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서가 있는 경우만 기재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의 상급대장, 대장, 중장, 소장은 각각 미군의 대장, 중장, 소장, 준장에 상응. ※ 윗 첨자 † : 전사 ※ 윗 첨자 ok : 총사령관(Oberkommandierender) ※ 윗 첨자 s : 총사령관 대리(Stellvertreter) ※ 윗 첨자 c : 참모총장(Chef des Generalstabes) ※ 윗 첨자 m : 전쟁성 장관(Kriegsminister)
빈에서 태어난 후인은
오스트리아 제국군
장성이었던 아버지 요한 카를 후인(Johann Karl Huyn)과 어머니 나탈리에 자른타인(Natalie Sarnthein) 백작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장크트푈텐 사관학교를 거쳐 1879년
테레지아 육군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후 졸업 후 제2용기병연대
소위로 임관했으며, 이듬해 제11울란연대로 전속되었다. 1881년부터 후인은
황립 및 왕립 전쟁대학에서 뛰어난 성적으로 학업을 마쳤다. 이후
마르부르크와
렘베르크에서 참모장교로 복무했다. 1887년
대위로 승진했으며,
프셰미실에서 근무했다. 1892년에는
부쿠레슈티 주재 무관으로 부임했으며,
소령 진급과 함께
크라쿠프의 기병사단 참모장이 되었다.
1899년 대령 진급과 함께 제2울란연대장이 되었다. 1904년부터 1905년까지 제17 기병여단을 지휘했으며, 1905년
소장 진급과 함께 제10기병여단장이 되었다. 1907년부터 1909년까지 다시 제17 기병여단을 지휘했다. 1910년
중장으로 진급했으며,
크라쿠프의 제7기병사단장을 맡았다. 1912년에는 기병감찰관이 되었다.
1914년 5월
기병대장으로 진급했으며,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신설된 제17군단장으로 임명되어
모리츠 폰 아우펜베르크가 이끄는 제4군에 배속되었다. 후인은
동부전선 코마루프 전투에서의 후인은 해당 전투에서 지휘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아우펜베르크의 요청으로 후인은 군단장에서 해임되어
빈으로 소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