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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4 21:22:27

가로세로 세계사

1. 개요2. 상세3. 특징4. 비판
4.1. ( 먼나라 이웃나라와 비교했을 때의) 문제점4.2. 문제점 및 오류
4.2.1. 1권(발칸반도)4.2.2. 2권(동남아시아)4.2.3. 3권(중동)4.2.4. 4권(캐나다·호주·뉴질랜드)

1. 개요

이원복이 집필한 먼나라 이웃나라의 후속 시리즈이다. 초판은 별개 시리즈였지만 이후 먼나라 이웃나라 16~19권으로 통합되었다.

2. 상세

현대 국가는 그 수가 너무 많아 한 권에 한 나라씩 일일이 설명할 수 없으며 같은 지역권은 같은 역사를 공유하고 있기에 지역으로 묶어 나오게 되었다고 도입부에서 설명하고 있다.[1] 오너캐 외에도 가로, 세로, 바로 등의 새로운 멤버[2]들이 추가된 것도 특징.

먼나라 이웃나라 20권 오스만제국-터키편이 발간되면서 가로세로 세계사는 먼나라 이웃나라 시즌2 16~19권으로 편입되었다. 이에 따라 먼나라 이웃나라로 표지를 변경한 신판들이 인터넷서점에서 판매중이다. 통합된 비하인드가 있는데, 원래 먼나라 이웃나라랑 별개로 진행하려 했는데 출판사에서 번거롭게 그러지 말고 하나로 통합해서 내보자고 해서 그냥 통합했다고 EBS 초대석 인터뷰에서 밝혔다.

3. 특징

2014년까지 4권까지 출간되었으며, 각각 1권 발칸반도 편, 2권 동남아시아 편, 3권 중동 편, 4권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1권은 먼나라 이웃나라 네덜란드 편과 마찬가지로 책의 반절 정도를 시리즈 개괄에 할애했다.

4권은 중유럽, 5권은 영연방을 다루려 했는데 출간이 계속 연기되다가 4권은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편으로 출간되었다.

중국 편은 원래 몽골과 함께 6권에서 중화권으로 다루려 했는데, 2009년 중앙일보에 연재했던 분량[3]을 먼나라 이웃나라 13, 14권으로 냈다. 가로세로 세계사 1권에서 이제 먼나라 이웃나라 끝내고 이걸 시작하겠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식언이 되어 버렸다.[4] 원래 이 시리즈에 들어갈 예정이었던 러시아도 먼나라 이웃나라로 나올 듯하였으나 생뚱맞게도 스페인(에스파냐)이 먼나라 이웃나라 마지막권으로 나왔다. 저자는 스페인편 머리말에서 가로세로 세계사 시리즈를 재개할 것이라고 했지만, 그 시기가 언제가 될 지도 불투명하다. 일단 2013년 시점까지는 3권 이후로는 베이퍼웨어가 된 상태였다. 중국 편 계획이 변경된 덕분에 4권 영연방(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편 이후로는 오스만 제국( 튀르키예) 편, 아프리카 편, 중남미 편을 예정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아마도 오스트리아 등의 중부 유럽이나 러시아는 세상만사 유럽만사에서 다룬 것으로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5] 결국 기존의 먼나라 이웃나라 시리즈에 시즌 2로 편입되었고 후속작도 먼나라 이웃나라 타이틀을 달고 나오게 되었다.

그동안 우리 머릿속을 지배했던 서구 중심 사관에 얽매이지 않고 균형잡힌 이야기를 한다는 취지로 외국의 역사를 소개하는 서적으로서는 그다지 나쁘지 않은 서적이지만, 뒤집으면 간략한 역사 소개에 그칠 뿐이라는 것이 한계.

기본적으론 각 지역의 역사를 소개하는 구성을 취하는 책이지만, 4권인 캐나다·호주·뉴질랜드 편에서는 각 국가의 사회나 문화를 제법 자세하게 다루기도 했다.

4. 비판

여기서는 은근히 미국에 대한 두둔이 종종 보이는 것도 문제. 특히, 필리핀에서 대놓고 노골적이었는데 필리핀을 미국이 다른 제국주의 나라들과 다르게 손해보며 지배했다느니, 투자를 많이 해 줬다느니 헛소리들을 그리며 옹호한 것이다. 필리핀만 봐도 이게 얼마나 헛소리인지 알 수 있다.[6][7] 그나마 라오스에서는 '미국은 파테트라오 게릴라와 호찌민통로를 없애고자 라오스에 무차별 폭격을 가해서 75만명의 라오스 난민이 발생하는 참극이 벌어졌다.'라는 내용이 있고, 캄보디아에서는 '미군의 공산군 폭격은 민간인들에게도 엄청난 피해를 줘 국민들은 미국, 론놀정권을 증오하게 되었다.'라고 해 미군에 의한 피해도 많이 나와 있다. 더군다나 라오스 편에서는 아예 폭격당한 사진을 넣으면서 미군 폭격으로 달표면처럼 변해버린 라오스라고 했다.

그리고 고대 제국주의와 근대 제국주의가 서로 다르다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까지는 그렇다고 쳐도 고대 제국주의는 옳고 근대 제국주의는 나쁘다는 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한나 아렌트의 입으로. 특히 고대 로마에 해당하는 자가 창으로 한 지역을 정복하면서 그 지역에 있는 주민들이 왜 남의 땅을 쳐들어오냐고 반박하자 고대 로마가 "남의 땅 좋아하네. 어차피 너희들의 조상도 다른 데서 건너온 자들이잖아?" 이리 말하자 데꿀멍하며 그 지역 주민들이 무릎을 꿇고 엎드리고 고대 로마가 강한 자가 차지하는 게 당연하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는데 이거 딱 전형적인 근대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의 논리다.

4.1. ( 먼나라 이웃나라와 비교했을 때의) 문제점

먼나라 이웃나라나 다른 만화책에서 선보인 깔끔하고 완성도 있는 그림체가 망가졌다. 캐릭터의 신체 비례는 제각각이고, 실존 인물을 무리하게 현실적으로 그리려 하는 바람에 어색하게 다가온다. 얼굴의 홍조를 지나치게 많이 표현하여, 하나같이 얼굴이 다 빨간 컬러링 문제도 있다. 게다가 그 손발이 오그라드는 개그들은 정도가 더 심해졌고...[8]

오너캐의 말이나 책 설명에 보면 이념적으로 편향되지 않는 역사만화를 그리기 위해 가로세로 세계사라는 이름을 지었는데 좌파적 역사관을 가졌다는 세로가 우파적 역사관을 가졌다는 가로보다 철없게 그려진 점과 뒷표지부터 모든걸 부정적으로 본다는 서술[9] 때문에 진짜 균형이 제대로 잡혀 있는 건지 의심하게 되는 점들도 종종 나온다. 뭐 어차피 1권에서만 어설픈 이념대립을 하고 2권부터는 오너캐 설명이나 듣는 쩌리로 전락해 버리니까 상관없다.[10] 이원복 교수의 와인의 세계, 세계의 와인에서 얘네들(가로 & 세로)의 들이 나오며 바로의 경우는 언니가 나온다.[11]

4.2. 문제점 및 오류

먼나라 이웃나라 문제점
네덜란드 프랑스 독일 영국
스위스 이탈리아 일본 한국
미국 중국 에스파냐
발칸반도 / 동남아시아 / 중동 /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1
오스만 제국, 튀르키예 러시아 인도와 인도아대륙
공정성 구성
윗첨자1: 舊 가로세로 세계사 1~4권.

4.2.1. 1권(발칸반도)

4.2.2. 2권(동남아시아)

중요한 부분만 다루다 보니 설명이 부족해지거나 아예 빠진 내용이나 오류가 있다.

4.2.3. 3권(중동)

그리고 이 사건에 대해서 너무 의미없이 넘어간 것도 있는데 카르발라 참극은 시아파가 본격적으로 발족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전부터도 알리 지지/반대에 따라 분열 조짐이 보이고 있었지만 이 사건에 이르러 알리 지지파는 시아파라는 세력으로 변모하였고 그 반대파인 수니파와 1400년 가까운 지금까지도 대립하는 계기가 된다. 구체적으론 시아파에서 중요한 종교축제인 아슈라 축제 마흐디 사상이 모두 카르발라 참극에서 기원한다.
또한 이 사건은 갓 출범한 우마이야 왕조를 크게 위협했다. 안 그래도 칼리프는 세습되지 않는다는 개념을 박살내고 야지드 1세가 세습해서 문제가 안 생길 수 없는 상황에서[29] 무려 예언자의 외손자와 그 지지자이자 일족을 학살함으로서 우마이야 왕조에 대한 민심은 개박살이 나버려 이 사건이 알려지자 야지드의 등극을 인정했던 이븐 주바이르[30]는 입장을 바꿔 후세인의 죽음을 순교로 선포하고 야지드에 반기를 들었고 메디나가 이에 호응하였다. 거기다가 야지드가 이븐 주바이르를 잡겠다고 메카에 군대를 보냈다가 카바 신전에 불이 나서 민심이 더욱더 악화되었다. 결국 야지드 1세는 카르발라 참극 후 겨우 3년만에 세상을 떠났고 그 뒤를 이은 무아위야 2세때는 칼리프직을 포기하려다가 1년만에 죽었다. 이런 식으로 궁지에 몰린 우마이야 왕조는 한때는 가문의 본거지를 제외한 모든 영역을 상실하다시피 했고 결국 무야위야 2세가 죽고도 8년이 지나서야 우마이야 왕조는 최종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즉 야지드 1세의 삽질이 갓 성립된 우마이야 왕조를 끝장낼 뻔 했던 셈.[31]
* 아브드 알라흐만이 스페인으로 피신한 이후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라는 칭호에 대항에 스스로 에미르라 칭하니'라고 되어있는데, 에미르는 엄밀히 말해 장군, 사령관 정도로 칼리프보다 한참 낮은 직위로서 아바스 왕조의 심기를 건들지 않기 위해 선택한 것이지 대항하려고 선택한 직위는 아니다.
* 우마이야 왕조가 프랑크 왕국과 투르 푸아티에 전투에서 패배한 이후 국력에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는 서술이 나오는데, 우마이야 왕조가 투르 푸아티에 전투에서 손실한 병력의 수는 하자르 칸국 동로마 제국 콘스탄티노플 공방전 당시 손실한 병력에 비하면 소수에 불과했고 제국의 변두리에서 일어난 일인만큼 그 중요성도 더 적었다. 다만 우마이야 왕조는 본디 우마르 2세 사후(720년)부터 쇠퇴하고 있긴 했다.
* 아바스 왕조가 몽골의 침략으로 완전히 멸망했다고 기술했는데 사실 단 3년만에 맘루크에 의해 카이로에서 다시 부활했다. 다만 어디까지나 맘루크에 의한 부활인 만큼 멸망때까지 아바스조의 칼리프들은 맘루크들의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마찬가지로 맘루크들이 칼리프 자리를 놓고 다투었다는 것도 옳지 않다. 맘루크 왕조 시기에도 칼리프 자리는 아바스조가 가지고 있었고 맘루크들은 술탄 자리만 놓고 싸웠다. 그래도 칼리프가 맘루크들의 꼭두각시라서 그런지 칼리프들도 260년 남짓한 기간동안 17명이 맡아 했는데 이 중에서 1명은 두 번을 재위했고 6명은 10년도 재위하지 못했다. 그래도 맘루크 왕조의 술탄 계보와 비교하면 이 정도는 양호한 편이다.
* 십자군 전쟁을 중동에선 변방에서 일어난 작은 소란정도로 취급한다고 서술한 것이 잘못된 내용이라고 지적되었는데 이는 틀린 내용이 아니다. 당시 십자군의 활동영역은 아나톨리아-시리아-팔레스타인-이집트같은 동지중해 권역이 중심이라 아라비아 반도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볼 일이 거의 없었으며 후대의 몽골의 침략으로 인해 잊혔으나[32][33] 중동 지역의 식민지 지배가 본격화되고 유럽인들이 이를 제2의 십자군의 성공이라고 기념하면서 오히려 아랍 쪽에서도 십자군을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종합하자면 현대의 중동인들은 십자군을 변방의 사건으로 여기지 않지만 십자군 전쟁 당시의 이슬람 세계는 분명 아라비아, 메소포타미아가 중심지였던 만큼 십자군 전쟁 당시의 중동인들의 시각에선 변방의 싸움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34] 원래 서술에서도 십자군 전쟁 당시의 중동인들의 시각을 이야기하는 거지 현대의 시각은 현대 중동세계 파트에서 소개하고 있다. 다만 서술이 좀 불명확해 원래 의도를 오해할 여지는 있다.
마지막으로 고대 그리스인이라고 말로만 우주를 다루거나 한건 아니다. 좋은 예시로 지구 지름을 구한 에라토스테네스는 태양의 각도를 이용해 지구의 지름을 쟀고 그 값이 완전히 맞는건 아니었지만 원리 자체는 맞다. 그리고 실제로 그 거리까지 가보기도 했고.

4.2.4. 4권(캐나다·호주·뉴질랜드)



[1] 먼나라 이웃나라 때 했던 대로 나머지 220개국(세계은행 추산)을 1년에 2권씩 다룰 경우 110년이 걸린다. 그런데 현장 답사 등까지 포함할 경우 몇 갑절은 걸릴 수 있다. [2] 개정판 먼나라 이웃나라 네덜란드편에도 잠깐 나왔다(시민의식에 대해 질문하는 장면. 완결판 기준으로 180쪽 3번째 컷). [3] 중국 근현대사이다. [4] 사실 그 연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중앙일보의 여러번의 간곡한 부탁을 받아들이게 되면서부터이다. [5] 근데, 4권부터는 표지목차의 4권의 제목소개에 5권의 제목이 들어가야 할 자리부터 '시리즈는 계속됩니다'라고만 적혀있고, 5권부터 구체적으로 몇권에서 무슨 주제를 다룰지를 밝히지 않고 있는지라 뭐가 나올지를 예측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아니, 나오는 걸 더 기대하기 어려워졌다는 느낌도 있다. [6] 마크 트웨인만 봐도 필리핀 침공, 미서전쟁을 제국주의에 대한 미국의 해방으로 처음에는 찬양했다가 갈수록 미국이 저지르는 학살과 경제적 착취를 보고 다른 제국주의와 차이가 뭐냐고 분노하며 비난하고 책을 써서 풍자했다가 24년이나 책이 출판금지당하고 그가 죽고 나서야 간신히 출판된다. [7] 사실 거기까지 갈 것도 없다. 당장 먼나라 이웃나라 3권인 도이칠란트 편에서 미국의 민족 자결주의를 설명할 때 '필리핀 국민도 민족 자결주의의 원칙에 따라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한다는 원칙에 따라 미국으로부터 독립하겠다면 인정하시겠습니까?'라고 필리핀 국민이 말하자 '그건 아니지! 그건 패전국 식민지에만 해당하는 거고, 우리 승전국 식민지에는 전혀 해당되는 것이 아니거든. 우리가 미쳤냐? 우리 식민지를 스스로 독립, 해방시켜 주게?'라고 하는 부분이 있는 걸 보면 그냥 일관성이 없다. [8] 그나마 납득할 만한게 동남아편의 '세로'를 패러디한 후보인 '스에로' 정도. [9] 당연히 우파라고 모든걸 긍정적으로, 좌파도 모든걸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10] 참고로 레귤러 캐릭터들 중 유일한 여성 캐릭터인 바로는 1권부터 비중이 없었다. [11] 이름은 돌림자를 써서 형제자매간에 비슷하게 지었다는 설정을 넣어 가루, 제로, 바리라고 나온다. 별 뜻 없이 그냥 가로, 세로, 바로와 비슷하게 지은 것. [12] 이집트인이 그리스인에게 스핑크스와 피라미드를 보여주며 자랑하고 파르테논 신전을 왕궁 화장실 만하다며 비웃는 모습이 나오는데, 스핑크스나 피라미드는 당대에도 이미 수천 년된 건축물로 이집트에서조차 고대 유적 취급받았지 실제로 사용하는 건물이 아니었다. [13] 물론 로마 제국과 같은 거대 제국은 아니고 해상 무역을 기반으로 한 도시국가들의 연합체인 제국(諸國)이었다. [14] 이랬던 만큼 페르시아 정복 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액수의 이익을 얻었다. [15] 그리스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페르시아의 겨울수도인 수사를 점령했을 때는 5만 탈렌트 어치의 은괴를, 페르시아 제국의 의례적, 종교적 수도인 페르세폴리스를 점령하고 나서는 12만 탈렌트 어치의 금화를 차지했다. 12만 탈렌트는 기원전 5세기 무렵 그리스의 도시 국가인 아테네의 1년 재정보다 무려 300배나 많은 수치였다. 아테네가 고대 그리스 도시 국가들 중에서 가장 부유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페르세폴리스가 갖고 있었던 경제력은 그리스 전체를 합친 규모보다 훨씬 거대했던 것이다. 여기서 1탈렌트의 가치가 얼마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기원전 431년에서 404년까지 그리스인들끼리 싸운 펠로폰네소스 전쟁 무렵에 1탈렌트의 금화는 200명이 탑승하는 군함인 3단 노선 1척을 1개월 동안 유지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페르시아 제국을 무너뜨린 시기가 펠로폰네소스 전쟁 때보다 약 70년 이후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물가의 가치가 달라졌다고 해도 12만 탈렌트라면 실로 어마어마한 액수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페르시아 제국이 가진 부는 그리스인들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페르시아 제국이 발행했던 다릭 금화의 위상은 오늘날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이 발행하는 달러화와 같았다. 그처럼 다릭 금화는 그리스인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고, 그리스인들은 다릭 금화를 갖기 위해 페르시아 제국 군대에 복무하는 용병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출처: 전장을 지배한 무기전 전세를 뒤바꾼 보급전/ 도현신 지음/ 시대의창 [16] 주교품과 관련된 부분은 가로세로 세계사 1권 내에서도 설명됨. 가로세로 세계사에서는 승진을 못한다고 설명됨. [17] 크로아티아 해안 지역. [18] 중국 지배 이전의 역사인 반랑·어우락·남비엣(물론 반랑과 어우락은 역사적 실체가 명확하지 않고, 남비엣은 창건자가 중국인인데다 중심지도 중국 광저우에 있었으니 제외시켰을 수 있다. 실제로 베트남인들은 남월을 중국인이 세운 왕조로 보아 자신들의 왕조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은 아예 서술에서 제외시켰고, 중국 지배기의 역사는 쯩 자매의 반란 정도만 한 컷 정도로 언급되며, 중국 독립 이후부터 레 왕조 성립 이전까지의 역사는 응오 왕조를 제외하고는 생략되어있다. 베트남사에서 중요한 부분만 대략적으로 설명한 거니 마냥 비판할 수만은 없긴 하다. 하지만 오래 가지 못했던 전 레 왕조나 딘 왕조는 그렇다고 쳐도 베트남 최초의 장기 왕조로서, 베트남의 수도를 최초로 하노이로 정하고 북쪽의 송나라와 겨루기도 했던 리 왕조와, 원나라의 침략을 물리치고 대월사기를 편찬하고 쯔놈이 고안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쩐 왕조에 대한 설명이 빠진 것은 아쉬운 일. 특히나 리 왕조는 베트남에서는 드물게도 200년을 간 왕조이며 험난한 베트남사에서 그나마 안정적인 시대였다. [19] 굳이 응오딘지엠과 호치민 정부의 차이를 얘기하자면, 비록 호치민의 토지개혁은 문제가 있었어도 그 시기 토지 문제를 해결했다. 반면 응오딘지엠은 토지개혁을 제대로 실행하지 않았고, 따라서 남베트남은 프랑스 식민지 시절 모순구조가 그대로 남아있게 됐다. [20] 그러나 초기 응오딘지엠 정권은 미국의 허가 없이는 정책 하나 제대로 채택하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미국에게 일방적으로 끌려다녔다고 볼 수 있다. [21] 이 인간이 재임하던 시기 공무원 될 때 물어보던 게 두 가지였다. '인맥이 있는가'와 '가톨릭을 믿는가'였다. [22] 이 대포들은 근처의 미얀마, 태국 혹은 중국에서 수입해 오거나, 자체적으로 제작했던 것들이었다. [23] 정확히는 샤카 중에서도 카필라 성을 중심으로 한 나라다. [24] 여담으로 석가모니가 살아있을 때 모국이 멸망했는데 그래도 모국이 멸망하는건 못 보겠던지 3차례나 코살라를 설득해 3번을 성공했지만 4번째 때는 이것이 자기네 나라가 받아들여야 할 업이라고 여겨 막지 않았다. 참고로 당시 왕은 석가모니의 사촌이었는데 석가모니의 아버지인 정반왕의 자손들이 아들인 석가모니와 손자인 라훌라를 포함 일족 상당수가 출가해버려 직계자손중에 왕위를 이을 사람이 없었다. 이런 참사(?)에 석가모니도 부왕의 부탁을 받아들여 출가는 부모의 허락을 얻어야 한다는 계율을 세웠다. [25] 무함마드 활동기의 사산 왕조의 샤한샤였던 호스로 2세는 아랍인 왕국인 라흠 왕국의 왕을 죽이기도 했다. [26] 그리고 해석과는 별개로 이 결정에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이었는데 가장 큰 문제는 알리가 무함마드의 유해를 수습하는 사이에 기습적으로 후계자 선정 회의가 열렸다는 것이다. 당초에 무함마드 사후에 자리를 누가 이어받을지는 아랍인의 입장에서는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었는데 전통적인 관점에 따른다면 혈연에 따른 세습을 택해야 하므로 무함마드의 사위인 알리가 잇는 것이 당연하지만 종교적 관점으로 보면 선지자들이 혈연에 의한 세습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알리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이 이어도 된다. [27] 사실 이것 뿐만이 아니라서 수니파와 시아파가 분열하는 무함마드 사망~우마이야 왕조 초기까지의 이슬람 역사에 대해서 수니와 시아의 시각차는 매우 뚜렷하다. 당연히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서 정통 칼리프 시대의 4명의 칼리프에 대해서도 수니파는 이들을 모두 칼리프로 인정하지만 시아파는 알리를 제외한 나머지 셋은 찬탈자 수준으로 저평가하며 당연히 관련된 인물들에 대한 평도 나빠서 예를 들어 아부 바크르의 딸이자 무함마드의 아내인 아이야에 대해서 수니파에서는 '믿는 자들의 어머니' 라고 극찬하지만 시아파에서는 무함마드를 독살했다고 말하는 이도 있을 정도로 극악한 인물로 평을 받는다. [28] 단 순니파에서도 두 사람간에 불화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다만 순니파는 그런 일이 있었다 정도로만 언급하지만 시아파에서는 아부 바크르가 알리에게 "네 집에 불을 지르겠다!" 라고 협박했다고 구체적으로 말한다. [29] 애초에 알리 반대파의 논거는 딱 하나 예언자의 후계자는 세습되지 않는다인데 야지드는 이를 세습함으로서 명분을 깨먹었다. 시아파도 알리의 자리를 빼앗고 알리의 후계자에게 돌아가야 할 자리를 빼앗았다며 그런 우마이야 가문이 아바스조에게 멸족당하다시피 한 것은 당연한 응보라고 여긴다. [30] 알리 생전에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알리와 대립했지만 아버지의 사후에는 알리의 아들인 후세인을 지지하였다. [31] 이렇게 무아위야 1세와 야지드 1세 모두 이슬람의 분열에 기여했다 보니 알리 말고 무함마드 후계자는 없다는 시아파에서는 아부 바크르, 우마르, 우스만과 함께 평이 매우 좋지 않지만 수니파에서도 무아위야 1세는 이슬람을 왕정화시켰다고, 야지드 1세는 이슬람을 완전히 분열시켜버렸다고 좋지 않게 보는 사람이 있다. 특히 카르발라 참극에 있어서만큼은 수니파에서도 불행한 일이라는 것에는 동의한다. [32] 토머스 매든도 자신의 책에서 이 설을 주장했다. [33] 십자군 자체가 특이한 일이라 치부하기엔 이슬람 세계의 최전선에서 기독교 세력과 부딪히는 건 흔한 일이었다. 당장 그들의 최대 적수였던 동로마부터가 기독교 국가였고 이베리아 반도에서도 레콩키스타가 벌어지는 등 십자군 전쟁 당시 아나톨리아, 레반트와 북아프리카는 이슬람 입장에선 기독교 세력과의 최전선이었다. 당대 중세 이슬람에게 십자군은 그들의 입장에서는 최전방에 그냥 또 다른 기독교 세력이 침공한 것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34] 다만 종교적 관점에서는 변방의 소란으로 보긴 어려운데 십자군의 목표는 이슬람의 3대 성지중 하나인 예루살렘이며 십자군 전쟁 기간동안 이슬람은 2세기 가까이 예루살렘을 기독교 세력에게 빼앗겼다. [35] 이 부분은 대한교과서주식회사 (現 미래엔)에서 나온 《중동사》나 《터키사》같은 기초적인 세계사 교양 도서만 봐도 알 수 있는 내용인데, 바이바르스 개인이 튀르크인이라는 것 하나만 보고 주화입마에 빠진 모양이다. 그러면서도 바이바르스가 지중해 일대의 십자군을 깡그리 몰아냈다는 보였다. [36]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건 미리 계획된 보복이다!"라고 분노했다. [37] 그나마 이 정도인 이유도 미국과는 달리 대부분의 땅이 춥고 원주민 비율이 미국 본토보다 상대적으로 낮아 비교적 살기 좋은 영토만 차지하면 나머지 큰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미국은 자국 영토 중에서 살기 좋은 영토가 대부분이지만 캐나다는 그게 아니라서 지들 먹을 땅을 다 먹자 미국은 땅이 안 남은 반면 캐나다는 그래도 어느 정도 땅은 남은 것이다. 물론 둘 다 알짜배기땅이 아닌 황무지 같은 땅이지만... [38] 게다가 뉴펀들랜드와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는 이때의 영향으로 그나마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소수 정도의 명맥을 유지하는 캐나다 본토 지역들과 달리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하나도 없고, 유럽계 백인들만이 인구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영토 면적이 방대한 북미 본토 지역에 비해 4면이 바다에 막혀 도주할 곳이 없는 좁은 도서 지역이라는 지정학적 위치도 고려해야겠지만.. [39] 그리고 또 한 가지, 호주 빼앗긴 세대 같은 짓이 캐나다에서도 자행되었다. [40] 애초에 조약을 맺은 동기의 불순함, 조약 내용의 단어 선택, 조약으로 인한 토지갈등 등등 [41] 그래서 뉴질랜드에서도 이를 자랑스러워하지만 앞서 말한대로 이것도 아무 분쟁없이 평화적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서 마오리족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