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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 세계 IT 서비스( 포털, SNS, 블로그 등)의 전성기를 기록한 문서.2. 목록
2.1. 기기
- PC - 1990년대 ~ 2000년대
- PC는 한 때 디지털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매체였다. 최초의 컴퓨터는 1946년 애니악이 시작이지만 비싼 가격과 대중성 때문에 1980년대까지는 널리 보급되지 못했다.[1] 그러나 PC통신의 대중화로 1990년대 초부터 조금씩 PC가 가정으로 들어오면서 보급이 시작되었고 2000년대 초반 초고속 인터넷 설치로 국민PC 등 국가 차원에서 PC 보급을 실시하며 2000년대에 엄청난 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스마트폰 및 각종 스마트 제품같은 모바일 기기의 발달로 2010년대에 들어서는 조금씩 스마트폰과 태블릿 컴퓨터의 영향력에 처지는 분위기. 아예 PC가 아닌 스마트폰과 태블릿 컴퓨터로 디지털에 입문한 새로운 세대까지 등장했다. 물론 아직까지 PC는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고 앞으로도 유물 취급을 받을 가능성은 적지만, 스마트폰과 태블릿 컴퓨터의 영향으로 이전 전성기 시절만큼의 위상을 되찾기는 어려워보인다. 실제로 PC 사용시간이 줄고 모바일 기기 사용이 크게 늘었다.
- CRT 모니터 - 1990년대 ~ 2000년대 중후반(2007년). TV 시장과 마찬가지로 2007년까지는 CRT가 제일 잘 나갔고 특히 그래픽적인 면에서 우수한 점을 보였기 때문에 판매량이 매우 높았다. 그러나 2008년에 LCD에게 판매량을 추월당한 뒤로 조금씩 밀리다가 2009~2010년부터 PC의 몰락과 함께 2011~2013년 경에 완벽히 사장되었다. 2010년대 초반(2011~2013년) 무렵만 해도 지방에서는 컴퓨터실 같은 곳에서 볼 수 있는 확률이 높았지만, 이 후 자방마저도 교육부의 컴퓨터 개선 작업이 진행되면서 2014년 이후로는 대부분 LCD 모니터로 교체되었다.
- 스마트폰, 태블릿 컴퓨터 - 2010년대~현재
- 2007년 Apple에서 iPhone(1세대)와 2010년 iPad(1세대), 갤럭시 S 시리즈를 출시하면서 스마트폰과 태블릿 컴퓨터가 처음으로 등장했고, 2010년대에 들어 급격히 대중화되면서 세계의 판도를 바꿔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 컴퓨터로 인해 아날로그가 완전히 사장되었고, 디지털의 주류 역시 PC에서 모바일로 옮겨가게 되었으며 기존 디지털 시장 역시 스마트폰과 태블릿 컴퓨터의 기능 하나로 합쳐지게 되었다. 당장 이 문단에 있는 기기가 다 스마트폰과 태블릿 컴퓨터 때문에 망했으며, 이 둘의 전성기는 혁명에 가까운 기기가 등장하지 않는 이상 계속 이어질 것이다.
- 피쳐폰 - 2000년대
- 대한민국에서 휴대폰이 처음 들어온 건 1988년 서울올림픽 때이지만, 1997년까지만 해도 비싼 가격 때문에 일반인들에게는 거의 보급되지 못했다. 휴대전화를 가지는 것이 "비즈니스맨의 상징이라고 여겨지던 시절도 있었을 정도다. 그러나 1998년을 기점으로 조금씩 통신사에서 휴대폰 가격을 낮추고, 이듬 해인 1999년부터 본격적으로 휴대전화 시장이 커지면서 무선호출기는 몰락하게 되었다. 스마트폰 이전의 휴대전화는 피쳐폰이라고 부르는데, 피쳐폰은 전화와 문자메세지 기능을 포함한 다양한 기능(Feature) 을 갖췄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다.[2] 개인용 휴대전화인 피쳐폰은 2000년대 들어서면서 전성기를 맞기 시작했고 피쳐폰의 기능은 시대가 지나면서 조금씩 발전되어 갔다.[3] 그러나 2010년대에 들어 스마트폰이 들어오면서, 인터넷과 모바일 서비스가 불가능한 피쳐폰은 순식간에 사양길을 타게 되었다.
- 흑백폰 - 1998년 ~ 2002년. 초창기 피쳐폰은 전부 흑백폰이었고, 2002년 들어 본격적으로 컬러폰 출시 이후에도 2002년 하반기까지는 흑백폰의 수요가 이어졌다. 그러나 2003년부터 통신사들이 흑백폰 출시를 대부분 중단하고 컬러로 전환하면서 흑백폰은 몰락했다.
- 안테나폰 - 1996년 ~ 2005년. 한 때 피쳐폰에는 안테나가 달려있었는데, 이는 기술상 안테나 내장형으로는 통화품질을 보장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2004년까지 출시된 대다수의 핸드폰들은 모두 안테나가 돌출되어 있었다. 2003년 첫 내장형 핸드폰이 나왔고, 2년 뒤인 2005년 후반부터 조금씩 내장형 휴대전화 출시가 늘어 2006년부터는 완전히 대체했다.
- PDA - 2004년~ 2009년
- Windows Mobile 2003 출시 이후 호환이 가능해지면서 PDA 시장의 입지가 올라갔다. 다만 PDA는 비싼 가격과 호환 문제 때문에 괜찮게 팔리던 시절에도 피쳐폰이나 다른 전자기기 만큼의 양지로 올라오지 못했다. 정말 마니아층들만 사는 분야였던 것. 결국 2010년대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함께 몰락했다.
- DMB - 2005년 ~ 2011년
- 2005년 말 첫 지상파 DMB 도입과 함께 2000년대 중후반을 대표하는 IT 기기로 꼽히고 있다. 약간 더 위험한 방송 등 위성 DMB 업체에서 자체 제작한 프로그램들도 큰 인기를 끌었을 정도이고, 일부 통신사에서는 DMB 기능을 지원하는 피쳐폰인 DMB폰을 출시하기도 했다. 2010년대 초까지도 잘 나갔으나, 2012년 8월 위성 DMB 철수 이후 위상을 잃고 몰락했다. 현재는 유튜브 스트리밍 등 모바일로 생방송을 볼 수 있는 기능이 충분히 갖춰져 있으니 DMB가 별 필요가 없어졌다.
- MP3 플레이어 - 2000년 ~ 2003년
- 1990년대 말 폭발적으로 등장하여 2000년대 초반 하면 빼놓을 수 없는 IT 기기로 꼽힌다. 최전성기인 2000년대 초반에는 휴대폰에 MP3 재생 기능이 없었으며 당시에는 국내를 넘어 세계 대부분의 학교가 휴대폰 수거가 의무여서 주 수요층인 청소년들의 수요를 잡게되어 당시 양대주자중 하나였던 애플은 iPod의 출시와 함께 망해가던 회사가 단숨에 부활했고 아이리버 프리즘을 만들어낸 레인콤은 벤처 신화를 써내려갔을정도로 잘나갔으며 소리바다 등 여러 무료 음원사이트들이 등장하면서 최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은 2003년 4분기부터 MP3/4 재생 기능을 갖춘 휴대폰이 출시되었고 2005년에는 DMB폰이 출시됨과 동시에 MSM6550 칩셋 탑재 휴대폰이 대중화되었으며 무료 음원사이트 단속이 시작됨과 동시에 전 세계적으로 학생인권문제와 정보화 사회 담론이 대두되며 휴대폰 등 전자기기 사용을 완화함과 동시에 국내에서는 소리바다로 대표되는 무료 음원 사이트들이 문을 닫으며 멜론 연동이 용이한 휴대폰이 완전히 MP3/PMP를 대체하여 내리막을 걷게 되었고 2010년대에 들어 스마트폰과 태블릿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MP3 플레이어는 완전히 도태되었다.
2.2. 포털 사이트
- 야후! 코리아 - 1997년 ~ 2002년
- 미국의 IT 기업으로, 1997년 한국 법인을 세우고 서비스를 시작했다. 도입 초기 당시 포털 1인자였던 심마니를 제친 야후는 2000년대 초반까지 뷰 검색율 1위를 자랑하는 인기 포털로 자리매김했다. 인터넷 초창기 시절 '빅3' 중 하나가[4] 바로 야후다. 그러나 검색 기능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2003년 뷰 검색율 1위를 처음으로 네이버에 내주었고, 동시에 네이버에게 포털 2위 자리도 빼앗기게 된다. 2004년 네이버가 1위로 올라간 뒤에는 아예 3위로 곤두박질쳤고, 2000년대 후반부터는 점유율이 5%도 나오지 않는 군소포털로 전락했다. 결국 2012년 12월 31일, 서비스를 종료하고 한국에서 철수했다.
- 네이트 - 2004년 ~ 2009년
- SK커뮤니케이션즈가 운영하는 포털 사이트로,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별 영향력 없는 군소포털이었다. 2003년에는 라이코스 코리아와 넷츠고를 여기 합병시키며 세를 키우려 노력했으나 별 효과는 없었다. 그러나 2004년, 자사 서비스인 싸이월드와 네이트온이 떡상하면서 자연스레 포털의 위치도 올라가게 되고, 2004년부터 2008년까지 포털 점유율 3위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이 두 서비스에 온전히 의지하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2010년대 들어 싸이와 네이트온이 몰락하자 네이트 역시 급격히 힘이 빠지게 되며 현재는 군소포털로 다시 내려간 상태다.
- 엠파스 - 1999년 ~ 2004년
- 1999년 창립한 엠파스는 2000년대 초반 검색 기능으로서 큰 강점을 발휘하며 중소포털 중 제일 나가는 기업 중 하나였다. 그러나 2005년 '열린 검색' 기능을 도입했다 지식인의 자료를 무단 노출한다는 이유로 네이버와 소송을 빚게 되었고, 이 후 회사의 사정도 크게 악화되어 결국 2009년 2월 28일 네이트와 합병되었다.
- 라이코스 코리아 - 1999년 ~ 2002년
- 1999년 라이코스가 한국 법인을 세우며 서비스를 시작해 단숨에 인기 포털 반열에 올랐다. 특히 가수 엄정화와 도베르만 강아지를 앞세운 광고로 시청자들에게 각인되기도 했다. 2001년 네이버에게 빅3 자리를 내준 이후에도 포털 20위권 하에 들며 중소포털에서의 영향력은 매우 강했지만, 2003년 넷츠고와 함께 네이트에 합병되면서 폐쇄되고 말았다.
- 하두리 - 1999년 ~ 2004년
- 1999년 런칭된 웹켐 서비스로, 웹켐으로 사진을 찍어 올리며 소통하는 시스템이다. 디지털 카메라가 대중적으로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인 2000년대 초반 얼짱 열풍에 맞물려 큰 인기를 끌었고, 2003년에는 회원수 2000만명을 돌파할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다. 이 시기 학창시절을 보낸 이들이라면 하두리 사진 한 장쯤은 가지고 있다고 할 정도로, 10~20대 젊은 층 사이에서의 인기가 특히 대단했다. 싸이월드가 인기를 끈 2004년까지도 이용자 수가 많았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디지털 카메라의 보급으로 웹켐이 시들해지면서 결국 몰락했다.
- 천리안 - 1990년대 ~ 2002년
- PC통신 3대장[5]으로 꼽히며, 1990년대 PC통신의 열풍과 함께 엄청 잘 나갔고 2000년대 초반에는 포털로 변신해 인터넷 방송 서비스를 제공하며 나름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2004년 무렵 싸이월드의 급부상으로 순식간에 몰락해 시장에서 사라졌다.
- 나우누리 - 1994년 ~ 2002년
- PC통신 3대장 중 2000년대에 접어들어서도 큰 인기를 얻었던 업체 중 하나다. 3대장 중 제일 늦게 PC통신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젊은 층을 위주로 인기를 모으면서 엄청나게 잘 나갔으며, 포털 변신에도 크게 성공하면서 디시인사이드와 함께 유머 컨텐츠로 잘 나갔었다. 그러나 이듬 해인 2003년부터 조금씩 쇠퇴기를 맞이하였으며, 2004년 싸이월드의 열풍과 함께 시장에서 사라졌다.
- 넷츠고 - 1997년 ~ 2002년
- PC통신과 인터넷을 함께 즐길 수 있다는 모토를 앞세워 인기를 끌었으나, 2002년 11월 네이트로 합병되면서 서비스를 종료했다. 기존 PC통신 서비스는 2002년 3월 31일 먼저 종료했다.
- 유니텔 - 1996년 ~ 2002년
- 천리안 / 나우누리 / 하이텔 이후 뛰어든 PC통신 업계의 신흥강자로 불렸으며, 2000년대 초반까지 포털과 텔넷을 병행하며 잘 나갔다. 그러나 선배들처럼 2004년 싸이월드의 급부상과 함께 순식간에 시들어버렸다.
- 세이클럽 - 1999년 ~ 2004년
- 1999년 클럽 / 커뮤니티 위주의 포털로 시작해서 2000년대 초반 인터넷 시장을 주름잡았던 포털로 꼽힌다. 특히 최초의 유료 아바타 서비스와 2002년 런칭된 메신저 타키 등 여러 부가 기능으로 큰 인기를 끌었고, PC 통신 시절부터 이어져오던 클럽 / 채팅 문화가 인기 있었던 00년대 초의 인터넷 시장에서 잘 먹혀들어갔던 셈. 최절정기였던 2004년에는 동호회 수만 50만명을 돌파했을 정도다. 그러나 싸이월드와 버디버디, 네이트온의 열풍을 이기지 못하고 2000년대 중반부터 이용자가 급격히 빠져나가며 몰락했다.
- MSN메신저 - 1999년 ~ 2003년
- 1999년 서비스가 시작되어 한 때 한국 내 메신저 업계 이용자 수 1위를 기록했던 서비스였다. 세이클럽이나 버디버디가 지역별 접속량 편차가 있었던 것에 비해 MSN는 전국적으로 이용자가 균등했고 이 때문에 후발 업체들의 등장에도 여전히 그 위치를 유지했다. 그러나 2004년 네이트온의 급부상으로 MSN 역시 몰락해버렸다.
- 버디버디 - 2000년 ~ 2009년
- 2000년대 초반 잘 나갔던 세이클럽, MSN, 드림위즈, 프리챌 등 여러 커뮤니티 / 채팅 포털들 중 유일하게 싸이월드의 급부상에도 살아남았던 서비스였다. 2004년 싸이월드의 급부상과 함께 위기가 찾아오자 버디버디는 버디 홈피를 런칭하여 버디 채팅과 연결시켜주는 서비스를 실시, 싸이월드의 2인자 위치까지 올라왔으며 이 후에도 계속 네이트온과 경쟁했다. 그러나 2010년대 스마트폰 시대가 찾아오면서 네이트온과 사이좋게 카카오톡에 밀려 사라졌다.
- 프리챌 - 2000년 ~ 2002년
- 1999년 서비스를 시작해, 2000년대 초반 커뮤니티 / 동호회 서비스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최전성기였던 2002년 기준 최대 접속자 195만명에 회원수만 1000만명에 이르렀을 정도였고, 이 분야에서 부동의 1위였던 다음 카페를 일시적으로 제친 적도 있으며 포털 순위 6위까지 오를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그러던 2002년 말, 프리챌은 유료화 정책을 발표하였다. 초반에는 40% 이상의 커뮤니티가 유료화 정책에 참여하는 등 순항처럼 보였으나 얼마 안 가 전재완 사장이 구속되고 회사가 휘청이면서 상당수의 프리챌 회원들이 다음, 싸이월드 등으로 떠났다. 결국 이듬 해인 2003년부터 프리챌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 싸이월드 - 2004년 ~ 2010년
- 1999년 서비스를 시작했으나 2000년대 초반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군소 포털의 위치였다. 프리챌, 드림위즈, 세이클럽, 버디버디 등 쟁쟁한 경쟁자들이 버티고 있어 싸이월드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던 것. 싸이월드가 처음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프리챌이 유료화 선언한 이듬해인 2003년. 프리챌의 유료화와 함께 회원들 상당수가 싸이월드로 유입되면서 이 때부터 조금씩 회원수가 유입되었다. 늘어나는 회원수를 감당하기 어렵자 싸이월드는 SK커뮤니케이션즈에 인수되었으며, 네이트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다음 해인 2004년부터 미니홈피 서비스의 폭발적인 인기와 함께 전성기를 맞기 시작했고, 싸이월드는 2000년대 중후반을 대표하는 SNS로 자리잡게 되었다. 2009년까지 싸이월드의 총 가입자수는 4000만명에 이를 정도였고, 가상화폐인 도토리 액수만 1000억원에 육박했다고 한다. 그러나 2011년부터 스마트폰의 대중화와 함께 페이스북과 트위터가 급부상하면서 모바일 서비스에 전혀 대비하지 않았던 싸이월드는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 네이트온 - 2004년 ~ 2010년
- 2003년 1월, 네이트에서 출시한 채팅 서비스다. 그러나 출시 첫 해에는 MSN, 버디버디, 세이클럽 타키 등 쟁쟁한 경쟁자들이 건재하게 버티고 있어 전혀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듬 해인 2004년부터 싸이월드와 네이트온의 연동이 시작되면서 네이트온 역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급성장했다. 네이트온의 등장으로 기존의 MSN과 세이클럽 타키, 드림위즈 지니 등 채팅 서비스들의 이용자들은 모두 네이트온으로 흡수되었고 버디버디 정도만 살아남았을 정도였다. 2000년대 중후반의 인터넷 문화를 그냥 싸이월드와 네이트온으로 요약했다고 충분할 정도로 영향력이 대단했다. 그러나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도입된 카카오톡의 급부상으로 결국 네이트온도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이유는 당연히 모바일 서비스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했던 것 때문이다.
- 네띠앙 - 1999년 ~ 2003년
- 1999년, 개인 홈페이지 서비스와 함께 오픈한 포털이다. 2000년대 초반 개인 홈페이지 붐이 불 때 그 시류를 정석으로 탔던 포털로, 대다수의 인기 개인 홈페이지들이 네띠앙 서버를 빌렸을 정도로 위상이 좋았다. 그러나 2004년을 기점으로 시류가 홈페이지에서 블로그형 SNS로 넘어가면서, 여기에 대비하지 못한 네띠앙은 급격히 사양길을 탔다. 결국 2006년, 파산 처리되면서 사이트가 폐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