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서가 있는 경우만 기재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의 상급대장, 대장, 중장, 소장은 각각 미군의 대장, 중장, 소장, 준장에 상응. ※ 윗 첨자 † : 전사 ※ 윗 첨자 ok : 총사령관(Oberkommandierender) ※ 윗 첨자 s : 총사령관 대리(Stellvertreter) ※ 윗 첨자 c : 참모총장(Chef des Generalstabes) ※ 윗 첨자 m : 전쟁성 장관(Kriegsminister)
1859년 7월 12일
빈에서
오스트리아 제국군
소령 게오르크 폰 딜러(Georg von Diller, 1818-1864)의 아들로 태어났다. 딜러는
원수 하인리히 폰 헤스(Heinrich von Hess, 1788-1870)의 조카이기도 했으며, 이로 인해 가문의 일부는 헤스딜러(Hess-Diller)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도 했다.
라이프치히 대학교와
빈 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한 후 국가 공무원이 되어
브륀의
모라비아 총독부에서 견습 공무원으로 일했다.
1889년 군에 입대해 빠르게 진급했다. 1902년에는
소령, 1907년에는
중령, 1910년에는
대령에 진급하였고, 그러는 동안
올뮈츠, 비슈코프(Vyškov) 등지의 주둔군에서 복무했다.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시
소장으로 진급해 1915년부터 1916년까지
루블린을 수도로 하는 동부
폴란드 총독을 지냈다. 1915년에는 황제 비밀고문관이 되었다. 1916년에는 마지막으로
갈리치아 총독을 지냈고, 1917년 4월 1일부로 퇴역했다. 같은 해 상원 종신의원이 되었다.
1916년 모라비아의 브란키(Branky) 성과 영지를 구입했고,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가족과 함께 이곳에 정착했다. 하지만 곧 재정난에 처해 영지의 일부를 매각했고, 사망 직전에는 국가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알브레히트 뒤러의 희귀한 판화 《기사와 죽음과 악마》를 팔기도 했다.
1885년
브르노에서 저명한 실업가 카를 오퍼만(Karl Offermann, 1820-1894)의 딸 엘리제(Elise, 1859-1929)와 결혼해 3명의 자녀를 두었다. 아들 프란츠 요제프(Franz Josef, 1887-1946)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
장교였고, 1930년대에는 크리스토프 쇤보른(Christoph Schönborn)
빈 대주교의 할머니인 게르트루트 스쿠테츠카(Gertrud Skutetzky)와 결혼했다. 큰딸 엘리자베트(Elisabeth, 1885-1944)는 제2차 세계대전 말
빈 공습에서 사망했고, 작은딸 마리에 기젤라(Marie Gisela, 1888-1932)는
그라츠 귀족여성학교의 명예회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