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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13 00:28:29

애투섬 혈전용사현창국민가

[[일본군/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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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가
軍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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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배경3. 가사

1. 개요

애투섬 혈전용사현창국민가(アッツ島血戰勇士顯彰國民歌)는 일본군 군가이자 국민가요이다. 1943년 곡으로 육군성보도부와 아사히신문의 공모전에서 선정된 노래이다.

노래가사 소개 전에 애투섬 전투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이 전투는 상당히 중요한 것이 전쟁 말 노래를 부르던 옥쇄가 본격적으로 선전된 계기이기 때문. 애투섬 혈전용사현창소국민가라고 어린이용 버전도 있다.

2. 배경

애투섬 알류샨 열도의 섬으로, 1942년 일본군이 키스가섬과 함께 점령했지만 1943년 미군이 탈환했다. 당시 애투섬에는 야마자키 야스오(山崎保代) 대좌[1]의 지휘 아래 일본군 제303 독립보병대대, 기타 해군요원과 공병, 종군기자 100여 명 등 총 2900명이 주둔했다.[2]

1942년 12월 미국은 알류샨 열도를 탈환할 계획을 세우며 키스가섬과 애투섬을 수복하려 했다. 키스가섬에 몇 차례 공습을 실시했으나 별 성과가 없었고 키스가섬은 방어태세가 더욱 엄중하여 상륙하면 희생이 크리라 판단, 먼저 애투섬을 공격하기로 했다.

정작 애투섬 탈환전에서도 미군은 난항을 많이 겼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미군이 애투섬의 지형을 잘 몰랐기 때문이다(...). 애투섬 근방은 연무가 심하여 선박이 항행하기에 위협이 되었기에 미 해군은 애투섬 4 km 근방 수로로 항해함을 금지했다. 그래서 당시의 최신 애투섬 지도는 1934년 애투섬에서 0.9 km 정도 떨어진 해안에서 측량하여 만든 것이 고작이었다. 애투섬에는 원주민 알류트족이 수십 명 남짓 살았으나 접촉도 거의 없었고 땅이 물렁하여 측량을 위한 탐사도 힘들었기 때문에 내륙의 지형을 잘 몰랐다.

어쨋거나 초기의 시원찮은 상륙을 끝내고 미국은 막강한 화력을 등에 업고 일본군을 탈탈 털었다. 다만 겨우 18일간 전투에서 일본군 2900명, 그것도 실 전투병력은 2600여 명에 불과한 일본군과 싸워 전사자 600명[3]이 생기자 미군은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 한다.

일본군의 최후는 처참했다. 전투병력 2600명은 순식간에 800명으로 줄었다. 결국 5월 28일 오후 일본군은 최후의 돌격을 감행하기로 결정하고[4] 부상자들에게 자결을 요구한 뒤 남은 전투식량을 모조리 먹어치웠다(...). 그리고 미군 진지로 돌격하는데 야전병원이고 군 막사고 뭐든 닥치는 대로 광분하며 공격하다가 미군이 미리 구축한 화망에 걸려 패퇴했다. 결국 다음 날 잔존병 몇몇이 도망치다가 수류탄으로 자폭하여 포로로 잡힌 29명을 제외, 일본군 2900여 명이 전멸했다. 대본영은 5월 28일까지 애투섬의 일본군을 철수시키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다음 날 함락 소식이 전해지자 포기하고 키스가섬의 일본군을 전원 철수시키기로 결정한 후, 애투섬의 일본군 전멸을 옥쇄라 미화하며 선전하였다. 이 노래도 국민들에게 애투섬의 옥쇄를 선전하고자 만들었다. (키스가섬 철수작전은 성공했다.)

가사에 깨알같이 전투 과정을 설명했다.

'거탄이 떨어진다.' 운운은 당시 잉여화된 구식 전함, 즉 USS 네바다, 펜실베니아, 아이다호 등이 잉여롭게 진주만에서 인양, 수리 후 캘리포니아에서 정박하면서 미운 오리, 연료만 축내는 잉여 취급만 받다가 애투섬 탈환전에서 미군의 화력지원을 한 것을 말한다. 이후 미군은 구식전함을 각종 상륙전의 화력지원용으로 알뜰히 사용했다.

'남쪽에서 다가오고 북쪽에서 공격한다.'는 내용은 당시 미군은 애투섬 남쪽 북쪽에서 상륙하여 치차고프 항으로 몰고 들어오는 전략을 세워 공격했음을 나타낸 것이다.

또한 가사에서 '적 6천을 도륙했다.' 운운은 허풍이다. 실제로는 미군 600여 명 전사, 1100여 명 전투 중 부상, 2100여 명이 날씨가 좋지 않아 (동상 등) 비전투손실로 후방으로 전환되었다.

3. 가사

刃も凍る北海の 御楯と立ちて二千余士
精銳こぞるアツツ島 山崎大佐指揮を執る
山崎大佐指揮を執る

칼도 얼어붙는 북쪽 바다의 방패[5]로 선 2천여 무사
정예병 모인[6] 애투섬 야마자키 대좌 지휘를 맡는다
야마자키 대좌 지휘를 맡는다

時これ五月十二日 曉こむる霧深く
突如と襲ふ敵二万 南に邀へ北に擊つ
南に邀へ北に擊つ

때는 5월 12일 새벽의 안개 짙은
돌연히 습격한 적 2만 남쪽에서 맞아 싸우고 북쪽에서 친다
남쪽에서 맞아 싸우고 북쪽에서 친다

陸海敵の猛攻に わが反擊は火を吐けど
巨彈は落ちて地を抉り 山容ために改まる
山容ために改まる

육지 바다의 적의 맹공에 우리 반격은 불을 토하더라도
거탄은 떨어져 땅을 찌르고 산의 모습도 이에 바뀐다
산의 모습도 이에 바뀐다

血戰死鬭十八夜 烈々の士氣天を衝き
敵六千は屠れども 吾また多く喪へり
吾また多く喪へり

혈전 사투 (이어진) 열여덟 밤 열렬한 사기 하늘 찌르고
적 6천[7]을 도륙했으나 우리 역시 손실이 크구나
우리 역시 손실이 크구나

火砲はすべて摧け飛び 僅かに銃劍、手(て)榴彈
寄せ來る敵と相搏ちて 血汐は花と雪を染む
血汐は花と雪を染む

화포는 전부 망실하여 약간의 총검과 수류탄(을 가지고)
밀려드는 적과 서로 만나 피는 꽃과 눈을 물들인다.
피는 꽃과 눈을 물들인다.

一兵の援、一彈の 補給を乞はず敵情を
電波に託す二千キロ 波頭に映る星寒し
波頭に映る星寒し

한 명의 응원군, 하나의 탄환 보급을 구걸하지 않고 적 정세를
전파에 맡기는 2천 km 물결에 비치는 별 차갑다
물결에 비치는 별 차갑다

折柄拝す大御言 生死問はぬ益良雄が
ただ感激の淚呑む 降りしく敵の彈丸の中
降りしく敵の彈丸の中

마침 그때 받잡은 폐하의 말씀 생사를 묻지 않는 훌륭한 장부가
이에 감격의 눈물 삼키고 떨어지는 적탄 가운데
떨어지는 적탄 가운데[8]

他に策なきにあらねども 武名はやはか穢すべき
傷病兵は自決して 魂魄ともに戰へり
魂魄ともに戰へり

이 외에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나 무사의 명예 설마 더럽히겠는가
부상병은 자결[9]하여 혼백으로 함께 싸운다
혼백으로 함께 싸운다

殘れる勇士百有余 遙かに皇居伏し拜み
敢然鬨と諸共に 敵主力へと玉碎す
敵主力へと玉碎す

남은 용사 백여 명은 멀리 궁성에 요배하고
감연히 함성과 함께 적 주력에게 옥쇄하였다.
적 주력에게 옥쇄하였다.

ああ皇軍の神髓に 久遠の大義生かしたる
忠魂の後受け繼ぎて 擊ちてし止まむ醜の仇
擊ちてし止まむ醜の仇

아아, 황군의 정수에 영원의 대의 살린
충혼의 뒤를 받아 이어서 쏘아 쓰러뜨리리라 추악한 원수
쏘아 쓰러뜨리리라 추악한 원수

[1] 전사 후 중장으로 2계급 특진 추서되었다. [2] 야마자키 야스오 대좌는 이해 2월에 애투도 수비대장으로 전입했다. 야마자키 대좌는 한직을 맴돌다가 중학교 교련담당을 하는 등 전쟁이 아니었다면 진즉 은퇴했을 인물이었는데, 육대 출신도 아닌 그저그런 장교 하나를 버리는 카드로 쓴 것이다. 참고로 이 해에 육사 25기인 야마자키 야스오의 육사 6년 후배인 사나다 조이치로가 소장으로 진급했다. 전형적인 아싸 장교였던것...뭐 중장을 누가 먼저 달았느냐라고 보면 핵인싸기는 하다. 죽은 다음에 단게 문제지만... [3] 공식기록에는 549명, 참전자의 증언으로는 대략 600명 [4] 28일 오후 대본영에 보낸 전문에는 "지금까지의 은혜에 감사하며 옥쇄를 각오하였다. 부상병은 모두 처리했으며 이 전신을 마지막으로 무전기는 파괴하겠다." 하였다. [5] 미타테(御楯)는 천황의 방패를 의미하며 여기서는 병사들을 이에 비유했다. [6] 당연히 이것도 구라... 대체 어느 당나라군대에서 정예병 지휘를 중학교 교련선생한테 맡기겠는가? [7] 당연히 이 숫자는 구라.. 실제 미군 전사자는 6백 명 정도였는데, 그나마 야전병원 따위에 반자이어택을 해서 만만한 환자들을 죽여 얻은 전과이다. 그래서 미군도 애투섬 전투에서 그다지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8] 이 절은 유난히도 유튜브 등에서 재생된 예가 없다. 근데 가사 보면 알겠지만 자결명령을 받고 감격했다는 진짜 병맛인 내용이라... [9] 미군 정찰병의 증언에 의하면 군의관이 부상병에게 모르핀을 주사한 후 부상병은 권총으로 자결하였다고 한다. 이때 참전한 타츠구치 노부오(辰口信夫)라는 일본군 군의관이 쓴 일기가 전한다. 이 사람은 미국 유학파에 안식교도라 일본보다는 미국적인 가치관이 더 강한 사람이었다. 실제로 일본엔 1939년에 와서 1941년에 바로 징집... 애투섬에서 전사했다. 이 사람의 일기가 발견되면서 저런 이력 덕분에 꽤나 관심거리가 되었던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