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문서: 사도세자는 편하게 살고 싶다/등장인물
1. 개요
대체역사물 사도세자는 편하게 살고 싶다에서 개변된 역사에 대한 문서.2. 1~15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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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왕 영종
이금의 실족사,
이훤의 즉위
보름 간 혼수상태에 빠져 15년 간의 미래 체험을 하고 온 이훤이, 과거 자신이 화내며 던진 촛대에 맞아 무릎을 다친 내관 김한채를 보고 미안한 마음이 들어 "섬돌"을 오르기 편하도록 나무토막을 괴어 놓았다. 그런데 영종(원역사의 영조)이 이 나무토막을 밟고 넘어져 건륭 22년 정축 5월 25일, 그러니까 1757년에 원 역사보다 19년 빠른 향년 62세로 사망[1]했다. 이금이 갑자기 사망하면서 자연스럽게 이훤이 왕이 되었는데, 사고 당시 정황이 현장의 사관, 내관들의 입을 통해 전달되다가 왜곡되면서 조정 중신들에게는 '정관의 덕', 즉 이훤이 부왕의 갈굼에 참다 못해 당태종처럼 부왕을 제끼고 왕위에 올랐다는 오해가 퍼지게 된다.[2] 조선 내에서, 특히 사대부들 사이에서는 그러한 소문이 퍼지기는 하는데 책봉을 내려주는 청나라 측에서는 당시 영종의 나이가 나이였던 만큼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환갑을 넘겼으니 살 만큼 살았고, 그런 사고가 나도 이상하지 않다고 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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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락논쟁 재점화와 경연의 무력화
그동안 영종에게 억눌려 지내던 조정 각 붕당에서 이훤을 경연을 통해 컨트롤해보려고 시도하자 이훤이 경연장에서 자신은 정말 몰라서 물어본다는 태도로 호락논쟁 (인물성동이논쟁)을 재점화시켜[3] 경연이 진행되지 못하게 만든다. 이론의 정오는 둘째치고 붕당간의 대립이 되었으니 서로 물러설 수가 없고, 애초에 답이 없는 문제인데다, 앞장서서 싸우는 게 아니니 팔자 편한 산림들이 뒤에서 압박하는지라 언급되는 것 자체가 조정의 사대부들 입장에서는 손해다. 결국 신하들이 먼저 경연을 슬슬 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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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조작을 통한
금주령 해제
이훤이 영종의 금주령부터 해제하려고 장인 홍봉한을 통해 신료들을 설득하려 했으나, 신료들이 눈치만 보자 '차라리 정보를 능동적으로 조작해서 뿌려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벌열 가문들에 정보 장사를 해오던 내관들과 궁녀들의 각 파벌 우두머리들을 만나 임금이 원하는 정보가 있으면 최우선으로 퍼트리도록 하고, 그 대신 내부자 정보를 통해 내관, 궁녀들도 이익을 볼 수 있도록 허락하는 것으로 합의를 맺고, 금주령 해제 건부터 시전 상인들에게 정보를 알려 분위기를 잡은 후 금주령을 해제한다. 그리고 조정과 한성의 사대부들은 내관들이 조직적으로 정보를 퍼트리는 것을 통해 젊은 왕이 그 짧은 사이에 내관들을 장악했다고 생각한 뒤, 즉위한 것보다 전부터 손을 쓰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두려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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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난전권 공개입찰제 도입
이훤은 금주령 해제 건에 대해 장인 홍봉한을 통해 북당에 언질을 주려 했으나, 북당 영수 홍인한은 이를 무시했다가 금주령이 해제되면서 그동안 북당과 유착했던 시전 대상인들이 손해를 보게 되자 이를 남당에 고해바쳤다가 남당이 북당과 대상인들을 함께 공격하기 위해 금난전권 폐지를 주청한다. 이훤은 금난전권을 폐한 신해통공이 아들대의 업적이라 아직은 금난전권을 폐지할 때가 아니라 생각하여 고민하다가 원래 역사에서 신해통공의 주역이었던 채제공이 무심코 던진 원론적인 말 한마디에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힌트를 얻어 시전 대상인들 대표들을 불러놓고 "앞으로 금난전권을 매년 공개입찰제로 파는 대신, 그동안 시전에서 조정에 바치던 세금을 금난전권 구입 비용으로 퉁치겠다"는 제안을 하여 시전 대상인들도 찬동한다. 상인들은 대부분 "손해볼 거 없다"고 찬동하지만, 원로 상인 한 명은 이렇게 되면 앞으로 상인들 간에도 담합이 깨지고 제살 깎아먹는 무한경쟁이 이뤄지게 될 것을 내다보고 '주상께서 우리 상인들에게 크게 진노하셔서 이런 벌을 내리시는 것'이라고 오해한다.
이에 놀란 홍인한이 이훤을 독대해 자기 나름대로는 벼랑끝 전술을 쓴답시고 관직에서 물러나 상인이 되겠다고 질러보았지만, 이훤은 이를 '홍인한도 나에게 찬동하는구나'라고 오해하고 윤허할 뿐 아니라 돈까지 지원해주는 바람에 홍인한은 자승자박에 빠진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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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의 탄생
건륭제가 준가르 정벌을 자화자찬하는 내용이 담긴 칙서를 보내자, 이훤은 건륭제를 적당히 치켜세워 주고 그 대가로 예수회를 통해서 서구 문물을 받아보기 위해 도화서에 명해 건륭제의 업적을 찬양하는 내용의 만화를 만든다. 처음엔 이훤 본인이 콘티를 만들어 보려 했으나 내용 전개 및 표현에서 막히는 부분이 발생하자 중전 홍씨의 도움으로 만화를 완성하는데, 정작 결과물은 둠 코믹스가 되었다. 건륭제는 이 만화의 주인공에 아옥석(阿玉錫)[5]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자연스럽게 만화의 제목은 아옥석탕구만화(阿玉錫蕩寇漫畵)가 되었다.
사대부들은 무례한 칙서를 보낸 청주를 우아하게 돌려깠다고 좋아하면서도 열심히 읽었다. 이후 아옥석 시리즈는 서양사절편, 류큐 원정편, 버마 원정편 등으로 계속 확장되었고, 이후 아옥석으로 할 소재가 고갈되자 편복자, 월하선녀[6], 둔갑신인 같은 미래의 창작물들도 끌어다 쓰기 시작했다. 이후 볼테르가 돌아갈때 아옥석 시리즈는 아스테릭스로 어레인지 된다.
이후 자체적인 창작만화도 유통되고 있는 듯하다. 유득공이 털복숭이 처자를 좋아한다는 묘사라거나 정후겸이 세자에게 김홍도가 그린 야한 만화를 가져다주는 묘사가 대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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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회
선교사의 조선 파송
만화를 받고 흡족해한 건륭제가 예수회를 시켜 조선에 서구 지식을 보내기로 하는데, 예수회가 가톨릭 전례를 원활하게 하고자 장 자크 루소, 볼테르 등의 '퇴폐적인' 금서들을 먼저 보내기로 한다. 이는 계몽주의와 가톨릭을 비교하게끔 하여 ' 이 정도면 가톨릭이 그나마 낫지 않을까'하는 반응을 유도한다는 계산이었다고. 다만 정작 금서 번역에 시간도 걸리고, 무엇보다 7년 전쟁의 영향으로 해로가 안정되지 않아서 아직 교황청의 답변이 오지 않기에, 건륭제가 직접 예수회 선교사들이 파견가지 못하는 것에 대해 (만화가 연중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보상금으로 은자를 조선으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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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빈 이씨 궁호 존숭 문제
여동생 화완옹주를 통해 어머니 영빈 이씨의 진심을 알게된 이훤이 홍봉한을 통해 영빈 이씨의 생일에 맞춰 궁호 존숭을 제안한다. 소론이 이에 편승하여 장희빈을 복권시키려 하여 당쟁이 다시 불붙으려 하자, 이훤은 이에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당쟁을 무마시키기로 한다. 그런데 그 방법이 실로 어이 없는게, 스스로 뒤주에 들어가서 한성 곳곳의 행궁을 몰래 오가며 신하들을 지치게 하여 논의 자체를 지연시키는 것. 그 뒤주를 자신의 전용 용기(전용기 아님) 이라고 생각하고 '사람은 뒤주 안에 들어가 있어도 일주일 정도는 생존 가능함이 증명되어 있다(n=1)[7]' 등등 독자들을 자빠지게 하는 드립이 만렙이다.
작중 묘사된 경로는 희정당-창의궁-용동궁-어의궁-남별궁-용흥궁-경희궁으로 현대 지도로 돌아본 독자에 따르면 13km 정도였다고 한다. 신하들 입장에서는 이 거리를 쫓아다니며 주상을 알현해야 당쟁을 시작할 수가 있는데 암행으로 이러고 있으니 끝이 없는 것. 신하들 나름대로 자당의 젊은이들을 궁궐마다 깔아서 어디에 있다 하면 그쪽으로 쫓아갔지만 뒤주에 숨어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다 포기한 뒤에도 눈앞에 뒤주가 지나가는 것을 '밥 할 때가 되었구나' 하고 생각했을 뿐 왜 무겁게 뒤주를 옮기고 있는지는 신경쓰지 못했다.
이리하여 신하들의 기가 꺾이자 이를 틈타 무난하게 영빈 이씨에게 소혜궁의 궁호를 내리고, 화려한 가마에 태워 후원에 행차하게끔 했다. 원 역사에서도 이훤이 영빈 이씨를 왕비의 가마에 태우려 한 일화가 있음을 생각하면 나름 찡해지는 대목.
여담으로 왕이 탔던 뒤주를 또 쓸 수도 없으므로 뒤주는 부숴서 땔감으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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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당, 민당의 대두와 규장각의 조기 활성화
붕당을 줄이기 위해 벼슬자리를 늘리기로 했으나, 이익을 필두로 한 근기남인의 상소가 스스로를 공당이라 칭하며 상공업 대신 농업으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극단적인 에코 파시스트 성향을 띄었고, 이에 대항하여 노론이 民을 주장하여 민당이라고 이름을 바꿔, 국가주도 계획경제 공산주의를 외치는 혼파망이 시작됐다. 이훤은 이에 일단 벼슬자리를 늘려주기로 했기에 규장각에 학사들을 몰아넣는 것으로 명예직을 늘리고, 덤으로 학사들의 토론 결과를 시책에 반영하기로 했는데[8], 정작 예상치 못하게 초가집 지붕을 기와로 바꾸자는 생산적인 시책이 나와 버렸다. 이후로는 아예 번와서(燔瓦署)를 경기도 일부 지역에 시범 설치하여 시행하기에 이르렀으며, 번와서의 운영 또한 정치적 문제를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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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보 민간 유통의 활성화와 광고의 탄생
부왕 영종이 무리하게 균역법을 실시한 바람에 내수사 재정도 예비비 없이 겨우 돌려막기를 하는 중임을 알게 된 이훤이 내탕금 수입으로 삼기 위해 '왕실에서는 요즘 이런이런 물건이 유행이더라' 하는 식으로 상인들에게 광고를 모집하기로 하고, 광고를 실을 수단으로 삼기 위해 이미 기별이라는 이름으로 몰래 유통되던 조보를 정식으로 인쇄해서 전국에 자유롭게 배포하기로 한다. 이렇게 유통된 조보와 광고는 청나라, 일본으로도 퍼져 주변국이 조선의 내부 사정을 파악하는 수단으로도 쓰이게 된다. 청나라 황제 건륭제가 언급하기로 '시골 개가 벼락 맞은 것도 올라와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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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의 문씨 역모 사건
영종 사후 사가로 나온 숙의 문씨가 괜한 피해망상으로 인해 급발진하여 오라비 문성국과 함께 역모를 꾸미려 했으나, 어설프게도 홍인한을 포섭하려 했다가 홍인한이 이를 이용해 환국을 일으켜보려는 생각으로 문씨 남매와 조금이라도 연계가 있는 사람들까지 다 묶어 역모로 고변한다. 이훤에게 채제공은 이 기회에 환국을 일으켜 대숙청을 통해 근왕 세력만 남겨 절대왕정을 할 것을 주청하였으나 이를 원치 않은 이훤은 문씨를 친국하면서 원역사에서 일제강점기 때 잘못 전해진 방식 그대로[9] 팽형 퍼포먼스를 통해 문씨 남매만을 공식적으로 죽은 것으로 선포하고 조보를 통해 문씨 남매가 죽었다고만 공식화한다.
한편 이미 조선인들이 조보에 오른 소식만이 중요한 진실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헛소문이거나 가치 없는 소식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사실도 밝혀진다. 일부 신하들은 예전이라면 야만적인 팽형 퍼포먼스에 대해 전국에서 불같은 반응이 일어나야 할텐데 조보에 팽형 사실이 제대로 쓰이지 않은 것 만으로 반응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자, 저 젊은 주상이 조선의 진실과 거짓마저 조종할 수 있게 되었다고 공포에 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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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주의가 조선에 소개됨
예수회 선교사 블랑샤르가 원래는 서양의 이단 학설을 반면교사로 소개하여 조선 선비들을 천주교에 귀의하게 만들 요량으로 가지고 온 볼테르의 캉디드,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이 조선 선비들에게 뜻하지 않게 큰 인기를 끌게 되고, 서양에는 무지한 천주교도만 있는 줄 알았는데 비록 정학인 성리학을 접하지 못해 부족한 점이 많지만 정학과 같은 뜻을 가진 선비들도 있다고 찬탄한다. 블랑샤르에게서 볼테르는 프랑스 국법으로 처벌받을 것이라는 말을 들은 홍대용, 박지원은 그렇다면 볼테르를 조선에 초빙해 마침 한 자리가 공석이던 경연관에 앉힘으로써 서로 배움을 주고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이훤에게 상소를 올리고, 이훤은 홍대용이 지전설을 주장했다고 미래에서 배웠는데 알고보니 머리가 돌았나보다고 생각하면서 블랑샤르와 상의해서 초대장을 보내도 예수회 선에서 커트할 것으로 생각하고 공식 초대장을 보내나, 블랑샤르를 따라왔다가 성리학 강의를 듣고 뜻을 바꾸어 이신론자가 된 조수 기요탱이 이 초대장을 몰래 자기 개인 서신에 넣어 프랑스로 보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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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능행
선왕 영종을 비롯한 역대 선대왕들의 왕릉을 참배한다는 명목으로 서오릉에 대능행을 갔다. 물론 참배는 명목이고 실상은 가족 나들이. 이훤을 견제하려던 조정 신료들은 왕의 앞길에 격쟁(민훤)하는 백성들을 보내어 왕을 귀찮게 했는데, 이훤은 역으로 격쟁꾼들을 한양 사대부 저택으로 체계적으로 보내고 그쪽에 격쟁을 넣게 함으로써 오히려 사대부들을 한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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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역모 사건
조재호를 비롯한 공당 인사들은 주상에게 경각심을 일으키기 위해서 가짜 역모를 꾸몄다. 그런데 이훤은 한술 더떠서 이 가짜 역모를 간파하고, 계략을 짜서 아예 인사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고는 '이미 다 알고 있었다'라고 까발려버린다. 주인공은 이들이 진짜 역모를 꾸밀 의도가 없었음을 알고 따로 처벌하지 않았으나, 인사들은 주상이 자기들 머리 꼭대기에서 놀고 있다는 공포에 떨고 스스로 낙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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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사법권의 독립
가짜 역모 사건에 연루된 조정 관료들을 명목상으로라도 처벌이 필요하자 이훤은 각 지방에 일종의 순회판사인 심률판관을 두고, 각 도에는 고등법원 판사 격인 심률경력을 두어 당상관들은 심률경력으로, 당하관들은 심률판관으로 좌천시키는 형식으로 내려보내면서 지방 수령과는 독립된 지방 사법관 제도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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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과 VOC(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접촉
초청장에 낚여 조선에 찾아온 볼테르와, 그를 살살 구슬려서 어떻게든 적당히 산천유람만 시키고 돌려보내려고 했던 이훤 간의 비밀 맹약으로 인해 어쩌다 보니 물꼬가 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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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영 무역회사 유원청(柔遠廳) 설립
서양에 조선의 상품을 팔자니 청과의 경쟁에서 밀린다는 사실을 극복하기 위해 볼테르(보을철)를 동원하여 진정한 문명국 조선의 상품이 더 위대하다는 식의 마케팅을 기획한다. 조선의 유행은 이미 화려한 백자로 넘어간 뒤였으나 비용 절감과 청과의 차별화를 위해 아무 무늬 없는 백자를 판매하였으며 볼테르의 신들린 세일즈로 인해 그동안 중국 도자기를 수입하고 국산화하려던 영국,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투자는 몽땅 박살났고 하술하는 볼테르의 서적도 덩달아 유럽에 대혼란이 일어난 듯하다. 스페인 관료의 그것은 좋은 것이다 드립은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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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부 재가, 서얼 허통 및 과학적 방법론 도입
재가도 못하는 과부인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주인공의 여동생 화완옹주를 달래주기 위해 별 지지자가 없는 과부 재가 허용 대신 수많은 서얼들이 지지하는 서얼 허통과 묶어서 함께 추진하게 된다. 결국 서얼 허통이 이뤄지자 서얼들의 열등함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겠다는 유사 우생학이 등장하면서 목적은 불순했지만 과학적 방법론이 최초로 도입된다. 정작 화완옹주는 가족이자 왕인 주상이 자신을 신경써 주는 것으로 만족했는지 재가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편 이 과정에서 이훤은 다른 방향으로 대형 사고를 쳤다. 과부 재가를 반대하는 중전 홍씨와 말다툼을 하다가 홧김에 '야 홍연숙!'이라고 중전의 본명을 말해버린 것. 조선 예법에서 여성의 본명은 함부로 부르는 건 상당한 실례인데 그것도 중전에게 이랬으니 엄청난 폭언을 한 것. 이훤은 이를 수습하기 위해 장인인 홍봉한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남녀 간의 사랑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과부 또한 이 남녀 간의 사랑을 누려야 한다-서얼 또한 남녀간의 사랑을 통해 태어났으므로 마땅히 존중해줘야 한다'라는 논리로 앞서 언급한 서얼 허통과 묶어서 서얼들로 하여금 과부 재가를 지지하게 만든다. 민당에서는 이를 막으려 했으나 하필 민당의 수장인 볼테르는 남녀 간의 사랑 문제에 대해선 가장 뜨거운 프랑스 출신이라서 과부 재가와 서얼 허통을 적극 지지해 버린다. 이후 이 사랑 문제로 인해 홍씨의 마음도 풀려서 화해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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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헌병대 순무별대(巡撫別隊) 설립 및 제식, 구군복 도입
조선의 군사력이 개판이지만 어차피 당장 쳐들어올 적도 없고 군사개혁을 할 돈도 없으니 대신 돈이 안 들면서 겉보기에만 그럴싸할만한 방법을 고안한다. 미래에서의 군복무 경험을 살려 제식훈련을 도입하고 멋진 디자인으로 미래 사극에서도 사랑받았지만 아직 등장하지 않은 구군복을 도입한 순무별대를 창설한다. 어차피 싸울 일은 없으니 보기만 멋있도록 무기는 조총으로 통일한다. 조총의 수가 모자랄 때는 미래 독일 연방군의 선례를 따라 나무를 조총 모양으로 깎고 검게 칠해 사용한다. 때문에 전투력은 여전히 없는 수준이지만 겉보기만은 그럴싸한 군대가 탄생했고 덕분에 군사들의 사기가 진작되었으며 백성들의 신뢰도 얻으며, 이것이 선순환을 일으켜 조총의 보유량이 전체 병력의 절반에 달하는 등 날로 정예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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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동양함대의 강화도 방문
조선이 루손의 스페인인들과 교역하려 한다는 소식을 들은 잉글랜드인들이 시비를 걸기 위해 강화도에 나타난다. 하지만 가라 군사개혁 덕분에 겉보기만은 서양 신식 군대처럼 생긴 순무별대를 동원하고 강화도 일대 백성들에게 장대를 들고 산 위에 모이도록 해서 잉글랜드인들이 싸움이 나도 쉽게 이기기 어렵겠다고 착각하도록 하고 보을철과 함께 시간을 끌어 잉글랜드 함대가 갯벌에 좌초되도록 유도한다. 이렇게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4급 전열함 2척을 나포하고 그 선원들까지 귀순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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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국 해방?
전열함을 얻은 후 제국주의 열풍이 불어 유구를 속국화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주인공은 식민지라는 것은 대부분 적자라는 것을 알기에 핑계를 대며 이를 미루려고 하나 이 소식을 들은 건륭제가 이 또한 자신의 군공으로 삼고 싶어 돈을 대줄테니 유구를 정벌하고 그 과정을 만화로 만들어 바치라고 지시하며 유구 보호국화에 나서게 된다. 껍데기 뿐인 조선군에서 그나마 쓸만한 전력인 불랑기포를 최대한 끌고가서 청-조선-서반아 연합군을 저지하기 위해 나온 사츠마 군에게 쏟아붓는다. 위력도 명중률도 형편없어서 사츠마 군에서는 사망자도 없이 부상자만 몇 명 나왔지만 겉보기만은 위협적이었기에 일부러 위력을 보여주고자 빗나가게 쐈다는 허풍을 믿고 모랄빵이 난 사츠마 군이 바로 투항해서 유구 원정은 양측에서 사망자 한 명도 없이 완승으로 끝난다. 이후 유구국을 군사적으로 복속하는 대신 유구는 사탕수수 재배 플랜테이션화하고 그 돈으로 사츠마에게 쌀을 사오도록 하는 바나나 공화국화를 구상한다. 좋게 말하자면 시대를 앞선 NAFTA와 같은 경제 블록을 도입하고 자유무역과 비교우위론에 의해 당사국 모두가 이익을 얻는 것이다. 이훤의 생각으로는 국가 체급상 사쓰마와 류큐가 조선에 끌려갈 수밖에 없으니 일단 이 정도만 해 두고 명군이 될 아들에게 나머지 일을 짬때리려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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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의 왕국 조선 견문록: 프랑스인이자 조선의 '인민의 정당' 영수인 볼테르가 유럽의 지식인과 평범한 사람들 모두에게 전하는 서한』
볼테르가 마닐라 갈레온 편에 실어 유럽으로 전하여 출판된 서적. 프리드리히 대왕, 조지 워싱턴과 토머스 제퍼슨이 관심을 보이는 등 서구세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며 조선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계기가 된다. 덤으로 볼테르의 조선 백자 프로모션도 성공을 거두어 유럽의 중국 도자기 수입업체들이 공황상태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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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적인
간택
사실상 조선의 간택과 금혼령은 도성의 일부 경화사족만을 대상으로 할 뿐 대부분의 여염집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였으나, 아들 이산이 궁녀 성덕임과 눈이 맞은 것을 안 주인공은 천한 신분인 성덕임을 중전으로 만들기 위해 이번 간택은 여염집도 대상으로 한다고 발표한다. 어차피 처녀단자를 보내는 것은 수십명 정도에 불과하니 짜고치는 간택으로 성덕임을 뽑을 생각이었으나 사보를 두고 일어난 각 지방 양반과 아전들의 충돌로 전국에서 수백개의 처녀단자가 몰려오는 사태가 생기며 사상 최대 규모의 간택을 하게 되었다. 게다가 뜻하지 않은 변수가 생겼는데, 주인공은 성덕임에게 미리 짜고 친 문답을 진행하려 했으나 하필이면 그 문답의 실제 주인공인 정순왕후 김씨 본인이 간택에 참여해서 해당 대답을 해버리는 바람에 계획이 모조리 틀어질 뻔했다[10]. 다행히 성덕임은 이를 더 능가하는 답변[11]을 임기응변으로 행해서 간택에 합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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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전(鄕戰)
중인 출신인 성덕임이 지혜로운 답변으로 삼간택을 통과해 세자빈이 되었다는 소식이 사보들을 통해 전국에 알려지자 훤이 일으킨 변화로 인해 부를 축적해가던 지방 아전 등 중인층의 기세가 등등해지면서 지방 향반들과 충돌(향전)이 잦아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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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범(憲範) 제정 주장
조재호가 향전의 원인은 사대부는 권위를, 중인과 백성들은 재물을 잃을까 두려워함이니 임금의 권위 일부를 사대부와 백성들에게 위임하여 생명권과 재산권을 보장하는 헌범을 제정하자고 주장하고, 볼테르도 영국의 권리장전을 근거로 들어 이에 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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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학의 태동
헌범 제정 논의를 아들 대로 미루고 싶은 이훤이 전에 민당에서 서얼허통 반대를 위해 수집했던 각 고을의 신분별 범죄율 결과를 모아 통계를 내면서 통계학이 태동하게 된다. 다만 여기에 의도적으로 통계의 함정을 끼워넣었는데, 통계의 함정이 본격적으로 논의가 시작된 것은 19세기부터인지라 18세기의 기초적인 통계학 관련 수학 지식으로는 알아차릴 수 없어, 볼테르조차 속아 넘어가게 된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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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교육제도 논의 및
운동권(?)의 등장
통계 결과 양반의 범죄율이 상민과 대등한 것이 드러나자[13] 이훤은 이를 핑계로 헌범 제정은 시기상조임을 못박는데, 이를 아쉬워한 볼테르는 조재호와 손을 잡고 '그렇다면 우선 상민들도 예를 배울 수 있도록, 양반이 양반답게 구는지 지켜볼 수 있도록 하여 국민 전체의 민도를 높이자' 는 명분으로 국가에서 교과서를 지급하는 보통학교인 향숙(鄕塾)의 설립을 주청한다. 그리고 박지원을 비롯한 백탑시사 일당은 '상민들이 제대로 예를 배울 수 있도록 우리와 같은 선비들이 나서서 활동해야 한다' 라고 주장하며대학이 생기기도 전에운동권 활동에 뛰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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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경찰 겸 산학협력단 광익원(匡翼阮) 신설
백탑시사에서 향숙 신입생들에게 청교도 혁명 이야기를 하다가 역모 혐의로 신고되자 이훤은 또 박지원 패거리가 말썽이냐고 골치아파하면서도 이들을 방면하고, 대신 신하들에게는 진짜 역모를 잡아들일 비밀경찰로 사헌부 산하에 광익원을 신설하겠다고 한다. 정작 신하들도 이에 찬성하였으니, 어차피 전제군주인 주상은 언제든지 역모라고 사람을 잡아 가둘 수 있으므로 이를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기관이 있으면 역모라고 모함당할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논리.
한편 공을 세울 기회를 노리고 많은 하급 관료, 군관들이 뇌물을 바쳐가며 자원했고, 일단 돌려주라고 하고 새로 능력 중심으로 뽑아봤더니 뇌물까지 줘가며 기회를 노릴 만큼 재산 있고 영리하면 당연히 능력도 있는지라[14] 명단은 비슷했다나. 이렇게 선별된 광익원 검사들은 처음에는 마구 잡아들여 공을 세우겠다고 신이 나 있었지만 이훤은 이들을 비밀경찰로도 쓰긴 쓰지만 대부분은 수차 등 수리학을 공부시켜 학생들을 가르치게 하고 한양에서 공부한 학생들을 각 지방에 보내 농업을 돕도록 하는 산학협력단으로 이용한다. 하지만 이훤에게 대차게 당해본 일부 사족들은 자기 주변의 누가 광익원 검찰관인지 몰라 두려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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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편 유입과
모르핀의 정제
영국 동인도회사에서 조선에 팔 물건으로 옥양목과 함께 아편을 가져왔으나 이미 스페인과 파트너십을 마련한 이훤이 옥양목은 품질은 좋긴 한데 가격이 비단과 맞먹는다고 퇴짜, 아편은 조선의 청심원이 더 약효가 좋다고 퇴짜를 놓았다. 하지만 마침 '정순상계'를 세워 상업에 뛰어든 김연희가 철수하려던 영국인들이 떨이로 내놓은 아편을 매입해서 아편 장사를 시작해버리고 박지원네 백탑회보에 광고를 준다.
주인공은 조선에 아편 중독 문제가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광익원을 동원해 정순상계를 견제하려는 기존 상계들과 야합해서 조보를 통해 아편의 해악성을 강조하는 광고를 올려 이를 견제한다. 그러자 박지원은 가만히 당하지 않고 영국인들을 통해 아편의 약효를 입증하는 임상 사례들을 입수해 이를 소개하고 오히려 이 설전으로 아편이 주목받게 되어버린다. 결국 작전을 바꿔서 '아편을 술에 타 마시면 분명 뛰어난 진통 효과가 있으나 병자가 아닌 이들이 쾌락을 위해 아편을 피우는 것은 짐승과도 같은 행동이다'라는 프로파간다를 실시해서 체면을 중시하는 조선인들의 아편 중독을 최대한 막는 한편, 중독 문제가 심각한 흡연용 아편이 아닌 동시대 기준 실제로 진통제로 유용한 아편팅크의 형태로만 유통되도록 유도한다.
아편의 해악성을 뒤늦게 깨닫고 이훤에게 니가 친 사고 니가 해결하라는 압박을 받은 박지원, 백탑파 일당 및 휘말려든 광익원 관리들, 그리고 국왕에게 찍혀서 기껏 차린 상회가 망할까봐 잔뜩 독기를 품은 김연희는 그저 아편을 술에 타먹는다는 증언만 가지고 술이란 술은 다 써보는 수많은 실험 끝에 3번 증류한 삼해소주를 사용해 진짜로 기초적인 모르핀의 정제에 성공해버리고 만다. 이훤은 이에 흡족해하며 김연희의 정순상계에 편화산(모르핀) 특허 및 독점취급권을 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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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교과서 '교육과정' 편찬 및 이로 인한 민중시위 발발
남인 정재원(정약용의 아버지)이 국왕이 하사한 각하오(카카오)에 지레 겁먹고 하인에게 떠넘겼다가 하인이 카카오를 개에게 먹이고 개가 죽어버리는 사건이 터진다. 정약용이나 남인의 앞날을 막을 수는 없으니 정재원을 사면하기는 해야 하는데, 국왕의 자비로움을 명분으로 할 것이냐(채제공), 모든 인간은 신체의 위험을 피할 자유가 있기 때문에 죄가 없다고 할 것이냐(박지원)로 의견이 갈린다. 이훤은 결국 국정 교육과정을 편찬하여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 관점을 모두 교과서에 담고 백성들이 알아서 논쟁을 펼치도록 떠넘긴다.
하지만 국정 교육과정으로 인해 미리 교육용 서적을 인쇄해 놓고 판매하려 한 출판업자들이 손해를 보게 생겨서 반발한다. 박지원은 출판업자들 등 정부의 일방적인 시책으로 손해를 본 사람들을 끌어들여 육조거리에서 시위를 하겠다고 광익원에 미리 신고한다. 마침 양위 계획을 세우던 이훤은 시위를 양위에 이용하기 위해 박지원과 손잡고 시위 규모를 키우려다가 출판업자들이 아닌 물가상승에 불만을 품은 한양 주민들이 시위에 참가하여 규모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진다. 이훤은 선혜청에서 공짜로 묵은 쌀을 풀고 광익원과 오군영을 동원하여 도성의 풍물패, 마당패 등을 데려와 군중들의 관심을 분산시키며 겨우 시위를 해산시킨다. 이훤은 시위의 악질분자들과 악덕 상인들 일부를 체포하고 국정교과서를 직접 인쇄하는 대신 민간에 위탁하는 식으로 사태를 마무리하며, 박지원은 민중의 힘을 깨닫고 반성하며 선비로서 앞날을 고민하게 된다. 한편, 박지원이 해삼위(블라디보스토크)로 보내지는 등 백탑파 주요 인원들이 유배형에 처해졌고 박지원은 이훤 즉위 이후 처음으로 왕에게 한 방 먹인 사람으로서 큰 명성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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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향악의 조선 도입과 매스게임 도입
제임스 쿡이 볼테르에게 영국으로의 망명 및 등용을 권하자, 이훤은 영국이 조선의 실체를 알 수 없게끔 쿡을 속일 계획을 볼테르와 함께 세웠다. 이에 쿡과 함께 건너온 음악가인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를 활용해 보고자, 바흐가 줄기차게 주장했지만 유럽에는 통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던 교향악을 도입하려 한다. 그러나 장악원은 세종이 정간보를 창안하던 시절에 머물러 있었고, 이를 대신하려고 이덕무를 이용해 조금 음악적 지식이 있다 싶은 한량들을 긁어모아 교향악을 가르쳐 보았다. 그런데도 급조한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도저히 화음을 내지 못하는 처지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이에 이훤은 색칠한 등패와 대포를 교향악에 접목하고, 매스게임까지 도입해서 쿡 선장에게 조선의 위력을 선보인다. 이훤 왈, "어떻소, 가히 전위적(Avant-garde)이지 않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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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 허용 문제에 대한 가톨릭의 의견에 대한 의도적인 곡해
천주교도의 제사 위패 문제로 인해 조정이 시끄러워지자, 만력제때는 허용된 제사가 왜 강희제때는 금지된건가라며 교황청이 명 당시에는 문제삼지 않다가 청 당시에 제사 금지를 다시 들이민 사실을 가지고 이훤이 의도적으로 꼬아서, 교황청도 오랑캐의 제사는 진실된 제사가 아니라고 알고 금지한거다라고 주장했다. 물론 교황청에서는 조선 제사도 금지하겠지만 이렇게 뭉개고 넘어가면서 천주도 박해가 일어나는 것을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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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인단제, 차등선거,
게리맨더링
김치인이 만들려는 청명당을 박지원이 차지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이훤은 이 처사 위장 신분으로 김치인에게 권점(선거)를 통해 당수를 뽑을 것을 제안한다. 하지만 마을 하나 정도가 아닌 한양 전역의 당원들이 한 곳에 모이긴 어려울테니 지역별로 선거구를 나누고 각 지역에서 대표자를 뽑은 뒤 그 대표자들이 선거인단이 되어 당수를 뽑는 선거인단제를 제안한다. 거기에 더해 양반의 표가 상민의 표에 비해 많이 반영될 수 있도록 양반 지역 선거인단은 점을 더 많이 찍을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김치인을 지지하는 양반들을 선거구 일부에 몰아넣어 선거인단에 대한 영향력을 최소화했고, 게리맨더링된 각 선거구에 이훤의 뇌물을 받은 박지원 지지자들을 위장전입시켜서 박지원이 압승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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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 '공리전고' 출범, 복권
이훤은 복권 판매 정도를 떠올렸으나 이산이 중앙은행 제도를 떠올리자 감탄하여 바로 중앙은행 공리전고를 설립하고 원래 계획했던 복권은 백탑당이 하도록 한다. 백탑당의 1회차 복권은 하필 1/360의 확률로 갑자년 갑자월이 당첨 번호로 뜨면서 조작 논란이 일어났고 박지원은 1/360은 충분히 있을법한 확률이라고 해명하는 대신 1회차 복권을 가져오면 2회차 복권으로 교환해주겠다는 방법으로 관심을 돌려 해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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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통화기금 출범
중앙은행이 설립되기는 했으나 아직 조선의 자본주의가 활성화되지 않아서 사람들이 돈을 맡기기만 하고 대출은 하지 않자 국제통화기금을 만들어 일본의 번들에게 대출을 해주기로 한다. 영국, 스페인 등 열강들은 갚지 않으면 무력으로 집행한다는 제국주의적 발상밖에 떠올리지 못하는 반면 미래를 경험한 이훤은 일본에서도 많이 읽히는 조보를 이용해 돈을 갚지 않은 번을 돈을 떼먹는 염치없는 놈이라고 선전해버리고 구제금융을 해주겠다며 합법적으로 내정간섭을 하겠다는 등 더 세련된 방법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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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압형 (눈오리)
이훤이 눈을 보면서 지나가듯이 이런 장난감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이산이 직접 의뢰해서 눈오리 틀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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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크런
국제통화기금 출범 소식이 전해지자 투자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백성들이 '우리 돈을 일본에 주려고 한다' 정도로 이해하고 자기 돈을 되찾기 위해 몰려오며 뱅크런이 일어난다. 이훤은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일부 예금자들을 따로 불러서 직접 상자에 아무 돈이나 담아서 돈이 잘 있다고 보여주며 안심시킨 뒤 지금 가져가려면 가져갈 수 있지만 나중에 가져가면 이자를 받을 수 있다며 어음에 적어서 안심시키는 방법으로 이를 진정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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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소강생절
이훤이 블랑샤르를 따라 암행을 나가면서 야소강생절에 노인 분장을 하고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나눠준다는 미래식 크리스마스 문화를 도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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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과 근로기준법
뱅크런 당시 발급 해 주었던 어음이 청나라로 흘러 들어가 건륭제가 국제통화기금에 간섭할 여지를 주고 만다. 이에 이훤은 국제통화기금의 운용 자금이 실제보다 많아 보이도록 장부처리분식회계해 버리고는 국부펀드로 벤처 캐피탈 놀이 했다가 물려버렸다는 식으로 상황을 모면한다. 이를 본 조선인들은 청나라 황제도 인정할 만큼 공리전고는 믿을 수 있고, 거기에서 발행한 어음또한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 하게 된다. 그로인해 어음은 화패로서 활용되는데, 동전보다 신뢰 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면서 상인들이 노동자의 임금을 할인해서 지불하는 사건이 발샌한다. 이를 안 이훤이 박지원으로 하여금 공론화 시키려 했지만, 미복잠행 나왔던 이산이 이 사실을 먼저 발견하고는 먼저 터트리고는 최저임금제를 발의 한다. 이에 차별화의 필요성을 느낀 박지원은 중소상계들과 함께 근로기준법을 발의 한다.
- 포경산업 발전과 조선의 시베리아 진출
- 태극기 도입
- 삼부회 조기 개최
- 자유주의 창시
- 오행 계획
- 증기기관시설도감 설립과 증기기관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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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
아들 이산이 '이 처사'(이훤의 다른 신분)의 정체를 캐기 위해 무리할 정도로 집착하자 이를 걱정한 이훤은 이산의 관심을 돌리게 할 겸 여행을 권유한다. 이산은 처음엔 반발하지만 '국본인 네가 모범을 보여서 적당한 여가를 보내는 모습을 보인다면 공장 등에서 고공(노동자)들을 부려먹는 자들도 함부로 고공들을 대하지 못하고 대우를 보장할 것'이란 이훤의 논리에 넘어가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이 때 영빈과 관료들은 '세자께서 열심히 잘 하시는데 굳이 유람을 보낼 필요가 있습니까?'라고 반대하지만 '명색이 세자인데 금강산과 관동팔경 구경도 못 하냐?'란 주장에 바로 꼬리를 내린다. 이산은 세자빈 성씨와 여동생 청연공주, 매제인 홍국영과 함께 금강산과 관동팔경을 두루 구경하다가 영남 남인들과 접촉해서 그들을 위무하고 친위 세력으로 삼는다.
- 대륙 회의 조기 결성과 북미 식민지 독립 운동에의 조선의 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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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평과 화살배
서양과 빠른 소식 교환을 위해 소형 쾌속선(클리퍼) 도입이 활성화되면 좋겠지만 그 수요가 별로 없어서 고민하던 이훤은 아직도 쌀농사가 전부인 줄 아는 잔나비같은 시골 양반들을 도발시켜 클리퍼를 구입하도록 유도한다. 백탑회보에 쾌속선을 구입한 양반들은 돈방석에 앉는 반면 아직도 쌀농사나 짓는 양반들은 땅을 치고 후회한다는 내용으로 역사상 최초의 만평이 실렸고 후회하는 양반들은 원숭이처럼 팔이 비정상적으로 길게 그려졌다. 분노한 양반들은 박지원에게 검수가 부족했다며 형식적인 사과는 받았지만 자신들이 원숭이 취급당한 것에 자존심이 상해서 쾌속선을 사서 우리도 돈 벌 줄 안다며 본떼를 보여주기로 하여 이훤의 도발은 제대로 먹혀들었다. 어떤 사업을 벌일지 고민도 없이 쾌속선부터 구입한 이들은 빠르다는 점을 이용해 신선도가 중요한 해산물이나 과일 등을 팔기로 했으며 쾌속선은 화살배라는 이름으로 유행하기 시작한다. 이는 자연스럽게 농협, 수협과 유사한 협동조합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3. 151화 ~ 20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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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차 버마 원정과 국제의용군 창설
청이 13개 식민지에 은자를 무상대출의 형태로 지원해 주며 조선 몫의 은자도 빌려줬는데, 그 대가로 조선이 은자를 토대로 함대를 육성 후 버마 원정에 동참할 것을 요구한다. 이에 이훤은 구선복 특유의 방산 비리 수법으로 은자를 조선몫으로 횡령하는 한편, 병력은 일본의 사무라이들로 충당하려는 계책을 세운다. 문제는 일본도 오랫동안 평화로웠던지라 사무라이들의 질적 수준이 저하됐던 것. 이에 조선에서는 사츠마, 아이즈 출신 사무라이들을 중심으로 버마 해안가를 약탈하여 버마군의 시선을 분산시킨다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이렇게 편성된 조-일 혼성 부대에는 자연스레 국제의용군이라는 이름이 생겼으며, 서양 말로는 인터네셔널(internationale)로 칭해지게 된다.
- 해병대 창설
- 금서의 변
- 공개 증광시의 프로 스포츠(?)화
- 천부인권 개념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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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덕회(同德會)
차후의 13개 식믹지로의 파병 가능성을 염려하여 그간 가라에 가까웠던 순무별대를 위시한 조선군을 실제적인 무력을 지닌 강군으로 끌어들일 방안을 모색하게 된다. 하여 대리청정의 일환으로 훤이 산에게 일을 맡기고 구선복에게 훈련도감에서 나름대로 군재가 있다는 이들을 모아 세자의 일을 도우라 지시했는데, 산의 혹독한 기준과 갈굼을 견디지 못하고 훈련도감 군관들이 못하겠다고 하소연하고 만다. 이에 훤은 늘 그렇듯 박지원과 채제공으로 하여금 대책을 강구하게 하였는데, 그 대책이란 것이 인재 선발을 민영화 해버리는 것.[15] 게다가 이렇게 국방 싱크테크 격으로 결성된 동덕회[16]에 영입된 인재들이 이문원 같이 능력은 있지만 심각한 괴짜들인 기인이사들[17] 뿐이라 이들을 다루지 못해 고민하던 산이는 결국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하려고까지 한다. 물론 그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하려는 세자가 원역사에서도 명군으로 이름을 날릴 정도의 능력이 있는지라 무과의 체계화 및 사관 양성, 포탄 궤도 계산을 위한 오일러 영입 등 나름대로 정답에 가까운 방향으로 나아가며 아버지인 훤이 프리드리히 대왕과 백부 조카할 만 할 경지라고 칭송할 정도로 문제들을 풀어나간다. 하지만 원래 여럿이서 해야 할 걸 혼자서 하다보니 스트레스가 극심해지는 건 어쩔 수 없어서 이를 과음으로 풀다가 아버지에게 들켜서 걱정을 샀다. 다행히 아들이 걱정된 아버지가 적절한 조언을 해주며 포병 강화, 워게임 도입 등 꽤 준수한 수준의 혁신을 이루어낸다. 독자들 말로는 제대로 된 싱크탱크가 이루어졌으니 조선을 동수로는 이길 국가는 청나라를 빼면 당대에는 없을 것이라 칭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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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전 홍씨의
한성(閑星) 발견
교황청에서 조선 교구를 공식 설치하기로 하고 초대 주교로 예수회 소속 존 캐롤 주교가 조선에 입국한다. '조선 국왕이 볼테르에게 현혹되어서 자유주의란 몹쓸 사상을 퍼뜨리고 있다'라고 착각한 존 캐롤은 이훤을 비판하며 입씨름을 벌이다가 '조선이 서양의 모범이 되고 있다고 볼테르가 주장하던데, 그렇게 따지면 지금 조선을 발달시키고 있는 각종 과학 기술도 정작 서양에서 온 것 아닙니까?'라고 팩트폭력을 날렸다. 이에 자극을 받은 이훤은 조선만의 독자적인 과학 기술도 있음을 과시하기 위해 6번째 행성 관측을 관상감에 지시한다. 하지만 조선 뿐만 아니라 동서양 모두 수천년간 지구 외에 행성은 5개 뿐인 것이 상식이어서 관상감 관원들은 관측의 난이도 문제는 둘째치고 너무 파격적일게 뻔한 발견의 영향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주저하였다. 그러자 이훤은 중전 홍씨가 밤에 천문 관측을 하다가 우연히 새로운 행성을 찾아 내고 관상감 관원들이 이를 확인하는 것으로 무마시켰다. 행성의 이름을 짓는 것은 건륭제에게 맡겼다. 자칫하면 천자의 권위 운운하며 건륭제가 질투할 게 뻔하기 때문. 다행히 건륭제는 두둑한 은자를 하사하는 등 이를 치하하며 한성(閑星)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이 때 대신들과 입 맞추는 과정이 가관이다. 이훤이 영의정 김상철에게 '부녀자가 천문을 관측해도 되는 일인가?'라고 질문하자, 김상철은 '그건 당측천( 측천무후)도 하지 않던 짓이며 문정왕후 시절 각종 변괴가 일어난 것처럼 절대로 해서는 안될 일입니다.'라고 강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곧바로 이훤이 '내 배필 홍씨가 천문 관측을 하던데?'라고 말하자 곧바로 태세 전환해서[18] '중전께서 천문을 보시고도 변고가 일어나지 않은 것을 보면 이는 경사스러운 일'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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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의 등장과 분류학의 도입
조선을 통해 동서양의 학술 교류가 시작되면서 조선만이 아니라 아시아 여러 국가에 자생하는 생물의 상당수가 학명에 조선이 들어가게 된다.[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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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갈비의 탄생
미국 독립전쟁을 대비하여 순무별대와 해병대의 강무를 진행하였는데, 마침 훈련 장소가 춘천이라 미래의 기억을 떠올린 이훤이 군사들을 위무하고자 닭갈비를 배급하였다. 양배추를 제외하면 현대의 닭갈비와 동일하며, 세간에서는 역시 계륵(鷄肋)으로 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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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함외교(?)
존 캐롤 주교가 조선에 왔다는 소문을 접한 일본의 카쿠레키리시탄들이 조선에 와서 일본에도 신앙의 자유를 보장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훤은 이들을 이용해서 일본의 개항 규모를 더 늘리는 방안을 만들어 낸다. 존 캐롤 주교로 하여금 조선에서 건조한 서양식 군함들을 이끌고 에도 만으로 가서 훈련 명목의 무력 시위를 벌이고 막부 측과 담판을 짓는 것. 요구 조건은 카쿠레키리시탄들을 일본의 도시의 일정 구역에 수용하고, 이들에게 조선과 일본 간의 무역을 담당하도록 했다. 존 캐롤은 '이거 생각해보니 유대인들이 게토에 살고 있는 그 꼴인데? 천주교 신자들을 유대인 취급하는 거잖아?'라고 생각하며 황당해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근대에 서구 열강이 자주 행한 포함외교, 즉 군사력 과시로 압력을 가하는 행위와 유사하지만 내막은 아예 반대. 무력 시위도 그냥 일종의 화력 시범이어서 일본인들은 두려워하기는커녕 신기한 구경거리로 받아들였고, 조선에서 내건 수단도 '함포로 겁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 요구를 들어주면 막부에게 우리 함선과 화포를 독점적으로 팔아주겠다. 하지만 들어주지 않으면 막부가 아닌 다른 번들에게도 팔아버리겠다'라는 '포함을 강매하는 외교'였다. 막부 측에선 당연히 뒷목을 잡았지만 결국 조선 측의 요구를 들어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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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자금법 제정(분경엄금사목)
위의 포함외교로 카쿠레키리시탄이 무관세 교역을 할 수 있게 되자, 조선의 불교 승려들이 자신들도 무역에 참여 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취지로 공당에게 뇌물을 바치는 것을 알게 된 이훤이 혹시나 자신이 양위 할 때 민당과 공당이 인정혹은 뇌물을 받고 모두 힘을 합쳐 자신의 양위를 못하게 막을 것을 염려 해, 이를 막고자 하였으나, 이를 원천 차단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막을 수 없다면 양성화 하자는 생각으로 로비를 양성화 하게 된다. 이를 바로 본경엄금사목(奔競嚴禁事目)이라 하게 되었다. 그 결과 승려들의 무역 참여는 허락되지 않았지만, 승려들이 바치던 공물의 값을 제값으로 쳐 주는 것으로 일단락 되는 듯 하였다. 그러나 청탁이 양성화 되면서 양반계층만이 아니라 상민들 또한 정당한 인정만 양당에 바치면 자신들이 바라는 정책을 입안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되면서 다시금 이훤의 일거리는 늘어나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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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 감귤 사건과
미국 독립 전쟁의 발발
보스턴 차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보스턴 감귤 사건이 일어났다. 존 핸콕이 조선을 방문해서 대륙의회의 의견을 전달하고 귀국하기 전 김만덕이 개발한 설탕으로 조린 감귤조림을 구매해서 판매하기 위해 가져왔는데, 이걸 영국 세관에서 밀수품이라며 압수했다. 존 핸콕을 비롯한 식민지 지역 상인들이 하도 밀수를 빈번하게 저지르는데다 마침 해당 상품도 설탕을 이용한 상품이라서 서인도 제도에서 밀수한 것이라고 단정하고 압수한 것. 그러자 그렇지 않아도 영국 식민지 당국에 불만이 많던 식민지인들은 이게 빌미가 되어서 폭발해 버렸고 조선인으로 분장해서 영국 세관을 습격해서 감귤조림 상자들을 내던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조지 워싱턴을 비롯한 대륙의회 인사들은 일단 민병대를 소집하되 영국과의 실제 교전은 일어나지 않도록 단속하려 했지만, 결국 우발적인 총격으로 인해 민병대와 영국군과의 교전이 발생했고 끝내 미국 독립 전쟁이 발발한다. 이에 13개 식민지를 조선과 함께 지원중이던 스페인이 먼저 영국에 선전포고를 단행하고, 영국은 스페인은 물론이고 조선도 함께 견제하기 위해 양국에 선전포고를 진행한다. 하지만 훤은 유구국에 미리 함정을 파서 영국 사략선들과 외교관들을 나포하고 선전포고문을 받기 전에 폐기해 버렸다. 그러나 호레이쇼 게이츠가 웨스트포인트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정치적 위기에 몰린 존 애덤스가[20] 직접 조선으로 와 원군을 청하면서 도저히 외면할 수 없게 된 조선이 청나라에도 보고를 넣으며 조선과 청의 참전도 확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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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동군사훈련(가라)
미국 대륙회의에서는 독립을 선언하기 전에 매우 논쟁을 벌였으며, 다 때려치고 집에 가고 싶었던 워싱턴이 "조선이 실제로 어느 정도 군사력을 지니고 있는지 알아보고 결정하자." 라고 말하는 바람에 의원들이 모두 동의하여 베네딕트 아놀드가 조선으로 보내진다. 주인공 이훤은 당당하게 염탐질을 하는 것을 잡아오기는 했는데 지금까지 허풍을 떨어둔 것 때문에 그냥 쫓아낼 수도 없는 일이라, 이번에도 가라로 사태를 해결하려고 한다.
그리하여 한 달 만에 포경업에 종사하던 전열함대를 호출하고[21], 오군영 중에서 훈련도가 높은 병력 3천명을 뽑고, 영남 속오군에서 대항군 4천명을 골라 외국인 참관인들(영국인 제외) 기분 좋으라고 영국군스럽게 레드코트를 입히고, 심지어는 일본에서도 무사 2천명을 불러왔다. 당연하지만 이 일에 참여한 신료들이나 일본 관련자들, 그리고 독자들까지 모두 "이쯤되면 이건 가라가 아니다" 라는 결론을 내렸다.
아울러 열심히 싸워서 독립을 쟁취해 장래 조선이 빌붙어야 할 미국이 거꾸로 조선에 빌붙으려고 하는 행태가 괘씸했으므로 워싱턴을 비롯해 이훤이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들을 마구 띄워줘서, 워싱턴은 왜 나는 편하게 살 수 없냐고 비명을 질렀다.
4. 200화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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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평등선언》, 《방벌론》등 계몽주의 텍스트 유포
볼테르가 퍼트리고 사대부들이 발전시킨 계몽주의 사상에 이훤의 미래지식을 조금 추가한 다음 유교적 논리로 포장하여 유럽에 퍼트렸다. 유럽에서는 볼테르밖에 읽을 수 없는 초서체를 이용하여 암호화 하였으며, 인권에 대한 구체적 이념은 물론 저항과 혁명의 구체적 방안까지 서술된 그야말로 사상 폭탄이었다. 그렇잖아도 유럽과 미국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조선발 프로파간다에 시달리던 영국에선 결국 조선왕을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를 수하로 둔 레비아탄 취급하는 팜플렛을 발행한다[22]. 본문에 실제로 삽화가 첨부되었으며, 그 돌[23] 위에 얹힌 지구본을 사악하게 웃으며 시뻘겋게 불타는 눈으로 내려다보는 실로 악당스러운 모습[24]으로 표현되었는데, 뜬금없게도 뒤쪽에는 그 상자도 하나... 진짜로 화가가 왠지 모르게 넣어야 할 것 같아서 넣었다고 작중 직접 언급되었다.
미국인들은 이를 보고 영국이 진지하게 예산을 들인 고급품이라며 지금까지 잘 먹힌 프로파간다가 깨질까 우려했지만 정작 구선복과 이문원은 남의 나라 어진을 함부로 다루는 것에 개탄했을 뿐, 그 내용에 관해서는 "반쯤은 맞는 것도 같고..." 라는 느낌이었기에 부정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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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격심법
이훤의 서자들인 은언군, 은신군이 종친으로 조용히 살아가는 것에 불만을 품고 자신들과 다니는 한량들과 함께 해병에 자진 입대를 시도했다. 이훤은 해병과 같은 군 생활 자체가 절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유격 훈련을 친히 진행한다. 한량들은 이훤의 의도대로 대부분 유격 훈련에 학을 떼고 도망갔지만, 은언군과 은신군은 오히려 부왕인 이훤에게 인정받은 줄 알고 더 열의를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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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구사
조선 주도의 식민지 개척 관청. 사실 출세욕에 불타고 있는 왕의 서자들에게 위험하지 않고 폼나고 국내 정치에 연관되지 않은 직위를 쥐여주기 위한 조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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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의 세계화와 영국인의
김치맨화
영국 해군이 괴혈병 대책으로 원역사에서 도입했던 라임 주스 대신 김치를 도입했는데, 원본 김치와 다르게 유럽에서 구할 수 있는 피망을 이용해서 만든다. 이로 인해 원역사처럼 라이미가 아닌 김치맨이라는 단어가 한국인이 아니라 영국인을 비하하는 명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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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군 선발대 미국 도착 및 프로파간다전
선발로 조선군 50명이 도착하였는데, 도착하자마자 안내인을 붙여 영국 장교들을 생포해 와서 "명령에 의해 조직적으로 약탈을 하고 있었다." 라는 자백을 받아낸다. 여기에 "당신네들은 향신료 좋아하잖소" 라는 말과 함께 '약간의 향신료를 더해' 독립에 관심없던 미국 식민자들도 약탈을 피하기 위해 싸우게 만들었고 특히 장교를 저격하는 것을 비겁하다고 생각하는 서양의 전쟁문화에 "폭군에 부역하는 것 또한 죄이며, 호구를 챙기려고 입대한 병사들보다 죄를 짓도록 강요하는 장교가 더 큰 벌을 받아야 한다." 라는 반론을 가한다. 덕분에 그렇잖아도 야생동물이 많아 조준사격에 익숙한 미국인들은 영국군 정찰대가 나타나면 대놓고 장교를 노려서 쏴대기 시작했고, 영국군측이 "충성스러운 신민의 재산권은 보호된다." 라고 포고하자 "반역자의 재산권은 인정하지 않는대! 누가 반역자인지는 지들이 정하겠지!" 라는 재반격을 가하는 등 조선군은 프로파간다전에서 압도적으로 앞서나간다. 한편 멀리 조선에서는 이런 보고를 받고 최치원의 토황소격문이나 미래의 키보드 배틀 등을 언급하며 설전에서 이긴 것도 승리로 쳐서 신나하고 있었다.
아울러 장교를 포로로 잡은 방법이 오른쪽 무릎을 조준사격해 맞추어 도망치지 못하게 만드는 것. 한 명이라면 우연이겠거니 했지만 잡혀오는 족족 오른쪽 다리에 총을 맞아있는 가공할 사격실력에 미국인들도 영국인들도 독자들도 경악했는데 이들은 딱히 사냥꾼 등을 모집한 게 아니라 현역 조선군을 그냥 까라면 까서 만들어낸 명사수들이었다[25]. 즉 곧 넘어올 조선군 본대 5천명들도 이 정도 실력은 될 것이고 적 장교들은 약탈 범죄를 지휘하는 악당이라 하여 조준사격하는 데 충분한 정신무장 또는 합리화까지 되어 있어서, 그간 독자들은 조선군이 아무리 잘 훈련되었더라도 퍼레이드용 군대로 라인배틀을 하기는 무리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라인배틀을 할 필요가 없네...?" 라는 반응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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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 발발
미국 전역에서 조선군이 직접 싸우게 두고 싶지 않았던 주인공이 볼테르를 통해 프로파간다전을 벌이자, 프로파간다의 방향이 달랐을 뿐 비슷한 짓에 익숙했던 영국이 반격을 가해 프랑스 국왕 루이 15세에게 볼테르를 비롯한 국민의회를 반역도로 지목할 수 있는 핑계가 주어진다.
이에 볼테르는 선제공격을 결심하였고 "프랑스의 주인은 백성이며, 왕은 집사일 뿐이다. 주인이 집사의 무례를 벌하는 것을 반역이라 하는가?" 라는 논지 하에 바스티유 감옥 습격사건이 원역사보다 무려 17년 앞당겨 일어났으며, 프랑스 역사상 이런 경험이 없었는지라 진압을 못하고 결국 루이 15세는 국민의회의 대영선전포고 요구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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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군과 영국군의 전초전
미국 독립 전쟁을 후원하기 위해 에스파냐령 플로리다에 도착한 조선군은 철저한 외적 군기 덕택에 군기빠진 스페인군에서도 한층 군기빠진 식민지 주둔군만 보아오던 현지인들에게 전쟁기계라는 경탄과 경계를 받으며 전장으로 진군했다. 게다가 청나라 덕택에 전쟁 예산만은 충분했으므로 뜬금없이 천축인이라고 부르는 야인들에게 풍족하게 돈을 주고 나룻배까지 빌려서 밀림과 늪을 뚫고 적절한 위치로 기동할 수 있었다. 물론 조선군들 입장에서는 상상도 못한 험로였지만.
반면 영국군은 유럽에서의 프로파간다전 때문에 독일 헤센 용병대도 고용하지 못했고, 프랑스가 언제 선전포고할지 몰라서 원정군을 더 보낼 수도 없고, 아메리카에서는 장교 저격전 때문에 정찰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으므로 '초식동물이 아니고서는 통과할 수 없을 밀림과 늪을 뚫고 온' 조선군이 (돈으로 산 풍부한 식량 보급과 외적 군기 및 목욕에 대한 집착 때문에) 말끔한 것을 멀리서 보고 이름 높은 훈-국의 지휘력에 놀라면서도 그나마 일본과 중국 보조병이 도착하기 전에 전투력을 시험해 보자고 경보병들을 내보낸다.
그렇게 벌어진 소규모 전초전에서 조선군의 전술은 아니나다를까 저격전. 주변을 정찰하던 조선군을 향해 기습을 건 영국군은 조선군들이 우르르 도망치는 것을 보고 신나했지만, 이겼다고 생각하고 돌아보니 정밀한 사격에 여기저기 죽어나가 있었다. 정작 조선 병사들은 무서워서 한 발 쏘고 도망친 것이었으나 그 와중에 맞혔다는 것도 놀라운 실력이고, 이것을 체계적인 사격 후 이탈 전술로 받아들인 영국군 지휘부는 "역시 조선군은 전장의 명예보다 승리 그 자체만을 위해 조직된 군대" 라며 경계심을 더하여 '병력을 크게 늘려서' 공격하기로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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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해방령과
이모티콘 도입
상술한 영국군의 병력 증강 계획은 노예해방령을 내려서 흑인들을 노동력 등으로 사용한다는 것이었는데, 이것도 이미 조선군의 시야에 있었다. 아울러 노예 지주들이 군량을 팔면서 노예를 되찾아달라고 요청하자 조선군 지휘부는 미국인들의 노예 대우를 알아보고는 "이러니 다들 도망가지 멍청이들아" 라는 느낌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며 전권을 맡긴다는 서류에 서명하게 만든다.
한편 영국군 진지의 흑인들은 전쟁이 끝나면 노예를 해방란다는 내용을 매우 고풍스럽고 폼나게 써서 이해하기 힘든 포고문을 간직하고 몇 번이나 어렵게 읽으며 이게 거짓말이 아니기만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조선군이 연에 전단을 매달아 영국군 진지에 살포한다. 지극히 간단한 단어에 목판을 따로 팔 필요도 없이 활자만으로 그림을 만들어 곁들인 모 게임 광고문구 같은 내용이었기에 영국군 장교들은 이를 비웃었지만 그들이 말한 대로 학식 짧은 흑인들도 단숨에 이해했고, 그 내용이 '귀순하면 지금 당장 바로 즉시 자유!' 에다 '영국군 서류나 무기 들고 오면 포상!' 이라는 내용이었으므로 일단 무기고와 식량 창고에 경계를 세우고 흑인들의 감시를 강화한 결과, 역시 믿음따위 없다고 생각한 흑인들이 난동을 부리며 일제히 탈영. 결국 영국군은 병력 증강에 실패하고 조선군과 정면 승부를 피해 후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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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식 기업운영 및 노동자 관리기술 전파
한편 노예들이 해방되어버린 지주들에게는 노예를 노동자나 소작농으로 고용하고 임금을 숙박비, 식비, 도구 대여비 등으로 회수하라는 선진적인 지식을 전파한다. 전 노예들도 딱히 갈 곳이 없으니 여차하면 또 도망치면 된다는 기분으로 예전 농장으로 돌아갔다.
결과적으로 전 노예들이 받는 임금의 9할은 이런저런 비용으로 회수되고 남은 1할도 지주가 숙소 옆에 차린 술집에서 다 써버리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채찍질이나 위협이 금지되고 이제는 노동자나 소작농이 된 흑인들과 마찬가지로 백인 지주와 관리직들도 어떻게 흑인들에게서 임금을 회수할지 골머리를 앓게 되었으니 보다 '공평하게 고통받게' 되었다고 하겠다. 어느 농장에서는 한 푼이라도 더 회수하기 위해 야학도 세웠다고.
여담으로 백인 관리직들이 채찍을 쓰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예전 노예 숙소를 그대로 쓰고 있는 노동자 숙소 안에 총과 화약이 있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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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극 작품의 조선 유통
원래 역사에서도 볼테르가 프랑스에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퍼뜨리려 했는데, 이것을 반영하여 볼테르를 통해 조선에도 세익스피어 비극, 그리스 비극들이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산이의 마음을 달랠 연극을 만들려는 훤에게 박지원이 제안한 게 햄릿, 리어 왕, 오이디푸스 같은, 왕실이 끊기거나 사촌이 조카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하거나 아들이 부친을 죽이고 모친과 결혼한다거나 하는 조선 기준에서 상당히 괴악한 물건들이라는 게 웃음 포인트. 그리고 왕위를 물려주려는(양위하려는) 훤과 그 뜻을 깨닫고 '양위할 생각이 안드시도록 왕위에 있기 편하게 해드리겠다'고 하는 산.
[1]
19년이나 빨리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금보다 장수한
조선의 임금은
태조,
광해군
고종 밖에 없다. 당시 시점으로 보면 광해군은 왕 취급이 아니고 고종은 태어나지도 않았으므로 2번째로 가장 장수한 임금인 것.
[2]
그래서 '섬돌'은
입에 올리기 두려운 물건이 된다.
[3]
이 때 '중대장은 너희에게 실망했다' 드립도 나온다.
[4]
상인들 입장에서 보자면 무림에서 속세로 나온 협객이 객잔에서 부모의 원수를 만나 칼을 빼들었는데 갑자기 나졸들이 달려들어
관무불가침 따위 무시하고 육모방망이로 후려 패는 것과 다름 없었다.
[5]
청에 항복한 준가르 전사로, 창술과 기마술에 능해 건륭제의 총애를 받았던 실존 인물이다. 원래 역사에서는
주세페 카스틸리오네를 시켜 아옥석지모탕구도(阿玉錫持矛蕩寇圖)라는 그림까지 남겼을 정도. 세계사 교과서 같은 곳에 청나라 팔기군이 돌격하는 모습이라는 설명으로 많이 소개되었다.
[6]
여성들을 위한 이야기가 부족하다는 홍연숙의 말을 듣고 새로이 끌어다 썼다.
[7]
n은 실험 횟수를 의미한다. 즉
자기 자신. 이밖에도 뒤주라이더, (이훤 본인이 언급하기로는) 뒤주워프술 등 갖은 드립이 다 터졌다.
[8]
이훤 생각에는
파시스트 VS
공산주의는 결론이 쉽게 날 수 없으니 존재감이 잊혀질거라고 계산했다.
[9]
주인공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실제론 이걸 알리없는 사람들이 무서워할 것까지 이용했다.
[10]
정순왕후임을 알게 되자 자신의
계모가 졸지에 자신의
며느리가 되는 개족보가 짜여진다고 경악했다.
[11]
"목화가 솜이 되는 것은 사람의 손을 타는 것이지만, 장미는 스스로 노력하여 향과 자태를 뽐내니 장미야말로 목화보다 더 아름다운 꽃이다"라고 답했다. 이는 본의아니게 조선의 자강불식과 계몽주의로의 여론 노선 변경을 초래했다.
[12]
애당초 통계학이라는 용어 자체가 작가 후서에도 나오지만 이 시기에는 독일어에만 존재하는 용어고, 그것도 국가를 운용하는 예산운용에 가까운 의미로 쓰였다.
[13]
상술한 통계의 함정이 쓰였다. 18세기에는 이미 신분제도가 상당히 혼란스러워진터라 족보위조등이 성행했고, 당연히 진짜 상민의 범죄라도 족보위조를 통해 양반의 범죄로 둔갑할 수밖에 없는 시대였다.
[14]
정확히는, 그럴 주변머리가 없으면 아무리 유능해도 능력을 발휘하기 전에 진작에 도태된다.
[15]
대놓고
환제(후한)과
영제(후한)이 언급된다.
[16]
원 역사에서는 정조의 최측근 비선 조직에 가까웠다.
[17]
이문원은 대놓고 '저는 글을 모릅니다'라고 반항했고
권철신은 병법을 논한답시고 천주교 신앙고백이나 하고 있어서 이산의 뒷목을 잡게 했다.
[18]
태세 전환을 안 할 수가 없는게, 저 발언은 곧 '지금의 중전은 문정왕후나 측천무후만도 못한 여자이다'라고 충분히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19]
원 역사에서는 같은 이유로 학명에 일본이 들어가는 생물이 많다.
[20]
호레이쇼 게이츠를 적극 지지한 대표 정치인이었기 때문. 기껏 밀어준 장수가 패해서 13개 식민지를 위기로 몰아넣었으니 애덤스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21]
구체적인 숫자를 언급하지 않고 '동래 앞바다를 가득 메울 정도는 아니지만 꽤 존재감이 있는' 이라고 묘사했다. 고래 한 마리 잡는데 대여섯 척이 포위하고
대장군전을 퍼붓는다고 하니 수십 척 단위일 것.
[22]
그동안 "
박지원"이 "프리메이슨 조선 지부장(마스터)"이라는 드립성 서술은 꾸준히 있었다.
[23]
섬돌.
[24]
'은퇴 후 세계여행 계획을 세우고 있다.' 라는 댓글도 있다.
[25]
이 와중에 "근데 우리는 뭘 까는 거지?" 하는 의문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