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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최무배(崔武培)[1] |
출생 | 1970년 6월 27일 ([age(1970-06-27)]세) |
부산광역시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190cm / 110kg / 193cm |
종목 | 종합격투기 |
경기 전적 | 22전 14승 8패 |
승 | 8KO, 4SUB, 2판정 |
패 | 4KO, 1SUB, 3판정 |
학력 |
부산체육고등학교 (
졸업) 동아대학교 체육대학 (경기지도학[2] 89 / 학사) 동아대학교 대학원 ( 체육학[3] / 석사[4]) |
링네임 | "부산 중전차" |
소속 | 최무배 짐 (대표)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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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헤비급 종합격투기 선수.2. 전적
- 주요 승: 이마무라 유스케, 야마모토 요시히사, 무라드 아마예프, 소아 파렐레이, 자이언트 실바, 개리 굿리지, 데이브 허먼, 고노 마사유키, 후지이 카츠히사, 몬마 토요히코, 루카스 타니, 카와구치 유스케, 마안딩, 손혜석
3. 커리어
1989년 부산체육고등학교, 1993년 동아대학교 경기지도학과(레슬링 전공)를 졸업하고 1998년 6월 동아대학교 대학원에서 스포츠마케팅 전공으로 체육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아마추어 레슬링 선수 출신으로, 종목은 그레코로만 형.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에서 4위에 오르고 1991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서 동메달을 따는 등 맹활약했으나 부산광역시청 소속으로 활동하던 1998년, 오토바이 사고로 현역에서 물러난다. 은퇴 후로는 '최무배 짐'이라는 레슬링 도장을 열고 후학 양성과 레슬링 보급에 힘썼다.2004년 종합격투기에도 발을 디뎌서 한국 최초로 Pride에 진출했다. 인터뷰에 의하면 종합 격투기에 진출하게 된 계기는 2003년 말 있었던 PRIDE 2003 그랑프리 파이널 라운드를 보러 갔을 때, 관객 추첨 행사로 우연히 에밀리아넨코 효도르와 힘을 겨루게 되었다가 당연 엘리트 레슬링 선출인만큼, 효도르가 긴장할 정도의 클린치 싸움을 보여준 것이 계기라고 한다.[5]
2004년 2월 PRIDE의 하위리그격인 부시도(武社道)[6] 대회에서 가진 데뷔전에서 이마무라 유스케를 리얼네이키드 초크로 꺾었다. 도중 앵클락을 내줄 위기가 있었으나 잘 넘겼고, 압도적인 피지컬의 우세를 잘 살려 그라운드에서 우세를 이어갔다. 결국 백마운트에서 리어 네이키드 초크로 완승을 거둔다. 2004년 5월에는 야마모토 요시히사에게 심판 만장일치로 판정승을 거두었다.
2004년 6월 Gladiator에서는 러시아의 무라드 아마예프를 상대로 호쾌한 저먼 수플렉스를 선보인 끝에 파운딩으로 18초만에 초살승을 거두었다.
2004년 10월에는 PRIDE 28에서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레슬러인 소아 파렐레이에게 기적같은 역전승을 거둔다. 레슬링 베이스인 파렐레이는 최무배를 상대로 클린치 싸움에서 밀리지 않고 오히려 우월한 펀치 테크닉으로 수십발의 정타를 맞추었다. 그러나 최무배는 끝까지 쓰러지지 않았고 오히려 체력이 빠진 파렐레이를 테이크다운시켜 리얼네이키드 초크로 탭을 받아냈다. 다만 이 경기는 해외에서 워크 의혹이 제기되었다.
2004년 12월에는 PRIDE 2004 남제에 출전, 자이언트 실바와 대결했다. 힘으로는 상대가 안될 거구의 실바였으나, 침착하게 그라운드로 끌고가 암트라이앵글로 가볍게 승리했다. 사실 자이언트 실바는 덩치만 클 뿐, 떡밥스런 상대였지만, 220cm의 괴물을 한국인 파이터가 잡아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국내에서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로서 성공적으로 PRIDE에 안착함과 동시에 한국의 중량급 에이스로 떠오르게 된다.
2005년 2월 PRIDE 29에서는 드디어 탑 컨텐더인 세르게이 하리토노프와의 일전을 가졌다. 하지만 넘사벽의 타격능력을 가진 하리토노프는 아웃파이팅으로 최무배의 공격을 모두 피하고 수많은 펀치를 꽂아 넣는다. 이때 답답해진 최무배가 하리토노프에게 싸대기 공격을 날리지만 하리토노프는 그것마저 피해버리고 훗날 이 공격으로 최무배는 '부산싸대기'란 오명을 얻는다. 결국 최무배는 클린치 상태의 더티복싱에서 라이트 어퍼를 허용한다. 이어지는 펀치러쉬에 다운되며 사커킥에 의한 레프리 스톱으로 TKO패하고 말았다. 2005년 11월 K-1 HERO's에서는 '프레데터' 실베스터 터케이[7]에게 장기인 레슬링에서 밀리며 판정패했다.
2006년 12월에는 Pancrase에서 고노 마사유키로 바닥을 걸레질한 끝에 2라운드에 암트라이앵글로 관광승을 거두었다.
잠시 공백기를 가진 후 2008년 3월에는 한국에서 열린 K-1 칸 대회에서 개리 굿리지를 레슬링으로 압도한 끝에 크로스 카운터 펀치로 생애 첫 KO승을 거두게 된다.
2008년 6월에는 센고쿠에 출격했으나 ADCC 우승자인 마르시오 크루즈를 만나 스탠딩과 그라운드에서 압도당하며 패했다.
2009년 1월에는 EXC 출신의 강력한 타격가인 데이브 허먼과 경기를 가졌다. 무패의 신인 스트라이커를 상대로 관광을 당하면서도 전진을 거듭하자 허먼의 리듬이 깨졌고, 1라운드 막판 저먼 수플렉스를 적중시키며 기무라를 걸기도 했다. 결국 2라운드 경 데미지가 누적된 허먼에게 러쉬를 가하면서 라이트 한방을 허먼의 턱에 명중시켜 대역전승을 거두었다. 2009년 6월에는 후지 카츠히사를 제물로 승수를 추가했다.
2009년 8월에는 센고쿠에서 레슬러인 나카오 요시히로[8]와 팽팽한 접전을 펼쳤으나 3라운드에 급격히 무너지며 아쉽게 판정패하고 말았다.
이 후로는 MMA팀 팀태클을 새워 후진을 양성했으며 충청대학교 교수 활동을 하고 있다.
2012년에는 레볼루션이라는 한국 신생 단체와 계약을 맺었지만 대회를 치르기도 전에 공중분해 되어 출전 기회를 또 다시 놓치게 되었으나 다시 대회가 개최되어 3월 23일 있을 1회 대회에 3년 7개월만의 복귀전을 치르게 되었다. 그리고 복귀전에서 일본의 몬마 토요히코를 상대로 난타전을 벌이며 1라운드 26초만에 KO승을 거뒀다.
2015년 5월 2일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Road FC 023에서 루카스 타니를 파운딩으로 1R 1:45 TKO 시켰다. 루카스 타니는 최무배와의 대결 이전에 심건오 선수를 서브미션으로 잡아낸 바 있어서 레슬링 후배의 복수를 선배가 한다는 구도가 잡혔다. 최무배 선수의 체중이 헤비급 한계체중인 120kg인데 반해, 루카스 타니의 체중은 100kg 남짓으로 이른바 '피지컬 빨'로 승리했다는 냉소적인 반응을 받기도 했다.[9] 등장음악은 넥스트의 Into the arena. 대한민국으로 유명한 그 곡 맞다. 최무배가 과거 Pride에서 활동할 때부터 써오던 등장음악.
2015년 7월 25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콜로세움에서 열린 ROAD FC 024에서 카와구치 유스케에게 2R 4:50에 TKO로 승리했다. 이 경기 전 승패와 관계없이 부산던지기를 시전하겠다고 예고했고, 실제로 부산던지기를 성공시켰으며 경기내용 자체도 압도적이었다.[10]
2015년 10월 9일 ROAD FC 025에서 코리안 킬러 마이티 모에게 37초 만에 KO패를 당했다
2015년 12월 26일 ROAD FC 027 in China 에서 역시 마이티 모에게 3분 48초만에 TKO패를 당했다. 초반 탐색전을 벌이려는 최무배와 반대로 강한 압박을 하며 들어오는 마이티 모의 펀치 세례를 이기지 못했다. 리벤지 매치에서마저 패배를 당했으니 앞으로 마이티 모와의 경기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듯.
내몽골 중국인 마안딩을 상대로 승리했다. 초반에 뎀프시롤을 하며 들어오려 했으나 마안딩의 원투 펀치에 고꾸라져 위기에 빠졌다. 그러나 파렐라이와 하리토노프, 마이티 모의 펀치 찜질로 다져진 안면 맷집으로 견뎌내며 라이트 단발 카운터를 적중시키고, 이 한 방에 승기가 최무배 쪽으로 기울었다. 결국 무차별 파운딩으로 KO승을 거두고, 같은 날 제이슨 모튼에게 남북 초크로 완봉승을 거둔 후지타 카즈유키에게 도전을 받는다.
결국 11월 3일 Road 050에서 후지타와 대결하는데, 뎀프시롤과 풍신 웨이브를 섞은 듯한 뎀풍신롤을 선보이며 화제가 되었다.
그러나 그다지 실효성은 거두지 못하였고 마이티 모나 하리토노프에게 졌을 때와 마찬가지로 스탠딩 타격에서 크게 밀려 초반부터 불리한 양상으로 흘렀으며, TD가 막히자 아무 것도 하지 못하다가 후지타의 뒷손 페이크에 걸리며 왼손 훅에 맞고 다운된다. 이후 파운딩 해머링 난타로 인한 레프리 스탑 패배.
2022년 4월 29일 AFC 엔젤스파이팅에서 손혜석[11]과 헤비급 타이틀전을 펼친다고 하였다. 그리고 손혜석을 2라운드에 KO시키면서 헤비급 챔피언이 되었다. 승리 소감에서는 데뷔 당시 모든 관심을 받고 지금은 일을 안하는 친구를 불러서 일을 시키고 싶다면서 최홍만을 콜했다. 다만 이후 개인적으로 최홍만과 만나 대화를 해봤는데 최홍만은 이제 격투기에 많이 멀어진 상태였다고 하며 최무배 또한 마음이 없다면 최홍만과 굳이 경기를 가지진 않겠다고 했다.
4. 파이팅 스타일
우월한 체격과 파워, 국대급의 레슬링 스킬을 바탕으로 한 그래플링이 강점이다. 그래코로만 베이스라 클린치 싸움에 강하며 이스케이프 능력도 수준급이라 그라운드에서는 여간해서는 밀리지 않는다. 어지간한 상대는 테이크다운에 이은 파운딩만으로 관광을 당하게 된다.최고의 장점은 바로 맷집과 저돌성. 파렐레이전과 허먼전에서 넘사벽의 공격을 허용하면서도 끊임없이 전진스탭으로 상대를 당황시켰고, 결국 경기를 자신의 페이스로 끌고가 역전승을 거두었다. 상대 선수의 주먹을 그냥 얼굴로 받아내는 장면이 속출했고 저건 맞고 있는게 아니다, 안면으로 가드하고 있는거다.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멘탈이 강한 선수로 꼽히기도 한다. 맷집과 레슬링에 자신이 있으며, 상대와 함께 진흙탕 싸움을 펼쳤을때 상대의 체력을 빠르게 빼놓는 레슬링 경험이 위닝 멘탈리티의 근원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진흙탕 싸움 끝의 역전승도 제법 있는 편이다.
그러나 가장 큰 약점은 타격. 공수 양면에 걸쳐 타격능력이 크게 부족하다.[12] 데뷔하기 전이나 그 후에도 레슬링 이외의 타격계 기술을 따로 중점을 두어 훈련하지 않았다고 잘못 알려져 있지만,[13] 사실 타격 수련을 하긴 했지만 나이와 부상 후유증으로 기량 발전에 한계가 있었다. 물론 보다 디펜스를 단단하게 가져가는 방식으로 수련했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있는 부분. 어쨌든 타격을 새로 장착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특기인 아마 레슬링의 강점을 더 살려서 경기하겠다는 쪽이었다. 다만 3번이나 상대방 선수를 실신시킨 경험이 있는 만큼 펀치력 하나는 무시 못할 수준이다.
또한 부상후유증으로 인해 스탭이 경쾌하지 못하고 전체적으로 스피드가 떨어진다는 것도 약점이었다. 파워 자체는 강하지만 느리고 스킬이 부족해서, 전반적으로 결정력 부족으로 지루한 시합을 하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게다가 레슬링과 그라운드 비중이 컸지만 스킬보다는 피지컬과 힘에 의존하여 본인과 힘이 비슷하지만 그라운드 기술이 더 좋거나, 아니면 피지컬과 힘이 더 센 상대한테는 고전하는 모습을 보인다. 자이언트 실바에겐 승리하였지만, 본래 체구만 클 뿐 전체적인 기량이 떨어지는 떡밥선수였으니 거론할 바가 못되고, 소아 팔라레이[14]나 프레데터[15] 와의 경기에서 이점이 두드러지게 눈에 띄었다. 본인보다 전체적인 기술이나 콤비네이션이 좋으나 피지컬이나 힘등이 낮은 상대에게는 선전하는 데에 반해 반대의 경우에서는 고전하는 것이 약점으로 지적되고는 한다.
결국 커리어 전체를 감안했을 때 가장 심각하게 약점을 보인 상대는 하드 펀처들. 본인 말에 따르면 소아 팔라레이의 펀치가 가장 강했다고 하고, 세르게이나 마이티 모의 펀치가 그보다 아래였다고 하지만, 전적으로 보나 뭘로 보나 소아 팔라레이보다 세르게이나 마이티 모가 훨씬 강한 하드펀처 타격가였고, 실제로 세르게이나 마이티 모에게는 무기력하게 패배했다. 자신의 맺집을 상회하는 파괴력있는 펀치를 맞았을 때 대응할 방법이 없었고, 상대의 롱훅을 너무 정타로 얻어맞는 모습도 많이 보였다. 커리어 말년으로 접어들자 내구력마저 떨어지면서 이런 문제들이 더욱 더 커졌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그가 심각한 부상을 안고 35세의 나이로 데뷔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런 단점들이 이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애초에 왼쪽 다리를 사실상 쓸 수 없는 수준인지라 풋워크도, 저공태클도 불가능한 상황이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들이 있었다.
5. 기타
1998년 오토바이 사고를 당했는데, 이 때 왼쪽다리가 조각나면서 레슬러 선수로서의 생명이 끝났고 종합격투기에 데뷔한 시기에도 이미 나이가 꽤 있었기 때문에 크게 기대를 거는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투혼의 연승행진(!)을 보여주며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16] 한국인으로서는 중량급에서 가장 뛰어난 성적을 올린 선수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파이트 메트릭스의 MMA랭킹에서는 항상 50위권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는 한국 헤비급 중 가장 높은 순위다.엄청난 맷집과 정신력으로 수많은 명승부를 만들어냈지만 '한 경기할 때마다 저렇게 만신창이가 되어서야 선수 생명 얼마나 가겠느냐'고 걱정하는 시선도 많았다.
하지만, 늦은 나이의 데뷔도 그렇고 최무배 본인이 "종합격투기의 세계에서 1인자가 되겠다!"같은 야심보다는 후배들에게 종합격투기의 대중화를 위한 교두보가 되면서 길을 열어주기 위해 데뷔했다고 보는 쪽이 옳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최무배는 한국의 명문 MMA팀중 하나인 팀태클의 관장이기도 하다.
독특한 승리 모션으로도 유명했는데, 다리를 벌리고 등을 곧게 편채 손가락을 하늘 높이 치켜드는 존 트라볼타의 'Saturday Night Fever!' 포즈로 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한류과 엮여 일본에서는 '한류 피버 사나이(韓流フィ―バ―男)'로 인기가 높았다.[17] 그밖에 한류 관련으로 배용준, 이병헌 등 한류 연예인들과 엮이는 일도 많았다.
때때로 수플렉스를 사용하기도 했는데, 대미지 이외에 팬서비스적인 측면도 강했다. 프로레슬러인 고노 마사유키를 상대로 시전했을 때는 관중들과 해설진의 열광적인 호응이 있었다. 참고로 프라이드 활동 당시 프라이드에서 붙여준 기술 이름은 '부산 던지기.
하리토노프와의 눈싸움으로도 유명한데, funny MMA moments 계열의 편집영상에는 매번 빠지지 않고 나온다.
이때 줄곧 두들겨 맞다가 회심의 싸대기를 날려서 '부산 싸대기'라는 별명이 생기기도 했다. 하리토노프에게 별 타격을 입히지는 못했지만, 흠칫 놀라는 표정이 일품.
네이버 웹툰 코믹맨 블루스에서 한국 최강의 격투가로 나오기도 한다. 문제는 최무배는 레슬러인데 만화에서는 타격가. 성격도 훈훈한 아저씨 스타일인 최무배에 비해 싸가지 없게 나온다.
그의 인생역정
2000년대부터 MMA팀 팀태클을 운영했으며, 2012년에는 대전광역시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체육관인 최무배GYM을 오픈했으나 2023년 경영난으로 폐업하였다.
푸른거탑 시즌1에서 특별출연으로 나온 적이 있다.
2014년부터 성인방송인 노모쇼 시즌2에 출연 중이다. 진행자인 지상렬과 친분이 있어 촬영장에 구경을 왔다가 아예 고정으로 눌러앉았다고 한다. 방송에서는 주로 힘쓰는 일이나 꽤나 도움이 되는 조언들을 해준다.
2022년 들어 팝콘TV와 유튜브 활동중이며, 위대한과 합방을 진행하기도 했다.
최무배 레슬링 교실
최무배짐
최무배GYM, CROSSFIT Daejeon : 네이버 카페
김재영(1983) 선수와 같이 훈련을 많이한다. 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468&aid=0000425573&redirect=true
[1]
#
[2]
레슬링 전공
[3]
스포츠마케팅 전공
[4]
석사 학위 논문 :
도시인의 여가활동실태와 장애요인에 관한 연구(1998. 6).
[5]
정확히는, 동행했던 가이드가 당첨이 됐는데, 안절부절하고 있을 때 추첨권을 바꿔서 본인이 올라갔고, 이벤트인 만큼 가볍게 하는 효도르의 기술을 그냥 버텼다고한다. 그 과정에서 관계자들의 눈에 들었다고.
[6]
시작은 UFC 파이트나이트와 같이 하위리그와 같이 운영됐으나 이후 라이트급 웰터급 등 낮은 체급 선수들의 대회로 변모. 간판 고미 타카노리를 필두로 애매한 마이너리그 이미지를 벗어나 흥행에 성공.
[7]
최홍만과 혈전을 벌였으며, 이후 WWE에 진출하기도 했던 그 선수 맞다.
[8]
히스 헤링과 입맞춤으로 유명한 선수다.
[9]
그 피지컬 빨로도 져버린 심건오 의문의 1패 추가
[10]
너무나 심하게 압도당했기에 이 경기를 본 국내 팬들에게는 약체 이미지가 박혀버렸지만 카와구치 유스케는 일본 3대 종합격투기 단체 중 하나인 Deep에서 무제한급 챔피언으로서 3차방어까지 성공하고 스스로 타이틀을 반납한 경력이 있을 정도로 아시아권 중량급에서는 나름 강자라고 할 수 있는 선수다. 물론 카와구치가 전성기를 지났다는 의견도 있지만 최무배의 클래스를 인증한 경기였다.
[11]
주로 미들급에서 뛰던 선수였으나 이날은 체중을 불려 헤비급으로 출전했다.
[12]
이기긴 했지만 소아 파렐레이전은 보다보면 이게 MMA인지 그레코로만 레슬링 시합인지 헷갈릴 지경.
[13]
실제로는 최무배가 복싱훈련을 하는 장면이 종종 방송에 나왔다.
[14]
레슬링과 타격에서 처절하게 발리다가 체력전 끝에 역전승을 거둔 명경기이지만 매우 고전했다.
[15]
다만 이 쪽은 나름 엘리트 레슬러 출신에 타격 재능도 우수한 선수였다.
[16]
그의 왼쪽 정강이부터 무릎에는 긴 철심이 박혀있으며, 정좌자세(양반다리)가 불가능하다. 즉 왼다리를 굽힐 수 없다는 의미. 따라서 레슬러 임에도 불구하고 저속 태클을 하지 않고, 클린치를 통한 그래플링으로 밖에 경기를 풀 수밖에 없었다. 격투기 선수로서 큰 핸디캡을 갖고 경기를 치렀던 셈.
[17]
다만 최무배 본인이 인터뷰에서 밝히기로는,
근육맨에 나오는 캐릭터의 포즈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