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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4 20:32:05

에미넴/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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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헤일리 J. S. 매더스 · 프루프 · 로이스 다 파이브 나인 · 비자르
기타 여담 · 디스 · 8 마일(영화) · The Slim Shady Show · 롤링 스톤 선정 에미넴의 50대 명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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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외모
2.1. 동안
3. 목소리4. 인종5. 샤라웃6. 표기7. 기타

1. 개요

에미넴의 여담에 대해 정리한 문서.

2. 외모

파일:에미넴 퍽큐.jpg
파일:에미넴 리즈 시절.jpg
파일:Eminem 8 Mile.gif
매우 잘생긴 외모로 유명하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정갈한 미남이라는 평가가 많다. 특히 금발로 염색하고 다니던 시절이 유독 그러한 모습이 더욱 돋보여서 특유의 미친 똘끼를 자랑함에도 그의 출중한 실력과 잘생긴 얼굴을 보고 입덕한 여성팬들이 굉장히 많다.

2.1. 동안

파일:eminem-never-changes.jpg
윗 사진의 모습은 1990년도 고등학생 시절인 만 18세 때의 모습이고, 아래 사진의 모습은 2013년도 만 41세 당시 촬영된 " Berzerk" 뮤직 비디오의 모습이다.

에미넴은 미국 연예계를 통틀어서도 손꼽히는 동안으로 매우 유명하다.[1] 구글에 "Eminem 1999 vs"라고 검색 하여도 1999년의 에미넴의 모습과 비교하는 사진 이미지가 많다.

2013년도에 발매된 The Marshall Mathers LP2의 프로모 싱글인 " The Monster"의 뮤직비디오는 이러한 에미넴의 동안 속성을 이용해서 촬영 한 걸로도 유명하다.
파일:eminem-2002.jpg
파일:eminem_the_monster.jpg
2002년 2013년
" Lose Yourself"의 뮤직비디오와 " The Monster"의 뮤직 비디오.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10여 년이라는 세월의 흔적이 아예 없다.

이외에도 " The Monster"에서 에미넴은 1999년에 발매된 The Slim Shady LP의 " My Name Is", 2000년에 발매된 The Marshall Mathers LP의 " The Way I Am"과 " Stan (2001 Grammy Live Ver.)"을 똑같이 재현하는데 성공을 한다. 특히 Stan의 그래미 라이브 부분은 보다 보면 오히려 위화감이 느껴질 정도로 완벽히 재현해내는데 성공했다. 다만 " My Name Is" 부분을 보면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기도 한다.

파일:external/i.dailymail.co.uk/1415317231895_Image_galleryImage_NEW_YORK_NY_NOVEMBER_05_E.jpg
2014년부터 노화의 조짐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기도 하였다.

파일:3969a7cb9c4010c9c20ba62a650056e7.jpg
[2][3]

유튜브 댓글에는 가끔씩 "신은 절대 늙지 않는다.", "로봇 아니냐." 라는 댓글이 올라온다. 그만큼 에미넴이 동안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동안은 에미넴이 첫 메이저 데뷔를 했던 1998년[4] 때부터 있었다. 에미넴이 첫 메이저 데뷔를 했을 때 나이가 25세[5]이었는데 주름 하나 없는 앳된 외모 때문에 20대 초반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약 20년 전에도 액면가에 비해 어려보이는 외모였는데, 이러한 외모를 오랫동안 유지했었다.

하지만 2017년 6월부터 수염을 기르기 시작해서 아시아에서는 동안의 이미지가 많이 없어졌다. 하지만 서양에서는 원래 수염을 기르는 사람이 많기도 하고 여전히 젊어보인다는 반응이 다수다. 그러다가 2021년에 Gnat Higher의 뮤직 비디오를 보면 알 수 있듯, 갑자기 평소보다 수염을 엄청 길러버리고[6] 살도 약간 쪘다 보니 이전만은 못하다는 얘기도 조금씩 나오기 시작한다.

그후 몇달 뒤 셰이디 레코즈에 그립스라는 래퍼를 영입하며 같이 사진을 찍었는데, 수염이 다시 좀 짧아진 채로 사진이 찍혔다. 후에 c.d.o.c라는 인스타그램 계정에도 여전히 엄청난 동안을 유지하며 짧아진 수염 길이를 유지하는 사진이 찍혔다. #

2020년대 기준으로는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다보니[7] 예전처럼 1999년과 거의 차이가 없는 수준은 아니다. 그래도 1972년생으로는 전혀 볼 수 없는 수준.

3. 목소리

에미넴의 메이저 데뷔 초 1998~ 목소리는 남성 목소리의 발성법 중 하나인 테너 중에서도 상당히 높은 축에 속하는 목소리이다. 하지만 이는 에미넴 본연의 목소리가 아닌 인위로 소리가 빠져나갈 구멍을 좁혀서 높게 만드는 것이고 이로 인해 특유의 앵앵거림과 허스키하고 유니크한 목소리가 나는 것이다. 이는 성대에 엄청나게 부담을 주는 발성법인데, 앵앵거림으로 성대의 마찰이 점점 거칠게 되어 금방 목이 쉬어 버리고 심하면 성대에 변형이 생길 수 있다. 에미넴도 이 때문에 2000년 전후로 목소리가 깊어진 것이다. 실제로 1999년도 당시의 인터뷰를 여럿 들어보면 지금보다는 하이톤이기는 하지만 평소 말할 때에는 본연의 목소리로 소리를 내 앵앵거리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2002년 초중반 8 마일의 촬영과 동시에 정규 4집인 The Eminem Show의 제작으로 보컬 트레이닝을 받았지만 목소리의 질만 좋아질 뿐 성대를 갈아 마시는 창법은 여전했다. 그에 추가로 8 마일의 촬영으로[8] 심한 불면증에 시달리게 되었고 이로 인해 약물 중독에 빠지면서 목소리가 완전 바뀌었다. Encore 시절부터 점점 변하는 걸 느낄 수 있고, Eminem Presents: The Re-Up에 수록된 You Don't Know를 들어보면 심각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목소리가 안 좋아진 것을 들을 수 있으며, 약물 중독 치료 후 발매한 Relapse에서는 그나마 나은 톤이 되었지만 과한 악센트를 가지고 있었으며 Recovery 쯤부터 지금의 정돈된 톤을 가지게 되었고 이 때쯤부터 랩을 할 때 지르는 느낌의 플로우로 바뀌었다. Revival부터는 나이 때문에 목소리가 계속 바뀌는 것으로 보인다. 12집 The Death of Slim Shady (Coup De Grâce)에서는 약물 중독 전 목소리와 현재 목소리를 번갈아가며 쓰기도 했다.
2014년[9] 2020년[10]
물론 한동안 자신이 사용했던 발성법이었다보니 목소리가 완전히 바뀐 뒤에도 본인이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당시의 목소리를 비슷하게 낼 수 있다는 것을 들려주기도 한다.

4. 인종

"If Em was black, he'd be the next Muhammad Ali"
"에미넴이 흑인이었다면, 그는 제2의 무하마드 알리가 되었을 것이다"
라킴 인터뷰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래퍼[11]로 평가받지만, 간혹 " 백인이라서 떴다"는 주장도 나오곤 한다. 에미넴 본인도 MTV에서 '내 피부색 때문에 더 뜬 것도 없지 않아 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긴 하다. " White America"라는 곡에도 "계산해보자고. 내가 흑인이었다면 내 앨범 판매량은 반토막 났을걸."[12]이라는 가사가 있다. 하지만 이후 평가에 대한 그의 생각은 2023년 Realest에서 드러나는데, 자신이 백인이기 때문에 역대 5위 안에 들어가는게 아니라, 백인이기 때문에 역대 1위로 꼽히지 않는 것이라며 촌철살인의 말을 한다.[13] '흑인 문화'에서 역대 최고 중 하나로 평가받음과 동시에, 일부에게는 그저 이방인 취급을 받는 등 크고 작은 공격들을 끊임없이 받아왔고 이는 그에게 백인버프는 커녕 정반대로 작용하고 있다. 에미넴은 이미 켄드릭 라마, 제이 콜, 빅 션 등을 포함한 수많은 래퍼들에게 영향을 끼쳤으며, 라킴, , 50센트 등 여러 거장들도 에미넴을 역대 최고로 꼽은 적이 있다.

에미넴이 랩을 하기 시작했을 때는 현재와 달리 백인이 힙합을 한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나빴다. 에미넴 이전 세대의 힙합은 흑인만의 고유문화와 같았고, 특히 이시기 힙합의 트렌드는 인종차별에 대한 불만을 랩으로 터뜨리던 갱스터 힙합이 언더그라운드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던 때다. 그래서 바닐라 아이스같은 에미넴 이전 백인 래퍼는 흑인들에게는 매우 모욕적인 존재였고, 이를 따라하는 백인 청소년들까지 똑같은 취급을 받았다.[14] 엘비스 프레슬리 마이클 잭슨같이 이미 인종의 벽을 뛰어넘은 아티스트들이 있었음에도 힙합은 그 태생적 문제때문에 메인스트림 진입과정에서 인종갈등이 표면화되어 평범한 리스너들까지 인종차별의 벽이 있었고 21세기가 되기 전까지 백인 래퍼는 스타는 커녕 조롱거리에 불과했다.[15][16]

그런데도 불구하고 큰 인기를 누린 것은 에미넴이 백인이라는 이유로 뜬 것이 아니라, 백인인데도 불구하고 흑인 문화인 힙합에서 엄청난 실력이 보여줬기 때문에 그 임팩트를 원동력 삼아 뜬 것이라는 주장이다. 프루프가 말하길, 백인이 랩을 한다며 비웃던 흑인들도 에미넴이 랩을 몇마디 뱉으니 다들 놀랐다고하고, 애초에 밑바닥에서 백인 배틀 래퍼로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살아남았던게 에미넴이다. 또한 뜨기 전에 발매했던 biterphobia, infinite, Just Don't Give a Fuck 등에서 이미 라임이 어지간한 유명 래퍼들보다 뛰어난 수준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에미넴은 1997년 LA 랩 올림픽 대회에서 2위를 차지했다.[17] 그리고 예를 들어 에미넴의 선배이자 백인 래퍼 그룹인 비스티 보이즈만 봐도, 그 당시 그들의 랩에 대한 인식은 '백인은 랩으로 흑인한테 안된다.' 정도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지금이야 그들의 음악적 성과는 인종과 무관하게 확실히 인정을 받고 있지만, 그들이 데뷔를 했을 때만 하더라도 데뷔작인 Licensed to Ill이 힙합 장르 최초로 빌보트 200 차트 1위를 달성하자 흑인들이 반발하며 '저건 힙합이 아니라 록이다!'라는 궤변을 늘어놓기도 했을 정도다. 하지만 에미넴은 백인인데도 불구하고 인지도, 평판, 판매량 등이 압도적인 우위에 있다. 이것은 실력이 뒷받침이 되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에미넴이 힙합에 몸을 담기 시작했을 때는 피부색이 그에게 큰 페널티였으나, 실력으로 그 한계를 극복하고 당대 흑인 래퍼와 리스너들조차 입을 다물게 할만큼 인정받아 닥터 드레라는 거물이 직접 픽업해 데뷔를 한 후에는 누구도 그에게 피부색만 보고 제2의 바닐라 아이스같은 조롱 따위를 할 수 없었고 피부색이 오히려 그에게 힙합씬의 독보적인 캐릭터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해줬다고 볼 수 있다. 한 마디로 실력이 좋지 않았으면 백인이라는 요소가 더욱 단점이 됐지, 장점이 되지는 못했을 거라는 얘기다. 실제로 본인도 백인 래퍼들이 얼마나 많은지는 관계없이 본인이 없으면 허전할 것이라는 가사를 썼다.[18] 이렇게 따지고 보면 오히려 힙합 씬에서의 '백인 버프'라는 건 에미넴의 등장으로 인해 생겨났다는 것. 달리 말해 에미넴이 힙합계에서 인종의 장벽을 깨부순 개척자라는 평가다.[19] 현 세대에서 어느정도 인지도가 있는 백인 래퍼들도 이러한 에미넴의 등장이 없었다면 크게 주목받기 힘들었을 거라는 주장들이 많다.[20] 그리고 에미넴은 후배 백인 래퍼들에게 레퍼런스가 되어, 힙합계에서 인정받기 위해 비교되어야 할 거대한 이정표가 되었다.

에미넴의 힙합계에 한 획을 긋고, 역대 최고의 래퍼 중 하나로 인정받은 후에, 일부는 에미넴을 역대 최고로 보기도 하는데, 여기서 오히려 역차별이 발생한다. 흑인의 문화였던 힙합에서 에미넴을 그저 '게스트' 취급하고, 이방인 취급하는 부류.[21] 에미넴의 실력과 영향력을 생각해봤을때 그가 오히려 흑인이었다면 무조건 역대 최고로 꼽혔을 거라는 주장도 적지 않다.

결과적으로는 엘비스 프레슬리가 그러했듯, 사실 흑백을 가리지 않고 90년대 말쯤에는 이미 청년들 사이에서 대세였던 힙합과 갱스터 랩 씬에 마지막으로 필요했던 아티스트가 흑백을 아우를 슈퍼스타였는데 에미넴은 백인에, 금발에[22], 벽안에, 샤프한 외모, 그 당시 힙합계의 부족한 점을 시원하게 긁어준 '슈퍼 루키'였다. 게다가 닥터 드레의 프로듀싱이라는 시너지, 그리고 후에 밝혀지기 시작하는 불우한 환경[23], 가사 내용에 대중들의 관심까지 더해지면서 슈퍼스타로 급부상했다. 그리고 에미넴의 메인스트림 진입이후에는 사실상 흑백의 벽이 무너지며 더이상 백인 청소년들이 힙합 듣는다고 흑인들에게 찐따소리 듣는 일도 없어졌고 힙합은 그렇게 완전히 21세기 초 미국 대중문화를 주름잡는 대세 음악으로 거듭났다.

5. 샤라웃

예전부터 에미넴은 래퍼들의 이름을 자주 언급하였다.

처음 이름들을 언급한 것은 2002년 " Till I Collapse"부터다.
파일:EminemTwitterNoLifeShaq.jpg
트위터에서 No Life Shaq이라는 힙합 리액션 유튜버가 남긴 G.O.A.T.는 누구일까?" 라는 트윗에 에미넴이 답글을 남긴 적이 있다. 여기서 에미넴이 언급한 래퍼들을 쭉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000 {{{#!folding 해당 가사 [보기] I belong here, clown, don't tell me 'bout the culture
난 여기 속한다고, 광대 새끼[27]야, 나한테 문화에 대한 얘기는 집어 치워

I inspire the Hopsins, the Logics, the Coles,
홉신, 로직, 제이콜,

the Seans, the K-Dots, the 5'9"s, and oh
빅 션, 켄드릭, 로이스에게 영향을 줬고, 그리고 오,

Brought the world 50 Cent, you did squat, piss and moan
궁지에 몰린 50 센트를 마저 구원해줬지만, 넌 오줌이나 질질 쌌겠지

But I'm not gonna fall... bitch!
하지만 난 추락하지 않을 거야... 등신 새끼야!
}}}}}}

Kamikaze의 수록곡인 Fall에서는 총 7명의 래퍼를 언급하며 샤라웃하기도 했다. 그 목록은 다음과 같다.
{{{#fff {{{#!folding 해당 가사 [보기] Now here's to LL, Big L and Del
K-Solo, Treach, and G Rap
DJ Polo, Tony D, ODB, Moe Dee, Run-DMC
Ed O.G., and EPMD, D.O.C., Ice-T, Evil Dee
King Tee, UTFO, and Schoolly D, PE, and BDP
YZ and Chi-Ali, Rakim and Eric B., they were like my therapy
From B.I.G. and Paris, Three Times Dope, and some we'll never see, and PRT
N.W.A and Eazy-E, and D-R-E was like my GPS
Without him, I don't know where I'd be
}}}}}}
이후 MTBMB의 수록곡인 Yah Yah에서도 총 30명의 래퍼 및 그룹을 언급하며 샤라웃한다. 그 중 위에 언급된 래퍼들을 제외하면 다음과 같다.
이 외에도 " Till I Collapse"[32], " Rap God"[33], " EPMD 2"[34] 등의 노래에서 힙합의 레전드들을 샤라웃하는 가사를 들을 수 있으며, 비스티 보이스[35], Masta Ace[36], Pharoahe Monch[37]를 존경한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서는 자신에게 영감을 준 8~90년대 래퍼들을 일일이 나열하면서 마지막에는 "이 분들이 없었다면 자신은 물론 현재의 힙합도 없었다"는 식으로 말하며 레전드들에 대한 리스펙을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6. 표기

외래어 표기법에 맞춘 표기는 '에미'인데, 이것은 국내 언중들 사이의 통용은 물론이고[38], 유래에 근거한 본토 발음조차도 무시한 표기기 때문에 가끔 나오는 지상파 뉴스 자막을 통해 이 표기를 알게 된 사람들에게 호된 비판을 받고 있다. 이것은 국립국어원 사이트의 관련 문답에서 답변한 직원조차 간접 시인한[39]'에미넴'으로 표기했었다.] 심각한 문제다. 그 외에도 존 레, 비틀 같이 국립국어원 측이 권고하는 이름 표기와 통용되는 표기가 따로 노는 경우가 엄청 많다.

7. 기타

오른손에 찬 하얀색 시계이다. 이 외에 " Berzerk" 등 여러 뮤직 비디오에서 한정판을 포함한 여러모델을 돌려 착용하는 것을 보면, 수집하거나 카시오에서 협찬을 받는듯 하다. 2013년 말에는 G-Shock 30주년 기념으로 에미넴 한정판이 발매되었다. #
파일:Screenshot_20201015-155110.png * 2009년 MTV 뮤직비디오 시상식에서 천사 날개를 달고 날면서 등장한 사샤 바론 코헨의 불시착으로 인해 그의 엉덩이에 파묻히는 봉변을 당했다. 에미넴은 괴로워했고 이내 빡친 표정으로 자리를 떴지만 사실 다 예정된 퍼포먼스 였다고 밝혀졌다.
한국에서 이러한 짤이 돌아다니고 실제로 에미넴이 이러한 말을 했다는 유언비어가 돌아다니는데, 평소에 자뻑을 절대 안하기로 유명한 에미넴이 실제로 저런 말은커녕 비슷한 뉘앙스의 얘기한적도 없다. 2010년에 Recovery 앨범이 발매했을 때 " Not Afraid" 라이브를 펼친 후 인터뷰어와 대담을 하는 장면이다. 릴웨인 안티팬들이 에미넴의 " Rap God"이 공개되자 그냥 캡처본에 자막을 넣었을 뿐이다.
에미넴이 가장 처음으로 낸 앨범은 언더시절 속해있었던 그룹 Soul Intent가 낸 Steppin' On To The Scene이다. 발매일은 1990년 3월 3일. 커버를 보면 알겠지만 카세트테이프 형식이다.
에미넴의 데뷔 싱글은 " Just Don't Give A Fuck"이다. 발매일은 1998년 10월 13일.
파일:맘스 스파게티.jpg * 2020년 4월 21일, 코로나 바이러스로 고통받고 있는 시민들을 위해 자신의 고향 디트로이트의 종합병원에 스파게티를 기부했다. 상표의 이름은 Mom's Spaghetti. 이후 팬들에게서 "나도 한번 먹어보고 싶다."라는 여론이 점점 생기기 시작하였고, 결국 9월 21일에 자신의 고향인 디트로이트에서 상표로 아예 음식점을 열어버린다. 오프라인 영구 매장이며 재미난 썰 또한 많은데, 처음 오픈한 날에는 에미넴이 직접 두 발로 뛰며 서빙도 하고, 팬들과의 사진 촬영 또한 많아서 에미넴의 여러 사진들이 SNS로 돌아다녔는데, 다시 한번 이게 쉰을 바라보는 아저씨가 맞나 싶을 정도의 동안력을 뽐내는 에미넴이 있었다.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올린 광고도 있는데, 구리다는 평이 없지않아 있기는 하다.



[1] 키아누 리브스 톰 크루즈처럼 동안의 대명사가 된 배우들과 비교를 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이다. [2] 상단의 사진은 젊을 적 바리움, 바이코딘과 같은 마약성 약물 중독의 대표적인 후유증 중 하나인 급속 노화로 인한 것이라고 추측됐다. 물론 지금은 절대 마약 같은 것은 하지 않으며, 공연 컨디션을 위해 음주와 담배 흡연조차 하지 않는다. [3] 하단의 사진은 드레이크의 콘서트에 깜짝 등장 후 촬영한 사진이다. 여담으로 이 사진이 촬영되기 전인 2016년 중반에 드레이크가 에미넴의 소속사인 'Shady Records'의 소속 래퍼 조 버든과 디스전을 펼쳤고, 드레이크가 이 디스전에 관한 인터뷰를 하던 중 에미넴이 오더라도 자신있다는 뉘앙스의 대답을 한 적이 있어서 리스너들이 드레이크와 에미넴 사이에 디스전이 일어나는게 아니냐는 호들갑을 떨기도 했었다. 물론 드레이크가 에미넴한테 악감정이 있어서 그런 것은 당연히 아니고, 그 정도로 당시 디스전에 자신이 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한 답변일 뿐이었다. 그리고 애초에 둘의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닌데, 드레이크가 본인 콘서트에 에미넴을 초대하고 그를 ' Greatest of All Time'이라고 칭했으며 에미넴 또한 Kamikaze에서 드레이크를 디스했다는 의혹이 돌았을 때 드레이크가 딸들에게 좋은 일을 해 주었기 때문에 그를 디스할 일은 없다고 해명한 적도 있다. [4] SSLP 수록곡인 Just Don't Give A Fuck이 1998년에 싱글로 발매되어 었다. [5] 싱글 자체는 생일 4일 전인 25세 때 발매 되었지만 본격적인 인기를 얻고 얼굴이 알려지기 시작한 시기는 1999년 " My Name Is" 이후이기에 26세로 보아도 무방하다. [6] 한 팬이 수염을 언제 미냐고 물어보자 "내가 왜?"라고 답했다는 일화도 있다. [7] 2023년 기준 51세가 된다. [8] 하루에 14시간 정도 연기를 하고 잠은 컷 중간 중간에 쪽잠을 잤다고 한다. [9] 28초부터 [10] 40초부터 [11] 힙합 역사상 가장 많은 음반을 판매했다. [12] "Let's do the math. If I was black, I could sold half." [13] 실제로 백인 버프는 커녕 반대로 백인이기 때문에 저평가된다는 평가도 많고, 여러 OG 래퍼들이 언급하기도 했다. 흑인들에게 힙합은 오래 전부터 소중한 문화이자 전유물로 여겨졌기에, 백인이 최정상에 오르는걸 좋게 보지 않는 시선이 생각보다 많다. 벤지노나 더 게임 등이 계속 에미넴을 까내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14] 이 시절 힙합문화를 어설프게 심취하던 찐따 백인 청소년들의 인식이 어땠는지를 보여주던 당시 히트곡이 있다. 백인 펑크밴드 The Offspring의 1998년 Americana 앨범 수록곡 Pretty Fly (For A White Guy)라는 곡인데, 가사 내용이나 뮤직비디오나 아이스 큐브를 몰라서 바닐라 아이스나 듣던 백인 찐따의 꼴이 어떤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15] 정작 그 바닐라 아이스는 문서에도 나오지만 90년대 정통 힙합씬의 흑인 래퍼들이 메인스트림으로 올라오는데 꽤나 중요한 역할을 본의 아니게 했다. [16] 좀 심하게 말하면, 당시의 뉴 메탈, 사실상 랩 메탈은 힙합과 갱스터 랩은 좋아하는데 백인이라 차마 대놓고 좋아한다고 말하기는 뭐한 청년들이 일종의 우회로처럼 힙합과 갱스터랩 보컬에 메탈 사운드를 입힌 대안적 형태로 인기를 얻었다고 해도 빈 말은 아니다. 그리고, 에미넴의 부상으로 힙합이 완전히 메인스트림에 올라서는 시기에 발 맞추어 거짓말처럼 힘이 빠지면서 랩 메탈을 하던 수많은 밴드들은 소수 엘리트 외엔 모두 쓸려나가버렸다. [17] 사실 이 대회도 딸 헤일리의 분유, 기저귀 값을 벌기 위해 나갔으며, 2위를 한것도 결승에서 상대의 랩이 끝난 후 에미넴의 차례가 되자 상대가 무대 뒤로 들어가버려 배틀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그 상대는 그런 부정행위를 해놓고는 우승을 가져갔다. [18] " Without Me" 中 "20 million other white rappers emerge, but no matter how many fish in the sea it'll be so empty without me" [19] 여담으로 프로레슬러 존 시나가 이러한 힙합에서의 인종 갈등 완화를 계기로 의도치 않게 큰 인기를 얻은 바가 있다. 존 시나가 활동 초창기 시절 때 백인 래퍼 기믹(일명 Word Life 또는 Doctor of Thuganomics)으로 활동을 했었는데, 힙합에서의 인종 갈등이 점차 완화됨에 따라 흑인들이 백인 래퍼 기믹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존 시나도 흑백을 아우르는 인기 스타가 될 수가 있었다. [20] 에미넴이 최전성기에서 조금씩 내려오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이 시점까지 에미넴의 실력 근처라도 가본 백인 래퍼가 전무하다. 물론 뛰어난 백인 래퍼들이 없는건 아니지만 에미넴과 비교될만한 래퍼는 아직까지도 단 한 명조차 없는게 현실이다. [21] 에미넴도 이에 매우 불쾌함을 표하며 가사에 담아내기도 했다. [22] 사실 염색이다. [23] 하지만 에미넴의 데뷔 초반에는 대중들이 잘먹고 잘사는 중산층 가정에 태어나 대학까지 멀쩡히 다니고도 "빈민가에 살며 흑인들에게 랩을 배웠다"라고 거짓말했던 선배 백인 래퍼 바닐라 아이스처럼 그도 마찬가지로 콘셉트를 위한 거짓말이 아닐까하는 대중의 의심을 받기도 했다. [24] 투팍의 어머니에게 손편지와 직접 그린 그림을 보내기도 하였다. # [25] 90년대 동부 힙합을 이끌었던 거목 중 한 명. 메소드 맨과의 듀오 활동으로도 유명하다. 에미넴이 가장 좋아하는 래퍼 중 한명으로, 얼마나 존경했으면 두번이나 적었다 에미넴과 "Off The Wall"이라는 곡을 같이 작업한 적이 있으며, 에미넴이 언더그라운드 래퍼로서 활동하던 시절에는 레드맨의 노래를 샘플링해 Slim Shady EP의 수록곡인 "Low Down, Dirty"의 훅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도 친분이 깊은 사이며, 구글에 이미지 검색을 해보면 같이 찍은 사진이 꽤나 나오는 편이다. [26] 힙합 그룹 Naughty By Nature에 소속된 래퍼. 상술했다시피 에미넴의 랩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래퍼다. [27] 당시 에미넴과 갈등을 겪던 로드 자말 (Lord Jamar). 유명 그룹 Brand Nubian에 소속되어 있는 힙합계에서 생각보다 보기 드문 흑인 우월주의 래퍼로 유명하며, 백인들이 힙합을 한다는 것 자체에 반감을 드는 인물이다. 카미카제가 발매된 당시에 에미넴에게 비난의 목소리를 자주 한 적이 있다. [28] 특히 홉신은 자신이 언급되는 벌스를 틀며 상당히 기뻐하는 모습을 인스타에 올리기도 했다. # [29] 위에 언급된 Kool G Rap과 같이 Kool G. Rap & DJ Polo로 활동한 DJ. [30] KRS-One, DJ Scott La Rock, D-Nice가 1986년에 결성한 힙합 그룹. 데뷔 앨범인 Criminal Minded가 발매되고 5개월 후에 DJ Scott La Rock이 불의의 총격사고로 사망한 후 KRS-One이 그룹을 이끌며 활동을 이어오다가 1992년에 해체됐다. [31] 위에 언급된 라킴과 같이 Eric B. & Rakim으로 활동한 DJ. [32] Reggie ( Redman의 본명), JAY-Z, 투팍 샤커 and 노토리어스 B.I.G., André 3000 from 아웃캐스트, Jadakiss, Kurupt, Nas [33] 라킴, 버스타 라임즈, Lakim Shabazz, 투팍 샤커, N.W.A, 아이스 큐브, hey, 닥터 드레, MC 렌, Yella, Eazy-E [34] DMX, Stezo E, Nipsey Hussle, MC Ecstasy, Prince Markie Dee, MF DOOM, 50 센트, 빅 대디 케인, Lil Wayne, JAY-Z, 닥터 드레, 카니예 웨스트, Drake, J Dilla, Jadakiss, LL Cool J, Ras Kass, Nas, EPMD [35] 에미넴의 정규 10집 Kamikaze의 앨범 아트는 비스티보이스의 Licensed to Ill의 앨범커버를 오마주한 것이다. [36] 상술한 빅 대디 케인, 쿨지랩 등과 함께 주스 크루라는 뉴욕의 힙합 크루에서 활동했던 래퍼. 에미넴과는 "Hellbound" #라는 곡에서 딱 한번 공동작업을 한적이 있는데, 이 곡의 비트는 소울 칼리버의 OST "Sacrifice"를 샘플링 한 것이다. 원곡 [37] 자기가 생각하기에 가장 저평가된 MC라고 한다. # [38] 통용의 영역이 세대 불문하고 사회 전반에 퍼졌을 경우에 관용이 되는데, 이것에 도달할 경우 본토 발음과는 상관없이 실제 언중들이 많이 사용하는 표기가 표준이 된다.(예: 원칙대로라면 '유세인 볼트'라고 쓰는 게 맞은 우사인 볼트) 단, 일본어 중국어같이 그 언어에서 쓰는 글자와 한글의 대조표가 있을 경우는 제외. 국립국어원은 그 당시에 '에미넴'이라는 표기가 '관용'으로 인정될 만큼 대중적이지 않은 표기로 판단한 것 같다. [39] 이 표기가 정해진 시기는 2004년인데, 그때의 근거가 된 자료를 전혀 찾을 수 없었다고 답변했다. 참고로 1년 전인 2003년에 개봉한 8 마일의 영화 포스터를 자세히 보면 알 수 있듯이, 당시까지만 해도 '에미넘'이 아닌 [40] 펀칭은 녹음 중 마음에 들지 않거나 실수를 한 파트를 제거한 뒤 해당 파트만 따로 녹음해서 중간에 삽입하는 기술을 말한다. [41] 이후로는 캉골 군모와 카고 바지를 많이 입고 다니며, 투어 할 때는 카고 칠부바지를 주로 입었다. 2018년부터는 나이키 조거 팬츠를 자주 입기 시작했다. [42] 2018년부터는 금시계를 차고 다닌다. [43] 왼쪽이 에미넴, 오른쪽이 닥터 드레이다. 이 뮤직비디오에서 닥터 드레는 사고로 인한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다. [44] 평소 동경한 건 아니고, 평소 작업을 함께 하고 싶었던 래퍼라고 한다. 릴 웨인은 에미넴이 하도 같이 작업을 안 해주자 인터뷰에서 제발 밖으로 나와 같이 작업하자고 코멘트를 날렸다. 뒤에 "난 너한테 안되니깐 날 디스하진 말고"라는 멘트를 덧붙힌건 덤. 이후 같이 작업을 3번이나 했다. 2009년 칸예, 드레이크와 함께한 " Forever", 2010년 릴 웨인의 " Rebirth"의 트랙 Drop The World, 에미넴의 Recovery의 트랙 " No Love"에 서로 피쳐링. [45] 리아나 뒤에서 피아노 치고 있는 사람이다. 화면에 잡히질 않아서 이 영상이 올라올 때면 항상 그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는다. [46] 과거 BME 시절 로이스와 함께 페이스북 라이브 스트림을 하면서 QnA를 해준 적이 있었다. 이때 계속 장난치고 드립 치면서 유쾌하게 놀았지만 웃음이 나올 때마다 카메라에 안 잡히게 아래 쪽으로 숙여서 웃었다. 웃음을 의도적으로 안 보여주는 거 같은데 팬들은 상당히 아쉬워하는 중. 질문: 로이스와 에미넴의 냉장고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에미넴: 죽은 애기들. 로이스: ㅋㅋㅋㅋㅋㅋㅋ 질문: BME(Bad Meets Evil, 에미넴과 로이스의 듀오)가 할 수 있는 요리에는 무엇이 있나요? 에미넴: 시리얼이요. 전자레인지로. [47] 영상에는 1997년이라 되어있는데 실제론 1999년이다. [48] 그룹 이름의 뜻은 말 그대로 도축장. 여타 MC들을 랩으로 발라준다는 의미로 보인다. [49] 후에 로이스가 인터뷰에서 밝힌 바로는 이 사건 이 후 에미넴과의 연락과 교류가 없어 자연스레 사이가 멀어졌을뿐, 에미넴 개인과의 사이에 나쁜 일이 일어난 건 아니라고 했다. [50] Bad가 로이스, Evil이 에미넴이다. [51] 슬림 셰이디가 다시 돌아와서 바꾼 것이라 한다. 초창기부터 Encore 앨범까지 유지됐던 Slim Shady 컨셉과 금발머리가 2009년 복귀 이후 사라졌고 2014년 공개된 " Guts Over Fear"에서 Slim Shady를 '성난 금발의 전설'이라고 표현을 한 걸 보면 금발이 슬림 셰이디로서의 자아를 표현하는 듯하다. [52] 사실 에미넴에 영향을 받지 않은 현 시대의 정통파 래퍼는 전무하다고 봐도 될 정도이지만, 어쨌듯 켄드릭 라마에게 큰 영향을 준 래퍼들 중 하나로 최우선적으로 꼽힌다. [53] 참고로 이 시점에서 켄드릭 라마는 힙합 역사를 통틀어도 최상급의 앨범이라 평가받는 good kid, m.A.A.d city, To Pimp A Butterfly를 냈다. 자신감을 내비칠만도 한데도 에미넴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에미넴의 위상과 켄드릭의 리스펙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54] Revival 발매 직전 홍보 방식이 굉장히 독특했는데 가짜 약 회사 사이트를 만듦으로써 팬들에게 떡밥을 던졌다. 회사 번호로 전화해보면 "I Need A Doctor"의 멜로디가 나오기도 하고 광고에는 "Lose Yourself"의 가사가 나왔다. [55] 참고로 에미넴의 첫 매니저는 마크 켐프(Marc Kempf)로, 1996년 정규 1집 Infinite의 홍보와 1997년 '97 Scramble Jam 대회 참여, 1997년 랩 올림픽 참가와 Slim Shady EP의 앨범 커버 제작 등 에미넴에게 많은 도움을 줬으나 97년 10월 24일 위의 1997년 랩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에미넴에게 버거킹의 햄버거인 와퍼를 쿨하게 사주며 폴이 매니저로 교체된다. [56] 참고로 폴이 해당 발언을 한 후 에미넴이 "나도 얘가 "와, 세상에서 제일 멋진 매니저가 되겠는걸?"이라고 느끼진 않았어."라고 맞받아쳤다. [57] 실제로 JAY-Z가 레터맨쇼에 출연하여 에미넴에 대해 'Notorious non-tourer(악명 높은 투어 미실행자)'라고 표현하였다. [58] Nigga는 흑인들 사이에서는 새끼 정도로 통칭되는 말로, 흑인이 백인한테 nigga라고 말하는 건 진짜 친하거나 서로 존중하는 사이가 아니고서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힙합계에서 대부라고 불리는 스눕 독이 에미넴한테 nigga라고 명칭한 것은 스눕 독 역시 에미넴을 진정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소리. [59] 디트로이트는 에미넴이 인간으로서, 래퍼로서 성장한 곳이다. 출생지는 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주리 주 세인트조지프지만, 이곳에서 태어난 이후 5세 때 디트로이트에 정착할 때까지 이곳저곳에서 떠돌다시피 해서 키워졌기 때문에 별다른 의미가 없다. [60] 에미넴은 글씨도 왼손으로 쓰는 왼손잡이인데, 글을 좌에서 우로 쓰는 영어 특성 상 왼손잡이는 악필이 될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그런데도 웬만한 오른손잡이들보다 명필인 것이다. [61] Space Bound 참고. [62] Not Afraid 브릿지 부분. [63] Kim 참고. 다만 이는 비명이라는 점을 고려하자. [64] 해당 소년은 에미넴과 만난 후 이튿날 오전에 세상을 떴다고 한다. [65] 무대 위에서 라이브를 할때 호흡이 딸릴 수 있는 부분(주로 마디의 끝 단어)을 불러주거나 추임새를 넣어주는 행위. [66] 로직의 초창기 랩 스타일을 보면 에미넴과 매우 흡사하게 들린다. Logic - RapMan 그 정도로 에미넴을 존경하고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말. [67] 하지만 얼마 안 가 다시 언팔을 했기에 샤라웃 차원으로 팔로우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68] Yoke The Joker가 수록된 2집으로 추정된다. [69] 다만 에미넴이 힙합씬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며 수많은 디스전을 거쳐온 인물인만큼, 악플에 대해 매우 재치있는 반응을 보여줄 때가 많다. SNS 악플과 관련된 여담으로 2018년 Coachella에서 공연을 할때 지미 키멜 쇼 이벤트를 한 적이 있다. 바로 악플 읽기 이벤트였는데, 트위터에서 에미넴을 향해 "2003년 이후로 널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안티팬이 올린 글을 에미넴이 읽어보는 기회를 가졌다. 이에 대해서 에미넴은 "이 말도 일리가 있어!"라고 하며 재치있게 반응했다. 거기다 악플의 문법이 틀리게 작성되어서 에미넴이 철자 제대로 좀 알아라고 악플러에게 한방 먹인 것은 덤이다. 이 다음 날에도 Coachella에서 라이브를 했는데 여기선 또 새로운 악플을 읽어보았다. "Coachella를 폐막하기엔 에미넴은 적절한 인물이 아니다."라는 글이었는데 이에 대해 에미넴은 관중들에게 Fuck you, bitch를 외치도록 시켰다. [70] 품명은 Cotton Army Cap 9720BC. 가격대는 한화로 최소 4만원 정도로 에미넴의 검소함을 알 수 있다. [71] 2위는 " Kill You", 3위는 " The Real Slim Shady" [72] 헤일리를 학교에 보내려고 일찍 잤다고 한다. 수상 소식은 TV가 아니라 동료의 전화로 알게 되었다고. [73] 당시 시상식 이름 'Mnet 영상음악대상-Mnet MusicVideo Festival (MMF)' [74] 프로레슬링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한테는 '핵주먹'이라는 별명과 함께 복싱 선수로만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프로레슬링 업계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끼친 인물이다. 이미 전세계적으로 유명했던 타이슨이 WWE(당시 WWF)에 직접 출연한다는 것 자체가 화제가 되면서 프로레슬링에 관심이 없던 일반인들도 자연스럽게 WWE를 시청하기 시작했고, 이런 상황 속에서 스티브 오스틴과의 신경전 및 난투극, 레슬매니아 14의 메인 이벤트인 스티브 오스틴 vs 숀 마이클스 경기에서 숀 마이클스 측의 특별집행관 역할로 등장했다가 마지막에 배신을 하여 스티브 오스틴이 생애 첫 WWF 챔피언에 등극하는데 일조하는 등 여러 인상 깊은 순간들을 만들어내며 WWE의 인기가 급상승하는 기폭제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 출연 자체는 단발성으로 끝이 났지만 이러한 활약 덕분에 WWE의 최고 전성기인 애티튜드 시대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빼놓을 수가 없는 인물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이후 공로를 인정받아 WWE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됐다. [75] MMLP 시리즈의 앨범커버를 장식한 것으로 유명하다. [76] 물론 리버럴로 보인다는 것도 언제 에미넴이 리버럴을 디스할 지 모르기 때문에 확신할 수는 없지만 반 인종차별 운동의 선두주자격 인물이며, 공백기 이후에는 리버럴 성향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다만 성향만 그럴 뿐 조 바이든 이전에는 민주당 정치인을 지지한 적이 없으며 다 디스했고 조 바이든도 도널드 트럼프가 너무 싫어서 지지한 것에 가깝다. 그러나 사우스 파크가 모두까기이면서 신좌파 세력을 더 많이 비난하는 것처럼 에미넴도 보수 성향 정치인들을 더 많이 디스하기는 했다. [77] 심지어 이는 역대 메타크리틱 유저스코어에서 상위권에 위치한다. [78] 흰색 베이스, 레드 라인과 텅에 에미넴 로고, 후면에 'Hi, My name is Slim Shady'라는 러버 와펜이 있다. [79] 그래미 어워즈에서 수상을 하기 위해서는 아티스트 측이 그래미 측에 따로 심사 신청을 해야된다. [80] 잘자 시발놈들. [81] 뒤에 있는 염소 사진은 GOAT (Greatest Of All Time)의 의미로 놓은 것이다. [82] 5년 전 노래다. [83] 해킹설, 노래 자축설, 에미넴 또는 지인의 장난 등등... [84] 켄드릭과 에미넴은 MMLP2의 "Love Game" 이후 첫 협업이다. [85] 출처 [86] 리리컬 레모네이드의 창업자이자 뮤직비디오 감독이다. [87] M&M은 에미넘의 언더시절의 예명이다. [88] Big Sean의 No Favors를 들어보면 왜 이런 평가가 나오는지 알 수 있다. [89] 드레이크의 싱글 'Forever'에서는 그 당시 가장 핫하던 드레이크, 카니예 웨스트, 릴 웨인을 모두 압도하는 래핑을 보여주었고 이후에도 'No Love'나 'Love Game', 'Kings Never Die' 등 다른 방식으로 최고의 래핑을 보여주는 곡들도 적지 않다. 특히 'No Love'는 에미넴 커리어 사상 최고의 벌스 중 하나라는 말을 들을 만큼 높은 평을 받기도 했다. 오히려 랩 테크닉과 작사 실력만큼은 과거보다도 더 발전했다는 평가도 있을 정도다. [90] 이것이 좋은 방향으로 이루어진다면 유니크하고 박진감 넘치는 비트가 될 수 있지만 자칫하면 과하게 들릴 수도 있고 랩의 리듬 자체를 망가뜨리는 악효과를 낳을 수가 있는데 과거의 에미넴은 록 사운드를 최대한 살리되 이러한 단점들은 최소화해서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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