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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그룹 | Soul Intent (1988 ~ 1995) · D12 (1996 ~ 2006, 2008 ~ 2018) · Bad Meets Evil (1998 ~ 2002, 2011 ~) | ||
관련 인물 | 헤일리 J. S. 매더스 · 프루프 · 로이스 다 파이브 나인 · 비자르 | ||
기타 | 여담 · 디스 · 8 마일(영화) · The Slim Shady Show · 롤링 스톤 선정 에미넴의 50대 명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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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미넴의 여담에 대해 정리한 문서.2. 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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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동안
에미넴은 미국 연예계를 통틀어서도 손꼽히는 동안으로 매우 유명하다.[1] 구글에 "Eminem 1999 vs"라고 검색 하여도 1999년의 에미넴의 모습과 비교하는 사진 이미지가 많다.
2013년도에 발매된 The Marshall Mathers LP2의 프로모 싱글인 " The Monster"의 뮤직비디오는 이러한 에미넴의 동안 속성을 이용해서 촬영 한 걸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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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 2013년 |
이외에도 " The Monster"에서 에미넴은 1999년에 발매된 The Slim Shady LP의 " My Name Is", 2000년에 발매된 The Marshall Mathers LP의 " The Way I Am"과 " Stan (2001 Grammy Live Ver.)"을 똑같이 재현하는데 성공을 한다. 특히 Stan의 그래미 라이브 부분은 보다 보면 오히려 위화감이 느껴질 정도로 완벽히 재현해내는데 성공했다. 다만 " My Name Is" 부분을 보면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기도 한다.
2014년부터 노화의 조짐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기도 하였다.
[2][3]
유튜브 댓글에는 가끔씩 "신은 절대 늙지 않는다.", "로봇 아니냐." 라는 댓글이 올라온다. 그만큼 에미넴이 동안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동안은 에미넴이 첫 메이저 데뷔를 했던 1998년[4] 때부터 있었다. 에미넴이 첫 메이저 데뷔를 했을 때 나이가 25세[5]이었는데 주름 하나 없는 앳된 외모 때문에 20대 초반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약 20년 전에도 액면가에 비해 어려보이는 외모였는데, 이러한 외모를 오랫동안 유지했었다.
하지만 2017년 6월부터 수염을 기르기 시작해서 아시아에서는 동안의 이미지가 많이 없어졌다. 하지만 서양에서는 원래 수염을 기르는 사람이 많기도 하고 여전히 젊어보인다는 반응이 다수다. 그러다가 2021년에 Gnat과 Higher의 뮤직 비디오를 보면 알 수 있듯, 갑자기 평소보다 수염을 엄청 길러버리고[6] 살도 약간 쪘다 보니 이전만은 못하다는 얘기도 조금씩 나오기 시작한다.
그후 몇달 뒤 셰이디 레코즈에 그립스라는 래퍼를 영입하며 같이 사진을 찍었는데, 수염이 다시 좀 짧아진 채로 사진이 찍혔다. 후에 c.d.o.c라는 인스타그램 계정에도 여전히 엄청난 동안을 유지하며 짧아진 수염 길이를 유지하는 사진이 찍혔다. #
2020년대 기준으로는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다보니[7] 예전처럼 1999년과 거의 차이가 없는 수준은 아니다. 그래도 1972년생으로는 전혀 볼 수 없는 수준.
3. 목소리
에미넴의 메이저 데뷔 초 1998~ 목소리는 남성 목소리의 발성법 중 하나인 테너 중에서도 상당히 높은 축에 속하는 목소리이다. 하지만 이는 에미넴 본연의 목소리가 아닌 인위로 소리가 빠져나갈 구멍을 좁혀서 높게 만드는 것이고 이로 인해 특유의 앵앵거림과 허스키하고 유니크한 목소리가 나는 것이다. 이는 성대에 엄청나게 부담을 주는 발성법인데, 앵앵거림으로 성대의 마찰이 점점 거칠게 되어 금방 목이 쉬어 버리고 심하면 성대에 변형이 생길 수 있다. 에미넴도 이 때문에 2000년 전후로 목소리가 깊어진 것이다. 실제로 1999년도 당시의 인터뷰를 여럿 들어보면 지금보다는 하이톤이기는 하지만 평소 말할 때에는 본연의 목소리로 소리를 내 앵앵거리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2002년 초중반 8 마일의 촬영과 동시에 정규 4집인 The Eminem Show의 제작으로 보컬 트레이닝을 받았지만 목소리의 질만 좋아질 뿐 성대를 갈아 마시는 창법은 여전했다. 그에 추가로 8 마일의 촬영으로[8] 심한 불면증에 시달리게 되었고 이로 인해 약물 중독에 빠지면서 목소리가 완전 바뀌었다. Encore 시절부터 점점 변하는 걸 느낄 수 있고, Eminem Presents: The Re-Up에 수록된 You Don't Know를 들어보면 심각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목소리가 안 좋아진 것을 들을 수 있으며, 약물 중독 치료 후 발매한 Relapse에서는 그나마 나은 톤이 되었지만 과한 악센트를 가지고 있었으며 Recovery 쯤부터 지금의 정돈된 톤을 가지게 되었고 이 때쯤부터 랩을 할 때 지르는 느낌의 플로우로 바뀌었다. Revival부터는 나이 때문에 목소리가 계속 바뀌는 것으로 보인다. 12집 The Death of Slim Shady (Coup De Grâce)에서는 약물 중독 전 목소리와 현재 목소리를 번갈아가며 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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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9] | 2020년[10] |
4. 인종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래퍼[11]로 평가받지만, 간혹 " 백인이라서 떴다"는 주장도 나오곤 한다. 에미넴 본인도 MTV에서 '내 피부색 때문에 더 뜬 것도 없지 않아 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긴 하다. " White America"라는 곡에도 "계산해보자고. 내가 흑인이었다면 내 앨범 판매량은 반토막 났을걸."[12]이라는 가사가 있다. 하지만 이후 평가에 대한 그의 생각은 2023년 Realest에서 드러나는데, 자신이 백인이기 때문에 역대 5위 안에 들어가는게 아니라, 백인이기 때문에 역대 1위로 꼽히지 않는 것이라며 촌철살인의 말을 한다.[13] '흑인 문화'에서 역대 최고 중 하나로 평가받음과 동시에, 일부에게는 그저 이방인 취급을 받는 등 크고 작은 공격들을 끊임없이 받아왔고 이는 그에게 백인버프는 커녕 정반대로 작용하고 있다. 에미넴은 이미 켄드릭 라마, 제이 콜, 빅 션 등을 포함한 수많은 래퍼들에게 영향을 끼쳤으며, 라킴, 예, 50센트 등 여러 거장들도 에미넴을 역대 최고로 꼽은 적이 있다.에미넴이 랩을 하기 시작했을 때는 현재와 달리 백인이 힙합을 한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나빴다. 에미넴 이전 세대의 힙합은 흑인만의 고유문화와 같았고, 특히 이시기 힙합의 트렌드는 인종차별에 대한 불만을 랩으로 터뜨리던 갱스터 힙합이 언더그라운드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던 때다. 그래서 바닐라 아이스같은 에미넴 이전 백인 래퍼는 흑인들에게는 매우 모욕적인 존재였고, 이를 따라하는 백인 청소년들까지 똑같은 취급을 받았다.[14] 엘비스 프레슬리나 마이클 잭슨같이 이미 인종의 벽을 뛰어넘은 아티스트들이 있었음에도 힙합은 그 태생적 문제때문에 메인스트림 진입과정에서 인종갈등이 표면화되어 평범한 리스너들까지 인종차별의 벽이 있었고 21세기가 되기 전까지 백인 래퍼는 스타는 커녕 조롱거리에 불과했다.[15][16]
그런데도 불구하고 큰 인기를 누린 것은 에미넴이 백인이라는 이유로 뜬 것이 아니라, 백인인데도 불구하고 흑인 문화인 힙합에서 엄청난 실력이 보여줬기 때문에 그 임팩트를 원동력 삼아 뜬 것이라는 주장이다. 프루프가 말하길, 백인이 랩을 한다며 비웃던 흑인들도 에미넴이 랩을 몇마디 뱉으니 다들 놀랐다고하고, 애초에 밑바닥에서 백인 배틀 래퍼로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살아남았던게 에미넴이다. 또한 뜨기 전에 발매했던 biterphobia, infinite, Just Don't Give a Fuck 등에서 이미 라임이 어지간한 유명 래퍼들보다 뛰어난 수준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에미넴은 1997년 LA 랩 올림픽 대회에서 2위를 차지했다.[17] 그리고 예를 들어 에미넴의 선배이자 백인 래퍼 그룹인 비스티 보이즈만 봐도, 그 당시 그들의 랩에 대한 인식은 '백인은 랩으로 흑인한테 안된다.' 정도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지금이야 그들의 음악적 성과는 인종과 무관하게 확실히 인정을 받고 있지만, 그들이 데뷔를 했을 때만 하더라도 데뷔작인 Licensed to Ill이 힙합 장르 최초로 빌보트 200 차트 1위를 달성하자 흑인들이 반발하며 '저건 힙합이 아니라 록이다!'라는 궤변을 늘어놓기도 했을 정도다. 하지만 에미넴은 백인인데도 불구하고 인지도, 평판, 판매량 등이 압도적인 우위에 있다. 이것은 실력이 뒷받침이 되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에미넴이 힙합에 몸을 담기 시작했을 때는 피부색이 그에게 큰 페널티였으나, 실력으로 그 한계를 극복하고 당대 흑인 래퍼와 리스너들조차 입을 다물게 할만큼 인정받아 닥터 드레라는 거물이 직접 픽업해 데뷔를 한 후에는 누구도 그에게 피부색만 보고 제2의 바닐라 아이스같은 조롱 따위를 할 수 없었고 피부색이 오히려 그에게 힙합씬의 독보적인 캐릭터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해줬다고 볼 수 있다. 한 마디로 실력이 좋지 않았으면 백인이라는 요소가 더욱 단점이 됐지, 장점이 되지는 못했을 거라는 얘기다. 실제로 본인도 백인 래퍼들이 얼마나 많은지는 관계없이 본인이 없으면 허전할 것이라는 가사를 썼다.[18] 이렇게 따지고 보면 오히려 힙합 씬에서의 '백인 버프'라는 건 에미넴의 등장으로 인해 생겨났다는 것. 달리 말해 에미넴이 힙합계에서 인종의 장벽을 깨부순 개척자라는 평가다.[19] 현 세대에서 어느정도 인지도가 있는 백인 래퍼들도 이러한 에미넴의 등장이 없었다면 크게 주목받기 힘들었을 거라는 주장들이 많다.[20] 그리고 에미넴은 후배 백인 래퍼들에게 레퍼런스가 되어, 힙합계에서 인정받기 위해 비교되어야 할 거대한 이정표가 되었다.
에미넴의 힙합계에 한 획을 긋고, 역대 최고의 래퍼 중 하나로 인정받은 후에, 일부는 에미넴을 역대 최고로 보기도 하는데, 여기서 오히려 역차별이 발생한다. 흑인의 문화였던 힙합에서 에미넴을 그저 '게스트' 취급하고, 이방인 취급하는 부류.[21] 에미넴의 실력과 영향력을 생각해봤을때 그가 오히려 흑인이었다면 무조건 역대 최고로 꼽혔을 거라는 주장도 적지 않다.
결과적으로는 엘비스 프레슬리가 그러했듯, 사실 흑백을 가리지 않고 90년대 말쯤에는 이미 청년들 사이에서 대세였던 힙합과 갱스터 랩 씬에 마지막으로 필요했던 아티스트가 흑백을 아우를 슈퍼스타였는데 에미넴은 백인에, 금발에[22], 벽안에, 샤프한 외모, 그 당시 힙합계의 부족한 점을 시원하게 긁어준 '슈퍼 루키'였다. 게다가 닥터 드레의 프로듀싱이라는 시너지, 그리고 후에 밝혀지기 시작하는 불우한 환경[23], 가사 내용에 대중들의 관심까지 더해지면서 슈퍼스타로 급부상했다. 그리고 에미넴의 메인스트림 진입이후에는 사실상 흑백의 벽이 무너지며 더이상 백인 청소년들이 힙합 듣는다고 흑인들에게 찐따소리 듣는 일도 없어졌고 힙합은 그렇게 완전히 21세기 초 미국 대중문화를 주름잡는 대세 음악으로 거듭났다.
5. 샤라웃
예전부터 에미넴은 래퍼들의 이름을 자주 언급하였다.처음 이름들을 언급한 것은 2002년 " Till I Collapse"부터다.
- 2Pac[24]
- The Notorious B.I.G.
- JAY-Z
- Nas
- André 3000
- Rakim
- Big Daddy Kane
- LL Cool J
- Redman[25]
- Treach[26]
- Kool G. Rap
- Lil Wayne
- Royce Da 5'9"
- KXNG Crooked
- Joyner Lucas
- Kendrick Lamar
- J. Co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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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 {{{#!folding 해당 가사 [보기] |
I belong here, clown, don't tell me 'bout the culture 난 여기 속한다고, 광대 새끼[27]야, 나한테 문화에 대한 얘기는 집어 치워 I inspire the Hopsins, the Logics, the Coles, 난 홉신, 로직, 제이콜, the Seans, the K-Dots, the 5'9"s, and oh 빅 션, 켄드릭, 로이스에게 영향을 줬고, 그리고 오, Brought the world 50 Cent, you did squat, piss and moan 궁지에 몰린 50 센트를 마저 구원해줬지만, 넌 오줌이나 질질 쌌겠지 But I'm not gonna fall... bitch! 하지만 난 추락하지 않을 거야... 등신 새끼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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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mikaze의 수록곡인 Fall에서는 총 7명의 래퍼를 언급하며 샤라웃하기도 했다. 그 목록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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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 {{{#!folding 해당 가사 [보기] |
Now here's to LL, Big L and Del K-Solo, Treach, and G Rap DJ Polo, Tony D, ODB, Moe Dee, Run-DMC Ed O.G., and EPMD, D.O.C., Ice-T, Evil Dee King Tee, UTFO, and Schoolly D, PE, and BDP YZ and Chi-Ali, Rakim and Eric B., they were like my therapy From B.I.G. and Paris, Three Times Dope, and some we'll never see, and PRT N.W.A and Eazy-E, and D-R-E was like my GPS Without him, I don't know where I'd b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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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g L
- Del The Funky Homosapien
- K-Solo
- EPMD
- DJ Polo[29]
- Tony D
- Ol' Dirty Bastard
- Kool Moe Dee
- Run-D.M.C.
- Ed O.G.
- The D.O.C.
- Ice-T
- DJ Evil Dee
- King T
- UFTO
- Schoolly D
- Public Enemy
- Boogie Down Production[30]
- YZ
- Chi-Ali
- Eric B.[31]
- Paris
- Three Times Dope
- Poor Righteous Teachers
- N.W.A
이 외에도 " Till I Collapse"[32], " Rap God"[33], " EPMD 2"[34] 등의 노래에서 힙합의 레전드들을 샤라웃하는 가사를 들을 수 있으며, 비스티 보이스[35], Masta Ace[36], Pharoahe Monch[37]를 존경한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서는 자신에게 영감을 준 8~90년대 래퍼들을 일일이 나열하면서 마지막에는 "이 분들이 없었다면 자신은 물론 현재의 힙합도 없었다"는 식으로 말하며 레전드들에 대한 리스펙을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6. 표기
외래어 표기법에 맞춘 표기는 '에미넘'인데, 이것은 국내 언중들 사이의 통용은 물론이고[38], 유래에 근거한 본토 발음조차도 무시한 표기기 때문에 가끔 나오는 지상파 뉴스 자막을 통해 이 표기를 알게 된 사람들에게 호된 비판을 받고 있다. 이것은 국립국어원 사이트의 관련 문답에서 답변한 직원조차 간접 시인한[39]'에미넴'으로 표기했었다.] 심각한 문제다. 그 외에도 존 레넌, 비틀스 같이 국립국어원 측이 권고하는 이름 표기와 통용되는 표기가 따로 노는 경우가 엄청 많다.7. 기타
- 힙합에서 가장 흔한 주제인 여자 자랑, 돈 자랑을 정말 거의 하지 않는다. 본인은 이런 자랑질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고. 또한, 뮤직 비디오 역시 몇 영상을 제외하면 야한 장면이 거의 없다. 그래서 에미넴의 뮤직비디오 코멘트에는 항상 야한 가사와 장면 없이도 뜨는 것을 찬양하는 댓글이 꼭 하나씩은 있다. 이러한 면모는 에미넴의 아이덴티티 중 하나라고 평가받는다.
- 언더그라운드 시절에 녹음할 돈이 부족해 한 큐에 녹음을 끝내는 연습을 많이 했다고 한다. 이런 방식을 오랫동안 고집해오다보니 닥터 드레와 처음 합을 맞춘 메이저 데뷔 앨범 The Slim Shady LP을 작업할 때, 에미넴이 녹음 중 실수를 하자 '처음부터 다시 가자고'라고 했더니 닥터 드레가 '뭔 개소리야? 펀칭으로 때우자고'라고 했다고 한다. 한 큐에 끝내는 연습만 했던 에미넴은 펀칭이 뭔지도 몰랐다고.[40]
- 비속어, 은어가 포함된 아주 거친 가사를 쓰고, 날카로운 힙합 음악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일반적인 직장인과 같은 규칙적인 생활습관을 유지한다고 한다. 공연같은 행사가 있을때나 간간히 늦게까지 일어나있는 정도라고 한다. 릭 루빈이 에미넴의 위대함은 그의 직업윤리에서 나옵니다.라고 이야기하고, 에드 시런이 미국의 수많은 뮤지션들은 저녁 6시에 일어나서 아침 6시까지 작업하지만, 에미넴은 다릅니다. 늦게 와서 늦게 떠나는 것을 본 적이 없어요. 철저하게 아침에 나와서 일하고 점심을 먹고, 5시, 아쉬운 부분이 있을때만 6시까지 작업하고 떠납니다. 이걸 끊임없이 반복하죠. 그는 아주 철저합니다. 저도 그를 닮아 나쁜 습관을 버리고 사람들과 더 좋은 삶을 살기 위해 그렇게 생활습관을 바꿨죠. 라고 언급할 만큼 철저하게 짜여진 삶과 일상 안에서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 릴 웨인과 함께 자수성가한 대표적인 래퍼로 평가받지만, 힙합 역사상 최고의 스웨거로 불리는 릴 웨인과 달리 자신을 돈 많은 허세쟁이로 표현하는 것이 힘들다고. 과거 에미넴의 평소 복장은 항상 흰 티셔츠 + 힙합바지 + 헐렁한 후디 + 비니 + 나이키 에어 조던 4였다. Relapse 앨범 때부터는 가죽 재킷 + 청바지로 바뀌었지만, 에어 조던과 흰 티는 여전하다.[41] 앤더슨 쿠퍼가 진행하는 "60 Minutes"라는 토크쇼에서 말하기를, 그는 무명에서 벗어나 처음 돈을 많이 벌기 시작하자 매니저에게 전화 걸어서 처음으로 한말이 "이제 롤렉스 시계 살 수 있어?"였고, 그때 산 롤렉스 시계는 스크래치가 날까봐 현재도 집에 모셔두고 100달러짜리 G-SHOCK만 차고 다닌다고 말했다.[42] 궁핍하던 무명 시절 음악적인 이유에 앞서 생계를 위해 랩 배틀 대회에 나갔고 그때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것이 상금과 롤렉스 시계였다고 하니 이해할 만도 하다. 이후 60 Minutes에서 보여준 G-shock은 불티나게 팔렸다. 순재산은 2019년 기준으로 2억 1천만 달러 정도(약 2300억)이지만, 에미넴은 사업을 딱히 하지 않아서 에미넴과 비슷한 위상을 가진 아티스트들이 가진 재산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재산이 적은 편이다. 애초에 에미넴 본인이 돈에 연연하는 성격이 전혀 아닌 것도 있고, 머니스웩을 적극적으로 하려는 성격도 전혀 아니며 랩 가사 역시 사회비판과 디스, 재치있는 라이밍 위주라 미국에서도 역대급 재산과 위상에도 불구하고 머니스웩과는 어울리지 않는 인물로 여겨진다.
- 퀘이크 3의 유저 MOD중에 The Chronic이라는 제목의 모드가 있는데, 도시 맵 하나와 에미넴 그리고 닥터 드레의 모델링이 포함된 모드다. #
오른손에 찬 하얀색 시계이다. 이 외에 "
Berzerk" 등 여러 뮤직 비디오에서 한정판을 포함한 여러모델을 돌려 착용하는 것을 보면, 수집하거나 카시오에서 협찬을 받는듯 하다. 2013년 말에는 G-Shock 30주년 기념으로 에미넴 한정판이 발매되었다.
#
- 2011 그래미 시상식에 리아나, 스카일러 그레이, 마룬 5의 애덤 리바인[45] 그리고 닥터 드레와 함께 등장해 폭발적인 무대를 선보였다. 미국 음악계의 여러 거장들이 참여한 자리에서도 유독 빛났다는 평가. 실제로 시상식장을 메운 동료 가수들에게서 가장 큰 환호를 받았다.
- 공적인 자리에선 절대로 웃지 않는 기믹이 있다. 항상 약간 화난 듯한 터프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이게 앨범 자켓이든 상 받는 자리든 그냥 찍은 사진이든 다 그렇다. 팬들도 이걸 잘 아는지라 유튜브 등지에 종종 "사상 최초 에미넴 웃는 모습 캡처" 따위의 동영상이 올라오는데, 잘 보면 하나같이 다 평소보다 조금 덜 구긴 얼굴이다. 몰래 웃거나 웃음 참는 모습이 간간히 포착되긴 한다. 다행히 사적인 자리나 얼굴이 나오지 않는 라디오 방송 같은 데서는 웃는다. 의외로 예전의 영상들과 사진에서는 배 터지게 웃는 에미넴의 모습도 잡혀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예전의 에미넴을 그리워하는 팬들도 많다. 그래도 수염을 기른 이후에 웃는 모습이 많이 찍히고 있다.[46] 또 1999년 프루프와 디트로이트 에서 프리스타일 랩을 했는데, 환한 미소를 짓는다.[47]
* 2009년 MTV 뮤직비디오 시상식에서 천사 날개를 달고 날면서 등장한
사샤 바론 코헨의 불시착으로 인해 그의 엉덩이에 파묻히는 봉변을 당했다. 에미넴은 괴로워했고 이내 빡친 표정으로 자리를 떴지만 사실 다 예정된 퍼포먼스 였다고 밝혀졌다.
- 록 덕후라고 한다. 실제로 에미넴은 레드 제플린, 퀸 등 고전 록밴드들의 명곡들을 자주 샘플링했다. 이와 비슷하게 영국의 전설적인 록밴드 더 후의 보컬리스트인 로저 달트리도 에미넴의 광팬이라고 한다.
- 2010년에는 뉴저지 출신 래퍼 조 버든(Joe Budden)의 믹스테입 수록곡 "Slaughterhouse"에서 인연이 닿았던 4명의 각기 다른 지역 출신들의 래퍼: Royce Da 5'9"(미시간주 디트로이트), Crooked I(캘리포니아주 엘레이), Joell Ortiz(뉴욕시 브롱스), Joe Budden(뉴저지주)로 구성된 Slaughterhouse.[48]를 자신의 레이블인 Shady Records에 영입했다. 같은 디트로이트 출신인 Royce Da 5'9"과는 언더 시절부터 Bad Meets Evil이란 팀명으로 듀오로 잠깐 활동을 했었으나, 이후 에미넴의 메이저 성공 및 D12의 성공, D12의 멤버인 Bizarre와 로이스 간의 비프를 시작으로 D12 전체와의 비프를 거쳐 한 때 에미넴과 로이스 둘의 사이는 소원했으나,[49] D12 그룹을 만든 장본인인 동시에 Royce와는 역시 오랜 친구였던 Proof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계기로 에미넴과 Royce, D12 모두가 화해를 하게 되었다. 슬로터하우스의 영입 이후, 에미넴과 로이스는 언더 시절 이후 처음으로 다시 Bad Meets Evil[50]이라는 팀명으로 뭉치게 됐고, 2011년 처음으로 EP 앨범인 Hell: The Sequel을 발매했다.
- 학창시절 폭행의 트라우마로 한쪽 눈을 깜빡이는 습관이 있다. 자신도 모르게 오른쪽 눈이 윙크를 하듯 깜빡이는 모습이나 오른쪽 눈이 더 크게 떠져있는 모습이 자주 목격된다.
- 에미넴의 트레이드 마크인 짧은 금발머리는 사실 염색을 한 것이다. 진짜 머리 색은 어두운 갈색빛을 띈 더티 브라운. 2009년 컴백할 때부터는 염색을 풀고 검은 머리로 다니기 시작했다. 2013년 발매된 The Marshall Mathers LP2 부터는 다시 노란 머리로 돌아왔다.[51] 공식적으로 금발 에미넴으로서의 활동은 2015년 영화 사우스포 사운드트랙 " Phenomenal"의 뮤직비디오가 마지막이다. 2016년부터는 다시 원래 머리 색을 유지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이러한 짤이 돌아다니고 실제로 에미넴이 이러한 말을 했다는 유언비어가 돌아다니는데, 평소에 자뻑을 절대 안하기로 유명한 에미넴이 실제로 저런 말은커녕 비슷한 뉘앙스의 얘기한적도 없다. 2010년에
Recovery 앨범이 발매했을 때 "
Not Afraid" 라이브를 펼친 후 인터뷰어와 대담을 하는 장면이다.
릴웨인 안티팬들이 에미넴의 "
Rap God"이 공개되자 그냥 캡처본에 자막을 넣었을 뿐이다.
에미넴이 가장 처음으로 낸 앨범은 언더시절 속해있었던 그룹
Soul Intent가 낸
Steppin' On To The Scene이다. 발매일은
1990년
3월 3일. 커버를 보면 알겠지만
카세트테이프 형식이다.
에미넴의 데뷔 싱글은 "
Just Don't Give A Fuck"이다. 발매일은 1998년 10월 13일.
- 베이식이 본인 입으로 밝히길,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래퍼가 에미넴이라고 한다.
- 켄드릭 라마의 Lyricism (리리시즘)에 크게 영향을 래퍼 준 한명이 에미넴이라고 한다. 둘다 닥터 드레 사단의 일원이니, 어찌보면 켄드릭 라마가 에미넴에게 영향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52] 에미넴이 켄드릭 라마의 가사를 보고 굉장히 칭찬하며, 그가 쓴 가사인지 알아보기 위하여 켄드릭 라마를 찾아가 가사를 쓰게 했는데, 켄드릭은 에미넴을 감탄하게 할 만한 가사를 써냈다고 한다. 게다가 한 라디오에서 에미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며 전체적으로 래퍼에 대한 평가를 물어보자 켄드릭 라마는 "미친 드라마틱한 천재이며, 자신이 인정하는 최고의 래퍼 중 하나라는 것과 누구도 에미넴을 못 이길 것이다."라고 답변한다.[53]
- 2016년 10월 즈음, 2017년에 발매될 에미넴의 새 앨범 트랙리스트라는 글들이 페이스북 등에 떠돌아 다녔다. 그냥 루머일지 아니면 정말일지는 2017년이 돼봐야 알 듯. 그리고 약 1년 후, 2017년 9월 말에서 10월 초 사이 추석을 전후로 에미넴의 최측근이자 하입맨인 Denaun Porter(Mr. Porter)가 인스타그램 라이브에서 새 앨범에 관한 떡밥을 남겼으나, 이내 거짓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이것이 "인터넷에서 에미넴의 신곡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사람들을 겨냥한 것이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후 Revival이 발매되며 새 앨범 떡밥이 진실인 것으로 드러났다.[54]
- 셰이디 레코드에서 Shady Wars라는 게임을 출시했다. 플레이 방식은 위에서 떨어지는 가사를 먹는 것.
- 2017년 6월부터 수염을 기르기 시작했다. # 이로 인하여 동안 기믹이 조금 사라졌으며 반대로 거친 상남자 이미지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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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매니저인 폴 로슨버그(Paul Rosenburg)는 1997년도부터 지금까지 에미넴의 매니저를 맡고 있는데,[55] 20년 넘게 뮤지션이 한 매니저와 활동을 한다는 것은 꽤 드문 경우이다. 뭐 폴의 경우는 셰이디 레코드의 공동 설립자이니 꼭 같다고 볼 순 없겠지만. 이후 폴이 Not Afraid: The Shady Records Story에서 직접 밝힌 사실로, 폴과 에미넴은 프루프를 통해 처음 만났다고 한다. 에미넴은 당시 매니저를 찾고 있었고 프루프가 둘을 연결시켜 줬다고. 에미넴과 폴이 처음으로 만났을때 에미넴은 폴에게
6달러를 요구하며Infinite 테이프를 팔았고, 이후 프루프가 에미넴에게 랩을 시켰다고 한다. 폴이 에미넴의 랩을 처음 들었을때 딱히 "오, 얘가 지구상에서 랩을 제일 잘하는 애가 될 거 같은데?"라고 느끼진 않았다고 한다.[56]
- 폴이 말하길 자신이 처음으로 에미넴이 우는 걸 봤을 때가 1997년도 랩 올림픽에서 준우승을 했었을 때라고 한다.
- 에미넴이 소속된 크루 D12 중에서 가장 성공한 인물이다. D12 멤버들은 언더그라운드 시절 때 멤버 중 한 명이 성공하면 그 한 명이 크루를 알리기로 약속했는데 에미넴이 그 약속을 지킨 것이다.
- " Cleanin' Out My Closet"은 원래 D12의 노래였지만 Bizarre가 첫 녹음을 할때 수위가 매우 센 가사를 썼다가 결국 녹음을 포기하며 에미넴의 솔로곡이 됐다. #
- 에미넴은 활동과 투어를 많이 안 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은 편이다. 실제로 Revival과 Kamikaze 등의 새 앨범이 발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프로모션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물론 Relapse나 Recovery, The Marshall Mathers LP2 등의 앨범 출시 당시에도 TV 출연은 많이 하지 않았다. 이와 일맥상통하게도 동급의 래퍼들 중에서 가장 투어를 적게 하는 게 바로 에미넴이다.[57]
- 프루프랑 찍은 프리스타일 랩 동영상들도 유튜브에 돌아다닌다. # 여기서 에미넴이 빵터지는 장면을 볼 수 있다.
- 리셀 플랫폼 스탁엑스의 투자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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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BET 어워드에서 무반주 프리스타일 'The Storm'을 선보였다. 트럼프를 비판하는 가사가 크게 주목을 끌었는데 이 프리스타일이 공개된 후 래퍼
스눕 독은 본인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Shout out to Eminem.
에미넴에게 환호를.
Saying some real shit
진짜 맞는 말만 했다.
Eminem,
에미넴,
I always knew you are real nigga[58]
난 항상 네가 진짜배기라는 걸 알고 있었고
We totally know you a real nigga now
우린 진심으로 네가 진짜 멋진 새끼란 걸 알았다.
Shout out to Eminem
에미넴에게 환호를
디트로이트여, 일어나라
Eminem, real mother fucking nigga
에미넴, 얜 진짜 존나 멋진 새끼다.
So says, Snoop Dogg"
스눕 독이 말함
이라고 극찬했다.
- 투팍의 어머니에게 자필로 편지를 써서 보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한 편지 내용에는 "아드님은 힙합의 세계뿐만 아니라 제 음악에 큰 영감을 주었으며, 커리어 전체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습니다."라는 말을 덧붙이며 투팍에 대한 리스펙을 보였다. 뿐만 아니라 글씨체 또한 화제가 되었는데 매우 정교하고 예뻐서 많은 사람들이 놀라워했다.[60] 자신이 그린 투팍의 크로키화 또한 편지에 동봉했었는데 그림 실력도 무척이나 수준급.
- 랩 실력과는 별개로 음역대가 엄청나게 넓다. 그의 음역대는 진성으로 0옥타브 레[61](D2)에서 ~ 3옥타브 파(F5)[62], 가성으로 무려 4옥타브 레(D6)[63]으로 음역대로는 타 유명 보컬리스트 못지 않게 넓은 편이다. 이렇게 넓은 음역대를 가져서 에미넴은 테너라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 2018년 11월에는 Kick Off라는 무반주 프리스타일을 공개했다. 무려 11분 동안 프리스타일을 한다. 해당 영상
- 힙합 영화 Bodied의 프로듀싱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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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치병인 팬들을 위해 많은 선행을 베푼 적이 있다. 제일 유명한 일화로,
2015년 시한부 인생의 골육종 환자인 Gage Garmo라는 17살 소년이 죽기 전 에미넴과 만나고 싶다고 해서 에미넴이 직접 그 소년을 위해 찾아간 일이 있다.
#[64] 기부 활동도 많이 하는 편이다.
이 외에도 2010년에는 낭포성 섬유종을 앓고 있던 David Smith라는 팬이 에미넴의 아일랜드 공연에 갈 예정이었는데 하필 공연 전 날에 세상을 떠나자 이에 충격을 받은 에미넴이 Sing For The Moment를 부르기 전에 Smith를 추모하기도 했다. 들어보면 목소리에서 울먹거리는 걸 알 수 있다. #
- 전성기 시절에는 라이브에서 그의 절친인 프루프가 더블링[65]을 해줬지만 프루프가 2006년 불의의 총격 사고로 세상을 뜬 후 2009년 복귀 시기부터는 라이브에서 D12의 멤버인 미스터 포터가 현재까지 더블링을 해주고 있다.
- 로직이 에미넴의 광팬인걸로 유명하다. 래퍼로서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에미넴의 Infinite와 The Marshall Mathers LP를 들으면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직접 밝혔으며[66], 한 인터뷰에선 " JAY-Z와 에미넴중 같이 콜라보를 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누구와 할건가?"라는 질문에 한시에 망설임도 없이 "에미넴!!"이라고 말한 적도 있을 정도. 이러한 로직의 팬심은 에미넴한테도 알려지며 Kamikaze에서 에미넴이 직접 로직을 샤라웃해줬다. 2019년 2월 에미넴의 하와이 공연에서 로직이 스페셜 게스트로 초빙되었고 5월 3일에는 로직의 신곡 Homicide에 피쳐링을 해줬다. 심지어 SNS에서 그 누구도 팔로우하지 않는 에미넴이 인스타에서 로직을 팔로우했다.[67] 이 쯤 되면 성공한 덕후인 것 같다.
- AllMathers라는 에미넴 팬 유튜브 채널이 있는데, 주로 에미넴의 희귀곡들을 올리고 있다. 몇몇 곡들은 유튜브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유명곡의 데모 버전, 미발표곡, 언더그라운드 시절 프리스타일 및 피쳐링, 심지어는 에미넴이 소속되어 있는 힙합 그룹 D12가 언더그라운드 시절 때(1996년~1998년) 타 래퍼 곡을 피쳐링 해준 것까지 말 그대로 진짜 에미넴이 아니고서는 못 구하는 곡들까지 올리고 있어서 팬들 사이에서는 "진짜 에미넴 아니냐?"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에미넴의 하드코어 팬들에겐 이미 성지가 된 채널로 유명하다. 다만, 2020년을 전후로 올렸던 모든 영상들을 내려 현재는 껍데기밖에 없는 채널이 돼버렸다. 프로필 사진도 참이슬로 바뀐 건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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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인
Something For Nothing: The Art of Rap에서 90년대 레전드 그룹인 Naughty By Nature의 멤버인 Treach가 자신의 랩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직접 밝혔다. 실제로 초창기 에미넴의 랩 스타일을 보면 Treach와 비슷한 부분이 많은 편이다.
해당 다큐에서 과거 트레치의 랩을 듣고 생긴 일화에 대해 얘기하길, 에미넴은 랩을 처음 듣고 "내가 인생에 있어서 해야될 일이 이거다"라며 깨닫고 나름 열심히 랩을 하고 있었지만 프루프가 Naughty By Nature의 테이프[68]를 가지고 옴으로써 자신만의 세상이 끝났다고 한다. 테이프에 있던 Yoke The Joker를 듣고 "씨x 뭐 이런게 다 있어?"라고 하며 충격을 받아 당시 여름동안 랩 가사를 쓰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2020년 KXNG Crooked의 Crook's Corner 인터뷰 중 당시 심경에 대해서 자세히 말했는데, 해당 곡을 듣고 자기는 이렇게 랩을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을 해 더 이상 하기 싫다며 당시 여름동안 가사를 쓰지 않고 랩을 접었었다고 한다. 이에 프루프는 보다 못해 "야, 걔가 잘하는건 알겠는데 너도 계속 해야될거 아니야!"라고 했다고 한다.
- Stan의 3절을 녹음하다가 엔지니어의 실수로 인해 해당 벌스를 통으로 날리기도 했다. 에미넴은 날리기 전에 녹음했던 벌스가 훨씬 좋았다고 하니 팬들은 아쉬울 따름이다.
- 눈이 좋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근시가 있어서 안경을 쓴다. 실제로 2004년 Encore 활동 무렵 안경을 밥먹듯이 차고 다녔다. 2004년 당시 안경을 낀 모습
- 에미넴이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오보는 총 4번, 약물 과다복용으로 죽었다는 오보는 총 1번 있었다. 이 때문에 지금도 가끔씩 유튜브 등지에 '에미넴 사망 100%' 등의 제목으로 거짓 찌라시 동영상이 올라온다.
- 에미넴의 자전격 되는 영화 8 마일의 주제가인 " Lose Yourself"는 '운동선수를 승리로 이끌 것 같은 노래' 부문과 '교통사고를 유발할 것 같은 노래' 부문 투표에서 각각 1위를 했다.
- 8 마일을 찍기 위해 76kg이던 자신의 몸무게를 65kg로 감량했다.
- SNS를 일체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모든 계정은 대리인이 관리하고 있다. SNS를 하지 않는 이유로는 악플을 보고 상처받기 싫다고 했으며 만약 그것(악플)들을 보면 바로 정신병원에 수감됐을거라고 한다.[69] 하지만 아주 가끔씩 팬들을 위해 직접 글을 쓰기도 한다.
- 겉보기에는 많이 왜소해보이지만 의외로 근육량이 상당하다. Revival 앨범 속지에 수록된 사진들을 보면 팔뚝이 굉장히 굵고, 2010년대 중반 이후에 촬영된 닥터 드레와 함께 있는 사진들을 보면 어깨 넓이나 팔뚝 굵기도 운동광이었던 드레에 비해 그다지 밀리지 않는다. 특히 수염을 기르기 시작한 뒤에 이 점 역시 전형적인 상남자로서의 모습으로 더 부각되고 있다.
- 위에도 언급되었다시피 공백기였던 2000년대 중반 즈음에 살이 많이 쪄서 다시 빼고 복귀한 뒤인 모습이 데뷔 초창기 때와는 느낌이 사뭇 달라졌는데 데뷔 초부터 2000년대 초반까진 샤프하고 학생같은 풋풋한 면이 돋보였다면 공백기를 거치고 다시 복귀한 뒤의 모습은 좀 더 어른스러워진 모습이 많이 느껴진다. 특히 수염을 기르기 시작한 뒤부터는 이 점이 더 부각되고 있다.
- 2009년 이후의 패션 중 캉골 군모는 항상 변함없이 쓰고 있다. 수염을 기른 이후로는 모자를 벗은 사진을 거의 보기 힘들 정도로 캉골 모자를 애용한다. 주로 검은색을 착용하며 가끔가다 회색, 적색, 네이비 색 등을 착용한다.[70]
- 공연 투어 때 자신이 존경하는 래퍼들의 앨범이 그려진 티셔츠를 주로 입는다고 한다. Masta Ace나 LL Cool J와 같은 힙합씬과 자신의 삶에 큰 기여를 한 래퍼들의 음반을 그의 팬들이 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2017년에는 예외적으로 FACK TRUMP라는 티셔츠를 입기도 했다.
- 데뷔 때부터 현재까지 가장 라이브를 많이 한 곡은 " The Way I Am"이다.[71]
- 에미넴이 언더그라운드 시절 소속되어 있던 Soul Intent의 1988년 당시 첫 그룹명은 ' New Jacks'였고, 이후 1992년 ' Bassmint Productions', 1995년 ' Soul Intent'로 변경하였다.
- 2019년 4월 20일, 자신은 11년 차 금주 중이라고 밝혔다.
- 미국 현지에서 2019년 6월 26일자로 에미넴의 친부 사망소식을 기사를 통해 전해 왔다. 사인은 심장질환으로 알려졌으며, 일부 에미넴의 팬들은 그의 정신건강을 걱정하거나, 그의 아버지의 사망 소식에 안타까움을 전했다. 하지만, 반대로 에미넴과 그의 아버지는 생전에 사이가 그다지 좋지 못 했던 사이였기에 "과연 에미넴이 본인의 친부 사망에 대한 생각이 있을까?"라는 추측을 던지기도 하는 네티즌들과 팬들의 의견도 다수 존재한으나 에미넴이 2020년 1월 17일에 깜짝 발매한 MTBMB의 트랙 'Leaving Heaven'에서 아버지의 부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표출했는데, 본인은 신경쓰지 않는다고 하며, 오히려 "당신은 죽기 전부터 나한테 죽은 거나 다름없었어.", "꺼져, 당신이 만약 있었다면 인생에서 이 따위 일들 절반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야. 그래서 난 당신을 비난하지. 아니면 고마워해야 하나? 만약 그랬다면 지금의 내가 아니었을 테니. 난 이제 당신을 놔줄 거야. 고이 잠들어라, 좆같은 놈아. 지옥에서 보자." 등 아버지에 대한 울분을 표출했다.
- 2020 아카데미 시상식에 깜짝 등장해 본인의 대표곡인 Lose Yourself를 공연했다. 2002년 수상 당시에 없었던 것을 약 17년만에 푼 셈.[72] 여담으로 KXNG Crooked과의 인터뷰에서 "아카데미 영상 돌려봤냐고? 그때 이어폰이 자꾸 귀에서 떨어지려고 해서 그거 잡느라 랩 제대로 못 했어... 화딱지 나서 안 봐."라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이야기했다.
- 2002년 제4회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73]에서 Without Me로 외국 음악 부문을 수상한 적이 있다.
- 프로레슬링의 팬인걸로 알려져 있다. 가사에 앙드레 더 자이언트, 바비 히난을 언급하기도 했으며 레이 미스테리오의 가면을 직접 쓴 적도 있다. WWE 레슬매니아 30에는 MMLP2 수록곡인 " Legacy"가 공식 테마곡으로 채택되기도 했다. Music To Be Murdered By 발매 이후 마이크 타이슨[74]과 인터뷰를 갖기도 했다.
- 그가 유년 시절을 보낸 디트로이트의 집[75]에 2013년 11월 7일에 원인불명의 화재가 발생했고, 결국 13일 뒤 안전 문제로 철거되었다. 여담으로 과거에 해당 집의 벽돌을 MMLP2의 사은품으로 판 적이 있다. #
*
2020년
4월 21일,
코로나 바이러스로 고통받고 있는 시민들을 위해 자신의 고향
디트로이트의 종합병원에 스파게티를 기부했다. 상표의 이름은
Mom's Spaghetti. 이후 팬들에게서 "나도 한번 먹어보고 싶다."라는 여론이 점점 생기기 시작하였고, 결국 9월 21일에 자신의 고향인 디트로이트에서 상표로 아예 음식점을 열어버린다. 오프라인 영구 매장이며 재미난 썰 또한 많은데, 처음 오픈한 날에는 에미넴이 직접 두 발로 뛰며 서빙도 하고, 팬들과의 사진 촬영 또한 많아서 에미넴의 여러 사진들이 SNS로 돌아다녔는데, 다시 한번 이게 쉰을 바라보는 아저씨가 맞나 싶을 정도의 동안력을 뽐내는 에미넴이 있었다.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올린 광고도 있는데, 구리다는 평이 없지않아 있기는 하다.
- The Marshall Mathers LP 20주년을 맞아 리스닝 파티를 진행했다. 에미넴의 채팅 내용은 이곳에서 볼 수 있다.
- 2020년 4월 5일에 에미넴의 자택에 매튜 휴즈라는 남자가 침입했다가 체포되었는데, 처음엔 "에미넴을 만나고 싶었다"라고 범행 동기를 밝혔으나 이후 살인 동기가 있었음이 밝혀졌다. 한편 이 일이 알려지자 에미넴 팬들 사이에선 " Stan"의 이야기가 실화였다는 반응이 쏟아졌는데, Stan의 가사 주인공 스탠의 동생이자 후속곡인 " Bad Guy"의 주인공 이름이 매튜이기도 한데다가 심지어 나이도 같다.
- 정치적으로는 극악의 컨셉을 유지했던 2000년대까지는 모두까기였으며 성숙해진 2020년대 현 시점에서는 리버럴로 보인다.[76] 에미넴의 첫 전성기인 2000년 즈음에는 클린턴 부부와 극도로 적대적이었는데, 우선 Role Model 등의 곡에서 힐러리 클린턴을 미친듯이 디스한 적이 있다. 그리고 모니카 르윈스키에 대한 언급은 Role Model 말고도 디스로 유명한 The Real Slim Shady에서도 꼭 들어가는 등 클린턴 부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리고 공화당 대통령인 조지 W. 부시나 도널드 트럼프는 더해서 말 그대로 에미넴이 가장 싫어하는 인물들이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는 도널드 트럼프의 존재로 인하여 민주당에게 조금 더 우호적인 것으로 보이는데,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민주당 후보인 조 바이든 선거 광고에 " Lose Yourself" 라이선스를 주었다. 지금까지 정치인에게 라이선스를 절대 주지 않았던 그로서는 매우 이례적이며, 그와 반대로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혐오가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다.
- 메타크리틱에서 평론가 점수와 유저 점수가 매우 차이나는 아티스트들 중 한 명이다. 이는 에미넴이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평론가들의 스탠스에 굉장히 적대적인게 가장 큰 이유다. 평론가 점수는 평균 60점대로 대체적으로 낮은 편이며, 유저 점수는 그에 비해 80점대로 높은 편이다. Music To Be Murdered By Side B만 따져도 평론가 점수가 65점으로 상당히 애매한 점수지만 유저 평점은 9.0[77]로 유저스코어를 10배로 늘리면 26점이나 차이난다. 또한, 주로 힙스터들이 많다고 알려진 Rate Your Music이나 다른 앨범 평점 사이트인 Album Of The Year 등 메타크리틱을 제외한 다른 평론 사이트에서도 배척당하는 경우가 꽤나 잦다.
- 가장 잘하는 게임이 팩맨이라고 미스터 포터가 말했다. 또한 플레이스테이션 5같은 최신 게임 기기를 안한다고 한다. https://youtu.be/6dwx3o_vDFM
- 마이클 조던과 전화 통화를 한 적이 있다. 2020년 4월 라디오에서 밝힌 일화. 신발 콜라보레이션 사업 관련해서 통화했다고 한다. 통화 도중 에미넴이 "당신 상대로 덩크하게 디트로이트에 한 번 오시라"고 농담했는데, 조던이 이를 농담으로 받지 못했는지 순간적으로 말이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통화가 끝난 뒤 에미넴은 속으로 "내가 방금 실수한 건가? 장난으로 안 받아들였을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다고. 에미넴이 이 얘기를 하자 라디오 동반 게스트로 합석해 있단 매니저 폴 로젠버그는 "너 그때 되게 당황했던 것 같았다. 조던은 분명 장난으로 받았을 거다. 그 뒤로도 콜라보 사업 몇 번 더 이어갔으니 괜찮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에미넴은 그 때를 회상하며 " 다큐멘터리 봤는데 경쟁심이 강한 사람이더라. 만약 그가 내게 '언제 붙어볼 수 있는 거냐'고 물어봤다면 나도 장난으로 알고 넘어갔을 거다."라고 이야기했다. 또한 "조던의 직업윤리는 믿기지 않을 정도다. 분명 재능을 갖고 태어났지만, 열심히 노력하기도 했다. 재능과 직업윤리가 정비례하는 건 대단하다"며 조던을 칭찬했다.
- 위의 조던과의 일화를 보면 짐작할 수 있듯 나이키, 에어 조던과 처음으로 콜라보한 연예인이자 랩스타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함께했으니 오래된 VIP. 특히 Encore 발매 당시 출시했던 소량의 에어 포스 1은 먼치킨 수준의 가격을 이루고 있다. 더불어 56회 슈퍼볼 하프타임 쇼에서는 미발매 콜라보 조던 3을 신었다.[78]
- 2021년 4월 23일 경 NFT라는 디스코드 서버에 참여해 "Goodnight Fuckers[80]" 라는 말과 함께 셀카를 남겼다. NFT로 자신의 사인, 직접 만든 비트 등을 판매 중이다.
- 한국 기준 2021년 5월 22일 오전 7시 경 에미넴 공식 채널에 카니예 웨스트와 에미넴이 콜라보한 곡 Pxxrin[82]이라는 영상이 업로드 되었다. 하지만 오직 들리는거라곤 스페인어 빼곤 아무것도 없었기에 팬들은 여러 추측을 하게 된다.[83] 댓글창에는 온갖 드립이 난무하고 있고 싫어요 수가 다른 영상보다 눈에 띄게 높은 걸 확인 할 수 있다. 이후 시간이 지나 영상이 삭제되었기에 해킹이었다는 것이 사실상 기정사실화됐다.
- 현재, 켄드릭 라마, 닥터 드레와 함께 음악 작업을 한다는 소식이 있다.[84][85] Music To Be Murdered By Side B에서 "Guns Blazing"이라는 곡을 마음에 들어서 닥터 드레와 트레이드를 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닥터 드레가 새로운 앨범을 준비 중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곡을 트레이드 했다는 것을 짐작했을 때, 닥터 드레의 새로운 앨범에 에미넴의 피쳐링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 2021년, 포스트 말론과 같이 작업 중이라는 루머가 돌고 있다. 이유는 콜 베넷[86]의 인스타그램에 M&M캐릭터의 동상같아 보이는 것이 배경에 있고[87] 포스트 말론의 beerbongs & bentleys앨범과 비슷해보이는 어떤 막대기같은 물건과 함께 찍은 사진이 스토리에 올라왔기 때문이다. 팬들은 루머긴 하지만 은근 기대하는 눈치. 이후 포스트 말론의 관계자가 아님을 밝히면서 사실상 루머인 것으로 끝났다.
- 2021년 6월 20일에 유튜브 채널의 총 조회수가 200억회가 되었다.
- 2021년, 새로운 앨범을 조만간 발매할 것이라는 썰이 돌아다니고 있다. 레딧에서 공신력 있는 유저 bulkorcut99가 이 떡밥을 굴리고 있으며, 이 자료들을 모아 한국어로 해석해놓은 글도 있다. 이후 한창 전 세계에서 10월 1일에 에미넴이 MMLP3 앨범을 낼거라는 떡밥이 돌았지만 결국은 아무 일도 없었다. 관련 기사도 나오고 커뮤니티 등에서도 많은 얘기가 오갔었다.
- 2022년, 56회 슈퍼볼 하프타임 쇼에 닥터 드레. 켄드릭 라마, 스눕 독, 메리 제이 블라이즈 등의 엄청난 맴버들과 함께 참여하는 것이 예고되었으며 관련 기사 공연 당일 <Lose Yourself>를 열창, 무대 위에서 폭풍 간지를 발산하였다.
- Roblox의 게임 item asylum에서 에미넴과 관련된 밈이 많이 쓰였다. 게임 내 사망 효과음으로 "MY NAME IS EMINEM AND I LIKE TO RAP!"이 나오며, 인게임 내 감정 표현으로 Rap이 있는데 거기 붙은 설명이 Lose Yourself다.
- 디트로이트 출신답게 NFL의 디트로이트 라이언스와 MLB의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열렬한 팬이다.
- 가장 좋아하는 래퍼는 LL Cool J이다.
- 가사 면에서는 워드플레이 식의 라임이 늘어나고, 플로우에 맞게 라임과 음절을 배열하는 실력은 역대 최고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지만 그 빈도가 너무 빽빽할 때가 있다는 평이 있다.[88] 실제로 이러한 라임 떡칠 식의 가사는 청각적으로 쾌감은 크지만 정작 귀가 쉽게 피로해질 수가 있기에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작사 방법 중 하나다. 물론 라임을 과도하게 넣을 뿐이지 작사 실력은 최고의 리릭시스트를 뽑을 때 무조건 거론되는 이름 중 한 명일 정도로 뛰어나다.
- 랩 실력과는 별개로 나스와 더불어 비트 초이스가 아쉬운 래퍼로 종종 꼽힌다. 실제로 Revival 발매 당시 더 가디언에서는 에미넴을 최악의 비트 선정가 (Biggest tin ears for beats)라고 비판했다.
- 2000~2003년의 에미넴에 비해서 2009년부터의 에미넴은 여러 부분에서 아쉽다는 의견이 존재한다. 물론 랩 실력 때문에 이런 얘기가 나오는 것은 당연히 아니며[89], '프로듀싱' 능력의 저하와 그로 인한 '비트메이킹' 능력이 좋지 않아졌다는 것이 주로 비판을 받고 있는 점이다. 이는 에미넴이 자신의 곡에 프로듀싱을 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두드러지는데, 과거에 에미넴이 직접 프로듀싱한 ' Sing For The Moment'나 ' The Way I Am'같은 곡들에 비하면 굉장히 아쉬워졌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리아나, 스카일라 그레이와 같은 보컬들과 협업해서 나온 ' Love The Way You Lie', ' The Monster', 'Asshole', 'Twisted' 등의 곡들은 팝 스타일이 강한데, 이는 대중성을 확보해 상업적으로는 좋은 성과를 내기 쉽지만 정작 힙합 팬들이 기대하던 스타일과는 완전히 정반대에 있는 스타일이다. 실제로 과거 직접 프로듀싱을 해서 좋은 평가를 받았던 곡들은 이러한 팝 스타일이 아닌 록-어프로치 성향이 강하게 드러난다.[90]
- 1999년 메이저 데뷔 이후 MTV의 한 인터뷰에 출연해서 어릴 적 살던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방문 이외에도 자신의 어린 시절과 언더그라운드 시절의 일화들을 여럿 이야기했기에 영어가 된다면 한 번 보는 것을 추천한다.
- 디트로이트를 대표하는 MC이지만 같은 지역의 전설적인 프로듀서인 제이 딜라와는 단 한 번도 같이 작업한 적이 없다. 에미넴은 딜라의 사후에도 그의 비트를 사용한 적이 없는데, 한 번은 빅 션이 에미넴과 같이 딜라의 비트로 작업을 하려고 했지만 에미넴이 이를 거절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친분은 있었는지 Slim Shady EP의 부클릿에 보면 Thanks to에 제이 딜라와 그가 속해있었던 그룹인 슬럼 빌리지(Slum Village)가 언급되어 있고, 1997년에는 공연을 같이 한 적도 있다. 'EPMD 2'에서는 에미넴이 딜라를 언급하며 샤라웃을 하기도 했다.
[1]
키아누 리브스나
톰 크루즈처럼 동안의 대명사가 된 배우들과 비교를 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이다.
[2]
상단의 사진은 젊을 적 바리움, 바이코딘과 같은 마약성 약물 중독의 대표적인 후유증 중 하나인 급속
노화로 인한 것이라고 추측됐다. 물론 지금은 절대 마약 같은 것은 하지 않으며, 공연 컨디션을 위해 음주와 담배 흡연조차 하지 않는다.
[3]
하단의 사진은
드레이크의 콘서트에 깜짝 등장 후 촬영한 사진이다. 여담으로 이 사진이 촬영되기 전인 2016년 중반에 드레이크가 에미넴의 소속사인 'Shady Records'의 소속 래퍼
조 버든과 디스전을 펼쳤고, 드레이크가 이 디스전에 관한 인터뷰를 하던 중 에미넴이 오더라도 자신있다는 뉘앙스의 대답을 한 적이 있어서 리스너들이 드레이크와 에미넴 사이에 디스전이 일어나는게 아니냐는 호들갑을 떨기도 했었다. 물론 드레이크가 에미넴한테 악감정이 있어서 그런 것은 당연히 아니고, 그 정도로 당시 디스전에 자신이 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한 답변일 뿐이었다. 그리고 애초에 둘의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닌데, 드레이크가 본인 콘서트에 에미넴을 초대하고 그를 '
Greatest of All Time'이라고 칭했으며 에미넴 또한
Kamikaze에서 드레이크를 디스했다는 의혹이 돌았을 때 드레이크가 딸들에게 좋은 일을 해 주었기 때문에 그를 디스할 일은 없다고 해명한 적도 있다.
[4]
SSLP 수록곡인
Just Don't Give A Fuck이 1998년에 싱글로 발매되어 었다.
[5]
싱글 자체는 생일 4일 전인 25세 때 발매 되었지만 본격적인 인기를 얻고 얼굴이 알려지기 시작한 시기는 1999년 "
My Name Is" 이후이기에 26세로 보아도 무방하다.
[6]
한 팬이 수염을 언제 미냐고 물어보자 "내가 왜?"라고 답했다는 일화도 있다.
[7]
2023년 기준 51세가 된다.
[8]
하루에 14시간 정도 연기를 하고 잠은 컷 중간 중간에 쪽잠을 잤다고 한다.
[9]
28초부터
[10]
40초부터
[11]
힙합 역사상 가장 많은 음반을 판매했다.
[12]
"Let's do the math. If I was black, I could sold half."
[13]
실제로 백인 버프는 커녕 반대로 백인이기 때문에 저평가된다는 평가도 많고, 여러 OG 래퍼들이 언급하기도 했다. 흑인들에게 힙합은 오래 전부터 소중한 문화이자 전유물로 여겨졌기에, 백인이 최정상에 오르는걸 좋게 보지 않는 시선이 생각보다 많다. 벤지노나 더 게임 등이 계속 에미넴을 까내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14]
이 시절 힙합문화를 어설프게 심취하던 찐따 백인 청소년들의 인식이 어땠는지를 보여주던 당시 히트곡이 있다. 백인 펑크밴드
The Offspring의 1998년 Americana 앨범 수록곡
Pretty Fly (For A White Guy)라는 곡인데, 가사 내용이나 뮤직비디오나
아이스 큐브를 몰라서 바닐라 아이스나 듣던 백인 찐따의 꼴이 어떤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15]
정작 그 바닐라 아이스는 문서에도 나오지만 90년대 정통 힙합씬의 흑인 래퍼들이 메인스트림으로 올라오는데 꽤나 중요한 역할을 본의 아니게 했다.
[16]
좀 심하게 말하면, 당시의
뉴 메탈, 사실상 랩 메탈은 힙합과 갱스터 랩은 좋아하는데 백인이라 차마 대놓고 좋아한다고 말하기는 뭐한 청년들이 일종의 우회로처럼 힙합과 갱스터랩 보컬에 메탈 사운드를 입힌 대안적 형태로 인기를 얻었다고 해도 빈 말은 아니다. 그리고, 에미넴의 부상으로 힙합이 완전히 메인스트림에 올라서는 시기에 발 맞추어 거짓말처럼 힘이 빠지면서 랩 메탈을 하던 수많은 밴드들은 소수 엘리트 외엔 모두 쓸려나가버렸다.
[17]
사실 이 대회도 딸 헤일리의 분유, 기저귀 값을 벌기 위해 나갔으며, 2위를 한것도 결승에서 상대의 랩이 끝난 후 에미넴의 차례가 되자 상대가 무대 뒤로 들어가버려 배틀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그 상대는 그런 부정행위를 해놓고는 우승을 가져갔다.
[18]
"
Without Me" 中 "20 million other white rappers emerge, but no matter how many fish in the sea it'll be so empty without me"
[19]
여담으로 프로레슬러
존 시나가 이러한 힙합에서의 인종 갈등 완화를 계기로 의도치 않게 큰 인기를 얻은 바가 있다. 존 시나가 활동 초창기 시절 때 백인 래퍼 기믹(일명 Word Life 또는 Doctor of Thuganomics)으로 활동을 했었는데, 힙합에서의 인종 갈등이 점차 완화됨에 따라 흑인들이 백인 래퍼 기믹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존 시나도 흑백을 아우르는 인기 스타가 될 수가 있었다.
[20]
에미넴이 최전성기에서 조금씩 내려오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이 시점까지 에미넴의 실력 근처라도 가본 백인 래퍼가 전무하다. 물론 뛰어난 백인 래퍼들이 없는건 아니지만 에미넴과 비교될만한 래퍼는 아직까지도 단 한 명조차 없는게 현실이다.
[21]
에미넴도 이에 매우 불쾌함을 표하며 가사에 담아내기도 했다.
[22]
사실 염색이다.
[23]
하지만 에미넴의 데뷔 초반에는 대중들이 잘먹고 잘사는 중산층 가정에 태어나 대학까지 멀쩡히 다니고도 "빈민가에 살며 흑인들에게 랩을 배웠다"라고 거짓말했던 선배 백인 래퍼
바닐라 아이스처럼 그도 마찬가지로 콘셉트를 위한 거짓말이 아닐까하는 대중의 의심을 받기도 했다.
[24]
투팍의 어머니에게 손편지와 직접 그린 그림을 보내기도 하였다.
#
[25]
90년대 동부 힙합을 이끌었던 거목 중 한 명.
메소드 맨과의 듀오 활동으로도 유명하다. 에미넴이 가장 좋아하는 래퍼 중 한명으로, 얼마나 존경했으면 두번이나 적었다 에미넴과 "Off The Wall"이라는 곡을 같이 작업한 적이 있으며, 에미넴이 언더그라운드 래퍼로서 활동하던 시절에는 레드맨의 노래를 샘플링해
Slim Shady EP의 수록곡인 "Low Down, Dirty"의 훅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도 친분이 깊은 사이며, 구글에 이미지 검색을 해보면 같이 찍은 사진이 꽤나 나오는 편이다.
[26]
힙합 그룹 Naughty By Nature에 소속된 래퍼. 상술했다시피 에미넴의 랩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래퍼다.
[27]
당시 에미넴과 갈등을 겪던 로드 자말 (Lord Jamar). 유명 그룹 Brand Nubian에 소속되어 있는 힙합계에서 생각보다 보기 드문 흑인 우월주의 래퍼로 유명하며, 백인들이 힙합을 한다는 것 자체에 반감을 드는 인물이다.
카미카제가 발매된 당시에 에미넴에게 비난의 목소리를 자주 한 적이 있다.
[28]
특히
홉신은 자신이 언급되는 벌스를 틀며 상당히 기뻐하는 모습을 인스타에 올리기도 했다.
#
[29]
위에 언급된
Kool G Rap과 같이 Kool G. Rap & DJ Polo로 활동한 DJ.
[30]
KRS-One, DJ Scott La Rock, D-Nice가 1986년에 결성한 힙합 그룹. 데뷔 앨범인
Criminal Minded가 발매되고 5개월 후에 DJ Scott La Rock이 불의의 총격사고로 사망한 후 KRS-One이 그룹을 이끌며 활동을 이어오다가 1992년에 해체됐다.
[31]
위에 언급된
라킴과 같이 Eric B. & Rakim으로 활동한 DJ.
[32]
Reggie (
Redman의 본명),
JAY-Z,
투팍 샤커 and
노토리어스 B.I.G.,
André 3000 from
아웃캐스트,
Jadakiss, Kurupt,
Nas
[33]
라킴,
버스타 라임즈, Lakim Shabazz,
투팍 샤커,
N.W.A,
아이스 큐브, hey,
닥터 드레,
MC 렌, Yella,
Eazy-E
[34]
DMX, Stezo E, Nipsey Hussle, MC Ecstasy, Prince Markie Dee,
MF DOOM,
50 센트,
빅 대디 케인,
Lil Wayne,
JAY-Z,
닥터 드레,
카니예 웨스트,
Drake,
J Dilla,
Jadakiss,
LL Cool J, Ras Kass,
Nas, EPMD
[35]
에미넴의 정규 10집
Kamikaze의 앨범 아트는 비스티보이스의
Licensed to Ill의 앨범커버를 오마주한 것이다.
[36]
상술한 빅 대디 케인, 쿨지랩 등과 함께 주스 크루라는 뉴욕의 힙합 크루에서 활동했던 래퍼. 에미넴과는 "Hellbound"
#라는 곡에서 딱 한번 공동작업을 한적이 있는데, 이 곡의 비트는
소울 칼리버의 OST "Sacrifice"를 샘플링 한 것이다.
원곡
[37]
자기가 생각하기에 가장 저평가된 MC라고 한다.
#
[38]
통용의 영역이 세대 불문하고 사회 전반에 퍼졌을 경우에 관용이 되는데, 이것에 도달할 경우 본토 발음과는 상관없이 실제 언중들이 많이 사용하는 표기가 표준이 된다.(예: 원칙대로라면 '유세인 볼트'라고 쓰는 게 맞은
우사인 볼트) 단,
일본어와
중국어같이 그 언어에서 쓰는 글자와 한글의 대조표가 있을 경우는 제외. 국립국어원은 그 당시에 '에미넴'이라는 표기가 '관용'으로 인정될 만큼 대중적이지 않은 표기로 판단한 것 같다.
[39]
이 표기가 정해진 시기는
2004년인데, 그때의 근거가 된 자료를 전혀 찾을 수 없었다고 답변했다. 참고로 1년 전인
2003년에 개봉한
8 마일의 영화 포스터를 자세히 보면 알 수 있듯이, 당시까지만 해도 '에미넘'이 아닌
[40]
펀칭은 녹음 중 마음에 들지 않거나 실수를 한 파트를 제거한 뒤 해당 파트만 따로 녹음해서 중간에 삽입하는 기술을 말한다.
[41]
이후로는 캉골 군모와 카고 바지를 많이 입고 다니며, 투어 할 때는 카고 칠부바지를 주로 입었다. 2018년부터는 나이키 조거 팬츠를 자주 입기 시작했다.
[42]
2018년부터는 금시계를 차고 다닌다.
[43]
왼쪽이 에미넴, 오른쪽이 닥터 드레이다. 이 뮤직비디오에서 닥터 드레는 사고로 인한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다.
[44]
평소 동경한 건 아니고, 평소 작업을 함께 하고 싶었던 래퍼라고 한다. 릴 웨인은 에미넴이 하도 같이 작업을 안 해주자 인터뷰에서 제발 밖으로 나와 같이 작업하자고 코멘트를 날렸다. 뒤에 "난 너한테 안되니깐 날 디스하진 말고"라는 멘트를 덧붙힌건 덤. 이후 같이 작업을 3번이나 했다. 2009년
칸예,
드레이크와 함께한 "
Forever", 2010년 릴 웨인의 "
Rebirth"의 트랙 Drop The World, 에미넴의
Recovery의 트랙 "
No Love"에 서로 피쳐링.
[45]
리아나 뒤에서 피아노 치고 있는 사람이다. 화면에 잡히질 않아서 이 영상이 올라올 때면 항상 그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는다.
[46]
과거 BME 시절 로이스와 함께 페이스북 라이브 스트림을 하면서 QnA를 해준 적이 있었다. 이때 계속 장난치고 드립 치면서 유쾌하게 놀았지만 웃음이 나올 때마다 카메라에 안 잡히게 아래 쪽으로 숙여서 웃었다. 웃음을 의도적으로 안 보여주는 거 같은데 팬들은 상당히 아쉬워하는 중. 질문: 로이스와 에미넴의 냉장고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에미넴: 죽은 애기들.
로이스: ㅋㅋㅋㅋㅋㅋㅋ 질문: BME(Bad Meets Evil, 에미넴과 로이스의 듀오)가 할 수 있는 요리에는 무엇이 있나요? 에미넴: 시리얼이요. 전자레인지로.
[47]
영상에는
1997년이라 되어있는데 실제론
1999년이다.
[48]
그룹 이름의 뜻은 말 그대로 도축장. 여타 MC들을 랩으로 발라준다는 의미로 보인다.
[49]
후에 로이스가 인터뷰에서 밝힌 바로는 이 사건 이 후 에미넴과의 연락과 교류가 없어 자연스레 사이가 멀어졌을뿐, 에미넴 개인과의 사이에 나쁜 일이 일어난 건 아니라고 했다.
[50]
Bad가 로이스, Evil이 에미넴이다.
[51]
슬림 셰이디가 다시 돌아와서 바꾼 것이라 한다. 초창기부터 Encore 앨범까지 유지됐던 Slim Shady 컨셉과 금발머리가 2009년 복귀 이후 사라졌고 2014년 공개된 "
Guts Over Fear"에서 Slim Shady를 '성난 금발의 전설'이라고 표현을 한 걸 보면 금발이 슬림 셰이디로서의 자아를 표현하는 듯하다.
[52]
사실
에미넴에 영향을 받지 않은 현 시대의 정통파 래퍼는 전무하다고 봐도 될 정도이지만, 어쨌듯 켄드릭 라마에게 큰 영향을 준 래퍼들 중 하나로 최우선적으로 꼽힌다.
[53]
참고로 이 시점에서 켄드릭 라마는 힙합 역사를 통틀어도 최상급의 앨범이라 평가받는
good kid, m.A.A.d city,
To Pimp A Butterfly를 냈다. 자신감을 내비칠만도 한데도 에미넴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에미넴의 위상과 켄드릭의 리스펙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54]
Revival 발매 직전 홍보 방식이 굉장히 독특했는데 가짜 약 회사 사이트를 만듦으로써 팬들에게 떡밥을 던졌다. 회사 번호로 전화해보면 "I Need A Doctor"의 멜로디가 나오기도 하고 광고에는 "Lose Yourself"의 가사가 나왔다.
[55]
참고로 에미넴의 첫 매니저는 마크 켐프(Marc Kempf)로, 1996년 정규 1집
Infinite의 홍보와 1997년 '97 Scramble Jam 대회 참여, 1997년 랩 올림픽 참가와
Slim Shady EP의 앨범 커버 제작 등 에미넴에게 많은 도움을 줬으나 97년 10월 24일 위의 1997년 랩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에미넴에게 버거킹의 햄버거인
와퍼를 쿨하게 사주며 폴이 매니저로 교체된다.
[56]
참고로 폴이 해당 발언을 한 후 에미넴이 "나도 얘가 "와, 세상에서 제일 멋진 매니저가 되겠는걸?"이라고 느끼진 않았어."라고 맞받아쳤다.
[57]
실제로
JAY-Z가 레터맨쇼에 출연하여 에미넴에 대해 'Notorious non-tourer(악명 높은 투어 미실행자)'라고 표현하였다.
[58]
Nigga는 흑인들 사이에서는 새끼 정도로 통칭되는 말로, 흑인이 백인한테 nigga라고 말하는 건 진짜 친하거나 서로 존중하는 사이가 아니고서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힙합계에서 대부라고 불리는 스눕 독이 에미넴한테 nigga라고 명칭한 것은 스눕 독 역시 에미넴을 진정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소리.
[59]
디트로이트는 에미넴이 인간으로서, 래퍼로서 성장한 곳이다. 출생지는 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주리 주 세인트조지프지만, 이곳에서 태어난 이후 5세 때 디트로이트에 정착할 때까지 이곳저곳에서 떠돌다시피 해서 키워졌기 때문에 별다른 의미가 없다.
[60]
에미넴은 글씨도 왼손으로 쓰는 왼손잡이인데, 글을 좌에서 우로 쓰는 영어 특성 상 왼손잡이는 악필이 될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그런데도 웬만한 오른손잡이들보다 명필인 것이다.
[61]
Space Bound 참고.
[62]
Not Afraid 브릿지 부분.
[63]
Kim 참고. 다만 이는 비명이라는 점을 고려하자.
[64]
해당 소년은 에미넴과 만난 후 이튿날 오전에 세상을 떴다고 한다.
[65]
무대 위에서 라이브를 할때 호흡이 딸릴 수 있는 부분(주로 마디의 끝 단어)을 불러주거나 추임새를 넣어주는 행위.
[66]
로직의 초창기 랩 스타일을 보면 에미넴과 매우 흡사하게 들린다.
Logic - RapMan 그 정도로 에미넴을 존경하고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말.
[67]
하지만 얼마 안 가 다시 언팔을 했기에 샤라웃 차원으로 팔로우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68]
Yoke The Joker가 수록된 2집으로 추정된다.
[69]
다만 에미넴이 힙합씬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며 수많은 디스전을 거쳐온 인물인만큼, 악플에 대해 매우 재치있는 반응을 보여줄 때가 많다. SNS 악플과 관련된 여담으로 2018년 Coachella에서 공연을 할때 지미 키멜 쇼 이벤트를 한 적이 있다. 바로 악플 읽기 이벤트였는데, 트위터에서 에미넴을 향해 "2003년 이후로 널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안티팬이 올린 글을 에미넴이 읽어보는 기회를 가졌다. 이에 대해서 에미넴은 "이 말도 일리가 있어!"라고 하며 재치있게 반응했다. 거기다 악플의 문법이 틀리게 작성되어서 에미넴이 철자 제대로 좀 알아라고 악플러에게 한방 먹인 것은 덤이다. 이 다음 날에도 Coachella에서 라이브를 했는데 여기선 또 새로운 악플을 읽어보았다. "Coachella를 폐막하기엔 에미넴은 적절한 인물이 아니다."라는 글이었는데 이에 대해 에미넴은 관중들에게 Fuck you, bitch를 외치도록 시켰다.
[70]
품명은 Cotton Army Cap 9720BC. 가격대는 한화로 최소 4만원 정도로 에미넴의 검소함을 알 수 있다.
[71]
2위는 "
Kill You", 3위는 "
The Real Slim Shady"
[72]
헤일리를 학교에 보내려고 일찍 잤다고 한다. 수상 소식은 TV가 아니라 동료의 전화로 알게 되었다고.
[73]
당시 시상식 이름 'Mnet 영상음악대상-Mnet MusicVideo Festival (MMF)'
[74]
프로레슬링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한테는 '핵주먹'이라는 별명과 함께 복싱 선수로만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프로레슬링 업계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끼친 인물이다. 이미 전세계적으로 유명했던 타이슨이
WWE(당시 WWF)에 직접 출연한다는 것 자체가 화제가 되면서 프로레슬링에 관심이 없던 일반인들도 자연스럽게 WWE를 시청하기 시작했고, 이런 상황 속에서
스티브 오스틴과의 신경전 및 난투극,
레슬매니아 14의 메인 이벤트인
스티브 오스틴 vs
숀 마이클스 경기에서 숀 마이클스 측의 특별집행관 역할로 등장했다가 마지막에 배신을 하여 스티브 오스틴이 생애 첫
WWF 챔피언에 등극하는데 일조하는 등 여러 인상 깊은 순간들을 만들어내며 WWE의 인기가 급상승하는 기폭제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 출연 자체는 단발성으로 끝이 났지만 이러한 활약 덕분에 WWE의 최고 전성기인
애티튜드 시대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빼놓을 수가 없는 인물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이후 공로를 인정받아
WWE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됐다.
[75]
MMLP 시리즈의 앨범커버를 장식한 것으로 유명하다.
[76]
물론 리버럴로 보인다는 것도 언제 에미넴이 리버럴을 디스할 지 모르기 때문에 확신할 수는 없지만 반 인종차별 운동의 선두주자격 인물이며, 공백기 이후에는 리버럴 성향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다만 성향만 그럴 뿐 조 바이든 이전에는 민주당 정치인을 지지한 적이 없으며 다 디스했고 조 바이든도 도널드 트럼프가 너무 싫어서 지지한 것에 가깝다. 그러나 사우스 파크가 모두까기이면서 신좌파 세력을 더 많이 비난하는 것처럼 에미넴도 보수 성향 정치인들을 더 많이 디스하기는 했다.
[77]
심지어 이는 역대 메타크리틱 유저스코어에서 상위권에 위치한다.
[78]
흰색 베이스, 레드 라인과 텅에 에미넴 로고, 후면에 'Hi, My name is Slim Shady'라는 러버 와펜이 있다.
[79]
그래미 어워즈에서 수상을 하기 위해서는 아티스트 측이 그래미 측에 따로 심사 신청을 해야된다.
[80]
잘자 시발놈들.
[81]
뒤에 있는 염소 사진은
GOAT (Greatest Of All Time)의 의미로 놓은 것이다.
[82]
5년 전 노래다.
[83]
해킹설, 노래 자축설, 에미넴 또는 지인의 장난 등등...
[84]
켄드릭과 에미넴은
MMLP2의 "Love Game" 이후 첫 협업이다.
[85]
출처
[86]
리리컬 레모네이드의 창업자이자 뮤직비디오 감독이다.
[87]
M&M은 에미넘의 언더시절의 예명이다.
[88]
Big Sean의 No Favors를 들어보면 왜 이런 평가가 나오는지 알 수 있다.
[89]
드레이크의 싱글 'Forever'에서는 그 당시 가장 핫하던
드레이크,
카니예 웨스트,
릴 웨인을 모두 압도하는 래핑을 보여주었고 이후에도 'No Love'나 'Love Game', 'Kings Never Die' 등 다른 방식으로 최고의 래핑을 보여주는 곡들도 적지 않다. 특히 'No Love'는 에미넴 커리어 사상 최고의 벌스 중 하나라는 말을 들을 만큼 높은 평을 받기도 했다. 오히려 랩 테크닉과 작사 실력만큼은 과거보다도 더 발전했다는 평가도 있을 정도다.
[90]
이것이 좋은 방향으로 이루어진다면 유니크하고 박진감 넘치는 비트가 될 수 있지만 자칫하면 과하게 들릴 수도 있고 랩의 리듬 자체를 망가뜨리는 악효과를 낳을 수가 있는데 과거의 에미넴은 록 사운드를 최대한 살리되 이러한 단점들은 최소화해서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