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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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총통에 장전된 대장군전의 레플리카. 국립진주박물관 옥외전시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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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장군전(大將軍箭)은 조선 전기에 개발된 천자총통용 화전으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 된 천자총통이 명종 대에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16세기 이전부터 고안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구조는 끄트머리에 화살촉 모양의 철혹이 있고 세 개의 철우(날개)를 부착한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으로 재질은 철제 또는 목제였으며 병기도감인 『 화포식언해』에는 무게가 56근(약 35.8kg)이고 사정거리는 900보(약 1.26km)라고 기록되어 있다.참고로 비슷한 시대의 승자총통 같은 조선의 개인총통에서도 화포 본체와 비슷한 사이즈의 관통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었다. 임진왜란 이후로는 화약의 효율성 때문에 다시 소형화 되어 지자총통에 사용하는 장군전(將軍箭) 등의 파생형이 다수 생산되었다. 덕분에, 나무 재질로 만든 소모품임에도 실제 유물이 종종 남아있다.[1]
대장군전의 경우 국내에 실물은 남아있지 않으며 임진왜란당시 왜장 구키 요시타카가 가져가서 현재 후손인 구키 다카쿠니가 소장하고 있는 물건이 유명하다. # 가시나무 재질로 철촉은 없다.
2. 구조와 성능
목제 대장군전 유물[2]과 철혹 부분을 제외한 길이 |
디자인이 1500년대에 만든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놀라울 정도로 현대적인데, 가늘고 긴 투사체에 날개를 달아서 탄도를 안정화시키고(날개 안정), 발사 시 투사체로부터 분리되는 송탄통[3]에 실어 발사하면 운동에너지로 표적을 관통-파괴하는 탄( 철갑탄)이니 어떻게 보면 현대의 날개안정분리철갑탄의 선구적인 개념을 갖는 무기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저땐 유체역학이나 탄도학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었으므로 어떤 방법으로 디자인했을지는 대충 감이 올 것이다.
해군사관학교에서 복원 발사한 대장군전. |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올려졌던 일본 쪽 장계에 "조선군은 대들보를 뽑아서 대포에 넣어 쏜다."[4] 라든가, "조선군이 쏘는 화살은 통나무만 하다." 같은 말이 있는 걸 보면, 기선 제압용으로 성능은 말 그대로 죽여줬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해군사관학교에서 재현한 대장군전이 400m 거리에서 화강암 틈새를 파고들어 80cm나 뚫고 들어갔다는 기록을 남겼는데,[5] 이 정도면 대함 관통탄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고 방어할 수 없는 무기체계라 왜군이 겁을 안 먹을 수 없었을 것이다. 심지어 당시 해군사관학교에서 재현했을 땐 포대가 터질 우려가 있어서 화약을 문헌에 기록된 정량보다 40%로 줄여서 위력을 감소시켰는데도 이 정도 위력을 발휘했다.
3. 실전 활용성
대장군전이 해전에서 효율적인 무기였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는데, 일단 17세기 초 당시의 해상 화약무기들은 목선의 특성상 무거운 화포 배치가 불가능했기에 10파운드 이상의 대형 철환이나 사석을 날려 함체를 파괴하는 것은 19세기가 넘어서야 가능해졌다. 때문에 함포전이라고 해도 배를 목표로 하는게 아니라 상대측 선원을 살상하거나 불을 지르거나 혹은 여러 방법으로 돛대를 부숴 상대의 기동력을 없애는 방식이었다. 실제로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은 튼튼하고 거대한 판옥선을 성채처럼 사용하여 요새의 농성전처럼 달려드는 왜 수군을 조란환[6]으로 제압하는 전법을 사용했다. 왜 수군은 보통 빠르게 적 배에 돌격해서 백병전으로 제압하는 것을 주 전략으로 했기 때문이다. 현재 학계에서는 천자총통보다 작은 사이즈인 지자총통과 현자총통을 임진왜란 당시 수군의 주력 화포로 추정하고 있는데, 산탄을 끼얹는 방식으로 쇄도하는 적군을 막는다면 대형포탄 한 방 쏘는 것보다는 화약을 여러 적병에게 나누어서 사격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인 선택이기 때문이다.[7][8]반면 대장군전은 탄자형태에 의한 관통력을 바탕으로,[9] 17세기 선박에 수용가능한 천자총통급의 화포로도 적함에 구멍을 뚫어버리는, 그야말로 근대적 해전을 목적으로 구상되고 만들어졌다. 이것은 상술했듯 소형선으로 접선 후 백병전을 기본으로 삼는 왜 수군에게는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을 수 있으나, 긴 사정거리와 파괴력으로 왜군 대장선의 빈약한 장갑[10]을 종잇장처럼 찢어버리고 선체에 큰 타격을 주며 찢어진 장갑재로 발생한 파편에 내부 인원을 초토화시키는 대장군전의 위력은 충분한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해전에서 중요한 승리 조건중 하나가 상대 기함을 침몰시키는 것이라 상대적으로 근접 백병전 시도를 하지 않고 후방이나 전열 중심에 대기중인 대장선에게 타격을 제대로 주기 위한 수단으로도 대장군전을 준비했을 수 있다. 장거리에서 적함 관통 타격이라는 점에서 운용교리가 하푼과 같은 현대의 대함미사일과 거의 일치한다.
현재 일본에 당시 사용된 실물이 하나 남아있는데, 안골포 해전 당시 구키 요시타카가 전투 도중 자신의 대장선에 맞은 것을 챙긴 것이다. 당시 구키가 이끌던 함선은 기함만 빼고 모두 격침되고 기함 안택선이 전진해 패잔병들을 수습해 육로로 도주했을 정도로 처참하게 깨졌는데, 그 과정에서 대장군전이 기함 안택선에 명중한 것으로 보이며, 구키는 이 패전 이후 왜 이런 굴욕을 당했는지 설명하기 위해 가져간 것으로 추정된다. 실물 사진 링크 구키 가문에선 차마 '격침당한 기함에서 건져왔다'고는 못하고 1593년 부산 해전에서 노획했다고만 적어놨다. 그나마 안골포에서 구키가 탔던 안택선은 원래 히데요시가 조선에 건너올때 타려고 만든 일본 수군 총기함 '니혼마루(日本丸)'로 일반 안택선보다 더 방어력이 높았기 때문에 대장군전을 맞고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대장군전은 구키 가문 후손의 협조를 받아 2017년 국립진주박물관의 정유재란 7갑자 기념 전시회에 맞추어 전시를 시작했고 현재도 볼 수 있다.[11] 구키가 대장군전을 챙겨간 정확한 이유는 히데요시와 다이묘들에게 패전을 보고해야 하는데 함대 숫자의 차이를 생각하면 그대로 이야기해봤자 털릴것이 뻔했기에 조선의 수군이 매우 강력했다는 어필을 해야 했는데, 그때 저 대장군전을 참고자료로 챙겨가서 "조선 수군은 이런 흉악한걸 쏘고다니는 놈들입니다. 이런 놈들을 상대로 살아돌아온것만 해도 기적입니다"라고 해명하기 위해서였다.
1차 진주성 전투에서도 대장군전이 쓰였다. 주로 타케타바를 파괴하는데 쓰였으며, 지자총통같은 화포에 좀 더 구경이 작은 장군전 혹은 차대전으로 썼을 것이라 보고 있다.[12]
일본에서 비슷한 원리를 지닌 무기로 대조총에 장전해서 쏘는 불화살인 보히야(棒火矢)가 있다. 다만 그 크기가 차대전보다도 작은데다 직접 충돌시켜 파괴하는 목적보다는 신기전이나 주화처럼 먼거리에서 적의 시설을 불태울 목적으로 사용하였다.
4. 대중매체
- 이순신 3부작
-
명량
명량 해전에 선두로 나가 있던 이순신의 대장선에 왜장 구루지마가 보낸 화공선이 도달하지만 탄약이 다 떨어져 발만 동동 굴리던 차에 탄약고 문을 여니 탄약고 옆에 기대어 있다가 툭 하고 넘어지듯 떨어진다. 이를 비장의 카드로 마지막 한 발을 시도하지만, 위력이 지나치게 강해 선측을 반대편까지 그냥 관통해 버려 유효타를 입히지는 못했고, 대신 관통당한 방향을 통해 화공선 안의 포로들이 보이는 전개로 이어져 스토리를 진행하는 장치가 된다. -
노량: 죽음의 바다
노량 해전 개전 초기에 조선 해군 특유의 화력시위를 뽐낼 때 잠깐 사용하는 모습이 비친다. 등장 시간은 짧지만 왜군 함선을 말 그대로 찢어 발기는 파괴력을 보여준다. 이후 노량 해전 중반부 관음포 포위망을 뚫기 위해 돌격하는 일본 선단의 허리자르기를 시도할 때 판옥선 전면부에서 5발의 대장군전을 총통 각도를 내려 직사로 발사해서 세키부네 서너대를 일거에 찢어버리는 기염을 토하는 것으로 한 번 더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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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함께 사라지다(한국 영화)
작중에서 악역들이 서빙고에 저장할 얼음을 캐던 인부들을 해치기 위해 온갖 무기들로 그들이 있던 빙판을 파괴할 때 노포와 함께 쓰였다. 특히 설명에서 나온 것처럼 대들보같은 크기의 나무기둥 빙판으로 날아와서 박히거나 아예 뚫고 들어가는 것이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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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이순신
노량 해전에서 등장한다. 이동하던 왜군 함대를 향해 매복하던 조선 함대가 쏴 명중시킴으로써 전투의 시작을 알린다. 해당 스크린샷은 극중에서 조선 수군이 전술훈련을 할 때 발사한 장면이다. 실제 역사 기록에 따르면 안골포 해전 당시에 구키 요시타카의 어린선에 대장군전이 날아왔고 이를 퇴각하는 과정에서 수거해 왜군 진영으로 돌아가는 내용이 추가되어야 했으나 당시 드라마에서는 이를 묘사하지 않았다.
초반부 노량 해전에서 대장군전이 폭발하는 모습을 연출해 고증오류를 범했으나 추후엔 이를 수정했다.
5. 관련 문서
[1]
임란 초기에는 천자총통을 주로 사용하였으나, 중기 이후로는 지자, 현자, 황자 등 소형 총통을 장비하였다. 천자총통의 화약 소모량에 비해 효과는 상대적으로 미미했기 때문이다.
[2]
구키 요시타카가 임진왜란 당시 피격 당한 것을 가져간 것이다.
[3]
현대적인 개념의 사보(sabot)와는 좀 다르지만, 중세 대포의 격목이 이에 해당한다.
[4]
현대로 치면 국내 밀덕들이
러시아의 로켓을 두고
전봇대 발사기라고 부르는 것과 유사하다.
[5]
단순히 돌을 뚫고 들어간 것이 아니다.
화강암은 높은 압력 하에 용암이 천천히 식어 만들어진 굉장히 단단한 암석 중 하나로, 화강암질 기반암은 다른 암석보다 풍화에 강해 먼 과거 마그마 활동이 있었던 사화산이나 풍화가 심한 산에서 다른 암석이 깎여나가고 남은 화강암질 기반암이 드러나 있는 것을 볼 수 있고, 현대에서도 공사를 진행하다가 화강암 지대를 만나면 굉장히 곤란해지거나 진척 속도가 엄청나게 감소한다. 대표적으로
남산 밑으로 지나는 지하철이나 터널이 적은 이유도 바로 남산 지하가 전부 화강암이기 때문. 현대 건축의 꽃인 콘크리트의 압축 강도는 28 MPa이고 화강암은 200 MPa임에 주목하자. 실제로 이걸 직격으로 맞은 목선은 바로 선체 하단까지 관통되었을 것이다. 특히나 이 당시의 왜선들은 삼나무와 쇠못등을 쓰다보니 참나무나 소나무 목재와 나무못을 쓴 판옥선들에 비해 구조방어력에서도 매우 취약했고 선체의 하단에 구멍이 뚫렸다는 것은 곧 근고를 가리지 않고 함선에 매우 치명적인
침수가 발생하는 것과 같았다.
[6]
천자총통에 주로 장전되었던 산탄포, 서양에서 쓰던 포도탄과 일치한다.
[7]
지자총통과 현자총통도 대장군전의 축소판인 장군전과 차대전을 뻥뻥 발사했다는 걸 생각해보면 이런 물리적인 대함 타격에는 단순한 심리전 이상의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이름이 '대장군'인 이유가 이 화살이 적진에 떨어지면 그 기세에 눌린 적군의 사기가 떨어지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8]
실제로 영국 해적이 이런 산탄포를 사용해 상대편을 몰살시킨 기록이 있다.
[9]
투사체의 관통력은 접촉면적에 반비례한다. 즉 같은 질량의 탄환을 쏘더라도 둥그런 쇠구슬이나 사석보다는 뾰족한 화살 형태가 더 깊이 뚫고 들어가는 것. 같은 원리로
분리철갑탄과
날개안정분리철갑탄은 관통자의 접촉 면적을 기존 철갑탄보다 줄인 형태이다.
[10]
대형선인
안택선에도 가벼운 대신 강도가 떨어지는
녹나무,
삼나무를 사용한데다 두께도 얇았다.
[11]
몸통 길이는 182cm이며, 최대 지름 9.4cm, 무게 10.6kg이다. 머리 쪽에 박았던 철촉은 사라지고 없는 상태다. 철촉이 보통 10cm 내외인 점을 고려하면, 전체 길이는 192cm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연구 결과, 재질은 한국 남해안과 제주도 등지에서 자라는 가시나무였다.
[12]
임진왜란과 진주성전투. 국립진주박물관.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