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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9 01:45:27

아사노 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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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초노 히사요시 · 8 마루 요시히로 · 12 하기오 마사야 · 13 카지타니 타카유키 · 23 타테오카 소이치로 · 38 오카다 유키 · 42 엘리어 에르난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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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 1988년
1965년 1966년 1차 1966년 2차 1967년 1968년
호리우치 츠네오 야마시타 츠카사 (1) 츠치타 마코토 타카다 시게루 시마노 오사무
1969년 1970년 1971년 1972년 1973년
코사카 토시히코 유구치 토시히코 요코야마 타다오 나카이 야스유키 코바야시 히데카즈 (5)
1974년 1975년 1976년 1977년 1978년
사다오카 쇼지 시노즈카 카즈노리 후지시로 카즈유키 야마쿠라 카즈히로 불참
1979년 1980년 1981년 1982년 1983년
하야시 야스히로 (1) 하라 다쓰노리 마키하라 히로미 사이토 마사키 (1) 미즈노 카츠히토
1984년 1985년 1986년 1987년 1988년
우에다 카즈아키 (1) 쿠와타 마스미 키다 마사오 (1) 하시모토 키요시 요시다 쇼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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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 2018년
1989년 1990년 1991년 1992년 1993년
오모리 타케시 모토키 다이스케 다니구치 고이치 (1) 마쓰이 히데키 미노 가쓰히로 (2)
1994년 1995년 1996년 1997년 1998년
가와하라 준이치 (2) 하라 슌스케 (1) 이리키 유사쿠 (2) 타카하시 요시노부 (2) 우에하라 고지 (2)
1999년 2000년 2001년 2002년 2003년
타카하시 히사노리 (2) 아베 신노스케 (2) 사나다 히로키 (1) 기사누키 히로시 (2)
쿠보 유야 (2)
우츠미 테츠야 (2)
2004년 2005년 2006년 2007년 2008년
노마구치 타카히코 (2)
미키 히토시 (2)
츠지우치 타카노부 (3)
후쿠다 사토시 (2) (4)
사카모토 하야토 (1) (3)
카네토 노리히토 (2) (4)
후지무라 다이스케 (1) (3)
무라타 토오루 (1) (4)
오오타 타이시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초노 히사요시 사와무라 히로카즈 마츠모토 류야 (1) 스가노 도모유키 고바야시 세이지 (1)
2014년 2015년 2016년 2017년 2018년
오카모토 카즈마 사쿠라이 토시키 요시카와 나오키 (1) 쿠와하라 타쿠야 (1) 다카하시 유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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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5555,#aaaaaa
2019년 ~
2019년 2020년 2021년 2022년 2023년
홋타 켄신 (1) 헤이나이 류타 (1) 오타 타이세이 (1) 아사노 쇼고 (3) 니시다테 유히
(西舘勇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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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즈레 1라운더: 첫 지명에서 중복 지명된 선수의 교섭권 획득에 실패했을 때 차순위로 선택한 선수.
(2) 역지명, 희망 입단 범위: 1993년부터 2006년까지 존재한 제도로, 선수를 확정적으로 획득할 수 있었다.
(3) 고교생 드래프트, (4) 대학생, 사회인 드래프트: 2005년~2007년의 3년간은 고교 선수와, 대학&사회인 야구에서 뛰었던 선수의 지명이 분리되어 있었다.
(5) 지명 후 미입단: 현재는 1973년도 코바야시 히데카즈가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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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fff [[요미우리 자이언츠|요미우리 자이언츠]] 등번호 51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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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노 쇼고
(2023~)
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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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colcolor=#fd5a1e> 요미우리 자이언츠 No.51
아사노 쇼고
浅野翔吾 / Shogo Asano
출생 2004년 11월 24일 ([age(2004-11-24)]세)
카가와현 타카마츠시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학력 카가와현립 타카마츠상업고등학교(香川県立高松商業高等学校)
신체 171cm | 86kg
포지션 외야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22년 드래프트 1순위 ( 요미우리)
소속팀 요미우리 자이언츠 (2023~)
연봉 2024 / ¥12,300,000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선수 경력
2.1. 프로 입단 전2.2. 프로 입단 후
3. 플레이 스타일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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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요미우리 자이언츠 소속의 외야수. 2022년 10월 드래프트 1순위로 선발되어 한신 타이거스와의 경합을 통해 요미우리로 입단했으며[1][2], 요미우리를 넘어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의 주전으로 거론되고 있다.

2. 선수 경력

2.1. 프로 입단 전

프로 입단 전에는 2022 일본 고교야구 전국대회에서 타율 7할, 출루율 8할, 삼진 0개, 3홈런, OPS 2.6을 기록하고 고교 통산 67홈런을 치는 등 일본 고교야구계에서 괴물같은 활약을 선보이며 일본 프로야구 스카우트팀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 때 상대팀 감독에 의하여 실수로 고의사구 출루를 했는데 아사노의 대회 성적을 본 야구팬들은 실수가 아니었다고 그럴 만 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후 상대팀 감독에 의하여 다시 타석으로 돌아갔으나 결국 몸에 맞는 볼로 출루하고 말았다.

또한 일본 U-18 야구 국가대표팀으로 참가한 제 30회 WBSC U-18 야구 월드컵에서는 멕시코 대표팀을 상대로 나무배트로 홈런을 치는 등 대활약을 선보였으나 최종전에서는 김서현에게 삼진을 당했다.[3] 이 때 드래프트 신청서를 썼는데, 본인은 일단 12구단 중 어느 구단에 들어가도 좋다고 밝혔다.

2.2. 프로 입단 후

2.2.1.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2022년 11월 23일 처음으로 나이키의 요미우리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는 영상

2022년 11월 23일 도쿄돔에서 열린 구단 팬미팅에서 팬들에게 첫 인사를 가졌다. 팬미팅 때 하라 타츠노리 감독과 같이 선 사진을 두고 30대 베테랑, 코치 드립이 돌았고, 그 직후 2022 카타르 월드컵 이 경기에서 성이 같은 선수가 골을 넣으면서 트위터에는 왜인지 아사노가 유행하였다(...). 아사노 1호

드래프트 이후, 스포츠호치와의 12월 인터뷰에서는 장기적으로 1번 타자로 팀에 공헌하고 싶다고 언급하였다. 실현 시 1959년의 오 사다하루 이후 고졸 신인이 64년만에 1번 타자로 선발 출장하게 된다.

요미우리에 정식으로 입단한 이후 신인 합동 자주트레이닝(자율훈련)을 하고 있으며 2023년 스프링캠프에서는 2군 캠프에서 출발하게 된다.[4] 또한 자율훈련에 나온 짤방이 일본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커뮤니티에서도 주목받으면서 본의 아니게 한국에서 요미우리의 주목도를 올리는 데 1등공신이 되고 있다.

2023년 2월 27일, 모교 졸업식 참석으로 인하여 일찍 스프링캠프를 종료하고 타카마츠시로 내려갔다.

7월 8일 요코하마전에 카지타니 타카유키를 대신하여 대타로 들어서며 데뷔전을 치렀지만, 프로의 벽은 역시나 높았는지 두 타석 모두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나고 말았다.[5]

8월에는 2군에서 7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하는 등 좋은 타격감을 보여주면서, 프로 무대에 적응해 가고 있다. 또한 DAZN, 스포츠호치 등 구단 관계 미디어에서도 주목을 많이 받고 있는데, 루이스 브린슨, 오코에 루이, 마루 요시히로 등이 7월 이후로 죽을 쑤면서 1군으로 생각보다 빠르게 다시 콜업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아지고 있다.

그리고 8월 11일 아즈마 카츠키를 상대로 프로 첫 안타를 기록했다.

2024년 8월 14일 1군으로 콜업되었으며, 2아웃 만루에서 홈런을 기록하며 프로 첫 만루홈런을 기록하였다. 이후로도 프로 첫 도루를 기록하고 야마모토 마사 등 해설자들로부터 좋은 평을 받는 등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3. 플레이 스타일

전형적인 5툴 플레이어로, 키가 171cm로 극도로 작은 것이 단점[6]이지만 강력한 파워와 빠른 배트 스피드를 갖추고 있으며 50m 5초 9, 멀리던지기 110m를 기록할 정도의 툴가이이다. 또한 일반적인 툴가이는 막상 성적 자체가 그리 좋지 않은 경우도 많으나, 아사노는 고시엔에서 보여준 압도적인 퍼포먼스에서 알 수 있듯 툴을 온전히 발현시켜 성적을 낼 수 있는 완성형 툴가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이러한 평가를 바탕으로 요미우리와 한신에게 1라운드로 지명되었다.

다만 일본의 2004년생 고교 투수들의 팜 상태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등교 취소로 인해[7] 심각하게 나빴다는 변수가 존재한다. 어느 정도였냐면, 150km/h를 넘기는 투수가 원래는 몇 명씩은 있는데 이 해에는 거의 안 보일 정도였다.[8] 즉 아사노의 고시엔 시절 성적은 거칠게 말해 양학으로 만들어진 성적이 아니냐는 것. 물론 기본적인 툴이 뛰어나고 고교 투수들을 상대로는 툴을 온전히 발현시켜 호성적을 냈으므로 프로에서 더 수준이 높은 투수들을 상대로 어떻게 툴을 발현시킬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 당장 한 번이긴 하지만 150km/h대를 밥 먹듯이 던지는 파이어볼러 김서현에게 구속으로 찍어눌리며 삼진을 당하는 모습을 보였기에 특히나 빠른 구속에 대한 적응력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4. 여담



[1] 요미우리 구단이 드래프트 추첨 경합에서 교섭권을 얻은 것은 2013년 이후 9년만이며(재추첨), 첫 추첨으로 한정할 경우 2008년의 오오타 타이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여기서 진 한신은 1순위로 대학리그를 평정한 외야수 모리시타 쇼타를 지명했다. [2] 참고로 요미우리 구단은 아사노를 한신에서 빼앗겼을 시 텐리대학의 주전 유격수 토모스기 아츠키를 하즈레로 지명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사노가 쿄진으로 갔기 때문에 토모스기는 롯데행. 그나마도 하즈레 1순위가 아닌 2순위였다.(당시 롯데도 쇼지 코세이 추첨에서 낙첨되어 하즈레 1순위를 뽑아야 했고 당시 롯데의 1순위 후보로도 토모스기가 가끔 언급되긴 했지만 롯데는 키쿠치 리쿠로 선회.) [3] 경기 종료 후 인터뷰에서는 공이 바깥쪽으로 멀리 보였으나 가운데로 꺾여 들어왔고, 구속이 프로에서도 강속구인 156km/h이라 칠 수가 없다고 밝히며 김서현을 칭찬했다. 일본 야구팬들은 이 삼진을 보고 김서현이 일본프로야구 드래프트에서도 충분히 경합지명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는데, 삼진을 당한 아사노 역시 경합지명인지라... [4] 오쿠보 히로모토 1군 타격코치가 타카하시 요시히코와의 유튜브 영상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아직 몸이 만들어지지 않았고 성장 가능성이 있으며, 부상으로 1년을 날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일단 2군에서 키운다고 하며, 아베 신노스케로 감독이 바뀐 이후로도 저연차를 감안하여 2군에서 우선적으로 훈련한 다음 1군으로 콜업하고 있다. [5] 일본프로야구에서 고졸 신인 선수들은 1년차에 1군에 잘 기용되지 않으며, 올라와도 동기부여 차원에서 몇 경기 안 뛰고 내려간다. [6] 일본인 성인 남성 평균과 비슷한 키이다. 한국으로 치면 약 174cm 정도. [7] 2004년생의 경우 고등학교 3년을 사실상 거의 다 쉬었다. 아무리 연습하려고 해도 연습할 기회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8] 참고로 이 해 일본 고교 투수 팜은 무려 동일 년도 KBO 고교 투수 팜보다 나쁘다고 평가받을 정도다. KBO의 경우 파이어볼러 숫자는 역대급으로 많아서 심준석, 김서현, 신영우, 이로운 등이 150km/h를 밥먹듯이 던질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원래는 일본이 한국보다 150km/h를 던질 수 있는 투수 숫자가 아무리 못해도 매년 두 배는 더 많다. [9] 파일:만47세아사노.jpg [10] 게다가 교복이 넥타이 교복이다. [11] 심지어 취미가 골프다. [12] 일본 고교야구는 기본적으로 알루미늄 배트로 연습, 경기한다. 물론 프로 지명을 노리는 선수들은 프로 적응을 위해 나무배트로도 연습한다. [13] 다만 도쿄돔은 저 4명보다 아사노가 훨씬 빠르게 입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