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왕 연산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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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ae5b54,#ae5b54><colcolor=#e9d7a2,#e9d7a2> 장르 | 대체역사, 빙의 |
작가 | 라구.B.P |
출판사 | 문피아 |
연재처 |
문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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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기간 | 2024. 05. 08. ~ 연재 중 |
이용 등급 | 전체 이용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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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대체역사 웹소설. 작가는 라구.B.P. 이 작품이 데뷔작이다. 약칭은 경제연산.2024 지상최대 웹소설 공모전 우수상 수상작이다.
2. 줄거리
젊음의 치기로 복수전공이라는 잘못된 선택을 한 사학과&경제학과 학부생 박경식. 이제 4학년이니
이 고생도 곧 끝이다!
급한 마음에 사학과 졸업논문을 날림으로 썼는데, 교수가 갑자기 부른다. 교수를 따라갔더니 대학원 오라는 권유가 아니라 자기가 산신령이라고 커밍아웃해오는데?!
정신을 차리니 조선의 왕으로 즉위해 있다.
조선의 파이어족이 되기 위해 조선의 경제부터 정치까지 모든 걸 뜯어고치기 위한 박경식의 분투가 시작된다.
급한 마음에 사학과 졸업논문을 날림으로 썼는데, 교수가 갑자기 부른다. 교수를 따라갔더니 대학원 오라는 권유가 아니라 자기가 산신령이라고 커밍아웃해오는데?!
정신을 차리니 조선의 왕으로 즉위해 있다.
조선의 파이어족이 되기 위해 조선의 경제부터 정치까지 모든 걸 뜯어고치기 위한 박경식의 분투가 시작된다.
3. 연재 현황
2024 지상최대 웹소설 공모전 참가작으로, 문피아에서 2024년 5월 8일부터 연재를 시작했다. 처음 연재시간은 매일 저녁 6시였다. 주 5일 연재. 평일 연재로 공지하고 있으나 주말에도 올라오는 경우가 있었으며, 연재시간이 자주 지연되거나 바뀌기도 한다. 작가의 자료조사나 건강 문제 때문인지 휴재도 종종 있는 편이다.2024년 7월 17일, 2024 지상최대 웹소설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2024년 8월 2일, 연재시간이 저녁 9시로 변경되었다.
2024년 8월 16일, 작가가 요로결석으로 인하여 입원한 관계로 3일간 휴재하였다.
2024년 9월 23일, 연재시간이 오전 9시로 변경되었다.
2024년 9월 26일, 작가가 다시 30일까지 연재를 중단했다.
2024년 10월 14일, 작가가 다시 휴재를 알렸다. 10월 16일 연재가 재개되었으나 건강 문제로 당분간 연재 주기가 불규칙해질 것임을 알렸다.
4. 특징
조선에서의 짬을 어느 정도 먹은 경식은 합리적 경제적 동물(Homo economicus) 조선인의 행동 패턴을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철 값이 올랐을 때, 이 철로 된 무기랑 갑옷들을 병사들에게 나눠주면 어떻게 될까?
병사들은 분명 지급받은 철갑의 찰을 팔아먹는다.
29화, 「아니 내 10만 철기가!!!」
이렇게 철 값이 올랐을 때, 이 철로 된 무기랑 갑옷들을 병사들에게 나눠주면 어떻게 될까?
병사들은 분명 지급받은 철갑의 찰을 팔아먹는다.
29화, 「아니 내 10만 철기가!!!」
원래대로라면, 조선인들에게 무기를 쥐여줘봤자 엿 바꿔먹고 팔 것이다. 심지어 적에게 팔기도 한다.
이 오진[1] 주민들도, 공납이 폐기되기 전이었다면 이 철을 야인들에게 팔아서 초피를 산 후 공납으로 바쳐서 빚더미에 앉는 삶을 이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오진 주민들이 철을 야인들에게 주고 초피를 받는 것보다는, 철을 야인들 목에 대어 주고 초피를 받는 게 더 경제적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어떤 경제학 서적에도 나오지 않는 지식이고 경식도 따로 전수하지 않았지만, 경제학의 시초 대영제국의 역사서에는 자주 나오는 경제적 지혜를 함경도민들은 스스로 체득한 것이다.
32화, 「진격의 세종(The conqueror)」
이 오진[1] 주민들도, 공납이 폐기되기 전이었다면 이 철을 야인들에게 팔아서 초피를 산 후 공납으로 바쳐서 빚더미에 앉는 삶을 이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오진 주민들이 철을 야인들에게 주고 초피를 받는 것보다는, 철을 야인들 목에 대어 주고 초피를 받는 게 더 경제적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어떤 경제학 서적에도 나오지 않는 지식이고 경식도 따로 전수하지 않았지만, 경제학의 시초 대영제국의 역사서에는 자주 나오는 경제적 지혜를 함경도민들은 스스로 체득한 것이다.
32화, 「진격의 세종(The conqueror)」
흔히
이데올로기는
종교의 자식이라고 한다.
사람들의 사고방식, 생활 양식, 믿음, 추구하는 가치 등등.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모든 틀을 규정한다는 점에서 같다.
기독교에서는 겸손한 자, 빈민에게 자선을 베 푸는 자, 다른 사람에게 온화한 자, 박해를 인내 하는 자, 정절을 지키는 자, 절제하는 자, 근면한 자를 이상으로 여긴다.
기독교는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신앙이다.
유교에서는 사농공상이라는 직역에 성실한 자, 왕과 신하라는 의에 충성하는 자, 부모와 자식이라는 인륜을 다하는 자를 이상으로 여긴다.
유교는 인간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윤리를 믿는다.
자유주의에서는 억압에서 벗어난 자, 스스로 하고 싶은 걸 하는 자, 그러면서도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질서를 지키는 자를 이상으로 여긴다.
자유주의는 한 명의 인간이 한 명의 사람으로 존재함을 믿는다.
그래서 자본주의가 자유주의에서 나왔다. 오직 자유주의만이 개인의 욕망을 긍정한다. 자본주의는 욕망에서 자란다.
모든 종교는 욕망을 부정했지만, 미처 종교가 억누르지 못한 욕망이 계속해서 터져나왔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향신료에 대한 욕망, 영국의 차에 대한 욕망, 미국의 땅에 대한 욕망...
그러나 욕망이 반드시 자본주의를 낳지는 않는다. 잘 작동하는 시장 경제가 기반이 될 때 비로소 욕망은 그 잠재력을 발휘한다.
106화, 「욕망의 세계사와 조선 1 - 음식」
연산군에게 빙의한 사학과+경제학과 복수 전공의 대학생이 전공했던 지식을 활용해 조선을 뜯어 고친다는, 전반적인 이야기 구조 자체는 전형적인
영웅사관 기반의
현대인 천재론적인 대체역사물이다. 작중에서도 간간이
이세계물 드립을 치며,
맛있다는 개념을 모르는 엘프 같은 것을 거론하며 풍자하기도 한다.사람들의 사고방식, 생활 양식, 믿음, 추구하는 가치 등등.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모든 틀을 규정한다는 점에서 같다.
기독교에서는 겸손한 자, 빈민에게 자선을 베 푸는 자, 다른 사람에게 온화한 자, 박해를 인내 하는 자, 정절을 지키는 자, 절제하는 자, 근면한 자를 이상으로 여긴다.
기독교는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신앙이다.
유교에서는 사농공상이라는 직역에 성실한 자, 왕과 신하라는 의에 충성하는 자, 부모와 자식이라는 인륜을 다하는 자를 이상으로 여긴다.
유교는 인간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윤리를 믿는다.
자유주의에서는 억압에서 벗어난 자, 스스로 하고 싶은 걸 하는 자, 그러면서도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질서를 지키는 자를 이상으로 여긴다.
자유주의는 한 명의 인간이 한 명의 사람으로 존재함을 믿는다.
그래서 자본주의가 자유주의에서 나왔다. 오직 자유주의만이 개인의 욕망을 긍정한다. 자본주의는 욕망에서 자란다.
모든 종교는 욕망을 부정했지만, 미처 종교가 억누르지 못한 욕망이 계속해서 터져나왔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향신료에 대한 욕망, 영국의 차에 대한 욕망, 미국의 땅에 대한 욕망...
그러나 욕망이 반드시 자본주의를 낳지는 않는다. 잘 작동하는 시장 경제가 기반이 될 때 비로소 욕망은 그 잠재력을 발휘한다.
106화, 「욕망의 세계사와 조선 1 - 음식」
하지만 본작에 강력한 개성을 부여하는 것은, 제목 값을 하는 높은 수준의 경제사회적 묘사와 경제학을 활용하는 주인공의 모습이다. 기존의 대체역사물에서는 두루뭉술하게 지나가는 조선의 거시, 미시경제와 민간 생활상의 변화에 초점을 맞춰 묘사하는 것이 두드러진다. '제목에 경제가 들어간 웹소설 중에 경제 관련 내용이 있는 게 없다'는 게 일반적인 웹소설 독자들의 인식일 정도로 경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작품이 적은 것이 현실이지만, 본작은 정말로 경제 관련 내용이 매우 디테일하게 다뤄진다. 이에 독자들은 학습만화를 보는 것 같다거나 노빈손 시리즈를 떠올리기도 할 정도다. 경제를 소재로 하는 대중소설 기성작 중에서는 늑대와 향신료와 자주 비견된다.
또 일반적인 빙환트로 스타팅하는 대체역사물에서의, 주인공의 개혁이 주인공의 의도대로 순조롭게 진행되는 편의적인 묘사를 뒤집어서, 정책이 '합리적인 경제적 주체'로서의 전근대 조선인들과 만나며 주인공의 의도랑 전혀 다르게 굴러가는 모습을 흥미진진하고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낸다.
주인공이 도입한 개혁들을 조선인들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꾸역꾸역 빈틈을 찾아 악용하고, 현대적 개념을 이용해서 개혁을 진행하려고 했는데 막상 개혁이 의도대로 돌아가지 않은 것은 사실 매우 전근대적인 이유 때문[2]인 등, '먼치킨 용사가 개혁을 해도 사실은 이런 부작용이 나지 않을까?' 하는 상상력을 최대로 발휘한 듯한 모습이다. 일반적인 웹소설에서 이것이 고구마 전개가 된다면, 이 소설은 고구마를 아예 고구마맛탕으로 요리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주인공이 해내는 개혁들 역시 당대 조선에 가능한 것인지, 매우 리얼하게 그리고 있는데, 조선 당대에 있던 제도들을 적절하게 활용하고 개조하여 근현대의 제도와 유사하게 수렴하게 만드는 전개가 계속되어서 설득력이 있는 것 역시 특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제도들조차도 부작용 사건들이 계속되는데, 부작용 부분조차도 역시 매우 디테일하고 설득력 있게 표현한다. 또 이러한 고증들은 미주로 최신 논문들을 인용하며 고증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어서 전개가 더욱 설득력 있어 보이게 한다.
조선 사회를 경제학적으로 접근하고 분석하여 일반적인 역사 매니아들의 관점과 정반대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조선 전기를 다루는 대체역사물에서는 모내기를 도입하고 퍼트리는 경우가 많지만, 이 작품에서는 모내기를 노동생산성의 관점에서 접근해서 밭농사에 비해 노동생산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논문과 구체적인 수치까지 동원해서 논증하고 조선에서 모내기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노동생산성이 낮은 것은 1인당 소득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대신 일본에는 모내기를 전파하고 장려시킨 다음 일본에서 쌀을 갈취하겠다는 결론을 낸다. 또 인구에 대해서도, 보통은 전근대 국가는 인구와 국력이 비례하는 경우가 많아서 대체역사물에서도 인구를 늘리는 전개를 보여주려 하지만, 본작에서는 맬서스 트랩을 경제학적으로 분석해서 솔로우 모형에 따라 인구가 늘면 1인당 소득이 줄어든다며 산아제한을 시도하기도 한다.
즉,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이 소설은 경제사학과 산업 혁명의 원인에 대한 작가의 학문적인 수준의 관점이 깊게 녹아 있다. 본작에서는 중국이 그렇게 전근대시기에 규모의 경제를 발전시켰으면서도 산업 혁명에 왜 도달하지 못했는지 노동생산성 관점에서 설명하는 '대평형이론'을 언급하기도 한다. 중국의 경우 도시가 성장하면 사람들이 모여서 식량가가 상승하고 반면 도시의 공업 생산품들은 가격이 싸지면서 생산량이 증가하는데 처음 어느 정도는 문제가 없지만 식량가가 더 상승하고 공업품의 가격이 떨어지면 노동자의 임금을 줄일 수밖에 없고 식량가의 상승을 통한 농촌 노동자의 임금 상승과 도시 노동자의 임금 하락으로 인해 도시 노동자들이 고임금을 찾기 때문에 농촌으로의 하방이 이루어져 도시화와 산업의 발전을 막는다는 것이다.
경제사학적으로 보면 '1인당 노동생산성을 올리기 위해선 고도의 도시화와 공업의 발전으로 인한 분업을 하면 생산성이 복사가 된다'는 건 애덤 스미스부터 지적된 얘기고, 중국의 경우 단순히 생산성을 폭증시키는 기술 자체는 고대에 이미 여러 가지를 발견해놨다. 파종기와 쟁기를 합친 중국 농기구 누거만 해도, 기원 전인 한나라 시대에 만들어졌으며 이 덕에 전근대 당시 중국인의 1인당 농업 노동생산성은 16세기까지도 서양의 30배에 달했을 정도라고 한다.[3] 그리고 고도의 분업으로 생산성 높이는 건 고대 전국시대에 이미 진 때 해본 것으로, 진나라는 병사들에게 표준화된 갑옷이나 무장을 지급한 갑병을 양성하기도 했다.[4] 그런데 이 고도의 생산성이 유지되고 계속 발전한 게 아니라 진이 멸망하고 정부가 혼란 상태가 되니 한순간에 사라진다. 비단 진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중국 역사를 살펴보면 이렇게 고도로 노동 생산성이 높아지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전란이나 입구 압박 등 여러 가지 문제로 생산성 향상이 무산되어 버리는 역사의 순환 반복 케이스가 수두룩하며, 이것이 중국의 노동생산성을 정체화시켜 산업 혁명으로 가는 것을 실패하게 만들었다.
상기한 대평형이론에 따라 중국의 도시화 수준이 정체되고, 이를 통한 노동 생산성 향상 역시 어느 시점을 지나면 다시 감소하여 중국사 전반의 긴 흐름으로 보면 중국의 생활 수준은 어느 시점부턴 그저 정체되고 있으며, 심지어 감소하기도 한다. 구체적으로 따지면 송원시대 이래로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명청시대에는 '정체'되었다고 봐도 무방하고 인구가 늘었기 때문에 경제 규모도 증가한 것이지 1인당 생산성으로는 오히려 퇴보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 시기에 기술의 발전이나 서구 등 외부세력의 교류가 있기야 했지만 각종 통계 그래프를 보면 중국의 1인당 GDP나 생산성은 명나라 중기 시기부터 청나라 때까지 거의 늘지 않았다. 서구권 학자들의 경우엔 송나라의 경제력을 높게 평가하는데, 앵거스 매디슨(Angus Maddison)은 1인당 GDP를 450달러로 추산해 당시 송나라가 세계 전체 GDP 비율 중 23%을 차지한다고 추산했고( #), 더 최근의 연구 결과에선 스티븐 브로드베리(Stephen Broadberry)가 1인당 GDP가 1,200~1,500달러 사이였다고 추산했다( #, 양측 자료 모두 1990년 달러가 기준이다). 산업 혁명 초인 1750년 영국의 1인당 GDP가 1,710 달러, 1800년엔 2,080 달러였다. 반면 이로부터 6~700여년 후인 청나라 건륭제 시대 말엽에 이르면 중국의 1인당 GDP는 겨우 조선과 비슷한 600 달러였고 동시기 네덜란드의 1인당 국민소득 2,609달러(1999년 가치 기준), 영국의 2,097 달러보다 훨씬 낮았다. # 이 때문에 당대 서구인들은 황실이나 일부 대도시만 화려했지 대부분 낙후된 중국 농촌의 실상을 보면서 중국이 썩어들어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유독 명청시대에 이렇게 유독 더 심해진 이유는 중국이 인구가 늘면서 전근대의 맬서스 트랩에 걸린 것도 한 몫을 하겠지만 이 소설에서는 무엇보다도 조선에도 영향을 미친 명청의 비효율적인 제도와 이를 성립시킨 잘못된 지도층의 의식을 주 원인으로 지목한다. 예컨데 실제로는 다른 나라와의 밀무역 등의 지하 경제가 성행하는데도 조공을 안 받아주면 그들이 조공무역을 못해서 명나라에 복종 의사를 보인다고 근거도 없이 생각한다는 식이다.[5] 명나라는 태조 홍무제부터가 원말명초의 혼란기의 파괴된 중원을 재건하기 위해 사실 본인조차 한번도 겪어보지 않은, 정말 있었기는 한 건지 의심스러운 소농민 자급자족 향촌공동체 복구를 이상으로써 평생토록 견지했고 결국 그 이상대로 명청시대의 발전 가능성을 서구한테 두들겨 맞기 전까지 그쪽으로 항구적 고정시켜 놓았다. 문제는 이런 체제가 혼란한 전후 재건기에만 시행된 임시방편의 군정책이 아니라 건국 시기 군주인 홍무제와 영락제 이후로도 시대 내내 지속적으로 견지된 것이 문제였고 초기에는 국가를 재건하고 외적의 침입을 제어하는 제도였던 이갑제, 위소제, 해금령은 곧 명나라 경제 발전의 심각한 걸림돌로 작용한다. 이 때문에 그래도 세계적 발전 추세를 따라가던 송원시대 때와는 달리 명청시대는 해양력의 상실 등 여러 시대적 퇴보를 겪으면서 몰락을 거듭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명나라는 그 거대한 사회의 물적운동을 정권의 의지만으론 통제할 수 없었기에 결국 은본위제가 성립되고 화폐경제가 발달하게 되었지만 이에 영향을 받은 옆동네 조선은 진짜 '자급자족적인 향촌공동체'라는 작중 시대의 명나라가 생각한 유교적 이상을 상당 부분 실현했던 탓에 더욱 경제가 위축되었고, 이 결과물이 바로 작중에서 보여지는 조선 전기의 민간 경제였던 것이다.[6]
따라서 생산에만 집중했던 다른 소설들과 달리 이 소설은 국가적 제도의 개선과 사회 여건의 변화를 통한 수요의 창출도 중요하게 여긴다. 중국이 궁극적으로 자생적 산업 혁명에 이르지 못한 것도 높은 생산성으로 뽑아져 나온 물건을 소비해줄 소비층이 있어야 지속적인 발전이 유지가 되는데 중국은 앞서 말한 여러 가지 이유[7]로 일정 정도 국가경제가 발전하다가도 결국에는 선술했던 이유들로 노동자들이 축적한 자본과 임금이 적어지면서 결국 노동 생산성이 부족해지고 수요층이 줄어들어 이것이 정체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소설에서는 심지어 원래 역사에서 산업 혁명을 일으킨 영국도 곡물법의 예를 들며 자칫하면 산업 혁명이 이어지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곡물법은 영국에 수입되는 곡물에 관세를 매겨 지주들의 이익을 도모하며 전반적인 생활비용의 증가-가처분 소득 감소-소득의 감소로 인한 수요의 감소-제조업 수익 감소-국민들의 가처분 소득 감소-저축감소-자본의 축적 저하를 겪었다는 것이다.
작중에서 발생하는 문제도 그렇다. 용광로를 도입해서 이론적 철 생산량은 10배가 넘게 폭증하지만, 다른 작품과 달리 '철 생산이 늘어서 철 농기구를 많이 쓰게 되어서 농업 생산량도 늘었답니다' 같은 전개는 나오지 않는다. 되려 삼남의 경우 철 농기구가 있어도 경작할 충분한 밭이 없는 빈농이 많아서, 잘해야 호미나 팔리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로 인해 의주 제철소는 철을 더 많이 생산할 수 있음에도 수요가 없어서 철의 가격이 하락하자 일을 쉬는 모습을 비추는데, 철을 많이 생산해도 수요처가 없으면 철장들은 조금만 만드는 게 더 돈 된다고 생산성 혁신을 때려치려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반면 본래 역사에서 영국은 직물 등 소비재 중심으로 혁신이 있었고 그걸 소비해줄 중산층이랑 해외 시장이 있었고, 경식은 그 사례를 아니까 농업은 다소 소홀해도 직물 공업이랑 대외 진출, 중산층 양성에 전력을 쏟는다. 그래서 경식의 정책은 일견 흔한 미래용사물 같지만, 조선의 농본주의적 경제학과 그걸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 일반적인 역사 매니아들의 직관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정책을 하기도 한다.
흔히 역사가 선형적으로 점진적으로 발전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기술발전-사회 여건의 발전 등 모든 조건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순간, 기존의 낮은 생산성 발전과 느린 변화를 초월하고 혁명적 시대전환이 이루어졌던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결국 벽에 막혀 도돌이표 속에서 살아왔던 것이 인류의 역사였다는 것이다.
즉 이런 기술들이 꾸준히 개량되어 노동생산성을 증가시키기 위해선 단순히 우월한 현대기술을 이용한 기물만 무조건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이를 유지할 수 있는 사회 전반의 변혁이 필요하다.[8] 영국 역시 산업 혁명기 무렵에 이런 생산성을 계속 향상하는 기술들을 발견하는 동시에, 애덤 스미스를 비롯한 경제학자들이 이론을 정립해서 이 생산성 높이는 기술을 유지하는 사회를 만드는 법을 찾았기에 산업 혁명은 이 두 가지가 맞물려서 성공할 수 있었다.
작중 경식의 개혁에 사용된 기술은, 몇몇 사례들을 제하고 보면 이미 이전 시대~당대 중국에서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개발된 기술들로 첫 도입 자체는 어렵지 않은 것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수익성과 정책의 문제 등 사회적 제반 문제 때문에 효과를 거두지 못하다가, 경식이 제도를 뜯어 고쳐서 수익을 내고 투자를 유도하는 사회 구조를 만들고서야 기술들의 효용이 폭발해 조선 경제의 생산성이 극적으로 향상되는 장면들이 나온다.
단편적인 기술은 아무리 뛰어나고 혁신적이어도 사회나 세상을 바꾸는 것은 어렵지만, 경제 개발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를 가지고 제대로 된 사회 제도를 구성한다면 비로소 혁신적인 기술이 인간의 삶을 바꿀 수 있으며, 느릿하게 변화하던 전근대의 틀을 깨고 급격한 발전을 이룰 수 있고, 산업 혁명 역시 그 연장이라는 것이 본 소설의 주장인 것이다. 주인공 박경식은 단순히 현대인 천재론에 따른 영웅이 아니라 그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정확히 알고 이를 만들려는 인물이며, 이 소설은 대체역사물 웹소설의 틀을 빌려 전근대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산업 혁명은 어떻게 촉발되었고 어떻게 영국에서 실제로 이루어질 수 있었는지, 왜 영국 외 다른 국가에서는 이게 실패했는지 조선 전기 시대를 대입해서 고찰해 보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엄청 진지한 소설 같지만 의외로 문체는 매우 가벼운 편으로, 다양한 종류의 패러디가 뜬금없이 튀어나와 가볍게 웃으며 읽을 수 있다. 특히 오타쿠 관련 소재 개드립이 교묘하고 자연스럽게 삽입되어 있어서 알아본다면 더욱 즐겁게 볼 수 있다. 또한 웹소설 트렌드에 맞게 작품 내용이 너무 복잡하거나 어려워지지 않도록, 작중에서 거론되거나 사용되는 경제학 지식은 학습만화나 고등학교~대학생 교양 수준을 넘지 않는 정도를 유지한다.
심지어 경제학 지식 부분을 잘 이해 못한다고 해도, 코락스의 혁내취, 탐태창 이후로 유행하고 있는 블랙 코미디성 서술을 중간중간에 섞은 개그성 장면이 잘 삽입되어 있는데다가, 인터넷 밈이나 드립을 자연스럽게 잘 녹여넣는 높은 필력으로 독자가 지루하지 않게 서술하기 때문에, 마치 학습만화에서 이론 부분을 스킵하듯 경제학 파트를 넘어가며 보더라도 재미가 있다. 물론 곱씹으면서 보면 더 재밌다.
개그적으로 스토리를 전개하고 서술함에도 불구하고 조선 시대에 대해서 진지하게 현대적인 경제 이론을 접목시키는 매우 파격적인 작품이라서 조선에 억지로 현대 시사적 관점을 도입하는 작품 아닌가 하는 불안을 가지는 독자들도 있으나, 작중 사건들은 정말로 현대 경제 제도가 도입되었을 때 진짜 전근대 조선에서 일어날 법한 일들을 위주로 전개하기 때문에 그런 억지 관점은 안 보인다. 그런데도 근현대부터 전근대까지 모두 풍자하는 서술 자체는 버리지 않기 때문에 읽는 재미가 있다. 특히 작중 주인공은 박경식은 자유시장경제를 신봉하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고, 내레이션은 또 그런 박경식을 계속 비판하는 구도라서 풍자의 균형이 절묘하게 맞는 것이 웃음거리. 예를 들어 혼분식 장려 운동 포스터 하나로 공산주의 국가들과 현대 대한민국을 동시에 풍자하는 절묘한 풍자력을 보여준다.
5. 패러디 요소
5.1. 1~10화
-
까다롭스키
1화, 「프롤로그 : 수상할 정도로 까다로운 교수님」 -
사도세자는 편하게 살고 싶다
광숙게장이라는 이름의 가게로 들어가서 교수가 처음으로 꺼낸 말은 이거였다.
(...)
"경식 군, 사실 전 조선총산신령연맹 소속의 산신령입니다."
1화, 「프롤로그 : 수상할 정도로 까다로운 교수님」
-
임꺽정은 살아있다
"라순아! 염라순!"
그러자 또 마블 영화에서 본 것 같은 이펙트가 일어나며 이차원 게이트 같은게 열리고 지옥 같은 풍경이 그 너머에 보였다. 웬 여고생 같은 누군가도 보였다.
1화, 「프롤로그 : 수상할 정도로 까다로운 교수님」
-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2화, 「여기가 어디요? 내가 누구요?」
-
봇치 더 록!
2화, 「여기가 어디요? 내가 누구요?」
-
명군이 되어보세
'그나마 주변 사람 얼굴도 모르고서 ' 뭐지? 개꿀잼 사극 세트장 몰카인가??? 아저씨, 내가 왕이면 라면 좀 가져다주실래요?' 같은 어리버리한 짓은 안 해도 되는게 그나마 다행이군...'
2화, 「여기가 어디요? 내가 누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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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피스
그러나 '취소해라, 방금 그 말!'이라는 말에 정말로 '취소.'한다고 일이 끝나는건 아니다.
2화, 「여기가 어디요? 내가 누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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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아카이브
대간은 성종 시기에 단련된 직업정신 ' 아무거나 탄핵한다, 이것저것 수양해라!'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2화, 「여기가 어디요? 내가 누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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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럭키짱
'모조리! 쓸어버릴까? 아예 입도 뻥긋 못하게 사화(士禍)를 내버릴 수도 있다.'
2화, 「여기가 어디요? 내가 누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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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세월호 참사 대국민 담화
6화, 「고심 끝에 "대간 해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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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덤(한국 드라마)
"그어어어어어..."
"으어어어어..."
저들을 본 박경식은 순간 자기가 빙의한 세계가 조선이 아니라 넷플릭스 오리지널의 조선 배경 좀비물인가 싶었다.
7화, 「이세계 용사 박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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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르노의 퍼펙트 산수교실
"모두 나 같은 수재가 될 수 있도록 힘써 정진하시오."
7화, 「이세계 용사 박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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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공룡 둘리
"'이세계 용사' 박경식으로 돌아갈 때다."
7화, 「이세계 용사 박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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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 되는 상상함
신료들은 아무도 왕이 머릿 속에서 '본인 지금 이세계 용사 되어서 미래지식 치트 쓰는 상상함 ㅋㅋㅋ' 같은 생각을 하는줄 상상하지도 못했다.
7화, 「이세계 용사 박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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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하자
8화, 「아 장사하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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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짜
그걸 이제와서 다시 한다고 하면, 누굴 빙다리 핫바지로 보냐고 백성들이 개무시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지만
8화, 「아 장사하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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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기 에반게리온
' 배에 타게, 사위.'
'네? 예? 제가요?'
'그래. 자네가 솔거노비들과 여기에 타서 쌀을 공진창에 파는 걸세.'
'갑자기 말씀하셔도 가능할리가 없잖습니까! 게다가 사대부에게 배를 타라니...'
8화, 「아 장사하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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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이것은 『─』(이)라고 한다
'아아, 너희 무식한 시골 선비는 모르는 것인가? 그것은 전량지리라는 이치 때문에 그러는 것이다.'
9화, 「아 장사하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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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미더럭키짱!
' 노비가...말대꾸?!'
9화, 「아 장사하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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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달러
"조 4두."
"예?"
"조 4두. 쌀 1두에 조 4두로 합시다."
"평시에도 쌀 1두에 조 3두 정도인데 흉년에 어떻게 4두 씩이나 드린단 말입니까? 지폐 1전 5문으로 합시다."
"조 4두."
"...조 2두 5승 어떻습니까?"
"조 4두."
"말도 안돼...조 3두."
"4두."
"미치겠군. 알겠습니다. 4두로 드리지요."
"좋아, 고맙네! 4두!"
9화, 「아 장사하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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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발 깝치지마
'지폐를 사두면 자동으로 쌀이 늘어나. 한마디로 쌀이 복사가 된다고!!'
(...)
'이게 있으면 책이 복사가 된다고!!!!'
10화, 「돈이 복사가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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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 안 바꿔줘 바꿀 생각 없어 빨리 돌아가
"안돼. 받아줄 생각 없어"
10화, 「돈이 복사가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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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기 에반게리온
며칠 만에 멘탈이 붕괴해서 ' 종이를 중심에 놓고 누르기...종이를 중심에 놓고 누르기...'라는 구령을 죽어가는 듯한 피폐한 표정으로 중얼거리게 되었다.
10화, 「돈이 복사가 된다고」
-
일본 대단해
그 국수틀을 개조해서 만든 인쇄기를 공개하자마자, 육조가 전부 이마를 치며 국왕 숭배를 시작했다.
10화, 「돈이 복사가 된다고」
5.2. 11~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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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2019)
11화, 「용팔이 1」
-
포켓몬스터(1997)
"로켓단?!"
주변의 조선인 중 그 누구도 경식이 내뱉는 희한한 단어를 알아듣지 못해 찬물 끼얹은듯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아...아니, 내 실언일세. 마저 하려던 말 하게."
경식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아 씨...저거 진짜 로켓단이었는데...' 하고 혼자 중얼거렸다.
12화, 「용팔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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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사마
"용산의 가호? 아아, '그것'들 말인가?"
13화, 「용산 락 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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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조선 관헌들의 '안심하여라 백성아' 는 미래 한국 정부의 '안심하십시오 국민 여러분' 만큼이나 믿음직했다. 수장이 이 씨라는 것도 기묘한 공통점이었다.
14화, 「호조는 오늘도 갈려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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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절반 손해봤어어!
'돈이란게 이렇게 좋은 줄 몰랐습니다! 지금까지 재정 절반 손해봤습니다!'
16화, 「풍년인데 왜 농부는 가난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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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자라니
"저 놈을 호조 서리로 배속하여 함흥 화매소 고자(* 庫子, 창고 관리하는 서리.)로 쓰라."
경식이 이름도 모르는 그 관헌은 '아니! 내가 고자라니! 이게 무슨 소리야!' 라고 외치며 끌려갔다.
17화, 「뉴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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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줘
몰라. 니가 알려'줘'. 군사력 줄이지 말고.
(...)
'당신이 치트키 이세계 용사님이잖아. 당신이 알아서 해줘.'
19화, 「돈이 복사가...안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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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죠의 기묘한 모험
돌쇠 죠타로와 장복 DIO 의 스탠드 배틀의 결과, 군자감 창고 중 한 칸의 문짝이 박살 났다.
20화, 「싸움 수준 실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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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 이거 보여주려고 어그로끌었다
두 상놈들의 가슴이 웅장해지는 싸움 수준은 왕에게도 보고되었다.
20화, 「싸움 수준 실화냐」
5.3. 21~3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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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
탐관오리가 상태창을 숨김[9]
칼(뽑아보니 광선이 안 나오는 광선검 모양이다.)
21화, 「백성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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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마스터 샤이니 컬러즈,
한국 독립 전쟁[10]
"안 별감님? 여기서 뭐하세요?"
" 겨울이?!"
안 별감이 뒷배를 봐주며 술도 좀 거래하고 있는 기방에서 배우고 있는 소기(少妓) 김겨울이었다.
22화, 「백성 2」
-
아무 일 없었다
'아무 일! 없었다!'
23화, 「백성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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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공룡 둘리
'저기, 이이후(伊伊厚)야, 약속한대로 봄이 되었는데 이제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면 어떠니?'
'아 싯팔! 저기 애들이랑 원수라서 못 돌아간다고 했잖아. 군소리 말고 밥이나 줘.'
'귀순할 생각은 있는거야? 귀순할거면 차라리 남쪽 가서 살지 왜 여기서 다른 야인들이랑 싸우고...'
'아이, 싯팔! 약탈 맛 좀 볼래?'
'좆 같은 야인 새끼들...'
(...)
이 기나긴 모멸과 핍박의 시간을 끝내고 '여진 학살자' 조선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25화, 「대초피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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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역사 마이너 갤러리
솔직히 조선인들도 돈이랑 군대가 없어서 못한거지 '만따먹' 해보고 싶었다.
(...)
그리고 솔직히, 문관들도 돈 생기니까 해보고 싶었다. '만따먹'.
25화, 「대초피시대」
조선이 배경이면 주식회사나 '만따먹'은 거의 필수 요소였던 것 같다.
26화, 「농촌이 살아야만 나라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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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팀 에픽
경식이 신하들을 강제 소집해서 여기까지 가르쳤더니 또 신하들이 '아~완벽하게 이해했어(이해 못함)' 하는 표정이 되었다.
26화, 「농촌이 살아야만 나라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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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러시아 총선 사태
투표에 뇌물이 좀 오가거나, 면임 자리 투표에 100명이 참가 했는데 표를 다 합치니 140표가 나왔다던가 같은 사소한 문제만 나왔다.
조선은 벌써 21세기 러시아와 대등한 수준의 민주국가로 발전한 것이다.
27화, 「우리는 주인이다 힘차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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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진주박물관
'고마워요, 국립진주박물관!'
유튜브 알고리즘 따라서 나온 ' 타임슬립을 대비해서 조총을 배우자' 같은 어그로 쩌는 제목의 영상을 보지 않았으면 쓸 수 없는 미래 치트였다.
(...)
정부기관의 공식 유튜브 치고는 무척이나 컨셉을 잘 잡은 그 채널 덕에 경식은 총통과 조총의 차이는 물론 조총의 구조와 종류, 심지어 제작 방법까지 꽤 숙지할 수 있었다.
(...)
파이프 만드는 법은 진주박물관 유튜브에서 봐서 어렵지 않았다.
28화, 「또 이세계 용사 박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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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이제까지 먹은 빵의 개수를 일일이 기억하나?
"...병조는 두정갑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두정의 갯수를 일일히 세 본 적이 있소?"
28화, 「또 이세계 용사 박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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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구
군기시 관헌들이 염치도 없이 왕에게 찾아가서 '우와아아앙! 주상에몽! 큰 일 났어!' 하며 상언했다.
29화, 「아니 내 10만 철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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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사마
"지폐? 아아, '이것' 말인가?"
29화, 「아니 내 10만 철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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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둔
'뭐, 뭐지?! 대체 어떻게 전답이 없는 곳에서 이런 수준의 지폐를?!'
29화, 「아니 내 10만 철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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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많은 돈이었다
30화, 「우릴 돈으로 살 셈인가!」
5.4. 31~4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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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치만 캬루짱 배신자잖아
'에엥? 하지만 윤필상 탐관오리잖아.'
32화, 「진격의 세종(The conquer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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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장콘
윤은로는 죽고 윤필상은 잘려서 그렇지 원래 역사에선 대간들에게 '이딴걸로 경쟁좀 하지마 쉽색기들아' 하고 욕 먹으면서 살았다.
32화, 「진격의 세종(The conquer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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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럭키짱
'모조리! 쓸어버릴까? 3천 갑사가 있으면 입도 뻥긋 못하게 도륙을 내버릴 수 있다.'
32화, 「진격의 세종(The conquer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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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격의 거인
그리고 야인들은 떠올렸다. 세종(세종은 정복왕이라는 뜻이다.)에게 지배 당하던 공포를, 두만강 너머로 쫓겨나던 굴욕을.
(...)
조선인들을 남김없이 구축하려는 의지를 불태우는 여진 예거들은 다 죽어나갔다.
32화, 「진격의 세종(The conquer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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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키짱/명대사
이제부턴 정말 위무사 경영 뿐이야.
32화, 「진격의 세종(The conquer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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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식 방금 개추라고
'전하앗 방금 수차라고!'
33화, 「돈이 생기면 쓰고 싶어진다」
후추? 이 자식 방금 후추라고!
37화, 「생일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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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욱/빈 찬합 밈
그걸 들은 임복이 허탈하다는듯 웃었다.
"아아! 백성이 기근에 시달리는 것을 나라가 구제하는 것에 내 재산을 보탰는데, 나라는 나의 충정을 알아주지 않고 그깟 100전을 위해 첩을 산 것으로 아는구나!
이 첩을 내놓으면 우리 집안은 다시 천민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나라가 우리를 내치는데, 더는 살아 무엇하리!"
"아, 아니, 이 놈이 왜 갑자기 칼을! 잠깐!"
35화, 「돈을 버는 자, 돈을 쓰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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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팀 에픽
경식은 조선에 와서 처음으로 '아~완벽하게 이해했어(이해 못함)'을 자기가 시전하게 되었다.
35화, 「돈을 버는 자, 돈을 쓰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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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하자
36화, 「오늘도 방실방실 밝은 조선의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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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칼들고 협박함?
"어허, 누가 댁들 보고 여기서 놀음하라고 칼 들고 협박이라도 했소? 제 발로 와서 해놓고 잃었으면 얌전히 돌아가야지 이게 무슨 짓이야."
36화, 「오늘도 방실방실 밝은 조선의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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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격의 거인
37화, 「생일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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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강
그녀는 원래 역사에서 연산군이랑 사이에서 8명의 아이를 거의 연년생으로 낳는다. 그냥 사람 자체가 강하다.
37화, 「생일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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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로보
20% 의 사람들만으로도 사고를 일으키기에는 충분하다. 어느 현명한 닌자도 사람이 다섯 모이면 그 중 하나는 반드시 사고를 친다고 했다.
37화, 「생일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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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라이드(웹툰)
어째선지 '오오! 왠지 양반이 된 기분!' 하면서 물러나는게 뭔가 이해를 잘못 한 거 같긴 한데 오해를 정정해줄 필요는 없는 것 같았다.
38화, 「두 사람은 문제아지만 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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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람쥐는 그런거 몰라
'함경도민은 그런거 몰라. 서울에 겨울 왔을 때 함경도민들은 이미 얼어 죽고 있어. 함경도민은 눈 앞의 목면 한 필이 더 소중해.'
38화, 「두 사람은 문제아지만 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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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해시대 온라인
서울에 도착하면 "지금 초피가 대폭락이야...휴." 란 대사로 맞아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38화, 「두 사람은 문제아지만 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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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치웠나,
형이 왜 거기서 나와...?
'탐관오리' 황형을 의주목에서 짜르고 "해치웠나?!" 했던 의주 화매소 관헌들이 "장군께서 왜 거기서 나오시오?" 하는 반응을 보였지만 자세히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
38화, 「두 사람은 문제아지만 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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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술회전
"진다는 말이오?"
황형은 짧게, 싸움이 시작하기도 전에 승리 선언을 했다.
"이기오."
38화, 「두 사람은 문제아지만 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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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마스터 샤이니 컬러즈
경식의 이상형은 굳이 말하면 아이돌 마스터 샤이니 컬러즈의 마유즈미 후유코 같은 츤데레 타입이다.
39화, 「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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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볼
"아, 그래. 드래곤볼의 오지터 같은 거군.
퓨전했을 때 손오공이랑 베지터가 기억을 공유하고, 서로 자아가 나뉘지도 않는데, 다시 분리되면 서로를 타인으로 인지하는."
(...)
'손오공이랑 퓨전이 풀리고서 좆 같아서 다시는 퓨전 안 하겠다던 베지터의 심정을 실전으로 이해하게 될 줄이야...'
40화, 「봉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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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왕
혹시 사람을 말로 쓰는 어둠의 승경도 게임 같은 걸 해서 어둠의 이융이 깨어난 것인가 하는 가설도 잠시 생각했지만, 경식의 인생이 딱지놀이 만화는 아닌 거 같았다.
40화, 「봉 잡았다」
5.5. 41~5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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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피스(만화)
또 일본에 해적이 많다는 것은 동아시아인들 모두가 아는 주지의 사실이다. 미래에도 그 후손들은 조상의 뜻을 이어가는지 해적 만화를 세계에 수출할 정도다.
41화, 「봉 잡았다 2」
"너 이 자식! 이제와서 ' 동료'를 버리겠다는 거냐! 이 배는 우리가 조군에서 쫓겨나기 전부터 함께 했던 녀석인데 이걸 버리겠다고!"
경식이 봤다면 참수 했어도 시원찮을 진짜 범죄자 수적들이 무슨 우애 깊은 해적 만화 같은 대사를 치는 것을 보고 황당해 했겠지만, 이 수적단은 그런 미래 지식 모른다.
41화, 「봉 잡았다 2」
" 제하하하! 빨리 원료를 공급하고 우리가 만든 완제품을 사가라 열등한 식민지 주민 놈들아!"
45화, 「아이신기오로」
어딘가의 우애 깊은 해적단이 섬에서 깽판을 치다가 얻어터져서 2년 뒤에야 다시 모일 수 있게 된 것과 달리, 그들은 선비의 나라에서 온 예의 바른 사절단이다.
48화, 「신항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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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하다
"2월 25일, 오시에 왜선 4척이 비가 갠 틈을 타서 갑자기 녹도로 들어와 만호 김세준(金世俊)과 군관 2인, 진무(鎭撫) 5인, 군사 20여 명을 죽였습니다."
(...)
물론 조선사 전체로 보면 '일본인들이 왜구했다' 같은 일은 동의어 반복이나 다름 없을 정도로 당연한 일이라서 정말 별 것 아닌게 맞긴 하다.
41화, 「봉 잡았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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봇치 더 록!
42화, 「봉 잡았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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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문학
이들은 왕 앞에서 당당하게 절개를 보임으로 발탁된 것이니, 왕은 그들을 용서하며 하해와 같은 성은을 내리는 것이요, 선비들은 그 보답으로 충정을 다하여 싸울 것이니 사실 상 자진입대라고 할 수 있다.
사관들은 사초에 '금상은 상을 비판한 어린 유생들을 용서하고 크게 쓰시니 인군의 풍모가 있으신 분이시다. 성상의 은혜에 감동한 의민과 의사들이 팔도에서 자진입대하니 여간 교화가 아니었다.' 라고 썼다.
42화, 「봉 잡았다 3」
황근쇠 보인이 호랑이처럼 날아서 니마차 출신 야인의 가슴팍을 걷어찼다.
"ᠠᡴᡡ!ᡠᠮᡝᠠᡵᠠᡵᠠ!"
"이 자식이 뭐라는 거지?"
"감사합니다, 영광입니다! 랍니다."
(...)
니마차 야인은 그날 황근쇠 보인에게 반병신이 되도록 맞았다.
구타가 끝나고 황근쇠 보인이 말했다.
"이 밭 전부 오늘 내로 갈아라. 네가 선택해서 귀부해 온 조선이다. 악으로 갈아라. 네가 못 간 밭은 아무도 대신해서 갈아주지 않는다. 여기 연변에서만이 아니야. 조선이 다 그렇다. 명심해라."
45화, 「아이신기오로」
윤효정이 꾸물거리는 것을 보자 해남 현감이
"이 유생 놈이...! 향교에 들어가기 적합한 글재주를 갖고서도 아직 향교에 들어가지 않다니! 이는 명백히 중대한 피역(避役) 행위에 해당한다!!"
라는 기합찬 소리를 하며 강제로 나주 향교에 넣어버렸기 때문이다.
46화, 「수완가」
포신에 포탄을 넣기도 전에 심지에 불을 붙인 사소한 찐빠에 대해 신경 써서는 안된다. 아무튼 장전하던 놈 머리가 날아가지 않았으면 되는 것 아닌가.
해동제국사의 외장형 양심이요, 항해능력 0점의 기수열외자인 유표가 혼자 '아니, 쟤들이랑 대화할 수 있는 일본인들도 있는데 좀 얘기를 해보라고!' 라고 따지고 있었지만, 돛줄도 제대로 못 잡는 더벅머리의 말 따위 들리지 않았다.
(...)
선원들은 첫 해전에 대한 승리의 기쁨을 일지에 기록하도록 기열 유표에게 명령했다.
(...)
해동사 선원들은 주민들이 놓고 간 소와 닭 등을 배로 위치이동하기 시작했다.
(...)
그렇게 고토는 해동제국사의 첫 개항장인, 오도특별자치항으로 지정되었다.
이로써 오도 거추는 평화를 얻고, 조선은 유구로 나아갈 항구를 얻었으니, 이 어찌 조선 좋고 오도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48화, 「신항로 2」
이슬람 상인들의 시체를 토막 내서 인도 토후들에게 보내며 카레 해먹으라는 편지도 같이 보냈다.
해병 수육 이전에 일찍이 포르투갈 카레가 존재했던 것이다.
49화, 「신항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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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 프로젝트
42화, 「봉 잡았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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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ropa Universalis IV
경식이 하카타와 사카이에 조선방을 세우겠다고 제안한 것은, 그냥 경식이 이름을 아는 대충 조선에서 가까운 전통 시대의 항구가 그 둘이어서 그렇다.
(...)
게임에서 주요 항구 프로빈스로 설정된 것도 다 이유가 있다.
42화, 「봉 잡았다 3」
역시 지도 게임은 도움이 된다.
47화, 「신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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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 동방제과
"화포다!!!!!!!피해랏!!!!!!!!!!!!!구석으로!!!!!!!!!!!!!!!"
푸만은 사망했다.
45화, 「아이신기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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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해시대 온라인
물론 경식은 항해술이라고는 대항해시대 온라인으로 배운 정도 밖에 몰랐지만
47화, 「신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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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기 에반게리온
예조에서는 배 이름으로 충무는 좀 에바 아니냐고 했지만, 미래의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무슨 의미로 지은 것인지 알고 있을 것이다.
47화, 「신항로」
대선 초호기가 발산하는 왜구를 거부하는 AT 필드에 어부들은 순조롭게 격퇴 되었다.
48화, 「신항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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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김씨
"어이! 유 씨! 그만 토하고 와서 돛줄이나 당겨!"
47화, 「신항로」
5.6. 51~6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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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 유머/소련/정치와 행정
새로 훈련원에 끌려온 유생들은 서로 무슨 죄로 끌려왔는지 소개를 나눴다.
"자네는 무슨 일로 강화도로 왔나?"
"나는 유표가 오도에서 사사로이 왜인과 통교를 맺었으니 처벌해야 한다고 상소를 올렸다가 왔네."
"자네는?"
"나는 유표는 강직한 선비이니 죄를 용서하고 유배를 풀어줘야 한다고 소를 올렸다가 왔네."
그리고 자신들을 인솔하던 선배에게도 물어봤다.
"선진(先進)께서는 어쩌다 오셨습니까?"
"...내가 바로 유표일세."
54화, 「바다 이야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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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문학
오늘도 새로 들어온 유생이 선임 유생 수군에게 면신례를 받고 있었다.
이들이 성균관에 처음 들어갔을 때도 받은, 유생들의 예의를 기르는 전통이다.
새로 온 유생은 까끌까끌한 미숫가루를 허겁지겁 물도 없이 먹느라 입천장이 까져서 아릴 정도였다.
세 줌 째 먹는데 목구멍에 미숫가루가 느껴져 이전에 먹은 인절미랑 찐쌀까지 한꺼번에 토하고 말았다.
그때 조유형(趙有亨) 부사맹이 호랑이처럼 날아 신병의 귀싸대기를 올려 붙였다.
"따흐흑!"
그 뒤로도 폭력은 계속됐다.
구타가 끝나고 조유형이 토사물을 가르키며 말했다.
"전부 먹어라. 악으로 먹어라. 여긴 너희 집이 아니야. 여긴 유배지라고 생각해라. 아무도 네가 토한 걸 대신 치워주지 않아. 앞으로 갈 벼슬길도 그렇다. 세상 이치가 그래. 네가 저지른 일은 네가 책임지는거다."
54화, 「바다 이야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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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자 슬레이어
(...)
이 세계에서는 '왜구 슬레이어' 해병들이 일본 연안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암약하는 곳이 되었다.
'왜구 슬레이어' 해병대의 배는 바다 위를 미끄러지듯 항해하며 하카타 상인들의 배로 다가왔다.
56화, 「일본을 위한 선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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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라이프
57화, 「일본을 위한 선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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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탐정 김전일
할아버지의 명예를 걸고!
57화, 「일본을 위한 선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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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해시대 온라인
얼마 뒤 포르투갈로 돌아가는 바스쿠 다 가마의 선단은 후추를 한가득 싵고 포르투갈로 돌아간다.
그러나 포르투갈 시장은 그 후추의 물량을 감당할 수 없었다. 리스본 교역소 주인은 바스쿠 다 가마에게 "지금 향신료가 대폭락이야... 휴" 라는 대사를 들려줬다.
58화, 「경제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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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이것은 『─』(이)라고 한다
"아아, 이런 시골에서는 모르는 것인가. 이건 '수전대방차'라는 것이다."
59화,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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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아주 활기차군!' 밈
"안녕하십니까, 그... 진대를 받으러 왔습니다."
"무슨 진대?"
"그... 돈을 빌려준다는..."
"돈을 빌려서 어떻게 쓸 것인지 말하게."
"그... 사냥을 갈 것인데."
"돈으로 무슨 사냥을 갈거야!? 똑바로 말해!"
"악! 소총을 사서 여진, 아니 담비 사냥을 가서 초피를 팔아 돈을 갚겠습니다!"
"좋아! 아주 훌륭하군! 저 자식에게 그 '진대' 하나 내어줘!"
59화,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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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ctoria 3
윤필상의 보고를 받은 경식은 '동만주 일대에 금광이 있었나? 게임에서 동만주 프로빈스에 금광 지대가 있긴 했는데...' 같은 생각을 하며 놀랐다.
60화, 「프론티어 정신」
5.7. 6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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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을 잘 치는 도련님
75화, 「도망을 잘 치는 쇼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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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 아이 어슬렁어슬렁 호시탐탐
80화, 「그 사이 있던 일 1 - 해병 단발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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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마무스메
96화, 「새로운 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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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룰라
"마권을 살 때도 느낀 건데, 말 이름이 다들 왜 저래? 누가 지은 건가?"
"앞에서 산 책을 보니 저것들은 나라의 목장에서 골라온 말들이라 전부 주상께서 지으셨다는데."
"훌륭한 전마가 되라는 뜻이 잘 느껴지는 이름이군."
96화, 「새로운 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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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ropa Universalis IV
경식은 게임에서 톤도(Tondo)라는 이름으로 봤을 정치체와, 지금도 그 이름을 이어가고 있는 마닐라가 그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단순화되어서 표현되는 게임에서와 달리 이 일대의 정치체는 아주 복잡하다.
101화, 「바다의 문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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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ctoria 3
'지도 게임에서는 이럴 때 지방군은 다 해체하고 군대를 수도에만 배치한 다음 법안 밀어 붙여서 내전 터지게 유도하고 지방의 지주들을 다 죽인 다음 진행했는데...'
(...)
게임으로 비유하니까 이상해보이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저것은 전형적인 친위 쿠데타다.
81화, 「순행 1」
경식은 미래에서 게임으로 세계지리를 배워서, 보르네오 섬을 '사금도 나고, 석유도 나고, 철이랑 석탄도 나고, 고무도 나는 곳'으로 생각해서 '지금은 쓸모가 없지만 산업화 시대 쯤에는 반드시 필요하니 유훈을 남겨서라도 먹어야 할 곳'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 이 시대에도 보르네오는 충분히 풍요로운 곳이 맞다.
103화, 「바다의 문명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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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화
양심이 어디 갔나 싶지만, 경식은 자기가 일본에 개입한 것에 대해서 진심으로 '문명화'를 도와줬다고 생각했다. 관소 철폐해 줬잖아? 치안 정상화해 줬잖아? 안 굶어 죽게 콩이랑 조도 (돈 받고) 보내줬잖아? 도시 건설해 줬잖아?
135화, 「스시 프리미엄」
6. 등장인물
6.1. 조선
6.1.1. 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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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전 신씨
이융의 부인. 원 역사처럼 순유한 성격과 남편을 모시는 현모양처로, 작중 내레이션 왈 "그야말로 현모양처의 이데아를 그대로 구현해 놓은 듯한 인물상"(3화)
다만 성격이 너무 '조선 시대 기준으로도' 극한의 현모양처라 주인공을 기겁하게 만드는 면이 있다. 주인공이 사림을 제압하기 위해 3년상을 FM으로 치르겠다고 하자, 본인도 곁에서 같이 하겠다고 나서서 결국 대신들이 항복하고 대간을 청소하게 만든다. 1497년 여름인 31화에서 임신 중이었는데, 상중에 교접한 것인지라[12] 실록에는 기록하지 않고 돌려 언급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사실상 첫 아이인 박경식이 주변을 독한 술로 닦고 드나드는 이들 모두 거친 수제 비누로 손을 씻도록 강요하고 미역이나 다시마를 많이 올리라며 아내 식단까지 관리하려 들어 사관들은 '이걸 기록 안 할 수도 없고...' 하는 기분이었지만 신씨는 나름 행복했다고.
관련하여, 경식은 이미 아이가 둘이나 죽었고 이 시대에 산모도 위험하지 않을까 걱정한 것이었는데[13] 원 역사에서 중전 신씨는 연산군과의 사이에서 거의 연년생으로 여덟 아이를 낳았다. 작중 언급하기로 그냥 사람이 강함.
주인공의 아이돌 덕질이 조선에서는 '왕이 기녀를 후궁으로 들이려고 한다'로 받아들여져서 서총대 공연 이후 서울 동네방네에 김겨울이라는 기녀가 왕의 차기 후궁이라고 소문이 난 상태였는데, 덕분에 혼삿길이 제대로 박살 난 김겨울을 책임지고 후궁으로 들이라고 남편에게 상언한다. 경식이 무심코 현대적 감각으로 못해도 25살까지는 기녀로 일하는 게 맞지 않냐고 이야기하는 바람에, 25살이면 엄청난 노처녀 아니냐고 황당해하기도 한다.
결국 겨울이 상궁으로서 후궁이 되자, 자신은 투기하지 않을 테니 왕실 번창에 힘쓰라고 경식을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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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고
원 역사에서 모친을 닮아 온후한 성품을 가졌으나, 부친의 폐위 이후 본인도 명을 달리한 비운의 세자. 여기서는 잘 태어나서 세자로 자라고 있다. 다만 경식은 혹시 그냥 두면 성종의 피를 발현해 유학 군주로 자랄까봐 걱정하고 있다. 잘 교육해야겠다는 경식의 다짐과는 달리 장악원에서 여악들과 자는 경식에게 문안인사를 드리러 오는 등 미래가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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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순왕대비
성종의 세 번째 왕후. 진성대군의 모친. 족보상 연산군의 어머니로 현 왕대비다. 미래에는 중종반정을 지지해 자기 아들 중종을 왕위에 앉히지만, 지금은 연산군을 지지한다.[14] 연산군이 대간과의 마찰 끝에 삼년상을 치르겠다고 궁을 나가버리자 대노해서 저들이 재이론을 무기로 왕을 해친다면서[15] 조정을 닦달, 대간을 몰락시키는 것에 일조했다.
다만 가문 문제에서는 어쩔 수 없는지 성종대부터 폐급이던 오빠 윤은로가 화폐 범죄에 손을 댔음에도 옹호했다. 그러나 윤은로가 그러다 파직당하고도 또 범죄를 저지르자, 이번에는 어쩔 수 없다고 여겼는지 가문이 박살 나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다. 사실 가문이 박살 수준에서 그친 게 다행이지, 윤은로네 집 노비들까지 우리 주인은 왕도 못 건드리는 왕대비를 뒷배로 두었다고 큰소리 치고 다녔기에 작정하면 강상죄와 반역모의로 엮어서 백 명은 죽여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상놈들끼리 모인 자리에서만 그런 소리를 하는 거였으면 못 배운 것들이라 그런다 치겠지만 다름 아닌 잠행 나간 왕 본인을 면전에서 겁박한 꼴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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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원군 → 대북군 이수
이융의 이복 동생. 딱히 눈에 띄는 구석 없는 후궁 숙의 홍씨의 아들이다. 원 역사에서는 갑자사회에 연루되어 고생하는 등 순탄치 못한 인생을 살다가 30살에 요절한다.
본편에서는 종친들이랍시고 놀고 먹는 게 아니꼬왔던 경식에 의해 지방 관아나 진영이 훈련이나 공사로 비면 임시 지휘관이나 수령으로 나가서 일을 했다고 하는데 그 과정에서 외가인 남양 홍씨 가문의 홍길동과 엮이면서 대위기에 처한다.
이수는 홍길동과 만나고도 군기에 대한 일을 함부로 발설하지 않았으나, 머리 좋은 홍길동이 어느 정도 대화한 것만으로 충청도의 병사들이 강무로 한동안 떠날 것을 눈치채고 슬쩍 이용한 것이다. 결국 이수가 한패는 아니었지만 정보를 흘린 건 맞았다.
왕이 태종만큼 가족을 사랑한다고 믿는 조정에서는 이수가 죄의 유무 상관없이 죽거나 극형을 당할 줄 알았으나, 경식은 기녀들 모아서 라이브해야 하는데 피바람을 일으켜서 분위기를 망친 상태로 할 수는 없다는 이유로 그래 열심히 하자로 무죄 방면을 시켜주는...줄 알았으나, 어쨌든 남양 홍씨가 악영향을 준 건 맞다는 명분으로 성종이 내려준 종친 가문의 어살과 전답 대부분, 홍씨 문중의 재산을 모조리 압수하고 충청도 백성들에게 돌려준다. 동기는 황당한데 하는 행동은 성군인 게 포인트.
그리고 이수는 개척 중인 대만의 대북군으로 봉하고 출국시켜 버렸다. 2년이 지난 1501년에야 재등장하는데, 명나라가 다시 되도록이면 조공무역 입조를 받아주는 것으로 정책을 바꾸자 바로 경식이 배를 보내서 영국이라는 나라를 사칭해서 명나라와 조공무역을 하라고 명령한다. 이에 울며 겨자먹기로 명나라에 가서 몽골 침공 시기에 건너가 나라를 세운 것처럼 위장해 붕가국 왕으로 인정을 받는다.
1502년에 어떻게 사는지 나온다. 경식과 이융 모두 종친이 나대는 걸 용납할 생각이 없는지라 급료는 나와도 아무 실권도 없고, '우리 마을에 왕족님이 계신다' 하며 식민자들을 기분 좋게 해주는 토템 역할이라고. 본인도 큰 의욕이 없어서 허송세월하면서 해병들을 통해 고향의 가족들에게 사탕(설탕)을 선물로 보내고 이복형이 자신을 다시 불러줄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한편 독자들은 행간을 읽고 설탕 같은 고가품이 멀쩡하게 배송되고 있다는 사실에 해병들의 정예한 도덕심에 경악했다. 아울러 이수 이외의 종친들은 나라가 계속 번영하고 있으니 자신들도 대북군처럼 어디 왕작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몸가짐에 주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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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의 홍씨
성종의 후궁 중 한 명으로 무려 7남 3녀를 낳을 정도로 총애받던 인물이다. 장남 이수가 경식에 의해 때때로 관직에 나가게 되자 걱정하며 고향 충청도의 친가인 남양 홍씨에 서찰을 써주었지만, 이 서찰이 홍길동의 손에 들어가면서 도적질에 이용당하고, 홍길동이 아들을 끌어들이는 대참사가 터지고 만다.
주인공이 괜히 일을 키울 생각이 없었고 자순왕대비와 중전 신씨에게 울부짖으며 매달린 끝에 아들의 목숨은 건졌으나, 대만으로 떠나면서 아들을 다시 보기는 어려워졌다. 또한 친가인 남양 홍씨도 사실상 패가망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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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겨울
아이돌 마스터 샤이니 컬러즈의 아이돌 캐릭터인 마유즈미 후유코의 패러디 캐릭터다. 리첼렌의 대체역사 소설 한국 독립 전쟁에서 먼저 패러디 소재로 사용된 캐릭터로, 대타협 시기에 본국에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 남은 일본인으로 처음 등장해특히 그쪽 지식을 잘 아는독자들 사이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는데 그것이 다시 패러디된 것이다.
본작에서는 안중남이 뒤를 봐주던 기루에서 배우고 있는 어린 기생. 안중남의 허세를 단숨에 눈치채는 등 영리하고 눈치가 빠르다. 주인공을 금주령 단속을 위해 관에서 보낸 감찰관으로 생각하고 시간을 벌기 위해서 꼬시려다가 상중이라는 변명에 물러났다.
원래 지방 출신이지만 장악원에서 연회 때 동원하기 위해서 징집한 기녀인데, 21세기 기준으로는 먹히는 외모지만 조선 기준으로는 좀 별로인 외모라서 기껏 서울에 오고서도 장악원에서 계속 시험을 통과하지 못해 기루에서 술을 팔고 있는 신세였다. 그 신세한탄을 들은 경식은 이런 유흥산업도 다 돈인데 자기가 신경을 못 썼다며 기녀들로 아이돌 사업을 할 작정을 하고, 흉년이나 홍길동 등등의 문제를 빠르게 쳐내며 1만 명짜리 돔 공연장 건설을 명령한다. 정작 겨울이는 이런 걸 전혀 모르다가[16] 여악오덕이 반포되고 일거리가 더 줄어들 것 같자 어떡하나 하다가 아이돌 마스터에 스카웃당한다.
그 후 서총대에서 벌어질 공연을 준비하는데 자신을 만났던 젊은 종친이 다름 아닌 왕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젊고 정력적인 왕이 자신을 원하는 것인가 해서 설렜지만, 경식은 그냥 아이돌로 키우려는 생각이었던지라 영 반응이 미적지근했다. 그러나 경식의 의도와는 달리 화장한 것을 평가한다며 불려가 감히 용안을 두 눈으로 보고, 돔(아님) 솔로 무대까지 마련해 주었고, 심지어 겨울이의 솔로 무대에 왕이 가면 쓰고 난입하기까지 했으며, 겨울이가 열받아 장악원을 나가버리자 왕이 허둥지둥 달려가 데려오는 등 어딜 봐도 왕의 총애를 받고 있는 모습이라, 세간에는 주상이 총애하는 여악이자 차기 후궁으로 이름이 높다. 착한 중전은 왕이 자기 신경 써주느라 내관으로 못 들이나 싶었는지 후궁으로 들이라고 상언해 주었다. 경식은 현대의 감각으로 한 25세까지는 아이돌로 활동해도 되지 않나 했다가 중전에게 어떻게 그런 잔인한 짓을 하냐는 반응을 되돌려 받는다.
80화에서 외모에 대해 언급된다. 사실 뽀얗고 깔끔한 피부에 단정한 이목구비 등은 현대든 과거든 미인으로 여겨지기에 충분하나, 문제는 키.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로 조선에서는 체구가 아담해야 미녀로 여겨지는데 김겨울은 키가 163cm나 된다.[17] 현대 기준으로는 한국 20대 여성 평균키인 161cm보다 근소하게 큰 평범한 정도의 키이지만 당시 주척으로는 8척의 장신으로, 당대 여성 평균키 149cm는 한창 넘기고 남성 평균키인 161cm도 넘겨 갑사 선발 기준에 닿을 정도다. 어지간한 남자보다 큰 키라서 기녀보다는 장군감이라고 놀림받기도 하는데, 이융의 키도 170cm가 넘는 당시 기준 엄청난 장신이라 둘이 함께 있으면 훤칠한 선남선녀 커플로 잘 어울린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작가는 Q&A에서 김겨울이 후유코를 안 닮았다고 밝혔다가 "공식이 뭘 알아" 소리를 들었고 # 이후 김겨울의 외모는 후유코를 대입해서 상상해도 무방하다고 한 발짝 후퇴하며 경식이가 김겨울을 볼 때 외모를 보고 후유코를 닮았다고 생각할 일은 없다는 의미로만 받아들이라고 했다. #
그 후에도 가끔 만난 모양인데, 이미 왕의 여자라는 소문이 다 나서 혼삿길이 완전히 막혔던지라 경식이 책임지게 되었다. 경식은 25세까지만 여악계에서 활동하자고 했던 것 때문에 바로 반말을 들어가며 구박받았고(조선시대 25살이면 현대로는 40살은 된다. 40살까지 연예계 활동하라는 소리에 왕이고 뭐고 들이박았다), 한참 갈굼당하다 결국 1502년에 상궁으로 책봉된다. 이미 왕에게 승은을 입었다고 소문이 나서 사실상 후궁으로 들인 것.
이후 마포읍성에 집을 받았는데, 마포에는 군수물자를 생산하는 군기시 공장과, 피서 겸 출장을 위한 행궁이 만들어져 있어서 왕이 격주마다 가도 이상하지 않은 장소다. 왕 상대로 편하게 대하는 것도 있어서 마음이 편한 경식도 업무 핑계를 대고 만나러 간다. 이미 관계를 가졌는지, 경식은 의복 문화 연구랍시고 가터벨트, 스타킹 등을 입혀보고 겨울은 입혀보기만 하냐면서 역으로 덮치는 등 신혼부부 그 자체. 이 개량 한복은 독자들이 AI를 돌려본 결과 세미풍이었다고 한다. 덕분에 1년도 안 되어서 임신했다.
1503년 왕자군을 낳았고[18], 숙원으로 봉해져 숙원 김씨가 된다. 후궁 중에선 품계가 낮은 자리로 보이지만, 이 자리는 명목상 궁내의 실과 옷 재고를 감독하는 일을 한다. 물론 실제론 왕의 첩들이라 지금까진 명목에 불과했지만 경식은 실제로 겨울에게 일을 맡길 생각이다.
왕에게 반말을 하는데, 원 역사에서 장녹수가 연산군에게 반말을 하고 노비 부리듯 하기도 했다는 일화에서 따와서 그 연산군의 취향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경식은 그 후에도 심심하면 장악원에 들러서 겨울이의 후배들과 잘 놀고 있다. 아침에 인사를 올리러 온 아들과 얼굴을 맞댈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6.1.2. 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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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로
자순왕대비의 오빠. 족보상으론 연산의 외삼촌. 주인공 빙의 당시 내의원 제조였으나, 사실 가문의 힘 덕에 올라온 낙하산일 뿐 능력은 없고 욕심이 많다. 작중 디스로는 '일머리는 없고 부정부패 머리는 있다.'라나. 대간에서도 내치라고 탄핵하는 일순위 간신.
이전 성종조 시절에 방납을 저질러 탄핵된 적이 있고, 주인공이 조선에 온 후에는 주인공이 시행하는 지폐 정책 때 어깃장을 놓는다. 내의원 소속 장인들에게서 장인세로 지폐를 거뒀는데, 기존 장인세에 비해 백수십 배에 달하는 값이어서 빡친 주인공이 곤장 80대를 후려갈겨 죽이려 했으나 왕대비가 옹호해 파직되는 선에서 그쳤다.
그러나 지폐 가격이 오르는 것을 이용해 지폐를 매집하는 투기를 저질러 서울 일대에서 심각한 디플레이션을 일으키며 해쳐먹고 있었고, 주인공이 방납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서 한강의 포구들을 잠행하다가 하필 윤은로가 뒷배를 봐주고 있던 사주인들과 만나는 바람에 윤은로의 비리를 알아채게 된다. 결국 분노가 폭발한 주인공에 의해 동생인 윤탕로와 함께 용산에서 참형에 처해진다.
이 사건의 여파로, 파평 윤씨 가문 최대 공훈신인 윤필상에게까지 영향이 미쳐 파평 윤씨 가문은 조정에서 삭제된다. 덤으로 의금부에서 윤은로 집에 들이닥치는 순간에도 환치기를 해서 벌어먹을 계획을 짜고 있었다. 그 부분이 들켰다면 곱게 참수가 아니라 가문째 능지처참으로 죽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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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신
조정의 정승. 영의정. 왕족과도 여러 대 얽힌 명문가의 대신이다. 대간들과 사이가 좋지 않아 자주 고발을 당하지만 대승적 차원에서는 그들을 보호하려는 면모도 있다. 작가가 연재분 꼬릿말에서 이는 실제 역사의 노사신이 무오사화 당시 노사신이 신료들을 보호하려는 행보에서 모티브를 땄다고 언급했다.
주인공의 개혁을 대체적으로 지지했으나[19] 문득 이대로 가면 현왕 대에서 조선은 사대부의 나라가 아니게 될 것이고, 사림이 주류가 될 후배들은 왕의 경장을 이해하지 못해 뒤처질 것을 직감한다. 왕의 개혁을 늦추고 사대부들을 새 왕이 만들어 갈 나라에 적응시키기 위해, 왕이 가르치는 경제학을 홍문관에서 신진 관료들에게 가르치자는 타협안을 내놓는다.
결국 무오사화로 인해 김종직과 연루된 신하들이 모조리 쓸려나가게 생기자, 강귀손과 같이 자비를 청한다. 주인공은 자비를 베푸는 척 사림파 신진관료들을 모조리 일본에 투척한다.
이후 경식 4년차, 노사신이 노환으로 죽음을 앞두고는 왕이 도학을 싫어하는 것이 단순히 방해되어서가 아니라 마치 '실패한 것을 후대에서 보고 온 것처럼' 멸시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평생을 바쳐 청사에 이름이 남기를 원했는데 자신뿐 아니라 모든 선비가, 그것을 넘어 도학 자체가 실패하는 미래가 기다리는 것이 아닌가 두려워하며 비참하게 죽는다. 이는 단순한 두려움이 아니라 객관적인 근거들이 많았는데, 우선 주인공의 능력이 노사신이 봐도 너무 뛰어났는데, 왕의 능력을 부정할 수 없으니 그의 예측도 부정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주상은 즉위하자마자 조선조 내내 숙원이었던 세곡 저장 창고를 완비했고[20], 이것도 심지어 세곡 창고 완비는 최종 목표가 아니라 지폐를 도입하는 것에 연관된 서브 퀘스트 수준이었으며, 불과 한두 세대 전에 세종대왕의 지폐 도입 실패를 겪은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벌어진 일이었다. 그 후로도 주인공은 계속하여 백성들을 배불리는 성과를 거두었는데, 이것은 단순히 감각적인 것이 아니라 무언가 논리와 체계를 가졌으면서도 성리학과는 궤가 다른 학문이었으니 현실정치를 추구하는 성리학이 무용했다는 증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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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세겸
꼬장꼬장한 노대신으로 언급된다. 다만 외교에 대한 재능을 인정받아서 일본 막부에 통신사로 파견되기도 한다. 그 뒤로는 왕이 유교적 가치에 맞지 않는 기행을 벌일 때마다 직언을 하는 캐릭터로 나오지만, 1502년에 사망했다고 언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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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선
중전 신씨의 부친. 좌의정. 딸이 남편을 따라서 삼년상을 치를 기세를 보이자 앞장서서 대간을 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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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극돈
원 역사에서 사초를 유출하여 무오사화를 일으킨 것으로 알려진 훈구대신. 극초반에서는 이조판서로 언급되며, 노사신과 함께 왕의 절대권력화를 우려하던 인물로 나온다. 또 중간에는 조선인은 밥을 너무 많이 먹어서 문제이니 적게 먹는 것을 장려하자는 주장을 해서 경식에게 절식 운동과 혼분식 운동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그러나 원 역사대로 사초의 내용을 유출하여 무오사화를 단초를 제공한다. 그 뒤로도 유능하다고 계속 기용된 모양이지만, 1502년 가을에 노환으로 건강이 급격히 나빠져서 은퇴하여 요양하는 중, 주해헌천정요를 받아보고 왕의 이해할 수 없던 행보가 단순한 패도가 아니라 자주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도학이라는 것을 이해한다. 패도를 걷는 왕의 행보를 이해하지 못하고 두려움 속에 죽었던 노사신의 무덤으로 가서 주해헌천정요를 올리고 극락왕생을 빌어주며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심정을 말하고,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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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극규
호조참의. 육조 중 예산 관련을 집행하는 기관의 수장. 위의 호판은 거의 언급이 되지 않고, 참판인 홍귀달은 얼마 못 가서 튀었다고 언급된다. 연산의 개혁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기관으로, 한양에서는 '관복 입고 반 죽어있는 시체 같은 게 있으면 호조 관리다'라는 말까지 돌아다닌다. 노사신과 함께 훈구파 노신들로, 이대로라면 후일 사림이 왕 앞에서는 의견도 못 낼 처지가 될 것을 걱정한다. 1502년 초에는 과부 재가 허용을 지지하는 대신으로 나오며, 1502년 가을에는 사망했다고 언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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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충순
군기시정. 경식이 분업을 통해 군기시의 생산량을 수백 배[21] 향상시키자 눈이 돌아가 노비들을 이용해서 짚신을 대량으로 생산했다. 그러나 짚신은 조선인 누구나 만들 수 있고 딱히 쌓아둘 물건도 아니기에 팔리지 않았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은 '분업으로 생산량을 늘릴 수 있다'는 논지로 유명하지만 정작 그 뒷이야기는 ' 그래서 그걸 어떻게 팔 건데?\'라는 내용이라고.
이것이 상께서 언급하신 수요와 공급의 원리(정확히는 희소성의 원리지만 틀리지는 않다)라고 깨달은 한충순은 다음에는 역시 경식이 만들어 준 가마니 틀이 돗자리를 짜는 데도 쓸 수 있겠다고 개량하여 돗자리 대량생산을 시작한다. 돗자리는 좌식 생활을 하는 조선에서는 생활 필수품이자 소모품이며 화문석이나 용문석 등 무늬를 넣은 것은 진상품으로까지 쓰이는 중요한 경공업 생산품이기 때문으로, 이 소식을 경식이 들었다면 돗자리에서 산업 혁명이 시작되는 거냐고 황당해 했을 거라고 한다. 본래 영국의 산업 혁명 역시 경공업품인 면직물에서 시작되었으니 유사성을 떠올릴 법하며, 경식이 가져온 개혁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개선하며 활용하려 하는 현지인의 긍정적인 한 예시라고 할 것이다.
이후로도 드문드문 언급된다. 삼년상 후 조정에서 치른 첫 잔치에서는 '군기시에서' 승경도놀이를 하자고 제안하고, '군기시에서' 수상할 정도로 많은, 하나하나 승경도 자리가 그려진 돗자리를 가져와 인정전 마당에 깔아 품계석도 같이 승경도판으로 만들고 당하관들이 말이 되는암흑의 인간승경도놀이판을 만들었는데, 일부러 언급하는 것을 보면 한충순의 분업 돗자리 공방이 무늬도 넣을 수 있게 된 듯하다. 상술했듯 무늬 없는 돗자리는 조선인 누구나 시간만 들이면 만들 수 있으니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흉년에 기민들이 걸식하는데[22] 일부를 돗자리 공방에서 흡수하는 등 잘 나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한편으로는 왕이 내세우는 개혁을 악용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왕이 특허제도를 신설하자 돗자리틀을 자기 특허라고 등록하려다 까이기도 하고, 그 다음에는 무늬를 넣은 돗자리틀을 특허로 등록하는 과정에서 심사관으로 선발된 장인을 뇌물로 매수해서 특허를 성사시킨다.[23]
작품 초기에 돗자리와 함께 '소모성이고 쉽게 만들 수 있는 생활 필수품'으로 언급된 물건으로는 빗자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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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청례
훈련원 습독관. 아버지 대에 귀화한 알타리부 여진족 출신이다. 여진족에 대한 실태를 잘 파악하고 있어, 주인공의 개혁으로 재정이 넉넉해지자 북방에 군대를 늘려 달라고 간청한다. 원래 역사에서 연산군이 즉위한 바로 전년에 경기도, 황해도, 충청도에 기근이 들어서 대량의 유랑민이 발생한 상태였는데 그들을 불쌍히 여긴 주인공이 군인이라는 명목으로 대충 배속하고서 밥을 먹여줬다. 사실상 난민들인 그걸 군대라고 생각하고 주인공 입장에서는 난데없이 2만 금군을 찾아 무시당하나 그럼에도 계속 요청하여 주인공이 서정을 단행하게 만드는 단초를 제공한다.
알타리 부족의 중진이자, 건주여진 동맹가첩목아의 조카이기도 하다. 그의 소원대로 알타리 부족은 조선군과 같이 우디거 부족을 박살 내버리고 조선에게 많은 물자를 공급받으며 겨우 수년 만에 조선 산하로서 동만주의 강력한 부족으로 번성했다.
동청례 본인 또한 위무사에 소속해 여진족 관리 일을 돕고 있었다. 황형의 요동행에 동행해 건주위 부족 여럿을 조선으로 갈아타도록 설득했다고 한다. 설득 방식은 황 장군 한 명이면 너희가 따르는 건주 몰살 가능이라고 요약하는 협박이었고, 동청례와 인연이 없는 부족들은 신종도 안 하고 도망도 못 쳤을 경우 황형이 직접 병력을 이끌고 가서 잘 처리했다. 여전히 만주에 있는 듯 하며 형 동아망개와 같이 조선에 신종하려는 부족들을 중개하고 있다. 해설에 의하면 몇 년 되지도 않았는데도 건주위의 세력도가 조선과 명 반반 수준으로 돌아온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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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부
원 역사에서 표해록의 저자. 표류 때 중국에 들르며 본 것을 바탕으로 수차를 만들 것을 성종 때 상언하고 실제로 만들었으나 널리 보급되지 않아서 답답해하고 있었는데, 주인공의 개혁으로 조선의 재정이 넉넉해지자 수차를 만들자고 두고두고 상언한다. 심지어 2년차에 예산편성을 하는 와중[24] 수차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는데 어디선가 "전하앗 지금 수차라고!"를 외치며 달려왔고, 주인공은 수차 못 만들어 한이 맺힌 귀신이라도 붙었나 하며 군기시에 임명해 조선에 맞는 수차를 만들어보라고 허락했다. 작중 언급으로 실제 역사에서는 최부 본인이 수차 못 만들어 한이 맺힌 귀신이 되었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군기시의 제철로에 달 수력 풀무를 만들어내었으며 이것이 빙고의 얼음을 이용한 냉풍기로 발전하자 신료들이 장인들을 부러워하고 빙고와 당시 근무하던 마포행궁을 확장하자고 상언하는 상황도 벌어진다.
이후에는 주인공의 명으로 중국에 보내진다. 그 와중에 조선에서는 봄 흉년이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이 수차를 더 만들었으면 흉년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 하면서도 주인공이 시킨 대로 원 시절 쓰여진 왕정농서를 구해오는 데 성공한다. 이는 작중 시점에서도 거의 200년 전인 1313년에 집필된 책이지만 수력 방적기 등 각종 자동화기계에 대한 설명과 제조법이 적혀있다. 동양과 서양의 산업 혁명 발생의 차이를 다룰 때 항상 언급되는 사료 중 하나라는 설명이 나오며,이번에도박경식은 졸업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알게 되었다. 신료들이야 늘 그렇듯 그런 걸 어떻게 아는 거야 하고 황당할 뿐.
김종직의 문하였으나 무오사화에서도 능력이 있어 처벌받지 않고 넘어갔다. 한강변에 수차를 수십 개씩 세워놓고 온갖 자동화 시스템을 연구했지만 반은 실패하였고, 덕분에 수차의 바퀴 부분만은 많이 만들어졌으므로 여기저기 공급해서 물레방아 정도는 잔뜩 세워서 민생에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왕이 또 유심히 보더니 수차를 이용해 드릴을 돌려서 쇳덩어리에 구멍을 뚫어 대포를 만들 수 있는 수력 보링 머신을 뚝딱 만들어 냈으므로 '왕이 없던 시절의 범부' 취급당하고 있다. 정작 경식은 공돌이가 아니어서 이 이상 복잡한 선반 같은 것은 만들지 못하리라고 언급되었으니, 최부와 같은 현지인들의 노력을 기대해야 할 듯.
그렇게 행복한 수차 라이프를 보냈으나, 왕이 천원지방설을 논박하고 땅이 둥글다고 주장하자 그럼 지구 옆이나 밑에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서 있냐고 묻다가 ' 지구 평평론자 따위가 논박하는 게 시건방지다'는 이유로[25] 적도 남쪽을 직접 탐험해서 확인하라며 자바섬으로 가는 사신으로 발탁된다.
이에 임사홍과 같이 선단을 꾸려서 동남아시아까지 가게 된다. 다녀온 후에 남긴 체험기를 남만열국기라는 이름으로 출간하는데, 경식이 이에 대해 사상 최초로 저작권이라는 개념을 만들어주었으며 서울 안에서 크게 인기를 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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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사홍
성종-연산군 대의 유명한 간신. 그러나 외국어 습득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인물이라, 계기는 아들 임숭재가 부친이 성종조에 파면당한 게 억울하다고 올린 상소를 보고 동남아 탐사대에 올려버린 것. 이에 아들을 타박하면서 비장한 각오로 배에 오른다.
동남아 탐사를 끝내고 돌아온 이후 원하던 대로 승지로 복권된다.[26] 그렇게 복권된 이후 전처럼 강직하게 고집부리다 파면당하는 일은 없게 하겠다고 다짐하지만... 제례악에 미니스커트 팔일무를 올리자는 명령을 전달하는 일 등이라서 내면의 유교 드래곤과 성리 타이거에게 시달리고 있다.
유자광과 마찬가지로 이미지가 상당히 좋아진 인물이다. 간신이라는 인식과 달리 연산군의 폭정에 딱히 원인을 제공한 것도 아니고, 채홍사란 왕의 첩실 관리직에서는 굴욕이라며 태업하는 등 소극적으로나마 반항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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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숭재
원래 역사에서 연산군의 음악 취향을 잘 맞춰서 장악원 제조가 되고, 흥청에 들어갈 미녀를 찾아서 바친 희대의 간신. 아버지의 복권을 상소했다가 동남아 탐사선에 태워버렸다. 이 세계에서도 왕의 비위를 잘 맞춰서 장악원장으로 일하는데, 칭제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칭제건원 때 종묘제례에서 팔일무를 올릴 때는 기녀들에게 왕이 만든 옷을 입히자고 제안한다. 그런데 그 주인공이 만든 옷은 미니스커트, 스타킹과 가터벨트, 시스루 저고리 한복이다.
이에 극심한 저항감을 느끼고 고뇌하는 아버지와는 달리 정말로 기쁘게 업무에 매진하고 있어서, 임사홍에게 태생부터 불효자 자식이라는 쌍욕을 들어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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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필상
파평부원군. 좌우의정, 영의정까지 거친 대신 출신으로 파평 윤씨 가문의 원로 외척이다. 무능하고 탐욕스러운 육촌 윤은로와 달리 유능하고 탐욕스러운 인물로, 극초반부터 대간들에게 탄핵을 당한다. 윤필상의 능력을 보고 써먹으려던 주인공은 그냥 대간들을 밀어버리고 윤필상을 쓰려고 했으나, 윤은로 사사 사건에 연루되어 모든 벼슬에서 물러난다. 그 뒤로도 여전히 가노를 서리로 넣어서 월료를 가로채는 등의 '조선식 재테크'에 열중했다. 이 부분은 주인공에게 들켜서 가노를 전부 압수당한다.
그렇게 소소한 부패(?)만 하면서 나라 사업에 끼어들어 투자하다가, 대신들에게 성종조에 도원수직도 한 적 있다면서 번리도원수로 다시 임명되어 북방으로 차출된다. 처음에는 환갑 넘어서 두만강을 넘어가야 한다는 소식에 환장했지만[27] 잘만 하면 막대한 예산을 주무를 수 있다는 생각에 또 뭔가를 해먹으려 한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예산을 내주는 실무 담당인 길주 화매소에, 극초반의 윤필상을 탄핵했던 그 대간 출신들이 즐비했고, 부풀린 예산은 죄다 깎였다. 주인공이 초반에 대간들을 밀어버리면서 제일 머나먼 양계 지방의 화매소들에 서리로 박아 넣어버리는 장면들이 있는데, 바로 그들이어서 거친 북변에서 실무를 경험하며 완전체로 진화해 있었던 것. 공교로운 우연이 아니라 복선이었다. 이에 그래도 자신이 산 주식(고본첩)이 서정 사업의 10퍼센트는 되기에, 서정 사업이 잘되면 한 몫 챙길 거란 생각에 번리위무사 경영에 집중한다.
그러나 함경도 주민들이 모피를 바로바로 파는 데다가,[28] 조선 특성상 겨울이 끝나면 모피 시세가 뚝 떨어질 게 걱정이었다. 또한 너무 모피를 모아놨다가 수요를 초과해서 오히려 가격이 떨어질 수도 있었다. 이에 고민하다가 황형의 제안을 받아 명나라에 모피를 팔아치운다.
그렇게 1년차 예산은 해결했지만 겨울이 지나자 모피와 삼 장사가 시들해지면서 다시 위기를 맞는다. 사방의 여진과 적대 중이라 군축도 못하는 판에 고민하다 4진 경작권을 조정에 요청해 얻어내고는 성저야인들이 경작하고 있던 논밭에 싸그리 병작반수를 걸고, 가죽을 공납으로 바치게 명하고, 야인이 받는 철과 소금을 독점하는 등 온갖 횡포를 부려서 착취하기 시작한다. 이러다 성저야인들이 반역하는 거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으나, 어차피 알타리 위시한 신종파 야인들은 이미 갈아탄 배를 쉽게 버리기도 아쉬웠기에 타이밍을 놓치고 동네북이 된 반조선 니마차, 우디캐 여진족을 적극적으로 털어서 보충하며 먹이사슬이 형성되었다.
4년차에 이계동과 교체되었는데, 이 시점에서는 함경도 주민들도 당장 필요한 만큼은 목면을 구했고 모피 가격변동에도 눈을 떴는지 모피를 모아다 팔 뿐만 아니라 배를 타고 직접 내려가 거래를 하기도 한다고 언급되었다. 본인은 이계동에게 인수인계를 해주면서 그가 돈벌이는 뒷전이고 만주를 정복해서 고구려의 강역을 회복하고 중국을 막을 요새와 방어선 설치에만 관심이 있다는 걸 알고 빨리 고본첩을 익절하기로 마음먹었다.
한양으로 돌아와서는 고본첩을 함부로 팔았다가 왕한테 찍힐 것을 우려해 고본첩 거래소를 만들자고 상언했고, 경식도 이제야 조선인들이 경제 맛을 보았구나 하며 반색하며 마포에 주식거래소를 열었다.
이후엔 돈 될 만한 건 잘 알아보는 본인의 능력을 살려서 금란권을 관리하는 특허청장과 유사한 자리에 올라 조선의 특허제도를 정비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망원경을 발명하여 역사에 망원경 발명자로 이름을 남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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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숭조
그 유명한 정인지의 아들. 능신이나 재물을 좋아하여 상인들과도 거리낌없이 교류한다. 때문에 명나라행 사신으로 임명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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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숭질
호조판서. 평준도감 제조로 경식의 경제학을 그나마 이해하고 각종 정책을 지지한다. 호판이라는 직위에 비해 언급은 한참 후에야 처음 되었을 정도로 늦지만, 경식의 돔 건설 명령을 기민의 일종으로 이해하여 왕이 '하고자 하는 대로 행해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만큼 홀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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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손
그 유명한 무오사화의 원인 제공자. 전임 대간들과 비교하는 것이 모욕일 정도로 어긋난 고집을 가졌다. 본래라면 주인공 치세의 조정에서 관직을 지킬 수 있을 리가 없으나, 운 좋게도 즉위 1, 2년간 부모의 삼년상을 치르고 와병으로 지방에 있었기에 숙청을 피한 것이 밝혀졌다.
결국 성종실록 편찬 과정에서 조정에 있을 때 세조에 대한 있는 말 없는 말 전부 지어낸 것이 발각되어 무오사화가 일어난다. 그렇게 잡혀왔음에도 찌라시 수준의 글을 사초에 쓴 게 문제라고는 생각 안 하고 사초를 유출시킨 이극돈을 욕하고, 허반과 김굉필 등에 김종직 산하의 다른 동문들까지 끌어들인다. 결국 권오복, 권경우와 함께 능지처사. 이융이 힘낸 듯. 김종직도 부관참시당하고 그 문하 중 진작 능력을 증명한 최부나 평준도감 소속, 그 외 빠르게 손절한 일부를 제외하고는 죄다 일본으로 보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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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순정
현 사림파 관료이자 미래의 중종반정 공신. 의주목사, 관찰사 등을 역임하는 미래의 중신...이었을 텐데, 주인공이 기획한 공성전 훈련에서 명령을 듣지 않은 병사들을 참수했다. 이 일은 왕인 주인공이 말렸음에도 거부하고 벌인 일이라서 독자들과 중신들의 반발을 샀다. 이후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일본으로 추방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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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광
예종-성종-연산군-중종 시대를 관통하는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간신. 서얼에다가 무반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잡학과 실무에 능하고 눈치도 빠른 등 능신이라서 계속 중용된다. 얼마나 유명한지 경식도 유자광의 존재로 자신이 온 시대를 가늠했다.
경식은 유자광에 대한 편견으로 상당한 거부감을 느끼는 묘사가 계속되는 한편, 경식이 대간 등 강직한 사대부들에게 분노할 때 경식의 눈치를 살피고 강경처벌을 주장했으며 무오사화 때는 김종직에 대한 원한도 있겠다 김종직의 조의제문이 역심을 품은 것이라고 해설하여 경식에게 사화를 일으킬 명분을 제공하는 등 간신다운 짓을 한다.
그러나 막상 경식이 써먹어 보니 실무도 잘 하고 업무도 잘 보고 배 건조에 대해서도 잘 알고 심지어는 요리에 음악까지 잘 아는 만능이라 황당할 지경이었고, 심지어 서총대 공연 준비 때에는 경식이 미래에서 베껴 온 퀸의 음악을 새 악기까지 만들어가며 성공적으로 편곡하고 훌륭한 음악이라고 칭찬해서 경식의 마음에 쏙 들어 중용된다.
작가가 서총대 에피소드에서 붙인 각주에 따르면 모두 실존 인물 유자광의 역사적 업적을 그대로 따온 것이라고 하며, 독자들도 '유능한 간신이니까 왕이 가장 흥미 있어하는 것을 통달한 것'이라고 감탄할 정도. 전통적으로 한국 사극에서 '능력 있는 간신' 포지션으로 나온 인물답다.
이후로도 경식은 계속 중용하는지 관제 개편이 이뤄진 1502년 가을 시점에는 중추원 총리대신으로 언급된다. 원 역사에서도 무관 정1품인 대광보국숭록대부까지 올랐으니 개편된 관제에서 똑같은 품계까지 오른 셈.[29]
이때 유자광의 충성 행보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유자광은 자신의 어머니가 노비였다는 것을 매우 의식하고 있어서 하인이나 노비들의 고초를 매우 신경 썼고 자주 간언했는데, 왕이 그런 간언을 거의 다 받아줬고, 1502년에는 급기야 노비 세습 금지령을 내렸기 때문.[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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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굉필
원 역사에서는 조선 성리학자들의 시조 격 인물이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게 현실이지만 조광조의 스승이라고 하면 알 것이다. 원 역사에서는 무오사화에 연루되어서 귀양 간 곳에서 조광조를 만나 가르치지만, 여기서는 스케일 크게 사쓰마에 교수관을 보내준다는 명목으로 보내져 사실상 추방되었다. 경식도 조선사와 성리학에 대해서는 영 꽝인지라 누군지도 모르고 그냥 김종직 문하라는 이유로 보낸 것이지만, 상당한 역사의 개변을 만들 만한 사건. 타다마사에게 상서를 가르치며 임토작공의 뜻은 토산물을 바치는 게 맞다고 주장하며 일본이 바른 치세를 회복한다면 공납제를 도입하라고 주장한다.[31] 이때 일본이 바른 치세를 회복하려면 일본 국왕인 쇼군을 중심으로 뭉치는 게 맞느냐, 아니면 천황을 중심으로 뭉치는 것이 맞느냐를 타다마사가 묻는 떡밥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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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귀손
권농청 제조. 각지의 향교에서 가르칠 농학 교재 등의 교육을 담당하는 총애를 받는 중신이다. 부친은 그 유명한 금양잡록을 저술한 강희맹. 조부, 형에 이르기까지 4대를 농학을 연구한 전통의 농학 명문이다. 다만 경식의 경제 개혁에는 농지를 잘 분배하면 말업은 필요 없다라는 상소를 올리는 바람에 평생 콩라인을 넘지 못할 듯.
6.1.3. 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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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형
씬 스틸러원래 역사에서 여진, 왜와의 전투에서 활약한 무장이다. 본작에선 번리위무사의 설치 후 수년 간 북변에서 활약한 장수.
본래 의주목사였으나 업무보다는 밀무역을 통한 치부에 힘썼는데, 의주 화매소 역시 길주와 마찬가지로 대간 출신들이 즐비했고, 그들에게 탄핵되어서 잘릴 뻔하다가 그의 무장 경력을 눈여겨본 대신들의 추천으로 번리위무사로 체직된다. 상소가 들어온 처음엔 경식이 관세를 도입하기도 전에 무역으로 돈을 벌고 있었다는 것이 괘씸하다는 이유로 그냥 자르려고 했지만 번리위무사가 필요해진 뒤에는 '돈 좋아하고 무역 잘 하고 여진족도 잘 잡는다니 완벽한 인재'라고 평가가 바뀌었다.
도착하자마자 조선 및 조선의 번리인 알타리 부족과 오랜 원수인 우디거 부족의 본거지로 진격, 병력을 동원해 들이쳐서 철저히 약탈하고 불태웠다. 그렇게 조선에 신종하거나 동청례의 설득으로 돌아선 부족과는 협조하고 반조선 부족들은 직접 군사를 이끌고 설득하다가 윤필상이 모피를 팔 곳을 고민하자 요동을 통해 중국에 팔자고 제안, 1천 갑사와 병력을 끌고 만주를 가로질러 요동까지 가 자신이 의주목사 시절 알아둔 요동도사에게 모피를 팔고 비단으로 받아 조선 본토에 되팔아 막대한 돈을 번다. 그 과정에서 건주위 여진이 조선의 진출을 막기 위해 공격해오자 300명의 병력만 데리고 요격에 나선다.
몸통이 위아래로 분리될 것 같은 발언과 달리 황형은 괴력난신인 주술 따위가 아니라 총을 사용했으므로 전투에 돌입하자 건주위와 제대로 충돌하기도 전에 조총 사격으로 100명가량을, 그 후의 냉병기 근접전에서도 우월한 갑사들의 무장과 전력을 활용해 압도해서 건주위를 격퇴한다. 그리고는 조정에는 동청례와 같이 말을 맞춰서 알아서 자복한 건주위 번리들을 겁박하는 건주 도적들을 의주목사와 힘을 더해서 격파했다고 써서 냈다.
이후에도 번리 여진들과 위무사 병력을 이끌고 건주위를 공격해 말을 약탈하는 누가 야인인지 모르겠는 행보중, 자신과 죽이 맞던 요동도사가 해고당하는 바람에 밀무역 라인이 끊기는 참사를 맞는다. 건주위가 마시를 여는 걸 보며 왜 야인에게는 열어준 시장을 제일번국 조선에게 닫냐고 의기소침해 돌아가던 중 명-여진 무역의 허점에 생각이 미친다.
그리고 건주좌위를 추적하더니 공격해 싸그리 죽여버리고 칙서를 강탈해 번리여진족 동아망개를 건주위로 위장시켜서 마시에 들어가는 작전을 생각해낸다. 그렇게 번리위무사의 적자를 해소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세우고, 이후로는 번리여진과 같이 울지령까지의 여진들을 깔끔히 정리해 3진을 추가 설치하는 데 공헌한다.
탐욕스러우나 군재는 당대 조선에서 따라올 자가 없는 명장이다. 여진족을 상대할 때 조선군은 몇 배의 병력이 필요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황형은 그런 거 신경 안쓰고 비슷한 병력으로 우디거를 개작살냈고, 상대보다 수가 적은 300명을 데리고 건주위를 요격하면서도 자신감을 보인다. 물론 조선의 철기 갑사들이 당시 여진보다 훨씬 정예한 전력이기도 하지만 그런 거 없던 원 역사에도 여러 번 이겼던 데다가 후일 삼포왜란도 단숨에 제압한 인물이기에 그런 황형에게 수천 정예병과 자율작전권이 주어진 번리위무사 일은 정말 물 만난 물고기인 셈. 작중에서도 다시 없을 천직을 갖게 되었다라고 묘사한다. 단순히 무재뿐만이 아니라 정치적 감각도 예리해서, 번리여진들을 짐승 취급하며 낮추어 말하는 것과 달리 채찍과 당근을 번갈아가며 잘 다독여 끌어들이고 있다.이게 짐승 취급 아냐?
여자신과 교체되어 일본으로 보직을 이동해 해동척식주식회사에 배치된다. 규슈에서 오우치 씨를 지원해 오토모 가문과의 전쟁에 참전한다. 본인이 잘하는 기병이 거의 없는 규슈의 조선군으로 어떻게 하나 고민했으나, 강력한 대포를 신앙하는 왕의 지혜를 믿어보기로 하고 대포를 최고로 활용할 수 있는 전술을 세워 대승을 거둔다.
그런데 탐욕스런 성정은 어디가지 않아서, 다이묘들의 가문의 명복을 빌어주는 사찰인 보제사의 보물들을 털어대지 않나, 세토내해의 해적들을 약탈하고, 오토모의 명의를 사칭해서 호소카와가 가진 감합을 빼돌리는 등 그야말로 자낳괴 같은 행적을 계속 갱신하는 중. 경식도 황형을 병조판서도 시키고 죽을 때까지 부려먹어야겠다고 생각하는 등 위아래가 손발이 아주 잘 맞고 있다. 한편 경식이 좋아할 만한 계획을 세우는데 그것은 바로 일본 대부분의 무역선이 접근하는 세토내해를 조선의 것으로 흡수하려는 것. 때문에 해동제국사의 함선들이 모이자 공격적인 행보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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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동
병조판서. 경식의 개혁으로 강해지는 국력에 홀린 인물 중 선두로, 10만 철기, 고구려를 그리고 있다. 언행을 보면 명나라도 잠재적국 취급. 아예 의주마저 콘크리트를 바른 성형요새로 떡칠하자고 했다가 그럼 어떤 예산이 드는지 아냐고 바가지로 욕먹고 그렇게 고구려가 좋으면 고구려 땅으로 보내주마 하며 번리도원수로 쫓겨났다.
...그런데, 사실 원 역사 이계동은 무과에 장원급제한 천성 무골이었고 명나라의 변경 군사에 대한 정보를 모으기도 했으며 여진족들에게도 이름을 날려 임기를 마치고 떠날 때는 그들에게 인사를 받기까지 했다고 기록된 인물이다. 이러니 독자들은 사업가 기질에 가까웠던 윤필상보다 더 위험한 인물이 왔다고 보고 있다. 지금까지는 윤필상이 황형의 브레이크가 되어주었지만 이계동은 황형보다 더한 놈이라고. 어떻게 봐도 조선 역사상 최강의 군대를 양성한 주상이 3천 정예 갑사를 포함해 전투병력 1만이 꾸준히 실전경험을 쌓고 있고, 친조선 여진족이 세력을 확장하고, 여진-함경도민 혼성 예거들이 증식 중이며, 대대적인 보급선과 후방 보급기지가 건설되었고, 심지어는 사금을 캐서 군자금까지 확충할 수 있게 된 고구려 땅으로 고구려 전문가를 보낸 꼴이라 독자들은 '역사상 최강의 인사 참사'가 벌어질 것을 기대하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윤필상에게 인수인계를 받고는 대고구려의 부활을 계획하기 시작한다. 윤필상은 이계동이라면 동북 여진족을 평정하는 건 분명 가능할 것이나, 돈벌이보다는 전쟁에 혈안일 게 뻔해서 기본적으론 돈을 벌어야 하는 위무사의 재정이 위기라고 생각했다. 물론 경식도 이걸 걱정했으나 동북에서 사금까지 채취가 되자 여유가 생겼다고 판단해 보낸 것.
자신과 동류인 여자신과 의기투합해 왕의 명령인 고구려- 발해 유적 조사를 유적을 토대로 방어선을 설치해 만주를 정복하라는 것으로 자의적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서쪽으로 가서 모련위 여진족을 포섭한다. 그렇게 4년 동안 만주 사방의 성터 유적을 보수하고 재건하며, 조선의 군사력을 확충하다가 임기가 다한다. 그러나 한양으로 복귀하지 않고 여자신과 같이 만주에 남아서 광개토대왕릉비를 조사하라는 한직 자리로 내쫓겼다고 한다. 그러나 원래도 무재가 뛰어난 인물이고 그 밑에 요동의 조선계 유민들이 속속들이 모여들고 있기에 실제로는 상당히 권한이 있을 걸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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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신
황형의 후임 두만병마사. 성종조 훈춘 공략을 제안했던 인물. 본래 오위도총관(정2품)이었으나, 스스로 강력하게 요청해 번리위무사 두만병마사로 이동했다. 본인이 원하던 훈춘은 이미 4진 중의 하나로 조선에 흡수되었기 때문에 그 너머인 울지령 너머 우단강 일대를 정복해 고구려의 강역을 회복하자는 주의.
본인과 동류인 이계동과 의기투합, 북쪽으로 군대를 이끌고 올라가서 목단강 일대를 난리가 나게 만든다. 당장 울지령 이남의 니마차 우디캐 여진들은 도망쳤던 입장인데 조선군이 추격해온 거라고 착각한 것. 목단강에서 더 북으로 가면 나오는 도골 우디캐 여진은 안 그래도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니마차가 번리위무사를 피해서 자기들 영역에 자리잡아 골치아파했는데, 여자신과 조선군이 성터를 살펴보러 오자 경악해 니마차 여진들과 크게 싸운다.
물론 여자신은 그런 것에 관심 없었고, 상경성 유적을 발견했는데 이걸 토대로 성형요새를 세워서 우디캐를 완전히 축출하자고 상소를 올린다. 보고를 받은 경식은 이놈들이 뭘 하고 있는 거냐고 경악했다. 경식은 북쪽보다는 신규 4진+북쪽 3진의 동쪽에 있는 동북쪽부터 신경 쓰라고 명하자, 거기도 고구려(?)의 유적이 있다면서 그 쪽을 집중 공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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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
원 역사에서 해랑도 초무사로, 본작에서는 해동제국사 해랑진 첨절제사. 강직하고 용맹한 무관으로 추천을 받아 해랑도를 드나드는 해동제국사 선박들을 통제하고 관리한다.
강직하긴 한데 황형과는 180도 다른 별종으로, 한성부윤 시절엔 종친이 규정을 어기는 집을 짓는다고 들이받아 공사를 중지시키고, 포도대장일 때는 세도가의 하인들이 횡포를 부리자 생포해서 린치하며, 군관으로선 병졸들이 군율을 어기면 망설임없이 참수하며, 자기 아들이 횡포를 부리고 다니자 쳐죽인 또라이다. 당연히 전부 원래 역사에서의 실제 행보다.
해랑도에 드나드는 해동제국사 선박들은 전임의 이런 성정을 이용해서 해랑도에 사는 중국인 해적들에게서 삥을 뜯고 다닌다. 중국 해적들이 해동제국사의 터무니없는 바가지 거래에 응하지 않으면 바로 잡아서 전임에게 넘겨버리는 것. 원래 조선은 명나라와 마찰을 우려해서 중국인 범죄자들을 섵불리 죽이지 못하지만 전임은 그런 거 없이 다 찢어죽이니 그것을 이용하는 것.
그렇게 해랑도를 완전히 평정한 이후엔 해동제국사로 보직을 이동했는데, 대마도 원주민 전멸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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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개
신숙주의 손자. 주인공 즉위 첫 해에 대간들을 치울 때 의주 화매소로 끌려갔다가, 무오사화 때 김종직 라인이라는 이유로[32] 규슈 주둔 육군으로 또 끌려갔다. 주인공이 문인 리스트를 뒤지다 발견했는데, 이름이 웃겨서(...) 눈에 띈 것. 인사이동된 이유도 가관인데, 눈에 띈 김에 추운 데서 일하고 있었으니 따뜻한 곳으로 보내줘야지 & 화매소에서는 머리가 고생했으니 이번엔 몸을 쓰게 해 줘야지. 그래도 일본으로 온 것에 대해 불만은 없는데, 대일본 교역 기관인 '해동제국사'의 이름이 조부인 신숙주가 쓴 일본에 대한 지리지인 '해동제국지'에서 따 온 것인지라 왕이 일본에 관심이 많으며 조부의 업적을 이어가라는 의미로 자신을 일본으로 보낸 것이라고 착각했기 때문. 북변에서도 단순한 귀양이 아니라 제대로 일하고 있으면 승진도 하고 제대로 된 상소를 올리면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해 보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공로를 세우기 위해 혈안이 되어서, 유담년에게 오우치 측에서 항구로부터 백 리 안까지 들어갈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을 빌미로 하카타 주변 주요 길목에 역참을 세우자고 제안한다. 조선에서는 경식의 개혁으로 역참 자체가 치안 유지 기관이 되었는데, 어차피 조선에서 각 부서가 알아서 운영비를 버는 것에는 익숙했고 일본의 제도인 관소에서 통행세를 걷는 것을 착안하여 통행세도 걷기 시작한다. 이때 할아버지의 명예를 걸고 반드시 공로를 세우겠다는 드립을 친다.
일본에서 정보 조사를 잘 해서 보고를 올리고 있다는 떡밥이 간간이 나오다가, 황형이 일본에서 재등장할 때 황형의 보좌관으로 재등장. 약탈에 혈안인 황형에게 일본의 정세와 풍습에 대해서 설명하는 역할이다. 하지만 황형은 신용개가 설명하는 내용을 듣고 VPN 작전을 떠올리거나, 세토내해의 해적을 약탈하는 등 기상천외한 행보만 보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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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담년
박다(하카타) 진절제사. 천생 무관으로 황형 같은 유연성이나 능력이 없다. 때문에 왜인들의 반항에 골머리를 앓으며 신용개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원 역사에서는 삼포왜란에 엮였던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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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기파
원래 역사에서는 삼포왜란 때 활약한 장수. 삼포왜란 문서에서도 나오지만 그 때 제압한 왜구의 배를 가르고 쓸개를 뜯어먹는 행동으로 소야차라는 별명이 생긴 장수다. 본작에서는 산구(야마구치) 수영을 맡은 첨사로 첫 등장한다. 세토내해 제해권을 장악하는 에피소드에서 재등장하여, 한 해적섬을 제압하다가 자신의 부하가 억류당해 있었던 것을 보고 분노하여 왜구의 배를 갈라 쓸개를 뜯어먹어 왜인들에게 공포를 안겨준다.
6.1.4. 기타
엑스트라 같은 캐릭터들조차 작가가 실제 기록을 토대로 재창작하였거나, 최소한 이름이라도 빌려온 인물들이 많다.실존 인물이면 ★ 표시, 이름만 빌려온 인물이면 ☆ 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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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효정★
원래 역사에서는 해남 윤씨의 중시조. 해남의 선비. 원래 역사대로 해남 부호인 정씨 가문의 데릴사위이며, 원래 역사에서는 연산 9년에야 생원시에 붙는다는 점이 재해석되어서 글공부머리가 없는 허접 취급을 받으며 처가에서 눈칫밥을 먹는 중.
경식의 지폐 발행 때 첫 마중물 정책으로써 화매소에서 경기, 충청도에서는 타 지역보다 쌀을 비싸게 사준다는 방이 붙자 " 배를 타라, 사위"라는 장인의 명령으로 아산까지 배를 타고 쌀을 팔러[33] 가게 된다. 그러나 이미 늦어서 지폐가 떨어졌으므로 주변 상인들에게 쌀을 본전만 남기고 팔 뻔했으나, 지폐가 추가로 공급된다고 헛소문을 퍼뜨리고, 이에 몰려든 상인들에게 지폐 대신 시세보다 더 많은 조로 교환, 이 조를 또 시세보다 싸게 인근 주민들에게 팔아치워서 쌀 값보다 더 많은 지폐를 벌어들인다. 글머리는 없지만 장사머리는 있는 듯.
그 이후로는 향교에 들어가서 농학을 배웠으며, 해남의 권농관으로 일하고 있는 모습이 묘사되었다. 윤효정의 삼림 재생은 굉장히 효과적이었고, 감탄한 경식은 한문이 모자란 것 정돈 상관없다면서 그를 바로 발탁해 굴리기로 한다. 경식은 이미 보고서를 한글로 쓰는 것도 받으라고 절차를 고쳤고, 수년 내로 아예 한글을 주요 문자로 바꿀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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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귀영★
해남의 부호, 지주. 윤효정의 장인이다. 이득을 취할 기회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잡으려고 하지만 나름 선량한 성정인듯 하다. 위의 윤효정이 아산까지 가서 쌀을 팔아야 했던 것도, 마을 사람들이 세금을 낼 돈이 필요했으므로 정귀영이 총대를 잡고 배를 사서 마을 사람들의 쌀까지 싣고 팔러 보낸 것이었다.
조정에서 요역부를 모집할 때 한 달에 40전씩 돈을 주기로 하자, 이 역을 강탈하는 비리들이 일어난다. 정귀영도 그리하였지만 절반인 20전을 주고 요역 역할을 사서 가노들을 보냈는데, 정작 나라에서는 '소득세 원천징수'를 해서 4할인 16전을 떼고 24전만 주었기 때문에 얻은 수익은 1인당 4전뿐이었다. 즉 본래 역을 져야 할 사람들의 일을 대신하고 받은 월급으로 세금까지 내준 꼴이 되었다. 하지만 가노들이 '돈 도로 뺏어올깝쇼?' 해도 말리고 납세 증서인 준납첩마저 원래 일할 사람들에게 준 덕에, 역을 뺏었다는 점도 들키지 않고 넘어갔다. 사실 준납첩을 3부 발행해서 중앙, 납세자, 해당 관청이 각기 가지는 시스템이어서 중간에 누가 가로챘다면 중복 발행이 발생해서 중앙에서 결산하는 과정에서 들켰을 터인데 자신도 모르는 채 무사히 넘어간 것. 작중 실제로 함경도 도사가 요역 자리를 그냥 강탈하는 부패를 저질렀다가 걸려서 참수당했다.
연산 즉위 3년차에는 선물 거래에도 눈을 떠서 목화 거래로 흉년이 들었는데도 흑자를 봤다고 한다. 다만 본래 향리가 될 뻔했다가 뇌물로 겨우 피하고 데릴사위를 들여 과거에 합격시켜 양반이 된다는 계획이었는데 공부머리 없는 사위가 마을에 제방 쌓기를 감독하러 오자 결국 향리가 된 거냐고 혀를 찼다. 다행히 아직은 확정된 게 아니고, 경식이 이런 현장지도 업무를 향후 시험에 반영한다고 인턴으로 써먹은 것이라 희망이 남아있다. 결국 상술했듯 주상에게 직접 발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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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평
한양의 양민. 관아 서리로 윤은로처럼 지폐를 매집해 가격이 오르면 되팔려고 했으나, 업계 큰손이던 파평 윤씨가 걸려서 수십 명이 참수당하고 가문이 반토막난데다가, 조정에서 물자 유통을 조절하기 시작하면서 한순간에 거지가 되었다. 심지어 지폐를 매집하려고 집안의 전답조차 팔아버렸다.
때문에 앞날이 어두워 한강 근처를 알짱거리던[34] 찰나에 아내 이조이가 국채(원납전)을 사라고 제안하자 고민 끝에 구매하고 팔아버린 전답에서도 소작이나마 짓는 걸로 한숨 돌린다.
이후 아내 이조이의 제안으로 번리위무 고본첩도 구매하는 등 점차 투자에 발을 들인다. 그러나 선물 거래가 퍼지기 시작하자 거기에 투자한다고 사채까지 끌어썼다가 홍길동 패거리에게 노비로 팔려가 훈춘 인근에서 사금을 캐는 노비 신세가 된다. 하지만 경식이 홍길동의 약탈에 꼭지가 돌아 온 군대를 동원해 홍길동을 잡으려 한 덕에 골간 여진들에게 뚝배기가 깨지긴 했으나 생포(?)당해 구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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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
연산군 시대에 활동한 유명한 도적. 선물 거래를 활용해서 사적인 경매장을 열어서 사람들을 속여 작전질을 하고, 고리대로 빚을 지게 한 뒤 빚을 못 갚았다는 이유로 납치해서 노비로 삼았고, 충청도에서도 고리대금업을 한 뒤 그들을 잡아와서 훈춘 근처에서 사금을 밀채하는 데 동원했다. 심지어 자신들을 고발하지 못하도록 작은 마을을 학살하고 얼굴가죽을 벗겨 나뭇가지에 걸어놓는 등 잔학하기 그지없었다. 실제 역사에서도 홍길동을 잡고도 십년 이상 충청도에서 세금을 걷지 못할 만큼 깽판을 친 잔인한 도적이었다고.
경식은자신의 개발딸을 방해한홍길동의 만행에 격노해서 충청도에 포위섬멸작전을 시행하여 잡으려 했다. 이세계 용사면 한번쯤 해야 한다는 개드립을 보아 포위섬멸진 드립을 노린 것이 확실하나, 실제 정책 모티브는 일제의 남한 대토벌 작전이었다. 1만 대군을 동원해서 충청도를 양반이고 뭐고 못 지나다니도록 봉쇄하고, 주요 교통로를 장악하여 막고, 도적들이 숨을 만한 작은 마을을 파괴하고, 오가작통법으로 백성들이 서로 고발하게 하고, 점점 진군해서 포위망을 좁히는 등 정말로 근대를 방불케 하는 고도로 체계화된 작전을 시행하여 3개월 만에 충청도를 쓸어낸다. 원 역사의 남한 대토벌 작전도 2개 연대를 동원한 것에 비하면 그야말로 뇌절 수준. 전지적 시점 서술에서 경식은 모두에게 평등한 제국주의자라고 까는 것은 덤.
그런데 빠져나갔다. 신료들도 이런 놀라운 작전에도 불구하고 추포하지 못한 것에 당혹해 하였으며, 결국 경식은 홍길동이 군 내부에서 정보를 빼낸 것이라고 판단하고 홍길동에게 당한 마을들이 죄다 남양 홍씨 문중의 농장 근처에 있다는 것을 알아냈으며 빈민들을 납치해서 써먹을 일은 노비밖에 없는데 충청도 포위섬멸진에서 발견되지 않았으니 멀리 데려갔을 것이고 그렇다면 배를 사용했을 것이다...까지 추리했지만, 그 사이 신하들은 남양 홍씨 가문을 통째로 국문해서 홍길동의 정체와 위치를 알아내서 생포한다. 덕분에 경식은 자신의 미래적 추리기술보다 고문[35]이 더 효과적이었다는 사실에 빈정이 상했다.
자신이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얼이라서 출세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원한을 품고 비뚤어진 사고를 가지게 된 인물로 묘사된다. 경식의 개혁이 가져온 밝은 면은 철저히 외면하고, 자신이나 왕이나 자기 욕심을 채우려 한 동류이며 신분이 달랐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서얼인데도 왕자군들은 종친으로 대우를 받는다며 열등감을 품었고, 어차피 죽게 되자 서얼 차별을 법으로 못 박은 성종을 비웃고자 자기 조카 손자인 완원군을 자신의 배후라고 증언한다. 정작 완원군은 그를 가문 어른으로서 존댓말을 쓰며 대우했고 홍씨 문중의 노비들은 그를 '도련님'으로 호칭했다는 점이 웃음거리. 물론 경식은 자신의 개발딸을 방해한 도적놈의 심리상태 따위에는 전혀 관심없었고, 그 후 외척들에게서 재산을 회수할 때마다 분위기 조성용으로 끌려나와 두들겨 맞은 끝에 동료 엄귀손과 같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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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귀손★
홍길동의 좌주. 성종조에 황형, 윤필상과 활약했으며 정3품 절충장군까지 지낸 무관이다. 동북 번리위무사의 3, 4위에 위치하는 고위직 무관인 우후로 홍길동의 재능을 아깝게 여기고 친우가 되어, 말을 놓고 서로 이름을 부르는 계급을 뛰어넘은 친밀한 관계가 되었다. 심지어 의복 일체를 내어주어 홍길동이 처사로 행세할 수 있게 해 주었을 정도. 홍길동의 인신매매에 발을 걸쳐서 그가 잡아온 백성들을 사금 채취에 동원하고 이를 의심하는 골간 우디캐를 입막음했다. 그러나 결국 꼬리가 잡혀 추포당했고, 빛나는 우정답게 홍길동이 잡혔을 때 같이 잡혔고 함께 맞아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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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말동☆
한양의 상인. 윤필상의 돈을 관리하는 상인이다. 납전첩 발행 때 윤필상의 이름을 대며 납전첩을 사재기하고(18화), 납전첩 회수 때 관헌들이 오자 버팅기거나(35화), 배를 해동제국사에 바쳐서 벼슬을 사는 등(42화) 은근히 지속적으로 등장하지만, 본격 등장은 유구 항로 개척 에피소드.
해동제국사 벼슬을 샀다고 좋아했으나, 돈 주고 산 벼슬이라 권위가 없던 탓에, 함께 떠난 뱃사람 경험치가 훨씬 높은 선원들에게 오히려 반쯤 먹혀버렸던지라 오히려 자기랑 비슷하게 무시당하는 성균관 출신 유표와 같이 힘겹게 배를 통솔해야 했다. 아무튼 결국 유구 항로를 개척하는데 성공했으나, 조정에서는 처벌해야 한다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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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막동
한양의 병사. 기병이지만 말도 없고 칼도 자루밖에 없는 데다 집도 가난해 맨날 남의 번상 짬처리나 해 주는 신세지만 그래도 나름 지갑(紙甲)에 투구, (무기고에서 가져온) 창 정도는 갖추고 다니는 이 시대 기준 정예병이다. 첫 등장 당시 수문을 서던 중 신분을 숨긴 경식을 멋모르고 보내줬다가 호되게 경을 친 전적이 있다. 그래도 악감정은 크게 없었는지 이후에도 경식과 나름 정답게 대화하며 엿도 얻어먹는데 본인은 이 정도 가지고 주상의 총애를 받는다고 거들먹거리고 다닌다. 그래도 이런 뻥카가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주는지 청렴해지고 강직해지는 선효과가 발생 중. 후에도 금주령 중에 밀주업자들을 혼자만 붙잡았다가 상사에게 혼나던 중 경식이 잠행 중에 발견한 덕에 무사히 넘어갔다.
이후 조선의 변화에서 한양 양민들의 변화를 보여주는 인물로 다시 등장한다. 조선군이 소수정예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무사히 금군에 편입되어서 궁에서 계속 번상을 서고 있었다.[36] 다만 경제관념은 여전히 없는지 아내가 겨울 오기 전에 땔나무를 마련해야 한다고 경고했는데도 어련히 괜찮겠지 하다가 겨울에 땔감도 없이 냉골에서 버텨야 할 상황. 심지어 삼림계가 설립된지도 몰라서 들어갈 수 있는 땔나무 산에도 못 들어갔다... 그렇게 아르바이트라도 해야지 하고 헤매다가 사표국이 뒷간을 비우는 걸 발견하고는 자신들도 사표국을 만들어 똥오줌을 치워주고 돈을 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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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남☆
액정서 별감. 금주령을 피해서 몰래 술을 주조하는 기루를 봐주고 뒷돈을 받았다. 그러나 왕의 뜬금없는 잠행으로 인해 걸릴 위기에 처하자 어떻게든 숨겨보려고 발악한다. 왕의 관심을 술이 없는 곳으로 돌리려고 하나 높으신 분이 가지 않을 지저분하거나 부정탄 곳으로 술독을 빼돌릴 때마다 경식은 그런 데를 봐야 한다고 다음 경로를 정하니 왕이 계속 술독을 쫓아다니는 꼴이 되어 우왕좌왕하는 개그씬을 연출한다. 원래 역사에서는 한강변에서 캔 옥을 바치고 액정서 자리를 얻은 인물인데, 작중 시점보다 훨씬 후에 있는 사건이므로 그냥 이름만 따온 인물이라고 작가 미주에서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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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망개★
동청례의 형으로, 건주위에 속해 있던 여진족 추장. 원래 역사에서도 연산군 2년 겨울에 건주삼위에 삼위경차관이라는 관직으로 찾아온 동청례와 만나고, 조선에 신종한다는 의사를 밝히며 만포 건너편에 살겠다고 했으나 명과의 외교적 마찰을 부담스러워한 조선이 거부하여 무산된 일이 있다.
본작에서는 원래 역사와 시간 자체는 거의 같으나, 동청례가 황형이 이끄는 번리위무사의 병력과 함께 건주삼위를 찾아와서 건주위 일부를 격퇴하였고, 동아망개는 그대로 만포 건너편에 번리로 들어오는 작은 변화가 있었다.
이후 그 나비 효과가 커져서 황형이 명나라와 무역할 때 데리고 가는데, 밀무역을 단속당한 황형과 함께 건주좌위를 습격하여 명나라의 칙서를 뺏고 건주좌위로 위장하여 조선을 대리하여 명에서 여는 마시로 들어가 무역을 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그런데 그 습격 때 죽인 사람이 누르하치의 조상인 푸만이다.[37] 본인도 황형이 빼앗은 칙서를 건네주며 이제부터 성씨를 바꾸라고 하자 왜 패드립인가 하고 생각하다가 이해하고는 '그럼 가명은 슈르가치라고 할까요?' 하는 태세전환이 일품.
몇 달 후에 언급되는데 조선의 대표적인 여진족 VPN으로 조선군과 같이 건주위, 반조선 여진을 털어서 건주위를 사칭하고 무역한 중국산 물건을 4진 지역에 팔아 치운다고 한다. 그 양이 엄청난지 겨우 몇 달 만에 함경도는 평안도의 도시들 못지않게 발전하고 있다고. 건주위는 칙서를 누구한테 털렸는지도 모르고, 요동도사에게 하소연했다가 오히려 쫓겨났다. 그 후에도 동생과 같이 조선에 신종한다는 건주여진들을 연결해주면서 조선의 연결라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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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량개
성종조부터 조선에 신종한 번리여진족 추장. 올량합 부족들에게는 장군이라고까지 불렸고, 머리도 좋아 조선에 바로 붙었다. 조선의 확장에 기여하고 산하 여진족 전사들과 조선인 총수들을 모아 부대를 만들어 울지령 너머 우디캐 부족을 약탈했다. 노비와 가축은 자신들이, 초피는 조선 총수들에게 주기로 했다고. 초피가 비싼 걸 아는 부하들이 불만을 표하지만, 어차피 자신들이 조선인과 제대로 피가 섞이기 전까지는 총이나 전적인 신뢰를 받을 수 없단 걸 알라면서 납득시킨다. 사실 부하들도 이미 상당수 딸이나 여동생 등등을 조선군 병사들과 맺어주었기에 어지간한 일로는 조선을 등질 수가 없는 상황이고, 2~3세대 내려가면 피가 섞여 조선의 일부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이후 중추부 첨지사 벼슬을 얻었고 귀화하여 만씨 성시를 받아 개척지에서는 만 첨지라고 불린다. 경식은 체계적이고 안전한 사민을 위해 허가 없는 출입을 금하고 있는지라 입조할 때마다 조선 본토에서 나는 물산을 개척지로 가져가는 역할도 맡아서 인심도 얻고 수수료도 벌고 있다.
132화에서는 개척민들에게서 추가 인력 좀 보내달라는 요청을 받고 중앙에 로비를 하기로 한다. 그런데 마침 사냥을 좋아하는 명나라 정덕제가 기껏 칙사를 보내 해동청과 압호[38]를 진상받아오라고 하자 정작 조선에서 해동청 안 나게 되었는지 좀 된 상황인지라 개척 중인 동북에서 잡아야 하게 되었는데, 이걸 틈타 금령을 해제하면 사냥꾼들이 가서 매를 잡아올 것이라고 상언하여 금령 해제에 성공했고 또다시 동북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매는 아량개가 미리 꿍쳐둔 것이 있어서(...) 그걸 진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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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구지금★
원래 역사에서는 서강 나루에서 살던 대상인. 원래 역사에서는 사치를 과도하게 부리다가 들켜서 3대가 사헌부에 싸그리 잡혀가 고문당하다가 다 같이 죽었다. 본작에서는 정숭조의 후원을 받는 상인으로, 모피 무역으로 치부한 인물로 설정되어서 나온다. 암행을 나온 경식의 가명인 '연산군'이란 이름을 보고 정숭조에게 물었다가 자신이 엄청난 위기에 처했다는 걸 깨달았다.
경식은 원 역사처럼 호화롭기 그지없는 천구지금의 복장을 보고 이런 대상들도 날 잡아서 세금을 왕창 뜯어낼 표적으로 올린 상황이다. 심지어 천구지금이 운영하는 국밥집의 국밥이란 게 소와 돼지가 목욕만 하고 익기 전에 나왔냐는 말이 나올 정도라 더더욱. '돔(아님) 공연' 때는 후원금을 뜯긴 대신 다른 업체들과 함께 공연 전에 후원사 광고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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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표
주인공이 해동제국사를 세울 때 매관매직이라고 비판하다가 잡혀와서 수군훈련원에 배속된 성균관 유생. 당연히 항해술은 몰랐고 최말동 선단의 유구 항로 개척 때 같이 떠나나 고참 선원들이 한참 앞서는 뱃사람 경험치에 7품, 8품의 벼슬을 받은 엘리트 선원들이라 무시당하기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원들이 해적질을 할 때 열심히 말려서 탐험대가 지나치게 엇나가지 않게 하는데 성공한 것을 인정받아 승진한다. 이후로도 수군훈련원 에피소드에서 나오는데, 성균관 출신 중에서도 해병들에게 동화되지 않고 유일하게 제정신을 유지하는 인물로 나온다. 후배들이 식고문을 비롯한 해병식 환영을 받은 끝에 동화해 버리는 모습을 지켜보며 한숨을 쉰다.
이후 해동제국사 일이 정말로 나라의 발전과 본인의 출세에 도움이 된다고 확신했고, 수군훈련원 1기 유생들이 역을 마치고 복귀했을 때 서총대에서 경식의 수군 발령에 앞장서서 찬동하면서 본인과 동기들을 아예 영원히 수군으로 못박아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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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조★
중종조의 권신이 되는 인물...이나, 현 치세를 부정적으로 보고 과거를 보지 않으려다가 강화도 수군훈련원에 잡혀갔다.[39] 스승인 김굉필이 무오사화에서 아예 일본으로 추방된지라 원 역사처럼 성장할 가능성은 적지만, 위에 적혔듯이 김굉필의 산하에 들기 전부터 도학 지상주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이후 해병 단발령 에피소드로 재등장. 본인은 신체발부 수지부모를 주장하며 버텼으나, 그럴 거면 손발톱도 자르지 말라는 비아냥과 같이 동기들에게 붙잡혀 죄다 잘렸다. 동기들은 불만 많으면 잘하는 공부로 출사해서 바꿔보라고 하지만, 본인이 현 치세를 부정적으로 보면서 거부하는지라 다들 개소리 취급.
이후 다시 등장하는데 원래의 꼰대 면모는 여전하나, 동기들과도 잘 어울리며, 헌천정요에 감탄해 주상을 해동의 선인으로 경외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병대 전역 이후 성균관으로 오지만[40], 조선의 황제국 격상안에 반대해 상소를 올리려다가 재입대당하기 싫었던 동기들이 모아온 주먹패에게 두들겨 맞고 재판을 받아 옥에 갇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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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길상
함경도 사냥꾼. 본래 능력 있는 포수로 동북으로 올라가 담비를 잡아 초피를 팔거나 여진족을 약탈하곤 했는데 사금 발견 이후로 사민되는 백성들 외에는 동북으로 들어가는 게 막히자 아까워하고 있었는데, 나라에서 돈을 영끌해서 빌리고 안 갚으면 자기들도 사민되는 것 아니냐는 황당한 발상을 해서 동료와 서로를 보증인으로 해서[41] 돈을 빌리고 그것과 총은 어디 땅에 묻어둔 뒤 도둑맞았다고 보고해서 사민훈련원에 넣어진다.
그리고 현대식 신병훈련소를 업그레이드해놓은 사민훈련원에서 새벽같이 깨워지고 줄을 서고 시간에 맞추어 일을 하면서 죽도록 후회했다. 그 와중에 글도 배우고, 사냥 실력을 인정받아 이임이 되었고, 같이 사민되는 미망인인 복덕이란 여성과 결혼까지 한다. 원래 호랑이와 표범을 아무렇지 않게 잡을 정도로 뛰어난 사냥꾼이었기에 사민된 마을에서는 1년 만에 사냥으로 호랑이와 표범을 잡아서 동네 사람들 빚을 다 갚아줬을 정도. 그래도 아내 복덕이 두 번 남편을 잃고 싶지 않다고 읍소하여 밭으로 옮겼고 사격 실력을 내세워 편하게 주변 경계 임무를 맡아서 했는데, 종성순이 이끄는 왜-여진 연합 도적단이 습격해오자 침착하게 마을 주민들을 이끌어서 진형을 짜고 본인은 들고 있던 총으로 도적들을 저격하기 시작했다. 먼 거리에서 한 발에 한 놈을 쏴 죽이자 밭일하던 주민들도 자신들은 총을 장전하고 장전된 총을 길상에게 넘겨주었고, 그렇게 마구 쏴죽이는 와중에 도적 우두머리인 종성순 또한 죽여버렸다.
이계동과 여자신은 도적 두목이 누구인지는 몰랐지만 소대원[42]들을 잘 이끌었다고 칭찬하며 강제로 갑사로 임명한다. 이쪽도 사람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였기 때문. 정작 길상은 오가면서 본 갑사들의 생활상이 그 지겨웠던 사민훈련원과 똑같았으므로 갑사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지만 원래 조선에서는 벼슬도 역이다. 거부하면 처벌된다.
그리하여 강제로 착호갑사에 개척촌 면임이 되어 마을 사람들에게 일손이 부족하다는 아우성을 들었지만 어찌할 지 모르다가 만 첨지(아량개)를 만나자 상감께 아뢰주십사 하는 요청을 한다.
6.2. 명나라
전지적 시점에서 평하기로는 덩치 큰 조선. 거대한 영토와 그걸 가득 채운 막대한 인구는 어마어마한 저력을 가지고 있을 것처럼 보이나, 현실과 어긋난 제도와 부패 때문에 덩치에 비해 국력은 극히 약하다.병력의 경우 건국 시절의 위소제를 유지 중인데, 장부상으로는 260만 명에 달하는 대병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홍치제 시절에 재조사했더니 그 중 160만 명 이상이 탈영한 상태고, 남은 병력이 93만 명인데 그것도 전혀 훈련이 안 되어 있고, 탈영병을 잡기 위해 보내는 군관이 1만에 달하는데 군관들은 매 해 100명 남짓의 탈영병을 잡아온다는 나쁜 의미로 대륙적인 스케일이다.[43]
또 해금령과 상업 탄압 때문에 남중국에서 나는 막대한 물자가 북중국으로 전혀 넘어가지 않고 있으며, 남중국의 상인들은 해금을 무시하고 해외무역을 하고 있으나 불법 출국자인 신세인지라 명의 군사적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하고 있어 조선의 해동제국사에게 나날히 밀리는 중이다.
아무튼 조선보단 잘 살지 않을까 싶은 인상과 달리, 화북은 난개발과 과도한 인구로 삼림이 소실되어서 집을 목재로 짓지도 못하고 연료도 부족해 생활수준과 구매력이 떡락해 있기까지 하다.
정치인들도 이런 문제를 인지하고 해결 시도는 계속하고 있으나, 구제도를 유지한 채로 보수하려고 하다 보니 개혁을 해도 성과를 얻지 못해 절망하고 있으며, 상업에 관해서는 유교 이념에 따라 탄압하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어서 문제가 풀릴 가능성은 전혀 없는 상태에, 암군으로 알려진 정덕제가 즉위하며 개선 가능성은 더 나락으로 떨어지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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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
황형과 절친하게 밀무역하던 요동도사. 황형이 의주목으로 있을 때부터 함께 밀무역 라인을 만들며 친하게 지냈다. 번리위무사로 체직해 훨씬 더 많은 물자를 팔 수 있게 된 황형이 찾아오자 반가워하며 비단과 초피를 교역했으나, 아쉽게도 1년도 못 가고는 횡령 탓에 잘렸다. 그러나 그가 재직하면서 만든 밀무역 라인은 그 후에도 계속 확장된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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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옥★
황형과 절친하게 밀무역하던 장수가 해임되고 후임으로 온 요동도사다. 당시 원 역사에서도 증대하던 명-조선 밀무역이 주인공의 공식적인 허가와 장려로 인해 갑자기 몇 배나 폭증한 상태였기에 북경에서 내리갈굼 받아 이를 막으려고 작정하고 있었다.
장옥으로 인해 밀무역이 막힌 황형이 동아망개를 동원한 VPN 작전을 벌이는데, 건주위 내부의 흔한 내분이라고 생각해서 적발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 일로 업무가 늘어나 짜증이 난 와중에 정숭조를 필두로 한 조선의 사신 일행이 엄청난 양의 후추를 가져오자 짜증을 내며 후추를 모조리 압수해버린다. 상인들은 실력을 발휘해 후추를 숨겼지만 절반을 압수당해 버리고, 이로 인해 격노한 주인공은 까다로운 장옥을 피해 바다로 사신을 오가도록 허락해달라고 명나라에 요구한다. 물론 명나라에서는 거절했다.
그러나 장옥의 이런 밀무역 강력 통제는 오히려 삼국 주민들의 강력한 반발과 수법 확대를 불러와 오히려 밀무역의 폭발적인 증가를 불러온다. 사실 전임자 장수가 밀무역을 잔뜩 확장해놓은 상태에서, 명나라 본국의 제대로 된 지침도 없는 와중에 갑작스런 금지가 먹힐 리가 없었던 것. 요동 남쪽 해랑도는 조선 해병과 명나라 해적의 밀무역 기지로 변모한 것도 잘 모르고, 동아망개와 황형이 건주위 VPN 작전을 벌이자 칙서를 빼앗긴 건주 부족들의 칙서 재발행 요청도 거부하자 열받은 건주 여진이 요동을 약탈하거나 조선으로 갈아타면서 요동 전체가 개판이 되어가고 있다. 심지어 요동의 명군도 조선의 사냥꾼, 상인들에게 뇌물을 받고 군량을 팔아치우고 있다.
1499년에 결국 요동을 관리하지 못하고 번국과도 충돌했다는 이유로 파직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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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치제
중흥홍치라는 말까지 나온 명나라 마지막 성군. 문무 양면에서 나라 일에 성실하고 정열적으로 임한 군주였다...고 알려져 있으나,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그의 말년은 정무에 흥미를 잃고 도교에 빠지고 사치와 향락에 빠져 국가가 망조가 드러나도 아무 대처를 못하고 있는 시기였다.[44]
이것이 경식이 한창 조선의 내치를 다지고 외부 진출을 시작하는 때와 맞물려서 조선이 강해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작중에서는 단순히 홍치제의 태업만이 아니라, 앞서 본 문서 특징 부분에서도 설명했듯이 당대 중국 자체가 영원히 반복되는 맬서스 트랩의 굴레에 갇혀 있고 그걸 뛰어넘을 방법은 미래의 지식 없이는 찾을 수 없다는 식으로 묘사한다.
말년에는 대신들의 비판을 들을 정도로 태업했음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중국을 다스리는 과로로 심신이 약해졌고, 원 역사 그대로 감기가 오랫동안 계속되어[45] 34세 나이에 요절한다. 태자인 정덕제가 홍치제가 살아있던 시절에는 노는 것을 좋아하긴 했어도 총명해보였기 때문에 태자에 희망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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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이고 세자 책봉 관련으로 온 명나라 칙사. 조선 출신 환관이라 조선 전문가라고 한다. 그러나 크게 변한 조선을 보고도 별 감상을 품지 않고, "생각보다 많이 바뀌었구나" 하는 정도로 넘어갔다. 사실 대도시 북경에 사는 환관인 만큼 의주, 평양, 한양이 바뀐 걸 그냥 지나가면서 본 정도로는 뭔가를 눈치채기 어렵다고 한다.
조선은 외왕내제나 VPN 무역질 등 찔리는 게 많았지만 그 쪽은 감도 잡지 못했다. 산하에 상인들을 데리고 왔는데, 이들은 조선이 상업을 진흥해 발전하는 걸 보고 해금 따위를 걸고, 상인을 약탈하는 명이 아니라 조선에 귀화하고 싶다고 요청하나 찔릴 게 많은 조선은 거절했다. 그러자 요동 상둔의 직을 사서는 요동에 판을 차리고 무역을 하려 한다.
이후 정덕제가 즉위하자 조선에서 가져온 뇌물을 바치면서, 조선에게 해금을 풀고 조공을 늘려받자는 황당한 제안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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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하
홍치제 사망 당시의 명나라 병부상서. 원 역사에서는 정화의 대원정 관련 기록을 전부 불태운 장본인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본작의 주석에 따르면 해당 기록은 야사고 상당히 의심스럽다고.
홍치제와 함께 나라의 개혁, 방위력 강화를 위해 노력했고 소기의 성과도 있었으나, 결국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이루지 못했다. 때문에 퇴직하면서 명나라의 군사력에 대해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절망적인 소지의 보고까지 올리고 퇴직했다. 퇴직 직전, 홍치제의 대를 이은 정덕제가 환관들에게 휘둘리자, 무에 관심이 많은 젊은 왕이 환관에게 휘둘리면 친정 같은 걸 시도해서 정통제 시기의 토목의 변이 재현될 것이라며, 황제가 헛바람 들지 않게 하겠다며 정화의 원정을 포함한 영락제 시절의 원정 관련 기록을 전부 태워버린다.
명나라를 스스로 봉인해버리는 대응은 무척 황당하지만 사실 명나라의 역사를 보면 나름 합리적인 대응으로, 토목보의 변이 딱 저렇게 일어난데다가, 실제로 정덕제는 친정을 하겠다면서 자신에게 가명을 붙여 장군으로 임명하거나 반란군을 풀어주고 자기가 직접 잡는 등 기행을 했다. 문제아인 정덕제의 기질은 잘 알아본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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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제
명나라 10대 황제. 본명은 주후조. 홍치제 사망 이후 황제로 즉위했다. 태자 시절부터 노는 것을 좋아해 우려가 있었으나, 학문에도 성취를 보여서 기대가 컸으나 즉위하자마자 조선산 비단과 해동청 등을 바치며 환심을 산 이진과 환관들에게 놀아나기 시작해 큰 문제가 되었다. 특히 조선의 뇌물을 더 받기 위해 해금을 풀고 조공량을 늘린다는 정책을 내려서 유대하 등의 대신들을 황당하게 만든다.[46]
6.3. 일본
일본 내 정세에 대해서는 상당히 빠르고 간략하게 넘어가는 편인데, 작중 설정상으로는 경식이 관심이 없고 잘 알지도 못한다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작품 외적으로는 독자들도 잘 모르고 관심도 없다는 이유 때문으로 보인다.경식은 아예 '호소 뭐시기'라고 부르기도 하고, 오우치에 대해서도 오우치 요시오키가 상당히 중요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작중에서 이름이 명시되지 않고 그냥 '오우치 가문' 정도로만 서술된다.
묘사되는 정보로 보아 작가는 어느 정도 조사를 해놓은 것으로 보이지만, 서술 자체는 굉장히 빠르게 넘어간다. 그러나 이후 일본이 본격적으로 조선과 깊게 엮이면서 1500년대 초반에는 당면한 개혁이 전부 궤도에 올라 한동안 관리와 수정이 주축이 될 조선에 이어 주요 배경이 되기 시작했다.
10여년 가까운 조선까지 엮인 정쟁과 전쟁 끝에 오우치, 사츠마, 천황이 중심으로 한 태정관 중점의 귀족원-황가 체제의 정부가 설립된다.
6.3.1. 조정
기존 일본을 통치하던 아시카가 막부, 오우치 씨와 조선이 지원해 세워진 다자이후 막부, 최종적으로 막부를 폐하고 덴노와 귀족원 체제로 세워진 태정관 체제로 나눠진다.-
호소카와 마사모토
당시의 무로마치 막부의 간레이, 즉 아시카가 가문을 막후에서 지배하는 호소카와 가문의 가주. 자신이 세운 허수아비 쇼군 아시카가 요시즈미의 이름으로 조선에 사절을 보냈는데, 그에 회답으로 조선이 통신사까지 보내며 조선방 설치와 교역 확대, 경제 지원 등을 약속하자 처음엔 반겼으나 하필이면 그 조선방을 설치할 하카타를 얼마 전에 오우치 가문에 빼앗긴 상황이었고, 게다가 마지막에 추가된 각 다이묘들과 조선의 독자적 외교권 요구 조항을 보고 계산이 복잡해진다. 경식은 어떤 게임으로 배운 지식으로 하카타와 사카이가 항구로 좋다더라 정도로 알고 요구한 거지만, 호소카와 입장에선 정적인 오우치와 호소카와 가문 사이를 재다가 언제든 개입할 수 있도록 하려는 신의 한 수로 보였기 때문. 이에 하카타를 빼고 사카이에만 조선방을 설치하고, 호소카와 가문과 사실상의 동맹을 맺자는 제안을 보낸다.
다만 그 조건으로 조선이 알아서 사카이 항로를 찾아 오라는 터무니 없는 요구를 해버린지라, 오우치가 요구한 대로 하카타에 먼저 조선방이 설치된다. 조선에서 사카이로 가는 제일 빠르고 가까운 길인 아카마가세키를 호소카와 가문과 적대하는 오우치가 점유한 상태였기 때문에, 조선 해병들은 일본 남해로 우회하는 사카이 항로를 찾는데 2년이 걸리게 된다. 결국 조선 해병들이 사카이 항로를 찾아내기는 해서 수교가 시작되는 듯했으나, 호소카와의 사신들이 한양에 갔다가 한양 한복판에서 오우치 무사들과 마주치고 그 사이 이미 오우치가 조선에 밀접하게 연줄을 맺은 걸 깨닫고는 칼을 꺼냈다가 오우치 무사들과 사이좋게 두들겨 맞고 감옥에 들어갔다.[47] 조선 사신들이 교토로 다시 찾아가 사카이에 조선방을 세우려던 것 역시 수포로 돌아가고 쫓겨난다.
오우치가 조선과 짜고 자신에게 대적하려 듬이 확실해지자, 조선이 선불로 보낸 비단 2만 필을 가로채고 천황에게 뇌물로 입금해서 오우치를 조적으로 선포한다. 그러나 이후 총기가 다했는지, 수험도에 빠져서 국무를 놓아버리고[48] 요시즈미의 억지 탓에 요시타네의 동생 요시타다를 죽여서 민심을 잃는 등 몰락하기 시작한다. 때문에 아시카가 요시타네가 급발진해 상락을 시작할 때도 교토를 통제하지 못하고는 무방비하게 당하게 된다. 교토 내에 있던 충성파 수하 미요시와 병력도 총병에 의해 격파당하자 복귀 후 남은 세력을 챙겨서 급히 교토 밖으로 도망쳐서 재기할 기회를 노린다는 올바른 선택을 해서 요시타네를 당황시킨다.
사실 이 양반도 일본 전체야 어쨌든 본인 한정으론 수혜자인 게, 원 역사대로면 1507년에 암살당하고 양아들들이 내전을 벌이는 틈에 오우치와 요시타네에게 공격받아야 하지만, 여기서는 본인이 살았을 때 일이 터지면서 암살당할 미래가 사라지고, 호소카와 가문도 더 승산이 있는 싸움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교토에서 도망친 이후 자신의 양자들에게도 합류하지 않아서 현재 실종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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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치 요시오키
오닌의 난 등에서 활약한 오우치 가문 가주. 규슈의 쇼니 씨, 혼슈의 호소카와 씨와 격돌하며 패권을 다투던 와중, 오랜 전투 끝에 하카타를 점령했다. 그런데 조선 통신사들이 조선방을 세우는데 호소카와 가문에서 조선의 제안을 수정해 오우치 가문을 제외시키려고 하는 것을 알자, 귀국하던 통신사들을 찾아가 사카이보다는 하카타가 나으니 그곳에 조선방을 세워준다면 온갖 편의를 봐준다고 설득한다. 심지어 쓰시마 정벌까지도 지원해 줄 수 있다고 언급한다.
호소카와 가문의 사카이보다 먼저 하카타에 조선방을 세우고 조선산 목면, 비단, 백자를 수입하고 쌀, 구리, 은 등을 수출한다. 일본 전체로 보면 사소해 보이지만 일본에서 제일 중요한 해외 교역항인 하카타의 경제가 조선에게 장악당하는 중이며, 조선에게 하카타 밖 100리에서도 활동할 수 있게 보장해버려서 북규슈는 조선의 세력권에 편입되는 중이다. 그에 따른 최종적인 피해는 하층민인 농민들이 전가되었다. 일본 농민들은 기존에는 연공을 내더라도 쌀만 내었었는데, 조선에 기근이 잇따르면서 조선이 잡곡들도 수입해가느라 밀과 메밀까지 빼앗기게 된다. 사무라이들은 그걸로 목면이나 백자, 비단을 사서 귀족끼리 사치하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우치 가문은 이득을 보고 조선의 뒷배로 군사도 다른 쪽에 돌릴 수 있어 이득이라고.
다만 하카타를 자주 오가던 조선 해병들이 마침내 사카이행 항로까지 찾아내면서 오우치의 무역 독점은 끝이 났다. 심지어 조선은 누굴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지만 유학적 관념상 일단은 호소카와가 명목상 일본 국왕의 사절인지라 그들의 급을 높게 쳐주고 있는 상황. 운좋게도 호소카와 가문이 상황을 파악 못하고 자존심이 상해 조선과 관계를 끊고, 도망치던 아시카가 가문의 전 쇼군이 오우치에 의탁하자 조선에 전적인 협조를 요청, 300정의 소총과 조선 포병 부대를 지원받아 호소카와 가문과 더욱 대립각을 세운다.
그러나 호소카와 마사모토가 먼저 정치적 모략을 벌여서 당시 규슈에서 오우치와 대적하던 쇼니, 오토모 가문을 통해 오우치를 공격하려 한다. 본래라면 이대로 최소 1년 이상의 밀고 밀리기를 반복하는 지리한 전쟁을 벌여야 했으나, 조선이 보낸 2천의 포병대의 지원으로 단 하루 만에 오토모 가문의 군사를 격파한다. 이후 요시타네를 내세워 세운 다자이후 막부의 후원 세력으로서 규슈를 거의 장악했으나 요시타네가 독단적인 상락을 결정하자 조선에 알린 다음에 발을 빼버린다.[49]
정작 요시타네가 상락에 성공하자, 아까워했으나 시마즈 타다마사와 조선이 천황을 사카이 한관에 데려오자 바로 사카이로 가서 사츠마 번, 조선과 같이 막부제를 폐지하고, 조선식 의회제(중추원)를 도입하기로 한다.[50] 이후 조선에 보낸 국서에 요시오키의 계획이 나오는데 본래 일본은 당나라의 3성 6부제를 본뜬 2관 8성제를 운영했다. 물론 막부 산하에서는 그 힘이 늘상 들쑥날쑥했으나, 이를 유의미하게 개조하고 특히 2관 중 귀족합의체인 태정관을 강화하고 장악할 생각인 것.
당장 교토를 정복할 힘은 있으나, 요시타네나 마사모토가 그랬듯이 교토는 정복보다 수비가 어려운 땅이었기에 우선 조선에 협조를 구한다. 이제 조선은 요시오키의 태정관 체제를 지지하면서 일본에 폴란드식 셰임회의를 만들어버릴 생각이다.[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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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카가 요시타네
아시카가 막부의 전대 쇼군. 정확히는 호소카와 마사모토에게 쫓겨난 쇼군이다. 원 역사처럼 오우치 씨에 의탁해 다자이후 막부를 연다. 조선에선 좋구나 하고 본격적으로 오우치 씨와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본인은 어서 빨리 상락해 호소카와 씨를 내쫓고 쇼군위를 회복하기를 원하지만, 군량이 되어야 할 쌀이 계속 조선으로 유출되는 데다가 오우치를 돕는 조선도 요시타네의 상락에는 관심이 없어서 나날이 분이 쌓이고 있다. 심지어 오우치 씨도 요시타네를 앞세워 오우치가 호소카와의 자리를 뺏기를 원하는 거라서 요시타네가 나대는 걸 좋게 보지 않는다.
처음에는 조선과 오우치의 병사를 얻어서 교토로 가서 호소카와를 내쫓으려 했으나... 흉년으로 나날이 가능성이 바닥까지 떨어지자 분노해 닥치는 대로 상락을 시도한다. 당연히 요시타네 본인의 봉행들과 소규모 다이모 연합군으로는 교토에서 개죽음당할 가능성이 크기에 조선과 오우치 입장에서는 비상사태다. 병력은 조선과 오우치의 후원으로 준비된 총을 보유한 병력 5천여 명에 휘하 다이묘들의 병력 3천을 더한 8천. 그러나 기병도 보급도 전부 조선과 오우치에 기대야 했다. 경식은 일단 지원은 해주기로 했지만 철저하게 조선의 피해를 줄이고 알맹이만 빼먹기 위해 사카이를 점령한다.
요시타네의 전술은 보급은 현지에서 얻고, 일단 교토까지만 가면 현지 가문들이 알아서 협조해주리라는 계획이었다. 이는 마사모토의 정치적 실패로 어느 정도는 현실성이 있었으나, 막상 교토가 오닌의 난 이후 아직도 쇠락해 힘을 모을 수 있는 곳이 아니란 건 생각하지 못한 전략이라 비현실적이다. 결국 어떻게 상락은 성공했지만, 교토는 오랜 흉년과 난리로 피폐하고 정적인 호소카와 가문은 도망쳐서 복수를 준비하는 상황. 보급은 떨어져 가서 약탈하느라 급하고, 화약 창고조차 불타버리게 된다. 따라온 다이묘들은 가난에 못 버텨 따라온지라 약탈에 매진하고, 심지어 그 틈에 시마즈 타다마사는 덴노를 빼돌려 조선에게 넘기는 사실상 배신을 때려버린다.
그 이후 롯카쿠 번으로 진격해 요시즈미를 참수하면서 11년 전의 복수를 완성하지만 그대로 공세종말점에 도달한다. 사실 철갑병 5천과 외국과의 연줄 등이 있었지만 여전히 십수년 전의 막부제를 그리워해서 다시 주변을 귀족들로 채우려 든다. 그러나 조선에서 교토로 통하는 물자의 집약소인 사카이를 차지하면서 운송이 막힌 교토는 기능부전에 빠지고, 주변을 포위한 마사모토의 양자들과 기싸움만 벌이게 된다.
화약도 떨어지고, 물자도 없는 데다 사카이는 조선군이 돌려주지 않고, 오우치 가문도 자신을 무시하고 있어 아무것도 못하던 와중 결국 3만에 달하는 조선군&다자이후 막부 연합군의 공세를 받아서 성에서 비격진천뢰를 맞아 폭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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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카시와바라 덴노
호소카와 마사모토에게 뇌물을 받고 오우치 가문 조적 선포문을 써준 천황. 전 쇼군 요시타네가 돌아올 때 교토에 버려졌다. 요시타네 역시 장식품인 천황 따위에겐 관심이 없었으나, 당시 주자학자들에게 올바른 나라는 대권이 황제에게 있어야 한다고 배운 시마즈 타다마사는 생각이 달랐기에 그를 사카이의 조선방에 바쳐버리는 초대형 사고를 치게 된다.[52]
그렇게 사카이 조선방에 맡겨져, 신용개가 급히 저택을 급매해서 살게 해주고 시종도 붙여줬다. 신용개는 아무리 허수아비라지만 황제한테 이래도 되는가 싶었는데, 당대 덴노 가의 열악한 상황에 비하면 굉장한 고대우에 존중이었던지라, 감격하고 스스로 조선에 지원군을 청해서 주권을 차지하려 한다.
이후 사카이에 모인 친조선 반호소카와 세력들과 같이 새로운 정치체제를 만들려 시도한다. 태정관 체제는 조선과 오우치 등의 외국, 국내 대귀족이 톱을 먹는 체제이나, 기존의 막부 체제보다는 훨씬 천황에게 이롭다.[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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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즈 타다마사
시마즈 가문의 당주로, 사쓰마의 영주. 원 역사 그대로 주자학에 관심이 많은 인물이다. 조선에 성리학 관련 서적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는데, 타이밍 좋게 무오사화가 발발하여 김종직 문하의 인물들이 싸그리 시마즈 가문의 영지로 교수관이라는 명목으로 보내진다. 김종직 문하 인물들이 조선의 성리학 적통을 이어간다는 역사적 사실을 생각하면 조선의 성리학 적통이 시마즈로 옮겨져간 셈.
아시카가 요시타네의 상락 선언에 영지에 남는 백수 무사를 포함해 2천 병력을 지원했다. 그렇게 힘들게 교토까지 왔건만 난세 종식과 치세 회복은커녕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흉년과 전란으로 피폐한 양민들이나 약탈하는 것에 질려서 치세를 회복하려면 덴노가 대권을 잡고 주자학에 따라 통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 고카시와바라 덴노를 사카이의 조선방으로 데려간 다음 조선의 도움을 요청한다. 즉 400년 빠르게 보신 전쟁의 불을 붙여버렸다.
그러나 오우치는 귀족에게 실권이 있는 의회가 나라를 다스리게 만들려고 했으나, 타다마사는 성리학을 국시로 삼자는 뜬구름 잡는 소리만 늘어놓아서 열받은 오우치 씨는 그를 무시하고 직접 교토를 치려고 한다.
6.3.2. 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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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쿠 사토루
고토 열도의 영주. 실존 인물이다. 유구 항로를 조사하고 돌아오는 최말동 선단이 고토 열도에 잠시 정박하려고 할 때, 해적인 줄 알고 막으려 했다가, 마찬가지로 사토루 측을 왜구라고 생각한 최말동 선단이 대포를 쏴 갈기는 병림픽을 벌이고, 사토루 측이 패퇴한다. 그 상황에서 유일하게 이성적인 유표가 필사적으로 중재하여 고토를 조선에게 개항한다. 덕분에 아직 유구로 가는 직항 항로를 모르는 조선 해병들이 유구로 갈 때 반드시 들리는 정박항이 되어서 고토는 항구도시로 발전한다. 그런데 조선 측에서는 고토를 한자 그대로 읽어서 오도포항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 외에는 고죠 사토루와 얽히는 개드립을 좀 당하는 정도. 이후 고토 열도는 조선 해동제국사 선원들이 매복했다가 상선을 터는 기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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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요시모리
대마도주 가문의 후계자인 장남. 조선이 대마도 토벌을 시작하여 평소대로 청야 전술을 시행하지만, 어째서인지 해병들이 겨울까지도 물러나지 않고 해안을 봉쇄해서 다 굶어죽게 생기자, 해안으로 나와 항복을 시도했으나 해병들은 일본어도 못 알아듣고, 왜구가 기만 작전을 시도하는 것이라고 의심하여 냅다 총포를 갈긴 후 노비로 북방에 팔아버렸다. 공사 인부로 부려지다 탈출한 후 같은 처지의 왜인들, 여진족을 모아 백여명에 달하는 큰 무리를 이루었으나, 다른 왜인들에게 자기가 사라진 후 결국 아버지가 굶어죽고 대마도가 사실상 멸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복수를 결심한다.[54] 그리고 복수를 위해 가까운 조선의 개척촌을 습격했으나, 박길상의 저격으로 허무하게 사망한다. 이렇게 보면 그냥 전형적인 단역으로 보이지만, 사실 이 인물은 경제왕 연산군과 동시기를 다룬 대역소설 명군이 되어보세 1부에서 주인공 이재석을 베어 죽여 큰 파장을 일으킨 그 종성순과 동일인물이라 대역 독자들에게 소소한 화제가 되었다.[55]
6.4. 포르투갈
본격적으로 해외로 진출하기 시작한 조선의 라이벌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국가. 연표를 봐도 알겠지만, 작중 시간적 배경인 연산군 시기는 서양사에서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대항해시대를 열고 세계로 진출하던 때다.원래 역사에서는 조선은 성리학이 강화되어서 외부와 교류를 끊고 내부로 들어가지만, 경식이 바꾼 조선은 해외로 진출하며 이들과 만나게 될 것이라는 복선이 계속 깔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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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쿠 다 가마
잘 알려져 있는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한 탐험가. 그리고 해당 문서에도 나와있듯 인도양을 피로 물들인 무자비한 정복자 혹은 해적이기도 하다. 조선의 개입이 닿지 않는 곳에서만 활동해서 원 역사와 달라진 것은 없으나, 조선이 해외에서 해적질을 할 때 바스쿠 다 가마의 행적과 교차서술하는 에피소드가 나와서 둘이 서로 닮은 꼴의 나라라는 것을 암시한다.
1503년의, 원 역사에서는 그의 마지막 인도 항해를 마치고 포르투갈로 돌아간 것까지 언급되기 때문에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원 역사 그대로 포르투갈에서 영웅 취급을 받으며 여생을 보내게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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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폰수 드 알부케르크
16세기 초 포르투갈의 대표적인 정복자. 포르투갈을 인도양의 패자로 올려놓은 명장이며, 다 가마와 마찬가지로 무자비한 학살자이기도 하다. 원 역사에서 1503년부터 1504년에 있었던 그의 인도 항해 에피소드가 다뤄지는데, 그때 마침 조선도 말라카 인근까지 진출해서 조선과 포르투갈의 만남이 이뤄질 것 같은 전개가 나왔으나, 두 나라 모두 자바의 거함인 종(djong)을 이기지 못하는 바람에 각자의 거점인 인도와 보르네오로 물러나 만남이 미뤄진다.
7. 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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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폐
원래 조선에서 사용되던 저화를 개혁하여, 추포를 헝겊 종이로 만들어서 찍어낸 화폐. 종이 전지를 그대로 사용하여 거의 사람 몸통 크기인 원래 역사의 저화와 달리 현대 지폐 정도의 크기로 작게 잘랐으며, 조선의 제지 기술에는 없던 사이징 과정을 거치거나 쌍발뜨기를 도입하거나 쪽염료를 써서 푸른 색으로 물들인 등 여러 기술적 변화가 있었다.
가장 작은 단위는 1문이며, 10문이 1전, 10전이 1냥으로 통용되고 있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전근대는 현대와 물가 구조가 많이 다르긴 해도 1전을 5만 원 정도로 염두에 두어 보는 것이 이해에 편할 것이라고 하며, 설정상으로는 여러 단위를 혼용하고 있으나 편의를 위해 계속해서 소설상에서는 1전 단위로 언급할 것이라고 한다. 가장 작은 단위인 1문도 5천 원, 가장 큰 단위인 1냥은 50만 원권인 셈. 이러다 보니 50화 기준으로 1냥 이하 문 단위는 백성들 사이에서 그냥 쌀로 거래되고 있다. 경식(이융)은 이를 보고 저단위 화폐를 더 찍으라고 했으나 지폐를 만드느라 서울 인근에서는 추포가 사라진 상황. 지방에서 굳이 추포를 올리게 하는 것도 무리다. 그랬으므로 신료들은 "주상에몽 도와줘!" 하는 기세로 달려왔다가 다음해 삼베의 원료가 되는 마가 자라면 그걸로 만들라는 지시를 받았고, 이미 이 시점에서 주상을 도깨비 방망이 같은 것[56]으로 생각하고 있었기에 뭔가 신기한 방책이 뚝딱 나오지 않자 오히려 당혹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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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전첩
주인공이 기존의 공명첩을 개조해서 만든 국채. 표준가격은 1장당 1천전. 조선 시대에서 국가가 백성들한테 돈을 빌린다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할 신하들을 납득시키기 위해, 구매하면 1년간 역을 면제해주고[57], 납전 가선대부라는 이름이라 돈 내고 받았다는 게 눈에 확 뜨이는 실직 아닌 봉작도 내려주고, 그 봉작에 맞는 비싼 옷도 입으라고 허락해주며[58], 원한다면 1년 뒤 나라에 1할 더 비싸게 팔 수 있는 권리증서 정도로 만들었다. 다만 채권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기존 공명첩의 이름을 적는 부분을 없애고 '이 첩을 가지고 있으면' 납전가선대부로 인정했다는 것에서 거래 가능한 품목이 되어버린다.
그리하여 조선 당대 사회 수준을 고려한 매우 합리적인 과도기적 정책으로 보였으나, 1년 뒤 에피소드에서 납전첩을 회수하려 해도 이상하게 되파는 이가 없어 회수가 안 되었는데, 계급주의 사회인 조선에서는 납전첩에 쓰인 아무런 실권도 없는 벼슬이 강력한 가치를 가졌기 때문. 납전첩을 구매하여 '양반'이 되었던 사노가 기껏 얻은 신분을 1년 만에 나라가 몇 푼(정확히는 1천전의 1할인 100전) 던져주고 빼앗아가려 한다고 자살 시위를 벌이는 것은 차라리 순진하고 정직하다고 하겠는데[59], 일부는 납전첩이 채권 개념임을 이해하고 자본투자시장이라 할 만한 것이 없는 조선에서 여유자본을 투자할 수 있는 곳이 생겼다며 대량으로 구매하여 그걸 이해 못한 시골 사람들, 대상부고나 향반 지주들은 물론이고 노비들에게까지 '채권'이 아닌 '벼슬 임명장'으로 팔아먹었던 것이다. 전지적 시점 서술의 드립으로 서울 사람들의 코 베어가기 테크닉이라나.
이에 주인공은 납전첩은 포기하여 미판매 재고는 다 불태웠고, 1년물뿐만 아니라 3년물, 5년물, 10년물 등 진짜 국채를 만들고 이자를 더 많이 줘서 이쪽으로 갈아타게 유도하려고 한다. 독자들은 이 납전첩이 미래에 초판 국채 증서 같은 식으로 희소한 유물로 남게 되는 에피소드가 나오길 기대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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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준도감
중앙은행. 주인공이 화폐를 발행하기 위해 새로 만든 기관. 판서, 정승급 인물들 일부가 겸직으로, 주인공의 경제지식을 약간이마나 이해한 이들로 채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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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매소
지방에서 농민들의 쌀을 지폐로 사들이는 기관. 중앙은행이 찍어낸 지폐를 지방에 보급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태종시절에도 저화와 쌀을 바꿔주는 기관으로 있었으나 한시적으로만 운영된 후 사라졌는데 이를 부활시킨 것. 단순히 화폐 보급 차원만이 아니라, 각 지방의 양곡 시세 조절, 국영 사업 예산 지급 등의 업무도 담당한다.
양계 지역의 화매소에는 경식이 꼴보기 싫다는 이유로 좌천 보낸 대간 출신들이 배치되어 있는데, 책상물림이던 대간들이 양계에서 단련된 끝에 실무와 현장에도 노련한 완전체로 진화했다는 묘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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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리위무사
두만강 이북에 설치된 신규 4진 개척을 위해 설치된 신규 지방 군사 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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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제국사
번리위무사가 여진과의 무역을 담당한다면, 해동제국사는 일본과의 무역을 관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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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수군훈련원
강화도에 설치된 해군사관학교. 전국팔도의 베테랑 선원들을 모아서 설립되었다. 생도들은 경식에게 개겼던 성균관 유생들을 차출해서 채워넣었다. 천문학과 지리학과 측량을 가르치며, 그리고 경험으로 전수되었던 항해술을 서로 공유하고 전수 시키는 기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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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총대
겨울이를 보고 아이돌 마스터를 하고 싶어진 경식이 대중 공연을 하기 위해 건설을 명령한 공연장. 경식은 씹덕 아이돌 덕후라서 그런지 돔 공연장을 만들려고 했으나 돔에 대해서도, 철근 콘크리트에 대해서도 기술이 일천한 조선인지라 1층의 기단만 시범적으로 철근 콘크리트에 궁륭 구조로 만들어지고 2층은 벽돌로 얹은 그냥 조선식 누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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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악계
경식이 기루에서 놀다가 김겨울이랑 만나고 기생들의 생활 실태를 파악하고서 기루도 자본주의화하려고 만든 조직으로, 기생들을 면천하고, 각 기루를 사업장으로 만들어서 예능인으로서 영업하게 만든다. 원래 역사의 구한말에 생긴 권번을 거의 그대로 따온 것. 다만 법적인 변화랑 다르게 사회적 인식이 그에 못 따라가서 여전히 기생은 천직으로 인식되고 차라리 어디 대감집이나 부잣집에 첩으로 들어가는 걸 선호하는 풍조가 있다고 한다.
7.1. 사용되는 경제학 개념
본작에서 작중 조선인들과 함께 독자들 상당수가 작중에서 설명되는 경제학적 개념을 어려워하기 때문에 별도로 설명한다.-
본원통화
7화에서 경식이 신용화폐의 원리를 설명하는 것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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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우위론
18화에서 농본주의를 타파하고 본격적인 경제 정책을 시행하기 앞서 신하들을 설득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다. 그리고 신하들은 우리는 응원에 전력을 다하고 주상이 이것저것 만들어내는 게 비교우위론적으로 합당하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체득하고 해줘 벅벅 하고 있는지라 주인공은 빈정이 상해 일 떠넘길 수단을 고민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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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플레이션
26화에서 디플레이션 징조를 확인하고 디플레이션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이유들을 짚는다. 그 직전까지 '대체역사물 주인공이라고 쳐도 꽤 잘하지 않냐 나' 하며 만족해하던 주인공은 순식간에 '생각해 보니 너무 다양한' 가능성들을 짚으며 더럭 겁을 먹었고, 신하들도 경제정책에 관해서만은 자신감 넘치고 온갖 실적을 화수분처럼 내놓던 주상이 당황하자 깜짝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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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창조
26화에서 농협을 도입할 때 신료들에게 설명한다. 경식 본인도 잘 설명 못해서 신료들에게 아무튼 외우라고 윽박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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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환율제
12화 본문에서 설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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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시장
12화에서 고정환율제에서 나타나는 암시장의 원리를 본문에서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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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공급곡선
30화에서 철장들이 태업할 때 본문에서 설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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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황
시장경제일 때, 풍년이 들면 곡물이 과잉공급되어 곡물 가격이 떨어져서 농민들의 부담이 커지는 현상. 즉 '농민들이 풍년에 더 가난해지는' 이상한 현상이다. 원 역사 연산군 재위 1년 가을인 16화와 2년 가을 33화에서 두 번에 걸쳐서 나온다. 조선은 마지막까지 조세 기준이 쌀이어서 비슷한 현상이 없었지만, 경식의 조선에선 조세 기준이 돈이 되어서 원래 역사에서는 보이지 않던 경제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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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33화, 2년 차 가을에 경식이 이대로 가다간 농민들의 경제적 부담이 커질 것임을 알아채고 도입한다. 작중 명칭은 '기약물'이다. 농민은 기약을 맺음으로서 가격 등락으로 인한 위험을 회피할 수 있고, 상인들은 그 위험을 맡는 대신 가격 등락으로 인한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설명된다. 그리고 바로 버블이 부풀기 시작했으며[60], 홍길동은 빠르게도 사적 기약물 경매장을 만들고 작전세력을 구성해 사람들을 파산시키고 노비로 잡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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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우 모형
58화 '경제성장'에서 언급된다. 대학교 학부생 수준의 이론이지만 웹소설에서 다루기에는 좀 어려운 내용이라선지 조선 시대스럽게 베틀의 수가 많아야 국민들이 충분히 옷을 입을 수 있다는 단순한 비유로 설명하며, 은행이 존재함으로서 여러 사람의 저축을 자본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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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크레디트
마찬가지로 58화에서 등장한다. 실제 마이크로크레디트의 운영 방식과 동일하게 사업계획을 말하기만 하면 과부나 여인들에게도 돈을 빌려준다. 여인들의 경우 대부분 물레를 사서 길쌈을 하거나, 양을 사서 키우는 등 정상적으로 활용하고 있지만, 본작의 특징을 살려서 또 정책을 이상하게 활용하는 조선인들이 나오기도 한다. 특히 함경도 사람들은 마이크로크레디트로 "돈 빌려주면 총 사서 모피 사냥꾼이 되려 합니다"라며 대출을 받지만, 그 총으로 짐승이 아니라 여진족(!)을 사냥하고 초피를 약탈하는 '스타트업'에 도전하고 있다. 물론 혼자 가지야 않고, 다른 반조선 여진 부족을 공격하는 번리여진들에게 고용되어 동행하는 것이 묘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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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지의 비극
원래 역사에서 조선 후기의 삼림이 황폐화된 원인을 공유지의 비극으로 빗대며 설명한다. 원래 역사 조선은 삼림 관리 정책이 소나무의 벌목을 막는 금송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 경식은 조선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임업을 육성하는 과정에서 삼림 관리 제도를 도입하고, 삼림 소유권은 엘리너 오스트롬의 해결법을 따라 마을 공동체를 계로 조직하여 관리하도록 정책을 내려서 해결한다.
7.2. 조선 전기의 사회상 고증
일반 독자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조선 전기의 사회 경제사에 대해서도 틈틈이 설명하기 때문에 이해를 돕기 위해 서술한다. 현대인들이 보기에는 너무나 불합리한 정책이 잔뜩 산재되어 있고, 이런 것을 굉장히 상세히 설명하기 때문에 놀라는 독자들도 많다. 일부 독자들은 그냥 조선의 법률이 조선의 국력을 봉인하고 있던 것 아니냐고 할 정도. 작가 본인의 서술에서도 '전근대 기준으로도 비합리적인 법률들이 많다'고 했다.-
사주인
조선 전기에 방납을 주도하던 상인 계층. 그 유명한 대동법이 도입되기 전에도 이들이 한양으로 공급되는 공납 물자들을 막고 시장에 내놓아서 정부 각사들은 시장에서 물건을 사는 것으로 물자를 공급받았다. 주인공의 개혁 과정에서 물리적으로 박살 나고, 그 자리는 주인공이 설치한 경매장으로 대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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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인
조선 전기에 지방과 중앙의 연락을 담당하고 공납을 책임지던 계층. 주인공의 빙의 시점에는 사주인에게 공납 물자가 가로채어진 것을 책임지고 얻어터지기만 했던 억울한 자리였으나, 주인공이 사주인을 혁파하고 경매가 도입된 이후에는 그 책임에서도 해방되고 숙박업소를 운영하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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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포
면포 한 종류. 보통 표준인 오승포보다 훨씬 성겨서 옷을 만들기는커녕 콩도 못 담는 저질 면포지만, 당대 조선에서 면포는 화폐였기에 실용성이 하나도 없는데도 소액권으로 이용되었다. 조선 전기가 흔히 화폐가 없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신용화폐나 정부에서 발행한 것이 아닐 뿐 민간에서 순전히 화폐로서 사용하기 위해 만든 이 추포가 존재함으로서 조선 민간에 화폐에 대한 수요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치로 기능한다. 한양-경기-평양 등의 추포는 지폐를 만드는 데 사용되었고, 지방에선 몇 년 더 쓰이기는 했으나 시장경제가 확장되면서 사라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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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납의 폐해
역사 상식이 있는 사람들이면 다들 공납의 폐해가 컸다는 것을 들어봐서 알고 있으며, 공납을 폐지한 대동법이 매우 중요한 개혁임을 알고 있지만, 본작에서는 공납의 폐해를 함경도를 중심으로 실제 사례를 나열해서 얼마나 심각하게 조선의 경제를 망쳤는지 아주 공들여서 설명한다. 함경도민들은 초피 공납을 바치기 위해 농기구는 물론, 집의 솥 등 쇠붙이란 쇠붙이는 죄다 여진족에게 팔아야 할 지경이었으며, 농사에 쓸 소도 여진족에게 초피를 사기 위해 팔아버려서 그야말로 살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이러니 함경도민들은 여진족에 맞서 싸울 무기도 남아나지 않는 지경이었다.[61]
기가 막히게도 작중에서 설명하는 이런 조선 공납제의 실패는 유교 경전의 해석 문제 때문인데, 요순시대 중국은 구주에서 공물을 받았다는 상서의 구절을 두고 중국과 일본에서는 면포나 비단 같은 실물 화폐로 쓸 수 있는 물품으로 받고 이 재정을 이용하며 시장을 통해 토산물을 구입하면 된다고 해석하여 정석적인 조용조 제도를 열었지만 조선은 그냥 다이렉트로 토산물을 받는다고 해석한 바람에 수백년 전 수당시대 조용조보다도 열화된 제도인 토산물을 받는 공납제를 조선 전기 내내 유지했다. 한 마디로 조용조 제도 시절 중국만도 못한 잘못된 해석으로 200여년 가까이 국가의 경제를 망친 것이다. 물론 조선도 결국에는 이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대동법으로 세제를 전환했지만 아무래도 다른 국가에서는 수백 년 전에 결론 난 문제로 이랬다는 점에서 독자들은 경제학 이전에 조선의 유학적 소양 자체가 문제 있었다고 평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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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군의 약체화
성종 시기 조선군은 성종이 벌인 문치정책의 영향으로 본격적으로 약화되어서[62], 이미 징집보병인 정보병은 그냥 건설 노역부로 활용되고, 징집기병인 정기병은 말이 없이 그냥 보병 역할을 하는 병사로 활용되고 있었다. 명목상 군액은 30만, 예비병은 10만에 달했지만, 실제 전투가 가능한 것은 그에 훨씬 못 미치는 상황이었다. 이에 경식은 건설 노동자도 화폐 급여에 기반한 것으로 바꾸고, 전투력에 도움이 안 되는 보병들은 일제히 해체하여 구조조정하여 유의미한 전투력을 가진 병사들만 남기고 정예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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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피 유행
성종조 이전부터 조선과 명의 부유층은 초피를 일종의 사치품처럼 썼다. 특히 연산군도 초피를 워낙에 좋아해서 지나치게 요구하는 통에 북방의 피폐함을 가속시켰을 정도. 그러나 주인공은 이를 정예화한 조선군을 북방으로 보내서 설치한 번리위무사를 통해 해결했다. 공납이 폐지된 대신 갑사와 함경군민들이 강해지면서 초피는 함경도의 주요 수출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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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금령
조선의 조운선은 매우 침몰 사고의 발생률이 높았으며, 10월에 집하한 세금이 다음 해 5월에야 중앙에 도착할 정도로 해운 능력이 뒤떨어졌다. 그 이유는 상상을 초월하는 조선의 해금령 때문인데, 조선의 해금령은 불과 한산도를 먼 바다로 쳐서 사람들이 가지 못하게 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한반도는 리아스식 해안 때문에 연안에 암초도 많고 뻘도 많아서 그렇게 바싹 해안가를 붙어서 항해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조선 조정의 해금에 대한 불합리한 집착 때문에 그냥 조금 멀리 바다로 가면 해결될 일이 원래 역사에서는 200년이나 해결되지 않은 것. 원 역사 조선 후기에서는 현장에서 상부의 명령을 무시하고 그냥 먼 바다로 가는 것으로 해결했고, 이때서야 해운과 어업이 그나마 발전하는 계기가 된다. # 본작에서는 이 점을 반영해서 원양 항해에 대한 금제를 풀자마자 조선인들이 순식간에 유구까지 항로를 개척할 정도로 항해 능력이 폭증한다. 다만 잠시는 폭증한 것처럼 보였지만, 7년차에도 대만까지밖에 못 갔다. 조선의 선박 기술이나 항해술 자체는 연안 항해만 하던 수준에서 그다지 발전을 못해서 보이는 섬들을 따라 항해하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 법률이 급격히 나아진 것에 비해 하드웨어랑 소프트웨어가 못 따라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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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민
조선 전기에 자주 시행된 국책사업이 바로 함경도 사민이다. 세종 시대에 사군 육진 정벌로 확장된 함경도는 살기 너무 척박하고 위험해 인구가 유지가 안될 정도였다. 세종이 온갖 사유를 들어 사민을 시켜야 간신히 행정 구역 유지가 가능했다.
성군, 명군으로 알려진 세종조차도 함경도를 유지하는 것조차 힘들어 했던 이유를 본작에서는 상기한 공납의 모순을 꼽는다. 특히 상기한 성종~연산군 시기 초피 유행으로 초피 가격이 급등하자 초피 공납을 바쳐야 했던 함경도는 경제적으로 완전히 파괴되어 수십 명 규모의 여진 부락조차 막지 못하는 지경이 된다.
본작에서는 공납의 혁파, 화매소의 도입으로 조선 내 상업이 급격히 활성화되고, 번리위무사가 설치되어 군사력도 강화되자, 함경도민들이 여진족을 사냥(?)해서 초피를 얻는 입장이 되어 함경도는 순식간에 조선 내에서 제일 부유한 지역으로 변한다.[63] 이렇게 함경도가 오히려 그간의 설움을 대체하는 특혜를 받게 되자, 함경도에는 알아서 여진이 귀순하고, 사정이 편 주민들이 아이를 낳아 인구가 늘게 된다.
이후부터 사민 지역은 두만강 북쪽 신규 3진 지역이 된다. 경식 대의 사민은 사민훈련원이 설치되어 갖가지 교육을 제공하는 데다가 사민되는 마을마다 갑사 여러 명이 자주 순찰을 돌고, 부락마다 총을 몇 자루씩 들려주고 경계를 세우기에 여진족도 함부로 공격할 수 없었고, 안전이 보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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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추부 →
중추원
고려 말의 중추원이 개칭하여 조선 말기까지 이어진 명목상 무반 최고 직위의 관아. 원 역사에서는 왕에게 자문하는 기관으로 실권이나 규정된 권한이 없이 남아 왕이 주요 의사 결정 때 참여시키고 싶은 신료들을 넣는 허직 기관으로, 정3품인 중추부첨지사가 아무한테나 줘도 되는 관직으로 여겨져서 '첨지'라는 단어가 으레 쓰이는 존칭으로 격하될 정도였다. 그러나 이 허점을 알아본 경식이 중추부를 자기 맘에 드는 신료들을 넣는 곳으로 활용하여 실질 권력을 폭증시켜서, 군사, 외교, 재정 등을 관할하여 원 역사의 비변사와 같은 실세 조직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홍범 반포 이후에는 원 역사 대한제국에서 중추부를 개편하여 의회인 중추원으로 쓴 것처럼, 중추원으로 개편되어 입법, 정치 기관이 된다. 다만 최신화 기준으로도 중추원 의원에 대한 인사권은 황제가 가지고 있어서 여전히 외형적 입헌군주정인 상태. 흥미롭게도 작중 묘사되는 중추부의 권한은 원 역사 비변사가 가진 권한과 똑같고, 원 역사에서도 중추부가 허직이니 비변사와 통합하여 실제 권한과 업무를 가지게 하자는 주장이 존재했다.
8. 개변된 역사
자세한 내용은 경제왕 연산군/개변된 역사 문서 참고하십시오.9.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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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 9.67 / 10 | 조회 수 22만 2024-11-01 기준 |
10. 기타
- 원래는 대체역사 마이너 갤러리에서 교수에게 납치 당해서 왕이 됨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되던 작품인데, 연재 중 갑자기 문피아에서 공모전이 시작되며 문피아로 옮겨 간 작품이다. 작가의 성원 감사문 후술하겠지만 제목에서부터 까다롭스키의 영향이 짙게 느껴지고 동시에 대역갤 밈을 비롯한 각종 인터넷 밈이 많이 등장한다.
- 보통 문피아에서 유료화된 웹소설은 25화까지 무료로 푸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23화까지만 무료로 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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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간한 역사 관련 지식이라면 보고 들은 것이 많은 대체역사물 독자들에게도 비전공자라면 시험 때나 외우고 잊어버리는 낯선 경제학적 지식을 작중에서 마구 펼치고 있는지라, 상기했듯 고등학교 수준의 경제학 지식인데도 이해를 못하겠다는 독자들이 속출하는 중이다. 덕분에 이세계물에서 흔히 나타나는 조연들이 바보가 되는 현상이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되려
독자들이 바보가 되는 현상독자들은 주인공이 설명하는 경제학을 이해하지 못해 힘들어하는 신료들에게 감정이입하며 읽는다고 할 정도.
- 프롤로그에서 경식을 연산군에게 빙의시킨 산신령 교수는 문피아의 대체역사 소설작가 까다롭스키를 패러디한 것이다. 프롤로그의 제목부터가 '수상할 정도로 까다로운 교수님'이며, 교수의 '별도 인용이 없는 고전은 제가 직접 번역한 것입니다.'라는 대사 역시 고종, 군밤의 왕에서 까다롭스키가 작가의 말에 써진 글이다. 교수의 딸로 나오는 염라순도 임꺽정은 살아있다에서 임꺽정을 부활시켜줬다가 여고생으로 TS 당한 것으로 나오는 염라대왕[64]을 패러디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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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에 현대인이 빙의하여 개혁을 해간다는 점에서 2017년부터 연재되고 있는
명군이 되어보세! 1부와 비교되기도 한다. 위에서 말했듯 작가가 대역갤 출신이다 보니 당연하게도 명군을 아는 듯하며 실제로 패러디 요소가 보이는데, 연산군에 빙의한 박경식은 '사극 세트장인줄 착각하고 라면 같은 걸 찾지 않아서 다행이다'라는 드립을 치기도 한다. 이재석이 1부 1화에서 연산군에 빙의한 직후 내관에게 처음 한 소리가 저 대사였다. 배목인, 종성순 등 타 대체역사물에서 거의 안 다뤄지지만 명군 1부에서 주요 빌런으로 등장했던 인물들이 등장 1화 만에 허무하게 리타이어하는 식으로 오마주성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한편
명군이 되어보세!에서도 2173화에서 '경제학 전공한 빙의자 어디 없나?'라는 드립을 친 것을 보면 슈타인호프 작가도 이를 인지하고 있는 듯하다.
작중 내용이나 주인공 간의 비교도 이뤄지는데, 본작의 주인공 박경식이 독자들이 보기에도 똑똑해 보이는 데에 비해, 명군 쪽의 주인공 이재석은 팬들 사이에서 바보 사이코패스 밈이 단단히 자리잡아서[65] 주로 이재석을 놀리는 쪽으로 비교된다.
배경 설정부터 재석은 만년 공시생 출신인 평범한 인물이지만, 경식은 서울대로 추정되는 묘사에 복수 전공을 하면서 힘들어하기는 해도 4년차에 졸업을 준비하고 있는 천재형이다. 조선에서의 행보도 재석은 쌀본위제 저화나 대동법부터 1부에서는 못 끝냈는데, 경식은 1년차에 신용화폐를 만들어버리고 공납을 폐지했으며 4년차에는 산업화를 위한 첫 걸음을 떼고 일본 식민화 준비를 시작했다.
물론 이 차이는 작가의 의도 및 웹소설 트렌드의 변화에 따른 것이라고 봐야 한다. 현재 대체역사 장르에 라이트하고 사이다적인 나비 효과가 유행하게 된 것은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와 검은머리 미군 대원수를 기점으로 보는 편인데, 명군은 이 둘보다 한참 앞선 시기[66]부터 연재되고 있었다. 경제연산은 라이트한 최근 대역들의 영향을 받아 연산군 1세대 내로 조선을 송두리째 뜯어고치는 이야기인 반면, 명군이 되어보세는 여러 번 빙의를 거듭하면서 수백 년에 걸쳐 느리게 바뀌어가는 이야기다. 명군 1부는 2부 이후를 돌아보면 왜란 및 호란 전개와 이후의 역사 개변을 위한 밑밥깔이 성향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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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비교되는 것이 동시기 연재되는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남미고려)를 쓴 마늘맛스낵 작가의 신작 '
폴란드 여왕 키우기'이다.
'경제왕 연산군'에서는 경식이 빙의한 곳이 절대왕권에 중앙집권 체제인 조선이고 몸도 정통성 하나는 빵빵한 연산군인지라, 사대부들은 나라가 어떻게 되어가는 것이냐고 한탄하면서도 일단 왕이 하자는 대로 따라는 가고 그 결과 백성들의 삶이 개선되자 기뻐하며 이를 성과로 받아들인다. 그 과정에서 양반 지주들, 즉 자신들의 계층에 손해가 되어도 개혁에 어떻게든 편승하여 이익을 얻으려 하지, 개혁을 적극적으로 방해하거나 뒤집어 엎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한다. 그 '편승'이 좀 심해서 비리를 저지르는 이들은 있지만 백성들의 삶이 개선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악행'이라는 원칙에는 모두가 동의하니만큼 그걸 걸리면 목을 날려버려도 다들 아무 말도 못한다. 폐비 윤씨에 관한 공포 분위기가 있기는 하나, 그걸 제외하더라도 '반역은 생각만 해도 중죄'인 세계관.
반면 폴란드 여왕의 배경은 왕권이 개판인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으로 세임(귀족의회)의 전원에게 개별적인 무제한 거부권이 있어서 이론상 단 한 명에게라도 손해가 나면 그가 국가정책을 무조건 방해할 수 있으며, 반란이 합법[67]이기까지 하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판이라 크게 대비되었다.
다만 이것에는 국가 수립 과정에서부터 차이가 있다. 조선은 이성계가 붕괴해가는 고려 말기의 한반도를 종횡무진한 끝에 사대부들과 협조해서 세운 나라지만 폴란드 연방은 영주들이 힘을 합해 나라를 만들고 자신들의 대표로 왕을 선출한 것이기 때문. 그러니 폴란드 연방을 중앙집권적 왕국으로 바꾸려는 행위는 말하자면 주식회사에서 회사 운영하라고 전문경영인을 뽑아놨더니 월급사장이 대주주들의 주식을 소각해버리고 회사를 통째로 먹어치우겠다고 드는 꼴이다.
- 여러 대체역사물들처럼 조선이 주변국들보다 우위에 서서 주변국을 힘으로 움직일 수 있는 전개가 이루어진다. 심지어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서양사를 공부한 박경식이 영국이 과거에 했던 식민지 건설을 시도하거나 대일 무역을 위한 해동제국사를 영국 동인도 회사와 연결시키는 등등 조선사에 영국사를 결합하는 듯한 형태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 본 소설에서 의외의 재평가를 받는 인물이 있으니 바로 세조이다. 작중에서는 수십 년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난 고인이지만 세조가 남긴 과학기구나 잡학, 정책 등을 이용하면서 치국에 꽤 많은 도움을 받는 편이라고 경식이 직접적으로 언급한다. 예컨데 축산 장려[68]랑 숲 보전 같은 정책도 이미 둘 다 세조 때 정책적으로 시행한 유산이 있어서 경식이 개조해서 써먹기도 하고 조선 전기의 최대 폐단인 공납의 폐단도, 세종 시기부터 세조 시기까지의 왕들의 노력으로 완전히 공납이 폐지에 가까워 지다가 예종 시기에 롤백되었으나 본작에선 주인공이 세조의 정책을 되살리는 전개로 독자들에게 알려졌다. 이 때문에 세조가 부국강병책을 좋아하고 실제 조선의 국력에 도움이 되는 정책을 하긴 했다는 대역 독자들의 평가가 늘었다. 반대로 손자인 성종은 성리학적인 측면에서는 도학정치를 추구한 성군에 속할지언정 조선 초기의 제도의 구조적 모순으로 인해 민생의 붕괴와 군사력의 약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음에도 이를 개선하기는커녕 방치하면서 부국강병이라는 측면에서는 낙제점 수준의 군주로 역으로 재평가를 받았다.[69]
- 연재가 불규칙해지기 시작한 때에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를 저술한 대런 애스모글루가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자 본작도 주목을 받았는데, 이 작품이야말로 애스모글루가 저서에서 역설한 포용적인 경제 제도를 채택한 나라가 산업 혁명과 성공의 좁은 회랑으로 나아갔다는 주장을 그대로 대체역사물에 반영한 것이기 때문이다. 연재 불규칙 공지가 노벨상 수상 소식과 정확하게 일치한 바람에 사실 작가가 애스모글루 본인이라든가, 애스모글루의 조교라든가 하는 농담이 대체역사 마이너 갤러리에 돌기도 했다. 농담을 빼고 현실적으로 보면 경제학을 전공하고 개발경제학을 접했을 가능성이 큰 작가는 개발경제학의 석학인 대런 애스모글루의 저서 역시 접했을 것이고, 그것에서 영감을 얻어 이 소설을 집필했을 것이다.
- 24화에서 오조오억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으나 연재본이 올라오고 한 시간 뒤에 65535로 수정되었다. 해당 회차의 관련 댓글은 대부분 천안문당하였고 별다른 공지나 작가의 말은 올라오지 않았다.
[1]
육진 중 내륙의 부령을 제외한 두만강 유역의 다섯 진.
[2]
디플레이션이 발생할 듯해서 기겁을 하며 원인을 찾는데, 사실 알고 보니 단순히 백성들이 돈을 장롱에 보관해서 시중에서 돈이 사라진 것이었다. 실제 역사에서도
전황이라는 이름으로 18세기에 벌어졌던 일이다.
[3]
16세기까지는 서양에서조차 제대로 된 파종기가 없었다.
[4]
당시 상방이었던
여불위가 주도해서 생산책임자 시스템 체계적으로 명료하게 만들었다.
[5]
실제 역사로는 그 반대인 것이
융경제가 해금령을 풀고 대외무역을 허가하자 왜구가 유의미하게 줄어들고 청나라 시기 강희제가 정성공 세력을 물리친 이후 해금령을 풀자 해적이 들끓던
푸젠성의 치안이 완전히 안정화되고 이 지역의 경제가 발전하게 된다.
[6]
이 때문에 명청시대 중국 경제의 경우, 중국의 막대한 생산량은 그냥 단순히 중국의 인구가 많으니 그만큼 자급자족하는 양도 많았을 뿐이며 추가적인 수요를 창출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예컨데, 농가의 아낙네들이 식구들에게 입힐
면포를
길쌈하여 1년에 1~2필씩 생산한다 치면, 인구 1천만이면 1천만 필의 면포가 생산되고 4억 명이면 4억 필의 면포가 생산되는 단지 그뿐인 것이다. 이럴 경우 당연히 실질적인
부국강병이나
자본주의
시장경제로의 진입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고 남는, 외부에 투사할 수 있는 '잉여 생산물'이나 추가적 생산을 받아들일 수 있는 수요가 얼마나 있느냐가 중요한데 산업 혁명 없는 전근대적
가내수공업으로는 당연히 근대적인 소비시장을 열지 못한다. 중국의 막대한 생산량은 "중국은 인력이 남아돌아 산업 혁명의 필요성이 적었다"라는 논리를 뒷받침해왔는데, 실제로는 생산량의 대다수는 단순 자급자족, 최소한의 의식주를 충족시키는데 급급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실제 중국 역사를 살펴봐도 중국은 역사 내내 어떻게든 1인당 노동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해왔지만 몇몇 고점의 시대에 생산성이 높아져도 그 시기를 제외하면 이게 다시
도루묵이 되는 경우가 흔했다.
[7]
일정 이상 성장할 수 없는 도시화 문제와 애초에 1인당 자본 축적량과 외부로부터의 수요가 도시보다 훨씬 떨어질 수밖에 없는, 자족적 농촌공동체에만 유리하게 설계된 사회제도.
[8]
이른바 19세기 동양의
동도서기론도 당대의 우월한 '현대기술'만을 가져오면 기존 체제를 유지하면서 우리도 똑같이 발전할 수 있을거라는 착각 때문에 실패한 것이다. 작중에도 인용되는 일화지만 괜히
보빙사로 갔던
민영익이 '미국의 밝음과 조선의 어둠' 운운하며 동양의 전반적인 문명이 완전히 서양에 비해 뒤떨어졌다고 지적한게 아니고
후쿠자와 유키치가 기존에 있던 동양적 요소를 다 뜯어 고쳐야 일본이 발전할 수 있다고 평가한 게 아니다.
[9]
해당 맥락에서 최초로 드립을 사용하여 대체역사 소설계에서 밈이 되었다.
[10]
한국 독립 전쟁에
마유즈미 후유코를 모델로 등장한 후유코/겨울이로 대체역사 소설계에서 밈으로 활용되었다.
#
[11]
치쿠젠국-
하카타/스오국-
시모노세키/셋츠국-
사카이/무사시국-
요코스카. 협상 시점에서 요코스카는 너무 먼데다가 아직 발전하지 않았을 시기이고, 시모노세키는 오우치 관할이라 논의 대상이 아니었다.
[12]
조선 시대에는 명백히 윤리적으로 어긋난 일이며, 조선식 유교 윤리랑은 거리가 먼 경식조차도 쫄려했는데, 암행 나가서 겨울이가 소매를 잡아끌자 상중이라고 뿌리친 그 날이었기 때문.
[13]
그리고 이것이 연산군 이융의 영향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14]
본래 역사에서도 정현왕후는 친자가 아닌 연산군에게 꽤 잘해주었다고 한다. 연산군이 폐비 윤씨 사건을 알기 전까지는 사이가 좋았다.
[15]
원 역사에서도 왕대비는 본인이 죽으면 장례식 절차를 간소화해서 자식들을 너무 고생하지 말라고 사전에 말해두었다.
[16]
연산군이라는 젊은 종친에게 첩으로 들어갈 수라도 있을까 기대했지만 경식이 전혀 눈치를 주지 않았으므로 예전에 잠깐 마주쳤던 걸 알아보지도 못하는 줄 알고 포기했다.
[17]
패러디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마유즈미 후유코와 같은 수치다.
[18]
이 과정에서 경식이 주변 일대를 의학적인 의미로 소독해 버려, 이 풍습이 민간에 퍼지면서 인구증가율에 나름 영향을 끼쳤다.
[19]
다만 매번 말 안 들으면 엄벌하자, 잡아가두자 식의 폭력본위제만 내놓는 바람에 권력의 핵심인 평준도감에선 밀려났다. 그러면서 능력이 있는데도 도학 지상주의를 내세우니 유자광이나 이극규처럼 그 외에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20]
역사적으로 '창고가 없어서 세곡을 보관할 수 없는데 세곡이 없어서 창고를 지을 수 없다'가 반복된다. 그것도 조선 건국부터 조선이 망할 때까지 내내.
[21]
갑옷 기준으로만, 종이갑옷을 사흘에 한 벌 만들던 걸 철갑을 하루 80벌 만들게 되었다. 종류 빼고도 240배에 종이와 철물의 질적 차이를 감안하면 천 배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22]
그렇게 과도한 흉년은 아니었지만 경식에 의해 조선에 화폐가 도입되면서 극소규모 자영농이나 소작농들이 '한양 가서 막일하는 게 낫겠다'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달리 말하면
도시화 현상.
[23]
다만 뇌물이 없었어도 무늬가 들어간 돗자리틀 제조법은 특허가 나왔을 거라는 내레이션의 서술이 있다.
[24]
지폐 도입을 통해 세입을 예측할 수 있게 되었기에 가능한 일. 이후 언급되지만 세금을 못 내는 백성은 불량채권으로 분류하여 장부상 "좋아 세금을 거두는 데 성공했군."이라고 간주한 후 장부상 예산으로 사업을 진행하며 그에 필요한 인력에 세금 못 낸 불량채권들을 동원하여 인건비로 갈음했다.
[25]
사실 최부는 반박하려고 되묻거나 한 게 아니라 진짜로 궁금해서 물어본 거였다(...).
[26]
사실 탐사대의 공적은 명분이고, 임사홍은 재이론을 헛소리라고 여기고 상소하다 대간과 싸운 인물이라서, 경식이 쓸 만하다고 발탁한 것이다.
[27]
윤필상은 1427년생으로 1498년도인 작중엔 70세.
[28]
마시멜로 실험에 비유하는데 애당초 당장 매해 겨울마다 얼어죽거나 굶어죽을 걱정을 하는 함경도 주민들에게 내년에 오를 테니 팔지 말라는 게 무리한 부탁이었다. "함경도는 그런 거 몰라. 당장 목면 한 필이 더 소중해".
[29]
그리고 중추원은 원 제도상의 허점을 이용해 경식이 중용하는 사람들만 들어왔기 때문에 유자광의 중추원 총리대신은 실권자로선 어지간한 판서, 정승을 넘어서는 자리다.
[30]
원 역사의 연산군은 이런 간언을 하는 유자광에게 자존심 상한다면서 국문을 하라고 명했다.
[31]
다만 후술하겠지만 이 공납제 자체가 조선의 잘못된 유교경전 해석 때문에 발생한 뒤떨어진 체제이기 때문에 조선 성리학에 호의적인 타다마사조차도 이게 말이 되는 경세론인가 의문을 품고 있기는 하다.
[32]
원 역사에서도 무오사화 때 같은 이유로 투옥되었다 석방된 적 있다.
[33]
당시 관점에서는 '지폐를 사러'가 될 것이다. 화매소에서는 "지폐 천 전을 쌀 얼마에 팔겠소!"라고 경매를 붙였다. 그 이외의 잡곡이나 후추 등은 반대로 지폐를 기준으로 파는 모양.
[34]
다만 당시 조선의 미신상 물귀신은 제삿밥도 못 얻어먹고 저승에도 못 가는 등 귀신 중에서도 유독 대우가 박한지라 실제로 뛰어들진 않았을 거라고 한다.
[35]
이것도 경식이 인두로 지지는 등의 근본 없는 고문은 금지하고, 장슬 등도 병신이 된다고 장으로 바꾸었다. 또한 손톱 뽑기 같은 미래적인 고문은 전수하지 않았다. 곤장에 맞아죽는 것보다 손톱이 인도적인 것 아닐까?
[36]
키가 작고 전공을 세울 기회가 없어서 갑사는 못되었다고 한다.
[37]
그런데 푸만이 총에 맞아 죽기 직전의 단말마가 하필이면 와우의
동방제과 패러디다.
[38]
조선인들도 이게 뭔지 몰라서 당황했다. 중국에서 암컷 송골매를 부르는 속어라고 해석.
[39]
작중에서 능력이 있는데 관학에 들지 않으면 처벌받는다고 언급된다.
[40]
사실 이 시점의 성균관은 별로 쓸데없는 선비들을 수군이나 하라면서 처넣는 발령대기소로 변모했다.
[41]
여기서 마이크로크레딧에 보증을 세우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42]
사민훈련원에서 초(소대 정도) 단위로 훈련시킨 뒤 통째로 사민시킨다.
[43]
이 시기 몽골의 명군 만두카이와 다얀 칸이 매섭게 기세를 올리고 있어서 명의 국경은 지극히 위태로웠다.
[44]
대신들의 현황보고에서 드러나길 도교 제사에만 수천만 냥의 은을 썼고, 돈이 없으면 조정에서 세금을 빼돌리기를 반복했다.
[45]
원래 역사에서는 감기를 몇 달 간 앓다가 갑자기 코피를 대량으로 쏟고 사망해서 약을 잘못 복용해 부작용으로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46]
조공무역에 대한 평가는 장단점이 있지만, 조선이든 명이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밀고 당기는 제도였다. 국초에만 해도 말, 공녀, 금은 등을 과하게 요구해 조선에선 조공을 극혐했고 어떻게든 회피하려고 기를 썼다. 명나라도 금은이나 말이 아닌 흔한 물건을 가져와서 바치고 훨씬 값진 비단을 받아가는 조선과 조공국들을 비난했다. 최소한 황제가 뇌물 좀 더 받자고 맘대로 갈아치워도 되는 제도는 절대 아닌 셈.
[47]
전개상 닝보의 난이랑 거의 똑같은 사건이다.
[48]
수험도는 산에 틀어박혀서 수행을 할 것을 권하고, 여자를 안지 말라고 하는 등 속세와 현실성이 괴리된 종교다.
[49]
원 역사 1507년에 오우치 가문은 요시타네를 앞세우고 상락해 교토를 장악하나, 요시즈미 세력과의 연이은 전투, 규슈 내의 쇼니, 아마고 가문의 빈집털기 탓에 천하인에 오르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다.
[50]
조선에 대한 몰이해로 탄생한 일로, 조선의 의회가 조정에 비견되는 권한을 가졌다고 생각한 요시오키, 더 이상 막부와 쇼군이라는 실세에게 휘둘리기 싫고 정권을 얻고 싶은 덴노, 조선식 주자학을 도입하고 싶은 타다마사의 이해가 합치한 것이다. 물론 조선에서는 경식은 최종적으론 국민과 의회에 권력이 이양되기를 원하면서도, 연산군의 권력욕에 영향을 받아 실질적인 권력을 틀어쥐고 있다.
[51]
폴란드 여왕 키우기 작품으로 유명하다.
[52]
그런데 고카시와바라 덴노의 시대인 15세기 말~16세기 중순까지는 전국시대 여파로 워낙 덴노가 힘들게 살았던 시기라 원 역사에 비하면 상당히 대우가 좋다.
[53]
의회가 주권을 차지하는 것 같지만, 귀족원 의회제도 특성상 왕가 쪽에도 상당한 권한을 줄 수밖에 없다.
[54]
이때 뻔뻔하게 '자기들도 해적질은 했지만 가난하니까 어쩔 수 없다'라고 되뇌인다.
[55]
본작에서 종종 보이는 명군의 오마주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명군의 주요 빌런이나 중요 인물들이 본작에서는 이렇게 허무하게 아웃되는 경우가 있는 편이다. 예컨대 명군 1부에서 재석을 암살하려 했던 인물이자 재석이 히로인
상희와 만나는 계기가 됐던 배목인은 동네 파출소 노릇을 하던 갑사들이 그냥 산적으로 생각하고 때려잡아서 경식은 갑사들이 일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말았으며, 명군 2부에선 협력자로, 3, 4부에선 동맹관계로 나오는 아이신기오로 가문은 황형에게 약탈당해 역사에서 퇴장하기도 한다.
[56]
뚝딱하면 뭔가 나온다. 가끔 자신들을 뚝딱뚝딱 때린다.
[57]
어차피 조선의 요역제는 이미 거의 다 붕괴했다. 심지어 경식은 돈까지 주고 있어 요역을 강탈하는 비리까지 발생할 정도.
[58]
조선은 지위에 따라 입을 수 있는 옷이 제한되어 있긴 한데 어차피 다들 무시하다 사대부들이 빡쳤을 때 시비 거는 용도로만 사용하는 원칙이다.
[59]
사실 1천 전짜리 납전첩을 살 정도면 상당히 돈 있는 계층이므로, 양반 지위를 얻고 양반으로서 행동반경을 넓혔다가 갑자기 다시 천민으로 굴러떨어지면 심각한 문제가 일어날 수도 있다.
[60]
본래 위험과 내년 수확량을 가늠하여 적정한 수준에서 가치가 형성되어야 하는데 다들 '값이 오르니까 산다, 그래서 값이 더 오른다'가 무한반복되는 전형적인 버블 루트에 진입했다.
[61]
공납은 기본적으로 전세 거두고 난 뒤에 부족한 국가재정을 충당하려는 목적에서 유지된 세금이다. 근데 막상 거두다 보니 전체 예산 중에서 전세대신 공납으로 메워야 하는 양이 많아졌고, 부족분을 주먹구구식으로 채우는 공납 특성상 중간에 떼먹기도 전세보다 훨씬 편한 관계로 쉽게 폐단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62]
잡학을 좋아하고 이에 능했던
세조나 아버지의 정책노선을 충분히 따른
예종 시기까지는 실무에 밝은 사람들이 실무에 맞게 배치되었지만 조선 최초의 도학군주인 성종 시기부터 실무에 어두운 유생들이 기용되어 문제가 생겼다고 언급된다. 비단 군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 운용이나 수공업 등 사회 전반에서 발생된 문제라고.
[63]
이러한 변화는 원래 역사에서 조선 후기에 실제로 있었던 일로, 대동법이 시행되자 함경도는 공납의 부담에서 벗어나며, 북포나 북어 등 지역 특산물이 경상도 등 남방으로 수출되어 경제 개발이 진행되고, 경제적 여유가 생긴 함경도민들은 경제적 이득을 찾아 스스로 북쪽의 간도로 진출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64]
해당 작에서는 염라희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65]
어디까지나 밈일 뿐이다. 이재석 문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다른 대역물 주인공들의 능력과 비교해서 능력이 살짝 애매할 뿐 이재석도 매우 유능한 편이고 사이코패스 기질도 변호의 여지는 있다.
[66]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보다 1년, 검은머리 미군 대원수보다는 3년 먼저 연재가 시작됐다. 쉼없이 트렌드가 바뀌는 웹소설계에서는 엄청난 차이로, 대체역사 장르 내에서도 명군이 되어보세가 연재되는 동안 시작하고 완결된 작품이 셀 수조차 없다.
[67]
설령 국왕파가 반란군에게 이겨도 반란의 원인이 된 국왕의 정책 몇 가지가 통과되는 것일 뿐, 반란을 일으킨 귀족들은 이권 좀 내놓는 정도로 끝이고 심지어는 반성문만 쓰고 넘어간 적도 있다고.
[68]
태종이 제주도 외 도서 지역에 목장을 설치하고 군마를 기르려 한 것이 최초의 시도였고 세종과 세조를 거쳐 연산군조차 이 부분에 신경을 썼으나 태조~문종 시기 명에 6~7만 필을 바쳐야 했던데다 지긋지긋한 호랑이(...) 때문에 잘 안 되었다.
[69]
사실 성종 입장에서는 억울한 평가인데 성종 시대 군축은 태종부터 세조까지 일관되게 추진해온 군사력 확충이 한계에 달해 이시애의 난으로 터져버린 상황에서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서 즉위하자마자 취해진 조치였다. 이때 성종은 아직 친정도 못하는 어린 왕으로 세조의 구신과 정희왕후부터가 군축 필요성에 합의한 상태였다. 게다가 세종, 문종, 세조가 지속적으로 개선해오던 공납 문제를 단번에 롤백시켜 성종이 일 못 벌리고 긴축에 매달리게 할 수밖에 없었던 것과 신공신을 죄다 숙청해 사림을 건드릴 수 없게 만든 건 예종의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