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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나라 이웃나라/문제점/네덜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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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나라 이웃나라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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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반도 / 동남아시아 / 중동 /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1
오스만 제국, 튀르키예 러시아 인도와 인도아대륙
공정성 구성
윗첨자1: 舊 가로세로 세계사 1~4권.


1. 소개(Introduction)2. 종교 관련3. 영란전쟁 및 네덜란드의 몰락4. 식민지 관련5. 안네의 일기 관련6. 기타


수정된 부분은 다음 표시.

21세기판 - (03)
전면개정판 - (12)
업그레이드판 - (18)

1. 소개(Introduction)




2. 종교 관련



3. 영란전쟁 및 네덜란드의 몰락



4. 식민지 관련

5. 안네의 일기 관련

안네의 일기와 관련된 내용은 개정판에서는 삭제되었다.(12)

6.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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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들도 유럽인들이 건너가서 만들어지긴 했지만 원주민과의 혼혈인 메스티소가 인종적으로 주류라서 유럽인보다 훨씬 피부색이 어둡다. 과거 로마제국에서도 그러했고 현재도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등의 국민들을 보면 알겠지만 그들도 게르만, 슬라브 계열 유럽인들과 큰 차이는 나지 않는 백인들로 이는 틀린 설명이다. 물론 남부 이탈리아를 비롯해 유럽 남반부에는 비교적 짙은 색의 피부와 검은색, 흑갈색의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가진 외모를 가진 유럽인들도 많고 북미에도 그런 서양인들은 많지만 그래도 그렇게 라티노와 히스패닉을 구분하지 못 하는 것에 가까운 설명은 분명히 잘못된 표현이다. 그 때문에 어린 시절에 먼나라 이웃나라를 본 사람이 프랑스에 백인들이 많은 것과 로마를 다룬 매체에서 백인들이 나오는 것을 보고 뒤늦게 사실을 알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역시 심각한 오류임에도 개정판까지 계속 수정하지 않고 있는 부분인데 작가가 유럽에 오래 있었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매우 이상한 부분이다. 다만 상술했듯이 남유럽 쪽은 서양인 하면 떠오르는 금발벽안을 비롯해 특히 금발벽안의 하얀 피부를 가진 신비로운 외모는 열성유전자로 북유럽을 제외하면 서방 세계 전체를 통틀어 정말 보기 힘들며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와 같은 다른 곳들도 마찬가지이다. [2] 당장 티탄의 핏줄에 속하는 퀴클롭스나 헤카톤케이레스 3형제를 보자. 인간형이긴 해도 눈이 하나라든가, 팔다리가 어마어마하게 많은 경우는 흔해빠졌다. [3] 사실 이건 상대적인 관점이기 때문에 딱 어느 것이 맞다고 보기 어렵다. 어느 나라나 다 그렇듯, 갈리아인들 역시 고위층은 상당한 수준의 부와 문화를 누리고 학식도 제법 갖추고 있었지만, 평민층의 생활 수준은 낮은 편이었으며, 어찌되었건 로마인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야만인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4] 사실 이 파트에서도 클로비스 1세의 아들들이 못나서라고 서술했지만 실제로는 어차피 클로비스 1세가 모두에게 나눠준 것이기에 못나고 말고로 얘기할 문제는 아니다. [5] 그럼 루도비쿠스 1세는 왜 단독왕이냐 싶겠는데 사실 즉위할 때에 형제가 하나 있었지만 오래 못 가 사망해서 본인이 단독으로 통치했다. [6] 행정적 어려움, 민족적 다양함, 지방 귀족, 성직자와 귀족의 대립 등이 있다. [7] 미국이 유럽에 비해서는 비교적 보수적인 성향이 있지만, 공동체적이라고 하는것은 곤란하며, 오히려 개인주의 성향은 미국이 유럽보다도 더욱 강하다. 게다가 미국은 주별로 법/행정체계/사법체계가 따로 있을 정도로 하나의 국가라기보단 "연방"에 가깝다. 실제로 미국인들은 "미국 출신이다"라고 하기보단 "~주 출신이다"라고 자연스럽게 말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다민족국가이다. 그런데 민족/국가 개념이 유독 강한 한국/일본과 비교하는 건 말도 안된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주류가 아니며 약 60%를 차지하는 백인도 몇백년 전에 이민 온 사람들인데다 여러 유럽 국가들이 섞여있다. 한 마디로 우리나라처럼 나라 전체를 포괄하는 "미국 민족"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스스로를 미국인이라는 아이덴티티는 있지만 더 파고 보면 출신 주에 대한 애착이 더 강하며, 민족 자체에 대한 애착은 그리 없다. 다만 이와 별개로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국민이라는 것에 대한 자부심은 굉장히 강한 편으로, 유럽 국가들은 스포츠 대회나 정말 중요한 행사에도 국기에 대한 경례나 국가 제창은 하지 않는 편이라는 점과 비교하면 이 점이 두드러진다. 대신 좀 시간이 지난 뒤에 그린 미국편에서는 미국은 하나의 나라가 아닌 개별 주로 살펴봐야 하며 대체로 개인주의가 자리잡았다고 제대로 나와 있다. [8] 하지만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분리된지 200년이 넘게 지났으며, 영국 문화가 기반이 된 것은 사실이나 지리, 기후적 특성과 흑인과 원주민, 그리고 수많은 이민자들이 건너오며 섞인 문화까지 짬뽕되어 현재의 미국 문화는 결코 영국 문화가 흡사하다고 보기 어렵다. 굳이 따지자면 '서양 = 영국으로 오해'가 아니라 '서양 = 영미권으로 오해'정도로 해야 적절하다. 다만 신판에서는 영국의 크리켓과 미국의 야구를 예시로 들긴 했다. 덤으로 아메리칸 브렉퍼스트 잉글리시 브렉퍼스트에서 유래했으니 이것도 영국의 흔적이라 할 수 있다. [9] 2010년 기준으로 아일랜드 아이슬란드의 경우 출산율이 2명대 초반정도다. 한편 영국 스웨덴, 노르웨이의 경우 합계 출산율이 1.9명, 벨기에, 핀란드, 덴마크 1.8명대이다. 이는 주요 남유럽 국가들인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포르투갈 등의 출산율 1.2-1.4명대 보다 상당히 높다. 다만 독일이나 스위스, 오스트리아의 출산율은 1.4-1.5명대로 여전히 낮은 편이다. 따라서 단정적으로 맞다고 보기 어려운 진술이다. 하지만 작가가 유럽에 유학하고 창작을 위해 체류했을 당시라면 1975~1984년 귀국시까지이다. 당시 주요 북유럽 국가의 출산율이 피임약의 보급과 여성 사회 활동 활성화로 출산율이 2명대 중반 수준에서 1명대 후반 정도로 떨어졌었다. 이는 동시기 소련과 호주, 미국, 캐나다에서도 피임약이 널리 보급되면서 벌어졌던 현상이기도 했다. 독일에서도 이와 비슷한 이유로 출산율이 2명대 중반에서 1명대 중반 수준으로 급속히 떨어졌었다. 그에 비하면 남유럽 국가들의 당시 출산율은 다소 높았다. 1970년 기준으로 스페인 2.8명 이탈리아 2.4명이다. 물론 70년대 말-80년대 중반을 거치면서 1명대로 떨어졌다. 때문에 작가가 유럽에 유학할 당시의 기준으로는 작가의 설명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요약하면 연재 초기인 1970년대 후반만 해도 얼추 맞긴 했지만, 책이 단행본으로 발간된 1987년쯤엔 알바니아(1987년 기준 3.13명)를 제외한 거의 모든 남유럽 국가들의 출산율이 이미 1명대로 떨어졌을 때라는 것이다. 1987년 다시 남유럽 국가들의 출산율은 이탈리아 1.28명, 에스파냐 1.47명, 포르투갈 1.57명, 그리스 1.50명, 불가리아 1.96명, 몰타 1.98명이다. 즉, 시간의 간격 때문에 설명이 틀리는 경우가 발생한 것. 작가는 자신의 다른 책인 현대문명진단에서는 남유럽의 저출산 경향을 다루면서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져서 아이를 많이 낳는 건 옛날 얘기가 되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정작 먼나라 이웃나라에서는 그 내용을 여전히 반영하지 않고 있다. 다만 1편 네덜란드 편 개괄 파트에선 남유럽의 출산율이 북유럽보다 높았지만 세상이 변해 북유럽보다 낮아졌다식으로 작가가 깜빡하고 안 넣을 가능성이 높긴 하다. 아울러 먼나라 이웃나라 초판본 네덜란드 편에서도 네덜란드의 인구증가율이 타 유럽국가에 비해 높다라는 얘기를 서술해 놓은 적이 있다. 실제로 1950년대 네덜란드 출산율이 타 서유럽 국가에 비해서 괄목할 정도로 높은 편(3명대)이었던 영향이다. [10] 이건 옛날 풍습을 현대로 답습한 오류라고 볼 수 있는데 남유럽의 라틴 국가에서도 가부장적인 가정도 있고 북유럽 게르만 국가에서는 남녀 동등하게 있는 경우와 어머니 중심체계가 있다. 책처럼 절대적이지 않다. 남유럽에서는 어린이를 소중히 하고 북유럽에서는 어린이가 크면 담을 쌓는다 하였는데 그러면 왜 남유럽에서는 가족 갈등이 없어야 하는 게 옳은데 왜 있는가? 남유럽에서도 어린자녀와 담을 쌓는 경우도 있고 북유럽에서는 어린자녀와 성인이 돼서도 친근한 경우가 있다. [11] 합스부르크 가문 대공위 시대 이전까지는 왕이 아닌 백작이었으며, 세력도 극도로 미미한 편이었다. 오히려 황제 자리가 힘만 들고 권력은 없는 자리로 판단해 꺼린 영주들이 일부러 허수아비를 옹립한 것으로, 오스트리아가 강대국의 반열에 오른 것은 오랜 기간에 걸쳐 아주 약간의 특권과 결혼 동맹으로 서서히 세력을 확장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왕작위도 아니다. [12] 21세기에 이르면 가톨릭도 비율이 꽤 줄어든다. [13] 시간 순서 묘사가 잘못되었다. 종교개혁과 성상 파괴사건이 독립전쟁으로 불리는 '80년 전쟁'의 발단 중 하나가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네덜란드는 17세기까지 가톨릭 위주의 국가였고, 개신교도들도 처음에는 독립보다는 지배자의 선처를 더 원했다. 침묵공 빌럼도 전쟁 직전까지는 루터파였고, 처음에는 오히려 칼뱅파들의 성상파괴 소요를 진압하기도 했다. 개신교가 완전히 퍼진 건 휴전 후 독립된 공화국으로서 틀이 잡혀나간 17세기 중반 이후이며, 교회 건축이 볼품없어진 것도 이 때의 일이지, 독립전쟁 직전 성상 파괴사건 때문에 그리 된 게 아니다. 이 부분은 네덜란드/역사 문서의 4.3.1항목을 참조하자. [14] 이들이 전부 막장인건 아니지만 막장인 이들이 꽤나 존재했고 심지어는 나폴레옹의 여동생이면서 자신과 남편(조아킴 뮈라)의 지위(나폴리의 왕과 왕후)를 위해 오빠를 배신하기도 했다. 나폴레옹 자신도 이에 대해 누가 들으면 우린 대대로 내려오는 명문가고 내가 그들의 지위를 빼앗은줄 알겠다고 투덜거렸을 정도. [15] 1차 영국-네덜란드 전쟁 이후에도 네덜란드는 그동안 축적해온 막강한 부를 바탕으로 여전히 영국이 얕잡아 볼 수 없는 해군력을 가지고 있었다. 영국과 네덜란드는 이후로도 3차례에 걸친 전쟁을 벌였으며 2차 영란전쟁에서는 절치부심하며 힘을 기른 네덜란드 해군이 복수전에 나섰다. 이때 영국은 페스트와 런던 대화재 등으로 국력이 약간 약해진 시기였고 네덜란드의 뒤에는 프랑스가 버티고 있었다. 결국 네덜란드가 템즈강을 봉쇄하는 설욕전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루이 14세 때 프랑스-영국 연합군이 네덜란드를 침공하면서 큰 타격을 입은 네덜란드는 이때 완전히 몰락하고 만다. 물론 이 만화에서도 1차 영국-네덜란드 전쟁의 패배는 네덜란드의 몰락의 시발점이었고 프랑스의 침공 때 결정적인 타격을 입은 것으로 서술했기에 완전히 틀린 서술은 아니긴 하지만, 1차 전쟁이 영국의 우세로 끝을 맺긴 했어도 만화에서처럼 제해권을 그때 몽땅 다 넘겨준 건 아니었다. 말레이 지역을 놓고도 영국은 무조건적인 압력보다는 타협을 선택해 말레이 반도는 영국이 섬은 네덜란드가 차지한다는 조건을 달아서 말레이 반도를 차지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게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그쯤부터 영국과 프랑스에 밀리기 시작하여 결정타는 명예혁명 직후의 영국-네덜란드 연합군 VS 프랑스군의 영향이다. 영국-네덜란드가 이기기는 했는데 두 나라의 국가원수인 윌리엄 3세가 프랑스의 재침공에 대비하는 과정에서 영국은 해군, 네덜란드는 육군을 특화시켰는데 그 덕에 영국의 해군력이 네덜란드를 능가하기 시작하면서 네덜란드가 몰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16] 이 지도에 따르면 유럽과 아시아 간의 거리는 꽤나 가깝다. 당대 기준으로도 이 정도 거리는 충분히 항해가 가능했다. 왜냐면 이 거리가 대략 아메리카와 유럽 간의 거리와 비슷했기 때문. 반대로 말하자면 중간에 아메리카 대륙이 없었다면 콜럼버스는 아무것도 건지지 못했을 것이다. [17] 발견한 땅의 수익 10%, 총독 자리 영구 보장 등. 마젤란이 수익의 5%와 기록에 대한 저작권 정도만 요구한 것에 비하면 지나쳤다. [18] 이사벨 1세와 페르난도 2세의 치세 하의 스페인은 결코 한 왕국이 아니었다. 두 사람은 엄밀히 카스티야 왕국의 여왕과 아라곤 왕국의 왕이었지 아라곤 왕국의 왕비나 카스티야 왕국의 국서 혹은 스페인의 왕과 왕비가 아니었다. 그래서 이사벨 1세가 지원해준 항해가 손해를 봐도 아라곤이 입을 피해는 없었다. [19] 거기다가 아라곤은 이 당시 꽤나 어려운 상황에 놓였는데 지중해에서 오스만 투르크의 힘이 강해지고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과의 경쟁에서도 밀리며 이탈리아에 있던 아라곤의 거점을 빼앗기는 등 지중해에서의 영향력이 약해져가고 있었다. [20] 물론 위암을 유발하는 가장 큰 환경적 요인은 예나 지금이나 식습관이고, 동물성 지방의 과다 섭취는 그 중에서도 최악이니 영향이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