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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9 10:10:06

밥 샙

밥샵에서 넘어옴
파일:bob-sapp.png
<colbgcolor=#002387><colcolor=#fff> 본명 로버트 맬컴 샙 2세
Robert Malcolm Sapp Jr.
출생 1973년 9월 22일 ([age(1973-09-22)]세)
콜로라도 콜로라도 스프링스
국적
[[미국|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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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령
]]
학력 워싱턴 대학교[1]
체급 슈퍼 헤비급
스탠스 오소독스
입식 전적 28전 11승 17패
9KO, 2판정
11KO, 4판정, 2실격
종합격투기 전적 32전 12승 20패
8KO, 3SUB
10KO, 9SUB
신체 194cm[2] / 128kg[3] / 210cm
링네임 The Beast
주요 타이틀 2005 K-1 WGP in 히로시마 챔피언
플랫폼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일본 공식
SNS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일본 공식

1. 개요2. 미식축구 경력3. 프로레슬링4. 킥복싱
4.1. 전적
5. 종합격투기
5.1. 전적
6. 보디빌딩7. 파이팅 스타일8. 여담
8.1. 연예 활동8.2. 각종 논란
9.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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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 미식축구 선수 출신 전 킥복서, 전 종합격투기 선수, 현 프로레슬러이다.

2. 미식축구 경력

본래는 미식축구 선수 출신으로 고등학교 때 미식축구 장학생으로 워싱턴 대학교에 들어갔다. 워싱턴 대학교에서 뛰던 시기에는 워싱턴이 속한 Pac-10 컨퍼런스 최고의 라인맨 유망주였고, 4학년 때인 1996년 시즌에는 모리스 트로피라는 그 해 최고의 라인맨 선수에게 주는 상을 받을 만큼 주목받는 유망주였다. 샙의 전해인 1995년 이 상의 수상자는 前 볼티모어 레이븐스의 레프트 태클 조나단 오그덴이었으며, 1997년의 수상자는 시카고 베어스의 레전드 센터 올린 크루츠였는데, 오그덴은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고, 크루츠 역시 명전 입성 후보로 언급될 만큼 뛰어난 족적을 남긴 선수였다. 그만큼 대학시절 샙은 뛰어난 유망주였으며, NFL 미식축구 선수로서 밥 샙의 기대치는 대단히 높았었다.

그러나 대학 시절 무릎 부상 전력과 잦은 팀메이트 간 폭력 사건 등 불성실한 태도를 넘어 팀케미의 암적 존재라고까지 까이던 태도 문제 때문에 실제로는 3라운드까지 떨어져서 시카고 베어스에 지명되었고,[4] NFL에 들어와서도 그 성격을 고치지 못하고 결국 4년 동안 NFL에서 활동하며 1997년 미네소타 바이킹스에서 공격라인맨으로 1경기 출장한 것이 전부다.[5] 이 때문에 한 국내 격투기 캐스터가 미식축구 선수 명단에 밥 샙의 이름이 없었다는 말을 해서 논란이 되기도 했었다.[6]

어쨌든 4년간 NFL 선수로 뛰면서 적지 않은 돈을 벌었지만 그만둔 이후에 자기관리 실패로 재산을 탕진해서 노숙자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NFL 스타 중 한 명인 워렌 샙(Warren Sapp)과 성이 같아 형제가 아니냐는 설도 있었지만 사실이 아니다.

3. 프로레슬링

2001년에 NWA 계열 지방단체에서 수련을 시작했으며, 이후 WCW의 훈련생 양성소인 파워플랜트의 수련 과정을 겪었지만 WCW는 곧 WWE에 매각된다.

격투가로 데뷔한 이후에도 종종 프로레슬링 시합에 출전했다. 사실 일본 종합격투기의 모태 자체가 프로레슬링인지라 그 관계가 긴밀하고, 두 무대 모두에서 활동하는 선수들도 많다. 2004년에는 신일본 프로레슬링 IWGP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벨트를 차지했다. 한국에선 2008년부터 WWA 대회에 수차례 참가해 이왕표의 장기집권을 무너뜨리고 WWA 챔피언에 오른 일이 유명하다.

격투기 무대에서 은퇴한 이후에도 IGF에서 프로레슬링 활동은 꾸준히 하고 있다.

피니시 무브로는 아르젠틴 백 브레이커인 토처 랙, 비스트밤(파워밤휩), 풀 넬슨이 있다.

4. 킥복싱

전적 28전 11승 17패
9KO, 2판정
11KO, 4판정, 2실격

4.1. 전적


2002년 6월 그는 K-1 Survival 2002에서 당시 일본의 에이스 중 하나였던 나카사코 츠요시를 상대로 입식 격투기 데뷔 경기를 가졌다. 그러나 데뷔전은 밥 샙의 난동으로 DQ패로 시작하게 된다.[8] 기자회견때도 책상을 뒤엎고 했다는 후일담이 있었던 걸 보면 데뷔 초에는 경기력을 보여주기 보다는 이미지 확립에 신경을 쓴 듯하다.

그는 2002년 9월 가진 경기에서 '마르세이유의 악동' 시릴 아비디를 상대로 경기를 가졌다. (리벤지 당하긴 했으나) 피터 아츠, 레이 세포 등에게도 승리를 거둔 아비디를 상대로 펀치러쉬로 1분 남짓한 경기 끝에 TKO승리를 거둔다. 물론 당시 MMA 파이터인 퀸튼 잭슨에게도 패배하는 등 하락세를 겪기 시작하긴 했으나, 그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아비디는 이길 경기는 지고 질 경기는 이기는 역대급 기복을 자랑하기로 유명했던 파이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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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그는 2002년 토너먼트 개막전에 참전, 당시 피터 아츠 등의 몰락에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베테랑 '미스터 퍼펙트' 어네스트 후스트와 대결을 갖게 된다. 후스트가 밥 샙을 적당히 조련하며 승리할것이라는 세간의 예상을 뒤엎고, 펀치 러쉬로 후스트의 안면에 컷을 만드며 1R TKO승을 거두며 순식간에 스타가 되었다.

이어 가진 K-1 WGP 결승 토너먼트에서도 후스트와 2차전을 가졌다. 후스트는 로우킥, 바디샷 등을 이용하는 침착한 경기 운영을 선보이며 밥 샙에게 다운을 빼앗았다. 수세에 몰린 밥 샙이 그 커다란 덩치로 위빙을 하거나 하이킥을 시도하면서 무릎을 올리는데 그 모습이 상당히 귀엽다. 하지만 경기를 다 잡았다고 생각한 후스트가 밥 샙과 갑자기 쓸데없는 난타전을 벌이다 이번에는 밥의 펀치를 맞고 공중에 붕 떠버리며 자신이 다운을 빼앗겨버린다. 이 후로도 후스트는 계속 난타전을 시도했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후스트 특유의 자존심 때문인 걸로 추측되고 있다. 1차전에서 펀치 싸움에서 밀려서 패배했기 때문에 이를 만회하려 우세를 잡은 뒤, 무리하게 난타전을 벌였다는 것. 이에 밥 샙은 우월한 파워와 신장으로 후스트를 몰아붙이며 코너에 몰아넣고 펀치를 날려댄 끝에 레프리스톱 TKO 승리를 거둔다. 후일 샙은 후스트를 다운시킨 그 펀치에 '플라잉 후스트'라는 별명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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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밥 샙이 주먹이 부러져 토너먼트 경기에 출전할 수 없게 되었고, 리저브로 대타 출전하는 행운을 갖게 된 후스트는 레이 세포, 제롬 르 밴너를 연파하며 우승을 차지하게 되면서 밥 샙의 평가는 더더욱 올라가게 되었다. 또한 이후 종합 격투기에서 당시 최강자였던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를 고전시키며 일본 격투계에서는 박살내야 할 최종 보스격 파이터로 인식되었다.

2003년 3월 K-1 WGP 사이타마에서 미르코 크로캅과의 경기를 가지게 된다. 이 경기에서 밥 샙은 1분 26초만에 크로캅의 왼발 미들킥 - 왼손 스트레이트를 허용하며 KO패. 입식 격투기에서의 (DQ패를 제외한) 첫 패배를 당하게 된다. 이 경기에서 승리한 크로캅은 2006년까지 상승세를 달린 반면, 밥 샙은 벌써부터 하락세에 접어들게 된다. 이 피니시에 의해 밥 샙은 안와골절 부상을 입었는데, 어지간히도 고통스러웠는지 안면 타격에 대한 공포증이 생기면서 몰락의 첫 걸음을 내딛게 된다.

5달 뒤 이후 키모 레오폴도를 KO로 잡고 K-1 WGP 토너먼트에도 출전, 당시 떠오르는 강자였던 '플라잉 더치맨' 레미 본야스키와 대결을 가졌다. 밥 샙은 레미에게 하이킥에 이은 후속타를 맞고 다운을 당했고, 이때 우는 듯한 모습을 보여 '크라잉 비스트'라는 별명이 붙었다. 하도 얻어맞기만하고 경기가 안 풀리자 스텝이 꼬여 슬립 다운당한 레미에게 파운딩을 날리며 DQ패를 당했다.

2003년 12월 31일 다이너마이트에서 아케보노를 KO로 잡는다. 이 경기는 일본에서 순간 시청률 약 43%를 기록하며 프라이드 남제와의 시청률 대전에서 승리를 가져오는 데 1등 공신이 되었다. 심지어는 일본 TV시청률의 절대강자인 홍백가합전의 시청률을 4분동안 뛰어넘는 전무후무한 쾌거를 기록했다.[9] 훗날 킴보 슬라이스를 관광시킨 세스 페트루젤리와도 경기를 가져 경기 내내 두들겨맞다가 세스의 부상으로 승리를 거뒀고, K-1 라스베가스 대회에서 스테판 감린을 초살시키며 3연승을 달린다.

2004년 6월 K-1 시즈오카 대회에서는 레이 세포와 경기를 가져 이렇다 할 기량을 보여주지 못하고 라운드내내 농락당하더고 두들겨 맞은 끝에 바디샷을 허용하며 2R KO패를 당하게 된다.

2004년 12월 31일 'K-1 다이너마이트 2004'에서는 제롬 르 밴너와 경기를 가졌다. 1라운드씩 입식과 MMA 룰로 번갈아가며 싸우는 매치였고 밴너가 입식, 밥 샙이 MMA 라운드를 가져간 끝에 무승부로 마무리된다.(다만 이 경기는 순수 입식 룰이 아니기 내문에 공식전적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K-1이 거의 손도 대기 힘들 정도로 맛이 가기 시작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2005년 6월에는 토너먼트 출전권을 갖고 격돌하는 K-1 히로시마 GP에 출전, 나카오 요시히로, 호리 히라쿠, 토미히라 타츠후미 일본파이터 3인방을 연파하며 우승, 토너먼트 출전권을 따게 된다. 이 대회에서 밥 샙은 이 당시 즈음해서 만난 샘 그레코와의 훈련으로 다음 경기를 위해 체력을 안배하는 등 나름대로 노련해진 모습을 보여주며 팬들에게 기대를 갖게 했다.

2005년 9월 K-1 WGP 2005 개막전에서 '테크노 골리앗' 최홍만과 '야수 대결'을 펼치며 격투기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큰 주목을 받게 된다. 밥 샙은 최홍만과 3라운드 내내 난타전을 펼치며 비등비등한 경기력을 보였으나 막판 최홍만의 니킥을 허용하며 2-0 판정패를 당하게 된다. 이 경기는 한국에서 TNmS 기준 약 15%라는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대박을 쳤다. 이 방송을 중계했던 MBC ESPN이 '케이블 채널'이라는 것과, 격투기가 마이너한 장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초대박이다. 그러나 순간 시청률이며(평균 시청률은 6%인데 이것도 나쁜 수치는 아니다) 조사 기관이 논란이 많은 TNmS라 딱히 큰 의미는 없지만 어쨌든 무지막지하게 흥행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밥 샙은 이 경기를 기점으로 급속하게 나락을 타기 시작한다.

2005년 12월 31일 K-1 다이너마이트 대회에서는 무사시와 격돌, 1라운드에 다운을 뺏으며 선전했으나 2라운드에 쓸데없는 후두부 가격으로 감점을 당했고, 후반에는 체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다가 무사시의 미들킥 난사에 스탠딩 다운을 당하며 또 다시 패배를 당하게 된다. 이때 무사시가 대자로 뻗었기 때문에 '진짜 저러다 죽는 거 아닌가' 걱정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그러다가 2006년 6월 K-1 암스테르담 대회에서 어네스트 후스트의 은퇴 상대로 낙점을 받았으나 아래의 '각종 논란' 항목 참조.

그 후로 2년가까이 경기를 뛰지 않다가 2007년 피터 아츠에게 26초 초살 KO패를 당한 이후에는 이런 저런 선수들과 경기를 가지면서 계속 패가 늘고 있다. 2010년 11월 27일에는 북유럽의 강호 요르겐 크루스와 경기를 가져 1분만에 닥돌 러쉬도 보여주는 등 선전했으나 1분 남짓한 경기 끝에 크루스의 니킥 한 방에 KO패 해버렸다. 최홍만 전 이후의 전적은 1승 13패로 매우 저조한 전적을 보여주고 있다. 심지어 1경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KO패이며 이 1승마저도 얻어맞다가 상대선수가 밥샵을 차다생긴 다리 부상에 의한 기권 승리다.

마지막 경기는 2013년 11월에 니시지마 요스케의 은퇴전 상대로 낙점되었는데, 이 경기에서도 2차례 다운을 뺏기면서 KO패 해버렸다. 요스케의 첫 승이자 은퇴전 승리의 제물이 되었다. 이후 샙이 은퇴하면서 이 경기는 밥 샙의 커리어상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영상

이후 은퇴 선언과 함께 한동안 링을 떠나 있었지만, 2015년 연말 이벤트인 Rizin FF에서 오랜만에 현역으로 복귀, 슛복싱 룰 경기에서 아케보노 타로를 상대로 판정승을 거두었다. 비록 상대가 떡밥중에서도 만년 떡밥인 아케보노였지만, 그래서인지 평소와는 다르게(?) 적극적으로 펀치를 뻗는 등 전성기 시절의 공격성을 어느 정도는 보여줬다.

2018년 1월에 Mix fight에서 킥복싱룰로 올라섰지만, 무난하게 TKO패 해버렸다. # 이전과 비교 했을때 상당히 근육이 줄어든 모습.

5. 종합격투기

종합격투기 전적 31전 11승 19패 1무
8KO, 3SUB
10KO, 9SUB

5.1. 전적


MMA에는 2002년 4월 Pride 20에서 데뷔했다. 2002년 4월과 6월에 각각 야마모토 요시히사와 타무라 키요시를 초살 KO로 잡아내며 2연승을 거두었다. Pride Shockwave에서 3전째 만난 상대가 바로 주짓수 마스터 '미노타우로'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 2002년 8월에 열린 대결에서 밥 샙은 노게이라의 태클을 막아내며 오히려 노게이라의 허리를 잡고 파워 밤을 작렬시킨다. 태클이 들어온 상대에서 허리를 잡고 전신을 통째로 뽑아들고는 머리부터 떨어뜨리는 무시무시한 공격이었다. 그것도 단발로 그친 것이 아니라 재차 슬램을 시도했지만 2번째부터는 노게이라가 중심을 잡으며 잘 방어했다. 하지만 계속 상위를 잡으며 노게이라를 괴롭혔고 오히려 스윕 후 걸어온 기무라를 한 손으로 뽑아내는 괴력을 보였고 재차 파운딩을 먹이며 승리를 목전에 둔 듯 보였다. 하지만 체력을 지나치게 소모한 탓에 움직임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결국 2라운드 4분만에 암바에 걸려 패배하고 만다. 하지만 승자인 노게이라가 병원에 실려갈 정도로 난타당한 반면 밥 샙은 암바에 걸린 것을 제외하면 거의 대미지가 없었다.[10] [11]

그래서 경기 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 남자가 세계에서 가장 강하다고?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군."

반면 노게이라는 넌더리를 내며 "다시는 싸우기도 싫다."며 리벤지 오퍼를 거절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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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게이라에 패한 후에 입식격투기에서 '미스터 퍼펙트' 어네스트 후스트를 잡으며 일대파란을 일으켰고 2002년 연말 이노키 봄바예에 나가 초살 암바로 승리를 챙겼고, 1년후 2004년부터는 K-1 산하의 MMA 무대인 HERO's에서 활동해 2연승을 이어나갔다. 첫상대는 초반 스탠딩 초크로 끝내버렸고, 2번째 몽골선수는 내내 파워로 압도하다가 상대방의 발목 부상으로 이겼다.

그러던 그에게 두번째 패배가 찾아온다. 2004년 5월 K-1에서 후지타 카즈유키에게 패배한 것이다. 일본 헤비급 최종보스급을 자랑하는 후지타는 장기린 레슬링으로 태클로 밥 샙을 넘어뜨린 뒤 재빠르게 스탭을 밟으며 사커킥과 파운딩을 날렸고 2분 15초만에 탭을 받아냈다. 밥 샙은 단 한번 넘어진 후 몰린 수세에서 회복하지 못하며 무너지고 말았다.

2004년 12월 31일 'K-1 다이너마이트 2004'에서는 제롬 르 밴너와 경기를 가졌다. 1라운드씩 입식과 MMA 룰로 번갈아가며 싸우는 매치였고 밴너가 입식, 밥 샙이 MMA 라운드를 가져간 끝에 무승부로 마무리된다(다만 이 경기는 순수 종합 룰이 아니기 내문에 공식 MMA 전적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K-1이 거의 손도 대기 힘들 정도로 맛이 가기 시작했다는 증거.

2005년 5월 26일 K-1 HERO's에서 김민수를 1분 초살 KO로 잠재우고 7월 6일 러시아출신 스모선수 알란 카라예브를 3분만에 KO승으로 11월 5일 한국의 1세대 파이터 김종왕을 상대로 무지막지한 러시를 보여주며 8초만에 KO승을 거두어 3연승을 이어갔다. 이에 격갤에서는 김종왕 선수에게 8과 관련된 별명(ex : 8종왕, 8만 대장경 등)을 무수히 붙여주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김종왕 선수는 경기 이후 끊임없는 비난에 본인이 운영하던 체육관 문을 닫고 자살 충동까지 겪을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2007년 12월 31일 'K-1 다이너마이트 2007'로 복귀해 나이지리아계 일본 개그맨 바비 올로건을 상대로 마운트에서 광폭한 파운딩을 퍼부어 승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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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23일 Strikeforce에서 남아공 출신의 얀 노르키아와 경기를 갖는다. 이는 MMA룰로는 처음으로 고국인 미국에서 경기하게 된 것이라 그의 미국 진출전은 현지 팬들의 많은 관심을 모았다. 이 경기는 샙의 절대우세가 예상된 시합으로 경기 전 배팅 사이트에서도 도박사들의 86%가 샙의 승리를 점쳤다. 그러나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밥 샙은 211cm인 얀 노르키아의 강력한 잽을 허용하고 뒷걸음질쳤다. 노르키아는 공세를 늦추지 않고 위축된 샙을 몰아 레프트 훅을 휘둘렀다. 샙은 이에 저항도 못하고 웅크린 채 전의를 상실하며 55초만에 TKO패를 당했다. 다만 이겼는데도 $15,000밖에 못 받은 노르키아에 비해 인지도에서 훨씬 우위인 샙은 파이트머니로 $100,000를 챙겼다.

2008년 12월 31일 'K-1 다이너마이트 2008'에서는 희대의 떡밥매치 일본 애니메이션 근육맨의 캐릭터인 근육 만타로 기믹으로 출전한 다나카 아키히토와 싸웠다. 라운드 초반엔 아키히토에게 2번이나 테잌다운을 당해 하위에서 약간 고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레슬링 외에는 다른 격투기를 수련한 적이 없었던 아키히토라 상위에서 압박하는 것 빼고는 별다른 기술을 보여주지 못 했고 그라운드에서 탈출한 샙은 스탠딩에서 상대를 코너로 몰아넣은 후 펀치 러시와 니킥을 적중시키며 TKO승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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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에는 MMA 역사상 최악의 이벤트로 회자되는 'K-1의 슈퍼 헐크 토너먼트'에 출전, '펑크' 미노와 이쿠히사와 맞붙는다. 이 토너먼트는 후일 밝혀진 것처럼 흥행을 위해 결승전으로 '밥 샙 VS 최홍만'의 대결을 만들 의도로 기획했던 대회였다. 그래서 샙이 이길 수 있도록 미들급 파이터인 미노와를 붙여준 것이다(!). 그러나 주최사의 의도와는 달리 본 경기에서 미노와는 자신보다 55㎏이나 무거운 밥 샙에게 아킬레스 홀드를 성공시키며 1분 15초만에 탭을 받아낸다. 이 경기에서 패하면서 밥 샙은 스피드, 밸런스의 부재와 낮은 서브미션 이해도 등 많은 약점을 드러냈다.그런데 막상 아킬레스 홀드에 걸려 진 것으로 되어있는 샙이 실은 발목이 꺾여있지 않아 워크 의혹이 일기도 했으나 조용히 묻혔다. 미노와는 그저 무릎과 허벅지에 압박을 준 정도로 샙이 아프기 싫어서 탭을 그냥 빨리 친 것이었다.

2009년 6월 FFI에서는 WWE 출신의 MMA 파이터 바비 래쉴리에게 태클을 허용하고 사이드 포지션을 빼앗긴 채로 내내 파운딩을 당하다가 광속 탭을 쳤다.

2009년 10월 K-1의 슈퍼 헐크 토너먼트 4강전에서 소쿠주를 상대할 예정이었던 게가드 무사시가 어깨 부상을 당해 대체자로 출전하게 됐다. 사실 이 경기는 8강전에서 미노와에게 지며 탈락한 밥 샙에겐 출전할 명분이 없었다. 그러나 아직도 주최측에서 '밥 샙 VS 최홍만'의 결승전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샙은 4강전에 나올 수 있었다. 그런데 또 다시 주최사의 의도와는 다르게 밥 샙다운 경기로 소쿠주에게 테잌다운을 당한 후 파운딩만 쳐맞다가 1분 31초만에 TKO패했다.

2010년에 3월 27일 K-1 지역 대회에서 무명 선수 샤차 페인포터를 상대로 평소와는 다르게 무슨 생각인지 전력을다해 있는 힘껏 마운트에서 짓 누른다음 폴암 초크 승리를 거뒀으며, 12월에 키프로스 출신의 스타브 에코노무와 경기를 가질 예정이었으나 대회 자체가 취소되었다. 12월 31일 K-1 다이너마이트 대회에 출전, 스모 출신의 프로레슬러 스즈카와 신이치와 대결할 예정이었으나 무산되었다.

2011년에는 3월 11일 취소됐던 스타브 에코노무와의 경기에서 역시나 밥 샙다운 초살 KO패를 당하는 등 UAE, 크로아티아등 세계 각국의 중소 단체에서 싸웠으나 3전 초살 3패를 기록한다. 3전 경기 총 합시간이 5분정도밖에 안된다.

2012년 2월 11일 ONE FC 2에서 UFC 참전 경력이 있는 홀스 그레이시 주니어와 경기를 가졌다. 초반 기세 좋게 그레이시에게 다가갔으나 바로 테잌다운을 허용, 상위를 내주게 된다. 샙은 하위 포지션에서 탈출하기 위해 애썼으나 계속되는 그레이시의 파운딩을 참지 못하고 1라운드 1분 18초만에 탭을 치고 만다.

2012년 3월 11일 인도의 신생단체인 Super Fight League(SFL) 첫 대회에서 같은 PRIDE 출신이자 괴물 캐릭터인 제임스 톰슨과 맞붙었다. 샙의 체격 조건을 의식한 듯 톰슨은 경기 전 계체량에서 25㎏이나 증량한 150㎏으로 계체를 통과했다. 이는 155㎏으로 통과한 샙과 5㎏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것으로 비주얼만큼은 신생단체의 메인이벤트로 내세우기에 충분했다. 경기 시작후 샙은 밥 샙답게 어느 경기와 다름없이 초반 돌진을 감행했으나 톰슨에게 곧바로 싱글렉을 잡혀 테잌다운을 당하고 사이드까지 내준다. 1분 남짓한 시간동안 톰슨에게 파운딩을 얻어맞으며 경기는 또 허무하게 끝나나 싶던 찰나에 샙은 놀랍게도 스윕을 성공시키며 상위 포지션을 잡는다. 상위에서 승기를 잡고자 크루서픽스까지 시도했으나 탈출을 허용, 톰슨이 일어나려 할 때 가공할 파운딩을 몇 방 성공시킨다. 그러나 이를 버틴 톰슨은 더블렉을 잡으며 밥 샙을 넘어뜨렸고 그 순간 샙은 왼쪽 다리에 부상을 호소하며 탭을 치고 만다. 1라운드 1분 52초만에 서브미션 패를 해버렸다.

2012년 5월 12일 폴란드의 KSW 19 대회에서는 폴란드 출신의 월드 스트롱맨 우승자 출신인 마리우스 푸치아노스키와 경기했다. 완력에서는 밀리지않던 밥 샙이 완력괴물을 만난 경기였는데, 예상대로 초반 공방전에서 푸지아노스키의 무지막지한 펀치 및 니킥 러쉬에 밀리다가 이윽고 테잌다운을 당했고, 이어진 파운딩에 몸을 웅크린채 가드에만 급급하자 심판은 경기를 중단했다. 39초만의 TKO패. 이 시합을 기점으로 밥 샙의 MMA 전적은 승보다 패가 많아졌다.(23전 11승 12패)

2012년 5월 18일 호주에서 열린 CFC 21 대회에서는 최무배 선수와의 경기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무쇠 파운딩 소아 파렐레이를 상대했다. 이 시합은 이전 경기인 푸지아노스키전에서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의 경기라 더욱 주목받기도 했다. 경기 시작 후 사우스 포 자세로 돌진했으나 파렐레이에게 오른손 어퍼를 맞은 샙은 펜스 주변에서 주춤하기 시작했다. 그 때를 놓치지 않은 파렐레이의 테잌다운 후 특유의 무쇠 파운딩 난타에 심판이 경기를 말렸고 샙은 12초만에 TKO패를 당한다.

2012년 6월 8일 카자흐스탄에서 열린 bushido Lithuania-vol.51에서 무명의 카자흐스탄 선수에게 밥 샙다운 1라운드 1분29초두들겨맞고 탭을 쳐 패했고 8일 후 한국에서 열린 Road FC 8에 참가해 국군정보사령부 예비역 부사관인 前 북파 공작원 김종대와 경기를 치렀으나 워크 의혹을 불러일으킬 만큼 그냥 드러눕고 가만히 있기만 한 채 2라운드 2분 TKO로 졌다.

2012년 9월 15일 세르비아에서 Night of the Champions 2012에 참가해 무명의 세르비아 선수에게 펀치를 맞다가 1라운드 1분28초만에 탭을 치면서 10연패를 했다. 이로써 2012년 한해에만 7연패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2013년 5월 25일 러시아에서 열린 Legend Fighting Show에서 에밀리아넨코 알렉산더의 복귀전 상대가 되어 1라운드 1분 18초만에 펀치에 의한 TKO패를 당하며 11연패를 기록했다.

2013년 8월 8일 브라질에서 열린 OX MMA에서 에드슨 프란카와 대결해 경기 시작 35초만에 RNC로 탭을 치면서 12연패를 찍었다.

이후 별다른 경기를 갖지 않다가 2014년 5월 한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은퇴 선언을 했다. 통장 잔고가 100억이나 있다는 발언은 덤.

2016년 7월 Road FC 32 대회에서 아오르꺼러와의 경기가 잡히며 다시 복귀했지만, Road FC의 띄워주기버프를 한창 극렬하게 받고있는 아오르꺼러인지라 결국 밥샙이 졌다. 경기내용이 워낙 엉망이여서 경기 후 조작의혹도 많았다. 1R 39초만에 TKO로 허무하게 패배.

그 후 2018년 9월에 다시 Rizin FF 13에서 복귀했고 인터뷰에서 밝히길 이 경기가 자신의 마지막 경기라고 했으므로 복귀전이자 은퇴식 경기인 셈이다.

상대는 이집트 출신의 스모 선수인 오수나라시 킨타로였고 이번이 데뷔전이었다. 또한 조쉬 바넷이 킨타로의 세컨으로 나왔다.

초반에 킨타로의 펀치 연타를 허용하였고 비록 테크닉이라곤 없는 펀치러쉬였지만 코너에 몰리며 또 다시 허무하게 패배할 것 같았으나 놀랍게도 맷집으로 다 버텨내며[12] 펀치와 킥으로 피 튀기는 난타전을 하며 오랜만에 노장의 투혼을 보여주었다. 중간에 킨타로의 테이크 다운을 역스윕하여 상위 포지션을 차지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원래부터 체력이 좋은 선수는 아니었던지라, 후반으로 갈 수록 양쪽 다 그로기 상태로 갔다. 그래도 밥 샙이 비록 평생 피지컬로 먹고 살았지만 그 짬을 허투로 먹지는 않았는지 체력이 조금 더 남아있어서 막판에 밀어붙여서 상대의 전의가 상실했고 그렇게 경기 종료. 막판에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준 밥 샙의 판정승이었다. 관중들의 박수 소리와 함께 서로를 껴안는 장면에서 나름 감동 한 올드팬들이 많았고 밥샙은 13연패를 드디어 끊었다. 경기 영상 승리후 과거 자신과 경기를 가진 이왕표가 그려진 티셔츠를 올려보이며 추모의 뜻을 보여주었다.

비록 전성기가 지나간 뒤로는 허구한 날 대충 맞다가 져주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줬지만, 그래도 마지막 경기에서는 오랜만에 최선을 다해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파이터 인생에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6. 보디빌딩

2024년 4월 개최된 월드 오브 몬스터짐9 슈퍼헤비 웨이트급에 출전하여 3위 입상했다. 영상

7. 파이팅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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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점은 힘과 맷집인데 신장 194㎝, 체중 170㎏, 리치 210㎝, 체지방률 10%대의 근육으로 꽉 들어찬 사기적인 신체[13]에서 나오는 무시무시할 정도의 괴력이 그가 가진 무기이다 이 괴력을 바탕으로 초반 거친 쇄도를 한다.[14] 이것을 버틸만한 힘이나 기술이 없는 상대를 그대로 초살시킬 정도의 힘이다. 밥 샙 이외에도 NFL 출신들이 격투가로 전업한 경우들이 있지만, 밥 샙 정도의 괴력을 과시하면서 임펙트를 남긴 경우는 없다.[15][16] 격투기 역사에서도 보기 드문 사례. 프로레슬러처럼 신체스펙이 조금 뻥튀기되기도 했고,[17] 신장이나 리치가 무지막지할 정도로 타 헤비급 파이터들보다 크진 않으나 충분히 거인형 파이터로 분류할 만 하다.[18]

또한 서브미션에 약하고 아픔을 잘 못참는다는 단점 탓에 맷집이 약하다고 보기도 하는데 사실 맺집이 마냥 약하지는 않으며 오히려 뛰어나다고 분류될만 하기도 한데, 이는 위 장점에서 나오는 근육이랑 연결된다. 몸이 하도 근육질이다 보니 그 근육을 통해서 단단히 가드하면 마냥 맞고만 있는데도 거의 쓰러지지 않는다. 물론 가드 노하우도 부족해서 복부 등의 약점을 공략하면 뚫리기도 하지만 이 특유의 가드로 나름 재미를 본 적도 많다.

그러나 단점 또한 많다. 사기적인 신체조건에 비해 기술과 격투지능, 운영능력이 매우 좋지 않다. 160kg의 거구라 체력과 스피드[19]도 떨어지는 편이다. 매우 긴 리치까지 가지고 있지만 기술이 딸려 아웃복싱을 못해서 우라돌격만 한다. 의외로 신체 밸런스도 좋지 않아 그래플러들이 정면으로 힘대결을 하지 않고 좌우로 중심을 흔들면 잘 넘어지는 편이다. 포지셔닝에서도 덩치에 걸맞지 않게 어이없이 스윕을 허용하는 경우가 있으며 서브미션에 대해서는 공격과 방어 양쪽 모두 미흡하다. 가끔 터지는 서브미션은 '힘으로' 우겨 넣는 경우인데 노게이라가 밥 샙을 상대로 고전했던 이유는 정면으로 태클을 들어갔기 때문이다. 소쿠주는 라이트헤비급의 체격으로도 클린치 상황에서 밥 샙을 넘어뜨렸다.

이런 단점은 최홍만과 붙었던 야수전에서 확실하게 드러났다. 본인보다도 파괴적인 수준의 피지컬을 가진 최홍만을 만나자 굉장히 당황하며 평소의 우라돌격을 차마 시전하지 못 하고, 소극적인 경기 운영을 하다가 두들겨 맞고 판정패하고 말았던 것.

그리고 그 신체조건으로 단단히 밀어붙이는 인파이팅은 확실한 장점이지만 문제는 운영능력이 매우 떨어지는 탓에 그 밀어붙이기밖에 하지 못한다. 이는 심각한 단점으로 이게 생전 처음 겪어보고 맺집이 약한 어네스트 후스트에게는 제대로 먹혀서 미스터 퍼펙트의 이름에 오점을 남겼지만 강력한 스트라이크인 제롬 르 밴너랑 막강한 철벽의 테크니션인 레미 본야스키에게는 먹히지 않아서 이 둘에게는 요리 당하기도 했다.

또 더 심각한 치명적인 단점은 한 번 수세에 몰리면 회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맷집 자체는 단 한번도 (TKO가 아닌) 실신 KO패를 허용하지 않았을 정도로 좋은 편이다.[20] 문제는 멘탈과 관련된 것인데, 다른 파이터들이라면 버틸 수 있는 데미지를 버티지 못한다. 쉽게 말하자면 아픈걸 잘 못 참는다. 항상 탭이 빠른 것과도 연관이 있다. 서브미션 패배가 2013년 기준으로 총 9패가 있는데 그 중 5패가 맞다가 탭 친 경기이다.

입식이나 종합이나 파이터로서 정상권과는 당연히 거리가 있다. 지명도나 흥행성에 비해서 파이터로서의 실력은 높지 않다는 평가이다. 후스트를 잡아낸 것 이외에는 전적상으로 이렇다할 업적이 없으며, 후스트를 제외한 1류급 파이터들에게는 어김없이 깨져나갔다. 그나마 노게이라 전 정도가 잘 싸웠던 경우이고, 나머지 경기들에서는 거인 파이터의 한계만을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21]

특히 2008년 얀 노르키아 전 이후 은퇴까지 2승 16패라는 처참한 전적을 기록했다. 그 2승마저도 제대로 된 승리라고 봐주기에는 어려우며, 패배들은 워크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전성기때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지만, 약점이 드러난 이후에는 급속히 몰락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서커스 매치와 워크 매치로 돈을 벌었다고 할 수 있다.

8.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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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ttachment/bobgif.gif * 2012년 3월 10일 인도의 Super Fight League(SFL) 1회 대회의 계체량 측정중 체중계 위에서 손을 드는 퍼포먼스를 하다가 그만 대회 관계자의 얼굴을 가격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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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 샙을 흉내내는 퀸튼 잭슨


8.1. 연예 활동

일본 연예계로 진출했으며 야수같은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행동으로 흥미를 끌며 CF, 영화 등에 출연했다. 그중에서는 데빌맨/영화같은 괴작도 종종 있었지만 그 인기를 바탕으로 미국 영화계로도 진출했다. 역시나 귀여운 이미지다. <빅 스탠>(국내 개봉명은 쿵후 프리즌)에선, 무차별 강간범같은 줄 알았는데 알고보면 지폐 위조범에 여성적인 게이로 출연하기까지 했다. 실제로 야수라는 별명에 걸맞지 않게 겁이 많고 여린 성격이라고 한다.[24]

일본 예능계에서는 미친 존재감 그 이상의 위상을 지니고 있다. 거구라는 캐릭터를 빼고도, 얼굴개그로 대표되는 특유의 익살스러움이 업계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다운타운의 가키노츠카이야아라헨데의 칠변화 기획에서는, 마츠모토 히토시의 어시스트에 힘입어 한동안 역대 1위를 차지한 적이 있다. 현재 일본 예능의 흑인 포지션에서, 라이벌인 바비 올로건에게 많이 밀려났긴 했지만, 독창적인 예능 실력에서는 보비를 훨씬 압도한다.

스타킹에서 카라의 열성팬으로 나와서 어필한 적도 있다. 국내의 수제 햄버거 전문업체인 Bob's Burger & Shake의 모델이기도 하다. 홍익대학교 정문 앞에 그의 사진이 들어 있는 플래카드로 광고하고 있다. 2010년 중순에 그 가게는 망해 떡볶이 가게로 바뀌었지만 바뀐 떡볶이 가게가 원래 있던 가게의 밥 샙 마네킹을 활용하고 있다.

2009년에는 개그우먼 김미연과 함께 하땅사에 출연해 커플 댄스를 추었다. 춤을 추는 김미연을 두 손으로만(!) 들어 이리저리 돌리다가 어깨에 얹고 피날레 포즈를 취하는 것이 포인트. 자신의 괴력을 선보이면서 김미연의 가냘픔 역시 강조되는 앵글이었는데 상완이 김미연의 허리보다 굵었다.

2009년 10월 개그콘서트 달인에 특별출연해서 류담 얼굴을 핫도그 빵 2개에 넣어서 먹으려고 했고, 김병만 노우진을 한 팔에 하나씩 메고 포효하며 퇴장했다. #[25] 달인 녹화 이후에는 끝까지 자리를 지켜 마지막 봉숭아학당에서 왕비호( 윤형빈)에게 디스(?)를 당했다. 송준근의 곤잘레스와 김지호의 세뇨리따 캐릭터가 등장한 차례에서, 김지호가 뜬금포로 꺼내든 본인 사진을 보고 화난 표정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기도 했다. 라따 라따 아라따 한 번 해 주니 앉아서 웃던 것을 보면 개그를 도와 준 듯.

2010년 2월 관광 비자로 입국해서 광고를 두 차례 찍은 것 때문에 국내에 입국하면 조사를 받을 예정이었다. 관련 기사 그러나 어떻게 좋게 해결된 듯 하다. 이러더니, 자상한 아빠가 가족 통신비가 너무 많이 나와 화가 나서 밥 샙이 되어 버린다는 KT광고(목소리 더빙은 시영준 씨가 담당)와, 밥 샙이 아기로 분장한(!) 시보가 나왔다. 이것은 예전에 진짜 아기가 나왔던 QOOK 시보의 리메이크이다. 게다가 닉툰에서 녹색 페인트를 맞는 광고도 나왔다.

김진태의 만화 와일드 와일드 워커스에 나오는 주인공 가운데 하나인 밥은 누가 봐도 밥 샙을 모델로 했다.

2010년 11월 18일 마비노기 영웅전의 새 캐릭터인 카록의 베이스 모델이고, 첫 등장시 프로모션 모델로 등장했으며 지스타에서 그 끼를 유감없이 선보였다.

fripSide의 8번째 싱글이자 애니메이션 블랙 불릿의 오프닝 테마인 Black Bullet 싱글 PV에 특별출연 했다. #

2015년 5월 3일 코미디 빅리그의 코너 작업의 정석에 깜짝 출연했다.

2024년 4월 22일 웃고리즘 칼국수편에 등장했다.

8.2. 각종 논란

이런 '괴물 캐릭터' 부류의 빨리 뜬 선수들이 다 그렇듯이 논란이 꽤 있다.

첫 격투기 데뷔전을 프라이드에서 치렀는데, 이 과정에서 K-1과 계약을 해놓고 프라이드에서 먼저 데뷔해 K-1에 욕을 먹었다.

데뷔 초창기에 던져준 선수들도 미들급의 타무라 키요시처럼 체중차가 많이 나거나, 시릴 아비디처럼 3~4일전 에 오퍼를 보내 급구한 선수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잘 포장시켜 최종보스격 캐릭터로 만들려고 계획해놓았던게 아닌가 하는 의혹이 있었다. 그러나 이 논란은 당시 최강자였던 후스트를 실력으로 잡으며 잠잠해졌다.

경기가 안 풀리면 반칙이 자주 나오는것도 문제였다. 데뷔전인 나카사코 츠요시와의 경기는 아예 대놓고 시작부터 MMA경기인지 입식경기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태클시도 및 파운딩을 날려대서 DQ패를 당하고, 경기 종료 후 분노한 나카사코와 난투극을 벌이기도 했다. 2003년 레미 본야스키와의 경기에서는 슬립당한 본야스키의 후두부에 펀치를 날려서 DQ로 패배하는 일이 있었고, 2004년 레이 세포와의 경기에서는 노골적으로 후두부 가격을 했으며(빡친 세포는 로블로로 화답) 2005년 무사시와의 경기에서는 클린치를 하는 무사시의 후두부를 "퍽!"소리 나게 쳐서 쓰러뜨린 일이 있었다. 이런 비신사적인 행동들 때문에 한동안 안티를 양성하느라 고생했다. 다만 커리어 후반으로 갈 수록 반칙을 쓰는 일은 줄어들었다.

밥 샙의 역대 최악의 행동은 2006년 K-1 WGP 암스테르담에서 어네스트 후스트의 은퇴전 경기 직전 경기장을 무단 이탈하는 초대형 사고를 터트린 짓이다. 이에 대해서는 당시 일본 격투기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던 야쿠자 개입설이나 K-1의 워크 요청설 등 수많은 의혹들이 있었지만 확실히 밝혀진 것은 없다. 일단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은, 밥 샙이 경기장 이탈 전 주최측에게 납득할 수 없는 요구를 했다는 점이다. 이 사건 이후 밥 샙은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경기 2시간 전 세미 슐트의 경기복을 빌려 입고 나와 대타를 뛰어준 피터 아츠에게 엄청난 찬사가 쏟아졌다. 당시 아츠는 대회 해설을 하고 있다가 갑자기 나갔다.

이후 밥 샙은 K-1으로부터 무기한 출장정지를 받고 자숙하다가 2007년 K-1 암스테르담 대회에서 복귀하였다. 그러나 정작 경기에서는 한심한 기량을 보여 또 다시 까였다. 시작 26초만에 복부에 니킥을 맞고 쓰러져 KO패를 당했다. 아무리 봐도 한 방에 KO될 만한 파워가 아니었기 때문에 태업 의혹을 샀고, FEG 대표 다니가와 사다하루는 "이번에 밥 샙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려고 했는데 그것 마자 날려버렸다"며 밥 샙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다. 다만 이 이후로는 크게 말썽을 일으킨 일이 없으며, 위에 언급된 인터뷰를 통해 호감형 이미지로 바뀌어가며 안티가 많이 줄었다. 다만 이 때부터 후술할 셀프 워크 행위를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2007년 Cage Rage에 영입되기도 했었으나 여기서도 1주일 전에 경기를 파토내버리는 바람에 또 욕을 얻어먹었다. 게다가 그 대회는 같은 날 열렸던 UFC 70과 경쟁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메인이벤터이자 대회의 가장 큰 축이었던 밥 샙이 이탈하면서 망해버렸다. 참고로 해당 대회는 MBC ESPN에서 밥 샙이 나온다는 이유로 중계권 계약을 맺었으나 밥샙이 또 파토를 냈다. 때문에 당시 캐스터인 정우영은 "밥 샙은 우리가 생중계를 해주려고 하면 도망간다"며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다.(당시 K-1 계약사는 MBC ESPN이었다.)

2010년 12월 31일 K-1 다이너마이트 대회에 출전, 스모 출신의 프로레슬러 스즈카와 신이치와 프로레슬링 룰로 대결할 예정이었으나 대회측에서 경기 당일 경기 룰을 MMA 룰로 바꾸는 초특급 사고를 터트리자 밥 샙도 대기실 문을 닫고 안 나오는 등 여러모로 한심한 상황이 펼쳐진 끝에 무산되었다. 게다가 밥 샙의 주장에 의하면 원래 받기로 했던 파이트머니도 대폭 삭감했다고 한다.

사실 2004 ~ 2005년쯤 프로 파이터로서의 미래를 어둡게 보고 각종 예능과 CF, 영화, TV 등을 노리고 전략적으로 자신의 미래를 설계한 것이다. 실제로 샙은 2000년대 후반기부터는 부상 위험이 높고 이기기 힘든 상대와의 대결은 피했으며 만만하다 싶은 하류단체에서 주로 파이트를 벌여왔다. 2010년대 이후 밥 샙의 파이트 일정은 어느 1류 파이터보다도 빡빡하게 잡혀있고 심지어 시도 때도 없이 져주는 행위(이른바 '셀프 워크')도 하고 있다. 2010년대 이후에 밥 샙의 상대들은 해당 대회가 열리는 지역의 네임드 파이터들이 대부분이었고, 경기 자체도 밥 샙이 져야 모양새가 나는 경기들이었다. 한 마디로 2, 3류 무대에 가서 일부러 흥행 보증 수표 + 상대 띄워주기용 떡밥으로 돈을 벌고 있는 것. 2008년 즈음해서는 아예 대형 격투기 무대에서도 대전료만 받고 대충 져줘버리는 먹튀 짓을 하고 있다. 당연 보통 선수가 이런짓을 하면 격투기 무대에서 안 받아 주지만, 흥행력이 있으므로 표를 팔아야 한다는 목적 아래 밥 샙을 다시 고용하곤 하는 것인데 즉, 모든 것은 계획대로 였던 것이다.

물론 위에 열거된 일들이 죄다 전략적이라는 건 아니다. 대표적인 것 중 하나인 후스트 은퇴전 파토를 저런 의도로 한 것이었다면 자기 욕심을 챙기려 수많은 사람에게 빅엿을 날린 천하의 개쌍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2007년 이후로는 진짜 돈 벌러 나오는게 목적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대충 맞다가 탭치는 OME스러운 경기를 자주 보여주면서 이전에 한국에 자주 방한하며 쌓아올렸던 좋은 이미지를 다 깎아 먹었다. 때문에 '대충 쳐맞고 명성빨로 돈만 챙겨가는 놈'이라는 이미지가 박히면서 안티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26] ROAD FC에서 밥 샙과 김종대의 대결을 추진했을때 "또 처맞다 탭칠게 뻔한 놈 꼴도보기 싫다"며 반대 의견이 크게 일기도 했다.

그래도 여유가 있는 자신과 다르게 은퇴 이후 힘든 생활을 하고 있는 선수들( 개리 굿리지, 알렉세이 이그나쇼프)을 돕기 위해 스폰서를 모아 은퇴모금을 마련하며 지원도 아끼지 않는 등 좋은 일도 하고 있다. 파이터로서는 최악이지만 인생에서는 나름 승리자라는 것을 부정하긴 어려울 듯. 그런데 후원을 해줬다는 파이터 중 하나인 굿리지가 이를 부인했다. 허나 재단 설립 자체는 거짓이 아닌것으로 보이며, 또한 이것이 밥 샙 측의 언플은 아니고 기자들의 보도 과정에서 오류가 생긴 듯 하다.[27]

9. 둘러보기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 레슬링 옵저버 선정 올해의 신인
엘 옴브레 신 놈브레
(2001)
밥 샙
(2002)
크리스 세이빈
(2003)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 레슬링 옵저버 선정 최고의 흥행 보증 수표
사쿠라다 카즈시
(2001)
밥 샙
(2002, 2003)
코바시 켄타
(2004)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 레슬링 옵저버 선정 가장 카리스마 있는 선수
더 락
(2002)
밥 샙
(2003)
에디 게레로
(2004)
파일:프로레스대상 로고.svg 도쿄 스포츠 프로레슬링 대상 MVP (최우수 선수상)
무토 케이지
(2001)
밥 샙
(2002)
타카야마 요시히로
(2003)


[1] 사회학, 심리학 [2] 과거 k-1에서는 밥 샙의 괴물 이미지를 위해 키를 2m로 홍보했으나 NFL 드래프트 콤바인에서 맨발로 측정한 실제 키는 194cm이다. 다만 실제 키가 알려진 현재도 이 '2m'가 프로레슬러들 같이 일종의 상징처럼 붙이는 수식어로 쓰이곤 한다. [3] 전성기 시절에는 170kg이었고, 그 후엔 150~160kg을 유지하다가 은퇴 후엔 205kg까지 살이 쪘다고 한다. 이후 건강을 위해 50kg 이상을 감량하여 150kg 정도로 체중을 유지하다가 보디빌딩에 도전하기 위해 체중을 더 감량하여 현재의 체중이 되었다. [4] 사실 NFL 드래프트의 3라운드만 되어도 해당 팀에서는 즉전급 기대치를 걸고 선수를 지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3라운드긴 해도 전체 69위로 30개팀 2바퀴 돌고 상위에 지명된거니 같은 3라운더라도 더 높은 순위다. 동포지션인 가드로서는 그 해 지원자 중 4번째다. [5] 제이 레노의 투나잇쇼에 나와서 농담 삼아 말하길 당시 포지션이 'ass-back'이었다고 한다. 뛰려고만 하면 감독 데니스 그린이 "Put your ass back!"이라고 해서 그렇다. [6] 이는 NFL 경기를 치를 때 로스터에 등록된 모든 선수를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53인 로스터에서 7명을 뺀 46명만 액티브고, 7명은 대기자 명단(inactive list)으로 두기 때문이다. 대기자 명단에 오가는 선수라도 NFL 기준으로는 정식 선수이므로 출전기록이나 플레이가 많지 않아도 NFL 선수 대우는 동일하다. 프랙티스 스쿼드는 그보다 서열이 나은 비정규직 선수라 대기자 명단 선수보다도 실력 차이가 더 나는 것이 정상이다. [7] 히스 헤링에게 눈싸움 도중 키스 한 그 선수 맞다. 원래 레슬링 베이스의 MMA 선수지만 밥 샙과 딱 한 번 입식 경기를 가졌다. [8] 경기 내용을 보면 코너에 몰고는 나가사코가 가드를 올리니 그냥 수직 엘보우랑 사점니킥을 꽂아버린다. 몰수패를 받아도 할 말 없지만 심판은 경기를 강행했고, 이후 뱁샙이 나가사코를 코너에 던지고 추가타를 꽂으니 결국 경기중단을 선언하고 열받은 나가사코가 뒤에서 공격하며 난동이 벌어지고 관계자들이 총출동하여 뜯어말린다. [9] 잘 모르는 사람들은 겨우 4분? 이라고 할 지도 모르겠지만 일본에서 TV 시청률이라는 개념이 생긴 이후로 역사상 최초의 사태였다고 한다. 게다가 그 시간에 홍백가합전에 출연중이었던 게 일본의 국민가수인 나가부치 츠요시. [10] 사실 이는 격투기고수의 체격이 비교적 평범하고, 하수의 체격과 신체능력이 우월할 때 생기는 일이다. 사람들의 인식과 달리 격투기=싸움이 아니며 엄밀히 규칙을 지키면서 하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설령 상대를 막싸움에서 이기기 힘들더라도 규칙을 지키면서 상대를 패배시키는게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노게이라가 격투가로서 월등하더라도 밥 샙의 워낙 피지컬이 괴물이기 때문에 이렇게 될 수 있다. 본야스키한테 완패한 최홍만도 이 점을 착각했는지 본인이 패배해놓고 승복하기 힘들다고 주장했는데, 본야스키가 최홍만을 때려눕히지 못하더라도 그는 룰 내에서 최홍만을 압도했기 때문에 명명백백한 승자다. 애초에 격투기는 싸움이 아니다. 상대를 때려눕히는 것(KO/서브미션) 뿐만 아니라 상대보다 점수를 많이 내도(판정) 승자인 것이다. [11] 다른 관점에서 분석하면 주짓수 중심의 그래플러가 가지는 약점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정작 노게이라와 비교하면 네임벨류가 확연히 낮은 후지타 가즈유키는 레슬러가 가지는 강력한 전장 선택권 덕분에 체급차에도 불구하고 밥샙의 밸런스를 흔들어 수월하게 이길수 있었다. [12] 이때 관중들이 박수치며 환호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13] 심지어 두피에도 근육이 있다. [14] 입식의 고수이면서 120kg의 근육질인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저돌적인 펀치러쉬로 유명한 제롬 르 밴너가 초반에 밥샙의 전진에 물러서지않았으나 체력이 왕성했던 밥샙에게 이내 밀릴정도였다. [15] 전성기 시절 포스와 몰락 과정이 밥 샙과 유사하단 평이 있는 브록 레스너는 격투기에 데뷔 하기전에 NFL에 진출하려다 실패한 적이 있다. [16] 특히 한국에서는 2000년대에 밥샙은 그저 웨이트로 몸집을 불려 힘만 강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었으나 돌이켜보면 밥샙은 흔히 보디빌더나 리프팅 선수들의 격투 실전능력에서 힘과 타격만으로 유효한 성적을 내는 이미지에서 최정점에 있었던 선수라 볼 수 있는데 밥샙 이후 헤비급 보디빌더나 스트롱맨, 리프팅 대회에서 성적을 냈던 사람들이 격투기 대회에 진출했다가 그 힘을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거나 쓰기도 전에 패배해 망신을 당하는 등 당대 메이저급 파이터들은 구경도 못해보고 2,3류 파이터들에게도 제대로 당해내지 못했던걸 생각하면 데뷔 초기에 최상위권 파이터들과도 겨뤄보고 밥샙에 대한 약점이 많이 드러냈을때도 하위권 선수나 퇴물 파이터들 따위로는 밥샙을 당해내기 어려웠던걸 생각하면 밥샙이 국내에서 꽤나 저평가를 받았던걸 알 수 있다. 무엇보다 밥샙이 전문가와 대중들의 예상을깨고 이겼던 선수들의 체격이 작은것도 아니었는데 대부분 신장은 밥샙과 비슷했고 체중은 110kg 이상으로 UFC 한계체중에 살짝 못미치는 수준의 거구들이었다. [17] 전성기 시절에는 신장 200cm로, 첫 K-1 데뷔전인 나카사코와의 경기에서는 신장 205cm로 홍보되었었다. [18] UFC 헤비급 기준으로 신장은 평균보다 좀 더 크고 전 체급 통들어 3번째로 긴 리치를 지닌 세르게이 파블로비치가 213cm니 헤비급 기준으로도 거구는 맞다. [19] 근육덩어리라 체중대비 스피드는 빠른 편이긴 하다. [20] 특히 크로캅에게 안면을 정통으로 맞아 안와골절이 왔는데 이 정도의 충격이면 실신 KO를 당해도 이상하지 않은데 맞고나고나서 흠칫하더니 이후에 참을 수 없는 통증이 몰려오자 냅다 드러누웠다. [21] 피지컬과 힘만으로만 [22] 전공이 아니다. 미국에서 약학대학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학부생활 때 화학, 생물학, 사회학, 심리학 등 기초 과목을 수강 하는 것이다. 학부생은 누구나 할 수 있고 당연히 약학대 만큼 빡세진 않다. [23] 계절학기와 비슷한데, 워싱턴대의 경우 한 학년 3학기 제도였기 때문에 3번의 여름학기를 다니면서 1년을 일찍 졸업할 수 있었다고 한다. [24] 후술하겠지만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 스타킹에도 출연했는데, 이 때 MC 강호동과 신경전을 펼치다가 강호동한테 잡혀서 들어올려지자 이 때의 표정이 백미. 놀란걸 넘어서 순간적으로 겁 먹은 표정이었다. [25] 포효하는 소리를 잘 들어보면 나가~나가~ [26] 최근 인터뷰에서 져줬다는게 맞는말이라고 밝히기도했다. 다만 이에 좀 더 자세히 설명했는데 애초부터 고의적인 패배를 유도하거나 각본이아니라 일단 붙어보다가 쉽게 풀리지않을거같으면 부상위험도 커지니 어느정도 해보다가 포기하는식으로 경기를 이끌었다. [27] 예를 들자면 밥샙이 "개리 굿리지나 알렉세이 같이 은퇴 후 힘들게 사는 선수들을 돕기 위해 재단을 설립하겠다." 라는 언급을 했을 때 밥샙의 언급 의도는 개리 굿리지와 알렉세이 이그나쇼프를 특정지어서 직접 돕겠다는 얘기가 아니라 두 인물의 사례처럼 은퇴 후 생활이 힘든 선수들을 돕기 위한 목적이라는 메세지를 기자들이 왜곡해서 "밥 샙이 알렉세이와 개리 굿리지를 돕기 위해 재단을 설립한다더라" 라는 식으로 부풀렸을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