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8d0000><colcolor=#fff>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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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미상 | ||
사망 | 1469년 (향년 미상) | ||
재위 | 몰다비아 보이보드 | ||
1차: 1451년 10월 12일 ~ 1452년 2월 24일 | |||
2차: 1454년 8월 22일 ~ 1455년 2월 | |||
3차: 1455년 3월 25일 ~ 1457년 4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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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d0000><colcolor=#fff> 부모 |
아버지:
알렉산드루 1세 어머니: 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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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 일리아슈, 슈테판 2세, 페트루 3세, 보그단 2세 | ||
가문 | 무사티니 가문 | ||
종교 | 기독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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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몰다비아 공국 제18대 보이보드.2. 행적
몰다비아 공국 제10대 보이보드 알렉산드루 1세의 사생아다. 1451년 10월 12일, 루세니에서 정변을 일으켜 보그단 2세를 살해하고 보이보드 작위를 찬탈했다. 이후 페트루 4세에게 반감을 품은 몰다비아 보야르들이 알렉산드루 2세를 추대했다. 페트루 4세는 몰다비아를 분할하게 해줄 테니 협의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알렉산드루 2세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페트루 4세 아론은 1452년 2월 24일에 축출되었고, 알렉산드루 2세가 집권했다.이후 국외로 망명했던 페트루 4세는 부정부패를 일삼는 알렉산드루 2세에게 반감을 품은 보야르들의 추대로 1454년 8월 22일 알렉산드루 2세를 축출하고 보이보드에 선임되었다. 1455년 2월 알렉산드루 2세가 반격해 보이보드 직위를 일시적으로 상실했지만, 3월 25일 모길라 전투에서 알렉산드루 2세를 격파하고 보이보드 직위를 탈환했다. 알렉산드루 2세는 체타테아 알바(Cetatea Alba, 흰색 성채)로 피신했으며, 3개월 후인 5월 25일에 독살의 징후를 보이며 사망했다.
이리하여 입지를 굳힌 페트루 4세 아론은 몰다비아에 찾아온 폴란드 상인들에게 특권을 수여한 아버지의 칙령을 재확인했으며, 헝가리 왕국의 섭정 후녀디 야노시의 보호를 받았고, 후녀디 야노시가 1456년 베오그라드 공방전를 치른 후 얼마 안가 사망한 뒤에는 왈라키아 보이보드 블라드 3세의 보호를 받았다. 하지만 나중에는 오스만 제국 파디샤 메흐메트 2세의 압력에 굴복했고, 1456년 매년 오스만 제국에 2,000 굴덴의 공물을 바치는 대가로 몰다비아에서의 주권을 인정받았다.
1457년 4월 보그단 2세의 아들 슈테판 3세가 반기를 일으켰다. 그는 이에 대응해 4월 12일 시레트 강변의 돌제스티에서 슈테판 3세와 맞붙었지만 패배를 면치 못했다. 4월 14일 오르비치에서 재차 전투를 치렀으나 또다시 패배한 뒤 폴란드로 망명했다. 나중에 헝가리 왕국으로 이동한 뒤 헝가리 국왕 마차시 1세와 슈테판 3세와의 사이를 이간질했다. 1467년 11~12월 마차시 1세의 몰다비아 원정에 동행했지만 그해 12월 15일 바이아 전투에서 슈테판 3세의 급습으로 헝가리군이 와해되었다. 이후 트란실바니아에서 계속 항전했지만, 1469년 몰다비아 장군 필리프 팝(Filip Pop)이 트란실바니아를 침공해 세클러 가문의 영지를 초토화할 때 생포된 뒤 참수형에 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