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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8 03:01:38

어네스트 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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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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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네스트 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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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르코 크로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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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어네스트 프리츠 후스트
(Ernesto Fritz Hoost)[1]
출생 1965년 7월 11일 ([age(1965-07-11)]세)
네덜란드 헴스케르크
국적
[[네덜란드|]][[틀:국기|]][[틀:국기|]]
|
[[수리남|]][[틀:국기|]][[틀:국기|]]
체격[2] 189cm / 108kg
별명 Mr.Perfect
입식 타격 전적 121전 99승(62KO) 21패 1무
주요 타이틀 K-1 1993 WGP 준우승
K-1 1997 WGP 우승
K-1 1999 WGP 우승
K-1 2000 WGP 우승
K-1 2002 WGP 우승
1. 개요2. 전적3. 커리어
3.1. 초창기3.2. K-1
4. 파이팅 스타일5. 기타

[clearfix]

1. 개요


네덜란드의 전 입식격투기 선수. 수리남계 네덜란드인으로 K-1 최초 4회 그랑프리 우승자다.

2. 전적

3. 커리어

3.1. 초창기

초창기 커리어는 15세 때 킥복싱을 시작하여 링에 데뷔하고 20전을 KO승으로 장식했다.

3.2. K-1

1993년에 K-1에 출전하여 당시 우승후보였던 모리스 스미스를 하이킥한방에 KO로 눕히고 피터 아츠까지 판정으로 꺾고 결승에 진출했지만, 브랑코 시카틱에게 패배하면서 준우승을 하게 된다. [3] 그때부터 강자로 주목받게 되었지만 후스트의 체급은 헤비급이 아니라 미들급 정도였고, 그 당시가 피터 아츠의 최전성기라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4]

경량급 대회인 K-2이 열리자 우승컵을 쓸어담았지만 K-2은 흥행이 저조하여 곧 폐지됐다. 후스트는 경량급으로 한계가 있음을 알고 몇년에 거쳐 100kg이 넘는 육체개조에 성공, 헤비급 킥복서로 변모하게 된다.

1997년에 마이크 베르나르도 피터 아츠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고, 1998년에서 중간에 사바트 세계 챔피언 자리에 오르기도 하고 K-1에서 승승장구하여 전설에 당도하게 된다. 특히 미르코 크로캅을 무관의 제왕으로 억눌러버리기도 했다. 세미 슐트가 나오기 전에는 K-1의 최종보스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괴물.

파일:갓샙.jpg

하지만 2002년에서 난데없는 자신의 천적을 만나게 된다. 바로 밥 샙에게 압도적으로 당했다. 듣도 보도 못한, 심지어 배운 운동이라고 해봐야 미식축구나 프로레슬링뿐 격투기는 체계적으로 배우지도 않아서 그저 무식하게 힘을 내세워서 경기를 하던 샙이었지만 미식축구로 다져진 천부적인 체격과 힘이 있었기에[5] 후스트는 자주 코너에 몰려 그야말로 미친듯이 얻어맞으면서 16강 개막전에서 레프리 스탑 TKO패를 당하게 되었다. 이후 그랑프리 8강에서 가진 2차전에서는 아웃파이팅을 하며 우세한 경기를 벌이다 무리하게 정면승부를 걸어 1차전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며 샙에게만 2연패를 당했다.

하지만 운이 좋게 16강전에서 마이클 맥도날드를 상대로 이긴 세미 슐트가 8강전으로 올라갔어야 했는데 슐트가 부상을 당해서 후스트가 대신 8강에 진출하게된다. 거기다가 후스트의 저항도 만만치 않아서 샙의 주먹이 부러져 퇴장하자 그 대신 4강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레이 세포 제롬 르 밴너를 꺾고 그의 생에 마지막 우승을 차지하게 되면서 운조차도 챔피언급으로 좋다는걸 인증했다. 그야말로 엄청난 행운인 셈.

아이러니한 점은 후스트는 밥 샙에게 이긴 적이 없었는데, 후스트한테 졌던 선수들은[6] 밥샙을 쉽게 쓰러뜨렸다는 것이다. 사실 후스트가 밥샙과의 경기에서 로우킥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며 경기를 지배하고 있었는데 밥샙이 다운을 한번 당하자 챔피언의 자존심 때문에 본능이 살아난 것인지 유독 정면승부를 고집하다가 망한 것이고 크로캅은 이미 해법을 알고 나온 터라 철저히 아웃복싱으로 승리하였다. 경우는 다르지만 종합격투기의 전설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가 충분히 갖고 놀수 있는 상대인 밥샵을 상대로 좀 헤맸던 것도 그때 까지 거의 첫 등장이었던 터라 약점을 파악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으로 뒤에 밥샵을 상대한 선수들이 훨씬 쉽게 이겼다.

마찬가지로 후스트의 경우에는 1차전에 무참히 패하고 2차전에서 로우킥으로 선전한 것으로 보아 어느정도는 밥샵의 약점을 눈치 챘던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 만으로는 데이터가 부족하고 더구나 챔피언의 자존심 때문에 오기를 부린 것으로 패배한 것이다. 단순히 상대성이나 그런 것으로 분석하기엔 조금은 경우가 다르다는 것 ( 2차전에서 충분히 이길 수 있는 그림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

그 후로 나이의 한계인지 자주 부진에 빠지면서 레미 본야스키에게 왕좌를 내주었지만 언제나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고 있었다. 그래서 은퇴를 마음먹었었으나 2005년 WGP FINAL 대회에서 우승자인 세미슐트와 2005년 K-1 다이너마이트에서 맞붙었으나 후스트의 눈이찢어져 TKO패를 당한다 2006년 초경에 자신의 고국인 암스테르담, WGP 경기에서 밥 샙과 리벤지 매치로 마지막을 장식하려고 했지만, 샙이 대기실에서 도망을 가는 바람에 피터 아츠가 대리출장을 하게 되었다. 참고로 그 경기는 후스트의 승리. 결국 그는 같은 해 WGP오사카 개막전에서 후지모토유스케를 상대하게된다 유스케는 후스트의 계속되는 로우킥을 버텨내고 있었지만 데미지가 누적되어 결국 KO패를 당한다 WGP 파이널 8강전에서는 할리드디 파우스트와 상대를 하지만 연장까지가는 접전끝에 판정승을 거둔다 그 다음 4강전에서 새로운 최종보스 세미 슐트에게 패배한 후 2006년에 정식으로 은퇴한다.

이 경기에서 모든관중들이 후스트를 간절하게 외치는 모습을 볼수있다 경기도중에도 후스트라 외치는 목소리를 계속들을수가 있다 모든관중들도 후스트가 세미슐트를 이기는게 어려울거라는거는 알고있었으나 세미슐트의 독주를 막아달라는 간절한 마음이 아닌가싶다

경기는 후스트의 패배로 끝나는데 그 냉정했던 슈퍼컴퓨터 미스터퍼펙트 후스트가 처음으로 관중앞에서 눈물을 보였다 그러자 모든 관중들이 일어나서 기립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비록 경기의 승자는 세미슐트고 패자는 후스트이지만 이 경기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것은 후스트였고 진정한 주인공도 후스트였다. 화면에 아들과 부인의 모습이 비추기도 했다.

은퇴 후 팀 미스터 퍼팩트란 체육관을 운영하면서 지도자로서 활약중이었으나... 2014년에 선수로 복귀했다. 나고야에 Hoost Cup: Legend란 대회에서 토마스 스탠리와 싸워서 이겼으며. WKO World Karate Championships 대회에서 피터 아츠를 꺾고 헤비급 챔피언을 땄다. K-1때 뛰던 시절에 비하면 몸이 상당히 후덕해졌지만 실력은 죽지 않은 듯.

대표적인 제자로 K-1부터 UFC까지 활약하고 있는 입식격투가 패트릭 배리, K-1에서 활약했던 입식격투가 폴 슬로윈스키가 있다.

4. 파이팅 스타일

상대에게 야금야금 데미지를 입히며 천천히 침몰시키는 스타일이다. 그러한 파이팅이 마치 고성능의 컴퓨터마냥 정교했기에, '미스터 퍼펙트'라는 별명이 생겼다. 기본적으로 견고한 신체 밸런스까지 겸하고 있어, 상대 선수로서는 후스트의 빈틈을 찾기가 어려웠다.

이것 때문에 저격수처럼 빈틈을 공략하는 스타일인 미르코 크로캅에게는 극상성이었다. 이 두 선수의 시합은 원 패턴으로 이루어지는데, 크로캅 입장에서는 빈틈을 찾아서 공략하려 했지만 빈틈이 안보이니 약간 성격이 나올 때도 있었다.[7] 그러다가 크로캅이 지칠 때 후스트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서서히 점수를 따내 유효타를 날리면서 아예 처음 먼저 타격을 날린 뒤 밀어붙이는 크로캅의 전략을 차단해버린다. 이런 상성은 2000 K-1 그랑프리 파이널 경기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적이 있다.

원래 UFC 기준 미들급 정도의 체격으로 79kg급에서 뛰던 선수였는데 K1 무제한급에 맞춰 체중을 100kg정도로 증량했다. 증량한 선수라고 파워가 달려 짤짤이 판정승만 노리는게 아니라 찬스를 잡으면 거침없이 밀어붙였기 때문에 자신보다 덩치가 더 큰 선수들을 KO시킨 적도 많다.[8] 내추럴 헤비급 골격은 아니었지만 신장도 189cm이었고 팔다리가 매우 긴 체형이라 거리 싸움에서도 대부분 우위를 가져갔다. 또한 뼈대가 매우 단단했는지 종아리가 매우 가늘지만 로우킥의 파괴력이 강하기로 유명했으며 핸드스피드도 빨라 시그니처인 펀치연타 후 로우킥 마무리 콤비네이션으로 많은 승리를 가져갔다.

하지만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65년생으로 80년대 중후반부터 격투무대에서 활동하다 K1에도 20대 후반에 입성했다. K1에서 워낙 대단한 업적을 남겼기에 무시되곤 하지만 이미 동시대의 파이터들보다 나이가 많고 신체적인 전성기도 지난 베테랑 파이터였다. 내추럴 헤비급이 아니라는 태생적인 단점 때문에 맷집도 그렇게 강하지 않았다. 그래서 완력의 우위를 앞세운 상대의 인파이팅을 허용하면 그대로 KO패하곤 했다. 단적으로 K1 초창기 브랑코 시가틱과의 2경기에서 두 번 다 돌진 펀치에 실신 KO패를 했고 제롬 르 밴너와 밥 샙과의 경기에서도 힘을 앞세운 펀치러쉬에 KO당한 적도 있다. 밴너는 상대전적이 후스트보다 밀리지만, 95년도 경기에서 후스트를 강력한 특유의 펀치러시로 정신 못차리게 해서 KO시킨 적이 있다. 게다가 밥 샙의 경우엔 경기 내용은 그렇게 좋진 않고 패배 직전까지 몰렸지만, 결국 강한 완력과 거구 때문에 후스트를 2번이나 KO로 이겼다. 밥삽 격투 인생 최고의 성과이자 후스트 격투 인생 최고의 굴욕. 2차전은 밥 샙에게 패배하고도 GP 우승을 거머줬던, 전성기 끝자락의 시기라서 노쇠화라고 할 수도 없는 굴욕이다.

그래플링엔 하나도 관심이 없는지, 종합으로 가는 유명 입식격투가들과는 달리 입식 격투기밖에 경력이 없다. MMA전적도 없으며, 믹스룰도 치르지 않았다. 이는 같은 챔피언인 레미 본야스키도 동일하다.[9]

5. 기타

사실 은퇴 직후에 샙과 리벤지 매치를 벌인 적이 있었다. 프로레슬링으로.

파일:boob.jpg

경기는 그럭저럭 프로레슬링답게 벌어졌는데, 초반엔 후스트가 STF로 점수를 따다가 일방적으로 샙이 후스트를 완력으로 밀어붙여 초살 직전까지 갔었다. 그런데 샙이 후스트를 다 발라놓고도 그 힘을 주체하지 못했는지 심판부터 스탭까지 공격하면서 난장판을 벌였다. 그 틈에 후스트가 체어샷을 하고 패대기 친 다음에 핀폴승. K-1에서의 경기와 비교하면 상당이 뿜는 경기. 비록 각본이 있는 경기였다고는 하나 후스트는 승리후 비로소 자신의 천적을 이겨서인지 매우 기뻐했다.

상기한 02년 월드GP에서 밥 샙에게 샌드백마냥 처맞다가 주먹골절을 일으키지 않나, 레이 세포의 로우킥을 제대로 컷팅해서 정강이 부상을 일으키지 않나, 그리고 제롬 르 밴너와 치고박다 팔골절을 일으키며 우승했다. 무술경기에 팔 다치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연속으로 이렇게 부상을 일으키는 걸 보면 상당한 강골의 소유자라 할 수 있겠다.

각종 발리투도 무대와 프라이드 FC에서 엄청난 펀치력으로 인기를 끌어모았던 이고르 보브찬친이 K1에 도전할때 상대였기도 했는데 결과는 후스트의 전방위 관광승.

파일:hoost dance.gif

승리 후 팔을 앞으로 뻗고 온몸을 흔들어대는 춤사위 세레머니가 특징이다.

2024년 2월 24일, 불가리아 바르나에서 열린 20번째 SENSHI 국제 격투 대회에서 ISKA 현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전설적인 챔피언" 클래스의 첫 번째 일원으로서 후스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함이다. #

2024년 1월, 제롬 르 배너와의 복귀전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두 선수는 과거에 5번 대결했으며, 후스트가 3승 2패로 앞서고 있다. 후스트는 이 복귀전이 양쪽 모두에게 재정적으로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싸울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
[1] 네덜란드어 발음으로는 '에르네스토 호스트'에 가깝다. [2] K-1 OFFICIAL WEBSITE | 어네스트 후스트 | 선수 데이터베이스 [3] 93년은 K-1 첫대회이기도 하고 그당시 우승후보는 모리스 스미스와 피터 아츠였다. 하지만 당시 무명이었던 후스트가 모두 꺽은 것이었다. 당시 위상만 봐도 모리스 스미스는 80년대 최고의 킥복서로 불렸고, 피터 아츠는 그런 선수를 꺾고 킥복싱 세대교체의 선두주자로 불린 초신성이었다. 후스트는 체급부터가 이들보다 훨씬 아래였고, 해당체급에서도 유럽 챔피언으로만 지내다가 첫 월드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4] 피터 아츠와의 전적은 대회 불문하고 6전 4승 2패. K-1으로 한정하면 4전 2승 2패다. 그 2패는 K-1 Grand Prix '95 세미파이널과 K-1 Kings '98로 둘 다 판정패였다. 당시는 피터 아츠와 앤디 훅 2강체제였고, 어네스트 후스트는 그 아래 강자 정도의 위치였다. [5] 실제로 미식축구는 전 세계 피지컬 상위 1퍼인 사람들만 모인다는 말이 있을정도로 피지컬괴물인 사람들이 득실대는 곳이다. [6] 미르코 크로캅, 레이 세포, 제롬 르 밴너등 단 밴너는 순수 입식룰이 아니었으며 경기 결과 자체는 무승부다. [7] 과거 크로캅과 무사시의 경기에서 계속되는 무사시의 광속 클린치에 열받은 크로캅이 무사시를 클린치 도중 패대기쳤던 것을 생각하면 된다. [8] 99 K-1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제롬 르 밴너에게 훅을 퍼붓는 장면을 보면 제대로 꽂힌다는 느낌이 매우 강하고, 예전에 93년도에 모리스 스미스와의 경기에서 뒷통수에 하이킥을 날려버리는데, 모리스 스미스는 이것을 그대로 맞고 앞으로 그냥 고꾸라져버린 일도 있다. [9] 사실 입식 챔피언이라 아무리 타격 능력이 좋다고 해도 MMA는 레슬링, 주짓수 등의 넘어뜨리고 관절기도 사용하는 세계다. 당연히 서서만 싸우는 입식 선수들이 이런 선수들의 태클 등을 막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 바다 하리도 딱 한 번 무명 선수와 MMA 경기를 치렀다가 22초만에 서브미션 패를 당했고 피터 아츠도 그래플링의 미숙함으로 MMA에서는 3전 1승 2패라는 저조한 성적을 냈다. 후스트에게 전패했던 미르코 크로캅이 당대의 K-1 입식 선수들중 유일하게 MMA에 적응을 잘했다. 크로캅은 MMA의 탑랭커들도 칭찬할만큼 엄청난 완력과 테이크다운 디펜스 능력을 지녔기에 그라운드로 끌고 가는 것 자체가 어려웠고, 데뷔 초창기에 베우둠을 트레이너로 고용하여 주짓수 훈련도 게을리 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성공이었다. 그리고 입식이랑 MMA 두 분야에서 최정상을 지냈던 알리스타 오브레임은 약물은 둘째 치고 이쪽은 MMA에서 데뷔했다가 입식을 도중에 병행한 케이스니 제외다.