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3-17 06:24:39

야나기타 마사토시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width=320><tablebordercolor=#000000><tablebgcolor=#000000> 파일:치바 롯데 마린즈 로고.svg 치바 롯데 마린즈
역대 1라운드 지명선수
}}} ||
{{{#!wiki style="margin: 0 -10px;"
{{{#000000,#e5e5e5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1px;"
1961년 1962년 1963년 1964년 1965년
드래프트 제도 미시행 오츠카 야스오
1966년 1967년 1968년 1969년 1970년
소노다 요시노리 무라타 쵸지 아리토 미치요 마에다 고스케 히에이 다다오미 (5)
1971년 1972년 1973년 1974년 1975년
이노우에 케이이치 다테 야스지 사토 히로마사 박덕용(키쿠무라 토쿠요) 다나카 요시오
1976년 1977년 1978년 1979년 1980년
모리 시게카즈 (5) 하카마다 히데토시 후쿠마 오사무 (4) 다케모토 유키오 (5) 아이코 다케시
1981년 1982년 1983년 1984년 1985년
이베 야스지 이시카와 마사루 (4) 히가 요시토모 (4) 가사하라 에이이치 이시다 마사히코 (4)
1986년 1987년 1988년 1989년 1990년
세키 기요카즈 이라부 히데키 마에다 유키나가 (4) 코미야마 사토루 (4) 고이케 히데오 (5)
1991년 1992년 1993년 1994년 1995년
요시다 아츠시 타케무라 준이치로 가토 다카야스 (3) 사부로 사와이 료스케 (4)
1996년 1997년 1998년 1999년 2000년
시미즈 마사우미 (3) 와타나베 마사토 고바야시 마사히데 (3) 다카하시 카오루 (3) 다나카 료헤이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키타 타카시 니시오카 츠요시 우치 타츠야 쿠보 야스토모 (3)
테지마 사토시 (3)
야나기타 마사토시 (1)
네모토 슌이치 (2) (6)
2006년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오미네 유타 (1)
코베 타쿠미 (2) (6)
카라카와 유키 (1)
핫토리 야스타카 (2) (4)
키무라 유타 오기노 타카시 이시미네 쇼타 (4)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후지오카 타카히로 마츠나가 타카히로 (4) 이시카와 아유무 나카무라 쇼고 히라사와 타이가
2016년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사사키 치하야 (4) 야스다 히사노리 (4) 후지와라 쿄타 사사키 로키 스즈키 쇼타 (4)
2021년 2022년 2023년 2024년 2025년
마츠카와 코 키쿠치 리쿠 (4) 우에다 큐토 (4) 니시카와 미쇼
(1) 고교생 드래프트
(2) 대학생, 사회인 드래프트
(3) 역지명, 희망 입단 범위
(4) 하즈레 1라운더
(5) 지명 후 미입단
(6) 1순위가 아니지만 그 해 첫 번째로 지명된 선수
}}}}}}}}}}}} ||
파일:야나기타마사토시.jpg
야나기타 마사토시
柳田将利/Masatoshi Yanagita
생년월일 1987년 9월 2일 ([age(1987-09-02)]세)
출신지 오사카부 후지이데라시
포지션 투수 1루수
투타 좌투좌타
학력 아오모리야마다고교
프로입단 2005년 NPB 고교생 드래프트 1라운드
소속팀 치바 롯데 마린즈 (2006~2008)

1. 개요2. 선수 경력3. 방출 이후4. 플레이 스타일5. 여담

[clearfix]

1. 개요

일본의 전 야구선수.

2. 선수 경력

중학교까지 오사카에서 자랐으나 고등학교는 아오모리로 이주해서 진학했다. 코시엔에 3번 나갔으며 투수와 타자로 모두 활약하였다. 덕분에 1라운더로 롯데에 지명받았고 이도류로도 기대를 받았다.

2.1. 치바 롯데 마린즈 시절

데뷔 1년차인 2006년, 2군에서 불펜으로 30이닝 남짓 던지며 ERA 6점대로 부진하였다. 이후 2년차에는 3.1이닝만 던지고 부상으로 시즌아웃. 끝내 부상 때문에 3년차인 2008년 투수를 포기하고 1루수로 전향하였으나 제대로 타격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부상이 심각하여 타자로도 2군에서 2경기 2타석 1안타에 그쳤다.

결국 3년 동안 수술만 세 번 한 끝에 팀에서는 가망이 없다고 판단, 고졸 1라운더임에도 불구하고 3년만에 전력외통고를 했다.[1]

3. 방출 이후

사회인야구 클럽팀인 노모 베이스볼 클럽에 입단하였고 방출 몇 년 후 12구단 합동 트라이아웃에도 나갔으나 불합격했다. 이후 선수를 완전히 은퇴한 후 라멘가게 점장 일을 하다가 현재는 트럭기사를 하고 있다.

4. 플레이 스타일

키는 착화신장 175cm로 작지만, 체중이 100kg가 넘게 나가던 장사체형의 선수. 투수로는 포심 패스트볼 구속이 최고 146km/h까지 나왔고, 타자로는 고교 통산 38홈런의 전형적인 좌타거포 자원이었다.

그러나 작은 체구에 비해 체중이 많이 나가서 몸이 못 버텼는지 프로 3년 동안 수술만 3번이나 할 정도로 유리몸이었고, 결국 유리몸이 발목을 잡아버렸다.

5. 여담



[1] 보통 일본에서 1라운더는 스카우터진에게 책임을 묻기 때문에 방출을 어지간하면 안 한다고 한다. 또한 일본이든 한국이든 고졸은 하위 지명자나 육성선수를 제외하면 보통 동갑내기가 대학을 졸업하고 입단하기 전까지인 4년차까지는 가능성이 보인다면 아무리 답이 없어도 두고 본다고 한다.(역으로 대졸, 대졸사회인은 상위 지명자가 아닌 한 보통 2-3년 정도 보고 답이 없으면 바로 내보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