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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07 14:44:42

타케타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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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타케타바.jpg
타케타바를 응용한 다양한 방패들. 좌상단이나 우하단이나 모두 개인용 타케타바(竹束; たけたば)가 아니라 타케타바를 여럿 합친 단위부대용 타케타바우시(竹束牛; たけたばう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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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특징4. 대중매체 속 등장5. 같이보기

1. 개요

일본 전국시대에 만들어진, 대나무 다발을 모아서 엮은 일종의 설치형 방패. 서양의 파비스 맨틀리트에 대응하는 일본식 방패이다.

2. 역사

본래 일본 전국시대에 사용되던 방패는 나무판자를 잇대고 약간의 철판을 덧대어 개량한, 직사각형 형태의 카키타테(掻盾)였다. 이것은 적의 투사병기 공격을 막고자 사용하던 것으로, 구체적으로는 주로 소나에(備え, 장창보병대)가 적군한테 창을 세워 정렬한 채(야리부스마槍衾やりぶすま)로 돌격을 걸기 직전, 지근거리에서 행하는 의 견제사격(직사사격)이나 투석 부대가 던지는 돌을 막아내기 위한 것이다. 대단위 부대가 행하는 활의 제압사격(곡사사격)을 막아내는 데에는, 목화실로 짠 '강보'라 불리는 질긴 천을 사용해 부대 전체의 머리 위를 덮어 막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포르투갈 등 서양에서 상인이나 선교사가 일본에 들어오고 무역을 행하게 되면서 조총 등 화기가 전해지기 시작하며 점차 전통적인 카키타테는 그 설자리를 잃게 되었다. 기껏해야 판자를 이어붙이기 위한 고정쇠를 덧대거나, 테두리 부분 정도에만 철판을 덧대어 만들기에 근본적으로 나무판자에 지나지 않는 카키타테로는 조총탄을 막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국시대의 무장들은 조총탄을 방어하는 새로운 형태의 방패를 만들려 애를 쓰게 되었고, 결국 전국시대 최강의 무장이라 불린 다케다 신겐이 바로 이 타케타바(竹束)를 고안해내었다.

3. 특징

기본적으로 타케타바는 하나의 대나무 다발 묶음으로 되어 있다. 실제 가장 많이 사용된 방식도 아시가루 개인이 두툼하게 엮은 타케타바 다발 하나를 세워놓고 그 뒤에 숨어서 조총탄을 막아내는 방식이었다. 그와 동시에 타케타바 여러 개를 목재를 덧대어 이어붙인 다음, 경사진 곳에 세우거나 그림처럼 나무받침을 덧대어 비스듬히 세워두고, 그 뒤에 소수의 단위부대가 숨는 식의 타케타바우시도 사용되었다. 이는 이동시에는 들고 이동할 수 있어서 전진하며 방어하기에 유리했으며, 개중에는 타케타바를 더 많이 잇대어 목책 대신 방책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문서 상단 삽화에서 보듯, 타케타바 자체는 대나무를 잘라서 둥글게 엮은 다발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것은 전장식인 데다가 총신에 강선도 없으며 흑색화약을 이용하기에 현대 소총 등에 비하면 탄속이 현저히 느린 조총탄 정도는 대나무의 탄성을 이용해 가볍게 튕겨낼 수 있었다. 또한, 안이 비어있어 가볍다보니 사용하기에도 비교적 간편했고, 무엇보다 대나무 자체가 일본 내에서는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재료여서 빠르게 만들어 전군에 보급할 수 있었다. 이러한 장점 덕분에 타케타바는 빠르게 다른 다이묘들에게도 전파되어, 전국시대 일본에서 흔히 사용되는 방어수단이 되었다.

다만 약점이 없지는 않았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불에 약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불화살 공격에 취약했고, 강도가 약하여 몇 번 쓰면 바로 부서져 버리므로, 진중에 항시 여분의 타케타바를 만들어 비치하거나 최소한 미리 길이를 맞추어 잘라둔 대나무와 밧줄을 준비해 두어 소모품으로서 손실을 대비해야 했다.

4. 대중매체 속 등장

기본적으로 일본 전국시대나 임진왜란을 다루는 경우에는 거의 등장한다고 볼 수 있다. 또, 육지에서 조선군이 이 타케타바를 부수기 위해 대장군전을 사용했다. 제1차 진주성 전투 당시 조선군이 타케타바를 부수기 위해 대장군전을 쐈다는 기록이 있다.

5. 같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