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서가 있는 경우만 기재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의 상급대장, 대장, 중장, 소장은 각각 미군의 대장, 중장, 소장, 준장에 상응. ※ 윗 첨자 † : 전사 ※ 윗 첨자 ok : 총사령관(Oberkommandierender) ※ 윗 첨자 s : 총사령관 대리(Stellvertreter) ※ 윗 첨자 c : 일반참모장(Chef des Generalstabes) ※ 윗 첨자 m : 전쟁성 장관(Kriegsminister)
군사 재정 관리였던 아버지의 아들로
렘베르크에서 태어났다. 루카스는
장크트푈텐의 군사학교에서 기초 군사교육을 받고,
비너노이슈타트의
테레지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독일어와
프랑스어에 능통했고, 군사용어로
폴란드어,
헝가리어,
루마니아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1894년에는
베를린에서 아다 트레거(Ada Traeger, 1870-1930)와 결혼하였고, 자녀로는 카를 알베르트(1898-1900), 마리안나(1895년생), 막스 요아힘(1902년생)을 두었다.
루카스는
모리츠 폰 아우펜베르크 휘하 제4군의 일부로서 제19보병사단을 지휘하여 동부전선에서 코마루프 전투와 라바-루스카 전투에 참전했다. 1914년 12월 1일 전선 시찰 중 중상을 입어 다리가 4cm 짧아지는 부상을 입었다. 이 공로로 레오폴트 훈장 기사십자와 군공로십자장 2등급을 받았으며, 독일군 지원 공로로 프로이센으로부터 철십자 2등급도 수여받았다. 회복 후 1915년부터 1916년까지는
프라크 군관구사령관, 1916년부터 1917년까지는
크라쿠프 요새사령관을 지냈다. 1917년 2월
이탈리아 전선의 제24군단장으로 임명되어 제11차
이손초 전투와 코바리드 전투에 참전했다. 1917년 5월
보병대장으로 진급했으며 남작 작위를 받았다. 이 시기에 레오폴트 훈장 1등급과 철관 훈장 1등급(모두 전시 훈장)을 수여받았으며, 프로이센의 적독수리 훈장 2등급, 루마니아 별 훈장, 뷔르템베르크의 프리드리히 훈장 2등급도 받았다. 건강상의 이유로 1918년 3월 군단장직에서 물러나 종전까지
그라츠 군관구사령관으로 재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