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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나라 이웃나라/문제점/네덜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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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성 구성
윗첨자1: 舊 가로세로 세계사 1~4권.


1. 소개(Introduction)2. 종교 관련3. 영란전쟁 및 네덜란드의 몰락4. 식민지 관련5. 안네의 일기 관련6.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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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판 - (03)
전면개정판 -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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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Introduction)

2. 종교 관련

3. 영란전쟁 및 네덜란드의 몰락

4. 식민지 관련

5. 안네의 일기 관련

안네의 일기와 관련된 내용은 개정판에서는 삭제되었다.(12)

6.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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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들도 유럽인들이 건너가서 만들어지긴 했지만 원주민과의 혼혈인 메스티소가 인종적으로 주류라서 유럽인보다 훨씬 피부색이 어둡다. [2] 특히 금발벽안의 하얀 피부를 가진 신비로운 외모는 열성유전자로 북유럽을 제외하면 서방 세계 전체를 통틀어 정말 보기 힘들며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와 같은 다른 곳들도 마찬가지이다. [3] 당장 티탄의 핏줄에 속하는 퀴클롭스나 헤카톤케이레스 3형제를 보자. 인간형이긴 해도 눈이 하나라든가, 팔다리가 어마어마하게 많은 경우는 흔해빠졌다. [4] 사실 이건 상대적인 관점이기 때문에 딱 어느 것이 맞다고 보기 어렵다. 어느 나라나 다 그렇듯, 갈리아인들 역시 고위층은 상당한 수준의 부와 문화를 누리고 학식도 제법 갖추고 있었지만, 평민층의 생활 수준은 낮은 편이었으며, 어찌되었건 로마인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야만인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5] 사실 이 파트에서도 클로비스 1세의 아들들이 못나서라고 서술했지만 실제로는 어차피 클로비스 1세가 모두에게 나눠준 것이기에 못나고 말고로 얘기할 문제는 아니다. [6] 그럼 루도비쿠스 1세는 왜 단독왕이냐 싶겠는데 사실 즉위할 때에 형제가 하나 있었지만 오래 못 가 사망해서 본인이 단독으로 통치했다. [7] 행정적 어려움, 민족적 다양함, 지방 귀족, 성직자와 귀족의 대립 등이 있다. [8] 21세기에 이르면 가톨릭도 비율이 꽤 줄어든다. [9] 이들이 전부 막장인건 아니지만 막장인 이들이 꽤나 존재했고 심지어는 나폴레옹의 여동생이면서 자신과 남편(조아킴 뮈라)의 지위(나폴리의 왕과 왕후)를 위해 오빠를 배신하기도 했다. 나폴레옹 자신도 이에 대해 누가 들으면 우린 대대로 내려오는 명문가고 내가 그들의 지위를 빼앗은줄 알겠다고 투덜거렸을 정도. [10] 물론 위암을 유발하는 가장 큰 환경적 요인은 예나 지금이나 식습관이고, 동물성 지방의 과다 섭취는 그 중에서도 최악이니 영향이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11] 이 지도에 따르면 유럽과 아시아 간의 거리는 꽤나 가깝다. 당대 기준으로도 이 정도 거리는 충분히 항해가 가능했다. 왜냐면 이 거리가 대략 아메리카와 유럽 간의 거리와 비슷했기 때문. 반대로 말하자면 중간에 아메리카 대륙이 없었다면 콜럼버스는 아무것도 건지지 못했을 것이다. [12] 발견한 땅의 수익 10%, 총독 자리 영구 보장 등. 마젤란이 수익의 5%와 기록에 대한 저작권 정도만 요구한 것에 비하면 지나쳤다. [13] 이사벨 1세와 페르난도 2세의 치세 하의 스페인은 결코 한 왕국이 아니었다. 두 사람은 엄밀히 카스티야 왕국의 여왕과 아라곤 왕국의 왕이었지 아라곤 왕국의 왕비나 카스티야 왕국의 국서 혹은 스페인의 왕과 왕비가 아니었다. 그래서 이사벨 1세가 지원해준 항해가 손해를 봐도 아라곤이 입을 피해는 없었다. [14] 거기다가 아라곤은 이 당시 꽤나 어려운 상황에 놓였는데 지중해에서 오스만 투르크의 힘이 강해지고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과의 경쟁에서도 밀리며 이탈리아에 있던 아라곤의 거점을 빼앗기는 등 지중해에서의 영향력이 약해져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