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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車 / Chariot
1. 개요
중국, 인도반도, 중동, 그리스, 로마, 이집트 등 세계 문명의 여명기에 문명세계에서 널리 쓰였던 인류 최초의 기동병기. 체스의 룩 및 장기의 차(車)가 바로 이것이다.한국에서는 현재 군대에서 쓰는 기갑 병기와 한자도 똑같은 동음이의어라서 가끔 혼동이 있다. 보통 그냥 '전차', 아니면 고대 병기라서 '고대 전차', 또는 영어를 그대로 읽은 '채리엇' 등 여러 가지다. 성경 번역같이 고풍스러운 어투를 선호한다면 ' 병거(兵車)'라는 단어를 자주 쓴다.
본 항목을 포함해서 대부분 역사 서술에선 그냥 '전차'라는 어휘를 사용한다. 고대라는 시대적 배경만 이해했다면 현대전에 쓰이는 거대한 탱크와 혼동할 일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1] 사어가 아닌 현대 한국어에서 고대병기 전차만 엄밀하게 지칭하는 단어는 병거뿐이나 열국지나 성경 등 고풍스러운 글 외에는 잘 안 쓰인다는 단점이 있다.[2]
한국어 위키백과에서는 처음에는 이륜전차라고 번역했다. 정말 초창기만 빼면 거의 모든 전차는 바퀴가 2개였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리고 초창기 전차를 설명하기 위해 사륜전차 항목도 따로 생겼다가, 전차 (고대 무기)로 합쳤다.
나무위키의 전신인 리그베다 위키에서는 영칭을 그대로 읽은 '채리엇'이라는 표제로 구분을 시도하였고 그것을 포크한 나무위키에서도 한동안 그러한 문서명으로 유지되었으나, 국내의 실제 용례에서 그런 영어 음차로 거의 불리지 않는다는 한계 탓에 위키백과와 마찬가지로 '전차(고대 무기)'라는 표제로 다시 옮겼다.
2. 발전 과정
수메르의 사륜 전차 |
동물이 끄는 수레를 개량해서 전투용으로 쓴 것이 전차의 시초이다. 이 초창기 수레처럼 바퀴가 4개였으나 두 바퀴가 조향(옆으로 회전하는 것) 성능이 더 좋음을 알고 두 바퀴 전차가 일반화되었다. 끄는 동물도 초기에는 소가 끄는 수레 같은 물건이었으나 점점 발달하면서 당나귀를 거쳐 최종적으로는 말 2-4마리가 끄는 형태로 보편화했다.
일반적으로 말 2마리가 끄는 전차에는 1~2명이 탔다. 1명이 타면 연락병이 사용하는 등 단순한 이동용이고 일반적인 전투용은 2명이 탔다. 4마리가 끄는 전차에는 3~4명이 탑승했는데, 1명은 마부로 자주 방패를 들고, 나머지는 활이나 창 등 병기를 썼다. 이집트의 2인승 전차는 마부도 고삐를 허리에 매고 활을 쏘는 그림이 있는데, 돌격 시가 아닌 사격 시에는 말 다루기가 쉬웠던 듯하다. 4두 전차는 싸우는 자들보다 마부가 더 좋은 급료를 받았는데, 당연히 여러 마리의 말을 한꺼번에 다루기가 힘들어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한문에는 4두 전차, 또는 그 4두 전차를 끄는 말 4마리를 가리키는 '사'(駟)라는 단어가 있다.
히타이트의 전차 |
비슷하게, 미케네 문명에서도 전투의 주력은 병거가 차지했고, 보병은 보조 병과에 머물렀다.
그리스의 청동기 무덤은 부유한 미케네 남자의 시신은 그의 전투 장비와 함께 무덤 속으로 들어갔다는 소식을 보여준다. 펠로폰네소스 북동쪽 덴드라의 무덤에서 기원전 14세기의 미케네 청동 갑옷 한 벌이 발굴되었는데, 이 갑옷은 부유한 개인의 장비가 얼마나 많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 죽은 전사는 청동 흉갑(가슴받이와 등받이), 길이를 조절할 수 있는 청동 앞치마, 청동 정강이받이, 어깨받이, 빗장뼈받이를 갖추고 있었다.
...이 남자와 같은 복장을 한 미케네 전사들은 최신식 군사 장비를 갖추고서 전투에 참여하는 셈이었는데, 그들은 주로 말이 끄는 가벼운 이륜 마차를 타고 다녔다. 일부 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중앙아시아에서 흘러들어 온 인도-유럽인들이 도입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혁명적인 수송수단(전차)은 지중해의 여러 사회와 근동 사회에서 기원전 2000년 직후에 등장했다. 에게 해 근방에서 이런 전차가 처음으로 묘사된 것은 기원전 1500년경의 미케네 벽화에서다. 부유한 사람들은 앞 다투어 이 멋진 신병기를 입수하여 전투용으로 사용했을 뿐 아니라 사회적 신분의 증거물로도 활용했다. 이런 점은 현대인들이 승용차가 등장하자 그때까지 사용하던 마차를 내던지고 너도나도 승용차를 구입한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덴드라에서 발굴된 갑옷은 전차를 타고서 전투에 참여하는 전사용이지 보병의 장비는 아니라는 주장이 대두되었다. 그런 주장이 나온 근거는 보병이 그런 무거운 금속제 갑옷을 입고서는 제대로 활동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 주장에 따르면, 궁사들을 싣고 다니는 전차가 미케네 군대의 주력 부대이고 보병은 전투의 보조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이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움직이는 대포인 탱크가 앞장서서 나가면 그 뒤를 보병이 따라간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케네 보병들은 전차 부대를 호위하면서 후방 진지를 경비하고, 전차 부대들끼리 충돌한 후에 달아나는 적병들을 추격하고, 전차가 들어갈 수 없는 지역에서만 공격 부대로서 활약하는 임무를 맡았을 것으로 본다. 그리고 미케네 시대의 보병들은 대부분 해외에서 고용한 용병이었을 것이다.
-Thomas R. Martin 지음, 이종인 번역, 《고대 그리스사》 69-71쪽
...이 남자와 같은 복장을 한 미케네 전사들은 최신식 군사 장비를 갖추고서 전투에 참여하는 셈이었는데, 그들은 주로 말이 끄는 가벼운 이륜 마차를 타고 다녔다. 일부 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중앙아시아에서 흘러들어 온 인도-유럽인들이 도입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혁명적인 수송수단(전차)은 지중해의 여러 사회와 근동 사회에서 기원전 2000년 직후에 등장했다. 에게 해 근방에서 이런 전차가 처음으로 묘사된 것은 기원전 1500년경의 미케네 벽화에서다. 부유한 사람들은 앞 다투어 이 멋진 신병기를 입수하여 전투용으로 사용했을 뿐 아니라 사회적 신분의 증거물로도 활용했다. 이런 점은 현대인들이 승용차가 등장하자 그때까지 사용하던 마차를 내던지고 너도나도 승용차를 구입한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덴드라에서 발굴된 갑옷은 전차를 타고서 전투에 참여하는 전사용이지 보병의 장비는 아니라는 주장이 대두되었다. 그런 주장이 나온 근거는 보병이 그런 무거운 금속제 갑옷을 입고서는 제대로 활동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 주장에 따르면, 궁사들을 싣고 다니는 전차가 미케네 군대의 주력 부대이고 보병은 전투의 보조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이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움직이는 대포인 탱크가 앞장서서 나가면 그 뒤를 보병이 따라간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케네 보병들은 전차 부대를 호위하면서 후방 진지를 경비하고, 전차 부대들끼리 충돌한 후에 달아나는 적병들을 추격하고, 전차가 들어갈 수 없는 지역에서만 공격 부대로서 활약하는 임무를 맡았을 것으로 본다. 그리고 미케네 시대의 보병들은 대부분 해외에서 고용한 용병이었을 것이다.
-Thomas R. Martin 지음, 이종인 번역, 《고대 그리스사》 69-71쪽
중국의 전차 |
비슷한 시기 동아시아의 중국에서도 병거, 융거(戎車)라고 부른 전차는 군사력의 핵심이었다. 그래서 주나라 때부터 전차의 보유수를 곧 군사력으로 여겼기에 춘추시대 손무는 자신의 저서 손자병법에서 천자는 만승(전차 1만 대), 제후는 천승(전차 1천 대)으로 규정하였다. 전차는 보통 갑옷 입은 병사 3인이 승차하고 과, 극, 수 등의 공격용, 호신용 무기와 백패(白旆, 끝이 갈라진 하얀 깃발)를 장착하였다.
고조선도 전차부대를 보유하였기에 한무제 침공 초기에 전차와 기마 부대를 활용하여 격퇴하였다. 평안북도에서 출토된 고조선 시대의 분묘에서 2두 전차의 마구 유물이 발견된 바 있다. 이 유물은 당시 고조선의 기술 수준이 뛰어났음을 알려주기 때문에 상당히 의미있다. 고대에는 수레나 그 바퀴 만드는 기술이 상당히 하이테크로 분류되었다. 제나라 환공과 수레바퀴 장인 윤편의 일화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또한 광주광역시 신창동의 마한 유적지에서 말이 끄는 수레에 들어간 것으로 추정되는 바퀴통과 바퀴살, 바퀴축 등의 부속품이 대거 출토되면서, 고대 한반도의 나라인 마한의 백성들은 말이 끄는 수레를 사용하였음이 확인되었다. 광주 신창동은 고대사 타임캡슐
켈트족 전차의 설계도 |
켈트족도 전차를 애용했는데 특이하게도 전투용만이 아닌 위급한 전선에 신속하게 고위 전사를 파견하고 부상당한 전사를 안전하고 빠르게 후송하는 일종의 전장 택시같이 운용되었으며 그래서 켈트 신화에선 쿠 훌린을 비롯해 신화 속 영웅들의 상당수가 본인만의 전용 전차를 가졌다고 묘사된다. 라틴어로는 이런 켈트식 수레를 카루스(carrus)라고 불렀는데, 이 또한 켈트어에서 차용한 외래어이다.
초기 전술은 활로 적을 제압하고 튀는 일격이탈 전술이 대세였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말의 품종이 개량되고 승마술이 발달하자 전차는 점차 기동력이 기병에게 밀렸다. 그 결과 일격이탈전술을 포기하고 역으로 전차의 무게를 늘려서 충격력으로 승부를 하는 식으로 바뀌었다. 최종적으로 낫전차처럼 충격력에 몰빵한 돌격형 전차가 되었고, 늘어난 무게를 감당하고자 도태되었던 4륜 전차 형태로 다시금 사용하였다.
3. 쇠퇴
기병이 등장한 뒤로 고대 전차는 갖은 개량에도, 직접 말을 타는 기병과 비교해서 각종 약점이 부각되기 시작하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 부각된 각종 약점은 다음과 같다.-
느리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로 전차 무게 + 1~1.5명의 보병 무게 때문에 전차는 2두 마차든 4두 마차든 간에 결코 기병보다 빠를 수가 없었다. 전차든 기병이든 그 목적은 말의 우월한 기동성과 무게에서 나오는 강한 충격력을 활용하고자 함이다. 그런데 전차는 무게는 기병보다 많이 나갈지언정, 속도가 워낙 기병보다 느려서 본디 목적대로 제대로 활용하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기병의 충격력으로도 적 보병 정도는 충분히 제압할 수 있고, 적 기병은 당연히 전차와 정면대결해 줄 이유가 없으므로 전차의 장점인 기병보다 좀 더 강한 충격력은 어디에 써먹기도 애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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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 생산 및 유지비가 비싸다.
공장 생산체계가 없는 고대시대에서 마차는 몸체와 바퀴 등, 대부분의 부품을 수작업을 거쳐 제작했기에 제작에 상당한 기술과 시간 및 그에 맞먹는 비용이 들었다. 또한 예나 지금이나 군마는 사람보다 더 많은 식비를 요구하여 그 가격이나 유지비가 매우 비쌌는데 최소한 말 한마리와 그 예비용 군마들의 비용만을 부담하면 되는 기병과 달리 기동력을 위해 최소 2~4마리를 쓰는 만큼 말 값과 유지비가 몇 곱절로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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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을 가린다.
기병은 말의 네 다리로 달리므로 약간의 언덕과 진창 정도는 기수와 말의 기량에 따라서는 문제 없이 행군/돌격할 수 있는 반면, 전차는 바퀴가 굴러가야 하므로 정말로 완만한 평지가 아니면 몰기가 곤란하다. 현대의 고무바퀴 자동차와 달리 고무 패킹은 고사하고 베어링 같은 것도 없는 나무 축에 나무 바퀴이므로, 현대의 오프로드 자동차는커녕 자전거보다도 험지 통행능력이 훨씬 떨어진다고 보면 된다. 가우가멜라 전투에서는 낫전차를 쓰기 위해 평지에서 싸우는데도 땅을 다지는 대삽질을 해야 했다. 진시황은 중국을 통일한 후 수레들의 폭을 일정하게 통일했다. 이전까지 나라마다 전차 바퀴의 폭이 조금씩 달랐는데, 따라서 전차가 다니는 길에서 바퀴 때문에 패인 골의 폭 또한 나라마다 달랐다. 그런데 길에 패인 골의 폭이 자기 전차와 다르면 몰기가 상당히 힘들어졌다. 이렇게 길에 패인 폭이 자국의 전차에게는 레일 역할을 하지만 타국의 전차에게는 장애물이 되었다. 더불어 평지에서 싸운다 해도 비가 와서 진창이 되면 전차의 기동력은 아예 사라진다. 구약성경 판관기 드보라 편에는 가나안 군대가 전차 부대로 유대인들을 공격할 때 야훼의 권능으로 큰 비가 내리자 가나안 군대의 전차가 모두 진창에 처박혀버려 유대인들에게 전멸당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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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가 따로 필요해서 전투력이 떨어진다.
고대 이집트의 전차는 마부가 고삐를 허리에 고정시키고 활을 든 벽화가 있기도 하니 마부 역시 활을 쏜 모양이다. 4두 전차도 돌격한 이후에는 멈춰서 싸웠다면 마부도 근접 무기로 공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부는 훈련 때나 실전 때나 전차를 조종하기 바빠서(정확히는 말 여러 마리를 통제하느라 바빠서) 주된 전력이라기엔 부족하다.[4] 그리고 보병의 창은 갈수록 길어지고 투사무기도 발전하는 마당에 이 정도로는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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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 전환이 힘들다.
전차는 현대의 자동차와 달리 바퀴가 그 자리에서 방향전환을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따라서 무한궤도처럼 양 바퀴의 회전방향을 다르게 하는 방식으로 선회해야 하는데 차동 기어나 무한궤도와는 달리 구동계가 원시적이어서 접지력이 충분하지 못하고 양 바퀴를 인위적으로 회전시킬 수도 없다. 초기에는 2륜 전차를 쓰는 등 선회력을 올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근본적으로 '전차의 무게로 온 관성 + 여러 마리 말을 통제하는 어려움' 때문에 전복사고가 빈번했다. 그리고 무게가 늘어나 방향전환이 더 어렵던 후기의 낫전차는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마케도니아 팔랑크스와 싸울 때 팔랑크스가 전열에 낫전차가 지나갈 틈을 만들자 선회를 못 해서 그 틈으로 그냥 통과하는 대굴욕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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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어력이 약하다.
당시엔 마개(말갑옷)라는 개념도 없어서 말이 공격에 그대로 노출되었고, 기동력도 약해서 공격받기 쉽다. 이 상황에서 말이 1마리라도 죽거나 크게 다치면 다른 말과 엉켜서 전차가 전복될 수도 있었다. 그리고 방어력 문제는 사람도 마찬가지인데, 특히 마부가 죽으면 말을 통제할 수 없다. 그러니 그 큰 덩치에 아무데나 피해를 입히면 통째로 무력화되는 것이다. 또한 활을 쏠 공간을 확보하고, 느리다는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최대한 경량화해야 했기 때문에 마부와 탑승 병력의 상반신은 적의 투사체에 그대로 노출되어야 했다.
물론 이건 동일한 시대선상에서 놓고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고대 전차는 기병보다 훨씬 먼저 나온 병종이며, 기병이 기원전 9세기쯤에 등장한 것과 달리, 전차는 기원전 2500년 무렵 이집트 고왕국 시대에도 존재했음을 알 수 있는 벽화가 있다.
그나마 고대 전차의 다른 장점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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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력
말 2마리 이상+무거운 차체가 발휘하는 질량이 기병보다 우수하다는 것이다. 고대 전차는 말의 기동성을 희생한 대신 질량을 극대화시킨 병기다. 유일한 장점인 질량을 살리기 위해 아예 후기에는 이를 더욱 살린 낫전차로 진화해나갔다. 그러나 보병의 방어구도 날로 발전해서, 낫전차의 돌격력으로 팔랑크스를 돌파하기에는 어려웠고, 돌파를 시도해도 결과가 시원찮았다. 기병도 카타프락토이를 시작으로 말까지 마개로 중무장한 중장기병이 등장하여 점차 장창용 충격전술이 등장한다. 그리하여 기원전 300년경 서양에서는 필리포스 2세가 헤타이로이같이 장창기병을 양성하고, 동양에서는 조나라 무령왕이 기병 중심으로 군대를 육성하기 시작하는 등 전차의 입지는 더 줄어들었다. 거기에 지중해 문화권에서는 낫전차의 완벽한 상위호환인 전투 코끼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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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상사고의 위험성
전차와 기병이 공존하던 시절에는 등자라는 물건이 아예 없었다. 등자가 없던 시절에는 순전히 허벅지 힘으로 말을 붙잡고 버텨야 했기 때문에 잠시라도 방심하면 그대로 낙마 직행이었다. 반면에 전차는 몸을 의탁할 곳이 있었기 때문에 전차 자체가 전복되지 않는 한 이런 문제에서는 자유로웠다.
기원전 5세기 서양에서는 페르시아 전쟁, 동양에서는 전국시대(중국) 무렵부터 기병이 전장에 등장하였으며, 기원전 3세기 서양에서는 포에니 전쟁, 동양에서는 초한전쟁 무렵에는 기병이 전차를 대신해 전장의 주역이 되었고, 기원전 1세기쯤 되면 전쟁병기로서 전차는 유물이 되어버렸다. 마지막까지 전차를 쓴 곳은 유럽에서도 제일 촌동네였던 브리타니아 정도로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기에서 신기한듯이 언급된다. 사료상으로 마지막으로 고대 전차가 확인되는 전투는 서기 80년 그나이우스 율리우스 아그리콜라가 이끈 로마군이 칼레도니아(스코틀랜드)와의 전쟁에서 칼레도니아인들이 전차를 사용했다는 기록이다. 동양에서는 기원전 100년 무렵 한나라 위청이 흉노와의 전쟁에서 전차를 사용했다는 것이 마지막 기록이다. 이후 유라시아 대륙 어디서도 전차를 전장에서 사용했다는 기록이 없다. 고대 전차는 등자가 등장하기도 수백 년 전에 완벽히 몰락한 것.
이후 전차는 전투보다는 부가적인 용도로 쓰였다. 로마에서는 전차경주 등의 유희용이나 의장용으로도 쓰였는데, 로마 최고의 퍼포먼스인 개선식을 하는 장군은 백마 4마리가 끄는 전차를 타고 로마 거리를 행진했다. 그 밖에도, 일부 중국이나 중동, 유럽의 신화에서도 몇몇 신들의 탈것으로 가끔 나오는데, 고대 전차가 현역이던 시절 탄생된 신화가 후대까지 남았기 때문이다. 삼국유사에도 해모수가 오룡거(五龍車)를 탔다는 내용이 있다.
처음 전차가 발명될 시점에는 전차 특유의 장점들이 충분히 전장에서 발휘될 수 있었다. 기병보다 느리다고 하지만, 애초에 그때는 기병이 없었고 적어도 보병보다는 빠르며 그 기동력 하나만으로도 보병은 거의 건드릴 수조차 없었다. 전차는 보병을 따돌릴 수 있지만 보병은 전차에게서 도망칠 수 없으니까. 고대 전차를 계승한 기병, 그리고 기병을 계승한 현대 전차와 마찬가지로 고대 전차도 같은 전차나 투사무기가 아니면 대응이 불가능했다. 괜히 전쟁사 초기에는 전차가 전장의 핵심전력으로 취급받은 게 아니다.
다만, 전투마차(War Wagon)라는 병기는 중세까지도 존재했다. 전투마차와 전차는 방어용이냐 돌격용이냐 하는 용도가 달랐다. 전투마차는 기병의 돌격에서 보병들을 방어하고 적의 화살이나 총알로부터 보병들을 지키기 위한 병기이지, 전차처럼 적진에 돌격하기 위해 만든 병기가 아니다.
전차가 전장에서 사라진 것은 기병과 비교했을 때의 비교 열위는 아니었다.
전차가 사용된 이유를 말의 품종 개량이 안되어서 사람을 태울 수가 없어서이며, 기병이 발생한 것은 말이 품종개량되어 커진 뒤부터이고, 기병으로 전차가 대체된 후 전차가 사라졌다는 설이 흔히 퍼져 있고 학자들도 무비판적으로 해당 설을 언급하기도 한다. 그러나 고고학적 연구 성과와 유전자 연구에서는 그런 이론을 지지하는 증거가 없다.
일단 초기 기병과 전차의 말은 가축화 된 초기의 말이나 자연상태의 말과 크기 차이가 전혀 없었다. 되려 기원전 13세기부터 이집트, 크레타 문명, 미케네 문명에서 승마술이 시도된 증거가 있으며[5] 청동기 시대의 가축화 초기 시점의 말의 키는 작은 암컷도 136–144 cm, 큰 수컷은 148.2~154.6cm 정도로[6][7]심지어 중세 시대 기사들이 타고 다녔던 말들과도 별 차이 없는 크기였다. 철기시대, 고대, 중세 후기까지도 군마는 현대 기준으로 보면 몽골마와 같은 중형마 내지 조랑말 수준이었다.[8][9]
또 몽골말[10]의 경우 유전자 조사를 한 결과를 보면 고대부터 인간에 의한 인위적 선택교배가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기록에 나타나는 유목민들의 풍습을 보면 이 이유가 짐작이 가는데, 평소에 완전 풀어놓고 기르다가 야생숫말이 쳐들어와서 암말들을 뺏어가거나, 반대로 숫말이 집 나가서 야생암말들을 하렘 삼고 집으로 돌아오거나, 그냥 야생말을 생포해서 가축 삼는 등 기록상으로도 선택교배에 의한 품종개량 없이 반야생 상태로 목축을 계속했던 정황이 나타난다. 이렇게 역사적으로도 품종개량이 없었고 현대에도 품종개량이 되지 않은 몽골말은 키가 122~144cm 정도로 현대 기준으론 조랑말 수준이지만 몽골제국은 이 말들을 탄 기병으로 세계를 정복했으며, 중기병도 운용했다. 그보다 더 오래 전의 인물인 알렉산드로스 대왕 휘하의 친위 기병대 헤타이로이 역시 운용한 말들의 크기가 이와 비슷하거나 심지어 더 작았을 가능성도 있는데도 등자는커녕 안장도 없이 승마하여 돌격도 하고 활도 쏘면서 지중해를 제패했다.
전차의 몰락은 동서를 가리지 않고 전차를 격파할 수 있는 보병 전술의 혁신이었다. 중국의 경우 손무가 오나라에서 일으킨 군사혁신의 결과고, 지중해권의 경우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 이후 전차가 급격히 쇠퇴한다. 이러한 전차가 없는 보병 전술의 혁신은 공통적으로 전차를 쓰기 어려운 지형에서 발전한 문명[11]에서 나타난바, 농업이 발전한 평야에서 초기 문명이 시작했다가, 평야가 다소 적은 지역에서도 문명이 발전하기 시작하며 지형의 영향을 크게 받는 전차의 특성 자체의 한계가 드러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4. 부활(?)
한편 20세기 초반에는 제1차 세계 대전과 러시아 혁명기에 맞물려, 민간인들이 쓰는 마차를 징발해서 기관총을 얹어서 쓰는 단순한 급조 병기 타찬카를 적백내전 당시 상당수 썼으며, 독일군/ 폴란드군에서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굴렸다고 한다. 다시 사륜식으로 회귀하였고, 마차기술의 발전으로 조향성능은 극초반기에 비해 월등했지만 말의 편성은 주로 2~3두였다고 한다. 아래 그림처럼 자동차를 쓴 것도 있다.
또한 고대 전차의 탑승인원을 보호하는 구조적 개념은 후대에 병력수송장갑차로 발전하게 된다. 말을 쓰지 않을 뿐, 기병을 계승한 전차에 비해 화력과 기동성이 떨어진다는 점은 같다.
마차가 자동차가 된 것처럼 말의 역할은 모터사이클이 맡게 되었는데, 모터사이클이 끄는 전차도 간간히 만들어진다.
지금은 위험해서 잘 안하지만[12][13] 이거로 경주도 했다.
5. 여담
장기의 가장 막강한 말인 車가 전차를 뜻한다. 돌진력은 무엇보다 우수하지만 움직임이 단순하다는 단점을 잘 반영한 것 같다. 초한지 시대에 전차는 이미 사양길이었으나, 하후영의 사례처럼 전차 편제가 남아있었기에 고증오류가 아니다.6. 매체에서
여러 가공 매체에 나오는 전투용으로 쓰는 전차는 기병이 쓸 만하기 전의 시대이거나, 마법 등의 수단으로 단점을 메워서 쓸 만하게 만든 경우, 아니면 말과는 비교도 못할 정도로 강력한 괴수가 끌어서 돌격력을 키우는 사례가 일반적이다. 밑에 나온 워해머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마법을 걸어서 기병보다 빠르고 지형도 무시하며 보통 말이 아닌 괴수들이 끌기 때문에 충격력이 중기병을 능가한다.다만 근본적으로는 이런 대중매체에 등장하는 전차는 실존했던 전차의 설계를 보완해 단점을 매웠다기보다는 연출의 힘으로 본래 전차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거의 감춰 내보내는 게 절대다수이다. 물론 각종 설계와 설정적 장치로 매꾸는 경우도 있지만 위에서 언급했던 마부의 전투여부 및 전투력 그 자체, 선회력이나 전차를 끄는 말 혹은 다른 동물들의 보호 여부 등의 문제 상당수를 작품의 재미와 완성도를 높이고 난잡함을 줄이기 위해 생략한다. 결국 적을 밀어버리는 역할을 맡는 게 일반적이며, 선회력도 기병과 거의 대등하다. 거기다 기병에게 없는 특유의 압박감과 거대한 덩치 때문에 이런 종류의 유닛들 대부분 상당히 멋지게 디자인되어서 나온다. 물론 기동력이든 근접이든 기병과 맞먹거나 오히려 능가하게 등장한다 이런 점만 본다면 기병보다 전차가 더 강한 게 아닌가 오해하는 사람들도 몇몇 있다.
때문에 이렇게 완전체로 등장해서 공략 방법도 그에 맞춰 더욱 어려워진다. 대표적으로 한국 드라마 바람의 나라에서 부여 이륜전차[14]들이 마치 탱크마냥 위용을 뽐내니깐 작중 인물들이 전차 설계를 분석해서 없애는 방법으로 고안했다고 하는데 그 방법이 철방패병들을 앞세워 일부로 전차가 방패 위로 지나가게 통로를 연 다음 방패 귀퉁이로 전차를 들어 엎어버린다.
6.1. 영화
영화 매체에서도 자주 등장했다.6.1.1. 벤허(1959년 영화)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 벤허>에서 묘사된 전차 경주.
6.1.2. 십계(영화)
[15]세실 B. 데밀 감독의 < 십계>에서 묘사된 이집트 전차 군단의 출격 장면.
6.1.3. 이집트 왕자
드림웍스의 1998년 작품 < 이집트 왕자>에서 묘사된 모세와 람세스 2세의 전차 경주.
6.1.4. 호빗: 다섯 군대 전투
호빗: 다섯 군대 전투의 난쟁이 전차. 공돌이 종족의 물건답게 낫전차 기능과 심지어 전차 자체에 개틀링 기관총과 똑같은 방식으로 발사되는 연발 석궁까지 탑재된 오버테크놀로지이다.
6.2. 게임
6.2.1. 문명 시리즈
문명 1부터 최신작 문명 6에 이르기까지 개근한 게임 초반의 기병 계통 유닛. 원거리 공격 시스템이 따로 없었던 문명 1부터 문명 4까지는 근접 유닛이었으며, 문명 5에서 궁기병 유닛이 되었다가 문명 6에서 중기병으로 돌아왔다. 시리즈 역사상 전차 계통을 고유 유닛으로 받은 문명은 이집트, 히타이트, 수메르, 페르시아, 인도 등이 있는데 페르시아와 인도의 경우 문명 4에서 불멸자, 문명 5에서 전투 코끼리로 나온 경우이니 각 항목에서 다루기로 하고 여기에서는 이집트, 히타이트, 수메르의 경우만을 소개한다.- 문명 3: 이집트의 경우 일반적인 전차보다 공격력이 높은 War Chariot을 생산할 수 있다. 능력치가 기병과 같고 생산 비용이 저렴한 것이 장점이지만, 기병과 달리 도로가 없으면 험지에 들어갈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무엇보다 기술 하나 둘만 더 연구하면 기병이 나오기 때문에, 전차 자체가 그닥 많이 쓰이는 유닛이 아니다. 한편 히타이트는 전차보다 공격력과 방어력 모두 높은 삼인승 전차를 생산할 수 있는데, 기병보다도 강력하지만 험지에 들어갈 수 없다는 점은 똑같고 생산 비용이 기병이랑 똑같기 때문에 역시 즐겨 쓰이지는 않는다.
- 문명 4: 이집트가 생산하는 War Chariot으로 등장. 전투력도 전차보다 높고 선제 공격을 받지 않아, 도끼병을 공격할 때는 그냥 학살해버릴 수 있고 방어할 때에도 그다지 꿀리지 않는다. 선제 공격에 면역인 덕에 궁병으로도 상대하기 껄끄러우며, 요구하는 기술도 연구하기 까다롭지 않고 생산 비용도 저렴한 편이라 주욱 뽑아서 우루루 몰려가면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공포가 따로 없다.
- 문명 5: 이집트의 유닛으로, 컨셉 자체는 전작과 똑같은 War Chariot. 일반 전차 궁수보다 행동력이 1 더 높으면서 생산하는 데 말 자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렇게만 써 놓으면 고유 유닛 값을 하는지 갸웃할 수 있는데, 행동력 5면 저 먼 미래인 원자력 시대의 탱크까지 가야 나오는 수치다. 또 전차 궁수는 자원을 먹는 대가로 전투력이 높게 설정되어 있는데, 여기에서 자원을 먹는다는 제한이 삭제됐다는 건 건설 기술까지 연구해야 뽑을 수 있는 합성궁병을 바퀴 기술만으로 생산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높은 기동성 덕분에 도로만 잘 깔아 놓는다면 몇 기만 생산해도 초반 방어에 큰 문제가 없으며, 공격에 나설 경우 험지로 이동하면 행동력을 모두 소모한다는 단점만 주의하면 이웃집 정도는 간단히 정리할 수 있다.
- 문명 6: 초반 고대 시대에 해당하는 중기병 유닛인 '중전차'(Heavy Chariot)가 등장한다. 등장하는 타이밍상 보병이나 궁병보다 조금 강한 정도에 불과하다보니, 평지가 많거나 급하게 뽑는 경우가 아니면 잘 쓰지 않는 약간 애매한 포지션의 유닛. 전차 계열 고유 유닛으로는 수메르의 전차(War Cart), 이집트의 마르야누 전차 궁병(Maryannu Chariot Archer) 둘이 있다. 둘 다 극초반 한정으로 강력한 유닛으로, 수메르의 전차는 극초반에 이것만 냅다 뽑아서 내달리면 고대 시대에는 말 그대로 무적이나 다름없지만 고전 시대 유닛이 나오는 순간 힘이 빠지는 초반 날빌용 유닛이고, 이집트의 전차 궁병은 그보다 테크가 약간 더 필요하지만 성능은 더 강력해 전투 보너스가 없는 이집트가 고대 시대 한정으로 정복을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유닛이다.
6.2.2.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시리즈
에오엠 1에서는 전차가 그야말로 엄청난 사기 유닛으로 정평을 받는데, 그 이유는 전차 자체의 공격력 및 방어력이 매우 탁월해서가 아니라, 생산 시 금을 먹지 않는 무금 유닛이기 때문이다.[16] 에오엠 시리즈 자체가 금을 굉장히 중요한 자원으로 보고 있고 실제 플레이하는 유저들도 금을 최대한 아껴가며 플레이를 하는데, 전차가 지원되는 문명들과 전차가 지원되지 않는 문명들의 차이가 하늘과 땅 차이 수준이다. 에오엠 1에서 전차와 전차 궁사가 가장 많이 나오며 전차와 전차 궁사끼리 대결하는 지루한 경기들만 나오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6.2.3. 영걸전 시리즈
고대 전차 편제가 완전히 사장된 시기지만, KOEI의 삼국지 게임 중 영걸전 시리즈에서만 고대 전차가 등장한다.6.2.4. 도미네이션즈
연맹 병력으로 전차 궁병과 전술성 병력 중 켈트 전사로 등장한다.6.2.5. 토탈워 시리즈
- 로마: 토탈 워: 이집트, 브리타니아, 셀레우코스, 폰토스의 유닛으로 등장. 궁전차와 돌격전차로 등장하는데, 궁전차는 회전사격을 가해 보병진을 녹일 수 있다. 다만 전차의 진정한 목적은 기병의 카운터. 싸우는 대신 적 기병을 통과하는 강제이동을 쓰면, 기병들이 줄줄이 낙마하는데 낙마하면 무조건 사망 판정이 뜸으로 기병 상대로는 사신으로 군림한다. 거기다 보병도 잘 잡기 때문에 사실상 만능 유닛 취급. 확장팩인 바바리안 인베이전에서는 오리지널 전차는 켈트가 운용하고 동로마와 서로마가 발리스타 전차라는 이름으로 전차를 운용하며 알렉산더에서는 페르시아와 인도의 유닛으로 등장한다.
- 토탈 워: 로마2: 말 4마리가 끄는 돌격전차가 등장한다. 로마 1과는 달리 어느정도 무게가 있으면 넘어지지 않도록 설정된데다 근접전과 속도에 밀리다보니 기병을 쉽게 죽이지 못한다. 다만 돌격력은 좋아서 돌격이 먹히면 기병을 죽이는게 가능하지만 그 돌격에서 패퇴시키지 못하면 그 즉시 근접전으로 넘어가 기병들에게 학살당한다. 보병을 상대로는 상당히 강력하지만 포위당하지 않도록 주의해야한다. 그캠에서는 이케니, 이집트, 셀레우코스, 폰토스, 쿠쉬, 마사에실리, 나바테아, 사바가 운용하며 그외에는 아우구스투스 캠페인에서 이집트와 이케니가 운용하고 분열된 제국에서 팔미라와 갈리아 로마, 칼레도니아, 로마가 운용하고 공화정의 부흥에서도 타르쿠나, 세노네스, 인수브레스가 운용한다. 다만 분제 시대에 전차는 의장이나 유희용으로나 쓰이지 전장에서는 사라진지 오래였음으로 분제 캠페인 한정으론 전차가 나오는 것이 고증 오류라 볼 수 있다.[17]
- 토탈 워: 워해머: 실제 전차의 장단점을 그대로 가지고 등장한다. 충격력 하나에 모든 것을 바친 유닛으로, 보병의 전열을 무너트리는데는 탁월하지만 기병과 괴수에 터무니없이 약하다. 이렇듯 상성을 크게 타는 데다 조금이라도 발이 묶이면 치명적이므로, 끊임없는 컨트롤을 요구하기 때문에 유저가 사용하기에는 미묘하지만 적이 가지고 나오면 대단히 귀찮은 상대. 비스트맨, 카오스 워리어, 노스카, 그린스킨, 다크 엘프, 하이 엘프, 키슬레프가 전차를 운용하며 노스카의 수르다 에크가 로드 오브 채리엇으로 유명하다.[18] 카오스나 비스트맨 등 앞에 괴수가 달린 전차의 경우 그냥 붙어서 두드려패도 상당히 강하다.
- 토탈 워 사가: 트로이: 기병이 없어서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던 청동기 시대라 당연히 등장, 이전의 기병 포지션을 담당하고 있었으며 특히 근접 전차들은 패치 전까지는 사기 병과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이들이 한때 적당히 강제이동이나 돌진을 하는 것으로 수백킬은 넉넉히 쓸어담았다. 그래서 당시에 사기라는 논란이 심한 유닛이었으며, 전차를 상대하는 방법은 1. 영웅, 1인병종[19], 거인 유닛으로 묶어두고 창병[20]으로 딜링하기. 2. 사격으로 점사해서 도착하기 전에 녹이기가 정도밖에 해법이 없었다. 그러나 1.1.0패치로 충격력이 줄었고 평지 아닌 곳에는 이동 못하는 수준으로 느려졌다. 이 때문에 평지 지형이나 공성전 제외하면 주력으로 쓰기 미묘해졌고 본작 엔진의 특성상[21] 환경만 받쳐준다면 매우 강하다. 그러던 것이 1.2.0 패치로 목재 비용이 매우 비싸져 뽑기 힘들어졌고, 1.3 패치부터는 지형 패널티를 더 크게 받기 때문에 활용하기가 몹시 어려워졌다. 물론 평지전에는 여전히 이동속도와 돌격보너스 역시 충격보병류보다 더 우세하다. 근데 트로이 캠페인 특성상 평지전이 매우 희귀한데다, 지형으로 받는 패널티가 이속뿐만 아니라 근공, 돌격 보너스까지 크게 낮추기 때문에 충격보병이 더 망치역할을 잘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따라서 테살리아나 마케도니아처럼 그리스 북부가 아닌 경우에는 전차는 사용을 안 하는 것이 좋다. 신화 모드에서는 강력한 전사영웅이 탄 전차는 대규모의 보병부대 학살에 매우 뛰어나다. 하지만 전차를 타면 창에 추가대미지를 받고 신화괴수에게도 약하며 영웅 일기토에도 약하기 때문에 일기토시에는 전차에서 내려서 싸우는 것도 좋다. 또한 아마존이나 아리마스포이는 기병을 쓰기 때문에 전차로 상대가 힘들다.
- 토탈 워: 파라오: 역시나 기병이 없던 청동기 시대라 모든 세력들의 기병 포지션으로 등장한다. 다만 이전 시리즈들에 비해서 카드당 개체수는 늘어났다고. 이집트 신왕국은 대부분 사격전차를 사용하며 가나안과 히타이트도 궁수 전차와 투창 전차, 창 근접 전차들이 있다. 보병들은 절대 전차를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에 고티어 궁수로 반격하지 않는 한 사격 전차에게 일방적으로 얻어맞아야 하며 근접 전차 역시 멀리서 간을 보다가 보병들의 측후면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다. 그러나 숲이나 진흙 지형에 크게 영향을 받으며 근접전의 경우 돌진 충격력이 주력이기 때문에 지형이 좋지 않아 속도가 나지 않으면 제대로 공격을 하지 못한다. 왕조 캠페인에서 유목민이나 아시리아의 기병대가 등장했는데 중창전차는 경기병들 상대로 밀리지 않는다.
6.2.6. 워해머 시리즈
티라녹의 전차 (Tiranoc Chariot) # |
크레이스의 백사자 전차 (White Lion Chariot of Chrace) # |
콜드원 전차 (Cold One Chariot) # |
스커지러너 전차 (Scourgerunner Chariot) # |
오크의 멧돼지 전차 (Orc Boar Chariot) # |
고블린의 늑대 전차 (Goblin Wolf Chariot) # |
터스크고어 전차 (Tuskgor Chariot) # |
카오스 채리엇 (Chaos Chariot) # |
고어비스트 전차 (Gorebeast Chariot) # |
버닝 채리엇에 탑승한 헤럴드 오브 젠취 |
버닝 채리엇에 탑승한 익절티드 플레이머 오브 젠취 |
시커 채리엇 # |
헬플레이어 |
해골 전차부대 (Skeleton Chariot) # |
6.2.7. 천년의 신화
고구려 진영에 전차병이 등장한다.6.3. 기타
6.3.1. 문정후 초한지
팽성대전 이후 복귀한 한신이 준비한 결전 병기로 등장한다. 마갑 군마 한쌍이 전차를 끌며, 전차 안에는 노포를 쏘는 병사들이 탑승하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평지에서 백만대군도 두려워하지 않던 항우조차 전차의 포위사격에 당하자 산지로 후퇴해버린다.6.3.2. 백련의 패왕과 성약의 발키리
주요 병기로 등장한다. 여기서의 파해법은 기마부대가 목제로 된 약한 바퀴를 공략하는 것이다.6.3.3. 킹덤
6.3.4.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작중 장수들의 주력 병기로 등장한다.7. 같이 보기
[1]
물론 단어 그 자체론 구분이 안되어서 문맥을 봐야 하고, 자료 조사에서 심각한 비효율이 발생한다는 문제점은 있다.
[2]
병거(兵車)라는 단어 자체는 조선왕조실록에서도 확인되는 오래된 한국어이다. 물론 Chariot에 한정한 의미로 좁혀짐은 근대 이후의 일이지만.
[3]
강인욱, '테라 인코그니타', 창비, 2021, 190p
[4]
현대 전차에서도 조종수는 조종에 집중해야 하므로 공격무기를 거의 쓰지 않는다.
[5]
출처
[6]
출처
[7]
#
[8]
Gravett, Christopher (2002). English Medieval Knight 1300–1400. Oxford: Osprey Publishing.
[9]
출처
[10]
나무위키에서는
몽골말이란 문서명이
몽골야생말이란 표제의 프셰발스키말로 리다이렉트 되어 있어서 오해의 여지가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것은
야생말로 여겨지는 프셰발스키말이 아닌 가축말, 즉 몽골 토종마종을 말한다.
[11]
춘추시대의 오나라는 정글이었고, 그리스는 산악이 많은 나라이다.
[12]
모터사이클은 튕겨나가더라도 대부분 라이더 혼자 튕겨나가 슈트와 헬멧으로 어찌어찌 해결이 가능하지만, 이런 건 사실상 케이지 없는 오픈카인지라 전복되는 순간에 탈출이 힘들고 쇳덩이와 같이 구르는 꼴이라 훨씬 위험하다.
[13]
아예 안 하는 건 또 아니다.
[14]
철갑옷을 입은 전투원 1명인데 무기가 창이었던 데다가 낫전차도 아니었다. 즉 현실적으로 말도 안 되는 구성이었다. 게다가 말도 철마갑을 씌워 절대 속도가 안 나오는 조합이었다. 실제 전투라면 적절한 창병 방진으로도 저지가 가능하거나 선회도중 무게가 밖으로 쏠려 전투원이 튕겨나갔을 것이다.
[15]
0:00~1:20 구간
[16]
다만 철기 시대로 업그레이드 후 코끼리와 같은 스플래시 대미지를 주는 낫전차로 업그레이드를 할 시 나무 1200, 금이 1000이 필요하긴 하다.
[17]
그나마 전차를 사용했다는 마지막 기록의 대상자인 칼레도니아가 있긴 하지만 여기도 서기 80년이 마지막 기록이라 분제의 배경인 3세기 시기에 전차를 썼는지는 알 수 없다.
[18]
노스카 종족 DLC전에 최종티어가 전차라서 19전차라는 희대의 전차 로스터를 가져도기도 했다.
[19]
특히 도발이 있는 영웅이 있는 경우 전차의 극악 카운터가 된다.
[20]
대형화 유닛 상대 특성이있는 창병들이 있다.
[21]
로마 2에도 있던 유닛이 끼는 문제 때문에 이동 명령 내리는 순간에 충돌판정이 사라진다. 문제는 전차같이 충격력 높은 유닛이 이것으로 연속으로 돌격판정과 후방 판정 받아서 적을 녹일 수 있다. 다른 충격유닛도 가능한데 무거운 전차가 가장 효율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