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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20 10:53:38

모에 토너먼트/8룡

모에 토너먼트 8룡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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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tablebordercolor=#000><tablealign=center><tablebgcolor=#000><tablewidth=100%> 모에 토너먼트 8룡 ||
샤나 나가토 유키 페이트 테스타로사 히이라기 카가미
사카가미 토모요 현랑 호로 카츠라 히나기쿠 아이사카 타이가



1. 개요

2010년 케이온!의 모토계 통일 이전까지, 초기 3대 메이저 모에 토너먼트[1] 및 기타 마이너 대회에서 강세를 보였던 8명의 캐릭터를 일컫는 말이다. 어원은 드래프트 세대 이후 스타크래프트에서 가장 잘 나갔던 프로토스 게이머들을 지칭했던 육룡.

이들이 활개치던 폭발기(2006-2009)는, 이후 패권기(2015-2018)와 함께 모토 역사 중 가장 변혁이 많았기 때문에 연관된 이야깃거리가 방대하며, 화제성 역시 투탑에 든다.[2] 그렇기에 8룡에 대한 내용 또한 문서가 이렇게 따로 분리되게 되었다.

2. 변천사

2005년 마법소녀 리리컬 나노하 로젠 메이든 두 애니메이션이 각각 타카마치 나노하 스이세이세키를 필두로 진영을 구축하여 모토계를 분할하면서 진영 싸움의 서막이 열리게 되었다. 두 작품은 사이모에 토너먼트 4강과 결승에서 맞붙었고, 타카마치 나노하가 승리를 차지하며 진영 대결의 첫 승자로 자리매김한다. 그러나 이듬해 이 구도에 변화가 오는데...

05년 말 작안의 샤나에 이어 2006년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하루히즘을 일으키며 화려하게 데뷔하고, 샤나, 스즈미야 하루히, 나가토 유키가 신흥 강호로 떠올랐다. 이에 따라 구진영(나노하, 로젠)과 신진영(하루히, 샤나)이 대응하는 구도가 자연스레 형성되었다. 하루히 시리즈의 경우, 아직 하루히와 유키의 세력이 경합 양상을 띠었으며, 이 해 중반을 넘어가며 나노하 시리즈의 대표 캐릭터가 타카마치 나노하에서 페이트 테스타로사로 넘어갔다. 스이세이세키가 사이모에와 최모토에서 연이어 우승을 거머쥐며 첫 메이저 모토 동시 석권자가 되었다.

2007년 러키☆스타 히이라기 카가미 CLANNAD 사카가미 토모요가 차례로 모토계에 뛰어들었고, 하반기에 하루히 시리즈의 대표 캐릭터 지위가 나가토 유키에게 완전히 넘어갔으며, 연말에 등장한 카츠라 히나기쿠는 결승에서 샤나2표 차의 신승으로 무찌르고 최모토를 재패하였다. 2008년은 현랑 호로까지 데뷔를 마치며 8룡 전반의 형태가 완성된 만큼 가장 8룡이 치열하게 다둔 해였다. 신예 현랑 호로가 최모토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히이라기 카가미가 사이모에에서 클라나드 3인방(쿄, 토모요, 나기사)을 차례로 무너뜨리며 우승을 차지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열린 2008 국사모는 혼란 그 자체였다. 이 대회는 크게 쿄애니 3대장(하루히, 러키스타, 클라나드)에 기타 진영(페이트, 샤나)이 대립하는 구조였다. 쿄애니 8룡인 유키, 토모요, 카가미겉으로는 정규시즌 내내 서로 협력하며 3대장 이외에 가장 강했던 페이트 테스타로사가 목걸이를 따지 못하게 만들었지만, 속으로는 치열한 공방을 지속했다. 그 결과 가장 세력이 강했던 나가토 유키를 단 2번의 업셋으로 정규시즌 1위에서 6위로 끌어내렸고, 카가미도 리그 7위에 머물게 만들었다.[3] 그렇게 어부지리로 정규시즌 2-3위를 차지한 토모요와 하루히는 당연히 8강에서 카가미와 유키에게 발렸고, 패자조에서 정규시즌 12위 이즈미 코나타에게 업셋당하고 탈락하는 굴욕을 맛본다.

그렇게 2008 사이모에/국사모 모두에서 러키☆스타 진영의 팀킬로 토모요를 잃은 CLANNAD 진영은 깊은 원한을 새겼고, 히이라기 카가미는 그 여파로 승자조 3R에서 페이트 테스타로사에게 압도적으로 패배하고 만다. 쿄애니의 분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고, 사이모에 출신 카가미 안티 팬들이 클라나드 팬들과 연합까지 결성해버린다. 패자조 5R와 6R에서 이들의 지지를 받은 나가토 유키 이즈미 코나타 히이라기 카가미를 차례로 탈락시키고 천신만고 끝에 결승에 올랐다. 그러나 그녀조차 심각한 분열이 일어난 3대장의 화합은 도저히 이루어낼 수 없었고, 당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유키는 정규시즌에서 승리했던 페이트 테스타로사와의 결승 리매치에서 패배하여 초대 우승을 넘겨주고 말았다. 전성기가 끝나가고 몰락이 다가오던 2008년 말의 페이트는, 3가지 행운[4]이 겹친 덕에 그녀에게 온 마지막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2009년 신인 아이사카 타이가는 사이모에와 최모토를 동시 석권하며 세력 균형을 깨고 모토계를 재패하는가 했지만, 국사모 16강에서의 대 나가토 유키전 패배로 무산되었다. 이후 타이가는 모토 전반에서 그 해 국사모 우승자 카츠라 히나기쿠와의 처절한 고지전을 치루어야 했고, 끝내 힘겹게 승리한 뒤 스이세이세키를 몰아내고 8룡에 들어감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5] 2009 국사모는 8룡이 모두 16강에 오른 유일한 시즌이었던만큼 8룡간 격돌이 가장 많았는데, 국사모 포스트시즌 30경기 중 24경기에 8룡이 포함되었으며, 그 중 13경기는 8룡 간의 경기였다. 특히 카츠라 히나기쿠는 정규리그에서 11시드라는 처참한 성적을 받았지만, 6시드 페이트, 3시드 토모요, 7시드 유키, 1시드 샤나를 차례로 무짜르고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선보였다. 최종적으로는 차례대로 히나기쿠(우승, 1위), 샤나(준우승, 2위), 토모요(4강, 3위), 유키(4강, 4위), 페이트(16강, 6위), 타이가(16강, 7위), 카가미(16강, 8위), 호로(16강, 13위)의 성적을 거두었다.[6]

2010년 케이온!의 모토 통일로 8룡이 사이모에, 최모토, 국사모를 가리지 않고 일제히 순위권에서 밀려났다. 그 중 샤나는 홀로 국사모 정규리그 1위 + 3목걸이 + 4강과 사이모에 8강을 찍고 기세를 유지했으며, 그나마 나가토 유키 아이사카 타이가가 국사모에서 각각 자수정과 토파즈를 획득하고 8강에 오르는 선전을 펼쳤다. 이듬해인 2011년에는 미사카 미코토 타치바나 카나데의 2세대 양강이 국사모에 자리잡으며 8룡의 몰락이 더더욱 심해져 샤나와 타이가마저 상대적으로 부진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소실 방영의 버프를 받은 나가토 유키의 대활약은 단연 돋보였다. 유키는 8룡 중 가장 마지막으로 국사모에서 정규리그 TOP3에 이름을 올리고, 상위 목걸이를 따내는 기록을 세웠다.[7]

2012 국사모는 샤나, 유키, 타이가 3명이 마지막으로 최상위권에 머무른 해이다. 셋은 정규시즌(샤나 4위)과 스텔라 부문 결선(타이가 준우승, 유키 4강)에서 상당한 활약을 펼치고, 목걸이 결정전에도 전원 3회 이상 랭크되는 기염을 토했다. 비록 최종 결선에서 샤나가 16강에서 쓰러졌지만, 유키가 5년 연속 8강 진출의 대업을 이룬데 이어[8], 타이가가 전성기를 맞이하며 4강까지 올랐다.

13시즌 이후 셋은 국사모 상위권 반열에서 내려왔지만, 16-18시즌 연속으로 대사건을 하나씩 일으키게 된다! 샤나는 단축시즌의 수혜를 입긴 했으나 16시즌의 우승을 거머쥐었고, 아이사카 타이가는 아슬아슬하게 모든 기간을 버텨내며 17시즌 포스트시즌에 올라 16강에서 4세대 신성 메구밍을 꺾었으며, 나가토 유키는 18시즌 우승자 에게 대업셋으로 승리하며 전승 우승을 저지해냈다.

2세대 메이저 토너먼트(BGC, BLM, 애캐토)에서는 8룡 전원이 고전한 편이다. 그나마 BGC의 사정은 좀 나은데 현랑 호로가 대활약하여 4강 5번에 진출 + 준우승 1번을 차지하기도 했고, 페이트를 제외한 6명은 추천 기간을 통과해 대회 본선을 밟아봤다. 반면 BLM 애캐토의 경우 상당히 심각한데, 두 대회는 새 애니 방영 조건이 걸려 있어서 나가토 유키를 제외한 나머지 7명은 대회 자체를 밟아보지 못했다.[9]

여담으로 8룡은 당연히 해당 개념의 어원을 차용했기에, 육룡과 유사한 점이 많다. 김택용같은 1인자라 할 만한 캐릭터가 있었으며, 허영무처럼 후대에 포텐이 터져 가장 오래 살아남은 경우나, 송병구처럼 꾸준한 기량으로 장수했던 케이스 등. 또한 원본처럼 멤버 간 전력에 극단적인 차이가 없으며, 누구도 본좌가 되지 못한 것까지도. 그렇지만 그 사이에서도 우승과 고점, 승률과 주요 대회 수상/활약 등 대부분의 지표에서 월등한 성적을 기록하는 샤나: 1인자, 전체적으로 평균보다 월등히 높은 성적을 기록하는 나가토 유키: 2인자, 누적 성적 및 단기 임팩트에서 모두 준수한 아이사카 타이가: 3인자, 나머지 5명 중 커리어가 가장 월등한 카츠라 히나기쿠: 4인자 정도의 평가는 고정되어 있다. 나머지 넷은 논쟁의 여지가 많지만, 그래도 국사모 정규시즌 이외 특별한 활약이 전무한 사카가미 토모요를 확실한 최약체로 취급하는 편.

3. 구성원

메이저 대회 최고 순위
대회 샤나 나가토 유키 페이트 테스타로사 히이라기 카가미 사카가미 토모요 현랑 호로 카츠라 히나기쿠 아이사카 타이가
AST 4강 8강 준우승 우승 8강 96강 4강 우승
KBM 준우승 8강 8강 준우승 8강 우승 우승 우승
ISML 우승 준우승 우승 4강 4강 16강 우승 4강
BGC 512강 64강 - 128강 128강 준우승 256강 8강
BLM - 32강 - - - - - -
ACT - 96강 - - - - - -
연도별 세력 변화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사이모에/최고모에 - 우승 7점, 준우승 6점, 4강 5점, 8강 4점, 16강 3점, 32강 2점, 참가 1점[10]
BHM/BGC/BLM/애캐토 : 우승 5점, 준우승 4점, 4강 3점, 8강 2점, 16강 1점
국제 사이모에 리그
정규시즌 - 1위 5점, 2-3위 4점, 4-6위 3점, 7-10위 2점, 11-20위 1점
목걸이 - 수성 5점, 상위 목걸이 4점, 하위 목걸이 3점, 기간 우수(2-3위) 1점
포스트시즌 - 우승 10점, 준우승 8점, 4강 6점, 8강 4점, 16강 2점, 32강(부문 결선) 1점
<colbgcolor=#000000> 멤버 <colbgcolor=#ff9999> 샤나 <colbgcolor=#BDBDBD> 나가토 유키 <colbgcolor=#ffd700> 페이트 테스타로사 <colbgcolor=#dda0dd> 히이라기 카가미 <colbgcolor=#add8e6> 사카가미 토모요 <colbgcolor=#daa520> 현랑 호로 <colbgcolor=#ff99ff> 카츠라 히나기쿠 <colbgcolor=#f0e68c> 아이사카 타이가
06 10 8 8 0 0 0 0 0
07 9 0 5 6 0 0 8 0
08 24 14 18 22 18 9 14 0
09 22 21 6 11 19 8 19 18
10 30 18 5 3 4 0 14 17
11 20 25 0 0 0 0 6 9
12 11 9 0 0 1 0 5 17
13 5 1 0 0 0 0 0 6
14 5 0 0 0 0 4 0 6
15 0 0 0 0 0 1 0 2
16 18 0 0 0 0 3 0 0
17 0 0 0 0 0 2 0 6
18 0 1 0 0 0 3 0 0
19 0 0 0 0 0 2 0 0
20 0 0 0 0 0 3 0 0
21 0 0 0 0 0 3 0 0
22 0 0 0 0 0 3 0 0
23 0 0 0 0 0 1 0 0
합계 154 97 42 42 42 42 66 81
보결 스이세이세키 스즈미야 하루히 후루데 리카 후지바야시 쿄
06 14 7 2 0
07 8 0 7 0
08 0 17 8 20
09 6 17 4 13
10 0 10 1 8
11 0 4 0 0
12 0 5 3 0
13 0 1 0 0
14 0 1 0 0
15 0 0 0 0
16 0 1 0 0
합계 28 63 25 41
}}} ||
8룡 간 국사모 상대 전적[11][주의]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캐릭터 <colbgcolor=#ff9999> 샤나 <colbgcolor=#BDBDBD> 나가토 유키 <colbgcolor=#ffd700> 페이트 테스타로사 <colbgcolor=#dda0dd> 히이라기 카가미 <colbgcolor=#add8e6> 사카가미 토모요 <colbgcolor=#daa520> 현랑 호로 <colbgcolor=#ff99ff> 카츠라 히나기쿠 <colbgcolor=#f0e68c> 아이사카 타이가
샤나 - 1 : 4 1 : 4 1 : 4 2 : 4 0 : 6 2 : 6 0 : 4
유키 4 : 1 - 2 : 4 1 : 6 2 : 4 0 : 5 3 : 4 1 : 4
페이트 4 : 1 4 : 2 - 2 : 3 3 : 1 0 : 4 4 : 2 2 : 2
카가미 4 : 1 6 : 1 3 : 2 - 6 : 2 1 : 5 5 : 1 3 : 1
토모요 4 : 2 4 : 2 1 : 3 2 : 6 - 0 : 5 5 : 2 3 : 1
호로 6 : 0 5 : 0 4 : 0 5 : 1 5 : 0 - 5 : 0 4 : 0
히나기쿠 6 : 2 4 : 3 2 : 4 1 : 5 2 : 5 0 : 5 - 2 : 2
타이가 4 : 0 4 : 1 2 : 2 1 : 3 1 : 3 0 : 4 2 : 2 -
합계 32 : 7 28 : 13 15 : 19 13 : 28 21 : 19 1 : 34 26 : 17 15 : 14
82.05% 68.29% 44.11% 31.71% 52.50% 2.86% 60.47% 51.72%
}}} ||

3.1. 샤나

파일:2008 aquamarine.jpg 파일:2016 amethyst.png 파일:2009 sapphire.jpg 파일:2010 sapphire.jpg 파일:2010 emerald.jpg 파일:2011 ruby.jpg 파일:2010 diamond.jpg 파일:winner-elimination-2016.png

8룡 중 명예 1인자로, 유일하게 모토계의 정상에 오를 가능성이라도 감히 논할 수 있던 캐릭터. 당시 흉악한 전적을 보면 딱 메이저 모토 우승만 제외하고 정말로 다 가진 육각형 완전체였다. 샤나는 2012년 국사모 부문 결선과 본 결선의 연이은 부진으로 몰락하였으나, 2016년 국사모 단축시즌의 압도적인 수혜를 받고 우승을 차지하며 한을 푸는데 성공하였다.

3.2. 나가토 유키

파일:2009 topaz.jpg 파일:2010 amethyst.jpg 파일:2011 amethyst.jpg

누적 스탯들을 다각도로 비교하면 유키는 8룡 중 굳건한 2인자이다. 그러나 이 쪽도 샤나마냥 높은 결선 무대에서 약했기에 우승이 없다는 커리어상 최대 약점이 있다.[13] 그래도 그녀는 대다수의 8룡이 몰락한 11-12시즌에도 2세대 양강(미코토, 카나데)과 경쟁하며 최고의 활약을 펼쳤고, 17-18시즌 국사모까지 생존하여 중견급 캐릭터로 2~4세대 캐릭터들 다수에 쓰라린 패배를 안기는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14]

3.3. 페이트 테스타로사

파일:winner-elimination-2008.jpg

8룡 중 가장 선배격 캐릭터. 오랜 진영 싸움으로 팬덤에 노련미가 있었기에, 결선 1:1 매치에서 위의 새가슴 둘보다 훨씬 강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 반대 급부로 진영 파워의 비중이 오르는 다인전 역량은 8룡 중 뒤에서 1-2위를 다툰다. 2008년 국사모에서 유키를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지만, 단 1년 만에 16강 탈락이라는 졸전을 벌이며 순위권에서 사라졌다.

3.4. 히이라기 카가미

파일:2008 amethyst.jpg 파일:2008 emerald.jpg

동양권 전체에서 인기가 있던 러키☆스타의 원톱이었던 만큼, 8룡 중 가장 대회 종류와 지역을 가리지 않고 고르게 높은 성적을 내던 캐릭터. 문제는 8룡 중 전 멤버 스이세이세키를 제외하면, 카가미가 페이트와 같이 가장 먼저 하락세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3.5. 사카가미 토모요

파일:2009 aquamarine.jpg

8룡 중 누적 스탯으로나 커리어로나 명백한 최약체로, 이는 CLANNAD 팬덤이 처한 특수한 상황에 기인한다.

3.6. 현랑 호로

최모토 우승 커리어를 감안해도, 그녀는 2014년 전까지 8룡 중 최악의 누적 스탯을 가지고 있었다.[15] 호로는 2010년 한 번 몰락했다가 4년 뒤 BGC 내에 자리잡아 시이나 마시로처럼 인기 투표에서 기사회생한 특이 케이스이다. 이후 자신의 누적 스탯까지 크게 개선시킨 건 덤.

3.7. 카츠라 히나기쿠

파일:2009 ruby.jpg 파일:winner-elimination-2009.jpg

그리 많지는 않은 우승 하나하나가 시대의 향방을 결정짓는 빅 게임이었다. 그래서 8룡 중 독보적으로 팬덤이 위기에 강해, 역사적인 업셋도 자주 만들었다. 허나 당시 까다로운 존재였던 그녀와 하야테 진영[16], 2009년 타이가와의 대회전 패배 여파로 추락하기 시작했다.[17]

3.8. 아이사카 타이가

파일:2010 topaz.jpg 파일:2011 emerald.jpg

8룡 중 압도적인 늦둥이 포지션. 2009년도의 대활약으로 당시 춘추전국시대가 마무리될 수 있는 씨앗을 뿌렸으며, 스이세이세키에 비교해 상위호환 수준의 커리어나 누적 스탯을 기록하며 그녀를 대체하였다. 이후에도 8룡 중 나가토와 함께 가장 꾸준하게 롱런한 캐릭터로 꼽힌다.

4. 보결 멤버

여기 포함된 캐릭터들은 현재 8룡 멤버로는 인정받지 못하지만, 그에 준하는 활약상을 폭발기(2006~2009) 모토에서 보여주었기에 준 멤버, 혹은 후보 정도의 평가를 받는 캐릭터들이다. 사실상 스이세이세키(2005) -> 스즈미야 하루히(2006) -> 후루데 리카(2007) -> 후지바야시 쿄(2008)로 이어지는 8룡을 제외한 각 해의 최고 신인들이 이곳에 포함되어 있다.

4.1. 스이세이세키

파일:2009 emerald.jpg

사실 스이세이세키는 심각한 수준의 올드비여서[19], 8룡이 생겨날 시점에 이미 그녀의 전성기는 반쯤 지나간 상태였다. 그래도 당대 커리어는 최상급이어서 전 8룡 멤버로 대우를 받았지만, 2008년부터 여러 대회에서 뽑아내던 성적이 너무나 초라했다. 그래서 우승 자체가 리즈 시절 취급받았고, 그녀의 커리어적 영광을 똑같이 가진 타이가가 등장하자 8룡에서 내려오게 되었다.

4.2. 스즈미야 하루히

파일:2008 ruby.jpg 파일:2008 diamond.jpg

스즈미야 하루히는 하루히즘이라는 모토계의 폭발을 가져온 장본인인 만큼 8룡을 제외한 모든 폭발기 시대 캐릭터 중 가장 압도적인 모토 성적을 가지고 있으며, 때로는 8룡 중 하위 커리어를 가진 사카가미 토모요 현랑 호로보다도 높은 평가를 받는 경우도 많았다.[20] 하지만 그녀에게는 같은 시리즈의 명확한 상위 호환 커리어를 가진 나가토 유키가 존재했다. 하루히가 2006년부터 2012년까지 참가한 11번의 메이저 대회에서 유키보다 높은 성적을 거둔 것은 2006 최모토 단 1개일 정도로 그 격차는 명백했으며, 이 기간 동안 둘의 상대 전적은 무려 2:10였다.[21] 그랬기에 그녀는 결국 폭발기의 시작을 알린 주인공의 자리는 차지했을지언정, 8룡 멤버에 들어가 보진 못하였다.

4.3. 후루데 리카

리카의 경우 누적으로나 고점으로나, 전체적인 모토 실적이 너무 나빠서 원래라면 8룡과 관련해서는 단 하나도 거론될 이유[22]가 없다. 하지만 그녀가 대업셋으로 차지한 2007 사이모에 우승은, 폭발기(2006~2009) 기간 동안 유일하게 8룡이 아닌 캐릭터가 가져간 메이저 대회 우승이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실은 그마저도 8룡 팬덤끼리의 정치질이 낳은 결과물이긴 하지만(...)

4.4. 후지바야시 쿄

파일:2008 sapphire.jpg

CLANNAD는 팬덤이 크게 토모요, , 나기사 셋으로 나뉘어진 형태였다. 그래서 사실 그녀의 커리어를 토모요와 상세히 비교해보면 큰 차이까지는 없다. 셋 중 나기사는 폭발기 시기에 상당히 부진했기에 토모요와 쿄 중 누가 클라나드 몫의 8룡 자리를 차지할 것인지를 두고 2008년까지 치열한 경쟁이 이어졌지만, 2009 국사모에서 토모요가 대활약을 펼치면서 사실상 토모요의 반 수 우위로 결착이 지어졌다.

5. 역대 주요 대결 목록[23]

5.1. 사이모에& 최모토

5.2. 국제 사이모에 리그

파일:2008 GF.png 파일:2009 GF.jpg

6. 기타

6.1. 후대와의 비교

여성부 모에 토너먼트 역사에는 2개의 통일 왕조가 존재[24]했으며, 현실의 군웅할거처럼 모토에서도 여러 컨텐더끼리 힘의 균형이 팽팽해져 생기는 격동기가 저들의 굴기와 쇠퇴[25] 전후로 발생했다. 그렇다면 폭발기의 8룡 구도와 후대의 격동기(+확장기)들은 어떻게 다를까?

먼저 패권기(2015-2018)는 모토계에서 가장 많은 변화[26]가 일어난 기간으로, 진영 간 세대 교체도 15-17시즌 매 년 한 번씩 일어났다. 그만큼 많은 신흥 강자가 등장했지만 대부분 2시즌 넘게 활약하지[27] 못하고 사라졌으며, 대권 도전 자격까지 올라간 건 고작 4명에 불과[28]했다. 상위 문서에 있는 8명의 강호 중 패권기에만 3명이 탄생한 것에서 추측할 수 있듯, 8룡 때보다 훨씬 소수의 선택받은 컨텐더들만 체급을 무지막지하게 키울 수 있었다. 실상은 신규 경쟁자의 수가 줄어든만큼 경쟁자의 난이도가 올라가서 대권 경쟁이 더욱 치열해진 것.

또한 확장기(2019-2021)에도 3년간 대부분의 마이너 모토를 접수한 쿠루미, 마이, 미쿠, , 유키노, 아스나, 바이올렛, 제로투8흉수가 있었다. 8룡과 달리 이들 모두는 시기/지역을 가리지 않고 동시다발적으로 활약했으며, 멤버 사이의 우열 관계가 뚜렷했다. 애초에 확장기 자체가 렘 왕조의 전유물이니 당연하며, 나머지 사이에도 쿠루미 | 마이•유키노 | 미쿠•제로투 | 바이올렛•아스나로 그룹[29]이 갈렸다.

마지막으로 쇠퇴기 전반부(2022-2023)는 키타가와 마린, 요르 포저, 니시키기 치사토, 고토 히토리, 시이나 마히루, 호시노 아이로 이어지는 거대 신인 6연타, 일명 분기창녀 시대라는 멸칭으로도 요약될 만큼 짧은 기간임에도 모토계 내외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특히 이 시기에는 외적으로 라이트 노벨의 몰락이 겹쳐졌는데, 이는 리코리코와 옆천을 제외한 나머지가 만화 출신인 사실[30]과 연결된다. 참고로 이 6명은 자신의 전성기별로 대활약했지만, 그 중 누구도 1년을 훌쩍 넘어가는 장기적인 대히트[31]까지 연결시키지 못했다.

정리하자면 8룡이 활개한 폭발기는 겉보기엔 춘추전국시대이나 실상은 아니며, 당대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고인물들끼리 힘의 균형이 역사상 가장 안정적으로 유지된 시기이다. 오히려 진정한 춘추전국시대 봇치 더 록! 【최애의 아이】 유행이 지나간 뒤 장송의 프리렌, 약사의 혼잣말, 내 마음의 위험한 녀석, 100등분 등 이전보다 애매한 체급의 후보들이 난립하게 된 2024년으로, 현재 진행중이다.

6.2. 남성부에서

모에 토너먼트에서 이러한 8룡 같은 집단의 형성은 오로지 여성부에만 한정되었는데, 그 이유는 남성 오타쿠를 겨냥한 시장이 2005년 이전부터 이미 컸던 것에 비해, 여성 오타쿠를 겨냥한 시장의 발달은 하루히즘 이후에나 시작될 만큼 늦었었기 때문.

모토 초창기에는 남성 투표자들이 남캐에 잘 투표하지 않았고, 자연히 해당 팬덤의 큰 지분을 차지하는 여덕 참가자들의 영향력이 투표에서 강하게 작용했다. 당시엔 BL 시장이 잘 형성되어 있지 않아, 여덕 참가자들은 대부분 2006년 이후 나온 몇몇 여성향 작품이나 소년만화에 꼽사리 낀 팬덤으로 있었다. 그랬기에 초창기 모토판 남성부는 거대 여성향 진영[32] vs 그 외 남캐 개인 팬덤[33] 구도로 경쟁이 펼쳐졌다.

이런 환경에서는 절대로 8룡과 같은 모습이 나올 수 없었고, 결국 07-11년도의 오랜 기간 남성부 모토는 양대 여성향 진영(은혼, 리본)을 단일 남캐로 제압할 수 있는지를 가리는 대회로 변해버린다. 그랬기에, 단일 남캐 중 당대 1인자였던 를르슈 람페르지가 여론을 등에 업고[34] 이 기간에 수많은 우승좌를 쓸어담았고, 이를 기반으로 메이저 모토 그랜드슬램까지 달성할 수 있었다.

이런 구도는 남캐 투표에도 남성표 비중이 높아진[35] 13시즌 말, 키리가야 카즈토, 오레키 호타로, 히키가야 하치만, 리바이로 대표되는 남덕을 겨냥한 남캐 4천왕이 자리잡으면서 드디어 깨지게 된다. 그리고 이후에도 남성부 인기 투표 한정으론 단 한 순간도 8룡같은 구도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만 4천왕은 살생님, 소라 등을 비롯한 신흥 강자들의 도전을 계속 받은 결과 키리토가 현역에서 퇴장한 2017년부터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고, 이듬해까지 이어진 타입문이 남성부에 강점기를 몰고 오면서 하치만을 제외한 나머지를 완전히 몰락시켰다. 이어서 하치만 역시 그 길을 따라가며 2019년 하반기에 남성부 4천왕은 완전히 해체되고 만다.

그래도 이 4천왕과 타입문 팬덤은 이들의 치세 동안 남성부 투표 전반에서 여성향 팬덤을 성공적으로 억제하였다. 그래서인지 초극성 여덕 팬덤들의 노력에도, 15시즌 말 데뷔한 이래로 세력이 커지던 오소마츠 상 모에 토너먼트에서 저들과 전성기가 겹쳤다는 이유로 활개는 커녕 진영조차 형성하지 못했다. 같은 시기 애니메이션 그랑프리나 오프라인 사건에서 보이는 육폭도들의 영향력과 크게 대조되는 부분.[36]

이 시대가 지난 뒤에는 리무루 템페스트, 아즈사가와 사쿠타, 시로가네 미유키 3강 + 귀멸의 칼날 + 고죠 사토루 등이 우열을 가리지 못하고 경합하는 혼란기가 펼쳐졌다. 그 와중에 리바이와 호타로가 20/22시즌에 각각 화려하게 부활하여 다시 없을 마지막 불꽃을 태웠지만, 21시즌 하반기부터 시작된 모토계 몰락의 직격타를 남성부 투표가 먼저 맞게 되었다. 결국 주목할만한 최후의 신인으로 호시노 아쿠아마린이 등장하고, 아야노코지 키요타카가 분전한 시기를 마지막으로 남성부(혹은 여성향) 모토는 그 역사가 거의 종료되었다.

정리하자면, 남캐 4천왕과 모토 8룡은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은 성질을 가지고 있다. 군웅할거 이후 몇몇 강자들이 고인물로 세력 균형을 이루고 자리잡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경찰같이 체계적인 제재 집단이 작용하지 않는 모든 분야의 필연적인 운명이기 때문. 단지 그 현상이 여성부에서 8룡으로 먼저, 남성부에서 4천왕으로 나중에 나타났다 해체되었다는 차이점 정도가 존재할 뿐이다.[37]

[1] 대개 사이모에, 최모토, 국사모를 말한다. [2] 한국사로 치면 폭발기는 원삼국시대, 패권기는 여말선초 같은 느낌의 시기. [3] 얼마나 가관이였느냐하면, 페이트는 쿄, 샤나, 유키에게 총 3패를 당해서 충분히 쿄애니 3대장에서 정규시즌 1위가 나올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8룡 최약체인 사카가미 토모요와 상대적으로 유키보다 낮은 CVP에 머물렀던 스즈미야 하루히를 60승 3패까지 올려내 페이트-토모요-하루히 60승 3패 3자 동률을 만들어 기어이 페이트에게 정규시즌 1위를 내주었다. [4] 샤나의 예상 밖 부진, 쿄애니 3대장의 분열, 정규시즌 3자 동률 1위. [5] 당연히 여기에 온 힘을 다 쓰고 진 히나기쿠는 이듬해부터 가파르게 몰락하기 시작하고, 2011년이 되면 완전히 운명하기에 이른다. [6] 탈락 라운드와 최종 순위가 맞지 않는 것은 국사모 특유인 패자조의 존재 때문이다. 이 해에는 8룡의 패자조 선전으로 인해 쿄를 제외한 8강 탈락자가 모두 라운드 이하의 순위를 받았다. 쿄(8강, 5위), 하루히(8강, 9위), 린(8강 10위), 스이긴토(8강, 12위) [7] 2016년 샤나의 자수정은 부문이 나뉘어져 있었고, 애초에 기간당 3경기밖에 없었던 단축 시즌이라 제외. [8] 이 기록은 국사모에서 유키와 시이나 마시로 단 2명만이 가지고 있는 대기록이다. [9] 유키도 본편인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로 참가한 것이 아니라, 외전인 나가토 유키짱의 소실로 참가했다. [10] 2013, 2014 사이모에는 점수 X [11] 2008~2012 정규시즌, 포스트시즌만 집계, 순위 결정전 제외. [주의] 명백한 8룡 최약체 토모요의 승률이 상당히 높은데, 이는 토모요가 메이저 대회 중 유독 국사모 정규시즌에 한해 강세를 보였기 때문으로, 실제로는 카가미보다도 약하다고 봐야한다. 호로의 경우 최모토와 BGC를 제외한 다른 대회의 커리어가 사실상 전멸 수준인 특이 케이스라 국사모 성적이 낮은건 당연하다. [13] 그녀가 가장 활약한 메이저 모토인 국사모에서 유키는 08~12시즌에 차례대로 2-4-7-7-8의 순위를 거두었는데, 정규리그의 경기 결과를 결선에 적용하면 1-2-7-4-5가 된다. 이는 유키가 결선 무대에서 상대적으로 힘을 못 썼음을 실감할 수 있는 대목. 단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은 유키는 엄연히 순도 100% 무관이 아니라는 것. 당장 그녀는 탑티어 마이너 모토로 분류되는 Baidu Harem Moe의 2011년 우승자이며, 괜히 이미지나 인기투표 행적에서 원본의 송병구와 비교되는 게 아니다. [14] 대표적으로 2018 국사모에서 유키는 19승 11패로 63%의 승률을 기록하여 정규시즌 19위에 랭크하고, 2018년 목걸이 수상자 중 4명( 나카노 아즈사, 유우키 아스나, 토오사카 린, )에게 매치승을 따내는 대활약을 선보였다. 2018년 메이저 대회 전체에서 에게 승리를 기록한 유일한 캐릭터라는 기록을 남긴 것은 덤. [15]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단적인 예시가, 경기수가 가장 많아 누적 통계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국사모에서 8룡 전체 상대전적이 겨우 1승이고, 혼자 삽화가 없다는 점이다. [16] 그녀에 비해 역량이 떨어졌던 산젠인 나기마저 2007, 2010 사이모에 준우승을 찍을 정도였다. [17] 물론 국사모에서는 예외적으로 오래 버텨 2010년 성적(정규시즌 2위 + 최종 5위)이 최상위권이었고, 이듬해가 되어서야 완전히 순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그 때도 목걸이 획득을 못 해 평가가 박하며, 외부 대회에서는 10시즌에 벌써 눈에 띄는 폼 저하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18] 우승한 2009년 정규시즌 TOP 10에 못 들어갔다... [19] 그녀는 그 타카마치 나노하보다도 선배격이며, 카레이도 스타 나에기노 소라의 바로 후배급 캐릭터이다. [20] 실제로 토모요는 08/09시즌 2년, 호로는 BGC를 제외하면 08시즌 단 1년만 메이저 대회 우승 후보 취급을 받은 반면, 하루히는 06시즌부터 10시즌까지 5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메이저 대회 최상위권 우승 후보로 평가받았다. 활약 기간만 따지고 보면 페이트나 카가미보다도 뛰어난 수준이며 그녀보다 커리상으로 명백히 위라고 할 만한 1세대 캐릭터는 단 4명(샤나, 유키, 히나기쿠, 타이가) 뿐이다. 국사모 커리어로 한정하면 히나기쿠와도 맞멎는 수준. [21] 06 사이모에(991-1112, 패), 06 최모토(612-605, 승), 08 국사모(219-395, 패), 08 국사모(562-593, 패), 09 사이모에(149-397, 패), 09 최모토(1058-1698, 패), 09 국사모(1752-1415, 승), 09 국사모(1119-1429, 패), 10 국사모(2202-2578, 패), 10 국사모(3728-4128, 패), 11 국사모(4029-4544, 패), 12 국사모(2648-2678, 패). [22] 오히려 메이저 대회 외부의 마이너 모토에서는 C.C.의 활약이 훨씬 두드러졌고, 커리어 전체를 정량적으로 따지면 2006년도의 리카 포지션인 사와치카 에리 큰 차이가 없다. [23] 08년까지의 스이세이세키를 멤버에 포함하여 계산한다. 또한 결승은 볼드체로 표기한다. [24] 미코토(2011-2015)와 (2016-2022). 이외에는 명예 왕조인 샤나(2006-2009)와 단명 왕조인 미오(2010)가 있고, 거기에 시대 순으로 8명의 강호가 추가된다. [25] 이런 교체기들은 예외 없이 외적 환경의 극단적인 변화에 의해 더 촉진되었다. 그런 대표적인 예를 들면 샤나 초에는 하루히즘의 대두(시장 팽창), 샤나 말 - 미코토 초에는 신전기 장르의 몰락(장르 격동), 미코토 말 - 렘 초에는 폭력계 츤데레의 도태(속성 변화), 렘 말에는 라노벨 메타의 붕괴(매체 교체)가 있다. [26] 이건 단순히 인기투표에 한정된 스케일이 아니다. 츤데레 - 메가데레 교체, 버튜버의 개념 성립, 1:1 럽코의 탄생, 미소녀(소년) 가챠겜과 나로우계의 굴기, 네덕 이글루스 + 티비플 덕후의 쇠퇴, 처녀빗치의 대두 등 너무 많은 일이 한꺼번에 터진다. 그래서 이 패권기 전후로 오타쿠 세대가 완전히 갈라져버린다. [27] 그 예는 니세코이, 노 게임 노 라이프, 사쿠라 치요, 토모리 나오, 카후우 치노, 던만추, 뉴 게임!, 메이드래곤, 이즈미 사기리 등 너무나 많다. 패권기의 파도를 견디고 확장기까지 활약을 이어간 예외적인 단일 비강호 캐릭터는 사실상 메구밍이 유일하고, 진영으로는 아예 그런 존재가 없다! [28] 린, 유키노, 카토, 렘. 이 중 이 때 데뷔한 순수 신인은 뒤의 둘 뿐이며, 앞의 둘은 2006/2013년 데뷔. [29] 각각 확장기 2인자, 메이저와 마이너 양면의 강호, 마이너 여포, 메이저 강호 + 마이너 콩라인에 해당. [30] 모에 토너먼트에서 라노벨 대 만화 원작 비중은 2010년대 후반 이후 드라마틱하게 변화했는데, 하루히즘 1년 뒤의 2007년 9:1로 압살하던 게 22년 초 5:5로 맞춰지더니 2024년 2:8 이하로 완전히 역전되었다. 라노벨 장르가 나락에 빠져드는 게 지표상 눈에 띌 정도로. [31] 8룡 중 샤나, 나가토, 타이가는 5년 이상 메인스트림에서 놀았으며, 나머지 멤버들도 최소 2년은 히트했다. [32] 3톱은 가정교사 히트맨 REBORN!, 은혼, 흑집사. 이후에 듀라라라, 도쿄 구울 정도가 추가되었다. [33] 그나마 명탐정 코난 쿠도 신이치, 코드 기아스 를르슈 람페르지, 데스 노트 L 야가미 라이토, 강철의 연금술사 에드워드 엘릭 로이 머스탱 정도만 저 은리흑에 저항할 역량이 있었다. [34] 특히 당시 은혼빠와 리본빠의 만행은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였는데,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조. [35] 특히 2011년부터 국사모, 앤모토 등 여러 대회에서 남성부를 만들기 시작한 게 주요했다. [36] 오히려 이 4천왕이 몰락한 이후에 귀멸의 칼날, 주술회전 등이 등장하여 두창 팬덤을 양산하여, 남성부 투표에서 여덕들의 영향력이 07-11년 수준으로 다시 회복되게 되었다. [37] 사실 단일 캐릭터가 인기투표 전체를 천하통일하고 오랜 기간 그 치세를 유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우며, 이에 성공한 몇 없는 당사자들(를르슈, 미코토, 렘)도 결국 훗날 떠오른 신인들에 의해 예외없이 모두 쪼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