었다.) 알카에다와 결별한 뒤로는 중동의 많은 반군 중 실전경험이 많은 축에 속하는 명장과 병사들이 다수 유입 되었고 때문에 시리아를 비롯한 중동 일대의 반군들중 최정예 군벌로 거듭났다. 2017년 부터는 서방국가의 군수지원과 훈련을 받으면서 웬만한 중동의 정규군대들 보다도 훨씬 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것도 모자라 이란의 공수특전여단을 상대로 가볍게 승리 하기까지 했다. 이쯤 되면 여느 나라의 정규사단으로 흡수 되어도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다. [16] 아돌프 히틀러의 경우 소련이 베를린 까지 공세를 밀어붙여 오자 병역면제에 해당하는 민간인들까지 강제 징집해 무장시킨 국민돌격대 라는 집단을 만들었는데, 예비군이나 전투방위는 커녕 민병대 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의 무장을 갖추고 있었으며 조직력과 훈련도 또한 그냥 민간인 집단 일 뿐이었다. 히틀러의 이러한 극단적인 징집은 결국 민간인들만 더 희생시켰고 전쟁이 빨리 끝나는 바람에 그나마 피해가 최소화됐다. 오히려 이들의 가치는 독일의 항복으로 전쟁이 끝난 뒤에 전후복구와 산업발전에 투입되면서 발휘되었다. 스타크래프트로 비유를 하자면 커맨드센터를 수리할 scv까지 다 꼴아박았는데 병력은 병력대로 못 막고 커맨드센터를 수리하지도 못해서 끝내 커맨드 터지고 엘리당한 거나 마찬가지. [17] 미국식 민병대 전통이 없는 국가에서 구호활동을 목적으로 새로운 조직이 필요하다면 정부 입장에서는 문제를 일으킬 공산이 큰 민병대보다는 말 그대로 자연재해나 유사시 시민의 생명과 재산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의용소방대가 더 바람직할 수도 있겠다. 물론 이들 집단도 과거 미국이나 일본의 사례를 보면 조직화 여부가 매우 중요하다는 걸 알 수 있는데, 조직화가 잘 되어있지 않던 시절엔 관할구역 다툼 및 소방 수당 청구 등의 문제가 발생해왔었다. 물론 총기로 무장하고 근무하는걸 상정한 민병대에 비하면 무장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통제가 더 쉽기는 하다. [18] 캘리포니아나 LA는 미국에서 총기 규제가 강한 지역이다. 이런 동네에서 공격받았다고 총 집어들어 대응하면 오히려 교민 사회가 크게 지탄받을 수 있었다. [19] 낙하 훈련으로 다리가 부러져서 더 이상 정상적인 군사활동이 불가능해진 경우라거나, 혹은 IED로 완전히 죽을만큼은 아니지만 심한 부상을 입어서 재활이 오래 필요해서 군사활동이 불가능했던 사람들이라거나 등등등... [20] 어제까지 정규군이었지만 오늘 퇴역했으면 민간인이다. [21]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둘 다 이슬람 근본주의라는 이념을 공유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22] 그 이전에도 전쟁영웅 이자 정부군 최고 실력자로 불리는 수헤일 알 하산 대령의 타이거 부대를 격퇴한 전적이 있다. 즉, 예나 지금이나 이들은 조직력과 실전기량 면에서는 웬만한 서아시아 정예 사단들 과 맞먹는 수준이라는 얘기(!) [23] 사실상 준군사조직이었다. 소집시 8000명까지도 모였다는 기록이 있을정도. [24] 민병대를 뽑을 바에는 장비 우선도를 낮게 하고 보병 대대를 뽑자. [25] 고문 선택중 하나다. 부패가 약간 증가하는 대신 초기 반군 세력이 줄어든다. [26] 아주 싼 값으로 약간의 치안을 얻고 정책 시행이 빠르지만, 상당한 지지율 감소와 부패를 얻는다. 군벌은 이 정책을 강제로 구매당한 채 시작한다. [27] 범위 내 아군 공격력과 방어력 상승과 부상병 회복이라는 사기급 버프. 초창기에는 부상병을 80%나 회복시켰지만 이후 지속적으로 너프해 35%로 감소하고, 공방 상승률도 감소. 그럼에도 여전히 유용하다. [28] 1부에서는 악의 조직 소속 전투원으로서의 모습만 나왔지만, 주인공들과 같은 편이 된 2부부터는 일반 백성, 민간인의 모습이 많이 나온다. [29] 원문은 (Mariposa Lily Order/M.L.O) 남북전쟁때 남부연합군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극단성향의 극우 단체들로 이루어진 민병대 단체들이다. [30] 원문은 (People Liberation Party/P.L.P) 2000년대에 활동했던 민병대 단체들로 지금은 와해되었는지 현시점에서는 언급만 되고 있다. 중무장한 상태로 유도 미사일을 장착한 항공기를 훔치려고 했고 휴대가능한 핵무기를 무장한 상태로 시청을 습격 했다가 LSPD SWAT 팀에 의해 진압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